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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토요일. 아이발릭의 숙소를 출발하여 Taylieli 동네에 있는 올리브 농장을 방문하였다. 판매점에서 올리브 오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도 했다. 그리고 트로이를 찾았다. 아이발릭에서 트로이까지 2시간 반 거리.

이후 차낙칼레를 경유하여 부르사로 달렸다.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7시 20분. Hotel Kalif에서 바라본 에게해. 날이 훤하게 밝았다. 아이발릭은 에게해의 인기 있는 휴양 도시라 한다.

 

지붕 위의 굴뚝 구멍 부분이 시커멓다. 어떤 연료를 사용하는 것일까?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하기 위한 시설들도 눈에 보인다. 터키인들의 국기 사랑은 대단하다. 

 

7시 39분. 달린다.

 

8시 17분. Laleli 올리브 오일 쇼핑몰에 도착했다.

 

올리브 오일 판매점을 들렀다가 올리브 나무에 대해 심층 탐구하고자 부근의 Taylieli에 있는 농장을 찾았다.

동네 전체가 올리브 재배지이다. 아래 영상 속에 뿌려진 점들이 모두 올리브 나무들이다.


올리브 나뭇가지.

 

올리브 나무의 열매는 이렇게 생겼다.

 

그것으로 만든 올리브 오일. 노랗다. 그래서 올리브 오일을 문명을 낳은 황금 기름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올리브 나무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Oren 해변 부근의 작은 동네를 찾았다. Taylieli의 올리브 농장.

 

올리브에 대해 많은 것을 궁금해 하는 눈빛^^

 

수확된 올리브 열매.

 

열매에서 오일을 추출하는 기계들.

 

기계의 작동 과정을 신중하게 살펴보는 눈빛^^

 

동작중.

 

여러 차례 여러 곳에서 수상한 실적들을 자랑한다.

 

추출된 오일을 깡통으로 포장하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눈빛^^

 

올리브 제품 중의 하나인 비누. Laleli라는 상표를 달고 나간다. Pure Olive Oil Soap.

 

비누 제작 담당 전문가.

 

9시10분. 다시 매장으로 돌아왔다. 올리브 제품을 즐겨보자.

 

탁자에 이곳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차를 한잔 즐겨본다.

 

대화도 즐겨본다.

 

쇼핑을 즐겨본다.

 

바람도 즐겨본다. 나뭇가지가 한쪽 방향으로 쏠려 있다. 머리카락도 그러하다.

특정 방향에서 일정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강하면 이런 편향수가 나타난다.

 

올리브 매장 길건너편에 있는 Mesut Ağacık Cami 모스크. 깔끔하다. 역시나 이슬람인들의 동네.

 

12시 5분. 트로이에 도착하였다. 트로이 유적지의 모습.

GPS data logger를 차에 두고 내려 유적 내에서의 동선이 없다.ㅠㅠ

트로이 유적은 스카만드로스 강과 시모이스 강이 흐르는 평야를 내려다 보는 히살리크 언덕 위에 있다. 요새의 입지로 적당하다 하겠다. 바다와 너무 근접하면 바다를 통한 침입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데 적당히 떨어져 있어 그러한 위협에서 벗어나 있으면서도 너무 멀지 않아 바다를 통한 교역의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아주 적절하고 적당한 위치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런지 기원전 4000년 부터 인간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입장권의 앞면과 뒷면.

 

유적지로 들어가는 입구. 저게 그 목마???

 

아주 아주 아주 오래 전부터 거주지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그래서 여러 시대의 흔적들이 섞여 있다고 하는 안내 자료.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이 파헤치기 시작했는데, 무려 아홉개의 층이 구별된다고 한다. 

슐리만은 일리아드 이야기에 흠뻑 빠져서는 자수성가하여 번 돈으로 1870년에 발굴을 시작하여 1871년에 트로이 유적 발견에 성공하였다. 3년 간의 발굴 과정에서 엄청난 유물들을 발굴했고, 이것들을 독일로 가져가 박물관에 기증했는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소련이 털어갔다고 전한다. 아내에게 몰래 가져다준 것도 있다고...ㅠ.ㅠ

그런데 당시 과학적인 발굴 기술이 부족한 면도 있었지만 트로이 유적지가 서로 다른 시기와 문화의 9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모른 상태에서 무작정 "보물"을 찾기 위해 발굴을 하다보니 여러 층위의 유적과 발굴지가 파괴되었고 훼손시키고 말았다.

나중에 동료였던 도르프펠트가 본격적으로 작업에 나서면서 층위 분석을 통해 서로 시대에 걸쳐 재건된 지역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트로이 VI~VII층이 실제 트로이 전쟁 시대(기원전 13~12세기)와 일치할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이후 미국의 고고학자 칼 블레겐이이 체계적인 발굴을 통해 트로이 I부터 IX까지의 9개 도시층을 확인하였다. 또한 트로이 VI–VII층이 트로이 전쟁 시기의 도시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이 시기의 도시가 지진과 전쟁으로 파괴된 흔적을 확인하였다.

