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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대학의 동남권캠퍼스에서 수강신청했던

"역사경관과 현대식 빌딩이 공존하는 도시 서울(현대편)"의 현장 답사 마지막 날이다.

조금 일찍 출발하여 동대문역에서 청계광장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을지로입구역에서 합류하여 일정을 함께 했다.

 

 

답사 진행을 위한 집합 장소였던 을지로입구역 4번 출구 앞. 다람쥐공원이라 되어 있다.

 

오후 4시가 되자 바로 답사를 시작한다.

길건너편의 남대문로9길 입구에 보이는 '음식문화거리'라는 표지판이 있는 위치 즈음에 소광통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계천의 지류 하천들의 분포를 보여주는 지도를 찾아보았다.

 

확대해보자. 지도에서 동그라미 친 창동천 구간이 오늘날의 '남대문로10길' 되시겠다.

 

18세기에 제작된 도성대지도를 구할 수 있었다. 창동천과 청계천 일대가 세세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소광통교에서 청계천 합류 지점(곡교)까지가 남대문로 10길이다. 소광통교에서 서쪽 구간은 남대문로 9길에 해당한다.

 

 


 

100년 전에 건설된 지하배수로가 공사 중 발견되어 서울시 문화재(제38, 39호)로 지정된 바 있다.

남대문로 지하배수로 구간은 회현동천 유로와 일치하며, 소광통교 구간은 창동천의 유로와 일치한다. 

이들 지류 하천들을 복개하고 지하화하면서 만들어진 배수로인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상업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청계천의 다른 지천에 비해 비교적 빠른 시기에 암거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흔적이 일부 구간에서나마 발견된 것이었다.

(https://news.seoul.go.kr/culture/archives/52788)

 


집결지에서 출발하여 '남대문로10길'을 따라 청계천한빛광장 방면으로 이동하였다. 

다른 도로들을 모두 남북 방향의 격자 모양을 이루는데 이 길만 빗금 방향으로 되어 있다.

청계천으로 흘러들던 지류 하천이 흐르던 곳이기 때문이다.

(을지로입구역 부근에서 GPS 로그 궤적의 오류가 심하다. 이리저리 막 튀었네. 하나은행 지하의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공간을 좀 오래 이용한 결과이다. GPS는 하늘만 보고 있어야 하니까...)

 

광통교가 있었던 곳에는 '광교'가 위치하고 있다.

복개했던 청계천의 복원 공사를 하면서 자그마한 광교로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어 위치를 서쪽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광교가 건설된 것이다.

 

광교 북단에 위치한 신한은행 건물 앞에 자그만하게 광통교의 모형이 전시되고 있다.

광교의 길이가 상당히 짧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계천 복원 공사를 하면서 더 넓게, 더 깊게 파낸 것이 현재의 모습이겠다.

돌다리인 광통교의 석재로 정릉의 신장석을 가져다 사용했다는 것이 독특하다.

 

현재의 광교 주변 안내도.

 

청계천 징검다리를 건너는 답사대원들.

 

'개천' 둑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둑의 양쪽에 석축을 쌓았다는 안내문.

'개천'이라 하였다. 토사가 하천 바닥에 쌓여 물이 넘치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하천 바닥을 준설하는 준천 작업 또한 반복되었다. 그래서 하천을 열어준다는 '開川'이란 이름으로 불린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후에야 '청계천'이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상류의 '淸風溪'에서 청계천이란 이름이 만들어졌다고...

 

다음 자료를 보면, 지금의 세운상가 있는 부근까지 석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노혜정, 1994, 서울시 중소하천의 경관변천에 관한 연구, 지리학논총, 제24호, 88)

 

수선전도를 탐구하는 답사대원들.

 

삼일빌딩 맞은편에 위치한 워터 스크린.

이 위치가 을지로입구역 부근을 지나 온 회현동천과 합류한 창동천이 청계천에 합류되는 지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창동천이 청계천에 합류하는 지점의 곡교 모습을 보여주는 1950년대 사진이 남아 있다.(서울역사박물관 보도자료, 2020년 7월 3일, 10쪽)

 

삼일교 아래에는 한화불꽃이 이글거린다.

 

청계천 복원 공사후 개통 첫 날,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삼일교의 중앙분리대에 조형물 설치 및 투광 목적으로 구멍이 주욱 뚫려 있었는데, 출입이 금지된 도로 한가운데의 조형물을 가까이 보려 다가왔다가 온 김에 아래의 구멍을 좀 깊숙이 쳐다보시다가 그만... 사망 사고였다. 그래서 지금은 조형물은 제거되고 구멍들을 모두 막혀있다.

 

가짜 수표교. 원본은 장충단공원에 계시는데 여러차례 원래 위치로의 이전이 시도되었었으나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이제는 논의가 중단된 상태이다.

현재 수표교의 위치도 원래 위치에서 어긋나 있다. 청계천 남북의 수표로를 잇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동쪽으로 30여 미터 차이가 난다. 원본께서 돌아오실 날을 기다리는 것일까???

 

서울의 중심 도로인 종로이다. 길 건너편으로 '송해길'이 이어진다.

 

조선시대 시장을 관리하던 관청인 '경시서'가 있던 터 표지석.

이 일대에 시전, 육의전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육의전PC방, 육의전 귀금속방 등이 성업 중이다.

 

퇴직하면서 나의 노후생활의 터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혼자 답사도 왔던 곳이다. 탑골공원, 입구인 삼일문.

 

탑골공원 속의 나......

 

탑골공원의 핵심 뽀인트인 팔각정.

 

주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분들. 저기낄려면 장기 정도는 배워두어야 하는가...

 

낙원악기상가 건물 옆을 지났다. 외관을 보면 보수 공사가 시급해보인다.

 

소머리국밥집 골목. 음~~~~ 햐~~~~~

여기서 답사에서 빠졌었으면............ 발걸음이 안떨어졌었는데...

 

그 분께서 즐겨 찾으셨었다는......

요기까지는 노인들의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드디어 익선동이다. 여기부터는 젊은이들의 공간이다.

 

골목이 좁고 혼동된다 하여 지도를 하나 인쇄해 들고 왔다.ㅎㅎㅎ

 

익선동 답사...

 

"한옥거리"라고 하지만 '한옥'은 보이질 않는다. 그냥 좁은 골목길이다.

 

그래서 높은 곳을 찾아 올라왔다. 종묘가 보인다.

 

창덕궁, 보현산까지 아주 잘 보이는 곳을 찾아 올라왔다.

 

높은 곳에서 익선동 한옥거리 쪽을 조망하였다. 기와지붕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러니 골목이 좁을 수 밖에 없다.

옛지명인 '익랑골'과 한성부 중부 '정선방'의 명칭을 합쳐서 만들어진 지명이 익선동이다.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서울의 주거공간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이 지역도 탐을 내기 시작했을 때 민족자본가인 정세권이 그들의 의도를 막아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주택개발업체인 '건양사'를 설립해 서울 곳곳에 한옥 주택을 지어 분양하였으며, 분양대금을 월단위로 나누어 내도록 하여 입주자들의 정착을 도왔다.

 

익선동 일대에서 정세권이 소유했던 지역과 한옥의 규모별 분포도를 보자. 다양한 규모의 다양한 형태의 가옥들로 구성되어 있다. 수도와 전기를 설치하고 좁지만 마당까지 마련하여 한옥의 실용성을 최대한 살려냈다.

(이두현, 2023, "전통을 활용한 골목재생, 익선동" 월간 국토, 통권 496호, 61쪽.)

 

최대한 가옥들을 배치하기 위해 골목은 좁을 수 밖에 없었고, 오늘날까지 거의 그대로 유지되면서 독특한 경관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위치는 서울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에 해방 이후 종로 화류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도 이용되었다. '삼청각', '대원각'과 함께 3대 요정의 하나였던 '오진암'이 이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 오진암, 명월 등 요정이 성업을 하게 되면서 필요하고 도우이 되는 서비스업이 따라 들어왔다고 한다. 악기상가나 한복상가 등이 성업하게 된 배경 중 하나라고 하더라. 한복집들은 거의 사라지고 소수만 남아 있다.

 

 

"100년 전의 해어화를 쫓다…오진암과 명월의 추억이 있는 종로"

( 100년 전의 해어화를 쫓다…오진암과 명월의 추억이 있는 종로 (mk.co.kr) )

 

오진암의 옛모습은 연합뉴스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매화나무가 그렇게 근사했었다고 한다.

(연합뉴스 2010년 9월 16, https://www.yna.co.kr/view/AKR20100915228200004)

 

오진암이 있었던 곳에는 이비스앰배서더 호텔이 자리잡고 있다.

 

화류 문화의 핵심이었기에 영업 중지이후 해체될 때 오진암의 보전 논의가 활발했었다. 그 결과 오진암이 있던 곳에는 이비스 호텔이 들어서고, 해체된 오진암은 부암동으로 이사갔다.

부암동에 안평대군이 지었었다던 무계정사는 소실되었지만, 2014년에 그 자리를 복원하면서 무계원을 조성하였다. 무계원의 한옥 건물이 오진암을 옮겨온 것이다. 부암동을 가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정세권 아저씨가 만든 공간이 익선동 한옥거리, 한옥골목을 과거의 요정을 생각해보면 떠난다.

 

오늘의 답사도 9시 넘어서 완료되었나 보다.... 

'종로3가역'이 보이길래 1호선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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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대학의 동남권캠퍼스에서 수강신청한 강좌인

"역사경관과 현대식 빌딩이 공존하는 도시 서울(현대편)"의 현장 답사 마지막 날이다.

조금 일찍 출발하여 답사 시작 전에 청계천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을지로입구역에서 합류하여 일정을 함께 했다.

 

4호선 지하철을 이용해 동대문역으로 달려가 오간수교에서부터 청계천을 따라 상류를 향해 걸었다.

 

1주일 만에 다시 만난 동대문, 흥인지문이다. 잘 계시더라.^^

 

8번 출구 옆에 설치된 '전차 차고지' 표지석으로 다시 한번 찾아보았다.

