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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여름은 연일 폭염 경보가 이어지고 있다.

더위 속에 시원한 숲속을 찾아가보고 싶었다.

네이버지도를 뒤적인다. 

근처에 달려 나가 점식 식사하고, 차 한잔하고, 간단히 들러볼 곳을 찾다가.... 종종 가보았던 곳으로 골랐다.

옆지기에게 함께 가자고 결재상신 올려 승인을 받았다!!!


 

상계동에서 덕릉로를 따라 이동하여  당고개를 넘었다.

'목향원'에서 식사하고는 그 윗쪽의 수락산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자연소리'에서 차를 한잔하면서 '자연'을 즐기고자 하였다. 그리고는 '흥국사'를 탐방하고 귀가하는 일정을 잡았다.

 

하늘에서 본 목향원과 주변 일대. 12시가 되기 전임에도 제2주차장에 차들이 거의 채워져 아랫쪽의 제1주차장에도 차들이 진입하고 있다.

 

1997년부터 운영을 했었던 곳이란다. 

 

옛날에는 옛날 건물이었는데, 재단장하여 신식 건물로 바뀌었다.

 

들어가는 입구 한쪽으로 장독들이 줄지어 있다.

 

옛날에는 산골짜기에 숨어 있는 조용한 곳에 찾아와 차한잔을 즐기고 가는 곳이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서 고기집으로 변신하였다. 사람들이 아주 많이 찾아오면서 주차장도 넓히고, 메뉴는 그냥 한가지로 바뀌었다.

 

쌈밥용 채소가 먼저 나오면서 인원수대로 주문이 들어간다.

 

역시 초기보다 반찬의 가짓수가 줄었다. 식탁에 찬그릇을 놓을 수 없을 정도였는데...^^

밥도 삼색밥이다.

 

석쇠불고기. 맛있다.

 

마당 건너편에는 카페도 마련되어 있다. 수락산에서 불암산을 바라보며 차를 즐길 수 있다.

 

화강암 덩어리인 불암산 정상쪽 조망. 폭염 경보 속의 하늘은 뜨겁기만 하다.

 

네이버지도에서 캡쳐하여 글자를 키워 넣었다. 목향원에서 식사하고 '자연소리'를 찾아가려했다. 찾아가려했다.

목향원의 주차장에서 올라갈 수 있다고 하여 차를 디밀었더니 막혀있다. 흥국사 일주문 옆으로 난 샛길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어 그리로 가려 했더니 10년은 자연 속에 테라포밍된 것 같은 상태다. 길이 아니다.

엄하게 차를 왔다갔다 하고 있으니 목향원 주차관리원이 달려온다. 카페에 대해 질문하니 저 윗쪽에는 아무 것도 없다 한다. 난 뭘 보고 온 것일까...

귀가하여 다시 찾아보니 2019년 9월과 2020년 1월에 찾아갔던 이들의 리뷰가 2개 있을 뿐이었다. 이후 운영을 하지 않고 있는가보다. 네이버지도 "정보수정제안하기"를 통해 폐업했으니 지도에서 삭제해달라고 하려 했더니 증거로 "사진"을 요구한다. 사진을 찍으러 다시 가야겠다.


흥국사로 바로 가자.

목향원 바로 위에 위치한 일주문을 지나 올라간다. 쭈욱 올라간다.

 

금방 도착한다. 비포장이긴 하지만 주차 공간이 꽤 된다. 여유있게 나무 그늘 아래쪽에 주차.

 

하늘에서 바라본 흥국사. 규모가 크지 않은 절집이다. 사찰의 여러 기능을 복합적으로 수행하는 공간인 '대방'이 흥국사의 입구에 위치한다. 그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신식 식당'.

 

보통은 가장 큰 건물이 '대웅보전'이지만, 흥국사의 경우에는 그냥 "대방"이다.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여러 기능을 한 건물에서 수행하도록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기와불사에 참여해주세요.

 

영산전과 대웅보전.

 

영산전과 대웅보전 안내판.

 

흥국사의 창건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신라 제26대 진평왕 21년(599년)에 원광법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조가 왕위에 오른 이듬해인 1568년에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묘를 흥국사 남쪽에 쓰면서 부친의 명복과 극락왕생을 위해 수락사를 중수 복원하고 '흥덕사'라고 이름을 내렸다. 이후 1626년에 인조가 건물을 중수하면서 다시 '흥국사'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대웅보전 건물은 팔작지붕으로 양끝에 용머리 장식이 있다. 지붕 아랫쪽에 처마와 기둥 사이에 공포를 설치하고 있다. 공포는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고 화려하게 돋보이도록 하는 장치로,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머리가 새겨져 있어 조선 후기의 장식적인 조각 기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대웅보전 안에 모셔진 목조석가삼존불좌상.

가운데 석가불을 중심으로 그 왼쪽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오른쪽에는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아보는 보현보살이 석가불을 보좌하고 있다.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의 조성 발원문이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인 조성 시기나 최초 봉안 사찰은 알 수 없으나 18세기 중반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웅보전 윗쪽의 단하각.

 

대웅보전 옆의 시왕전.

 

시왕전 윗쪽의 만월보전. 뒷편에 '승탑'이 있다는데 이번 탐방에서는 놓쳤다. 다음에는...

 

'승탑'을 찾아 올라왔다가 근사한 '새 탑'에만 눈이 가서 '승탑'을 놓친 것이다.

 

대웅보전에서 떨어져 위치한 나한전. 

소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 및 16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흥국사 소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정확안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1650년에 세번째로 고쳤다는 발원문이 발견되어 1650년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6 나한상은 우리나라에서 일괄 문화재로 전해오는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전라북도 고산(현재는 완주) 안심사 약사암에 모셔져 있던 것을 1891년에 흥국사로 옮겨와 다시 고치고 이듬해부터 모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었네요.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00760.html

 

나한전 앞의 마당 건너편에 위치한 범종각. '범종각' 현판은 다시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목어, 범종, 법고 등이 설치되어 있다.

 

흥국사 대방. 조용한 절집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탐방 기회였다.

 

산자락이 온통 묘지이다. 다음에는 '덕릉마을 산신각'을 찾아가보고 싶다.

아! '자연소리' 진입로가 폐쇄된 사진도 찍어야 한다.^^

네이버지도에 정보수정 요청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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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30일 화요일.(8월 5일, 8월 11일에 보강 답사)

노원구의 '한글비석로' 언저리에 살고 있다. 꽤 여러 해가 되었다. 그러한 지명을 갖게 된 것이 "한글 비석"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길 들었다. 궁금했다가 잊고 지났다가 하다보니 세월이 주욱 지나갔다. 

생각난 김에 탐방에 나섰다. 생각난 때가 밥 때인지라 식당에 들러 배를 채우고 길을 걷는다. 혼밥을 하는 나이든 아저씨들이 여럿 보여 위안(?)이 되었다.

위치를 대충으로만 알고 있었다(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있었다). 걷다보니 서울시립과학관이 보이더라.^^ 지나친 것이다. 할 수 없이 뒤돌아 걸었다. 한글영비를 탐방하고는 나선 김에 동네 한바퀴 산책을 했다. 많이 덥더라. 34도의 한낮에 콘크리트, 아스팔트 도로를 걷는 것이 좀 많이 힘들기는 하더라.

 

한글비석로의 길가에 눈에 잘 띄게 안내판이 되어 있지 않다는 핑계를 대본다. 여길 그냥 지나쳤다가 되돌아왔다. 계단 윗쪽으로 올라가면 '한글 비석'을 볼 수 있다.

 

서라벌 고등학교에서 불암산 쪽으로 길건너편에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이윤탁 부부의 합장묘이다. 

