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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인 2004년 12월 8일에 온천의 도시 벳푸에 있었다.

벳푸의 지옥 순례를 했다. 동산 위의 조그만 학교를 방문하고 자연동물원에서 원숭이들을 만났다. 오이타 항에서 후지마루를 만나 승선...

(구글지도에서 '경로찾기'를 하고 '목적지'를 하나씩 추가하면 도로를 따라 대충 경로를 쭈우욱 그려준다. 신기하다. 다만 중간에 교통수단변경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공항 사이의 하늘도 날아가지만, 항구 사이의 이동은 표시해주지 못하는 한계도 아직 있다.)

 


8시. 스기노이 호텔에서 아침 식사.

호텔에서 바다쪽으로 바라보니 바다가 보인다.

 

바닷가 호텔에서 내륙 쪽으로 바라보니 여기저기에서 김이 새는 모습이 보인다. 역시 온천의 도시 다웠다.

別府 벳푸는 도쿄 인근의 熱海 아타미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온천 및 관광도시이다. 동쪽으로 잔잔한 벳푸 만을 끼고 있으며, 시내 곳곳에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온천지가 펼쳐져 있다. 벳푸 역 주변이 가장 번화한 온천가로 큰길을 끼고 크고 작은 여관과 기념품상가, 캬바레, 오락실, 극장 등이 밀집해 있다. 別府八湯을 비롯한 온천의 수가 3천 8백여 개에 이르며 온천열을 이용한 채소, 화훼 재배가 성하다.

 

일정이 많지 않은 날이라 여유 있게 하루를 시작하였다. 10시에 호텔을 출발하였다.

 

'지옥'을 제발로 찾아갔다. 733년의 豊後風土記 분고풍토기에도 기록이 등장할만큼 오래된 온천의 역사를 갖고 있다. 왈, "증기, 열탕, 진흙이 분출하여 접근할 수 없는 불쾌한 토지"라고 하여 "지옥"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온천 지대의 분출하는 물에 기포가 포함되어 있어 마치 끓는 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온도가 낮은 경우가 많은데, 벳푸의 온천은 100도에 가깝다고 한다. 

 

 

벳푸 지옥 순례 べっぷ地獄めぐり가 벳푸 관광의 하일라이트로 알려져 있다. 지옥의 위치나 알고 가자.

혈지 지옥, 명반 온천, 바다 지옥 순서로 탐방하였다.

 

10시 15분. 길가에 지옥에 살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판이 보이더라. 지옥의 '파미리호므'.

 

10시 20분. 피의 연못 지옥에 도착하였다.

 

온천수의 온도가 100도에 가깝다고 하더니 확실히 김이 많이 난다.

 

수증기가 눈앞을 가리운다.

 

"피의 연못 지옥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천연 지옥으로, 한마디로 말하면 "붉은 열 진흙 연못"입니다. 지하의 고온, 고압 하에서 자연스럽게 화학 반응을 일으켜 생긴 산화철, 산화 마그네슘 등을 포함한 붉은 열 진흙이 지층에서 분출, 퇴적하기 때문에 연못 일면이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라고 소개되어 있는 血池地獄의 모습이다. 온천수에 진흙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진흙속에 산화철, 산화마그네슘 함량이 높아 붉게 보이는 것이다. 과연 피처럼 붉어 보이는가??

 

2004년 12월 8일 현지에서 받아온 쪼꼬만 안내장을 스캔해보았다. 이건 빨갛다.

이렇게 붉은 온천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연못의 면적은 430평, 용출구 면적은 230평이며, 하루에 1,800kl의 용출량을 보인다는 정보도 적혀있다. 수온은 78도이며, 실측해본 깊이는 30m인데 180m 정도는 될 것으로 추정된단다. 점토로 채워져 있어 정확한 깊이를 측정하기 어렵다. 1875년 이후 아홉차례의 폭발 기록이 있는 곳이다.

 

족욕을 즐길 수도 있다.

 

벳푸에서 족욕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지옥들이 네 곳 있다. 足湯이라 표현한다.

 

10시 55분. 다른 지옥 구경을 구경하기 위해 이동하였다. 묘반 온천 明礬温泉이 있는 곳이다.

 

일본의 독특한 목욕 문화를 반영한 곳이다. 가족이 모두 발가벗고 목욕하는... 가족탕이다.

입구에 '여기는 견학하는 곳이 아닙니다. 가족용 온천입니다.'라고 빨간 글씨로 적혀 있다. 남의 가족이 온천하는 모습이 궁금하여 들여다 보는 한국사람들이 좀 있었나보다. 물론 일본어로도 적혀 있다.

