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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8일. 타슈켄트를 파본다.

숙소인 시티팔레스 호텔에서 타슈켄트의 토성 발굴 장소인 밍오릭을 먼저 들렀다. 문을 안열었다. 김병화 콜호즈였던 곳에 있는 김병화 박물관으로 간다. 타슈켄트에 들어오면서 다시 밍오릭. 타로나 식당에서 점심.

지진기념탑, 하즈라티 이맘 모스크, 초르수 시장, 티무르 박물관을 보고 가마솥에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는 타슈켄트 국제 공항.

 

지난 밤도 잘 잤다. 너무 잘 잤다. 자꾸 터무니없이 일찍 잠드는 것에 습관 들어버린 것 같다.

귀국하여 시차 적응에 애먹을 것만 같다.

9시에 출발 예정이다. 왜 7시 한참 전부터 어두컴컴한 복도로 나가는지 모르겠다. 배고팠구나~

`

아침 가뿐하게 해치우고 와이파이의 바다에 빠진다. 9시가 다가온다. 버스에 타야한다. 아쉽다.

밍오릭. 원래 일정에 없던 곳이다. 상당히 의미 있는 곳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관리책임자도 잘 안찾는다. 시간이 되었는데 문을 안열어!!!!!

 

꽃을 보며 안정을 취한다.ㅡ.,ㅡ

 

김병화 박물관을 먼저 다녀오기로 한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토성 안녕~~

 

타슈켄트 시내를 벗어나 A373 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린다.

시내 시장으로 수박 팔러 당나귀 수레에 잔뜩 싣고 가는 아저씨.

저것 팔고 나면 기름값이나 나올지...... 아, 당나귀구나....

 

A373 도로를 달리다가 보면 길 오른쪽으로 작은 언덕이 있다. 이것이 뽀인트. 그 다음 보이는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면 된다. 

동네 이름은 Chuguntepa. 가는 곳은 Kim Pen Khva Kolkhoz 김병화 콜호스.

 

김병화 박물관은 현지인 장에밀레 할머니가 관리하고 있다. 올해 78세.

멋쟁이 할머니였다. 한국 단체 방문객이 온다하니 꽃단장을 하고 나오셨다.^^

박물관 문을 따고 입장~

 

평소에는 문을 걸어둔다. 찾는 이들이 없기에.

찾는 사람들이 있으면 관광 가이드들이 연락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미리 연락을 드리면 시간에 맞추어 문을 여는 것이다. 

우리가 갈 때는 할머니 댁이 떨어진 곳에 있고, 약속 시간에 맞추어 길가에 나와 계신 할머니와 랑데뷰하여 버스로 모시고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이 분이다. 40여 년간 교사를 하셨단다. 나름 깨인 분이라 이 분이 박물관 관리를 맡고 있다고 한다.

이 분 다음에 맡아서 관리할 사람을 아직 찾질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

김병화 동상. 그 가족들이 엊그제 와서 꽃을 놓고 갔단다.

 

다른 분들 사진 모두 찍고 가신 다음에 스을쩍 셀피~

 

대단한 사람. 집단농장 콜호즈 책임자가 된 후 영웅훈장을 두번이나 받았다고 한다.

 

동상 옆에 서서 인증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박물관 내부. 그가 사용하던 책상 뒤편 벽에 커다란 사진, 그리고 그가 남긴 말. 그는 러시아인이 된 것이었다.

 

사막에 관개 수로를 만들고 물을 끌어들여 농경지를 늘려 나갔다.

그의 신조는 "강인성 참을성 노동"이었다. 얼마나 빡세게 노동을 하였을꼬.

사막을 식량 생산 기지로 만들어낸 그의 공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돋보였으리라. 스탈린의 눈에 들 수 밖에.

 

박물관 내부에는 김병화와 관련된 소소한 자료들은 물론 당시 콜호즈의 생활과 관련되는 다양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흐루시초프와 기념 사진 찍기~

 

"레닌의 기치" 신문사 사원일동. 훈장 축하~

 

길 건너에 유치원이 있다. 이 동네 아이들은 아이들같다.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귀엽더라.

 

수영을 할 예정인 것 같다. 수영장 청소 중이다. 그동안 기다리라고 한 모양이다.

얌전히 그대로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자기 애들 기를 살려 키운다는 것에 목을 메는 어떤 나라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모습이라 무척 신기하기도 했다.

 

타슈켄트로 들어오는 길. 역시 날이 더우니까 시원하게 창문을 열고 다닌다.

 

창문 열고 달리는 차량. 아주 시원해 보인다.

 

얜 모지?

 

타슈켄트 시내로 다시 들어왔다.

 

또 보네. 밍 오릭. 살구나무 천그루라는 뜻이란다.

 

주택가 한가운데에 있다. Moshtabib Street.

아래의 판떼기에 있는 내용을 번역해보면...

750년 고선지가 쳐들어와서 탸슈켄트(타슈는 '돌', 켄트는 '나라'라는 뜻이라고. 그래서 중국에는 石國이라고 알려져 있다.)를 박살냈다. 모든 집과 건물을 불태웠다. 무서운 놈. 또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밍 오릭은 그 때 타다 남은 부분이다. 지금도 발굴하다 보면 잿더미와 유골이 발견된다. 발굴은 2008년 러시아의 석유회사인 LUKOIL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후원사 부분만 색이 다르고 지워지지도 않았다. 후원이 중요하긴 하지.

 

부서지다 만 토성의 흔적.

 

구경하기.

 

유물들이 흙벽에 박혀 있는 상태.

 

벽에 작은 구멍들이 아주 아주 많이 뚫려 있다. 뭔지 궁금하면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보면 된다.

아마 큼지막한 벌이 침을 똬악 놓아줄 것이다. '아야!'하고 소리치면 된다.

 

한 쪽에는 기념품 판매점 및 식당이 있다.

처마 부분에서 물을 분사시킨다. 더위 식히기?

 

길가의 택시. 홈페이지 주소가 보이길래 찍어보았다.

 

11시45분. 어찌할까? 하는 질문에 그냥 먹으러 가자~

조금 이르지만 점심 먹으러 왔다. Tarona 식당. Kari Niyazov Street.

스프와 양꼬치. 맛 괜찮다. 양꼬치를 양파와 같이 먹으면 더 낫다. 더 드실 분? 하는데 막 더가져오지 말라고 하는.... 

음....나는 더 먹고 싶었는데...왜!

같은 테이블의 다른 분이 여분을 주셔서 더 먹을 수 있었다. 와우! 감사~

 

1시5분 식당을 떠난다.

 

식후 일정 첫번째. 지진 기념탑.

 

동상의 제목은 '용기'

요기에 친절하게 잘 설명되어 있다. 참고하기~

https://ru.wikipedia.org/wiki/%D0%9C%D0%BE%D0%BD%D1%83%D0%BC%D0%B5%D0%BD%D1%82_%D0%9C%D1%83%D0%B6%D0%B5%D1%81%D1%82%D0%B2%D0%BE_%D0%B2_%D0%A2%D0%B0%D1%88%D0%BA%D0%B5%D0%BD%D1%82%D0%B5

 

'용기'와 같이 사진찍기. 아주 큰 '용기'다~

사진의 오른쪽 아래 있는 돌덩이 시계가 지진 발생 시각을 표현한 것이다.

 

1966년 4월 26일. 오후 5시23분. 대지진이 이곳에서 발생하여 다 부서지고 많이 죽었다.

자연의 재앙으로부터 아이와 여자들을 우즈벡 남자들이 지켜냈다는 의미를 담으며,

우즈벡 민족을 기념하고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1976년에 이 동상을 만들었다고.

 

독실한 이슬람 신자이며 세 아이의 아버지인 베흐조드 아저씨가 보여주고 싶어한 것이 있었다.

코란 원본. 그것이 보관된 곳으로 간다.

 

주차장에서 들어가면서 있는 첫번째 건물. 베흐조드 아저씨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우즈벡에서는 공공 건물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고 한다. 테러 의심을 받을 수 있다나.

 

그래서 모스크를 구경하는 관광객을 찍었다.

멀리 보이는 것은 정원수. 그 멀리 보이는 것은 아마 Muslim Board of Uzbekistan일지도. 우즈벡에 2,230개의 모스크가 있고, 그만큼의 이맘이 있는데 그들을 관리하는 기능을 하는 기관이라고 했다.

 

하즈라티 이맘 대 모스크.

 

무슬림은 하루에 다섯번 기도를 해야 한다. 보통은 대충하는데, 이렇게 시간을 정해주기도 한다.

계절에 따라 해가 뜨기 전, 후의 시간이 달라질 수 있어 이렇게 시계로 보여준다. 이대로 하랏!

 

실내. 2,500여 명이 동시에 기도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미흐랍과 민베르가 사진 오른쪽에 보인다.

 

기도 시간이 아닌지라 중앙의 정원이 고요하다.

 

화장실. 모스크의 화장실이므로 당연히 무료!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내고 기도하러 들어가야하기에 씻는 곳도 준비되어 있다.

 

모스크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연인들. 그녀는 예뻣다!

 

3대 칼리프 오스만 때 코란을 정리하여 3권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을 7세기경에 카피하여 10권을 제작하였다. 하즈라티 이맘 모스크 바로 옆의 Muyi Muborak Madrasah의 전시관에 그 중의 하나가 보관 중이다. 항온항습 상태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당연히 보안이 철저하다. 당연히 사진 촬영 금지이다. 당연히 촬영한 사진이 없다.

http://uztravelguide.com/uzbekistan/sights-of-uzbekistan/tashkent-sights/177-muyi-muborak-madrasah-and-tilla-sheikh-mosque

 

7세기에 만들어진 코란. 오스만 코란이라 불린다. 코란의 책자는 큼지막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글자인지 그림인지는 큼직 큼직하다. 유리관 내부에 철저한 보안 상태에서 보관하고 있으므로 다음 사진에서 처럼 구경만 할 수 있으며 사진을 찍을 수 없다.

https://orexca.com/osman_koran.shtml

 

옆에는 바라콘 마드라사가 있다. 기념품 상가로 이용되고 있다. 날 덥다. 시원한 음료수 한 병의 은총을 입었다.

