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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8일....무슨 요일이지? 요일 개념은 사라졌다.

오늘은 괴물 스딸린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카즈베기를 출발하여 달린다.스탈린의 고향 고리, 그리고 고대  동굴 도시가 있는 우플리스치케를 들러 쿠타이시로 간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먼 길을 달릴 것이다. 약 400km 거리.

 

5시 전에 잠이 깼다. 한국에서는 이러지 아니한데 외국만 나오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인간으로 변한다.

 

창밖의 게르게티.

 

 

성당에 약한 조명을 설치해놓았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강한 조명이 아니라, 나도 여기 있으니 봐조요 하는 정도의 느낌이다.

 

 

 

 

7시에 아침 식사.

 

로비에서 인증! 

 

 

과거 소비에트 시절에 만들어진 호텔인 것 같은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로비 곳곳에 붙어 있는 포스터들.

 

포스터의 구호가 무엇일까?

 

소비에트 연방에 온 것을 환경한다!

 

 

ROOMS 호텔. 이곳의 로비는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너무 이쁘다.

 

 

방에서 보이는 게르게티 성당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시간을 보낸다. 하늘이 깨끗하지 않다. 카즈벡 산이 일출의 햇빛을 받아 붉게 물드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어제 들었는데, 오늘 카즈벡의 하늘은 그런 기회를 주지 않는다. 흐린 하늘.

 

 

하늘이 온통 흐려 있다. 붉게 물든 카즈벡 산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다.

 

 

북쪽으로 보이는 골짜기. 12킬로 정도만 더 가면 러시아와의 국경이 있고 그 너머에 블라디카프카스가 있다. 러시아어에서 '블라디'는 '지배하라, 정복하라' 정도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블라디미르, 블라디보스토크 등등...

 

 

게르게티 마을 하늘에 빛이 내리기 시작한다.

 

 

방 열쇠 꾸러미. 133호. 카드키가 아닌 경우에는 독특한 장식을 달고 있는 열쇠 꾸러미를 경우가 많다.

 

 

코카서스 산맥 속의 골짜기 마을에 날이 밝았다.

 

 

마을쪽 도로를 통해 삼위일체 성당을 올라간 것이 아니라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마을 입구에서 어떤 통제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입장료라고 받는 것일까?

 

 

카즈벡 산의 만년설이 보이기 시작한다. 떠날 시간이 되니 꺼풀을 하나씩 조그씩 벗겨 주는 것 같다.

 

 

8시52분. 출발한다. 9시 출발 예정이라 했는데, 다들 일찍일찍 모인다. 이번 여행 내내 시간 약속이 지체된 경우가 한번도 었었다. 이런 약속시간성애자들!

 

 

떠나면서 성당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한번더 눈에 담아둔다.

 

 

알렉산더 카즈베기의 동상이 스페판츠민다 거리에 세워져 있다. 

이곳이 고향인 저명한 문학가. 조국을 배신하고 조지아를 침공했던 러시아 제국에 빌붙은 지방 영주의 자손. 그가 저술한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나중에 스탈린이 필명으로 사용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Trek 강 계곡의 급상면에서 토양침식이 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9시13분. Trek강변의 조지아 군사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린다. Trek 강은 북쪽으로 흘러 러시아로 간다. 십자가 고개가 분수령이 되는 것이다.

 

 

 

9시18분. 어제 멈추었던 광천. 그냥 지나친다.

 

 

 

이게 뭐지? 뭘까?

 

 

 

9시27분. 십자가 고개의 십자가. 십자가가 참 많다.

 

새로 세운 십자가도 있다.

 

 

분주히 인증 사진을 남기는 일행들.

 

 

나도... 2395미터. 서둘러 출발하려고 해서 판떼기에 붙은 수많은 스티커들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9시30분. 어제 본 전망대를 지난다. 조지아-러시아 우정탑.

 

 

산비탈에서 꼬물거리던 것들의 정체는 양이었다.

 

 

멀리서 보니 마치 그 구더기들 같이 보였는데, ㅠ.ㅠ

 

 

눈사태로부터 도로를 보호하는 터널 구간을 지난다.

 

 

9시45분. 주유를 하기 위해 정차하였다. Smart가 조지아의 유명 체인이다. 내부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유료.

 

 

10시6분. 어제 지나면서 가이드인 블라디미르 박이 '선상지'라고 콕 찝어서 이야기했던 지형.

세모꼴로 생겨서 자기는 '삼각주'라고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젠가 함께 여행한 일행중의 지리교사가 두 지형의 차이점을 가르쳐주었고, 그래서 이후 꼭 '선상지'라고 안내한다고 나중에 이야기하더라.^^

 

 

 

 

10시59분. Ananuri 요새에 도착하였다. 

 

물론 화장실부터 먼저 이용하였다. 이용요금을 내주고 있는 니노~

 

 

Ananuri Fortress.

