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중랑천을 넘어가보는 일탈을 저지르면서, 가까이 있으나 수십년을 살아오면서도 몰랐던 동네의 모습을 새롭게 알게 되는 재미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동네 개천인 당현천이 중랑천과 합류하는 곳의 건너편에 야트막한 동산이 하나 있는데, 여기가 초안산이다. 초안산 속으로 들어가 각심재, 수국공원을 방문하면서 재밌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선 왕실과 관련되었던 많은 이들이 '조용하게' 묻혀 있다는 것이 생각나 찾아보고 싶어졌다. 사모하는 옆지기님을 모시고 집을 나섰다.
당현천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여 한내교를 이용해 중랑천을 건넜다. 월계역을 통과하여 계단 바로 옆으로 초안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있었다. 정상부에 녹천정이란 쉼터가 마련되어 있고 바로 아랫쪽에 조선 시대 내시들의 문화를 대변하는 '승극철 부부묘'가 조성되어 있어 살펴볼 수 있었다.
구한말의 독특한 가옥 형태를 보여주는 '각심재'를 담당 너머로 구경하고 비석골공원에서 다양한 문인석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초안산 정상(115m)으로 이어지는 아기소망길을 따라 걸으며 조선시대 분묘군의 흔적을 살폈다.
내시 무덤을 대표하는 것이 '승극철 부부묘'라면, 상궁의 무덤을 대표하는 것이 '상궁 개성박씨묘'일 것이다. 승극철 부부묘는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고 뗏장도 새로 입혀져 있었는데, 개성박씨묘 부근에는 온통 잡초가 우거져 있어 씁쓸했다.
10.14km를 2시간 반에 걸쳐 걸었다. 작은 동산이지만 비탈을 오르락 내리락 했고... 15,253보라고 스맛폰이 알려준다. 발바닥이 힘들다고 부부의 의견이 일치해 중계역에서 나머지 구간은 버스를 이용했다.^^ 산길이 포함되었었는데, 평균 속도가 시속 4.1km였다고 하니 준수하게 걸었던 것 같다.
초안산의 조선시대 분묘군은 사적지 제440호 지정되어 있다.
초안산의 꽤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궁녀나 내시나 자신의 후손을 마음대로 남길 수 없는 신분의 사람들이었다. 아기를 갖기 원하였을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분묘군 사이의 산책길에 '아기소망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당현천 산책로를 따라 조성된 꽃밭에서 비행기 소리가 작게 나길래 찾아보니 커다란 벌레가 날고 있었다.^^
사진을 찍어 검색해보니 꼬리박각시라고 나오더라. 꿀을 찾아 이꽃 저꽃을 방랑하는... 새소리를 내는 곤충.
당현천의 청둥오리 가족은 휴식 중. 때깔이 예쁜 오리가 숫컷이라니...
당현천이 중랑천이 합류하는 공간이 '만남의 광장'이라는 작은 쉼터가 조성되어 있었다. 누군가 자꾸 돈을 쓰고 싶어하는가보다. 학여울아파트옆 동부간선도로옆의 자투리 땅에다가 휴게소 건물을 신축하고 있다. 이 휴게소는 노원구의 공무원들이 운영을 할까? 아니면??????
중랑천 건너편으로 보이는 초안산. 오늘의 답사 목표지가 되겠다.
학여울청구아파트와 월계역을 연결하는 도보교인 한내교를 통해 중랑천을 건널 수 있다.
초안산과 중랑천. 멀리 도봉산의 우람한 산세가 보인다.
월계역 입구. 실체와 허상.
초안산 속에 배드민턴장이 있다. 궁금했다. 왜 남자회원의 월회비는 여자회원보다 5,000원이 더 비싼지...
작은 동산이라 정상부에 금방 도착했다. 작은 쉼터인 녹천정.
주변 정리를 잘 해놓아 따스한 햇볕을 받고 있는 '승극철양위지묘'. 부부묘이다?
"통훈대부행내시부상세승공극철양위지묘'라고 비석에 비문이 적혀있다.
비문의 주인공인 승극철은 숙종대의 정6품 내시였다. 조선시대 내시는 궐내의 음식물의 감독, 왕명의 전달, 궐문의 수직 등을 담당하던 내시부의 공무원이었다. 이곳에 승극철의 조부인 김계한 등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는데, 양주로 이장하고 승극철 부부묘만 남아 있다. 양자를 통해 대를 이었기 때문에 조손의 성이 서로 다르다.