 

초르수 재래 시장을 들렸다. 사고 싶었던 물건이 있는 분들이 계셨다. 시장에서 주차장까지 조금 걸었다. 더웠다.

 

초르수 재래시장. 전혀 '재래' 시장 답지 않은 모습의 외관이다. 멋지지 아니한가!

 

차에서 멜론을 꺼내는 가스통 할아버지. 

천연가스 매장량이 많은 고로 대부분의 승용차는 가스 차량이다.

 

들어가기 전에 한 컷. 역시 얼굴 껍데기가.....ㅠ.ㅠ

 

돔형의 지붕. 넓은 실내.

 

매대에 번호가 매겨져 있다.

 

붐비는 시간은 아닌 것 같다.

 

호근씨를 보고 '주몽'을 외치던 아저씨들. 우즈벡에서 주몽을 방영했나보다.

 

상인들이 상품을 운반하는 작은 수레에도 번호가 매겨져 있다. 아무 차나 못들어온다. 아마도.

 

길 건너에 보이는 초르수 플라자.

 

개학 때가 다가오나? 학용품 특설 시장도 있다.

 

물론 길바닥 매장도 있고.

 

버스 정류장. 옆의 주차장에 버스가 있었다. 더웠다........................................마, 됐다.

 

티무르다. 티무르. 그가 있는 곳으로 간다.

 

Amir Timur Museum

Amir, Emir는 이슬람 국가의 왕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혹은 모하메드의 자손에 대한 존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박물관도 시커먼 카메라로 촬영하기 위해서는 포토 티켓을 끊어야 한다. 구매하지 않았다!

 

티무르 대제와 관련된 여러가지 자료들을 짜임새 있게 잘 전시해두고 있었다.

 

작은 모형들 혹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런데 포토 티켓을 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분이 조금 세세하게 촬영을 하고 있으니까 직원이 나와서 제지를 했다. 그럴려면 포토 티켓을 왜 파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박물관 밖은 덥다. 정원수, 가로수들에게 시원한 물세례~ 

부러워~

 

뒤에는 티무르 박물관.

 

앞에는 그의 동상.

 

공원, 아미르 티무르 광장 복판에 그가 있다. 멋지다.

 

공들여 만들었다. 세세한 묘사.

 

그들은 달리고 싶어 한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역동적인 모습의 동상을 잘 만들더라.

 

하지만....덥다.ㅠ.ㅠ

그늘을 찾는 사람들~

 

Sailgokh Street를 따라 걷는다. 법무부 건물이다.

 

거리 한쪽에 많은 그림들을 길거리에 내놓고 있다. 그리고 있기도 하다. 전시 및 판매.

그림을 감상하면서 쉰다. 5시25분.

 

우즈베키스탄 구간에서 성질 좀 있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고생을 너무 많이 한 두 남자. 피곤해보인다. 피곤할 것이다.

조금 떨어져 앉아 있던 두 사람을 사진 속에서 가깝게 붙여 보았다.

베흐조드는 세 아이의 아버지인데.... 남 총각도 빨리 총각 신세 면해야 할 텐데..낚시만 다니지 말고...

 

여기까지로 우즈베키스탄의 일정이 끝났다.

 

저녁은 또 뜨거운 가마솥에서 먹는다. 

 

베흐조드 아저씨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식재료에 돼지고기가 사용되므로. 심지어 이 식당의 물도 마시지 않더라.

 

6시 반에 공항으로 출발한다.

 

6시50분에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 들어가면서 신분증 검사하는 줄이 꽤 길다. 해서 지폐 약간을 사용한 작은 꼼수를 사용해 옆문으로 들어갔다.

보안 검색 마치고 입장. 줄서서 기다리다가 표를 받고 짐을 붙이고 또 보안 검색을 하고 게이트로 간다. 모든 수속 마치니 8시.

10시20분 비행기.

 

8월9일 아침 9시경에 인천공항에 내렸다. 자동출입국검사는 편하다.

짐을 찾고 일행과 헤어진다. 또 다음 답사를 기약하며.

지오트립 사장님이 가는 길이라며 집까지 태워다 주었다. 고맙지만 미안하게시리~

 

미리 공부를 제대로 못하고 간 답사였다. 지나면서 이런 것을 미리 공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같은 혹은 비슷한 코스를 다시 한번 다녀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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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 사마르칸트의 날이다.

부하라에서 사마르칸트까지 270킬로미터 거리라서 서둘러야 한다.

5시반에 웨이크업 콜, 6시15분 아침, 그리고 6시54분에 출발했다.

 

지도를 보면 부하라에서 사마라칸트까지 직선 코스를 달리지 않는다. 부드럽게 호를 그린다. 이것은 두 도시 사이를 흐르는 제라프샨 강 때문이다. 제라프샨 강을 따라 녹지대가 분포하고 농업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거주하고, 도시가 있기 때문에 도로가 그러한 거점들을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미르 고원에서 발원하는 제라프샨 Zeravshon 강은 부하라를 지난 후 사막으로 흘러들어 사라진다. 길이는 약 877킬로 미터.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떠오른다. 불덩어리가 다가오는 느낌이다.

간 밤에도 정전. 2회.

 

칼리안 모스크, 그 옆으로 칼론 미나렛이 보인다.

 

7시 출발 예정이었는데, 6시54분 준비 완료. 바로 출발하였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당연히 아랍 어가 표준어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아랍 어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IS와의 관계 가능성 때문에 그러하단다. 대신 우즈벡 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문자는 라틴 문자를 끌어다가 사용하고 있다고.

독실한 신자인 베흐조드 아저씨는 우즈벡의 전통 문제도 걱정하고 있었다. 기도 횟수를 제대로 채워서 지키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란다.

이슬람의 헌금에 대해서도 버스 안에서 한참 이야기해 주었다. 기독교에서는 11조를 하지만 이슬람은 그렇지 아니하다고. 40분의 1을 내면 된다고 한다. 그것도 재산이나 번 돈의 40분의 1이 아니라 쓰이고 있는 않는 돈의 40분의 1이라고 한다. 그것도 1년에 한 번. 그러니까 그 액수는 거의 부담이 되지 않는 정도라고. 가정을 이룬 성인 남성 기준이 그러하며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더 낼 수도 있기는 하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며 독실한 이슬람 신자인 베흐조드는 이슬람 문화에 대해 가능하면 많은 것을 알려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우즈벡에 대한 자부심도 보인다. 지금은 어렵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 많은 자원을 갖고 있다는 것 등등에 대한.

고속도로 반대편 차선을 달려오는 차가 전조등을 깜빡이며 지나간다. 만국 공통의 신호일까? 앞쪽에 경찰이 있다는.^^ 베흐조드가 웃는다. 월요일부터 경찰아저씨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이란다.^^

 

8시20분. M37 고속도로를 따라 부하라에서 사마르칸트로 달려가다가 카라반 사라이에 정차하였다. 실크로드에 있는 카라반들의 쉼터, 휴게소답다. 주인 출근 전~

 

Rabat-i-Malik Caravanserai와 길너편의 수조.

 

Rabat-i-Malik 카라반사라이의 입구.

 

들어가자.

 

문패. 옛날 발음을 옮겨 적은 것이라서 철자에서 약간씩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유적지의 모습. 뭔지 잘 모르겠다.

 

건물들이 있었던 흔적이다. 헌데 원래 이렇게 생긴 유적이 아니라고 한다.

 

유적을 보호한다고 그 바깥쪽으로 벽돌들을 덧붙여놓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보호하는 것이 맞나?

 

두 남자. 어이~

 

촬영 중.

 

바로 인근에 위치한 물탱크, 수조이다.

Rabat-i-Malik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11세기에 건설된 수조이다. 인근의 제라프샨 강으로부터 지하의 운하를 통해 물을 끌어들인 것이며, 돔형 지붕이 햇볕을 차단하기 때문에 깨끗하고 여름에도 시원한 수질을 유지한다. 

카라반 루트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대상과 여행자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기능을 하였다.

 

꽤 큰 웅덩이가 있었고, 물은 깨끗해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가본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장구벌레가 가득이었다고. 옛날에는 어찌하였을 지라도 지금은 식수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Rabat-i-Malik은 여행자들의 쉼터였을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고고학적 발굴 결과로 드러난 것을 그것과 다르다. 이 지역 지배자였던 카라한 왕조의 거주지였을 확률이 더 큰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유목민이었던 카라한 왕조는 겨울철의 왕궁을 떠나 여름철에는 스텝 지역에 있는 거소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그러한 여름철 거주지 중의 하나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다음의 링크 참조)

http://www.advantour.com/uzbekistan/navoi/rabat-i-malik.htm

 

부근에는 나보이가 있다.

고속도로와 제라프샨 강 사이에 Navoi Free Industrial Economic Zone이 있으며, 남쪽으로 나보이 국제 공항도 위치하고 있다.

자유무역지대에는 한국 기업의 공장들도 입주해 있다고 카더라~

 

200mm렌즈로 당겨보았다. 멀리 공장들이 보인다. 나보이 자유무역지대.

 

나보이 국제공항이다.

 

대한항공의 국제 물류 센터가 이곳 나보이에 입지해 있다.

 

와~

 

공항 외곽 경비대.

 

날아간다~

 

달려간다~

 

기다린다~

 

걸어간다~

 

길가에서 보이던 나보이 발전소. 화력 발전소이다.

 

하늘에서 보면 이렇게 보인다~  나보이 시의 제라프샨 강가에 위치하고 있다. 냉각탑 두 개.

 

나보이 시내의 길가 식당. Qirk Chinor.

