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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늦게 도착하여 포르투갈 어로 '하얀 집'이라는 뜻을 가진 카사블랑카가 과연 흰색인지 검은색인지도 구별하지 못했었다.

베르베르 인들의 어항이었던 파괴된 고대 도시 안파 자리에 1468년 포르투갈 인들이 건설한 도시이다. 1757년에 모로코 술탄에게 점령되었고, 18세기 후반에 무역항으로 재건되어 1906년에는 무역액이 탕헤르를 앞지르면서 모로코 제1의 항구가 되었다. 1907년에 프랑스가 점령하였다. 영화 '카사블랑카'에 프랑스 군이 등장하는 이유가 되겠다.

 

핫산2세 모스크를 살펴보고 탕헤르를 거쳐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는 날이다. 세비야까지 달렸다.

 

핫산2세 모스크는 대서양 해변에 건설되어 있다.

 

오늘도 새벽같이 출발하였다.

핫산2세 모스크가 어둠속의 조명으로 장식되어 있다.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모스크라고 한다. 현 핫산2세 국왕이 국민의 성금을 모아 1987년부터 1993년까지 7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완공된 것이다. 바닷가에 지은 이유는 "신의 옥좌는 물 위에 지어졌다."라는 코란의 구절을 따른 것이다.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10만 명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규모라고 하니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겠다. 대단하다~

 

건물 만 보고 나간다. 

 

우리 일행말고도 다른 팀들이 많다. 모스크 위의 하늘에 달님이 떠계시다.

 

어둠 속에 몰래 들어왔다가 어둠을 틈타 몰래 도망가는 것 같다. 그렇게 카사블랑카는 다녀온 듯 안다녀온 듯한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카사블랑카를 떠나 라바트를 지났다. 작은 도시 케니트라 주변에 있는 주유소에서 우리는 쉬고 버스는 기름을 먹었다.

올리브 농장

 

A1 고속도로에 있는 휴게소이다. 주유소 뿐만 아니라 식당과 놀이 시설도 있었다.

 

탐나는 재털이도 있었고.

 

아드님의 고개는 오늘도 위태롭다.

 

탕헤르로 접어든다.

 

하차. 식당이었다. Ahlen. 호텔을 겸하는 식당.

 

계속 우리를 따라 다니는 에스파냐 아가씨.

 

식당의 그림.

 

식당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소년들. 

이 친구들이 버스에 매달린다. 실내로 들어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버스의 엔진룸, 차체의 하부 등에 숨어든다. 식당, 호텔 등에서 빈 버스에 이런 소년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밤을 세워 경비하는 알바가 있을 정도이다. 숨어드는 이유?

에스파냐로 밀입국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1년이면 한 건 정도의 성공 사례가 있을 뿐이지만 이 소년들은 달리는 외국 버스에 달려들어 매달린다. 에스파냐에 입국하기만 하면 인생 제2막이 열린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탕헤르 근교 농촌. 헹여나 아이들에 차에 달라붙을까봐 버스 기사 아저씨는 과속을 하며 달렸다.

 

탕헤르 항에 도착하여 버스 하차. 출입국 사무소로 가면서 보니 버스 기사가 경찰을 대동하고 버스의 이곳 저곳에 기다란 막대기를 쑤시고 있었다. 그렇게 조심을 했는데도 나중에 들으니 아이들 8명을 버스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탕헤르에서 받은 여권의 출입국 도장. 2012년 1월 9일에 입국하여 11일에 떠났다. 그렇게 떠났다.

 

타리파 항을 출발하여 다시 아프리카 쪽을 돌아본다.

타리파 부근의 언덕에 전망대가 있다. 

 

Mirador de Estrecho. 해협 전망대라는 의미이다. 아프리카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는 일행.

 

저멀리 구름 아래로 흐릿하게 아프리카가 보인다.

 

바로 옆으로 풍차도 보인다.

 

 

그리고 다시 달렸다. 그리고 잠들었나보다.

 

세비야에 도착했다.

 

610km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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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나라 중에서 모로코부터 만나기 시작했다.

얀 아르튀스-베르트랑 아저씨의 "하늘에서 본" 시리즈 중 모로코편을 대표하는 작품, 가죽 무두질 공장에서 염색공정으로 유명한 곳, 페스를 방문하는 날이다.  중세의 도시 유적이 그대로 살아남아 숨쉬고 있는 곳을 찾아간다.

 

카사블랑카까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꼭두새벽같이 숙소에서 출발하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멀리 아틀라스 산맥 너머로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선입견이 박살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깔끔하고 잘 정리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A1 고속 도로 주변 농가에 자주 보이던 커다란 말뚝. 사일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도로 옆으로 단선이기는 하지만 전철도 지난다.

 

Moulay Bousselham 부근에 위치한 주유소에서 쉬어갔었다. 아프리퀴아. 지금 검색해보면 Station Winxo라고 나온다.

 

자루들을 당나귀에 싣고 있었다. 

방앗간인 것 같았다.

