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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한번쯤 대학동기들과 가벼운 산책을 하고 있다.

이번 달에는 서울숲.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이라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출발했다. 약속 장소는 '서울숲역'이었는데, 지하철 7호선과의 연결이 애매하여 뚝섬역에 내려 걸어가기로 했다.

 

시간을 넉넉히 잡고 출발했다. 건대입구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였다.

그냥 환승하고 내릴 역을 기다려야 했다!!! 스맛폰 중독자인 것을 티내려 했는지 그 잠깐을 못참고 스맛폰을 켰다. 창밖을 보니 한양대역이었고, 내리는데 실패했다.(O_O) 다음에 도착한 상왕십리역에서 하차하여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플랫폼이 가운에 있는 역이 아니라 한참 돌아갔다. 

무사히(?) 뚝섬역에 내려 네이버지도의 도움으로 골목길을 찾아 서울숲역까지 걸었다. 예정된 인원들이 모여 출발~!

 

서울숲이다!!!

 

총무 및 회장을 겸하고 있으며 오늘 일정의 가이드까지 해준 친구가 수도박물관 구경을 해보라 했다. 갔다. 물과환경전시관에서 투어를 시작한다.

 

1907년의 건물이라 한다. 경성수도양수공장.

그시절에 사대문안과 용산 일대의 12만여명에게 수돗물을 공급했었다. 

 

모래를 이용한 침전을 통해 물을 정수하던 완속여과지 내부이다. 기둥 높이 정도까지 물을 채워 여과를 시켰다고 한다.

 

스탬프여행을 완수하면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무릎담요를 하나 받아왔다.^^

 

수도박물관에서 강북강변도로를 건너갈 수 있는 구름다리가 설치되어 있어 건너가 보았다.

 

한강의 북쪽 강변을 따라 달리는 도로인 강북강변도로. 멀리 거대한 탑이 보인다.

 

남산 위로 솟은 서울타워도 잘 보인다. 

 

한강, 한강을 건너는 성수대교, 건너편의 '강남'... 

 

'서울숲'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어서 서울을 대표할 정도로 "숲"이 잘 조성되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암만 보아도 아니다. 숲이 아니라 그냥 '공원'이잖나???

 

공업 단지의 흔적이 살짝살짝 남아 있는 성수동, 능동 골목을 걸어보았다. 초행길은 언제나 어디나 신기하다.^^

 

노룬산시장도 처음 가보았다. 옛날에 있던 작은 동산의 이름을 따온 시장이다. 골목 안쪽의 작은 숯불갈비집에서 식사를 하고, 족발집에서 가볍게 2차를 하고, 당구공을 살짝 굴려보고 모임을 파하였다. 7호선 지하철 건대입구역.

 

7하계역에서 하차하여 버스로 환승, 몽롱한 정신 속에 무사히 귀가하였다.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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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남서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 안양. 그 안양시의 북서쪽에 작은 동네가 있었다. 

북쪽에 와룡산, 동쪽에 꽃메산이 위치하고 남쪽으로는 안양천이 흘러 외지와 단절된 작은 동네였다. 옛날 동네 이름이 "충훈부"였다. 고향이다.

 

현재 '행정복지센터'가 위치하고 있는 부분이 "윗말", 안양중학교 일대가 '아랫말', 그리고 충훈부시장 쪽은 '벌말'이라 했었다. 논과 밭이 펼쳐진 전형적인 촌동네, 농촌이었다.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신안양3리"라는 지명이 기억난다. "충훈부"라 불리웠던 작은 깡촌이었다. 어렸을 때는 그것이 무슨 뜻을 가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안양시청 홈페이지의 지명 유래를 살펴보니, 

충훈부(忠勳府)는 조선 시대 때 국가에 공훈이 많은 공신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으로써, 처음에는 공신도감 충훈사(功臣都鑑 忠勳司) 등으로불리다 세조(世祖) 때에 이르러 충훈부(忠勳府)로 개칭되었다. 당시 충훈부의 관할 토지는 사성리와 우두리, 광화대리(현 광명시 철산동, 광명동)까지였으며, 이 지역을 일반 농민에게 경작하게 하고 도조를 받아서 충훈부를 관리 운영해 오다가 인근에 마을이 형성되게 되었고, 이 마을의 이름을 관청의 명칭을 취해서 충훈부(忠勳府)라고 부르게 되었다.

라고 나온다. 忠勳府라는 관청의 관할 토지 중에서 그 이름을 이어받은 동네인 것 같다. 왜 외곽의 이 작은 마을에 그 이름이 남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참고로 '충훈부'라는 관청이 있던 곳을 찾아보았다. 지금의 안국동사거리 부근이다. '도성대지도'에 그 위치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도성대지도'는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20년에 한정판으로 출판된 바 있다. 위의 '忠勳府' 부분은 43쪽에 수록되어 있다.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홈페이지에서 귀한 옛날 사진을 발견했다.

(출처: https://anyangbank.tistory.com/66?fbclid=IwAR1eeCs0Q6QNfQjkegY5uNiB3RbzA5py0BeJj1iZfWkyxTksSpmoNaILTaE)

1964년에 관악산 자락에 위치한 망해암에서 서쪽의 경관을 촬영한 것이다. 안양천이 남쪽에서 흘러와 서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안양동, 박달동, 석수동 지역 일대가 거의 농경지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진이다. 안양천 주변에 제대로 된 제방이 보이질 않는다. 꽃메산 아래의 작은 마을 충훈부 자락이 살짝 보인다. 경부선 철교와 안양대교는 사진에서 구별되지만 다른 교량은 보이질 않는다.

충훈부에서 박달동을 연결하는 섶다리를 꼬맹이 시절 건너본 기억이 있다. 그러고보니 콘크리트로 된 다리를 만들었는데 교량의 상판만 올리고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건너가본 적이 있다. 교량의 옆으로 방호시설이 되어 있지 않았는데, 갑자기 강한 겨울 바람이 불어와 작은 몸뚱이가 바람에 밀려 다리 아래로 떨어질 뻔 했었다. 호기심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울면서 기어서 교량을 탈출했다.ㅠ.ㅠ


 

그 작은 농촌에서 농부의 자손으로 태어나 농사일을 도우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주 어렸을 때는 몰랐으나 점점 자라면서 우리집은 농지를 소유하지 않고도 농사를 짓고 있는 신기한 집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었다.^^ 

엄청난 소작료를 내면서 고생하던 집안이었다. 그러다가 '농협'의 은혜로 많은 대출을 받아 목장으로 전업했었다. 그리고는 그 유명한 "전경환 소파동"의 충격을 제대로 얻어맞아 쫄딱 망했고, 농협의 "은혜"는 그대로.....ㅠ.ㅠ

1980년대의 부동산 개발붐을 타고 동네 전체가 택지로 개발되었다. 꽃메산 아래 있던 작은 집을 털어 그동안 농사지으며 도움을 받았던 농협 부채를 갚고 남은 자금으로 벌말 일대에 조성된 빌라촌의 작은 방을 구해 거주하게 되었다.

아래 사진이 현재의 "충훈부" 모습이다.사진의 오른쪽의 '석수초등학교'와 아파트 뒷편에 위치한 산이 '꽃메산'이라는데, 자랄 때는 들어보지 못했던 이름이다. 멀리 보이는 '안양중학교' 뒷편의 산이 '와룡산'이란다. 그 너머로 보이는 산은 '석수산'이다. 와룡산의 서쪽 끄트머리 부분에 또 하나의 학교가 있다. '충훈고등학교'이다. 그때 그시절에는 모두 멀리 있는 학교를 다녀야 했는데(^^) 지금은 초중고등학교가 모두 동네에 들어와 있다.