구한말에 설치되었던 전차의 차고지와 발전소가 있었던 곳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청계천 변에 위치한 신평화시장.

 

평화시장. 서점들이 많더라. 헌책방들도 있는 것 같더라.

한때 헌책방 찾아다니는 것이 취미였었는데.. 다음에는 이곳이 목표일 것 같다.

 

전차 차고지 자리를 차지한 JW메리어트 호텔과 동대문종합시장.

 

오간수교에서 바라본 청계천. 늘 북쪽의 통로만 이용했었는데, 오늘은 남쪽의 통로를 걸어본다.

 

오간수교가 오간수교인 것은 옛날 이곳에 오간수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양도성 한폭을 흘러 동쪽으로 빠져나가는 청계천의 출구였었다.

 

청계천은 주변 평지에 비해 하천의 깊이가 매우 얕았다고 한다. 그래서 매년 장마철마다 물이 넘쳐 주기적으로 하천 바닥을 준설하는 공사를 하곤 했다.

영조 때인 1760년에 아주 큰 공사를 벌였고 그 과정을 기록한 '수문상친림관역도'가 오간수교 아래 옮겨져 있다.

 

그린 그린하다. 마치 숲속에 들어온 듯한... 좋구나.

 

청둥오리 한쌍이 노닐고 있고...

 

쥐똥나무도 보인다.

 

찔레꽃이 피어 있는데...

 

참새들이 요란하다.

 

작품 활동 중인 외국인 작가도 보인다.

 

잉어들의 덩치가 아주 실허다. 잘들 살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가짜 수표교엔 '수표'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역시 가짜다.

 

워터 스크린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정조대왕 능행반차도는 엄청나다. 화성으로 가는 길에 이곳을 들르신 것은 아니었지만 그림은 이곳에 있다.

 

광교 틈새에는......

 

모전교 아래로 청계 케스케이드가 살짝 보인다. 다왔다.

 

동대문역 부근의 오간수교에서 이곳까지 사진 만들면서 천천히 걸어오니 45분 정도 걸리더라.

 

청계광장에서는 행사 준비가...

 

답사를 위한 집합 장소인 을지로입구역 4번 출구앞에 도착했다. 답사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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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11일 오후 한양도성 답사에 참여하였다. 서울시민대학의 이현군 박사 주관 강좌의 답사코스 중 하나였다. 이동을 차단하는 기능을 하는 도성과 이동의 수단이 되는 도로, 전차, 지하철 등 교통로의 결합이 주제였다. 

 

서울 한양도성 관광안내지도에서 보면 E~D 구간에 해당하는 지역을 답사하였다. 광희문에서 시작하여 성곽이 사라진 구간을 찾아가며 흥인지문까지 이동하면서 복원된 이간수문, 오간수문이 있던 곳, 구한말에 건설되었던 전차 차고지 등을 살펴보았다.

 

1902년 한양 지도. 한양의 모습과 도성의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위의 한양도에서 광희문, 흥인지문 주변 부분을 확대해보았다.

광희문에서 흥인지문 사이에 청계천의 물길이 도성 밖으로 빠지는 통로였던 이간수문과 오간수문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훈련도감에 속한 관청의 하나인 '하도감' 도 성곽 가까이에 표시되어 있다. 부근에 '훈련원' 표시가 보이는데, 조선 건국 초부터 있었던 군사훈련장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국립중앙의료원 앞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훈련원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은 도성 내에서 청계천의 하류에 해당하여 "아랫대(下村)"라 불렸으며, 청계천의 상류에 해당하는 인왕산 동쪽 일대는 "웃대(上村)"라고 불렸다고 한다.

 

광희동사거리에 위치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4번 출구 앞에서 집결하여 답사를 진행하였다.

 

복원된 광희문. 문의 이름을 알려주는 현판은 도성의 바깥 쪽에만 달려 있다. 남산 방향으로 약간의 성벽이 남아 있다.

 

광희문의 홍예 부분 천장에는 용 두마리가 노닐고 있다.

 

1396년 한양도성을 창건할 때 세워진 4소문 중 하나인 광희문은 도성 안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도성 밖으로 내보내는 문으로도 사용되어 시구문으로도 불렸다. 한국전쟁 기간 중에 파손되었다가 1976년에 복원되었는데, 자동차 도로가 넓어지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성벽의 돌들 중에는 사연을 새긴 각자성석이 보이곤 한다. 멀리 있어서 무슨 내용인지 읽어볼 수는 없었다. 멀어서 안보이는거다.ㅠ.ㅠ

 

각자성석의 내용은 축성 책임 관리와 석수의 이름이라고 한다. 위 사진의 것과는 다른 돌인갑다.

 

도로 건너편에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도성이 분수계를 따라 축성되었으며, 도로 가운데 위치했던 광희문을 남쪽으로 이동시켜 복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 광희문의 통행가능한 폭은 승용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지금의 도로폭과 비교하면 도저히 원래 위치에 그대로 둘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교통이 발달하면서 도성의 성문은 수난을 겪게 된다.

 

전차의 궤도가 건설되고 노선이 확대되면서 도성은 파괴의 아픔을 겪었다. 서울 전차 궤도가 건설되면서 훼손되고 있는 숭례문과 도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옛날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93402에서 인용)

 

광희문에서 도로 건너편에 도성의 흔적이 약간이나마 남아 있다.

 

광희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의 흔적에 대한 안내판이 바로 앞에 세워져 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니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다. 그곳의 거대한 건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유려한 곡선미를 마음껏 표현하고 있는 건물로 이라크 출신의 건축가인 Zaha Hadid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벽들과 바닥, 천정들이 섞이고 확장되어 마치 물이 흐르는 듯한 유기적인 구조로 표현함으로써 파격적이면서도 부드럽게 부유하는 역동적인 공간 미학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파격적으로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하는 건물이다.^^

 

DDP 옆으로 성곽 구간을 일부 복원해놓았다.

 

DDP를 포함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동대문 운동장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이다. 

 

1968년 동대문운동장 보수공사 시 설치되었던 야간 조명 시설 일부는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고 있다.

 

봉화대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화가 최초로 사용된 것은 1955년 개최된 제36회 전국체육대회로 성화대에 불을 옮기는 최종 주자는 고 손기정이었고, 성화의 전국 일주는 1969년 제50회 전국체육대회가 최초였다고 한다.

 

공원 내 한쪽 구석에 이간수문이 복원되어 있다.

 

돌의 일부에는 구멍이 파여 있다. 

 

그 구멍은 나무로 벽을 덧대는 용도였다. 성곽의 일부 구간이 이간수문이었고, 물이 흘러 빠져나가면서도 방어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일부 돌들에는 거울, 십자표식 등이 껌딱지로 붙어 있다. 성벽의 뒤틀림 같은 변형을 주기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지표가 아닌가 생각된다.

 

발굴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2008년 9월초, 이간수문의 홍예 상단이 처음으로 노출된 모습.

2008년 11월 초, 호예 내부의 퇴적물 위에 놓여 있는 박석의 모습.

2008년 12월 초의 발굴 완료 상태. 퇴적물을 모두 제거하고 난 이후 드러난 이간수문의 축성 상태.

 

이간수문을 살펴보고 나오는 배나온 답사대원.....

 

 

청계천 지류 구간이 복개되었기 때문에 이간수문의 복원을 이렇게 해놓을 수 밖에 없었다.

 

패션 쇼핑몰을 지나간다. 외국인들이 참 많다. 도로와 골목에 오토바이가 참 많다.

 

청계천을 만나 오간수교 아래로 내려간다. 공사기간에 쫓겼을까... 오간수문을 저렇게 만들어놓았다.

 

오간수문이 있던 곳인 오간수교.

 

오간수교 아래 오간수문의 사진과 그림이 남아 있다. 그림은 오간수문 부근에서 청계천의 쌓인 토사를 준설해내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여러 차례의 준설 공사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이 영조 때의 것이었다. 여러 마리의 소까지 동원되어 준설 공사를 하는 것을 임금께서 친히 납시어 오간수교 위에서 감독하고 있는 그림이다.

 

1760년에 영조의 명으로 청계천 준천을 마치고 그 과정을 4첩의 채색기록화로 남겼다. 김희성의  '준천시사열무도(濬川試射閱武圖)'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 준천 작업을 묘사한 것은 수문상친림관역도(水門上親臨觀役圖)이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중이다.

 

그리고 영조께서는 수고했다는 어필을 남기시었다.

준설해낸 토사의 양이 많아 청계천 부근에 假山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이후 그곳에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이 모여살며 환경이 악화되자 꽃나무를 심어 그 향기가 널리 퍼져 芳山이란 이름이 붙었고, 이후 이곳에 들어선 시장은 방산시장이 되었다.

 

청계천의 유로는 평소에는 수돗물로 유지되지만.............

 

비가 오면 부근의 수많은 복개 하천들로부터 물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한 수문들 중 하나. 자동으로 열린다. 사전에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하니 제발 말 좀 바로 듣길 바라요~

 

드디어 커다란 흥인지문을 만난다. 광희문은 4소문 중 하나, 흥인지문은 4대문 중 하나...건너편의 녹색 언덕은 흥인지문공원, 공위의 윗쪽으로 낙산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보인다.

 

동대문역 8번 출구 부근에 '전차 차고 터' 표석이 있다. 구한말에 운행이 시작되어 1968년 철거된 전차의 차고지가 있었던 곳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와 구한말 전차 운영회사인 한성전기회사의 기계창도 있었다. 전차 운영이 필요한 차고지, 기계창, 발전 시설이 모두 모여 있었던 것이다.

 

동대문 부근의 차고지와 발전소, 그리고 동대문의 모습을 보여주는 옛날 사진이다.

그리고 동대문 앞을 지나는 전차. 1960년대의 모습이다.

(위 두 사진 모두 서울역사박물관 전시, 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93402에서 인용)

 

다른 사진을 보자. 화력발전소가 열심히 전기를 만들어 준 덕택에 동대문의 홍예 사이로 전차가 달리고 있다. 동대문을 전차가 통과했던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전차의 크기가 커지면서 동대문을 우회하여 지나게 된다.

