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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4일에 한양도성 일부 구간을 답사하였다. 

2017년에도, 2018년에도 답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지 못한 그 이전의 답사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찾아보니 2013년 11월 16일(토)에 사진들만 남아 있어 10년 만에 사진들만 정리를 해본다.

 

답사경로는 이와 같다.

경복궁역 주변에 집결하여 버스를 이용해 창의문까지 이동하여 숭례문까지 걸어서 이동했었다.

 

사진을 촬영했던 뽀인트들을 표시한 지도.

GPS 로그 기록을 남겼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 로그 파일이 남아 있질 않다.ㅠ.ㅠ

 

2013년 11월 13일. 오전 9시 12분에 촬영한 사진이다.

청계천 발원지. 윤동주 문학관 옆 도로가에 설치되어 있다.

지금은 복개되어 보이지 않는 백운동천의 시작점에 해당한다.

 

바로 인근에는 1968년 1월21일 청와대 습격을 위해 침투했던

김신조 등 31명의 무장공비를 막아내는데 공헌, 희생한 이들의 동상이 서 있다.

 

9시 18분. 답사를 인솔했던 이현군 박사가 한양지도를 놓고 안내를 하고 있다.

 

요 지도이다.

 

창의문彰義門은....

서울 한양도성의 북서쪽에 낸 사소문 중 하나로 다른 이름으로는 자하문紫霞門으로도 부른다. 조선 태조 5년(1396) 다른 문들과 함께 축조됐으며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문이다. 인조반정(1623) 당시에 거사에 가담한 군대가 이 문을 통해 들어왔는데 그 사연과 공신들의 이름을 기록한 현판이 지금도 문루에 걸려 있다. 성문의 홍예에는 봉황이 새겨져 있고 천장에도 봉황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창의문 바깥 지형이 지네의 형상이라서 지네의 천적인 닭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봉황을 새기고 그려넣은 것이라는 속설이 전한다.

창의문 밖으로 나가면 환기미술관, 백석동천과 백사실 계곡, 세검정, 대원군 별장이었던 석파정의 사랑채 건물, 탕춘대성의 홍지문, 보도각 백불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이날 답사에 담가했던 대원들의 단체 사진이 남아 있다.

그런데 어떤 단체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ㅠ.ㅠ

 

답사를 출발한다. 한양도성 순성 코스 중 숭례문-창의문 구간을 반대로 이동하였다.

 

9시 35분. 창의문앞 교차로에서 창의문로를 건너 인왕산 방향으로 들어간다.

 

9시 40분. 경치가 좋으다.ㅎㅎㅎ

 

윤동주 시인의 언덕 한쪽에 그린 한 폭이 소개되어 있다.

정선의 작품, 장안연우(간송미술관 보관). 봄을 재촉하는 이슬비가 내리는 날에 북악산 서쪽 기슭에 올라 서울 장안을 내려다 본 전경을 그린 것이라 한다.

11월이라 늦가을인데, 안개가 짙게 깔려 정선이 작품이 이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선이 장안연우를 그릴 때의 분위기를 느끼며 자하문로를 걷는 답사대원들의 모습.

 

9시 53분. 인왕산 위의 한양도성 구간.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 인왕산의 화강암이 닳고 닳았다.

" 자, 저쪽에 뭐가 보이지요?"

"안개요!"

 

산지 사면을 따라 만들어진 도성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숨이 차다!!!

방어를 위한 시설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철조망이 있다!!!

 

복원한 부분은 돌의 때깔이 다르다. 

 

안개가 몰려온다. 쌀쌀하다. 어으~~ 춥다.

 

10시 8분. 안개로 축축한 널바위 구간에서 이현군 박사의 설명이 있었다.

 

10시  30분. 정상에 오르다.

 

종로구는 이런 경계점 놀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서대문구와 종로구의 경계점.

2004년에 주요 경계점 10곳에 경계점 표석을 설치했다는 기사가 검색된다.

 

10시 35분. 안개 속으로 올라왔다가 안개 속으로 하산한다.

 

사진찍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이제는 이런 정도는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일텐데....

 

이정표가 보이면 촬영해두는 습관...

 

10시 40분. "여러분 춥습니까~?"

"네~"

 

계단의 경사가 아름답다~~~~

 

이렇게 허술해 보이는 구간도 존재한다. 그래도 산의 경사가 험하니까...

 

안갯속으로 한양도성의 허연 복원된 부분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조기다. 이날 안개는 참 대단했다.

 

10시 50분. 한계단 한계단 조심조심...

 

달님인 듯한 햇님...

 

11시. 서울 시내 방향의 조망 상태.

 

11시 10분. 뒤를 돌아보았다. 완전 오리무중이다.

 

11시 26분. 북악이 저곳에... 청와대의 지붕이 살짝 보인다.

 

11시 45분. 어느 틈에 홍난파 가옥 앞에 섰다.

1930년대 독일 선교사가 벽돌로 지은 서양식 건물을 홍난파가 인수해서 살았던 곳이다.

1930년대의 서양식 건물 특성을 그대로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입구에 홍난파의 조각상이 있다.

 

12시. 경교장을 방문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이 1945년 중국에서 돌아온 후 1949년 6월26일 암살 당하기 전까지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2층 창문에 총알에 맞은 자국을 구현해놓았다.

 

12시 5분. 정동사거리에서 돈의문 터 주변을 살피고 있는 이현군 박사.

돈의문敦義門은 서울 한양도성의 서쪽 큰 문으로 조선 태조 5년(1396) 도성의 다른 문들과 함께 준공됐는데 서대문·새문·신문이라고도 불렸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일제가 도시계획에 따라 전차궤도를 복선화한다는 명목으로 철거해 정확한 위치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은 돈의문의 위치를 ‘정동사거리’로 추정할 뿐이다.

 

12시 11분. 정동길로 들어섰다.

 

정동사거리에서 대한상공회의소까지의 구간의 도시화 과정이 중첩된 곳이다.

여러 차례의 개발 과정에서 도성의 모습은 흔적을 찾기도 어렵게 변해버렸다.

 

12시 15분. 이화여자고등학교 정문 길건너편, 이화 사주문 앞에 위치한 '대소인원개하마'라 적힌 하마비.

人은 보통 사람, 員은 관직이 있는 사람을 가리켰던 것이라네...

 

러시아 대사관 옆을 스쳐 지나간다.

 

12시 22분. 서울 성곽이 끊어진 구간 표시. 사유지이기 때문에 복원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아쉬움.

 

'터'를 나타내는 표지석을 저곳에 설치한 이가 누구일지 궁금하다. 찾아가볼 방법이 없는 곳이다.

소의문터.

 

12시 37분. 대한상공회의소 부근의 복원 구간이다.

 

12시 45분. 숭례문에 도착하였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인왕산 - 숭례문 구간의 한양도성 답사였다.

오전 9시 12분의 첫 사진에서부터 오후 12시 45분의 마지막 사진까지 4시간 정도를 진행한 빡쎈 답사였다.

 

 

이것은 비공식 일정의 기록이다.

오전의 답사를 성실히 수행하였기에 점심 식사 시간도 지나는 즈음이라 식당을 어렵게 찾아 점심 식사를 여러 답사 대원들이 함께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는 오랜 만에 만난 얼굴들이 서로 반가워.... 좀 반가워.... 좀 오래 반가워했었다.

그렇게 골목을 다니며 여러번 반가워 하다가 나의 기억은 log data가 삭제되었다.

다음 날 보니... 카메라는 잘 챙겨왔는데, 전화기가 따라오질 않았더라.

어디에다가 흘렸는지를 찾는 과정이 재밌었다. 네이버와 다음의 로드뷰를 십분 활용하여 위치 찾기를 했었다.

찾는 과정은 재밌었으나 다시는 당연히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여러번 있었던 스마트폰 분실사도 한번 정리해볼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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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도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자료의 하나가 수선전도일 것이다.

조선의 수도 한양을 둘러싼 도성의 상태가 온전한 것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북악과 남산 사이에 배치된 4대문과 4소문의 위치를 확인해보자.

 

한양의 도성을 찾아 따라 걷는

'지오트립'에서 마련한 행사에 몇 번 따라간 적이 있었다.

도성이 온전한 구간도 있었고, 본격적으로 복원한 구간도 있었고,

군데 군데 끊어진 곳을 찾아가면 걸어보는 구간도 있었다.

그 행사들은 일찍부터 한양도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던

이현군 박사가 인솔하는 행사였었다.

서울시민대학 동남권캠퍼스에

"역사공간과 현대식 빌딩이 공존하는 서울(현대편)"이란 강좌가 개설된 것을 확인하고,

서울시평생학습포털을 통해 수강신청을 했다.

다행히 개설되자 마자 신청하여

서울시민대학 23학번 학생이 되는 것에 성공했다.

 


2023년 5월 4일에 두번째 야외답사가 진행된 곳은 백악마루 아랫 구간이었다.

혜화문에서 와룡공원 언저리까지 와서 암문을 통해 성을 몰래 빠져나가 북정마을을 답사하였다.

대표

한양도성은.....

 

 


 

 

한성대입구역 5번출구 앞에서 집결하였다.

20여 명의 참가자들이 이동과정에서 안전을 챙기기 위해 목걸이를 하나씩 하고 패용한다.

 

지하철역 출구 바로 옆에 성북동의 유래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조선 후기 들어서부터 사람들의 정착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성대입구역 교차로에서 성북로를 건너간다.

 

원래 관문은 도로 한가운데 위치하면서 통행을 조절하는 것인데, 도로 교통이 발달하면서 도로 바깥쪽으로 "치워졌다". 역사의 한 흐름이랄까...

 

혜화문에서 저쪽 건너편으로 도성 구간이 낙산공원 쪽으로 이어진다. 흥인지문까지 낙산공원을 즐기며 산책하기에 괜찮은 코스이다.

