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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4일. 히바로 간다. 

과거 호라즘 지역의 일부였고, 그 역사의 일부였고 흔적이 남아 있는 곳들 중 하나이다.

 

 

호라즘에 대해 미리 알차게 공부해보자.

https://en.wikipedia.org/wiki/Khwarezm

 

복습하자.

https://namu.wiki/w/%ED%98%B8%EB%9D%BC%EC%A6%98%20%EC%99%95%EC%A1%B0

 

페르시아어 발음이 어려워 여러가지로 표기되고 있다. 보통 화레즘 Khwarezm이라고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호라즘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호라즘 지역이라고 하면 아래 지도의 지역을 가리킨다.

위에 링크한 나무 위키의 자료 내용에 보면, 호라즘은 아무다리야 강 하류의 비옥한 저지대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북으로는 아랄해, 동으로는 키질쿰 사막, 서로는 우스튜르트 고원, 남으로는 카라쿰 사막과 접한다. 트란스옥시아나의 일부로 간주되며, 현대 국경으로 보면 투르크메니스탄 북부, 우즈베키스탄 동북부에 해당한다. 트란스옥시아나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고대부터 여러 이란계 종족들이 살아왔고, 페르시아 지역의 제국들에 직간접적으로 복속된 페르시아 문화권으로 발전했다. 아랍 이슬람 세력의 대정복 이후에도 호라즘은 시리아와 이라크의 아랍 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반독립적인 세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호라즘 지역에서 시작하여 가장 강성했을 때 호라즘 제국의 영역은 이만큼이나 되었었다.

이때가 최성기이다. 이런 거대한 제국을 이루자 마자 징기스칸이 아는 척을 했고, 박살났다. 호라즘의 주요 거점 중, 이번 여행에서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를 방문할 것이다.

 

쥐펙 졸리 호텔. 아담하다. 좋다. 이런 좋은 곳을 7시58분에 떠났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베흐조드 아저씨에 의하면 1년에 한두번 정도라고 한다. 자기가 오는 것이. 관광 가이드를 하는 자신이 그정도로 찾는 경우가 없는 외진 지역이라는 것이겠지. 그런데 올 때마다 다르단다.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단다.

히바를 향해 달린다. 약 200킬로미터. 11시 정도 도착 예정.

가자!

키질쿰 사막 언저리의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아무 다리야 강 유역의 충적지를 가로지른다. 그리고 카라쿰 사막 언저리에 위치한 히바로 접어들었다. 카라쿰 사막은 투르크메니스탄이다. 세 아이의 아버지 베흐조드도 한번 밖에 가보질 못했다고 한다. 관광 가이드인데도 입국 비자가 나오질 않는단다. 한국 관광팀에 묻어서 신청하여 겨우 한번 입국해 보았다고 했다. 좋단다. 꼭 가보란다. 상당히 폐쇄적인 국가이지만 그만큼 볼만한 유적들이 많이 잘 남아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편의 시설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 것인가는 외국을 나가보면 바로 절실하게 느낀다. 이 동네도 도로변에 편의 시설이 아무 것도 없다. 그거 꼭 필요한 그것도 없다.

그래서 길가의 농가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티코가 주차된 그 농가.

 

다른 분들은 공식적 화장실을 양해를 받고 이용했고, 나는 사진 속의 흙으로 만든 작은 건물을 이용했다. 우어~ 아우~ 어후~

 

남의 집 화장실을 이용했다고 화를 내던 잠자리와 당나귀.

 

농가 앞을 지나던 당나귀 수레와 자전거 아저씨.

 

우즈베키스탄이 구소련에서 독립한 것이 1991년이다. 작년에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이 2대! 그럼 그동안?

