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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니코스 만을 향한 '오션 뷰' 객실로 새날의 햇살이 날아들었다. 2024년 5월 16일이 되었다.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일출이다. 이 아침의 구름이 한낮에도 이어져 타오르는 지중해의 햇볕을 약화시켜주길 헬리오스, 아폴론에게 기원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사르니코스 만의 해변을 산책하는 배가 전혀 안나온 할배.

 

그런데 햇살이 만만치 아니하다.

 

여행을 하다보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엘리베이터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물론 처음에는 당황한다.^^ 호텔 킹 사론의 엘리베이터는 두툼한 바깥쪽 문을 당겨서 열어야 한다. 물론 내릴 때는 밀어서 열면 된다. 탈 때 바깥쪽 문을 열면 내부의 문짝은 자동으로 열린다. 옆으로... 

여닫이 문과 미닫이 문이 결합된 재밌는 엘리베이터로 기억에 남을 터이다.^^

 

숙소를 8시 27분에 출발하였다. 해안도로를 따라 남하 하다가 내륙으로 들어가 에피다브로스 유적지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미케네 유적지를 방문하고 먼 길을 달려 올림피아까지 이동한 하루였다. 298km를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중간에 차량에 문제가 생겼는데, 휴게소까지 이동하여 버스 기사 스타브로스가 직접 수리를 마치고 운행을 계속했다는 소소한 에피소드가 남았다. 1시간 가까이 지체...ㅠ.ㅠ

 

그리스 연안에서 수산 양식장 시설이 종종 보이더라. 해초가 없고 물이 너무 깨끗하여 양식이 힘들다는데 어떻게 가능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흑돔, 농어 등을 주로 양식한다고...

 

에피다브로스와 미케네 일대를 확대한 지도.

 

9시 24분. 에피다브로스 유적지에 도착하였다. 유적지 안내지도이다.

전설과 신화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의 독립 도시국가였던 에피다브로스는 아폴로의 아들인 아스클레피오스가 태어난 장소이다. 그래서 유적지 안내판에 "The Asklepieon of Epidauros"라고 안내되어 있다.

 

에피다브로스 유적지의 핵심은 아스클레피오스이다. 그래서 입장권에도 "아스클레피오스 성소"라고 되어 있다. 거길 입장하는 것이다.

 

유적지에서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보았다. 음악당, 스타디움, 톨로스,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숙소 등지를 지나 박물관을 방문하고 극장을 구경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아폴로 말레아타스"(아폴로와 영웅인 말레아타스가 짬뽕된 신격)가 숭배되고 있었는데, 이곳에 자리한 신전은 아폴로 말레아타스에게 바쳐진 것이었다. 그러나...

아폴로 말레아타스에 대한 신앙이 약해지면서 BC 6세기 경부터 아스클레피오스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성소로 삼게 되었다.

 

헤스티아토리온 유적지의 모습이다. 남아 있는 기둥은 헤스티아토리온의 입구에 해당하는 곳이다. 축제 음식을 함께 나누는 장소였으며, 가운데에는 '오디움'이라 불리 음악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에피다브로스의 아스클레피온은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축복받은 의료의 중심지였다. 에피다브로스를 찾은 환자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꿈속에 신이 나타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스타디움에서 운동을 하고, 음악당에서 음악을 감상하면서 마음을 달랜다. 헤스티아토리온에서 최고의 음식을 먹으며 정양하다보면 대충 병이 나아 귀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을 때까지 계속 더 기다리고 더 기다리면서 더 기다리고...

 

헤스티아토리온의 입구 위치에 남아 있는 프로필론. 멋진 기둥으로 입구 장식된 건물이었을 것이다.

 

발굴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아니하였다. 계속 작업 중이다. 2024년에도 계속...

 

그리스 여행중 세 곳에서 톨로스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안내하더라. 그 첫번째 톨로스인 에피다브로스 유적지의 톨로스. 뭔가를 위해 뭔가가 설치되어 있었다.

원래는 이런 모양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하더라. 기둥들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으며 지붕이 있는.. 그러나 지금은 부러진 기둥 몇개만 흔적으로 남아 있다.

(현지 유적지 안내판에서 캡처)

 

바깥쪽을 둘러싼 기둥들이 지붕을 지탱하고 내부에 다시 원형으로 기둥들이 배치되었었다고 한다. 건물의 용도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겠지만 환자들이 질병에서 회복하기 위하여 쉬는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단다.

