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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1일 12시 좀 넘어서 집을 나섰다. 오랜만의 나드리. 대학 동기 몇과 걷기 운동을 위해...

집앞에서 1143번 버스를 타고 화랑대역 정류장까지 이동해 6호선 지하철로 환승하였다.

월드컵경기장역 2번 출구에서 랑데뷰. 문화비축기지를 거져 월드컵 공원을 한바퀴 돌았다. 마포구청역 부근까지 2시간 반 정도 걸려 9.87km를 함께 걸었다. 걸음수로는 14,826이라 나온다.

램블러 앱으로 기록한 위의 경로를 위성영상으로 바꾸면 아래처럼 보인다. 베이스맵은 네이버지도.

 

월드컵경기장역 2번 출구에서 2시에 모이기로 했다. 20분 쯤 일찍 도착했다.

 

촌놈이 대처에 처음 나와 보았다. 월드컵경기장의 북쪽에서 인증 사진을 하나 남기려 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런!!!

 

월드컵경기장 바로 옆에 위치한 문화비축기지를 먼저 찾았다. 매봉산 자락이다. 오른쪽의 월드컵 터널 속으로 증산로가 드나든다.

(출처: 문화비축기지 블로그)

 

아무런 대비 없이 맞이했던 1차 석유파동에 된통 혼난 이후 '석유 비축 기지'를 조성했던 곳이다. 

2002년 월드컵 경기를 위한 경기장을 건설하면서 폐쇄되었다가 시설을 재활용하기 위해 2017년 '문화 비축 기지'로 재탄생되었다.

 

공연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TANK2. 서울소방안전강사 경진대회가 개최되고 있는갑다.

 

커뮤니티 센터로 이용되고 있는 TANK 6.

 

TANK 6. 내부.

 

빗발이 굵어진다. 카페에서 커피향을 맡으며 비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이곳 커피 좋더라.^^

 

비가 지나가니 하늘이 깔끔해졌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서쪽 모습이 바로 앞에 보인다.

 

하늘공원의 북쪽에 위치한 난지천공원 방면으로 방향을 잡았다.

 

청솔모 한마리가 부산스럽게 날아다닌다.

 

월드컵난지체육공원.

 

노을공원 남쪽의 산책길로 들어섰다.

 

가양대교와 진입로 부근.

 

축대 옆으로 이런 시설이 계속 보인다. 작은 동물들의 이동을 도와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통로이다.

 

노을공원 아랫쪽으로 강변북로를 따라 메타세쿼이아가 심어져 있다. 공간이 좁아 이곳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

 

노을공원과 하늘공원 사이에 위치한 자원회수시설이 있는 교차로를 지나면 '시인의 거리'가 나타난다. 멋진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시인의 거리를 걸으며 여러 시인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도 있다.

 

지나갑니다~~

 

정식 명칭은 난지 테마관광 숲길인 갑다.

 

메타세쿼이아 사이로 걸으며 시인들의 작품들과 함께 해본다.

 

시인의 거리 옆쪽으로는 '소곤소곤길'이 나란하게 위치한다.^^

 

하늘공원 남쪽 구간을 지났다. 월드컵대교 진입로 부근의 강변북로를 달리는 차량들. 

 

하늘공원의 동쪽에 조성되어 있는 메타세쿼이아 길. 벤치에서 잠시 쉬어갔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오늘 하루에 여러번 본다. 남쪽의 모습이다. 동쪽은 다음에~^^

 

월드컵공원이었다.

 

마포구청역 부근에 위치한 재밌는 간판의 식당 홍보.^^

 

만두 전골이 맛있더라. 그래서 만두 추가.^^

 

매운맛이 아닌 메뉴를 선택했다. 맛이 시원하고 깔끔하다.

 

식사를 마치고 길 건너 2층집을 잠시 방문하였다.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모임을 파하였다. 다시 6호선을 달려 석계역에서 1131번 버스로 환승하여 귀가하였다.

 

오늘의 일기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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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문화원에서 실시하는 도보해설탐방 참여를 두번째로 신청하였다. 이번에는 태강릉이다.

10월의 노원 나들이는 태강릉 사이의 숲길을 걸어보는 것이었다.

 

집앞에서 화랑대사거리까지는 버스로 이동하였고, 태릉 입구의 매표소까지는 걸어갔다. 낙엽이 날리는 가로수길이었다.

화랑대 입구에 서 있는 화랑 동상.

 

화랑대철도공원의 모습.

 

담당 직원분들이 인원체크를 하고 2시에 일정을 시작하였다. 입장료(1,000원)도 노원문화원에서 부담해주었다. 오예~!

태강릉쪽에서 본 화랑로 건너편의 모습은 처참하다....ㅠ.ㅠ

'육사'는 골프선수양성소일까??


 

태릉 입구의 매표소 옆의 게시판에서 탐방 일정을 시작하였다.

 

목걸이를 하나씩 나누어준다.

 

매표소에서 받은 리플릿의 지도 부분을 스캔해보았다. 조선왕릉전시관에서 왕릉에 대한 기본 지식을 습득하고 태릉, 그리고 숲길을 지나 강릉까지 이동하였다.

 

조선왕릉전시관.

 

속세와 능역을 구분하는 '금천교'를 건너 능역으로 진입하는 탐방객들.

 

홍살문 안쪽으로 정자각, 그리고 그 뒷편으로 태릉이 살짝 보인다. 문정왕후 혼자 계시기에 봉분이 하나이다.

'홍살문'은 드나듦을 제한하는 시설이 아니라 공간의 경계를 나타내는 시설이다. 안쪽은 신성한 곳이니 조심할지어다~

 

홍살문을 지지하고 있는 커다란 초석이다. 목조건축물의 기초로 기능하는 초석 중, 홍살문의 경우에 나타나는 독특한 모습이 아랫쪽으로 구멍이 뚫려있다는 것이다. 

목조 기둥을 타고 흘러내린 빗물이 초석과의 사이에 고이게 되면 쉽게 부패될 수 있기 때문에 흘러내린 빗물이 초석 내부를 통해 밖으로 배수될 수 있도록 만든 장치이다.

 

정자각 뒷편으로 보이는 태릉.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길. 향로와 어로가 있다. 단이 높게 설치된 향로 아랫 부분의 어로를 따라 걸어본다.

'향로'는 제관이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다. '어로'는 왕이 제향을 올리러 올 때 다니는 길이다.

 

문정왕후릉 아래의 정자각.

 

정자각의 남쪽으로 홍살문이 설치되어 있다.

 

조선 제11대 중종의 세번째 왕비였던 문정왕후의 능.

 

중종의 능인 정릉을 현재의 서울 강남으로 옮기고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같이 묻히기를 원했으나 그곳에 능을 쓰기 어려워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하고 태릉이라 하였다.