한양도성의 북동쪽에 위치한 혜화문은 처음엔 弘化門이었다가 1511년에 혜화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혜화문은 한양도성의 사소문 중 하나로 동소문으로도 불린다. 사소문 중 하나이지만 통행량은 사대문 못지 않았다고 한다. 한양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경원가도가 혜화문과 연결되어 있었고, 북대문에 해당하는 숙정문이 항상 닫혀 있어 혜화문이 그 역할까지 대신했기 때문이었다. 창의문과 마찬가지로 혜화문의 홍예 천장에도 봉황이 그려져 있는데, 새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새들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봉황을 그려넣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성문 위의 문루도 없는 상태였는데, 영조때 문루를 지어 올렸다. 그러나 1928년에 문루가 헐렸고, 1938년에는 홍예마저 없앴다. 그랬던 것을 1994년에 본래 위치보다 북쪽으로 옮긴 자리에 홍예와 문루를 새로 지었다. 그러니 사진의 혜화문은 온전히 "새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인근에 '한양도성혜화동 전시안내센터'가 위치한다. 서울시장 공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활용한 것이다. 한양도성의 가치를 키우기 위해 열심히 복원작업을 하는 와중에 서울시장이란 사람이 그 도성위에서 살고 있다? 그런 이면이 있었기에 공관이 한양도성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했을 것이다. 아마도...

 

아주 약간 남아 있던 도성 위에 새롭게 복원된 성벽이 잘 어울린다.^^

한양도성은 조선 태조 때 처음 축조된 이후 세종과 숙종 때 대규모의 수축과 개축을 거쳤다. 세 시기에 쌓은 성벽은 돌의 모양도 다르고 쌓는 방법도 달라 쉽게 구별된다. 이제 네 시기의 축성 방법이 되겠구나.

이 구간에 남아 있는 성벽은 아래 자료를 참고하면 세종 때의 것이 아닌가 싶다.

 

 

두산빌라는 한양 도성 위에 건축되었다. 성벽을 보면, 태조 때의 것일 것 같은데... 강점기 이후 도성에 대한 관리가 되지 않으면서 파괴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중요한 가치를 갖는 한양의 도성이었다는 인식을 갖지 못했던 시기를 거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흔적일 것이다.

두산빌라로 들어가는 골목의 좁은 도로가 작은 고갯마루이다. 종로구와 성북구의 분수계에 해당하는 경계를 이룬다.

 

마찬가지로 태조 때 축성된 도성 위에 교회도 앉아 있다.

 

이제 그러한 도성의 흔적마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경신고등학교 운동부 학생들의 함성이 기운차게 들리고 있었다.

 

언덕위에 자리잡은 경신고등학교 건물의 아랫쪽. 도성의 약간이나마 남은 흔적과 축대와 학교의 담장이 혼재되어 있다.

 

서울과학고등학교 구간은 도성이 없어졌다.

 

서울과학고등학교 후문 쪽 길바닥에 종로구와 성북구의 경계점 표식이 설치되어 있다.

종로구에서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종로구는 도성의 안쪽, 성북구는 도성의 바깥쪽이다.

 

성북동쉼터이다. 이곳에서부터는 도성이 복원되어 있다.

 

올라간다. 자주 걷다보면 건강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더라.

 

건강해진다~~~

 

성북동은 녹색지대이다. 동네옆의 숲속으로 도성이 주욱 이어진다. 그러니까 성북동은 도성의 바깥쪽에 위치한 마을인 것이다.

 

도성을 따라 숲이 이어진다. 자주 걸으면 건강해질 것이다~~

 

저 멀리 산등성이에 북악 팔각정이 작게 보인다. 저 능선의 왼쪽에 북악이 있고, 오른쪽으로 쭈욱 가면 북한산에 이른다.

 

계단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와룡공원이다. 우리 팀은 성곽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도 답사해보기로 했다.

 

도성에 제대로 된 유명한 통로가 아니라 그냥 개구멍처럼 몰래 아는 사람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암문이라 한다. 숨겨진 문이라는....

원래 암문은 비밀리에 군사를 이동하거나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만든 아주 작은 문이다. 평소에는 돌로 막아두었다가 전시에만 한정적으로 사용하는 비밀통로인 것이다. 현재 한양도성에는 모두 여덟 곳의 암문이 있다.

 

 

북정마을로 이어지는 통로이다. 심우장에 이르기도 하고...

 

 

옛날 개발의 시대 같았으면 진즉에 재개발을 하겠다고 덤벼들었을 법한 그런 동네로 보인다.

 

안내도 조차도 재개발이 필요하다. 개발 '계획' 없이 들어선 마을이다. 그러다 보니 길이 제대로 만들어질 겨를이 없었다. 차량은 들어와야 하고 길은 좁다. 그래서 일방통행으로 해결하고 있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게 되어 있다.

 

일방 통행해야 하는 도로.

 

1983년 소방도로준공기념비가 보인다. 소방도로가 필요하다고 정책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이전에는 이전 일방통행의 좁은 도로조차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좀 묵은 동네이다 보니 노인인구의 비율이 높다. 노인정, 경로당이 여럿. '할머니경로당'이 따로 있네....

 

북정마을의 중심지이다.

버스정류장이 있고, 노인정이 있고, 북정카페가 있고, 약간의 주차가능 공간이 있고,

게다가 화장실이 있다!!!!!!!!!!

 

조 앞으로 도성의 모습도 아주 잘 보인다.

 

도성을 바라보고 뒤돌아 아주 아주 좁은 골목길로 내려간다. 심우장 가는 길이다.

 

 

내려가는 길 오른쪽으로 비둘기공원이 있다. 비둘기 책방도 있어 책을 꺼내 볼 수 있다. 그리고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계속 날아오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성북동 비둘기'이다.

 

좁은 길이라고 했다. 분명히...........ㅎ

 

주욱 내려가다가 담 너머로 심우장이 보인다. 아담한 공간이다.

 

심우장은 24번지이다.

 

selfie 딱 한 장 만들었다.

 

만해 할배가 앉아 있었음직한 자리에 앉아 혼자 몰래 분위기를 잡아 보았다.

 

님의 침묵의 필사본도 만져보았다. 내용은???

 

이게 머니?????? 필사본이기는 하구나...ㅠ.ㅠ

 

만해 한용운은 1933년에 이곳에 심우장을 짓고 정착하였다 한다.

 

 

만해 한용운과 인연이 닿은 곳들이다. 백담사, 건봉사, 신흥사, 서대문형무소, 만해산책공원, 심우장까지 가보았네...

.

 

 

심우장을 나선다. 북정마을이다.

붉은 페인트로 × 표시가 되어 있다. 공가, 빈집이란 표시란다. 빈집들이 지방의 산골 뿐 아니라 서울시내에도 볼 수 있는 지역인 것이다.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어 잠시 쉬어간다. 다음 일정에 대한 안내도 이루어졌다.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집터였다는 표식이 바닥에 있더라.

 

바로 아래에 만해산책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심우장 만을 방문하려 한다면, 성북로를 따라 올라와 만해산책공원에서 골목을 올라가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고, 한양도성구간을 살짝 즐기며 방문하는 방법이 있겠다. 양쪽을 모두 즐길 수도 있겠고...^^

 

성북로를 따라 걸어서 내려왔다. 쌍다리돼지불백 왼쪽 골목이 북정마을로 올라가는 길이다. 운전하기에 난코스이다. 제한속도 30을 꼭 지켜야 하는 구간.

 

서울과학고등학교의 뒷편에 위치한 성북동쉼터. 성북역사문화공원이라는 간판을 달아놓았다.

 

성북로변에 선잠단지가 있다.

 

양잠을 장려하기 위한 시설로서 왕비가 모범을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며, 선잠제도 고려시대부터 꾸준히 시행되었다고 한다. 강점기에 들어서 금마덜이 중단시켰다.

 

선잠단지는 요로케 생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옆에 선잠박물관을 만들었다. 왜? 모할라꼬??

 

성북로에 조성된 가로공원이 아주 예쁘더라. 방송에서 잠시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이곳이었네.

 

5월 4일 한양도성 및 북정마을 답사를 따라와서 이동한 코스가 이렇다. 3.9km 구간, 약 2시간이 소요되었다.

 

2023년 5월4일. 이현군 박사를 따라다닌 서울시민대학 동남권 캠퍼스의 "역사공간과 현대식 빌딩이 공존하는 서울(현대편)" 답사기록.................이었다.

 


참고로 한양도성의 순성 코스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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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살살 불었다. 봄바람에 날려가고 싶었다. 그래서 날아갔다.

 

컴퓨터에서 지도 사이트를 열고 대충의 코스를 그리기 시작했다. 쉬어가는 포인트에 해당하는 지자체의 홈페이지에서 "문화관광" 탭을 찾아 해당 지자체의 관광안내지도를 다운로드 받으며 대강의 경로를 작성해나갔다. 

코스가 길어지면 어떤 변동이 있을지 모르니 조금 느슨하게 잡아나갔다.

 

그리고 3월 20일 아침에 바로 출발하였다. 조수석에 평생의 옆지기를 태우고서... 트렁크에는 드론도 모시고...

안성의 죽주산성, 아산의 외암민속마을, 공세리성당을 거쳐 충남의 왜목마을에서 하루 숙박을 하였다. 240km를 이동하였더라.

 

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일죽 IC에서 빠졌다.

 

기분 좋게 안성맞춤도시 안성으로 접어들었다.

 

원래 첫번째로 방문하려 했던 곳은 서일농원이라는 곳이었다. 

이렇게 엄청난 숫자의 된장독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사진은 서일농원 홈페이지에서..) 독특한 곳이라서 방문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 그런데......

주차장에서 도착해서 보니 문이 닫혀 있었다!!!

장독대의 모습을 촬영하겠다고 드론까지 챙겼고, 드론 촬영 가능한 지역이라는 것까지도 확인했었다. 그런데 해당 업체의 홈페이지에 운영을 중단하고 있다는 공고가 있는데, 홈페이지 확인도 하지 않고 무작정 달려간 불찰이라 하겠다.

게다가 드론을 운용해보겠다고 작동을 시키기 시작했는데, 전원을 켜고 스맛폰을 연결시키자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며 작업을 시작하더라. 그 작업을 하면서 전원이 주욱 없어지더니, 꺼졌다!! 이 뭔!!!

 

황당하지만.... 다음 뽀인트로 이동하다가 허기져서 식당을 찾았다.

