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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에 이현군 박사의 교동도 답사기가 실렸었다. 간결하게 교동도의 특징을 아주 잘 담은 답사기였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1/18/2014111802094.html

그곳을 2016년 3월 26일 토요일에 답사하였다. 이번에도 지오트립의 멤버들과 함께 하였다.

6시 좀 넘어 집에서 출발하여 전날 설치한 AR 기능을 하는 네비의 도움을 받아 중동고등학교로 달렸다.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기다리다가 남팀장의 차로 갈아타고 강화도로 달렸다. 중간에 두 분을 더 모시고서.

전체 이동 경로의 모습은 요정도 나온다. 중동고 기점으로 왕복 211km 쯤 되었던 것 같다.

 

강화도에서 교동도의 구간만 확대하였다. 카메라 모양의 아이콘들이 있는 곳이 정차하여 답사한 뽀인트들이다.

 

강화터미널에서 다른 멤버들과 모여 세 대의 차량으로 나누어 타고 교동도로 출발하였다. 검문소에서 대표자 인적 사항을 기록하고 임시출입증을 받았다. 교동대교를 건너니 섬이라는 인상보다는 그냥 어느 한적한 지방 농촌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화개산을 올라 팔각정에서 교동도를 전반적으로 조망하고 내려와 화개사, 교동향교, 교동읍성을 답사하였다. 대룡시장내 식당 '소풍'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부근의 대룡시장 골목을 답사하였다. 교동도내 농경지의 농업 용수를 공급하는 두개의 커다란 저수지 중에서 난정저수지를 들러 해안의 철책에서 북한 쪽을 바라보았다. 강화도 교산리로 이동하여 고인돌군의 일부를 보고 강화 풍물시장에서 답사를 마감하였다.

적접 지역이라고 하던가...교동도 전체가 민통선 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다. 자세한 지도를 구하기도 어렵다. 포털 사이트에 공개된 지도에서도 교동도 지역은 대충 나올 뿐이다. 그래서 인공위성 영상을 통해 더 자세한 지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화개산 일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 지역이 경지 정리가 잘 되어 있다. 경작지중 논의 비율이 전국 수위 수준이라던데,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화개산 등반코스와 교동항교, 교동읍성, 그리고 대룡시장 쪽으로의 이동 경로가 잘 나와 있다.

 

지오트립 팀에서 지방 답사를 하게 되면 거의 중동고등학교 지하주차장에 차를 맡긴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른 시간. 햇님이 출근하신다.

 

중동고등학교 정문 옆에서는 양주동씨의 '어머니 마음'을 읽어볼 수 있다.

 

해를 등지고 서쪽의 웨스트를 향해 한강변의 도로를 따라 달린다.

 

강화도에 도착하였다. 터미널. 상가의 입구로 들어가 직진하면 터미널이 나오고 거기서 왼쪽 끝으로 가면 화장실이 있다.

 

오늘의 답사 예정 인원이 모두 모였다. 인사를 나누고 세 대의 차를 이용하여 교동도로 향한다. 교동대교가 연결되면서 섬이지만 섬이 아니게 된 교동도. 한강 하구의 민통선 내에 위치하기에 경비를 담당하는 군의 검문을 받아야 출입이 가능하다. 밤 12시 전에 섬을 나와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들었던 것 같다.

 

 

검문소에서 인적 사항을 기록하고 이런 임시출입증을 받고 들어간다. 물론 잘 보관해야만 한다. 나올 때 반납을 해야 하므로. 

 

교동도는 지금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독립된 군현으로서 교동현(喬桐縣), 교동부(喬桐府)였던 곳이라고 한다. 높을 교자에 오동나무 동자를 쓰는 교동이다.

(위에 링크한 이현군 박사의 자료에서 가져온 교동부 지도)

 

화개사에서 오늘의 진짜 답사를 시작한다.

 

일단 가볍게 뒷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화개산.

 

경내에 재밌는 글귀가 보인다.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라고. 벌렁벌렁 눕다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화개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코스 안내.

 

두발로 걸어 올라가야 한다.

 

정상을 향해 오르는 중간에 위치한 암각화.