태릉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다. 병풍석에는 방위에 맞게 십이지신상과 글자를 새겼다. 문석인과 무석인 등의 석물은 다른 능에 비해 크기가 장대한 조선 중기의 특징을 보이며 귓불에 귀고리 구멍이 있다.

 

문석인과 무석인의 크기가 아주 '장대하다'. 신체 비율이 독특하기도 하다.

 

단체사진 찍습니다~~~~

 

한시적으로 개방되는 숲길로 접어들어간다.

 

하늘을 가릴 정도의 숲길이다. 굴참나무가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일부 구간의 경사가 좀 급하기는 하지만 가볍게 산책하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고갯마루에서 쉬어갈 수 있다.

 

반대편으로는 불암산 헬기장 방면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태릉선수촌이 한창 운영중일 때 "선체력, 후기술"을 외치는 선수촌장이 장기집권하면서 선수들이 뛰어야 했던 길이라고 한다. 지금은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멀리 불암산 정상이 흐릿하게 보인다.

 

잠시 멈추어 '위장 전봇대'에 얽힌 사연에 귀를 기울이는 탐방객들.

 

고갯마루에서 내려가는 길에 만나는 급경사 구간.

 

강릉의 주변을 따라 밧물에 매달려 있다. 멧돼지 기피제란다.

 

'태릉'에 계신 문정왕후의 아들인 조선 13대 명종과 인순왕후의 능인 '강릉'에 도착했다.

(안내자료 스캔)

 

정자각 주변의 탐방객들.

 

제향을 마치고 나서 사용한 축문을 소각했던 장소이다. 예감.

 

정자각 동쪽의 작은 건물인 '비각'.

 

비각 내부에는 '표석'이 있다. "조선국명종대왕강릉인순왕후부좌"라고 앞면에 새겨져 있다.

 

강릉을 나서는 탐방객.

 

홍살문 안쪽 방향으로 뒤돌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태릉에는 여러차례 방문할 수 있었지만 강릉은 첫방문이었다.

 

강릉 앞쪽에 위치한 금천교.

 

강릉은 삼육대학교 정문 부근에 위치한다. 귀가를 위한 버스 정류장도 그러하다.^^

 

<참고 1> 조선 왕릉 분포도

 

<참고 2> 조선 왕릉의 기본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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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계속 있었더니 발바닥이 간질간질하여 집을 나섰다.

오랜 만에 동네 앞산인 금화산을 올랐다. 네이버 지도에 '금화산'이란 이름이 표출되지 않아 정보수정을 요청했더니 바로 들어주었다. 그래서 더욱 애정이 가는 '금화산'이다.^^

1.9km, 한시간 조금 더 걸렸다. 

 

집 앞에 위치한 중계주공7단지 아파트 사이의 등산로 입구로 진입했다.

 

찾는 이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 작은 산이다.

 

태극기님도 여전히 잘 계신다.

 

등산안내지도도 잘 계신다.

 

정상부의 벤치도 아직 건강하시다.

 

그런데 금화산 남쪽에 위치한 충숙공원 쪽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에 철조망이 쳐져 있다. 이게 뭔 일이래......

 

무려 128m 고도의 산을 등정했더니 숨이 하나도 차지 않아 바로 백사마을 쪽으로 산을 내려간다.

 

중계로지하차도의 중계동 쪽. 배드민턴 대회를 개최한단다.

 

중계동 백사마을 쪽으로의 보행자 통로는 막혀 있다.

 

지하차도 윗쪽에 차량 진입 차단봉들이 주욱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누군가 뽑아놓고는 다시 꽂을 수 없게 구멍을 손상시켜 놓았다.

 

중계로지하차도의 하계동 방면에서는 공사가 오래 계속되고 있다.

 

배드민턴장이 있는 불암스타디움에서 길건너 편에 불암산 더불어숲이 조성되어 있다.

 

그늘의 숲속으로 걸을 수 있도록 설치된 데크길.

 

학생들이 단체 활동을 할 수 있는 체험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충숙공원을 지나 금화산을 오르는 주 등반로 입구이다. 막혀 있다.

 

쩌번에는 들어갔는데, 이제는 사유지라 통제를 한단다.

 

다른 방면의 입구도 마찬가지로 철조망으로 막혀 있다. 땅주인의 심기가 많이 상한 모양?

 

불암산 남서쪽 자락의 금화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충숙공 묘역. 

 

묘역 앞에 세워진 신도비 옆에 '하마비'도 설치되어 있다. "대소인원개하마"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이라는 묘역 안내문.

 

서울시립과학관은 충숙공원 바로 인근에 위치한다.

 

날씨 참 좋다.^^

 

지나는 길에 오늘이 '한글날'이라는 것이 생각나 한글영비 비각이 설치된 곳을 방문하였다.

 

한글영비를 제작하던 석공의 고된 모습^^

 

6300보 쯤 걸었다. 땀이 살짝 날 정도. 힘들지도 않고 딱 좋다.

어떤 문제 때문에 갑작스럽게 결정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등산로 입구 차단 문제가 빠르고 원만히 해결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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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고온을 핑계대며 집안에서 에어컨 앞에 쭈그리고 하루를 보낼 수 없게 되었다.

점심 식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하다가 오랜만에 불암산 언저리나 잠깐 돌고 내려오자 생각하며 방향을 잡았다.

당현천, 중랑천 주변 길만 걷다가 산에 오르니 다리가 많이 힘들어 하더라.^-^ 천천히 쉬엄쉬엄 걷다가 보니 시간이 엄청 지체되었다. 그래서 늦은 김에 그냥 정상까지 가보자고 걷는 무리를 했다.

15,625걸음.

 

집을 나서 식당을 찾아 혼밥을 하고서는 길을 나선다.

오후 12시 39분. 불암도서관. 개관한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 한번도 방문을 못해보았다.

 

중계본동의 불암산 자락 안쪽에 위치한 백사마을의 한 식당. 몇 번 혼자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 '메뉴'가 사라지고 다른 메뉴들로 다 바뀌었다.

 

백사마을은 이제 "거의" 비어 있다.

 

아직 남은 이들을 위한 연탄 배달을 시작하고자 함일까? 지게들이 나와 있었다.

 

지도앱을 손에 들고 왔는데도 등산로 입구를 놓칠 뻔했다. 찾는 사람들이 많이 않은 곳인지 발길에 의해 만들어진 등산로가 안보였다. "통행로"라고 작은 표지판에 있긴 하다.

 

서울둘레길 표지판이 양방향으로 보인다. 어느 방향으로 가도 아니된다. 그대로 직진해야 불암산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무심코 오른쪽으로 향했다고 되돌아온...