와룡산과 꽃메산 사이의 고갯길을 넘어 석수산 아래의 군부대 옆을 지나 '삼성국민학교'까지 통학을 했던 기억이 난다. 삼성국민학교 앞으로 지나는 1번 국도가 확장되면서 차량 통행이 갑작스럽게 증가했고 동네친구 하나가 교통 사고를 당했다. 여러 달을 입원해야 했던 그 친구는 결국 1년 늦게 졸업하게 된다. 이 사고 이후 동네 학부형들의 집단 민원을 통해 통행 조건이 보다 양호했던 '만안국민학교'로 동네 친구들과 함께 단체로 전학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직도 기억한다. 4학년에 전학하여 들어간 학급의 내 번호, 72번. 그렇다. 베이비붐 세대였다.^^ 삼성국민학교에서는 교실이 부족해 오전반, 오후반을 번갈아 운영을 했고, 그 정보를 잘못 전달받아 오전반인데 오후반에 등교하곤 했던 기억도 있다.ㅎㅎㅎ

 

많은 추억이 묻어있는 작은 동네, '충훈부'. 안양천의 남쪽은 박달동인데, 대한제지인가 하는 거대한 공장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안양천의 서쪽 건너편에는 '노루페인트' 공장이 아직도 가동하고 있다.

 

농촌이었던 충훈부가 택지로 변모된지 40년이 넘었다. 특히 빌라촌의 건물들에서는 그 '나이'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고 일단 공영개발로 가닥을 잡은 것 같은데, 재개발을 추진하던 조합도 있었는데.... 어찌 진행될 지는 모르겠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어 초기에 예정되었던 계획보다는 많이 지체되지 않을까 할 뿐......

 

이 빌라촌이 모두 고층 아파트로 바뀔 예정이란다.

 

충훈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 '향우회'를 조직했었다. 계속 외지에서 생활하다보니 나는 빠져 있지만 "충훈부 향후회"에서 충훈부에 충훈부의 흔적을 남겨놓았더라.

동네 한복판에 위치한 '꽃메산 어린이공원' 입구의 길가에 위치한다.

 

"충훈부" 표지석이다. 2000년 8월 20일에 건립하였다.

 

뒷면에 건립 기금을 출연한 사람들이 명단이 있다. 아... 아버지......

 

꽃메산 쪽에서 바라본 충훈부의 모습.^^ 아파트에 가려 동네 모습이 다 보이질 않는다. 그 앞의 빌라촌이 어찌 변하게 될 지 궁금하다.

이 작은 동네의 행정구역이 안양시(1973년에 시로 승격) '석수3동'이었는데, 2024년 1월1일부터 '충훈동'으로 행정동 이름의 변경이 있었다. 동네 이곳저곳에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충훈동과 박달동 사이를 흐르는 안양천. 어렸을 적의 놀이터 중의 하나였었다. 수영에 대한 공포심이 깊게 박히게 된 곳이기도 하고. 그래서 아직도 수영을 못한다.ㅠ.

 

그냥 육지생물로만 살아가고 있는......

 

 

구글 포토 앱을 통해 사진을 백업시켰더니 자동으로 파노라마 사진을 합성하여 만들어준다.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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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자락길'이라는 곳을 다녀왔다. 인왕산까지는 가보았었는데... 바로 서쪽에 위치한 작은 산이더라. 해발고도 296m의 아담한 봉우리였다. 그래도 정상에 봉수대가 위치한 곳이었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 하차하여 5번 출구 앞에서 출발하였다. 길건너 편의점에서 생수를 구입하여 주머니에 넣고 출발하였다. 독립문역 바로 옆에 위치한 '서대문 독립공원'을 지났다. '서대문 형무소역사관'을 지나 '안산자락길' 표지판을 보고 탐방길에 올랐다. 한성과학고등학교 뒷편을 지나 안산을 한바퀴 돌았다.

 

등고선이 보이는 지도를 보면 '안산자락길'이 부담없이 걷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발고도가 낮은 작은 산의 '자락'을 따라 걷는 길이다. 고도 변화가 거의 없어 나이 든 다리를 움직이기에 좋다. 일정한 고도를 유지하기 위해 곳곳이 데크로 연결되어 있다.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의 EXIF 정보에 촬영 위치를 저장하기 위해 GPS data logger를 사용했던 것이 어언... 언제지..? 하여간 오래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따로 그러한 장치를 사용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이 다 해결해준다. '램블러' 같은 앱(유사한 기능을 제공하는 앱들은 아주아주 많다.)을 이용해도 되고, 구글의 '타임라인'을 이용해도 되고, '삼성 헬스'를 이용해도 된다. '삼성 헬스'에서 '걷기' 등을 터치하고 "시작"시켜주면 걷기나 달리기하며 이동한 경로의 지도가 만들어진다. 그 지도 경로를 GPX와 같은 파일로 저장할 수 있다. 이 파일을 컴퓨터로 옮겨 이런 저런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위의 지도들을 만들었다.

 

 

오후 1시 반에 독립문역 5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에 맞추어 좀 넉넉하게 출발했다. 경전철을 만든다고 공사중인 도로 위를 달려오는 1142번 버스. 버스, 지하철 4호선, 지하철 3호선으로 환승하면서 달려갔다.

 

독립문역 출구 부근에 게시되어 있는 지도. '안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천연동, 무악동, 홍제동, 연희동, 신촌동, 충현동 등의 지명이 보인다. 이들 동네로 둘러싸인 산인 것이다. 안산자락길과 연결되는 수많은 샛길들이 조성되어 있다.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보며 출구를 나선다. 약속 시간보다 11분 일찍 도착했는데... 부지런한 친구 하나는 진작에 도착해 있더라.

 

독립문역 5번 출구 주변.

 

길 건너편에서 바라보려 한 안산. 안산의 높이는 신호등의 높이와 같다.^^ 지나는 버스 윗쪽에 살짝 보이는 한성과학고등학교 건물.

 

鞍山 "자락길"로 접어드는 아저씨들. 이리저리 갈라지는 샛길들 중에 이 표지판을 찾아가면서 안산을 한바퀴 돈다.

대한민국상훈법11조에 따라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대한민국의 건국훈장을 수여한다. 1990년에 상훈법이 개정되면서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의 5등급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락길을 걸으면 더 좋다. 진짜다.

 

 

안산의 정상부. 봉수대가 있다 하던데 전망대도 마련되어 있다. 정상을 즐기는 사람들이 살짝 보인다.

 

바로 앞쪽으로 보이는 인왕산. 하늘은 너무도 푸르르다. 너무나 좋은 날씨. 멀리 있는 북한산도 가까이 보인다.

 

잘 조성되어 있는 데크 길. 가을인데 단풍은 많이 아쉽다.

 

중간 중간에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눈앞에 보이는 인왕산.  복원된 한양도성이 하얀 선으로 보인다. 기차바위, 치마바위, 범바위, 해골바위, 선바위 등이 있다는데....

 

인왕산 옆구리를 휘어도는 데크길도 뚜렷하게 보인다.

 

남산 위의 서울타워. 저 멀리 위치한 롯데월드타워도 잘 보인다. 2023년 11월 8일은 하늘이 이렇게나 맑은 날이었다.

 

안산 정상의 봉수대를 오르는 길은 다음 기회에 이용하기로 하였다.

 

홍제동의 많은 아파트 단지들 위로 보이는 북한산의 거대한 자태.

 

보이는 각 봉우리의 이름들은 이와 같다.

 

따로 사진을 하나 만들어보았다. 수염이 허옇게 매달려 있구나...

 

바로 뒤의 돌멩이 위에 올라서 보라 했더니 발길을 옮기지 못하는... 40년 전에는 잘도 튀어다니더니.......

 

커피지기에게 커피 한 잔을 부탁한다. 봉다리 커피도 판매하고 있는데 그것을 '달달커피'라는 이름으로 부르더라.

 

한쪽으로 황토를 깔아놓은 맨발 걷기길을 따로 조성해놓았다. 상당히 많은 분들이 '맨발'로 황토가 아닌 길도 걸어다니더라. 혹시나......

 

세쿼이아 나무가 병풍을 이루는 쉼터.

 

스마트폰에는 동네 기온이 14도라고 하는데, 이곳 쉼터의 기온은 9도라고 나오더라. 그늘진 숲속이라 온도가 더 낮은 것이리라. 습도는 46%.

 

세쿼이아 나무들 앞의 넓은 쉼터가 '숲속무대'였던 모양이다.

 

잘도 걷는 아저씨들.

 

안산의 남서쪽 방면. 저쪽 멀리 계양산까지 보인다...