관직이 '권지승문원부정자'에 이르렀던 이윤탁의 묘는 지금의 태릉 자리에 있었는데 문정왕후 윤씨의 묘를 조성하면서, 부인 안인(고령) 신씨 묘가 있던 이곳으로 옮겨 합장하였다.

 

'한글 영비'를 보존하고 있는 영비각. 노원구 하계동 12번지이다.

이 비는 이윤탁의 아들 이문건이 부모의 상중에 무던 옆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세웠는데 새로 조성한 부모의 묘역이 훼손되는 것을 경계하는 내용도 비에 새긴 것이다. 중종 31년(1536년)에 세웠다. 1998년에 도로를 확장하면서 원래 위치에서 15m 정도 뒤로 옮겼는데, 원래 비석이 있던 위치에는 돌을 묻어두어 표시를 했다고 한다.

'한글고비'라는 이름으로 1974년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에 보물 제1524호로 승격되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영비각 바로 앞에 설치된 안내판.

 

비의 몸체 위쪽 양 모서리에 각을 주고 받침대는 네모꼴로 만들었는데 이는 조선 초기에 유행한 圭首方趺의 양식을 따른 것이다.

 

비의 앞면에는 묘 주인들의 이름이 있다. 

 

묘의 뒷면에는 일대기를 새겼다.

 

비의 우측에는 한문으로 경고문을 새겼다.

不忍碣

爲父母立此誰無父母何毁之石不忍

犯則墓下忍凌明矣萬世之下可免夫

 

맹자가 혹독한 정사를 펼치는 군주들에게 각성을 촉구한 '不忍之心'을 인용한 것으로, "차마 하지 못하리니"라는 제목을 붙였다. 내용은, '부모를 위해 이 비석을 세운다. 부모 없는 사람이 누가 있어 이 비석을 훼손할 것인가. 비를 차마 깨지 못하리니 묘가 능멸당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만세에 이르도록 화를 면할진저.'

 

비의 좌측에는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한글로 적었다.

靈碑 

녕ᄒᆞᆫ비라거운사ᄅᆞᄆᆞᆫᄌᆡ화ᄅᆞᆯ니브리라

이ᄂᆞᆫ글모ᄅᆞᄂᆞᆫ사ᄅᆞᆷ다려알위노라

 

해석은 다음과 같다. "신령스러운 비석이다. 범하는 사람은 재화(災禍)를 입을 것이다. 이는 글(한문)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는 한글로 쓰인 최초의 묘비문으로 알려져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높으며 국어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글이 단어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의 문장으로 구성된 것이라서 가치가 높다 한다.

이 ‘한글영비’는 국어생활사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첫째, 중종 31년(1536) 당시 한글이 얼마나 널리 알려져 있는가를 증명해주는 자료이다. 둘째, ‘한글영비’에 새겨진 한글의 서체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직후의 서체, 즉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체와 <용비어천가> 서체의 중간형의 성격을 지닌다. 셋째, 이 비석의 글은 비석의 이름인 ‘영비(靈碑)’를 제외하고는 국한 혼용이 아닌 순 국문으로 쓰여 있다. 본격적으로 한글로만 쓴 문헌은 18세기에나 등장하나 이 ‘한글영비’는 16세기에 이미 순국문으로만 쓰인 문장이라 할 수 있다. 넷째, ‘한글영비’는 언해문이 아닌 원 국문 문장이다. 15세기 이후 한문 원문을 번역한 언해문이 한글자료의 주종을 이루었으나 이 ‘한글영비’는 짧은 문장이긴 하나 처음부터 우리말로 쓰인 문장으로, 한글이 한문 번역도구가 아닌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직접 전달하는 도구로 변화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섯째, ‘한글영비’에 쓰인 국어 현상은 이 당시의 언어를 잘 반영하여 당시 국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국가유산포털,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석비의 글자가 흐려진 부분이 있어 명확하게 읽어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영비각 안쪽에 깔끔하게 한글 부분을 새긴 작은 나무팻말을 달아놓았다. 처음 갔을 때는 안보이던 것들이 여러번 가니까 하나씩 추가로 눈에 들어온다. 거참...

 

한글영비는 영비각에 보존되어 있고, 합장묘 앞에는 새로운 비석을 세웠다. 한글 번역판이다.

 

영비 뒷면과 오른쪽 면의 한문 부분을 모두 한글로 번역하여 새겼고, 한글 부분은 잘 보이게 굵은 글자로 새로 새겼다.

 

불암산 자락에 위치하며 한글비석로 건너편으로는 아파트 단지와 서라벌 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묘의 관리가 아주 잘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묘소 바로 윗쪽에 조성된 다른 묘는 장맛비로 인한 봉분의 훼손이 보인다.

 

CCTV가 계단 아래에 설치되어 있다.

 

보물 제1524호의 안내판은 가로수에 가려 잘 보이질 않는다. 약간의 위치조정이 필요하지는 않을지...

 

한글 영비를 보고는 집을 나선 김에 계속 산책을 해보기로 했다. 새솔공원이 인근에 위치한다.

 

2022년 조성 전의 모습과 2023년 조성 후의 모습을 비교한 사진. 

 

불암산 목공예체험장이 핵심이다.

 

들어가보았다. 체험 신청자는 안보였다.

 

서울시립과학관의 근사한 모습.

 

이곳도 개관한 이후 처음 들어와본다. 8월 11일까지 입장료 무료 행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립과학관의 투어 안내 자료는 영어판만 구비되어 있다. 한글판은 안보여서 그냥 왔다.

 

길을 건너면 대진고등학교 맞은편에 "에너지 제로 아파트"가 위치하고 있다. 그 입구에 설치된 체험주택이다.

2018년에 개관하였으며, 에너지 제로 주택 관련 정보 제공 및 홍보, 체험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늘을 구름이 가리고 있어 설렁설렁 나섰는데, 점점 하늘이 뜨거워지더라. 34도에 머리가 익는 느낌?

중랑천변 산책로로 들어오기 위해 하계동의 학여울청구아파트를 가로질렀다. 한내교는 월계역과 연결되는 인도교이다.

 

한내교에서 중랑천의 상류 쪽을 조망했다. 경치는 좋다.^^

 

중랑천으로 당현천이 유입되는 뽀인트에 '만남의 광장'이 설치되어 있다. 노원구에서 더운 날씨에 산책하는 구민들을 위해 생수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어제부터 시작했닥고 연락을 받았다. 혹시나 이곳에서 제공하고 있지는 않을까 기대를 했다.

수도에서 따끈따끈한 물만 나오네......

 

노원소각장인 '노원자원회수시설' 옆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예쁘게 잘 단장해놓았다. 덥다.

 

녹음이 우거진 당현천 산책로. 가로수 아래로 그늘을 찾아 흐느적거리며 걷는다.

 

찾았다!!! 작년에도 이 위치에서 생수 공급을 해주기는 했었다.

 

고마운 노원구청.^^

 

폭염에 녹아 흐르는 것만 같다. 계속 걷기에는 힘이 부쳐 벤치에 몇번이나 앉아 쉬었다. 멀리 불암산이 보인다. 거의 다 왔다.

 

 

8.5km를 걸었단다. 11,000보. 평소보다 걷는 속도가 뚜욱 떨어졌다.ㅎㅎ

모자도 안쓰고 뙤약볕을 따스하게 체험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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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드론을 갖게 되었다. 지인이 자기가 소유한 드론 중 하나를 내게 넘기면서 권유하는 바람에 드론에 맛들이게 되었다. 망설이다가 조그만 드론을 하나 구입하면서 그 드론은 원소유자에게 반납했다.

