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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를 말발굽 모양이라 하더라. 말발굽 밑에 붙이는 편자 모양인가... 그게 그거군.

(출처: 주크로아티아 대한민국 대사관, 2019 크로아티아 개황)

보통은 국가의 영토가 섬을 제외하면 한 덩어리로 구성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다른 나라의 영토 너머에 자국의 영토가 존재하기도 하는 것을 월경지라고 한다. 이런 월경지는 자국 내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크로아티아 지도의 남쪽 끄트머리를 보면 내륙국가처럼 보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영토의 아주 일부가 아드리아해와 접하고 있는 것이 구별된다. 그로 인해 두브로브니크 일대는 크로아티아의 다른 영토 부분과 분리되어 버렸다. 그래서 크로아티아 본토에서 두브로브니크를 가려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국경을 두번 통과해야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펠례샤츠 반도에서 교량이 연결되어 국경통과없이 육로로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7세기 무렵에 도시가 형성되면서 도시 국가인 라구사 공화국이 만들어졌다. 9세기부터 발칸과 이탈리아를 상대로 한 무역 중심지로 성장하였는데, 제4차 십자군 전쟁 뒤 베네치아의 지배 하에 있다가 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15~16세기에 무역의 전성기를 맞이 했다. 남들은 전쟁을 할 때 이들은 교역을 했다. 많은 나라들과 중개무역협정을 맺고 교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16세기 중엽에 대형선박을 180척 이상 소유하고 있었다니...

 

이런 깃발을 배에 달고 다니면서 교역을 했다고 한다. LIBERTAS가 '자유'라는 뜻이라네. 아드리아 해에서 베네치아와 경쟁을 하며 잘 나갔었는데 1667년 4월 6일에 대지진을 겪으면서 쇠퇴기로 접어든다. 당시 지진으로 5천 명 이상의 시민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국력이 약화되자 외부에 의존하고자 했고, 기댄 상대가 오스만 제국이었다. 호시탐탐 자신들을 노리고 달려드는 베네치아와 직접 국경을 맞대지 않기 위해 해당 지역의 땅덩어리를 조금 떼어 오스만 제국에 상납하고 보호를 요청한 것이다. 그 지역이 오늘날의 "네움 Neum"이었다. 헌데 오스만이 망하면서 그 땅을 보스니아가 차지하게 되었고 자신들이 멀리하고 했던 베네치아가 차지했던 지역은 자신들과 같은 크로아티아가 되면서 월경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네움 일대의 해안선은 12마일, 20km가 조금 안되는 정도이다. 크로아티아에서 국경선을 두번 통과하면서 신호등 두번 통과하면 될 정도로 가까운 거리이다. 사실상 별로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남의 나라를 지나다는 것이 불편했는지 펠예샤츠 반도를 육로로 통과하여 자국의 영토와 다리를 연결해버렸다.

 

2023년 6월 16일은 이러한 나라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니크를 방문하는 날이다.

빨리 두브로브니크를 가고 싶은 아줌마는 열지도 않은 식당에 나와 빨리 밥달라고 재촉하더라...

 

간단하고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 먹는다. 오늘도 국경을 넘는 날이다. 빵이 맛있더라...

 

몬테네그로의 헤르체그노비에 위치한 숙소를 출발하여 두 나라의 세관을 통과, 두브로브니크까지 가면 된다. 약 75km, 금방이다.

 

8시에 출발하여 코토르 만을 벗어난다. 아디오스~~

 

그냥 스스륵 통과한다. 몬테네그로 CRNA GORA 안녕~

 

크로아티아로 입국하는 버스 여행객들. 몬테네그로에서는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별로 신경 안쓴듯한 인상인데, 크로아티아는 신경 써준다. 그래서 오래 걸린다.ㅠ.ㅠ

 

하여튼 두브로브니크가 버스 창 밖으로 보이니 되었다. 에게~~ 코딱지 만하다.

 

두브로브니크 속으로 들어가 살펴보기 전에 조금 떨어져서 보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코토르에서는 뒷산의 성벽을 걸어 올라갔지만, 두브로브니크의 뒷산은 좀 높아서 승합차를 대여하여 탑승하도록 예약했다. 그 승합차들을 만나서 약속된 뽀인트로 달려갔다.

약속된 뽀인트는 두브로브니크를 지나 두브로브니크 신항과 신시가지를 지나 새로 만든 다리를 건너서 위치한 주차 공간이었다. 두브로브니크는 길이 좁아 버스 주차 공간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하기로 했다. 아마도...

다리 이름은 Dr. Franjo Summer Time Tuđman Bridge, 크로아티아 자체 기술로 만든 것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한 518m의 다리이다. 자부심 덩어리라서 크로아티아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다리에 붙여 놓았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어야 할 승합차 팀이 없다. 오지도 않는다. 왜 안오는지 걱정이 태산인 여행객...

 

약속 장소를 승합차 팀이 바꾸었단다. 바꾸고는 연락을 할 때까지 연락을 하지 않는 매너. 두브로브니크로 달려 갔다. 서둘러 하차하여 길가에 기다리던 승합차들에 막 분승한다. 그렇게 탑승하고 좁은 길을 무섭게 달려 두브로브니크의 뒷산인 스르지 산을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아래 지도에 표시된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길도 있다. 지그재그 9번이면 된다. 트라이~~

 

산 정상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케이블카로도 올라갈 수 있다. 카페도 있고, 상점도 있고, 십자가도 있고...

 

최고급 대리석인 브라치 섬의 대리석으로 만든 커다란 십자가이다. 1991년 내전 때 부서진 것을 다시 기증받아 만든 것이라 하더라.

 

지나가던 사람들이 손잡았네......

 

지나가다 손잡은 기념선물로 버기카 한 대~~

 

우리팀이 이용했던 승합차. 번호판 좋다. 비가 내렸다.

 

하산하여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즉 성벽 내부 투어를 시작했다. 세 개의 출입구가 있다. 필레, 부자, 플로체 게이트. 부자 게이트로 입장했다. 

 

두브로브니크는 바닷가의 평지에 만들어진 성이 아니다.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스르지 산의 경사를 따라 내려오다가 다시 바다 방향은 고도가 높아진다. 서쪽의 필레 게이트에서 입장하여 동쪽으로 이어지는 두브로브니크의 번화가인 스트라둔(플라차) 거리가 가장 저지대를 이루고 남쪽과 북쪽으로 고도가 높아진다. 그래서 그 방향으로 이동할 때는 상당히 경사가 급한 계단을 만나게 된다.(사진은 내일 로브리예낙 요새에 올라가서 찍은 것이다. 멀티버스다...)

 

북쪽에서 부자 Buza 게이트를 통해 두브로브니크로 스며드는 일행들.

 

급경사의 계단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조심하면서 내려가야 한다.

 

조심하지 않으면 왼쪽에 있는 드래곤의 굴 속으로 빠질 수 있다. 아... 왕좌의 게임 관련 기념품들 좀 사오는 것인데...ㅠ.ㅠ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을 모신 성 블라호 성당을 보면서 지나간다.

 

라구사 공화국 시절의 유명한 바로크 시인인 이반 군둘리치 동상도 그냥 지나간다.

 

유명한 예수회 계단도 그냥 부지런히 걸어서 올라간다.

 

그냥 쭈욱 달려온 이유는 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감자를 밑에 깔고 구운 오징어를 올렸다. 좀 짜지만 맛있다.

 

두브로브니크를 한 바퀴 돌아가는 1,940m의 성벽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성 마가렛 성채 바로 아래에 위치한 식당이다.