 

오후의 서쪽 하늘은 빛의 산란 때문에 눈이 부시다.

 

안산 정상부의 모습.

 

어느새 서대문 독립공원까지 하산하였다.

 

영천시장 구경을 해본다. 맛집이라 알려진 순대국집을 찾아왔는데, 수요일은 쉬는 날이라고 문에 적혀 있다. 오늘이 수요일이구나......^^

독립문역에서부터 약 8km를 걸었다. 중간에 26분을 쉬었고 2시간 48분 걸렸다.

 

 

그래서 근처의 다른 유명한 맛집을 검색하여 찾아갔다.

 

다음에는 다른 맛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공굴리기 선수들.

 

 

근사한 안산자락길을 찾아 잘 걷고 잘 먹고 잘 놀고 집에 잘 찾아가는 중이다. 5호선 서대문역, 7호선 군자역에서 환승하고 하계역에서 버스로 환승했다. 대중교통수단을 많이 이용한 하루였다.

 

 

오늘도 목성만이 홀로 나의 귀갓길을 챙겨주고 있구나...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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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동기를 몇이 한달에 한번 정도 만나서 "걷기"를 하자고 결의하였다. 이제 세번째 모임이었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앞에서 오후 2시에 만나기로 하였다. 거의 정시에 도착하였는데 다른 친구들은 이미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더라.

 

지하철역 출구 부근의 버스정류장에서 "성북01"번 버스를 탑승하고 종점까지 이동하였다. 커다란 한신한진 아파트 단지 내부를 관통하며 운행하는 버스더라. 정류장 이름이 아파트 동번호였다. 종점인 '동구고등학교 후문'에서 하차하였다.

 

삼선교·성북문화원 버스정류장. 성북01 버스를 탑승하였다.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는 동구고등학교 후문. 성북01 버스의 종점이 위치한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싱싱한 할배들.

 

계단을 오르면 성북공원이다.

 

남산이 '코앞에' 보이더라.^^

 

성북근린공원의 전망대에서......

 

서울에서 본 서울의 모습... 도심이 바라보이지만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 속의 청량감을 즐길 수 있는 숲속의 산책로가 북악 스카이웨이, 북악하늘길 되시겠다.

 

하늘한마당에 설치된 모금통. 도토리 몇개씩 줏어가지말고 통에 두고 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북악하늘길 안내도. '현위치'는 하늘한마당. 북악하늘길의 시작점이다. 3호선 보문역,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1162번 버스를 이용해 '구민회관입구'에 하차하면 하늘한마당에 바로 이를 수 있다.

 

하늘한마당까지는 계단을 올라왔는데, 이곳부터는 거의 고도 변화없이 산책로가 이어진다. 북악산로 스카이웨이 옆으로 안전하게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가드레일을 넘어가지 않으면 된다.

 

Alan Timblick 씨의 건의로 2003년에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를 조성하였다고 조성 제안자 기념 표석에 써있다.

 

팔각정 방향으로 부지런히 걷고 있는 싱싱한 할배들... 온전히 숲속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산림욕장이다.

 

저쪽이 정릉 방면이라 하더라. 날이 좋아 시정거리에 제한이 없어 보인다.

 

간간이 만나는 전망대에서 주변 경치를 즐기며 쉬어간다. 평일이라 그런지 마주치는 산책객들도 적다.

 

우리 동네 불암산이 눈앞에 보인더라. 우리집은 건물에 가려서 안보인다. 가리지 않아도 안보일 것...이지만...^^

 

화장실을 만났는데, CCTV 안내와 함께 "비상벨"도 보인다. 

 

재밌는 모양의 커다란 솔방울도 보였다. 스피커인 것 같은데...

 

'숲속마루'까지 왔다. 

 

다양한 운동기구들이 있었지만... 신체 단련을 하는 몇 분이 보이더라. 그냥 지나쳐서 계속 걸어간다.

 

싱싱한 할배들이 부지런히 가기에 따라가기 버겁다.^^

 

하늘마루가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창의문으로 바로 가는 안, 일명 '김신조 루트"로 가는 안을 놓고 비교하다가 출제자가 멀리 가는 안을 선호하는 것 같아 그리 하기로 했다. 창의문 방향으로...

 

공사중인 구간, "산책로 ⇒" 방향으로 살짝 우회하여 지나가면 된다.

 

멋진 표지석. 1974년에 세운 것이더라. '대통령 말씀'이 새겨져 있다.

 

보현봉 아래로 멋진 저택들이 가득한 멋진 동네, 평창동.

 

멋지구나 북악팔각정!!!  초면이었다. "셀프라면"을 판매한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팔각정을 뒤로 하고 창의문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였다.

 

"한양도성 백악구간 청운대" 표지판이 보인다. 무료 주차장이란다. 맞은편에 보이는 계단을 올라가면 한양도성의 백악구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백악구간으로 가장 빠르게 접근하려면 이곳의 주차장을 이용하면 되나보다....?

 

북악산길 산책로에서 "현위치"에 도착하였다. 창의문이 코앞이다.

 

수고한 다리를 잠시 쉬어준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니 그늘은 서늘하다.

 

스카이웨이를 지나는 차량은 가끔 보이더라.

 

"2번 출입문"이다. 철책선 안쪽인 것을 보니 잠갔다가 열었다가 하는 것 같다. 도로를 따라 가는 길보다 단축된 지름길이라 할 수 있겠다.

 

새로 만든 데크길 옆으로 먼 과거의 계단 흔적이 남아 있다.

 

다 왔다. 창의문앞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경복궁 방면으로 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내려가는 길이고 30분이면 되는데 무슨 버스를 타냐고 혼났다.ㅎㅎ

 

걸어서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로 접어들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식당은 이미 대기열이 장난아니더라. 오후 5시 경인데 28팀이 대기중인...

 

대기 중인 팀이 하나도 없는 식당을 찾아 맛있는 보쌈을 저녁으로  모셨다.

 

식사 후에 잠시 공굴리기를 하고 놀았다. 중간은 되더라.

 

운동 잘 하고, 잘 먹고, 잘 놀고, 잘 헤어져서, 지하철 잘 타고, 환승도 잘 하고, 집에 잘 왔다.

 

집에 들어오는데 동녁 하늘에서 목성이 빛나며 잘 왔다고 반겨주더라.

 

오늘의 걷기 운동 구간이다.

 

9.6km 구간을 약 3시간 정도 걸었다. 쉬는 시간 빼면 2시간 35분 동안 운동하였다고 스맛폰이 알려주더가.

 

걷기 운동 초보에게는 좀 빡씬 코스이기는 했지만 다시 얼른 또 가보고 싶어지는 길이었다. 이런 길을 모르고 있었다니....!!

2만보를 조금 더 넘게 걸었다 하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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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저수지'라고 들어보았다. 같이 살아주시는 옆지기께서 나와 함께 갔었던 곳이라고 몇번을 이야기 하더라. 나는 기억에 없다!

꾸준히 걸어야 하나 지난 여름이후 걷기를 거부하고 있는 옆지기를 걷게 할 핑계로 삼았다. 저수지 주변 산책과 점심 식사의 콜라보.

 

오남저수지는 덕릉터널, 별내터널, 진접터널이 뚫리면서 어렵지 않게 접근 가능한 곳이 된 곳이다. 네이게이션을 통해 검색해보니 30분 대에 주파 가능한 근거리에 위치하는 곳이었다. 역시 나는 가본 곳이 아니었다. 

 

드론 원스탑 서비스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니 안전하게 비행하면 되는 지역이라 드론도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신난다~

 

저수지 뚝방 안쪽의 근사한 곳에 자리잡은 식당이다. 찾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주차장도 두 곳에 마련되어 있다.

 

전망이 아주 그냥 좋다. 조용한 평일 오전의 모습.

 

식당 주차장에 차를 맡기고 한바퀴 돌고 오기로 한다.

 

오남저수지 주위로 산책로가 아주 예쁘게 조성되어 있다. 거리는 3.1km 정도이니 천천히 걸으면 5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중간에 드론도 좀 날려주고 했더니 1시간 10분 가까이 걸렸다. 경로 기록은 '램블러' 앱을 이용했다. 이후 PC를 이용해 웹 사이트에서 경로 확인을 하면 된다.

