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에 식사. 근사한 식당이다. 숙소를 참 좋은 곳으로 잡은 것 같았다. 식당이 멋있어서...^^
9시반에 출발한다고 하여 시간 여유가 생겼다. 잠시 하늘을 날아보았다.
햇살이 강하여 피라 마을 쪽은 거의 구별이 안된다. 드론의 카메라가 촛점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더라.
Athinios 방면의 '산토리니의 하트' 주변이 아닐까 한다. 태양신 헬리오스, 당신이 이겼소.ㅠ.ㅠ
방향을 돌렸다. 칼데라 복판의 네아 카메니 섬, 그 왼쪽의 팔라이아 카메니 섬이 보인다. 모두 무인도이다. 그 뒤로 테라시아 섬이 보인다. 이아 마을에서 페리로 연결되는 섬이다.
테라시아 섬까지 날아가볼까 했는데 거리가 6km가 넘더라. 자그마한 꼬맹이 드론으로는.... 가도가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것 같아 귀환시켰다.
하얗게 빛나는 건물들. 지난 밤을 신세진 숙소. 사진 오른쪽 아래의 건물들이 우리 숙소였다. 왼쪽 아래 숙소가 더 좋아보인다.ㅎㅎ
피라 마을 쪽을 다시 살펴본다.
이아 마을을 다시 한번 본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으랴...
화장실 물품 세트가 이렇게 깔맞춤 되어 있다. 좋은 숙소였다. 별이 다섯 개.
셀피 사진을 찍는 방법.
숙소를 출발하여 남쪽 능선 반대편에 위치한 아크로티리 유적지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걸어서 레드 비치의 절경을 감상하였다. 산토리니의 새로운 명소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는 '산토리니의 하트'를 들러보았다. 근사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이동하여 아테네로 날랐다. 산토리니와 이별했다.ㅠ.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동네의 길가에 보이는 식물들. 포도이다. 산토리니가 포도 및 와인으로 유명한데, 바람이 워낙 강하여 지지대를 세워 덩굴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땅바닥에 그냥 둔다고 한다.
땅바닥에서 열리는 포도라니... 신기하다.
9시 38분. 아크로티리 유적지에 도착하였다.
입장료는 12유로. 우리나라의 두, 세 배는 받아가는 듯하다.
아크로티리 유적지. 보존을 위한 조치가 아주 잘 되어 있다.
현재는 육지 안쪽에 있지만 아크로티리 유적지는 산토리니 섬의 남쪽 해안에 위치하던 항구도시였다. 지형 변화에 의해 오른쪽 지도의 색칠한 부분이 당시에는 바다였던 것이다. 에게 해의 복판에 위치한 산토리니는 주변 여러 지역과 교역을 통해 성장하였다.
이 지역의 주거 유적은 신석기부터 나타난다. 이후 청동기 시대에 도시로 성장하였다. 에게 해를 넘어 동부 지중해 전역과 교역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시에 다양한 시설이 남아 있으며 상하수도 시설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BC 17세기의 지진으로 파괴된 도시를 복구하여 붕괴 전보다 더 진보된 도시를 구축하였다. 부유한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자신의 주거지를 그림 등으로 장식하려 했던 모습이 드러난다. 17세기 말에 닥친 강력한 지진과 화산 폭발에 따른 엄청난 화산재와 부석에 매몰되면서 아크로티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이곳이 다른 화산재에 의해 매몰된 지역과의 차이점은 시신이 발굴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폼페이 같은 경우에는 갑자기 재앙이 닥치면서 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아크로티리 지역의 경우에는 사전에 심각한 전조 증상이 계속되자 주민들이 심각성을 인지하고 사전에 모두 탈출하였던 때문으로 해석된다.
발굴 작업을 보여주는 사진들. 그리고 발굴된 유물들을 정리하여 박물관에 전시된 과정까지 볼 수 있다.
수천년 간 매몰되어 있던 유적지의 지표가 서서히 침식되면서 유적의 일부가 드러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1967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에서 아서 에번스가 저지른 것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서둘지 않고 서서히 계속되고 있다.
유적지 모형.
천장을 만들어 유적지를 보호하는 한편 관람객들의 편의를 극대화한 야외 유적지라고 보인다. 또한 곳곳에 사진과 그림, 지도를 포함한 설명 자료를 게시하여 관람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 노력한 점도 매우 긍정적으로 판단되었다. 관람 동선도 잘 정비되어 있다. 모범적인 유적지가 아닌가 한다.
계단의 벽을 따라 인체 크기의 벽화로 장식되었던 곳. 복원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봄의 프레스코'화가 발견된 부분.
중앙 부분에서 유적지 일부 구간을 방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 차단하기도 한다. 거꾸로 일까?
도기가 여러 점 발굴된 동부 섹터.
다양한 도기들. 채색이 이루어져 있다.