 

주변에 보이는 암석은 모두 화강암이다. 지표로 드러난 화강암.

 

심층풍화된 화강암. 부스러져 모래알이 된다.

 

능선에 올라섰다. 다른 방향에서 올라오는 이들이 많아 등산로의 윤곽이 뚜렷하다. 정상 방향을 향한다.

 

서쪽으로 멀리 보이는 북한산의 화강암을 구경하면서 불암산 산행을 계속한다.

 

서울타워도 아스라히 보인다. 미세먼지가 심한 동네이다.

 

종종 쉼터가 보인다. 쉬어간다.^^

 

쉬고 있는데 도룡뇽 한마리가 슬그머니 지나가더라.

 

학도암 방면 이정표가 보였다. 그냥 정상으로...

 

신기하다. 화강암에 남은 절리의 흔적이 마치 누가 깍둑썰기를 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불암산을 오를 때면 가장 난감한 코스였다. 좁은 골짜기가 경사도 급해 오르기 어려웠는데, 계단이 설치되어 쉽게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

 

불암산의 '헬기장'에 도착했다. 계단은 과거 불암산성의 돌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불암산성 안내판. 서울시 쪽에서는 서울시 기념물, 반대편에는 남양주 쪽에서 경기도 기념물이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불암산이 서울시 노원구와 경기도 남양주의 경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산성의 동쪽 부분에 산성의 흔적이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다.

 

헬기장 표시인 "H". 올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국군장병들이 하얗게 도색 작업을 새로 했었다.

 

오후 2시 30분. 불암산 정상이 보인다. 여기까지 온김에 저기까지 가보기로 한다.

 

엊그제 찾아가보았던 수락산의 보루가 저 아래 도봉산 방면으로 보인다.

 

정상부의 급경사 구간에는 쇠줄이 설치되어 있어 등반을 돕는다.

 

오후 3시. 정상까지 0.25km 남았다.

 

화강암의 노두가 마치 계단 모양을 이루고 있다.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구간.

 

남쪽 조망. 불암산 헬기장 봉우리 너머로 봉화산, 망우산, 용마산 줄기가 보이고 멀리 청계산까지 보이는 듯.

 

불암산의 화강암 덩어리 너머로 수락산 귀임봉, 도봉산이 멀리 보인다.

 

저 윗쪽에 불암산 정상이 있다.

 

정상이다. 다리가 흔들려 태극기가 있는 곳은 오르지 못하겠다.ㅎㅎ

 

서울타워 방면. 멋진 미세먼지 속의 세상....ㅠ.ㅠ

 

마치 안개가 짙게 낀 듯한...

 

셀피 한장 남기도 하산한다.

 

상계역으로 방향을 잡았다. 1.9km.

 

화강암의 침식 지형 중의 하나인 '그루브'를 볼 수 있었다. 물이 흘러내리면서 침식하여 만들어진 물길의 흔적이 남은 것이다.

 

오후 4시 8분. 하산하며 불암정에서 뒤돌아 본 불암산 정상.

 

불암정. 기다리면 멋진 낙조를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불암산의 전설.

 

사명대사와 노원평 전투.

 

성산석 동굴.

 

불암천보체육회

 

불암산 정상에서 불암정 코스를 지나 정암사쪽으로 우회하여 하산하였다.

 

체력이 자꾸 떨어지는 것을 절실하게 체감한 하루였다.ㅎㅎ

8.6km 거리를 5시간 11분이나 걸렸다니... 중간에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시간이 포함되었더라도... 많이 쉬었던 모양이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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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라 불리는 행위 중에 "걷기" 종목이 이제는 나에게 최대치가 된 것 같다.^^

종종 "걷기" 운동을 나가면 중랑천 동쪽 지역에서 주로 움직였다.

가끔 중랑천을 넘어가보는 일탈을 저지르면서, 가까이 있으나 수십년을 살아오면서도 몰랐던 동네의 모습을 새롭게 알게 되는 재미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동네 개천인 당현천이 중랑천과 합류하는 곳의 건너편에 야트막한 동산이 하나 있는데, 여기가 초안산이다. 초안산 속으로 들어가 각심재, 수국공원을 방문하면서 재밌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선 왕실과 관련되었던 많은 이들이 '조용하게' 묻혀 있다는 것이 생각나 찾아보고 싶어졌다. 사모하는 옆지기님을 모시고 집을 나섰다.

당현천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여 한내교를 이용해 중랑천을 건넜다. 월계역을 통과하여 계단 바로 옆으로 초안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있었다. 정상부에 녹천정이란 쉼터가 마련되어 있고 바로 아랫쪽에 조선 시대 내시들의 문화를 대변하는 '승극철 부부묘'가 조성되어 있어 살펴볼 수 있었다.

구한말의 독특한 가옥 형태를 보여주는 '각심재'를 담당 너머로 구경하고 비석골공원에서 다양한 문인석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초안산 정상(115m)으로 이어지는 아기소망길을 따라 걸으며 조선시대 분묘군의 흔적을 살폈다. 

내시 무덤을 대표하는 것이 '승극철 부부묘'라면, 상궁의 무덤을 대표하는 것이 '상궁 개성박씨묘'일 것이다. 승극철 부부묘는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고 뗏장도 새로 입혀져 있었는데, 개성박씨묘 부근에는 온통 잡초가 우거져 있어 씁쓸했다.

10.14km를 2시간 반에 걸쳐 걸었다. 작은 동산이지만 비탈을 오르락 내리락 했고... 15,253보라고 스맛폰이 알려준다. 발바닥이 힘들다고 부부의 의견이 일치해 중계역에서 나머지 구간은 버스를 이용했다.^^ 산길이 포함되었었는데, 평균 속도가 시속 4.1km였다고 하니 준수하게 걸었던 것 같다.

 

초안산의 조선시대 분묘군은 사적지 제440호 지정되어 있다.

 

초안산의 꽤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궁녀나 내시나 자신의 후손을 마음대로 남길 수 없는 신분의 사람들이었다. 아기를 갖기 원하였을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분묘군 사이의 산책길에 '아기소망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당현천 산책로를 따라 조성된 꽃밭에서 비행기 소리가 작게 나길래 찾아보니 커다란 벌레가 날고 있었다.^^

사진을 찍어 검색해보니 꼬리박각시라고 나오더라. 꿀을 찾아 이꽃 저꽃을 방랑하는... 새소리를 내는 곤충.

 

당현천의 청둥오리 가족은 휴식 중. 때깔이 예쁜 오리가 숫컷이라니...

 

당현천이 중랑천이 합류하는 공간이 '만남의 광장'이라는 작은 쉼터가 조성되어 있었다. 누군가 자꾸 돈을 쓰고 싶어하는가보다. 학여울아파트옆 동부간선도로옆의 자투리 땅에다가 휴게소 건물을 신축하고 있다. 이 휴게소는 노원구의 공무원들이 운영을 할까? 아니면??????

