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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고궁이 여럿 있다. 그 중에서 중심이 되는 것이 경복궁일 것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 궁궐이라 하여 창경궁과 창덕궁을 묶어 '동궐'이라 불렀다고 한다. 

동궐의 전체적인 모습을 주변부를 포함하여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 본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이 남아 있다. 동궐도이다. 두 궁궐과 주변의 산세까지 세세하게 묘사한 대단한 작품이다.

동궐도가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1820년대 후반에 비해 현재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의 모습을 살펴보고 싶어 찾아보았다. 동궐도는 고려대학교와 동아대학교에 각각 소장본이 존재하는데 모두 국보 제 249호로 등재되어 있다. 

보다 고화질로 구할 수 있는 동아대학교 소장본 파일의 누런 바탕색을 조금 제거해보았다.

 

그리고 창덕궁 후원 부분을 크롭하고 건물들의 이름을 넣어보았다.

부용지와 주합루 일대, 옥류천 일원은 비슷하지만 다른 곳은 많이 달려졌다.

위의 지도와 아래의 지도를 보면 변화된 부분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창덕궁관리소'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창덕궁" 가이드북에 게재된 창덕궁의 건물 배치도이다.

  쉽게 관람할 수 있는 '전각' 부분과 쉽지 않았으나 점점 쉬워지고 있는 '후원' 부분으로 나뉜다. 후원 관람을 위해서는 전각 관람 요금까지 지불해야 한다. 그냥 후원 관람 예약을 받으면서 관람료를 전각을 포함해도 될텐데 따로 관리되고 있다. 불편하게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면서 두번 결재를 해야 한다. 전각관람료 3,000원, 후원관람료 5,000원.
  창덕궁(후원 포함),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및 종묘 관람권까지 포함된 통합관람권이 10,000이다. 고궁 관람을 모두 하고 싶은 사람은 이 통합관람권이 나을 것이다. 3개월 동안 사용 가능하나 한번씩만 입장 가능하다.

 

 

2023년 9월 20일 12시 창덕궁 후원 관람을 예약하였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 관람이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예약을 취소하지 않았다.

빗속의 고궁 산책... 생각만해도 운치가 넘치지 않는가.ㅎㅎㅎ

 

지난 번 관람 때는 후원관람 예약시간에 맞추어 도착하여 전각을 돌아보질 못했다.

똑같이 12시 입장권을 예매했지만 이번에는 일찍 가서 전각도 관람하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하지만 늦잠을 자는 바람에 늦게 출발하여 30분 정도 밖에 시간을 갖질 못했다.

할 수 없이 다음 기회를 또 가져야 한다.^^

 

 

 

창덕궁의 입구인 돈화문이다. 멋지다. 궁궐의 대문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역대 왕들의 업무 및 생활공간으로 가장 오래 이용된 궁궐이었기 때문일까?

1412년(태종 12)에 건립되었다. 당시 창덕궁 앞에 종묘가 위치하여 궁의 진입로를 남서쪽으로 치우치게 하였다고 한다.

궁궐의 대문이다. 그래서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가 있을 때만 출입문으로 기능을 했고, 신하들은 서쪽에 위치한 작은 금호문을 통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광해군이 즉위한 이듬해인 1609년에 재건한 것이다.

 

돈화문으로 들어와 동쪽으로 방향을 틀면 진선문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 작은 돌다리가 있다. 금천교이다.

 

궁궐을 조성할 때는 궐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명당수를 건너게 하였다는데, 이 물길이 궁궐의 안과 밖을 구별해주는 경계 역할을 하였기에 금천이라고 하였다. 금천은 창덕궁 북쪽에서 흘러들어와 돈화문 동쪽을 지나 궐 밖으로 빠진다. 금천교는 궁궐에 남아 있는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보물이다.

 

창덕궁의 가장 중요한 장소인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진선문이다.

'신문고'라고 하는 것을 이 진선문 앞에 설치했었다고 한다?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겪은 일반 백성이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문을 지나 이곳까지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을까. 웃기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문고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일반 백성은 얼마나 되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이러한 제도는 그냥 백성들을 어여삐 여긴다는 왕도정치 시대 통치자들의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 뿐? 그래서 백성들은 하소연 할 곳이 없어 왕의 행차가 있다고 하면 그 앞으로 뛰어들었던 것일 것이다.

 

왼쪽으로 인정문이 보인다.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이다. 경복궁과 비교하면 많이 아담하고 소박한 편이다.

인정전은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진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루던 곳이다. 중층 지붕을 갖고 있어 2층 건물인 듯 보이지만 내부는 그냥 통층 건물이다. 1405년(태종 5)에 창덕궁 창건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소실과 재건이 반복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803년(순조 3)에 복원된 것이다.

 

행사가 있을 때면 신하들은 '조정'의 품계석 위치에 자신의 계급에 맞게 도열하였을 것이다.

 

매우 불편해보이는 의자. 그 위로 일월오봉도가 선명하다.

 

임금의 집무실로 쓰인 선정전으로 연결되는 숙장문이다.

숙장문 양쪽의 담 길이는 먼저 들어온 진선문 쪽에 비해 한참 좁다. 인정문 앞쪽 공간이 사각형이 아니라 사다리꼴이다. 앞에 있는 산 때문에 지형을 고려하여 이렇게 만든 것이다.

 

선정전의 입구인 선정문.

 

행사용으로 사용된 인정전에 비해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인 선정전의 규모는 아주 소박하다. 소실된 이후 1647년(인조 25)에 인왕산 기슭에 있던 인경궁을 헐어 그 재목으로 재건한 것이다.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건물이 작고 주변이 비좁다. 그래서 나중에 공간이 좀 더 넓은 희정당으로 편전 기능이 옮겨가게 된다.