(https://pzkpfw3485.tistory.com/2242620에서 인용)

 

길건너의 동대문역 7번 출구 앞에는 '경성궤도회사 터' 표석이 있다. 1930년부터 1961년까지 똑섬, 광나루까지 다니던 궤도전차가 출발하던 곳이었다.

 

경복궁의 월대 복원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전차 궤도가 발견되면서 서울의 전차에 대한 관심이 커진 바 있다. 다른 곳의 노선은 모두 철거하였는데, 이 구간은 그냥 매립하고 도로 포장을 하였기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흥인지문이 있는 구간은 성곽이 모두 사라지고 대문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보물 제1호인 흥인지문. 1398년에 세운 한양 도성의 동쪽 문이며, 현재의 문은 1869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바깥쪽으로 방어를 견고히 하기 위해 반달 모양의 옹성을 둘렀는데, 이는 서울의 성문 중에서 유일하다.

 

흥인지문공원의 성곽구간을 답사하였다.

 

옹성을 갖춘 흥인지문의 모습이 뚜렷하게 잘 보인다. 멀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방향으로 성곽이 이어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흥인지문 앞의 도로 건너편에 멋진 신식 건물이 보인다. 전차 차고지가 없어지면서 그 부지는 동대문 고속버스터미널로 이용되었다. 고속버스터미널이 폐쇄된 이후 주차장으로 이용되다가 들어선 JW 메리어트 호이다. 그 뒤로 동대문 종합시까지 전차 차고지와 발전소 부지였던 곳이었다.

 

...

 

오늘의 답사코스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4호선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4번 출구에서 시작하여 광희문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이간수문 - 오간수교 - 흥인지문 - 흥인지문성곽공원으로 이동하였다. 2.7km, 1시간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그리고 흥인지문에 밤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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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4일에 한양도성 일부 구간을 답사하였다. 

2017년에도, 2018년에도 답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지 못한 그 이전의 답사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찾아보니 2013년 11월 16일(토)에 사진들만 남아 있어 10년 만에 사진들만 정리를 해본다.

 

답사경로는 이와 같다.

경복궁역 주변에 집결하여 버스를 이용해 창의문까지 이동하여 숭례문까지 걸어서 이동했었다.

 

사진을 촬영했던 뽀인트들을 표시한 지도.

GPS 로그 기록을 남겼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 로그 파일이 남아 있질 않다.ㅠ.ㅠ

 

2013년 11월 13일. 오전 9시 12분에 촬영한 사진이다.

청계천 발원지. 윤동주 문학관 옆 도로가에 설치되어 있다.

지금은 복개되어 보이지 않는 백운동천의 시작점에 해당한다.

 

바로 인근에는 1968년 1월21일 청와대 습격을 위해 침투했던

김신조 등 31명의 무장공비를 막아내는데 공헌, 희생한 이들의 동상이 서 있다.

 

9시 18분. 답사를 인솔했던 이현군 박사가 한양지도를 놓고 안내를 하고 있다.

 

요 지도이다.

 

창의문彰義門은....

서울 한양도성의 북서쪽에 낸 사소문 중 하나로 다른 이름으로는 자하문紫霞門으로도 부른다. 조선 태조 5년(1396) 다른 문들과 함께 축조됐으며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문이다. 인조반정(1623) 당시에 거사에 가담한 군대가 이 문을 통해 들어왔는데 그 사연과 공신들의 이름을 기록한 현판이 지금도 문루에 걸려 있다. 성문의 홍예에는 봉황이 새겨져 있고 천장에도 봉황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창의문 바깥 지형이 지네의 형상이라서 지네의 천적인 닭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봉황을 새기고 그려넣은 것이라는 속설이 전한다.

창의문 밖으로 나가면 환기미술관, 백석동천과 백사실 계곡, 세검정, 대원군 별장이었던 석파정의 사랑채 건물, 탕춘대성의 홍지문, 보도각 백불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이날 답사에 담가했던 대원들의 단체 사진이 남아 있다.

그런데 어떤 단체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ㅠ.ㅠ

 

답사를 출발한다. 한양도성 순성 코스 중 숭례문-창의문 구간을 반대로 이동하였다.

 

9시 35분. 창의문앞 교차로에서 창의문로를 건너 인왕산 방향으로 들어간다.

 

9시 40분. 경치가 좋으다.ㅎㅎㅎ

 

윤동주 시인의 언덕 한쪽에 그린 한 폭이 소개되어 있다.

정선의 작품, 장안연우(간송미술관 보관). 봄을 재촉하는 이슬비가 내리는 날에 북악산 서쪽 기슭에 올라 서울 장안을 내려다 본 전경을 그린 것이라 한다.

11월이라 늦가을인데, 안개가 짙게 깔려 정선이 작품이 이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선이 장안연우를 그릴 때의 분위기를 느끼며 자하문로를 걷는 답사대원들의 모습.

 

9시 53분. 인왕산 위의 한양도성 구간.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 인왕산의 화강암이 닳고 닳았다.

" 자, 저쪽에 뭐가 보이지요?"

"안개요!"

 

산지 사면을 따라 만들어진 도성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숨이 차다!!!

방어를 위한 시설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철조망이 있다!!!

 

복원한 부분은 돌의 때깔이 다르다. 

 

안개가 몰려온다. 쌀쌀하다. 어으~~ 춥다.

 

10시 8분. 안개로 축축한 널바위 구간에서 이현군 박사의 설명이 있었다.

 

10시  30분. 정상에 오르다.

 

종로구는 이런 경계점 놀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서대문구와 종로구의 경계점.

2004년에 주요 경계점 10곳에 경계점 표석을 설치했다는 기사가 검색된다.

 

10시 35분. 안개 속으로 올라왔다가 안개 속으로 하산한다.

 

사진찍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이제는 이런 정도는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일텐데....

 

이정표가 보이면 촬영해두는 습관...

 

10시 40분. "여러분 춥습니까~?"

"네~"

 

계단의 경사가 아름답다~~~~

 

이렇게 허술해 보이는 구간도 존재한다. 그래도 산의 경사가 험하니까...

 

안갯속으로 한양도성의 허연 복원된 부분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조기다. 이날 안개는 참 대단했다.

 

10시 50분. 한계단 한계단 조심조심...

 

달님인 듯한 햇님...

 

11시. 서울 시내 방향의 조망 상태.

 

11시 10분. 뒤를 돌아보았다. 완전 오리무중이다.

 

11시 26분. 북악이 저곳에... 청와대의 지붕이 살짝 보인다.

 

11시 45분. 어느 틈에 홍난파 가옥 앞에 섰다.

1930년대 독일 선교사가 벽돌로 지은 서양식 건물을 홍난파가 인수해서 살았던 곳이다.

1930년대의 서양식 건물 특성을 그대로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입구에 홍난파의 조각상이 있다.

 

12시. 경교장을 방문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이 1945년 중국에서 돌아온 후 1949년 6월26일 암살 당하기 전까지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2층 창문에 총알에 맞은 자국을 구현해놓았다.

 

12시 5분. 정동사거리에서 돈의문 터 주변을 살피고 있는 이현군 박사.

돈의문敦義門은 서울 한양도성의 서쪽 큰 문으로 조선 태조 5년(1396) 도성의 다른 문들과 함께 준공됐는데 서대문·새문·신문이라고도 불렸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일제가 도시계획에 따라 전차궤도를 복선화한다는 명목으로 철거해 정확한 위치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은 돈의문의 위치를 ‘정동사거리’로 추정할 뿐이다.

 

12시 11분. 정동길로 들어섰다.

 

정동사거리에서 대한상공회의소까지의 구간의 도시화 과정이 중첩된 곳이다.

여러 차례의 개발 과정에서 도성의 모습은 흔적을 찾기도 어렵게 변해버렸다.

 

12시 15분. 이화여자고등학교 정문 길건너편, 이화 사주문 앞에 위치한 '대소인원개하마'라 적힌 하마비.

人은 보통 사람, 員은 관직이 있는 사람을 가리켰던 것이라네...

 

러시아 대사관 옆을 스쳐 지나간다.

 

12시 22분. 서울 성곽이 끊어진 구간 표시. 사유지이기 때문에 복원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아쉬움.

 

'터'를 나타내는 표지석을 저곳에 설치한 이가 누구일지 궁금하다. 찾아가볼 방법이 없는 곳이다.

소의문터.

 

12시 37분. 대한상공회의소 부근의 복원 구간이다.

 

12시 45분. 숭례문에 도착하였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인왕산 - 숭례문 구간의 한양도성 답사였다.

오전 9시 12분의 첫 사진에서부터 오후 12시 45분의 마지막 사진까지 4시간 정도를 진행한 빡쎈 답사였다.

 

 

이것은 비공식 일정의 기록이다.

오전의 답사를 성실히 수행하였기에 점심 식사 시간도 지나는 즈음이라 식당을 어렵게 찾아 점심 식사를 여러 답사 대원들이 함께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는 오랜 만에 만난 얼굴들이 서로 반가워.... 좀 반가워.... 좀 오래 반가워했었다.

그렇게 골목을 다니며 여러번 반가워 하다가 나의 기억은 log data가 삭제되었다.

다음 날 보니... 카메라는 잘 챙겨왔는데, 전화기가 따라오질 않았더라.

어디에다가 흘렸는지를 찾는 과정이 재밌었다. 네이버와 다음의 로드뷰를 십분 활용하여 위치 찾기를 했었다.

찾는 과정은 재밌었으나 다시는 당연히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여러번 있었던 스마트폰 분실사도 한번 정리해볼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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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도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자료의 하나가 수선전도일 것이다.

조선의 수도 한양을 둘러싼 도성의 상태가 온전한 것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북악과 남산 사이에 배치된 4대문과 4소문의 위치를 확인해보자.

 

한양의 도성을 찾아 따라 걷는

'지오트립'에서 마련한 행사에 몇 번 따라간 적이 있었다.

도성이 온전한 구간도 있었고, 본격적으로 복원한 구간도 있었고,

군데 군데 끊어진 곳을 찾아가면 걸어보는 구간도 있었다.