 

이곳을 환자들의 회복을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이가 아스클레피오스이다. 그를 기리기 위한 신전은 온데 간데 없다. 로마 장군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BC 87년에 약탈했다. BC 67년에는 해적들이 예까지 와서 털었다. 395년에는 고트 인들이 또 약탈을 하면서 파괴되었다. 게다가 기독교가 퍼지면서 그리스 신들은 기억 저 아래로 사라지게 되거나 믿음이 금지되어 신탁에 기반한 에피다브로스의 기능은 정지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세기 중반까지는 기독교도들에게도 에피다브로스는 치유의 성역으로 추앙받았었다. 몸이 아프면 종교는 좀 유보해도 되는 것이다.^^;

 

외과 수술을 통해 질병의 원인을 바로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었으므로 치료 기간은 길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숙소가 필요했고, 160여 개의 방을 갖춘 숙소가 만들어졌다. 운동하고 온천에서 목욕하고 음악을 들으며 정양하고 톨로스에서 쉬다보면 심한 질병이 아니라면 다 나을 수 있었을 것 같다.^^

 

고고학 박물관의 아스클레피오스. 그를 상징하는 것은 뱀 지팡이이다.

제우스의 번개에 맞아 죽은 글라우코스를 치료하던 중 뱀 한마리가 방으로 들어와 놀란 아스클레피우스가 지팡이로 뱀을 죽였는데 다른 뱀이 약초를 물고 들어와 죽은 뱀의 입에 놓았더니 죽었던 뱀이 되살아 났더라.ㅎㅎ 하여 아스클레피우스가 그 뱀이 했던 대로 했더니 죽었던 글라우코스 살아났더라. 오메~ 그리하야 아스클레피우스는 이후 그 뱀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뱀이 휘감고 있는 지팡이를 상징으로 삼았다더라 하는 이야기이다.

 

오늘날 에피다브로스를 찾는 이들은 아스클레피오스의 기운을 받아 질병을 치유하기보다는 고대 그리스의 극장들 중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우수하다는 극장을 찾는다. 우리도 남들을 따라서 그리 했다.

 

반원형의 극장 모습이 3천년 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듯 하다. 좌우 대칭을 정확하게 이루고 있다는 것을 대충 보기만 해도 알겠더라.

BC 4세기에 설계되어 34단으로 만들어졌는데, 로마 시대에 21단이 추가되어 최대 15,000명까지도 입장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극장의 미스테리. 음향기기에 의한 증폭 없이도 무대 정면에서 낭독하는 소리가 전체 관객에게 전달된다니... 여름철에는 연극이나 오페라 등 각종 공연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마음에 드는 공연이 열리면 머... 한번 쯤 가보... 에?!!!

 

마 댓다.....

 

제주도, 강진군, 보성군 등의 차 재배지에서는 냉해를 방지하기 위해 한공기를 밀어내기 위한 바람개비들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동네에서는 올리브 농장에서 같은 용도의 바람개비들이 보였다. 의외이다.

 

11시 반에 식당에 도착해서 1시간 반이나 식사를 했다. 주변이 온통 올리브 농장인 근사한 식당이다. 최고의 식사를 대접받을 수 있다.

 


 

오후 1시. 미케네 유적지에 도착하였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환상의 나라로 알려졌었던 미케네는 19세기 후반 독일의 슐리만에 의해 발굴됨으로써 전설의 나라에서 역사 속의 나라로 등장하게 되었다.

 

미케네 유적지에서 이렇게 걸어다녔다. 왕궁의 유적지라고는 하지만 당시의 삶이 그렇게 녹녹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에서 미케네 유적지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드론을 날려 촬영할 수도 있었는데 여러모로 조건이 맞지 않아 그냥 현지 안내판에 있는 사진을 스맛폰으로 찍어왔다. 기대보다는 규모가 크지 아니 아니하다. 방어용 요새 정도로 보이는데 왕궁까지 있었다고 주장한다.

 

미케네의 성채로 들어가는 두개의 입구 중에서 주 출입구인 사자의 문이다. 제단 앞으로 발을 올린 두마리 사자의 모습이 돋을 새김되어 있다. 