 

묘반 온천에서 판매하는 의약부외품이 있다. '유노하나 '는 온천 성분을 결정화한 입욕제이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데, 알아서 잘 해결하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국내 수입 많이 하더라. 생산량이 그렇게 많나???

 

11시 30분. 바다 지옥 입구에 도착했다. 원래 벳푸 지옥 순례는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쪽에 지옥들이 많이 모여 있다.

 

벳푸 명소 바다 지옥.

 

바다 색깔처럼 보여서 바다 지옥이다. 온천수에 황산철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이러한 코발트 블루 색상을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온천의 열을 이용하여 열대성 수련을 재배한다. 200m 아래에서 98도의 온천수가 솟는다.

 

안내판.

 

바다 지옥의 시설 배치도. 한쪽에 바다와 어울리지 않는 곳이 있다. 赤池.

 

혈지 지옥, 피의 연못 지옥과 유사한 붉은 진흙탕이다. "なんと池地獄もあるんです!"라고 홈페이지에 설명하고 있다. '무려, 붉은 연못 지옥도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족탕, Hot Spring of a leg, 발의 온천도 있다. 족욕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벳푸 시내의 어떤 식당을 찾아 어떤 점심 식사를 했다.

1시 20분. 벳푸 시내의 산속의 자그마한 학교를 찾았다. 동쪽으로 바다를 면하고 있는 벳푸시의 서쪽 산 위에 있는데 학교 이름은 '동쪽 산'이다. 동산소학교.

 

산 위에 있는 학교니까 올라가야 한다.

 

산위에 위치한 동산 소학교. 경치 죽인다~~~

 

학생들. 어, 음~~~

 

거대한 죽창의 쓰임새가 궁금했다.

 

가볍게 둘러보고 떠난다. 일본 자동차 회사는 작은 차를 참 귀엽게 잘 만든다. 사까!?

 


오후 2시 30분. 오이타 만에 면해 위치한 다카사키야마 자연동물원을 찾았다. 원숭이가 대표적이라 원숭이 공화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2004년에 받아온 리플릿을 스캔한 것이다.

에도 시대부터 원숭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1952년 오이타 시장이 흩어져 있던 원숭이들을 高崎山에 모아 자연동물원으로 개원했다. 1,200여 마리의 원숭이들이 두 무리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다네.

 

원숭이들과 미팅할 때의 주의사항들이다. 지키기 참 쉬운 것들이다.

 

사육장의 철책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들끼리 산다.

 

원숭이들과의 미팅을 즐긴다.

 

찾는 사람들이 많아 사람들과의 접촉이 일상인 친구들이다. 사람들이 가까이 가도 지나가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래서 만지거나 눈을 쳐다보지 말라는 것인 것 같다. 

 

이제 고만 가~~!

 

가라 하니... 간다.

 

오후 3시 10분. 오이타 만.

 

위험한 커플이 보였다. 다치면 우짤라꼬!!!

 

지진과 화재에 대비한 구조를 가진 아파트라 하더라. 지진이 발생했을 때 고층에서 깨진 유리가 아래로 떨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베란다 밖을 유리로 막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더라. 그리고 재난 발생시 옆집으로 쉽게 대피할 수 있는 구조라고 한다.

 

오이타 항의 부두에 정박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후지마루.

 

승선하였다.

 

이런 것 잘 하더라. 서비스. 이틀을 함께 했던 버스 기사와 직원들이 부두에 모두 나와 손을 흔들며 환송해준다.  나라사요~

 

3일차이다. 오늘의 선상대학. 시를 공부하고 섹소폰 연주에 흠뻑 빠졌다.

 

와~ 멋지다~

(다음 포털에 개설되었던 이분의 카페에도 가입했었다. 기가 막힌 연주 파일들을 즐길 수 있었는데, 음원 저작권 문제가 강화되면서 연주 파일들이 모두 삭제되어 아쉬웠었다.)


12월 9일 6시 20분. 싸이렌이 울리고 방송이 뭐라뭐라 나왔다. 그래서 밖으로 나왔다. 아카시 대교의 모습이다.

 

아카시 대교는 아카시 해협에 건설된 다리이다.

일본의 큰 섬들 넷 중 가장 작은 시코쿠와 가장 큰 섬 혼슈 사이에 위치한 아와지 섬과 혼슈를 잇는 明石海峡大橋이다. 지진이 잦은 지역에서 견뎌내기 위해 튼튼한 현수교로 만들어졌다. 교량의 총길이는 3,911m이고 두 교각 사이의 거리는 1,991m이다. 해수면에서 중앙부의 높이는 300m라서 큰 배들도 다리 밑으로 그냥 슝슝 지나다닐 수 있다.

