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9 노호취, 패달, 다의수 세 곳의 대표적인 다락논 관광지 중에서 노호취 제전엘 먼저 방문하였다. 노호취제전경구의 일몰을 즐기고 밤길을 달려 운제호텔에서 식사와 잠자리 문제를 해결했다.
원양제전경구 매표소 앞에 있는 조형물.
노호취 정경. 좁은 길의 양쪽으로 수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오고 가는 차들의 교행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 우리 일행은 중간에 하차하여 걸어서 입구로 향했다.
일단 다른 말이 필요없다. 멋지다!!
햇님이 퇴근하려는 즈음이다.
건너편 경지에서는 무엇을 태우는 것일까?
도로가의 입구에서 계곡 아랫쪽으로 내려가면 전망대에 이른다. 자리잡고 나의 "미니4프로" 드론을 준비시킨다. 주변으로 수많은 드론들이 이미 하늘을 점령하고 dog fight를 진행하고 있었다. 날다가 RTB 하여 배터리를 교환하고 다시 출동한다. 드론들 전체의 '소티'가 엄청날 것 같았다.
논의 경계를 손보는 농부의 모습. 비닐로 덮인 곳은 모내기를 준비하며 키우는 모판이 아닐까 싶다.
사면을 향한 시점에서는 다락논의 존재가 잘 구별되질 않는다.
살짝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점.
확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
해발고도가 1800m를 오르내린다. 고도가 높으니 주의하라는 경고 메시지가 드론 조종기에 뜰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벼농사가 가능한 것은 여름철의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사면을 따라 조성된 전망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노호취 제전경구의 절경에 취해있다. 상시 출동 상태인 드론들이 10대가 넘는 것으로 보였다.
이것도 셀피로 쳐줄까? 하여간 화면 속에 내가 있기는 하다.
햇님이 구름 속에 숨어서 퇴근하려 한다.
서쪽 산능성이를 넘어가신다. 노호취 제전경구의 모습이었다.
세계문화유산, 홍하 하니 제전 문화경관, 노호취 편구..... 맞나?
해가 지고나 어둡고 좁은 길에 차들이 엉켜있는 혼돈 속에서 버스에 탑승하였다. 한동안 움직이지도 못하더니 조금씩 이동한다. 어렵게 어렵게 한참을 가더니 차를 돌리는 것이었다.ㅠ.ㅠ
막혀서 겨우 뚫고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유턴할 공간이 없어 그냥 달려왔다니...
21:20 운제호텔에 도착하였다. 먼저 식사를 하는 사이에 가이드가 여권을 모두 가져가 체크인을 하고 방키를 전달해 주었다. 내일은 또 일출경을 만나서 일찍 나가야 한다. 그래도 새벽에 나갔다가 호텔로 되돌아오기에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기꺼웠다.
2024년 2월 24일.
5시 반에 일어나 6시 15분에 로비로 향했다.
06:30 예약된 작은 승합차 두대에 나눠 타고 다의수 제전경구로 향해 이동하였다.
어제 저녁의 노호취에서 처럼 길이 막힐 것을 대비하여 이런 작은 차를 현지 가이드가 준비하였다. 쉐쉐~
햇님의 출근 전. 어둡다.
전망대 바로 뒷편에 위치한 호텔. 여기 사람들은 그냥 창문만 열면 된다. 좋겠다!!!!!!!
조금씩 밝아지기는 하는데 골짜기에 채워진 구름이 사라지질 않는다. 오히려 곡풍을 타고 조금씩 위로 이동하고 있다.ㅠ.ㅠ
구름이 좀 비켜주고 햇님이 나오시기 만을 전망대에 매달려 애타게 기다리는 수많은 객들.
드론을 아래로 내려보내 보았다.
다락논 중 한 필지.
여러 필지.
마을을 향해 밀려오는 구름.
마을이 위에 있고 경지는 사면 아래에 위치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현지 주민들 '하니족'은 채비를 단단히 하고 하루 종일 경지에서 일을 하고 저녁 때 다시 위로 올라온다고 한다. 하니족은 중국의 다른 민족에 비해 키가 매우 작은 편에 속한다.
다락논 위를 덮고 있는 구름 위로 일출이 시작되려는 낌새를 보이고 있다.
햇님이 나오자 드론이 마중 나가고 있다.
마을을 덮고 있는 구름 위로 햇님이 나온다.
일출과 함께 만들어지는 멋진 경관을 잡아두기 위해 전망대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진작가들.
갤럭시 폴더라는 스맛폰은 흰머리 할배 사진을 이렇게 큼지막하게 만들어준다. 좋다.^^
구름 아래의 다락논에도 빛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하늘에는 수많은 드론들이 서로 좋은 장면을 잡으려 경쟁하고 있다.
우린 밥 먹으러 간다.
09:35 호텔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챙겨 다음 여정을 위해 출발하였다.
09:50 패달경구에 도착하였다.
구름으로 채워진 경치 좋구나~~^^
그래도 드론을 날렸다. 패달경구의 제2전망대는 절벽 위에 위치한다. 전망이 아주 좋을 곳이다.
구름과 어울어진 다락논의 모습. 고산 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근사하다.
구름 속의 산책?
다락논의 일부에서는 물고기를 키우기도 한다고 한다.
일하러 출근하고 있는 물소들. 여유있게 소걸음으로 이동하고 있다.
10:35 출발하였다. 원양 시내에서 식사를 하고 곤명을 향하였다.
15:00 동풍운이라는 위락단지에서 쉬어간다.
16:30 곤명으로 버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17:00 달리는 중 차에서 뭔가 커다란 소음이 발생했다. 소음기가 떨어졌단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기사가 수리를 하고는 다시 달린다.
18:50 곤명의 식당에 도착하여 샤브샤브라고 하는 맛있는 식사를 하였다.
21:00 중황호텔에 도착하여 이번 여정의 마지막 밤을 맞이하였다.
22:48 떠나는 우리와의 이별이 아쉬운지 곤명 시내 곳곳, 호텔 바로 앞에서 폭죽으로 환송 행사를 진행하였다. 빡!
2024년 2월 23일 나사전 위로 내리는 일출의 아름다움에 빠지는데 실패하고는 인근에 위치한 구룡폭포군으로 향했다.
08:42 구룡폭포군 입구에 도착하였다. 지도를 보자.
입장권을 제시하시오!
구룡폭포는 구룡강을 따라 나타나는 10단의 폭포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신룡폭포의 높이와 규모가 가장 크다.
10단의 폭포들을 보기 위해서 하류에서부터 상류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폭포'라는 표지석. 어느 폭포가 그러하다는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아담한 유람선을 타고 세월을 즐길 수도 있다.
누구 키가 가장 클까?
찍고 찍힌다.
신룡폭포. 120M 폭에 높이는 70M 정도이다. 비가 많이 오는 한여름에는 폭포수가 폭포수(!) 처럼 쏟아진다. 비가 적은 건기에는 수량이 적다. 10단의 구룡폭포군 중에서 3단의 폭포가 모여 있다.
사진 찍고 가는 뽀인트.
소수민족의 의상을 빌려 입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을 남기고 사진으로 남은 사람?
이정표에 한글이 표시된 것까지는 참 반갑다. 하지만 엉뚱한 표기는 반갑지 않다.
"돌용 로밍"이란 한글을 보고 무엇을 말하는 지 알 수 있을까? '석룡만유'의 한자어를 영어로 옮긴 것이 Stone Dragon Roaming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을 그대로 한글로 옮기며 stone dragon을 '돌용"으로, roaming은 그냥 '로밍'으로... 이게 뭐냐!!!
신룡폭포 윗쪽의 물이 천천히 흐르는 구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돌용 로밍'과 연인폭포.
이 잔잔한 물이 끝부분에서 아래로 쏟아지며 신룡폭포를 이룬다.
익숙한 한국어가 들리니 반가웠나 보다. 아저씨 둘이 말을 걸어왔다. 곤명에서 한달살기를 하고 있단다.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데도 그런 결정을 친구와 함께 내리고 실행한 아저씨들이 부러웠다. 패키지 여행객은 일정과 시간에 쫓기며 움직여야 하는데, 이 아저씨들은 그런 부담없이 즐길 수 있으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시간에 잡혀가는 패키지 여행객은 슬펐다.
신룡폭포는 말없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쏟아지고 있다.
작은 유람선을 타고 신룡폭포의 폭포수 맛을 볼 수 있더라.