 

중랑천 건너편으로 보이는 초안산. 오늘의 답사 목표지가 되겠다.

 

학여울청구아파트와 월계역을 연결하는 도보교인 한내교를 통해 중랑천을 건널 수 있다.

 

초안산과 중랑천. 멀리 도봉산의 우람한 산세가 보인다.

 

월계역 입구. 실체와 허상.

 

초안산 속에 배드민턴장이 있다. 궁금했다. 왜 남자회원의 월회비는 여자회원보다 5,000원이 더 비싼지...

 

작은 동산이라 정상부에 금방 도착했다. 작은 쉼터인 녹천정.

 

주변 정리를 잘 해놓아 따스한 햇볕을 받고 있는 '승극철양위지묘'. 부부묘이다?

"통훈대부행내시부상세승공극철양위지묘'라고 비석에 비문이 적혀있다.

비문의 주인공인 승극철은 숙종대의 정6품 내시였다. 조선시대 내시는 궐내의 음식물의 감독, 왕명의 전달, 궐문의 수직 등을 담당하던 내시부의 공무원이었다. 이곳에 승극철의 조부인 김계한 등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는데, 양주로 이장하고 승극철 부부묘만 남아 있다. 양자를 통해 대를 이었기 때문에 조손의 성이 서로 다르다.

연양군파라는 이름난 내시 문중을 이루었던 승극철 가계에 대한 기록과 부인과 함께 묻혀있는 모습을 통해 내시 또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으며, 양자를 통해 가문을 만들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초안산에는 내시들을 비롯해 양반과 서민 등 조선시대 분묘 1,000여 기가 있었기에 조선시대 분묘군 사적지(440호)로 지정되었다.

 

등산로를 따라 내려왔는데, 계단에 누가 철조망을 엮어놓았다. '아기소망길' 공식 표지판과 "사유지 출입금지"라며 막고 있는 철조망이 함께 하는 곳......

 

월계동의 각심재를 찾았다.

 

세번째로 찾아온 것으로 기억한다. 여전히 담장 안쪽 저 멀리에 잘 계신다.

건물 앞에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친절하게 해주고 있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지만, 출입이 통제된 담장 안쪽 저 멀리에 있어서 볼 수가 없다. 담장 밖에도 같은 안내판을 하나 더 설치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월계고등학교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비석골공원이다.

 

공원 한쪽에 문인석이 많이 모셔져 있다.

 

문인석의 복식과 모자의 형태가 다양하다. 신분과 직위에 따라 다르게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 산 카메라가 손에 익지 않아 실수를 했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면서 카메라의 노출조절 레버가 막 돌아갔나보다. 엄청난 노출 오버!!!

 

아기소망길을 통해 초안산을 오른다. 

길옆으로 곳곳에 분묘가 분포한다.

 

관리가 안되고 버려진 석물들도 많이 눈에 띈다.

 

길목을 지키고 서계신 문인석.

 

'조선시대'의 분묘들이라서 그런지 대체로 관리 상태는 좋지 아니하다.

 

'상궁개성박씨묘' 표지판을 찾았다. 묘지 표지판인지, '잣나무힐링숲' 표지판인지는 고민이 좀 필요하다.

초안산 산책로 '아기소망길'의 "잣나무힐링숲"에서 초안1단지아파트 방면으로 산비탈을 좀 내려가서 잘 찾아보면...

 

잡초 속에서 숨겨진.....

 

'상궁 개성박씨묘'를 발견할 수 있다.

 

"조선국상궁개성박씨묘"라는 비문이 보인다.

'상궁개성박씨'는 조선 영조대의 정5품 공무원이었다. 비문이 남아 있는 단 3기의 궁녀 묘비 중 하나이다.

 

상궁개성박씨묘를 찾아보고 비탈길을 올라오다가 뒤를 돌아보니....

 

산책로쪽으로 등을 보인 문인석이 하나 있다. 초안산에서 왕께서 계신 쪽을 바라보는 문인석이라 왕을 그리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석물은 남고, 분묘는 사라지고...

 

아기소망길 곳곳에 쉼터와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헬기장도 있다.

 

등산안내도에 "특별순찰구역" 표시가 되어 있다. 어쩐지 경찰 아저씨(?)들이 여럿 돌아다니더라니.... 그런 것이었군.

 

초안산캠핑장 쪽 등산로를 통해 하산하였다. 이쪽 방향에는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주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길가에 떨어져 있는 은행들이 향기를 내뿜는 길을 지났다.

 

녹천교를 통해 중랑천을 건너 귀가하였다. 스맛폰 카메라는 하늘을 참 파랗게도 바라본다.

 

가까이에 있으나 내가 찾아보지 않아 몰랐던 곳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오늘도 그러한 하루였다.

다음엔 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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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문화원에서 노원구의 이곳저곳을 찾아 함께 걷는 '도보해설탐방'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의 초안산 수국공원 탐방 행사를 늦게 알아 참여하질 못해 아쉬웠는데, 9월 행사에는 참가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수락산 등산로 입구의 '만남의 광장'에서 모여 수락산의 자연과 문화, 역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수락산역 방면으로 한방에 갈 수 있는 노선버스가 있어 바로 이용하였다.

 

이리저리 좀 돌아서 가기는 했다. 그래서 40분 걸렸다.

 

노원역 앞에 하차하여 수락산만남의광장을 향한다. 입구에 거대한 '수락문'이 있다. "바르게살자"

 

그런데, 왜 구탱이에 영어를 끄적거려놓은 것인지... '넘버 원'이라고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보아도 "노 원"이지 않은가? '넘버 원'이 되는 순간 "노원"이 아닌 것이지. 영어로 '노 원'이면, "하나가 아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어떤 늘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아저씨는 '하나의 팀'을 강조하면서 "이게 팀이냐"고 일갈을 한 바 있는데, 하나가 아니고 싶어 하다니...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간다.

 

오랜만에 만남의 광장에 왔더니 못보던 시설이 추가되었다. "노원평 전투 대첩비".

 

정각에 바로 행사를 시작하였다. 20명인가를 모집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참가자는 무려 "3명"이었다. 노원문화원에서 행사진행을 위해 4명이 나와는데... 일단 화장실에 신고를 하고 산길을 올라간다.

 

이게 배바위라고 한다. 먼 바다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배!

 

이건 거대한 향유고래를 닮아 고래바위라 한다. 붙일 이름 찾느라 담당자가 고생했겠다 싶다. 배바위와 함께 아이들이 즐겨 노는 곳이라고 설명이...

 

계단 몇 곳에 명패가 붙어 있다. 찾아내기 숙제를 내주더라.