서부 섹터의 전형적인 가옥인데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하였다. 내부에서 화장실도 발견되었다.
벽화의 세세한 묘사와 색채의 사용이 상당히 뛰어나다. 아크로티리가 해안선에 바로 인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의 바닥에 매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보존될 수 있던 작은 산양 모양의 금 조각상. 아크로티리에서 발굴된 유일한 금붙이이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산토리니 선사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프레스코화들은 아테네의 국립 고고학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미노아 문명의 한 단면을 살펴본 듯 하다.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전에서는 궁정의 높은 사람들의 터전, 이곳 아크로티리에서는 일반인들의 삶터를 엿보았다 할 것이다.
11시. 관람을 마치고 나와 인근에 위치한 자연 속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500m? 걸어간다.
해변가 식당에서는 고기가 숯불에 익어가고 있다. 맛있겠다.
해안 가까이에 솟은 산지에 드러난 기반암이 온통 붉은 색이다. 적색사암?
티라 당국에서는 위험하니 올라가지 말 것을 권한다.
살짝 돌아가면........ 빨갛다. 그래서 '레드 비치'이다.
그 앞에 앉으니 옷도 뻘겋게 변한다.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요트를 장만하여 이런 조용한 바닷가에서 시간을 즐긴다. 부럽다. 많이 부럽다.
뜨거운 햇볕을 계속 받으면서 암석 내부에 있던 물질이...................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돌담이 산지를 가로질러가고 있다. 어떤 기능을 갖고 있을까?
도로 공사를 하면서 드러난 노두. 아크로티리에 재난을 가져왔던 물질들.
11시 35분. 버스에 탑승하여 아크로티리를 떠난다.
11시 54분. 예정되어 있지 않았던 '산토리니의 하트'를 방문한다.
이렇게 바다의 모양이 하트가 된다는 것인 줄 알았는데...
화산재 퇴적층이 풍화되면서 형성된 구멍이었다. 촬영자가 예리하게 잘맞추면 어찌 하트 모양이 나올 것 같기도 하다.
일행 팀의 하트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12시 20분. 버스 출발.
12시 25분. 식당 도착. 근사한 식당이다. Garden Restaurant이다.
식당의 전망도 기가 막히다.
구운 돼지고기를 종이호일에 싸서 접시에 담았다. 육향을 그대로 가져왔다. 맛있다.
식사 후 가이드가 전하길 여기 직원이 드론을 해도 된다 하더라고 하더라. 공항에 가까운 곳이라 안될텐데 왜 해보라고 하는 것이지 하는 의문을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띄워 보았다.
역시나 당장 착륙하라고 하면서, 안하면 99초 내에 강제 착륙시키겠다는 메시지가 조종기 화면에 뜨더라. 좀 황당했다. 역시 그냥 하지 말아야 하는 곳에서는 누가 뭐라 꼬득이더라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
1시 6분. 버스 탑승 후 출발.
1시 21분. 공항 도착.
체크인 후 바로 보안검색대로 갔다. 걸렸다!!! 나오란다!!!
손바닥과 옷, 가방의 안과 밖 몇 곳을 시약이 묻은 검사지로 툭툭 건든다. 그리고 검사기로... 가라고 하더라.
그리스에서 두번 걸렸다. 간이 ETD 검사라는데, 무작위로 실시한다. 그리스 국내선을 세번 이용했는데 두번 걸리니 좀 찜찜하다.
4번 게이트에서 대기하다가 3시에 탑승하였다.
AIRBUS A320-200 비행기. 20E,F 좌석.
3시 25분. 이륙하여 아테네로 쭈욱 날아갔다.
4시. 아테네 공항 착륙.
아테네에 도착해 숙소에서 쉬면 되는 일정만 남았다.
4시 49분. 버스 탑승. 공항 주차장의 차량 정체.
아테네 시내의 도로는 도로는 좁고, 정체도 엄청나다.
5시 47분. 근대 올림픽 경기장 앞을 지난다.
6시. 아크로폴리스 아래 위치한 호텔에 도착하였다.
호텔도 유적지 위에 올라타 있다. 지하실을 발견된 유적 보전 시설로 만든 것이다. 서울시 종로구의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생각났다.
2024년이다. 5월달이다. 23일이다. 목요일이다. 산토리니를 가는 날이다!!!!!!!!!!!!!!!!!!!!!!!!
5시 반에 기상하여 6시반에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모두 챙겨 7시 15분에 호텔 로비에 집합하였다.
7시 28분. 항구에 도착하여 하차.
7시 35분. 표를 받았다. 승선한다. 지정좌석제. 109, 110B 좌석에 나란히 앉아 날아간다.
8시. 출항하여 날아간다. 크레타를 두고 달린다.
쾌속선인데 의외로 롤링이 심했다.
