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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8일 토요일에 아라호바의 숙소에서 출발하여 델포이를 향했다. 박물관과 유적지를 방문한 후 동쪽으로 달려 아라호바 전망대를 지나 한적한 교외 식당에서 맛있는 수플레 요리로 점심 식사를 했다.

겨울철 스키장으로 유명한 작은 산골 마을 아라호바를 걸어서 이골목 저골목 다녀보다 모여서 버스 탑승. 델포이를 지나 칼람바카로 항했다. 어제 지나온 것까지 포함하면 델포이를 세번 방문한 것이 된다.ㅎㅎㅎ

 

델포이 쪽 골짜기. 골짜기 아랫쪽에 올리브 나무로 가득한 흐리사 평야가 펼쳐진다.  햇볕을 받는 골짜기의 북쪽 사면에도 올리브 나무가 가득하다.

 

길가에 흔하게 보이는 노란색 꽃이 아네몰리아 호텔 주변의 산지 경사면에 한껏 피어 있었다. 이 동네에서는 Sparto라고 부르고, 우리나라에서는 '암골담초'라고 하는 것 같았다.

 

9시 출발 예정이라 했다. 다들 일찍 나와 짐을 싣고는 8시 46분에 출발하였다. 넘 부지런하다. 늦는 사람이 있어 방에 전화하여 뭐하냐 하는 등의 안부를 묻는 감성이 없다.ㅎㅎ

델포이 유적지, 이동 경로.

 

9시 6분에 박물관 도착. 박물관 외부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바로 안으로 들어간다.

그냥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매표하여 표를 확인받으며 들어간다. QR 코드 리더기를 통하면 된다. 그런데 요금이 왜 0으로 되어 있지???

 

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아폴로 신전을 중심으로 한 유적지의 복원도이다. 머리카락 보인다~~

올림피아와 함께 고대 그리스 최대의 성지였던 델포이는 태양신 아폴론의 신전 유적이 있는 작은 도시이다.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170km 떨어진 포키스의 깊은 산속에 있다.

신화에 의하면 이 지역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딸 테미스가 지배하고  커다란 뱀의 모습을 한 파이톤이 지키는 성스런 땅이었다. 아폴론이 파이톤을 퇴치하고 델포이 땅과 예언의 힘을 차지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파르나소스 산이 세상에서 가장 높다고 믿었고, 델포이가 세계의 중심, 배꼽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폴론 신전에 Omphalos('배꼽'이라는 의미)라는 대리석 덩어리를 놓아두게 된 것이다. 원래는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가 토해냈던 '성스러운 돌'이 옴팔로스였다. 제우스와 아버지 크로노스와 어머니 레아와의 사이에 돌덩어리가 끼인 사정은 신화 참조...ㅎㅎ

 

아폴론 신전 아랫쪽에 '옴팔로스' 모형이 놓여 있다.

 

박물관의 주요 전시물 중의 하나인 여성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가 도리아식 주두 장식을 한 기둥 위에 서 있다.  낙소스의 스핑크스이다.

BC 560년 키클라데스 제도에 속한 낙소스 섬의 부유한  주민들이 델포이 성역의 아폴로 신전에 봉헌한 것이라 한다. 낙소스 섬은 디오니소스 신앙의 중심지였다.

 

카이아티드. 돌기둥으로 사용된 여인상이다. 시프노스 보고를 장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르고스 형제, 클레오비스와 비톤. '쿠로이'라고도 하는데, 소년들이라는 뜻이다. BC 590년 경 작품으로 근육질 체형을 표현했지만 인체 조각 수준이 낮고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악보라고 한다. 이 악보에 의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 현지 가이드와 현지인 가이드. 많은 나라에서 외국 관광객들이 단체로 입장할 때 '현지인' 가이드 동반을 필수적으로 하는 있는 경우가 많다. 고용 효과 만점이다. "법"이 그렇다고 하니 뭐라 할 방법이 없다.

 

아폴론 신전 북동쪽에서 발견된 옴팔로스. 파손된 부분을 살짝 복원하였다. 원래의 진품은 아니다. 헬레니즘 시기 혹은 로마 시기의 복제품으로 추정된다. 표면의 장식은 성스러운 물건을 묶은 밧줄을 표현한 것이다.

 

BC 3세기 경에 세작된 미소 소녀상. '웃는 소녀상'. Marble statue of a smiling girl. 몸체와 머리 부분을 따로 제작하여 접합한 것이다.

 

기간토마키아를 묘사한 부조. 왼쪽이 올림푸스 팀, 오른쪽은 자이언트 팀.

 

안티노오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사랑을 받았던 청년. 

나일강에 익사한 후 황제의 명령에 의해 영웅이 되고 제국 동부 지역에서 반신으로 숭배되었다. BC 5~4세기의 전통을 따른 조각이지만 원형의 내적 활력은 부족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폴론 신전을 중심으로 한 유적지의 복원 모형이다. 박물관 전시물 중 하나.