여~가 구룡폭포군인 것이구마...
구룡폭포, 아니 신룡폭포의 모습을 추억 속으로 담으며 돌아선다.
흡연의 나라 중국.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려 하나 보다. 하지만 너무 너무 너무나 조금씩이다. "흡연실"이 아니라 개방된 "흡연정"이라니................ '중소학생'은 흡연금지고, '미성년인'은 입장금지.
10:45 구룡폭포 인근의 가까운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모셨다.
식당에 보이길래 몇 개 구입하여 기념품으로 나눠드렸다.
11:45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원양을 향해 출발하였다. 오후 5시 20분에 원양제전경구 매표소에 도착하였으니 6시간 가까이 소요된 먼 길이었다. 그래도 새롭게 잘 정비된 고속도로를 이용하였기에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유채꽃이 바다를 이룬 나평을 방문하였다. 관광지로 조성된 금계봉 일대에서 '유채화해'를 맘껏 즐기고 숙소를 찾았다.
17:34 나평 금계봉 유채밭에 도착했다.
나평현 전역에 유채밭이 흩어져 있다.
그중의 제일이 '금계봉총경구'이다. 이렇게 넓은 지역이 노란 유채꽃으로 물들었을 때 찾아오면 가장 좋다. 쉽지 않지만...
전동카를 타고 아래 지도의 왼쪽 윗부분에 보이는 '노첨산'까지 이동하였다. 노첨산의 전망대가 가장 높게 위치하여 이곳을 올라 주변을 조망하며 유채꽃밭을 즐기는 것이 제대로라 하겠다. 하지만 우리 현지 가이드는 높은 봉우리라 오르고 내리는데 오래 걸려 매표소 부근의 낮은 봉우리 전망대로 이끌려 했던 것 같다.
그 작전을 간파하고는 노첨산 전망대를 기어코 두 분이 오르시기로 하고 나머지는 전동카 출발점으로 돌아와 하차하여 지도의 아랫쪽에 보이는 '작두산' 전망대를 올라 석양이 내리는 금계봉 유채꽃밭에 흠뻑 빠져들었다. 드론도 날려 보았다.
작고 예쁜 기차를 타고 꽃밭 사이를 달려볼 수도 있다. 우리 팀은 그냥 바라만 보았다. 다음엔 얘를 타보아야지~~
경치가 좋은 곳에 세워주기도 하고, 세워달라 하면 세워주기도 한다. 유채꽃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유채화해'이다.
꽃밭 사이에서...
꽃과 함께...
꽃을 사진에 담는다.
중간 중간 살짝 높은 전망대들이 배치되어 있다.
온통 꽃만 보인다.
'노첨산' 전망대. 계단, 계단, 계단.
올라가자, 다른 봉우리를 가자 라는 두가지 안으로 혼란이 있었다. 결국 각자 갈 길 갔다.^^
노첨산 아래에서 전동카는 회차하여 출발지점으로 돌아온다. 눈동자도 노란색으로 물들 것만 같다.
노첨산에 비해 작두산은 한참 고도가 낮아 보인다.
작두산 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금계본총경구의 유채꽃밭.
나평현의 유채화해 위로 석양이 살짝 드리운다. 드론 카메라의 화각이 스맛폰 카메라의 화각보다 좁아 보인다.
꽃밭 위로 날아보자~~
작두산 전망대에서...
일몰의 석양이 해넘이를 한다.
작두산을 내려오는 탐방객.
오후 7시 15분에 유채꽃밭을 출발하여 7시 40분에 식당에 도착하여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였다.
20:30 식사를 마치고 나평의 숙소인 운지몽호텔 도착.
구글 포토 앱에서 자동으로 합성하여 만들어준 나평 유채꽃밭의 파노라마 사진... 신기하다. 시키지 않아도 자동으로 만들어주다니... 중간 부분이 많이 어색하긴 하다.^^
22:47 대보름도 아닌데 여기 저기에서 폭죽의 소음이 들린다.
[에피소드 하나] 이제 하루 지났는데, 벌써 일정이 빠듯하게 느껴지는 분이 있었던 것일까? 논의 결과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 되었다. 별일 아니었다.^^
2024년 2월 23일. 5시49분에 웨이크업 콜이 왔다. 일어났다. 정리하고 6시32분에 버스 탑승, 나사전의 일출경을 위해 아침을 거르고 버스는 출발했다.
인공위성 영상으로 나사전 지역을 보면 물결 무늬처럼 동글동글한 문양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경작지로 이용되는 돌리네(doline) 지형이다. 즉 돌리네 지형으로 가득 채워진 재미있는 공간인 것이다. 지표의 석회암이 빗물에 의해 조금씩 서서히 제거되면서 빗물의 영향을 많이 받은 부위는 구덩이 모양을 이루게 된다. 석회암 분포 지역의 지표에 구덩이 모양을 갖는 지형을 돌리네라고 하는 것이다. 산경사지는 아니기에 농경지로 이용할 수 있고, 이 지역에서는 유채를 재배하기 위해 돌리네의 내부를 계단식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나사 모양으로 보인다고 하여 螺絲田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매년 이맘 때면 나사전에 유채를 재배하여 유채꽃밭 위로 내려오는 일출의 햇볕이 독특한 장관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07:15 나사전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해뜰 무렵이다. 햇님~~~
드론의 날려보내 보았다. 너무 어둡다고 삑삑 거리면서 도망나온다.ㅎ
사진작가님은 삼가대를 거치하고 기다리는...
일출 예정 시간이 한참 지났으나 햇님의 뒷꼭지도 보이질 않아 철수하기로 한다.
다음에 보자꾸나 나사전의 유채꽃......
아쉬움이 계속 남아 있는 안개 속의 유채밭...
이만한 규모의 유채밭이 또 있을까? 청해성 문원에서도 7월에 비슷한 '유채화해'를 볼 수 있기는 하다.
오후의 유채꽃밭이 아니라 오전에 햇살이 좌악 내려올 때 방문하는 것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나평이었다. 다음에 다시 가자.....
길가의 유채꽃밭 옆에서 꿀벌을 키우는.... 사진 촬영이 늦었다... 다음에 찍지 머....
2024년 2월 21일 곤명국제공항으로 입국하여 석림에서 짐을 풀었다. 그리고 다음날 흥의시에 위치한 만봉림과 마령하협곡을 방문하고는 나평의 유채꽃 세상에 취하고는 숙소를 찾았다.
萬峰林은 貴州성 싱이(興義)시에 위치한다. 이번 여정의 모든 지역이 운남성에 포함되는데 만봉림과 마령하협곡이 위치한 흥의시는 귀주성이라 경찰이 삼엄하게 경비하는 고속도로의 경비구역을 지나야했다.
유채꽃밭의 세상인 나평은 운남성에 속한다. 고속도로로 지나면서 살짝 맛만 보았다.
귀주성 흥의시 일대는 기반암이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지표에 석회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카르스트 지형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계림, 베트남의 하롱베이 일대에서 흔하게 보이는 탑 카르스트 지형에 해당하는 것이 흥의시 일대에 깔려 '만봉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아래의 인공위성 영상에서 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봉우리들이 만개쯤(?) 된다는 것을 대강 확인할 수 있다.^^
이 일대는 좀 오래전에, 그러니까 대충 3억 6400만 년 전에는 바다였었다고 한다. 그 시절 쌓였던 해성층에서 석회암이 만들어졌고 여러 차례의 조산운동을 겪으며 융기, 육지화되었고 풍화작용을 받아 다양한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져 현재에 이른 것이다.
11:00 만봉림 입구에서 상징조형물을 만났다.
산길의 전망대들을 순회하는 길이기에 걸어서 이동하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부분 전동카를 이용한다.
현지 가이드는 중국어를 잘 한다. 그래서 기사가 상당히 친절하게 안내하였다고 전하더라.
현지 가이드로 수고해주었던 아저씨는 길림성에서 나고 자라 곤명의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이쪽 지역에 정착했단다.