 

뚝방 안쪽에서는 분수가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바람이 없어 저수지 수면이 잔잔하니 반영사진이 멋지게 만들어진다.

 

데크길이 깔끔하다.

 

보도 조성이 가능한 곳에서는 땅을 밟으며 간다.

 

저수지 상류 쪽 경관.

 

인도교를 통해 반대편으로 건너갈 수 있다. 

 

중간 중간 이동 거리를 확인해볼 수 있는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고가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오남리 사람들은 좋겠다. 이렇게 잘 조성된 깔끔한 산책길을 매일 즐길 수 있다니...

 

저수지 안쪽으로 공포의 스카이워크도 설치되어 있다. 지리는 공간이다.

 

그곳을 '달의 정원'이라 하더라.

 

달을 깔고 앉아 쉬다 갈 수도 있다.

 

달의 정원에서 드론을 띄웠다.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날아오르게 할 수 있다. 드론 조종에 필요한 '무인동력비행장치 4종' 교육수료증도 받은 경력자이다.^^

그런데 날아가던 드론의 카메라 각도를 조절하면서 사진을 만들어볼까 했는데 레버를 몇번이나 이리저리 움직여도 카메라 각도 조절이 안되는 것이었다. 아뿔싸!!! 경력자는 무슨, 개뿔!!!  드론의 카메라 짐벌 보호를 위한 캡을 떼지 않고 드론만 날린 것이었다.ㅠ.ㅠ

 

날아갔던 드론을 불러와 착륙시키고 캡을 제거하고 다시 날렸다. 얼레! 그래도 카메라 각도 조절이 안된다. 아무래도 목디스크에 걸린 모양이다.

 

드론이 움직이면서 각도가 변할 때를 노려 사진 몇장을 살릴 수 있었다. (새 드론을 사달라고 조를 수 있는 찬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속으로는 웃음이...)

 

오늘의 점심 식사 장소로 점찍은 장소를 찍어보았다. 장사가 잘될 수 밖에 없는 입지이다.

 

건물은 허름하다.

 

식당 내부. 근사하다.

 

연세가 꽤 되어 보이는 메뉴판. 솔잎밥상에 도토리묵을 추가했다. 이제는 '취할거리'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건물 내부 뿐만 아니라 바깥 쪽에서 여러 좌석이 준비되어 있다.

 

식탁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모든 메뉴가 다 나온 다음에 사진을 찍고 식사를 시작하는 것이 '인증계의 법도'이나 인간계의 범인은 참지 못하고 젓가락을 들었다. 

 

식사 후에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집으로 가면...

 

빵을 또 먹을 수있다. 우와~ 식당에서 식사했다는 영수증을 보여주면 10% 할인해준다. 우와~~~

 

경치를 즐기며 커피 한 잔...

 

꽃길을 걸으면 다리 아프다. 당연하다.

 

힘을 내면 똥을 싼다.

 

왜? 그냥~

 

멋진 곳에서 맛있는 식사를 했다. 적당한 산책은 덤이었고...

자주 찾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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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고궁이 여럿 있다. 그 중에서 중심이 되는 것이 경복궁일 것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 궁궐이라 하여 창경궁과 창덕궁을 묶어 '동궐'이라 불렀다고 한다. 

동궐의 전체적인 모습을 주변부를 포함하여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 본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이 남아 있다. 동궐도이다. 두 궁궐과 주변의 산세까지 세세하게 묘사한 대단한 작품이다.

동궐도가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1820년대 후반에 비해 현재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의 모습을 살펴보고 싶어 찾아보았다. 동궐도는 고려대학교와 동아대학교에 각각 소장본이 존재하는데 모두 국보 제 249호로 등재되어 있다. 

보다 고화질로 구할 수 있는 동아대학교 소장본 파일의 누런 바탕색을 조금 제거해보았다.

 

그리고 창덕궁 후원 부분을 크롭하고 건물들의 이름을 넣어보았다.

부용지와 주합루 일대, 옥류천 일원은 비슷하지만 다른 곳은 많이 달려졌다.

위의 지도와 아래의 지도를 보면 변화된 부분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창덕궁관리소'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창덕궁" 가이드북에 게재된 창덕궁의 건물 배치도이다.

  쉽게 관람할 수 있는 '전각' 부분과 쉽지 않았으나 점점 쉬워지고 있는 '후원' 부분으로 나뉜다. 후원 관람을 위해서는 전각 관람 요금까지 지불해야 한다. 그냥 후원 관람 예약을 받으면서 관람료를 전각을 포함해도 될텐데 따로 관리되고 있다. 불편하게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면서 두번 결재를 해야 한다. 전각관람료 3,000원, 후원관람료 5,000원.
  창덕궁(후원 포함),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및 종묘 관람권까지 포함된 통합관람권이 10,000이다. 고궁 관람을 모두 하고 싶은 사람은 이 통합관람권이 나을 것이다. 3개월 동안 사용 가능하나 한번씩만 입장 가능하다.

 

 

2023년 9월 20일 12시 창덕궁 후원 관람을 예약하였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 관람이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예약을 취소하지 않았다.

빗속의 고궁 산책... 생각만해도 운치가 넘치지 않는가.ㅎㅎㅎ

 

지난 번 관람 때는 후원관람 예약시간에 맞추어 도착하여 전각을 돌아보질 못했다.

똑같이 12시 입장권을 예매했지만 이번에는 일찍 가서 전각도 관람하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하지만 늦잠을 자는 바람에 늦게 출발하여 30분 정도 밖에 시간을 갖질 못했다.

할 수 없이 다음 기회를 또 가져야 한다.^^

 

 

 

창덕궁의 입구인 돈화문이다. 멋지다. 궁궐의 대문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역대 왕들의 업무 및 생활공간으로 가장 오래 이용된 궁궐이었기 때문일까?

1412년(태종 12)에 건립되었다. 당시 창덕궁 앞에 종묘가 위치하여 궁의 진입로를 남서쪽으로 치우치게 하였다고 한다.

궁궐의 대문이다. 그래서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가 있을 때만 출입문으로 기능을 했고, 신하들은 서쪽에 위치한 작은 금호문을 통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광해군이 즉위한 이듬해인 1609년에 재건한 것이다.

 

돈화문으로 들어와 동쪽으로 방향을 틀면 진선문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 작은 돌다리가 있다. 금천교이다.

 

궁궐을 조성할 때는 궐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명당수를 건너게 하였다는데, 이 물길이 궁궐의 안과 밖을 구별해주는 경계 역할을 하였기에 금천이라고 하였다. 금천은 창덕궁 북쪽에서 흘러들어와 돈화문 동쪽을 지나 궐 밖으로 빠진다. 금천교는 궁궐에 남아 있는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보물이다.

 

창덕궁의 가장 중요한 장소인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진선문이다.

'신문고'라고 하는 것을 이 진선문 앞에 설치했었다고 한다?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겪은 일반 백성이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문을 지나 이곳까지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을까. 웃기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문고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일반 백성은 얼마나 되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이러한 제도는 그냥 백성들을 어여삐 여긴다는 왕도정치 시대 통치자들의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 뿐? 그래서 백성들은 하소연 할 곳이 없어 왕의 행차가 있다고 하면 그 앞으로 뛰어들었던 것일 것이다.

 

왼쪽으로 인정문이 보인다.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이다. 경복궁과 비교하면 많이 아담하고 소박한 편이다.

인정전은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진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루던 곳이다. 중층 지붕을 갖고 있어 2층 건물인 듯 보이지만 내부는 그냥 통층 건물이다. 1405년(태종 5)에 창덕궁 창건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소실과 재건이 반복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803년(순조 3)에 복원된 것이다.

 

행사가 있을 때면 신하들은 '조정'의 품계석 위치에 자신의 계급에 맞게 도열하였을 것이다.

 

매우 불편해보이는 의자. 그 위로 일월오봉도가 선명하다.

 

임금의 집무실로 쓰인 선정전으로 연결되는 숙장문이다.