그 행사들은 일찍부터 한양도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던

이현군 박사가 인솔하는 행사였었다.

서울시민대학 동남권캠퍼스에

"역사공간과 현대식 빌딩이 공존하는 서울(현대편)"이란 강좌가 개설된 것을 확인하고,

서울시평생학습포털을 통해 수강신청을 했다.

다행히 개설되자 마자 신청하여

서울시민대학 23학번 학생이 되는 것에 성공했다.

 


2023년 5월 4일에 두번째 야외답사가 진행된 곳은 백악마루 아랫 구간이었다.

혜화문에서 와룡공원 언저리까지 와서 암문을 통해 성을 몰래 빠져나가 북정마을을 답사하였다.

대표

한양도성은.....

 

 


 

 

한성대입구역 5번출구 앞에서 집결하였다.

20여 명의 참가자들이 이동과정에서 안전을 챙기기 위해 목걸이를 하나씩 하고 패용한다.

 

지하철역 출구 바로 옆에 성북동의 유래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조선 후기 들어서부터 사람들의 정착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성대입구역 교차로에서 성북로를 건너간다.

 

원래 관문은 도로 한가운데 위치하면서 통행을 조절하는 것인데, 도로 교통이 발달하면서 도로 바깥쪽으로 "치워졌다". 역사의 한 흐름이랄까...

 

혜화문에서 저쪽 건너편으로 도성 구간이 낙산공원 쪽으로 이어진다. 흥인지문까지 낙산공원을 즐기며 산책하기에 괜찮은 코스이다.

한양도성의 북동쪽에 위치한 혜화문은 처음엔 弘化門이었다가 1511년에 혜화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혜화문은 한양도성의 사소문 중 하나로 동소문으로도 불린다. 사소문 중 하나이지만 통행량은 사대문 못지 않았다고 한다. 한양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경원가도가 혜화문과 연결되어 있었고, 북대문에 해당하는 숙정문이 항상 닫혀 있어 혜화문이 그 역할까지 대신했기 때문이었다. 창의문과 마찬가지로 혜화문의 홍예 천장에도 봉황이 그려져 있는데, 새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새들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봉황을 그려넣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성문 위의 문루도 없는 상태였는데, 영조때 문루를 지어 올렸다. 그러나 1928년에 문루가 헐렸고, 1938년에는 홍예마저 없앴다. 그랬던 것을 1994년에 본래 위치보다 북쪽으로 옮긴 자리에 홍예와 문루를 새로 지었다. 그러니 사진의 혜화문은 온전히 "새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인근에 '한양도성혜화동 전시안내센터'가 위치한다. 서울시장 공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활용한 것이다. 한양도성의 가치를 키우기 위해 열심히 복원작업을 하는 와중에 서울시장이란 사람이 그 도성위에서 살고 있다? 그런 이면이 있었기에 공관이 한양도성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했을 것이다. 아마도...

 

아주 약간 남아 있던 도성 위에 새롭게 복원된 성벽이 잘 어울린다.^^

한양도성은 조선 태조 때 처음 축조된 이후 세종과 숙종 때 대규모의 수축과 개축을 거쳤다. 세 시기에 쌓은 성벽은 돌의 모양도 다르고 쌓는 방법도 달라 쉽게 구별된다. 이제 네 시기의 축성 방법이 되겠구나.

이 구간에 남아 있는 성벽은 아래 자료를 참고하면 세종 때의 것이 아닌가 싶다.

 

 

두산빌라는 한양 도성 위에 건축되었다. 성벽을 보면, 태조 때의 것일 것 같은데... 강점기 이후 도성에 대한 관리가 되지 않으면서 파괴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중요한 가치를 갖는 한양의 도성이었다는 인식을 갖지 못했던 시기를 거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흔적일 것이다.

두산빌라로 들어가는 골목의 좁은 도로가 작은 고갯마루이다. 종로구와 성북구의 분수계에 해당하는 경계를 이룬다.

 

마찬가지로 태조 때 축성된 도성 위에 교회도 앉아 있다.

 

이제 그러한 도성의 흔적마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경신고등학교 운동부 학생들의 함성이 기운차게 들리고 있었다.

 

언덕위에 자리잡은 경신고등학교 건물의 아랫쪽. 도성의 약간이나마 남은 흔적과 축대와 학교의 담장이 혼재되어 있다.

 

서울과학고등학교 구간은 도성이 없어졌다.

 

서울과학고등학교 후문 쪽 길바닥에 종로구와 성북구의 경계점 표식이 설치되어 있다.

종로구에서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종로구는 도성의 안쪽, 성북구는 도성의 바깥쪽이다.

 

성북동쉼터이다. 이곳에서부터는 도성이 복원되어 있다.

 

올라간다. 자주 걷다보면 건강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더라.

 

건강해진다~~~

 

성북동은 녹색지대이다. 동네옆의 숲속으로 도성이 주욱 이어진다. 그러니까 성북동은 도성의 바깥쪽에 위치한 마을인 것이다.

 

도성을 따라 숲이 이어진다. 자주 걸으면 건강해질 것이다~~

 

저 멀리 산등성이에 북악 팔각정이 작게 보인다. 저 능선의 왼쪽에 북악이 있고, 오른쪽으로 쭈욱 가면 북한산에 이른다.

 

계단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와룡공원이다. 우리 팀은 성곽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도 답사해보기로 했다.

 

도성에 제대로 된 유명한 통로가 아니라 그냥 개구멍처럼 몰래 아는 사람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암문이라 한다. 숨겨진 문이라는....

원래 암문은 비밀리에 군사를 이동하거나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만든 아주 작은 문이다. 평소에는 돌로 막아두었다가 전시에만 한정적으로 사용하는 비밀통로인 것이다. 현재 한양도성에는 모두 여덟 곳의 암문이 있다.

 

 

북정마을로 이어지는 통로이다. 심우장에 이르기도 하고...

 

 

옛날 개발의 시대 같았으면 진즉에 재개발을 하겠다고 덤벼들었을 법한 그런 동네로 보인다.

 

안내도 조차도 재개발이 필요하다. 개발 '계획' 없이 들어선 마을이다. 그러다 보니 길이 제대로 만들어질 겨를이 없었다. 차량은 들어와야 하고 길은 좁다. 그래서 일방통행으로 해결하고 있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게 되어 있다.

 

일방 통행해야 하는 도로.

 

1983년 소방도로준공기념비가 보인다. 소방도로가 필요하다고 정책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이전에는 이전 일방통행의 좁은 도로조차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좀 묵은 동네이다 보니 노인인구의 비율이 높다. 노인정, 경로당이 여럿. '할머니경로당'이 따로 있네....

 

북정마을의 중심지이다.

버스정류장이 있고, 노인정이 있고, 북정카페가 있고, 약간의 주차가능 공간이 있고,

게다가 화장실이 있다!!!!!!!!!!

 

조 앞으로 도성의 모습도 아주 잘 보인다.

 

도성을 바라보고 뒤돌아 아주 아주 좁은 골목길로 내려간다. 심우장 가는 길이다.

 

 

내려가는 길 오른쪽으로 비둘기공원이 있다. 비둘기 책방도 있어 책을 꺼내 볼 수 있다. 그리고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계속 날아오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성북동 비둘기'이다.

 

좁은 길이라고 했다. 분명히...........ㅎ

 

주욱 내려가다가 담 너머로 심우장이 보인다. 아담한 공간이다.

 

심우장은 24번지이다.

 

selfie 딱 한 장 만들었다.

 

만해 할배가 앉아 있었음직한 자리에 앉아 혼자 몰래 분위기를 잡아 보았다.

 

님의 침묵의 필사본도 만져보았다. 내용은???

 

이게 머니?????? 필사본이기는 하구나...ㅠ.ㅠ

 

만해 한용운은 1933년에 이곳에 심우장을 짓고 정착하였다 한다.

 

 

만해 한용운과 인연이 닿은 곳들이다. 백담사, 건봉사, 신흥사, 서대문형무소, 만해산책공원, 심우장까지 가보았네...

.

 

 

심우장을 나선다. 북정마을이다.

붉은 페인트로 × 표시가 되어 있다. 공가, 빈집이란 표시란다. 빈집들이 지방의 산골 뿐 아니라 서울시내에도 볼 수 있는 지역인 것이다.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어 잠시 쉬어간다. 다음 일정에 대한 안내도 이루어졌다.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집터였다는 표식이 바닥에 있더라.

 

바로 아래에 만해산책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심우장 만을 방문하려 한다면, 성북로를 따라 올라와 만해산책공원에서 골목을 올라가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고, 한양도성구간을 살짝 즐기며 방문하는 방법이 있겠다. 양쪽을 모두 즐길 수도 있겠고...^^

 

성북로를 따라 걸어서 내려왔다. 쌍다리돼지불백 왼쪽 골목이 북정마을로 올라가는 길이다. 운전하기에 난코스이다. 제한속도 30을 꼭 지켜야 하는 구간.

 

서울과학고등학교의 뒷편에 위치한 성북동쉼터. 성북역사문화공원이라는 간판을 달아놓았다.

 

성북로변에 선잠단지가 있다.

 

양잠을 장려하기 위한 시설로서 왕비가 모범을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며, 선잠제도 고려시대부터 꾸준히 시행되었다고 한다. 강점기에 들어서 금마덜이 중단시켰다.

 

선잠단지는 요로케 생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옆에 선잠박물관을 만들었다. 왜? 모할라꼬??

 

성북로에 조성된 가로공원이 아주 예쁘더라. 방송에서 잠시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이곳이었네.

 

5월 4일 한양도성 및 북정마을 답사를 따라와서 이동한 코스가 이렇다. 3.9km 구간, 약 2시간이 소요되었다.

 

2023년 5월4일. 이현군 박사를 따라다닌 서울시민대학 동남권 캠퍼스의 "역사공간과 현대식 빌딩이 공존하는 서울(현대편)" 답사기록.................이었다.

 


참고로 한양도성의 순성 코스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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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살살 불었다. 봄바람에 날려가고 싶었다. 그래서 날아갔다.