가끔 조그만 드론을 갖고 나가 논다. 하지만 서울은 거의 "관할기관 비행승인"이 필요하여 마음을 크게 먹고(?) 나서야 하는 형편이다. 그러던 중 집에서 멀지 않은 장암역 인근이 "비행승인 불필요"한 동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은 벗어났는데, 더 무서운 공역에는 해당되지는 않는 낀 동네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드론 원스톱 민원포털(https://drone.onestop.go.kr/#)"의 지도에서 '석림사' 부근을 클릭했더니 '조종자 준수사항'이나 잘 지키라고 나온다. 가자!!

(참고로 위의 지도에서 빨간색으로 빗금친 P518 공역에서는 드론을 날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하는 무서운 곳이다. 초록색 빗금친 R75 공역에서는 비행승인 및 촬영 신청을 사전에 해야 하는 곳이고...)

 

다음 날 바로 길을 나서려 했는데, 장마철이라는 복병이 막아섰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비가 내린다. 아니면 다른 일거리가 생기던지... 그러다가 드디어 2024년 7월 25일에 출발했다. 망설이는 옆지기를 꼬셔서 함께 출발했다.^^

 

지하철 7호선 중계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을 이용해 종점인 장암역까지 달려갔다. 지하철 내부 좌석 한줄에 자리가 7개였는데, 신식 차량은 의자가 6개만 설치되어 있다. 오래 되었을텐데 오늘에야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 구간은 GPS 신호가 잡히질 않아 중계역에서 도봉산역까지의 경로는 직선으로 표시되었다. 도봉산역에서 장암역 구간에서는 철로의 굽어진 경로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7호선 종점인 장암역에 도착하여 수락산을 바라본다. 구름이 멋들어지게 흘러간다.

바로 길건너에 위치한 커다란 식당 '牛리나라'에서 하산길에 점심을 해결하였다. 해당 식당의 바로 오른쪽으로 석림사계곡이 이어진다.

 

사랑채만 남아 있는 '서계박세당 고택'을 방문했는데 잠겨 있어 그냥 지나갔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 역시 문이 잠겨 있는 '노강서원'을 지나 '석림사'를 탐방했다. 계곡을 좀 더 따라 올라가다가 적절한 지형 경관을 즐겼다. 잠시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가볼 수 있었다. 하산길에 박세당고택을 다시 방문했는데, 입구에서 개짓는 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도망쳤다.

 

사유지이며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공간이 아니라 한다. 조경이 잘되어 있어 내부의 생활공간이 외부의 시선에서 차단되어 있다.

 

경기도 지정 문화유산이다.

 

따로 고택의 관리자에게 연락을 미리 한 바가 없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 석림사 계곡을 따라 계속 오르기로 한다. 몇 걸음 옮기지도 않았는데 땀은 아주 잘 흘러내린다.^^

예전에는 이 계곡의 많은 식당들이 사시사철 탕을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했었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그렇게 기억한다. 

그러했던 식당들의 '흔적'이 외부의 간판에 남아 있다. 찾는이들이 줄어들면서 식당 내부에 설치된 메뉴판에서는 제거된 식당들이 여럿 있다. 중복날을 기념하여 아직 그러한 메뉴로 영업하는 식당을 찾아보는 것도 오늘의 과제였으나 다음 언젠가로 미루기로 했다.^^

 

분명히 가구 공장인데...... 유리창의 "FINE DRONE"이라는 문구가 눈에 확들어왔다. 암만 살펴도 "드론"과는 관계없는 업체로 보이는데......

'파인드론'은 국내의 드론 개발 및 생산 업체였는데 사업을 접었다는 소식이......

 

장맛비가 내려 계곡이 물이 시원스럽게 흘러내린다. 아직 '토종' 음식으로 영업을 열심히 하는 식당이 남아 있는가보다.

 

계곡의 오른쪽을 따라 걷던 길이 작은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올라간다.

 

청풍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흔적이 석재로 구성된 주춧돌만 남아 있다. 서계 박세당이 노강서원 아래에 세웠던 것이라 한다.

 

중랑천변에 위치한 장암역에서 수락산 방향으로 그냥 직진하여 골짜기로 진입하면 노강서원에 이를 수 있다. 금방이다.

 

노강서원이다. 경기도 기념물 제41호.

노강서원은 1689년(숙종 15) 인현왕후 폐위에 반대하다가 혹독한 국문을 받고 진도로 유배되던 중 사망한 박태보를 배향한 서원이다. 박태보는 서계 박세당의 둘째 아들이었다.

 

1695년(숙종 21)에 노량진에 건립되었던 서원으로서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중 하나였다. 1925녕의 을축년 대홍수때 떠내려간 것을 중건하였고,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이곳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1969년에 옮겨 복원한 것이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 동재, 서재, 삼문, 고직사 등이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中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다.

 

서계 문화유적과 무형 문화유산

기개와 절의의 상징 정재 박태보

시대의 지성 서계 박세당

 

석림사의 일주문이 지척에 위치한다.

 

석림사를 지나 수락산 정상으로 오르는 1-1, 1-2, 1-3 코스가 안내되어 있는 등산지도.

 

석림사 입구.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작은 산골짜기이다. 그래서 일찍 입구를 차단하며, 개를 풀어놓는다고 하니 늦은 시간에 함부로 접근하면 아니되겠다.

 

이색적이다. 大雄殿이 아니다. "큰법당"이다. 1층은 업무용 공간, 2층이 법당으로 이용된다.

석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봉선사의 말사이다. 박태보가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한국전쟁때 소실된 이후 1960년부 비구니 相仁이 제자와 함께 중창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당 내부에 긴의자들을 배치해두고 있는 것도 처음 보았다. 이색적이다.

 

석불, 석탑, 석등...

 

석림사는 수락산의 작은 골짜기에 자리잡았다. 아담한 절집이다.

 

석림사를 지나 등산로를 따라 계속 오르면 '수락폭포'를 만나고, 수락산 정상에 이를 수 있다.

 

수락산 정산에 오르는 것은 다른 분들께 양보하고 물가에 평평한 바위가 보이는 곳을 찾아 주저앉았다.

 

그리고 발을 담가 보았다. 등짝이 다 젖어 시원한 무엇인가가 절실했다.

 

뼈속까지 시리는 감각을 기대했다. 아니더라. 더위가 심해서 그런지 작은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물은 살짝 뎁혀진 느낌.^^

 

무얼 찍고 계시는 것일까......

 

 

밥때가 다가와 골짜기를 내려왔다. '토종' 음식점이 자꾸 눈에 밟힌다.

 

험상궂게(^^) 생긴 문지기가 요란하게 지키고 있는 '서계 박세당 고택'을 다시 찾았다.

 

참 예쁘게 관리되고 있다. 저 안쪽에 문화재로 지정된 사랑채가 보인다.

 

국밥 한그릇. 살짝 짜기는 하지만 양은 좋다.

 

장암역 건너편으로 구름 아래의 도봉산이 보인다.

 

뒤로 돌아보니 멀리 수락산의 정상 부분을 바라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도봉산이나 수락산이나 모두 화강암 산체로서 토양에 덮여 있지 않고 밖으로 드러난 암석 부분이 눈에 많이 보인다. 다음엔 정상까지 올라가 보자!!!

 

정상부를 확대해보았다. 태극기가 휘날린다.^^

 

장암역으로 올 때는 신형 차량이라 좌석이 6개였는데, 장암역을 떠날 때에는 좌석이 7개인 구형 차량이다.^^

옛날보다 요새는 살찐 사람들이 많아져서 한 줄에 앉을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줄인 것일까???

 

중계역에 내려 집까지 걸어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비가 내린다.

우산이 없어 버스를 이용해 귀가하였다.

 

비 예보가 없어서 출발한 길이었는데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니까 일기예보가 달라진다. 여기는 "중계"동이다.

장마철 일기예보가 그렇지 머......