숙장문 양쪽의 담 길이는 먼저 들어온 진선문 쪽에 비해 한참 좁다. 인정문 앞쪽 공간이 사각형이 아니라 사다리꼴이다. 앞에 있는 산 때문에 지형을 고려하여 이렇게 만든 것이다.

 

선정전의 입구인 선정문.

 

행사용으로 사용된 인정전에 비해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인 선정전의 규모는 아주 소박하다. 소실된 이후 1647년(인조 25)에 인왕산 기슭에 있던 인경궁을 헐어 그 재목으로 재건한 것이다.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건물이 작고 주변이 비좁다. 그래서 나중에 공간이 좀 더 넓은 희정당으로 편전 기능이 옮겨가게 된다.

 

선정전 내부 모습. 이곳에서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 보고, 경연 등의 각종 회의가 매일 열렸다.

 

빗속의 단체 관람객, 자유 관람객 그리고 소나무 숲.

 

성정각 일원이다. 세자의 일상이 숨쉬던 동궁이었다.

임금은 태양이고, 왕비는 달이기에 일월오봉도에 그렇게 등장한다. 세자는? 이제 떠오르는 태양이다. 그래서 궐 안에 동쪽에 거처를 마련하고 東宮이라 불렀다.

 

후원 매표소이다. 창경궁 입장권을 구매하여 입장할 수도 있다. 인터넷으로 예매한 경우 이곳에서 입장권과 교환하여야 한다.

 

입장권은 이렇게 생겼다. 2명 요금이 10,000원.

 

입장권을 검표하고 이곳에서 대기하다가 가이드 투어를 시작한다.

 

시작했다. 원래 인터넷 예매 50명, 현장 구매 50명으로 구성된다. 비 때문인지 많이 조촐하다. 그리고 가이드 투어를 원치 않으면 자유롭게 개별적으로 이동을 하면서 창덕궁 후원을 즐길 수 있다. 다음에는 자유 관람이닷!!! 그렇게 할꺼닷!!!

 

녹색으로 짙게 물든 예쁜 언덕을 넘어가면서 보이는 영화당. 부용지 바로 앞에 위치한다.

 

비내리는 부용지 일대. 이곳에서부터 창덕궁의 진짜 후원이라 할 수 있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정자를 배치하였다. 약간의 인위적인 손질을 더해 자연을 더 아름답게 완성해낸 절묘한 솜씨와 미적 감각이 돋보인다.

 

부용지와 부용정. 참 예쁘다. 부용정은 부용지에 피어난 한송이 꽃처럼 보인다. 보물이다.

 

후원의 첫번째 중심 정원인 이곳은 휴식과 학문, 교육을 하던 상당히 공개된 장소였다. 2층짜리 누각인 주합루의 1층은 도서관인 규장각이었고, 그 옆의 서향각은 각종 도서를 보관하고 관리하던 곳이었다. 2층은 책을 보며 학문을 논하던 공간인 열람실이었다.

부용지에서 주합루로 오르려면 어수문을 지나야 한다. 어수문 옆으로 생나무 울타리인 '취병'을 재현하여 놓았다.

 

영화당은 동쪽으로 춘당대 마당을, 서쪽으로 부용지를 마주하며 앞뒤에 툇마루를 둔 특이한 건물이다. 왕이 친견하는 군사훈련,  과거 시험, 임금이 주관하는 잔치와 같은 각종 행사가 이곳 영화당과 춘당대에서 치루어졌다고 한다. 

 

애련지 쪽으로 들어가는 불로문이다. 

 

冂자 모양으로 다듬은 통짜 돌로 만든 문이다. 不老門이라...

 

불로문을 들어서면 애련지와 애련정이 비맞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주 애련하다~

 

애련지 남쪽에 위치한 두 건물. 1827년(순조 27) 효명세자가 만든 소박한 건물이다. 서재로 즐겨 이용하였었다 한다. 지금은 '기옥헌'이란 현판을 달고 있다. 바로 옆의 한칸 반 짜리 건물은 궐 안에서 가장 작은 건물이다. '운경거'로 추정된다.

 

연경당은 사대부의 살림집을 본뜬 조선 후기의 접견실이었다. 1828년(순조 28)에 효명세자가 의례를 행하기 위해 창건했는데, 지금의 연경당은 고종이 1865년쯤에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동궐도와 완전히 달라졌다.

고종 이후 연경당은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잔치를 베푸는 등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서재인 선향재는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하였고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선향재 뒷쪽 높은 곳에 위치한 농수정. 마치 매가 날개를 편 것같이 날렵한 모습이라고 표현된다.

 

작은 고개를 넘어가면 폄우사가 나타난다. 멀리 존덕정이 보인다.

 

1644년(인조 22)에 세워진 존덕정. 지붕이 2층으로 되어 있는 독특한 정자이다.

 

존덕정 안쪽에는 정조대왕의 글이 새겨진 나무판이 게시되어 있다.

 

확대해보았다. 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고 시작하고 있다. 왕권의 지엄함을 밝히는 표현이란다.

 

존덕정 아래에 관람지와 관람정이 비를 맞고 있다.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에 이어 옥류천 계곡 일대가 후원의 주요 관람 명소이다. 그런데......

올해 연말까지 출입금지라고 한다. 일부 정자에 문제가 발생하여 보수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90분이었던 관람시간이 70분으로 줄었던 것이었다. 나머지는 자유 관람을 하라고 풀어준다.^^

자유롭게 퇴장한다. 동행자의 배고프다는 하소연이 내 배도 비었음을 깨닫게 한다.

효명세자의 공간이었다고 하는 의두합을 다시 만난다. 금마문을 통해 바로 들어갈 수 있다.

 

한복을 입으면 고궁 관람 무료. 참 좋다고 생각한다. 고궁과 잘 어울리고 너무 예쁘다.

 

그렇게 창덕궁의 일부만 살짝 구경하였다. 빗속의 아름다운 고궁 산책이었다.

 

램블러한테 물어보니 이렇게 걸어다녔다고 나온다. 3.3km를 두시간에 걸쳐 즐긴 경험이었다.

 

그리고는... 쌈밥집에서 반찬을 리필시켜가며 과식했다. 그리고는... 저녁과 야식을 모두 생략해야 했다....ㅠ.ㅠ

이제서야 사진 속에서 찾았다. '처음처럼'. 제길... 그냥 물병이었다. 아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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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백수들이 만나 한양도성길의 일부 구간을 걸어보자고 합의가 되었었다.

하체가 부실하여 오래 멀리 걷는 것을 피하고 있는데, 다른 백수들은 걷는 것을 매우 좋아하더라.

장충동에서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장충체육관 부근에서부터 남산 봉수대를 올랐다가 숭례문까지의 구간을 걷기로 했었다.

그래서 한양도성길 중 일부 구간 지도를 단톡방에서 미리 공유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약속의 날, 2023년 9월 13일에 서울 전역에서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나오더라. 망설이다가 강수량이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그냥 예정대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부실한 조그만 우산들을 들고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걷는 것이 곤란하여 남산공원길을 따라 걷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가을단풍길, 남산북측순환로 등의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길이다. 산책로의 이명 그대로 가을에 단풍들면 아주 멋진 풍광을 보일 분위기가 넘치더라.

 

오후 1시에 장충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사공원역에서 빗속을 천천히 즐기며 걸었다.

 

'먹자골목'으로 지정된 곳들이 참으로 많다.

 

정확한 약속 시간에 도착하였다.

 

어젯저녁에도 족발을 먹었는데, 오늘 점심도 족발이었다.^^ 좋은 족발이다.

 

식사 후에는 공굴리기 놀이를 좀 하였다.

 

오후 3시. 장충단 공원. 수표교를 오랜 만에 만나고 남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청계천에 있던 수표교를 임시로 이전한 상태에서 계속 자리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의 문제로 인해 원상복구는 곤란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이준 열사 동상이 장충단 공원에 모셔져 있다.

 

장충단공원에서 길을 건너 장충리틀야구장 옆의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한적한 남산공원길을 만나 서쪽 방향으로 빗속의 산책을 즐긴다.