2인분에 3만원 짜리 정식을 맛있게 먹었다. 황당하여 더 허기졌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찾은 곳이다. 죽주산성. 지오트립 답사팀에 끼어 방문했던 곳이다. 그 덕분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 늘 고맙게 생각한다.

 

 

답사가 아니라 옆지기와 함께 왔기 때문에 산성보다는 바로 옆에 위치한 예쁘장한 사찰에 더 마음이 갔었다. 

절로 오르는 자연석 돌계단을 따라 꽃이 피어 있을 때 아주 예쁜 길이 된다. 그래서 '꽃절'이라는 명칭이 성은사라는 사찰 이름 앞에 붙어 다닌다.^^

그런데 꽃이 피기 전이네??

성은사는 아담하고 작고 예쁜 사찰이다.

연등 꽃이 나무에 예쁘게 피어있다.^^

 

주변에 너른 평야가 펼쳐진 곳에 우뚝 솟은 산이다. 따라서 방어의 거점으로 일찍 선정되었다. 삼국시대부터 성을 쌓았던 곳이라고 한다. 물론 해피엔딩의 전설도 있다.

 

죽주산성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문이 있었다. 동문으로 들어간다. 그 아래에 주차장이 있으니 사실상 유일한 접근로이다.

 

동문지를 향해 오른다. 얼래리. 나의 기억과 다른 모습이다.

(2019년 4월에 방문했을 때는 이런 상태였는데, 복원을 한다고 손을 댄 것 같다.)

 

내성에서는 공사중이다. 2019년 방문 때도 공사중이었는데...

 

여러 곳에서 복원 공사가 이루어진 곳을 확인할 수 있다. 

 

성을 따라 한바퀴 순성을 할 수 있다. 간다.

 

성을 따라 안전시설이 따로 되어 있지 않으니 밖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잘 보고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죽주산성의 북포루이다. 무슨 드라마의 촬영지이기도 하다던데...

 

다음으로 예정했던 곳이 독립기념관이었는데, 월요일은 휴관한다고 하여 다음 기회로 미루고 외암민속마을로 향하였다.

 

찾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1, 2, 저잣거리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마을의 분위기를 즐기며 천천히 산책을 즐겼다.

 

외암천 변에 위치한 2주차장에서 건너편으로 외암마을과 설화산이 멀리 보인다.

 

매표소가 보이면 옆지기가 달려간다. 여행을 할 때도 재경경제부 장관 역할을 해주신다.

그런데 업무가 줄었다. 외암민속마을은 월요일에는 무료입장이다.^^

 

외암민속마을은 국가민속문화재 제236호이다.

 

그네도 타보고...

 

꽃구경도 하고, 

 

돌담 구경도 하며 동네를 거닌다.

 

홍매화가 필락말락하는 돌담 너머로 보이는 장독대.

 

다음에 방문하면 이 논에 벼가 잘 자라고 있을 것 같다.

 

 

당진으로 넘어가기 전에 공세리 성당을 방문하였다. 새롭게 조성한 주차장으로 네비가 안내를 하는 바람에 좀 혼란을 겪었다.

 

삽교천 방조제를 통해 당진으로 건넜다. 삽교호 함상공원, 바다공원, 호수공원 중에 어딜 방문할까 고민했었는데, 왜목마을에서의 일몰시간에 맞추기 위해 그냥 지나쳤다.

 

그렇게 부지런히 석문국가산업단지를 지나 왜목마을에 도착하였다.

 

갈매기들이 묘한 울음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사이로 묘한 조형물이 눈에 들었다.

 

"새빛왜목"이라는 조형물이다. 왜목이라는 지명이 이 지역의 지형이 왜가리의 목처럼 생긴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렇게 앉고 방향을 맞추어 사진을 찍어주면 바닷가의 한마리 왜가리 처럼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구성된 작품이다.

 

왜목마을의 해변은 동쪽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바다 위로 일출은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일몰은 어떻게???

 

이런 사진을 만들며 일몰의 모습을 어떻게 감상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서성이던 다른 분들이 해가 지는 것은 어디서 보는 것이냐고 우리에게 묻더라. 당연히 서로의 무지를 확인하며 안타까워했다. 주변 상가의 직원에게 물어보아도 모른다고 하더라.

 

그렇게 헤매다가 찾았다. 전망대 표지판을!!!

 

해변 바로 뒷편의 야트막한 능선 위에 작은 전망대가 보였다. 저곳에 올라가 보면 되겠구나!!!

 

하지만 "출입금지"였다.ㅠ.ㅠ

 

그래서 그냥 햇님을 보내드렸다.

 

바닷가에 왔으니 횟집이다!!!

 

 

  나중에야 확인하였다. 왜목마을은 아니지만 일몰 명소가 있는 곳을 찾았다. 왜목마을에서 서쪽으로 615번 도로를 따라 2km쯤 이동하면 화력발전소 부근에 "석문각"이란 정자가 있더라. 해가 바다로 떨어지는 장관은 이곳에서 구경하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 기회에....ㅎㅎㅎ

 

 

왜목마을에서는 바다 위로 해가 솟아오르는 장관을 볼 수도 있는 곳으로서 의미가 있는 곳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동해안이 아닌 서해안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지 않겠는가!!!

 

일출 예정 시각 이전에 깨어 바다 위에 만들어지는 오메가 형상을 기대했다. 하지만 역시나 늘 그렇듯이 구름이 그러한 기대를 깨버렸다. 일출 예정 시각을 한참 지나 구름 위로 그 모습을 보여주는 햇님!!!

 

여정 둘쨋 날의 정비를 하고 나선다. 

 

해변을 이동하면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찾아본다. 없더라. 오늘 아침은 '단식'!!

서산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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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전국지리교사모임에서는 특정 주제를 선정하고 작품을 전시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이번 지리사진전 주제는?

 

2월 8일, 혼자서 갤러리에 나가보려다가 집에 놀고 있는 백수를 끌고 나섰다.

서울의 변두리 촌동네에서만 살다보니 '시내' 사정에 어둡다. 지도 등 이런 저런 자료를 대충 살펴두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옆지기가 밤새 한 시간 정도 밖에 자질 못했다고 한다. 외출을 취소하자 했더니 그냥 가자 하네.

 

9시반 아침을 굶고 나섰다. 아... 항상 안먹지...

버스 타고, 지하철 4호선을 타고 달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내렸다. 

작년에 와보았던 곳이라 쉽게 찾아간다. 12, 13번 출구 사이의 지하도 쪽으로 쭈욱 걸어간다. 

을지로 4, 5가 사이의 지하상가의 벽이 전시공간으로 이용된다.

이곳이 "을지로 아뜨리愛"이다. 10시반 쯤에 도착하였다.

제8회 전국지리교사모임 지리사진전을 알리는 포스터가 행사의 취지를 알려준다.

 

옆지기는 이미 한 작품 한 작품 꼼꼼하게 살피며 감상을 하고 있다. 궁금한 것은 서로 질문하기...

 

셀피~ 하얀 머리가 슬슬 장발 모드로 변하고 있다. 털모자로 가리기~

 

기발한 작품들이 많다. 단일민족이라 외치며 다문화를 외면하던 대한민국도 이제 빠르게 다문화를 인정해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하의 갤러리에서 지상으로 나왔다. 쌀쌀하고 바람이 차가워 미국의 따스함을 느끼기 위해 스타벅스 점에 들렀다. 그런데 스타벅스코리아는 미국 본점 것이 아니라 이마트에서 단독으로 운영하는 것이라네...

 

다시 촌놈은 세상 구경을 계속한다.

명동성당 건축 당시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아무 것도 없는 세상에 근사한 석조 건물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콘크리트 고층 건물들 사이에 숨겨져 있다.

 

명동성당이다. 마음 한구석에 담아둔 지 30년이 훨씬 넘어서야 이곳에 왔다.

명동대성당 소개 자료에서 이야기하는 명동대성당 자신 찍기 좋은 장소는?

더보기

명동대성당 전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면, 성당 마당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가 좋다. 성당을 올라오는 들머리 계단에서 성당을 바라보거나 계단 우측 오솔길 중간에서 사진의 구도를 잡으면 명동대성당 고딕양식의 상징인 종탑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

 

1898년 5월29일에 축성, 봉헌된 명동대성당은 한국 초기의 벽돌조 성당, 순수한 고딕양식 구조로 사적 제 258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성당의 평면은 라틴 십자가형 삼랑식이고, 성당의 높이는 23m, 종탑의 높이는 46.7m로 장식적 요소를 배제한 순수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대성당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다. 몰래 스테인드 글라스의 아름다움을 남기려 하다가 하다가... 과연 누구 몰래라는 것이 가능할까 싶어 마음속에만 담고 그냥 나왔다.

 

대성당 아랫쪽에 루르드 성모동굴이 위치한다. 노기남 대주교가 제작하였다 한다.

 

명동 거리 구경을 하면서 걸었다. 코로나로 조용했던 거리와 상가가 많이 살아났다는 것이 느껴지더라.

서울시청 앞에 위치한 환구단을 찾았다.

 

환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란다. 그래서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중국 것을 흉내내어 만들.....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하여 세운 석고. 당시 조각 기술 수준을 알 수 있게 한다고.

 

서울시청, 광장, 스케이트장. 통유리 건물인가? 한여름에 아주 따스하고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시반. '50년 전통' 식당을 찾아 점심을 해결했다. 아..... 아침일까?

추워서 온면을 주문했는데, 다음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다른 메뉴를 주문할 것이다.

 

식사 후 덕수궁을 찾았다. 입장료가 무려 2천원이다. 두 명인데...

입장권의 배경은 가장 크고 중요한 건물인 중화전을 중심으로 한다. 

 

korean.visitseoul.net 홈페이지에서 찾은 지도이다. 화살표의 방향과는 반대로 한바퀴 돌았다.^^

 

대한문의 월대 공사를 한다고 막아놓았다. 

 

덕수궁 안내도이다. 원래 중화문이 정문이어야 하나 강점기 이후 여러 건물이 헐리고 정원이 생기는 등의 이유로 대한문이 출입구로 이용되고 있다.