 

수락산의 석림사 계곡은 녹림에 묻혀 있었더라~~

 

 

중복인 2024년 7월 25일에 국밥을 사먹었더라~~

'삼성 헬스' 확인을 해보니 석림사 계곡을 다녀오며 9,756보를 걸었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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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다. 매일 비가 내릴 듯 하더니 새벽에 좀 뿌려주고는 비가 쉬더라. 나도 같이 쉴까 하다가 불어나는 허리둘레, 높아지는 배꼽 동산의 모습이 안타까워 집을 나섰다.

늘 가던 당현천 코스에서 이탈했다. 한글비석로를 따라 하계역 방향으로 걷다가 대진고앞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공릉터널 앞까지 노원로를 따라 걸었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중계로를 따라 중계본동으로 돌아왔다.

불암산 자락의 작은 동산을 한바퀴 돌아온 것이다. 그냥 '작은 동산'을 한바퀴 돌아서 왔다...

 

대진고앞교차로 부근에 위치한 '충숙공원' 특정 집안의 묘지가 문화재가 되고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부러운 집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묘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면 지역 주민들이 즐거이 휴식을 취하러 나오는 공간이 되기에는 분위기가 좀 그러지 않을까 하는 편견을 갖고 있다. 바뀌어야 할 편견이다.

 

노원로를 따라 하계동에서 공릉동으로 넘어가는 '공릉터널'.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차량의 흐름이 뜸한 편이었다.

 

먼 옛날 불암산 스포츠타운. 배드민턴 치러 몇 번 온 적이 있었던 곳인데...

 

고갯마루에 조성된 생태터널이다. '중계로 지하차도'. 전력 공사로 인해 한쪽 차로가 차단되어 있다.

 

생태터널 위로 올라가 백사마을 쪽으로 내려가려 했더니 금줄이 쳐져 있다. 노란색 '폴리스 라인'. 그리고 아랫쪽으로도 금줄이...

 

차단된 금줄 아랫쪽으로 사진을 하나 남기고 돌아선다. 

 

왼쪽 통로는 금줄이 처져 있지 않아 통행이 가능하다. 반바지 아랫쪽의 다리가 가려운 것을 보니 산모기 등이 양분을 가져간 모양이다.ㅠ.

 

길건너편의 '백사마을'은 적막하다. 차량이 보이기도 하는 것을 보니 이주가 완료된 것은 아닌것 같은데...

 

멀리 불암산이 보인다. '헬기장'이 위치한 불암산성 부분이다. 학도암의 마애석불이 위치한 곳도 보인다. 

 

'영양탕'이라 적혀 있었던 간판이 "토종닭"으로 바뀌었다. 에효~

 

다들 불암산이라는 이름만 이야기 한다. 큰 산 아래의 작은 봉우리들도 이름을 가진 경우가 많은데 오늘 한바퀴 돌아온 봉우리는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카카오맵에도, 네이버 지도에도 이름이 없다. 그런데...

구글 지도에는 '금화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그랬다. 금화산이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불러주지 않으니 이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산행을 하시는 분들 중에 금화산 이라는 이름을 찾아 산행 경로 기록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검색하면 나온다.^^

 

찌뿌드할 때 가볍게 산책하는 코스로 좋아 보인다. 이제 세번 째...

 

다리가 가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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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선 장암역으로 가서 수락산 계곡을 조금 올라가 보려 계획했었다. 

서계 박세당 고택인 사랑채, 노강서원, 석림사 등을 둘러보려 했었다. 드론 비행을 위해 사전 신청 절차가 필요없는 구간을 검색하다가 찾아낸 곳이었다. 계곡을 내려오면서 임박한 '복날'에 어울리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는 점도 아주 크게 작용하였다.

헌데! 그런데! 2024년 7월 12일 금요일 아침에 일어났더니 하늘이 온통 뿌옇다. 너무 흐렸다. 

하늘을 핑계대고는 드론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냥 산책길을 찾아 나섰다.

출발하면서 '램블러' 앱을 통해 경로 기록을 한 줄 알았다. 그런데 기록이 없었다. 앱을 실행만 시키고 "녹화 시작" 버튼을 누르질 않은 모양이다.ㅎㅎ

할 수 없이 늘 디폴트로 기록을 맡기고 있는 구글 지도의 '타임라인'을 찾아보았다. 구글 지도가 대한민국 정부가 자기네 말에 순종하지 않는다고 땡깡을 부리는 것일까? 지난 해부터 타임라인을 데스크탑 컴퓨터에서는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컴퓨터를 통해 확인하면서 KML 파일로 저장할 수도 있었는데, 이 모든 기능을 없애버린 것이다. 스맛폰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데 화면이 작아 한계가 있고, 경로를 파일로 저장할 방도도 없다.

그래서!

화면으로 캡쳐한 결과가 이것이다. 경로의 기록이 상당히 거칠다. 게다가 오류도 있다. GPS data logger도 중간에 GPS 신호가 튕겨 이상한 결과가 남기도 한다. 이것은 수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구글의 타임라인은 외부 파일로 저장을 할 수 없어 이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월계역을 지나 한내교를 통해 중랑천을 건너와 노원소각장, '노원자원회수시설' 앞에 있는 화장실에 조금 머물렀는데, 그때 GPS 신호가 튀어 초안산을 다시 다녀온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잘못된 데이터를 없애지 못하니 경로 지도가 우습게 되어버렸다.

구글은!! 

'내 타임라인'을 데스크탑 컴퓨터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되돌려라!!!

 

11시 15분에 목적지로 삼았던 식당에 도착하여 메뉴판 사진을 찍었다. 너무 비싸다!!!

 

식사후 창동교를 건너 중랑천을 넘었다. 노원구청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는 상계고등학교의 방음벽에 담쟁이 덩쿨이 덩쿨덩쿨하다.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창동교 부근. 도봉구 창동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씨드큐브 창동' 오피스텔 건물이 육중하게 덩치를 뽐낸다.

 

옛날에 5년간 근무했었던 직장.

 

비가 꽤 내렸는데도 중랑천은 여전히 목마르다.

 

도봉구민들의 지팡이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을 도봉경찰서가 저쪽 어디 있다.

 

날이 무척이나 더웠는데 길가에서 서서 묵묵히 근무중이신 분.

 

저 멀리 오늘의 목표로 삼았었다가 포기한 수락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대기 중인 경찰차도 어렴풋하게 보일듯...

 

마들로를 따라 걷다 보면 '녹천역 두산위브아파트' 앞쪽으로 연결되는 계단을 찾을 수 있다.

 

의정부 방향으로 달리는 전철 1호선 아래로 지나는 터널을 이용한다.

 

터널을 지나 왼쪽 방향을 틀었다가 오른쪽 길로 올라간다.

 

초안산 줄기와 만났다. 모래가 부스러져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층풍화가 진행된 화강암 덩어리가 기반암이다.

 

왼쪽의 초안산로로 접어들어 "초안산 생태터널"을 지난다.

 

몇개 버스 노선의 종점인 것 같다. 많은 버스들이 정차하여 출발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인덕대학교입구교차로로 이어지는 초안산로7길에서 '월계동각심재'가 위치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며칠 전에 찾아왔었던 각심재가 보인다. 실은 이곳은 '예안이씨 조역(兆域)'이고......

 

각심재는 담장 안쪽 저쪽 구석에 있는 근사한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일단 문화재로 지정된 이런 시설에 포함된 부속 건물이 왜 담장 안쪽에 숨겨져 있는가 하는 것은 아쉬움이 있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는 문화재라면 이런 부속 건물의 출입구는 담장 밖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담장 안쪽에 갖혀 있으면 행사에 참여한 예안이씨 사람들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고, "각심재"가 궁금하여 이곳을 아무 때나 찾아오는 일반 시민들은 이용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혼자만 아쉽다.