조지아에 흔하디 흔한 교회, 성채의 모양을 닮았다. 그래서 도로를 따라 이동하던 사람들은 조지아의 유서깊은 유적인가보다 하면서 정차한다. 많이 정차한다. 그래서 앞에 노점상도 굉장히 많다.

하지만 이 건축물은 아직 '유적'이라고 할만한 역사가 쌓이지 않은 곳이라 한다. 천 년쯤 지나면 그 때 사람들이 유적이라고 인정해줄지도. 내부에도 볼만한 어떤 유물도 갖추어 놓지 않았다고 한다.

인증 사진 남기고 출발한다.

 
 
 
도로를 따라 달리는 구간이다.
조지아의 명 가이드 블라디미르 박이 스탈린에 대한 썰을 푼다.
스탈린, 그는!
1. 연해주 한인들의 중앙 아시아 강제 이주의 원흉이다.
스탈린은 조지아 사람이었으며, 여러가지 열등감을 갖고 있었는데 자신의 출신에 대한 것도 있었다고 한다. 슬라브에 대한 열등감. 자신이 집권한 이후 이러한 열등감을 희석시키기 위해 민족들의 생활 공간을 뒤섞어 민족 간의 차별성이 드러나기 않게 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패!
 
2. 우리나라 남북 분단의 원흉이다.
2차 대전이 마무리 될 즈음 남북을 분할 점령하고 괴뢰 정권을 세움으로써 남북이 분단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3. 한국 전쟁의 원흉이다.
김일성은 빨리 남침을 하고자 했고, 스탈린은 반대했다고 한다. 김일성의 억지에 스탈린이 끌려 간것이라고 한다. 스탈린의 반대 이유는,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데 또다른 국제적인 전쟁으로 확대될 것을 우려하였으며 미국의 핵무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리고 한반도 공산주의의 적통으로 모스크바 유학 경험이 있는 박헌영이 인정되었지 김일성은 듣보잡인 상태. 한국전쟁이 실패로 끝나면서 김일성이 스탈린에 의해 제거될 참이었는데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김일성이 기사회생. 김일성은 전쟁 책임을 박헌영에 물어 숙청해버림.
 
스탈린, 그는! 여러가지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1. 국적 열등감

슬라브족이 아니고 그루지아 출신인 것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백만 명이나 숙청시켰던 것이라 해석. 본명은 요셉 주가슈빌리이다. 이름에서 그루지아인이라는 것이 드러나 '강철'을 의미하는 스탈린이라는 가명을 사용했으며, 평생 사용한다.

2. 경제적 열등감

가난한 가정 환경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냥 자신의 직업인 제화공을 잇기를 바랬다고. 당시 제화공은 매우 천한 직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들의 문학적 재능을 일찍 간파하고 키워주었다고 한다. 트빌리시 신학대학 진학도 어머니의 공.

3. 외모 열등감

어려서 앓았던 천연두로 인해 얼굴 한쪽에 곰보 자국이 남았다. 두드러지게 보이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스탈린 자신에게는 매우 큰 자격지심의 원인이 되었다. 남아 있는 스탈린의 얼굴 사진들에서는 거의 그 곰보 자국이 지워진 상태.

4. 신체적인 열등감

10대 초반에 마차에 치여 왼손이 부자연스러웠다고 한다. 양손으로 장총을 파지하지 못할 정도. 그래서 전투에 나서지 못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사진이나 동상을 보면 왼손은 거의 주머니에 넣고 있다.

 

공산혁명 과정에서 레닌이 얼굴마담이었을 때, 스탈린은 뒤에서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의 편집장을 맡아 작성한 쉽게 읽히는 글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된다. 공산혁명 성공 5년만에 뇌졸증으로 레닌이 쓰러져 모스크바를 비운 사이에 쿠데타.

 

그루지아 출신인 스탈린에 대한 노인들의 평가.

그루지아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이 심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그루지아 출신 사람들을 전투 때마다 첨병으로 내세워 희생자가 많았다고.

그루지아 출신인 스탈린에 대한 젊은이들의 평가는?

관심없어~라고 하더라.

 

 

12시30. 고리시 도착.

스탈린도 식후경이다. 식당 블랙스타를 찾아 점심을 먹고 스탈린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그리고 동굴도시인 우플리스치케.

 

 

고리시로 진입하면서 보이는 풍력발전기들. 바람이 없다는 핑계로 일하지 않고 놀고 있더라.

 

 

식당 블랙스타는 스탈린 박물관 바로 인근에 위치한다.

 

 

12시34분. 식당 블랙스타

 

 

근사한 식당. 2층으로 올라간다.

 

 

점심 메뉴. 물고기.(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식당 앞 교차로 근사한 교회가 있다. 유적은 아니고 그냥 신식 교회.