 

 

대한문에서 가장 가까운 큰 건물이 함녕전이다.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되었고, 승하한 장소이기도 하다. 다른 궁궐과 달리 덕수궁에는 황후의 침전이 따로 없는 것은 을미사변 이후 고종이 다시 황후를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 내부에는 작은 용상이 있고, 그 뒤에 일월오악도가 보인다.

 

 

월대 아랫쪽에 아궁이 구멍이 두개 보인다. 저 구멍 안쪽에 아궁이가 위치한다.

 

그리고 굴뚝은 건물과 멀리 떨어져 있다. 잦은 화재 때문이었을 듯 싶다.

 

함녕전 뒷쪽에는 한국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절충된 독특한 건물인 정관헌이 위치한다. 고종께서 노시던 곳이라고...

 

덕수궁 북쪽 야트막한 담 넘어로 영국 대사관이 보인다. 덕수궁 돌담에 붙어 있어 길을 차단하였는데, 샛문을 내어 영국대사관 구간만큼은 덕수궁 안쪽으로 산책객들이 통행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해놓았다. 무서운 브리타니아....

 

덕수궁의 핵심인 정전인 중화전과 그 앞의 중화문. 정전은 국왕이 신하들과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이다.

 

중화전 앞뜰에는 화재방지를 기원하는 '드무'들이 놓여 있다.

 

월대 윗쪽에는 정(鼎)이 놓여 있다.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솥이다.

 

중화전 내부. 천정에 용, 그아래 용상, 그 뒤에 일월오악도. 

1902년에 지어진 중화전은 중층이었으나 1904년 화재로 불타고, 1905년에 다시 지으면서 단층으로 줄였다.

 

중화전 앞쪽 뜰에는 품계석이 위치한다.

옆지기에게 마음에 드는 곳에 서보라 했더니 정6품에서 멈춘다. 소심하다.^^

 

중화전 뒷편에 있는 석어당이다. 그 옆으로 즉조당이 보인다.

즉조당은 대한제국 초기에 정전으로 활용되던 공간인데 중화전이 완성된 이후에는 편전으로 활용되었다. 신하들과의  공식업무는 정전에서, 일상적인 업무는 편전을 활용하였으니 임금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편전이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도망쳤던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왔더니 궁궐들이 모두 사라져 잠잘 곳이 없었다.

그래서 월산대군의 후손들이 살던 집을 빌렸다.

그리고 계속 빌려서 사용한 것이 경운궁 역사의 시작이다. 나중에 덕수궁이라 이름이 바뀌었고.

'옛날 임금의 집'이란 의미를 갖는 석어당은 선조가 주로 사용하였던 유서깊은 건물인데 1904년의 화재로 모두 불탄 후 1905년에 새롭게 중건한 것이다.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단청을 하지 않아 단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중화전 서쪽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과 석조전이 위치한다.

1979년에 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국전 전시회를 단체 관람했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이후 이곳에 발길을 들인 것이 두번 째이다. 그야말로 long time no see.

 

석조전은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건립을 계획하고 1900년에 착공하고 1910년에 준공하였다. 엄격한 비례와 좌우대칭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내부에 접견실, 대식당, 침실과 서재 등을 갖추었다.

강점기에 훼손되었다가 2014년에 준공 당시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지하의 전시실만 상시 관람 가능하며 다른 공간은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지하의 전시실을 눈감고 들어간다.

 

대한제국 여권을 위조해보자.

 

안창호의 여권.

 

김도삼의 여권. 이 여권의 문양을 탁본으로 만들어볼 수 있다. 네모난 도장은 스탬프로 찍을 수 있다.

 

대한문을 나와 돌담길로 접어드는데 냄새가 확 다가온다. 그 냄새의 유혹에 넘어갔다.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서울의 3대맛집으로 평가한 곳들의 한 곳이라고 한다.

 

와플 냄새에 취해 서울시립미술관 앞을 지나갔다.

 

배제학당 역사박물관 앞을 지나갔다.

 

아펜젤러기념공원을 지나갔다.

 

그리고 정동 골목에서 중명전을 찾았다.

중명전은 1897년에 경복궁의 집옥재와 같은 황궁 도서관으로 기획되어 1899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원래 서양식 1층 건물이었으나 1901년의 화재 이후 2층 건물로 재건되었다.

1904년 덕수궁의 화재 이후 고종의 임시 거처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장소이기도 하다. 1910년 강제병합 이후에는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인 경성구락부로 이용되었다.

1925년의 화재로 불탄 건물을 2009년에 복원하였다.

 

을사늑약 체결 당시의 재현된 모습. 전시실.

 

외면했더니 제국의 신하라고 하는 개자식들이 을사늑약을 저질렀다.

부랴부랴 뒷수습을 하려 헤이그로 밀사들을 파견하기도 했다.

프랑스 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친서,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제 앞으로 보내는 친서를 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번역본이다. 옥새는 스탬프로 찍은 것이다.

 

정동공원을 찾았다. 언덕 위에 구러시아 공사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관파천의 현장이다.

전쟁으로 건물이 파괴되고 탑 부분만 남아 있다. 또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인지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다.

 

덕수궁과 구러시아 공사관 사이의 골목길에 '고종의 길'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

월요일에는 개방하지 않는다.

 

고종의 길을 따라 오다보면 영국 대사관이 길을 막고 있다. 덕수궁 샛문으로 들어간다.

 

입장료 1천원 안내고 덕수궁 맛을 볼 수 있는 방법 되시겠다.

 

영국 대사관 입구. 한글로 된 간판이 자알 보인다. 아주 자알~~~

 

여기서 시내 답사를 마감하기로 하고 귀가했다.

 

두 뇐네가 시내를 조금 걸었다고 지쳤다. 6시간 반 쯤 돌아다닌 하루. 16천보 정도.

 

다음엔 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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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 바닥에서 아랫집으로 물이 새는 참사가 발생하여 주말에 바로 수리하고, 보일러실에 설치되어 있는 배관 밸브도 새것으로 교체했다. 각각의 수리 시간이 5시간 이상씩 걸리는 큰 공사였다. 앞으로 아랫집의 피해에 대한 보수 공사도 해야 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옆지기는 끙끙 앓으며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

그런 등등의 이유로 대엿새를 집안에서만 꼼짝 안하고 있었더니 많이 갑갑하였다. 무작정 나섰다.

집을 나서서면 늘 가는 길은 한정되어 있다. 불암산 둘레길 따라 철쭉동산까지 다녀오기, 아니면 당현천을 따라 내려가 중랑천을 만나고 오기... 불암산을 향했다. 학도암을 지나 불암산성에 있는 헬기장을 다녀오는 것이 보통인데, 학도암장의 바위를 타고 싶었다. 그래서 학도암을 향해 오르다가 높은 쪽의 둘레길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여 영신바위 아래를 지난 다음에 학도암장을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헬기장까지 다녀왔다. 5.3km 거리를 3시간 10분 좀 넘게 걸렸다. 

 

집에서 12시50분 쯤 터덜터덜 출발하였다.

불암산 등산로 초입에 있는 작은 사찰 동교사를 지나 둘레길을 만났다. 오랜 만에 불암산을 찾은 등산객에 놀란 청솔모 한마리가 나무 위로 부지런하게 후다닥 올라간다. 참 빠르다. 금방 카메라의 시야각에서 사라진다.

 

스맛폰 카메라의 '프로' 모드에서 수동 촬영하는 장난도 하면서 천천히 산을 즐긴다.

 

불암산 아래의 영신바위, 학도암장 모두 '박리 돔' 지형이다.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이 표면이 풍화, 침식된다. 영신여고 윗쪽에 있어서 영신바위란 이름이 붙었을까.. 영신바위 아랫 부분에는 위에서 떨어진 큼지막한 바위들이 널려 있다.

 

각진 바위들이 널려 있어 위험하며, 주요 등산로에서 벗어난 곳이라서 또 위험하다. 이곳에서 다친 사람이 큰 도움을 받아 고마음을 표하려 쪽지를 남겨 놓았더라.

 

급경사 사면을 따라 바위들이 흘러내리거나 사면이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계단식으로 정리해놓았다.

 

낙석으로 인한 피해를 어느 정도는 막아주겠지??? 영신바위의 아랫 부분을 철책으로 막아놓았다. 그러니 이리로 접근하면 안될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개구멍 틈새로 드나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진의 오른쪽이 영신바위, 왼쪽이 학도암장이다. 처음 와보는 코스라 어디로 올라가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길이 보일 때까지 전진이다.

 

산속에서 산신령들을 만났다. 그분들이 가르쳐준 코스... 승천 코스... ㅎㅎ

 

올라와 뒤를 내려다 본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흐린 하늘아래로 보이는 희미한 인간 세상. 조 아래 숲의 나무 그늘 아래서 두 신선께서 장기를 두고 있더라.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산 속에서 시원한 바람 소리 사이로 "딱, 딱" 장기말이 달리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부러웠다~~~

 

더 위로 오르니 저쪽의 영신바위 정상 부분이 보인다.

 

영신바위의 정상부. 절리를 따라 분리된 바위 조각들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 그래서 저쪽으로는 오르지 말라고 철책을 설치해놓은 것 같은데...

 

세상이 흐릿하다.

 

스맛폰 카메라의 성능을 본다. 줌 렌즈 작동~

멀리 남산의 타워가 보이기는 한다. 서울의 하늘이 이렇다니...... 이른 아침의 사진이 아니라 13시40분47초.

 

오후 1시 50분. 드디어 제대로 된 등산로를 만났다. 암벽에 박힌 쇠말뚝을 밟고 쇠줄에 매달려 올라가면 된다.

 

넓은 암반 위에서 잠시 쉬어간다.

 

네이버지도 앱을 켜니 현재 내 위치가 나온다. 제대로 된 학도암장의 암벽은 아직이다. 더 가야 한단다.

 

1시57분. 제대로 된 등산로를 찾으니 제대로 된 이정표도 보인다. 힐링타운이 550m 밖에 안된다고 한다. 정상 방향으로 간다.

 

멀리 영신바위의 정상부분이 물로 젖은 듯한 흔적이 보인다. 저 높은 곳에서도 지하수가 흘러나온다니...

 

대단한 노원구 공무원님들이다. 등산객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이 골짜기에 교량도 설치되어 있다.