서양 젊은이들 참 약하더라. 여기저기서... 음. 승무원이 아예 봉투를 나누어준다. 한 사람이 서너개씩 챙기기도 한다. 이런!
여기저기서 불편한 그것을 하는 소리, 냄새가 진동한다. 승무원이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수거하러 다닌다. 장난아니다. 화장실 앞에는 널부러진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줄을 "서"지 못하고 바닥에 "늘어져" 있다. 이런!
점차 배가 안정되고 사람들도 안정되더라. 나중에 크레타 섬에서 산토리니 섬까지의 항해 궤적을 보니 이렇다.
편서풍이 심해 배가 많이 흔들렸던 것이었고, 북서쪽으로 틀어서 항해하다 북동쪽으로 바람을 타고 항해하면서 배의 흔들림이 줄어들었던 것은 아닌가 한다. 중간중간 조금씩 끊어지기는 했어도 좌석이 선실 안쪽이었음에도 GPS 궤적을 그래도 잡아냈다. GPS data logger가 이번에도 일을 해주었다.^^;
10시 43분. 산토리니 신항구에 도착하였다. 사람들이 부지런히 하선한다. 하늘 참 파랗다. 바다도 그렇다.
짐을 던져 놓고 터미널의 화장실부터 찾는다. 1인당 1유로를 내라 한다.
산토리니 섬의 생활 터전은 절벽 윗쪽에 주로 위치한다.
해안에서 절벽 위의 도로까지 꼬불꼬불 오르는 버스들이 힘겨워 보인다. 나중에 보니 이러한 경사지의 급회전 구간에는 늦게 진입하는 차가 한참 전에 정차하여 먼저 진입해 회전하는 차량이 쉽게 빠져나가도록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산토리니 신항구에 하선하여 버스로 환승해 '이아 마을'을 먼저 방문하였다. 점심 식사를 하고 마을과 섬, 바다 경관에 빠졌다. 버스로 피로스테파니 마을에 하차하여 피라 마을까지 도보로 이동하면서 산토리니를 즐겼다. 저녁 식사 후에 아크로리티 방면의 숙소로 이동하였다.
산토리니의 4개 마을 중에서 이메로비글리 마을을 빠트렸다. 패키지 여행이라 어쩔 수 없다. 다음 기회에~
티라 섬이라고도 하는 산토리니 섬은 에게 해 남쪽에 자리잡은 작고 둥근 모양의 화산 군도이다. 키클라데스 제도의 최남단에 위치하는 산토리니는 발칸 반도의 그리스 본토에서 약 200km 정도 떨어져 있다.
BC 16세기를 전후로 발생한 강력한 화산 폭발로 섬의 중간 부분이 사라져 형성된 크레이터이다. 바닷물이 채워지면서 산토리니는 초승달 모양의 섬이 되었고 크레이터의 안쪽에 해당하는 서쪽은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동쪽은 경사가 완만하다.
(M. Vespa, et. al., 2006, Interplinian explosive activity of Santorini volcano (Greece) during the past 150,000 years, Journal of Volcanology and Geothermal Research, 153, p.264.)
해저의 지중해 바닥의 모습까지 함께 살펴보면 이런 모양이 된다.
(Nomikou P. & Vouvalidis K. & Pavlidis S., 2019, The Santorini Volcanic complex, Pre-Conference Field Trip Guide of the IAG RCG2019 – Regional Conference of Geomorphology, p.1)
11시 48분. 주차장에 하차하여 이아 마을을 향해 걸어간다. 사람들이 넘쳐난다. 하늘은 시리도록 파랗다.
이아 마을의 좁은 골목이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지구 사람들이 다 여기 모인 것 같다.
이아 마을의 만남의 광장인 파나기아스 아카티스토스 찬송 정교회.
하얀 건물, 파란 하늘, 뜨거운 태양. 지중해다.
지중해의 이아 마을이다.
성모 승천 교회.
또...
이아 마을, 여행자들.
이아 마을은 아르메니 만에 연해 있다.
이아 마을의 만남의 광장인 파나기아스 아카티스토스 찬송 정교회.
피라 마을은 공항에 가까워서 안되고 이아 마을에서는 드론이 가능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그리스로 날아왔다. 오메~
'드론 금지' 표지판에만 신경쓰고 있었는데 그 위로 "여러분에게는 휴양지이지만, 우리에게는 집이다. 여러분을 환영하지만 우리 이아 주민도 존중해달라."는 애처로운 게시판도 있었다.
검색해보니 이렇게 생긴 것이었다.
1시 식당에 도착하였다. 옥상 자리로 올라간다. 기가 막힌 곳이다. 따봉~!
마시따!
식당 전망. 왼쪽에 보이는 섬이 시키노스 섬, 오른쪽에 보이는 섬이 호라 섬이다. 호라 섬에는 호메로스의 무덤이 있다.