 

트로이에서도 일단 공부를 하면서 시작한다.

 

발굴된 유물들.

 

성벽의 흔적.

 

발굴 흔적.

 

서로 다른 특징을 갖는 유적이 나타난다. 시대별로 9개의 층으로 구분된다.

 

심층 탐구.

 

선사 시대로부터의 유적 층을 일목요연하게 묘사한 안내도.

 

트로이.

 

배운 것을 바로 함께 동료 학자들과 토론하고 익힌다.

 

열심히 달린다.

 

트로이의 유적들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대규모 지진으로 뒤틀려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리아드 이야기 속의 트로이 전쟁은 지진으로 인한 성벽과 도시 파괴로 인해 끝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한 자연 재해를 그럴싸한 이야기로 포장한 것이 일리아드.

 

유적지 입구에 대충 만들어놓은 목마.

 

계단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있다. 하지만 별거 없다. 다양한 언어로 된 낙서만 가득. 물론 한글 서명도 보인다.

 

트로이에 왔었다!!!

 

그래도 트로이의 목마인데, 너무 성의없이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가싶다.

 

12시 50분. 트로이를 떠나서 달린다. 차낙칼레 항구 앞은 다르다넬스 해협이다.

다르다넬스 해협은 에게 해와 마르마라 해를 잇는 매우 중요한 요충지이다. 이쪽의 차낙칼레는 아시아 대륙이고, 건너편의 갈리폴리 반도는 유럽에 속한다. 61km에 이르는 다르다넬스 해협의 폭은 넓은 곳이 6km, 좁은 곳은 1.2km 밖에 안되어 지중해와 흑해의 해상 교통을 규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흑해 연안국이 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에 그 중요성이 더 크다.

 

차낙칼레의 부두에도 목마를 만들어 놓았다. 트로이의 것보다 차라리 이것이 더 나아 보인다.ㅎㅎ

 

5시 반. 부르사 인근의 Karacabey에 있는 큰 주유소를 찾았다. Bereket Döner- Gözlemeci, Tostçu라는 무슨 말인지 모를 긴 이름의 휴게소를 찾았다. 화장실 이용 협조를 받았다.

 

시원하게 고민을 해결했나보다. 신나게 뛴다. 차가 왔다 갔다 하는 곳에서 이렇게 뛰면 안되는 것이라고 나중에 이야기해주어야겠다.

 

 

오늘도 수고했다. 먹고 쉬었을 것이다.

부르사 시내에 있는 있어 보이는 숙소에 들었다. Kervansaray Termal Otel. 케르반사라이 온천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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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5일 금요일. 파묵칼레를 출발하여 에페소, 이즈미르를 거쳐 아이발릭까지 이동하였다. 중간에 쇼핑몰을 들러야 했다. 파묵칼레에서 에페소까지 두시간 반, 에페소에서 아이발릭까지는 5시간을 이동하였다. 

 

6시58분. 오늘의 일정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하는 여행객들.

 

9시 56분. 가죽 제품 쇼핑몰에 도착하였다. 원래 일정에 없던 곳인데, 랜드 여행사에서 꼭 한번만 들러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하더라.

 

일단 화장실부터 들렀다. 남녀 화장실 입구의 구분 그림들.

 

그리고 내부의 안내문. 한국 관광객들을 집중적으로 유치하는 쇼핑몰인갑다.

 

일단 음료를 한잔씩 돌린다.

 

그리고 선남선녀들이 등장하여 패션쇼를 펼친다.

 

손님들도 초빙하여 모델로 알바 시킨다.

 

그리고는 쇼핑 타임!

 

밖에서 서성인다. 언제들 나오나 하며 기다린다.

 

10시 47분. 에페스에 도착하였다.

 

셀주크에 도착하여 에페소를 걸어서 답사하였다. 셀주크 호텔 리조트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사도 요한의 교회를 답사하였다. 그리고 이즈미르로 달렸다. 성모 마리아의 집도 일정에는 있었으나 이동 시간 관계로 그냥 갔다.

에페소는 기원전 1500~1000년 사이에 세워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기원전 7세기경에 키메르인에 의해 아프테미스 신전을 포함해 도시가 파괴되었고, 기원전 6세기경에 리디아 왕국의 지배를 받다가 페르시아 정복되었다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넘어갔다. 리디아 왕국의 크로이소스가 재건한 아르테미스 신전의 아름다움에 빠져 이곳을 정복했다고 한다.^^ 이후 안정을 되찾고 리시마쿠스가 도시를 재건하여 지금 남아 있는 유적의 대부분이 지어졌다. 로마가 성장을 하자 에페소는 그 동맹국으로 들어가 융성하게 되었는데 서기 17년의 대지진으로 인해 크게 손상되었고 이후 반복되는 지진으로 피해가 누적되게 된다. 또한 해안선이 후퇴하면서 기존의 항구가 매몰되어 무역 항구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었으며, 이슬람의 침입으로 인한 약탈로 도시 기능이 사라지게 되었다.