화장실을 빌리러 정차하였다.

 

 

멈춘 김에 커피 한 잔 하고 가기로 하였는데...... 티스푼이 그냥 스푼이다~~^^

 

커피 대접 받았다. 대접~^^

 
나보이에서 사마르칸트로 가는 길가 풍경.

 

자거거 타는중~

 

물 판매중~ 무인 판매대가 종종 보인다.

 

구경하며 걷는중~

 

수박 판매중~

 

수레로 붉은 색 가스통 운반중~

 

수레를 풀고 소는 풀 뜯는중~

 

운반중~

 

걷는중~

 

공사중~

 

수리중~

 

원두막에서 쉬는중~

 

수다중~

 

 소각중~

 

대기중~

 

수확중~

 

구경중~

 

제라프샨 강에서 멱감는중~

 

말타는중~

 

수레가 트럭과 경주중~

 

흐르는중~

 

달리는중~

 

흥정중~

 

도로에서 운전하던 운전자가 갑자기 문을 여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씹는 담배 찌꺼기를 뱉어낸다고 문을 연다는데..

 

11시15분 사마르칸트로 들어오는 마지막 검문소를 통과했다.

실크로드의 거점 도시, 사마르칸트이다.

사마라칸트 시내를 진입하면서 종이공장을 먼저 들렀다. 울르그벡 천문대, 아프로시압 박물관을 들른 후 서쪽으로 쭈욱이 아니라 조금 돌아서 달렸다. 점심식사.

구르 아미르, 레기스탄 광장의 마드라사 둘, 비비하눔 모스크를 들른 후 사마르칸트 역에서 가서 열차를 기다렸다.

 

M37 고속도로를 따라 달려 사마르칸트에 도착하였다. M39 고속도로를 살짝 밟고는 시내 방향으로 접어든다. 사마르칸트 전통 방식으로 종이를 생산하는 공장을 방문하였다. 12시.

사마르칸트 시내에서 5킬로 미터 정도 떨어진 Koni Ghil이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다.

 

우리나라 전통 종이는 닥나무를 이용하지만 이곳에서는 뽕나무를 이용한다. 둘 다 같은 집안의 나무들이므로 큰 차이는 없는가부다.

 

껍질 벗기기 작업중.

 

물방아를 이용하여 빻기

 

물에 불려 뜨기.

 

눌러펴기. 만져보세요~~~

 

말리기.

 

자랑하기.

 

이것이 사마르칸트 종이. 사마르칸트 종이에 인쇄한 것과 다른 종이에 인쇄한 같은 내용을 비교하여 시인성이 훨씬 좋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쇄된 내용은 "751년 7월 중국 군대가 중앙 아시아 국경인 탈라스 강을 건너 쳐들어왔다. 사마르칸트의 지배자였던 Abu Moslem은 침입을 격퇴하고 2만여 명의 중국군을 포로로 잡았다. 이들 중에는 많은 재줏꾼들이 있었는데 종이 제작 기술 보유자도 있었다....."

 

사마르칸트 종이의 유래와 재생산 과정을 간략하고 서술한 내용이다.

 

 

다양한 색깔의 종이 제품들.

 

다양한 제품들.

 

 

 

 

벽에 이런 것이 걸려 있다. 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취소된 사람. 우즈베키스탄 KSP 경제 고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KSP? 캠코에서 추진하고 있는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이라고 한다.

 

생산 공장의 모습.

 

중국에서 시작된 종이 제조 기술이 이렇게 세계로 퍼졌다고 한다.

해상도가 낮아 잘 안보인다. 그래서 다른 지도를 인용해본다. 751년 중국으로부터 종이 제조 기술이 사마라칸트까지 전파되었다.

 

사마르칸트 종이는 고선지 장군의 군대를 통해 전래된 것이라고 한다. 품질이 좋아 성업하였으나 18세기에 그 맥이 끊겼었던 것을 재연한 것이다.

사마르칸트 종이를 재연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Zarif Mukhtarov이다. 웹 페이지도 없고 따라 홍보를 하지 않고 있음에도 사마르칸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곳 공장을 찾고 있단다. 연간 약 5,000여 명 정도가.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4/jun/02/uzbekistan-culture-silk-road-paper-craft

 

 

사마르칸트 시내로 들어왔다. 울르그벡 천문대와 아프로시압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아프로시압 언덕의 아랫 부분 길 가에 이러한 토굴들이 여럿 보였다.

과거 집시들이 살던 토굴이라고 한다. 지금은 거처를 옮겨 비어 있는 상태. 이곳의 집시들은 인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울르그벡 박물관.

 

천문대 시설.

 

울르그벡.

 

박물관 내부의 전시 자료.

눈에 익다.

 

이곳의 천문학 성과가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까지 전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사이트에서 가져온 자료이다. 자세한 내용은 위키피디아의 울르그 베그 항목을 참고..

1987년 쏘련에서 나온 우표. 울르그 베그의 초상과 그의 천문대 모식도를 묘사하였다. 쏘련 연방이라고 우즈베키스탄의 인물들도 자기네 우표에 그대로 사용한 것인가보다.

 

밖에서는 결혼식 행사를 한다. 축하~

 

 

아프라시압 박물관.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람들이 묘사된 벽화가 소장된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진품을 이곳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다.

 

이것은 그림을 그린 그림이다.

 

조우관을 쓴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

 

이 부분이다. 보존 상태는 좋치 아니하다.

 

발굴지 모형.

 

발굴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베흐조드 아저씨.

 

묘한 형태의 두개골들도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밖에는 티무르 아저씨 동상이 큼지막하게 만들어져 있다.

 

1시10분이다. 배고파~

 

 

사마르칸트 시내를 관통하여 식당을 찾았다. Karimbek. 2층으로 된 근사한 식당이다.

닭고기 스프가 인상적이었던 곳. 맥주 하나 먹자고 했더니 생맥주 한 잔이 나왔다. 다른 분들은 아무도 안드셔서 할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혼자 꾸울꺽!

먹었으니 오후 일정을 이어간다.

 

Gur-e Amir Complex. 티무르 왕의 영묘이다.

 

티무르 왕의 영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드아~ 

어디?

 

여기! 티무르 박물관.

 

이 아저씨다.

 

정문. 구르 에미르는 1404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원래는 티무르 왕이 요절한 손자를 위해 만든 묘이지만, 티무르 무덤이 만들어졌고, 울르그벡도 이곳에 묻혔단다.

 

올려다보기. 입구의 장식도 현란하다.

 

내부의 천정. 돔.

 

석관. 진짜는 아니다.

 

화려한 벽 장식.

 

화려한 천장의 금장식.

 

레기스탄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Registan Ensemble을 중심으로 Sherdar Madrasa, Tillya-Kori Madrasah, Ulugh Beg Madrasa의 세 마드라사가 모여 있다.

 

레기스탄 광장. 국제 음악 행사장으로 종종 이용된단다. 설치되었던 무대의 일부가 남아 있다.

 

마드라사.

 

마드라사.

 

틸리아 코리 마드라사는 17세기에 만드어졌다.

 

멋진 돔. 몹시도 화려하다.

 

복구되기 이전 과거의 마드라사 상태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레기스탄 광장을 그린 그림. 무엇에 그린 것일까?

 

근사하고 화려하다.

 

이게 누규?

세 아이의 아버지 베흐조드 아저씨, 그리고 그의 10살짜리 딸이다.

 

기념품 판매점들. 그 중의 하나를 베흐조드 아저씨의 부인이 운영한다. 잠시 딸래미가 나와서 가게를 보고 있었다나...

 

레기스탄 광장에서 셀피 하나 남기고 간다. 광장 아래쪽으로 내려가지 못한다. 경찰이 삑삑 거리면서 막는다.

 

인근에 위치한 비비하눔 모스크까지는 걸어서 다녀와야 한다. 버스가 들어가질 못한다. 뜨거운 태양~

 

비비하눔은 티무르의 후궁 중의 하나. 후궁과 모스크 건축가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결말은 당연히 슬픈~

 

후궁을 위하여 만든 모스크라고 해서 그런가 이쁘장하다.

 

모스크 내부는 복원되지 않은 상태이다. 아이들 둘이 물 뿌리는 등의 관리만 하는 것 같다.

 

주차장으로 달려와 버스에 오른다. 시원한 물 한 병을 그냥 빨아들인다. 살 것 같다.

4시 사마르칸트 역으로 달린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여객 열차는 4개 등급이 있다. 그 중에서 고속열차는 Afrosiyob 열차로서 스페인에서 도입한 것이다. 사마르칸트에서 타슈켄트 구간이 2시간 10분 걸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http://www.advantour.com/uzbekistan/uzbekistan_railways.htm

 

사마르칸트 역이다.

 

셀피. 스맛폰의 카메라는 역시 DSLR에 비해 DR의 범위가 좁다.

 

역시나 역구내를 들어가면서부터 신분증 검사를 한다. 보안!

들어간다. 4시 반.

 

역사 내부. 근사하다. 와이파이 될락말락 상태.

 

5시20분에 플랫폼으로 나갔다. 정차 시간이 진짜 너무 짧다.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빨리 타라서 삑삑 거리는 호각 소리. 옆에서 역무원들이 소리친다. 패스트! 패스트!

달린다.

 

고속 열차. 좀 달린다. 하지만 고속열차 전용의 철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속도의 변화가 심하며, 그냥 느리다.

그리고 차 내에서 GPS 신호 수신이 안된다. 줸장~

 

그래도 고속열차라고 정신 차려보니 타슈켄트이다.

 

타슈켄트 역에 내려서 버스 타고 가마솥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호텔로 쓔웅~

 

식당 가마솥.

부부가 한국에서 와서 정착했다고 한다. 18년 되었다고.

 

김치찌개, 된장찌개 두 가지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친구 참 좋다. 깔끔하다.

 

 

 

다시 왔다. 시티 팔레스 호텔.

