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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강진군에서 시행하고 있는 "강진 반값가족여행"의 혜택을 보았다. 조금 더 배우며 여행을 하기 위해 강진군 홈페이지에서 강진군에 대한 여행 자료를 부탁했었고, 그렇게 받은 자료 중에 『있는그대로 강진여행』이라는 책자는 지금까지 내가 받아본 지자체의 여행안내자료 중에서 최고라고 평하고 있다.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지만, 특히 주제별로 나눈 후 안내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강진군 지도에 표시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후 "어디를" 다녀왔냐는 다른이들의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최고다!

 

그렇게 해서 병영성과 하멜 기념관은 강진군 여행 첫날에, 강진만생태공원, 가우도, 석문공원은 둘쨋날에 방문하였다.

 

1. 전라병영성과 하멜 기념관

전라병영성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병마도절제사 마천목 장군이 축조하여 1895년 갑오경장까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전라도와 제주도를 포함한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의 총지휘부였다.

그래서 1872년 지방지도에서 강진현을 찾아보면 강진읍과 병영의 규모가 거의 비슷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雪城 혹은 細柳城이라고도 했던 병영성은 지금의 광주광역시인 광산현에 있던 병영을 당시 도강현이었던 이곳으로 옮긴 것으로, 기록에 의하면 둘레가 2,820척, 높이가 10척 8촌이었고, 연희당, 응수당, 객사 등 부속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전라병영성에 1656년부터 1663년까지 네덜란드 인 하멜(Hendrik Hamel) 일행이 억류되어 생활하기도 하였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불에 타 폐허가 되었다가 이듬해 폐영되었다.

전라병영성 전체 길이는 1,060미터, 면적은 93,139제곱미터로 남북으로 길다란 장방형에 가까운 평지성이다. 배후에는 해발 561미터 높이의 수인산에 산성이 있다. 동서남북에 옹성을 갖춘 문터, 4개의 모서리와 동벽, 서벽에 2개씩의 치성의 흔적, 남서쪽 배수구 시설, 조선시대 읍성 진영에 일반적으로 적용된 방법으로 축조된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1997년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 성곽, 남문, 동문 등이 복원되었고 성곽 내의 소실된 건물들과 유적들은 현재 복원중이다.

 

병영성의 동쪽에는 이곳에서 6년간 억류 생활을 했었던 '하멜 기념관'이 멋지게 만들어져 있다.

 

병영성의 동문을 보호하는 옹성에서...

 

성벽의 길이가 1km를 살짝 넘는 정도이니 천천히 걸어서 한바퀴를 돌아보면 좋다.

 

남문 부근의 일부 구간은 지난 해의 집중호우로 인한 재난에 휩싸였다. 성벽 일부가 붕괴되어 복구를 기다리고 있다.

 

병영성 서문 밖에 위치한 하고저수지 옆을 지나는 배율천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교'가 놓여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어 있다. 18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후기의 지방 건축술이 크게 발전된 양상으로 보여주는 우수한 유적이다. 아름다운 조형미를 갖춘 다리로 조선후기 다리들 중 수작으로 꼽힌다는데 이곳을 놓치고 이번 여행에 직접 보질 못했다. 넥스트 타임~

(사진 출처: 조진섭, 2018, "그옛날 당당했던 모습으로 돌아온 호국의 성지," 국방저널, 통권 530호, 81쪽.)


병영성의 동문 밖에는 하멜 기념관이 위치한다. 월요일에는 휴관하여 내부를 구경하지는 못했다.

하멜기념관은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렸다고 평가되는 『하멜보고서』의 저자이자 병영에서 오랫동안 억류생활을 했던 헨드릭 하멜을 기념하고, 강진과 네덜라드 호르큼 시와의 문화적 교류를 위해 개관되었다.

 

네덜란드 사람이라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풍차가 광장 한쪽에 모셔져 있다. 네덜란드 풍차가 이런 모습이었던가? 30여년 전쯤에 한번 본 것 같기는 한데...

 

그리고 기념관 앞에서 병영성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하멜 동상을 만날 수 있다.

동인도회사의 선원이었던 하멜 일행은 일본으로 항해하던 중 배가 난파되어 1653년 제주에 표착하였다. 이들은 탈출하기 전까지 13년 동안 조선에 살아야 했고, 그 중 7년을 강진 병영에서 지냈다.

하멜 일행이 이곳에서 보낸 기간이 길었던 만큼 병영 일대에는 네덜란드 문화와 관련된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병영면 성동리의 마을 안쪽을 지나는 '한골목길'의 담장의 축조 방식이 독특하다. 돌을 세워 아랫층과 윗층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엇갈리게 쌓아 마치 빗살무늬 처럼 만든 것이다. 이 담장의 방식과 부근의 수로 등이 그들을 통한 네덜란드 문화 흔적으로 보고 있다.

탈출에 성공한 이후 1668년 네덜란드에 귀국한 하멜은 조선 표착 기간 동안의 임금을 받기 위해 동인도회사에 보고서를 제출하였는데, 이 문서 바로 하멜표류기로 알려진 책의 원서이다.

