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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날이 밝았다. 날씨 좋다.  나와 보니 숙소가 근사한 곳이었다. 용수산장.

 

정원도 잘 조성되어 있어 아침 식사 전에 잠시 산책을 가볍게 할 수 있었다.

 

진창(金昌)을 떠나 바단지린사막으로 달린다. 날씨 아주 좋다. 길가에 보면 새로운 도로를 건설 중인 곳이 굉장히 많았다. 중국 내륙은 개발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다.

 

바단지린사막은 내몽골자치구에 속한다. 아래 지도에서 서쪽 끝의 아라산맹에 위치한다.

 

무위에서 묵고 아라산 우기를 통해 바란지린사막으로 진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무위를 건너뛰고 진창에서 하룻밤을 묵었기 때문에 야브라이를 통해 바란지린사막으로 진입했다.

 

바단지린사막으로 진입하는 길가에 조형물 탑이 있다. 한번 정차하고 들어갔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기념사진이라도 찍게. 창밖으로 갑자기 보이길래 서둘러 촬영해두었다.

 

 

바단지린사막 Tourist Information Center이다. 그들의 전통 가옥인 빠오 모양을 모티브로 하여 디자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표를 사고, 화장실엘 들르고, 버스 주차하고 짚차 1대에 4명씩 탔다. 원래대로 1대에 3명씩 탑승하였으면 좀 나았을텐데, 4명씩 탑승하면서 뒷좌석의 가운데에 앉게 되는 사람들이 너무 불편하게 되었다. 그랬었다.

 

관광정보센터에 들어가보았더니 안내자료가 있더라. 가져왔다.

 

안내자료에서 지도 부분만 떼냈다. 글자도 떼다가 입히고. 지도 만들기. 1,167m 높이의 비루트 봉이 지도의 20번 뽀인트에 위치한다.

 

정보센터 바로 옆에 있는 세계지질공원박물관. 근사한 조형물이다. 온김에 한번 들어가보는 것도 괜찮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지금해본다.^^

건물 모양이 아주 독특하다.

 

 

구글 지도에서 위성 영상을 가져왔다. 왼쪽 아래의 녹색 부분이 기련산맥의 일부이다. 

 

바단지린사막에는 왜 거대한 사구가 그렇게 많은가? 한 연구에 의하면, 기련산맥에서 발원하여 장예를 지나 북으로 흐르다가 사라지는 내륙하천(Heihe River, 黑河)이 있는데, 기련산맥에서부터 흐르면서 가져온 운반물질들이 북서풍에 의해 날려 바단지린사막에 모래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들 모래는 바람에 날리다가 야브라이 산맥에 의해 차단되기 때문에 그 북쪽으로 거대한 사구들이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먼저 쌓인 모래에 포함되어 있던 탄산칼슘이 녹아 교결작용(dementation)을 하여 사구의 모래가 고정되고 그 위에 새로운 모래가 퇴적되어 교결되는 과정이 반복되어 사구의 규모가 커졌을 것이라는 것이다.(CHEN Jiansheng, et al., 2006, Formation mechanisms of megadunes and lakes in the Badain Jaran Desert, Inner Mongolia, Chinese Science Bulletin, Vol. 51 No. 24, pp.3026-3034)

(Zhibao Dong, et. al., 2004, Geomorphology of the megadunes in the Badain Jaran Desert, Geomorphology, vol.60, p.193.)

 

기련산맥에서 발원한 흑하는 북으로 흘러 사라진다. 하천 운반 물질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사막의 모래 공급원으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Tomohiro AKIYAMA, et. al., 2007, Surfacewater-groundwater interaction in the Heihe River basin, Northwestern China, Bulletin of Glaciological Research, Vol.24, p.88.)

 

 

먼저 바단 호텔로 가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어선지 손님이 많았고, 음.... 서비스는 좀 느렸다. 

 

호텔 앞의 주차장에는 영화 매드맥스 분위기를 어설프게 흉내낸 탈 것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아라산맹 지도가 호텔벽에 붙어 있다. 右旗가 서쪽에, 左旗가 동쪽에 위치한 것이 특이하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면서 좌우를 정하는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바단 호에 가서 휴식 겸 적응 시간을 가졌다. 호수 옆의 사구를 걸어서 오르는데 힘들었다. 온 몸에 고운 모래를 칠하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사막 가운데 있는 호수이기 때문에 증발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그래서 호수의 주변부를 따라 염류의 결정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출발~ 사구 위로 짚차가 질주하니 몸이 방방 뜨고, 이리저리 쏠린다. 재밌다. 아자씨! 달려!!!

 

최고봉을 먼저 찾아갔다. 비루트 봉. 봉우리 위에 만들어져 있는 敖包(oboo)이다. 

산이나 언덕에 몽고인이 흙이나 돌을 쌓아올린 구조물로 obo, obogha라고도 쓴다. 돌이나 흙으로 원추형으로 만든 기단 상부에 나뭇가지를 꽂고, 그 중심에 삼지창이나 창을 세우는데 아보는 여러 개가 함께 나열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몽고인은 여기에 천신지기가 내려와서 머문다고 하며(오보 자체를 지기(地祇)로 보기도 한다), 매년 여름 오보제를 행하여서 우마 등의 살아있는 가축이나 고기, 유제품 등을 바치고, 오축(五畜) 등의 풍요를 기원하며, 오보 주위를 돌며 경마, 씨름, 활을 쏜다. 이 제사의 사제는 최근에는 대부분 라마교(티베트불교)의 승인데, 불교 홍포 이전에는 샤먼이었다. 오보 자체가 샤머니즘 신앙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오래전에 흉노족이나 선비족이 제사지낸 신에 홀린 나무와 숲과 관계있다는 생각이 유력한데 그들도 나무나 숲을 돌고 그것을 제사지냈다. 동종의 퇴석문화는 몽고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만주(중국 동부구), 시베리아, 중앙 아시아에 널리 분포한다고 하며, 마찬가지로 샤머니즘과 관계가 있다고 하고 터키어의 오바(oba, <집>이라는 뜻)도 오보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보 [oboo]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한국사전연구사)

 

타르초가 바람에 흩날린다. 높은 곳이라 바람이 아주 세다.

 

의미가 있는 곳에 왔으니 셀피 하나 정도는 남기고 가야 한다.

 

사구....사구....사구들. 거대하다. mega dunes라고 표현하더라.

 

멋지구나...

 

사구 위를 질주하는 차량들...

 

바단지린사막의 특징은 사구가 많고 그 크기가 거대하는 것과 함께 호수가 매우 많다는 것도 있다. 호수는 염호가 대부분이나 맹물 호수도 있다고 한다.

 

비루트 봉 부근이니 비루트 호일 것이다.

 

멋지다. 멋진 곳의 멋진 경관이다. 다시 한번 더 가볼까......^^

 

 

지나가던 사람이 쳐다보길래 한 장 남겼다.

 

 

하룻밤 신세질 빠오이다. 하나에 네명씩 들어가라고 인솔자의 지령이 떨어졌다. 가족 혹은 지인들끼리 샤샥 차지하니 혼자 온 나는 들어갈 곳이 없어졌다. 그래서 혼자 방쓰는 잘 생긴 중학생 방에 낑겨 잤다.

 

저녁식사는 양고기였다. 맛있었다. 함께 제공된 간단한 음료를 마시고 사망했다. 전혀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사망 전까지 웃고 떠들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전혀 전혀 기억에 없다.

(똑똑한 중학생이었다. 자기 의견도 뚜렷하고, 또 그것을 밝힐줄 알고 있었다. 실행 능력도 뛰어나다. 그 학생과 대화 형식을 빌려 이쪽 지역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간 내용들을 썰로 풀었다.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색하였기에. 더위 잠 안이 안오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방해만 해드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왜 그랬지.)

이런 외진 곳에서 전기는 태양광 발전 시설을 이용하거나 발동기를 이용한다. 밤이 늦으니 단전되어 버렸다. 그래서 선풍기가 있어서 참을만 하다는 숙소 내부가 참을만 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이불을 끌고 마당으로 나갔다. 빈틈에 깔고 누웠다. 모래가 날린다. 머리 위까지 이불을 끌어 올린다. 덥다. 내민다. 모래가 날린다. 머리 위까지 땅긴다. 덥다. 머리를 내민다. 모래가 날린다. 이불을 땅긴다를 반복하다가 보니 기상 시간이 되었다.