 

중간 중간에 벤치들이 놓여 있으나 앉아 쉬는 것을 사양한다. 비 때문이다. 젖었다.

 

시내 구경도 하면서 여유를 즐긴다. 빗속에...

 

빗속의 공원길도 멋지지만 나중에 단풍 들면... 오메~

 

오늘의 산책 분위기에 어울리는 시일까... 조지훈 시비에 '파초우'가 새겨져 있더라.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파초우.

외로이 흘러간 한 송이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성긴 빗방울
파초 잎에 후두기는 저녁 어스름

창 열고 푸른 산
마주 앉아라.

들어도 싫지 않은 물소리기에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

온 아침 나의 꿈을 스쳐간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다방이 있더라. 아메리카노의 따스함으로 한기를 녹여보았다.

 

남산에서 서울을 바라보고 계신 호랑이 어르신.

 

드디어 한양도성을 만났다.

 

도성을 따라 '수크렁'을 잔뜩 심어 놓았다. 왜 하필 이걸...

 

남산공원에 왔었더라~~~ 아, 남산공원이 뒤집혔다.

 

한양도성 복원 구간.

 

고가도로를 공원으로 만들었다. 가본 적은 없다.

 

그래서 가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더라. 있으니 이용한다.

 

좀 묘한 공원이다. "서울로 7017"

 

고가를 통행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양쪽으로 펜스가 설치되어 있다.

구 서울역사를 구경하고 사진을 촬영하라는 배려인 것 같다. 구멍이 뚫린 부분이 있다.

그 배려를 받아들여 옛날 서울역과 새 서울역 청사 사진을 남겼다. 비가 내린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고가 공원 '서울로 7017'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이색적인 공원이다.

 

숭례문에 왔다.

 

우산을 던지고 숭례문과 함께 셀피~~ 비 쯤이야...

 

5.7km 정도를 걸었다. 2시간 18분 걸렸다. 천천히 비를 즐기며 걸으니 전혀 힘들지 않더라.

 

숭례문 부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퇴직 동기와 랑데뷰하여 맛있는 중국요리를 즐겼다.

먹으며 수다 떨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어 헤어졌다. 네 방향으로......

 

회현역으로 걸어가 4호선을 탈 것이냐, 시청역으로 걸어가 1호선을 탈 것이냐

고민을 좀 하다가 1호선을 이용해 귀가하였다.

2023년 9월 13일 하루가 그렇게 빗속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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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대학의 동남권캠퍼스에서 수강신청했던

"역사경관과 현대식 빌딩이 공존하는 도시 서울(현대편)"의 현장 답사 마지막 날이다.

조금 일찍 출발하여 동대문역에서 청계광장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을지로입구역에서 합류하여 일정을 함께 했다.

 

 

답사 진행을 위한 집합 장소였던 을지로입구역 4번 출구 앞. 다람쥐공원이라 되어 있다.

 

오후 4시가 되자 바로 답사를 시작한다.

길건너편의 남대문로9길 입구에 보이는 '음식문화거리'라는 표지판이 있는 위치 즈음에 소광통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계천의 지류 하천들의 분포를 보여주는 지도를 찾아보았다.

 

확대해보자. 지도에서 동그라미 친 창동천 구간이 오늘날의 '남대문로10길' 되시겠다.

 

18세기에 제작된 도성대지도를 구할 수 있었다. 창동천과 청계천 일대가 세세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소광통교에서 청계천 합류 지점(곡교)까지가 남대문로 10길이다. 소광통교에서 서쪽 구간은 남대문로 9길에 해당한다.

 

 


 

100년 전에 건설된 지하배수로가 공사 중 발견되어 서울시 문화재(제38, 39호)로 지정된 바 있다.

남대문로 지하배수로 구간은 회현동천 유로와 일치하며, 소광통교 구간은 창동천의 유로와 일치한다. 

이들 지류 하천들을 복개하고 지하화하면서 만들어진 배수로인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상업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청계천의 다른 지천에 비해 비교적 빠른 시기에 암거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흔적이 일부 구간에서나마 발견된 것이었다.

(https://news.seoul.go.kr/culture/archives/52788)

 


집결지에서 출발하여 '남대문로10길'을 따라 청계천한빛광장 방면으로 이동하였다. 

다른 도로들을 모두 남북 방향의 격자 모양을 이루는데 이 길만 빗금 방향으로 되어 있다.

청계천으로 흘러들던 지류 하천이 흐르던 곳이기 때문이다.

(을지로입구역 부근에서 GPS 로그 궤적의 오류가 심하다. 이리저리 막 튀었네. 하나은행 지하의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공간을 좀 오래 이용한 결과이다. GPS는 하늘만 보고 있어야 하니까...)

 

광통교가 있었던 곳에는 '광교'가 위치하고 있다.

복개했던 청계천의 복원 공사를 하면서 자그마한 광교로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어 위치를 서쪽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광교가 건설된 것이다.

 

광교 북단에 위치한 신한은행 건물 앞에 자그만하게 광통교의 모형이 전시되고 있다.

광교의 길이가 상당히 짧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계천 복원 공사를 하면서 더 넓게, 더 깊게 파낸 것이 현재의 모습이겠다.

돌다리인 광통교의 석재로 정릉의 신장석을 가져다 사용했다는 것이 독특하다.

 

현재의 광교 주변 안내도.

 

청계천 징검다리를 건너는 답사대원들.

 

'개천' 둑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둑의 양쪽에 석축을 쌓았다는 안내문.

'개천'이라 하였다. 토사가 하천 바닥에 쌓여 물이 넘치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하천 바닥을 준설하는 준천 작업 또한 반복되었다. 그래서 하천을 열어준다는 '開川'이란 이름으로 불린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후에야 '청계천'이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상류의 '淸風溪'에서 청계천이란 이름이 만들어졌다고...

 

다음 자료를 보면, 지금의 세운상가 있는 부근까지 석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노혜정, 1994, 서울시 중소하천의 경관변천에 관한 연구, 지리학논총, 제24호, 88)

 

수선전도를 탐구하는 답사대원들.

 

삼일빌딩 맞은편에 위치한 워터 스크린.

이 위치가 을지로입구역 부근을 지나 온 회현동천과 합류한 창동천이 청계천에 합류되는 지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창동천이 청계천에 합류하는 지점의 곡교 모습을 보여주는 1950년대 사진이 남아 있다.(서울역사박물관 보도자료, 2020년 7월 3일, 10쪽)

 

삼일교 아래에는 한화불꽃이 이글거린다.

 

청계천 복원 공사후 개통 첫 날,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삼일교의 중앙분리대에 조형물 설치 및 투광 목적으로 구멍이 주욱 뚫려 있었는데, 출입이 금지된 도로 한가운데의 조형물을 가까이 보려 다가왔다가 온 김에 아래의 구멍을 좀 깊숙이 쳐다보시다가 그만... 사망 사고였다. 그래서 지금은 조형물은 제거되고 구멍들을 모두 막혀있다.

 

가짜 수표교. 원본은 장충단공원에 계시는데 여러차례 원래 위치로의 이전이 시도되었었으나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이제는 논의가 중단된 상태이다.

현재 수표교의 위치도 원래 위치에서 어긋나 있다. 청계천 남북의 수표로를 잇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동쪽으로 30여 미터 차이가 난다. 원본께서 돌아오실 날을 기다리는 것일까???

 

서울의 중심 도로인 종로이다. 길 건너편으로 '송해길'이 이어진다.

 

조선시대 시장을 관리하던 관청인 '경시서'가 있던 터 표지석.

이 일대에 시전, 육의전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육의전PC방, 육의전 귀금속방 등이 성업 중이다.

 

퇴직하면서 나의 노후생활의 터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혼자 답사도 왔던 곳이다. 탑골공원, 입구인 삼일문.

 

탑골공원 속의 나......

 

탑골공원의 핵심 뽀인트인 팔각정.

 

주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분들. 저기낄려면 장기 정도는 배워두어야 하는가...

 

낙원악기상가 건물 옆을 지났다. 외관을 보면 보수 공사가 시급해보인다.

 

소머리국밥집 골목. 음~~~~ 햐~~~~~

여기서 답사에서 빠졌었으면............ 발걸음이 안떨어졌었는데...