 

월요일에는 휴관하여 들어가보지 못하는 하멜기념관 전시실에는 전라병영성 출토 유물, 하멜보고서, 호르큼 시에서 기증한 네덜란드 전통의상 등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멜의 조선 표착의 역사적 의미와 17세기 조선의 병영 문화, 네덜란드의 역사 및 국제교류사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 강진만 생태공원

탐진강의 열린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강진만은 자연적으로 넓게 형성된 汽水域(brackish water zone)으로 하구 습지에 인접한 농경지, 소하천, 산지 등의 자연환경이 양호하여 다양한 생물들이 풍부하게 서식하는 생태다양성의 보고이다.

 

2015년 국립환경과학원의 정밀조사에 따르면 멸종위기야생동물 10종을 포함하여 1,131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평균 548종의 생물이 출현하는 남해안 11개 하구역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생태다양성을 자랑한다.

 

예로부터 남해안과 제주도를 오가는 뱃길의 대표항구였던 남당포구가 있던 강진만은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 정약용의 한시 '탐진어가'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천천히 데크길을 걸으며 강진만의 생태를 감상할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201-2호인 '큰고니'를 형상화시킨 조형물이 탐진강 제방에 만들어져 있다.

 

다리 이름도 '고니 다리'.

 

갯벌위의 갈대밭 사이로 데크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밀물 때와 썰물 때의 모습을 모두 보고 싶었는데, 그냥 지나가는 여정이라 그렇게 하질 못했다. '1주일 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분들은 얼마나 좋을까~~~^^

 

3. 가우도

강진만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가우도는 후박나무 군락지 등 자연이 살아숨쉬는 숲이 청자 빛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강진을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강진읍 보은산이 소의 머리인데, 섬의 생김새가 소(牛)의 멍에(駕)에 해당된다고 하여 '가우도'라고 불리게 되었다.

강진만의 서쪽인 도암면에서 가우도로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다산다리'의 모습.

 

강진만의 동쪽인 대구면과는 '청자다리'로 연결된다. 청자다리를 통해 이어진 가우도의 정상 부근에 '무엇'인가가 보인다.

 

가우산 위에 거대한 '청자'가 올라와 있다. 청자타워이다. 짚라인을 타고 청자다리 옆을 날아가 대구면에 도착할 수 있다.

 

청자 타워까지 모노레일을 통해 올라갈 수 있다. 왕복 3,000원.

 

가우도에서 바라본 '다산 다리'의 모습, 다산 초당이 있는 방면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가우도에서 바라본 '청자다리'의 모습. 고려청자 요지가 많이 분포하는 칠량면 쪽과 연결되어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 다산다리와 청자다리의 골격과 구조는 같다. 2륜차 통행금지!

 

가우도 둘레길의 북쪽에 위치한 '출렁다리'. 흔들면 출렁거려서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

 

다산다리를 걸어서 건너 가우도로 넘어간다. 

촬영은 이 친구가 해주었다.

 

가우도에 도착하자마자 '황가오리빵'을 사먹어볼 수 있다. 5개에 5,000원.

 

그리고 가우도를 이렇게 즐길 수 있다.

둘레길 이름이 '함께海길'이다. 가우나루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모노레일을 타고 청자타워까지 올라갔다가 돌계단길을 내려와 출렁다리를 건너서는 나머지 '함께해길'을 걸어 다산다리를 통해 선착장의 주차장으로 나왔다.

 

영랑나루쉼터에서 영랑과 함께 기념사진을 하나 남겼다.^^

 

가우도 출렁다리. 짐을 싸면서 '빗'을 빼먹었고, 가져갔던 모자는 바람에게 빼았겼고.... 내내 머리 모양이 새집이다.

 

가오리들과 함께 남긴 기념사진.

 

다시 또 자꾸만 가고싶은 섬, 가우도

 

4. 석문 공원

기가 막히게 멋진 장면이다.^_^  석문공원은 긴 세월 비바람에 깎아놓은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곳으로, 석문산과 만덕산을 잇는 산악형 현수교가 유명하다. 멋지다!!!

 

'사랑+구름다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길이 111m, 폭 1.5m의 출렁다리(탄탄하여 잘 출렁거리지는 않는다.)에 올라서면 아찔함과 동시에 주변의 풍광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다리 양쪽 끝에는 하트 모양의  게이트 겸 포토존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추억을 사진으로 담기에 좋다.

 

절벽에 매달린 '석문정'.

 

절벽 위에 올라앉은 전망대.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살금살금 건너가 보았다.

 

멋진 곳이라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석문교 옆에 조성된 주차장에 차를 두고 55번 도로 옆으로 조금 걸어서 물놀이장이 있는 도암석문계곡 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도암천을 가로지르는 '석문2교' 아래를 지나면 바로 진입로이다.

 

드론 갖고 노는 것이 즐겁기만 한 새집 머리 할아버지.

 

주변 산책로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자연의 조각품들을 즐길 수도 있다. '새종대왕 바위'와 '큰바위 얼굴'.

 

5. 고바우 전망대

대구면에서 마량면으로 향하는 강진만을 따라 연결된 해안도로는 시원하게 즐기는 드라이브가 가능하다. 고려청자박물관 조금 못미쳐 강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명소인 '고바우상록공원'을 찾았다.