연양군파라는 이름난 내시 문중을 이루었던 승극철 가계에 대한 기록과 부인과 함께 묻혀있는 모습을 통해 내시 또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으며, 양자를 통해 가문을 만들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초안산에는 내시들을 비롯해 양반과 서민 등 조선시대 분묘 1,000여 기가 있었기에 조선시대 분묘군 사적지(440호)로 지정되었다.
등산로를 따라 내려왔는데, 계단에 누가 철조망을 엮어놓았다. '아기소망길' 공식 표지판과 "사유지 출입금지"라며 막고 있는 철조망이 함께 하는 곳......
월계동의 각심재를 찾았다.
세번째로 찾아온 것으로 기억한다. 여전히 담장 안쪽 저 멀리에 잘 계신다.
건물 앞에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친절하게 해주고 있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지만, 출입이 통제된 담장 안쪽 저 멀리에 있어서 볼 수가 없다. 담장 밖에도 같은 안내판을 하나 더 설치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월계고등학교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비석골공원이다.
공원 한쪽에 문인석이 많이 모셔져 있다.
문인석의 복식과 모자의 형태가 다양하다. 신분과 직위에 따라 다르게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 산 카메라가 손에 익지 않아 실수를 했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면서 카메라의 노출조절 레버가 막 돌아갔나보다. 엄청난 노출 오버!!!
아기소망길을 통해 초안산을 오른다.
길옆으로 곳곳에 분묘가 분포한다.
관리가 안되고 버려진 석물들도 많이 눈에 띈다.
길목을 지키고 서계신 문인석.
'조선시대'의 분묘들이라서 그런지 대체로 관리 상태는 좋지 아니하다.
'상궁개성박씨묘' 표지판을 찾았다. 묘지 표지판인지, '잣나무힐링숲' 표지판인지는 고민이 좀 필요하다.
초안산 산책로 '아기소망길'의 "잣나무힐링숲"에서 초안1단지아파트 방면으로 산비탈을 좀 내려가서 잘 찾아보면...
잡초 속에서 숨겨진.....
'상궁 개성박씨묘'를 발견할 수 있다.
"조선국상궁개성박씨묘"라는 비문이 보인다.
'상궁개성박씨'는 조선 영조대의 정5품 공무원이었다. 비문이 남아 있는 단 3기의 궁녀 묘비 중 하나이다.
상궁개성박씨묘를 찾아보고 비탈길을 올라오다가 뒤를 돌아보니....
산책로쪽으로 등을 보인 문인석이 하나 있다. 초안산에서 왕께서 계신 쪽을 바라보는 문인석이라 왕을 그리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석물은 남고, 분묘는 사라지고...
아기소망길 곳곳에 쉼터와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헬기장도 있다.
등산안내도에 "특별순찰구역" 표시가 되어 있다. 어쩐지 경찰 아저씨(?)들이 여럿 돌아다니더라니.... 그런 것이었군.
초안산캠핑장 쪽 등산로를 통해 하산하였다. 이쪽 방향에는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주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길가에 떨어져 있는 은행들이 향기를 내뿜는 길을 지났다.
녹천교를 통해 중랑천을 건너 귀가하였다. 스맛폰 카메라는 하늘을 참 파랗게도 바라본다.
가까이에 있으나 내가 찾아보지 않아 몰랐던 곳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오늘도 그러한 하루였다.
답사 대상 지역은 단톡방에서의 아주 활발한 논의를 통해 영남 알프스 지역으로 합의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지역을 답사하기로 이미 지난번 모임에서 결정이 되었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거긴 다시 다음으로 미루고.... 전국에서 합류하니 모이는 뽀인트를 큰 동네로 잡았다. 대구시.
일단 KTX를 이용해 모이고, 곤란하면 차량을 이용해도 되는 조건이었다.
동대구역까지 갔다가, 답사후에는 밀양역에서 귀경하는 일정으로 잡아 열차표를 예매했다.
27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준비해둔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지하철 "4호선을 이용해 서울역에 하차하여 KTX 탑승장까지 가장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검색하여 숙지하고 출발했다. 이러한 경로 검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이 경로를 정리해 보여주는 블로그 결과들이 아주 많더라.
4호선 열차의 7, 8호 칸에 탑승했다가 서울역에 하차하여 앞에 보이는 계단으로 올라가 공항철도 탑승구 쪽으로 이동하다가 '15번' 출구로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성공!!!
나는 촌놈이었다. KTX 열차에 탑승하여 닫힌 문을 열지 못하고 멈칫거렸다. 들어가질 못했다. 뒤에 도착한 젊은이가 문을 여는 시범을 보여주더라. 그런데 왜 실실 웃으면서 보여주었는지.(창피 & 감사).....