 

그랬다.... 좋은 곳에 가서 재밌게 즐기다가 마지막에 수많은 후회의 역사에 또 하나의 후회를 덧칠한 날이었다...후~

고운 모래가 바람에 날리는 사막의 밤은 쉽지 않다는 것을 체험한 밤이기도 했다.

정신을 차리고 인간이 만든 빛이 사라진 사막의 별 구경을 놓쳐버린 밤이기도 했다. 다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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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 날씨 좋다. 

 

황하석림 맛을 본다. 황하석림의 상태를 잘 보여주는 베이스 맵을 찾다보니 yandex 맵을 이용했다.

용만촌 선착장에서 음마대협곡까지는 양피뗏목을 타고 흘러내려갔다. 음마대협곡 내부는 당나귀가 끄는 작은 마차를 이용하였다. 휴게소에서 전망대는 케이블카로 올라갔다. 전망대는 석림의 진면목을 볼 수 있도록 잘 만들어져 있었다.

 

황하 석림은 황하 주변의 절리와 단층대를 따라 침식이 진행되면서 형성된 지형이다.

(출처: Yan Lyu 외, 2022, "Study on the Structural Plane Characteristics and Disaster-Induced Mechanism of the Yellow River Jingtai Stone Forest, Northwestern Loess Plateau, China," Frontiers in Earth Science, Vol.9, p.7)

 

선착장의 조형물. 멋진 근사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음마하 부두에서 출발한다.

양가죽에 바람을 불어넣고 마감한 것으로 만든 뗏목이다.

12마리의 양가죽이 사용되었다. 그렇게 믿음직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구명조끼를 입고 '승선'하면, 뗏목은 황하를 따라 천천히 흘러 내려간다. 한 척당 3명씩 승선하였다.

 

 

앞쪽에 보이는 갈라진 틈이 음마대협곡 입구이다. 그 아래 선착장이 있다.

 

 

손님이 내리면 사공은 뗏목을 들어올린다.

 

 

뗏목을 모아 트럭에 싣고 용만촌의 선착장 창고로 다시 가져간다.

 

 

'황하석림국가질공원관광안내도'라고 한글로 적혀 있다. 지도를 촬영하는데 정신 팔려 왼쪽의 설명 부분 촬영을 빠트렸다. 다시 가야겠다.

 

 

당나귀 마차를 타고 음마대협곡을 관광한다. 속도가 빠른 것이 아니기에 원한다면 언제든 뛰어내려 구경 혹은 사진촬영하다가 다시 탈 수 있다.

 

2023년 7월 11일 촬영한 음마대협곡의 항공사진들을 먼저 살펴보자.

황하와 용만촌 일대,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급경사의 절벽이 아주 잘 보인다.

 

황하석림의 음마대협곡의 좁은 골짜기와 주변의 지형들을 잘 확인할 수 있다.

(출처: https://english.news.cn/20230712/0262b637c6474512a4a8ebded550587c/c.html 이 사이트는 드론으로 촬영한 생생한 동영상도 제공하고 있다.)

 

황하는 황토고원 지대를 깊게 침식하며 흐르는 하천이다. 황토고원 지대는 과거 빙하기 때 퇴적된 '뢰스'라고 하는 퇴적물로 이루어져 있어 침식 작용에 약하다. 그 퇴적물을 황하가 이동시키며 상류에서 깨끗했던 하천은 아주 탁한 색으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하천의 이름도 '황하'이며, 이 황하가 흘러드는 바다의 이름도 '황해'가 되어 버린 것이다. 황토고원에서 끊임없이 황토가 황하로 공급되기에 황하의 물은 깨끗해질 수가 없다. 그래서 '백년하청'이란 표현도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성룡, 김희선 주연의 영화 '신화', 송일국 주연의 드라마 '바람의 나라' 등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황하 석림의 음마대협곡 속으로 들어가본다. 주변에 보이는 다양한 지형들을 감상하면서.

입구에서 나귀차에 나눠타고 출발하였다.

 

주변을 충분히 감상하면서 이동하기에 나귀차의 속도는 빠르지 않다. 그래서 나귀차에서 내려 걸어도 좋다.

 

중간 중간에 멈추어가기도 한다.

 

처음 보는 기묘한 지형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발길을 멈추게 한다.

 

 

특이한 암석 모양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보여주는 게시판. 큼지막하다. 공작새가 꼬리를 펼치고 있는 모습의 지형이라는 설명을 해주고 있다.

 

새 머리가 보이기도 하고...

 

고릴라 머리도 나타난다...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황토 고원이 바람이 날린 뢰스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배웠던 기억이 무너지는 계기가 된 것. 하천에 의해 퇴적된 흔적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하천에 의한 침식의 흔적도 많이 보인다.

 

걷고, 타고, 멈추고, 구경하고...

 

 

 

협곡 안쪽의 종점에 도착하여 모두 나귀차에서 내린다.

 

멀리 전망대가 보인다. 그곳으로 오르는 케이블카.

 

 

화장실 변기에 향을 끼우고 있었다. 냄새를 향을 피워 제거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처음 보았는데, 나중에 다른 화장실에서도 향을 피우는 것을 보았다. 널리 사용하는 방법인 것 같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전망대가 몇 곳으로 나뉘어 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멀리 용만촌이 보일라 한다.

 

황토고원이 개석되어 형성된 '석림'이 드러나 있다.

 

가장 높은 전망대. 인솔자가 봉다리 커피를 대접하고 있었다. 커피를 즐기지는 않지만 남이 먹는 것을 보면 따라 먹고 싶어지는 것이 커피이다.

 

 

앱을 통해 음성 안내를 들을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냥 글자에서 멈추기로 했다.

 

지나가던 사람.

 

 

멀리 황하석림 주차장에서 용만촌으로 내려오는 길이 보인다. 굽이굽이.

 

황토고원의 침식 상태를 잘 확인해 볼 수 있다.

 

 

음마대협곡은 일종의 와디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좁은 골짜기인데 폭우가 내리면 골짜기 안에 있던 사람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 놓은 표지판으로 보인다. 골짜기의 바닥보다 약 2m 정도 높은 단구이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고 충분히 대피하여 기다릴 수 있을 만큼의 높이와 면적을 갖고 있었다.

 

대협곡을 나오니 기념물 매대가 기다리고 있다.

 

용만촌을 출발하여 황하석림문화광장에 위치한 황하석림진열관을 방문하였다. Museum of the Yellow River Storn Forest. 닫혀 있어 들어가보지는 않았다.

 

 

박물관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다. 멋지게 만들어놓았지만 황하석림문화광장은 전체가 돌덩어리이다. 그래서 햇볕을 받으니 아주 매우 따끈따끈하니 근처에 다가가기도 쉽지 않다.

 

광장 가운데는 그 이름도 유명하신 마답비연(馬踏飛燕) 또는 마도비연(馬跳飛燕)이라 불린다는 조각상이 있다. 말이 얼마나 잘 달렸으면 하늘을 날아가는 제비를 밟고 도약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흘리면서 황하석림을 떠난다.

경태현 흥건대주점. 늦은 점심 식사를 한 곳이다.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린다. 달리다 보면 아쉬워지는 것이 화장실이다. 토문휴게소. 화장실에 물이 안나왔다. 차를 멈춘 김에 하미인가 하는 과일을 잘랐다. 별로 좋아하지 아니하기에 멀리서 사진만 찍고 있었다.

 

길가에 많이 보이던 가옥 형태. 흙과 벽돌로 구성. 편평한 지붕의 사각형 구조. 그런데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음. 기온이 높은 건조 기후 지역의 전형적이 가옥이 아닐까 한다.

 

밀을 수확한 이후 짚을 태우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지역에서 곡물 재배하던 곳에 과수를 심어놓은 것이 보였다. 곡식보다 과일 재배를 통한 수익이 더 많은 것일까?

 

도로변에 온실도 많이 보였다. 흙으로 구조를 만들고 남쪽으로는 비닐 등을 덮을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구글 좋구나. 검색하다보니 다 나오는구나. 온실 내부의 모습이다. 비닐이 덮여 있으니 겨울철의 모습이겠지. Heihe River Basin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구한 사진이다.

 

쌍성 휴게소.