'고바우 전망대'라는 표지판이 시인성이 떨어지게 만들어져 있다. 잘 안보인다. 그리고 넓은 주차장 입구는 막혀 있다. 공사중이다.

 

무엇인가 거대한 것을 만들다가 멈추었다. 공사중이라 하자.

 

낙조가 가장 멋진 장소인데 대낮에 찾아갔다. 확뚫린 전망이 시원하다. 다음엔 낙조를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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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에서 시행하는 "반값가족여행"의 혜택을 입었다. 2024년 4월 초에 신청하고 22일~24일 간 2박3일의 여행을 즐기고 바로 비용 정산 신청을 했고, "강진사랑상품권"으로 받았다. 다시 강진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문화의 두께를 더해 온 강진의 명소 몇 곳을 찾았기에 간단히 정리해 두려 한다. 아래 지도에서 파란 선은 22일의 이동경로이다. 서울에서 출발해 강진군의 북쪽의 명소들을 방문하였다. 강진읍의 숙소에서 쉬고 23일에 강진만의 서쪽 지역(붉은색)을 여행하였다. 24일에는 강진만의 동쪽 지역(노란색)을 여행하다가 서울로 돌아왔다.

 

1. 백운동 원림

2023년 가을에 중국 강남의 정원 몇 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주가각의 과식원, 동리의 퇴사원과 진주탑원, 소주의 졸정원의 네 곳을 방문하였는데 정원 속에 각종 자연을 가져다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이것저것을 모아 놓다보니 이것저것이 다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마구 뒤섞여 있어 번잡하게만 보였었다.

우리나라의 전통 정원은 자연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라 중국과 차별화된다 하였다. 그러한 전통 정원을 강진에서 찾았다. 白雲洞 園林은 강진군 성전명 월하리의 월출산 옥판봉 자락에 위치하며, 17세기 말 조영된 전통 別墅이다. 원림의 조영자는 이담로이며, 만년에 둘째 손자 이언길과 함께 백운동에 은거한 이래 11대에 걸쳐 이어져온 유서깊은 원림이다. 2004년 11월1일 향토문화유산 제22호로 지정하여 관리되고 있으며, 2009년 착공된 복원사업으로 원림의 골격이 회복된 상태이다. 2019년에는 문화재청에 의해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드론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월출산 강진다원의 넓게 펼쳐진 차밭 사이에 짙은 숲 속에 백운동 별서 정원이 숨어 있는 듯 하게 보인다.

 

백운로 변에 새롭게 조성된 주차장에 차를 쉬게 하고 차밭의 경관에 감탄한다. 

 

헌 잎위로 새 잎이 열심히 돋아나고 있다. 찻잎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더 아래로 내려가야 원림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는데, 중간을 뚫었다. 화장실도 새로 만들고 있었다.

 

몇 걸음 안걸어도 쉽게 별서 정원으로 접어들 수 있다.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작은 계곡을 끼고 원림이 조영되어 있다. 자연을 그대로 이용하는 자연 속의 정원이다.

 

여기가 내집이다 생각하면서 당당하게 들어간다. 보는 사람도 없다.^^

 

현재 복원된 백운동 원림 구성도이다.

(출처: 박율진 외, 2011, "강진 안운마을 백운동원림의 승경과 수공간의 조영 특성," 한국전통조경학회지, 제29권 2호, 105)

 

백운동 원림의 안채에 해당하는 自怡堂.

 

사랑채 건물이다. 산허리에 작게 만든 방의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다 하여 백운동 12승경 중 제9경인 翠微禪房으로 선정!

백운동 12승경은 다산이 꼽은 것이다. 백운동 원림은 다산 정약용, 초의선사 등에 의해 차 문화의 산실이 된 곳이었다. 백운동의 경치에 반한 정약용은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12곳의 아름다운 경승을 칭송하는 시를 남겼으며, 이는 '백운첩'에 담겨 있다.

초의선사가 그린 '백운동도'가 백운첩에 담겨 남아 있다.

 

서쪽으로 흐르는 계곡의 물을 수로를 통해 원내로 끌어들여 마당의 작은 연못을 돌아 다시 방향을 꺾어 흘러 나가게 만든 독특한 조경을 하였다. 백운동 12승경 중 제5경인 '유상곡수'.

 

제11경인 '정선대'에 올라 제1경인 월출산의 '옥판봉'을 바라볼 수 있다. 좋다! 怡悅!!!

 

제12경에 해당하는 운당원에 우뚝 솟은 왕대나무.

 

2. 다산 초당

백련사에서 동백나무 숲길을 따라 다산초당까지 약 900미터라고 한다. 걸어야 한다. 그런데 차를 어찌 할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다산초당 초입의 주차장까지 차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배고팠다.ㅠ.ㅠ

'다산손맛집'이라는 식당이 보여 들어가서 주문하고 나서 정신 차리니 다산초당을 찾아 걷고 있었다. 식당 사진이 없다. 아침을 굶었기 때문에 배가 고파 정신이 없어진 때문이다.


20여 년 만에 다시 온 것 같다. 오르는 길이 너무 좋아졌다.

 

그런데 이건 무엇일지 의아했다. 흙탕물인데 물바가지가 있다? 왜?