 

뱃속에 오징어가 좀 들어갔으니 힘차게 움직여본다.

성모 마리아 승천 대성당이다.

12~14세기에 만들어졌던 이전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이 1667년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후 18세기초에 다시 만든 것이다. 3차 십자군 원정으로부터 돌아가는 길에 로크룸 섬에 조난 되었다가 1192년 목숨을 구한 영국의 사자심왕 리차드가 봉헌예물로 기부한 돈으로 지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승천하는 성화가 모셔져 있다.

 

대성당 맞은편 위치한 멋진 렉터 궁전이다. 고딕-르네상스 양식인데, 수차례의 리모델링을 거친 결과물이다.

두브로브니크 공화국의 최고위 자리에는 세 개의 위원회와 렉터라 불리는 영주가 자리했다. 렉터는 한 달 간만 재임할 수 있었고 위원회의 모든 위원들이 같은 권리를 갖고 있었다. 한달 동안만 통치권을 가진 렉터는 공적인 목적이 아니면 궁전을 벗어날 수 없었으며, 궁전에서 생활할 때는 가족과 헤어져 혼자 입대.... 아니 입궁해야 했다고 한다. 딴 생각하지 말고 일에 쳐죽으.... 아니 일만 하라고.

 

렉터 궁전에는 동상이 단 하나만 있다. 로푸드 출신의 부유한 뱃사람이이었던 미호 쁘라짜트가 많은 재물을 기부하였기에 그의 청동 동상을 세워 기리고 있다.

 

렉터 궁전의 아름다운 아트리움.

 

두브로브니크는 해상 무역을 통해 성장한 도시국가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업무도 무역이었으므로 렉터궁전은 항구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올드 포트의 모습. 맞은 편의 바닷가 보이는 주황색 지붕의 건물들이 그 유명한 전염병 격리 병원이다. 40일간 격리를 하면서 무사한지 확인했기에 Quarantine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성 블라호 성당 앞의 공간이 루쟈 광장이다. 그 광장의 한 복판에 예쁜 아저씨 오를란도(롤랑)가 칼을 들고 서 있다가 철망에 갇혀 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함부로 칼을 휘둘렀을까?

 

사식이라도 넣어줄까 하고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오를란도 조각상의 상태가 안좋다. 지진의 후유증일까, 내전 때 날아와 터진 폭탄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여기저기 금이 가 있다.

북유럽 도시들에서 나타나는 중세기사 롤랑이 어찌 고딕양식의 기둥과 함께 이곳에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설따라.... 왔다. 조각상이 설치된 위치가 자주 이동되었고, 1825년 바람에 쓰러져 50년 이상 창고에 숨어 있기도 했다. 그의 오른손 팔꿈치 길이가 길이 측정의 기준으로 이용되었다 한다. 소위 '두브로브니크의 팔꿈치'라고 하면 51.2cm에 해당한다.

 

시청 건물의 1층은 식당으로 이용한다.

 

그리고 어.... 스폰자 궁전은 수리중이다.

 

이렇게 생긴 건물이다. 멋진 건물이다. 두브로브니크의 가장 중요한 장인이었던 파스코예 밀리쳬비치가 설계한 것이다.

(출처: 문화예술의 도시 두브로브니크, 60쪽)

 

수리 중이라도 내부 관람을 일부 가능했다.

고딕-르네상스 양식의 짬뽕으로 구성된 아름다운 건물이다. 공화국 시절에는 세관 사무실과 창고로 이용되었었다. 세관 이외에 정부의 조폐국, 은행, 재무국과 금고, 무기고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두브로브니크의 가장 큰 번화가인 플자짜 거리. 비가 온다. 6월 지중해에 비라니.... 비가 내린다니....

 

어...

 

필레 Pile 게이트 앞에는 오노프리예 대분수가 설치되어 있다. 위에 개가 한마리 올라가서 지키고 있다.

분수 위에 개, 개 위에 비둘기.

1438년 나폴리의 건축가였던 오느프리오 델라 까바가 만들었다. 12km 떨어진 두브로브니크 강에 있는 수원지에서 도시 안으로 물을 끌어와 만든 것이다. 얼굴 모형 부조품이 16개 있고, 그 입에서 물이 흘러나온다. 나오다 안나오다 한다.

 

필레 게이트 내부 왼쪽에 위치한 프란시스코 수도원이다. 14세기 초에 만들어진 수도원인데 문은 15세기에 만들어졌다.

 

건물 내부는 열주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둥의 윗쪽에는 서로 다른 다양한 부조물로 장식되어 있다.

 

수도원은 1317년부터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약국으로 유명하다. 그 비법 문서.

 

한 페이지를 몰래 펼쳐 필사해왔다.

 

프란시스코 수도원까지 공동의 시간이었고, 이제 개별적인 자유 시간이다. 왕좌의 게임 속으로 달려왔다.

 

입맛만 다시고 돌아선다. 기념품 구매권이 없다. 내게 자유를!! LIBERTAS!!!

 

"세상의 그 어떤 보물도 자유와는 바꿀 수 없다."

 

내전 당시 주로 세르비아 인으로 구성된 유고 정부군은 두브로브니크에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 

 

당시에 공격받은 상황을 지도에 표시해두었다. 이렇게 소중한 UNESCO 유산이 무식하게 공격받아 파괴되자 많은 지식인들이 두브로브니크로 달려와 인간방패 역할을 해주었다. 그들을 '두브로브니크의 친구들'이라 한다. 그 때의 구호를 각국 언어로 기록해두고 있다.

 

'자유' 시간에 사랑하는 계단도 즐기고, 오느프리예 대분수의 물을 생수병에 담아간다.

 

플라체 Place 게이트를 나가면 두브로브니크의 모형을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격리병원으로 사용되었던 곳도 방문해보았다. 지금은 문화센터, 극장, 식당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거리 곳곳에 많이 보이는 꽃, 부겐베리아 Bougainvillea.

 

다시 플라차 거리로 들어와 자유를 즐기다가....

 

쇼핑이라는 것도 해보았다. 기념품 한 점과 "문화와 예술의 도시 두브로브니크"라는 한글판 책자 한 권. 70.03유로.

 

서문에 해당하는 필레 게이트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 문의 윗쪽에는 두브로브니크의 수호 성인인 성 블라호의 부조물로 장식되어 있다.

 

자유시간을 마치고 모두 모여 오늘의 숙소로 걸어간다. 숙소가 필레 게이트 인근에 위치한다. 근사한 숙소이다.

 

저녁 식사는 필레 게이트 바로 옆인 이곳에서... 포사트 레스토랑.

 

최고다. 맛있다.

 

필레 게이트 바로 앞에 있는 작은 광장을 장식하는 판과 님프의 동상을 올린 Amerling 분수대를 구경하고, 내일 꼭 가보자는 약속을 로브리예낙 요새와 하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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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5일 목요일, 4시 좀 넘어 잠이 깼다.

창밖엔 비가 내린다. 지중해성 기후 지역으로 여름이 고온건조하다고 알고 있는데, 그것이 꼭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닌가보다.

창밖을 보니 티라나의 도심지에는 독특한 모양의 건물들이 많이 눈에 띄더라. 숙소인 The Plaza 호텔은 창밖에 돌조각들을 붙여놓았는데, 이게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거리를 안겨준다.

 

걱정을 했으니 이제 식당을 찾아가 아침을 뱃속으로 모신다.