 

 

이런 냉각탑을 갖는 것은 원자력 발전소이겠지.

 

 

진창(金昌)시에 들어오는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경찰 검문을 좀 오래 받았다. 그런 절차가 종종 있다고 한다. 

 

금창시에서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는 공원이라고 한다. 자금원. 

진창시는 중국 내에서 니켈의 수도라고 불린다고 한다. 그만큼 비철 금속 생산이 많은 곳이다. 그러한 경제력이 있기 때문에 시의 재정이 풍부하여 이런 대규모 공원 조성이 가능하였을 것이다.

 

 

보라색의 버베나verbena이다. 축구장 10여개 정도의 면적에 조성된 꽃밭이다. 넓다.

 

 

 

화장실을 찾았다. 급했다. 공원이 너무 넓어 찾는데 애먹었다. 그래도 찾아냈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다니. ㅠ.ㅠ 자물쇠도 아주 튼튼한 것으로...

 

화장실 창문에 비친 아파트는 신축중인 것이다. 공원에 면한 쪽의 벽에는 공원과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보라색을 칠하고 꽃 그림을 그려 놓았다.

 

 

꽃밭이니 웨딩사진이라는 것을 찍을만 하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빛이 이렇게 약한 저녁 시간에 와서 찍다니...

보기는 좋았다.^^ 행복하시길~~

 

 

날이 저문다.

 

먹고...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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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을 할 때면 거의 '지오트립' 팀을 이용했었다. 2016년 여름에는 그 팀을 벗어나 다른 팀을 이용해보았다. 네이버 여행카페 '주기나행'의 연합 팀에 참여하여 감숙, 내몽골, 청해성을 잇는 '색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후 대충 정리해두었던 블로그 자료를 정비하고 수정하고 보강하였다. 한 꼭지로 되었던 것을 두 꼭지로 나누었었는데, 그걸 다시 날짜 별로 나누었다. 나누다보니 용량에 여유가 있을 것 같아 누락시켰던 사진들을 많이 추가시켰다.

GPS data logger를 중간에 분실하여 경로와 위치 정보를 알 수 없는 것이 많이 아쉽다. 사진들을 많이 축소시켜 업로드했었는데 사진 파일들의 크기를 키웠더니 보기가 조금은 좋더라~^^

 


 

2016년 8월 6일에 출국하여 14일에 귀국하는 여정이었다.

출국하여 전화기를 켤 때마다 이런 문자들이 주루룩 나온다. 자기 나라 국민이 외국에 나가게 되면 뭔 일인가 생겼을 때 연락하라, 어려운 상황이면 도와주고 해결해주겠다 이런 내용이 아니라 알아서 주의하고 조심하라는 내용의 문자이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들... 조심할 것 조심하자.

2016년의 중국 여행은 여섯번 째 중국행이었다.

이번 여행의 타이틀은 色路이다. 황하의 색, 사막의 색, 칠채산의 색, 유채의 색, 청해호의 색, 차카염호의 색 등이다. 여러가지 색을 찾는 여행이었다. 이름 참 잘 지었다 싶다.

 

출발 전에 만들어본 경로도이다. 조금 달라졌다. 란주 공항에 내려 황하석림이 있는 용만촌으로 바로 들어갔다. 이후 무위에 묵지 아니하고 진창에서 묵었다. 장예에서는 빙구단하경구를 건너 뛰었다.

시닝에서 상해로 오는줄 알았는데, 비행기표 문제로 인해 란주까지 이동해야 했다.

 

 

참고로 란주에서 무위, 장예를 거쳐 돈황으로 이어지는 길은 실크로드의 주요 경로로서 하서주랑이라 불리는 곳이다.

하서주랑(河西走廊) : 간쑤주랑(甘肅走廊)이라고도 칭해지며 동쪽 오초령(烏鞘嶺)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위먼관(玉門关, 옥문관)에 이르는 약 900㎞구간의 서북에서 동남 방향으로 펼쳐있는 폭이 수 ㎞에서 100㎞가까이 되는 좁고 긴 평지. 남북은 치롄산(祁连山, 기련산)과 아얼진산(阿尔金山), 북쪽은 마종산(马鬃山), 허리산(合黎山, 합려산), 룽서우산(龙首山, 용수산)으로 막혀있으며 황하(黄河) 서쪽에 위치하여 허시주랑(河西走廊)이라고 명명되었다.

지리적으로 간쑤성(甘肃省, 감숙성)의 란저우(蘭州) 및 우웨이(武威, 古稱 涼州), 장예(张掖), 저우취안주천(酒泉) 및 둔황(敦煌)의 하서4군(河西四郡)을 포함한 지역이며 민족적으로는 한족(汉族), 몽고족(蒙古族), 유고족(裕固族), 티베트족 등의 민족이 거주하며 고대 사주지로(絲綢之路)의 일부분으로 중국이 서방세계로의 정치, 경제 및 문화의 교류를 위한 통로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허시주랑 [河西走廊] (국가급 중국문화유산총람, 2010. 8. 1., 도서출판 황매희)

 

 

2016년 8월 6일 출발. 중국으로 간다. 당연히 비행기를 타고 간다.

 

두 번 타고 갔다. 상해 푸동공항에서 입국수속을 하고 달려서 란주행 국내선으로 환승하였다. 정시출발 정시도착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지는 이상한 상황을 보았다. 이 동네가 원래 그랬던가? 

08:55 MU5052편을 타고 인천을 출발하여 상해로 날아갔다. 입국수속 후 국내선으로 환승

11:25 MU2352편을 타고 푸동공항을 떠나 란주로 날아갔다.

동방항공이 날고 있다.

기내식으로 공기가 빵빵한 빵을 준다.

 

14:45 란주 공항 도착.  용만촌까지 이동 시간은 2시간 30분.

란저우(蘭州) 공항에서 이번 여행을 함께할 현지 가이드 및 버스와 만났다. 기본적으로 이 동네는 고도가 높기 때문에 버스 안에서도 봉다리는 빵빵하다. 손톱도 길어진다.^^

 

길가에서 수박 부수기. 잔해는 껍질만 남았다고.....

 

 

감숙성. 란저우시 공항에 도착하여 바이인(白银)시의 용만촌에서 하루 묵었다. 그곳에 황하석림이 있다. 우웨이시를 통과하여 진창(金昌)시에서 하루 묵었다.

내몽골자치구에 위치한 바단지린사막에서 하루 묵고,

감숙성의 장예(张掖)에서 하루 묵었다. 칠채산을 보았다.

감숙성의 지리와 기후(위키피디아에서 긁어왔다.)

간쑤 성은 중국 서부, 황하 상류에 위치하며, 지역이 드넓다. 북위 32°11′~42°57′, 동경92°13′~108°46′ 사이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샨시(陕西)(섬서), 남쪽으로는 쓰촨(四川)(사천), 서쪽으로는 칭하이(青海)(청해), 신장(新疆)(신강), 북쪽으로는 네이멍구(内蒙古)(내몽고), 닝샤(宁夏)(영하)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간쑤 성의 지형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산지, 고원, 평야, 하곡, 사막이 뒤섞여 분포한다. 지세(地势)는 서남에서 동북으로 기울어져 있고, 폭이 좁고 긴 모양이다. 동서로 1655km, 남북으로 530km이며, 각 현의 특징에 따라 대략 6개의 큰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로는 룽난(陇南)산지이다. 이곳은 첩첩이 산봉우리가 있고, 산이 높으며 계곡이 깊다. 식생이 풍성하며 곳곳에 맑은 물이 쉬지 않고 흐른다. 이 지역은 대략 웨이수이(渭水)이남, 린탄(临潭), 디에부(迭部) 일대의 동쪽을 포함하며, 친링(秦岭)의 서연 부분이다. 산지와 구릉은 서고동저 지형이고, 푸른 산이 맞대있고, 계류가 출렁이며, 산봉우리가 높고 비탈이 가파르다. 남강의 섬세함과 북국의 거침이 이곳에서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두 번째는 룽중(陇中)황토고원이다. 간쑤 성 중부와 동부에 위치하며 동쪽 샨시(陕西) 성과 간쑤 성의 경계에서 서쪽 냐오샤오링(鸟鞘岭) 부근까지이다. 이곳에는 석유와 매탄이 풍부하며, 유명한 산인 다촨(大川)(대천)이 있다. 황하는 이곳을 흘러지나 류자샤(刘家峡), 옌궈샤(盐锅峡), 바판샤(八盘峡) 3대 저수지는 지난다.