 

'서암' 그리고 뒷쪽으로 '다산초당' 건물이 살짝 보인다.

 

다산초당과 주변 건물들.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개혁가인 정약용은 經世致用, 利用厚生, 實事求是를 모두 겸비하여 실학을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된다.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으나 정조 서거 후 천주교 박해사건에 휘말려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茶山艸堂은 정약용이 강진 유배 중 10여 년 동안 기거하며 후학들을 가르치고 자신의 학문을 연마한 곳이다. 『經世遺表』, 『牧民心書』, 『欽欽新書』의 경세론 등 500여 권에 이르는 대저술이 바로 이곳, 다산초당에서 이루어졌다.

 

이름처럼 원래는 초가였던 다산초당은 1936년에 노후화로 인해 붕괴되었던 것을 강진 다산유적보존회에서 1957년 기와집으로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茶山艸堂"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남긴 것......이 아니라 그의 글자를 집자하여 모각한 것이다.

 

능선에 위치한 '천일각'에서는 강진만의 바다 경치까지 아주 잘 보인다. 옆의 오솔길은 백련사까지 이어진다.

 

 

3. 사의재

1801년 겨울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 도착했다. 18년간 이어진 유배생활의 시작이었다. 당시엔 숙박업소가 없었다. 다산을 반겨주는 사람도 없었다. 오갈데 없는 다산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숙소를 제공해준 것이 주막의 주모였다. '동문매반가'라는 강진읍의 동문 밖에 있던 주막집이었다. 

다산은 이곳을 거처로 삼으면서 '생각, 용모, 말, 행동의 네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아 四宜齋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 주막의 골방을 4년간이나 내주어 지낼 수 있도록 해준 마음이 한없이 넓었던 주모.

다산은 1801년 겨울부터 1805년 겨울까지 사의재에서 주모와 그 외동딸의 보삼핌을 받으며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나갔다. 이곳에서 『兒學編訓義』를 집필하였고, 황상 등 모두 6명의 제자들을 가르치며 학문연구와 교육에 힘쓰기 시작하였다.

 

이 주막에서 지낼 때 다산은 바지락전과 아욱된장국을 즐겨 드셨다고 한다.

 

강진군은 2007년 오랜 고증을 거쳐 동문 안쪽 우물가 주막터를 원형 그대로 복원하였다. 현재 사의재 내에 함께 복원된 동문매반가는 다산이 즐겨 먹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주막으로 운영 중이다.

메뉴판.

 

주변에는 사의재 저잣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다산이 머물던 시대의 옛거리 모습으로 사의재 주변에 조성한 복합문화공간이다.

 

4. 강진다원

강진 월출산은 큰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산세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특히 큰 일교차와 강한 햇빛을 막아주는  맑은 안개 등 차나무가 자라기에 좋은 지리적 특성을 갖추어 일찍부터 떫은 맛이 적고 향이 좋은 재래종 차나무가 자라던 지역이다. 일교차가 크고 안개가 많은 자연환경이 차 생산에 적절한 조건으로 작용한 것이다. 월출산에는 지금도 야생 차나무들이 자라고 있을 정도이다. 월남사 등 월출산 주변의 고려 사찰을 중심으로 차나무가 많이 재배되기도 했다.

이러한 천혜의 조건과 조선시대 학자들의 차 애호 정신이 더해지면서 강진의 차 문화가 확산되게 된다. 특히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서의 긴 유배 시절 동안 차를 마시며 학문의 깊이를 더했고 당대 유명 학자들과 교류했다. 그는 월출산에서 나오는 차가 천하에서 두번째로 좋은 차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렇게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유서깊은 차문화 역사를 배경으로 1982년에 10여만 평 규모로 설록다원, 월출산 다원, 강진 다원(이름이 여럿이다.)이 조성되었다.

 

전체 차밭 중 8만 평은 일본 품종인 야부키타 종이 심어져 있으며, 1만 9천 평에는 재래종이 재배되고 있다고 한다.

 

 

월출산에서 흘러내리는 차가운 공기로 인한 냉해를 방지하기 위해 차밭 중간 중간에 많은 바람개비를 설치해놓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바람개비들이 모두 산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 냉기를 불어내리기 위해서 이다.

 

5. 영랑 생가와 세계모란공원

2024년 4월 23일 아침을 굶고 강진읍내의 영랑생가를 찾았다.

 

넓직한 대지를 보니 영랑은 부잣집 자손이었을 것만 같다.ㅎㅎ

영랑 김윤식은 1903년 강진의 5백석 지주 김종호의 장남으로 태어나 강진보통학교와 휘문의숙을 거쳐 동경으로 유학을 가서  청산학원 영문과를 다니다가 중퇴했다. 휘문의숙에 재학 중이었던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자신의 구두 안창에 독립선언문을 숨겨 고향 강진으로 내려와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였고, 1920년 동경으로 유학하였다가 1923년 9월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1919년 3.1운동 직후 강진에서 김현구, 차부진, 김길수 등과 '청구'라는 문학동인지를 발간하였고, 1930년 동경 유학 때 사귄 박용철과 함께 동인지 '시문학' 창간을 주도했다.