 

8시에 출발한다 하였는데 7시 53분에 버스 탑승을 완료하였다. 누가 무슨 짐을 호텔에 두고 나왔다 하면서 다시 찾아들어가는 일 한번 없이 주욱 주욱 잘도 진행된다. 역시나 여행을 많이 다녀보신 분들이다. 그리고.... 여전하게 버스 창밖에도 빗줄기가 이어지고 있다.

 

알바니아를 떠나 몬테네그로로 넘어가는 날이다. 빗속을 달려서...

일단 점심 식사를 위해 182km를 달렸다. 부드바에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코토르로 입성하였다.

티라나에서 몬테네그로와의 국경 통제소까지 이동한 도로의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스칸데르베그 산맥이다.

 

멀리 창밖으로 산등성이 위의 성이 또 하나 보인다. 티라나 국제공항 인근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Preza Castle일 것 같다. 알바니아에는 성이 몇개나 있을까? 문화유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성만 158개에 이른다고 한다. 작은 나라에 성이 참 많기도 하다. 알바니아 공국 시절에 많은 성이 만들어졌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는 3천 개 이상의 성이 있다고 하니 유럽에서 158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인가....ㅎㅎ


티라나에서 몬테네그로 방향으로 이동하는 도로의 오른쪽으로 직선상의 산줄기인 스칸데르베그 산맥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 아래로 구름이 직선으로 깔려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가 내려 저기압 상태가 유지되자 산줄기를 따라 흘러내린 공기층의 따라 형성된 구름띠로 보였다.

 

09:30  레저 Lezhë에 접어들었다. 맞은 편 작은 봉우리 위에 또 성이 있다. Lezhë 성이다. 마을과 성 사이에는 작은 하천이 흐르는데 드린 강의 지이다. 북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 호수에서부터 흘러내린 물이 이곳을 지나 아드리아 해로 유입되는 것이다.

 

가파른 경사를 가진 작은 산지 위에 또 성이 보인다. Rozafa 성이다. Shkodra 성이라고도 한다. 성의 동쪽으로는 오흐리드 호수에서 흘러온 드린 강의 본류가 흐르고 성의 서쪽으로는 발칸반도에서 가장 큰 호수인 스코다르 호수에서 흘러오는 부나 강이 흘러 방어에 아주 유리한 지형을 갖고 있다. 규모도 상당히 커보인다. 현지가이드가 과거 스칸다르베그가 오스만 제국에 항전했던 장소 중의 하나라고 안내해준다. 일리리안 시대로부터 이어진 유서깊은 성으로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성이라고도 한다.

 

10:23  국경통제소 인근의 요충지에 위치한 Celiku 호텔에서 잠시 정차하고 쉬고 간다. 사람도 쉬고, 버스도 충분히 쉬어간다. 호텔이 있고 기념품 가게가 셋이나 있다. 그리하여 몬테네그로로 가는 혹은 몬테네그로에서 알바니아로 들어오는 차들이 거쳐가는 곳이다.

 

기념품 판매점에 전시된 스칸데르베그 님들을 마음 속에 담아둔다. 40도 짜리 브랜디 되시겠다.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마시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듯한 느낌이 오는 듯 하는 듯 하다.

 

11:11  국경통제소. 알바니아의 출국 수속을 하러 갔던 버스기사가 여권들을 그냥 들고 오더니 생수 두병만 다시 챙겨간다. 출국 수속 끝이다. 국경을 넘나드는데 여권이 이렇게 무시당하다니!!!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기둥에 붙은 판떼기를 망원으로 촬영해보았다. 알바니아어로 알바니아를 Shqipëria 혹은 Republika e Shqipërisë라고 하는가보다. 그 아래의 작은 글씨는 재정경제부 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아주 큰 글씨는 이 동네 이름이다.

 

몬테네그로는 아예 출입국 수속을 하는 국경통제소의 세관을 없애버렸다네. 그냥 통과. 그래서 가상화폐로 세계적인 사기를 친 한국인이 몬테네그로에 숨어들었던 것일까? 결국 잡혔지만...

몬테네그로는 '검은 산'을 뜻하는 이탈리아 어이다. 베네치아 지배를 오래 받은 영향 때문이다. 몬테네그로의 원어명은 쯔르나 고라 Crna Gora이다. 면적은 13,812km²이며, 인구는 63만 명 정도인 작은 나라이다. 아드리아 해 연안 지역은 관광 산업이 발달하였다.

 

11:24  멀리 보이는 능선 위로 풍력 발전기들이 줄지어 서있다. 잘 돌아간다.

 

11:38  길가에 아주 규모가 큰 채석장이 보인다. Billy Gradnja이다. 버스가 좁은 골짜기를 달릴 때면 스마트폰 신호가 끊어진다. 그러다가 다시 연결되면 로밍이 되면서 외교부와 통신사로부터 문자가 쏟아진다.

 

풍력발전기들이 참 많이 보이더라.

 

12:00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지중해이다. 아드리아 해이다. 그러면 쨍한 햇볕이 쏟아져야 하는데..... 구름이 잔뜩이다. 진짜 지중해가 맞는 것일까?? 저 구름 속에서 포르코의 빨간색, 커티스의 파란색 프로펠러 기가 날아들어 도그 파이팅을 할 것만 같기도 하다.

 

12:54  예쁜 섬이 보인다고 잠시 쉬어 간다며 멈춘 곳이다. 스베티 스테판이다.

성 스테파노 정도 되는 지명이다. 15세기부터 어부들이 들어가 살던 조그만 섬에 교회가 생기더니 개발업체가 인수하여 리조트를 만들어버렸다. 아주 고급이라 아무나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소피아 로렌, 커크 더글라스, 클라우디아 쉬퍼, 엘리자베스 테일러, 실베스타 스탤 등등의 유명인들이 머물렀던 곳이라 한다.

 

촌놈은 어색한 셀피 하나 만들고 떠난다. 이번에는... 그냥 가지만 다음엔 두고 보자. 스베티 스테판!

 

13:10  드디어 찾고 찾던 부드바 해변에 도착한다.

 

임씨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어촌 식당이므로 메뉴는 해물 모듬이다. 생선에 홍합, 새우, 오징어, 문어 등이 출현했다. 맛있다.^^

 

식사하고는 흐린 날씨의 아드리아 해의 바닷물 맛을 본다.

 

날씨가 안좋아 해변 영업은 접었다. 모래 해변이 아니라 자갈 해변이다.

 

14:30  코토르를 향해 출발.

아드리아 해 쪽에서 코토르 만 안쪽에 위치한 코토르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험준한 브르막 Vrmac산을 넘는 위험한 도로를 이용해야 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브르막 산을 뚫었는데, 공사 자금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다가 2007년에야 완성되었다.

길이가 1,637m나 되는 터널에 진입하였는데 도대체 앞으로 나가질 못하였다. 반대편 차로는 쭉쭉 빠져나오는데 이쪽은 계속 쭉쭉 차들로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너무 지체되니까 현지가이드가 대안을 제시하였다. 터널을 나오자마자 코토르까지 1km 정도를 걸어가자는 것이었다. 물론 당연히 동의하는 사람들만 참여하기로 했다. 

 

그렇게 터널을 나오자마자 버스에서 내려 걸었다. 

 

차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걸었다. 코토르의 배후산지인 석회암 덩어리가 큼지막하게 보인다.