구글어스에 GPS 이동경로를 그려보았다. 분지 동쪽 산지를 따라 건설된 도로의 여러 뽀인트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쉬었다 가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분지 아래로 내려가 나휘강변을 따라 만들어진 도로를 이동한다. 유채꽃밭 사이의 길을 따라 '上나휘' 마을과 '下나휘' 마을 사이를 걸어볼 수도 있다.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동쪽 산줄기의 전망대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산봉우리들이 200여 개가 된다고 한다. 그 봉우리들 아래로 보이는 작은 마을과 유채밭, 그 사이로 흐르는 나휘강의 모습이 그림과 같다.^^
구글 포토 앱이 자동으로 만들어준 만봉림의 파노라마 사진. 신기한 일이로다.^^
길가에 만들어놓은 전망대들 중 하나. 금수전원(锦绣田园)이라... 소설의 멋진 제목을 붙여놓았다.
만봉림풍경구의 대표 조망 뽀인트이다.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다.
주변보다 고도가 낮은 구덩이다. 규모가 커서 계단식으로 밭을 만들었다. 이 모습이 마치 고대 중국에서 사용하던 나침반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팔괘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八卦田, Bagua doline. 바구아 돌리네는 나휘헤 폴리에에 위치하며 직경은 10m 정도이다. 중심의 싱크홀은 우기에 많은 물이 모여 지하로 빠져나가 주강으로 흘러든다. 지역 주민들이 돌리네 주위로 계단식으로 경지를 만들어 다양한 작물을 재배한다.
만봉림을 다녀온 사람들.
나휘 마을이 위치한 분지의 동쪽 끄트머리의 여러 산봉우리를 묶어 大順峰이라 한다. 급경사의 피라미드 모양을 이루며 돌로마이트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돌로마이트는 석회암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탄산염암이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분지 가운데를 흐르는 나휘강은 유로가 사라졌다가 지하로 흘러 마령하협곡을 지나는 珠江과 합류되는 것으로 보인다.
봉우리 전망대에 올라가 있는 옆지기.
패키지 여행을 하면서 부지런히 이동을 하기에 드론을 올리는 '딴짓'을 하기가 어려웠다. 잠깐 짬을 내어 전망대 윗쪽으로 드론을 올렸는데... 바람이 너무 쎄서 무서워 얼른 내렸다. 잠깐이었다 생각했는데 다들 전동카에 탑승하여 나를 기다리고 있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주강 변의 도로에서 본 나휘 마을과 유채꽃. 그리고 멀리 보이는 대순봉.
전동카를 멈추고 내려서 주변을 즐겨본다.
2월에서 6월까지 유채를 재배한다고 한다. 관광 수입을 위해 이 시기에는 정부에서 유채만을 재배하도록 독려하고 있어 이런 장관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농민들에게 보조금이 지급된다고 현지 가이드가 전하더라...
8명, 조촐한 여행팀이다.
13:10 흥의시내의 한식당에 도착했다. 길림에서 온 푸근한 인상의 조선족 아저씨가 경영하고 있다.
삼겹살이 주 메뉴였는데, 고기보다 계란찜과 김치가 더 맛있었다.
만봉림이 위치한 나휘 마을에서는 푸른색 껍질을 가진 계란으로 만든 볶음밥이 유명하다 한다. 아예 거리 식당가 모두에서 공통으로 계란볶음밥을 판매한단다. 다음에 방문하면 계란볶음밥을 먹어보고 싶다.
초봄에 다녀올 만한 곳을 찾다가 중국 운남성의 유채꽃밭과 계단식 논(다락논, 梯田)에 눈이 갔다. 만족도가 높았던 혜초여행사에서 여러번 출발하는 상품이 있어 잘 되었다 싶어 연초에 바로 예약을 했었다. 혹시나 싶어 자주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모객현황을 체크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부정적이었다. 예약한 날짜에 기본 출발인원이 채워지지 않고 있었다.ㅠ.ㅠ
1월말에 전화가 왔다. 인원이 부족하여 다른 날짜로 손님을 모으려 한다면서 출발날짜를 바꿔줄 수 있으냐 해서... 그러라 했다. 그런데 며칠 후 확인해보니 해당 날짜의 모객 숫자가 확 줄어 있었다. 그렇게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취소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상품을 찾다가 경희대학교 관광학박사님이 운영하는 여행사의 일정이 보다 짧은 상품을 발견하고 고민하다가 예약했다. 예약금 달라하길래 입금하고 기다렸다. 여행계약서에 서명하여 보내고 잔금을 입금했다. 여행자 보험 약관 자료도 받았다. 그리고...
2024년 2월 21일 10시 반에 출발했다... 인천공항으로 갔다. 늘 이용하는 6100번 공항리무진 버스를 타고 갔다.
늘 그러했듯이 집합 시간보다 이른 도착하여 식당가에서 간단하게 점심(칼제비)을 때웠다.
13시에 공항 E 카운터 부근에서 여행사 직원을 만나 안내를 받아(18명으로 알고 있었던 일행 숫자가 그냥 8명이라는 것에 놀랐다! 이것이 어찌된 일?) 티켓팅을 마치고 짐도 보내고 출국수속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경험자로부터의 경험을 전수받았다.
"스마트패스 SMART PASS"라는 앱을 설치하고 여권정보와 안면정보를 입력하여 ID를 만들었다가 발권받은 항공권의 QR코드까지 스캔하면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는 줄과는 다른 상당히 짧고 빠르게 입장할 수 있는 코스로 진입할 수 있다. 얼굴촬영을 마치면 바로 보안검색대로 들어갈 수 있다. 유용하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모든 절차를 마치고는 바로 출국장 게이트 122번으로 이동하였다.
13:15 MU2004편의 보딩이 시작되길래 바로 탑승하였다. 자리 배치가 중구난방이었다. 버티고 앉아 있다가 옆지기의 옆자리에 함께 앉아 가는데 성공했다. 국제선으로는 작은 비행기인 B737기의 32A, B를 점거했다. 오랜만에 착석한 '윈도우 사이드' 좌석이었다.
15:45 출발했어야 하는데, 비행기가 천천히 움직이더니 멈추더니 돌더니 멈추더니 가더니 말더니 쉬더니 그냥 있더니..
16:48 떴다. 눈물 대신 빗물을 남기며 떠나가안~~다~!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을 보며 날아갔다. 훠~얼훨~
그렇게 날아서 운남의 곤명으로 3,114km를 갔다. 굼벵이 비행기였다. 평균속도 시속 524km였다고 GPS 정보가 기록되었다.
현지시간 19:55 도착예정이었으나 20:35에 도착했다. 40분 연착. 이 정도야 뭐...
입국신고서 작성에 대해 옆지기와 걱정을 했었는데, 중국의 입국 절차가 바뀐 모양이다. 입국신고서를 작성하지 않고 그냥 세관으로 향했다. 단체 비자 리스트의 순서대로 사람도 줄을 선다. 1번 입국자가 비자 리스트를 2부 제출했다가 마지막 입국자가 도장찍힌 리스트 1부를 받아야 하는 시스템이다. 세관원이 비자 리스트를 내놓으라고 하더라. 해프닝이었다. 세관원이 도장을 찍어 말번인 내게 주어야 하는데, 착각을 하고는 1번에게 주어버린 것이었다.
22:00 공항 부근에 위치한 식당 如家睿柏云昆明长水国际机场店에 도착해 맛있게 식사를 했다. 1번 대장님이 백주 한잔을 쏴서 맛있게 먹고 있는데, 음주를 즐기지 않는 어떤 분이 어서 숙소를 가자 서둘렀다. 그리했다.
24:00 곤명 시내가 아니라 석림에 위치한 호텔 홍삼호온천도가주점에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내일의 일정 진행에 유리한 위치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작년 중국을 방문하여 WIFI에 매달리다가 포기한 적이 있었다. 자주 접속하던 사이트가 모두 먹통이었다. 중국 당국의 정책에 의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사전에 데이터로밍을 신청했다. 알뜰폰 사업자의 eSIM을 통하니까 상당하게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옆에서 인터넷을 즐기고 계신 옆지기님...
22일. 6시 알람, 7시 식사, 7시 40분에 석림을 출발했다.
식사 식권, 석림 시내 모습...
유채꽃이 만발한 나평을 지나 흥의까지 달렸다.
10:56 흥의 만봉림에 도착했다.
흥의시 주변에는 비슷한 크기를 가진 수많은 작은 봉우리들이 깔려 있다. 중국 남부 지방에는 넓게 석회암이 분포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다양한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하고 있다. 계림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겠다.
관람을 위한 이동 거리가 꽤 된다. 그래서 전동카를 탑승하여 이동하면서 전망대 마다 정차며 경관을 감상하였다.