1대 대통령이 주구장창 버텼다. 임기가 끝나 대통령이 바뀐 것이 아니라 노환으로 돌아가셔서 "어쩔 수 없이" 대통령이 바뀌었다. 현 정권에서는 우즈벡의 개발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농촌 지역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비닐하우스 보급이란다. 신청하면 은행 대출 작업까지 대신하여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주고 있다고 한다. 채소를 생산하여 대도시와 러시아로 출하를 하고 있다고 한다. 농촌 근대화의 시작은 시설 농업이고, 그 시설 설치에 들어간 자본을 견뎌낸다면 성공하는 것이겠지.

개인적인 경험으로는...아 내 경험이 아니구나. 우리 부모님은 실패하셨다. 농협 빚을 견뎌내지 못하시고 장렬히.....농목업을 정리하셨었다. 다 날아갔다. ㅎㅎㅎ

우리 집처럼 망하지 않고 우즈벡 농가는 성공하기를~!

버스에서는 고선지루트 2편 상영 실패했다. 에러. EBS에서 방영했던 '실크로드 위의 푸른 이슬람'을 시청하면서 달렸다.

 

아무 다리야 강을 건넌다. 폰툰 브릿지.

 

폰툰 다리가 카라칼팍스탄과 우즈벡의 호레즘 주의 경계가 되겠다.

호레즘의 주요 중심지였던 우르겐치를 지나 히바로 접어들었다. 

우르겐치를 지난 시각이 10시 58분. 국제 공항이 있는 곳이다. 대우의 옷공장도 있다. 도시 이름은 석회로 그림 그리는 도시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찬칼라 부분 확대.

 
히바로 오는 도중에 버스에서 베흐조드 아저씨가 탄식을 한다. 우즈벡에 알콜이 너무 퍼져 있다고 원래 이슬람에서는 알콜을 금지하지만 구소련의 지배를 받는 과정에서 보드카가 너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너무 조으아~
 
히바~
 
11시 30분. 예상보다 30분 늦었다. 히바의 이찬 칼라 성이다. 노아의 비둘기. 그 비둘기의 울음소리가 헤와크. 그 울음소리를 따서 이곳의 지명이 붙었다고 베흐조드 아저씨는 설명했다. 헤와크가 어떻게 히바가 되었지?

히바의 이찬 칼라. 유네스코를 통해 보전하고자 한다.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일관성 있으며 세계적으로 잘 보존된 도시의 유적이며 히바(Khiva)의 도심에 해당하는 이찬 칼라는 호라즘(Khorezm)의 잃어버린 문명을 훌륭하게 증언해 주고 있다. 주마 모스크와 같은 이찬 칼라의 몇몇 기념물은 주목할 만한 건축물이며, 크기는 웅장하지만 디자인은 단순한 마드라사의 경우는 중앙아시아 특유의 이슬람 건축에 대한 훌륭한 본보기이다. 히바의 가옥 건축은 그 설계와 건축 방식 때문에 이찬 칼라의 흥미로운 요소들 중 하나로 꼽힌다.
옛날 옥수스(Oxus) 강이었던 아무다리야(Amu Darya) 강의 서쪽에 있는 히바 오아시스는 대상들이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사막을 건너기 전에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다. 4세기에 히바는 이란인들이 세운 호라즘(그리스어로 ‘코레스미아(Choresmia)’) 왕국의 중심지였다. 이 왕국의 번영은 이 지역의 ‘검은 모래(black sands)’를 비옥한 목초지와 정원, 과수원으로 바꿀 수 있는 수압 기술과 관련돼 있었다.
712년 처음 아랍 인이 이 도시를 정복했으며, 그다음에는 1221년 몽골인들이 이곳을 차지했다. 1379년에는 몽골의 지배를 받다가 티무르의 수중에 넘어갔고, 1512년에 우즈베크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새로운 나라의 수도가 되었으며, 1643년부터는 한국(khanate)의 수도가 되었다. 19세기 동안 독립을 누렸으나 1873년에 러시아의 보호국이 되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이 도시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즉, 이전의 요새화된 외부 도시인 디샨칼라(Dichan Kala)와 10m 높이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심지인 이찬 칼라로 나뉜다. 비록 1788년~1789년에 대대적으로 재건되기는 했지만, 주마 모스크를 제외하고 17세기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의 공공건물들은 동서 축을 중심으로 하여 그 둘레에 무리지어 있는데, 그 한쪽 끝 옆으로 히바 군주들의 웅장한 집들이 이어져 있다. 북서쪽에는 1686년~1688년에 아랑 칸(Arang-Khan)에 의해 건설된 ‘고대 요새’ 쿠냐아르크(Kunya Ark)가 있다. 처음 지어졌을 때 쿠냐아르크는 가공할 만한 사각형 보루였지만, 19세기 초 알라울리 칸에 의해서 호화로운 궁전으로 바뀌었다.
1830년~1838년에 건설된 북동쪽의 타슈하울리 궁전(Tash-Khauli Palace) 역시 알라울리 칸을 위한 것이었다. 그 외의 특별한 기념물들로는 파흘라반 마흐무트(Pahlavan Mahmud, 1247~1325)의 무덤과, 14세기에 지어졌을 당시의 배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세이드 알우딘(Sayid All-Uddin)의 무덤을 들 수 있다.