ღვთისმშობლის სახელობის 라고 나온다.

 

 

1시30분. 식당을 나와 버스 승차.

 

1시35분. 스탈린 박물관 도착.

 

 

입장권을 한장씩 받아들고 들어간다.

 

 

입구를 통해 들어가보면....

 

 

개판이다. 아주 개판이다.

 

 

 

 

광고: 개자식을 찾습니다.

 

 

박물관내 동상. 왼손을 숨겨랏.

 

박물관 내부.

 

 

이곳에 박물관을 만든 이유?

이곳에 그의 생가가 있기에.

생가를 안쪽에 보존하고, 바깥에 새로운 건물을 만들었다.

 

 

독재자는 비행기 타는 것을 꺼려한다. 사고도 많지만, 두려움 때문에. 자기가 많이 죽였으니 누군가를 자기를 죽일까봐서. 우리가 아는 어떤 독재자도 그렇게 열차를 고집한다고 했는데...

스탈린도 비행기를 타지 않으려 했으며, 늘 전용열차를 이용했다. 누군가 뒤에 나타나는 것을 극도로 꺼려 전용열차 안에서도 누군가 접근하는 것을 보기 위해 도처에 거울을 설치해놓았다.

 

 

2시5분. 박물관을 나와서 또 출발한다.

 

2시9분. 고리 시청.

남오세티아 분쟁 때 러시아군이 이곳까지 진주했었다고 한다. 조지아는 사흘만에 항복. 이후 조지아는 압하스 지방과 남오세티아 지방을 잃게 된다.

 

 

 

2시27분. Uplistsikhe 도착.

 

 

쿠라 강변에 위치한다.

 

 

Uplistsikhe Hitorical-Architectural Museum-Reserve

Uplistsikhe는 바위를 파내어 만든 동굴 도시이다. Kura 강의 지류인 Mtkvari 강의 제방 윗쪽에 초기 철기 시대에서 후기 중세까지의 다양한 건축 양식이 나타난다. 아나톨리와 이란에서 전래된 석조 양식이 주로 나타나지만 기독교 및 비기독교 양식까지도 혼재한다. 동굴의 전체 숫자가 15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우플리스치케는 고대의 Kartli 왕국(Iberia라고 부르기도 한다.)의 전략적 중심지였는데, 종교 및 정치의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했다. 최성기에는 5천여 명까지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가이드가 안내해주었다.

4세기에 Kartli왕국이 기독교화되면서 기독교의 새로운 중심지로 Mtskheta(나중엔 Tbilisi)가 떠오르면서 우플리스치케는 침체기를 맞는다. 8,9세기에 트빌리시가 무슬림의 침략을 받아 다시 중심지가 되었으나, 14세기 몽골의 침략은 이 지역을 초토화시켜버렸다. 게다가 1920년의 지진은 이 지역의 대부분을 박살내버렸다. 2007년에 UNESCO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등재되었다. 후보로...

 

 

 

지도와 함께 보는 주요 뽀인트에 대한 간단한 설명.

 

 

이 지도가 더 알아보기 쉽겠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의 Uplistsikhe 항목에서 가져왔다.

 

main road(위 지도에서 보라색)를 따라 main square까지 쭈욱 올라가서 '삼면 성당', '타마라 여왕의 홀', '약제실' 등을 보고, '터널'을 통해 내려왔다.

 

 

바위 동산. 오후 햇볕의 열기가...음.....온몸의 껍데기로 느껴진다.ㅠ.ㅠ

 

 

10세기 경 추가로 건축된 성당.

 

 

사진의 암석 도랑의 양쪽으로 세줄의 구멍들이 있다. 양쪽에 나무를 박아 물을 가두어 방어용 해자로 이용했다는 설명을 하는데, 좀 그렇다. 머릿속에서 받아들이질 않는다. 쏘리.

 

 

메인 광장에 올라 쿠라 강 쪽을 조망해본다.

 

 

Nice Hall

 

 

Three-sided Basilica, Three-Nave Basilica

 

 

타마라 여왕의 홀이다.

12번. 음성 안내를 받을 수 있는 장치가 있는 것 같다.

 

여왕의 홀에서 여왕님을 모시고...

 

여왕을 홀에서 여왕을 치우고...

상당히 규모가 크다. 역시 왕이 집무를 보던 공간이라 그럴까. 그런데 천정 쪽에 검게 그을른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연기 때문?

가이드가 한번 설명해주면 바로 듣고 다 기억하고 외우고 암기하고 해야 하는데.... 기억에 없다. 녹음기가 필요할까?

 

 

우플리스치케 유적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남쪽(아랫쪽), 가운데(중앙), 북쪽(윗쪽)으로. 중앙 부분이 가장 대규모이다. 위의 사진들이 다 중앙 부분이다. 북쪽 부분은 지금 생각해보니 안가보았다.