영랑은 1930년 3월에 창간한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박용철, 정지용 등 당대 최고의 작가들과 함께 우리 현대시의 새 지평을 열었다. 1934년 4월 '문학'지에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발표하였고, 1935년에 '영랑시집'을, 1949년에는 '영랑시선'을 출간하였다.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이주하면서 그의 생가 소유권이 다른 이에게 넘어가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던 것을 1985년 강진군이 전남 도비 지원으로 매입하여 연차적으로 복원사업을 벌여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렀다. 

그러나 원형 그대로의 복원은 아니었으며, 공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복원공사가 부실했는지..................ㅠ.ㅠ

 

생가 옆으로 '시문학파기념관'이 위치한다. 오전 8시 반에는 운영을 안한다.

 

그리고 생가 뒷편 언덕 위에 '세계모란공원' 조성되어 있으며 생가에서 바로 연결통로가 있는데, 연결하고 있지는 않다. 폐쇄되어 있었다. 할 수 없이 돌아서 돌아서 돌아서 세계모란공원을 가보았다.

 

"감성 강진의 하룻길"은 강진의 대표 시인 김현구의 시들로 읽으며 지날 수 있다.

 

세계모란공원에는 모란꽃이 많다.

 

아주 커다란 꽃도 있다.

 

잘 생긴 영랑과 함께 사진을 남길 수도 있다. 빨간 쓰레받기가 눈에 확 띤다.^^

 

전망대에 오르면 강진읍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강진만 바다까지 보인다. 생태공원이 보인다.^^

 

온실에서 세계 여러나라의 모란을 감상할 수 있다. 참 모란은 향기가 있나, 없나???

 

영랑은 남도의 사투리를 음악성 있는 시어로 표현한 서정시인이었다. 또한 단 한줄의 친일 문장도 쓰지 않은 민족시인이기도 했다.

 

 

6. 고려청자박물관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에 고려청자박물관과 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이 위치한다.

고려청자박물관이 이곳에 위치하게 된 것은 대구면과 칠량면 일대에 약 200여 개에 이르는 청자 요지가 분포하기 때문이었다. 이 지역은 9세기에서 14세기까지 고려 청자를 제작하던 곳으로, 우리나라 청자의 시작부터 발전, 쇠퇴까지 그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청자의 산실이자 보고이다.

2007년 태안 죽도 해저발굴에서 耽津('강진'의 고려시대 지명)이 쓰여있는 木簡이 발견되면서 2만 3천여 점의 고려청자의 생산지가 강진임을 증명해준 바 있다.

고려청자박물관은 1970년대에 고려청자 재현을 위한 고려청자사업소로 시작한 이후 지금은 국내 유일의 청자 전문 박물관으로 자리 매김하였다.

강진군에서 '1주일 살기' 체험을 하는 사람들은 입장료가 무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7. 사인정

강진현 고지도에서 '병영'의 뒷산인 수인산 자락을 따라 남쪽으로 쭈욱 내려가보자. 대동여지도를 보면 지금의 탐진강과 산줄기의 끄트머리가 만나는 부분에 '사인암치'라고 적혀 있다. 1872년 지방지도에서 같은 위치에 '사인암', '사인점' 표시가 있다. 이게 무엇인지 궁금해서 지도를 확대하면서 찾아보았다.

 

현재는 행정구역이 장흥군으로 바뀌어 있으며, '사인정'이 남아 있다. 그래서 "장흥 사인정"이라 한다.

 

단종 때 이조참판을 지낸 雪岩 김필이 계유정난 뒤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여 은거하다가 후학을 교육하기 위해 세웠다. 김필이 이곳 강가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는 뜻으로 겨울이면 암벽에 단종의 진영을 그렸다고 한다. 그가 죽자 후손들이 그를 추모하며 사인이란 벼슬 이름을 따서 사인정이라 하였다.

산기슭의 기암을 배경으로 하고 탐진강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세웠다. 단층 목조 팔작지붕집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1m 정도 높이의 석축 기단 위에 자연석을 초석으로 사용하였고 각 주두마다 장식을 하였다. 온돌방을 가운데 두고 사방을 마루로 둘렀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55호이다. 

 

자연 속의 설암각 건물.

 

오래된 영정각의 기둥들에서 싱싱한 자연산 구멍들이 보였다. 딱따구리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자연산 다람쥐들도 놀이터로 삼고 있다.

 

사인정 동쪽, 이끼로 덮여 있는 바위에 "제일 강산"이라고 각자가 되어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로 보고 있다고 한다.

 

 

사의정에서 탐진강 방면의 조망. 이제는 나무가 무성하여 시야를 좀 가리는 듯하다.

 

사인정을 만든 김필의 신도비가 도로변에 건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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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말에 강진 여행을 다녀왔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밴드에서 남미륵사의 철쭉과 서부해당화 군락을 소개한 자료를 보고 강진을 찾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4월 22일 서울을 출발, 열심히 운전을 해서 강진군에 도착하였다. 남도의 "한정식"에 많은 기대를 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도 간략하게 해결하고 "오직 저녁 한정식"을 마음 속으로 외치며 강진으로 달려갔다. 강진군의 성전면에 위치한 무위사를 가장 먼저 방문하였다. 이후 인근에 위치한 월남사지를 방문하였다. 백련사는 23일에 방문하였고, 나를 강진으로 이끌었던 남미륵사는 23일 오전에 방문했다.