이찬 칼라의 많은 기념물이 비록 화려하지만, 개개의 기념물들보다는 더할 나위 없는 도시 구성과 19, 20세기에 지어진 주요 건축물들이 과거의 건축물과 함께 뛰어난 조화를 이루는 것에서 그 우수성이 유래한다. 예를 들어 주마 모스크와 파흐라반 마흐무드 무덤의 남동쪽에는 히바에서 가장 높은 45m의 우아한 미나레트(minaret, 첨탑)가 곁들여진 이슬람호자(Islam-Khodja)의 마드라사(1908~1910)가 자리 잡고 있는 한편, 쿠냐아르크의 남쪽에는 칼타 미노르(Kalta Minor)와 무하마드아민칸(Muhammad-Amin-Khan)의 마드라사가 발견된다. 1835년 이 도시 내부의 동쪽 문 근처의 처리 곤란한 공간에 지어진 알라울리의 마드라사는 고대 도시에 조화롭게 융합된 유명한 예로 꼽힌다.

 

입 주변 껍데기가 말이 아니다.

 

얼굴 시커먼 셀피를 만들고 있었는데, 다른 분의 카메라에 잡혔다.

 

 

이찬 칼라에는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여럿 있다. 서문 옆에 이런 게시판이 있더라.

 

그 옆에는 이런 동상이 있더라.

시대를 앞서간 사람. 시대를 이끈 사람. Al Khwariszmi의 동상이다. 우즈벡 현지 가이드는 계속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이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는데, 대충 눈치 까면서 보니 알고리즘이 아니라 알쥐브라이다. 무함마드 이븐 무소 알 콰리스미.

 

두 유 노우 알쥐브라? 오아 알 콰리즈미?

그래서 나는 수학을 포기했고, 수학을 포기하니 이과를 포기했다. 이과를 가고 싶었는데. 요즘도 가끔 생각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나의 이과 인생을. 수학이 안되어서....ㅠ.ㅠ

나와 조금 다른 길을 간 사람. 알 콰리즈미.. 조금 다른가?

https://en.wikipedia.org/wiki/Muhammad_ibn_Musa_al-Khwarizmi

 

알쥐브라가 된 알콰리즈미 앞에서 폼을 잡아 본다. 꽝이구나.

 

이찬 칼라를 서문을 통해 입장하려는데 추가 요금을 내라고 하더라. 낸다. 죽인다. 사진 값이다. 이거...죽인다. 사진 값이라니. 이런 것 좀 국내 도입하자. ㅎㅎㅎㅎㅎㅎㅎㅎ

얼마였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메모 안했다. 이런!

2 달러 정도 였던 것으로 대충....

