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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올림픽이 개최되었다던 올림피아에서 5월 17일 아침을 맞이 한다. 완전한 초록 세상이다.^^ 시골이다.ㅎㅎ

 

근사한 호텔인데 한쪽에 텃밭도 있다. 농사짓는 호텔이다.^O^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식당 주변을 산책하는 투숙객.

 

2024년 5월 17일의 여정이다. 올림피아의 유적지를 탐방하고 파트라스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벗어났다. 나프파크토스를 거쳐 델포이 유적지 인근의 아라호바에서 하룻밤을 신세졌다.

 

8시 55분에 숙소에서 출발했는데, 9시에 유적지 도착 완료.

고대 올림픽의 시초가 된 올림피아는 BC 2000년 경부터 성역으로 조성되기 시작하여 BC 1000년 경부터는 제우스신을 모신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올림피아 경기는 BC 776년에 시작되어 그리스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349년에 이교도의 잔재라며 중단시키고 시설을 파괴하였다. 6세기에는 지진과 홍수로 인한 파괴도 이루어져 '유적'이 되었다.

1829년 프랑스 팀이 발굴을 시작하여 제우스 신전의 흔적을 발견하였다. 1874~1881년 동안에는 독일 팀이 발굴하면서 더욱 성과를 보였으며, 1928~43년 사이의 발굴 및 최근의 발굴 결과 현재의 모습으로 복구하였다. 198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입장권 하나로 세곳을 방문할 수 있다.

 

올림피아 유적은 경기장 유적지와 박물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기장 유적지. '유다 나무'라는 것이 있다더라.

 

유적지 안내판이다. 대충 살펴보니 자료 정리를 성의껏 잘해 놓은 것 같다. Dear visitors,

 

올림피아 성소 안내 게시판의 지도.

유적에 이름을 찾아 붙여 보았다. 지도의 윗쪽이 남쪽이다.

 

요로케 유적지 내를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설명을 듣고 내용을 기억하려 애썼다. 김나지움 쪽에 매표소 및 입구가 있다.

 

유적지 서쪽으로 클라데오스 강이 흐르는데 레오니다온 남쪽으로 흐르는 큰 강인 알페이오스 강과 합류한다. '강'이라고 하기에는 좀 미안할 정도이기는 하다.^^

 

크로니온 온천. 헬레니즘 시대에 법정이 있던 것을 밀어버리고 로마인들이 근사한 모자이크로 장식된 온천장으로 개조했다. 3세기 말에 닥친 지진으로 박살났다.

 

뜀박질 연습을 하던 김나지움의 흔적이다.

 

프리타네이온. 공회당 같은 공공 건물이 있던 곳이다.

 

필리페이온. '필리포스 신전'이란 뜻이다. 필리포스, 즉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를 위한 신전인 것이다. 그리스의 유일한 인간을 위한 신전이다. 로마로 넘어가면서 아무 황제나 신격화가 이루어지게 되는 원형이 아니었을지...

당시 필리포스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이러한 신격화까지 이루어졌을 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나 보다. 알렉산더 더 그레이트.

 

헤라 신전, 그리고 그 동쪽에 위치한 올림픽 성화 채화장이다.

올해 파리 올림픽을 위한 성화도 이곳에서 채화되었다. 4월 16일이었다고 하니 한달 쯤 전의 일이었다.

 

도리아식 기둥으로 장식된 멋진 신전이었을 터인데, 지금은 40개의 기둥 중 4개만 보인다. 나머지는 부러져 누워있다.

BC 7~6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그리스 신전 중 가장 오래된 신전 중 하나이다. 여러 차례 파괴되어 수복되어 지금 흔적으로나마 남아 있는 34개 기둥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신전 내부는 전실, 신실, 후실로 나뉘어 있고, 신실에서는 "어린 디오니소스를 달래는 헤르메스의 상"이 발굴되었다. 이 상은 올림피아 고고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올림픽에 출전을 하지는 않았지만 올리브 월계관을 써볼 수 있었다.

 

헤라 신전 앞의 관광객들 뒷편의 사면도 유적지이다.

사진 오른쪽의 사면에는 님파이언이라는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던 흔적이다. 헤로데스 아티쿠스와 부인 및 여럿의 동상, 그리고 황소 한마리로 장식된 근사한 분수대였다.