 

에페스. 에페소. 에페수스. 여러가지 이름이 있다. 안내 지도. 삼성에서 도와줘 만든 것이다.

 

에페스 유적 답사 경로. 남문 주차장에서 입장하여 북문 주차장으로 나왔다.

터키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 에페소는 매력적이고 규모가 크며 오래된 관광지 중 하나이다. 고대 에페소는 매년 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합니다. 2000년 전 소아시아 로마의 수도였던 이곳은 발굴 이후 로마의 가장 중요한 작품과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거대한 야외 박물관이 되었다. 에베소에는 남문과 북문, 두 개의 문이 있는데, 완만한 경사로 되어 있어 에베소 투어는 남문에서 시작하여 북문에서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

 

입구에서 안내자의 설명을 경청하는 중.

이때 사진 찍는다고 얼마나 대충 돌아다녔는지 이제 알겠다. 사진 속에 안내판이 한글로 되어 있다. 이때는 이런 것을 보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저 게시판을 왜 안찍어왔는지 후회만 하고 있다. 할 수 없다. 다시 가자!

 

누구 맘대로!!!

 

기둥 흔적들.

 

극장에 앉아서 공연을 기다리는 척 해본다.

 

로도스식 열주.

 

에페스의 장난꾸러기.

 

헤라클레스의 문. 고양이가 문지기를 하고 있다.

 

 

쿠레테스 거리. 저 아래로 유명한 셀수스 도서관 유적이 보인다.

 

에페스의 애기들.

 

에페스 온 여행객들.

 

트라야누스 분수.

 

폼.

 

하드리아누스의 문.

 

하드리아누스 신전을 바라보는 답사객들.

 

도로 바닥을 타일로 장식하여 놓았다.

 

셀수스 도서관이 유명하다 하니 그 앞에서 한 컷 남겨본다.

셀수스 도서관은 135년에 통치자였던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인 아퀼라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당시에는 세 번째로 규모가 큰 도서관이었다. 셀수스 도서관에는 12,000권의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보관되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진으로 파괴되었다가 1970~1978년 사이에 진행된 복원 공사를 통해 원형대로 재건되었다.

도서관 옆으로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이 살짝 보인다. 이 문은 셀수스 도서관 옆에 있으며 아고라로 통한다. 2000년 전, 아우구스투스 황실의 노예이자 건축가였던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가 노예에서 해방되자 이 문을 건설하여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아내 리비아, 율리아, 그리고 마르쿠스 아그리파에게 헌정했다. 비문은 원본 그대로이지만 이 구조물은 복원된 것이다.

 

발자국. 매음굴로 향하는 방향을 알려준다는 설도 있고, 발의 크기가 이것보다 커야 입장이 가능했다는 설도 있다.

 

2층짜리 건물이었다는 매음굴의 흔적이란다.

 

원형 대극장. 엄청 크다.

터키에서 가장 큰 고대 극장으로, 24,000석 규모이다. 기원전 4세기에 지어졌으며, 이 거대한 에페소 극장을 짓는 데 60년이 걸렸다. 그리스 극장을 로마 극장으로 개조한 것이다. 3층짜리 무대 건물은 여러 시대에 걸쳐 지어졌으며, 각기 다른 로마 황제가 자금을 지원했다고 한다.

 

진짜 가짜 시계를 판매하는 기념품점.

 

 

12시 30분. 셀주크 호텔 리조트의 식당에 앉았다. 식사를 기다린다.

 

1시 30분. 사도 요한의 교회에 도착하여 입장한다.

 

사도 요한과 마리아가 살던 곳이며, 사도 요한이 복음서를 기술하고 생을 마감한 무덤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언덕 위로 아야술룩 성채(Ayasuluk Citadel)가 보인다.

 

안내자의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

 

 

득도의 길을 찾아서...

 

 

함께 한 컷.

 

파손 상태가 심각하며 발굴과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파괴되기 이전인 6세기의 모습이라고 한다. 이런 외관을 되찾을 수 있을까?

 

2시. 셀주크를 이제 떠난다.  다섯 시간을 달려가 아이발릭에서 쉴 것이다.

 

 

4시 12분. 알리아가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보이는 바다. 이즈미르는 진작에 지나쳤다.

 

4시 반. Mola Dinlenme Tesisi에서 잠시 쉬었다. 화장실 때문일 것이다.

터키에서는 도로변에 있는 휴게소를 Dinlenme Tesisi라고 한다. Mola는 휴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까 휴식 휴게소인 것이다.

 

5시 반. 해가 넘어가나보다.

 

5시58분. 도착했다. 

숙소는 아이발릭의 남쪽 해변에 위치한 칼리프 호텔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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