 

금방이더만. 코토르의 성채가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나라 몬테네그로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코토르이다. 이곳에 크루즈가 3척이 들어온 날이라 한다. 그래서 길이 그렇게 막혔던 것이라고 가이드가 가이드하더라. 코토르만 방문하기 보다는 두브로브니크와 묶어서 여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코토르의 서문 앞에서 현지인 로컬 가이드를 만나 가이드를 받았다. 내부의 주요 건물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뒷산을 올라 성모마리아 교회에서 코토르와 코토르 만을 조망하며 즐겼다. 하산하여 마음껏 코토르를 따로 즐기는 자유시간을 가졌다. 북문앞의 성채에서 남문앞의 성채까지 순성하였다.

기원전 1세기부터 이곳에 로마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1002년에 불가리아 제국에 통합되었다가 13세기 이후는 베네치아 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2차 대전 때는 이탈리아에 통합되었었다. 1945년 이후 유고연방의 몬테네그로에 통합되었다.

 

작은 도시 코토르를 한국인들이 그래도 꽤 찾는 것 같다. 한국어로 작성된 안내지도가 존재한다. 현지 로컬 가이드가 한장씩 나눠주더라. A3 크기이다. 뒷면에는 이런저런 광고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바탕을 왜이리 시커멓게 디자인했는지 모르겠다.

색상을 반전시켜보았다. 음... 역시 편집은 어렵구나......

 

코토르의 서문이다. 바다쪽에 위치하여 바다문이라고도 부른다. 1555년에 만들었다고 위의 지도에 써있다.

출입구 바로 위에 "21-XI-1944"라고 적힌 별 하나의 판떼기가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티토가 이끈 빨치산이 독일군의 지배 하에 있던 지역을 해방시킨 날을 기념하여 새긴 것이다.

 

서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만나는 메인 광장이다. 왼쪽의 건물은 '왕자의 궁전', 오른쪽에 유명한 시계탑이 있다. 이 시계탑은 1602년에 만들어졌는데 1667년의 지진으로 인해 서쪽으로 기울어진 것을 다시 세웠었다. 그런데 1979년에 대지진으로 다시 기울어졌다. 북쪽과 동쪽은 고딕 양식, 일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시계탑 아래에는 죄인을 잡아두고 코토르 시민들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한 '수치의 기둥'이 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비잔타 궁이다. 오래된 건물들에 모두 palace라고 하니 '궁'이라 부를 수 밖에...

 

피마 궁이다. 17세기에 만들었다고 한다.

 

1166년에 만들어진 성 트리푼 교회이다. 네오 고딕 양식으로 유명하다.

멋진 내부.

 

입구에는 크로아티아 왕국 초대 왕인 토미슬라브를 기리는 부조물이 붙어 있다.

 

왼쪽 건물이 해양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그루그리나 성이다. 1732년에 만들어졌다.

 

17세기에 만들어진 카람파나 분수. 샘터였다고...

 

맞은편 건물이 1909년에 만들어진 성 니콜라스 교회이다. 십자가의 모양이 다른 세르비아 정교회이다.

 

1195년에 만들어진 성 루카 교회가 오른쪽에 있는데 외면하고 맞은편의 성 니콜라스 교회만 바라보는 여행자. 

 

뒷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이 지나는 쪽에 있는 문이라 강문, 혹은 북문이라 불리는 곳. 1540년에 만들었다.

 

코토르 뒷산을 올라가는 성벽투어 입구이다.  밤 10시 이후에는 머물 수 없다고 문짝에 적혀 있다.

요것이 있어야 입장할 수 있다. 8유로.  산길 조금 올라가는 것인데, 너무 비싸다.

 

오래된 고성의 성벽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다. 오래된 고성이므로 오래된 느낌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오래되고 다듬어지지 않은 길이다. 

 

조심해서 올라가야 한다. 우리나라 처럼 자기가 다친 다음에 내가 다치는 것을 너희들이 막아주지 않았다며 대들고 소송하고 할 수 없다. 본인이 주의하고 책임져야 한다.

 

선객이 자리를 잡고 있다.

 

성모 마리아 교회가 있는 곳에 오르면 코토르 시가지와 만의 모습이 잘 보인다. 1518년에 만들어졌으며, 건강의 여신의 교회라고도 한다.

 

전시된 고지도. 아드리아 해에서 육지쪽으로 해안선이 들어와 있는 부분을 '만'이라 한다. 그 만에서 다시 안쪽에 형성된 코토르 만의 가장 안쪽에 "Cattaro"(코토르의 옛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이렇게 안쪽에 위치하였으니 외적으로부터의 침략을 방어하기에 유리하여 일찍부터 항구로 발달했을 것이다. 그래도 방어를 위해 성채를 쌓고 산성까지 만들어두었다.

 

전망대에서 쉬면서 코토르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토론 중인 일행들. 

파란 바다에 떠서 파란 하늘을 향해 파란 연기를 계속 뿜고 있는 저 배는 무엇??

 

교회 뒷쪽으로 계속 산길을 올라 여러 요새를 다녀올 수 있다. 이곳을 통과해서. 입장료를 8유로 씩이나 받으면 이런 길 정비도 좀 해야지...

 

한탄하다가 하산한다.

 

부여받은 '자유시간' 중에 성벽을 올랐다. 북문 부근에서 뒷산에 뚫린 구멍을 조사 중인 탐사대원.

 

스마트폰의 카메라도 망원이 되기는 한다. 석회암 덩어리에 뚫린 구멍이니 석회동굴 되시겠네. 내부 탐사는 다른 대원들에게 양도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성채의 서쪽으로 큰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저 윗쪽의 골짜기에는 물이 보이지 않는데 이게 웬 일? 

코토르의 배후 산지가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석회암의 빗물과 지하수에 포함된 약산성으로 인해 쉽게 구성물질이 용해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점차 지표와 지하에 물이 쉽게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을 계속 확대시키게 되어 싱크홀, 동굴, 갑자기 땅속으로 사라지는 하천 혹은 갑자기 많은 물이 솟아나는 샘물 등을 포함하는 지하 배수 시스템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은 카르스트 지형의 형성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발칸 반도 지역에서 처음으로 연구된 학문 분야이다.

지중해 연안 지역은 주로 겨울철을 중심으로 우기를 형성하는데도 불구하고 지표에 하천이 늘 흐르는 경우가 드믄 것은 기반암이 석회암이라는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꾸 물이 지하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지하로 이동하던 물길이 갑자기 지표로 솟구치기도 한다. 코토르의 서쪽 골짜기 아랫부분에도 큰 샘이 있기에 윗쪽의 골짜기에는 보이지 않던 물길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는 아드리아 해를 따라 발달한 도시 부근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코토르 성과 산성의 요새들을 묘사한 고지도. 왼쪽에는 침략을 해온 적군의 모습을 묘사했다. 대포를 쏜다.

 

대포를 동원한 공성전에 대비한 대책을 세우고 있는 '병사'.

 

순찰중인 '병사'.

 

길을 잘못들어 남문까지 걸어야 했다. 1470년에 만들어진 구르디치 성채.

 

다행히 일행과 랑데뷰하여 버스를 기다릴 수 있었다.

 

멀리 파란 연기를 뿜고 있는 크루즈 선이 보인다. 코토르 만에서는  생각보다 수산물 양식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스토리가 만들어져야 볼거리가 되는 것이다. 코토르 만 안쪽에 있는 작은 바위섬들. 한 어부가 바위섬에 돌을 하나씩 던지기 시작하였다. 섬이 커졌다.  이후 왼쪽 섬에는 성당이, 오른쪽 섬에는 수도원이 만들어졌다. 오늘날에도 정기적으로 돌을 던져넣는 풍습이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 스토리~

 

19:28  헤르체그노비 인근에 위치한 숙소 Carine Hotel Park Bijela에 도착했다.