꽃이 거의 지나간 유채밭의 모습이다. 한가운데 움푹 들어간 부분은 전형적인 석회암 풍화 지형인 돌리네 DOLINE이다. 현지에서는 '八卦田'이라 부른다. 복판에는 우기때 물이 고이지도 않고 빠져나가는 싱크홀이라는 구멍이 뚫려있다. '만봉림'이라 불리는 작은 봉우리들도 모두 기반암이 석회암이다. 카르스트 지형의 성지인 것이다.^^
13:10 흥의 시내에 한식당이 있다. 점심으로 삼겹살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옆지기는 잘먹더니만 나중에 배탈이 났다.ㅠ.ㅠ
14:18 오후에 마령하대협곡에 도착했다. 깊은 골짜기와 여러 폭포가 볼만하다. 가장 규모가 큰 '황룡폭포'의 모습.
17:34 나평의 유채꽃밭 관광단지인 '금계봉총경구'에 도착하여 유채꽃이 펼쳐진 세상을 감상하였다.
유채밭의 규모가 커서 전동카를 타고 이동하면서 유채꽃 세상의 향기에 취하였다.
20:30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도착하였다. 나평의 운지몽 호텔. 멀리서 폭죽 놀이를 하더라.
식당에서 일행 중 일부가 다음 날의 일출경 일정 진행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나머지 일행들의 의사에 따라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던 에피소드가 있던 날이었다.
23일. 5시 49분에 웨이크업 콜이 왔고, 6시 15분에 로비로 이동하였다.
06:39 나평 나사전의 일출경을 만나기 위해 버스는 출발하였다.
07:15 멋진 일출의 장관을 볼 수 있는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나사전"이란? 나사 모양으로 뚫린 구멍 형태의 밭을 의미한다. 흥의시에서 방문했던 만봉림에서 보았던 '팔괘전'과 마찬가지로 나사전도 돌리네이다. 석회암 지대인 것이다. 그런데.......... 안개가 너무 짙게 끼어 일출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ㅠ.
원래는 전망대에서 유채밭으로 조성된 수많은 돌리네 지형을 감상할 수 있는 뽀인트였다. 동글동글 나사 모양의 돌리네들. 이 모습을 현지에서 실제로 깨끗한 하늘 아래 감상할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쉽다.
아침을 호텔 조식으로 만날 수 없어 버스에서 간단하게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나는 생략한 것 같기도 하다...
08:42 구룡폭포군 도착.
10개의 폭포를 만날 수 있는 구룡폭포군 중에서 가장 큰 신룡폭포.
11:45 구룡폭포 부근의 식당에서 이른 점심 식사를 하고 원양을 향해 고속도로로 스며들었다.
17:20 원양제전풍경구 매표소에 도착하였다. 먼거리를 달렸다. 장시간 달렸다. 5시간 반 넘게 달렸다. 멀다~~~
17:49 老虎嘴梯田景区에 도착하여 원양 다락논 장관에 취했다.
드론이 참 많이 날아다니더라. 나도 날렸더라.
좁은 산길에 많은 차들이 몰렸다. 일몰 이후에 빠져나가려는 차들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혼돈의 카오스가 발생했다. "왜 빨리 안가는 것인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안더라....ㅎㅎ
21:20 숙소인 운제호텔에 도착하여 식사.
24일. 5시반에 일어났다. 6시 15분에 로비로 이동. 일출 속의 다락논의 장관을 감상하는 날이다.
06:30 작은 승합차 두대에 나누어 타고 이동. 多依树梯田景区의 일출경에 빠져들었다.
구름인가, 안개인가...
태양을 향해 달려드는 드론.
08:25 호텔에 도착하여 아침 식사 후 숙소를 출발하였다.
09:50 원양의 다락논 중 세번째로 坝达景区에 도착.
'빠다' 제전의 제2전망대에서 구름 속 다락논이라는 장관을 만나다.
드론 가져오길 참 잘했다.^^
11:47 원양의 식당에 도착하여 점심 식사를 마치고 곤명으로 향하였다.
15:00 '동풍운'이라는 작은 관광지에서 잠시 쉬어갔다.
대규모로 조성한 위락단지인데 일단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더라. 토요일이었는데 거대한 단지가 한산하게 보일 정도이니 그럴 만하다.
08:50 곤명 시내의 식당 도착. 샤브샤브로 맛있는 저녁.
20:40 숙소인 중황호텔 도착. 늦은 밤에 폭죽으로 대보름을 축하하더라.
사흘간의 여정을 지도에 모아 보았다. 석림에서 흥의-나평, 나평에서 원양, 원양에서 곤명까지 각각 하루씩의 일정이었다. 오고 가는 일정을 포함하여 4박 5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무엇보다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드론을 가져가 날리보기 시작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고 기억에 남는다. 이제 다른 곳으로 여행할 때도 드론을 망설임 없이 여행 짐 속에 함께 챙기게 될 것 같다.^^
25일. 4시에 잠이 깼다. 집에 가는 것이 설레서일까?
06:20 버스 출발. 공항으로 달린다. 이른 시간이라 아침식사를 도시락으로 마련했지만 먹지 않겠다 했다.
06:55 곤명국제공항에 도착하여 티켓팅.
08:20 MU2003편 보딩 시작. B737기종 항공기의 37J, K 좌석에 앉아 귀국했다.
09:00 택싱. 좌석에서 GPS가 수신되지 않아 항공편의 운항정보 사이트에서 정보를 가져왔다. 갈때는 시속 560km 정도로 '만만디'하게 가더니 올때는 시속 1,000km를 넘나들며 '빨리빨리' 날아왔다. 갈 때는 6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올 때는 3시간 46분만에 왔다. 왜 그러지?
한국시간 13시 37분에 랜딩.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고 간단히 일행과 인사를 하고 서둘러 공항버스 표를 구매했다. 공항에서 귀가할 때는 지정좌석제로 운영되어 표를 미리 구매하고 승차해야 해서 늘 서둘게 되더라.
2016년 8월에 중국 내륙의 감숙성, 청해성 여행을 다녀왔었다. 아주 특징적인 강렬한 색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여행 코스라서 色路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여행 상품이었다. COLORFULL TRIP이라 할 수도 있겠다. 어떤 색들이었는지 다시 정리를 해보았다. 색만...
1. 黃河의 색
먼저 만난 색은 황하의 황토색이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밝은 황색으로 보인다. 뱃놀이 중이다.
황하의 색과 주변 육지의 색이 구별되지 않는다. 황토고원 위를 흐르는 하천은 '황토' 고원에 퇴적된 황토(뢰스라고도 한다.)를 침식시켜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황하는 황토색을 띠고 있다.
황토고원에는 황하로 흐르는 물길에 위해 침식되어 이런 건천(와디라고도 한다.) 지형을 남겨놓았다. '음마대협곡'이라는 곳이다. 건기에는 이렇게 교통로로 이용하지만 우기에는 집중호우가 내리면 수위가 급상승하여 재난 상황을 발생시킨다. 그래서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계단 모양의 지형(단구라고도 한다.) 윗쪽으로 대피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초록색 게시판에 '긴급피험!' Emergency platform이라 적혀 있기도 하다.
황하에 가까운 황토고원의 윗쪽은 이런 상태를 보인다. 침식의 결과이다. 평평했던 고원에서 이렇게 깎여나간 부분은 모두 황하가 황토색을 보이게 하는데 필요한 재료가 되었을 것이다.
멀리 고원의 윗쪽과 현재 황하가 흐르는 낮은 저지대 사이를 잇는 꼬불꼬불한 도로가 보인다. 고도 차이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보라색 꽃밭
무위를 지나면 만나는 金昌에 조성된 자금원.
온통 보라색의 세상이다. 보라색의 버베나 Vervena를 축구장 10개 정도의 면적을 보라색으로 채우고 관광객을 꼬시고 있다. 니켈 생산이 많은 지역이라 재정이 풍부하여 이런 투자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축하, 축하~~
3. 사막이다. 사막색.
바단지린사막 초입에 있는 안내 표지.
사막이다. 모래 세상이다. 모래 세상을 만끽할 수 있다.^^
모래 세상에 모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호수도 있다.
모래색으로 가득한 세상~~^^
조금 불편하게 1박을 하고 나면 또다른 색다른 모래색을 만날 수 있다. 모래 세상의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
4. 칠채산의 요상한 세상
'장액단하지모'라고 한다. 장액의 무지개이다. 빗물이 살짝 떨어지는 날에는 그렇게도 아름답다고 하는 칠채산의 색이 이렇다. 역시 날이 좋아야 사진의 색도 좋아진다.