 

상상도로 그리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독점 상점들이 입점한 스토아를 지나 성소에 입장하면 보물창고가 있다. 신전에서 신탁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추첨으로 순서를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러한 순서를 무시할 수 있는 위력이 있었으니 바로 金力이라... 많은 봉헌물을 바친 도시국가의 시민에게 우선권이 주어졌다. 그러하니 보물창고는 항상 가득찰 수 밖에...

델포이 유적을 감싸고 있는 절벽을 '파이드리아데스'라고 하는데, "빛나는 절벽"이라는 뜻이다. 절벽 사이에 자리잡은 아폴론 신전은 남쪽의 햇볕을 가장 잘 받는 곳이다. 유적지의 가장 높은 곳에는 경기장이 있는데, 4년마다 이곳에서 피티안 제전이 열렸고 운동경기 외에도 음악, 시, 연극 등의 공연이 이루어지는 축제였다고 한다. 올림픽 경기의 승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알려진 월계관은 이 피티안 경기의 우승자에게 주어지던 것이었다.

 

유적지 동쪽의 '플레부코스'(불타는 바위) 아래 위치한 김나지움이 보인다. 김나지움의 오른쪽으로 '아테나 프로나이아 신전'이 살짝쿵 보이고 있다. 이번엔 현지 가이드가 이곳은 소개해주지 않았다. 

도로변에 작은 주차장도 있어서 멈출 수 있었는데... 쏠로스가 세 개가 있고 그 세곳의 쏠로스를 모두 보게 된다며 일정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곳 아테나 프로나이아 신전에도 쏠로스가 있다. 사진에서도 쏠로스의 남아 있는 세 개의 기둥이 보인다. 이곳을 왜 뺐을까 궁금하다. 다음엔 소개해줄까나?

 

로만 아고라.

 

아르기아 인의 봉헌물.

 

타란티니안 봉헌물.

 

시프노스 인의 보물창고 유적.

 

이렇게 생겼었을 것이라고 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카이아티드로 입구가 장식되었었다.

 

아테네의 보물창고. 복원한 건물이기에 멀쩡해 보인다.

기단에 새겨진 글을 살펴보았더니 BC 478년 페르시아와의 해전에서 승리한 아테네 인들이 전리품을 보관하기 위해 세웠다고 되어 있다.

 

아테네 스토아.

 

 

아폴론 신전의 유적. 

아폴론 신전은 BC 4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BC 6세기에 지어졌던 원래의 신전 유적 바로 위에 세워졌다. 화재를 겪으며 붕괴된 신전을 재건했는데 지진으로 다시 붕괴되었다.

신전은 도리아 양식으로 건축되어 전실, 후실, 신실 3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신전 안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높이 19.5m, 총 120개의 원기둥이 두 줄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지진으로 크게 파괴되어 현재는 6개의 기둥만이 남아있는 정도이다. 이곳에서 유명한 델포이 신탁이 이루어졌다.

델포이가 유명한 진짜 이유는 이 신탁의 ‘영험함’ 때문이다. 이곳 아폴론 신전의 신탁이 다른 어떤 신탁보다 영험했기 때문에 그리스는 물론 주변국가에서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신탁을 받는 과정은 당연하게도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먼저 성역에 들어가기 전, 카스텔리아 샘에서 몸을 깨끗하게 씻어야만 했다. 그다음 일종의 세금인 패리노스를 지불하고 양 같은 희생 제물을 바친 뒤 신탁을 통한 예언을 받고 싶은 사항을 석판 따위에 적어서 신관에게 건넸다. 아폴론 신의 여사제인 피티아는 신실 안에서 신탁의 결과를 말하고 신실 밖의 신관이 이를 받아 적은 후 의뢰자에게 건넸다. 전성기의 델포이 신탁은 군대의 파견 등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델포이 성역에는 세계 각국에서 헌납한 건축물과 각종 기념비들이 즐비했다. 

 

키오스의 제단.

BC 5세기에 Chiots 사람들이 만든 제단으로 아폴론 신전의 동쪽 전면에 위치한다. 제단의 기저에 그리스의 다른 국가들보다 우선적으로 신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인 promanteia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제단 옆에 부러진 청동 기둥이 서있다. 세마리의 뱀 머리 위에 '삼발이 솥'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파손되어 반토막난 기둥 아랫 부분만 남아 있다. 그런데 이것도  가짜라고 한다.

진짜는 투르크 제국에서 가져가버렸다고 한다. 2008년 1월 이스탄불을 방문했을 때 본 기억이 난다. 성소피아 박물관 앞의 공원에 설치되어 있다. 

 

신전의 윗쪽에는 고대 원형 극장이 남아 있다. 재밌는 곳이다. 

원형 극장 앞쪽에서 팔을 벌리는 등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사진을 촬영하는 것을 관리자가 금지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찍어달라고 하여 해주었다가 잠시 곤혹을 겪었다. 쫓아와서는 그런 사진은 지우라고 요구하는 재밌는 곳이다. 왜?

