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오후 1시 25분. 보딩. A3 7580편. A320-200 비행기의 21A,B 좌석에 앉아 잠시 졸았는데 데살로니키 공항을 출발하여 하늘을 날고 있더라.
2시 30분. 기내식. 난기류로 인해 기내식 배식이 자꾸 중단, 지체되었다.
3시 10분. 로도스 랜딩. 로도스다. 로도스 섬에 왔다.^O^
3시 32분. 버스에 탑승하였다. 바로 로도스 섬의 로도스에서의 일정을 시작한다. 로도시와 고대 유적은 로도스 섬의 북동쪽 끝부분에 위치한다. 섬 중간에 위치한 공항에서 금방이다. 작은 섬이다.
로도스 섬은 도데카데스 제도의 가장 큰 섬이면서 그리스 섬들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한다. 연중 300일 이상 맑은 날씨가 나타나 1년 내내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찾는다. 섬의 크기는 우리나라 제주도의 3/4 정도이다.
로도스에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가 있었다. 항구에 있었다는 전설로 남은 헬리오스 코로스 거상이 그것이다. BC 290년 경부터 10여 년에 걸쳐 제작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진으로 파괴되고 치워져 그만한 크기의 거상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불가사의이다.
4시. 로도스 성에 도착하여 하차하였다. 당부아즈 게이트를 통해 들어간다.
'로도스'를 지중해를 품은 중세 도시라고 이야기한다. 로도스 시 한쪽에 14세기에 성 요한 기사단이 견고하게 쌓은 성곽과 요새가 그대로 남아 있어 중세 도시라고 불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로도스 섬'은...
이것이었다. "로도스 島 戰記". 판타지 소설의 시조 근처에 해당하는 작품. 소싯적에 빠져 있었던 작품이 "로도스"라고 하여 그 로도스가 이 로도스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니......
당부아즈 게이트를 통해 입성하여 그랜드 마스터 궁전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이거리 저거리를 구경하고 약간의 자유시간을 즐긴 후 예정된 숙소로 향하였다.
성채의 모습과 구시가지가 일목요연하게 표현된 지도가 있어서 가져와 보았다.
요새의 모습만 간략하게 보여주는 지도이다.
로도스 성채의 전체 길이는 4km이고 성벽의 두께가 12m 달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수백년이 지났음에도 옛모습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성벽은 자연스럽게 성벽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경계선이 되었다. 기사단이 이곳을 지키던 시절에는 성벽을 8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방어를 했다. 기사단이 출신지에 따라 프랑스, 오베르뉴, 프로방스, 아라곤, 카스티야, 이탈리아, 영국, 독일 등 8개의 군단으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주둔하던 위치에 이름이 흔적으로 남게 되었다. 이탈리아 탑, 프랑스 탑, 스페인 탑 등과 같이...
성채에는 해자까지 있어 어떠한 적도 침입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초기 비잔틴 시대에 방어를 위해 만들어졌던 성채를 차지한 성요한 기사단은 자리를 잡기 전에 낡은 성채를 보수하고 강화 및 개조하는 작업을 거쳤다. 1309년부터 1522년까지 성요셉 기사단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성으로 들어간다.
14세기에 만들어진 성이다. 연세가 오래 되시어 아프신 부분이 많다. 깁스.....
빨간 모자를 쓴 시계탑. 랜드마크 중의 하나인 '중세 시계탑'이다.
4시 11분. 왔다. 그랜드 마스터 궁전에...
카스텔로(Kastello) 라고도 불리는 이 궁전은 중세 도시의 가장 높은 지점인 북서쪽에 지어졌으며 그 규모가 도시와 항구를 압도한다. 그것은 요새와 연결되어 도시 방어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 도시가 적에게 침략당할 경우 주민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그랜드 마스터의 궁전은 넓은 안뜰(약 50×40m)을 중심으로 설계된 대략 정사각형 건물(80×75m)이다. 초기 비잔틴 요새의 성채 역할을 하기 위해 7세기 말에 지어진 이 성은 비잔틴 시대와 성 요한 기사단 시대 (1309-1522) 기간 내내 성채로 기능을 계속했다. 14세기 초부터 기사단은 비잔틴 성채를 수리하고 이를 그랜드 마스터의 거주지이자 행정 중심지로 활용했다.
정문은 남쪽 정면에 있으며, 그 옆에는 두 개의 인상적인 탑이 있다. 서쪽 정면은 문으로 뚫려 있으며, 그 앞에는 그랜드 마스터 Pierre d'Aubusson(1476-1503)의 작품인 높은 정사각형 탑이 우뚝 솟아 있다. 북쪽에는 창고 역할을 하는 지하 방이 있는데, 적의 공격이 있을 경우 주민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층에는 정사각형 안뜰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아치형 방들이 배치되었다.
19세기 중반쯤 2층은 완전히 무너졌고, 1937년 복원 작업이 시작될 때까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맞은 편에 위치한 성 요한 교회 지하에 비밀리에 숨겨져 있던 대량의 화약이 폭발하면서 그랜드 마스터 궁전까지 대부분 파괴된 것이다. 화약을 얼마나 많이 숨겨두었길래... 이탈리아가 로도스를 지배하던 시절에 가져갔던 재물 중에 성의 설계도 있었고 그것을 토대로 "새로 지은" 것이다. 2층에는 대의회실 , 식당 등 다양한 공식 방과 마가리타로 알려진 그랜드 마스터의 개인 숙소가 있었다 . 이탈리아 통치 기간 동안 2층으로 올라가는 대리석 계단 오른쪽에 예배당이 세워졌는데, 그 안에는 '바리'에 있는 도나텔로의 작품을 복제한 성 니콜라스의 동상이 세워졌었다. 2층의 많은 방에는 후기 헬레니즘 시대, 로마 시대, 초기 기독교 시대의 바닥 모자이크가 놓여 있으며, 대부분은 코스 섬에 있는 건물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영화 "나바론 요새"에서 로도스 성의 그랜드 마스터 궁전의 정문을 만날 수 있다. 오래된 영화의 야간 장면이라 화질이 많이 아쉽다. 그래서 4K UHD 블루레이를 새로 주문했다. 도착하면 다시 감상해보아야겠다.