오늘은 화장실이 급하지 않았지만 급할 때를 대비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나갔다.

 

숭덕당 옆으로 살짝 보이는 각심재.

 

'월계대우아파트' 뒷쪽의 초안산로7길은 고즈넉하다.

 

염광 '學群'이다. 오른쪽에 염광중학교, 맞은편에 염광메디텍고등학교, 왼쪽에 염광고등학교.

 

신창중학교 뒷편의 초안산 초입에 수국동산이 위치한다.

 

왔다.

 

평일의 가장 더운 시간대라 그런가 초안산수국동산을 찾은 이들은 많지 않았다.

 

아직 수국에 제대로 만개하지 않아서 찾는 이들이 적은 것일지도......

 

한쪽에 50m 길이의 황톳길도 조성되어 있어 맨발을 즐기는 분들이 이용하고 있다.

 

제대로 피었을 때 다시 보자 생각하며 초안산수국동산을 떠난다.

 

덥다. 인덕대학교를 지나 월계역을 지나면서 한내교를 건너 당현천을 따라 흐느적거리면서 귀가하였다.

뙤약볕 아래에서 따끈하게 덮여진 아스팔트, 콘트리트 위를 느릿느릿 걸었더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18,000천 보 정도를 그리 걸었다고 어지러워 하다니...

다음부터는 10,000보 넘기지 말아야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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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6일. 토요일이다.

드론 모임이니 드론을 함께 날릴 곳을 찾았다. 27번 도로를 따라 전주에서 남쪽으로 달려 옥정호의 명소인 붕어섬을 찾았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옥정호 상류에 위치한 구하도 지형을 답사하고 전주로 귀환하였다.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다른 이들은 자차 혹은 KTX를 이용하여 전주를 떠나거나 떠나보냈다.

 

붕어섬을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는 국사봉전망대이다. 좋은 조망을 위해서 등산로를 따라 좀 올라가주어야 한다. 그 아래 위치한 휴게소에서 남동쪽으로 정자가 하나 보인다. 우리 일행이 오늘의 조망 뽀인트로 잡은 곳이다. 드론이 날아오르므로 해발고도가 조금 낮은 곳이어도 관계가 없겠다.^^

 

2024년 7월 6일 오전 옥정호와 전망대 일대의 사진이다. 옥정호의 물빛과 주변의 풀빛에 차이가 없다!!! 옥정호의 심각한 녹조 문제가 매년 반복되고 있어 식수원으로의 사용에 대해 문제가 제기될 정도이다.

붕어섬이 보이는 옥정호의 조망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국사봉 전망대'가 적격이다. 작지만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다. '정자'에 올라 즐길 수도 있고, 그 앞쪽으로 새로 마련된 '전망대' 공간을 이용할 수도 있다. 또한 옥정호를 따라 달리는 도로의 중간 중간에 '쉼터'가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최근 옥정호의 붕어섬을 도보로 들어가볼 수 있게 '출렁다리'가 개장되어 붕어섬 생태공원을 즐길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걸어가면서 옥정호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데크길'도 만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위 사진의 일부를 확대했다.  데크 건설을 위한 기초 공사가 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100% 사진인데 흐릿한 것을 보니 "DJI 미니 4 프로" 드론의 카메라는 꽝이라는 것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ㅠ.ㅠ)

 

 

섬진강이 휘돌아 흐르던 곳이었으리라. 섬진강댐이 만들어지면서 작은 봉우리가 옥정호 속의  섬으로 남게 되었다. 그 모양이 붕어를 닮았다 하여 '붕어섬'이다. 사진 동호회를 통해 알려지면서 관광 명소가 되었다. 최근에는 출렁다리로 연결되어 도보로 방문을 할 수 있으며 섬 자체는 생태공원으로 가꾸어졌다.

 

조금 높은 곳에서 보면 붕어의 형상에 조금 더 가까워..... 붕어닷!

 

2006년 4월에 방문하였을 때 남긴 사진이다. 20여 년이 지난 사이 붕어섬의 여기저기에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옥정호 물빛의 변화가 안타깝다.

 

옥정호에 자리잡은 붕어섬과 출렁다리의 모습이다.

 

단체 사진.

 

붕어섬을 보고 상운암전주식당에서 식사를 학고 구하도를 보기 위해 용암리의 진구사지로 달렸다.

 

운암면 면소재지인 운암마을은 사연이 있다. 섬진강댐이 건설되면서 옮겨운 이재민들의 마을인데, 섬진강댐의 만수위 측정 오류로 인해 집중호우로 섬진강 수위가 급상승했을 때 침수되는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단다. 그래서 바로 옆의 보다 고도가 높은 곳으로 옮겨야 했다. 그래서 '상운암' 마을이다. 그곳의 '상운암전주식당'이 명소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식당이었다.

상운암전주식당의 인기메뉴인 '빠새메탕'으로 일행의 배를 채웠다. 거기에 서비스로 튀김까지 내주시는 바람에 배가 터질 뻔했다.

 

큼지막한 석등이 하나 남아 있는 진구사지를 찾았다.

뒷동산에 나무가 네 그루인 줄 알았는데, 다섯 그루더라.

 

진구사지 석등은 우리나라에 있는 석등 가운데 두번째로 크다고 한다.

 

다같이 쑈를 해봅니다.^^

 

덕암교를 통해 섬진강을 건너면 덕암리이다. 과거 한 때 섬진강의 물길이 휘돌아 흘렀던 흔적이 저지대로 남아 그곳을 농경지로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과거 언제가에 강물이 흘렀던 물길이라 하여 구하도(舊河道)라고 한다. 영어로는  abandoned channel, 버려진 물길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새로운 물길을 찾아 떠났으니 옛 물길이요, 버려진 물길인 것이다.

 

새 물길 옆으로 흔적만 남은 옛 물길 위로 날자, 날아보자꾸나.

바람이 좀 불었다. 지표면 보다 윗쪽은 바람이 더 분다. 그래서 중간에 영상이 흔들린 부분이 있다. 카메라의 중심을 잡으려는 짐벌의 움직임이 강한 바람에 의해 방해받은...

 

3시 15분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예매했었다. 다른 일행보다 조금 빠른 편이라 먼저 터미널에 도착해야 했다.

고속버스니까 고속도로들을 따라서 고속으로 달렸다. 토요일 오후라서 길이 막힐 것을 걱정했는데, 막히는 구간은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하니까 그냥 쑤우욱 지나온 느낌이다. 고속버스 좋다.^_^

 

비행기 처럼 운행정보를 보여주는 메뉴가 있더라.

하지만, 메뉴만 있더라. 출발부터 도착할 때까지 계속 "검색중..."

 

출발할 때와는 반대로 고속버스에서 내려 지하철 7호선을 타고, 시내버스로 환승하여 집에 도착하였다. 내차로 운전하면서 돌아다닐 때와는 비교가 안된다.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ㅎㅎㅎ

 

드론 조종기를 든 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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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5일에 1박 2일로 전주 여행을 다녀왔다. '드론'이라는 공통 테마로 알게 된 사람들이 오랜 만에 회합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다양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려니 날 잡기가 어려워 한번 파토가 났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잡힌 일정인데 하늘에서는 '장마'라는 축복을 내려주었다.

기왕 먼 곳으로 출타를 하는 것이니까 전주에서 모임을 파하고 나서 KTX로 달려온 옆지기와 인근 지역을 함께 여행하려는 꼼수를 부렸었다. 그런데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 하여 옆지기가 거부하길래 할 수 없이 혼자 다녀왔다.