 

델포이 신전은 약 300년의 전성기를 누리다가 지진으로 일부 성역이 파괴되어 BC 362년 마지막 신탁을 끝으로 전성기가 막을 내렸다. BC 191년에 로마에 정복당한 이후 수많은 유물이 약탈되고 파괴되었다. 게다가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델포이 신전은 종교적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는데, 동로마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폐쇄되어 버렸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며 매몰되어 잊혀졌다. 1892년 프랑스 고고학 팀이 델포이 유적지임을 밝혀내고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1시 59분. 도로 변을 따라 달리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였다. 울트라 마라톤이 진행 중이었다고 하더라.

 

12시 9분.  아라호바 마을이 잘 보이는 곳이다. 잠시 멈추어 인증을 해야 한다.

 

인증을 해본다. 드론아~

 

#아라호바 글자를 가운데 두고 인증을...... 아저씨!!! 쫌!!!

 

마라톤이라고 하는 것이 꼭 계속 힘들게 뛰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담소를 나누는 시간도 필요하다.

 

12시 19분. 식당 Aggelos taverna.

 

1시 10분. 점심 식사후 아라호바에서 자유시간을 즐긴다.

 

먼 옛날에 방영되었던 "태양의 후예"라는 작품에서 두 주인공이 키스를 나눈 곳이라는 아라호바의 작은 시계탑을 배경으로 남겨본다.

 

해당 드라마 배경이 되었던 시계탑이 하나 더 있다. 아기오스 게오르기오스 교회이다. 

 

교회 내부를 방문해보았다.

 

하늘이 심상치 않다. 우리나라에서 경험하는 황사와 유사하다. 

 

황사는 서쪽에서 오는데, 그리스는 남쪽에서 온다. 아프리카에서 온다. 사하라의 선물이다.^^

 

남쪽으로부터 능선을 타고 넘어오는 '황사' 비슷한 것이 뚜렷하게 보인다. 오메~~~

 

2시에 아라호바를 출발하여 칼람바카를 향한다.

 

흐리사 평야를 다시 만났다. 올리브 나무의 세상.

 

칼리드로모 산지를 넘으니 평야가 나타난다. '테르모필레'라는 작은 도시가 나타났다. 영화 '300'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곳이다. 페르시아 군과 스파르타의 결사대가 맞붙은 곳이었다. 페르시아 군을 완전히 격퇴하지는 못했지만 스파르타 군의 희생이 그리스 다른 도시국가들의 항전 의지에 불을 붙이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에는 해안에 인접하였었는데 빠른 속도로 퇴적 작용이 이루어져 해안선이 점차 후퇴하였다. 현재는 완전히 육지화되어 있으며, 온천으로 유명하다.

 

3시 40분.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간다. 음료수 자판기를 시험 작동해본 곳이다.

 

테살리아 평야 지대에 진입하였다. 너른 평야가 펼쳐져 있다.

 

5시 27분. 핀두스 산맥을 따라 깔린 구름대가 근사하다.

 

5시 38분. 숙소에 도착했다. 세상에나. 기가 막힌 위치이다. 배정받은 방에 짐을 던지자 마자 뛰쳐 나왔다.

 

드론이 날았다.

 

바위 위에 어떤 시설물이 보이는데, 이것이 메테오라의 수도원들 중 하나인 성 니콜라스 수도원이다.

메테오라 일대는 6천만 년 전 해저에서 형성된 퇴적층이 사암, 역암으로 구성된 퇴적암이 되었는데, 육지화 된 이후에 비바람에 깎이면서 독특한 바위산을 형성하였다. 테살리아 평야의 북서쪽에서 핀두소 산맥 부근의 계곡 한가운데 바위산들이 솟아있어 독특한 경관으로 눈에 띤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 위에 자리잡은 수도원은 거의 접근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이다.

14세기 중반에 처음으로 메테오라 수도원이 세워졌는데, 점차 숫자가 증가하였다. 200여 년이 지나자 마치 새둥지 같은 수도원이 20여 곳에 달하게 되었다. 20세기 들어서도 원시적인 밧줄이나 밧줄을 엮은 사다리를 이용해야만 힘겹게 수도원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이러한 지형은 온나라를 휩쓸고 다니며 방화와 약탈을 일삼던 도적이나 군인들의 침입을 막아주었을 뿐 아니라 종교와 정신적 수양의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게 해주었다. 16세기 이후 많은 수도원들이 버려지고 방치되기도 하였고, 최근에는 수도원이 관광명소가 되면서 이전과 같은 고적함과 명상적 평온함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수도원의 규율은 지금도 엄격하게 준수되고 있다. 관광객이 방문할 때 민소매 티셔츠나 짧은 바지, 치마를 입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바위산에는 구멍이 송송 뚫려 있다. 역암이 풍화되면서 형성된 '타포니' 지형이다. 이 구멍들이 수도사들의 은둔 기도처로 많이 이용되었다.

 

Meteora Hotel At Kastraki. 멋진 곳에 위치한 깔끔한 호텔이었다.

 

6시 40분. 저녁 식사를 하자. 메테오론 파노라마 식당. 50유로 짜리 와인을 맛보았다.

 

8시 13분. 버스에 탑승

8시 21분. 호텔 도착...

내일은 6시 기상, 7시 식사, 9시 출발.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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