손잡이를 옆으로, 아랫쪽을 이쪽저쪽으로 움직였었는데...... 안움직이더라.ㅠ.ㅠ
수직으로 서 있는 모양인 손잡이의 윗쪽을 기울이니 열리는 것이었더라. 닫을 필요도 없더라. 자동으로 닫히더라. 에고...
잘 달려서 그 유명한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처음 와보는 멋진 곳이다.
"동대구역 광장" 앞에 위치하고 있는 백화점의 식당가에서 멤버 중 3인이 합류하여 점심 식사를 같이했다.
그리고 멤버의 지인이 근무하고 있는 달성고등학교를 방문하여 지인분으로부터 커피를 대접받았다. 감사~
커피를 마시면서 역시 '지리'를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다들 스맛폰을 열더니 지도앱을 검색하고 있더라.......
전체 멤버들의 모임 예정 시간과는 여유가 좀 있어서 예정에 없는 '불시 답사'를 진행했다.
낙동강 변의 야구장을 찾았다. 배후산지의 형태가 범상치 않아 찾아온 것이다.
야구장의 주차장과는 조금 떨어진 진입로로 들어왔더니.... 경치가 참 좋다.
열심히 훈련 중인 어린 선수들의 모습이 대견하다.
낙동강 변의 여유 공간을 활용한 방천리 야구장이다.
방천리에 위치한 와룡산의 산줄기가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어 어떤 곳인지 궁금하여 찾은 것이다.
북쪽으로 열린 작은 분지 지형이었다. 과거에 크레이터는 아니었을까? 네이버 지도를 보면서 많은 상상을 했다. 산정부가 동그랗게 분화구 모양이었을 것만 같은데, 북쪽으로 열린 지형을 이루게 된 과정은 어찌? 낙동강의 흐름을 보면 공격사면도 아니라 침식작용이 강했던 것도 아니었을 것 같은데. 와룡산(299.7m)의 과거가 궁금해졌었다.
현재는 무엇인가의 매립장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무엇인가의 소각장이 입구에 위치해 있다.
야구장 위로 KTX가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 멀리 보이는 멋진 현수교는 와룡산 앞에 위치하고 있어 와룡대교이며, 더 멀리 보이는 다리는 금호대교이다.
대구 시가지의 모습이 서광을 받아 빛나고 있다. 빛나는 멋진 도시, 대구.
예약된 숙소는 동대구역 부근의 신천4동에 위치한 곳이었다.
부근의 근사한 식당을 찾아 근사하게 저녁을 먹었다. 톳밥이라 하더라. 나물들을 집어 집어 집어 넣고 샥샥샤악 비벼서...^^
숙소에서 저녁 세미나를 시작하려 한다. 안돼!!!!
이 공부와 연구에 미친 사람들......
'동사산릉', '야주하천' 같은 개념을 처음 접했다. 아... 이런 무식한 놈...ㅠ.ㅠ
제대로 들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부하자.....ㅠ.ㅠ
대구에서 맞이하는 아침...
숙소의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포스터...
숙소에서 짐을 싸들고 나오며 만나는 따스한 햇살.
대구를 떠나 고령을 먼저 찾아갔다.
1. 반운리의 구하도 지형을 관찰할 기회를 가졌다.
2. 경부선 원동역 부근에서 낙동강과 철로, 열차가 함께 하는 모습을 답사하였다.
3. 만어사 주변의 Block Stream을 답사하였다.
4. 밀양역 인근의 낙동강 주변 경관을 답사하고 모임을 파하였다.
고령에 129m 높이의 독산이 있다. 그 주변의 지형은 "구하도"로 보인다.
맑고 깨끗하고 푸른 하늘이 부러웠다.
마을 옆을 북에서 남쪽으로 지나며 흐르는 '회천'. 남쪽으로 흘러가 낙동강과 합류한다.
독산 주변의 황금벌판이 '회천'이 흘렀음직한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서쪽에 위치한 금산(289m)에서 이어지는 야트막한 산줄기가 회천과의 사이에 방벽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회천 건너에는 할매성지산(258m)이 위치하고 있다.
동쪽에 위치한 제석산(385m)에서 이어지는 산줄기의 한쪽에는 광산업체가 작업을 하고 있다. 아스콘 생산업체라고 한다.