 

메마른 낙엽 위로 열매들이 매달린 것이 보였다. 구글 렌즈 앱을 통해 검색해보니, 작살나무라고 나온다.

 

절리, 구조선.

 

취사, 흡연 금지.

 

낙석 주의 구간. 낙석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미끄러져 내리지 않을까 걱정. 부들부들 흔들리는 무릎, 바들바들 떨리는 가슴.......ㅠ.ㅠ

 

편형수? 편향수? 대체로 바닷가 등의 특정 방향으로의 바람이 강하게 부는 곳에서 볼 수 있는 나무를 불암산에서 만났다. 희한하게 소나무의 가지가 가까이 위치한 바위의 반대 방향으로만 뻗어있다. 바위의 틈새로 뿌리는 박히지만 나뭇가지는 파고들 수 없기 때문일까나...

 

그리고.... 계단이다. 아름다운 계단이다.^^

 

2시반. 학도암장 위로 올라왔다.

 

불암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노원구, 도봉구의 아파트 단지들의 모습은 늘 묘하다.

 

쉼터인 전망데크에서 셀피 하나 만들어본다.

 

2시33분. 능선 위로 오르니 경기도가 보인다. 별내의 아파트 단지들.

 

네이버지도에서는 '풍화바위', 다음 카카오맵에선 '해골바위'라고 표시하고 있는 바위이다. 

산 정상 부위에 이런 타포니가 나타나는 것이 신기하다.

 

2시44분. 500m 쯤 올라오는데 50분 가까이 걸렸다. ㅎㅎㅎ

 

이제부터는 능선길이다. 불암산성까지 쭈욱 그냥 쉬운 길이다. 늘 흩어진 성터의 모습만 보았는데, 이날은 서울시 기념물이라는 불암산성 안내판의 사진에 보이는 온전한 모습이 진짜 있는지 궁금하여 둘레를 돌아보았다.

 

2시51분. 찾았다.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의 동쪽 부분은 무너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리고......

 

경기도 기념물이라는 안내판도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불암산성은 서울시 기념물이면서 경기도 기념물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중복 지정도 가능한 것인가...

 

헬기장 위에는 아마도 헬기로 옮겨다 놓은 듯한 물건들이 보였다.

 

라이신 황산염. 겨울철에 대비하여 불암산에 거주하는 식구들을 위한 식량으로 준비한 것으로 보였다.

 

불암산에 "왔으니" 불암산 정상을 "보고는" 가야한다. ZOOOOOOOOM 렌즈!

저 가파른 바위 위로 줄서서 오르고 있다. 사람들 심장이 참 강하구나!!!

 

3시9분. 멀리 북한산의 모습을 조망하면서 불암산을 내려간다.

 

조오오오오기 우리 집도 보인다.

 

남쪽 저 멀리 롯데타워도 보인다.

 

남서쪽으로 남산의 서울타워도 보인다. 보이나?

 

불암산성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가 학도암 코스로 길을 잡는다.

 

등산로 옆에 있는 작은 샘이다. 이곳의 샘물은 수면 위에 마치 기름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부터 궁금했다. 왜 그러지?

 

샘물이 흘러내리는 바위의 표면이 붉은 것은 철분이 많아서???

 

3시43분. 학도암이 보인다.

 

학도암의 마애불이 담장 넘어로 살짝 보인다. 저 담장이 없었는데, 왜 만들었을까???

 

학도암 바로 아래의 주차 공간은.....

 

오늘도 불암산의 은총을 받고 내려간다......

...다음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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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라는 활동을 하지 않고 집구석에 쳐박혀 지내기가 특기라고나 할까....

너무 안움직이니 답답하여 당현천을 따라 중랑천까지 다녀 오는 정도의 산책을 하곤 한다.  가끔 바로 옆에 있는 멋진 불암산을 바라만 보다가 헬기장 정도까지 다녀오고 싶어지기도 한다. 갔다. 오후 1시 50분 쯤 집에서 출발하였다.

불암초등학교 옆을 지나 불암산 등산로로 진입하였다. 학도암을 지나 화랑대역 쪽에서 올라오는 능선길을 만나 헬기장으로 이동하였다. 해발 442m에 위치한 헬기장까지 2.6km 거리인데 1시간 20분이나 걸렸다. 경사지를 오르는 산행을 너무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고 온몸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한다.

 

길가에서 처음 본 표지이다. 노원경찰서에서 설치한 안심귀갓길 표지이다. 무슨 사고가 있어 신고할 때 위치를 "안심귀갓길 11-라"라고 알려주면 경찰이 빠르게 찾아올 것이라는 것 같다.

 

불암산 등산로 입구이다. 등산로 입구 안내보다는 다른 정보가 훨씬 강렬하다.

 

입구의 공터에 "경작금지" 안내가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깨가 꽤 많이 심어져 잘 자라고 있다.

 

불암산은 돌 덩어리로 된 '돌산'임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통교사라는 오래된 작은 암자 바로 옆으로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꽃길이다. 벌들이 꽤 많다.

 

불암산 둘레길의 바닥이 이렇다. 돌길이다.

 

은행사거리 방향에서부터 올라왔다. 불암산을 휘돌아가는 둘레길을 가로질러 정상을 향하여 힘차게 발길을 옮긴다.

 

암반 위로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출발한 지 25분 만에 학도암에 도착하였다. 이맘 쯤에서 절집의 모습이 보였었는데, 담을 자꾸 높여서 이제 안보이는구나. 

 

왜 그리 숨기려 하시는 지....... 답을 안주시네...

 

학도암의 대웅전, 그리고 뒷편의 마애불.

 

절벽의 마애불. 영험하다는 스토리가 있다.

 

물이 말라 졸졸 소리만 겨우 내고 있는 계곡을 지나 산을 계속 오른다.

 

협조!!!

 

상당한 급경사의 계단길이다. 구간이 길지는 않지만 여기서 힘이 다 빠진다.^^

 

능선길은 대부분 이렇게 풍화산물로 되어 있다. 모래가 미끄럽다.

 

외길이라서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바위를 녹여내고 있다.

 

잠시 쉬어가려 했는데, 멀리 물개바위 아랫쪽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더라. 헬멧을 쓰고 있는 것을 보니 본격적인 암벽 등반가들인 것 같다.

 

풍화산물인 모래가 제거된 구간에서는 이렇게 기반암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누가 이렇게 깨트렸을까. 복잡하게 깨졌다. 절리가 이렇게 잘 발달하였으니 보다 풍화와 침식이 잘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이정표 팻말이 또 있구나.

 

등산로 윗구간에도 '여성안전 특별치안활동'이 이루어진단다. 위치 신고 코드는 "불암 51-5".

 

개방된 곳에서는 구리시 방면으로의 확 트인 경관을 즐길 수 있다.

 

목표했던 곳이 보인다. 헬기장 바로 아래 위치한 불암산성의 흔적이다.

 

자세한 설명은...

 

왔다. 불암산 헬기장. 유사시 헬기가 착륙하는 공간이다.

 

평시에는 까마귀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다. 개체 수가 상당히 많다. 소란스럽고, 하늘에서 가끔 덩어리가 떨어지기도 하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불암산 정상이 "멀리" 보인다. 바로 아래의 거북바위인가 하는 이름이 붙은 곳까지 한번 가본 것이 전부. 저 정상은 아마도 앞으로도 구경만 할 듯 하다. 무릎이 흔들려 무섭다.

 

멀리 도봉산이 보인다.

 

머리 위로 까마귀들이 날아다니는 사이로 수락산이 멀리 보인다.

 

쉬다가 하산 방향은 상계역 쪽으로 잡았다. 갑자기 모임이 그쪽에서 만들어지는 바람에...

3시16분에 출발하였다. 약 2.2km를 걸었다. 1시간 조금 더 걸렸다.

 

하산길로 잡은 코스의 상태가 좀 어렵다. 길이 험하다. 내려 오면서 다른 등산객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으니 다른 이들도 잘 찾지 않는 코스인가보다. 그럴 만 하다. 내려오면서 기억이 났다. 얼마 전에 이 코스를 한번 이용하면서 다시는 이쪽으로는 내려오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것이......

 

그래도 갈림길 표지는 있다. 

 

노원구의 아파트 단지가 쫘악 깔려 있다. 그리고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경사가 급하고 모래가 부서져 내려 참 힘든 길이었다.

 

힐링타운 방향으로 하산하여 상계역으로 이동하려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철쭉동산이 저 멀리 보인다. 왜 저 쪽에 있지??

 

대충 옆길로 빠져 내려오니 불암산 둘레길과 만난다.

 

배드민턴 코트도 보인다. 처음 본다.^^

 

중계 2단지일 것 같다. 다 내려왔다.

 

눈에 익숙한 삿갓봉 근린 공원이다. 화장실을 찾아 간단히 세수하며 얼굴의 땀을 닦아본다.

 

상계역 바로 앞의 모처에서 지인들과 모임을 갖고 식사를 하고 헤어지고... 귀가하고...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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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8일. 대청도를 한바퀴 돌고 백령도로 이동하였다. 

 

16:51   백령도에 도착하였다. 용기포 신항에 도착하였다. 리무진 버스로 환승하여 두무진으로 이동하였다. 도착 시간이 늦어지면서 두무진에서의 유람선 탑승은 어렵게 되었다며 버스 기사가 전하더라.

백령도에 도착하자마자 내일 배가 뜨기 어려울 것이라 하여 일정을 변경하였다. 모레의 출항 예약을 취소하고 내일 오후 1시반에 백령도에서 출항하는 배로 예약을 변경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에고...

 

17:10   사곶해변에 도착하였다. 주차장에 있는 조형물이다. "서해최북단백령도"

 

바로 옆에 백령호가 있다. 주변의 넓은 저지대를 간척하면서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조성된 것이다. 하지만 염수가 유입되면서 농업용수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사곶해변. 본래 비행기의 이착륙이 가능할 정도로 모래가 치밀하여 천연 비행장이라고 알려졌으나, 간척사업 이후 부근의 조류 흐름이 달라지면서 모래가 침식되고 뻘이 유입되면서 천연 비행장이 망가지고 있다. 멀리 용기포 구항과 용기원산이 보인다. 용기원산은 육계사주로 백령도와 연결된 육계도이다. 정상에 전망대가 있는데, 다음에는 가볼 것 같기도 하다.