 

이 동네는 사자의 서식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징을 사용하게 된 것은? 메소포타미아의 유적에서도 흔히 권력과 방어를 상징하는 것으로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을 거쳐 미케네 문명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 지... 사자상은 삼각형의 박공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재밌다. 보물창고에서 다시 보자..ㅎ

 

성채의 재료로는 역암을 사용하였다. 자갈들을 뭉쳐 하나의 덩어리로 만든 듯한 모양이다. 퇴적암의 한 종류.

 

미케네 문명의 중심지인 미케네는 BC 14~12세기에 번영을 누렸는데, 방어에 유리한 작은 언덕에 동서 약 300m, 남북 약 150m의 범위에 견고한 성벽을 갖추었다. 원형 묘역이 여럿 발굴된 것이 재밌다.

 

 

미케네 문명과 크레타 문명의 연관성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대원들.

 

왕궁의 유적과 유적지 주변 일대.

 

왕궁의 유적은 이렇게 생겼다. 왕궁이 맞나?

 

북문 쪽에는 많은 건물들의 유적이 나타난다.

미케네는 메가론 양식으로 불리는 궁전 양식이 확립되어 그리스 고전 시대의 신전 건축에 영향을 주게 된다.

 

작은 동산 윗쪽이지만 우물도 있어 방어에 유리했다고...

 

물이 부족하면 몰래 비밀 통로를 통해 조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고 한다. 

 

남쪽에는 멋지게 장식된 사자의 문이 있지만 북문은 간단하게 축조되었다.

미케네는 트로이 원정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트로이 원정군의 지휘관인 아가멤논과 그의 부친인 아트레우스가 지배하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 일대를 중심으로 했던 미케네 문명은 BC 12~11세기 경에 발칸 반도를 따라 남하해온 도리스 인들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유적지 부근에 위치한 박물관에서는 모조 황금 가면만 기억에 남는다. 아니... 사실은 모르겠다고 실토한다.

 

오후 1시 40분. 아트레우스의 보고에 도착하였다.

보물은 털려 없지만 그래도 '보물창고'이므로 입장권이 필요하다.

 

 

입구 윗쪽에 보이는 삼각형의 박공이 인상적이다. 이 당시의 건축물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입구에 쏠리는 하중을 분산시키는 방식을 고안해냈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 것인가에 대해 머리가 허연 할배는 의심하면서 고민하고 있다.

 

보고의 내부. 물론 이미 옛날에 다 털려서 어떤 보물이 이 보고에 저장되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보물은 없고, 보고만 남았다.

 

옆쪽으로 작은 방이 연결되어 있는데 거기도 비었다. 바닥에 돌멩이 하나 떨어져 있다.

 

아트레우스의 보고에서 뭔가 건질 것이 있나 싶었던 방랑객들의 허탈한 표정.

 


 

오후 3시. 미케네 유적지를 떠난다.

3시 반. 버스에 뭔가 이상이 발생했다. 커다란 소음이 발생. 다음 휴게소에서 점검하기로...

Pelopidas 휴게소에서 멈추었다. 운전기사 스타브로스 아저씨가 점검하고 수리를 시작했다. 뭐가 문제라고 하는데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휴게소에서 휴게하고 있으라고 하는데, 좋은 기회라서 드론을 날려볼까 계속 망설였다. 바람이 너무 세다. 멀리 능선 위로 풍력발전기들이 보인다. 이곳은 그런 동네인가 싶다. 바람이 쎈 동네. 

 

휴게소 내부에 있던 뽑기 기계. 인형들 모습이 눈에 익은데...

 

4시 반에 출발하였다. 1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박수를 치면서 출발했다.

 

끊임없이 올리브 농장이 나타난다. 올리브 나무의 세상이다.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세계적인 올리브 생산지라 하더라. 펠로폰네소스의 '니소스'가 "섬"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한다.

 

5시 50분. 산지의 골짜기를 달려내려오다가 Kalo Nero에서 해안도로를 만났다. 식당 건물에 잠시 쉬어 화장실을 이용했다. 화장실이 하나 밖에 없어 남녀 공용이다. 그래서 남녀 공용으로 줄을 길게 섰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6시 50분. 예정된 올림피아의 숙소에 도착하였다. 

주변은 완전 풀냄새 나는 촌동네이다. 저녁 하늘의 모습이 서양 풍경화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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