다른 분의 작업을 빌려와보았다. 원래 이렇게 촬영해야 하는데...ㅎㅎ
(카피라이트: KimSH)
삼랑진역에 잠시 들러 경부선 철도의 역사와 교통로로서의 기능 변화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삼랑진역 길건너편에 위치한 공룡커피집에서 '아아'를 테이크아웃했다. 커피집 앞에서 근사한 오토바이와 라이더가 포즈를 취해주셨다.
낙동강 변에 위치한 경부선 원동역을 찾았다.
원동 마을의 식당에서 점심 식사로 '고기'를 먹었다. 그런데 간판에서 자랑하는 미나리는 제철이 아니라 안나온다고 한다. 우리 일행말고 다른 손님들도 식탁에 차려지지 않아 궁금해 직원들에게 질문을 하더라. 메뉴판 옆에 붙여두어야 하는 것이 아닐지... 미나리 때문에 들어와 앉아 주문을 했는데 그게 없다니...^^
식사후에 답사를 계속한다. 원동 낙동강 둔치에 넓은 공간을 활용한 원동습지생태공원이 있다. 입구에는 양산시에서 운영하는 당곡 생태학습관이 위치하고 있으며 생태학습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원동습지생태공원에서 경부선 철도 건너편의 둔치에는 가야진사라는 사찰이 있더라. 강변 둔치에 사찰이라니... 신기하다.
경부선 저쪽은 원동생태공원, 경부선 이쪽은 가야진사공원이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많은 이들이 찾는 휴식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경부선 철도가 낙동강에 바로 인접하여 달리는 곳이다.
원동은 당곡천과 합류한 원동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곳이기도 하다.
당곡천은 수량이 적어 고차 하천인 낙동강의 제방을 스스로 뚫고 만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해 낙동강과 같은 방향으로 흐르다가 수량이 보다 많은 원동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에서 슬그머니 합류하게 된다. 낙동강과 만나는 당곡천과 같은 경우를 '야주 하천(Yazoo Stream)'이라고 부른단다. 미국 미시시피 강과 합류하는 자유곡류하천들에서 많이 관찰되어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는가보다.
미시시피강의 지류인 '야주 강'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야주'라는 명칭은 강의 하구 부근에 거주하던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낙동강과 원동천의 합류부. 낙동강을 따라 달리는 경부선 철도. 원동의 원동역.
낙동강변에 위치한 원동역 앞으로 하중도 하나가 고즈넉하게 떠있다.
재밌는 곳이다. 열차가 달리는 바로 옆으로 자전거들이 달리고, 그 바로 옆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원동역은 그런 곳이다.
원동역으로 진입하면서 그냥 통과해버리는 열차......
원래 이렇게 촬영해야 하는데...
(카피라이트: KimSH)
영남 알프스 속으로 들어왔다. 만어산(669.5m) 속의 만어사를 찾았다.
Block stream이 지금도 계속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암괴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곳을 방문했던 저명인사들의 서명이 남아 있기도 하다.
돌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
하늘로 날아보자꾸나....
슬슬 예매해두었던 열차표의 시간이 다가온다. 밀양역 부근의 공원을 찾아왔다.
배터리가 모두 방전되어 다른 이들과 소외된 외톨이가 되었다. 스맛폰으로 밀양의 모습을 사진에 남겼다.
밀양강을 가로지르는 예림교 건너로 밀양의 아파트 단지들이 보인다. 제방을 따라 가우라가 만개했다.
밀양강변에서 혼자 보내는 즐거운 시간~ 멀리 추화산이 함께 보인다~
두 갈래로 갈라진 밀양강 사이의 섬이 보이는 사진을 하나 검색해보았다. 이제는 하중도가 밀양의 중심부인 것으로 보인다. 밀양강변에 위치한 영남루의 모습이 보일 듯......
(카피라이트: KimSH)
밀양역이다. 신축공사를 하고 있어 임시 역사를 이용해야 했다.
밀양역 주변의 식당에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다음에 또 언젠가 어디선가 모임을 가질 것 같다.
밀양역 2번 탑승장으로 진입하는 KTX 열차.
시속 294km 속도까지 확인했다.
KTX 열차, 지하철, 시내버스를 거치니 동네에 도착. 피로하여 피곤하지만, 다음에 또 아름다운 한반도의 모습을 찾아내는 기회가 오길 기다린다.
지난 6월의 초안산 수국공원 탐방 행사를 늦게 알아 참여하질 못해 아쉬웠는데, 9월 행사에는 참가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수락산 등산로 입구의 '만남의 광장'에서 모여 수락산의 자연과 문화, 역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수락산역 방면으로 한방에 갈 수 있는 노선버스가 있어 바로 이용하였다.