 

분수대였던 곳 바로 앞쪽에는 1908년에 발굴된 선사시대 주거 유적지도 있다.

 

메트로온 유적지. 사진들이 어디에 있을까?

 

여행자가 동상의 기단을 살펴보고 있다. 제우스의 동상들이 세워져 있었던 흔적이다.

"스포츠는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현실적으로 과연 그러한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아니 하기도 하다. 그게 현실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부정 행위가 있었단다. 그걸 들키게 되면 해당 선수가 소속된 도시 국가가 망할 정도의 처벌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제우스 동상을 이곳에 추가로 세움으로써 반성의 의미를 표하고, 엄청난 배상금을 물어내야 했다고 하더라. 왜? 이기기만 하면 엄청난 혜택이 있었기에 욕심을 부리는 선수들이 가끔, 아주 가끔 나타났었다고 하네.

 

게이트를 지나면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이어진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 경기장이다.

 

올림픽 경기장에 섰다.

 

경기장에 왔으면 경기를 해야 한다.

 

애들만? 아니다. 노익장은 과시하라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니들이 잘도 뛴다. 빠샤~

 

고대의 원조 올림픽 경기장에 왔었............

 

에코 스토아. 건물 안에서 소리를 지르면 7번 반복해서 울렸었다고 한다. 내부가 프레스코로 장식되어 있어 '포르티코'라고도 불리었다.

스토아 앞쪽에 높은 기둥 두개가 서 있고, 프톨레미 2세와 아르시노 동상이 올라가 있었다.

 

헤라 신전이 모두 '파괴'된 상태라면, 제우스 신전의 상태는 '처참'하다.

 

제우스 신전은 건축 당시 64m 길이에 폭이 약 27m로 파르테논 신전에 버금가는 웅장한 신전이었다.

게다가 내부 신실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혔던 13.5m 높이의 제우스 신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 최고 조각가인 페이디아스가 황금과 상아를 재료로 만든, 벼락창을 들고 있는 제우스 신은 어디로?

 

지금은 모두 파괴되었고 제우스 신상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신전의 건축에 사용된 암석이 조개들로 채워져 있다. 이것은 아직 석회암이 아닌 것인가, 이미 석회암인 것인가?

 

불레우테리온의 흔적이다. 그리스 건축에서 불레우테리온은 의사당으로 번역된다.

불레우테리온은 올림픽 평의회의 회의실로 이용되었던 곳으로 보인다. 이곳의 '맹약의 제우스상' 앞에 경기  전에 선수들과 심판들이 모여 성스러운 의식을 집행하기도 했다. 규칙대로 경기를 집행하겠다는 선서를 한 곳이다.

 

레오니다이온. 낙소스의 레오니다스가 비용을 대서 만든 거대한 숙소였다.

 

레오니다스는 엄청난 부자였었다. 이런 거대한 숙소를 BC 331년에 지어 그냥 기부할 정도로...

 

페이디아스의 작업장, 공방이다.

이곳에서 아테네의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제우스 신전의 신실에 안치된 제우스 신상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5세기에 이곳은 초기 기독교 교회로 변용되었다.

 

클라데우스 온천이 있었던 곳.

 

선수들이 모여 경기 시작 전에 연습하고 훈련하던 팔라이스트라의 유적이다.

 

쓸쓸하고 황폐한 3000년 전에 잘 나갔던 인류의 흔적 속을 걷는 여행자.

 

10시 55분. 올림피아 고고학박물관. 제우스 신전 박공을 장식하던 조각들 세트.

 

니케 NIKE 여신상. '승리'의 여신상이다. 아테네 동맹국가들이 스파르타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세운 동상이다.

일반적으로 승리의 여신인 니케는 날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여신상은 날개가 없다. '승리'의 상징이 영원히 이곳 올림피아에 머물게 하기 위해 날개를 떼어냈다는 썰이 있다.

 

어린 디오니소스를 달래는 헤르메스. 헤라 신전의 신실에서 발굴된 것이다.

티스토리에서는 미술교과서에 나오는 조각품이라도 성기가 드러나면 게시물 자체를 막아버리더라. 그래서 자체 검열 완료!

 


 

12시 7분. 주차장에서 버스가 출발한다. 고대 올림픽의 성소인 올림피아를 떠난다. 뒤돌아 본다.