 

선정전 내부 모습. 이곳에서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 보고, 경연 등의 각종 회의가 매일 열렸다.

 

빗속의 단체 관람객, 자유 관람객 그리고 소나무 숲.

 

성정각 일원이다. 세자의 일상이 숨쉬던 동궁이었다.

임금은 태양이고, 왕비는 달이기에 일월오봉도에 그렇게 등장한다. 세자는? 이제 떠오르는 태양이다. 그래서 궐 안에 동쪽에 거처를 마련하고 東宮이라 불렀다.

 

후원 매표소이다. 창경궁 입장권을 구매하여 입장할 수도 있다. 인터넷으로 예매한 경우 이곳에서 입장권과 교환하여야 한다.

 

입장권은 이렇게 생겼다. 2명 요금이 10,000원.

 

입장권을 검표하고 이곳에서 대기하다가 가이드 투어를 시작한다.

 

시작했다. 원래 인터넷 예매 50명, 현장 구매 50명으로 구성된다. 비 때문인지 많이 조촐하다. 그리고 가이드 투어를 원치 않으면 자유롭게 개별적으로 이동을 하면서 창덕궁 후원을 즐길 수 있다. 다음에는 자유 관람이닷!!! 그렇게 할꺼닷!!!

 

녹색으로 짙게 물든 예쁜 언덕을 넘어가면서 보이는 영화당. 부용지 바로 앞에 위치한다.

 

비내리는 부용지 일대. 이곳에서부터 창덕궁의 진짜 후원이라 할 수 있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정자를 배치하였다. 약간의 인위적인 손질을 더해 자연을 더 아름답게 완성해낸 절묘한 솜씨와 미적 감각이 돋보인다.

 

부용지와 부용정. 참 예쁘다. 부용정은 부용지에 피어난 한송이 꽃처럼 보인다. 보물이다.

 

후원의 첫번째 중심 정원인 이곳은 휴식과 학문, 교육을 하던 상당히 공개된 장소였다. 2층짜리 누각인 주합루의 1층은 도서관인 규장각이었고, 그 옆의 서향각은 각종 도서를 보관하고 관리하던 곳이었다. 2층은 책을 보며 학문을 논하던 공간인 열람실이었다.

부용지에서 주합루로 오르려면 어수문을 지나야 한다. 어수문 옆으로 생나무 울타리인 '취병'을 재현하여 놓았다.

 

영화당은 동쪽으로 춘당대 마당을, 서쪽으로 부용지를 마주하며 앞뒤에 툇마루를 둔 특이한 건물이다. 왕이 친견하는 군사훈련,  과거 시험, 임금이 주관하는 잔치와 같은 각종 행사가 이곳 영화당과 춘당대에서 치루어졌다고 한다. 

 

애련지 쪽으로 들어가는 불로문이다. 

 

冂자 모양으로 다듬은 통짜 돌로 만든 문이다. 不老門이라...

 

불로문을 들어서면 애련지와 애련정이 비맞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주 애련하다~

 

애련지 남쪽에 위치한 두 건물. 1827년(순조 27) 효명세자가 만든 소박한 건물이다. 서재로 즐겨 이용하였었다 한다. 지금은 '기옥헌'이란 현판을 달고 있다. 바로 옆의 한칸 반 짜리 건물은 궐 안에서 가장 작은 건물이다. '운경거'로 추정된다.

 

연경당은 사대부의 살림집을 본뜬 조선 후기의 접견실이었다. 1828년(순조 28)에 효명세자가 의례를 행하기 위해 창건했는데, 지금의 연경당은 고종이 1865년쯤에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동궐도와 완전히 달라졌다.

고종 이후 연경당은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잔치를 베푸는 등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서재인 선향재는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하였고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선향재 뒷쪽 높은 곳에 위치한 농수정. 마치 매가 날개를 편 것같이 날렵한 모습이라고 표현된다.

 

작은 고개를 넘어가면 폄우사가 나타난다. 멀리 존덕정이 보인다.

 

1644년(인조 22)에 세워진 존덕정. 지붕이 2층으로 되어 있는 독특한 정자이다.

 

존덕정 안쪽에는 정조대왕의 글이 새겨진 나무판이 게시되어 있다.

 

확대해보았다. 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고 시작하고 있다. 왕권의 지엄함을 밝히는 표현이란다.

 

존덕정 아래에 관람지와 관람정이 비를 맞고 있다.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에 이어 옥류천 계곡 일대가 후원의 주요 관람 명소이다. 그런데......

올해 연말까지 출입금지라고 한다. 일부 정자에 문제가 발생하여 보수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90분이었던 관람시간이 70분으로 줄었던 것이었다. 나머지는 자유 관람을 하라고 풀어준다.^^

자유롭게 퇴장한다. 동행자의 배고프다는 하소연이 내 배도 비었음을 깨닫게 한다.

효명세자의 공간이었다고 하는 의두합을 다시 만난다. 금마문을 통해 바로 들어갈 수 있다.

 

한복을 입으면 고궁 관람 무료. 참 좋다고 생각한다. 고궁과 잘 어울리고 너무 예쁘다.

 

그렇게 창덕궁의 일부만 살짝 구경하였다. 빗속의 아름다운 고궁 산책이었다.

 

램블러한테 물어보니 이렇게 걸어다녔다고 나온다. 3.3km를 두시간에 걸쳐 즐긴 경험이었다.

 

그리고는... 쌈밥집에서 반찬을 리필시켜가며 과식했다. 그리고는... 저녁과 야식을 모두 생략해야 했다....ㅠ.ㅠ

이제서야 사진 속에서 찾았다. '처음처럼'. 제길... 그냥 물병이었다. 아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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