이리저리 좀 돌아서 가기는 했다. 그래서 40분 걸렸다.
노원역 앞에 하차하여 수락산만남의광장을 향한다. 입구에 거대한 '수락문'이 있다. "바르게살자"
그런데, 왜 구탱이에 영어를 끄적거려놓은 것인지... '넘버 원'이라고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보아도 "노 원"이지 않은가? '넘버 원'이 되는 순간 "노원"이 아닌 것이지. 영어로 '노 원'이면, "하나가 아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어떤 늘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아저씨는 '하나의 팀'을 강조하면서 "이게 팀이냐"고 일갈을 한 바 있는데, 하나가 아니고 싶어 하다니...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간다.
오랜만에 만남의 광장에 왔더니 못보던 시설이 추가되었다. "노원평 전투 대첩비".
정각에 바로 행사를 시작하였다. 20명인가를 모집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참가자는 무려 "3명"이었다. 노원문화원에서 행사진행을 위해 4명이 나와는데... 일단 화장실에 신고를 하고 산길을 올라간다.
이게 배바위라고 한다. 먼 바다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배!
이건 거대한 향유고래를 닮아 고래바위라 한다. 붙일 이름 찾느라 담당자가 고생했겠다 싶다. 배바위와 함께 아이들이 즐겨 노는 곳이라고 설명이...
계단 몇 곳에 명패가 붙어 있다. 찾아내기 숙제를 내주더라.
'수락산'이라는 이름은 내원암 일대의 계곡에 바위가 벽을 이루고 있는데, 물이 굴러서 떨어지는 듯 하여 "水落"이라는 산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더라~~ 하는 설이 있다.
좀 뜬금없기는 하다. '낭중지추'
'유유자적'
'금슬지락'
젊은이 빼고는 다 늙은이(^^)라서 쉬엄쉬엄 천천히 진행한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그 단단했던 화강암이 이렇게 변했다. '토르'
화강암이 기반암인 수락산의 지형 형성 및 변화에 대한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만 같다.
진짜?
작은 봉우리가 훌러덩 벗겨져 있다.
'아차산 보루군'의 일부였다고 한다. 어제 방문했던 망우산의 보루들도 포함하여...
멀리 보이는 수락산 정상, 가까이 보이는 귀임봉 정상.... 올라서 있는 수락산 보루. 이 작은 곳에 서너명이 머물며 근무했었을 것 같은데, 고구려 병사들의 애환이 쫌 느껴질라 한다.
중랑천 건너편의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의정부 방면의 불곡산.
한강 넘어의 막대기도 뚜렷하게 보인다. 아파트들 봐라~~......
우리집 뒷산인 불암산.
수락산 정상부.
높이 솟은 아파트 바로 윗쪽에 보이는 계곡이 천보사로 오르는 계곡이다.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면 폭포를 볼 수 있다.
당고개 아랫쪽의 불암산 자락의 아파트가 아닌 마을을 '희망촌'이라고 부르더라.
고구려 시절 병사들이 만들었다는 보루 위에 서서 그 시절을 추억하여 보았다.
주최측에서 참가자들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기념으로 만들어 주었다. 참가자 3명......
보루 한쪽에 석축의 흔적이 남아 있다.
보루를 한바퀴 걸어서 돌아보았다.
찬찬히 조심조심 하산...
원숭이 바위라고 한다. 화강암이다.
흔한 타포니.
수락산 '범바위' 굿당이다.
'범바위'가 잘 안보이는데, 뒷쪽 데크길로 올라가면 잘 보인다고 안내하더라. 믿고 올라갔는데............ 암것도 안보인다.
가까이 보고 싶으면 들어가서 사진 쫌 찍겠다고 이야기하면 된다고 안내하더라. 믿고 들어갔는데............ 안된다고 하더라.
행사를 마치며 키링을 선물로 받았다. 산비둘기를 형상화한 '산비'라고 한다.
밤도 하나씩 선물로 주더라.^^
선물을 받았으니 '참여후기'는 아주 후하게 작성했다.^^
재밌는 행사였다. 재밌는 경험이었다.
새로 함께 하게 될 니콘의 Zfc 카메라와 18-140mm 렌즈와 함께 한 첫 출사였다.ㅎㅎ
오후 2시 지하철 7호선 사가정역 1번 출구 앞에서 만났다. 시간을 다들 칼같이 지키더라.