 

1시 40분. 이오니아 해의 거점 항구 중 하나인 파트라스에 도착하였다. 역시나 도로가 좁아 일방 통행해야 하는 구간이 많아 이리저리 돌아서 시내 구경을 하면서 식당에 도착했다. 흑돔 구이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재밌는 번호판의 차량을 발견했다. 정교회 주교 차량이라고 한다.

 

천천히 식사하고 가볍게 산책을 하고 출발했다. 지협의 양쪽에 항구가 있다. '리오'와 '안티티로'. 그 두 항구를 잇는 다리니까 다리 이름은 '리오-안티리오 다리'이다.

 

총길이가 2.8km에 이르는 리오-안티리오 다리의 모습. 공식 명칭은 하릴라오스 트리피쿠스 다리. 19세기에 이 다리의 건설을 주장하였던 당시 총리의 이름을 딴 것이다. 2004년에 완공되었다. 통행 차량은 그렇게 많지 않아 보였다.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발칸 반도와 육로를 통해 연결되는 통로로는 서부에서 유일한데도 다리 통행량이 적다? 통행 요금도 거기에 일조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현지 가이드가 74.5 유로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11만 원??????!!!!!!!!!! 차량 종류에 따라 다를 것이긴 한데, 완성 당시 자동차 통행료가 10.5 유로였었다고 하는데 거의 매년 큰 폭으로 인상되고 있다고 한다. 이게 맞나 싶다...

 

3시 48분. 과거 한 때 이탈리아식 이름인 '레판토'라고 불리기도 했던 나프팍크토스의 베네치안 항구. 안내 게시판에 있는 사진을 촬영했다.

 

이것은 내가 촬영해본 것이고...

 

부둣가에 인접한 카페들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붐비더라. 커피 한 잔 마시며 쉬다가 일정을 계속하였다. 

부둣가에 레판토 해전에 참전하였다가 한 팔을 잃은 세르반테스 동상이 있다고 하는데.... 만나질 못했다.

 

마을 뒷쪽의 동산 위에는 베네치안 요새가 남아 있다. 이탈리아에 가까워 베네치아의 영향을 오래 받은 지역으로 보인다. 레판토 해전의 현장이었으니......

'레판토 해전'은 1571년 레판토 앞바다에서 벌어진 신성동맹과 오스만 제국 사이의 전쟁이었다. 오스만 제국이 유럽으로의 진출을 중단하게 된 것이 이 해전에서의 패전 때문이었다고 분석된다. 노를 젓는 갤리선을 이용한 마지막 대규모 해전이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후에는 범선에 화포를 장착한 해전으로 넘어간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이정표라고나?

 

4시 43분. 버스는 나팍토스를 출발하였다. E65번 도로를 이용하여 코린토스 만 연안의 해안 경관을 구경하며 동쪽으로 이동하던 중 재밌는 것이 보였다. 씨뻘건 흙을 퍼서 주워 담고 있는 모습이었다. Itea 조금 못 미친 곳이었다.

확인해보았다. 역시나 보크사이트 광산이었다. Eleusis 보크사이트 광산이었다. 세계 매장량의 3% 정도를 그리스가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알루미늄의 원료가 되는 보크사이트 광산은 열대 혹은 아열대 지방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후 5시 57분. 델포이를 향해 달리면서 고도가 높아진다. 흐리사 평야 지대가 올리브 나무로 채워져 있다. 올리브의 나라이다. 산불로 인해 주변에 피해가 많았다고 가이드가 가이드하더라. 멀리 보이는 바다의 해안에는 Itea, Kirra 항구 도시가 있다.

 

6시 20분. 아라호바의 서쪽 교외에 위치한 아네몰리아 호텔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자마자 웰컴 드링크를 주더라. 알콜, 논알콜 선택.

 

맑은 물이었는데 얼음을 넣어 차게 한 후 잔을 흔들어주면 탁한 색을 띤다. 신기하다.

 

저녁 식사 전에 잠시 호텔 마당 산책을 즐긴다. 델포이 방향의 골짜기 하늘이 매우 탁하게 보인다.