 

서문으로 입장하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Orient Star Khiva.  마드라사로서 이슬람의 고등교육 기관이었지만 지금은 호텔로 이용되고 있다. Kalta Minor Minaret이 옆에 있다.

 

과거에는 고등 교육 기관이었지만 지금은 호텔로 이용되고 있는 마드라사. 상당히 많은 마드라사들이 호텔로 임대 이용되고 있는 우즈벡의 현실이다.

 

기념품. 이런 사진을 찍을 때 흔히 사용되는 기법, out of focus. 

 

퍼미션 포 포또 비용을 지불했으니까 마음대로 촬영해도 된다....는 아니고 핸드폰을 이용한 이런 셀피는 비용을 따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시커먼 덩치 좀 있는 카메라의 경우에만 비용을 내라고 하는 것이다.

 

아라베스크. 결과는 기가 막히게 아름답지만 만든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무늬가 이어지는 타일에 구별하기 위한 숫자가 표기되어 있단다. 그렇게 그렇게 공사를 하였던 것이었구나. 그래도 고역이었을 것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건물의 지붕이 평평하면 일단 강수량이 적은 지역이다. 그렇다. 맞다!

 

Kunya-Ark 모스크이다. Citadel from 1686이라고 소개된다. 오래되었다. 나보다...ㅎㅎ

 

이스람 후자 미나르를 올라가면서 구멍 속에서 셀피. 라고 알고 있었는데  Ark Kunya인 것일까?

 

받아들인다. 햇볕은 거부하지 않는다. 썬블럭은 가방에 그냥 모셔둔다. 오시오, 햇님!

 

Mirza Boshi Hostel이라고 위치 검색이 된다. 거기서 점심 식사를 한 것 같다. 이찬 칼라 성 내부이다. 점심 식사를 하고 숙소인 아시아 히바 호텔에 가서 좀 쉬었다. 뭘 했다고 쉬는지는 모르겠지만...ㅎ

 

숙소가 이찬 칼라 코 앞이다. 아시아 히바 호텔. 1시에 도착했다. 뜨거운 동네다. 어차피 얼굴 껍데기가 완전히 망가진 나는 막 나데고 싶지만 고운 얼굴을 보전하고 계신 다른 멤버들 때문에 까운 햇볕은 피하기로 했다. 4시까지 쉬고 햇님의 기운이 좀 약해진 다음에 보기로 한다.

 

쉬다가 나왔다. 오후 일정 시작이다. 4시에 나선다.

이찬 칼라 성. 근사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흙 덩어리이다. 사막에서 '성'이라고 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무엇이 있었을까? 그것은 흙 밖에 없었으리라. 그래서 도시의 성이지만 흙으로 만든 성이다. 왜 방어를 위한 성을 흙으로 만들었을까!

 

숙소인 아시아 히바 호텔에서 쉬다가 오후 일정을 나선다. 이찬 칼라의 남문으로 들어간다.

 

Juma Mosque. 나무 기둥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돔형의 지붕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215개의 나무 기둥으로 받쳐진 하나의 넓은 공간으로 되어 있다. 기둥들의 오와 열이 참 잘 맞는다. 

http://www.advantour.com/uzbekistan/khiva/jumamosque.htm

 

나무 기둥들이 인상적이었다. 몇 개를 비행기에 싣고 오고 싶었다. 하지만...타슈켄트까지의 운송이 어려울 것 같다. 바로 포기했다. 이렇게 전통적인 문양으로 제작된 기둥을 팔기도 하던데........ 다음에 사자!

옆의 계단은 민베르 Minber라고 한다. 기도를 마친 다음에 이맘이 설교를 하는 장소이다. 제일 위에 올라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겸손의 의미하고 한 칸 아래에 서서 설교를 한다고 한다. 제일 윗 자리는 누구 자리? 예언자 무함마드의 자리.