아래 지도에서 파란색 경로가 22일의 이동 경로를 나타낸 것이고, 붉은색은 23일, 노란색은 24일의 이동 경로이다.

 

1. 무위사

강진읍의 북서쪽에 위치한 무위사는 월출산의 천황봉과 구정봉 사이의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고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전한다.

입구에 주차장이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극락보전이 중심 건물인데, 그 뒷쪽에 새롭게 대웅전을  만들고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절집을 즐기기에 적절하다.

 

4월 22일 오후 2시 35분에 방문하였다고 한다.

 

무위사 경내로 들어섰다. 조용~

 

고려 초에는 선종 사찰로, 조선시대에는 水陸寺로서 유명하였다.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水陸齋를 행하였던 사찰이었던 만큼, 중심 건물은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신 極樂寶殿이다. 무위사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보전은 조선 불교의 초기 형태로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의 소박한 건축미로 유명하다. 극락보전 앞에는 당간지주만 남아있다.

극락보전(국보 제13호) 내부의 후벽에는 31점의 벽화가 있었는데, 1955년에 보존을 위해 아미타여래삼존벽화(국보 제313호)와 백의관음도를 제외한 29점을 해체하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극락보전 서쪽에는 삼층석탑이 위치한다.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성 연대는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전형적인 2층 기단의 3층 석탑으로 각 부재가 잘 조화되고 균제된 석탑이다.

 

극락보전 뒷편의 대웅전 일대는 공사중이다.

 

무위사에서 출발하여 월출산 골짜기의 생태탐방을 가볍게 할 수 있도록 코스가 정비되어 있기도 하다.

 

2. 월남사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진각국사 혜심이 중건했다고 하나 백제의 유물이 출토되고 삼층석탑의 규모와 양식을 근거로 월남사 창건 시기가 그 이전일 수도 있을 것이라 보고 있기도 하단다. 

월남리 마을 서북쪽의 죽림으로 둘러싸인 곳이 고려 불교문화의 성지인 월남사지 옛터이다. 3층석탑과 석비 부근의 발굴 작업 현장의 규모, 부근의 가옥이나 담장에 그 당시 사찰 건립에 사용되었던 많은 양의 석재들이 사용된 것들이 보여 월남사가 얼마나 융성했었던 것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월남사는 조선 중기에 폐찰되어 현재 복원중이며, 월남마을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월남사지에는 진각국사비와 3층석탑이 남아 있다. 

보물 제298호로 지정된 월남사지삼층석탑은 월출산을 배경으로 단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양으로 우뚝 서 있다. 백제 양식으로 해석되고 있다. 3층석탑의 서북쪽에는 중동이 부러진 거대한 석비가 있다. 윗부분은 광주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보물 제 313호이다. 비문은 진단학보 제36집에 실려있다.

 

3. 백련사

강진읍 남쪽의 만덕산에 위치한 백련사는 신라 문성왕 때 무염국사가 만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쇠락의 시기를 지나 원묘국사에 의해 1211년 옛터에 중창되었고, 백련결사를 맺어 수행하면서 백련사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고려후기 무신정권과 몽고의 침략으로 민중의 삶이 고난으로 점철된 시대에 원묘국사 了世는 결사운동을 벌였다. 1232년 보현도량을 개설하고 1236년에 백련결사문을 발표하면서 고려 백련결사운동의 중심지로서 불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백련결사는 민중들과 함께 참회와 염불수행으로 정토세계를 염원하는 민간 결사운동으로 백성들이 주역이 되어 120여 년간 크게 번창하였다.

 

대동여지도에는 '백련사', 1872년 지방지도에는 '만덕사'라고 표시되어 있어 두가지 이름이 혼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백림 사건'이라 명하기로 했다. 백련사로 오르는 숲길은 동백나무가 가득하다. 이곳에 동백꽃이 만발하였을 때는 얼마나 아름다웠을 지... 꽃이 모두 지고 없었다. 백련사로 오르는 길의 동백꽃이 모두 진 사건, 동백림 사건이다. 다음에 동백꽃이 개화하였을 때 이곳을 다시 찾기로 했다.

백련사 동백나무숲은 국가지정 천연기념물이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잇는 길목에 약 5.2ha 면적에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 백련사의 동백은 2월부터 머금어 초봄인 3월 초부터 개화하기 시작하여 3월 말에 낙화한다.

다산초당까지 가볍게 걸어서 다녀올 수도 있다.

 

차밭에서 찻잎을 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차의 동네인 것이다.

 

백련사의 대웅보전 편액은 조선 3대 명필 원교 이광사가 쓴 것이다.

 

오랜 세월을 품은 배롱나무 아래에 기와불사의 멋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재밌는 장면이다.^^

 

만덕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강진만의 바다에 바로 눈앞에 펼쳐져 보인다.

 

4. 남미륵사

강진읍 동쪽의 화방산 자락에 위치한 남미륵사는 법흥 스님이 1980년에 장건하고 40여 년 동안 불사를 중창한 세계불교미륵대종의 총본산이다.