 

뭐...잤다.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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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6일. 부하라에서 하루를 보냈다. 2박을 한 것이다.

 

부하라 남쪽에 위치한 그랜드 부하라 호텔에서 출발, 시내를 통과하여 북쪽에 위치한 시토라이 모히호사를 먼저 들렀다. 그리고 서쪽의 이스마일 사마니 영묘를 들른 후에 스패니쉬 바에서 점심 식사를 할 때까지가 오전 일정이었다.

 

 

부하라에도 해는 떠오른다. 오늘의 뜨거운 불덩어리가 떠오른다.

일찍 일어났다. 무더운 밤이었다. 힘든 밤이었다. 그래서 일찍 일어났다. 

 

 

그랜드 부하라 호텔 옆의 공원은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 상쾌하다. 상쾌한 아침이다.

 

여섯 시 전부터 일어나 씻고 로비로 내려갔다. 와이파이가 좀 된다.

일찌감치 아침 식사를 마친다.

 

역시 에어컨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부하라에서 1박을 더할 예정인데, 호텔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고 전한다.

짐을 싸서 로비로 내려와 버스에 짐을 싣는다. 원래 예정은 몸만 움직이는 것이었었는데.

8시55분 승차 완료. 출발.

 

오늘의 첫번 째 일정 장소이다.

 

Sitorai Moxi Xossa. 별과 달을 뜻한다고 한다. 부하라 한국의 여름 궁전이다.

 

간판은 이렇게 생겼다. 씨또라이 모히 호사.

 

입구에서 입장료 계산하던 베흐조드 아저씨의 손.

 

마당에 공작 여러 마리를 풀어놓고 있었다.

 

이 궁전은 이슬람 양식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1910년에 지은 것으로서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부하라 한국의 마지막 칸인 에미르 알림 칸 시대에 지어진 건물로서 러시아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건축가로 하여금 이슬람 양식과 유럽 양식을 조화시켜 만들도록 했기 때문이다. 궁전이 완성되고나자 그 아름다움에 반한 칸은 건축가의 손을 잘랐다고 한다! 이 동네 사람들은 참 희한하게 반한다. 그리고 동상을 만들어 주었다.

 

들어가면서 바로 만나는 것은 기념품 판매대. 그리고 공사중~

 

보수 공사중인지...폭파중인지...

 

영빈관 내부이다.

 

화병에 꽃을 꽂아 둔 문양이 반복된다.

 

샹들리에. 저 높은 천정에 매달린 샹들리에의 초에는 도대체 불을 어떻게 붙이는지가 너무나 궁금하였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불을 붙이고 끄고 하는 것일까 하는 상상도 해보고...

샹들리에 자체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마지막 칸. 에미르 알림.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챙길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재화를 챙겨 아프가니스탄으로 도주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지금도 그 후손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2년에 한번 정도 후손들이 조상의 땅을 방문하고 있다고 베흐조드 아저씨가 그랬다.

 

샹들리에.

 

큼지막한 도자기. 일본 것이다. 여러 나라의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 이런 고가의 상품들을 마구마구 수집할 수 있을 정도로 부하라 한국은 부자였었던 것이었다.

 

결혼 기념 사진. 신랑 12세, 신부 8세.

우즈베키스탄은 무지막지한 조혼 풍습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도 여자는 18, 19, 20세 정도면 거의 결혼을 한다고 한다. 남자들은 대학 공부나 취업 등의 이유 때문에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있지만 신부는 여전히 20세 이전에 결혼을 한다고 한다.

 

낡아서 올라가면 위험하다고 하였다. 그 아래에서 CD를 파는 아저씨.

 

이 아저씨. 음악 CD라고 구입했다. 전통 음악 CD를 가능하면 구입하려 하고 있기에. 가짜였다. 아자씨! 나빠요!

 

딱 보면 야매다. 그래도 이렇게 보이면 음악 CD여야 하지 않는가? 

음악 CD가 아니라, MP3가 들어 있었다. 포장지에 있는 음악 그대로 들어 있으면 조용히 있었을 것이다. 껍데기와 알맹이의 내용이 전혀 다르다.

 

 

에이, 샹들리에~

 

누에고치.

 

염색실.

 

다양한 염색 재료.

 

씰크.

 

정원의 연못옆에서 얌전히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인증 사진을 만들어보았다.

 

 

10시 반이다. 씨또라이 모히 호사를 뒤로 하고 떠난다.

 

부하라에도 예쁜 마티스 택시들이 성업 중이다.

 

허걱! 폭탄 차량?

지붕에다가 가스통을 그냥 노출된 상태로 장착하고 다닌다. 저거 폭탄아냐?

 

욥의 샘물과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를 가기 위해서는 부하라 시장을 지나가야 한다.

 

부하라 시장 입구.

 

시장은 거대하다. 

 

판매 품목에 따라 구분되어 있다.

 

견과류.

 

 

향신료 상점.

 

빵가게.

 

채소 가게.

 

이 동네에서는 고기의 처리, 운반, 판매 과정에서 냉장 보관이 없다. 건조하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일 것이다.

 

공산품.

 

곡물.

 

 

 

Chashma-Ayub Mausoleum. 욥의 영묘, 욥의 샘물.

chashma가 '샘'이란 의미라고 한다.

서로 다른 시기에 건축물을 증축하면서 당시의 양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세 개의 돔 모양 지붕을 갖고 있다.

 

 

부하라 사람들이 물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욥이 이곳을 지팡이로 내리치자 샘물이 솟았다나.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이 샘물을 마시고 간다.

 

욥의 가묘.

 

중앙 아시아 고전 건축의 걸작품이라고 한다.

Ismail Samani Mausoleum. 부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영묘로서 905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건물 벽의 무늬가 다르게 보이도록 설계, 건축된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 유일의 것이라고 한다.

 

영묘이므로 실제 시신이 안장된 것은 아니다.

 

천장. 당연히 돔형이다.

 

이스마일 사마니에게 소원을 비는 쪽지를 넣는 구멍이 영묘 아랫부분에 있다.

 

이스마일 사모니 영묘 앞에서 일행은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다.

 

 

관람차. 한번도 타보지 못하였다. 이번에도 구경하면서 지난다.

Samonids Recreation Park. 날이 너무 뜨거워서인지 놀이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볼 수 없었다.

이 공원을 지나서 버스와 랑데뷰.

 

12시10분이다. 먹을 시간이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그 스페니쉬 바로 향한다.

물담배를 맛깔나게 피우던 예쁜 아가씨를 정신없이 처다보다가... 그냥 점심 먹었다.

 

다시 시내로 들어왔다. 아르크 고성이 보인다. 새로운 숙소는 아르크 성 바로 옆이다.

 

실크로드와 어울리는 이름. 캬라반. 숙소를 배정받고 좀 쉬기로 한다. 해가 너무 뜨거워 돌아다니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 낮잠을 자는 척 하다가 나왔다. 그럴려고 했다. 막판에 잠들어 전화받고 허겁지겁 나왔다.ㅠ.ㅠ

 

3시40분 모두 모였다. 이후의 일정은 걸어서 다녔다. 이렇게~

 

조금 더 확대해보면 이렇다. Bolo-Hauz Mosque, The Ark, Kalyan Mosque, Taki-Telpak Furushon Bazaar, 그리고 Nodir Devon beghi Madrasa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숙소로 귀환.

 

아르크 성의 길 건너편에 있는 근사한 모스크를 먼저 들렀다.

 

자그마한 미나렛. 그 아래에서 4형제가 몰려 다니며 놀고 있다.

 

히바에서도 보았던 독특한 문양의 기둥들.

 

사원의 이름이 복잡하다. 이맘들의 대장쯤이라고 할까?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위원회라고 번역된다. 우즈베키스탄 전국의 모스크와 이맘들을 관리하고 있는 곳이다.

 

내부는 기가막히게 만들어져 있다. 기둥 하나 없이 넓은 공간이 확 열려 있다.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동시에 기도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모스크 내부의 미흐랍 Mihrap이다. 메카의 방향에 만들어지기에 미흐랍을 향해 절을 하면 된다.

 

이렇게. 절을 하는 방법을 베흐조드가 알려주었고 따라 하기 체험.

 

난 셀피 놀이하기.

 

꼭 썬글라스를 낀 것처럼 보인다.

 

길을 건넌다. 역시 더우니까 시원하게 창문을 열고 다니는 택시.

 

아르크 성 정문. 성의 일부가 폭우로 붕괴되어 긴급 보수된 것이라고.

 

정문으로 들어간다. 아르크 성은 부하라의 왕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7세기에 처음 축조되었는데, 몽골, 투르크족의 숱한 침략을 받으며 붕괴와 재건을 반복했다고 한다.

 

아르크 성은 1920년까지 부하라의 왕이 거주했던 것이라고 적혀 있다.

 

아르크 성의 배치도.

 

성 내부에 있는 금요일 모스크. Mosque Jome.

 

전시관, 박물관.

 

성벽. 대포.

 

지나던 백발 노인.

 

아르크 성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

 

살금살금.....

 

활짝~ 얼굴 껍데기가 아주 시커멓다.

 

칼리안 모스크를 향하는 일행.

 

지나는 길 옆에 있는 호텔? 우리 묵을 곳이다.

 

보수하여 이렇게 단장할 것이라는 것만 같다.

 

Kalyan Mosque. 멋지다.

 

칼란 미나렛. 높이 46미터. 아잔을 하는 기능 이외에 다른 기능도 갖고 있었던 첨탑이다.

중앙아시아의 첨탑 중 가장 높아 꼭데기 불을 지피면 사막의 등대 역할을 하여 먼 곳 어느 방향에서도 부하라를 찾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탑은 또 죄인을 처형하는 장소이기도 했단다. 푸대에 담아 탑 꼭데기에서 아래로~ 그랬었단다.