당나귀

당나귀

당나귀가 일반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운송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도로 주변의 농경지가 아주 아주 아주 넓게 펼쳐져 있다.

 

모로코 국기가 펄럭인다.

 

창밖으로 커다란 물탱크가 보였다. 페스로 가는 길가에 있는 Sidi Chahed 저수지.

전체적인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 모로코 곳곳에 커다란 저수지들이 조성되어 있다.

 

1시쯤 페스에 도착하였다. 왕궁엘 먼저 들렀다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다는 미로도시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사람들이 문앞에 모여 있다. 좀 들여보내줘~

 

이 아저씨들이 막고 문을 안열어준다. 근무 자세를 보니 가운데 아저씨 짬이 제일 쎈듯~

 

초록색 별이 그려진 붉은 색의 모로코 국기가 휘날리는 왕궁의 입구만 살펴볼 수 있다.

지금은 모로코의 수도가 라바트이지만 과거 모로코 왕국의 수도는 페스였다. 801년 이드리스2세가 수도로 삼은 이후 마그레브에서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대서양 연안의 카사블랑카, 라바트에서 지중해 연안의 알제로 통하는 대상로의 요지로서 상공업이 발달하였다. 857년 창립한 이슬람 신학대학과 아랍 문예 중심 역할을 하는 알 카라윈 대학도 위치한다. 페스가 구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꽤 규모가 크며  전체 인구는 백만 명이 넘는다. 모로코에서 카사블랑카 다음으로 인구 규모가 큰 도시이다.

 

 

입구 옆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아랍어 글자들. 오른쪽에서 왼쪽, 위에서 아래로으로 읽으면 되시겠다. 글자가 곧 그림이다. 캘리그라피에 최적화된 문자가 아닌지...

 

페스의 거리 상가.

 

8세기에 건설된 이후 예전의 도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시간이 멈춘 중세 도시'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그래서 인디아나 존스, 알라딘 등과 같은 영화들의 배경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페스는 크게 2개의 구역으로 나뉘는데, 프랑스 식민지 시절 유럽풍으로 건설된 도시 '페스 알 제이디드'와 미로 같은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옛 도시인 '페스 엘 벨리'가 있다. 옛 도시, 미로 도시, 시간이 멈춘 중세 도시로 빨려 들어간다.

 

골목을 좁게 만든 것은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좁은 골목이 계속 방향을 바꾸며 이어지기에 햇볕이 들지 않아 낮에도 많이 덥지 않다.

 

머리 위로 간판이 보인다. Restaurant Al Fassia. 먹을 때이다.

 

건물을 바깥쪽은 흙덩어리였는데, 내부는 근사하게 꾸며져 있다. 외부와 내부의 때깔이 너무나도 다르다.

도시 건설의 모토가 '만민에게 평등한 도시'였다고 한다. 밖에서 보면 건물들이 다 똑같이 생겨 어느 집에 사는 어떤 사람이 얼마나 부를 일구었는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부를 들어가 보면 생활수준의 격차가 매우 크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 식당도 내부를 보니 꽤 부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풍성했었던 식탁. 2012년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처음보는 음식 사진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못했었던...ㅠ.ㅠ

 

장식용 총? 사용가능?

 

미로 골목 탐사를 계속한다.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역사 도시이다. 즉, 너무나도 오래된 도시라는 말이다. 붕괴 위험이 있는 곳들을 보강하는 공사가 이루어져 있다.

 

골목이 좁아도 너무 좁다.

 

페스에서의 GPS 로그 기록이다. 곳곳에서 신호를 제대로 수신하지 못하여 이리저리 튀었다. 페스 구시가지는 GPS 신호 수신이 제대로 안될 정도로 가려진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도시가 되시겠다.

골목을 다니면서 몇 곳의 상점을 안내인의 안내에 따라 방문하기도 하였다.

 

직물 공장 및 상점. 앞에 가는 아가씨는 설마 그 에스파냐에서 따라 다니던 그 아가씨?

 

상점이 곧 공장이기도 하다. 그릇에 장식을 새기는 장인의 손길. 못과 망치가 도구의 전부.

 

작품.

작품.

작품.

 

옷가게.

 

골목이 조금 넓은 곳에는 차양을 드리워 놓았다. 햇볕 차단 철저!

 

신발 가게.

 

빵가게.

 

끝이 막힌 골목처럼 보이는데 가보면 어느 방향으로든 길이 열려 있다. 미로다.

 

작업중.

 

제일 앞에서 우리 일행을 선도하던 아저씨. 페스 여행자들을 위해 미로의 골목길을 그린 지도를 판매하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미로 속에서는 지도를 들고 현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방법이 없어 길을 잃게 된다고 하니 답이 없다. 그래서 골목길을 안내하는 안내인이 따로 있을 정도. 앞의 저 아저씨가 우리 일행의 길잡이이다. 양복을 근사하게 차려입고 콧수염이 멋진 아저씨.