 

등대고 누으니 그냥 시체 모드로 변하더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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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니코스 만을 향한 '오션 뷰' 객실로 새날의 햇살이 날아들었다. 2024년 5월 16일이 되었다.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일출이다. 이 아침의 구름이 한낮에도 이어져 타오르는 지중해의 햇볕을 약화시켜주길 헬리오스, 아폴론에게 기원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사르니코스 만의 해변을 산책하는 배가 전혀 안나온 할배.

 

그런데 햇살이 만만치 아니하다.

 

여행을 하다보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엘리베이터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물론 처음에는 당황한다.^^ 호텔 킹 사론의 엘리베이터는 두툼한 바깥쪽 문을 당겨서 열어야 한다. 물론 내릴 때는 밀어서 열면 된다. 탈 때 바깥쪽 문을 열면 내부의 문짝은 자동으로 열린다. 옆으로... 

여닫이 문과 미닫이 문이 결합된 재밌는 엘리베이터로 기억에 남을 터이다.^^

 

숙소를 8시 27분에 출발하였다. 해안도로를 따라 남하 하다가 내륙으로 들어가 에피다브로스 유적지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미케네 유적지를 방문하고 먼 길을 달려 올림피아까지 이동한 하루였다. 298km를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중간에 차량에 문제가 생겼는데, 휴게소까지 이동하여 버스 기사 스타브로스가 직접 수리를 마치고 운행을 계속했다는 소소한 에피소드가 남았다. 1시간 가까이 지체...ㅠ.ㅠ

 

그리스 연안에서 수산 양식장 시설이 종종 보이더라. 해초가 없고 물이 너무 깨끗하여 양식이 힘들다는데 어떻게 가능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흑돔, 농어 등을 주로 양식한다고...

 

에피다브로스와 미케네 일대를 확대한 지도.

 

9시 24분. 에피다브로스 유적지에 도착하였다. 유적지 안내지도이다.

전설과 신화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의 독립 도시국가였던 에피다브로스는 아폴로의 아들인 아스클레피오스가 태어난 장소이다. 그래서 유적지 안내판에 "The Asklepieon of Epidauros"라고 안내되어 있다.

 

에피다브로스 유적지의 핵심은 아스클레피오스이다. 그래서 입장권에도 "아스클레피오스 성소"라고 되어 있다. 거길 입장하는 것이다.

 

유적지에서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보았다. 음악당, 스타디움, 톨로스,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숙소 등지를 지나 박물관을 방문하고 극장을 구경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아폴로 말레아타스"(아폴로와 영웅인 말레아타스가 짬뽕된 신격)가 숭배되고 있었는데, 이곳에 자리한 신전은 아폴로 말레아타스에게 바쳐진 것이었다. 그러나...

아폴로 말레아타스에 대한 신앙이 약해지면서 BC 6세기 경부터 아스클레피오스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성소로 삼게 되었다.

 

헤스티아토리온 유적지의 모습이다. 남아 있는 기둥은 헤스티아토리온의 입구에 해당하는 곳이다. 축제 음식을 함께 나누는 장소였으며, 가운데에는 '오디움'이라 불리 음악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에피다브로스의 아스클레피온은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축복받은 의료의 중심지였다. 에피다브로스를 찾은 환자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꿈속에 신이 나타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스타디움에서 운동을 하고, 음악당에서 음악을 감상하면서 마음을 달랜다. 헤스티아토리온에서 최고의 음식을 먹으며 정양하다보면 대충 병이 나아 귀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을 때까지 계속 더 기다리고 더 기다리면서 더 기다리고...

 

헤스티아토리온의 입구 위치에 남아 있는 프로필론. 멋진 기둥으로 입구 장식된 건물이었을 것이다.

 

발굴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아니하였다. 계속 작업 중이다. 2024년에도 계속...

 

그리스 여행중 세 곳에서 톨로스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안내하더라. 그 첫번째 톨로스인 에피다브로스 유적지의 톨로스. 뭔가를 위해 뭔가가 설치되어 있었다.

원래는 이런 모양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하더라. 기둥들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으며 지붕이 있는.. 그러나 지금은 부러진 기둥 몇개만 흔적으로 남아 있다.

(현지 유적지 안내판에서 캡처)

 

바깥쪽을 둘러싼 기둥들이 지붕을 지탱하고 내부에 다시 원형으로 기둥들이 배치되었었다고 한다. 건물의 용도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겠지만 환자들이 질병에서 회복하기 위하여 쉬는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단다.