그래서 내차를 가져가지 않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했다. 네이버 지도에서 경로 검색을 했더니 자꾸 고속버스를 추천하길래 그대로 따랐다. 우등버스 위에 '프리미엄' 버스라는 것이 있다고 나와 그것을 이용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라는 이름을 두고 "센트럴시티터미널"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더라. 지하철 7호선을 타고 달려갔다. 하차하여 탑승구까지 찾아가는데 머리에 무리가 오더라. 땅속에서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면서 열심히 표지판을 찾아 따라가야 했다.

 

전주행 프리미엄 고속버스. 의자가 비행기의 비지니스 석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어 앞사람 뒷사람의 의자 조작과 관계없이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좋다!^^

 

12시 20분 출발하여  공주의 정안알밤휴게소에서 한번 쉬었다. 15분간 휴식. "고속버스환승정류소"가 있는데 아직 이용해볼 기회가 없어 정확히는 모르겠다.

 

상행선과 하행선 화장실에 칸칸마다 붙어있는 판떼기. "흘리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안내문이어야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계속 든다. '흘리고 티를 내지 말라'고???????

 

오후 3시 15분 경에 도착하였다. 진덕교에서 바라본 전주고속버스터미널. 장맛비가 억수로 쏟아진다고 했었는데, 하늘은 너무도 푸르렀다.

 

하늘에서 바라본 전주고속버스터미널과 주변의 모습이다. 드론이 작업해 준 것이다.

 

전주천을 만났다.

장맛비가 억수로 쏟아진다는 예보가 있었기에 혼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아가며 천천히 걸어보려 계획했었다. 헌데 갑자기 날씨가 이렇게 변해버렸다. 스맛폰으로는 계속 "폭염경보"가 날아오고... 이게 무슨!!!

 

비가 내렸으면 그냥 가방 속에 모셔져 있었어야 할 드론을 꺼냈다.

전주천 산책로를 걷는 늙은 Journey Walker의 모습과 멋진 전주와 전주천의 모습을 담아 보았다. 이날 Journey Walker는 뙤약볕 속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striding man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전주에 거하는 지인에게 '나 전주왔소'하는 신고 전화도 하고, 궁금했던 드론 작동 방법도 테스트하는 기회로 삼았다. ActiveTrack과 POI  기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감을 약간 익힐 수 있었다. 아... MasterShot 기능을 사용하려고 하다가 잊고 안했네..ㅎㅎ

 

전주천 변에 위치한 '서산'에 올라 능선을 따라 걸어가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뜨거운 햇볕 때문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걷다보니 금새 지나쳤다. 전주기전대학 쪽에서 올라가 '화림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는 곳에서 드론을 날려 전주 시내 구경을 좀 하다가 내려왔다.

 

전주천과 서산의 모습. 다가교 건너에 넓은 운동장을 가진 신흥고등학교, 그리고 서산 기슭에 전주기전대학 보인다. 서산의 해발고도는 109.2m이다.

 

서산의 일부. '도토리골'이라는 작은 마을이 보인다. 산사태가 발생하여 복구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마을 앞의 작은 다리가 '진북교', 큰 다리는 '도토리골교'.

 

전주기전대학 쪽에서 서산을 오르면 '화림정'을 만난다.

 

기둥마다 부채가 매달려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분의 배려일지^^;

 

화림정 앞에 드론을 띄워 전주시청 방면으로 파노라마 사진을 만들어보았다. 전주 날씨 좋다. 참 좋다. 저 멀리 대둔산이 위치하고 있겠다.

 

다시 전주천을 따라 상류 방향으로 걸었다. 눈앞을 어지럽히는 잠자리들이 너무도 반갑다.^^

 

저 멀리 보이는 청연루의 모습도 반갑다. 

고속버스와 KTX를 통해 다른 멤버들이 도착했다는 전화 연락을 받았다. 숙소가 부근에 위치하기에 다른 멤버들의 도착을 기다릴 겸 드론을 또 날렸다.

 

전주천 건너편이 한옥마을이다.  하늘에서 본 경기전의 모습.

 

전주의 한옥마을 방문할 때마다 올라가 보는 오목대 주변에 나무들이 무성하다.

 

한옥마을이다. 외관 만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 보존될 수 있을 지... 이미 마을 자체는 '한옥'의 굴레를 벗어난 지 이미 오래인데... 외국 음식 가판대와 식당, 거리에서 들리는 외국 음악 등이 '한옥 마을'을 찾아 온 정성을 흐리게... 흐리게...

이곳도 Over Tourism이 문제?

 

드론의 배터리도 다 떨어지고 나의 체력도 다 방전되어 골목길로 들어섰다. 아주 잘 숨어 있던 오늘의 숙소 '서학의 아침'을 찾아냈다. 

 

건물의 외관도 깔끔했지만 내부도 아주 멋지게 꾸며져 있었다. 나중에 도착한 다른 멤버들도 숙소에 대한 만족도가 "최고"였다. 최고!!!

 

약간씩 도착 시간에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모두 모여 드론 작품 및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토의를 이어갔다. 전주교육대학의 교수님께서도 축하 방문해주시고..

그런데 새벽 4시 반에 왜 전주 시내를 돌아다녔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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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구석의 굴에 쳐박혀 꼼짝도 하지 않으려는 식구들에게 햇볕을 쬐게 해주고 싶었다.

날좋은 6월 21일에 식구들을 차에 싣고 달렸다.

남양주 진접에 유명한 순대국밥집이 있다고 하여 찾아갔다. 18.7km, 32분 정도 걸렸다.

 

순대를 주문하고...

순대국밥을 주문했다.

 

잘 먹고 진접읍에서 오남읍으로 이동하였다.

오남저수지 변에 위치한 다송카페. 참 멋진 곳이다.

 

아담하고 조용하고 예쁜 저수지, 오남저수지를 오랜만에 만났다.

 

호변을 따라 산책로가 참 잘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오남호수공원이기도 하다. 한바퀴 거리가 3.1km 정도이다. 1시간 정도 시간을 잡아 천천히 구경하면서 걸으면 적당할 정도이다.

 

좀 움직이게 하고 싶은데 아드님은 움직이시질 않는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쉬시라고 하고 둘이 나섰다.

 

혼자 있을 아들이 걱정되어 옆지기는 나를 버리고 저만치 혼자 달려간다. 아들을 찾아서...

 

 

자주 찾고 싶은 곳이다. 오남호수공원.

산책길 따라 한바퀴를 돌아보았다. 두번 째인가... 곧 다시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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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에서 주관하는 '강사의 안내와 함께 하는 걷기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로그램의 신청 기간은 지나 있었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코스를 보니 멀지는 않지만 들어보지는 못하던 곳이었다. 경로를 지도에서 찾아보니 걷기 운동으로 적합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래서  2024년 6월 15일 오전에 다녀왔다. 걷기 운동도 하고, 점심도 해결하고... 1타쌍피를 노렸다. 빗방울이 좀 떨어질 것이라는 날씨 예보가 있었지만 비 피할 곳 정도는 있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하였다. 뭐 어떻게 되겠지...

 

집을 출발하여 당현천을 따라 내려갔다.

'플로킹'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알게 해준 고마운 분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멋지게 보였다. 영웅 만세!

 

당현천이 중랑천에 합류되는 곳에 '만남의 광장'이라는 건물을 신축하는 공사 현장이다. 동부간선도로와의 사이가 아주 좁은 곳인데 그 틈에다가 건물을 만들고 있다. 돈이 썩어난다.ㅎㅎ 건물 완공되고 구청장 와서 행사하고... 나서 동부간선도로 확장한다고 철거되지는 않을지...................

 

학여울청구아파트 쪽에서 월계역을 연결하는 한내교를 통해 중랑천을 건넜다. 구름낀 하늘이 시원해 보인다.

중랑천 상류 쪽으로 수위가 낮아지면서 큼지막한 하중도가 드러나 있다. 다양한 식물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고, 새들의 쉼터로 이용된다.