 

화개산 봉수대. 화개산을 오르는 중간에 멀리서 아스라이 들리는 확성기 소리도 있었다. 뭔 말인지 전혀 알 수는 없었다.

 

화개산 정상에 오르면 내가 있.....

 

정상에는 산불감시탑과 팔각정이 있다.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의 봉우리 위이니 전망은 당연히 좋다.

 

남쪽으로 석모도가 보인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설치한 측량표도 한쪽에 있다.

 

의외로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 팀이 모여 끼리끼리 음식을 나누어 먹더라.

 

교동도의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는 경지의 모습이 산 아래로 펼쳐져 있다. 멀리 오늘의 답사 포인트 중의 하나인 난정 저수지가 보인다.

 

북쪽을 보면 산 아래로 교동도의 2대 저수지 중 하나인 고구 저수지가 보인다. 두 저수지가 있기에 교동도에서 벼농사를 널리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저수지에서 논으로 물을 보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논에서 나오는 물을 다시 저수지로 퍼올린다고 한다. 2년 전 심한 가뭄을 겪어 한강물을 교동도로 퍼오는 시설을 해놓았다고 하였다.

 

산을 천천히 내려왔다. 화개산 중턱에 위치한 자그마한 절집, 화개사. 깔끔하다.

 

기도중이라는 팻말이 있고 아무도 안보인다. 조용하다. 닫혀 있다.

 

 

교동향교로 향한다. 2년 전 와보았던 곳이라 그런지 반갑다. 막 아는 채를 해주는 것 같다. 왼쪽에 차량출입금지, 오른쪽에 하마비가 있다. 차든 말이든 내려서 걸어가야 한다는 말씀.

(이현군 박사 글 인용) 대부분의 향교 하마비에는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대소인원 모두 말에서 내리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교동향교 하마비에는 ‘수령변장하마비(守令邊將下馬碑)’라고 적혀 있다. 지위가 높으나 낮으나 모두 공자를 모신 사당인 향교 입구에서는 말에서 내리라고 세운 게 하마비다. 교동도에서 높은 사람은 수령과 변장이니까 둘을 꼭 찍어서 이렇게 적었나보다. 변장은 군사 우두머리이다. 교동도의 남쪽 남산포가 옛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이 있던 곳이다. 삼도는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를 일컫는 말이다. 이 섬이 수군 중심지였던 거다.
분단 때문에 우리 생각도 막혀버려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거지 한반도 전체 지도를 놓고 보면 수군 중심지가 되기에 적합한 위치가 교동이다. 향교 뒷산은 269m의 화개산인데 교동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향교 설명문을 읽어보았다. 지금은 화개산 남쪽에 향교가 있지만, 영조 17년(1741)까지는 화개산 북쪽에 있었나보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안향이 원나라에 갔다가 공자 초상화를 가지고 오다 이 곳에 모셨다고 전해지는 곳이 교동향교이다.

 

홍살문을 지나 향교를 향해 걷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산 위의 팔각정이 보인다. 아...옆의 산불감시탑도 보인다.

 

향교의 외삼문 앞에서 잠시....문들이 모두 작다. 이 때는 모두들 키가 작아서였을까 하니면, 늘 고개를 숙이고 다니라고 그런 것일까. 그리고....왼쪽에 화장실이 있다.

향교 안내자료를 스캔하였다.

 

새로 선출된 31대 전교의 임기가 금방 시작된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향교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깔끔하다. 지금도 운영 중인 것만 같다.

 

공자를 모신 대성전.

 

공자가 제자들을 은행나무 아래서 가르쳤다고 한다. 그곳을 행단(杏壇)이라고 하며, 공자를 모신 곳에서는 은행나무를 상징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성균관대학교에서는 은행나무잎을 교표에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교동향교에도 은행나무가 당연히 심어져 있다.

 

교동읍성이다. 세상에나. 이게...이게... 이렇다.

 

읍성 안내판.

 

읍성의 남루였던 곳이다. 돌에 새겨져 있다.

 

교동도도 강화 나들길 구간의 일부로 치는 것 같다.

 

우물 정(井)자 모양의 석재로 쌓은 우물들이 보인다. 예전 사용하던 식수원이었으리라. 이곳은 황룡의 전설과 연결시켜 놓았다.