 

그렇게 여명 속에서 아카시 해협을 지나서 오사카 만으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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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등과 관련된 일본의 역사 왜곡 공세가 강화되자 이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서 1987년부터 추진되기 시작한 사업으로 알고 있다. 중간에 힘이 겨웠는지 신한은행과 공조하여 추진하는 '제18회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 연수에 2004년에 다녀왔다. 최근에는 GS도 동참하는 듯. 주관여행사는 미토스였다. 홈페이지(tour.chosun.com)도 운영되고 있다는데, 접속이 안되네. 여행일정과 강사 소개, 역대 참가자 명단과 탐방기 등이 탑재되어 있다고 소개하고 있는 홈페이지가 접속이 안되네...

 

2004년 12월에 다녀온 연수 자료를 2023년에 블로그에 정리하고 있다.ㅎㅎㅎ

 

2004년 12월 6일 오후 3시. 출국장에서 멀리 크루즈 선의 윤곽이 보였다. 앞쪽에 컨테이너들이 쌓여 시야를 막고 있어 아쉬웠다.

 

국제훼리출국터미널에서 인원점검을 하고, 연수 참가자들이 줄지어 출국 수속을 한다. 여권에 도장들이 간단하게 남아 있다. 6일에 DEPARTED, 12일에 입국 ADMITTED.

 

삼삼오오 크루즈 후지마루에 오르고 있다.

 

신기했다. 내가 크루즈 선을 다 타보다니... 배의 옆구리에 달려 있는 구명정의 모습도 신기했다. 설마 영화 '타이타닉'에서 처럼 저 구명정 사용법을 몰라 헤메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상상도 했다.

선박의 이름은 Fujimaru였다. 1989년에 진수된 길이가 167m, 너비는 24m, 평균 속도는 12.7노트(최대 21.2노트) 2만3천 톤 규모의 크루즈 선이었는데, 이런 저런 회사로 팔려다니다가 2022년에 고철로 팔려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446호 선실을 배정받았다. 4인실이었다. 짐을 던지고 나와서 부산항 구경을 한다.

 

부산 구경을 크루즈 선박에서 하고 있다. 이런 호사가 있던가.....

 

5시 30분부터 선내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사이 후지마루는 6시에 부산항을 출항하여 일본을 향했다. 그리고 후지마루의 4인실 446호에서 설레는 잠을 맞이 하였다.

크루즈 선박이기 때문에 숙식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상태와 수준도 상당히 높았다.

그리고 매일 저녁 6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의실에서 강연이나 공연도 있었다. 그 일정표를 남겨 두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기회였는데, 기록과 정리를 해두지 않은 것을 20년 지나서 후회하고 있다.


 

부산항을 출항하여 후쿠오카의 하카타 항에 12월 7일에 하선하였다. 육로로 탐사 연수를 진행하고 벳푸의 호텔에 숙박하였다.  12월 8일 저녁에 오이타 항에서 다시 후지마루에 승선하여 오사카 항으로 달려갔다.

이후 오사카, 나라, 교통 등지의 일정을 소화하고 11일 오사카 항을 출발하여 12일에 부산항에 도착하는 일정이 진행되었다. 길다란 다리 밑을 지나갈 때마다 나와서 구경하라고 방송을 하곤 하더라. 지도에 통과 시각을 모두 표시를 해주었네.

탐방 연수 안내 자료집에 실린 '탐방 코스' 지도이다.

 

후지마루의 전체적인 외관은 12월 8일 오이타 항에서 볼 수 있었다. 크루즈 선처럼 생겼다. 1989년에 진수하여 2004년의 모습이었으니 15년 밖에 안된 청춘이었을 것이다. 배가 반짝반짝 빛난다.



 

2004년 12월 7일 화요일의 일정이다. 하카타에서 출발하여 다자이후, 후나야마, 아소산을 답사하고 벳푸의 숙소에서 온천을 즐겼다.

 

12월 7일 8시에 후쿠오카 항에 도착하였다.

6시 30분부터 아침 식사, 8시에 하선하여 입국 수속을 받았다.

여권 한면에 통짜 VISA 스티커를 붙여준다. 그리고도 LANDING PERMISSION 스티커도 붙이더라. 90일을 체류할 수 있는 허가 스티커이다. 나갈 때는 DEPARTED 도장 하나 달랑. 일본은 들어오는 사람들은 까다롭게 걸르고, 나가는 사람들은 그냥 대충 내보내는 것이었을까.