셔틀버스를 통해 이동하면서 정해진 포인트에서 정해진 코스를 통해서만 이동할 수 있다.
지층에 포함된 다양한 광물로 인해 다양한 색채를 만들어 놓았다.
칠채산의 색은? 다양한 색!
5. 유채의 노란 세상
청해성 문원의 여름은 노란색 세상이다. 온 세상에 유채를 재배하고 있기 때문에 노란색이다. 온통 노란색 세상이다~~~
아니네... 8월 초 문원은 노란 세상이 지났다.ㅠ.ㅠ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걸려 있던 액자를 촬영했다.ㅠ.ㅠ
제 때 문원을 방문하면 이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백리유채화해'이다.
6. 청해호의 푸른 색
청해호에서는 유람선이 운항되고 있다. 모종의 사정에 의해 지나가는 유람선을 잠시 구경만 했다.
청해호변 산책을 걸어서 해볼 수도 있고, 말타고 할 수도 있다. 걷는 것은 무료, 말타는 것은 유료.
7. 청해호변의 노란색
문원 방면의 유채꽃은 지나갔지만 청해호 변에는 8월초에도 노란 꽃의 세상에 빠져 볼 수 있다. 유채는 노랗고 청해호와 하늘은 파랗고 파아랗다~~~
'청해호유념'. 유채밭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사진을 남길 수 있다.
8. 차카 염호의 소금 색깔
염호는 소금호수이다. 바닷가의 염전에서처럼 맑은 날을 찾아 햇볕에 말려 소금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삽으로 퍼담으면 소금이 되는, 그런 곳이다.
그런 곳을 비가 살짝 내리는 날 찾았다. 소금호수는 비온 다음 날 찾는 것이 가장 좋다. 그날이 아니라 다음 날...ㅠ.ㅠ
이런 날씨에 이 먼곳까지 뭐하러 왔냐고 혀를 차는 소금덩어리 징기스칸.
관람대에서 물이 고인 호수로 사람들이 내려선다. 신발 위에 신는 덧신을 구할 수 있다. 그걸 미리 구해와야 한다. 현장 판매 없다. 없으면 맨발로 들어서면 된다.
소금호수에서의 멋진 사진은 반영 사진이다. 물이 충분히 있어야 하고 날이 아주 좋아야 한다. 그런 날을 골라서 방문해야 한다.^^
물이 충분하지 않으면 반영 사진이 안만들어진다.
다음에 날 좋을 때 물 좀 채워졌을 때 다시 오라고 내쫓는 소금덩어리 서왕모.
다시 이 색들을 찾아가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 지.... 색은 날이 좋을 때 잘 드러나니 좋은 날 가보고 싶으다. 날이 좋을 때...
2023년 10월 23일 월요일에 소주의 명소인 졸정원을 관람하고 호구탑을 방문하였다. 이후 부근의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山塘河를 따라 7리를 이동하였다.
10시 50분. '吳中第一山' 虎丘에 도착하였다.
臥薪嘗膽과 吳越同舟라는 사자성어의 주인공인 BC 5~6세기 吳王 闔閭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서 "吳"를 강조하는 것이다. 합려의 무덤가 하얀 호랑이가 앉아 있었다는 일화를 토대로 이곳을 '虎丘'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오왕 이야기 보다는 정상의 호구탑이 더 유명하다. 호구탑은 육안으로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기울어져 있어 "동양의 피사탑"이라 불린다.
멀리 동산위로 '호구탑'의 윗부분이 보인다.
입구에서 반겨주는 자그마한(^^) 향로.
'호랑이 언덕' 호구의 지도이다. 운암사탑을 호구탑이라고 부른다.
군밤의 유혹.
입구로 들어가려고 했더니 이쪽은 차량용이라고 오른쪽의 쪽문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오중제일산'으로 들어간다.
호구산 풍경구 안내지도가 안내되어 있다. 인공 물길 環山河로 둘러싸인 섬이다.
또 문을 지나간다. 斷梁展이다.
길가에 憨憨泉이 위치하고 있는데, 손때가 엄청나다. 표석에서는 글자 한자를 빼먹었다.
완경사 사면을 따라 올라간다.
돌이 깨졌다. 너른 평야 위에 돌산이 있다 보니 깨진 부분 마다 칼과 연관지은 스토리를 만들었다. 試劍石이란다. 오왕 합려가 명검을 시험하기 위해 잘랐다고...
古真娘墓. '진낭'의 묘. '진낭'의 미모를 탐한 어느 사대부의 희롱에 힘겨워 하다가 자결했다는 그녀의 묘라고 한다.
千人石. 천 명의 사람들이 올라설 수 있을 정도의 넓은 너럭바위라고...
虎丘 劍池.
"虎丘 劍池" 각자 오른쪽의 석조 건물이 二仙亭이고, 그 오른쪽으로 지붕만 보이는 것이 可中亭이다.
云岩寺 쪽으로 오르는 계단 아래로 자그마한 白蓮池.
여기도 별유동천이다.
'검'의 전설이 잠긴 劍池.
오왕 합려의 왕릉을 만들 때 명검 3천 자루와 기타등등의 보물을 순장했는데 도굴꾼들이 찾지 못했다 한다. 그곳에 물이 차니, 이곳을 '검지'라 이름지었다.
'가중정'을 지나 열심히 돌계단을 힘차게 오르는 여행객 1.
이 문을 지나면 '解脫'에 이르게 된다.
한번 더 문을 지나면...
기울어진 운암사탑, 호구탑을 만난다. 호구산 정상이다. 눈으로 대충 보니 3.5도 정도 기울었다^^
아랫쪽에서 위를 향해 사진을 찍으니 '발'이 길어보이는 사진이 만들어진다.
호구탑 주변을 둘러싼 담장과 탑을 비교하면 상당히 많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운암사탑은 959년 後周 때 착공하여 961년 北宋 태조때 완공된 누각식 탑이다. 송나라 때 건립된 탑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구조도 정교한 것으로 이름나 있다. 벽돌로 목조건축을 모방하여 쌓아올린 7층의 8각형 전탑으로, 높이는 47.5m이다.
1957년 기울어진 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창건연대를 밝힐 수 있는 석함이 발견된 바 있으며, 탑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여 더 이상 기울어지지 않고 현재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입구와 출구가 다르다. 일행 중 미아가 발생했었지만 잘 찾았다.
11시 50분. 호구탑 남문 부근의 선착장에서 기다리니 우리 팀 전용 유람선이 도착한다.
山塘河를 따라 유람선으로 7리를 흘러간다.
간간히 물가에 사찰들이 보이기도 한다.
낡아서 좀 위태로워 보이는 구간도 보인다.
산당하를 흐르는 유람선 내부의 모습.
꽃화분들이 예쁘다.
산당하는 교통로이기도 하고, 빨래터이기도 하다.
다른 수향을 방문했을 때도 같은 질문을 현지 가이드에게 하는 것을 들었었다. 물이 찰랑찰랑 하는 것을 보시고 불안하셨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비 좀 왔다 하면 그냥 넘쳐버리니까...
수위를 조절하는 장치가 있다고 안내를 하더라. 과연?
양쯔강이라 불리는 장강의 하류 부분은 무진장 넓은 저평한 평야지대이다. 강도 크고 주변에 '태호'와 같은 큰 호수가 있다. 하천의 유역 면적이 워낙 넓고 큰 호수들이 많아 많은 비가 내리면 넓은 범위로 퍼져 버리고 호수의 수위가 올라가면서 '수향'의 물높이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물론 태풍이 달려들어 갑자기 많은 비를 뿌리면 일시적으로 수해를 입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소주와 그 주변을 나타낸 지도이다. 양쯔강도 큰 강이지만 그 주변에는 太湖를 비롯한 수많은 '큰 호수'들이 형성되어 있다. '큰 비'가 오면 그 호수들의 수위가 올라가면서 강의 수위를 낮춰주고 갈수기에 수위가 낮아지면 수많은 '물 저장고'인 호수들의 물이 빠져나오면서 물을 공급해주게 되는 것이다. 결국 중국의 강남 지역은 어지간해서는 수많은 水鄕들의 수위 변화를 겪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늘 물과 함께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강남수향의 물길들의 수위는 자연이 조절해주는 것이다! 가끔 그 범위를 넘어서는 변화가 급작스럽게 발생하면? 난리나는 것이고...... 물난리...