 

교동부지에는 남아 있는 시설이 아무 것도 없다.

 

 

교동부지를 차지했던 일제 강점기의 가옥. 폐가가 되어 있다.

 

교동부지 뒷 편의 언덕 위에는....혼자 서 있다. 어떤 사연의 보호수인지 표지판까지 달려가서 확인하는 수고를 하지 않고 그냥 왔다.

 

연산군적거지. 

 

이곳 저곳의 석재를 모아 놓은 것이겠지 하며....지난다.

 

점심은 소풍가서 먹었다.

(사진 제공 남호석 사장. 그냥 가져왔지만 제공했다고 치기로 하고..)

시간의 흐름이 조금 멈춘 곳. 교동도의 대룡시장이다.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등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을 끌고 있다.

 

 

 

 

 

 

 

 

환경이 오염되지 않았고 논이 넓기 때문일까, 제비집이 굉장히 많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나즈막한 처마 아래의 제비집에 신기하여 많이 건들려는 모양이다. 그 특유의 '예쁘다~' 하면서 만지려고 하는 손길. 야생의 생물들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데...그래서 제비집에 손을 대지 말라는 주의글이 이곳저곳에 적혀 있다. 손대지 말지 말입니다.

 

정육점의 고기가 먹음직스럽다.

 

 

추억의 포스터들.

 

 

난정 저수지.

 

난정저수지에 태양광 설치를 반대하고 있었다.

 

저수지에서 주변 농경지로 물을 공급하는 수로.

 

민통선 내의 지역이므로 철조망은 너무 익숙하다.

 

난정 저수지의 은혜 속에 살아가는 농경지.

 

저수지로 물을 퍼올리는 양수장.

 

저수지와 연결되는 농수로.

 

농로를 따라 농경지를 가로질러 달렸다.

 

간척으로 조성된 평야 지대이므로 외곽을 따라 방조제가 건설되어 있다.

 

방조제를 따라 철조망. 철조망 밖은 다른 세상이다. 저 편이 북한이라고 한다. 능력자가 작정하면 헤엄쳐서 건널 정도 밖에 안된다. 중간에 뻘이 있으므로 쉴수도 있으리라. 경비 철저!

 

경비 초소는 야간에만 근무한다고 한다. 주간에는 전자제품을 이용한다. 이상 증후가 있는 경우 대기조가 즉각 출동하여 대처한다. 이상한 사람들이 철조망 밑에서 뭔가 하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들어왔으니.....출동해야지. 건장한 해병대원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 철조망 사이로 누군가 북쪽 모습을 촬영하는 모습이 카메라로 포착된 것 같았다. 핸드폰 카메라로 찍으면 뭐가 나온다고 그것까지 뭐라하는지...전원의 핸드폰 사진들을 검열했다. 아무도 없다. 다들 노회하다. 딱 뜨는 순간 문제가 될만한 사진들은 이미 다 "알아서 지운" 후였다. 씁쓸하다.

과거에는 해상 교통의 요지로서 수군이 주둔하기도 했던 곳. 분단되면서 민통선 북쪽에 위치해 외부와 단절되었던 곳. 교동대교가 건설되면서 다시 외부와 '교통하고' 있는 곳. 교동도의 모습을 일부 살펴볼 수 있었던 하루였다. 날씨 좋았고 좋은 분들과 재미있는 답사를 하였다. 답사라는 것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에 비해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실감하였다. 민간인을 지날 수 없었던 민통선이라는 것도 지나다닐 수 있고, 보안과 관련하여 미리 쫄며 조심하는데, 그러한 정도가 예전에 비해 많이 풀렸다. 앞으로 우리 땅의 답사를 다니면서 더이상 쫄지 않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교동도를 아쉬운 마음을 두고 떠났다.

 

강화도로 다시 넘어왔다.

교산리 고인돌군.

이쪽 저쪽으로 돌아가는 두 길을 표시한 것이 아니다. 양쪽에 고인돌이 있다.

 

고인돌 노래라니....고인돌 노래라니...

고인돌군.

 

고창의 고인돌군과 비교하면서 고인돌 문화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다.

 

고인돌군 주변에 묘지가 있었는데, 그곳에 여럿 박혀 있는 막대기. 뭘까? 공설묘지 경계봉이다.