남쪽의 아랫부분은 보존 상태가 더 안좋다. 아래 사진이 남쪽 유적. 중앙 부분과는 작은 터널을 통해 왕래할 수 있다.

 

 

쿠라 강변에 가까이 위치한 남쪽(아랫쪽) 거주지와 연결되는 통로인 터널. 위급시 대피용(도피용)으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사암층이라 남을 시켜서 작업하면 그렇게 힘들지 않게 터널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태양광 및 태양열 에너지를 양껏 흡수했다.

기계에 무리가 온다. 냉각이 필요하다. 

유적지 입구의 음료수 가게에서 마음대로 골라 잡으라는 블라디미르 박~♡

뭔지도 모르고 아무 것이나 잡았다. 손에 잡고만 있어도 시원하다.

 

 

3시18분. 다시 달린다. Go! West! West! West! 

 

4시. Agara 통과.

소비에트 시절의 계획 경제 썰.

계획 경제는 소비가 위주가 아니라 생산이 위주였다. 지역마다 동네마다 생산품을 할당하는 방식. 그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도로 변의 마을들 중 해먹을 만드는 마을, 생수 생산 마을, 빵만드는 마을, 도기 만드는 마을 등등을 볼 수 있다.

 

4시11분. Agarebi. 길가에 해먹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계속 나타난다.

 

 

4시34분. Surami.

빵 마을이다. 

 

 

빵 파는 상인, 빵을 사는 니노~

빵을 조금씩 나누어 맛을 보았다. 맛있다. 이 빵은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페루의 빵 마을에서 먹어보았던 것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맛있었다. 생각~난다. 페루의 빵~마을~ 

쿠스코에서 티티카카로 가던 중간에 있었던 작은 마을, 오로페사. 빵 먹으러 한번 더 가보고 싶어진다~

 

 

4시36분. 빵쪼각 뜯어 먹다가 창밖으로 멀리 근사한 요새가 보였다.

Surami Fortress. 언제 누가 만든 것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고, 12세기에 강화되었고, 17세기에 재건되었다는 정도의 기록은 찾을 수 있다. 요새 위에 휘날리는 깃발은 사카르트벨로 국기. 사카르트벨로는 조지아 사람들이 사용하는 자국어 국명이다. '카르트벨'인의 땅이라는 뜻을 갖는다고 한다. 카르트벨은 조지아의 여러 민족 중 다수를 차지하는 민족이다.

 

 

4시56분. 포도밭.

 

 

4시57분. 옥수수밭.

길가에 옥수수 판매하는 매대가 자주 나타났는데, 옥수수 먹자는 이야기를 가이드가 안한 이유가 있다. 맛 없다. 진짜 없다.

 

 

5시. 길가의 수박 판매대. 자주 나타난다. 수박 덩치가 참 크다.

 

 

5시6분. 도기 생산으로 유명한 동네. Ubisa 부근.

도기 생산에 유리한 흙이 분포한다. 당연히!

유약을 바르지 않아도 도기에서 흙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Dzirula 강변을 따라 도로가 달린다.

5시15분. 도기 판매점 하차. 화장실 이용.

 

 

다양한 도기들을 판매하고 있다.

 

 

Ethnographic Corner도 있다. 그냥 도기 판매상이다.

 

 

나 여기 왔다 가요~~~

햇볕에 좀 익혔더니 얼굴색이 도기색과 같아졌다.

 

 

 

5시34분. Shorapani castle

 

 

5시38분. 길가에 커피볶는 마을. 터키에서 원두를 수입하여 길가에서 볶아 판매. 커피맛은? 글쎄~

 

 

5시44분. 거대한 공장. 폐허로 변하고 있다. 소비에트 시절에 계획경제 체제하에서 가동하던 자동차 부품 생산 공장.

부근에 많은 자동차 수리 공장들. 부품이 없어 폐차 대상 차량을 분해하여 부품 공급.

 

 

6시5분. 쿠타이시 시내 진입.

쿠타이시는 조지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낙후되어 있다. 도시 재생을 위해 국회의사당을 옮겼다.

쿠타이시가 조지아에서 두번째라고 가이드가 소개했는데, 세번째로 주저앉았다.

 

 

6시22분. 국회의사당이 이렇게 생겼다. 조지아의 전임 대통령인 '친미 대통령'은 유리 건물을 참 좋아했나보다. 트빌리시 시내에 많은 유리 덩어리를 만들었고, 투명한 경찰행정을 펼친다고 경찰서 건물은 통째로 투명한 유리로 만들고... 의사당도 유리 덩어리.

 

 

6시38분. 길가에 '프로메테우스 동굴' 진입로 표시가 있었다.