262km를 이동한 하루였다. 2만보를 넘게 걸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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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4일. 북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를 출발하여 스트루가 시를 지나 알바니아와 북마케도니아의 국경통제소에 도착했다. 출국 및 입국 수속을 하고 알바니아의 수도인 티라나까지 약 140km를 이동하였다.

 

14:21  북마케도니아의 국경통제소. 일단 여권을 걷어간다. 일행은 그냥 버스에 대기.

14:33  출국 수속이 끝났단다. 뭐지?

14:34  알바니아 국경통제소 도착.

버스기사가 여권만 들고 간다. 현지 가이드도 아니고 버스 기사가 그냥 왔다 갔다 한다. 신기하다. 생수 두병을 직원들에게 전달하고 알바니아 입국 수속이 끝났다. 그런데 여권에 도장도 안찍어주더라... 한참 새로운 도장을 찾았는데...

14:38  버스 출발. 이제 알바니아 땅을 달린다.

 

기원 전 10세기 경부터 발칸반도 서부에 알바니아 인들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립된 국가는 형성하지 못하고 주변 강대국인 로마, 비잔틴, 슬라브 제국 등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알바니아는 17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아 발칸 반도의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독립된 국가로 인정받았다. 언어, 민족 등이 주변 국가들과 달라 독특한 나라로 꼽히고 있다.

최근 알바니아를 찾은 관광객 중 아시아 인의 비율이 어느 정도일지를 맞추어 보라며 현지가이드 노진아 님이 퀴즈를 내더라. 아무도 맞추지 못하였으며, 감조차 잡질 못했다. 상상도 못했다. 아시아 인 전체인데 1% 미만이란다. 거기에서 다시 한국인을 추려내면 얼마나 될까? 그만큼 한국인들이 찾지 않은 숨겨진 나라가 알바니아가 되겠다.

왜 그렇게 알바니아는 숨겨진 나라가 되었을까..............?

 

국경을 지나 오흐리드 호가 보이지 않는 능선을 넘자마자 도로 옆의 산비탈에 버려진 벙커들 여럿이 보였다. 핸드폰으로 사진 찍으려 하니 셔터랙의 지체로 인해 촬영 실패. 이후 신경써서 시도했지만 직접 촬영은 실패했다. 벙커, 이렇게 생긴 것이다.

(출처: Concrete Mushrooms: Bunkers in Albania)

 

이탈리아 소렌토에서 날아와 현지가이드로 수고하고 있는 노진아 님이 알바니아의 정치, 현대사에 대해 정리해주었다. 알바니아를 수렁으로 빠뜨린 독재자 엔베르 호자 이야기였다. 2차 세계 대전 중 빨치산 활동 경력을 통해 집권하게 된 엔베르 호자는 유고연방의 티토와 대립하면서 소련으로 기울었는데, 스탈린 보다 더 강력한 스탈린주의자였다고 한다.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모두와의 관계를 단절했기에 알바니아는 쇄국 정책을 취하게 된다. 그렇게 스스로 모두와의 관계를 단절하다보니 고립이 심화되었고 정권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외부로부터의 침략을 강조하였다. 그 끝판왕이 전국을 벙커로 뒤덮은 것이었다. 종교를 금지시키고 자기 개인의 우상화를 종교 수준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알바니아의 면적은 경기도와 강원도를 합친 수준인데, 그 면적에 인구는 약 283만 명이 거주하면서 17만 개 이상의 벙커를 건설했다고 한다. 극심한 물자 및 식량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벙커 종교에 빠진 것이었다.

알바니아 영토 내에 건설된 벙커의 분포 지도이다. 주로 해안선과 국경선을 따라 분포하고 있으며 고산 지대에도 많은 수가 분포되어 있다. 수도인 티라나 주변에도 집중 분포한다.

(출처: Verzaj 외, 2020, "Albanian bunkers, Modern fortifications built in socialism," Defensive Architecture of the Mediterranean, Vol.11, p.1010.)

 

15:40  Shkumbin 강변의 작은 주유소 Gega oil에 잠시 정차하였다. Bar market의 화장실을 도움 받았다.

 

16:00  버스 출발.

Elbasan을 지나 A3 고속도로를 따라 북서쪽으로 달린다.

티라나 주로 접어들었다.

4:40  산등성이 위로 성이 보인다. Petrela 성일 것 같다. 알바니아 공국 시절 전국에 어마어마한 숫자의 성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상한 사람들이다. 그 옛날엔 성을 만들었고, 현대엔 벙커를 만들었다니... 방어에 진심인 민족인 것 같다.

 

 

티라나 시내에 들어왔다. 건물에 나무가 무성하다(?) 건물 이름은 Lion Residence인데...

 

티라나에 예약된 숙소 The Plaza 앞에 도착했다. 숙소 앞이 공원이다. 바로 앞에 근사한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다. Friendship Monument. 어떤 의미를 담은 구조물일까?

 

플라자 호텔을 출발하여 에템베이 모스크를 지나 광장으로 진입하였다. 로컬 현지인 가이드의 안내로 국립역사박물관 투어를 진행했다. 그리고 벙커 박물관을 관람하고 젊은이들이 모인다는 거리를 지나 상가 및 식당가로 이용되고 있는 티라나 캐슬을 구경하고 호텔에 체크인 하였다.

 

알바니아 수도인 티라나는 기원전 3,500년 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는데, 오늘날에는 전체 인구의 25% 이상이 거주하는 정치, 경제, 문화 및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티라나의 중심지에 스칸데르베그 과장이 위치하는데 그 중심에 스칸데르베그 동상이 건설되어 있다.

 

알바니아 인구의 60% 가까이 이슬람교를 신봉한다. 인접한 북마케도니아에도 알바니아계 인구가 많이 거주하는데 이슬람교를 신봉하여 모스크가 많으며 그들이 모여사는 지역에는 알바니아 국기를 게양하고 있다. 국가보다는 종교, 민족이 우선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스칸데르베그 광장 한쪽에 위치한 에템베이 모스크이다. 높은 첨탑과 시계탑과 함께 한다.

18세기 후반에 건축하기 시작하여 19세기 초에 완공된 유서깊은 모스크이다. 이 모스크를 건축한 Ethem Bey의 이름을 따서 모스크의 이름도 지어졌다. 어떠한 장식도 허용되지 않아 코란의 문구나 아라베스크 무늬 정도만 있는 보통의 모스크와는 달리 나무, 폭포, 다리 등을 묘사한 프레스코 화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높이 35m의 시계탑은 에템베이의 아들이 1822년에 모스크 옆에 만든 것이다.

 

발칸 반도 국가들의 무슬림 분포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이슬람 신자의 비율은 코소보에서 가장 높으며, 숫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알바니아가 많다.

(출처: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칸, 유럽의 가장 오래된 이슬람," 20160901)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운 명장으로 이름 높은 스칸데르베그의 동상

 

광장 북쪽에 위치한 국립역사박물관을 향하는 일행.

 

건물 정면의 모자이크 화가 멋지다. 이렇게 일반 국민들의 독립을 위한 투쟁을 묘사하여 자랑하는 모습이 부럽다.

 

박물관 로비에서 알바니아 국기에 손을 대보았다. 붉은 바탕에 쌍두 독수리 문양이 들어 있다.

 

준비된 선수로부터 입장 개시!!!

 

선사 시대의 유물들로부터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유명한 아가씨의 모자이크라고 한다. 기원전 4세기의 아가씨이니 많이 연세가 많으신 누님이다.