 

그 분께서 즐겨 찾으셨었다는......

요기까지는 노인들의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드디어 익선동이다. 여기부터는 젊은이들의 공간이다.

 

골목이 좁고 혼동된다 하여 지도를 하나 인쇄해 들고 왔다.ㅎㅎㅎ

 

익선동 답사...

 

"한옥거리"라고 하지만 '한옥'은 보이질 않는다. 그냥 좁은 골목길이다.

 

그래서 높은 곳을 찾아 올라왔다. 종묘가 보인다.

 

창덕궁, 보현산까지 아주 잘 보이는 곳을 찾아 올라왔다.

 

높은 곳에서 익선동 한옥거리 쪽을 조망하였다. 기와지붕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러니 골목이 좁을 수 밖에 없다.

옛지명인 '익랑골'과 한성부 중부 '정선방'의 명칭을 합쳐서 만들어진 지명이 익선동이다.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서울의 주거공간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이 지역도 탐을 내기 시작했을 때 민족자본가인 정세권이 그들의 의도를 막아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주택개발업체인 '건양사'를 설립해 서울 곳곳에 한옥 주택을 지어 분양하였으며, 분양대금을 월단위로 나누어 내도록 하여 입주자들의 정착을 도왔다.

 

익선동 일대에서 정세권이 소유했던 지역과 한옥의 규모별 분포도를 보자. 다양한 규모의 다양한 형태의 가옥들로 구성되어 있다. 수도와 전기를 설치하고 좁지만 마당까지 마련하여 한옥의 실용성을 최대한 살려냈다.

(이두현, 2023, "전통을 활용한 골목재생, 익선동" 월간 국토, 통권 496호, 61쪽.)

 

최대한 가옥들을 배치하기 위해 골목은 좁을 수 밖에 없었고, 오늘날까지 거의 그대로 유지되면서 독특한 경관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위치는 서울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에 해방 이후 종로 화류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도 이용되었다. '삼청각', '대원각'과 함께 3대 요정의 하나였던 '오진암'이 이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 오진암, 명월 등 요정이 성업을 하게 되면서 필요하고 도우이 되는 서비스업이 따라 들어왔다고 한다. 악기상가나 한복상가 등이 성업하게 된 배경 중 하나라고 하더라. 한복집들은 거의 사라지고 소수만 남아 있다.

 

 

"100년 전의 해어화를 쫓다…오진암과 명월의 추억이 있는 종로"

( 100년 전의 해어화를 쫓다…오진암과 명월의 추억이 있는 종로 (mk.co.kr) )

 

오진암의 옛모습은 연합뉴스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매화나무가 그렇게 근사했었다고 한다.

(연합뉴스 2010년 9월 16, https://www.yna.co.kr/view/AKR20100915228200004)

 

오진암이 있었던 곳에는 이비스앰배서더 호텔이 자리잡고 있다.

 

화류 문화의 핵심이었기에 영업 중지이후 해체될 때 오진암의 보전 논의가 활발했었다. 그 결과 오진암이 있던 곳에는 이비스 호텔이 들어서고, 해체된 오진암은 부암동으로 이사갔다.

부암동에 안평대군이 지었었다던 무계정사는 소실되었지만, 2014년에 그 자리를 복원하면서 무계원을 조성하였다. 무계원의 한옥 건물이 오진암을 옮겨온 것이다. 부암동을 가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정세권 아저씨가 만든 공간이 익선동 한옥거리, 한옥골목을 과거의 요정을 생각해보면 떠난다.

 

오늘의 답사도 9시 넘어서 완료되었나 보다.... 

'종로3가역'이 보이길래 1호선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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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대학의 동남권캠퍼스에서 수강신청한 강좌인

"역사경관과 현대식 빌딩이 공존하는 도시 서울(현대편)"의 현장 답사 마지막 날이다.

조금 일찍 출발하여 답사 시작 전에 청계천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을지로입구역에서 합류하여 일정을 함께 했다.

 

4호선 지하철을 이용해 동대문역으로 달려가 오간수교에서부터 청계천을 따라 상류를 향해 걸었다.

 

1주일 만에 다시 만난 동대문, 흥인지문이다. 잘 계시더라.^^

 

8번 출구 옆에 설치된 '전차 차고지' 표지석으로 다시 한번 찾아보았다.

구한말에 설치되었던 전차의 차고지와 발전소가 있었던 곳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청계천 변에 위치한 신평화시장.

 

평화시장. 서점들이 많더라. 헌책방들도 있는 것 같더라.

한때 헌책방 찾아다니는 것이 취미였었는데.. 다음에는 이곳이 목표일 것 같다.

 

전차 차고지 자리를 차지한 JW메리어트 호텔과 동대문종합시장.

 

오간수교에서 바라본 청계천. 늘 북쪽의 통로만 이용했었는데, 오늘은 남쪽의 통로를 걸어본다.

 

오간수교가 오간수교인 것은 옛날 이곳에 오간수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양도성 한폭을 흘러 동쪽으로 빠져나가는 청계천의 출구였었다.

 

청계천은 주변 평지에 비해 하천의 깊이가 매우 얕았다고 한다. 그래서 매년 장마철마다 물이 넘쳐 주기적으로 하천 바닥을 준설하는 공사를 하곤 했다.

영조 때인 1760년에 아주 큰 공사를 벌였고 그 과정을 기록한 '수문상친림관역도'가 오간수교 아래 옮겨져 있다.

 

그린 그린하다. 마치 숲속에 들어온 듯한... 좋구나.

 

청둥오리 한쌍이 노닐고 있고...

 

쥐똥나무도 보인다.

 

찔레꽃이 피어 있는데...

 

참새들이 요란하다.

 

작품 활동 중인 외국인 작가도 보인다.

 

잉어들의 덩치가 아주 실허다. 잘들 살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가짜 수표교엔 '수표'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역시 가짜다.

 

워터 스크린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정조대왕 능행반차도는 엄청나다. 화성으로 가는 길에 이곳을 들르신 것은 아니었지만 그림은 이곳에 있다.

 

광교 틈새에는......

 

모전교 아래로 청계 케스케이드가 살짝 보인다. 다왔다.

 

동대문역 부근의 오간수교에서 이곳까지 사진 만들면서 천천히 걸어오니 45분 정도 걸리더라.

 

청계광장에서는 행사 준비가...

 

답사를 위한 집합 장소인 을지로입구역 4번 출구앞에 도착했다. 답사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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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11일 오후 한양도성 답사에 참여하였다. 서울시민대학의 이현군 박사 주관 강좌의 답사코스 중 하나였다. 이동을 차단하는 기능을 하는 도성과 이동의 수단이 되는 도로, 전차, 지하철 등 교통로의 결합이 주제였다. 

 

서울 한양도성 관광안내지도에서 보면 E~D 구간에 해당하는 지역을 답사하였다. 광희문에서 시작하여 성곽이 사라진 구간을 찾아가며 흥인지문까지 이동하면서 복원된 이간수문, 오간수문이 있던 곳, 구한말에 건설되었던 전차 차고지 등을 살펴보았다.

 

1902년 한양 지도. 한양의 모습과 도성의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위의 한양도에서 광희문, 흥인지문 주변 부분을 확대해보았다.

광희문에서 흥인지문 사이에 청계천의 물길이 도성 밖으로 빠지는 통로였던 이간수문과 오간수문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훈련도감에 속한 관청의 하나인 '하도감' 도 성곽 가까이에 표시되어 있다. 부근에 '훈련원' 표시가 보이는데, 조선 건국 초부터 있었던 군사훈련장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국립중앙의료원 앞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훈련원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은 도성 내에서 청계천의 하류에 해당하여 "아랫대(下村)"라 불렸으며, 청계천의 상류에 해당하는 인왕산 동쪽 일대는 "웃대(上村)"라고 불렸다고 한다.

 

광희동사거리에 위치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4번 출구 앞에서 집결하여 답사를 진행하였다.

 

복원된 광희문. 문의 이름을 알려주는 현판은 도성의 바깥 쪽에만 달려 있다. 남산 방향으로 약간의 성벽이 남아 있다.