 

얼굴 껍데기 색이 ㅎㅎㅎㅎㅎ

 

가옥의 건축 재료는 흙이다. 그것 밖에 없겠지. 지붕의 높이에 구멍이 뚫려 있다. 가끔 내리는 빗물을 배출시키는 용도이리라.

 

옛날에 사용하던 우물이라고 하여 물을 퍼올려보는 여행객과 베흐조드 아저씨.

물에 염분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식수로는 사용하지 아니하고 세탁 등의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주사위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할아버지들. 나루다. 러시아에서 들어온 게임이라고 한다.

 

베흐조드 아저씨가 뽐뿌질을 하고 있다. 물 나온다.

 

Juma Mosque 옆에는 Jummi Minaret이 있다. 입장료가 있다. 따라가 보았다.

이런 곳을 올라 갈 때마다 후회한다. 식식거리면서. 이런 곳에 왔으니 그러하는 것이겠지.ㅎㅎ

 

올라왔더니....먼저 왔던 한글을 사용하는 민족이 있다. 아...영어도 사용한다. 두 남자로부터 하트를 받고 있는 J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올라왔다는 인증 및 기념 샷!

 

 

아닌 척 하면서 이찬 칼라 성내에서 우리들 시야에 계속 머물던 아가씨. 가는 곳마다 뜨게질을 하고 있었다. 관심을 보이면서 다가가면 바로 기념품 판매 모드로 돌변한다.^^

 

Allakuli Khan Caravanserai. 과거에는 카라반들이 이용하던 시설이었지만 지금은 관광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가로 변해버렸다. 그 앞의 노변에도 기념품 상가가 있다. 지나는데 먼저 한국말로 인사하던 아저씨. 한국에 7년 있었단다. 충남대학교에 3년 있었고, 4년을 이 도시 저 도시 돌아다니면서 일을 했다고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우즈벡에 가게를 둘 열었다고 자랑한다. 너무 좋아서 한국에 또 돈 벌러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이미 비자 신청한 상태~

 

저녁 타임. 왕의 별장이었던 더자벅에서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다.

 

왕의 별장답다. 

 

풍성하다. 좋다.

 

왕의 별장답다. 예능인들의 쇼도 보여준다. 좋다.

 

왕의 별장답다. 알콜도 있다. 좋다.

 

술 잔을 높이 드을어어라~거언배~

 

8시반에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간다.

 

왕의 별장을 떠나 시민의 숙소로 왔다. 아시아-히바 호텔.

숙소에 와서 일찍 잔다.

와...

이건 아니다.

매일 이렇게 일찍 자려고 이렇게 먼 곳으로 온 것은 아닌데...

이건 아니다.........ㅎㅎㅎ

그래도 뭐...군소리 안하고 일찍 잤다. 일찍 자니 일찍 일어난다. 내가 쫌 싫어하는 것이 일찍 일어나는 것인데...ㅠ.ㅠ

내일은 무려 6시에 웨이크업이란다. 너무 늦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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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랄 해, 아랄 해다. 아랄 해를 가보는 날이다. 가심이 설레서 4시반에 일어나야 하는데, 무려 10분이나 일찍 일어났다.

 

5시. 호텔 로비에 내려가니 바에서 아주 간단한 아침이 준비되어 있다. 빵 한 조각과 커피. 간단하게 먹었다.

 

5시20분에 공항을 향하여 출발한다. 시티 팔레스 호텔, 기다려라. 다시 온다!

 

버스 안에서 껍데기 상태를 확인한다. 껍질 일부가 탈피하려 한다. 제길~

 

공항 가는데 햇님이 마중 나온다.^^

불덩어리가 터지는 것만 같다.ㅠ.ㅠ

 

5시35분에 도착. 아담한 공항. 국내선.

그래도 보안 검사는 까다롭다. 우즈베키스탄이 대체로 그렇다. IS 때문이라고 현지 가이드 아저씨가 그랬다. 여권 검사와 짐의 보안 검색을 거친 후에 입장을 할 수 있다.