여권의 이런 스티커, 도장이 재미있어서 이런 출입국 도장을 모아보자 했더니, 요즘에는 자동화되면서 도장을 안찍어준다. 여권의 페이지 숫자는 늘었는데 거의 공백이다. 공항으로 입국하면 비행기, 항구로 입국하면 배, 도로를 통해 입국하면 자동차 그림이 스탬프에 찍혀 있어 다양한 스탬프 모양을 모으는 재미가 있는데... 이제 안 찍어주더라.

 

8시. 후쿠오카, 하카타 항으로 후지마루 호가 접안하고 있다.

규슈의 북부 하카타 만에 접한 후쿠오카는 규슈에서 가장 큰 도시로 흔히 규슈의 수도라 불린다. 일찍부터 한반도와 교류하던 관문으로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다. 후쿠오카를 흔히 하카타라고 부르고 관공서와 상점에서 사용하여 외국인들을 혼동시킨다. 후쿠오카를 남북으로 관통하며 흐르는 나카 강 동쪽을 하카타(상인의 도시), 서쪽은 후쿠오카(무사의 도시)라고 불렀는데, 1889년 두 도시가 통합되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카타라는 옛이름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부두에서 우리를 현대 컨테이너와 분홍색의 예쁜 버스들이 기다리고 있다. 12호차가 어느 것이더냐...

 

9시 30분. 입국 수속과 버스 승차를 완료하는데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 것 같다.

 

9시 50분. 다자이후 太宰府는 후쿠오카 인근에 위치한다. 금방 왔다.

나당 연합군에 백제가 멸망(660)하자 '일본'이란 이름이 만들어지기 전인 왜의 제명 여제는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군사들을 이끌고 아스카의 도성을 떠나 九州에 도착했는데 병으로 죽고 그 아들 中大兄이 하카타에 전진기지를 세우고 170여 척에 배에 군사들을 싣고 백제왕자 부여풍이 달려갔고, 2년 후인 663년에 다시 2만7천여 명의 증원군을 파견했다. 금강 하구의 白村江 전투에서 대패한 백제광복군은 재기의 힘을 잃고 많은 유민들과 함께 규슈로 돌아온다. 백제 문화의 대량 유입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신라가 쳐들어올 것이 걱정되어 하카타 만 연안의 전진기지를 철수하고 방어에 유리한 내륙 쪽에 요새를 만들게 된다. 그것이 다자이후 大宰府 초입의 水城이다.

 

10시. 다자이후의 정청 터에 도착하였다. 주축돌과 몇 개의 돌기둥만이 남아 있다.

발굴 조사 결과, 大宰府의 신축은 白村江 전투 패배를 전후하여 시작되었고 일본이 국가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을 때 개축되었다가, 941년 스미토모의 난 때 타버린 것을 이후에 복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大宰府를 지키기 위해 쌓은 산성이 大野城과 基肄城이었다.  '조선식 산성'이라고 부르는 이들 성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산성으로 꼽히고 있다.

다자이후 정청 유적지에서 현장 학습 중인 선생님들.

 

다자이후 정청 유적지는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전시관 안에 보존되어 있는 遺構.

 

다자이후의 정청 유적지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水城이었을 것 같은데 이번 탐방 연수에서는 방문하지 않은 것 같다. 당시 다자이후에서 받아온 팜플렛 3장 중 하나이다. 지도 3번에 정청 유적지가 표시되어 있다. 6번이 미즈키, 수성 유적이 위치한 곳이다.

 

수성 전시관, 水城館 옆으로 수성의 유적지 보인다.

수성은 하카타 만에서 다자이후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접근로를 산과 산을 잇는 토성을 쌓아 막은 것이다. 수성의 길이는 약 1.2km, 기저부의 폭이 80m, 높이는 14m에 이른다. 지금은 묻혀 있지만 토성의 바다쪽에 폭이 60m에 이르는 해자를 설치해 물을 저장하였던 유구가 최근 발견되어 水城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입증하기도 했다.

수성의 다른 항공사진을 가져와보았다. 교통로의 개설이 이루어지면서 토막토막났지만 동쪽 부분은 꽤 많이 남아 있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산지에 大野城, 그 아래에 大宰府가 위치한다.

(출처: http://www.yasumaroh.com/2010/08/14/%E5%93%81%E5%B7%9D%E5%A1%BE%E8%AA%87%E5%A4%A7%E5%8F%B2%EF%BC%9A%E3%80%80%E3%80%8C%E6%97%A5%E5%87%BA%E3%82%8B%E5%87%A6%E3%81%AE%E5%A4%A9%E5%AD%90%E3%80%8D%E3%81%AF%E8%A6%B3%E4%B8%96%E9%9F%B3%E5%AF%BA-3/)


 

11시 40분. 에타후나야마 고분 江田船山古墳에 도착하였다. 일본의 전통 가옥과 문화를 보전하기 위해 고분군 사이에 肥後民家村을 만들어놓았다. 입구의 후나야마 고분을 살펴보고 민가촌 가운데 위치한 교류 광장에서 강의가 있었다.