전하는 이야기. 징키스칸이 부하라를 침공하였을 때 탑을 올려다 보다가 투구가 떨어졌고, 무심코 몸을 숙여 투구를 집어 들었다. 칸으로서 고개를 숙인 것이 민망하였을까? 자신의 허리를 굽히게 한 위대한 탑이니 파괴하지 말고 남겨 두라고 했고, 그래서 무사히 첨탑이 건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고 전하더라.

 

건너 편에 있는 마드라사. Mir-i-Arab Madrasa.

마드라사는 이슬람 고등교육 기관이라고.

 

칼리얀 모스크의 정문으로 들어간다.

 

한참 걸었더니 힘들다. 쉬어가기.

 

 

안쪽에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다.

 

기념 사진. 단체 여행객은 단체 사진을 남긴다.

 

Ulugbek Medressa.

 

전통 공방 골목이 이어진다. 칼가게 부터 시작한다. 금속 공예점. 가위의 모양이 재미있다.

 

이건 뭔가?

 

보수 공사중이다.

 

가스관 매립 공사중이다.

 

8번 노선 버스가 운행중이다.

 

하수도는 흐르는 중이다.

 

Taki Sarrafon Bazaar.

 

Lyab-i Hauz. 라비 연못. 1620년에 만들어진 연못. 고대 도시의 중앙광장에 위치하였으며, 깊이는 약 5미터에 이른다. 식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자리는 만원이다.

 

라비 연못가에 있는 나무. 가장 오래된 나무로서 수령이..........(기억 안난다.)

 

라비 연못 옆의 작그마한 공원. 거기에 이 아저씨는 왜 있는겨?

 

노디르 데본베기 마드라사. 봉황 문양을 갖고 있다.

이슬람 학교였지만, 지금은 식당으로 임대 영업중이다.

 

자리가 준비되어 있다. 우리 예약석은 어디?

 

공연과 패션쇼를 번갈아 진행했다. 멋진 연주 및 노래팀.

 

예쁜 땐스 팀.

 

 

구경 및 식사팀.

 

8시 쯤 공연이 끝났다. 캬라반 호텔로 돌아간다.

 

부하라 하늘에 달이 떳다.

 

8시반부터 자라고 한다. 하~

이렇게 일찍 자다니....

빈둥 거린다. 와이파이는 느리고. 아예 안되면 시도도 안할 텐데, 되는 듯 하기도 하여 붙들고 있는다. 이것이라도 해야지.

다음부터는 아무리 감기 등으로 헤메더라도 좀 챙겨와서 몰래 혼자라도 먹어야겠다는 다짐을 매일 밤 하고 있다.

아무 것도 안하기에 지쳤다. 자자... 헌데, 또 정전 체험을 하게 해준다.

세 번이나 정전되었다고 한다. 나는 두 번인줄 알았는데.

 

잤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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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5일이다.

아야즈 칼라를 거쳐 부하라로 달리는 날.

 

히바를 출발하여 아무 다리야 강을 건너 사막 초입에 위치한 아야즈 칼라 답사. 그리고 사막을 횡단한다. 그리고는 오아시스 도시 부하라에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며 쉴 것이다.

 

아시아 히바 호텔. 위치 좋다. 이찬 칼라 바로 앞.

 

7시 30분에 이찬 칼라를 뒤로 하고 출발한다. 아야즈 칼라까지 달린다. 겨우 100킬로 미터 쯤이야.

 

아무 다리야 강을 건넌다. 다리 이름이?

폰툰 브릿지.

 

버스에서 얼굴 껍데기 상태를 확인해본다. 역시!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다. 여러 날 햇볕 따가운 지역을 여행할 때 껍데기 보호를 위해 몸부림 치는 것보다는 그냥 냅두는 것이 편하다는 결론을 또 내린다. 왠만큼 망가진 다음에는 더 이상 진도가 안나간다.^^

그 다음에는 복구 메카니즘이 작동한다. 신기하다. 좋다.^^

 

 

히바에서 아야즈 칼라까지.

 

9시반 아야즈 칼라에 도착하여 성의 둘레를 따라 한바퀴 돌았다. 돌아부렸다.

이찬칼라, 아야즈 칼라.... '칼라'가 "성"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햇볕에 대항하는 중무장을 해보았다.
숨쉬기 답답하여 벗어버렸다. 안경에 덧대는 썬글라스 대용품을 가져온 것 같은데, 어디에 둔질 찾지 못했었다. 메고 다니는 배낭 안에 있었는데 그걸 못 찾다니... 헌데 눈 아파서 못 쓰겠다. 결국 던져버린다.

 

아야즈 칼라 주차장에는 유르트가 여럿 설치되어 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숙소이다. 식사 제공도 되는 것 같다. 이런 곳에서 묵어보는 것도 재밌을 터.

 

부근에 보이는 가옥. 흙집이다. 왜? 집을 지을 수 있는 재료가 그것밖에 없으니까.

지붕은 평평하다.  왜? 강수량이 매우 적은 지역이니까.

 

호텔에서 관리하는 낙타들 같았다. 아침 식사하시고 출근중~

 

아직 식사 안 끝났다~

낙타들에게 수박을 먹이고 있었다. 수박 풍년이라 가격이 매우 싸다고 하더니.

 

아야즈는 '춥다', 칼라는 '성'을 의미하는 단어. 추운 성 되시겠다. 여름에는 덥지만 겨울에는 매우 춥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 동네라고 한다.

그 땐 그 때고 일단 지금은 매우 덥다. 걷는다. 심지어 올라간다. 게다가 바닥은 고운 모래이다.

 

오메, 빠르다.

 

벌써~

지구인의 범용 사진 포즈. 팔 벌리고 찍기.

 

아야즈 칼라에 올라 바닥에 널린 돌들을 이용하여 조형 예술을 하시는 분들.

 

끝났다~~ 만쉐~~~

 

토성이 이렇게 아랫 쪽과 윗 쪽으로 구성된 예가 흔치 아니하다 한다.

 

까꿍~

 

 

옆에 작은 성채의 흔적이 또 남아 있다.

 

조기까지 내려갔다 오려 했더니만 부하라까지 달려가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 한다. 아.. 또 그 시간....

 

아야즈 칼라를 얼음궁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지금은 화염지옥이다.ㅠ.ㅠ

 

30분 만에 아야즈 칼라를 떠난다. 호레이즘의 고대 유산이라고 하는데, 토성의 흔적 만 남아 있어 '무상'하다는 감정 이외에는 느끼기 어려웠다. 아, 그리고 뜨거웠다.

 

길 가에 또다른 미완성의 토성이 보인다.

꼬이크르겐 칼라. 꼬이는 '양', 크르겐은 '없애다'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양 잡는 성' 정도의 의미를 가진 곳이겠다.

버스에서 촬영한 사진이라 유리창의 흔적이 강하게 보인다. 왜 잠깐 정차하여 사진 좀 찍지요~ 라는 말을 못했을까?

아...시간...

 

카라칼파크스탄에 이런 성이 50개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카라칼파크스탄에 12개의 주가 있는데, 주 이름이 50개성인 곳이 있단다.

수박 밭이다. 수확중. 올해 수박 농사가 대풍이란다. 작년에는 수박 흉년이었는데, 그래서 올해는 수박 질도 좋고, 가격도 싸기 때문에 많이들 먹고 있단다. 우리도 많이 먹었다.

 

 

버스는 배가 고프고, 디젤을 판매하는 주유소가 있다. 멈춘다. 채운다.

 

그 틈을 이용해 사람들은 버릴 곳을 찾는다.

 

주유소 있는 곳에서 베흐조드 아저씨가 길 건너의 작은 가게를 다녀온다. 검은 비닐 봉다리. 웨하스를 사왔다. 우리나라 같은 질소 포장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 그냥 포장 없는 상태로 판매한다.^^

맛 있었다.

 

A380 도로를 따라 계속 달린다. 부하라여~

 

길가의 매점. 그냥 우즈벡 식 고속도로 휴게소라 하자. 생수, 음료수, 견과류, 과일 등을 판매한다.

 

고가의 음식인 물고기도 판매하고 있다.

 

대부분의 승용차가 가스차이다. 그래서 가스 충전하는 곳은 많으나 오히려 휘발유 판매점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이런 곳에서 페트 병에 든 휘발유도 판매하고 있다.

 

수박, 멜론 등이 길바닥에 굴러 다닌다.

 

수박 먹기, 멜론 먹기. 두 개에 무려 1천 원 정도나 한다고^^

 

도로 상태가 매우 좋다. 콘크리트 포장 도로이다. 독일회사와 포스코의 지원으로 4년 간 공사하여 완공한 부분이라고 한다. 독일회사 책임 구간은 아직 준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역시 한국 회사는 "빨리빨리"다.

 

12시반. 도로변의 식당 휴게소. 식당 이름은 사람 이름이란다. 아마도 아버지와 아들 이름을 식당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고.

소고기 샤슬릭이 메인 메뉴. 1시 반에 출발.

 

날 더운 길을 힘차게 달리다 보면 목도 타고 하니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 날 그랬다. 마시니 시원했다. 그런데, 몇몇 멤버는 이 시원한 것을 싫어 하셨다.

내 앞으로 다 모였다.^^ 쒼난다~

 

아무다리야 강이 가까이에서 잘 보이는 곳을 소개해주겠다고 베흐조드 아저씨가 그랬었다. 그 곳에 정차하였다. 바로 강변이다. 건너편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영토이다. 국경선에 해당하는 곳.

 

1시50분.

휴게소 분위기. 전망대일까?

 

아무 다리야 강이다.

 

넓은 강이 카메라의 화각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스맛폰 카메라 파노라마 모드.

 

A380 도로를 달리다 보면 카라칼파크스탄의 경계를 벗어나게 된다. 검문소가 있다. 3시40분에 검문소를 통과했다.

 

오후 4시25분. 콘크리트 포장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잠시 쉬어간다. 화장실을 찾아서.