 

강화군은 이런 마크를 사용한다. 물결치는 세 줄기는 강이겠고, 불은 딱봐도 불이다.

 

교동도 출입증을 반납하고 나오는 길에 인삼 재배지에서 잠시 멈추었다.

 

음지 식물이기에 이런 막을 설치해주어야 한다. 아직 철이 아니라 인삼이 없다.

 

강화 풍물시장 주차장에서 오늘 답사 모임을 해산하였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신 분들도 계시고 개인 승용차를 갖고 오신 분들도 계셨다.

저녁 약속을 하고 차량 두대가 대청역을 향해 달렸다. 서울이 당신을 웰컴한다는 전광판이 있었다.

 

오래간만에 대리기사와 동승할 기회였다. 그렇게 3월 26일의 답사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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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핑계다. 오랜 시간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난시를 비롯한 약해진 눈 건강 문제. 비오는 날밤의 운전을 가장 싫어한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만, 어쩔 수 있을 때면 어쩌려 한다. 어쩔 수 있는 경우이기에 오늘은 일찍 출발했다.

잣으로 유명한 가평 출신 친구가 부친상을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나절 지났으면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겠지 하면서 출발했다. 서울 북동부에 거주하니 가평 쪽으로 나오기는 부담이 적다. 게다가 평일 낮이니 교통 상황도 좋았다. 달렸다. 이렇게.

 

아버님께서 월남하신 분이라 남한에 친족이 없으시단다. 지난 밤 갑자기 돌아가셔서 경황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형도 있고 동생도 있고 여동생도 있으니 부담이 덜 하리라. 고인의 명복을 다시 기원.

너무 일찍 달렸나 보다. 방명록 첫 칸에 이름을 남기고 왔다. 조문객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며 나와 이런 경로로 돌아서 왔다.

 

가평역을 거쳐 남이섬 쪽으로 돌아 북한강변을 따라 드라이브하였다. 한강 위에는 아직 여기저기 얼음이 언 상태가 남아 있었다. 날은 맑았으나 강변의 바람은 약간 쌀쌀하였다. 혼자 드라이브 하는 가슴도 쓸쓸하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밖으로 나와 콧구멍에 바람 좀 넣으니 좋았다.

 

가평역. 외관이 멋있다. 큼지막하고 그럴싸하게 잘 만들어 놓았다. 

 

남이섬 주차장들과 수많은 식당들을 지나쳐 간다. 눈에 들어온 철탑. 엊그제 모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철탑이다. 남이섬으로 짚 와이어에 매달려 입도할 수 있다. 정선 병방치전망대에서 처음 본 것인데, 남이섬에도 짚 와이어를 설치해 놓았다. 비싸겠지?

 

남이섬 건너편 강변의 작은 가게. 잠시 주차를 할 수 있다. 화단에 올라가면 위험하다는 경고가 있으니 안전선 넘지 않고 북한강과 남이섬을 조망할 수 있다.

 

 

멀리 짚 와이어 철탑과 남이섬 선착장이 보인다.

 
강 위에는 얼음이 언 곳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얼음 위로 건널 수는 없을 것이다. 위험하다. 깨진 곳이 많으니까.

 

유람선도 얼음에 갇혀있다.

 

강변에는 수상 레저 시설, 숙박 시설, 작은 카페 등이 길가에 널려 있다.

 

경제가 호황기에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고 땅 좀 가진, 혹은 돈 좀 융통할 수 있는 개발업자들이 몰려 들었겠지. 당연히 그들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리라. 저 흉물스런 짓다만 건물은 그 흔적. 산과 강이라는 자연의 풍광과 너무 어울리지 않게 만들어진 콘크리트 덩어리. 무슨 배짱으로 저렇게 멋없는 덩어리를 크게만 만들려 했을까나.....

 

삼거리 슈퍼 앞. 청평댐과 청평 양수발전소 세트. 옛날에 양수발전소 견학을 왔다가 휴일이라고 안보여주던 곳이라는 기억만 남아 있다. 호명산 위의 호명소는 몇 번 와 본 적이 있고. 

 

가평 관광지 순환버스가 있나보다. 탑승장 안내판. 요금은 기사분에게.