 

사곶 해변과 간척지 사이의 제방. 끝 부분에 자그마한 백령대교가 있다. 건너편의 산정상에는 우수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어 사곶해변을 조망하기에 좋다. 잘 보면 산정상부에 만들어진 전망대 데크의 펜스가 보인다.

 

17:30   두무진 포구에 도착하였다.

 

두무진의 전망대 쪽으로 나아가 서해로 떨어지는 낙조를 감상해본다.

 

두무진이다.... 석양이다.... 좁은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 바닷가로 달려가보았다.

 

역시나 해수면에 닿으면서 넘어가는 모습은 보여주질 않고 사라진다. 어두워지면서 경계 근무를 위해 해변을 향하는 해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서 통일이 되어야...

 

멀리 북한의 장산곶이 보인다. 통일기원비가 세워져 있다.

 

햇님은 쉬러 넘어가시고, 동쪽에서 달님이 떠오르시더라~~

 

18:20   두무진 포구의 식당, 해녀와사위를 찾았다. 예정된 메뉴를 '회 정식'으로 업그레이드하였다. 신나게 먹었다.

 


 

10월 9일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06:50   심청각 입구에 위치한 식당 콩깍지. 굴순두부로 아침을 맞이 한다.

 

'옹진군 맛자랑에서 대상받은 집'이었다.

 

07:20   심청각에 올랐다. 

 

전남 곡성과 심청을 놓고 경쟁 중이다.

 

인당수에 뛰어들려는 심청...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의 바다가 인당수로 추정된다 한다. 오늘도 그곳에는 중국 어선들이 출몰하여 꽃게를 긁어가고 있다.

 

심청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M47 탱크.

 

07:43   그냥 지나가려다가 들렀다. 이게 어딜 봐서 사자? 하여간 사자바위이다.

08:10   두무진 포구에 도착하여 유람선에 바로 승선한다.

 

두무진 포구를 출발하여 해안절벽을 모두 돌아보고 귀항한다.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두무진이라 불리는 이곳은 아름답고 기묘한 바위들이 펼쳐져 있어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고 싶은 곳이다. 포구를 벗어나면서 바로 보이는, 두무진을 대표하는 선대암이다.

약 4km에 걸쳐 해안절벽을 이루고 있는 두무진은 원생대의 퇴적암이 변성작용을 받아 형성된 규암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다양한 조암광물들이 풍화작용을 받으면서 다양한 색을 띠고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지각변동을 적게 받아 퇴적암의 수평층이 거의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적이다.

 

물새들이 쉬고 있는 여... 천연기념물 331호인 점박이물범이 노닐기도 하는 해역인데, 요즘은 때가 아니란다.

 

열심히 조업 중인 작은 어선도 보인다.

 

1년 내내 바닷물만 마시고 사는 코끼리 바위.

 

저 윗쪽으로 부처님 바위가 보인다.

 

인당수에 빠졌던 심청이가 잠수함으로 타고 돌아왔단다. 그 잠수함 바위. 잠수함 위에 까만 가자우지 앉아 쉬고 있다.

이외에도 두무진에는 형제바위, 사자바위, 고릴라 바위, 말 바위, 우럭 바위, 병풍바위, 물개바위, 낙타바위, 송곳바위 등 저마다 이름을 가진 많은 바위들이 있다.

 

유람선이 선회하는 지점에서 멀리 천안암 위령탑이 보인다.

 

09:13   그곳을 찾았다.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이 있는 곳을.

 

 

꺼지지 않는 불꽃이 조금 아쉽다. 다른 나라에서는 가스를 연결하여 실제 불꽃을 꺼지지 않게 관리하던데... 아쉽다.

 

상황판이 소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두무진 포구를 출발한 유람선이 멀리 보인다.

 

09:48   우리나라에 두번째로 만들어진 교회가 중화동 교회이다. 1898년 서당에서 시작된 교회이다. 

교회는 100년이 넘었지만, 건물은 새거다.

 

10:07   용틀임 바위. 해안 절벽의 일부가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와 바닷바람에 의한 풍화와 침식을 견디고 남아 용이 몸을 꼬면서 승천하는 것과 같은 흔적으로 남아 용틀임 바위라 불린다. 시스택이란 이름의 해안 지형이다.

 

10:24   백령도의 대표적인 관광지, 천연기념물 392호인 콩돌 해안. 날이 점점 안좋아진다. 바람이 세지고 있다.

 

해변 양쪽의 절벽을 구성하는 암석들이 풍화, 침식되면서 콩돌을 구성하였다고 한다. 물에 젖어 있을 때 색이 더욱 예쁘게 드러난다. 곱다.

 

10:45   사곶 해변을 즐길 수 있는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전망대 이름이 '우수'인 줄 알았더니 그냥 조망하기에 우수한 명소이다. 이런! 지도에 그리 글자를 박았는데... 그냥 두자. ㅠ.ㅠ

 

해변의 물이 빠지니 넓은 사빈이 드러난다. 

 

해변을 산책하는 이들

그곳에서 드라이브를 즐기는 이들이 있더라. 바람이 거세지면서 물결도 거칠어진다.

 

11:14   용기포 구항에 도착하였다. 대피소 입구가 보인다.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하여 마을마다 2~3개의 대피소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용기포의 대피소 윗쪽으로 등대해변으로 가는 길이 있다.

 

등대해변에서는 규암질의 기반암에 풍화, 침식된 해안 지형들을 살필 수 있다. 

 

해변은 철책선 바깥에 해당한다. 귀순자는 노크 대신에 신호단추를 눌러주면 된다.

 

해변의 파식대, 해식절벽, 그리고 밀려오는 파도.

 

해식동굴을 심층 탐구 중인 조사대원들.

 

11:53   식당 장촌칼국수집에서 칼국수로 마음에 점을 찍었다.

 

일행 중에 생일 맞으신 분과 결혼기념일인 부부를 축하하는 행사가 있기도 했다. 축하합니다~~~

 

식당 앞에 펼쳐져 있던 메밀밭. 딱보고 메밀밭이다 라고 알아보시는 분도 계셨지만, 나는 구글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렇게, 그렇게 백령도에서의 일정을 마치게 되었다. 하늬해변의 감람석포획현무암 같은 곳은 다시 가보고 싶었는데 빠트려서 아쉽다. 용기원산을 잇는 육계사주도 밟아보고 싶었는데... 마! 넥스트 타임이다.

 

용기포신항의 터미널에서 인천으로 출항하는 배를 기다리는데, 승선권을 나눠준다.

아씨! 또! 여자닷!!! 지오트립이 이럴수가!!!

 

13:30   백령도를 출항하여 인천으로 달린다. 멀미약을 안먹는데, 혼자만 얻어먹은 옆지기가 미안했는지 나보고도 자꾸 먹으라고 하여 먹었더니 하염없이 졸음이 쏟아진다. 자다깨다 유람선의 창밖을 보니 난리다.

 

17:06   인천대교가 보이는 것을 보니 안심해도 될 것 같다.^^

 

백령도에서 인천까지 221.6km를 항해하였다. 3시간 50분쯤 걸렸다.

 

만났으면 헤어지고, 모였으면 흩어진다. 이번 답사 모임도 많은 사람들로 혼잡한 대합실에서 아쉬운 인사를 나누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 주차비 20,000원을 지불하고 나와 빗속을 얌전히 달렸다. 밤비 내리는 도로를 달리는 운전... 난시 때문에 너무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달렸다.

 

2박3일이 1박2일로 줄었다. 여유를 즐기기에는 많이 아쉬웠지만 하늘에서 그리 하라 하니 인간들은 따를 수 밖을 없다. 풍랑이 심하여 배가 출항을 못한다고 하니... 백수는 그것을 즐기고 싶었으나(^^) 일행 중 상당수가 직장인들이었던지라...

 

자... 다음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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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의 지오트립 카페에서 대청도, 백령도 답사를 기획 중인 것을 알고 예약했다. 연휴의 2박3일 일정으로 계획된 여정이었다.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 07:30까지 모이라고 일정표에 되어 있었는데, 도착 시간에 정확하게 맞출 자신이 없어 집에서 일찍 출발했다. 05:30에 출발하였더니 06:50 쯤에 도착하였다. 터미널 입구의 도로가 두줄로 막혀 있어 의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길에다가 그냥 그렇게 차를 버린 것이었다. 겨우 주차장에 들어와 임시주차장이라 되어 있는 곳에 차를 댈 수 있었다. 주차비는 1일에 1만원으로 책정되어 있어 그렇게 비싸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합실에서 모일 멤버들을 기다려본다. 사람들이 엄청 많더라. 3일짜리 연휴를 서해의 섬에서 보내려 하는 사람들이었다.

 

남팀장과 만나 승선표를 전달받았다. 그런데... 그런데.. 내가.. 내가... 여자라니~~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인가...

 

08:10   배는 08:30에 출발하는 것이었다. 올해 5월에 바닷물을 만났다는 싱싱한 새 배라고 한다. 코리아프라이드 호.

 

승선권과 신분증을 함께 검사한다. '여자'로 되어 있는 표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간다. 코리아프라이드 호가 반짝반짝 빛난다. 새거다. 쾌속선이다. 

 

인천항에서 대청도까지 206.4킬로미터, 세시간 반 정도 걸렸다. 역시 쾌속선이다! 중간에 소청도에 잠시 경유.

 

12:00   대청도의 선진포 항구 부근의 식당 '돼지가든'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메뉴는 꽃게탕, 메뉴판에 1인분에 20,000원이라 적혀 있더라. 까나리 동네라 그런지 멸치 대신에 말린 까나리를 쉽게 볼 수 있다.

 

식당 바로 옆 언덕에 망향비 소공원이 새롭게 조성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망향비는 1981년에 건립된 것이다. 고향을 잃고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의 아픈 심정이 비문에 담겨 있었다.

 

12:43   옥죽동 해안사구에 도착하였다.

 

접경지역이다. 위험한 동네이다. 함부로 아무데나 그냥 돌아다니면 아니되는 곳이다. "지뢰" 경고판이 철조망에 붙어 있다. 절대로, 절대로 '지뢰찾기' 게임의 그 지뢰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무다리를 건너면 대청도의 명물인 모래사막이 펼쳐진다.