 

컴퓨터에서 지도 사이트를 열고 대충의 코스를 그리기 시작했다. 쉬어가는 포인트에 해당하는 지자체의 홈페이지에서 "문화관광" 탭을 찾아 해당 지자체의 관광안내지도를 다운로드 받으며 대강의 경로를 작성해나갔다. 

코스가 길어지면 어떤 변동이 있을지 모르니 조금 느슨하게 잡아나갔다.

 

그리고 3월 20일 아침에 바로 출발하였다. 조수석에 평생의 옆지기를 태우고서... 트렁크에는 드론도 모시고...

안성의 죽주산성, 아산의 외암민속마을, 공세리성당을 거쳐 충남의 왜목마을에서 하루 숙박을 하였다. 240km를 이동하였더라.

 

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일죽 IC에서 빠졌다.

 

기분 좋게 안성맞춤도시 안성으로 접어들었다.

 

원래 첫번째로 방문하려 했던 곳은 서일농원이라는 곳이었다. 

이렇게 엄청난 숫자의 된장독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사진은 서일농원 홈페이지에서..) 독특한 곳이라서 방문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 그런데......

주차장에서 도착해서 보니 문이 닫혀 있었다!!!

장독대의 모습을 촬영하겠다고 드론까지 챙겼고, 드론 촬영 가능한 지역이라는 것까지도 확인했었다. 그런데 해당 업체의 홈페이지에 운영을 중단하고 있다는 공고가 있는데, 홈페이지 확인도 하지 않고 무작정 달려간 불찰이라 하겠다.

게다가 드론을 운용해보겠다고 작동을 시키기 시작했는데, 전원을 켜고 스맛폰을 연결시키자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며 작업을 시작하더라. 그 작업을 하면서 전원이 주욱 없어지더니, 꺼졌다!! 이 뭔!!!

 

황당하지만.... 다음 뽀인트로 이동하다가 허기져서 식당을 찾았다.

2인분에 3만원 짜리 정식을 맛있게 먹었다. 황당하여 더 허기졌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찾은 곳이다. 죽주산성. 지오트립 답사팀에 끼어 방문했던 곳이다. 그 덕분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 늘 고맙게 생각한다.

 

 

답사가 아니라 옆지기와 함께 왔기 때문에 산성보다는 바로 옆에 위치한 예쁘장한 사찰에 더 마음이 갔었다. 

절로 오르는 자연석 돌계단을 따라 꽃이 피어 있을 때 아주 예쁜 길이 된다. 그래서 '꽃절'이라는 명칭이 성은사라는 사찰 이름 앞에 붙어 다닌다.^^

그런데 꽃이 피기 전이네??

성은사는 아담하고 작고 예쁜 사찰이다.

연등 꽃이 나무에 예쁘게 피어있다.^^

 

주변에 너른 평야가 펼쳐진 곳에 우뚝 솟은 산이다. 따라서 방어의 거점으로 일찍 선정되었다. 삼국시대부터 성을 쌓았던 곳이라고 한다. 물론 해피엔딩의 전설도 있다.

 

죽주산성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문이 있었다. 동문으로 들어간다. 그 아래에 주차장이 있으니 사실상 유일한 접근로이다.

 

동문지를 향해 오른다. 얼래리. 나의 기억과 다른 모습이다.

(2019년 4월에 방문했을 때는 이런 상태였는데, 복원을 한다고 손을 댄 것 같다.)

 

내성에서는 공사중이다. 2019년 방문 때도 공사중이었는데...

 

여러 곳에서 복원 공사가 이루어진 곳을 확인할 수 있다. 

 

성을 따라 한바퀴 순성을 할 수 있다. 간다.

 

성을 따라 안전시설이 따로 되어 있지 않으니 밖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잘 보고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죽주산성의 북포루이다. 무슨 드라마의 촬영지이기도 하다던데...

 

다음으로 예정했던 곳이 독립기념관이었는데, 월요일은 휴관한다고 하여 다음 기회로 미루고 외암민속마을로 향하였다.

 

찾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1, 2, 저잣거리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마을의 분위기를 즐기며 천천히 산책을 즐겼다.

 

외암천 변에 위치한 2주차장에서 건너편으로 외암마을과 설화산이 멀리 보인다.

 

매표소가 보이면 옆지기가 달려간다. 여행을 할 때도 재경경제부 장관 역할을 해주신다.

그런데 업무가 줄었다. 외암민속마을은 월요일에는 무료입장이다.^^

 

외암민속마을은 국가민속문화재 제236호이다.

 

그네도 타보고...

 

꽃구경도 하고, 

 

돌담 구경도 하며 동네를 거닌다.

 

홍매화가 필락말락하는 돌담 너머로 보이는 장독대.

 

다음에 방문하면 이 논에 벼가 잘 자라고 있을 것 같다.

 

 

당진으로 넘어가기 전에 공세리 성당을 방문하였다. 새롭게 조성한 주차장으로 네비가 안내를 하는 바람에 좀 혼란을 겪었다.

 

삽교천 방조제를 통해 당진으로 건넜다. 삽교호 함상공원, 바다공원, 호수공원 중에 어딜 방문할까 고민했었는데, 왜목마을에서의 일몰시간에 맞추기 위해 그냥 지나쳤다.

 

그렇게 부지런히 석문국가산업단지를 지나 왜목마을에 도착하였다.

 

갈매기들이 묘한 울음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사이로 묘한 조형물이 눈에 들었다.

 

"새빛왜목"이라는 조형물이다. 왜목이라는 지명이 이 지역의 지형이 왜가리의 목처럼 생긴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렇게 앉고 방향을 맞추어 사진을 찍어주면 바닷가의 한마리 왜가리 처럼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구성된 작품이다.

 

왜목마을의 해변은 동쪽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바다 위로 일출은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일몰은 어떻게???

 

이런 사진을 만들며 일몰의 모습을 어떻게 감상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서성이던 다른 분들이 해가 지는 것은 어디서 보는 것이냐고 우리에게 묻더라. 당연히 서로의 무지를 확인하며 안타까워했다. 주변 상가의 직원에게 물어보아도 모른다고 하더라.

 

그렇게 헤매다가 찾았다. 전망대 표지판을!!!

 

해변 바로 뒷편의 야트막한 능선 위에 작은 전망대가 보였다. 저곳에 올라가 보면 되겠구나!!!

 

하지만 "출입금지"였다.ㅠ.ㅠ

 

그래서 그냥 햇님을 보내드렸다.

 

바닷가에 왔으니 횟집이다!!!

 

 

  나중에야 확인하였다. 왜목마을은 아니지만 일몰 명소가 있는 곳을 찾았다. 왜목마을에서 서쪽으로 615번 도로를 따라 2km쯤 이동하면 화력발전소 부근에 "석문각"이란 정자가 있더라. 해가 바다로 떨어지는 장관은 이곳에서 구경하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 기회에....ㅎㅎㅎ

 

 

왜목마을에서는 바다 위로 해가 솟아오르는 장관을 볼 수도 있는 곳으로서 의미가 있는 곳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동해안이 아닌 서해안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지 않겠는가!!!

 

일출 예정 시각 이전에 깨어 바다 위에 만들어지는 오메가 형상을 기대했다. 하지만 역시나 늘 그렇듯이 구름이 그러한 기대를 깨버렸다. 일출 예정 시각을 한참 지나 구름 위로 그 모습을 보여주는 햇님!!!

 

여정 둘쨋 날의 정비를 하고 나선다. 

 

해변을 이동하면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찾아본다. 없더라. 오늘 아침은 '단식'!!

서산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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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전국지리교사모임에서는 특정 주제를 선정하고 작품을 전시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이번 지리사진전 주제는?

 

2월 8일, 혼자서 갤러리에 나가보려다가 집에 놀고 있는 백수를 끌고 나섰다.

서울의 변두리 촌동네에서만 살다보니 '시내' 사정에 어둡다. 지도 등 이런 저런 자료를 대충 살펴두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옆지기가 밤새 한 시간 정도 밖에 자질 못했다고 한다. 외출을 취소하자 했더니 그냥 가자 하네.

 

9시반 아침을 굶고 나섰다. 아... 항상 안먹지...

버스 타고, 지하철 4호선을 타고 달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내렸다. 

작년에 와보았던 곳이라 쉽게 찾아간다. 12, 13번 출구 사이의 지하도 쪽으로 쭈욱 걸어간다. 

을지로 4, 5가 사이의 지하상가의 벽이 전시공간으로 이용된다.

이곳이 "을지로 아뜨리愛"이다. 10시반 쯤에 도착하였다.

제8회 전국지리교사모임 지리사진전을 알리는 포스터가 행사의 취지를 알려준다.

 

옆지기는 이미 한 작품 한 작품 꼼꼼하게 살피며 감상을 하고 있다. 궁금한 것은 서로 질문하기...

 

셀피~ 하얀 머리가 슬슬 장발 모드로 변하고 있다. 털모자로 가리기~

 

기발한 작품들이 많다. 단일민족이라 외치며 다문화를 외면하던 대한민국도 이제 빠르게 다문화를 인정해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하의 갤러리에서 지상으로 나왔다. 쌀쌀하고 바람이 차가워 미국의 따스함을 느끼기 위해 스타벅스 점에 들렀다. 그런데 스타벅스코리아는 미국 본점 것이 아니라 이마트에서 단독으로 운영하는 것이라네...

 

다시 촌놈은 세상 구경을 계속한다.

명동성당 건축 당시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아무 것도 없는 세상에 근사한 석조 건물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콘크리트 고층 건물들 사이에 숨겨져 있다.

 

명동성당이다. 마음 한구석에 담아둔 지 30년이 훨씬 넘어서야 이곳에 왔다.

명동대성당 소개 자료에서 이야기하는 명동대성당 자신 찍기 좋은 장소는?