산토리니 여행 사진이라 하면 꼭 등장하는 명소이다. 아기오스 니콜라오스 교회.
하이얀 건물들 사이로 파아란 머리를 가진 교회의 돔형 지붕들이 도드라져 보인다.
ㅠ.ㅠ.... 다음에는 제대로......
예쁜 '이아 마을의 풍차'.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마을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화산이 뻥 터져서 살던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시간이 흐르고 나니 다시 사람들이 찾아들어와 이렇게 삶터를 이루고 있다. 바다에서의 어업, 육지에서는 포도 재배가 유명하다. 화산재가 비옥한 토양이 된다 하니 화산이 터짐으로써 많은 인명 피해가 있겠지만 그 이후에는 또 인류 번영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신항구를 향해 날아들고 있는 쾌속선. 바다가 아주 파아랗다.^^
이아 마을의 풍차를 배경으로...
나도!
이아 마을 남쪽 끄트머리 곶 부분에 '이아 성'이 있다.
4시 20분. 이아 마을을 떠나 피로스테파니 마을로 이동한다. 피라 마을까지 도보로 이동하면서 산토리니를 즐긴다.
4시 50분. 피로스테파니 마을의 아기오스 게라시모스 교회. 이곳에서부터 피라 마을 방면으로 걷기 시작했다.
북쪽으로 보이는 이메로비글리 마을. 산토리니 섬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360m 정도에 이른다. 마을 앞쪽으로 보이는 톡 튀어나온 바위는 '스카로스 바위'. 화산 분출물인 '스코리아'이다.
화산 위에 달라붙은 마을은 봐도봐도 신기하다.
건물 옥상에 배 한척이 올라와 있다.
크루즈가 입항하고 있다.
피라 마을.
가까이 가보자. 아니 확대해보자. 마을 아래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구항구에서 나귀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다. 사진 왼쪽으로 살짝 케이블카 시설도 보이기는 한다.
나귀를 타지 않고 걸어서 오르는 사람들도 있다. 대단하다.^^
피라 마을의 랜드 마크, 주교좌 대성당.
랜드마크.
산토리니 구항구와 피라 마을을 연결하는 케이블 카.
피라 마을의 꽃길.
피라 마을의 쉬어가는 길.
피라 마을에서 썬탠하는 길.
급경사 아랫쪽에 위치한 가옥은 이렇게 대문만 만든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집은 대문이 이렇게 된다.
걷다가 힘들면 앉으면 된다.
저 뒷쪽 도로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으나 아랫쪽은 좀 한갓지다.
아이 ♥ 싼토리~니.
누구 똥이 굵은가?
6시 반. 피라 마을의 식당에서 식사.
8시 10분. 식사를 마치고 이동한다.
해가 넘어간다. 8시 20분에야 해가 넘어간다.
9시. 숙소의 객실이 '피라 마을 뷰'이다. 피라 마을과 구항구 사이의 케이블카와 계단, 그리고 크루즈 선박의 조명이 멀리 보인다. 나름 야경이라고...
객실에 생수와 함께 와인 한병이 얼음 속에 쉬고 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O^
호텔 길 건너쪽에 작은 키오스크가 있는데 지붕에 "CANDIA"라고 써 있다. 맥주 광고판이다. 그리스는 오랜 기간동안 로마,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아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칸디아'라는 것도 이탈리아 인들이 크레타를 부르던 이름이었다. 그것을 그냥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을 수백년 지배했던 이들에 대한 심리적인 반감이 없는 것 같았다. 그냥 그것 자체가 역사라서 그런 것인지...
숙소가 시내 한복판에 있어 완벽한 '시티뷰' 객실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들 옥상에 굴뚝이 많이 보인다. 아직 난로, 화덕 혹은 화로를 사용하는가???
크레타에서 하루를 보내는데 일정은 간단했다. 크레타 문명, 미노스 문명, 미노아 문명의 유적지를 모두 돌아보며 공부하는 것은 짧은 일정으로는 곤란하다.
그래서 대표적인 유적인 크노소스 궁전을 방문하고, 크레타에서 출생하여 세계적인 작가가 된 니코스 카잔자키스 박물관과 무덤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미노스, 미노아, 크레타 문명의 정수를 모아놓은 고고학박물관을 방문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크레타 섬의 기반암이 거의 석회암이라 석회동굴도 곳곳에 유명한 곳이 많은데, 한군데도 가보질 못하고 크레타를 떠나야 했다. 오마로스 폴리예 같은 지형도 보질 못했다. 사마리아 협곡 같은 절경 근처에도 가보질 못했다. 그렇다. 여행사 패키지 상품이었다.ㅠ.
크레타는 그리스의 13개 주 가운데 하나이며 가장 큰 섬이다. 지중해 전체에서는 5번째 크다. 고대 그리스 청동기 시대의 시작이 이곳 크레터에서 이루어졌다. 미노스 왕의 궁전이 유명하여 크레타 문명이라는 이름 이외에 미노스 문명 혹은 미노아 문명이라고도 부른다.