사가정 시장을 지나 사가정 공원에서 잠시 쉬었다가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면목고등학교에 근무했던 경험을 가진 동기가 이곳을 자주 찾았던 것 같다. 이쪽 저쪽으로 갈라진 여러갈레의 둘레길을 제대로 안내해주었다. 10.5km 거리를 3시간 1반에 걸쳐 쉬엄쉬엄 걸었다. 땀을 쫙 빼면서......
아파트 단지 옆의 용마산 산자락 아래에 사가정공원이 자그만하게 자리잡고 있다.
25세에 대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선 대구 사람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45년 동안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 등 여섯 왕을 섬기면서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서예가이며 학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국가적 편찬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국역했으며 우리나라의 역대 명문장을 모아 『동문선(東文選)』을 엮는 등 조선 전기 국가 제도와 학문 및 문장의 정비에 큰 공적을 남겼다.
이 서거정이 용마산 부근에 살았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했던 ‘매화, 대나무, 연꽃, 해당화’를 집안에 심어 놓고 감상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더니만 자신의 호를 ‘사가정(四佳亭)’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친구였던 박팽년의 ‘강중(剛中)의 집안에 심어진 매화, 대나무, 연꽃, 해당화 네 가지를 소재로 읊다(題剛中家梅竹蓮海棠四詠)’라는 시에 잘 나타나 있다.
그래서 부근에 자리잡은 지하철 역의 이름이 사가정 역이 되었고, 이곳의 공원은 사가정 공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요샌 웬만한 산마다 온통 데크길이다.
이쪽으로 가면 용마산, 요쪽으로는 면목고, 저쪽으로는 중랑둘레길... 삼거리를 향한다.
디스크로 고생하던 친구인데 참 잘도 걷는다. 걷는 것으로 치유하더니 아주 그냥.....
2년만이다. 망우역사문화공원.
멀리 아차산이 보인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이다. 잘 정비된 묘.
잘 숨어 있는 묘.
잠시 앉아 쉬었다 간다. 당랑 아저씨도 함께 쉰다.
'보루'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고구려 때의 유물이 발견되어 그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단다. 중원 고구려비 만들 때 쯤의 군사시설이었을까? 그럼 1,500년 쯤 지난 것?
이 시대의 망루는 어떤 용도?
한때 디스크로 고생하던 친구는 이제 잘도 뛰어다닌다. 망우산이 서울시 중랑구와 경기도 구리시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중랑 둘레길, 구리 둘레길을 왔다 갔다 한다.
검단산 방면으로 한강 주변이 사알짝 보인다.
망우전망대를 찾았다.
이곳은 망우산 2보루가 있었던 곳이다.
'망우리'라는 지명의 유래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태조 이성계의 근심이 날아가게 되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망대에 오르면 북한산, 도봉산 방면으로 전망이 좋다.
우리집 뒷산인 불암산이 제일 잘 보인다.^^
전망대가 또 있다.
구리(한강)전망대이다.
전망대의 이름에 맞게 구리 방면의 한강이 아주 잘 보인다. 2024년말 개통 예정인 새로운 한강의 다리. 멀리 보이는 산이 검단산. 한강 주변의 아파트들이 하얗게 빛나 보인다.
전망대 여럿에서 전망을 하였으니 이제 하산하기로 한다. "도산안창호선생지묘"에서 잠시 추모하고 지난다.
만해 한용운 상 앞에서 잠시 추모하고 지난다.
사가정 시장 골목의 '소문난 아구찜' 식당에서 저녁을...
어디서 본 듯한 기억이 날까말까 하는 아저씨 사진이.....
사가정 시장.
이미 운동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마무리 운동 삼아 잠시 단단한 공굴기 놀이를 하다가 모임을 파했다.
경기도 남양주시의 별내동은 덕릉고개를 사이에 두고 서울 노원구 상계동과 인접하여 있다. 덕릉고갯길이 좁아 주말이면 만성적인 차량 정체가 발생하였으나 덕릉터널이 개통되면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상계동에서 당고개역 지나 덕릉고개를 넘으면 왼쪽의 수락산 자락으로 많은 묘가 조성되어 있다. 그 사이의 골짜기에 덕릉마을이 있으며, 위로 오르면 흥국사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는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식당이 성업 중이다. 카페로 운영되던 시절부터 종종 방문하였었다.
2024년 8월 29일 목요일에 옆지기를 모시고 점심 식사를 한 후 한쪽에서 함께 운영 중인 찻집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드님이 2박3일 간의 정부(국방부)에서 제공하는 캠핑을 마치고 나오신다길래 모시러 나온 참이었다.