'수락산'이라는 이름은 내원암 일대의 계곡에 바위가 벽을 이루고 있는데, 물이 굴러서 떨어지는 듯 하여 "水落"이라는 산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더라~~ 하는 설이 있다.

 

좀 뜬금없기는 하다. '낭중지추'

 

'유유자적'

 

'금슬지락'

 

젊은이 빼고는 다 늙은이(^^)라서 쉬엄쉬엄 천천히 진행한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그 단단했던 화강암이 이렇게 변했다. '토르'

 

화강암이 기반암인 수락산의 지형 형성 및 변화에 대한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만 같다.

 

진짜?

 

작은 봉우리가 훌러덩 벗겨져 있다.

 

'아차산 보루군'의 일부였다고 한다. 어제 방문했던 망우산의 보루들도 포함하여...

 

멀리 보이는 수락산 정상, 가까이 보이는 귀임봉 정상.... 올라서 있는 수락산 보루. 이 작은 곳에 서너명이 머물며 근무했었을 것 같은데, 고구려 병사들의 애환이 쫌 느껴질라 한다.

 

중랑천 건너편의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의정부 방면의 불곡산.

 

한강 넘어의 막대기도 뚜렷하게 보인다. 아파트들 봐라~~......

 

우리집 뒷산인 불암산.

 

수락산 정상부.

 

높이 솟은 아파트 바로 윗쪽에 보이는 계곡이 천보사로 오르는 계곡이다.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면 폭포를 볼 수 있다.

 

당고개 아랫쪽의 불암산 자락의 아파트가 아닌 마을을 '희망촌'이라고 부르더라.

 

고구려 시절 병사들이 만들었다는 보루 위에 서서 그 시절을 추억하여 보았다.

 

주최측에서 참가자들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기념으로 만들어 주었다. 참가자 3명......

 

보루 한쪽에 석축의 흔적이 남아 있다.

 

보루를 한바퀴 걸어서 돌아보았다.

 

찬찬히 조심조심 하산...

 

원숭이 바위라고 한다. 화강암이다.

 

흔한 타포니.

 

수락산 '범바위' 굿당이다.

'범바위'가 잘 안보이는데, 뒷쪽 데크길로 올라가면 잘 보인다고 안내하더라. 믿고 올라갔는데............ 암것도 안보인다.

 

가까이 보고 싶으면 들어가서 사진 쫌 찍겠다고 이야기하면 된다고 안내하더라. 믿고 들어갔는데............ 안된다고 하더라.

 

행사를 마치며 키링을 선물로 받았다. 산비둘기를 형상화한 '산비'라고 한다.

 

밤도 하나씩 선물로 주더라.^^

선물을 받았으니 '참여후기'는 아주 후하게 작성했다.^^

 

재밌는 행사였다. 재밌는 경험이었다.

 

새로 함께 하게 될 니콘의 Zfc 카메라와 18-140mm 렌즈와 함께 한 첫 출사였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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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24일. 대학 동기들과 산책을 나섰다.

오후 2시 지하철 7호선 사가정역 1번 출구 앞에서 만났다. 시간을 다들 칼같이 지키더라.

 

사가정 시장을 지나 사가정 공원에서 잠시 쉬었다가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면목고등학교에 근무했던 경험을 가진 동기가 이곳을 자주 찾았던 것 같다. 이쪽 저쪽으로 갈라진 여러갈레의 둘레길을 제대로 안내해주었다. 10.5km 거리를 3시간 1반에 걸쳐 쉬엄쉬엄 걸었다. 땀을 쫙 빼면서......

 

아파트 단지 옆의 용마산 산자락 아래에 사가정공원이 자그만하게 자리잡고 있다.

 

25세에 대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선 대구 사람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45년 동안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 등 여섯 왕을 섬기면서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서예가이며 학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국가적 편찬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국역했으며 우리나라의 역대 명문장을 모아 『동문선(東文選)』을 엮는 등 조선 전기 국가 제도와 학문 및 문장의 정비에 큰 공적을 남겼다.

이 서거정이 용마산 부근에 살았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했던 ‘매화, 대나무, 연꽃, 해당화’를 집안에 심어 놓고 감상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더니만 자신의 호를 ‘사가정(四佳亭)’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친구였던 박팽년의 ‘강중(剛中)의 집안에 심어진 매화, 대나무, 연꽃, 해당화 네 가지를 소재로 읊다(題剛中家梅竹蓮海棠四詠)’라는 시에 잘 나타나 있다.

그래서 부근에 자리잡은 지하철 역의 이름이 사가정 역이 되었고, 이곳의 공원은 사가정 공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요샌 웬만한 산마다 온통 데크길이다.

 

이쪽으로 가면 용마산, 요쪽으로는 면목고, 저쪽으로는 중랑둘레길... 삼거리를 향한다.

 

디스크로 고생하던 친구인데 참 잘도 걷는다. 걷는 것으로 치유하더니 아주 그냥.....

 

2년만이다. 망우역사문화공원.

 

멀리 아차산이 보인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이다. 잘 정비된 묘.

 

잘 숨어 있는 묘.

 

잠시 앉아 쉬었다 간다. 당랑 아저씨도 함께 쉰다.

 

'보루'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고구려 때의 유물이 발견되어 그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단다. 중원 고구려비 만들 때 쯤의 군사시설이었을까? 그럼 1,500년 쯤 지난 것?

 

이 시대의 망루는 어떤 용도?

 

한때 디스크로 고생하던 친구는 이제 잘도 뛰어다닌다. 망우산이 서울시 중랑구와 경기도 구리시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중랑 둘레길, 구리 둘레길을 왔다 갔다 한다.

 

검단산 방면으로 한강 주변이 사알짝 보인다.

 

망우전망대를 찾았다.

 

이곳은 망우산 2보루가 있었던 곳이다.

 

'망우리'라는 지명의 유래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태조 이성계의 근심이 날아가게 되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망대에 오르면 북한산, 도봉산 방면으로 전망이 좋다.

 

우리집 뒷산인 불암산이 제일 잘 보인다.^^

 

전망대가 또 있다.

 

구리(한강)전망대이다.

 

전망대의 이름에 맞게 구리 방면의 한강이 아주 잘 보인다. 2024년말 개통 예정인 새로운 한강의 다리. 멀리 보이는 산이 검단산. 한강 주변의 아파트들이 하얗게 빛나 보인다.

 

전망대 여럿에서 전망을 하였으니 이제 하산하기로 한다. "도산안창호선생지묘"에서 잠시 추모하고 지난다.

 

만해 한용운 상 앞에서 잠시 추모하고 지난다.

 

사가정 시장 골목의 '소문난 아구찜' 식당에서 저녁을...