'대우' 버스가 세워져 있고, 땀을 흘리며 수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운행하는 고속버스라고 했다. 에어컨도 없어 시원하게 창문을 열고 달려야 하는 오래된 버스.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해도 비싸지 않은데, 더 싸게 더 싸게 이동을 하려고 이런 버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중간에 버스가 고장나서 쉬어가는 맛도 있겠고.

 

갈대를 잔뜩 싣고 가는 트럭들이 종종 보였다. 건축 재료로 사용하기에 시장에 내다 판매하고 하는 것이란다. 쌓아 올린 갈대 위에 사람들이 매달려 타고 가는 트럭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빨리 달릴 수가 없다. 덜덜덜덜~ 덜컹 덜컹~ 기대 잘 수가 없다.^^

부하라에 가스전이 있다고 한다. Gazli라는 지명이 생길 정도.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중국으로 수출한다고 한다. 진짜?

 

철도 공사 중이다. 새로 철도를 깔고는 무거운 화물을 실은 차량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안정화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6시15분 쯤에 부하라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역시 목화밭이 널렸다.

 

오늘의 숙소 그랜드 부하라 호텔. 체크인. 그런데 거시기한 정보. 건물 전체에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타슈켄트에서 기술자가 와서 수리하는 중이라고 한다. 기술자 1명이 와서 호텔 전체의 에어컨 고장을 수리하고 있다고? 불안하다!!!

 

7시20분에 저녁 식사를 하러 나선다. 아래 지도에 보면 Spanish Bar라고 나온 곳이다.

물담배를 피우는 손님들의 모습이 인상적인 곳.

식사는 괜찮다.

 

스페니쉬 바. 간판도 없다. 지하.

 

그럴싸 하다.

 

분위기 좋다. 스페니쉬하다.

 

8시20분 숙소로. 

물론! 에어컨은 그대로이다. 호텔 주변의 공원에서 무엇인가 행사가 있는 가보다. 산책.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능 행사를 구경하고 있다. 그런데, 음향 상태는 좀 많이 그렇다.

 

그랜드 부하라 호텔의 907호. 에어컨 안된다. 로비로 내려와 와이파이를 즐기려 해본다. 제대로 안된다. 덥다. 다시 방으로. 다시 로비로. 다시 방으로. 다시 로비로. 다시 방으로.

 

9층에서 내려다 본 인근 공원. 예능 행사가 한창이었다. 따뜻한 밤을 즐기러 나온 주민들로 가득했고.

 

자긴 잤다. ㅠ.ㅠ

창문과 방문을 열어 두고 통풍을 시키며 잔 팀도 있다는데, 나는 혼자라 무서워서 방문을 열지 않고 잤다. 더웠다. 현지 기후 환경 체험이었다. 신기하지는 않고 그냥 더웠다. 그래도 잠은 잘 오더만.^^

 

내일 아침은 6시반부터 1층 로비의 식당에서 제공될 것이며, 출발은 9시라고 공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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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4일. 히바로 간다. 

과거 호라즘 지역의 일부였고, 그 역사의 일부였고 흔적이 남아 있는 곳들 중 하나이다.

 

 

호라즘에 대해 미리 알차게 공부해보자.

https://en.wikipedia.org/wiki/Khwarezm

 

복습하자.

https://namu.wiki/w/%ED%98%B8%EB%9D%BC%EC%A6%98%20%EC%99%95%EC%A1%B0

 

페르시아어 발음이 어려워 여러가지로 표기되고 있다. 보통 화레즘 Khwarezm이라고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호라즘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호라즘 지역이라고 하면 아래 지도의 지역을 가리킨다.

위에 링크한 나무 위키의 자료 내용에 보면, 호라즘은 아무다리야 강 하류의 비옥한 저지대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북으로는 아랄해, 동으로는 키질쿰 사막, 서로는 우스튜르트 고원, 남으로는 카라쿰 사막과 접한다. 트란스옥시아나의 일부로 간주되며, 현대 국경으로 보면 투르크메니스탄 북부, 우즈베키스탄 동북부에 해당한다. 트란스옥시아나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고대부터 여러 이란계 종족들이 살아왔고, 페르시아 지역의 제국들에 직간접적으로 복속된 페르시아 문화권으로 발전했다. 아랍 이슬람 세력의 대정복 이후에도 호라즘은 시리아와 이라크의 아랍 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반독립적인 세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호라즘 지역에서 시작하여 가장 강성했을 때 호라즘 제국의 영역은 이만큼이나 되었었다.

이때가 최성기이다. 이런 거대한 제국을 이루자 마자 징기스칸이 아는 척을 했고, 박살났다. 호라즘의 주요 거점 중, 이번 여행에서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를 방문할 것이다.

 

쥐펙 졸리 호텔. 아담하다. 좋다. 이런 좋은 곳을 7시58분에 떠났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베흐조드 아저씨에 의하면 1년에 한두번 정도라고 한다. 자기가 오는 것이. 관광 가이드를 하는 자신이 그정도로 찾는 경우가 없는 외진 지역이라는 것이겠지. 그런데 올 때마다 다르단다.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단다.

히바를 향해 달린다. 약 200킬로미터. 11시 정도 도착 예정.

가자!

키질쿰 사막 언저리의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아무 다리야 강 유역의 충적지를 가로지른다. 그리고 카라쿰 사막 언저리에 위치한 히바로 접어들었다. 카라쿰 사막은 투르크메니스탄이다. 세 아이의 아버지 베흐조드도 한번 밖에 가보질 못했다고 한다. 관광 가이드인데도 입국 비자가 나오질 않는단다. 한국 관광팀에 묻어서 신청하여 겨우 한번 입국해 보았다고 했다. 좋단다. 꼭 가보란다. 상당히 폐쇄적인 국가이지만 그만큼 볼만한 유적들이 많이 잘 남아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편의 시설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 것인가는 외국을 나가보면 바로 절실하게 느낀다. 이 동네도 도로변에 편의 시설이 아무 것도 없다. 그거 꼭 필요한 그것도 없다.

그래서 길가의 농가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티코가 주차된 그 농가.

 

다른 분들은 공식적 화장실을 양해를 받고 이용했고, 나는 사진 속의 흙으로 만든 작은 건물을 이용했다. 우어~ 아우~ 어후~

 

남의 집 화장실을 이용했다고 화를 내던 잠자리와 당나귀.

 

농가 앞을 지나던 당나귀 수레와 자전거 아저씨.

 

우즈베키스탄이 구소련에서 독립한 것이 1991년이다. 작년에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이 2대! 그럼 그동안?

1대 대통령이 주구장창 버텼다. 임기가 끝나 대통령이 바뀐 것이 아니라 노환으로 돌아가셔서 "어쩔 수 없이" 대통령이 바뀌었다. 현 정권에서는 우즈벡의 개발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농촌 지역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비닐하우스 보급이란다. 신청하면 은행 대출 작업까지 대신하여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주고 있다고 한다. 채소를 생산하여 대도시와 러시아로 출하를 하고 있다고 한다. 농촌 근대화의 시작은 시설 농업이고, 그 시설 설치에 들어간 자본을 견뎌낸다면 성공하는 것이겠지.

개인적인 경험으로는...아 내 경험이 아니구나. 우리 부모님은 실패하셨다. 농협 빚을 견뎌내지 못하시고 장렬히.....농목업을 정리하셨었다. 다 날아갔다. ㅎㅎㅎ

우리 집처럼 망하지 않고 우즈벡 농가는 성공하기를~!

버스에서는 고선지루트 2편 상영 실패했다. 에러. EBS에서 방영했던 '실크로드 위의 푸른 이슬람'을 시청하면서 달렸다.

 

아무 다리야 강을 건넌다. 폰툰 브릿지.

 

폰툰 다리가 카라칼팍스탄과 우즈벡의 호레즘 주의 경계가 되겠다.

호레즘의 주요 중심지였던 우르겐치를 지나 히바로 접어들었다. 

우르겐치를 지난 시각이 10시 58분. 국제 공항이 있는 곳이다. 대우의 옷공장도 있다. 도시 이름은 석회로 그림 그리는 도시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찬칼라 부분 확대.

 
히바로 오는 도중에 버스에서 베흐조드 아저씨가 탄식을 한다. 우즈벡에 알콜이 너무 퍼져 있다고 원래 이슬람에서는 알콜을 금지하지만 구소련의 지배를 받는 과정에서 보드카가 너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너무 조으아~
 
히바~
 
11시 30분. 예상보다 30분 늦었다. 히바의 이찬 칼라 성이다. 노아의 비둘기. 그 비둘기의 울음소리가 헤와크. 그 울음소리를 따서 이곳의 지명이 붙었다고 베흐조드 아저씨는 설명했다. 헤와크가 어떻게 히바가 되었지?