 

옥죽동 모래사막의 모래언덕, 사구이다. 다른 이들은 숲길 쪽으로 걷는 것을 보고, 그냥 사구오름길을 택해보았다. 

 

미끄러지는 사구를 오르는 것은 역시나 힘들었다. 사구오름길을 홀로 오르는 하얀 머리....

 

대청도에서는 '모래 서말은 먹어야 시집간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모래 바람이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1980년대에 소나무를 대거 심어 방사림을 조성하였다. 그 이후 모래 바람이 잦아들었으며, 농여해변의 모래와 옥죽동 해안사구의 크기가 점차 작아지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다시 이들 지형을 어떻게 복구시킬 수 있을지가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는 소식~

소나무숲 안쪽으로는 '힐링숲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우리 일행은 숲과 사구의 경계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

 

사구다. 맞다, 사구다. 이래서 모래사막이라는 표현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사막에 방사되어 있는 낙타 무리도 있다. 저들이 내뱉는 침이 내게 튈 것 같아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그냥 멀리서 몰래 셀피 하나 만들고 도망친다.

 

멀리서 망원으로 촬영하였다. 잘 걷던 옆지기가 신발을 털더니 불편하게 발을 옮기더라. 통보리사초를 잘못 건드렸다가 애를 먹었다고 하더라.

 

조심하고 조심하고, 건드리려 하지 말지어다~~

 

13:20   농여해변에 도착하였다. 백령대청 지오파크의 안내원이 기다리고 있다가 일행을 안내해준다.

 

해변을 따라 걸으며, 대청도의 대표 암석과 지질 구조에 대한 공부를 한다.

 

대청도의 대표적인 지질 구조 작품이다. 나이테 바위, 고목 바위 등으로 불린다.  "지층이 습곡작용으로 휘어진 후 풍화 침식작용으로 인하여 일부만 남은 특이한 경관"이라고 백령대청 국가지질공원 안내자료에 나온다. 더 이상의 설명은 없다.

 

농여해변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풀등이 백령도 쪽으로 형성되어 있다. 

 

풀등은 물이 들락날락하는 모래등에 풀과 같은 식생이 정착한 것을 가리키는 용어이지만, 이곳의 풀등은 그냥 모래등이다. 하지만 그냥 밀물과 썰물에 따라 잠겼다가 드러났다가 하는 모래등을 그냥 풀등이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 이작도의 풀등은 이미 관광상품화 되었다.

대청도 풀등의 규모가 전국에서 가장 커서 "주민들은 이 풀등이 점점 길어져 백령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고 백령대청 국가지질공원 안내자료에 나온다. 농여해변의 풀등을 홀로 걷는 하얀 머리....

 

해변의 풀등에는 생명과 생명의 흔적이 가득하다.

 

농여해변의 지질과 생태 탐사를 진행 중인 옆지기. 물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서둘러 빠져나간다.

 

14:40   모래울 해변의 적송 군락지에 도착하여 숲길을 산책한다. 과거 모래가 많이 날려 사탄동이라 하였으나, 어감이 나쁘다 하여 모래울로 개명하였다.

 

모래울 해변의 적송은 수령이 약 100여 년에 달하기도 한다.

 

모래울 해변의 앞쪽에 대갑죽도가 있고, 해안은 만을 이루어 바다가 잔잔한 편이다.

 

그래서 해변에는 고운 모래가 퇴적된 사빈을 형성하여 맨발로 산책을 하며 바닷가를 즐기기에 좋다.

 

15:20   도로변의 해넘이 전망대에 잠시 멈추었다.

 

해넘이 전망대에서 동쪽으로 해식애의 끝부분에 독바위가 보인다. 홀로 서있다고 그러한 이름을 받았다.

 

소청도와 소청도의 명소인 소청등대가 눈앞에 보인다. 소청등대는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설치(1908년)된 등대이다.

 

기다리고 있으면 해가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 일행이 백령도로 넘어가야 해서 발길을 돌린다.

 

그렇게 한바퀴 돌아본 대청도의 여정을 지도에 정리해 보았다.

 

15:50   선진포항 여객대기실에 도착하여 백령도행 여객선을 기다린다.

대기실에서 직원과 대화중 식수의 부족 문제가 심하다는 이야길 들었다. 백령도, 대청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변성암인 규암의 구조 자체가 치밀하여 지하수가 많이 스며들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민 박사님의 해석이 있었다. 직원도 격하게 동의하였다.

배가 연착하여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남팀장은 뛰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시원한 음료수를 꽤 멀리 떨어진 가게에서 사서 들고 뛰어 오더라. 고맙고, 고마웠다.^^

 

승선표에는 여전히 여자로 표기된다. 이게... 무슨 일이고....

 

16:21   배가 연착하였다. 여자로 표기된 승선표로도 그냥 태워준 고마운 코리아 프린세스호. 

 

대청도에서 백령도는 뱃길로 30분 거리이다. 대청도를 떠나 오후 4시 50분에 백령도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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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 하나투어를 통해 코카서스 3국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현지 여행을 도와준 가이드가 인상깊어 종종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방문하여 새로운 소식을 찾곤 한다.

코로나로 인해 곤란을 심하게 겪고 있는 여행업계 종사자답게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 조용하게 내실을 다지며. 서울시를 통해 새로운 도보여행 프로그램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더라. 프립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한다.

https://www.frip.co.kr/products/155001  "[중랑] 망우 역사문화공원 도보투어" 프로그램이다. 그 프로그램에 실려 있는 일정 안내지도이다.

프로그램 개설 날짜와 나의 바쁜 일정이 맞지 않아 참여를 못하고 있다가 일단 직접 한번 가보고자 길을 나섰다. 옆지기를 동반하고서.

 

2022년 5월 22일. 천천히 일어나 천천히 출발했다. 출근 시간의 교통 정체를 피해서 간다는 핑계가 있었다.

지하주차장에 장기숙박하던 차의 시동을 걸었다. 반응이 없다. 응답이 없다. 배터리의 방전이 의심되었다. 보험사의 긴급출동서비스를 신청했다. 영국식 표현으로 bonnet(발음은 일본식인 본네트가 아니라 보닛이라 하는 것이 옳다고 하더라.), 미국식으로는 hood라 하는 뚜껑을 열고 보니 배터리 교체한 지 5년이 지났다. 새로 들여야 할듯 하다.

 

긴급출동 서비스맨의 도움으로 바로 시동 걸고 출발했다. 30분 정도 걸리더라.

 

도로변에 무단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이 많았다. 하지만 정식으로 주차장에 입차시켰다. 망우역사공원의 부속 시설로 중랑망우공간이 있고, 그곳에 주차장이 있어 주차시켰다.

 

그리고 쭈욱 한 바퀴 돌아보았다. 약 7킬로미터, 2시간 40분 걸렸다.

 

2022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 안내 자료. '망우리 공동묘지'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묘지가 있게 된 것. 그들 중 "대한의 독립을 이끈 위인들", "망우산에 잠든 유명한 유명인사들"이 안내되고 있다.

인구밀도가 아주 낮고 모두가 전원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따로 묘지라고 하는 것이 필요없었을 것이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특히 도시화된 지역에서 장례문화가 매장방식을 고수하는 경우, 묘지의 포화가 문제된다. 서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강점기 총독부에 의한 토지정리사업을 통해 서울 시내의 다른 묘지를 없애고 망우산을 거대한 공동묘지로 조성하였다. 그리하여 1933년부터 유명한 사람이건 그렇지 아니한 사람이건 사망하면 망우산의 망우리 공동묘지로 모였던 것이다. 28,500여 분묘가 포화에 이르자 1973년에 매장이 종료되었다. 그리고 공동묘지라는 이름이 혐오감을 준다고 이름을 '망우리공원', 다시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바꾸게 된다. 이후 지속적인 이장을 통해 범위가 많이 줄어들었으며, 2013년에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과거에 주차장이 있던 곳 중랑망우공간이라는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먼저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 등으로 유명한 박인환의 묘를 찾았다.

 

시설공단 직원들이 예쁘게 단장하는 중이었다.

 

바로 옆의 일반인의 묘지는 돌보는 이가 없어 이러하다. 뭐 어쩌겠나......

 

'힐링'을 내세우는 공원이다. 딱 맞는 것으로 생각된다. 나무가 무성하여 그늘진 길을 걷는 것이 너무 좋다.

 

포장 도로 변에 있는 이런 것을 '연보비'라고 하더라.

 

길가에 유명의 묘지 위치를 대충 안내하는 방향 표지가 되어 있다.

 

대향 이중섭(1916~1956)의 묘소.

그의 1955년 작품 '흰소'.(공원 입구에서 무료 배포하는 엽서를 스캐닝)

 

전봇대에 번호가 매겨져 있다. 이 번호를 통해 묘소를 찾아가는 이정표로 삼을 수 있다. 27번 전주를 확인하고 소설가 서해 최학송의 묘지를 찾아갈 수 있다.

 

최학송의 묘소 옆을 지나가는 이...

 

서울 시내를 조망하기에 너무나 좋다 하는 중랑 전망대. 최학송의 묘를 안내하는 표지와 전망대 안내 표지가 같이 붙어 있어 산을 타고 오르는 실수를 했다. 덕분에 의도하지 않은 험지 등산을 했다.

 

북한산, 봉화산, 도봉산, 불암산, 수락산 등의 산지 방향 안내.

 

어젯밤에 비가 내리고 나니 하늘의 색이 너무나 선명하고 좋다.

 

망우역 쪽에 특히 아름다운 건물들이 솟아 있다.

 

전주 30번 옆으로 내려가 이영민 묘소 옆길로 내려가 차중락 묘소를 찾으려 했다가 실패했다. 숲 속에서 심마니의 심정으로 길을 찾다가 돌아섰다. 지도에 대충 그려진 것만 갖고는 찾기가 쉽지 않더라. next time, baby~~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을 헤메다가 문명사회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해발 282미터인 망우산의 둘레길, 등산로 안내도가 있기는 하다. 1933년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시기에 활동했던 인물들의 묘소가 많은 것이다.