세 번째는 간난(甘南)(감남)고원이다. 이곳은 “세계의 용마루”라 불린다. 칭짱(青藏)고원 동부 가장자리 모퉁이에 위치하며 지세가 높아 평균 해발 3000m를 넘는 전형적인 고원지대이다. 이곳은 초원이 넓게 펼쳐져 있고, 수초가 풍부하여 간쑤 성의 주요 목축지 중 하나이다.

네 번째는 허시(河西)(하서)주랑이다. 북서부 치롄(祁連)산맥 이북 허리산(合黎山)(합려산,2663m)과 룽서우산(龍首山)(용수산,2895m) 이남에 위치한다.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폭이 좁고 긴 지대이다. 해발 1000~1500m사이에 있으며, 길이는 약 1000여km , 폭은 수 킬로미터에서 백여 킬로미터까지 일정하지 않다. 허리회랑의 지세는 평탄하며, 기계 경작의 조건이 좋고, 태양열이 충분하고, 수자원이 풍부하다. 농업발전의 전도가 유망하여 간쑤 성의 주요 상품 식량기지이다.

다섯 번째는 치롄산맥((祁连山脈)이다. 치롄산지는 허시주랑 남쪽에 위치하며 길이는 1000여km 이고, 대부분 해발 3500m 이상이다. 일 년 내내 눈이 녹지 않으며, 빙하가 구불구불 이어져 있어 허시주랑의 천연 고체 저수지이다. 식생은 수직으로 뚜렷하게 분포하는데, 황량한 사막, 목초지, 삼림, 빙설이 찬란한 색채의 입체적 화면을 조성한다.

여섯 번째는 허시주랑 이북지대이다. 이곳은 동서로 1000여m 이며, 해발 1000~3600m의 지대이다. 사람들은 보통 북산산지라고 부른다. 이곳은 텅거리(腾格里)사막과 바단지린(巴丹吉林)사막과 가까우며, 모래 바람이 사납고, 산에 암벽이 드러나 있다. 황량한 사막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하나하나의 산 가운데는 평원으로, 경작이 어려운 땅이기 때문에 인가가 드물다. 왕유의 사지재상(使至塞上)의 “넓은 사막에 한 줄기 연기가 곧게 섰고, 길게 뻗은 강물 위에 지는 해가 둥그네(大漠孤烟直,长河落日圆)”라는 시구의 고비사막 풍경을 느낄 수 있다

간쑤는 산이 많은 성(省)이다. 가장 주요한 산맥은 처음에 언급한 치롄산, 냐오샤오링, 류판산이고, 그 다음으로는 아얼진(阿尔金)산, 마종(马鬃)산, 허리산, 룽서우산, 시칭(西倾)산, 쯔니우링(子牛岭)산 등이 있다. 대부분의 산맥이 서북에서 동남 방향이다. 성 내의 삼림자원은 이러한 산지대에 집중해있고, 대다수 하류도 이 산맥들에서 형성되어 각 분류(分流)의 발원지가 된다.

간쑤 성은 황토지대이며, 칭짱(青藏), 몽고 삼대 고원과 합쳐지는 지대이다. 지역 내의 형세가 복잡하고 산맥이 가로 세로로 교차하며 해발고도 차이가 현저하다. 고산, 분지, 평원, 사막 등이 아울러 있어, 산지형 고원 지모이다. 동남에서 서북으로 북아열대 습윤 지대부터 고한(高寒)지대, 건조지대까지 다양한 기후 유형을 가지고 있다.간쑤 성의 기후는 건조하고, 일교차가 크며, 일조량이 풍부하며, 태양 복사열이 강하다. 연평균 기온은 0℃~14℃이며, 동남에서 서북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허시주랑의 연평균 기온은 4℃~9℃이며, 치롄산은 0℃~6℃, 롱중은 5~9℃, 롱동은 7℃~10℃, 간난(甘南)은 1℃~7℃,롱난은 9℃~15℃ 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300mm 정도이고 강수량의 지역차가 크다. 42mm~760mm 사이로 동남에서 서북으로 갈수록 강수량이 감소한다. 강수의 계절적 분배가 고르지 않고, 주로 6월~9월에 집중적이다. 간쑤 성은 일조량이 많아 태양에너지가 풍부하고, 동남에서 서북으로 갈수록 증가한다. 일조량이 가장많은 곳은 허시주랑으로 2800h~3300h 이며, 일조량이 가장 적은 곳은 롱난으로 1800h~2300h이다.

 


 

감숙성 백은시 경태현 용만촌.

황하석림 조형물이 있는 곳에 넓은 주차장이 있다. 셔틀버스로 환승하여 마을로 들어간다. 중국 대부분의 관광지는 이런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백두산 북파코스 올라갈 때는 세번이나 갈아탄 것 같다. 이런 절차가 늘어날 때마다 관광객의 지출은 늘어나는 것이겠지. 현지에서 그만큼 정당하게 관광객 주머니를 털 수 있는 시스템. 우리나라도 도입이 시급하다 생각한다. 관광지 일대가 승용차로 가득차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현지인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 등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 시각으로 오후 7시 반, 중국은 한시간 늦은 표준시간대를 사용하니 오후 6시반이다. 그런데 하늘은 여전히 한낮이다. 넓은 땅덩어리를 갖고 있으면서 베이징 중심의 표준시간대 하나만을 고집하는 공산국가 중국의 현실이다. 베이징 방면에서는 시간대가 적절하지만 서쪽으로 갈수록 개판이 된다.

 

황하석림 안내 석판. National Geographic Park를 중국에서도 국가지질공원이라고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도 Geo Park를 지질공원이라고 하고 있는데, ㅠ.ㅠ

신생대 3기말~4기초에 형성된 황하석림은 4억년 이상 되었다고? "400million years old"에서 오류가 있구나. 과장일까, 실수일까...ㅎㅎㅎ

 

황토고원지대를 침식하고 하상을 낮추며 황하가 흐르기 때문에 황하변에 위치한 용만촌은 고원 지대의 저 아래에 위치한다. 황토층이 침식작용에 약하기 때문에 황하가 흐르는 하상과 고원의 고도 차이가 크게 난다.

 

 

고도 차이가 상당하기에 내려가는 도로의 굴곡이 대단하다.

 

 

지금은 대규모 관광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관광객을 상대하지만 마을은 원래 농촌이었다. 대추, 옥수수, 사과 등의 작물을 재배하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가면 다시 한번 셔틀을 타야 한다. 전동차로 움직이고 있어 대기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가 먹힐 수 있다. 대추파는 아줌마.

 

 

관광 안내도이다.

황하석림박물관에서 시작하여 황하석림문화광장을 지나 황하 변에 위치한 용만촌으로 들어왔다. 양가죽 뗏목을 탈 수 있는 곳이다.

 

 

농촌 시범 업소인 용만빈관에서 하룻밤을 신세졌다.

 

주변 산책을 하면서 빡쎈 여정을 준비한다.

숙소의 외부 모습. 옥수수밭과 사과밭으로 둘러쌓여 있다. 전형적인 농촌이다. 생각보다 날벌레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나뭇가지에 물통을 매달아 놓은 모습을 처음 보았다. 아마도 가지가 옆으로 퍼져 자라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한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일종의 분재일까?

 

 

저녁 시간이었으니 퇴근길이셨을 것 같다. 드라이버는 한 손에 담배를 쥐고 있어야 포스가 사는 것일까나??? 트럭에 번호판도 있다. "277"호차.

 

저녁식사. 기름이 많이 붙어 있기는 했지만 삼겹살처럼 생긴 고기와 신선한 야채, 각종 초장, 김치 등이 준비되어 맛있는 저녁이 되었다.

 

서봉......에 취했다. 첫 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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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7일 화요일을 시작한다.

10시 8분. 천산천지를 향해 이동하는 길가에 거대한 공장이 보였다. 커다란 냉각탑이 두개 보이길래 구글지도에서 검색해 보았는데.... 나오질 않는다.

 

10시 17분. 천산천지 입구에 도착하였다. 우루무치에서 북동쪽으로 약 130km 정도 떨어져 있다.