히바의 이찬 칼라. 유네스코를 통해 보전하고자 한다.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일관성 있으며 세계적으로 잘 보존된 도시의 유적이며 히바(Khiva)의 도심에 해당하는 이찬 칼라는 호라즘(Khorezm)의 잃어버린 문명을 훌륭하게 증언해 주고 있다. 주마 모스크와 같은 이찬 칼라의 몇몇 기념물은 주목할 만한 건축물이며, 크기는 웅장하지만 디자인은 단순한 마드라사의 경우는 중앙아시아 특유의 이슬람 건축에 대한 훌륭한 본보기이다. 히바의 가옥 건축은 그 설계와 건축 방식 때문에 이찬 칼라의 흥미로운 요소들 중 하나로 꼽힌다.
옛날 옥수스(Oxus) 강이었던 아무다리야(Amu Darya) 강의 서쪽에 있는 히바 오아시스는 대상들이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사막을 건너기 전에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다. 4세기에 히바는 이란인들이 세운 호라즘(그리스어로 ‘코레스미아(Choresmia)’) 왕국의 중심지였다. 이 왕국의 번영은 이 지역의 ‘검은 모래(black sands)’를 비옥한 목초지와 정원, 과수원으로 바꿀 수 있는 수압 기술과 관련돼 있었다.
712년 처음 아랍 인이 이 도시를 정복했으며, 그다음에는 1221년 몽골인들이 이곳을 차지했다. 1379년에는 몽골의 지배를 받다가 티무르의 수중에 넘어갔고, 1512년에 우즈베크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새로운 나라의 수도가 되었으며, 1643년부터는 한국(khanate)의 수도가 되었다. 19세기 동안 독립을 누렸으나 1873년에 러시아의 보호국이 되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이 도시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즉, 이전의 요새화된 외부 도시인 디샨칼라(Dichan Kala)와 10m 높이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심지인 이찬 칼라로 나뉜다. 비록 1788년~1789년에 대대적으로 재건되기는 했지만, 주마 모스크를 제외하고 17세기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의 공공건물들은 동서 축을 중심으로 하여 그 둘레에 무리지어 있는데, 그 한쪽 끝 옆으로 히바 군주들의 웅장한 집들이 이어져 있다. 북서쪽에는 1686년~1688년에 아랑 칸(Arang-Khan)에 의해 건설된 ‘고대 요새’ 쿠냐아르크(Kunya Ark)가 있다. 처음 지어졌을 때 쿠냐아르크는 가공할 만한 사각형 보루였지만, 19세기 초 알라울리 칸에 의해서 호화로운 궁전으로 바뀌었다.
1830년~1838년에 건설된 북동쪽의 타슈하울리 궁전(Tash-Khauli Palace) 역시 알라울리 칸을 위한 것이었다. 그 외의 특별한 기념물들로는 파흘라반 마흐무트(Pahlavan Mahmud, 1247~1325)의 무덤과, 14세기에 지어졌을 당시의 배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세이드 알우딘(Sayid All-Uddin)의 무덤을 들 수 있다.

이찬 칼라의 많은 기념물이 비록 화려하지만, 개개의 기념물들보다는 더할 나위 없는 도시 구성과 19, 20세기에 지어진 주요 건축물들이 과거의 건축물과 함께 뛰어난 조화를 이루는 것에서 그 우수성이 유래한다. 예를 들어 주마 모스크와 파흐라반 마흐무드 무덤의 남동쪽에는 히바에서 가장 높은 45m의 우아한 미나레트(minaret, 첨탑)가 곁들여진 이슬람호자(Islam-Khodja)의 마드라사(1908~1910)가 자리 잡고 있는 한편, 쿠냐아르크의 남쪽에는 칼타 미노르(Kalta Minor)와 무하마드아민칸(Muhammad-Amin-Khan)의 마드라사가 발견된다. 1835년 이 도시 내부의 동쪽 문 근처의 처리 곤란한 공간에 지어진 알라울리의 마드라사는 고대 도시에 조화롭게 융합된 유명한 예로 꼽힌다.

 

입 주변 껍데기가 말이 아니다.

 

얼굴 시커먼 셀피를 만들고 있었는데, 다른 분의 카메라에 잡혔다.

 

 

이찬 칼라에는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여럿 있다. 서문 옆에 이런 게시판이 있더라.

 

그 옆에는 이런 동상이 있더라.

시대를 앞서간 사람. 시대를 이끈 사람. Al Khwariszmi의 동상이다. 우즈벡 현지 가이드는 계속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이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는데, 대충 눈치 까면서 보니 알고리즘이 아니라 알쥐브라이다. 무함마드 이븐 무소 알 콰리스미.

 

두 유 노우 알쥐브라? 오아 알 콰리즈미?

그래서 나는 수학을 포기했고, 수학을 포기하니 이과를 포기했다. 이과를 가고 싶었는데. 요즘도 가끔 생각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나의 이과 인생을. 수학이 안되어서....ㅠ.ㅠ

나와 조금 다른 길을 간 사람. 알 콰리즈미.. 조금 다른가?

https://en.wikipedia.org/wiki/Muhammad_ibn_Musa_al-Khwarizmi

 

알쥐브라가 된 알콰리즈미 앞에서 폼을 잡아 본다. 꽝이구나.

 

이찬 칼라를 서문을 통해 입장하려는데 추가 요금을 내라고 하더라. 낸다. 죽인다. 사진 값이다. 이거...죽인다. 사진 값이라니. 이런 것 좀 국내 도입하자. ㅎㅎㅎㅎㅎㅎㅎㅎ

얼마였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메모 안했다. 이런!

2 달러 정도 였던 것으로 대충....

 

서문으로 입장하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Orient Star Khiva.  마드라사로서 이슬람의 고등교육 기관이었지만 지금은 호텔로 이용되고 있다. Kalta Minor Minaret이 옆에 있다.

 

과거에는 고등 교육 기관이었지만 지금은 호텔로 이용되고 있는 마드라사. 상당히 많은 마드라사들이 호텔로 임대 이용되고 있는 우즈벡의 현실이다.

 

기념품. 이런 사진을 찍을 때 흔히 사용되는 기법, out of focus. 

 

퍼미션 포 포또 비용을 지불했으니까 마음대로 촬영해도 된다....는 아니고 핸드폰을 이용한 이런 셀피는 비용을 따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시커먼 덩치 좀 있는 카메라의 경우에만 비용을 내라고 하는 것이다.

 

아라베스크. 결과는 기가 막히게 아름답지만 만든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무늬가 이어지는 타일에 구별하기 위한 숫자가 표기되어 있단다. 그렇게 그렇게 공사를 하였던 것이었구나. 그래도 고역이었을 것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건물의 지붕이 평평하면 일단 강수량이 적은 지역이다. 그렇다. 맞다!

 

Kunya-Ark 모스크이다. Citadel from 1686이라고 소개된다. 오래되었다. 나보다...ㅎㅎ

 

이스람 후자 미나르를 올라가면서 구멍 속에서 셀피. 라고 알고 있었는데  Ark Kunya인 것일까?

 

받아들인다. 햇볕은 거부하지 않는다. 썬블럭은 가방에 그냥 모셔둔다. 오시오, 햇님!

 

Mirza Boshi Hostel이라고 위치 검색이 된다. 거기서 점심 식사를 한 것 같다. 이찬 칼라 성 내부이다. 점심 식사를 하고 숙소인 아시아 히바 호텔에 가서 좀 쉬었다. 뭘 했다고 쉬는지는 모르겠지만...ㅎ

 

숙소가 이찬 칼라 코 앞이다. 아시아 히바 호텔. 1시에 도착했다. 뜨거운 동네다. 어차피 얼굴 껍데기가 완전히 망가진 나는 막 나데고 싶지만 고운 얼굴을 보전하고 계신 다른 멤버들 때문에 까운 햇볕은 피하기로 했다. 4시까지 쉬고 햇님의 기운이 좀 약해진 다음에 보기로 한다.

 

쉬다가 나왔다. 오후 일정 시작이다. 4시에 나선다.

이찬 칼라 성. 근사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흙 덩어리이다. 사막에서 '성'이라고 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무엇이 있었을까? 그것은 흙 밖에 없었으리라. 그래서 도시의 성이지만 흙으로 만든 성이다. 왜 방어를 위한 성을 흙으로 만들었을까!

 

숙소인 아시아 히바 호텔에서 쉬다가 오후 일정을 나선다. 이찬 칼라의 남문으로 들어간다.

 

Juma Mosque. 나무 기둥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돔형의 지붕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215개의 나무 기둥으로 받쳐진 하나의 넓은 공간으로 되어 있다. 기둥들의 오와 열이 참 잘 맞는다. 

http://www.advantour.com/uzbekistan/khiva/jumamosque.htm

 

나무 기둥들이 인상적이었다. 몇 개를 비행기에 싣고 오고 싶었다. 하지만...타슈켄트까지의 운송이 어려울 것 같다. 바로 포기했다. 이렇게 전통적인 문양으로 제작된 기둥을 팔기도 하던데........ 다음에 사자!

옆의 계단은 민베르 Minber라고 한다. 기도를 마친 다음에 이맘이 설교를 하는 장소이다. 제일 위에 올라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겸손의 의미하고 한 칸 아래에 서서 설교를 한다고 한다. 제일 윗 자리는 누구 자리? 예언자 무함마드의 자리.

 

얼굴 껍데기 색이 ㅎㅎㅎㅎㅎ

 

가옥의 건축 재료는 흙이다. 그것 밖에 없겠지. 지붕의 높이에 구멍이 뚫려 있다. 가끔 내리는 빗물을 배출시키는 용도이리라.

 

옛날에 사용하던 우물이라고 하여 물을 퍼올려보는 여행객과 베흐조드 아저씨.

물에 염분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식수로는 사용하지 아니하고 세탁 등의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주사위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할아버지들. 나루다. 러시아에서 들어온 게임이라고 한다.

 

베흐조드 아저씨가 뽐뿌질을 하고 있다. 물 나온다.

 

Juma Mosque 옆에는 Jummi Minaret이 있다. 입장료가 있다. 따라가 보았다.

이런 곳을 올라 갈 때마다 후회한다. 식식거리면서. 이런 곳에 왔으니 그러하는 것이겠지.ㅎㅎ

 

올라왔더니....먼저 왔던 한글을 사용하는 민족이 있다. 아...영어도 사용한다. 두 남자로부터 하트를 받고 있는 J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올라왔다는 인증 및 기념 샷!

 

 

아닌 척 하면서 이찬 칼라 성내에서 우리들 시야에 계속 머물던 아가씨. 가는 곳마다 뜨게질을 하고 있었다. 관심을 보이면서 다가가면 바로 기념품 판매 모드로 돌변한다.^^

 

Allakuli Khan Caravanserai. 과거에는 카라반들이 이용하던 시설이었지만 지금은 관광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가로 변해버렸다. 그 앞의 노변에도 기념품 상가가 있다. 지나는데 먼저 한국말로 인사하던 아저씨. 한국에 7년 있었단다. 충남대학교에 3년 있었고, 4년을 이 도시 저 도시 돌아다니면서 일을 했다고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우즈벡에 가게를 둘 열었다고 자랑한다. 너무 좋아서 한국에 또 돈 벌러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이미 비자 신청한 상태~

 

저녁 타임. 왕의 별장이었던 더자벅에서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다.