우리 가이드 블라디미르 박, 블박이 혼자서 다녀왔다. 아래 링크 참조~

http://blog.daum.net/georgiawine/468

 

석회암 지역에서 흔히 나타나는 카르스트 지형 중의 하나 석회동굴이라고 한다. 동굴 내부에 종유석, 석순, 석주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1시간 정도 가이디드 관람을 할 수 있으며, 사진 찍을 수 있는 여유도 충분하게 주는 것 같다. 아마도...

 

6시41분. 오늘의 숙소인 츠할투보 플라자 호텔 도착.

구소련 시절 소련의 공산당 간부들이 휴양을 즐기던 리조트였다고 한다. 스탈린도 왔다간 호텔. 그러니까...흠.. 무진장 오래된 호텔이라는 의미이다. 소련식이다. 그래서 크다. 그리고 낡았다.

 

 

숙소의 방안에 방이 하나 더 있다. 침대가 네 개. 화장실 겸 욕실도 크고... 대~애단하다.

 

 

호텔이 넓은 대지를 차지한 거대한 성채 같다.

 

식당까지 가는 길도 멀다.

 

중간에 수영도 좀 하면서 가야 할 듯 하다.

 

 

대리석 덩어리. 수요가 줄어 1층이 이 공간은 그냥 쉬고 있다. 2층에 식당.

 

 

 

7시에 저녁 식사. 

식사 중에 불이 꺼진다. 뭐야~

케익이 배달된다. 깜놀~

70세 생신을 맞이 하는 분이 계셨다. 오예~

케익이 낙상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해프닝도.

 

계속 속이 않좋다. 일찍 숙소로 들어와 쉬었다. 9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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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7일의 일정은 간단하다. 트빌리시에서 북상하여 코카서스 산맥 속으로 들어간다. 카즈베기 산 밑의 작은 마을로 들어간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게르게티 삼위일체 성당으로 유명하다.

카즈베기에서 코카서스 산맥 반대편, 즉 북쪽은 러시아이다. 그곳에 큰 도시 블라디카프카스가 있다. 코카서스를 러시아에서는 '카프카스'라고 한다. '블라디'는 "정복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블라디카프카스'는 "코카서스를 정복하다", '블라디보스톡'은 "동방을 정복하다", '블라디미르'는 "세상을 정복하다"는 등의 뜻을 같는다고 한다.

 

 

5시반쯤 잠이 깨어 꼼지락 거리다가 6시에 기상하였다.

6시반에 아침 식사하고 방에서 빈둥대다가 8시반에 로비로 내려왔다.

 

 

식당의 식탁에 있는 암호. 조지아 어 문자와 영어 문자.

 

 

엘리베이터는 호텔방 키를 넣어야 작동시킬 수 있다.

 

 

트빌리시의 아침.

 

 

하룻밤 신세를 진 래디슨 블루 트빌리시.

 

 

호텔 앞 산책을 하던 중 발견한 자전거. 아담한 크기.

 

 

누가 놔두고 찾아가질 않는가보다.

 

 

건조한 여름. 아침 일찍 물을 뿌려준다.

 

 

9시 출발.

트빌리시 시내를 통과한다.

건축 중인 아파트.

트빌리시도 아파트 건축 붐이 계속되고 있다.

 

트빌리시 시내의 아파트 중에서 주민이 거주 중인 아파트 임에도 불구하고 샤시가 없는 아파트들도 눈에 띄었다. 조지아에서는 아파트를 분양할 때 골조만 만들어 분양한다고 한다. 그래서 싸다. 그 다음에 구입자가 자기 형편이나 기호에 따라 아파트를 '장식'하는 것이다. 물론 가구까지 다 갖추어 놓고 분양하는 아파트도 있다고 한다.

러시아 지배 시절에 만든 아파트가 외양은 허접하지만 보다 더 튼튼하다고 한다. 계획, 설계에 따라 공급된 자재를 모두 사용하여 건축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민주화된 이후에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므로 이윤을 보다 많이 남기기 위하여 자재를 덜 사용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

조지아는 전력이 풍부한데, 수력이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기의 질은 좋지 아니하다고. 하지만, 전기세, 수도세 모두 상당히 저렴하여 부담되지 않는다고 한다.

 

 

 

9시40분. Aragvi강에 조성된 인공호인 Zhinvali는 1986년에 댐이 건설되면서 조성되었다.

 

 

Zhinvali 댐, 발전소.

 

 

 

댐 건설을 기념하기 위한 조형물인 것으로 보인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1795년 페르시아에서 침공해온 Qajar군의 침략에 맞서 트빌리시를 방어하기 위해 Krtsanisi 전투에 Aragvi 계곡에서 파견된 군인들을 기리는 조형물이었다. 이름하야 "300 Aragvelians". 그들의 유해가 발굴된 곳에 그들을 위한 탑을 세웠으며, 트빌리시 시내의 지하철역 이름에도 사용되고 있다.

 

 

 

진발리 댐의 건설로 조성된 인공호수.