하류 쪽으로 보이는 중랑천 주변의 모습. 멀리 보이는 다리는 월계1교.

 

한내교를 건너와 중랑천과 초안산 사이의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걸었다. 소각장의 굴뚝에 예쁘게 색칠을 해놓았다.

 

도봉구의 랜드마크일 것이다. 공사 기간이 꽤 길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창동역 옆에 위치한 49층 짜리 오피스텔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파트 건물들 머리 위로 보인다. 북한산 자락이 배경이 되어주고 있다.

 

녹천역 두산위브 아파트 부근에서 1호선 전철 아래를 지나는 터널이 있다. 무서워 보이는 중2병들이 보여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초안산로를 따라 걷다보면 "각심재" 표지판이 보인다. 다왔다.^^

 

초안산 자락의 숲속에 숨어 있다.

 

표석도 있다. 恪心, 마을 삼가하다? 마음을 공경하다?

 

야트막한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는 서울시 문화유산이다. 아니 실은 예안이씨 집안의 재산이다. 

안내 표지판. 예안이씨 집안의 재산인데, 원래는 나라를 말아먹은 민씨 집안의 소유였었다. 그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갑부 민영휘의 아들 민대식이 두 아들 민병욱과 민병완을 위해 같은 모양으로 나란히 지은 두 채 가운데 하나다. 설계자는 건축가 박길용(朴吉龍)으로서, 그의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유작이다.

특히 이 주택은 1930년대 후반기 개량한옥이 가지고 있는 많은 기능적인 요소를 상류주택설계에 도입하여 한국주택사의 자료로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원래 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1977년에 정순주 가옥으로 불리던 건물이 서울시 민속자료 제16호로 지정되었다. 도로 개설로 헐리게 되자 소유주가 예안이씨 대종회에 기증하였고, 예안이씨 묘역이 있는 월계동으로 이전하여 문중의 재실로 사용되고 있다.

④숭덕당과 ⑤각심재.

지금의 월계동 각심재에는 경운동에 있을 당시의 행랑채는 없어졌고 건물 서북쪽에 부속채가 신축되었다. 

종로구 경운동에서 월계동으로 옮겨 왔는데, 원래 위치했던 곳은 현재 한옥 양식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인사동길의 경인미술관 바로 옆에 위치한 '민가다헌'이 그곳이다.

                                                         

중요한 자료라서일까 일반인이 쉽게 가까이 가서 볼 수가 없다. 담 넘어 멀리서 바라보아야 한다.

한옥에 현관을 만들고, 화장실과 욕실을 내부로 넣고 이를 연결하는 긴 복도를 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형태의 이 집은 근대적 건축 개념이 도입된 한국 최초의 개량 한옥으로 일컬어진다. 동향으로 난 대문을 들어서면 H자형(예전 식으로 말하자면 ‘工’자형)의 본채가 남향으로 배치되어 모든 방들에 채광이 잘 되도록 했고, 대청을 한 칸 규모로 축소하고 별도의 응접실을 두었다. 현재 북촌 등에 남아있는 ‘ㄱ’, ‘ㅁ’자 형태의 한옥들과 달리, 이 집은 전통적인 서울·경기지방의 ‘ㄱ’자형 평면에 현대적 개념의 응접실·욕실 등을 배치한 것이 독특하다. 지금의 인테리어도 당시 집 주인이 사용했던 빅토리아풍 가구를 재현했다.(임형남, 노은주, 세계일보, 2015.07.15)

 

외삼문이 굳게 닫혀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걱정도 하지 않았던 빗방울이 떨어진다. 걱정거리였던 것을 화장실에서 해결하면서 비도 피하겠다는 계산을 깔고서 나선 길이었다. 그런데 문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화장실을 그 안쪽에 위치한다. 서울시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니 관리비 지원이 이루어질텐데(아닐지도...) 화장실이 담장 안에 있다니.....ㅠ.ㅠ..... 귀한 집안의 담장을 넘을 수 없으니 서둘러 다른 화장실을 빗방울 맞으며 찾아나설 수 밖에......

 

다행히도 바로 옆에 월계동 대우아파트 단지 앞에 월계프라자 상가 건물이 보였다. 살살 뛰었다. 우환을 해결하고 상가의 식당에서 배고픔도 해결하였다. 냉면 맛있더라... 

 

천천히 걸어서 인덕대학교, 인덕과학기술고등학교를 지나 월계역에서 한내교를 건넜다. 비가 내리던 하늘의 구름이 시원해 보인다.

 

점심도 먹고 천천히 구경도 했더니 세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다. 거리는 10.4km 밖에 안되는데... 13,847걸음이었다.

 

늘 같은 코스를 하염없이 걷는 것보다는 이런 명소를 찾아보는 것이 더 재밌다.

다음에는 어디를 찾아가볼까....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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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강진군에서 시행하고 있는 "강진 반값가족여행"의 혜택을 보았다. 조금 더 배우며 여행을 하기 위해 강진군 홈페이지에서 강진군에 대한 여행 자료를 부탁했었고, 그렇게 받은 자료 중에 『있는그대로 강진여행』이라는 책자는 지금까지 내가 받아본 지자체의 여행안내자료 중에서 최고라고 평하고 있다.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지만, 특히 주제별로 나눈 후 안내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강진군 지도에 표시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후 "어디를" 다녀왔냐는 다른이들의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최고다!

 

그렇게 해서 병영성과 하멜 기념관은 강진군 여행 첫날에, 강진만생태공원, 가우도, 석문공원은 둘쨋날에 방문하였다.

 

1. 전라병영성과 하멜 기념관

전라병영성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병마도절제사 마천목 장군이 축조하여 1895년 갑오경장까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전라도와 제주도를 포함한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의 총지휘부였다.

그래서 1872년 지방지도에서 강진현을 찾아보면 강진읍과 병영의 규모가 거의 비슷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雪城 혹은 細柳城이라고도 했던 병영성은 지금의 광주광역시인 광산현에 있던 병영을 당시 도강현이었던 이곳으로 옮긴 것으로, 기록에 의하면 둘레가 2,820척, 높이가 10척 8촌이었고, 연희당, 응수당, 객사 등 부속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전라병영성에 1656년부터 1663년까지 네덜란드 인 하멜(Hendrik Hamel) 일행이 억류되어 생활하기도 하였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불에 타 폐허가 되었다가 이듬해 폐영되었다.

전라병영성 전체 길이는 1,060미터, 면적은 93,139제곱미터로 남북으로 길다란 장방형에 가까운 평지성이다. 배후에는 해발 561미터 높이의 수인산에 산성이 있다. 동서남북에 옹성을 갖춘 문터, 4개의 모서리와 동벽, 서벽에 2개씩의 치성의 흔적, 남서쪽 배수구 시설, 조선시대 읍성 진영에 일반적으로 적용된 방법으로 축조된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1997년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 성곽, 남문, 동문 등이 복원되었고 성곽 내의 소실된 건물들과 유적들은 현재 복원중이다.

 

병영성의 동쪽에는 이곳에서 6년간 억류 생활을 했었던 '하멜 기념관'이 멋지게 만들어져 있다.

 

병영성의 동문을 보호하는 옹성에서...

 

성벽의 길이가 1km를 살짝 넘는 정도이니 천천히 걸어서 한바퀴를 돌아보면 좋다.

 

남문 부근의 일부 구간은 지난 해의 집중호우로 인한 재난에 휩싸였다. 성벽 일부가 붕괴되어 복구를 기다리고 있다.