 

남미륵사 조감도.

 

동양 최대의 거대한 황동 아미타불 불상이 있는 웅장한 경관이 유명하며, 봄이 되면 약 천만 그루의 철쭉과 서부해당화가 만개하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해 불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사찰이다.

 

남미륵사 입구의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이르는 꽃길이다. 초봄에는 서부해당화와 철쭉, 여름에는 연못의 연꽃, 가을에는 꽃무릇, 겨울에는 동백이 멋진 곳이다. 4계절 내내 꽃들로 아름다운 자연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이다.

4월초에 철쭉 축제가 개최되어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기도 하다.

 

남미륵사의 입구에서는 '부부 코끼리상'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그런데 4월 24에 방문했을 때는 철쭉의 꽃이 안보였다.

 

이게.... 철쭉 천만 그루의 꽃세상???

 

아주 조금 남아 있기는 하다.

 

요만큼......

 

뭐 이렇다. 2024년 4월 24일에는 이랬다.

 

남미륵사의 대웅전

 

꽃길은 꽃길이다.

 

작업하시던 분이 서부해당화가 어떤 꽃인지 가르쳐주고 계시다. 멀리 아미타불 불상의 거대한 모습이 보인다.

 

남미륵사는 거대하다. 동양 최대의 황동 아미타불 불상 옆에 위치한 33관음전 또한 거대하다. 33관음전 앞 뜰에는 팔각13층석탑과 사각33층석탑이 서 있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에 머물면서 중생들을 극락으로 이끄는 부처님이라 한다.

 

관음전의 기와와 주변의 녹음이 아주 잘 어울린다. 기와의 색이 아주 예쁘다.

 

아미타불 불상이 있는 단의 주변을 한바퀴 돌면서 마니차를 하나씩 돌려본다.

 

남미륵사를 찾았다가 마을로 들어가 민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게 하는 것 같다.

 

남미륵사를 창건한 법흥스님은 시인이기도 하다. 경내의 여러 곳에서 작품을 즐길 수 있다.

 

천만 그루 철쭉이 꽃을 아름답게 피웠었던.....

 

주차장에서 미련이 남아...

 

2박3일간 강진 여행을 하면서 방문하였던 사찰 여정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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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구석구석"이라는 플랫폼이 있다. 홈페이지, 블로그, 밴드, 페이스북 등등 여러 플랫폼을 통해 대한민국의 가볼만 한 예쁘고 멋진 곳들을 소개해준다.

강진의 남미륵사 일대의 철쭉과 서부해당화 군락이 소개된 자료를 보고 준비했다. 강진군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여행자료를 부탁했다. 바로 처리가 된 것 같았는데, 실제 도착은 꽤 시일이 지난 다음이었다. 여러 자료들 중에 '반값 강진여행' 홍보 자료가 눈에 띄어 바로 강진군 홈페이지에 신청을 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1주일 살기 등의 지원 행사 기회를 보았었는데 지나치게 상세한 계획서를 요구하는 등 자료 준비가 까다로워 신청을 포기한 경우가 많았는데, 강진군의 경우에는 상대히 '지원자 친화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담당자들이 잘 준비한 것으로 보였다.

 

숙소들을 비교 검토하여 선정한 후 예약도 미리 해두었다. 그리고 강진군청에서 보내준 책자와 인터넷에서 검색한 자료들을 통해 강진에 대해 공부해나갔다. 강진군청의 홍보 자료 중에 "있는 그대로 강진여행"이라는 책자는 몇 년간 수집해 온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의 관광 홍보 자료들 중에 수위에 있다고 보인다. 참 잘 만든 책자이다. 필요한 내용들의 선정과 배치, 안내 등에 참 잘되어 있더라. 여행할 지역을 선정하고 일정을 정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블로그 내용을 정리하는데도 많은 참고가 되었다. 감사~

 

하지만 동봉된 관광지도 '강진愛흔들리'는 실망이다. 이렇게 훌륭한 지도가 있었는데 왜 그렇게 헐렁한 것으로 바꾸었는지 모르겠다. 실망이다....ㅠ.ㅠ

 

강진군의 헐렁한 관광안내 지도에 숙소가 딱 한 곳이 표시되어 있다. '케이스테이 관광호텔'이다. 제일 좋은 곳이니까 군에서 군의 관광안내지도에까지 표시를 한 것이겠지라고 기대를 하면서 정보를 검색하였다. 당연히 예약도 하려했다. 그러다가 위치한 곳의 지도를 보고 포기했다. 호텔의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4월 24일, 남미륵사를 들러 가우도, 청자박물관 방면으로 이동하다가 방문하여 보았다. 바람이 좀 강했지만 쪼꼬만 드론을 올렸다. 케이스테이 관광호텔과 주변의 모습이다. 사진이 녹색으로 가득하다. 그런 곳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 식당하나 없다. 하여 1층에 부페식으로 운영하는 식당이 입점하여 운영하고 있더라. 아침을 굶었기에 늦은 아침 혹은 이른 점심 삼아 먹어보았다. 괜찮더라. 주변의 주민들도 작업을 하다가 이곳에 와서 식사를 하는 분들이 많은 눈치였다. 어쨓든 케이스테이 관광호텔은 생태공간에 위치한다.^^

 

강진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옛날 지도들이 언급되어 고지도를 찾아보았다. 강진현의 1872년 지방지도의 강진읍과 전라병영성 부분을 확대한 것이다. 전라도 병마절도사가 있었던 곳이라 상당한 규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강진이란 곳이 대단한 곳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자료이다.