 

순환버스의 A 코스가 이렇다고 한다.

 

햇볕이 잘 드는 곳이라서일까. 이곳은 얼음이 없다. 건너편에는 수상 레저 시설과 소규모의 숙박 시설이 보인다.

 

겨울이라 이용객이 없고 또 이용할 수도 없기에 폐쇄되어 있는 수상 레저 시설.

 

북한강.

 

청평댐이 보인다. 길가에 휴게 및 전망 시설을 준비해 놓았다. 이런 곳이 있는 것을 모르고 길에 그냥 차를 세우려 몇 번이나 시도하다가, 생명보험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그냥 얌전하게 운전했다.

 

댐. 청평호반. 앙상한 나뭇가지.

 

청평댐을 지나왔다~~~~~~~~~~~~~~~~~~~~~~~~~~~인증.

 

봉림원 옆 팔각장삼거리에서 신호를 한참 기다리다가 좌회전하여 열심히 달려 귀가했다. 별 일 없었을 듯 싶다.

 

조문 갔다가

청평호반 대강 답사하기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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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친구들이 있다. 가끔, 아주 가끔 동네에서 논다. 놀아봐야 당구 한 게임 치고, 소주 한 잔하는 것.

술 한 잔 걸치다 보면 세상의 모든 재미를 다 보는 듯이 떠든다. 정작 멍석이 깔리면 다들 샌님 본색이 드러나지만. 늘 같은 패턴으로 놀다보면 뭔가 다르게 해보고 싶어지는 것이 동네 친구들이겠지. 한 달 전부터 1박2일로 지방 먼 데를 나가 놀아보자고 굳게 약속하였다. 아저씨들 셋이.

하지만 임박해서 아저씨 하나의 사정이 생겨 1박을 못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하루를 가득 채워 놀자고 하였다. 헌데 어딜 가지? 고민이었다. 1인이 운전을 해야 하는데 그럼 대낮부터 해롱해롱 하는데 지장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그냥 이렇게 다녀왔다.

 

위성 영상으로는 이렇다. 

 
다산생태공원 가서 산책하다가 점심 먹고, 운길산 수종사를 향했다. 차 한 잔 마시러.
 
 
수종사 산문 안쪽에 있는 표지판이다. 슬로시티 조안면이 여기였었다. 모르고 있었네. 이제는 조안면이 슬로시티라는 것을 얘기하고 다닐 수 있겠다.
 

폐역이 된 능내역을 살펴보고 싶었는데, 그냥 지나쳤다. 길가에서 역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작은 기차 모양의 판데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곳은 올 때마다 달라진다. 몇 년 터울로 오니 그렇겠지. 20여 년 전에 처음 와본 것 같은데, 그 때의 황량했던 곳이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그 때는 한강 가까이에 바로 주차를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공원이다.

날 좋을 때 다시 와보아야겠다.

 

수종사로 가는 길을 매우 가파르다. 벌벌 떨면서 운전했다. 주차장에 주차하니 타이어가 힘들어 했다는 증거를 내민다. 탄 내가 난다.

 

다산생태공원. 한강 위에 얼음이 깔렸다. 이 얼음 위를 걸어보려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그러지 말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하늘은 음울하고 날은 싸늘하다.

 

다산 생태 공원의 모습이다. 다음 지도에서 가져왔다. 동쪽 끝 부분에 점심식사한 식당도 나온다. 반갑다.ㅎ

 

다산 생태 공원을 걷는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기에 옷깃이 닿는 인연이 만들어지길 애초에 기대할 수도 없다.

 

생태 공원의 동쪽 끝 부분에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높은 곳에서 조망하기 좋다. 주변의 산 이름들도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다. 지나가는 사람 1.

 

위의 지나가는 사람 1이 찍어준 사진. 내 옆에 지나가는 사람 2가 같이 찍혔다.

 

꽤 큰 식당이다. 당연히 TV에도 나왔었다고 하는 안내판이 있다. 장어와 민물고기를 다룬다. 가격은 당연하게 비싸다. 방 하나 차지하고 빠가사리 3인분 먹었다. 맛 괜찮다. 일하시는 분도 잘 대해주신다. 좋다. 