 

 

9시50분. Ananuri 요새.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 아니라 그냥 관광객을 끌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오늘은 지나가고, 내일 카즈베기에서 나오면서 들를 것이라고 안내한다.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중요한 뽀인트이다. 기억하라!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은 Georgian Military Road라고 불린다, 조지아와 러시아 사이의 코카서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가리키는 말이다. 트빌리시와 러시아의 블라디카프카스 사이의 도로로서 212km 길이에 이른다. '블라디'는 "정복하다"라는 말이므로, '블라디카프카스'는 카프카스를 정복하다 라는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원래 이 길은 Strabo의 Geographica에 언급되어 있을 정도로 옛날 옛적 고대로 부터 이용되던 길이었다. 코카서스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러시아에서 군대를 파견하면서 도로를 정비한 것이다. 1769년에 처음 지나간 러시아 군대는 1783년에 병력을 보내 도로를 정비한다.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비된 것은 1799년 이후이며, 러시아가 이 지역을 군사적으로 장악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러시아 제국이 조지아 왕국을 공식적으로 합병한 1801년에 짜르 알렉산더 1세는 Yermolov 장군에게 군대 이동과 교통량 증대를 위해 도로를 확장할 명령하였다. 이후 도로 정비 작업은 1863년까지도 이어졌다.

오늘날 조지아 군사 도로는 산사태와 같은 자연재해에 의한 단절, 2006년 러시아에 의한 국경 통제 등과 같은 요인에 의해 과거에 비해 중요성이 낮아졌다. 하지만, 2013년 러시아가 아르메니아의 요구에 따라 국경 통과를 허용하면서 아르메니아와 러시아 사이의 중요한 교통로로서 가치가 커졌다.

자룔 찾아보니 조지아 군사도로에 대하여 이런 정도의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현지 가이드는 에카테리나 여제의 명령으로 카프카스를 정복하면서 만들어진 도로라고 하면서 에카테리나 여제의 정부(?) 정치에 대하여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스맛폰에 설치한 지도 앱 maps.me 화면 캡처.

10시3분. 지도에 나타난 지명들이 요상하다. 우리나라의 지방 행정구역명과 일치하는 것일까? "리"?

'ni', 'ri', 'li'로 끝나는 지명들이 많이 보인다. 이건?

조지아 말에서는 고유명사의 뒤에 "i"를 붙인단다. 그냥 그런 것이었다.

 

 

 

10시39분. 화장실을 이용하자.

 

 

표지판이 아주 급하다는 상황을 잘 묘사해주고 있다. 그런데, 유료다. 아무리 급해도 돈을 내야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더 급해진다. 이 동네 모든 화장실이 다 이렇다.

 

 

휴게소였다. 작은 가게. 주변의 노점상. 그리고.,..... 근사한 동상 하나.

 

 

카즈벡의 동상이라고 했고, 카즈베기에서도 길가에 이 사람의 동상이 있었다. 

Alexander Kazbegi(1848-1893)이다. 조지아 군사 도로의 통행료 징수권을 통해 부를 일군 Kazibek Chopikashvili의 증손자이다. 트빌리시, 성 페테르부르그, 모스크다 등지에서 공부하다가 지역민의 생활을 체험해보겠다고 고향에 돌아와 양치기가 된다. 이후 그는 저널리스트, 소설가, 극작가로 활동하였다. 말년에 정신이상으로 고생하였다고도 한다. 트빌리시에서 사망하였는데, 그의 고향이자 소년 시절을 보냈던 Kazbegi(Stepantsminda로 이름이 바뀜)로 운구되었다. 그의 업적을 기리는 박물관이 있으며, 카즈베기에 그의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A. Kazbegi의 대표작은 The Patricide인데, 주인공인 코카서스에서 로빈 후드와 같은 의적 활동을 한 Koba이다. 이 작품은 조지아 출신으로서 러시아의 독재자가 된 Joseph Stalin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스탈린은 필명으로 Koba를 사용하였다.

 

 

Aragvi 강의 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간다.

 

계곡을 건너기 위한 설치한 다리. 좀 엉성해보이는데...

 

 

오래되어 다 망가진 다리.

 

 

새로 만든 다리.

 

 

유원지도 있다. 여름에만 한 철 장사하는 곳의 필링이 깔린다.

 

 

래프팅 영업 장소였다.

 

 

자연 속의 꿀을 모으는 양봉도 성하다.

 

 

이렇게 트레일러로 끌고 다니면서 대규모로 양봉을 하기도 한다.

 

 

곳곳에서 양봉이 이루어진다.

 

 

11시. 쿰리스치케. 스키 리조트로 유명한 곳을 지난다.

 

 

멀리 곤돌라가 보인다. 겨울 손님을 맞기 위하여 열심히 시설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아... 공사 중이긴 하나 일하는 사람들은 안보이는구나.