 

왕의 별장답다. 

 

풍성하다. 좋다.

 

왕의 별장답다. 예능인들의 쇼도 보여준다. 좋다.

 

왕의 별장답다. 알콜도 있다. 좋다.

 

술 잔을 높이 드을어어라~거언배~

 

8시반에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간다.

 

왕의 별장을 떠나 시민의 숙소로 왔다. 아시아-히바 호텔.

숙소에 와서 일찍 잔다.

와...

이건 아니다.

매일 이렇게 일찍 자려고 이렇게 먼 곳으로 온 것은 아닌데...

이건 아니다.........ㅎㅎㅎ

그래도 뭐...군소리 안하고 일찍 잤다. 일찍 자니 일찍 일어난다. 내가 쫌 싫어하는 것이 일찍 일어나는 것인데...ㅠ.ㅠ

내일은 무려 6시에 웨이크업이란다. 너무 늦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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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랄 해, 아랄 해다. 아랄 해를 가보는 날이다. 가심이 설레서 4시반에 일어나야 하는데, 무려 10분이나 일찍 일어났다.

 

5시. 호텔 로비에 내려가니 바에서 아주 간단한 아침이 준비되어 있다. 빵 한 조각과 커피. 간단하게 먹었다.

 

5시20분에 공항을 향하여 출발한다. 시티 팔레스 호텔, 기다려라. 다시 온다!

 

버스 안에서 껍데기 상태를 확인한다. 껍질 일부가 탈피하려 한다. 제길~

 

공항 가는데 햇님이 마중 나온다.^^

불덩어리가 터지는 것만 같다.ㅠ.ㅠ

 

5시35분에 도착. 아담한 공항. 국내선.

그래도 보안 검사는 까다롭다. 우즈베키스탄이 대체로 그렇다. IS 때문이라고 현지 가이드 아저씨가 그랬다. 여권 검사와 짐의 보안 검색을 거친 후에 입장을 할 수 있다.

 

짜잔~

 

공항 건물 어딘가에서 찍은 사진인데....무슨 내용인지?

 

6시40분 보딩, 탑승 완료. 7시10분. 비행기가 움직인다.

 

타슈켄트에서 누쿠스까지 가는 비행기 탑승권. 작은 비행기. 창가 좌석이다.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에서 오쉬까지 비행하는 동안 사진찍었던 기억...이번에도?

IL-114-100이라는 모델 번호가 붙은 비행기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  이렇게 생긴 비행기다. 러시아 일류신에서 만든 비행기. 1990년 초도 비행, 1998년 우즈베키스탄 항공에서 최로로 여객기도 도입, 지금은 생산 중단.

한 줄에 좌석이 넷. 여유롭고 좋다. 좌석 크기도 우리나라 국적기보다 훨 크다. 좋다. 간격도 넓다. 작은 공항, 택싱도 금방 끝난다. 뜬다.

 

줸장! 날개가 왜 여기 있는 것이냐.... 저기로 가지!!!

 

비행기가 선회하면서 기울어질 때 틈새로 찍어보았다. 사막이다. 끄읏~

 

 

키질쿰 사막 되시겠다. Kyzyl Kum, '붉은 모래'라는 뜻을 갖는다고.

 

그렇게 사막을 비행기로 2시간 반 만에 휘익 날아서 지나갔다. 시속 420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누쿠스 공항에 9시32분에 랜딩. 하기하여 뜨거운 활주로 위를 걷는다. 활주로 걷기 오랜만이다. 머리 위에 이글거리는 햇님이 계신다.

여권 검사하고 바로 공항 밖으로 나간다. 짐은? 천천히 천천히 밖으로 뒤따라 나온다.

 

누쿠스 공항에서 바로 숙소로 향했다. Jipek Joli 호텔. 공항에서 금방이다.

바로 식당. 식사하고 나선다. 11시20분.

누쿠스 주변에 화학공장들이 많은데, 한국 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하다고 세 아이의 아버지 베흐조드 아저씨는 말한다.

이 지역은 우즈베키스탄에 속한 카라칼파크스탄 자치공화국이다. 국경에 해당하는 곳에서는 카라칼파크스탄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검문을 한다. 카라칼팍은 '검은 모자'를 뜻한다.

카라칼파크스탄 정부 홈페이지에서 카라칼파크스탄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자.

http://sovminrk.gov.uz/qr

 

 

달린다. 누쿠스에서 무이나크로. 인적이 드문 길이다.^^

예까지 뭐 보겠다고?

 

우즈베키스탄은 천연가스 생산이 많다고 한다. 도처에 보이는 것이 가스관이다. 그냥 아무렇게나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노란색 페이트가 칠해져 있다면 그것은 천연가스관이다.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소는 조심안한다. 잠시 조심스럽지 않은 소와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시간을 가졌다.

 

저 아래 어디에 유기물을 좀 남겼다.

 

점점 하얗게 변한 지표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소문으로 들었던 그것일까? 아랄 해였으나 크기가 줄어들면서 노출된 지표에 소금이 깔리게 되었다는?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도 미루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똑 바로 쭈욱쭈욱 자라던. 세 아이의 아버지인 베흐조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나라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미루나무를 심는 풍습을 갖고 있단다. 아이게 곧고 바르게 자라라는 소망을 담아, 그리고 키가 크게 자라니까 그만큼 오래 살라는 소망도 담고.

 

돌보는 이 없어도 염소 떼는 자기들끼리 잘 돌아다닌다.

 

 

12시25분 드디어 동네 표지판이 보였다. 소리쳤다. STOP! (쌤 브라운의 노래가 생각났다.) 

MUYNAQ. 그 아래에 적혀 있는 QALASI는 뭐지?

 

아무다리야 강의 하구에 해당하겠다. 무이나크. 주변에 물 구덩이가 남아 있기는 하다.

 

파미르 고원에서 시작하여 고산 지대에서 공급된 물을 갖고 키질쿰 사막을 겨우 건너 아랄 해로 흘러드는 아무 다리야 강. Amu는 '빠르다', Darya는 투르크어로 '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무 다리야 강은 원래 아랄 해로 흘러들어 커다란 호수를 형성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관개 면적이 늘어나면서 아랄 해로 흘러드는 유량이 급격히 감소했다.

 

이렇게 하류 지역의 물 부족이 심해진 것이다.

 

아랄 해 분지 일대의 물 자원 현황은 이러하다.

 

아랄 해로 흘러드는 유량이 급격히 감소하다 보니 아랄 해의 표면 면적은 점차 감소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1989년과 2014년의 인공위성 영상을 비교한 것이다. 엄청난 호수 면적의 축소 상태가 확인된다.

 

연도별로 아랄 해가 줄어드는 모습.

 

1853년의 아랄 해는 이렇게 생겼었단다.

Journal of the Royal Geographical Society에서 가져 온 자료이다.

 

갑자기 버스가 선다. 그러더니 사람을 태워도 되냐고 질문. 안될 것 없겠지.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들이다. 태워주고 시원한 생수도 한 병씩 주었다. 히치하이크하는 젊은이들. 몸은 완전 젊은이 인데, 얼굴은 나보다....더.......음...

 

무이나크는 유령 도시같다. 과거에는 아래 사진에 있는 것처럼 많은 물고기를 잡는 어항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 어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고 다른 기능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무이나크를 떠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지역은 우즈벡이지만 지역 주민은 카자흐 족이 많다고 한다.

최근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는 무이나크를 재생시키기 위한 정책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2시38분에 도착하였다.

무이나크 교외, 야외박물관. 배들의 무덤에 있는 조형물. 2017년에 만든 것이다. 새거다.

뒷 면.

 

아랄 해에 대한 간단한 역사, 지리적 정보를 제공해주는 게시물들.

 

 

과거 호수였던 곳. 배들이 버려져 있다. 

 

배들의 무덤으로 향하는 우리 답사대원 일행.

 

매우 고운 모래이다. 조개 껍질이 많이 발견된다.

 

무덤에 버려진 배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철분이 산화되는 속도가 매우 빠른 듯 하다.

 

얼굴에 안타까움이 묻어나지 않는가!

 

남기는 사진.

 

아랄 해의 버려진 배들이여, RIP.

 

아랄해의 축소는 과거로부터 어업과 아무 다리야 강 주변의 충적지에서 농업에 의존하여 생활하던 카라칼팍스탄 사람들에게 재앙이었다. 아래 링크한 기사에서는 카라칼팍스탄의 재앙과 호라즘의 쇠퇴에 대하여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다. 읽어볼 만 하다.

http://www.geocurrents.info/historical-geography/the-tragedy-of-karakalpakstan-and-the-fall-of-khwarezm

 

 

누쿠스에서 사마르칸트까지 이용했던 버스, YUTONG. 중국제 버스다. 중국과의 교역이 매우 활발하단다. 중국에서는 육로를 통해 물건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한국 등에서 수입할 때보다 가격 면에서 유리하단다.

 

아랄 해의 짠 물에 발을 퐁당~ 해보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너무 아쉽다.

HAQ JOL! 은 무슨 말인고?

 

누쿠스로 돌아간다. TV를 틀더라. 한국에서도 보지 않은 다큐 '고선지 루트'를 시청하면서 누쿠스를 향했다. 6시쯤 도착하였다.

누쿠스에도 마티스 택시가 많다.

 

쥐펙 졸리 호텔. 아담하고 깔끔하다.

 

또 일찍 잤다. 이게 아닌데...ㅠ.ㅠ

내일부터는 호레이즘 문화에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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