일찍부터 인류의 정착지로서 중요한 요충지에 위치하여 미노아 시대의 크노소스와 파이스토스 유적, 고르티스 유적, 하니아 항과 베네치와 옛 도시, 레팀노의 베네치아 성과 사마리아 협곡 등 다양한 유적이 있어 관광지로 유명하다. 수백년 간 이 섬은 이탈리아 이름인 '칸디아'로 알려졌는데, 크레타 섬의 수도인 이라클리온의 중세 명칭이 '칸닥스'에서 나온 것이다. 흔히 '크레타'라고 부르는 이름은 고전 라틴어에서 나와 영어권 및 라틴 문화권에서 통용화된 것이다. 튀르키예에서는 '기리트'라고 부르고 있다.
에게 해 일대의 고대 문명들. 육지의 토지가 비옥하지 않아 충분한 식량을 얻기 어려워 일찍부터 해양을 통해 교류하고 교역을 하면서 각자의 장점을 받아들여 해양 문명을 꽃피웠다. 에게 문명은 전기에는 크레타, 후기에는 미케네 문명으로 나뉘어진다.
BC 30~14세기에 크레타 섬에서 번성하였는데, 동지중해 가운데 위치하여 오리엔트의 앞선 문명, 즉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서양 최초의 해양 문명을 완성한 것이다. 그렇게 크레타의 청동기 문명이 시작된 것이다. BC 20세기 경 크노소스를 중심으로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졌으며, 섬 전체에 지배권을 확대한 미노스 왕이 유명하다. 크노소스 궁전을 비롯한 많은 궁전을 건축하였으나 BC 17세기의 지진으로 대부분 붕괴되었다. 곧 새로운 궁전들을 건축하면서 이후 2세기에 걸쳐 전성기를 이룬다.
한편 그리스 본토에서는 BC 20~16세기 사이에 북쪽에서 남하한 이들이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자리를 잡고 미케네, 티린스, 필로소 등의 소왕국을 형성하였는데 미케네 왕국이 가장 강성하였다. 이들은 서서히 세력을 키워 BC 15 세기에 크레타 섬을 침략하였고, BC 14세기에 크레타 문명은 파괴되고 만다. 그리고 크노소스를 비롯한 각지의 궁전은 모두 약탈 당하고 파괴되었다.
미케네는 크레타 문명을 흡수하여 지중해의 여러 세력을 모아 해상 문명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미케네의 해상 활동을 하고 나선 세력이 트로이였다. 그래서 둘이 한판 붙은 사건이 트로이 전쟁이었다. BC 1193년의 일이었다.
조용한 지중해의 아침이다. 6시 기상, 7시 아침, 9시 출발...
그리스 일정 중 처음으로 같은 호텔에서 연박을 한다. 아침에 부랴부랴 짐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것이 너무 좋다.^^ 이틀 숙박이 이러할진데 1주일, 보름씩 같은 숙소에 지내면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꼬...
그런데 내일은 아침 7시 20분에 짐을 다 챙겨 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여 김을 팍 새게 한다. 아! 쫌!!
9시 20분. 크노소스 궁전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크레타에는 큰 궁전만 네 곳이란다. 그 중의 하나 크노소스만 방문한다.
그리스 유적지의 입장권은 참 그 맛이 없다. 어느 나라든 대부분 유적지 입장권은 그 유적지의 특징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그림 등을 넣고 있다. 헌데 그리스는 QR 코드가 다 이다. 자기들의 업무처리 용도일 뿐 유적지를 비용을 내고 방문해준 관광객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해외 여행을 하면서 입장권을 가능하면 모아오고 있는데 그리스는 의미없다. 에효~
유적지와 궁전의 복원의 4단계? 유적을 여기저기 더 많이 복원하였다는...
크노소스 학술 위원회에서 많은 일을 했다고 한다.
크노소스 궁전 유적지의 문제점은 초기에 너무 일찍 현대적으로 복원시켜 놓아 원래의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질 못하고 있단다. 그래서 마음놓고 더 '복원'에 매달리는 것인가???
크노소스 궁전 유적지의 서쪽 출입구로 입장하여 한바퀴 돌았다.
9시 30분. 크노소스 궁전 유적이다. 사람들이 아주 많다.
크노소스 궁전 유적지 발굴을 주도한 아서 에번스 경의 동상이 한켠에 있다.
쿨루라(kouloures)는 파이스토스(Phaistos), 크노소스(Knossos), 말리아(Malia)의 미노아 궁전을 포함하여 고대 크레타 섬 내의 특정 정착지에서 발견되는 돌담이 있는 원형 지하 구덩이를 가리킨다.