산당하 주변은 관광지로 적극 각색되어 개발된 곳이 아니라 그냥 현재 이곳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이다. 자연스럽게 그러한 삶의 모습을 살피게 된다.
뜰채가 장비된 동력선이 지난다. 물위를 청소하는 팀으로 보인다.
붉은 등이 달린 것을 보니 식당일 것이다. 배를 타고 와서 식사하고 가는 사람들도 있을까??
마주쳐 지나가는 다른 유람선. 작은 다리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지붕이 낮게 설계되어 있다.
유람선은 동력선도 있고, 무동력선도 있다.
'산당하' 물길이 이 동네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12시 25분 쯤에 선착장에 도착하여 하선하였다. 약 30분 정도를 유람선을 타고 흘러내려온 것이다.
점심을 만나기 위해 식당을 찾아가는 길. 복원된 창문(阊門)을 지난다.
길을 달리는 오토바이의 앞을 막아주는 옷. 겨울에나 찬바람을 피하기 위해 필요할 듯 싶은데 이걸 늘 장착하고 다니는 오토바이들이 많더라. 여름에 떼었다가 겨울에 붙였다 하는 것이 귀찮아 그냥 달고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전하더라.
12시 반. 식당 王記姚家味에 도착하였다. 프란차이즈 식당인가보다. '西中市店'이란다.
이번 여정에서의 '마지막 만찬'이었다. 맛있게 마무리하였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유람선으로 지나온 '산당하'와는 다른 '산당가' 거리를 걸어보았다. 단체로 움직이는 자유시간이었다.
'산당가 Shantang Jie' 거리 표지판.
'산당가'는 소주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이다. 소주를 찾는 여행자라면 산단가를 들르기에 언제나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옛 정취를 느끼는 것은 쉽지 않다고도 한다.
'소주산당가' 표지석이다.
월요일 한낮이라 그런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는 않았다.
중간에 위치한 通贵桥가 유명한 포인트라고 한다. 안내 표지판에 한글도 있다. 통귀교를 지키는 귀하신 석물도 있다. '通貴狸'(통귀교의 삵)이라고 이름표가 옆에 있다.
통귀교 위에서 바라본 산당하 물길.
'7리 산당' 안내도.
이제 '신민교' 위에서 七里山塘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버스기사에 연락하고 버스와 랑데뷰하길 기다리는 포인트가 '신민교 주차장' 앞이었다. 안내판에 한글이 표시되어 있어 신기했다.
무사히 버스에 모두 승차하고 홍교국제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버스 안에서 현지 가이드의 구매 대행이 있었다. 자기부상열차에서 하차하여 버스에 탑승하고 달릴 때 맛을 보라며 나누어주었던 '대추-호두 과자'가 있었고, 식당 마다 차를 내어주지 않고 맹물만 나왔는데 현지 가이드가 보이찻잎을 끓여 나오게 한 적이 있었다. 두가지 중에 괜찮았다 싶은 것이 있으면 구매를 대행해줄 수 있다고 한 바 있었다.
과자에는 관심이 없었고, "보이차 티백"만 주문했다. 그런데 돈이 없잖아~
알리페이로 지불을 하려 했는데, 데이터 로밍을 안하여 왔더니 돈 건네주기가 안되는 것이었다. 가게에서 지불할 때는 잘 가져가는데 개인간의 거래는 안되더라. 그래서 주문 취소. 앗싸~
공항에서 그냥 건네주더라. 한국에 가서 이체 시켜달라고 국민은행 계좌번호를 주는 것이었다. 그러기로 했다. 그런데 공항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어 알리페이를 통해 송금하고 마무리했다. 수수료를 꽤 먹더라~
중국에서 출국을 위한 건강신고서를 스맛폰에 모두 담아왔더라. 아이폰 끼리는 날려주는 것이 가능하여 그렇게 하여 갤럭시 사용자들은 사진으로 찍었다. 비행기표 받고 짐 붙이고 출국 수속을 받고 게이트에서 기다리다가 보딩시작되어 자리 잡고 앉았다.
A321-200 기종의 여객기였다.
6시 10분에 출발했다. 남은 비행거리가 866km라고 비행정보에 뜨더라.
승무원이 나눠주는 대한민국 입국용 건강상태조사서를 작성하고, 나눠주는 기내식을 자알 먹었다.
그리고 김포공항으로 날아왔다. 866km 거리를 멀리 돌아서 1,152km 날아왔다. 왜 직선으로 날지 않을까? 기름이 남아도나??
7시 56분에 착륙하였다.
입국 수속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짐도 빨리 나오더라. 공항버스 타기 위해 다른 분들께 서둘러 인사드리고 출국장으로 뛰었다. 시간표를 보니 10분 전에 출발했단다. 3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밤 10시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10시 54분에 노원역 정류장에 하차하여 택시로 귀가했다.
이렇게 그렇게 재밌고 신기한 3박4일에 걸친 중국 강남수향 여행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점점 여행용 체력이 딸리기 시작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다음엔?
6시반에 웨이크업 콜이 왔다. 7시에 식사 시작하는 식당에서 간단히 푸짐하게 아침을 먹고 Water Town, 水鄕의 아침 물안개를 느껴보고 싶어 주변 산책을 나섰다.
리조트 입구의 거대한 코끼리들이 수고를 하는 모습을 표현한 조형물.
동리호변에 그럴듯한 분위기의 정자가 하나 있더라. 물안개는 한참 전에 끝나버렸을 것 같다. 햇님께서 강렬하게 반겨주시는 아침이다.
저쪽 멀리 호수면에 선착장이 보인다. 나성주를 들락거리는 배가 출발하는 곳이다.
8시에 출발할 예정이다. 짐을 챙기기 위해 계단을 오른다.
사흘을 함께 했던 버스가 다른 일정을 위해 떠나고 새로운 버스와 기사로 교체되었다.
8시 6분. 탑승 완료 및 인원 점검완료. 苏州市를 향해 출발했다. 소주에서 예정대로 졸정원, 호구탑, 7리산당을 만났다.
蘇州는 다른 수향들과 스케일이 완전히 다른 곳이다. 그동안 다녀온 주가각, 서당, 오진, 주장, 동리 등이 작은 마을 수준이었다면, 소주는 거대한 고성이라 할 수 있다. '경항대운하'라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북경과 연결되는 대운하의 시작점이라 볼 수도 있다. 주변의 수많은 '강남수향"들에서 물줄기를 타고 실려온 모든 물자들이 일단 소주에 모였다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는 물자의 집산지 역할을 담당하면서 일찍부터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1천년 이상을 소주는 중국의 주류 한인들에게 꿈의 도시였다. 이민족의 지배를 받을 때마다 한족의 인재들이 소주로 모여들었고, 중앙 정계에서 물러난 사람들도 소주로 몰려들면서 소주가 쌓아올린 부와 문화의 수준이 높아져 소주는 '중국의 藝鄕'이 되었다. 그들의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정원으로 꾸며 문화적 수준을 과시했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園林"이라 부른다. 19세기 이후 주요 화물 운송로로서 운하의 기능이 사라지면서 소주의 위치를 상해가 차지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소주는 중국인들이 살고 싶어하는 도시로 남아 있다. 과거의 화려함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아함과 단아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藝鄕으로서의 흔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원림일 것이다.
소주에는 명나라 때부터 발달한 많은 전통적인 정원들이 있다. 중국의 정원을 연구한 '최부득'교수에 의하면 중국 강남에 주요 26개 원림 중에 소주에만 8곳이 위치한다. 1961년 중국의 국무원에서 중국 전통의 최우수 정원 건축물로 苏州市拙政园, 北京市颐和园, 承德市避暑山庄, 苏州市留园을 발표하였다. 이른바 중국의 4대 정원이라 일컬어지는 정원들인데 소주의 졸정원과 유원이 포함되어 있어 소주의 '원림' 수준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소주의 4대 정원으로는 졸정원, 유원, 사자림, 창랑정이 꼽히고 있다.