안 좋았던 것은 내가 차를 갖고 가서 운전을 해야 했기에 매운탕에 어울리는 화학 제품을 음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둘이서 각 1병.

 

식사 후 나오다 보니 공사 중인 곳이 있다. 근사한 돈 덩어리로 보인다. 통 유리로 벽을 마감. 이렇게 만들면 여름과 겨울에 어찌 하려는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들었다. 알아서 하겠지.

 

운길산 수종사 산문. 앞의 주차 공간에 거의 차들이 채워져 있다. 한가한 사람들 많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1458년(세조 4) 세조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금강산(金剛山) 구경을 다녀오다가, 이수두(二水頭:兩水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어 깊은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난데없는 종소리가 들려 잠을 깬 왕이 부근을 조사하게 하자, 뜻밖에도 바위굴이 있고, 그 굴속에는 18나한(羅漢)이 있었는데, 굴속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나왔으므로, 이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하였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그후 조선 후기에 고종이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요문화재로 보물 제259호인 수종사부도내유물(浮屠內遺物)이 있는데, 석조부도탑(石造浮屠塔)에서 발견된 청자유개호(靑瓷有蓋壺)와, 그 안에 있던 금동제9층탑(金銅製九層塔) 및 은제도금6각감(銀製鍍金六角龕) 등 3개의 일괄유물이 그것이다. [지식백과에서 긁어 왔다.]

 

길 옆의 비탈. 길을 만들기 위해 경사면을 잘라낸 이후 토사가 계속 빠져 나간 결과. 몇 년 후 이 나무는 길쪽으로 쓰러져 통행을 차단하게 될 것이다.

 

여러 곳에서 그러한 모습이 보인다.

 

새로 전입하신 분이다. 마음 속으로 인사드리고 올라간다.

 

수종사에 오르는 사람들을 위해 전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고마운 수종사. 그곳에서 보이는 양수리. 한강의 양수대교, 신양수대교, 양수철교가 아스라이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한 컷씩. 전망 좋은 곳에 서면 다들 기분이 좋아지고 서로 미소를 나누게 된다. 우리 모두 한민족이지.

 

범종각 아래의 천년묵은 은행나무.

 

새 단장을 한 범종각. 새것 티가 팍팍 난다.

 

 

양수철교와 양수대교. 북한강, 그리고 건너의 남한강. 그래서 양수리이다. 두물머리이다.

 

비석을 근사하게 만들어 놓았다. 근사하다. 표면을 아주 곱게 갈았다. 옆에서 보니 마치 거울같다.

 

대웅보전. 문가에 서서 고민했다. 무엇을 빌어볼까 하고. 지난 달에 떠나신 어머니 생각에 순간 울컥했다. 종교를 갖진 않으셨지만 그래도 보살펴 주십사 기원.....

 

이제 근사한 사찰과 멋진 경관을 즐겼으니 이곳에 온 본 목적을 실행할 차례이다. 삼정헌이었나, 경내 다실이 수종사를 유명하게 한 요소 중의 하나일 것이다. 통유리를 통해 한강 쪽의 경관을 조망하면서 약수로 우려낸 녹차를 마시는 맛이 일품이다. 그 다실의 툇마루에 앉아 졸고 있는 친구. 가까이 다가가도 전혀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다른 고양이도 그렇고 이곳에서는 어느 인간도 자신들을 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다실 내부에서 담소와 차를 즐기는데 카메라를 들이대면 방해가 될 터이다. 그래서 실내에는 촬영 금지라고 한다. 앞 뒤의 자리에서 작게 들리는 대화 내용을 보니 거의 교사들.

다실에 빈 자리를 잡고 앉으면 뜨거운 물이 채워진 보온병을 가져다 준다. 낮은 탁자에 설명서가 있다. 저 위 사진 중 지나가는 사람 1이 해 본 모양이다. 꽤 잘 한다. 세 번 우려먹고 설명서에 있는대로 다기 세척까지 하고는 지나가는 사람 2가 차를 무료로 마실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한 성의를 유료로 표하였다.

그렇게 다녀왔다.

그리고는 다시 중계동 은행사거리. 생굴 한 접시 먹고, 당구 지고, 김치찌게 한 뚝배기 먹었다.

그리고 하루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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