 

짜잔~

 

공항 건물 어딘가에서 찍은 사진인데....무슨 내용인지?

 

6시40분 보딩, 탑승 완료. 7시10분. 비행기가 움직인다.

 

타슈켄트에서 누쿠스까지 가는 비행기 탑승권. 작은 비행기. 창가 좌석이다.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에서 오쉬까지 비행하는 동안 사진찍었던 기억...이번에도?

IL-114-100이라는 모델 번호가 붙은 비행기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  이렇게 생긴 비행기다. 러시아 일류신에서 만든 비행기. 1990년 초도 비행, 1998년 우즈베키스탄 항공에서 최로로 여객기도 도입, 지금은 생산 중단.

한 줄에 좌석이 넷. 여유롭고 좋다. 좌석 크기도 우리나라 국적기보다 훨 크다. 좋다. 간격도 넓다. 작은 공항, 택싱도 금방 끝난다. 뜬다.

 

줸장! 날개가 왜 여기 있는 것이냐.... 저기로 가지!!!

 

비행기가 선회하면서 기울어질 때 틈새로 찍어보았다. 사막이다. 끄읏~

 

 

키질쿰 사막 되시겠다. Kyzyl Kum, '붉은 모래'라는 뜻을 갖는다고.

 

그렇게 사막을 비행기로 2시간 반 만에 휘익 날아서 지나갔다. 시속 420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누쿠스 공항에 9시32분에 랜딩. 하기하여 뜨거운 활주로 위를 걷는다. 활주로 걷기 오랜만이다. 머리 위에 이글거리는 햇님이 계신다.

여권 검사하고 바로 공항 밖으로 나간다. 짐은? 천천히 천천히 밖으로 뒤따라 나온다.

 

누쿠스 공항에서 바로 숙소로 향했다. Jipek Joli 호텔. 공항에서 금방이다.

바로 식당. 식사하고 나선다. 11시20분.

누쿠스 주변에 화학공장들이 많은데, 한국 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하다고 세 아이의 아버지 베흐조드 아저씨는 말한다.

이 지역은 우즈베키스탄에 속한 카라칼파크스탄 자치공화국이다. 국경에 해당하는 곳에서는 카라칼파크스탄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검문을 한다. 카라칼팍은 '검은 모자'를 뜻한다.

카라칼파크스탄 정부 홈페이지에서 카라칼파크스탄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자.

http://sovminrk.gov.uz/qr

 

 

달린다. 누쿠스에서 무이나크로. 인적이 드문 길이다.^^

예까지 뭐 보겠다고?

 

우즈베키스탄은 천연가스 생산이 많다고 한다. 도처에 보이는 것이 가스관이다. 그냥 아무렇게나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노란색 페이트가 칠해져 있다면 그것은 천연가스관이다.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소는 조심안한다. 잠시 조심스럽지 않은 소와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시간을 가졌다.

 

저 아래 어디에 유기물을 좀 남겼다.

 

점점 하얗게 변한 지표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소문으로 들었던 그것일까? 아랄 해였으나 크기가 줄어들면서 노출된 지표에 소금이 깔리게 되었다는?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도 미루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똑 바로 쭈욱쭈욱 자라던. 세 아이의 아버지인 베흐조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나라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미루나무를 심는 풍습을 갖고 있단다. 아이게 곧고 바르게 자라라는 소망을 담아, 그리고 키가 크게 자라니까 그만큼 오래 살라는 소망도 담고.

 

돌보는 이 없어도 염소 떼는 자기들끼리 잘 돌아다닌다.

 

 

12시25분 드디어 동네 표지판이 보였다. 소리쳤다. STOP! (쌤 브라운의 노래가 생각났다.) 

MUYNAQ. 그 아래에 적혀 있는 QALASI는 뭐지?