소주에는 정계에서 은퇴한 지식인이나 정계 진출을 염두에 두지 않은 문인들이 자신의 취향대로 성정을 도야하면서 생활해 온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다. 따라서 소주의 정원, 원림들은 궁궐이나 사찰의 부분으로 발달한 정원과는 다른 성격의 사적인 부분이 많다는 특색이 있다. 이를 私家園林 또는 第宅園林이라 부르는데, 정원 안에는 마음 맞는 선비들을 초대하여 즐거운 시간을 갖는 廳堂, 독서나 그림, 서예 등으로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서재인 齋館, 그리고 편안하게 앉아 주변의 자연을 감상하는 정자와 누각들이 배치되었다.
(출처: 최부득, 건축가가 찾아간 중국정원)
GEOTRIP과 함께 하는 이번 2023년 10월의 강남수향 여정에서는 주가각의 과식원, 동리의 퇴사원과 진주탑원을 방문한 바 있다. 오늘은 그림 속의 용에 눈을 그려넣는 날이다. 그를 위해 졸정원을 찾아왔다.
9시쯤 졸정원 주변에 위치한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하차하여 소주의 예술 속에 흠뻑 빠질 준비를 한다.
사람들로 붐비는 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면 졸정원을 만나게 된다. 뽕뚫린 월문, 월량문을 지나면 검표소가 있고, 무사히 통과하면 '동원'으로 입장하게 된다.
졸정원의 자리는 삼국시대 이후 여러 유명 인사들이 거처한 장소였으나, 明代에 어사를 지낸 王獻臣이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이곳에 은거하면서 '拙政園'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치를 성공적으로 하지 못한 사람의 정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화가에게 3년간 설계를 하게 하고 공사 기간만 13년에 이르렀다고 한다.
전체 면적이 약 51,570 평방미터에 이르며, 제대로 된 관람을 위해서는 적어도 세 바퀴는 돌아야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오문화파의 유명한 화가인 文徵明이 '왕씨졸정원기'를 썼고, 31폭의 '졸정원도'를 그린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왕헌신의 사후 그의 아들이 도박에 빠졌고 졸정원은 서씨 집안의 소유로 넘어가 약 110년 간 소유하게 된다. 이후에는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며 시류를 타게 된다. 명대 1631년에 시랑 왕심일이 졸정원 동쪽의 황무지를 또다른 원림으로 가꾸고 '歸田園居'라고 지었다. 오늘날 졸정원의 東園 지역이다.
'졸정원'이나 '귀전원거'나 청렴결백한 선비와 어울리는 이름이라 하겠다. 그런데 현재 원의 규모와 화려함으로 볼 때 당시의 청렴결백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을지 의문스럽게 한다. 원래는 소박한 규모였는데, 후대로 가면서 고졸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오늘날의 호방한 모습으로 바뀐 것은 아닌가싶다.
문징명이 남긴 '졸정원도' 중 "의옥헌" 부분을 보자. 오늘날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 한국의 정원이나 일본의 다실 정원과 유사하여 원래의 졸정원은 지금보다 훨씬 소박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현재의 모습은 淸代에 갖추어진 것이라고 하니 明代의 모습과 같을 수는 없었겠다. 1997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중국에서 졸정원을 당연히 밀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인지 4장 짜리 세트 우표가 발매된 적도 있었다.
우표 속에서 의양정, 여수동좌헌, 입정, 소비홍, 소창랑, 송풍각, 기옥헌, 하풍사면정, 견산루, 득진정, 원향당 등이 확인된다. 우표 속의 졸정원을 졸정원에 와서 확인해보고자 한다.ㅎㅎㅎ
졸정원의 건물 배치도이다.
동원 쪽의 입구로 진입하여 졸정원을 한 바퀴 관람하였다. 파란색 선이 지나간 경로이다. '별유동천'이 西園과 中園의 경계가 되며, '해당춘오'의 동쪽이 東園에 해당한다.
난설당 兰雪堂. 저택의 현관인 '의문'에 해당된다.
부용사 芙蓉榭가 숲속의 물가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주변 경치와 잘 조화되어 있으며 여름철 연꽃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꼽힌다. 이름과 어울린다. 다른 강남수향들에서보다 적기는 하지만 옛날 옷을 입고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주 관람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함청정 涵靑亭. 벽에 붙어 있는 특이한 형태의 정자이며, 바로 앞에 작은 연못을 갖고 있다.
동원과 중원의 경계에 위치한 청우헌 听雨軒. 연못 위로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즐기는 공간이랄까...
청우헌 내부. 茶室에 해당한다.
가실정 嘉室亭. 양쪽 벽이 개방되어 있다. 원림 속에 놓여있다는 현장감을 느끼기에 최적인 곳이 아닐까...
영롱관 玲珑馆을 둘러보는 여행객들.
스마트폰으로 만든 사진의 단점 중 하나가 보인다. 렌즈가 워낙 작기 때문에 DSLR 카메라에 비해 주변부 왜곡이 심하게 느껴진다.
해당춘오 海棠春塢. 모퉁이 마다 독립적으로 구성된 작은 원들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한쪽에 규모가 작지만 가산도 조성되어 있다.
해당춘오 내부.
수기정 繡綺亭. 비단에 수를 놓으며 쉬는 정자^^
가산에서 아래로 보이는 오죽유거 梧竹幽居. 사방이 뚫려 있어 눈비를 피하면서 언제나 연못 주변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 하겠다.
입구에서 들어와 만난 가산 위에서 내려다 본 원향당 遠香堂. 졸정원의 중심 건물에 해당하는 원향당은 물가에서 떨어져 제법 넓은 방형의 월대 위에 건축되어 있다.
가산. 졸정원에는 가산이 여럿 조성되어 있다.
월량문. 졸정원 내의 작은 원과 원을 구분짓는 경계가 된다.
정원 벽의 뚫린 부분을 月洞門 혹은 月亮門이라고 한다. 중국 정원 건축의 전통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의옥헌 倚玉軒은 원향당과 건물의 방향이 직교하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원향당 앞쪽의 연못 건너편 인공섬 위에 배치된 설향운울정 雪香雲蔚亭. 매화 향기를 즐기는 공간이다.
원향당 앞의 연못 건너편에는 삼신산을 상징하는 세개의 산을 조성하였고 산위에는 각각 정자를 배치하였다. 하풍사면정, 설향운울정, 대상정이 원향당과 마주보는 형국인데, 이러한 배치는 강남 원림의 기본틀이다.
2023년 10월 22일. 강남 6대 수향고진 중의 하나인 주장을 탐방하고 역시 6대 수향에 포함되어 있는 '同里'로 이동하였다.
넓디 넓은 땅덩어리 나라에서 27km 거리면 코앞이라 할 만하다. 水鄕이다. 곳곳이 호수들, 강, 수로가 얽혀있다는 것을 지도를 보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물'이 모든 생활의 토대가 되는 동네, 水鄕인 곳이다.
항주와 소주 사이에 水鄕은 널리고 널렸다.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이 사라졌는데도 그렇다. 그들 중 유명한 곳을 꼽아 10대 수향, 6대 수향을 이야기한다. 6대 수향 중의 한 곳 同里(퉁리, Tongli)를 찾아왔다.
물길과 뭍길, 뭍길에서 물길로 내려가는 계단, 물길을 건너 뭍길을 연결하는 다리, 그리고 물길 가의 전통 가옥을 담담하게 묘사하여 담채화로 우표 속에 담기기도 했었다.
동리고진경구전경도를 보면 여러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세한 지도 속에서 동리 일대는 크고 작은 섬이 72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을 연결하는 다리도 49개나 된다. 가히 '물의 마을' 水鄕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동리고진은 역사가 유구하여 송대에 형성된 후, 오늘날까지 1,0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송, 원, 명, 청대의 저택과 원림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수많은 다리들 중 세개의 다리가 가까이 모여 있는 '동리 3교', 유명한 원림으로 꼽히는 '퇴사원', 그리고 유교와 불교 및 도교의 문화공간이 함께 존재하는 독특한 공간이 '나성주' 세곳을 동리에서 방문할 예정이었다.
오후 3시. "동리경구진북유객중심"에 도착하여 입장한다. 동리고진으로 들어가는 입구 중 북동쪽에 위치한다.
"천년고진, 세계동리" 깃발.
퇴사원에 도착하였다. 골목 안쪽에 숨어있다.
退思園이다.