로도스의 네 곳을 방문할 수 있는 입장권이다. 네 곳 중 두 곳을 방문할 예정이라 버리거나 흘리거나 잊거나 하면 안된다는 주의를 들었다. 한 곳은 오늘, 다른 한 곳은 내일 방문할 예정이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궁전을 나서면서 가이드가 보관하는 것으로 했다. 궁전을 방문했다고 한 쪼가리를 떼어갔다.
그랜드 마스터 궁전은 넓은 안뜰을 중심으로 사각형으로 건물이 배치되었다.
궁전의 중정. 동상들이 아치형 방에 하나씩 배치되어 있다. 오른쪽에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뜨거운 햇볕을 피해 그늘에 숨어 있는 우리 일행.^^
이탈리아 파쇼 팀이 기가막힌 유적 복원 방법을 사용했다. 다른 곳에 위치한 유적지의 유물을 들어다가 엉뚱한 곳에다가 깔아버린 것이다. 코스 섬에 있는 로마 유적지를 장식하던 모자이크를 뜯어다가 깔았다. 멋지다! 뭇쏠리니!!
이곳에서 처음 보았다. 창문이 채색 유리가 아니다. 얇은 대리석인데 빛을 투과시키는 것이란다. 알라바스터라고 부른다고 한다네.
'라오콘 군상'이 로도스 섬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로마가 집어갔다.
BC 100년 정도에 로도스 섬의 조각가들인 아게산드로스, 폴리도로스, 아테노도로스의 합작으로 "라오콘 군상"으로 만들어졌는데 헬레니즘 조각의 최대 걸작으로 불린다. 이 조각상은 네로 황제가 자신의 황금궁전에 진열하려고 로도스 섬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로마의 멸망 후 소실되었다가, 1506년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인근 포도밭에서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고, 이는 건축가 상갈로의 손을 거쳐 교황 율리오 2세의 컬렉션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을 기념하여 1506년을 바티칸 미술관의 기원으로 삼았으며, 2006년에 500주년 기념행사를 하기도 했다.
거긴 그렇지만, 원산지에는 모조품만 쓸쓸하게 전시되어 있다.
돛을 이용하기도 하고 노를 저어 움직이기도 했던 갤리선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1571년 '레판토 해전'에 사용되었던 "La Capitana"호의 모형이다. 예루살렘에서 로도스로, 다시 크레타를 거쳐 몰타로 후퇴했던 성 요한 기사단도 이러한 형태의 선박을 이용했을 것이다.
성 요한 기사단은 십자군 원정과정에서 조직되었다. 1099년에 성 요한을 수호성인으로 하는 기사단이 결성되었고 1103년에 교황의 승인을 얻게 된다. 교황의 승인도 '성 요한 병원 기사단'이었을 정도로 초기에는 의료 활동을 주로 하였으나 점차 군사 조직화되었다. 1291년 이슬람 군에게 패전하면서 생존자들은 배를 타고 키프러스 섬으로 탈출하였다. 이곳에서 의료 사업에 치중하면서 이슬람 측의 선박을 해적질하는 활동을 하다가 비잔틴 제국의 로도스 섬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근거지로 삼게 된다. 이때 '로도스 기사단'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북쪽에 위치한 코스 섬과 레고스 섬도 병합하면서 세력 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1453년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의 대군을 맞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역병이 오스만 군을 물러나게 했다. 이틈을 이용하여 기사단은 요새를 보강하고 강화하여 로도스 성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었다. 그러나 1522년 슐레이만 대제가 이끌고 온 대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항복하게 된다. 7,000명이 100,000명의 공격을 6개월이나 버텨낸 것이 대단했다. 슐레이만 대제는 생존자의 탈출을 보장하는 댓가로 항복을 허용하였고, 생존자들은 크레타로 이동하였다가 시칠리아를 거쳐 1530년 몰타에 정착하게 된다. '몰타 기사단'이 된 것이었다.
'기사의 거리'를 걷는다. 중세의 도시이다. 당시의 도로 포장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대단하다. 수백년이 지났지만 그대로 사용이 가능하다. 물빠짐을 위해 도로 가운데를 따라 배수로를 만들었다.
건물 옥상의 빗물을 배출시키는 시설.
번화가인 '소크라테스 거리'의 풍경.
중심지인 '히포크라테스 광장'.
에브레온 마르티론 광장.
여러 그루의 벤자민이 이러한 어마어마한 모습을 만들고 있다. 그늘이 좋다.
로도스 섬의 이름은 '장미'에서 온 것이라 한다. 로도스 섬 지도가 그려진 장화 모양의 잔에 담긴 맥주는 참 맛있었다.^^;
식당 아저씨가 '로컬 비어'라고 추천한 것이다. 그런데 두 잔에 19유로를 내놓으라더라. 지도가 그려진 맥주잔을 몰래 가져와버릴 것을....ㅎㅎ
로도스에서의 숙소. 참 멋없게 생겼다.ㅎ
저녁 식사 후에 바닷가로 나간다.
에게 해 속으로.......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내일은 일정을 9시 반에 시작한다고 한다.
바다에서 좀 더 놀아도 되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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