 

아무다리야 강의 하구에 해당하겠다. 무이나크. 주변에 물 구덩이가 남아 있기는 하다.

 

파미르 고원에서 시작하여 고산 지대에서 공급된 물을 갖고 키질쿰 사막을 겨우 건너 아랄 해로 흘러드는 아무 다리야 강. Amu는 '빠르다', Darya는 투르크어로 '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무 다리야 강은 원래 아랄 해로 흘러들어 커다란 호수를 형성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관개 면적이 늘어나면서 아랄 해로 흘러드는 유량이 급격히 감소했다.

 

이렇게 하류 지역의 물 부족이 심해진 것이다.

 

아랄 해 분지 일대의 물 자원 현황은 이러하다.

 

아랄 해로 흘러드는 유량이 급격히 감소하다 보니 아랄 해의 표면 면적은 점차 감소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1989년과 2014년의 인공위성 영상을 비교한 것이다. 엄청난 호수 면적의 축소 상태가 확인된다.

 

연도별로 아랄 해가 줄어드는 모습.

 

1853년의 아랄 해는 이렇게 생겼었단다.

Journal of the Royal Geographical Society에서 가져 온 자료이다.

 

갑자기 버스가 선다. 그러더니 사람을 태워도 되냐고 질문. 안될 것 없겠지.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들이다. 태워주고 시원한 생수도 한 병씩 주었다. 히치하이크하는 젊은이들. 몸은 완전 젊은이 인데, 얼굴은 나보다....더.......음...

 

무이나크는 유령 도시같다. 과거에는 아래 사진에 있는 것처럼 많은 물고기를 잡는 어항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 어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고 다른 기능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무이나크를 떠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지역은 우즈벡이지만 지역 주민은 카자흐 족이 많다고 한다.

최근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는 무이나크를 재생시키기 위한 정책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2시38분에 도착하였다.

무이나크 교외, 야외박물관. 배들의 무덤에 있는 조형물. 2017년에 만든 것이다. 새거다.

뒷 면.

 

아랄 해에 대한 간단한 역사, 지리적 정보를 제공해주는 게시물들.

 

 

과거 호수였던 곳. 배들이 버려져 있다. 

 

배들의 무덤으로 향하는 우리 답사대원 일행.

 

매우 고운 모래이다. 조개 껍질이 많이 발견된다.

 

무덤에 버려진 배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철분이 산화되는 속도가 매우 빠른 듯 하다.

 

얼굴에 안타까움이 묻어나지 않는가!

 

남기는 사진.

 

아랄 해의 버려진 배들이여, RIP.

 

아랄해의 축소는 과거로부터 어업과 아무 다리야 강 주변의 충적지에서 농업에 의존하여 생활하던 카라칼팍스탄 사람들에게 재앙이었다. 아래 링크한 기사에서는 카라칼팍스탄의 재앙과 호라즘의 쇠퇴에 대하여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다. 읽어볼 만 하다.

http://www.geocurrents.info/historical-geography/the-tragedy-of-karakalpakstan-and-the-fall-of-khwarezm

 

 

누쿠스에서 사마르칸트까지 이용했던 버스, YUTONG. 중국제 버스다. 중국과의 교역이 매우 활발하단다. 중국에서는 육로를 통해 물건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한국 등에서 수입할 때보다 가격 면에서 유리하단다.

 

아랄 해의 짠 물에 발을 퐁당~ 해보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너무 아쉽다.

HAQ JOL! 은 무슨 말인고?

 

누쿠스로 돌아간다. TV를 틀더라. 한국에서도 보지 않은 다큐 '고선지 루트'를 시청하면서 누쿠스를 향했다. 6시쯤 도착하였다.

누쿠스에도 마티스 택시가 많다.

 

쥐펙 졸리 호텔. 아담하고 깔끔하다.

 

또 일찍 잤다. 이게 아닌데...ㅠ.ㅠ

내일부터는 호레이즘 문화에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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