더보기

명동대성당 전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면, 성당 마당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가 좋다. 성당을 올라오는 들머리 계단에서 성당을 바라보거나 계단 우측 오솔길 중간에서 사진의 구도를 잡으면 명동대성당 고딕양식의 상징인 종탑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

 

1898년 5월29일에 축성, 봉헌된 명동대성당은 한국 초기의 벽돌조 성당, 순수한 고딕양식 구조로 사적 제 258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성당의 평면은 라틴 십자가형 삼랑식이고, 성당의 높이는 23m, 종탑의 높이는 46.7m로 장식적 요소를 배제한 순수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대성당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다. 몰래 스테인드 글라스의 아름다움을 남기려 하다가 하다가... 과연 누구 몰래라는 것이 가능할까 싶어 마음속에만 담고 그냥 나왔다.

 

대성당 아랫쪽에 루르드 성모동굴이 위치한다. 노기남 대주교가 제작하였다 한다.

 

명동 거리 구경을 하면서 걸었다. 코로나로 조용했던 거리와 상가가 많이 살아났다는 것이 느껴지더라.

서울시청 앞에 위치한 환구단을 찾았다.

 

환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란다. 그래서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중국 것을 흉내내어 만들.....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하여 세운 석고. 당시 조각 기술 수준을 알 수 있게 한다고.

 

서울시청, 광장, 스케이트장. 통유리 건물인가? 한여름에 아주 따스하고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시반. '50년 전통' 식당을 찾아 점심을 해결했다. 아..... 아침일까?

추워서 온면을 주문했는데, 다음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다른 메뉴를 주문할 것이다.

 

식사 후 덕수궁을 찾았다. 입장료가 무려 2천원이다. 두 명인데...

입장권의 배경은 가장 크고 중요한 건물인 중화전을 중심으로 한다. 

 

korean.visitseoul.net 홈페이지에서 찾은 지도이다. 화살표의 방향과는 반대로 한바퀴 돌았다.^^

 

대한문의 월대 공사를 한다고 막아놓았다. 

 

덕수궁 안내도이다. 원래 중화문이 정문이어야 하나 강점기 이후 여러 건물이 헐리고 정원이 생기는 등의 이유로 대한문이 출입구로 이용되고 있다.

 

 

대한문에서 가장 가까운 큰 건물이 함녕전이다.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되었고, 승하한 장소이기도 하다. 다른 궁궐과 달리 덕수궁에는 황후의 침전이 따로 없는 것은 을미사변 이후 고종이 다시 황후를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 내부에는 작은 용상이 있고, 그 뒤에 일월오악도가 보인다.

 

 

월대 아랫쪽에 아궁이 구멍이 두개 보인다. 저 구멍 안쪽에 아궁이가 위치한다.

 

그리고 굴뚝은 건물과 멀리 떨어져 있다. 잦은 화재 때문이었을 듯 싶다.

 

함녕전 뒷쪽에는 한국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절충된 독특한 건물인 정관헌이 위치한다. 고종께서 노시던 곳이라고...

 

덕수궁 북쪽 야트막한 담 넘어로 영국 대사관이 보인다. 덕수궁 돌담에 붙어 있어 길을 차단하였는데, 샛문을 내어 영국대사관 구간만큼은 덕수궁 안쪽으로 산책객들이 통행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해놓았다. 무서운 브리타니아....

 

덕수궁의 핵심인 정전인 중화전과 그 앞의 중화문. 정전은 국왕이 신하들과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이다.

 

중화전 앞뜰에는 화재방지를 기원하는 '드무'들이 놓여 있다.

 

월대 윗쪽에는 정(鼎)이 놓여 있다.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솥이다.

 

중화전 내부. 천정에 용, 그아래 용상, 그 뒤에 일월오악도. 

1902년에 지어진 중화전은 중층이었으나 1904년 화재로 불타고, 1905년에 다시 지으면서 단층으로 줄였다.

 

중화전 앞쪽 뜰에는 품계석이 위치한다.

옆지기에게 마음에 드는 곳에 서보라 했더니 정6품에서 멈춘다. 소심하다.^^

 

중화전 뒷편에 있는 석어당이다. 그 옆으로 즉조당이 보인다.

즉조당은 대한제국 초기에 정전으로 활용되던 공간인데 중화전이 완성된 이후에는 편전으로 활용되었다. 신하들과의  공식업무는 정전에서, 일상적인 업무는 편전을 활용하였으니 임금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편전이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도망쳤던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왔더니 궁궐들이 모두 사라져 잠잘 곳이 없었다.

그래서 월산대군의 후손들이 살던 집을 빌렸다.

그리고 계속 빌려서 사용한 것이 경운궁 역사의 시작이다. 나중에 덕수궁이라 이름이 바뀌었고.

'옛날 임금의 집'이란 의미를 갖는 석어당은 선조가 주로 사용하였던 유서깊은 건물인데 1904년의 화재로 모두 불탄 후 1905년에 새롭게 중건한 것이다.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단청을 하지 않아 단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중화전 서쪽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과 석조전이 위치한다.

1979년에 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국전 전시회를 단체 관람했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이후 이곳에 발길을 들인 것이 두번 째이다. 그야말로 long time no see.

 

석조전은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건립을 계획하고 1900년에 착공하고 1910년에 준공하였다. 엄격한 비례와 좌우대칭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내부에 접견실, 대식당, 침실과 서재 등을 갖추었다.

강점기에 훼손되었다가 2014년에 준공 당시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지하의 전시실만 상시 관람 가능하며 다른 공간은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지하의 전시실을 눈감고 들어간다.

 

대한제국 여권을 위조해보자.

 

안창호의 여권.

 

김도삼의 여권. 이 여권의 문양을 탁본으로 만들어볼 수 있다. 네모난 도장은 스탬프로 찍을 수 있다.

 

대한문을 나와 돌담길로 접어드는데 냄새가 확 다가온다. 그 냄새의 유혹에 넘어갔다.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서울의 3대맛집으로 평가한 곳들의 한 곳이라고 한다.

 

와플 냄새에 취해 서울시립미술관 앞을 지나갔다.

 

배제학당 역사박물관 앞을 지나갔다.

 

아펜젤러기념공원을 지나갔다.

 

그리고 정동 골목에서 중명전을 찾았다.

중명전은 1897년에 경복궁의 집옥재와 같은 황궁 도서관으로 기획되어 1899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원래 서양식 1층 건물이었으나 1901년의 화재 이후 2층 건물로 재건되었다.

1904년 덕수궁의 화재 이후 고종의 임시 거처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장소이기도 하다. 1910년 강제병합 이후에는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인 경성구락부로 이용되었다.

1925년의 화재로 불탄 건물을 2009년에 복원하였다.

 

을사늑약 체결 당시의 재현된 모습. 전시실.

 

외면했더니 제국의 신하라고 하는 개자식들이 을사늑약을 저질렀다.

부랴부랴 뒷수습을 하려 헤이그로 밀사들을 파견하기도 했다.

프랑스 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친서,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제 앞으로 보내는 친서를 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번역본이다. 옥새는 스탬프로 찍은 것이다.

 

정동공원을 찾았다. 언덕 위에 구러시아 공사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관파천의 현장이다.

전쟁으로 건물이 파괴되고 탑 부분만 남아 있다. 또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인지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다.

 

덕수궁과 구러시아 공사관 사이의 골목길에 '고종의 길'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

월요일에는 개방하지 않는다.

 

고종의 길을 따라 오다보면 영국 대사관이 길을 막고 있다. 덕수궁 샛문으로 들어간다.

 

입장료 1천원 안내고 덕수궁 맛을 볼 수 있는 방법 되시겠다.

 

영국 대사관 입구. 한글로 된 간판이 자알 보인다. 아주 자알~~~

 

여기서 시내 답사를 마감하기로 하고 귀가했다.

 

두 뇐네가 시내를 조금 걸었다고 지쳤다. 6시간 반 쯤 돌아다닌 하루. 16천보 정도.

 

다음엔 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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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 바닥에서 아랫집으로 물이 새는 참사가 발생하여 주말에 바로 수리하고, 보일러실에 설치되어 있는 배관 밸브도 새것으로 교체했다. 각각의 수리 시간이 5시간 이상씩 걸리는 큰 공사였다. 앞으로 아랫집의 피해에 대한 보수 공사도 해야 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옆지기는 끙끙 앓으며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

그런 등등의 이유로 대엿새를 집안에서만 꼼짝 안하고 있었더니 많이 갑갑하였다. 무작정 나섰다.

집을 나서서면 늘 가는 길은 한정되어 있다. 불암산 둘레길 따라 철쭉동산까지 다녀오기, 아니면 당현천을 따라 내려가 중랑천을 만나고 오기... 불암산을 향했다. 학도암을 지나 불암산성에 있는 헬기장을 다녀오는 것이 보통인데, 학도암장의 바위를 타고 싶었다. 그래서 학도암을 향해 오르다가 높은 쪽의 둘레길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여 영신바위 아래를 지난 다음에 학도암장을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헬기장까지 다녀왔다. 5.3km 거리를 3시간 10분 좀 넘게 걸렸다. 

 

집에서 12시50분 쯤 터덜터덜 출발하였다.

불암산 등산로 초입에 있는 작은 사찰 동교사를 지나 둘레길을 만났다. 오랜 만에 불암산을 찾은 등산객에 놀란 청솔모 한마리가 나무 위로 부지런하게 후다닥 올라간다. 참 빠르다. 금방 카메라의 시야각에서 사라진다.

 

스맛폰 카메라의 '프로' 모드에서 수동 촬영하는 장난도 하면서 천천히 산을 즐긴다.

 

불암산 아래의 영신바위, 학도암장 모두 '박리 돔' 지형이다.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이 표면이 풍화, 침식된다. 영신여고 윗쪽에 있어서 영신바위란 이름이 붙었을까.. 영신바위 아랫 부분에는 위에서 떨어진 큼지막한 바위들이 널려 있다.

 

각진 바위들이 널려 있어 위험하며, 주요 등산로에서 벗어난 곳이라서 또 위험하다. 이곳에서 다친 사람이 큰 도움을 받아 고마음을 표하려 쪽지를 남겨 놓았더라.

 

급경사 사면을 따라 바위들이 흘러내리거나 사면이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계단식으로 정리해놓았다.