 

안내도...

 

입장권이 필요하다.

 

10시 30분. 셔틀버스로 갈아탄다.

 

11시 15분. 셔틀버스에서 내린다.

 

걸어올라간다.

 

11시 20분. 천산천지에 도착하였다.

 

호수 안쪽 저 멀리 허연 만년설이 보인다. 8월에 눈이 쌓여 있으니 만년설일 것이다.

호수의 면적은 약 4.9제곱킬로미터, 평균 수심은 40m 정도이다. 가장 깊은 곳은 105m에 이른다.

 

사진 하나...

 

천지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유람선이 있다.

 

이런 배를 타고 호수 안쪽을 다녀올 수 있다.

 

배 위에서~

 

작은 사찰 구경...

 

박격달봉에 조금 더 가까이 와보았다.

 

골짜기가 무너져 내리면서 둑을 만들었고,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던 빙하 녹은 물이 고이면서 만들어진 호수가 천산천지이다.

 

이정표. 어디로 가시렵니까?

 

비룡담 쪽으로 걸어내려간다.

 

폭포들을 여럿 볼 수 있다.

 

예쁜 무지개도 볼 수 있다.

 

급경사를 격류를 이루며 쏟아져 내린다. 장관이다.

 

1시 17분. 천산천지유객복무중심까지 걸어내려왔다.

 

1시 20분.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이랬던 아이가...

 

이렇게 되더니...

 

이렇게 변했는데......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을지.....

 

천산천지에서 돌아다닌 궤적인데...

 

4시. 신강 빅믈관을 방문하였다. 투란 미녀의 미이라를 보관 중인 곳으로 유명하다.

 

신강 박물관은 신강의 축소판이라 불린다.

 

12개 소수 부족의 공예품과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으며, 전시물의 배치와 진열이 잘되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입구 로비에 전시된 신강 지역의 지도.

 

투란에서 발견된 아가씨의 미라. 나보다 4,000살 정도 누님이시다.

 

5시40분. 우루무치의 명소인 홍산공원에 올랐다.

 

홍산공원을 즐기는 시민들.

 

홍산에 올라 우루무치 시내의 멋진 모습을 조망해본다.

 

홍산탑.

 

임칙서 아저씨. 서안 비림의 현판에서 '비'의 점 하나를 빼먹은 인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우루무치 구경을 다 한다.

 

시원한 그늘에서 장기를 즐기는 고수들.

 

7시 20분. 우루무치 그랜드 바자르를 방문하였다.

 

다양한 견과류.

 

스마트폰 삼매경.

 

칼칼...

 

10시 50분. 저녁 식사가 마무리 되어간다. 사진 속의 두 분이 누군지 알 것 같다....^^

 

11시 25분. 몽롱한 우루무치 거리를 달린다. 공항으로 달린다.

 

 

우루무치 공항에 도착하여 탑승 수속을 하고 기다리다가 무사히 날아왔다.

8월8일 새벽 1시 출발하는 비행기였다.

 

8월8일 6시 비행기 날개에 여명이 물들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기울어진다. 저 아래 섬은...?

 

날개의 플랩이 늘어진다. 착륙 모드다.

 

 

날개에 부채가 펼쳐졌다.... 저 부채 이름은???

 

7시 10분. 랜딩.

 

이렇게 실크로드 여행 세번째, 중국 여행 네번째의 일정이 마무리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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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루판에서 우루무치를 향해 달려가는 길은 볼 때마다 시원하다. 두번 보았다.ㅎㅎㅎ

오른쪽 방향으로 멀리 하얀 머리의 박격달봉, 보거다 봉이 보여 눈을 시원하게 한다. 해발고도가 5,445m.

 

투루판을 떠나 오른쪽으로 박격달봉의 만년설을 구경하면서 달린다.

다반성 지구를 지나면 염호들이 나타나고, 우루무치 강을 따라 왼쪽으로 골짜기를 올라가면 남산목장이 나온다. 오늘의 일정은 그곳까지...

 

길가에 하얀 염호가 보인다. 그냥 퍼내면 소금이 된다.

 

지나던 길가의 작은 회족 마을. 淸眞이란 간판이 보인다. 모스크이다. 老回民이란 간판이 계속 나타난다.

 

오후 1시 40분. 잠시 정차했다. 왜?

모르겠다......식당이긴 한데.....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던것일까....ㅠ.ㅠ

간판 한쪽에 湖南人이라 그려져 있다. 이건 무엇일지...

 

2시50분. 투루판과 우루무치 사이는 바람골이다. 강한 바람이 지속적으로 불기에 거대한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4시 30분. 우루무치로 흘러드는 우루무치 강 상류에 위치한 명소인 남산목장에 도착하였다.

게르에서의 숙박, 양고기 식사, 계곡 상류 폭포까지의 말타기 등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말타기 체험을 하였다.

 

무지개 다리를 새로 만들어두었더라.

 

원한다면 예쁜 옷을 빌려 입고 폭포 아래에서 예쁜 사진을 만들어볼 수 있다.

 

여럿이 함께 시원한 사진을 남기는 총각들.

 

폭포 아래에서 외롭게 혼자 서 있는 사진을 안만들고 그냥 왔구나. 계곡의 물은 시원하게 흘러내려간다.

 

6시 35분. 말타기 체험을 해보고 내려왔다.

이들은 위구르 족이 아니라 카자흐 족인 것 같다. 카자흐 요리를 판매한다고 써있다.

 

주변 산지에 초지가 무성하다. 목장으로 이용하기에 제격이겠다.

 

줄지어 선 파오들이 관광객들을 기다린다.

 

6시 40분. 잠시 파오 방문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7시35분. 우루무치 강의 양안은 하안단구가 여러 층 모식적으로 잘 나타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잠시 차를 돌려 지형 관찰의 시간을 가졌다.

 

구글어스의 도움을 받아보았다. 붉은 선은 우리 차량이 지나간 궤적이다. 반대편에 계단이 여러 층 나타난다. 모두 하안단구이다.

 

답사대원들의 탐구 현장.

 

 

2012년 8월6일 우루무치에서의 숙소는 프랜드 호텔이었다. Friend Holiday Inn.

이름이 귀에 익다 싶었는데, 2년 전에 방문했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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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6일 투루판에서 우루무치로 이동하는 날이다.

어제 투루판을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오늘을 위해 교하고성 한곳을 남겨 두었었다.

투루판교하장원주점, 교하 장원 호텔은 너른 포도밭 가운데 있어서 아침 산책하기에 좋았을 것 같은데.... 사진이 하나도 없다. 많이 피곤했었나보다.

 

9시 50분. 교하고성을 두번째로 방문하였다. 커다란 평면 안내도가 게시되어 있는데 이것만 보고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교하고성은 투루판 시가지에서 서쪽으로 13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아래의 인공위성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두개의 하천이 만나는 곳에 섬처럼 남아있는 곳이다. 두 하천이 만나기에 交河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천산산맥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두껍게 쌓여 형성된 지역이 이후 침식되어 고도가 점차 낮아졌는데, 침식되지 않고 남아 있는 하안단구와 유사한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주변보다 20여m 높은 베틀 북 형태의 지형이라고 설명된다. 길이는 1,650m, 폭은 300m 정도이다.

 

동쪽으로부터 올라가는 통로가 만들어져 있다.

 

이런 유적을 보면 쌓아올린 것처럼 보이는데, 실은 대부분의 유적지가 지표면 위에서 아래로 파내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거의 다 부서져 구별이 어려운 상태로만 남아 있다.

교하는 BC. 108~ AD. 450까지 차사전국의 수도였다. 무역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450년 이후 당나라의 교현으로 편입, 관리되었다. 640년에 교하현이 만들어졌고, 658년에는 안서도호부가 설치되었다.

교하성은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섬 위에 만들어졌기에 방어에 필요한 성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동쪽과 서쪽은 거주지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북쪽에서는 불교 사원과 탑이 발견된다. 동남쪽에서는 묘지와 관청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13세기 징기스칸에 휩쓸고 간 이후 인적이 끊겨 버려진 古城이 되었다.

 

주변은 깍아지른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자연적인 방어시설로 기능하였다.

 

퇴적층이었기에 그 흔적을 찾기는 쉽다.