 

광희문의 홍예 부분 천장에는 용 두마리가 노닐고 있다.

 

1396년 한양도성을 창건할 때 세워진 4소문 중 하나인 광희문은 도성 안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도성 밖으로 내보내는 문으로도 사용되어 시구문으로도 불렸다. 한국전쟁 기간 중에 파손되었다가 1976년에 복원되었는데, 자동차 도로가 넓어지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성벽의 돌들 중에는 사연을 새긴 각자성석이 보이곤 한다. 멀리 있어서 무슨 내용인지 읽어볼 수는 없었다. 멀어서 안보이는거다.ㅠ.ㅠ

 

각자성석의 내용은 축성 책임 관리와 석수의 이름이라고 한다. 위 사진의 것과는 다른 돌인갑다.

 

도로 건너편에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도성이 분수계를 따라 축성되었으며, 도로 가운데 위치했던 광희문을 남쪽으로 이동시켜 복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 광희문의 통행가능한 폭은 승용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지금의 도로폭과 비교하면 도저히 원래 위치에 그대로 둘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교통이 발달하면서 도성의 성문은 수난을 겪게 된다.

 

전차의 궤도가 건설되고 노선이 확대되면서 도성은 파괴의 아픔을 겪었다. 서울 전차 궤도가 건설되면서 훼손되고 있는 숭례문과 도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옛날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93402에서 인용)

 

광희문에서 도로 건너편에 도성의 흔적이 약간이나마 남아 있다.

 

광희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의 흔적에 대한 안내판이 바로 앞에 세워져 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니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다. 그곳의 거대한 건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유려한 곡선미를 마음껏 표현하고 있는 건물로 이라크 출신의 건축가인 Zaha Hadid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벽들과 바닥, 천정들이 섞이고 확장되어 마치 물이 흐르는 듯한 유기적인 구조로 표현함으로써 파격적이면서도 부드럽게 부유하는 역동적인 공간 미학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파격적으로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하는 건물이다.^^

 

DDP 옆으로 성곽 구간을 일부 복원해놓았다.

 

DDP를 포함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동대문 운동장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이다. 

 

1968년 동대문운동장 보수공사 시 설치되었던 야간 조명 시설 일부는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고 있다.

 

봉화대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화가 최초로 사용된 것은 1955년 개최된 제36회 전국체육대회로 성화대에 불을 옮기는 최종 주자는 고 손기정이었고, 성화의 전국 일주는 1969년 제50회 전국체육대회가 최초였다고 한다.

 

공원 내 한쪽 구석에 이간수문이 복원되어 있다.

 

돌의 일부에는 구멍이 파여 있다. 

 

그 구멍은 나무로 벽을 덧대는 용도였다. 성곽의 일부 구간이 이간수문이었고, 물이 흘러 빠져나가면서도 방어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일부 돌들에는 거울, 십자표식 등이 껌딱지로 붙어 있다. 성벽의 뒤틀림 같은 변형을 주기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지표가 아닌가 생각된다.

 

발굴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2008년 9월초, 이간수문의 홍예 상단이 처음으로 노출된 모습.

2008년 11월 초, 호예 내부의 퇴적물 위에 놓여 있는 박석의 모습.

2008년 12월 초의 발굴 완료 상태. 퇴적물을 모두 제거하고 난 이후 드러난 이간수문의 축성 상태.

 

이간수문을 살펴보고 나오는 배나온 답사대원.....

 

 

청계천 지류 구간이 복개되었기 때문에 이간수문의 복원을 이렇게 해놓을 수 밖에 없었다.

 

패션 쇼핑몰을 지나간다. 외국인들이 참 많다. 도로와 골목에 오토바이가 참 많다.

 

청계천을 만나 오간수교 아래로 내려간다. 공사기간에 쫓겼을까... 오간수문을 저렇게 만들어놓았다.

 

오간수문이 있던 곳인 오간수교.

 

오간수교 아래 오간수문의 사진과 그림이 남아 있다. 그림은 오간수문 부근에서 청계천의 쌓인 토사를 준설해내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여러 차례의 준설 공사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이 영조 때의 것이었다. 여러 마리의 소까지 동원되어 준설 공사를 하는 것을 임금께서 친히 납시어 오간수교 위에서 감독하고 있는 그림이다.

 

1760년에 영조의 명으로 청계천 준천을 마치고 그 과정을 4첩의 채색기록화로 남겼다. 김희성의  '준천시사열무도(濬川試射閱武圖)'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 준천 작업을 묘사한 것은 수문상친림관역도(水門上親臨觀役圖)이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중이다.

 

그리고 영조께서는 수고했다는 어필을 남기시었다.

준설해낸 토사의 양이 많아 청계천 부근에 假山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이후 그곳에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이 모여살며 환경이 악화되자 꽃나무를 심어 그 향기가 널리 퍼져 芳山이란 이름이 붙었고, 이후 이곳에 들어선 시장은 방산시장이 되었다.

 

청계천의 유로는 평소에는 수돗물로 유지되지만.............

 

비가 오면 부근의 수많은 복개 하천들로부터 물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한 수문들 중 하나. 자동으로 열린다. 사전에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하니 제발 말 좀 바로 듣길 바라요~

 

드디어 커다란 흥인지문을 만난다. 광희문은 4소문 중 하나, 흥인지문은 4대문 중 하나...건너편의 녹색 언덕은 흥인지문공원, 공위의 윗쪽으로 낙산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보인다.

 

동대문역 8번 출구 부근에 '전차 차고 터' 표석이 있다. 구한말에 운행이 시작되어 1968년 철거된 전차의 차고지가 있었던 곳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와 구한말 전차 운영회사인 한성전기회사의 기계창도 있었다. 전차 운영이 필요한 차고지, 기계창, 발전 시설이 모두 모여 있었던 것이다.

 

동대문 부근의 차고지와 발전소, 그리고 동대문의 모습을 보여주는 옛날 사진이다.

그리고 동대문 앞을 지나는 전차. 1960년대의 모습이다.

(위 두 사진 모두 서울역사박물관 전시, 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93402에서 인용)

 

다른 사진을 보자. 화력발전소가 열심히 전기를 만들어 준 덕택에 동대문의 홍예 사이로 전차가 달리고 있다. 동대문을 전차가 통과했던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전차의 크기가 커지면서 동대문을 우회하여 지나게 된다.

(https://pzkpfw3485.tistory.com/2242620에서 인용)

 

길건너의 동대문역 7번 출구 앞에는 '경성궤도회사 터' 표석이 있다. 1930년부터 1961년까지 똑섬, 광나루까지 다니던 궤도전차가 출발하던 곳이었다.

 

경복궁의 월대 복원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전차 궤도가 발견되면서 서울의 전차에 대한 관심이 커진 바 있다. 다른 곳의 노선은 모두 철거하였는데, 이 구간은 그냥 매립하고 도로 포장을 하였기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흥인지문이 있는 구간은 성곽이 모두 사라지고 대문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보물 제1호인 흥인지문. 1398년에 세운 한양 도성의 동쪽 문이며, 현재의 문은 1869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바깥쪽으로 방어를 견고히 하기 위해 반달 모양의 옹성을 둘렀는데, 이는 서울의 성문 중에서 유일하다.

 

흥인지문공원의 성곽구간을 답사하였다.

 

옹성을 갖춘 흥인지문의 모습이 뚜렷하게 잘 보인다. 멀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방향으로 성곽이 이어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흥인지문 앞의 도로 건너편에 멋진 신식 건물이 보인다. 전차 차고지가 없어지면서 그 부지는 동대문 고속버스터미널로 이용되었다. 고속버스터미널이 폐쇄된 이후 주차장으로 이용되다가 들어선 JW 메리어트 호이다. 그 뒤로 동대문 종합시까지 전차 차고지와 발전소 부지였던 곳이었다.

 

...

 

오늘의 답사코스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4호선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4번 출구에서 시작하여 광희문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이간수문 - 오간수교 - 흥인지문 - 흥인지문성곽공원으로 이동하였다. 2.7km, 1시간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그리고 흥인지문에 밤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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