 

이곳을 환자들의 회복을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이가 아스클레피오스이다. 그를 기리기 위한 신전은 온데 간데 없다. 로마 장군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BC 87년에 약탈했다. BC 67년에는 해적들이 예까지 와서 털었다. 395년에는 고트 인들이 또 약탈을 하면서 파괴되었다. 게다가 기독교가 퍼지면서 그리스 신들은 기억 저 아래로 사라지게 되거나 믿음이 금지되어 신탁에 기반한 에피다브로스의 기능은 정지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세기 중반까지는 기독교도들에게도 에피다브로스는 치유의 성역으로 추앙받았었다. 몸이 아프면 종교는 좀 유보해도 되는 것이다.^^;

 

외과 수술을 통해 질병의 원인을 바로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었으므로 치료 기간은 길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숙소가 필요했고, 160여 개의 방을 갖춘 숙소가 만들어졌다. 운동하고 온천에서 목욕하고 음악을 들으며 정양하고 톨로스에서 쉬다보면 심한 질병이 아니라면 다 나을 수 있었을 것 같다.^^

 

고고학 박물관의 아스클레피오스. 그를 상징하는 것은 뱀 지팡이이다.

제우스의 번개에 맞아 죽은 글라우코스를 치료하던 중 뱀 한마리가 방으로 들어와 놀란 아스클레피우스가 지팡이로 뱀을 죽였는데 다른 뱀이 약초를 물고 들어와 죽은 뱀의 입에 놓았더니 죽었던 뱀이 되살아 났더라.ㅎㅎ 하여 아스클레피우스가 그 뱀이 했던 대로 했더니 죽었던 글라우코스 살아났더라. 오메~ 그리하야 아스클레피우스는 이후 그 뱀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뱀이 휘감고 있는 지팡이를 상징으로 삼았다더라 하는 이야기이다.

 

오늘날 에피다브로스를 찾는 이들은 아스클레피오스의 기운을 받아 질병을 치유하기보다는 고대 그리스의 극장들 중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우수하다는 극장을 찾는다. 우리도 남들을 따라서 그리 했다.

 

반원형의 극장 모습이 3천년 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듯 하다. 좌우 대칭을 정확하게 이루고 있다는 것을 대충 보기만 해도 알겠더라.

BC 4세기에 설계되어 34단으로 만들어졌는데, 로마 시대에 21단이 추가되어 최대 15,000명까지도 입장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극장의 미스테리. 음향기기에 의한 증폭 없이도 무대 정면에서 낭독하는 소리가 전체 관객에게 전달된다니... 여름철에는 연극이나 오페라 등 각종 공연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마음에 드는 공연이 열리면 머... 한번 쯤 가보... 에?!!!

 

마 댓다.....

 

제주도, 강진군, 보성군 등의 차 재배지에서는 냉해를 방지하기 위해 한공기를 밀어내기 위한 바람개비들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동네에서는 올리브 농장에서 같은 용도의 바람개비들이 보였다. 의외이다.

 

11시 반에 식당에 도착해서 1시간 반이나 식사를 했다. 주변이 온통 올리브 농장인 근사한 식당이다. 최고의 식사를 대접받을 수 있다.

 


 

오후 1시. 미케네 유적지에 도착하였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환상의 나라로 알려졌었던 미케네는 19세기 후반 독일의 슐리만에 의해 발굴됨으로써 전설의 나라에서 역사 속의 나라로 등장하게 되었다.

 

미케네 유적지에서 이렇게 걸어다녔다. 왕궁의 유적지라고는 하지만 당시의 삶이 그렇게 녹녹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에서 미케네 유적지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드론을 날려 촬영할 수도 있었는데 여러모로 조건이 맞지 않아 그냥 현지 안내판에 있는 사진을 스맛폰으로 찍어왔다. 기대보다는 규모가 크지 아니 아니하다. 방어용 요새 정도로 보이는데 왕궁까지 있었다고 주장한다.

 

미케네의 성채로 들어가는 두개의 입구 중에서 주 출입구인 사자의 문이다. 제단 앞으로 발을 올린 두마리 사자의 모습이 돋을 새김되어 있다. 