 

죽산 조봉암 선생의 묘.

 

아래 연보비에서 "독립운동" 대신에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그 무엇으로 바꾸고 읽어보길 권한다.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

 

만해 한용운선생은 부인과 나란히 누워 계시다.

 

소파 방정환 묘소.

방정환하면,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 오월첫공일. 희망을 살니자! 래일을 살니자!! 잘 살랴면 어린이를 위하라!!".(공원 입구에서 무료 배포하는 엽서 스캐닝)

 

예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산속 여기저길 많이 헤메어 힘들기는 하지만 여긴 들러야 했다.

 

그런데 가묘이다. 도산공원으로 이장했다 한다. 1955년에 세워진 비석은 이장 시에 함께 옮겨졌다가 2005년에 새 비석이 세워져, 2016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도산 안창호의 비서관으로 활동했던 태허 유상규의 묘. 도산과는 부자지간 처럼 지냈다 한다. 그래서 묘도 서로 가까운 곳에 쓴 것이고...

 

금계국으로 묘소를 장식하는 것이 예쁘지 아니한가!!

 

송촌거사지공석영지묘. 종두법을 보급한 그 분이다. 5대를 잇고 있는 의사 가문이라고...

이곳에서 능선을 향해 계속 올라갔어야 했다. 한강 전망대가 그곳에 있어 시원하게 안계를 넓힐 수 있었는데, 길안내 표지가 되어 있지 않아 그냥 내려왔다.

구리시의 한강전망대 표지와 입구를 찾았는데, 늦었다. 이미 4km를 산 위로 아래로 걸어와 기력이... 기력이...

그래도 올라갔다. 올라갔다. 경사가 꽤 되어 포기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던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관절이 진짜다."라고... 맞다. 그러하다.

 

마지막 목표 뽀인트를 찾았다.

 

합장묘이다.

 

이태원 공동묘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무연고자의 묘를 합장한 것이다. 유관순 열사가 1920년 옥사한 후 이태원 묘지에 매장되었었기에 이곳으로 함께 이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두시간하고도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참 좋은 곳이라고 생각된다. 휴식도 즐기고, 운동도 하고, 이곳에 남겨진 역사와 문화를 공부할 기회가 되기도 하고...

 

비포장길을 꽤 돌아다녔기에 먼지털이기를 이용해준다.

 

몸을 힘든데, 깔끔한 하늘이 그 피로를 가져가 버리는 듯 하다.

 

주차요금 계산기. 신용카드로만 결재가 된다. 결재하려 멈추었는데, 그냥 가라 한다. "당분간 무료"라더라. 와우~!

 

스맛폰이 13,000보를 걸었다고 알려준다. 뭐... 이 정도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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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비싸게 주고 구입한 지라 외출하여 좀 이동할 예정인 경우에는

Columbus P-10 Pro라고 하는 GPS data logger를 갖고 나간다.

GPS 위성의 신호를 수신하여 현재 시간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기록함으로써

전체 이동 경로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다.

요새 나오는 스맛폰에는 gps 신호 수신칩이 모두 장착되어 있다.

그래서 굳이 이런 장치 혹은 기기를 구입하지 않더라도 원한다면 자신의,

아니 자신의 스맛폰의 이동 궤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단, 앱을 설치하고 작동시켜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요새는 램블러 라고 하는 앱을 주로 사용한다.

 

이번 외출에서는 콜럼버스의 기기가 별 문제없어 이동 기록을 사용한다.

중계본동으로 들어가 유명한 104마을의 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마을 복지회관과 은혜사라고 하는 자그마한 사찰을 들렀다가

불암산 등정을 시도했다.

 

올해는 이 꽃이 주변에서 참 많이 보인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도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해방 이후 미국에서 유입되었다고 한다.

미국제비꽃이다. 종지나물이라고도 한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미국제비꽃을 보며 길을 나선다.

 

중계본동 안쪽에 '김치말이국수'를 한다고 적혀 있는 식당이 있다.

그 식당에서 그 메뉴를 진짜 제공하는지,

아니 영업을 하는지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늘 차량을 이용했기에 지나가면서 간판만 보았었는데, 알아보고 싶었다.

좋아하는 메뉴이기에 먹고 싶었고.

 

그런 이유로 그 식당을 향해 걸어가던 중

아파트 단지의 건물들 사이에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혹시나 은행나무가 아닐까 싶어서

골목으로 들어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은행사거리라고 통용되는 지명이 사거리에

은행지점들이 많아서 그렇다는 설과,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어서 그렇다는 설로 나뉜다.

은행 지점들이 많이 있는 것은 늘 보고 지냈다.

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이 사거리의 세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은행나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직접 확인한 적은 없었다.

오늘 그 은행나무와 만났다.

 

중계본동에 위치한 한화꿈에그린 아파트 101동 앞에 있더라.

일부러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갈 필요없고, 일방통행로를 따라 들어가면 되더라~

 

이제 다음에는 은행사거리의 은행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안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추정 450세가 되신 분이라니......^^;

 

바로 인근 길가에 보호수가 한 분 더 계시다.

100세 느티나무이시다.

 

크다. 넓다.

오고가는 주민들을 위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계시다.

 

오늘 길을 나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게 만든 식당이다.

간판에 제일 먼저 적혀 있다. '김치말이국수'

영업을 하고 있지 아니하더라.

수요일에 휴업한다는 안내문도 없다.

감치말이국수가 먹고 싶었는데...

 

할 수 없이 플랜 B를 가동한다.

서울의 명소, 중계동 백사마을 골목길로 들어선다.

 

세입자 말고

토지 소유자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믿음을 주는 업체의 플래카드.

 

조용한 골목을 주욱 올라가다보면 '가든'이라는 상호를 사용하는 식당이 있다.

 

바닥에 앉는 탁자를 사용하던 식당이었는데, 대세를 따라 교체했다.

훨씬 편하다.

 

오리가 건강에 아주 좋다 하는 안내문이 크게 붙어 있다.

외진 곳에 위치하여 장사가 될까 싶은데,

의외로 가끔 찾을 때 보면 손님들이 꽤 된다.

물론 대부분 나이 대가 나보다 저 위에 계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식사 후에 백사마을 골목을 조금 더 들어가 보았다.

 

재개발 예정인 곳과 재개발 된 곳의 시각적 차이.

부름교회였던 곳.

 

길가에 애기똥풀이 지천으로 널렸다.

 

다가가서 보니 조팝나무의 꽃도 참 이쁘더라~

 

마을회관으로 알고 찾아왔더랬다.

실상은 서울시에서 차지했다.

104마을 예술창작소???????

 

104마을 예술창작소 앞에서 보이는 104마을 일부 경관.

104마을 예술창작소 앞에서 보이는 104마을 경관 일부.

104마을...

 

104마을 태극기.

멀리 현대아파트가 보인다.

 

조일 배드민턴 크럽.

 

공용 화장실일텐데, 양쪽 두 칸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다.

 

이동화장실.

 

재개발 이야기 나온 지가 참 오래 되었다.

결국에 떠난 사람들이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주로 발생한 빈집 관리에 대한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다.

 

이주가 이루어진 빈집에는 붉은 페인트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불암산 정상까지 3,192m, 헬기장까지 2252m, 학도암까지 1,500m라는 이정표.

둘레길 입구 안내판은 완전 새거다.

 

위의 이정표에서 길을 따라 조금만 더 올라가면 은혜사가 있다.

일반적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사찰의 절집 모양이 아니라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일반 가정집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등 주변은 너무도 예쁘게 가꾸어져 있다.^^;

 

다시 백사마을 쪽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불암산에서 내려오는 자이언트 캐년을 건너면 불암산을 오르는 등산로로 이어진다.

 

자투리 땅만 보이면 누군가가 자력갱생의 터전을 일구고 있더라.

 

뒤돌아 백사마을 쪽을 한번 보고....

 

앞을 보니 이정표가 또 있다.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직진파다. 정상을 목표로 이동한다.

 

불암산이다.

돌이 드러나 있거나, 그것이 풍화된 물질이거나...

 

산위 능선에 묘한 인공구조물이 보인다.

저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상태가 아닌 지라 그냥 지나간다.

 

소나무 숲 사이에 호모 사피엔스가 가끔 출몰한다.

 

이정표. 정상을 향해 직진한다.

 

점심을 잘 먹어서 인지 몸이 너무 쳐진다. 힘들다.ㅜ.ㅠ

 

능선에서 저 멀리 남쪽을 조망해본다.

뿌연하늘...

 

쉼터에 쓰러져 식식대면서 쉰다.

마스크는 진즉 제거 상태. 오늘 유독 오르는 길이 힘들다. 왜 그러지???

 

힘들어도 계속 간다.

달리 할 일도 없다.

네이쳐 속에 숨은 호모 사피엔스 찾기.

 

학도암 갈림길. 직진한다.

 

요기까지....

요기서 유턴했다. 목이 타서.... 물 마시려고....

 

병해충 정보 수집을 위해 관리받는 소나무. IOT 밴드를 두르고 있다.

 

힘들게 올랐던 계단길을 터덜거리며 쉽게 내려간다.

 

어느새 학도암이다.

 

지켜보고 계신다.

 

꽃이 잔디처럼 깔려 있다.

그래서 꽃잔디.

 

동파방지를 위해 동계에는 동면에 들었던 학도암 아래의 화장실도 가동을 시작했다.

 

쇠줄잡고 하산.

몇 년 신은 운동화의 바닥이 닳아서 잘 미끄러진다.ㅠ.ㅠ

 

이 바위에 누군가 좀 야한 이름의 표지석을 붙였던 것을 기억한다.

불편한 사람들의 항의가 있었던 듯하다. 없어졌다.

 

은행 지점인지 은행나무인지 때문에 이름이 만들어졌다는 곳을 향한다.

 

길가에 피인 꽃, 어찌 이리도 고우냐~

병꽃풀.

 

나무들 사이로 익숙한 콘크리트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 내려왔다.

 

10배 확대 촬영한 주름잎. 참 예쁘다.

 

집에 들어와 퍼진다.

무려 3시간 40분이 넘는 코스였다.

ㅎㅎ

힘들었던 하루~

1만 2천 보 좀 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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