 

낙석으로 인한 피해를 어느 정도는 막아주겠지??? 영신바위의 아랫 부분을 철책으로 막아놓았다. 그러니 이리로 접근하면 안될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개구멍 틈새로 드나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진의 오른쪽이 영신바위, 왼쪽이 학도암장이다. 처음 와보는 코스라 어디로 올라가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길이 보일 때까지 전진이다.

 

산속에서 산신령들을 만났다. 그분들이 가르쳐준 코스... 승천 코스... ㅎㅎ

 

올라와 뒤를 내려다 본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흐린 하늘아래로 보이는 희미한 인간 세상. 조 아래 숲의 나무 그늘 아래서 두 신선께서 장기를 두고 있더라.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산 속에서 시원한 바람 소리 사이로 "딱, 딱" 장기말이 달리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부러웠다~~~

 

더 위로 오르니 저쪽의 영신바위 정상 부분이 보인다.

 

영신바위의 정상부. 절리를 따라 분리된 바위 조각들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 그래서 저쪽으로는 오르지 말라고 철책을 설치해놓은 것 같은데...

 

세상이 흐릿하다.

 

스맛폰 카메라의 성능을 본다. 줌 렌즈 작동~

멀리 남산의 타워가 보이기는 한다. 서울의 하늘이 이렇다니...... 이른 아침의 사진이 아니라 13시40분47초.

 

오후 1시 50분. 드디어 제대로 된 등산로를 만났다. 암벽에 박힌 쇠말뚝을 밟고 쇠줄에 매달려 올라가면 된다.

 

넓은 암반 위에서 잠시 쉬어간다.

 

네이버지도 앱을 켜니 현재 내 위치가 나온다. 제대로 된 학도암장의 암벽은 아직이다. 더 가야 한단다.

 

1시57분. 제대로 된 등산로를 찾으니 제대로 된 이정표도 보인다. 힐링타운이 550m 밖에 안된다고 한다. 정상 방향으로 간다.

 

멀리 영신바위의 정상부분이 물로 젖은 듯한 흔적이 보인다. 저 높은 곳에서도 지하수가 흘러나온다니...

 

대단한 노원구 공무원님들이다. 등산객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이 골짜기에 교량도 설치되어 있다.

 

메마른 낙엽 위로 열매들이 매달린 것이 보였다. 구글 렌즈 앱을 통해 검색해보니, 작살나무라고 나온다.

 

절리, 구조선.

 

취사, 흡연 금지.

 

낙석 주의 구간. 낙석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미끄러져 내리지 않을까 걱정. 부들부들 흔들리는 무릎, 바들바들 떨리는 가슴.......ㅠ.ㅠ

 

편형수? 편향수? 대체로 바닷가 등의 특정 방향으로의 바람이 강하게 부는 곳에서 볼 수 있는 나무를 불암산에서 만났다. 희한하게 소나무의 가지가 가까이 위치한 바위의 반대 방향으로만 뻗어있다. 바위의 틈새로 뿌리는 박히지만 나뭇가지는 파고들 수 없기 때문일까나...

 

그리고.... 계단이다. 아름다운 계단이다.^^

 

2시반. 학도암장 위로 올라왔다.

 

불암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노원구, 도봉구의 아파트 단지들의 모습은 늘 묘하다.

 

쉼터인 전망데크에서 셀피 하나 만들어본다.

 

2시33분. 능선 위로 오르니 경기도가 보인다. 별내의 아파트 단지들.

 

네이버지도에서는 '풍화바위', 다음 카카오맵에선 '해골바위'라고 표시하고 있는 바위이다. 

산 정상 부위에 이런 타포니가 나타나는 것이 신기하다.

 

2시44분. 500m 쯤 올라오는데 50분 가까이 걸렸다. ㅎㅎㅎ

 

이제부터는 능선길이다. 불암산성까지 쭈욱 그냥 쉬운 길이다. 늘 흩어진 성터의 모습만 보았는데, 이날은 서울시 기념물이라는 불암산성 안내판의 사진에 보이는 온전한 모습이 진짜 있는지 궁금하여 둘레를 돌아보았다.

 

2시51분. 찾았다.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의 동쪽 부분은 무너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리고......

 

경기도 기념물이라는 안내판도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불암산성은 서울시 기념물이면서 경기도 기념물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중복 지정도 가능한 것인가...

 

헬기장 위에는 아마도 헬기로 옮겨다 놓은 듯한 물건들이 보였다.

 

라이신 황산염. 겨울철에 대비하여 불암산에 거주하는 식구들을 위한 식량으로 준비한 것으로 보였다.

 

불암산에 "왔으니" 불암산 정상을 "보고는" 가야한다. ZOOOOOOOOM 렌즈!

저 가파른 바위 위로 줄서서 오르고 있다. 사람들 심장이 참 강하구나!!!

 

3시9분. 멀리 북한산의 모습을 조망하면서 불암산을 내려간다.

 

조오오오오기 우리 집도 보인다.

 

남쪽 저 멀리 롯데타워도 보인다.

 

남서쪽으로 남산의 서울타워도 보인다. 보이나?

 

불암산성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가 학도암 코스로 길을 잡는다.

 

등산로 옆에 있는 작은 샘이다. 이곳의 샘물은 수면 위에 마치 기름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부터 궁금했다. 왜 그러지?

 

샘물이 흘러내리는 바위의 표면이 붉은 것은 철분이 많아서???

 

3시43분. 학도암이 보인다.

 

학도암의 마애불이 담장 넘어로 살짝 보인다. 저 담장이 없었는데, 왜 만들었을까???

 

학도암 바로 아래의 주차 공간은.....

 

오늘도 불암산의 은총을 받고 내려간다......

...다음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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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라는 활동을 하지 않고 집구석에 쳐박혀 지내기가 특기라고나 할까....

너무 안움직이니 답답하여 당현천을 따라 중랑천까지 다녀 오는 정도의 산책을 하곤 한다.  가끔 바로 옆에 있는 멋진 불암산을 바라만 보다가 헬기장 정도까지 다녀오고 싶어지기도 한다. 갔다. 오후 1시 50분 쯤 집에서 출발하였다.

불암초등학교 옆을 지나 불암산 등산로로 진입하였다. 학도암을 지나 화랑대역 쪽에서 올라오는 능선길을 만나 헬기장으로 이동하였다. 해발 442m에 위치한 헬기장까지 2.6km 거리인데 1시간 20분이나 걸렸다. 경사지를 오르는 산행을 너무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고 온몸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한다.

 

길가에서 처음 본 표지이다. 노원경찰서에서 설치한 안심귀갓길 표지이다. 무슨 사고가 있어 신고할 때 위치를 "안심귀갓길 11-라"라고 알려주면 경찰이 빠르게 찾아올 것이라는 것 같다.

 

불암산 등산로 입구이다. 등산로 입구 안내보다는 다른 정보가 훨씬 강렬하다.

 

입구의 공터에 "경작금지" 안내가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깨가 꽤 많이 심어져 잘 자라고 있다.

 

불암산은 돌 덩어리로 된 '돌산'임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통교사라는 오래된 작은 암자 바로 옆으로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꽃길이다. 벌들이 꽤 많다.

 

불암산 둘레길의 바닥이 이렇다. 돌길이다.

 

은행사거리 방향에서부터 올라왔다. 불암산을 휘돌아가는 둘레길을 가로질러 정상을 향하여 힘차게 발길을 옮긴다.

 

암반 위로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출발한 지 25분 만에 학도암에 도착하였다. 이맘 쯤에서 절집의 모습이 보였었는데, 담을 자꾸 높여서 이제 안보이는구나. 

 

왜 그리 숨기려 하시는 지....... 답을 안주시네...

 

학도암의 대웅전, 그리고 뒷편의 마애불.

 

절벽의 마애불. 영험하다는 스토리가 있다.

 

물이 말라 졸졸 소리만 겨우 내고 있는 계곡을 지나 산을 계속 오른다.

 

협조!!!

 

상당한 급경사의 계단길이다. 구간이 길지는 않지만 여기서 힘이 다 빠진다.^^

 

능선길은 대부분 이렇게 풍화산물로 되어 있다. 모래가 미끄럽다.

 

외길이라서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바위를 녹여내고 있다.

 

잠시 쉬어가려 했는데, 멀리 물개바위 아랫쪽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더라. 헬멧을 쓰고 있는 것을 보니 본격적인 암벽 등반가들인 것 같다.

 

풍화산물인 모래가 제거된 구간에서는 이렇게 기반암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누가 이렇게 깨트렸을까. 복잡하게 깨졌다. 절리가 이렇게 잘 발달하였으니 보다 풍화와 침식이 잘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이정표 팻말이 또 있구나.

 

등산로 윗구간에도 '여성안전 특별치안활동'이 이루어진단다. 위치 신고 코드는 "불암 51-5".

 

개방된 곳에서는 구리시 방면으로의 확 트인 경관을 즐길 수 있다.

 

목표했던 곳이 보인다. 헬기장 바로 아래 위치한 불암산성의 흔적이다.

 

자세한 설명은...

 

왔다. 불암산 헬기장. 유사시 헬기가 착륙하는 공간이다.

 

평시에는 까마귀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다. 개체 수가 상당히 많다. 소란스럽고, 하늘에서 가끔 덩어리가 떨어지기도 하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불암산 정상이 "멀리" 보인다. 바로 아래의 거북바위인가 하는 이름이 붙은 곳까지 한번 가본 것이 전부. 저 정상은 아마도 앞으로도 구경만 할 듯 하다. 무릎이 흔들려 무섭다.

 

멀리 도봉산이 보인다.

 

머리 위로 까마귀들이 날아다니는 사이로 수락산이 멀리 보인다.

 

쉬다가 하산 방향은 상계역 쪽으로 잡았다. 갑자기 모임이 그쪽에서 만들어지는 바람에...

3시16분에 출발하였다. 약 2.2km를 걸었다. 1시간 조금 더 걸렸다.

 

하산길로 잡은 코스의 상태가 좀 어렵다. 길이 험하다. 내려 오면서 다른 등산객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으니 다른 이들도 잘 찾지 않는 코스인가보다. 그럴 만 하다. 내려오면서 기억이 났다. 얼마 전에 이 코스를 한번 이용하면서 다시는 이쪽으로는 내려오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것이......