 

연구자들의 답사모습. 그리고 하늘에 떠있는 달과, 렌즈에 묻는 먼지......ㅠ.ㅠ

 

주거지의 흔적이라고 한다.

 

남아 있는 불탑, 스투파.

 

불교 사원의 흔적이라고 한다.

 

물 저장고였다고...

 

아래로는 하천이 흘러 물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고성 부분은 잿빛인데 아랫 부분은 그야말로 녹색으로 빛난다.^^

 

전시된 교하고성의 항공사진.

 

2006년, 2012년 이렇게 두번에 걸쳐 교하고성을 방문해보았다.

버려진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는 유적은 볼 때마다 쓸쓸한 감상에 빠지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그러한 감상에서 벗어서 신장위구르 자치주의 핵심인 우루무치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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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역에서 침대열차를 타고 투루판으로 달려왔다.

아침 식사도 해결했을 것 같다. 사진들이 없다.ㅠ.ㅠ

투루판 역에서 2012년에는 투루판 지구(2015년에 투루판 시로 승격하였다.)로 이동하였다. 상당히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

이동 중에 보이는 수많은 펌프들. 석유를 뽑아내고 있는 장면이다. 석유 생산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는 투루판이었다.

 

 

투루판 시에서 북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투루판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카얼정 박물관이다. 

다음에 고창고성, 아스타나 고분군, 천불동, 화염산 순으로 방문하였다.

투루판 시내로 들어와 위구르 민가를 방문하고 소공탑을 방문하였다. 이후 남쪽 저지대 멀리 떨어진 애정호를 답사하였다.

양고기를 잘하기로 유명한 식당에서 약간의 퍼포먼스와 함께 저녁 식사를 즐기고 교하장원주점에서 하루를 묵었다.

 

입장권이 이것 하나 남이 있는데... 어데 입장권이었을지...

 

 

12시에 투루판 카얼정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베이징 기준의 표준시를 사용하기 때문에 시간 개념에 오차가 생긴다.^^

 

카얼정은 중국 용어이다. 세계지리 시간에는 카나트, 카레즈라고 배웠을 것이다. 건조한 지역에서 지하수를 이용하는 시스템이다. 수로를 만들어 보았자 뜨거운 햇볕이 금방 말라버리므로 물길을 지하로 개착한것이다. 매우 지난한 작업이었으리라. 간단한 도구만을 가지고 거의 수작업으로 경사지를 따라 지하에 물길을 만들어야 했고, 사고로 인명 피해도 많았지만 사막에서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물"을 얻기 위해서라면 감수해야 했으리라. 그렇게 만들어진 지하 관개수로가 카얼정이다.

고산지대의 만년설은 서서이 녹으면서 풍부한 지하수의 원천이 된다. 그곳에서 저지대의 농경에 유리한 지역까지 물길을 만들었다. 계속적인 보수가 필요했기에 수로의 필요한 부분으로 쉽게 접근하기 위해 뚫어놓은 구멍을 유지했단다.

 

어떠한 보강시설을 할 수도 없었다. 그냥 뚫어놓은 지하수로가 카나트, 카얼정이다.

 

측량 작업을 묘사한 전시물. 지상 작업자가 방향을 잡아주면....

 

지하 작업자가 그에 맞추어 채굴 작업을 진행한다. 지하 작업자가 파낸 토사는 구멍을 통해 밖으로 지상 작업자가 끌어올리게 된다. 그렇게 작업했단다.

 

그렇게 해서 확보한 지하수를 이용하여 생산하는 대표적인 농산물이 포도이다. 투루판은 질좋은 포도의 대량 생산지로 유명하다. 일조시수가 길기 때문에 건조 기후 지역은 사실 농업에 아주 유리한 지역이다. 다만 물이라는 필수 조건 한가지만 없어서 농사를 짓지 못하는데, 그 물조건이 해결되니 농산물 생산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투루판에서 도로를 따라 이동하다보면 흔히 동그란 둔덕들이 줄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커얼정이 있는 곳이다. 인공위성 영상으로 보면, 줄줄이 널려 있다. 중국의 카얼정 지하 수로의 길이를 모두 더하면 수천 km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2시 11분. 과거의 투루판의 지하에는 카얼정이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석유다. 도처에서 펌프질이다.

 

 

2시 40분. 고창고성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자마나 바로 예약되었던 나귀차에 탑승한다.

 

동력은 1 HP, 1 마력이다. 아마도...

 

비포장 도로를 잘도 다려간다.

 

고창고성은 투루판에서 동쪽으로 45km 정도 떨어져 있다. 성의 둘레가 5.4km이며, 내부에 호수도 있었단다. 460년 건국된 고창왕국의 근거지였다. 9세기 후반에 위구르인들이 이곳에 위구르고창왕국을 세우기도 했으나 13세기 중엽 몽골 유목민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망했다. 그래서 古城이다.

 

오늘날 고창고성의 중요한 기능은..... 그늘 제공이다.^^

 

버려진 폐허로 남아 있을 뿐이다.

 

2006년 방문했을 때 잠시 사용해본 공간. 지금은 고창고성의 일부분이 되었다. 사용되지 않는다.

 

원래는 외성, 내성, 궁성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다.

 

사막 식생이 잘 자라고 있다. 낙타풀이란다. 작은 수박 모양의 열매가 달린다.

 

고성, 그리고 고성을 찾는 사람들...

 

3시 30분. 고창고성을 떠난다.

 

3시 50분. 고창고성 인근에 위치한 아스타나 고분군을 방문하였다.

 

줄지어 입장해서......

 

지하의 묘실을 방문한다. 햇볕이 워낙 뜨거워 땅속으로 대피하는 느낌이었다.

 

4시 20. 베제클리크 석굴을 찾아가는 길에 잠시 멈추었다.

가는 방향 쪽에 있는 천산산맥의 눈녹은 물이 흘러내려오는 골짜기이다. 골짜기 바닥을 따라 물기가 있기에 녹색의 공간이 이어진다.

 

4시 40분. 베제클리크 석굴, 천불동에 도착하였다.

 

돈황의 막고굴과 마찬가지로 절벽에 굴을 파고 만든 석굴들이다.

 

7~12세기에 만들어진 석굴이라 한다. 80여 개의 석굴 중 50여 개의 석굴 내부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막고굴과 함께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불교 벽화와 함께 위구르 족의 마니교적인 벽화들도 함께 보존되었다.

 

19세기말~20세기초에 걸쳐 많은 부분들이 파손되고 도굴되었지만 남아 있는 부분들은 여전히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대부분 석굴이 보존을 위해 잠겨 있으며, 공개된 석굴들도 실내 촬영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직접 보고 싶어 멀리서 찾아온 탐방객의 처진 어깨는 그의 실망감을 대변하는 것 같다.

 

5시 20분. 도로가에 멈추어 화염산이라 알려진 산지를 구경하고 지나간다. 서유기의 그 화염산이라 하는데...

 

5시 50분. 투루판 시내로 들어왔다. 위구르 민가 방문의 시간이다.

 

생산된 포도의 출하 작업을 하는 작업자와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자.

 

그 유명하다는 투루판 포도 시식의 시간~~

 

그 유명하다는 투루판의 건포도 시식의 시간~~~ 여러가지 종류를 시식해볼 수 있었다.

 

잘 자셨으면... 이제는 이쪽으로......

 

투루판 포도가 빛나는 시간이었다.

 

6시25분. 투루판의 대표적인 모스크인 소공탑을 방문하였다.

1750년대 청나라는 몽골과 위구르에 대한 대대적인 정벌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서는 정복 지역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통치 정책을 취했다. 그 일환으로 1778년에 완공된 소공탑이다. 투루판 장군이었던 에민호자를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기에 현지에서는 에민 미나레라고 부른다. 한자어로 소공탑일뿐...

 

내부 공간.

 

탑의 높이는 44m에 이르는데 중국에 있는 미나레 중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처음 와보는 곳이다. 아이딩호(애정호). 해수면보다 154m가 낮은 저지대이다. 사해 다음으로 낮은 곳이며, 당연하게도 중국에서 가장 낮은 지점이다. 

 

애정호는 수심 1m 미만의 내륙 함수호인데, 대부분 물을 말라버리고 대형 염전으로 남아 있다.

 

사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게도 "세계내륙최저지점"이란 표지를 사용한다. 여긴 중국이다.