시간이 많이 남아 날이 매우 더워 폭염 경보가 발령된 날이었지만 찻집을 나섰다. 옆지기는 안 따라나서시네. 혼자서 얼마전에 방문했다가 지도에서만 확인했던 "덕릉마을 산신각"을 눈에 담고 싶어서였다.
거리는 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산신각 방향으로 입산을 할 수 있는 통로가 안보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덕릉마을회관이다. 마을회관에서 바로 접근할 수 있을 것처럼 지도에서는 보이지만 막혀 있었다.
도로를 따라 터덜터덜 걸어내려왔다. 덕릉고개에서 내려오는 도로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부분에 표지판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200M'만 가면 된다고 되어 있다.
표지판 아래 부분에 '본 표지판은 임시 제작되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농작물과 잡초가 뒤섞여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길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초입을 지나면 등산로 "처럼" 보이는 구간이 나타난다.
왼쪽 방향으로 100M를 더 가면 된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진행방향의 묘가 보이는데 왼쪽 아랫부분의 풀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풍화가 아주 잘 된 화강암 기반암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덕릉마을 산신각"이다.
산신각의 지붕은 人자 모양으로 펼쳐진 맞배 지붕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양옆으로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山神閣?
산신각은 '사찰에서 산신을 봉안하는 불교건축물'이라 정의된다. 한국 사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로서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일러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산신은 원래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착신이나, 불교의 재래신앙에 대한 수용력에 의하여 먼저 호법신중(護法神衆)이 되었다가, 후대에 원래의 성격을 불교 안에서 되찾게 된 것이라 한다.
德陵 마을 山神閣은 수락산 자락에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1888년 세워졌다. 약 972 ㎡의 대지에 1칸 크기의 목조기와로 건축된 전당 전면에는 산신각이라 쓰여진 현판이 걸려 있고, 맞은편 현판에는 조성연대가 쓰여 있다. 후실의 전면은 6쪽의 판벽과 판문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책거리, 꽃, 쌍회문 등을 새겨 단청을 하였다. 뒷벽의 윗부분에는 푸른 칠을 한 위에 흰 칠로 호랑이가 담배 피우는 모습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1996년 12월 24일에 경기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민속자료 제9호'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이제는 번호를 붙이지 않고 그냥 경기도의 "민속문화유산'이다.
철책으로 보호하고 있어 가까이 가볼 수는 없으며 또 잠겨 있어 내부는 볼 수 없다.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후실 안 정면에는 탱화풍의 산신도가 모셔져 있는데,중앙에 산신이 왼쪽에는 호랑이,오른쪽에 동자2명,선조낭자1명,다승(茶僧)1명을 배치한 그림이 있다.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마을 주소와 그 당시 살았던 사람의 이름이 있으며 화가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이 마을의 산신제는 음력 정월과10월 초하루에 올린다.산신제는 날을 받은 후 동네 사람들 가운데 생기복덕을 따져 맞는 사람 중에 깨끗한 사람으로 화주(당주)한 명을 택해 밤에 유교식으로 제례를 올린다.산신각과 산신탱화,산신제의 내용으로 봐서 전통적인 산신신앙과 불교신앙,그리고 유교의례가 융합되어 조선시대 형성된 마을신앙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현재 산신각은1998년에 보수되었다.
(출처: 남양주시청 홈페이지)
보존 상태가 아주 깔끔하다. 잘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입로 정비만 조금 추가하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한다. 마을의 대형 식당이나 카페에서 산신각 쪽으로 진입로를 열어주는 것도 희망사항에 들어간다.
주말에 많은 손님이 찾았다가 식사를 마치고 빨리 빠져나가지 않고 이곳을 구경하러 다녀온다면 주차장 자리를 오래 잡고 있게 되는 상황 때문에 그러할 가능성은 아주 낮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저 아래 숲속에서 아드님이 2박3일 캠핑을 했다. 퇴소했다고 연락이 왔다. 빨리 데리러 가자며 옆지기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아파트 단지 앞쪽에 자그마한 동산이 우뚝(!) 솟아 있다. 불암산 자락에 붙어 있지만 '백사마을' 골짜기에 의해 살짝 분리된 봉우리이다.
이 봉우리가 "금화산"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구글지도'를 통해 알게 되었다. 카카오맵이나 네이버지도에는 이름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노원구청의 홈페이지를 뒤적여보아도 관련 자료를 찾질 못했다. 불암산을 찾는 등산인들은 '금화산'이란 이름을 이정표로 삼아 사용하고 있는 자료들이 보였다.