한두명의 여행자가 무작정 방문할 경우 서로 안내를 해주겠다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극히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 수도 있다는 얘기가 많으니 조심 또 조심...

 

이런 식으로 보강 공사를 하면서 계속 버티는 역사 도시.

 

위로는 하늘이 조금 보이는 듯 하지만 아래는 깜깜하다. 더위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골목길을 오가는 사람들, 장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함께 하는 역사 도시이다.

 

광장이다.

 

이 정도가 넓은 광장으로 보일 정도. 커다란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준다.

 

드디어 왔다. 그곳에. 세모 모양이 붙어 있는 것은 페스에서 사용되는 관광객용 안내표지판이라고 한다. 길을 잃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이런 것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봐도 모르겠다.

 

좁은 골목의 작은 문으로 들어간다.

 

좌악 줄서서 기다리다가 순서대로 들어간다.

 

벽에 걸린 페스를 유명하게 만든 사진.

 

입구에서 왠 아저씨가 풀을 조금씩 나누어준다. 뭐지? 일단 받아둔다.

 

Chouara Tannery. 가죽 무두질 공장이다. 가죽을 가공하는 모든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모든 재료, 처리 방식이 예전의 것 그대로이다. 가죽 원단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새똥 등의 '천연' 재료를 이용하여 가공, 처리한다고 한다.

가공 방식 또는 '천연'이다. 사람들이 직접 손과 발, 온몸을 이용하여 작업을 한다. 

새똥?

그렇다. 냄새가 어마무시하다. 꽤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어질어질 할 정도.

입구에서 들어올 때 나누어준 풀이 냄새를 막는 것이었다. 일명 '향기나는 풀'. 

탕헤르 등지에서 외국인에게 접근하여 이 풀을 내미는 현지인들이 있다고 한다. 주고서는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도록 한다. 향기가 난다. 그 다음 단계는? 돈냄새로 이어진다고. 향기를 맡았으니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가죽 제품의 가격을 의외로 상당히 비싸다. 모든 과정을 수공업으로 천연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것이기 때문에 비쌀만하다고 평가된다.

 

창밖으로 보이던 의외의 장면. 아래의 골목으로 다니면서 보이는 것은 그냥 좁은 골목 밖에 없는데, 지붕 위에는 인공위성 안테나로 도배되어 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중세 도시, 역사 도시의 이미지가 확 날아가는 순간이었다.ㅎㅎㅎ

 

'현대 도시' 페스의 골목길을 계속 걸어서 빠져 나간다.

 

가죽 공장에서 처리되기 위해 배달되고 있는 가죽 원단. 골목이 좁아 원재료와 제품의 운송도 수공업으로 이루어진다.

 

가죽 제품 판매상.

 

봉제 공장.

카스바의~, 아니 스카프의 여인~

 

곱게 전시된 스카프들.

 

벽에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화살표를 따라가면 미로에서 탈출할 수 있다.

 

에어컨이 있는 집. 좀 있는 집인 것 같다.

 

미로도시에서 탈출하였다.

페스 구시가지의 남쪽 언덕에서 멈추어 도시를 조망해 보았다.

 

페스에 기념 흔적을 남기는 일행.

 

페스를 떠나 라바트를 향해 A2 고속도로를 달렸다.

 

라바트에 도착하여 핫산2세 탑과 모하메드5세 묘만 방문하고 카사블랑카로 이동하였다.

 

입구를 지키는 잘생기고 멋진 근위기병. 말과 근위기병이 모두 얌전하기에 옆에 서서 같이 기념 흔적을 남길 수 있다.

 

12세기 말 알모하드 왕조의 3대 야콥 알 만수르가 장대한 모스크 건설을 시도했으나 그가 죽으면서 공사가 중단,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는 곳이다.

 

한 변의 길이가 16m의 정사각형으로 높이가 44m까지 올라가다가 중단되었다. 300개 이상의 돌기둥 역시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다.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모스크가 될 수 있었는데, 그 흔적만 남게 되었다. 흔적이라 하면 대부분은 파괴된 것인데, 여긴 만들다 멈추어진 흔적이다.

 

나도 흔적을 남겨본다.

 

아들과 함께. 이 녀석 또 뒷굼치를 들고 있었다.

 

바로 옆에 모하메드5세 묘가 있다.

 

내부에 들어가서 보면....

 

아랫쪽에 거하게 장식된 묘가 있다.

이렇게 역사적인 장소에 이렇게 거한 묘를 조성한 이유는 모하메드5세가 모로코의 초대 국왕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독립 운동을 지도하다가 코르시카 섬에 갇혔다가 마다가스카르로까지 추방되었었다. 1955년 귀국했고, 에스파냐와 프랑스 간의 조약으로 1956년 모로코가 독립되면서 1957년에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급진적인 대외 정책을 펼치다가 1961년에 사망하였다.

 

 

하늘을 날아 멀리 가버리는 비행기의 흔적.

 

늦은 시간 오밤중에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616km를 새벽부터 오밤중까지 흔적을 찾아 흔적을 만들며 이동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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