 

사진을 보니 렌즈에 먼지가 많이 붙었었나보다.ㅎ

 

낮은 곳에 왔으니 기념하는 사진 하나 남겨보았다.

 

9시 넘었다. 길가의 포도 출하 작업장에 버스 기사와 현지 가이드 아저씨가 다가간다. 포도 구입을 시도했었을 것이다.

 

11시가 넘었었다.

양고기를 먹어보자 하고 찾아간 식당이었다. 투루판에서 양고기 전문점으로 유명한 곳인 것 같다. 다른 블로그에도 보이더라. "서역소양항"이란 간판을 달고 있다고 한다.

 

이슬람 식으로 도축된 양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또한 무희들과 함께 즐거운 공연을 즐기는 시간도 갖는다.

 

맛있게, 그리고 즐겁게 저녁 식사를 하고 우리의 숙소를 찾아갔다.

 

투루판의 포도밭 사이에 위치한 투루판교하장원주점(吐魯番交河莊園酒店)이란 근사한 숙소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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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4일에는 돈황의 명소인 막고굴과 명사산의 월아천을 방문하고 유원역으로 이동하여 기차를 이용해 투루판으로 달려갔다.

아래 지도를 보면, 돈황의 남쪽에 위치한 기련산맥 쪽으로 동쪽에는 선상지 지형이 형성되어 있고, 서쪽으로는 엄청난 양의 모래가 퇴적된 명사산이 분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돈황이 예로부터 동서 교역의 요충지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 오아시스였기 때문이다. 메마를 때도 있지만 당하강을 통해 물이 공급되고 그보다 많은 수자원이 기련산맥으로부터 지하를 통해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돈황과 기련 산맥 사이에는 여러개의 선상지 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저 높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에 의해 운반되는 토사가 골짜기 아래에 퇴적되어 형성된 지형이 부채 모양이라 해서 선상지로 불린다.

돈황 바로 남쪽의 거대한 선상지의 제일 꼭데기 부분에 막고굴이 위치한다. 그 선상지를 만들어놓은 하천이 '대천하'이다. 거의 메마른 상태로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름은 거대한다. 大泉河.

 

9시 25분. 돈황을 출발하여 대천하 하곡을 따라 올라가고 있다.

남쪽의 기련산맥에서 흘러내리기 때문에 대천하는 남쪽이 상류, 북쪽에 위치한 돈황 방향이 하류가 된다. 넓은 물길 모양은 있지만, 물은 안보인다. 건너편 절벽에 있는 구멍들이 막고굴이다.

 

또... 왔노라...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아예 짐을 모두 맡기고 가야 한다. 귀중품과 돈을 빼고...

 

방문자들이 기념 사진을 남기는 뽀인트. 가장 규모가 큰 96호굴이다.

대천하변 절벽을 따라 1천여 개의 석굴이 뚫려 있어 '천불동'이라 불리기도 한다. 492개의 석굴이 발굴되었다고 하며 소수의 석굴들만 번갈아가면서 공개한다.

1900년 17호 굴에서 5만 점 이상의 경전, 문서, 자수 등이 발견되어 이를 연구하는 '둔황학'이 탄생할 정도였다. 그러나 우연히 이 자료들을 발굴했던 왕원록이 외국 조사대에게 헐값에 팔아넘겨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것은 6천여 점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때 팔려간 자료 중에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포함되었고, 그래서 프랑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게 된 것이라고...

그런 문화재 탈취의 현장이었다.

 

2시 20분. 명사산에 도착하였다. 주차장에 차를 맡기도 아주 아주 아주 멀리 걸어와야만 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놓았다.

 

입장권이 깔끔하다.

 

모래 세상 명사산이다.

 

기다리다가 번호표를 뽑았다. 낙타 표이다. 22번을 뽑았다.

22번 표를 뽑았는데, 123호 낙타를 배정받았다.

 

거리가 상당히 멀기 때문에 보통은 낙타를 이용한다. 돈황에서 며칠씩 보내는 경우라면, 그냥 물통 하나 짊어지고 걸어서 다녀보는 것도 괜찮겠다....

 

걸을테면 걸어보라고 계단도 설치해주었다. 가는 사람들이 있더라~

 

우리는 낙타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하... 다른 사람들이 올라가길래 따라쟁이는 아무 생각없이 따라간다.

 

결국 사구 꼭대기로 올라왔다.

 

높은 곳엘 올라오니 아래가 다 보인다.

 

2006년에 있었던 재밌는 모래 썰매가 사라졌다. 공산당 어느 한 사람의 어느 한마디에 그냥 사라졌단다.

대신 활쏘기가 생겼다.

 

별로 익사이팅한 것이 없다. 하산한다.

 

월아천도 6년 만이네...

 

월아천의 물은 늘 그대로라 하더니, 그것은 옛말이다. 수량이 점점 줄고 있는 추세란다. 없어질지도... 관광산업을 위해 수돗물을 채울지도 모르겠다.

 

명사산이 돈황에서의 마지막 일정지였다.

 

G215번 도로를 달려 돈황에서 유원으로 이동하였다.

역에서 탑승 수속을 하고 T197 침대열차에 탑승하였다. 표를 찍어둔 사진이 남아 있네.

 

밤 10시 20분 차로 예정되었던 것이 10시 42분으로 연발했던 모양이다. 늦은 시간이라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잤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진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자고 났더니.... 투루판에 다음 날 도착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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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3일. 돈황에서 잠이 깼다. 2006년 방문 이후 두번째였다.

이동경로를 표시하여 만들어 둔 지도이다.

 

GPS log 파일이 없어 그냥 위치 표시만 새로 해보았다.

돈황을 출발하여 제일 멀리 위치한 마귀성을 먼저 방문하고 한대장성, 옥문관, 양관 순으로 이동하였다. 돈황 일대는 기련산맥의 눈녹은 물이 지표, 지하로 공급되면서 생존이 가능한 오아시스 지역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8시 46분. 호텔 주차장 주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돈황국제호텔은 좋은 호텔이다. 2006년에도 같은 호텔을 이용했던 것 같다.

 

9시 11분. 돈황 길거리의 노점상 모습을 촬영하고 싶은 분이 내리셨다.

 

11시반. 돈황야단에 도착했다. 돈황지질공원이라고도 하지만 보통은 그냥 마귀성이라고 하는 곳이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멋진 이름에 대한 저작권이 없다. 그래서 그럴싸한 곳에는 그냥 멋져 보이는 이름을 그냥 붙인다. 아단지모 혹은 야단지모도 그렇게 마귀성이라는 이름도 여러 곳에 있다. 그렇다....

 

풍화작용을 오래 받으면서 기이하고 다양한 바위들이 장관인 곳이다.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상당히 넓게 마귀성이 깔려 있다. 

 

차를 타고 사막 어드벤처를 즐길 수 있다. 익스트림하고 서스펜스까지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냥 배내밀고 걷는다.

 

돈황에서 멀고 외진 곳이기에 찾는 이들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더라.

 

마귀성 정복자. 마귀성 슬레이어!!!

 

지학박물관이 가동 중이다.

 

이 지역의 제4기 지질 연대표를 보자. 보았으니 다들 무슨 내용인지 파악했을 ......

 

황량한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된 영화로는 2000년 개봉한 와호장룡, 2003년에 개봉한 장예모 감독의 영웅 등이 유명하다.

 

3시. 한대장성에 또 왔다.^^

 

한나라 시절에 이곳까지 영역이었고, 방어를 위해 이 메마른 땅에 성벽을 만든 것이다. 풀과 흙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건조기후 지역이기 때문에 마르고 난 다음에는 아주 단단하게 굳기 때문에 장성벽 만들기에 적절하지 않았나....

 

탐방객들.

 

3시 반. 옥문관에 또 왔다.^^

 

2006년에 방문했었을 때는 저 비석의 아랫부분이 바람에 파여 있었는데, 보수 공사를 해놓았다. 원상 복구.

 

주변 유적지 분포

한무제 때 이광리가 페르가나 원정을 한 이후 돈황의 오아시스가 군사기지로 발전하면서 옥문관은 양관과 함께 서역으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8세기 이후 당이 쇠퇴함에 따라 거점은 동쪽으로 후퇴하고 옥문관은 버려지게 된다.

 

5시. 양관으로 점프.