 

병영성 서문 밖에 위치한 하고저수지 옆을 지나는 배율천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교'가 놓여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어 있다. 18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후기의 지방 건축술이 크게 발전된 양상으로 보여주는 우수한 유적이다. 아름다운 조형미를 갖춘 다리로 조선후기 다리들 중 수작으로 꼽힌다는데 이곳을 놓치고 이번 여행에 직접 보질 못했다. 넥스트 타임~

(사진 출처: 조진섭, 2018, "그옛날 당당했던 모습으로 돌아온 호국의 성지," 국방저널, 통권 530호, 81쪽.)


병영성의 동문 밖에는 하멜 기념관이 위치한다. 월요일에는 휴관하여 내부를 구경하지는 못했다.

하멜기념관은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렸다고 평가되는 『하멜보고서』의 저자이자 병영에서 오랫동안 억류생활을 했던 헨드릭 하멜을 기념하고, 강진과 네덜라드 호르큼 시와의 문화적 교류를 위해 개관되었다.

 

네덜란드 사람이라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풍차가 광장 한쪽에 모셔져 있다. 네덜란드 풍차가 이런 모습이었던가? 30여년 전쯤에 한번 본 것 같기는 한데...

 

그리고 기념관 앞에서 병영성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하멜 동상을 만날 수 있다.

동인도회사의 선원이었던 하멜 일행은 일본으로 항해하던 중 배가 난파되어 1653년 제주에 표착하였다. 이들은 탈출하기 전까지 13년 동안 조선에 살아야 했고, 그 중 7년을 강진 병영에서 지냈다.

하멜 일행이 이곳에서 보낸 기간이 길었던 만큼 병영 일대에는 네덜란드 문화와 관련된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병영면 성동리의 마을 안쪽을 지나는 '한골목길'의 담장의 축조 방식이 독특하다. 돌을 세워 아랫층과 윗층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엇갈리게 쌓아 마치 빗살무늬 처럼 만든 것이다. 이 담장의 방식과 부근의 수로 등이 그들을 통한 네덜란드 문화 흔적으로 보고 있다.

탈출에 성공한 이후 1668년 네덜란드에 귀국한 하멜은 조선 표착 기간 동안의 임금을 받기 위해 동인도회사에 보고서를 제출하였는데, 이 문서 바로 하멜표류기로 알려진 책의 원서이다.

 

월요일에는 휴관하여 들어가보지 못하는 하멜기념관 전시실에는 전라병영성 출토 유물, 하멜보고서, 호르큼 시에서 기증한 네덜란드 전통의상 등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멜의 조선 표착의 역사적 의미와 17세기 조선의 병영 문화, 네덜란드의 역사 및 국제교류사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 강진만 생태공원

탐진강의 열린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강진만은 자연적으로 넓게 형성된 汽水域(brackish water zone)으로 하구 습지에 인접한 농경지, 소하천, 산지 등의 자연환경이 양호하여 다양한 생물들이 풍부하게 서식하는 생태다양성의 보고이다.

 

2015년 국립환경과학원의 정밀조사에 따르면 멸종위기야생동물 10종을 포함하여 1,131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평균 548종의 생물이 출현하는 남해안 11개 하구역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생태다양성을 자랑한다.

 

예로부터 남해안과 제주도를 오가는 뱃길의 대표항구였던 남당포구가 있던 강진만은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 정약용의 한시 '탐진어가'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천천히 데크길을 걸으며 강진만의 생태를 감상할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201-2호인 '큰고니'를 형상화시킨 조형물이 탐진강 제방에 만들어져 있다.

 

다리 이름도 '고니 다리'.

 

갯벌위의 갈대밭 사이로 데크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밀물 때와 썰물 때의 모습을 모두 보고 싶었는데, 그냥 지나가는 여정이라 그렇게 하질 못했다. '1주일 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분들은 얼마나 좋을까~~~^^

 

3. 가우도

강진만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가우도는 후박나무 군락지 등 자연이 살아숨쉬는 숲이 청자 빛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강진을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강진읍 보은산이 소의 머리인데, 섬의 생김새가 소(牛)의 멍에(駕)에 해당된다고 하여 '가우도'라고 불리게 되었다.

강진만의 서쪽인 도암면에서 가우도로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다산다리'의 모습.

 

강진만의 동쪽인 대구면과는 '청자다리'로 연결된다. 청자다리를 통해 이어진 가우도의 정상 부근에 '무엇'인가가 보인다.

 

가우산 위에 거대한 '청자'가 올라와 있다. 청자타워이다. 짚라인을 타고 청자다리 옆을 날아가 대구면에 도착할 수 있다.

 

청자 타워까지 모노레일을 통해 올라갈 수 있다. 왕복 3,000원.

 

가우도에서 바라본 '다산 다리'의 모습, 다산 초당이 있는 방면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가우도에서 바라본 '청자다리'의 모습. 고려청자 요지가 많이 분포하는 칠량면 쪽과 연결되어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 다산다리와 청자다리의 골격과 구조는 같다. 2륜차 통행금지!

 

가우도 둘레길의 북쪽에 위치한 '출렁다리'. 흔들면 출렁거려서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

 

다산다리를 걸어서 건너 가우도로 넘어간다. 

촬영은 이 친구가 해주었다.

 

가우도에 도착하자마자 '황가오리빵'을 사먹어볼 수 있다. 5개에 5,000원.

 

그리고 가우도를 이렇게 즐길 수 있다.

둘레길 이름이 '함께海길'이다. 가우나루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모노레일을 타고 청자타워까지 올라갔다가 돌계단길을 내려와 출렁다리를 건너서는 나머지 '함께해길'을 걸어 다산다리를 통해 선착장의 주차장으로 나왔다.

 

영랑나루쉼터에서 영랑과 함께 기념사진을 하나 남겼다.^^

 

가우도 출렁다리. 짐을 싸면서 '빗'을 빼먹었고, 가져갔던 모자는 바람에게 빼았겼고.... 내내 머리 모양이 새집이다.

 

가오리들과 함께 남긴 기념사진.

 

다시 또 자꾸만 가고싶은 섬, 가우도

 

4. 석문 공원

기가 막히게 멋진 장면이다.^_^  석문공원은 긴 세월 비바람에 깎아놓은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곳으로, 석문산과 만덕산을 잇는 산악형 현수교가 유명하다. 멋지다!!!

 

'사랑+구름다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길이 111m, 폭 1.5m의 출렁다리(탄탄하여 잘 출렁거리지는 않는다.)에 올라서면 아찔함과 동시에 주변의 풍광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다리 양쪽 끝에는 하트 모양의  게이트 겸 포토존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추억을 사진으로 담기에 좋다.

 

절벽에 매달린 '석문정'.

 

절벽 위에 올라앉은 전망대.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살금살금 건너가 보았다.

 

멋진 곳이라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석문교 옆에 조성된 주차장에 차를 두고 55번 도로 옆으로 조금 걸어서 물놀이장이 있는 도암석문계곡 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도암천을 가로지르는 '석문2교' 아래를 지나면 바로 진입로이다.

 

드론 갖고 노는 것이 즐겁기만 한 새집 머리 할아버지.

 

주변 산책로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자연의 조각품들을 즐길 수도 있다. '새종대왕 바위'와 '큰바위 얼굴'.

 

5. 고바우 전망대

대구면에서 마량면으로 향하는 강진만을 따라 연결된 해안도로는 시원하게 즐기는 드라이브가 가능하다. 고려청자박물관 조금 못미쳐 강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명소인 '고바우상록공원'을 찾았다.

'고바우 전망대'라는 표지판이 시인성이 떨어지게 만들어져 있다. 잘 안보인다. 그리고 넓은 주차장 입구는 막혀 있다. 공사중이다.

 

무엇인가 거대한 것을 만들다가 멈추었다. 공사중이라 하자.

 

낙조가 가장 멋진 장소인데 대낮에 찾아갔다. 확뚫린 전망이 시원하다. 다음엔 낙조를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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