 

 

군사도로는 고산지대를 통과한다. 신기 습곡 산지인 코카서스 산맥의 급경사지를 통과한다. 겨울이면 눈사태가, 눈이 녹는 계절이면 산사태가 잦은 지역이다. 그래서 급경사 구간에는 이렇게 사태로부터 도로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을 추가해 놓았다. 도로가 인공 터널 구간으로 되어 있다.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터널을 이용하고, 평소에는 그 옆의 지나기 쉬운 도로를 이용하는 구간도 있다.

 

 

Aragvi 계곡을 따라 조성된 도로를 따라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가 십자가 고개를 넘어가게 된다.

 

 

11시15분. 전망대. '러시아-조지아 우정탑' Russia-Georgia Friendship Monument 라고 되어 있다.

 

 

전망이 좋은 곳에 전망대를 설치하여 놓았다.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멈추니 그곳에 상인들이 모인다.

 

 

꿀도 판다^^  Mountain Honey~~

 

 

통상적인 그냥 바라만 보는 전망대가 아니다. 아주 근사한 시설이다.

 

 

뭔가 작품이다.

 

 

 

러시아에서 군대 병력을 보내 본격적으로 군사도로 정비에 나선 것이 1783년이었다. 200주년이 되는 1983년에 조지아와 러시아의 우정을 기념한다고 이런 조형물을 이곳에 설치하였던 것이다. 조지아의 역사, 러시아의 역사의 상징적 사건들을 상징적으로 묘사하여 놓은 상징물이다.

 

 

전망대 아래의 Aragvi 강 계곡을 바라보는 전망이 참 좋다.

 

 

계곡을 사진에 담는 아저씨. 멋지다.

 

 

계곡을 배경으로 셀피를 남기는 아저씨.

 

 

조지아와 러시아의 군사도로에서의 우정을 기념하는 전망대를 뒤로 하고 산을 계속 오른다.

 

 

11시35분.

ZVARI PASS. 십자가 고개이다. 해발고도 2395미터.  건너편 차선에 위치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그냥 지나가고 내일 들리자고 가이드가 가이드한다.

 

 

가장 높은 고개, 십자가 고개. 십자가 고개가 십자가 고개인 것은 십자가가 있기 때문이다.

 

 

 

저 멀리에도 십자가가 있다. 원래 러시아 군대가 개척한 군사도로는 저쪽이었다고 한다. 기병대가 지날 수 있을 정도로 개척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자동차용 도로로는 저쪽 경로가 적합하지 않아 이쪽으로 새로운 도로를 개설한다. 가장 높은 고개라고 십자가를 설치했었고, 새로운 도로의 고개에도 마찬가지로 십자가를 설치하여 십자가가 두 개이다.

 

 

도로 옆의 골짜기의 그늘진 곳에 남아 있는 잔설. 이렇게 여름에까지 잔설 남아 서서히 녹아내리기 때문에 만년설이 있는 고산 부근의 저지대에서는 지속적으로 물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여 일찍부터 인간의 정착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11시40분. 온천이라고 하면서 차를 멈춘다.

Mineral Spring, Calcareous sinter. 

 

 

 

유황, 철 성분이 많은 광천수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맨발로 돌아다니는데 바닥이 전혀 미끄럽지 않다.

 

 

그래서 허리 굽은 할아버지도 엉금엉금 기어올라가 본다.

 

 

물은 시원하다. 따뜻하지 않다. 고로 온천은 아니다. 미네랄이 풍부한 광천이다.

 

 

모터사이클이 근사하여 남긴 사진이다. 자세히 보니 BMW F800GS 모델. 가격이 좀 하는 모델이다. 라이더도 보니 안전장구를 제대로 착용하고 있다. 여성인데 혼자 여행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를 통해 이런 쪽으로 좀 많이 알려진 셀럽이라고 하더라.

 

 

 

11시59분. Kobi 통과.

 

 

12시14분. Stepantsminda에 도착하였다. 해발고도 1740미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Terek 강의 양안에 마을이 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에 4륜구동 승합차를 이용하여 성당이 있는 봉우리에 올랐다.

 

분명히 일정표에 Kazbegi를 간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도를 아무리 살펴도 카즈베기가 나오질 않았다. 해외 여행을 할 때면 스맛폰에 설치한 maps.me 앱을 즐겨 이용한다. 지도 자료를 미리 다운로드 받아두고 이용할 수 있어 인터넷이 안되는 상황에서도 그대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maps.me에도 카즈베기는 없었다.