1903년 크노소스 유적을 발굴하던 아서 에번스 경이 구덩이 모양이 둥근 그리스 빵과 비슷하다며 그 빵의 이름을 유적지에 가져다 붙인 것이다.^^ 도대체 당시에 이런 구덩이를 왜 만들었을까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대체로 곡물창고의 기능을 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줄지어 크레타의 미노스 문명 속으로 들어가보자.
크노소스 궁전의 북쪽 기단 부분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확인할 수 있는 크노소스 궁전의 예상 복원도이다.
BC 20~17세기 경에 건설된 것으로 알려진 미노스 왕의 궁전이다. BC 17세기에 지진 등에 의해 붕괴된 후 BC 15세기 경에 규모를 확장해 이전보다 더 큰 궁전을 지었다.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이 이 두번째 궁전이다. 동서 170m, 남북 180m 정도의 장방형 구조이며 크레타 문명의 다른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장방형의 중앙 정원을 중심으로 수많은 작은 방들이 둘러싸고 있다. 계단과 회랑이 많은 구조인데 경사지를 활용하여 1,500개가 넘는 방들을 건축하였기에 더욱 건물의 구조는 복잡해졌다. 그래서 '미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수많은 방들에는 환기와 채광 시설, 상하수도, 욕조가 딸린 욕실, 수세식 화장실, 베란다, 물저장 탱크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수천 년 전에 그러한 시설을 고안하여 설치하고 있었다는 문화 수준이 감탄한다. 궁전의 서쪽은 주로 신전으로 활용되었고, 왕궁의 용도는 동쪽에 집중되었다.
크노소스 궁전의 발굴을 1878년에 골동품에 관심이 많은 한 사업가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이후 체계적인 발굴 작업이 1900년 아서 에번스에 의해 시작되었다. 2년 만에 왕궁의 발굴 작업은 거의 완료되었다. 그런데 발굴하고 보니 땅속에서 드러난 유적지의 유물들이 쉽게 풍화될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아서 에번스는 아주 튼튼하게 복원을 했다. 콘크리트를 사용해서 보강한 것이다. 그런데 보강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원래 이렇게 생겼었을꺼야 하고 상상하는데로 콘크리트를 칠해버린 것이다. 나중에서야 잘못 해석된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 드러났지만 이미 콘크리트가 되어 되돌릴 수 없게 된 것이다. ㅠ.
(출처: 유적지 안내판의 설명 자료. 왼쪽 사진이 원래 상태였는데, 콘크리트의 도움으로 오른쪽 모습으로 만들었다.)
콘크리트로 보강하고 나무 구조물인 것 처럼 페인트를 칠하면서 "복원"한 크노소스 궁전. 잘 했어요. 아서 에번스~
그런데 콘크리트 부분이 부식되면서 내부의 보강재인 철근이 드러나는 부분도 있다. 불량 시멘트를 사용했나 보다.ㅠ.ㅠ 석재와 목재로 된 부분이 콘크리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건물이 붕괴될 위험에 있어 서둘러 보강 공사를 해놓기도 했다.
회랑의 서쪽 돌출 현관 일대의 유적이다. 석재를 사용하였기에 벽의 두께가 두껍다. 그러면서도 방 하나 하나의 크기는 작다. 당시의 건축 기술로는 이러한 방식으로 밖에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지하나 반지하에 수많은 방과 통로를 배치하여 빠져나오기 어려운 구조인 미로(迷路) 혹은 미궁(迷宮: labyrinth)은 이집트 12대 왕조 아메넴헤트 3세가 최초로 건축했다고 한다. 지중해 무역을 하며 이집트의 문물을 전해 받은 미노스 왕은 아테네 출신 다이달로스(Daidalos)에게 궁을 짓도록 했다는데, 당시의 건축 재료와 구조 상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면....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서 매우 섭섭하다. 하여 역사에 신화가 스며들었다.
미노스 와의 왕비 파시파에가 매우 음탕하여 황소와 관계한 후 머리는 소, 몸은 사람인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를 낳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감추려고 미궁을 짓게 한 것이라는 것이다. 말이 되는가? 하지만 신화 속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래서 그렇게 되었다.
크레타 보다 국력이 약했던 아테네에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인신공양을 하도록 했는데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의 왕자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달아나자 미궁을 만들었던 다이달로스를 미궁에 가두었다. 다이달로스가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날개를 만들어 달고 날아가다가 아들이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파생되고, 테세우스가 크레타의 공주인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갈 듯 하다가 낙소스 섬에 두고 귀환하면서 배에 검은 돛을 달아 아버지 Aegeus가 바다에 투신, 그 바다 이름이 에게 해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나이든 테세우스의 아 히톨리포스와 새엄마 파이드라 사이에 그렇고 그런 일이 생겨 이러한 비정상적인 관계를 Paedra Complex라 하게 되었고, 이를 재해석한 그리스 영화 "페드라"가 세계적으로 대박 났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죽어도 좋아"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상영되었다.......음... 머 그렇다.