 

대동여지도의 강진 일대도 찾아보았다. '병영'이라고 큼지막하게 표시되어 있다. 강진만(강진만은 '도암만'이라고도 한다. 남해도에도 '강진만'이 있어 '도암만'으로 사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가운데 있는 '가우도'가 만의 바깥에 표시되어 있는...

 

옆지기와 둘이 여행을 하기로 하였기에 일정을 조율하다보니 좀 늦어졌다. 4월 22일에 출발하여 24일까지 강진을 즐길 수 있었다. 길을 모르는 고로 네비게이션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강진을 향할 때와 귀가할 때의 추천 경로가 달랐다. 먼 길이더라....ㅎㅎㅎ

 

22일 월요일 아침에 서울을 출발하여 매우 달렸다. 잠을 설쳐 몹시도 피곤하였지만 옆지기가 운전을 도와주지 않아 외롭게 달렸다. 남해안에 위치한 강진군까지 다섯 시간을 달렸다. 차에는 加油하여 주었지만, 나는 그냥... 독박 운전이었다.^^

아산휴게소에서 점심을 간단하게 해결했다. 거대한 저녁을 기대하면서.... 한정식을 기대하면서......

 

 

영암을 지나 월출산을 끼고 돌면서 강진군으로 진입했다. "반값가족여행강진" 팻말이 반겨준다. 강진이닷!

무위사, 백운동 원림, 강진다원, 월남사지를 들러 전라병영성하멜 기념관을 찾았다. 굶주린 배를 위로하며 강진읍에 예약해두었던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기대했던 '한정식집' 사냥에 나섰다. 처참하게 실패했다.

 

23일. 강진읍내의 영랑생가, 세계모란공원을 천천히 즐기고 강진만생태공원을 찾았다. 드론의 '자동 추적기능'을 익힐 수 있었다. 피사체를 지정하고 활성화시키니 드론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따라오는 것이 신기했다. 만덕산 자락의 백련사다산초당을 방문하고 가우도를 찾았다. 석문공원의 구름다리의 장관을 감상한 후 아지트로 귀환하였다.

 

24일. 이번 강진 여행을 이끈 남미륵사의 꽃세상을 찾았다. 인근에 위치한 사인정의 정취에 빠지다가 케이스테이호텔, 가우도, 고바우 전망대, 고려청자박물관을 방문하고 귀갓길을 달렸다. 

고창군의 청보리밭 축제장을 귀경길에 방문하려 고려했었다. 드론으로 청보리밭의 모습을 잡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근에 주요 시설이 있어 드론을 함부로 운용할 수 없는 지역이기에 승인을 신청했었다. 비행 승인을 받았는데, 항공촬영신청을 받질 못해 포기하고 귀가하였다. 4일 전에 신청해야 하는데, 하루 차이로 인해 신청을 하질 못한 것이다. 아쉬웠다.

사흘 동안 아래 지도의 경로로 이동하면서 강진을 눈과 가슴에 담았다. 

귀가하여 안과를 다녀와 쉬다가 자료들을 정리하여 "강진 반값여행"의 정산을 신청했다. 강진에서 소비한 비용이 32만원 조금 넘었다. 영수증들을 모아 홈페이지의 양식대로 제출했다. 상당히 신속하게 처리를 해주더라. 만원 단위로 처리되기에 16만원의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입금되었다. 강진군의 여러 담당 공무원분들께 감사드린다.

"강진 1주일 살기" 프로그램도 탐이 나고 있다. 하지만 반값가족여행을 이용한 사람은 1주일 살기에 안끼워준다 하네.^^

'강진 사랑상품권'이 생겼는데......언제 다시 강진으로 달려갈까나~^^

 


 

일단 정리를 해두기로 했다.^^

강진군으로부터 "강진반값여행" 혜택으로 받은 16만원 상당의 지역상품권을 정리하기로 했다. 마침 강진군에서 직거래 쇼핑몰(https://www.gangjin.center/)(https://www.greengj.com/)을 운영중이어서 서울에 앉아 '강진사랑상품권'을 이용해 구매할 수 있다. 반값여행 '사전신청'했던 정보와 같게, 지역상품권 앱인 CHAK 앱의 신청 정보와 같게 '초록믿음강진'이라는 강진군의 직거래 쇼핑몰에 회원 가입을 하면 CHAK 앱을 통한 결재가 가능하게 된다.

강진군 병영면의 특색있는 음식인 '연탄돼지불고기'의 밀키트, '미니밤호박바로죽', 그리고 다산청정미 '맑은눈의쌀' 등의 상품을 구입했다. 무료배송이면서 할인폭도 상당하다. 16만원에 딱 맞추려 했는데, 158,000원을 결재했다. 2024년의 강진군 반값가족여행 이벤트는 이렇게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강진군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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