자세한 설명을 첨부한다.

 

로마 제국과 싸웠던 일리리아의 바토 장군 동상.

 

오스만 제국과의 싸움을 너무 잘 해서 적군이었던 오스만에서 알렉산더 대왕만큼이나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라 하여 "스칸데르 베우"라는 호칭을 받게 된 장군이 있었으니....

이 아저씨. 광장에도 멋진 동상이 있다.

알바니아의 장군으로서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의 군대를 막아낸 제르지 카스트리오티 장군. 알바니아 어로는 '스컨데르베우', 영어로는 '스칸데르베그'로 불린다.

 

그리고 마더 테레사 코너도 있다. 혈통이 알바니아 계라고 자국민이라 주장한다. 그녀의 어릴 적 사진이다.

 

그리고 알바니아 역사를 과거로 한참 되돌려버린 엔베르 호자 코너가 이어진다.  그의 동상을 쓰러트리는 순간을 담은 사진이다. 1991년 2월 20일.

 

모든 물자의 부족에 시달리던 시절의 모습.

 

그러면서 통제에 통제에 통제를 가했던 시절. 정상적으로는 통제가 어렵자 비밀경찰을 통해 가혹하게 통제를 계속했고 견디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목숨걸고 알바니아 탈출을 결행해야 했을 정도였다. 아주 사소한 건만으로도 실종되고 사형되고 장기간 고문과 수감이 다반사로 이어졌다고 한다.

 

박물관을 나서면서 다시 만나는 스칸데르베그 광장. 주변보다 중심부가 높게 만들어져 있다. 빗물이 주변으로 쉽게 흘러내리도록 만든 설계일 뿐 아니라 지하에 주차 공간을 마련하는데 이용되었다고 로컬 현지인 가이드가 안내하더라.

어렵게 알바니아를 탈출하여 외국에 정착한 사람들이 또 열심히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 본국의 친인척들에게 송금을 해온단다. 그래서 물가의 인상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탄하더라.

 

스칸데르베그 동상 바로 아래에 주차하고 있는 이동식 ATM. 티라나 시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번화가이니 다들 돈을 뽑아다가 마구 사용하여 알바니아 경제을 살려달라는 의미로 보인다.

 

에템베이 모스크 옆에 위치한 티라나 시청. 국기가 걸려 있으면 관청이다.

 

국기가 걸려 있다. 농림부 정도? 그 관청 앞에 벙커가 있다. 관광객을 위한 모형이다.

 

이름하야 '벙커 아트'

 

내부의 전시 공간. 오후 6시에 문닫는다. 

 

티라나 캐슬이다. 내부는 대부분 식당가이다.

 

신기한 문물을 발견했다. 이중 굴절 버스.

 

티라나 중심부의 중심부 위치한 The Plaza. 근사한 호텔이다.

 

근사한 호텔의 근사한 식당에서 만난 근사한 식사. 고기가 참 맛있다.

 

 

호텔 밖의 공원과 광장으로 나가 산책을 해볼만도 한데 그냥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이 좋아서가 아니라.... 시체가 되기 위해서, From Dusk to Dawn......

154km를 이동한 하루였다. 꼴까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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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케도니아에서 하룻밤을 잤다. 아주 푸욱 잤다.

창 밖으로 잔잔한 오흐리드 호수가 구름 아래 잠겨 있다. 건너편 스투루가 시 방향의 골짜기에 구름 한가닥이 흘러내리는 듯 마는 듯하다.

 

이름 그대로 인 Hotel Park Lakeside...

 

일찍 잠에 빠져 버렸기에 일찍 깼다. 아침 식사 전 산책이라는 어색한 행위를 하고 있다.

 

저쪽으로 보이는 곳이 오흐리드 구시가지이다. 오늘의 목표 뽀인트.

 

호텔 조식인데 부페식이 아니다. 코로나 경보에서 아직 벗어나질 않고 있는 식당이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주문하면 식당에서 만들어 직원이 배달해준다. 아침 식사는 오믈렛.

 

8시 반에 출발하는 버스에 비치된 생수를 챙긴다. 보통 저가 실속형 패키지 여행을 하는 경우 이 생수 한병을 1유로에 구입해야 한다. 우리 팀은 그냥 마셔지는대로 꺼내가면 된다. 평소 물을 많이 마시는 나는 '신남' 모드이다.

 

발칸 반도의 오래된 도시들은 수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즉, 수백년 전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도시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거대한 버스가 진입할 수 있는 넓은 도로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에 외곽에서 도보로 이동하며 즐길 수 있다.

오흐리드 또한 마찬가지이다. 광장에서 현지인 로컬 가이드를 만나 안내를 받았다. 진주 만들어 파는 가게에서 소개를 받고 성 소피아 교회를 방문한 후 고대 원형극장을 올라갔다가 시가지와 호수를 조망하면서 성 클레멘드 교회, 성 요한 카네오 교회 방향으로 하산하였다. 선착장으로 이동하여 유람선으로 오흐리드 호수를 즐긴 후 카네오 레스토랑에 배를 대고 하선하여 멋진 식사를 함께 하였다. 그리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겨 알바니아로 출국하였다.

 

6월 14일 8시 39분.  오흐리드 신시가지 쪽에 버스를 두고 걸어가는 일행. 간밤에 비가 조금 내린 것 같다.

 

광장을 지키고 있는 성 클레멘트와 나움의 동상. 둘 모두 키릴 문자를 만든 키릴과 메토디우스의 제자들이다. 성 클레멘트는 오흐리드를 한손에 들고 있고, 성 나움은 성경을 들고 있다.

 

오흐리드 시는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많아 1979년에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1980년에는 오흐리드 호수가 UNESCO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기원전 4세기에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의 지배 하에 도시가 형성되었으며, 빛의 도시라는 뜻의 '리치니두스'라고 불리었다. 9세기 이후 불가리아 제국의 영역이 되면서 오흐리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발칸 반도의 중요한 종교 및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하여 한때 365개의 예배당(교회)이 있어 발칸의 예루살렘이라 불리기도 했던 곳이다.

 

오흐리드의 옛지명 '빛의 도시'가 상호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오리지날 오흐리드 펄~ 

 

건물도 길바닥도 석회암이 대분인데, 수백년 동안 사람들이 밟고 다닌 길바닥은 맨질맨질하여 윤이 날 정도이다.

 

Holy Mother Bolnichka 정교회. 아담하고 예쁜 정교회 건물인데 문을 닫았다. 담 너머로 구경하며 지나간다.

 

오흐리드 구시가지의 독특한 건물 유형이다. 1층보다 2층의 건평이 더 넓다. 사람들이 다녀야 하니 골목의 공간은 확보하고, 가능하면 건물 실내의 활용 면적을 넓히려는 의도가 만들어진 양식으로 보인다. 가로등의 모양도 이러한 건물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골목의 윗부분을 통째로 막고 연결하여 건물을 만들기도 했다. 골목이 터널 모양이 되어버리네.

 

오흐리드에서 가장 부잣집의 가장 큰 집이다. Куќата на Робевци (House of Robev Family). 오흐리드 전통 가옥의 모든 특징을 갖고 있으며 규모도 크다. 1827년에 건축되었는데 화재로 소실되어 1864년에 재건된 건물이다. 건물 자체가 기념물로서 국립박물관의 관리를 받고 있다. 다양한 콜렉션을 소장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내부 관람을 하지는 못하였다. 제한된 시간 안에 이동해야 하는 패키지 여행의 한계가 아닐까 싶었다.

전시 안내.....일 것 같았다.