 

그래도 갈림길 표지는 있다. 

 

노원구의 아파트 단지가 쫘악 깔려 있다. 그리고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경사가 급하고 모래가 부서져 내려 참 힘든 길이었다.

 

힐링타운 방향으로 하산하여 상계역으로 이동하려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철쭉동산이 저 멀리 보인다. 왜 저 쪽에 있지??

 

대충 옆길로 빠져 내려오니 불암산 둘레길과 만난다.

 

배드민턴 코트도 보인다. 처음 본다.^^

 

중계 2단지일 것 같다. 다 내려왔다.

 

눈에 익숙한 삿갓봉 근린 공원이다. 화장실을 찾아 간단히 세수하며 얼굴의 땀을 닦아본다.

 

상계역 바로 앞의 모처에서 지인들과 모임을 갖고 식사를 하고 헤어지고... 귀가하고...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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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8일. 대청도를 한바퀴 돌고 백령도로 이동하였다. 

 

16:51   백령도에 도착하였다. 용기포 신항에 도착하였다. 리무진 버스로 환승하여 두무진으로 이동하였다. 도착 시간이 늦어지면서 두무진에서의 유람선 탑승은 어렵게 되었다며 버스 기사가 전하더라.

백령도에 도착하자마자 내일 배가 뜨기 어려울 것이라 하여 일정을 변경하였다. 모레의 출항 예약을 취소하고 내일 오후 1시반에 백령도에서 출항하는 배로 예약을 변경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에고...

 

17:10   사곶해변에 도착하였다. 주차장에 있는 조형물이다. "서해최북단백령도"

 

바로 옆에 백령호가 있다. 주변의 넓은 저지대를 간척하면서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조성된 것이다. 하지만 염수가 유입되면서 농업용수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사곶해변. 본래 비행기의 이착륙이 가능할 정도로 모래가 치밀하여 천연 비행장이라고 알려졌으나, 간척사업 이후 부근의 조류 흐름이 달라지면서 모래가 침식되고 뻘이 유입되면서 천연 비행장이 망가지고 있다. 멀리 용기포 구항과 용기원산이 보인다. 용기원산은 육계사주로 백령도와 연결된 육계도이다. 정상에 전망대가 있는데, 다음에는 가볼 것 같기도 하다.

 

사곶 해변과 간척지 사이의 제방. 끝 부분에 자그마한 백령대교가 있다. 건너편의 산정상에는 우수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어 사곶해변을 조망하기에 좋다. 잘 보면 산정상부에 만들어진 전망대 데크의 펜스가 보인다.

 

17:30   두무진 포구에 도착하였다.

 

두무진의 전망대 쪽으로 나아가 서해로 떨어지는 낙조를 감상해본다.

 

두무진이다.... 석양이다.... 좁은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 바닷가로 달려가보았다.

 

역시나 해수면에 닿으면서 넘어가는 모습은 보여주질 않고 사라진다. 어두워지면서 경계 근무를 위해 해변을 향하는 해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서 통일이 되어야...

 

멀리 북한의 장산곶이 보인다. 통일기원비가 세워져 있다.

 

햇님은 쉬러 넘어가시고, 동쪽에서 달님이 떠오르시더라~~

 

18:20   두무진 포구의 식당, 해녀와사위를 찾았다. 예정된 메뉴를 '회 정식'으로 업그레이드하였다. 신나게 먹었다.

 


 

10월 9일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06:50   심청각 입구에 위치한 식당 콩깍지. 굴순두부로 아침을 맞이 한다.

 

'옹진군 맛자랑에서 대상받은 집'이었다.

 

07:20   심청각에 올랐다. 

 

전남 곡성과 심청을 놓고 경쟁 중이다.

 

인당수에 뛰어들려는 심청...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의 바다가 인당수로 추정된다 한다. 오늘도 그곳에는 중국 어선들이 출몰하여 꽃게를 긁어가고 있다.

 

심청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M47 탱크.

 

07:43   그냥 지나가려다가 들렀다. 이게 어딜 봐서 사자? 하여간 사자바위이다.

08:10   두무진 포구에 도착하여 유람선에 바로 승선한다.

 

두무진 포구를 출발하여 해안절벽을 모두 돌아보고 귀항한다.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두무진이라 불리는 이곳은 아름답고 기묘한 바위들이 펼쳐져 있어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고 싶은 곳이다. 포구를 벗어나면서 바로 보이는, 두무진을 대표하는 선대암이다.

약 4km에 걸쳐 해안절벽을 이루고 있는 두무진은 원생대의 퇴적암이 변성작용을 받아 형성된 규암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다양한 조암광물들이 풍화작용을 받으면서 다양한 색을 띠고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지각변동을 적게 받아 퇴적암의 수평층이 거의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적이다.

 

물새들이 쉬고 있는 여... 천연기념물 331호인 점박이물범이 노닐기도 하는 해역인데, 요즘은 때가 아니란다.

 

열심히 조업 중인 작은 어선도 보인다.

 

1년 내내 바닷물만 마시고 사는 코끼리 바위.

 

저 윗쪽으로 부처님 바위가 보인다.

 

인당수에 빠졌던 심청이가 잠수함으로 타고 돌아왔단다. 그 잠수함 바위. 잠수함 위에 까만 가자우지 앉아 쉬고 있다.

이외에도 두무진에는 형제바위, 사자바위, 고릴라 바위, 말 바위, 우럭 바위, 병풍바위, 물개바위, 낙타바위, 송곳바위 등 저마다 이름을 가진 많은 바위들이 있다.

 

유람선이 선회하는 지점에서 멀리 천안암 위령탑이 보인다.

 

09:13   그곳을 찾았다.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이 있는 곳을.

 

 

꺼지지 않는 불꽃이 조금 아쉽다. 다른 나라에서는 가스를 연결하여 실제 불꽃을 꺼지지 않게 관리하던데... 아쉽다.

 

상황판이 소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두무진 포구를 출발한 유람선이 멀리 보인다.

 

09:48   우리나라에 두번째로 만들어진 교회가 중화동 교회이다. 1898년 서당에서 시작된 교회이다. 

교회는 100년이 넘었지만, 건물은 새거다.

 

10:07   용틀임 바위. 해안 절벽의 일부가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와 바닷바람에 의한 풍화와 침식을 견디고 남아 용이 몸을 꼬면서 승천하는 것과 같은 흔적으로 남아 용틀임 바위라 불린다. 시스택이란 이름의 해안 지형이다.

 

10:24   백령도의 대표적인 관광지, 천연기념물 392호인 콩돌 해안. 날이 점점 안좋아진다. 바람이 세지고 있다.

 

해변 양쪽의 절벽을 구성하는 암석들이 풍화, 침식되면서 콩돌을 구성하였다고 한다. 물에 젖어 있을 때 색이 더욱 예쁘게 드러난다. 곱다.

 

10:45   사곶 해변을 즐길 수 있는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전망대 이름이 '우수'인 줄 알았더니 그냥 조망하기에 우수한 명소이다. 이런! 지도에 그리 글자를 박았는데... 그냥 두자. ㅠ.ㅠ

 

해변의 물이 빠지니 넓은 사빈이 드러난다. 

 

해변을 산책하는 이들

그곳에서 드라이브를 즐기는 이들이 있더라. 바람이 거세지면서 물결도 거칠어진다.

 

11:14   용기포 구항에 도착하였다. 대피소 입구가 보인다.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하여 마을마다 2~3개의 대피소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용기포의 대피소 윗쪽으로 등대해변으로 가는 길이 있다.

 

등대해변에서는 규암질의 기반암에 풍화, 침식된 해안 지형들을 살필 수 있다. 

 

해변은 철책선 바깥에 해당한다. 귀순자는 노크 대신에 신호단추를 눌러주면 된다.

 

해변의 파식대, 해식절벽, 그리고 밀려오는 파도.

 

해식동굴을 심층 탐구 중인 조사대원들.

 

11:53   식당 장촌칼국수집에서 칼국수로 마음에 점을 찍었다.

 

일행 중에 생일 맞으신 분과 결혼기념일인 부부를 축하하는 행사가 있기도 했다. 축하합니다~~~

 

식당 앞에 펼쳐져 있던 메밀밭. 딱보고 메밀밭이다 라고 알아보시는 분도 계셨지만, 나는 구글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렇게, 그렇게 백령도에서의 일정을 마치게 되었다. 하늬해변의 감람석포획현무암 같은 곳은 다시 가보고 싶었는데 빠트려서 아쉽다. 용기원산을 잇는 육계사주도 밟아보고 싶었는데... 마! 넥스트 타임이다.

 

용기포신항의 터미널에서 인천으로 출항하는 배를 기다리는데, 승선권을 나눠준다.

아씨! 또! 여자닷!!! 지오트립이 이럴수가!!!

 

13:30   백령도를 출항하여 인천으로 달린다. 멀미약을 안먹는데, 혼자만 얻어먹은 옆지기가 미안했는지 나보고도 자꾸 먹으라고 하여 먹었더니 하염없이 졸음이 쏟아진다. 자다깨다 유람선의 창밖을 보니 난리다.

 

17:06   인천대교가 보이는 것을 보니 안심해도 될 것 같다.^^

 

백령도에서 인천까지 221.6km를 항해하였다. 3시간 50분쯤 걸렸다.

 

만났으면 헤어지고, 모였으면 흩어진다. 이번 답사 모임도 많은 사람들로 혼잡한 대합실에서 아쉬운 인사를 나누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 주차비 20,000원을 지불하고 나와 빗속을 얌전히 달렸다. 밤비 내리는 도로를 달리는 운전... 난시 때문에 너무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달렸다.

 

2박3일이 1박2일로 줄었다. 여유를 즐기기에는 많이 아쉬웠지만 하늘에서 그리 하라 하니 인간들은 따를 수 밖을 없다. 풍랑이 심하여 배가 출항을 못한다고 하니... 백수는 그것을 즐기고 싶었으나(^^) 일행 중 상당수가 직장인들이었던지라...

 

자... 다음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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