 

이 동네는 사자의 서식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징을 사용하게 된 것은? 메소포타미아의 유적에서도 흔히 권력과 방어를 상징하는 것으로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을 거쳐 미케네 문명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 지... 사자상은 삼각형의 박공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재밌다. 보물창고에서 다시 보자..ㅎ

 

성채의 재료로는 역암을 사용하였다. 자갈들을 뭉쳐 하나의 덩어리로 만든 듯한 모양이다. 퇴적암의 한 종류.

 

미케네 문명의 중심지인 미케네는 BC 14~12세기에 번영을 누렸는데, 방어에 유리한 작은 언덕에 동서 약 300m, 남북 약 150m의 범위에 견고한 성벽을 갖추었다. 원형 묘역이 여럿 발굴된 것이 재밌다.

 

 

미케네 문명과 크레타 문명의 연관성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대원들.

 

왕궁의 유적과 유적지 주변 일대.

 

왕궁의 유적은 이렇게 생겼다. 왕궁이 맞나?

 

북문 쪽에는 많은 건물들의 유적이 나타난다.

미케네는 메가론 양식으로 불리는 궁전 양식이 확립되어 그리스 고전 시대의 신전 건축에 영향을 주게 된다.

 

작은 동산 윗쪽이지만 우물도 있어 방어에 유리했다고...

 

물이 부족하면 몰래 비밀 통로를 통해 조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고 한다. 

 

남쪽에는 멋지게 장식된 사자의 문이 있지만 북문은 간단하게 축조되었다.

미케네는 트로이 원정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트로이 원정군의 지휘관인 아가멤논과 그의 부친인 아트레우스가 지배하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 일대를 중심으로 했던 미케네 문명은 BC 12~11세기 경에 발칸 반도를 따라 남하해온 도리스 인들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유적지 부근에 위치한 박물관에서는 모조 황금 가면만 기억에 남는다. 아니... 사실은 모르겠다고 실토한다.

 

오후 1시 40분. 아트레우스의 보고에 도착하였다.

보물은 털려 없지만 그래도 '보물창고'이므로 입장권이 필요하다.

 

 

입구 윗쪽에 보이는 삼각형의 박공이 인상적이다. 이 당시의 건축물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입구에 쏠리는 하중을 분산시키는 방식을 고안해냈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 것인가에 대해 머리가 허연 할배는 의심하면서 고민하고 있다.

 

보고의 내부. 물론 이미 옛날에 다 털려서 어떤 보물이 이 보고에 저장되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보물은 없고, 보고만 남았다.

 

옆쪽으로 작은 방이 연결되어 있는데 거기도 비었다. 바닥에 돌멩이 하나 떨어져 있다.

 

아트레우스의 보고에서 뭔가 건질 것이 있나 싶었던 방랑객들의 허탈한 표정.

 


 

오후 3시. 미케네 유적지를 떠난다.

3시 반. 버스에 뭔가 이상이 발생했다. 커다란 소음이 발생. 다음 휴게소에서 점검하기로...

Pelopidas 휴게소에서 멈추었다. 운전기사 스타브로스 아저씨가 점검하고 수리를 시작했다. 뭐가 문제라고 하는데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휴게소에서 휴게하고 있으라고 하는데, 좋은 기회라서 드론을 날려볼까 계속 망설였다. 바람이 너무 세다. 멀리 능선 위로 풍력발전기들이 보인다. 이곳은 그런 동네인가 싶다. 바람이 쎈 동네. 

 

휴게소 내부에 있던 뽑기 기계. 인형들 모습이 눈에 익은데...

 

4시 반에 출발하였다. 1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박수를 치면서 출발했다.

 

끊임없이 올리브 농장이 나타난다. 올리브 나무의 세상이다.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세계적인 올리브 생산지라 하더라. 펠로폰네소스의 '니소스'가 "섬"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한다.

 

5시 50분. 산지의 골짜기를 달려내려오다가 Kalo Nero에서 해안도로를 만났다. 식당 건물에 잠시 쉬어 화장실을 이용했다. 화장실이 하나 밖에 없어 남녀 공용이다. 그래서 남녀 공용으로 줄을 길게 섰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6시 50분. 예정된 올림피아의 숙소에 도착하였다. 

주변은 완전 풀냄새 나는 촌동네이다. 저녁 하늘의 모습이 서양 풍경화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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