 

9:20 성 소피아 교회를 방문하였다. 북마케도니아에서 중세시대의 건물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는 중요한 곳이다. 처음에는 불가리아 정교회 건물로 지어졌는데,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모스크로 이용되었다. 현재는 북마케도니아 정교회 건물로 이용된다. 

 

내부 공간은 상당히 넓은 편이며, 음향 설계가 잘 되어 있어 매년 오흐리드 여름축제를 개최한다고 한다.

 

모스크로 이용하면서 건물 내부에 있던 프레스코화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위에 석고를 칠해 가리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11~13세기 비잔틴 양식의 프레스코화가 잘 보존될 수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프레스코화를 복원하였다.

 

그런데 복원 기술이 제대로 축적되기 전에 너무 서둘러 복원을 시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WHY SO SERIOUS?

 

언덕 위의 원형 극장. 5천 명 정도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었다고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일부에 불과하다. 여름축제기간에 세계적인 유명 연예인들의 공연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무대 설비가 남아 있다.

기원전 3~2세기에 만들어져 후기 헬레니즘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을 것 같은 감이 온다...

 

오흐리드는 고담인가?? 길가에 배트카가 주차되어 있다. 배트맨은 부근의 식당에서 식사중일지도...

 

성 클레멘트 교회와 판텔레이몬 수도원. 슬라브 인들에게 키릴 문자를 널리 알려주었던 성 클레멘트 교회이다. 내부 입장은 하지 않고 지나갔다. 오흐리드 호수를 배경으로 한 멋진 그림으로 감상한다.

현지인 로컬 가이드인 다니엘라가 영어로 한참 설명을 하고 현지 가이드가 부지런히 통역을 해준다. 빠르게 생소한 내용이 지나가니까 수신기로 들리는 내용이 머릿속으로 전혀 입력이 되지 않는다.^^ 녹음이라도 해야 했을까??

 

다른 대성당의 흔적이 성 클레멘트 교회 주변에 널려 있다. 성 클레멘트 교회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성 클레멘트 유니버시티이다.

 

언덕 윗쪽에 있는 사모일 요새를 한번 쳐다보고는 오흐리드 언덕을 내려간다.

 

길가에 거북이가 나타나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동헤르만 육지거북이라고 검색되더라.

 

그리고............ 오흐리드의 상징인 성 요한 카네오 교회가 눈앞에!!!

 

이쪽으로 사진 하나...

 

이쪽으로 사진이 잘나온다며 현지 가이드가 찍어준 사진. 나무 옆에 전화 통화하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이 가이드님께서는 그냥 찍어버렸네. 사진이 아주 그냥... 사람 하나를 사진 속에서 삭제하느라....ㅎ

 

부지런히 선착장으로 달려가는 발길.

 

오흐리드 광장 앞의 선착장에서 지붕에 의자들이 있는 큼지막한 배를 탄다.

 

그리고 이렇게 오흐리드 호수 위를 미끄러져 다녔다.

 

출항하여 오흐리드 구시가지를 따라 서쪽으로 항해하였다.

 

호수쪽에서 성 요한 카네오 교회를 다시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냥... 오흐리드 호수. 날씨 참 좋다~~

 

지난 밤을 신세 진 레이크사이드 파크 호텔.

 

그 부근의 숲속에는 외부에서 잘보이지 않도록 은폐된 근사한 건물이 있다. 과거 유고 연방의 지배자였던 티토의 별장이다. 유고연방이었던 각지의 경치 좋은 곳마다 티토는 별장을 만들어두고 즐기며 살았던 티토.

 

새벽엔 비가 내리고 아침엔 흐렸었는데, 낮엔 해가 쨍하니 날씨가 너무나 좋았다. 멀리 오흐리드 시가지가 구름과 호수 사이에 낑겨있다.

 

멀리서 보니 오흐리드 언덕 위로 사모일 요새의 모습이 구별된다. 정상에 북마케도니아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다.  선착장에 접안하고 다시 앞에 보이는 식당까지 걷는 줄 알았다. 헌데...

 

호수변의 유명 식당 카네오 앞으로 바로 배를 접안하더라. 오우예~~

 

그리고 오흐리드 전통식을 만났다.

커리 소스를 곁들인 치킨, 감자와 당근이 접시 위에 있네.

 

식당 내부의 벽에 옛날 그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전시해놓았다.

 

오래되어 다 부서져가는 건물들...

 

옛날에만 다 부서진 것이 아니라 현재도 거주자가 없어 방치된 건물은 상태가 매우 안좋다.

 

위의 건물 벽에 붙어 있는 안내문. 19세기의 오리지날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유일한 건물이라고 한다.

 

버스가 주차된 곳까지 열심히 걸어서 이동했다.

13:34 인원 확인후 바로 출발한다.

버스가 출발하자 드디어 수금이 이루어진다. 완납한 여행경비 이외에 현지에서 소요되는 비용으로 1인당 110유로를 따로 지불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2인이니 220유로를 지불했다. 500유로를 환전하여 왔는데, 22/50가 사라졌다.

 

오흐리드를 출발하여 스트루가 시를 지나 알바니아와 북마케도니아의 국경통제소에 도착했다. 출국 및 입국 수속을 하고 알바니아의 수도인 티라나까지 약 140km를 이동하였다.

오흐리드 호수에서 유출되는 물을 호수 북쪽에 위치한 스트루가를 지나 골짜기로 흘러든다. 이후 알바니아의 드린 강을 이루며 흐르다가 아드리아 해로 유입된다.

 

14:21  북마케도니아의 국경통제소. 일단 여권을 걷어간다. 일행은 그냥 버스에 대기.

14:33  출국 수속이 끝났단다. 뭐지?

이제 알바니아로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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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케도니아 스코페 여행  (6) 202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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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반도와 주변 지역을 보여주는 Nations Online Project에서 제작한 지도이다. 발칸 반도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 북마케도니아,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5개국의 주요 도시들을 여행하는 상품이 있길래 2023년초에 신청하고 6월에 다녀왔다.

 

발칸 반도는 알프스 산맥에서부터 이어지는 신기 조산대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복잡한 지질 구조를 갖고 있는 산악 지형이 대부분이며, 기반암은 석회암의 비율이 높아 카르스트 지형이 흔하게 나타난다. 아래 지도는 구글 지도의 지형 지도를 변형한 것이다. 슬로베니아는 율리안 알프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디나르 알프스, 알바니아와 북마케도니아는 샤르 산맥이 지난다.

 

북마케도니아는 1991년 유고슬라비아연방에서 독립하면서 국명을 마케도니아로 정하였으나 이웃한 그리스와의 갈등과, EU 및  NATO 가입과 맞물려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2019년에 국명을 변경하였다.

 

공항의 식당가를 둘러보다가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주문한 메뉴를 식탁 앞으로 배달해주는 로보트를 처음 보았다. 신기한 세상이다.^^

 

인천공항에서의 미팅에서 여행사 직원이 나눠준 지퍼백을 열어보니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다. 잘 챙겨들고 여행에 나섰다.^^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기대를 한가득 가슴에 품고 인천공항에서 보잉777-300ER 비행기는 날아갔다. 이스탄불로 11시간 35분을 날아갔다...

 

6월 12일 밤 11시 36분에 날아오르더니 한국시간으로 0시 40분에 저녁을 주더라.

 

터키 항공의 장거리 비행 물품. 안대, 슬리퍼, 양말, 칫솔과 치약, 귀마개 등등...

 

이스탄불에 착륙하기 전에 아침을 주더라.