 

양관 일대의 가이드 맵.

 

멋진 기념 사진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아저씨들이 왜 여기에??

한대의 유적지에 진나라 때의 것을 가져다 놓으면 워쩐다냐!!!

 

마차타고 사주지로를 달려가는....

 

수봉관양.....

 

6년 전 방문하였을 때와는 비교도 안된다. 하늘 상태가.... 황사 세상.

 

사막이라고 해서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끔 아주 가끔 내리는데 그 양이 적을 때가 대부분이지만 의외로 많은 양이 쏟아지기도 한다. 그때는 사정없이 땅바닥을 파고 내려간다. 그러한 살벌한 침식의  흔적이 양관과 돈황을 연결하는 큰 도로 주변에 마구 나타나더라.

 

 

7시반. 저녁 식사를 즐기는 일행의 사진들이 남아 있으니 그때 저녁 식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0시 반이었다. 돈황의 야시장을 돌아보다가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곳에서 처음 만났던 중국 상품, 紅牛. 가이드 아저씨가 굉장히 좋은 중국제이라고 추천해주더라. 홍우....

그것은 바로 RED BULL 이었다. ㅎㅎ

그렇게 홍우와 함께 돈황의 밤이 깊어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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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2일을 가욕관빈관에서 시작하였다. 현관의 모습.

 

건물 옥상에 간판 글자들이 보인다. 건물이 그렇게 컸을 것 같지는 않다.

 

숙소에서 출발하여 만리장성과 관문의 모습을 알기 쉽게 만들어놓은 관광지인 장성박물관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만리장성의 모습을 알 수 있는 현벽을 직접 걸어보고 만리장성의 끝단이라고 알려진 제1돈을 답사하였다. 그리고 G30 고속도로를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려 돈황으로 이동하였다.

 

"천하 제일의 웅장한 관문 - 가욕관"이란 판떼기가 있는 곳을 가장 먼저 방문하였다. 장성박물관이라 보심 되시겠다.

 

과거에는 캬라반이 낙타를 끌었지만, 오늘날은 행글라이더를 탄다.

 

줄서서 입장하여 언덕을 올라가면 보이는 복원된 관문 모양에 "천하웅관"이란 글자가 그려진 낡아보이는 판떼기가 달려 있다.

 

안내지도.

 

공사중...

 

중국 문명의 보호, 계승 및 혁신적 발전을 위한 시범 지역을 조성하기 위해 가욕관 문화유산 보호 프로젝트를 구현한다고 적혀있다.

 

남아 있는 것에 "새" 옛날 것들을 더 웅장하게 열심히 덧붙이고 있다.

 

우리 연구자들의 답사 모습.

 

멀리 보이는 기련산맥, 중간에 보이는 열심히 달리는 기차, 가까이 보이는 도로.

 

재현해 놓은 병영 모습.

 

이곳의 장성은 토성이었다.

 

무엇을 근거로 했을까 하는 궁금한 점도 있지만 열심히 복원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빠진 병사!!

 

공연 중인 병사!!!

 

헤어 스타일에 신경을 좀 쓰는 병사!!!!

 

짱박히... 아니 창박힌 병사!!!!!

 

도대체 가면이 몇 겹이었는지... 세다가 포기하게 한.... 누구??

 

'야외' 박물관을 보았으니 이제 '실내' 박물관을 본다.

 

이 정도 남아 있는 것들을 열심히 새로 만들고 있는 것인가보다.

 

유명한 출토물인 것 같다. "마답비연". 날아가는 제비를 딛고 뛰는 말의 모습을 표현했단다.

1969년 감숙성 무위의 뇌태한릉에서 출토된 청동조각상인데, 후위의 것으로 추정되며 전통적인 명마라 일컬어지는 한혈마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현지 여행사 설립을 꿈꾸고 있던 현지 가이드 아저씨가 가이드 자격증에 마답비연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보여주었었다.

 

위진벽화묘에 있는 그림 벽돌도 전시되어 있더라.

 

가욕관을 묘사한 디오라마.

 

장성 제1돈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기련산맥에서 눈녹은 물이 흘러내려 형성된 하천인 북대하 주변에 형성된 하안단구 지형을 이용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2시. 현벽장성경구에 도착하였다.

 

저거다. 저렇게 높게 있어 '매달린 벽'이란 의미의 "현벽"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힘들어 보여도 한발한발 걸어가면 된다. 힘들다....

 

먼저 걸어가는 팀이 있더라. 장성을 넘어 서역으로 가고 있는 캬라반을 묘사한 조각상.

 

현벽장성의 상태를 보면... 복원해놓은 것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진짜 저기까지 올라가는 사람이 있구나!! 누구였을까??

 

나는 가는 척만 하고 말았는데...

 

나는 옆으로 빠졌다.

 

이건 머지??? 접대실???????

 

보은당은 뭐꼬? 

 

높은 곳마다 무엇인가가 만들어져 있다. 역시 높은 곳은 아래에서 보아야 높아보인다.

 

사막의 생명줄인 관개수로, 그리고 주변의 농경지. 주변에 위치한 대초탄 저수지로부터 공급되는 물이다.

 

물길을 조절하는 수문. 옆에 적혀있는 게 뭔가 했더니, 티켓없이 입장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는 말이더라.

 

열려있는 수문.

 

여기가 현벽장성이었다.

 

2시. 가욕관 시내의 초원영웅식당을 나온다. 가욕관빈관 주변에 위치한다.

 

메뉴판이다.

배가 많이 고팠던가... 식당 사진들을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야 만들어두었더라.

 

장성의 끄트머리, 하천변에 돈대를 설치했던 흔적이란다.

 

안내지도.

 

멀리 보이는 기련산맥에서 발원하는 북대하가 좁은 골짜기를 이룬다. 주변에 병영을 근사하게 복원해놓았다.

 

출렁다리가 만들어져 있어 출렁출렁을 즐기며 건너가 볼 수 있다.

 

퇴적층의 두께가 상당하다. 그 아래로 많은 흐르는 흙탕물.

 

퇴적물이 마구 뒤섞여 있다. 이런 상태를 보여주는  곳은 퇴적물질들이 서서히 퇴적된 것이 아니라 여러번에 걸쳐 급작스럽게 많은 운반물질이 쓸려내려온 것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돌들은 상당히 둥글다. 이것은 하천을 따라 꽤 오래 멀리 운반되는 과정에서 서로 부딪히고 마찰되면서 깎여나갔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메마르고 뜨거운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암석 상태이다. 햇볕에 가열되어 바짝 마르면서 암석 내부에 있던 온갖 미네랄들이 표면으로 끌려나오는 것이다.(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ㅠ.ㅠ)

 

비가 내리곤 하나... 바닥에 메마른 소금기...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수분을 뽑아내어 생존하고 있는 사막 식생.

 

하천 반대편의 저 시설은 벙커....가 아니라 짚라인을 타는 곳이다.

 

이쪽으로 날아와 저기에 팍 부딪히고 살아남으면 된다...... 살아야 한다. 직원의 뒷편의 그늘에 숨어 삐대고 있다.

 

사막의 로망은 역시나! 먼지닷!!!!

3시 10분. 가욕관을 떠나자.

6시. 길가에 잠시 쉬어간 곳이다. 돈황까지 절반 왔다.

길가의 "아단지모" 표지판. 야단지모라고도 하는데 처음 실크로드를 지나며 보았을 때 그것이 해당 지역의 지명인 줄 알았었다. 나중에 보니 아무데나 야단지모가 널려 있었더라. 야단 떨만한 땅 모양, 지형이 있는 곳이면 그냥 야단지모! 감숙성 안서 지방의 극도로 건조한 사막 지형을 야단지모라고 하였는데, 전혀 야단 떨만한 곳은 아니었다.

 

오후 8시 반. 돈황국제호텔에 도착했다.

해가 훤한 것은 베이징 중심의 단일 시간대를 사용하는 넓은 중국의 사정 때문이다. 서쪽 멀리 떨어진 곳인데 동쪽 먼 지방을 기준으로 정해진 표준시를 사용하기 때문인 것이다. 다른 시간대를 사용하도록 해야할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어느 지방에 대해 중앙과 다른 무엇을 인정해주면 발생하게 될 정치적 문제를 극도로 조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사진은 또 없네. 먹고 잤을 것이다.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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