 

어디서 본 듯한 기억이 날까말까 하는 아저씨 사진이.....

 

사가정 시장.

 

이미 운동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마무리 운동 삼아 잠시 단단한 공굴기 놀이를 하다가 모임을 파했다.

 

즐겁게 땀 흘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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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의 별내동은 덕릉고개를 사이에 두고  서울 노원구 상계동과 인접하여 있다. 덕릉고갯길이 좁아 주말이면 만성적인 차량 정체가 발생하였으나 덕릉터널이 개통되면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상계동에서 당고개역 지나 덕릉고개를 넘으면 왼쪽의 수락산 자락으로 많은 묘가 조성되어 있다. 그 사이의 골짜기에 덕릉마을이 있으며, 위로 오르면 흥국사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는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식당이 성업 중이다. 카페로 운영되던 시절부터 종종 방문하였었다. 

2024년 8월 29일 목요일에 옆지기를 모시고 점심 식사를 한 후 한쪽에서 함께 운영 중인 찻집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드님이 2박3일 간의 정부(국방부)에서 제공하는 캠핑을 마치고 나오신다길래 모시러 나온 참이었다.

시간이 많이 남아 날이 매우 더워 폭염 경보가 발령된 날이었지만 찻집을 나섰다. 옆지기는 안 따라나서시네. 혼자서 얼마전에 방문했다가 지도에서만 확인했던 "덕릉마을 산신각"을 눈에 담고 싶어서였다.

거리는 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산신각 방향으로 입산을 할 수 있는 통로가 안보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덕릉마을회관이다. 마을회관에서 바로 접근할 수 있을 것처럼 지도에서는 보이지만 막혀 있었다.

 

도로를 따라 터덜터덜 걸어내려왔다. 덕릉고개에서 내려오는 도로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부분에 표지판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200M'만 가면 된다고 되어 있다.

표지판 아래 부분에 '본 표지판은 임시 제작되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농작물과 잡초가 뒤섞여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길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초입을 지나면 등산로 "처럼" 보이는 구간이 나타난다.

 

왼쪽 방향으로 100M를 더 가면 된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진행방향의 묘가 보이는데 왼쪽 아랫부분의 풀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풍화가 아주 잘 된 화강암 기반암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덕릉마을 산신각"이다.

 

산신각의 지붕은 人자 모양으로 펼쳐진 맞배 지붕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양옆으로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山神閣?

산신각은 '사찰에서 산신을 봉안하는 불교건축물'이라 정의된다. 한국 사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로서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일러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산신은 원래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착신이나, 불교의 재래신앙에 대한 수용력에 의하여 먼저 호법신중(護法神衆)이 되었다가, 후대에 원래의 성격을 불교 안에서 되찾게 된 것이라 한다.

 

德陵 마을 山神閣은 수락산 자락에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1888년 세워졌다. 972 의 대지에 1칸 크기의 목조기와로 건축된 전당 전면에는 산신각이라 쓰여진 현판이 걸려 있고, 맞은편 현판에는 조성연대가 쓰여 있다. 후실의 전면은 6쪽의 판벽과 판문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책거리, , 쌍회문 등을 새겨 단청을 하였다. 뒷벽의 윗부분에는 푸른 칠을 한 위에 흰 칠로 호랑이가 담배 피우는 모습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1996년 12월 24일에 경기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민속자료 제9호'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이제는 번호를 붙이지 않고 그냥 경기도의 "민속문화유산'이다. 

철책으로 보호하고 있어 가까이 가볼 수는 없으며 또 잠겨 있어 내부는 볼 수 없다.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후실 안 정면에는 탱화풍의 산신도가 모셔져 있는데, 중앙에 산신이 왼쪽에는 호랑이, 오른쪽에 동자 2명, 선조낭자 1명, 다승(茶僧)1명을 배치한 그림이 있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마을 주소와 그 당시 살았던 사람의 이름이 있으며 화가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이 마을의 산신제는 음력 정월과 10월 초하루에 올린다. 산신제는 날을 받은 후 동네 사람들 가운데 생기복덕을 따져 맞는 사람 중에 깨끗한 사람으로 화주(당주)한 명을 택해 밤에 유교식으로 제례를 올린다. 산신각과 산신탱화, 산신제의 내용으로 봐서 전통적인 산신신앙과 불교신앙, 그리고 유교의례가 융합되어 조선시대 형성된 마을신앙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현재 산신각은 1998년에 보수되었다.

(출처: 남양주시청 홈페이지)

 

보존 상태가 아주 깔끔하다. 잘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입로 정비만 조금 추가하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한다. 마을의 대형 식당이나 카페에서 산신각 쪽으로 진입로를 열어주는 것도 희망사항에 들어간다.

주말에 많은 손님이 찾았다가 식사를 마치고 빨리 빠져나가지 않고 이곳을 구경하러 다녀온다면 주차장 자리를 오래 잡고 있게 되는 상황 때문에 그러할 가능성은 아주 낮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저 아래 숲속에서 아드님이 2박3일 캠핑을 했다. 퇴소했다고 연락이 왔다. 빨리 데리러 가자며 옆지기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남양주시 별내에 위치한 '덕릉마을 산신각' 방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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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여름은 연일 폭염 경보가 이어지고 있다.

더위 속에 시원한 숲속을 찾아가보고 싶었다.

네이버지도를 뒤적인다. 

근처에 달려 나가 점식 식사하고, 차 한잔하고, 간단히 들러볼 곳을 찾다가.... 종종 가보았던 곳으로 골랐다.

옆지기에게 함께 가자고 결재상신 올려 승인을 받았다!!!


 

상계동에서 덕릉로를 따라 이동하여  당고개를 넘었다.

'목향원'에서 식사하고는 그 윗쪽의 수락산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자연소리'에서 차를 한잔하면서 '자연'을 즐기고자 하였다. 그리고는 '흥국사'를 탐방하고 귀가하는 일정을 잡았다.

 

하늘에서 본 목향원과 주변 일대. 12시가 되기 전임에도 제2주차장에 차들이 거의 채워져 아랫쪽의 제1주차장에도 차들이 진입하고 있다.

 

1997년부터 운영을 했었던 곳이란다. 

 

옛날에는 옛날 건물이었는데, 재단장하여 신식 건물로 바뀌었다.

 

들어가는 입구 한쪽으로 장독들이 줄지어 있다.

 

옛날에는 산골짜기에 숨어 있는 조용한 곳에 찾아와 차한잔을 즐기고 가는 곳이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서 고기집으로 변신하였다. 사람들이 아주 많이 찾아오면서 주차장도 넓히고, 메뉴는 그냥 한가지로 바뀌었다.

 

쌈밥용 채소가 먼저 나오면서 인원수대로 주문이 들어간다.