청나라 광서제 대 고관으로 지냈던 任蘭生이 퇴임 후 건축한 곳이다. 태평천국의 난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私鹽 조직인 염군의 민란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웠고, 대규모 치수 공사에 소질을 발휘하여 안휘 일대를 총괄하는 벼슬인 병비도(兵備道)까지 올랐다. 재임 중 정적의 모함으로 누명을 쓰고 서태후의 소환 명령을 받았다. 모함을 받았지만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고, "進思盡忠, 退思補過"로 답을했다. 춘추시대 좌구명이 지은 ‘좌씨춘추’가 출처인 ‘관직에 나갈 때는 충성으로 군주를 받들고, 사직 후 은거할 때는 자신을 반성한다’는 말이었다. 서태후의 마음이 움직여 멸문지화는 피했으나 관직을 내려놓고 귀향했다. 모함이나 누명에 대해 불평하다가 참형을 당한 사람들도 많았기에 조용히 찌그러지기로 한 것이었다. 1885년 저택을 짓고 안락한 생활을 꿈꾸었다. 저택의 이름도 退思園이라 지었다. 헌데 1887년 복직되어 안휘 북부지방의 홍수피해복구 작업에 나섰다가 사망하니 퇴사원 사용 기간이 2년이 채 못되었다. 헐~
퇴사원의 배치도이다.
영빈실이다.
중정에 들어왔다. 사진 왼쪽에 튀어나온 부분이 한선, 맞은편의 2층 건물이 좌춘망월루이다. 오른쪽의 월동문을 지나면 수향사로 연결된다.
중정과 수향사 사이를 통하는 월동문. 그냥 뽕뚫린 구멍이다.
연못 위로 튀어나온 부분이 수향사. 원림의 이곳저곳을 조망하기에 적절하다.
퇴사초당 앞에서 요홍일가, 고우생량헌 쪽으로의 조망. 베경으로 보이는 큰 건물은 桂花廳이다.
퇴사원에 가을이 내리고 있었다.
꼬부라진 다리, 삼곡교. 가산으로 연결되며, 가산 위에는 면운정 眠雲亭이 위치한다.
금방 琴房 옆에는 소화전이 설치되어 있다.
가산 위의 면운정 眠雲亭에서... 아랫쪽 연못가에 요홍일가가 보인다.
가산 위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퇴사원의 중심 건물인 '퇴사초당'이다.
가산은 그냥 작은 봉우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암괴석으로 장식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가산으로 통하는 인공 터널까지 조성해놓았다.
'고우생량헌 菰雨牲凉軒' 내부. 비오는 날이면 원림의 분위기에 완전히 빠져들게 할 것 같은 이름이다.
신대 辛臺 내부.
물길을 따라 나아가는 배를 형상화 한 건물이라고 한다. '요홍일가 闹紅一舸'.
'퇴사초당 退思草堂' 앞에서 쉬고 있는 여행객들. 이름만 草堂인 기와집이다.
'수향사 水香榭'. 수향사 뒷편의 2층 누각은 '남승각 攬勝閣'이다. 지붕의 처마끝이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있다.
결혼을 앞둔 커플일까? 연출 사진을 멋지게 만드는데 여념이 없다. 요홍일가 앞의 커플, 고우생량헌의 커플...
외택과 동원 사이의 경계 역할을 하는 월동문.
4시. 퇴사원에서 퇴사했다. 입장할 때는 영빈실 쪽으로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계화청 쪽의 출구로 나오면서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
힘쎈 총각이 엿을 뽑고 있다. 생강엿이라 한다. 당겨서 늘리고, 비틀고 접어서 늘리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오후 4시 10분. 동리고진의 명소인 '동리 3교'에 도착하였다.
세갈레로 나뉘는 물길마다 다리가 있어 '3교'가 되었다. 太平橋, 吉利橋, 長慶橋다. 모두 인생의 덕담을 담은 이름들이다. 혼례를 치르고 건너고, 정월 대보름인 원소절 밤에 아이들이 건너고, 아픈 사람도 건너고,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도 건너고, 노인도 건너고... 하여간 세 다리를 한번에 건너면 모든 것이 좋아진다고 한다.
동리 3교 중 하나의 다리인 長慶橋 앞에서 사진을 남기고 간다.
선착장에 민물가마우지들이 묶여 있는 배가 보였다. 중국 강남에서 유명한 낚시 방법이다. 모두 일곱 마리가 묶여 있다. 2년 전의 신문기사 속의 여행기 속의 사진에 담긴 낚시배에도 일곱 마리가 묶여 있던데... 같은 어부의 배일까???
동리고진에 도착하여 퇴사원을 방문하고 동리3교를 탐방하였다. 이제 나성주 하나 남았다. 시간은 4시를 넘어 지나가는데 관람 시간이 넉넉할까 하는 걱정하면서 걷는다. 그런데...
웬 '진주탑원'이라는 곳으로 들어간다.
강남의 수많은 '원림' 중의 하나인 것 같다.
한글로 된 소개 판떼기가 붙어 있다.
대저택을 들어갈 때마다 대문 밖의 시선을 차단하는 가림막 시설이 되어 있다. 저택의 현관에 해당하며, 儀門이라 한다. 그런데, '금칠'한 것인가???
굉략당.
관혼상제 등의 행사가 이루어지던 공간이라 한다.
난운당. 인형들로 주인 가족이 거주하던 공간이라는 것을 묘사해 놓았다.
堂樓. 내부의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 볼 수 있다.
2층 내부. 전시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2층 외부. 바깥을 보며 숨을 쉴 수 있다.
거주 공간과 휴식 공간의 경계에 놓인 월동문. 陈家花园, 진씨 집안 저택의 화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연못을 중심으로 원림이 꾸며져 있다. 연못 속으로 들어가려 하는 부취방 浮翠舫. 물가에 만들어 놓고는 뱃놀이를 하는 상상을 하는 공간이다. 가상의 배.
계청홍영 溪淸虹影. 맑은 개천에 무지개 그림자가 내려왔구나.
청기당 淸远堂 앞쪽에서의 조망. 연못 오른쪽에 浮翠舫이 배치되어 있고, 연못 반대편의 가산 위에 소란정 小兰亭이 위치한다. 연못 왼쪽의 정자가 녹추정 綠秋亭, 그 오른쪽에 위치한 것이 경명헌 景明軒이다.
왼쪽에 녹추정, 오른쪽에 청원당을 두고 바라보면 부취방의 반영이 그대로 눈에 든다.
花園과 주택 공간 어디에서도 眞珠搭은 보이지 않는다. '진주탑'은 건축물이 아니라 강남지역 민간에 널리 퍼진 '사랑 이야기'이며, 청나라 때 나온 작자 미상의 탄사(彈詞)였다. '탄사'는 송, 원, 명을 거쳐 청대에 크게 번성한 사설, 해악, 연주, 노래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보통 비파 반주에 랩 형식이 결합된 曲藝이다. 우리의 판소리와 비슷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진주탑원은 퇴사원보다 넓은 면적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고진의 북쪽 구텡이에 위치하여 찾는 사람들이 적다고 한다. 퇴사원보다 더 나을 수도 있는데... 진주탑원은 陳御史府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은 명나라 만력제 때 남경의 감찰어사였던 陳王道의 5세손이 청나라 때(1700) 옛저택을 수리하여 재건하였기 때문이다. 1986년에만 하더라도 건물이 2개만 남아 있었는데, 2001년에 복원을 시작하여 강남 민간에 남아 있는 '진주탑' 일화를 토대로 기존 유물 유적과 인문학적 역사적 함의를 존중하고 유지하면서 소주 정원의 정수를 수집하여 공간 조직 및 경관 배치에서 고유한 개성을 형성해 2003년 4월 19일에 개장하였다고 소개자료에 나온다.
오후 5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버스에 탑승하고 숙소로 이동하였다. "동리호 리조트", 멋지고 근사한 숙소였다. 바로 앞에 나성주 罗星洲가 위치하는 곳이었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섬, 나성주 탐방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드론 사진을 구해 건물 이름도 표시한 지도를 들고 갔었는데....
일정을 조율하는 가이드에게 질문을 했다. 예정된 일정이 변경된 것이냐고...
현지 가이드가 서둘러 답을 하더라. 코로나 이후 나성주가 리모델링 중이라 입장을 할 수 없어 진주탑원 관람으로 대신하였다고... 그렇다고......
숙소 건물과 떨어져 동리호에 떠 있는 식당이다. 밤이 내리니 조명이 근사하다.
어느새 3박4일 일정의 마지막 밤을 맞이하는 마지막 저녁 식사가 되어버렸다. 참 빠르다. 통 큰 어르신의 기부에 모두 기분 좋은 식사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