그렇게 정신이 없던 와중에 또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일이 생겼으니...
공작새 여러 마리가 울어대는 것이었다. 이제는 이들이 미노스 문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크노소스 궁전의 건축 양식 중 무게를 지탱해주는 기둥들의 모양이 일반적으로 보던 것들과 많이 다르다. 위가 굵고 아래가 가늘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크레타 만의 독특한 양식이다.
이 콘크리트 보강을 통한 수천 년 전의 유적 복원이라는 아이디어는 진짜 해도해도 너무했다.
크노소스 궁전에는 멋진 벽화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도 또 유명하다. 벽에 석회 칠을 한 뒤 석회가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서 물감이 자연스럽게 벽에 스며들게 하는 기법을 이를 프레스코화(Presco)라고 한다.
프레스코 기법은 이후 널리 유행하여 중세 유럽의 대부분 궁전, 성당의 천정과 벽화가 프레스코화로 제작되었으며, 중국·한국·일본 등 아시아 각국에서 그려진 불교 벽화들도 프레스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궁전에서는 여러가지 저장을 위한 커다란 도자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도공의 작업장도 있다.
중앙 정원에 사람들 다 몰려 있다. 게다가 줄을 서 있다. 왕의 알현실에 왕좌가 남아 있는데 그것을 직접 보기 위해 줄서 있는 것이다.
독특한 양식의 멋진 다양한 프레스코 화들이 궁전의 여러 방벽을 장식하고 있다. 그리스 문명에서는 소가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미노타우로스 이야기, 투우하는 장면을 묘사한 프레스코 화, 여러 곳에 등장하는 소 머리 상 등... 올림포스 신화 속의 신들과 관련된 이야기에도 소가 많이 등장한다.
프레스코화가 많이 남아 있는데, 누구를 그린 것인지 어떤 직종의 사람들인지 조차 불명확하다. 알려진 개인 초상화도 없다. 그냥 불특정한 상류층 여성을 그린 것이다 하는 정도의 그림. 빠리 스타일의 머리 장식이라고 '르 파리지앵'이라 한다.^^
'황소 뛰어넘기'를 하는 남녀. 왼쪽의 여성은 황소의 두 뿔을 잡고 있다.
프레스코화가 오래 보존되기는 하지만 수천년 전의 것이 현재 보는 것처럼이 색이 뚜렷하지는 않았다. 후대에 대부분 복원된 것이다. 95% 정도가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복원된 것이라..... 그래서 사실 고증에 맞지 않다는 비판도 많다. 아서 에반스가 스위스 예술가 에밀리아 길레론에게 벽화 복원을 맡겼는데, 이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성을 발휘하여 마음대로 뜯어고친 것이 많다고 한다. 원숭이였는데 소년으로 바꾸고, 풍경 속에 사람을 그려넣고 하는 등등...^^;
비바람으로부터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 되어 있다. Phase IV??
복잡한 계단을 통해 연결되는 '중앙 법정'.
법정을 통해 여러 방향의 방들로 연결된다. 궁전과는 직통으로 연결되고. 무게를 지탱하는 기둥들의 모습은 역시나 위가 굻고 아랫쪽이 가늘다. 독특하다.^^
중앙 법정의 동쪽 건물에는 계단이 많다. 'Grand Staircase'.
'양날 도끼의 성지, Shrine of the Double Axes'.
양날 도끼는 그리스 신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미노아 문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크레타에서 양날 도끼는 종교적 제의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나비 모양의 도끼는 탄생, 죽음, 재탄생과 연관되는 것으로 여겼다.
크노소스 궁전의 핵심 '왕의 거실, 양날 도끼의 홀'을 구경하려는 인파.
독특한 장식의 도자기들로 채워진 저장고.
왕좌가 있는 알현실을 구경해보려는 인파.
돌로 만든 의자이다. 상당히 불편해 보인다. 양옆으로 역시 돌로 만든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맞은 편에도 돌로 된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위로 뜷려 있어 자연 채광 및 환기가 이루어진다.
크노소스 궁전 유적지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소를 숭배하여 많은 유물을 남겼다. 제대로 된 원본 그림은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우리는 사진을 남겼다.
'극장' 자리. 자그마하다.
쭉 뻗은 '로얄 로드'.
크노소스 궁전과 주변 지역의 상상 복원도이다. 궁전에 남아 있는 저장소 등을 토대로 당시 인구를 3만 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11시 35분. 출구 옆의 화장실로 달린다. 크레타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다. 그런데 화장실은 한 곳이고 시설 규모도 너무 작다. 줄, 특히 여자 화장실의 줄이 어마어마무시무시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생가 박물관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버스에 탑승해 달린다. 너무한다! 조르바!!