그래서 일단 NAVER 홈페이지의 '지도' 탭에서 '정보수정제안하기'가 보이길래 금화산의 이름을 찾아달라고 '제안'했다. 의외로 빨리 처리가 되었다. 제안을 반영하기로 했다는 메일을 받은지 3일만에 네이버지도에 이름이 표출되었다. 와우!!
내가 제안한 것이 네이버를 움직인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바라만 보고 살았던 '금화산'을 등정하기로 마음먹고 날씨는 덥지만 집을 나섰다. 한글비석로를 따라 남하하다가 충숙근린공원 쪽의 등산로를 따라 등반했다. 작은 동산의 정상에 처음 오른 것이 기뻐 이쪽으로 저쪽으로 왔다갔다 구경하다가 GPS 정보 좀 확인하면서 하산하였다.
'네이버지도'에서 "금화산"이 이름을 찾은 그날은 하늘의 구름이 너무도 시원하고 멋지게 보였다.^^
'한글비석로'라는 도로명이 만들어지게 한 "한글비석"이 위치한 곳을 돌아보면서 지나간다.
중계9단지 쪽에서 금화산으로 오를 수 있는 등산로.
늘 조용하게 보이는 '불암산 목공예체험장'.
목공예체험장 옆으로도 금화산을 오를 수 있다.
서울시립과학관 옆으로 나 있는 등산로. '하계약수터' 쪽이라고 등산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충숙공 이상길 부부의 합장 묘역이다.
인조 때의 문신이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종묘와 사직의 위패를 모시고 강화도로 들어갔지만 얼마 못되어 남한산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순절하였다. 이에 인조는 '충숙'의 시호를 내렸다. 현종 2년(1661년)에는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쓴 신도비가 건립되었는데, 1988년에 서울시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묘역 옆에는 동천재가 남아 있다. 이상길의 호가 "東川"이다.
충숙공 묘역 일대에 조성된 충숙근린공원을 지나면 금화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보인다.
금화산을 맨발로 헤메는 분들을 위해 씻고 가시라고 수도가 설치되어 있다.
맥문동 꽃이 만개했다.
'웃골'에 조성되어 있는 "불암산더불어숲" 놀이 공간이다.
'웃골'옆의 등산로를 따라 금화산을 오른다.
주인이 안보이는 신발 세켤레가 보인다.^^
기반암이 화강암인 산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심층풍화 산물인 굵은 모래로 구성된 등산로. 맨발로 걷기에 참 좋을 것 같다. 맨발로 뛰어 정상까지 오르는 분도 있더라.
나름 숲이 우거져 등산로 이외에는 시야가 차단된다. 등산로 아무 방향으로 가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지만 그래도 이정표는 도움이 된다. 노원구청에서 만든 이정표 '정상쉼터'에 누군가 "금화산"과 "사각정"을 추가시켜놓았다.
'금화산' 정상 방향을 안내해주는 스머프.
'금화산' 정상에는 쉼터로 이용할 수 있는 작은 사각정이 두채가 있으며, 태극기도 게양되어 있다.
사각정 부근에서 가장 높은 뽀인트에는 벤치가 하나 놓여 있다.
스맛폰의 GPS앱을 켜보았다. 금화산 정상의 해발고도는 128.3m이다.
'네이버지도'앱을 실행시켜보았다. 실제 정상의 위치와 지도에 표시된 곳의 위치가 조금 다르다.^^
네이버지도 앱에서 금화산 위치 표시가 된 곳으로 찾아갔다. 얼러리? 해발고도가 37m라고 나온다.
이곳에서 GPS앱이 알려주는 해발고도는 117.9m였다.
네이버지도 앱에 다시 접속하니 이번에는 654m라고 나온다. 이건 좀.....ㅠ.ㅠ
스맛폰을 최신폰으로 바꾸어야 할까???
금화산 정상의 태극기님과 함께한 인증 사진을 하나 남겼다.
백사마을 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중계지하차도 쪽에서 금화산 방면으로 오르는 경로가 가장 짧다.
옛날 그시절에 만들었던 참호가 깨끗하게 남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정상을 넘어 하산하다가 만난 이정표. 중계주공9단지 쪽으로 내려가보았더니 서라벌고등학교 방면이다. 다시 올라와 7단지 방면으로 하산하였다.
7단지 방면 등산로에는 풍화된 화강암 기반암이 노출된 구간이 좀 보였다.
중계주공7단지의 놀이터에 도착하였다.
집이다. 저 너머에 우리집이다.
1시간 걸렸단다. 6,800보 걸었다. 364kcal 소모했다고 삼성헬스 앱이 알려준다.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