 

船山 후나야마 고분은 후쿠오카에서 구마모토로 가는 중간에 江田川이 본류인 菊池川에 합류하는 지점에 여러개의 다른 고분들과 함께 위치한다. 5세기 후반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고분길이가 61m에 이르는 前方後圓식 고분이다.

1873년에 발굴되었는데, 결과 공개는 긴 시간이 지난 다음에나 이루어졌다. 고분에서는 집모양의 석관이 나왔는데, 석관 안에서 출토된 유물 중 대표적인 것이 청동거울(6개), 구슬(7개) 관옥(14개), 유리옥(90여 개), 갑옷(3벌), 칼(7개), 창신(4개), 철촉금동제관모(1개), 금동제관(3개 분), 금동제신발, 말재갈(2조), 금귀고리(2쌍), 금팔찌(1쌍) 도자기잔(1조) 등이다.

발굴하고 결과를 곧바로 발표하지 않은 것은 출토 유물 대부분이 고구려, 백제, 가야의 유물들과 유사하여 한반도에서 개척자들이 가져갔거나 이주한 개척자들이 만든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금동관모와 김동신발은 공주 무녕왕릉과 익산 백제고분 등에서 출토된 것과 똑같아 학계에 충격을 준 바 있다.

이들 유물은 일괄적으로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동경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에타후나야마 고분 앞에서 현장 학습 중인 선생님들.

 

肥後民家村 히고 민가무라(민가촌)에 입장하는 선생님들.

 

야외무대로 이용되는 교류광장에서 강의를 듣는 선생님들.

 

민가촌의 이모저모.

민가촌의 전통 가옥은 우리나라의 민속촌 가옥 처럼 그냥 만든 것이 아니라 각 지방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가옥을 선정해 이축복원, 즉 이곳에 옮겨와 복원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20년 전인 2004년에 받아 온 리플릿을 스캔해보았다. 

 

오후 1시 30분. 구마모토 시내의 모 식당에서 어떤 메뉴의 식사로 점심을 해결하였다고 한다.

구마모토 시내에는 일본의 3대 성의 하나로 꼽히는 구마모토 성이 있다고 하는데, 다음 기회가 가보기로 했다. 


2시 30분. 왔다. 阿蘇山 草千里 쿠사센리...

 

주차장 바로 앞으로 커다란 호수가 들어찬 넓은 분지가 보인다. 12월이었다. 이곳의 지명 草千里는 풀밭이 넓다는 것을 과장하여 천리에 이른다고 표현한 것이다. 푸르지는 않지만 풀밭은 풀밭이다. 아소산에 딸린 기생화산의 분화구였다.

 

아소산은 세계 최대의 분화구를 가진 복식 화산이다. 정상부의 6개의 크레이터가 존재한다. 살아 있다.

아소산 외곽의 동서 길이가 18km, 남북 24km, 둘레가 128km로 면적인 380제곱 킬로미터에 이른다. 화구에서 계속 분연을 뿜어내고 있는 이 화산은 용암 분출이나 대폭발은 없지만 중소 규모의 폭발은 자주 되풀이 되고 있다. 정상 광장에 오르면 둘레 4km, 깊이 100m에 이르는 밑바닥의 끓어오르는 모습을 살필 수도 있었다.

정상광장에도 주차장이 있는데 그곳으로 가질 않고 이 아래 주차장에 정차하고 내려 놓았을까...

언덕 위로 올라가 본다.

 

연기가 뿜뿜... 보고 있으니 좀 무서워지더라...

 

날 좋을 때인 4~11월 사이에는 이곳에 와서 말타고 놀 수 있는 승마클럽이 주차장 바로 옆에 있다. 2023년에 자료를 정리하면서 보니... 주차장 바로 옆에 화산박물관도 보인다. 그때는.... 머 했니!!!?

 

3시. 12호차.

 

오후 6시. 벳푸의 스기노이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식사하고, 쪽발이로 분장을 하고 온천 체험을 했다. 신발도 요상하게 생기고 짧아 불편해서 걷는 모양도 그들처럼 되더라. 굉장히 큰 호텔이었다. 욕탕과 숙소 사이의 통로가 매우 복잡하여 찾는데 애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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