카잔차키스 무덤의 비석에 "나는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고 한다. 저기요~ 우리는 화장실을 원해요. 우리는 무지막지하게 길게 늘어선 화장실 앞의 줄을 두려워해요~ 화장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요~
12시 6분. 그리스가 낳은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 마을에 도착했다. 생가를 박물관으로 개조했다. 동네 건물의 벽에 그의 그림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그의 육필 원고.
두번째 부인. 엘레니 사미우.
서가에 전시된 책들 중에는 한글로 번역된 책들도 있다.
1955년에 함께 사진을 남긴 친구 슈바이처.
슈바이처 사인.
영상실에서 그에 대한 다큐 영화를 감상하였다. 한글 자막 있다.
그의 시절 지도가 보였다. 'Candia'라고 되어 있다.
12시 59분.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을 출발하였다.
1시 40분. 바닷가의 시원한 식당 '와인과 바다'에 도착하였다. 식사 이후 헤라클레스의 이름을 딴 도시 이라클리온의 시내 답사를 진행하였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2시 53분에 '니코스 카잔차키스 스포츠단지'에 도착했다. 옆길을 통해 동산 위로 걸어 올라간다. 좀 햇살이 뜨겁다.^^
작은 동산 위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가 위치한다.
유명한 묘비명 "나는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는 생전에 자신이 직접 남긴 것이라 한다.
주변을 산책하면서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세상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남쪽으로 멀리 크레타에서 가장 높은 산인 프실로리티스 산이 보인다. 그렇다고 하자....
오후 3시. 니코스 카잔차키스 무덤을 떠난다. 햇볕이 참 많이 아주 강렬하게 따숩다. 지중해다.
3시 17분. 버스 하차. 고고학박물관 인근의 카페로 일행을 이끈다. 날이 아무리 더워도 "아!아!"
3시 58분. 고고학박물관으로 재충전된 일행들이 입장하고 있다.^^
입장료는 12유로였었다.
미노스 문명은 도자기 기술이 뛰어났다고 한다.
미노스 문명은 금속 세공 기술이 아주 뛰어났다고 한다. '벌 펜던트'.
'파이스토스 원반'. 찰흙판에 필기도구로 그린 것이 아니라 크레타의 원시 상형문자가 새겨진 도장 같은 도구로 찍어낸 것이라서 일종의 인쇄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인쇄물?
소머리 모양의 술잔. 왼쪽 부분은 복원한 것이다.
대지모 여신상과 뱀의 여신상. 뱀은 풍작을 상징하였다.
크레타의 문자...
'라일락의 왕자' 프레스코화.
'파란색 아가씨들'
BC 2세기~2세기 사이의 동전들. 당시 부호의 은닉 재산. 아주 잘 숨겨두어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고고학 박물관 뒷편에도 발굴 작업을 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유적지의 발굴을 피하면서 건축을 하기가 아주 어려운 동네인 크레타.
5시 40분. 사자 광장의 모로지니 분수. 분수대에 사자 장식이 되어 있다. 그래서 사자 광장인 듯하다.
다이달로스 거리. "나는 자유다."^O^
테오토코폴로스 공원에 '엘 그레코'의 동상이 있다. 그런데 낙서 장난이 좀...
엘 그레코는 스페인에서 활동한 그리스 화가이다.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 공원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엘 그레코'는 스페인 말로 '그리스 사람'이란 뜻이란다. 근세 스페인을 대표하는 3대 화가 중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 왔다고 하여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고 그냥 그는 '그리스 사람'이었을 뿐이었나 보다.
관청으로 이용되고 있는 '베네치안 로기아'.
성 티투스 정교회 성당.
촛불을 하나 봉헌하는...
정교회 성당은 신자들이 앉는 세상과 신의 세계 사이가 구분되어 있다. 예배가 있을 때만 두 세계 사이의 문이 열린다.
성당 옆의 작은 분수대에서 놀면서 '자유 시간'을 자유롭게 보냈다.
6시 50분. 식당에서 조용히 저녁을 모셨다.
식사 후에 여행사 가이드가 전하더라. 지나던 주민이 식사를 위해 들어오려다 정원에 단체객들이 있는 것을 보고 걱정을 했단다. 다행히 나갈 때까지 단체 여행객들 답지 않게 소란스럽지 않아 그 손님이 만족스러워 했다고 주인이 만족스러워 했다고...우리 일행도 소고기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어 만족스러웠고...^^
길가의 식당들 중 일부에 붙어 있는 마크. 지나는 오토바이에도 이러한 마크가 불터 있는 것들이 보였다. 배달음식 파트너.
8시 20분. 호텔에 도착하여 내일을 준비한다.
내일 아침은 6시 반부터 제공한다고 한다. 7시 20분에 출발한다. 산토리니를 향하여. "하이호! 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