 

역시 초기보다 반찬의 가짓수가 줄었다. 식탁에 찬그릇을 놓을 수 없을 정도였는데...^^

밥도 삼색밥이다.

 

석쇠불고기. 맛있다.

 

마당 건너편에는 카페도 마련되어 있다. 수락산에서 불암산을 바라보며 차를 즐길 수 있다.

 

화강암 덩어리인 불암산 정상쪽 조망. 폭염 경보 속의 하늘은 뜨겁기만 하다.

 

네이버지도에서 캡쳐하여 글자를 키워 넣었다. 목향원에서 식사하고 '자연소리'를 찾아가려했다. 찾아가려했다.

목향원의 주차장에서 올라갈 수 있다고 하여 차를 디밀었더니 막혀있다. 흥국사 일주문 옆으로 난 샛길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어 그리로 가려 했더니 10년은 자연 속에 테라포밍된 것 같은 상태다. 길이 아니다.

엄하게 차를 왔다갔다 하고 있으니 목향원 주차관리원이 달려온다. 카페에 대해 질문하니 저 윗쪽에는 아무 것도 없다 한다. 난 뭘 보고 온 것일까...

귀가하여 다시 찾아보니 2019년 9월과 2020년 1월에 찾아갔던 이들의 리뷰가 2개 있을 뿐이었다. 이후 운영을 하지 않고 있는가보다. 네이버지도 "정보수정제안하기"를 통해 폐업했으니 지도에서 삭제해달라고 하려 했더니 증거로 "사진"을 요구한다. 사진을 찍으러 다시 가야겠다.


흥국사로 바로 가자.

목향원 바로 위에 위치한 일주문을 지나 올라간다. 쭈욱 올라간다.

 

금방 도착한다. 비포장이긴 하지만 주차 공간이 꽤 된다. 여유있게 나무 그늘 아래쪽에 주차.

 

하늘에서 바라본 흥국사. 규모가 크지 않은 절집이다. 사찰의 여러 기능을 복합적으로 수행하는 공간인 '대방'이 흥국사의 입구에 위치한다. 그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신식 식당'.

 

보통은 가장 큰 건물이 '대웅보전'이지만, 흥국사의 경우에는 그냥 "대방"이다.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여러 기능을 한 건물에서 수행하도록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기와불사에 참여해주세요.

 

영산전과 대웅보전.

 

영산전과 대웅보전 안내판.

 

흥국사의 창건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신라 제26대 진평왕 21년(599년)에 원광법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조가 왕위에 오른 이듬해인 1568년에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묘를 흥국사 남쪽에 쓰면서 부친의 명복과 극락왕생을 위해 수락사를 중수 복원하고 '흥덕사'라고 이름을 내렸다. 이후 1626년에 인조가 건물을 중수하면서 다시 '흥국사'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대웅보전 건물은 팔작지붕으로 양끝에 용머리 장식이 있다. 지붕 아랫쪽에 처마와 기둥 사이에 공포를 설치하고 있다. 공포는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고 화려하게 돋보이도록 하는 장치로,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머리가 새겨져 있어 조선 후기의 장식적인 조각 기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대웅보전 안에 모셔진 목조석가삼존불좌상.

가운데 석가불을 중심으로 그 왼쪽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오른쪽에는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아보는 보현보살이 석가불을 보좌하고 있다.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의 조성 발원문이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인 조성 시기나 최초 봉안 사찰은 알 수 없으나 18세기 중반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웅보전 윗쪽의 단하각.

 

대웅보전 옆의 시왕전.

 

시왕전 윗쪽의 만월보전. 뒷편에 '승탑'이 있다는데 이번 탐방에서는 놓쳤다. 다음에는...

 

'승탑'을 찾아 올라왔다가 근사한 '새 탑'에만 눈이 가서 '승탑'을 놓친 것이다.

 

대웅보전에서 떨어져 위치한 나한전. 

소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 및 16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흥국사 소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정확안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1650년에 세번째로 고쳤다는 발원문이 발견되어 1650년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6 나한상은 우리나라에서 일괄 문화재로 전해오는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전라북도 고산(현재는 완주) 안심사 약사암에 모셔져 있던 것을 1891년에 흥국사로 옮겨와 다시 고치고 이듬해부터 모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었네요.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00760.html

 

나한전 앞의 마당 건너편에 위치한 범종각. '범종각' 현판은 다시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목어, 범종, 법고 등이 설치되어 있다.

 

흥국사 대방. 조용한 절집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탐방 기회였다.

 

산자락이 온통 묘지이다. 다음에는 '덕릉마을 산신각'을 찾아가보고 싶다.

아! '자연소리' 진입로가 폐쇄된 사진도 찍어야 한다.^^

네이버지도에 정보수정 요청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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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30일 화요일.(8월 5일, 8월 11일에 보강 답사)

노원구의 '한글비석로' 언저리에 살고 있다. 꽤 여러 해가 되었다. 그러한 지명을 갖게 된 것이 "한글 비석"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길 들었다. 궁금했다가 잊고 지났다가 하다보니 세월이 주욱 지나갔다. 

생각난 김에 탐방에 나섰다. 생각난 때가 밥 때인지라 식당에 들러 배를 채우고 길을 걷는다. 혼밥을 하는 나이든 아저씨들이 여럿 보여 위안(?)이 되었다.

위치를 대충으로만 알고 있었다(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있었다). 걷다보니 서울시립과학관이 보이더라.^^ 지나친 것이다. 할 수 없이 뒤돌아 걸었다. 한글영비를 탐방하고는 나선 김에 동네 한바퀴 산책을 했다. 많이 덥더라. 34도의 한낮에 콘크리트, 아스팔트 도로를 걷는 것이 좀 많이 힘들기는 하더라.

 

한글비석로의 길가에 눈에 잘 띄게 안내판이 되어 있지 않다는 핑계를 대본다. 여길 그냥 지나쳤다가 되돌아왔다. 계단 윗쪽으로 올라가면 '한글 비석'을 볼 수 있다.

 

서라벌 고등학교에서 불암산 쪽으로 길건너편에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이윤탁 부부의 합장묘이다. 

관직이 '권지승문원부정자'에 이르렀던 이윤탁의 묘는 지금의 태릉 자리에 있었는데 문정왕후 윤씨의 묘를 조성하면서, 부인 안인(고령) 신씨 묘가 있던 이곳으로 옮겨 합장하였다.

 

'한글 영비'를 보존하고 있는 영비각. 노원구 하계동 12번지이다.

이 비는 이윤탁의 아들 이문건이 부모의 상중에 무던 옆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세웠는데 새로 조성한 부모의 묘역이 훼손되는 것을 경계하는 내용도 비에 새긴 것이다. 중종 31년(1536년)에 세웠다. 1998년에 도로를 확장하면서 원래 위치에서 15m 정도 뒤로 옮겼는데, 원래 비석이 있던 위치에는 돌을 묻어두어 표시를 했다고 한다.