 

이스탄불에서 같은 터키 항공의 에어버스 321-200 비행기로 환승하여 스코페로 1시간 25분을 날아갔다.

 

예정보다 연착했다. 활주로에 비행기가 랜딩하자마자 여러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아담한 공항에 도착하여 셀피부터 만들어둔다. 도착하여 입국 수속도 간단하다.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는 정도...

 

발칸에서의 여행을 함께 할 현지 가이드와 랑데뷰하여 스코페 시내로 이동하였다.

 

북마케도니아 전체 인구가 209만 명 정도이며, 수도인 스코페의 인구가 55만 명 정도이다. 인구 55만...

경찰의 도로 통제로 인해 일부 구간에 정체가 발생하였다.

 

서울의 바글바글한 인간들 속에서 치이다가 55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에 들어오니 많이 어색하다.^^

마케도니아 아치, 개선문 부근에 하차하여 도보로 투어를 시작하였다.

 

개선문에서 스코페 광장으로 진입하였다가 마더테레사 기념관, 돌다리, 바자르를 돌아보고 멋진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유명한 스베티 스파스 교회를 방문하고 오흐리드로 이동하였다.

 

출발 전에 전달받았던 수신기를 꺼내 준비한다. 이어폰을 귀에 꽂으니 멀리서도 가이드의 해설을 잘 들을 수 있었다.

 

곳곳에서 굉장히 많은 동상들을 볼 수 있다. '스코페 2014'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동상들을 무진장 깔아놓았단다. 포스트-사회주의 국가의 도시들이 새로운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과정에서 보이는 도시 재생을 위한 투자였지만, 지나치게 많이 설치된 동상들은 현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고...

 

스코페의 중심이 되는 스코페 광장이다. 인구 55만 명짜리 도시의 중심지이다. 왼쪽에 보이는 동상은 데임 그루예프, 오른쪽의 동상은 고체 델체프인데 모두 독립운동을 한 혁명가들이다.

 

아담하게 조성되어 있는 마더 테레사 기념관의 모습이다. 

 

2층의 전시실에 여러가지 물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3층의 예배실에서는 개인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도 있다.

 

기념관은 마더 테레사가 태어난 집이 있었던 곳 부근에 조성되어 있다. 집터가 있던 흔적만 남겨져 있다. 이곳에서 태어났기에 북마케도니아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태어났을 때 북마케도니아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북마케도니아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좀... 알바니아계로 오스만 제국 국적으로서 오늘날의 북마케도니아 영토에서 태어났다 하는 정도로 정리가 될런지... 스코페 일대를 차지했던 나라들을 모두 따지면 마더 테레사의 국적은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많아진다. 혈통을 근거로 알바니아가, 출생지를 근거로 북마케도니아가, 활동지역을 근거로 인도가 각각 자기네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삼파전을 벌이고 있다.

 

슬라브 족이 건설한 국가임에도 북마케도니아가 마케도니아가 되고 싶어하게 만드는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이 스코페 광장 중앙에 위치한다. 동상 주변을 바쁘게 지나는 스코페 시민들.

 

11개의 아치로 구성된 터키식 돌다리이다. 스코페 광장이 위치한 신시가지와 바르다르 강 건너편의 구시가지를 연결한다. 15세기 오스만 시대에 술탄 메메트 2세가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각 아래에는 다이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다이버의 모습이 모두 보이면 바르다르 강물의 수위가 낮은 것이고 안보일수록 수위가 높아진 것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다고 한다.^^

 

돌다리 건너편에도 많은 동상들이 세워져 있다. 특히 키릴 문자를 만들고 다듬은 키릴과 메토니오, 그리고 제자들인 클레멘트와 나움의 성인상이 유명하다. 

 

주먹질을 하고 있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분수대, 바로 옆에는 아이를 얼르고 있는 알렉산더 대왕의 어머니 분수대...

 

오스만 제국 시절에 건설된 대표적인 공공 건축물로 꼽히는 다우트 파샤(취프테 아맘) 목욕탕 건물이다.  현재는 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스코페의 올드 바자르. 

 

12세기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올드 바자르에 인접한 거대한 농산물 시장이다. '그린 마켓'. 신선한 식재료들이 눈길을 끈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다가 스코페에서 물먹었다.

 

올드 바자르의 귀금속 거리. 금 보기를 돌 같이 하면서 지나간다. 돌이다, 돌이다, 도리다...

 

스베티 스파스 교회를 방문하려 하였는데, 외국에서 귀인이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어 입장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빨리 지나가라고 성화다.

 

그런 입장이라 언덕 위에 위치한 무스타파 파샤 모스크 옆에 위치한 부시 리조트에 위치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먼저하였다.

 

이번 일정에서 제대로 만나는 첫번째 식사였다. 양갈비와 닭고기. 맛있었다.

 

식사 중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지더라. 오후 1시, 이곳저곳의 모스크에서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였다. 동시에 울리지 않고 조금씩 차이가 나더라. 내용도 조금씩 다르고...

 

식당 앞에 나오니 스코페 요새 너머로 멀리 거대한 십자가가 보인다. 해발고도 1,066m 높이의 Vodno 산 정상에 66m 높이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2002년에 만들었다고 한다. 세르비아 정교회에서 마케도니아 정교회가 독립한 것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중요한 정치적, 국가적 상징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마케도니아 정교회 이외의 문화와 종교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바로 옆에는 뭔가 멋진 건물을 건축하고 있는 중이다.

 

점심 식사를 하고 나왔더니 스베티 스파스 교회를 방문했던 귀인이 돌아간 모양이다. 철통같이 경비하던 요원들이 안보여 후다닥 입장을 하였다. 16세기 중반에 지어진 마케도니아 정교회 건물이다.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모스크보다 낮게 교회를 지어야 해서 언덕 아래에 낮은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마케도니아 대학 한국어학과에서 교수로 계시는 분께서 스코페 여정을 도와주셨다.

 

교회 내부의 제단과 성화.

 

교회 마당에는 북마케도니아의 독립열사인 고체 델체프의 기념관이 있는데, 화환이 놓여 있는 것을 보니 이곳을 방문했던 귀인이 추모를 하고 간 것이 아닌가 싶었다.

 

기념관 입구가 아래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입구에 전시된 고체 델체프의 사진.

 

스코페 투어를 마치고 오흐리드 호수 변에 위치한 오흐리드로 이동하였다. 180km를 달렸다.

 

이동 중 해발 1,227m 고도에 위치한 휴게소에서 쉬고 갔다.

 

도로 양쪽에 식당이 있는데 판매하는 주요 품목이 메키치 Mekici이다. 가이드가 강추하는 메뉴였다. 고로케 비슷한 맛이라 하더라.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고 이 휴게소에서만 먹어볼 수 있다고 했는데, "Mekicite od Straza"라는 북마케도니아 프랜차이즈 브랜드더구만.

 

북마케도니아의 국기가 고갯마루에 휘날린다.

 

오흐리드 호수변의 숙소에 도착하여 먼 나라에서 날아오며 쌓인 피로를 푼다. 

 

첫날의 숙소는 오흐리드 구시가지가 멀리 바라다 보이는 곳에 위치했다. 호수의 물이 너무나도 깨끗하더라~

 

저녁은 오흐리드 호수에서 올라온 송어 요리.

 

비행기에서 내려 208km를 이동하였다. 여행의 피로와 시차 적응 과정이 더해지니 무진장 피곤하더라.

현대전자의 TV를 감상하면서 일찌감치 잠 속으로 그냥 빠져들어갔다. 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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