지명이 바뀐 것이다. 카즈베기라는 지명이 사용되었었는데, 그 이전에는 Stepantsminda였다. 이곳에 수도를 위한 은둔처를 만들었던 조지아 정교회의 수도사 Stephan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이 지역은 18세기부터 여길 지나는 조지아 군사도로의 통행료를 징수함으로써 부를 일군 봉건 지주 Chopikashvili 일종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19세기 조지아 왕국을 침략한 러시아 제국에 맞서 지역 주민들이 봉기하였는데, 영주인 Gabriel Chopikashvili가 러시아에 충성을 바치며 봉기를 진압하였다. 이후 그는 러시아 주둔군의 장교가 되었고, 성을 Kazbegi로 바꾸었다. 그가 지배하는 마을의 이름도 Kazbegi로 바꾸었다. 소비에트가 지배하던 시절 1925년에 이러한 지명이 공식화되었다. 이후 2006년에 다시 원래의 지명인 Stephantsminda로 바뀌었다. 그랬던 것이었다.

스네판츠민다에서 북쪽으로 12km만 더 가면 러시아와의 국경이다. 산맥을 관통하는 터널 내에 세관이 위치하며, 도보로 국경을 통과하는 것을 불가하다.

 

 

만년설로 덮힌 봉우리가 카즈벡 산이다. 해발 5033미터에 이른다. 코카서스 산맥에서 7번째로 높은 산이다. 휴화산으로서 지진이 종종 발생한다. 해발고도는 높지만 경사가 급해 빙하의 길이는 짧다.

카즈벡 산은 원래 조지아 말로 Mqinvartsveri인데, "얼어붙은 봉우리"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전해준 벌로써 결박 당한채로 독수리들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벌을 받았다는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의 조지아 버젼이 Amirani이다. 그의 전설에 서린 곳이다.

4000미터 높이에 정교회에서 은거지로 사용하던 동굴이 있는데, 이름이 "Betlemi"(Bethlehem)이다. 전설에 따라면 아브라함의 텐트, 아기 예수의 구유 등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게르게티 마을과 삼위일체 성당이 멀리 봉우리 위로 보인다. 

 
 

그 뒤로 카즈벡 산은 구름 속에 숨어 있다.

 

 

 

12시20분에 숙소를 배정받고, 짐을 두고 바로 내려와 점심 식사를 하였다. 

 

호텔의 로비가 기가 막히다. 마치 도서관처럼 꾸며져 있다.

 

 

점심은 피자, 샌드위치, 감자 칩과 풍성한 채소로 구성되었다.

 

 

식사후 휴식.

가운데 앉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쳐 앉았더니 사진이 기울었다.ㅠ.ㅠ

 

 

 

2시. 게르게키 성당을 향한다. 4륜 구동이 가능한 승합차에 나누어 타고 게르게티 성 삼위일체 성당으로 올라갔다.

원래는 게르게티 마을을 통과하여 성당을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차량이 증가하면서 마을 외곽으로 임시 도로를 만들었다. 많은 차량들이 먼지를 일으키면서 오르내리고 있다.

 

 

 

Gergeti Holy Trinity Church. 해발 2170미터 고도에 위치한다.

 

 

많은 차량들이 다니면서 초원의 파괴와 토양 침식이 심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이곳의 파괴는 불을 보듯 훤하다. 빨리 조치가 취해져야 할 것이다. 적절한 위치에 주차장을 만들고 그곳까지만 차량운행을 가능하도록 막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초원은 걸어서....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초지 보호를 위한 데크도 만들어야 할 것이고.

 

 

 

이런 험한 곳에 저런 교회 건물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이 대단해보인다.

 

 

성 삼위일체 성당은 조지아 정교회 뿐만 아니라 로마 교회의 중요한 시설로 평가받고 있다.

 

 

걸어서 갔었다는 인증이다.

 

 

 

Holy Trinity Church는 14세기에 건축되었다. 18세기 조지아의 유명한 작가 Vakhushti Batonishvili에 따르면 성 니노 십자가를 비롯한 중요한 성물을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이곳에 숨겼었다고 한다. 모든 종교가 금지되었던 소비에트 시절에도 이곳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교회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실내는 보여주기만 한다.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실내 사진은 없다.

 

 

별도로 떨어져 있는 종탑도 본당과 같은 시기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정교회가 그렇다. 들어갈 때 반바지는 안되고,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 한다. 없으면 이곳에 있는 것을 입으면 된다.

 

 

교회, 성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스테판츠민다. 테렉 강의 양안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서사면에 숙소가 위치한다. 그래서 이쪽 성당이 있는 쪽을 조망하기에 유리하다.

 

 

 

3시20분에 하산하여 휴식.

 

 

호텔 방 창밖으로 보이는 교회.

 

 

점점 어둠 속으로 숨어드는 교회를 바라보며 숙소에서 푸욱 쉰다. 하루 쯤 더 있어도 좋을텐데..

 

 

뭔가 터지는 장면 같지만, 그냥 구름 틈새로 보이는 석양이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7시. 저녁 식사. 

입 맛이 없다. 간단히 식사하고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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