'한글고비'라는 이름으로 1974년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에 보물 제1524호로 승격되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영비각 바로 앞에 설치된 안내판.

 

비의 몸체 위쪽 양 모서리에 각을 주고 받침대는 네모꼴로 만들었는데 이는 조선 초기에 유행한 圭首方趺의 양식을 따른 것이다.

 

비의 앞면에는 묘 주인들의 이름이 있다. 

 

묘의 뒷면에는 일대기를 새겼다.

 

비의 우측에는 한문으로 경고문을 새겼다.

不忍碣

爲父母立此誰無父母何毁之石不忍

犯則墓下忍凌明矣萬世之下可免夫

 

맹자가 혹독한 정사를 펼치는 군주들에게 각성을 촉구한 '不忍之心'을 인용한 것으로, "차마 하지 못하리니"라는 제목을 붙였다. 내용은, '부모를 위해 이 비석을 세운다. 부모 없는 사람이 누가 있어 이 비석을 훼손할 것인가. 비를 차마 깨지 못하리니 묘가 능멸당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만세에 이르도록 화를 면할진저.'

 

비의 좌측에는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한글로 적었다.

靈碑 

녕ᄒᆞᆫ비라거운사ᄅᆞᄆᆞᆫᄌᆡ화ᄅᆞᆯ니브리라

이ᄂᆞᆫ글모ᄅᆞᄂᆞᆫ사ᄅᆞᆷ다려알위노라

 

해석은 다음과 같다. "신령스러운 비석이다. 범하는 사람은 재화(災禍)를 입을 것이다. 이는 글(한문)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는 한글로 쓰인 최초의 묘비문으로 알려져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높으며 국어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글이 단어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의 문장으로 구성된 것이라서 가치가 높다 한다.

이 ‘한글영비’는 국어생활사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첫째, 중종 31년(1536) 당시 한글이 얼마나 널리 알려져 있는가를 증명해주는 자료이다. 둘째, ‘한글영비’에 새겨진 한글의 서체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직후의 서체, 즉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체와 <용비어천가> 서체의 중간형의 성격을 지닌다. 셋째, 이 비석의 글은 비석의 이름인 ‘영비(靈碑)’를 제외하고는 국한 혼용이 아닌 순 국문으로 쓰여 있다. 본격적으로 한글로만 쓴 문헌은 18세기에나 등장하나 이 ‘한글영비’는 16세기에 이미 순국문으로만 쓰인 문장이라 할 수 있다. 넷째, ‘한글영비’는 언해문이 아닌 원 국문 문장이다. 15세기 이후 한문 원문을 번역한 언해문이 한글자료의 주종을 이루었으나 이 ‘한글영비’는 짧은 문장이긴 하나 처음부터 우리말로 쓰인 문장으로, 한글이 한문 번역도구가 아닌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직접 전달하는 도구로 변화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섯째, ‘한글영비’에 쓰인 국어 현상은 이 당시의 언어를 잘 반영하여 당시 국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국가유산포털,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석비의 글자가 흐려진 부분이 있어 명확하게 읽어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영비각 안쪽에 깔끔하게 한글 부분을 새긴 작은 나무팻말을 달아놓았다. 처음 갔을 때는 안보이던 것들이 여러번 가니까 하나씩 추가로 눈에 들어온다. 거참...

 

한글영비는 영비각에 보존되어 있고, 합장묘 앞에는 새로운 비석을 세웠다. 한글 번역판이다.

 

영비 뒷면과 오른쪽 면의 한문 부분을 모두 한글로 번역하여 새겼고, 한글 부분은 잘 보이게 굵은 글자로 새로 새겼다.

 

불암산 자락에 위치하며 한글비석로 건너편으로는 아파트 단지와 서라벌 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묘의 관리가 아주 잘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묘소 바로 윗쪽에 조성된 다른 묘는 장맛비로 인한 봉분의 훼손이 보인다.

 

CCTV가 계단 아래에 설치되어 있다.

 

보물 제1524호의 안내판은 가로수에 가려 잘 보이질 않는다. 약간의 위치조정이 필요하지는 않을지...

 

한글 영비를 보고는 집을 나선 김에 계속 산책을 해보기로 했다. 새솔공원이 인근에 위치한다.

 

2022년 조성 전의 모습과 2023년 조성 후의 모습을 비교한 사진. 

 

불암산 목공예체험장이 핵심이다.

 

들어가보았다. 체험 신청자는 안보였다.

 

서울시립과학관의 근사한 모습.

 

이곳도 개관한 이후 처음 들어와본다. 8월 11일까지 입장료 무료 행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립과학관의 투어 안내 자료는 영어판만 구비되어 있다. 한글판은 안보여서 그냥 왔다.

 

길을 건너면 대진고등학교 맞은편에 "에너지 제로 아파트"가 위치하고 있다. 그 입구에 설치된 체험주택이다.

2018년에 개관하였으며, 에너지 제로 주택 관련 정보 제공 및 홍보, 체험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늘을 구름이 가리고 있어 설렁설렁 나섰는데, 점점 하늘이 뜨거워지더라. 34도에 머리가 익는 느낌?

중랑천변 산책로로 들어오기 위해 하계동의 학여울청구아파트를 가로질렀다. 한내교는 월계역과 연결되는 인도교이다.

 

한내교에서 중랑천의 상류 쪽을 조망했다. 경치는 좋다.^^

 

중랑천으로 당현천이 유입되는 뽀인트에 '만남의 광장'이 설치되어 있다. 노원구에서 더운 날씨에 산책하는 구민들을 위해 생수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어제부터 시작했닥고 연락을 받았다. 혹시나 이곳에서 제공하고 있지는 않을까 기대를 했다.

수도에서 따끈따끈한 물만 나오네......

 

노원소각장인 '노원자원회수시설' 옆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예쁘게 잘 단장해놓았다. 덥다.

 

녹음이 우거진 당현천 산책로. 가로수 아래로 그늘을 찾아 흐느적거리며 걷는다.

 

찾았다!!! 작년에도 이 위치에서 생수 공급을 해주기는 했었다.

 

고마운 노원구청.^^

 

폭염에 녹아 흐르는 것만 같다. 계속 걷기에는 힘이 부쳐 벤치에 몇번이나 앉아 쉬었다. 멀리 불암산이 보인다. 거의 다 왔다.

 

 

8.5km를 걸었단다. 11,000보. 평소보다 걷는 속도가 뚜욱 떨어졌다.ㅎㅎ

모자도 안쓰고 뙤약볕을 따스하게 체험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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