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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3일. 눈을 떠보니 생소한 곳이었다.

산이 보이지 않는 끝없이 펼쳐진 평야 지대에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중국의 거대 부동산 기업이 하나 나가떨어졌고, 또 위태로운 덩어리가 있다 하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솟아오르고 있었다.

 

7시에 식당에서 '호텔식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고급 호텔의 분위기를 즐겨본다.

 

 

로비를 장식하고 있는 예술을 감상하는 투숙객 1.

 

 

거대한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투숙객이 많지 않아 조용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호텔의 안쪽 정원, 그리고 웨딩홀.

 

 

산책객 1.

 

2023년 10월 22일 일요일에 오진시에 위치한 에덴 프리미엄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한 쌍, 그리고 들러리들. 한창 화보 촬영을 진행하고 있던 오전 8시.

 

9시에 모두 집합 완료하고 버스에 탑승하였다. 104km를 달려 강남수향 주장의 주차장에 10시 20분에 도착하였다.

 

강남수향 周庄古镇景区는 작은 섬과 같다. 도로가 좁아 단체 여행객을 태운 대형버스의 진입이 금지되어 있어 작은 셔틀버스를 탑승하고 입장하였다.

 

주장고진의 지도이다. 쌍교, 장청, 심청의 세 포인트를 주로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심식사도 해결한 곳이었다.

 

마을 등의 입구에 세우는 패루, '신패루'가 주장으로 진입하는 대로의 입구에 세워져 있다.

 

셔틀버스에서 하차하여 周庄古镇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걸어간다. 걸어야 한다. 10월 22일에 1만8천보를 걸었더라.

 

검표소 인근에 게시된 周庄古镇 지도. 전혀 알아볼 수 없다.

 

周庄古镇의 패루가 보인다. 

북송시대인 1086년에 유지이던 주적공(周迪功)이 全福寺를 세웠는데, 그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마을 이름을 이후 周莊이라 부르기로 했다. 13~14세기에 沈萬三이 수상운수업으로 거부가 되었으며 주장은 물류기지로 성장하였다. "黃山集中國山川之美, 周莊集中國水鄕之美"라는 말이 있다 하더라. '산천의 아름다움을 다 모은 황산이 있다면, 수향의 아름다움은 주장(저우좡)이 다 모았다'라며 주장의 아름다움을 내세우는 글귀이다. 주장의 수향으로서의 아름다움은 그러한 부의 축적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패루를 지나 주장의 아름다움에 찾아가본다.

 

 

 

 

"萬三蹄". 심청의 주인공인 심만삼과 주원장과의 스토리가 엮이면서 주장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돼지족발 요리, 만삼제를 판매하는 상점이 널리고 널렸다. 맛있다. 아주 맛있다. 그런데 길에서 들고 다니면서 먹을 음식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거대한 조형물이 반겨준다.

 

주장이 중국 제1수향이라고 한다. 수향들 중 유일하게 AAAAA급 관광지이다. 오랜 만에 '馬踏飛燕'을 만났다.

 

 

 

주장고진의 '후항가' 골목을 들어가 걷는다. 좁다.^^

 

 

11시. 双桥에 도착했다. 쌍교가 쌍교인 것은 다리가 쌍으로 있기 때문이다. 동그란 아치형 다리와 사각형 다리가 90도로 꺽이며 만난다. 그래서 "열쇠다리"라고도 불린다나...

아치형의 다리가 세덕교, 평평한 것이 영안교이다. 두개의 물길이 만나는 곳에 각각 다리가 만들어지다보니 두 다리가 붙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쌍교이다. 명나라 만력제 때 처음 만들어진 다리들이라고 한다.

 

 

강남수향의 고진들, 특히 주장의 고진이 널리  알려지고 관광지로 개발되는데 큰 계기된 것이 저장성 닝보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화가이자 영화제작자였던 陳逸飛(Chen Yifei)의 작품 "家鄉的回憶-雙橋" 때문이었을 것이다.

'家鄉的回憶-雙橋'는 전통 수묵화 기법으로 그린 유화 작품이다. 미국 석유 재벌인 Armand Hammer가 구매했던 이 작품을 1984년 중국 진출을 위해 덩샤오핑과 만나는 자리에서 선물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던 중국 정부가 이를 대서특필했던 것이다.

 

 

주장이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고, 주장을 소재로 여러 작품을 활동을 했던 천이페이의 다른 작품 '橋'는 유엔협회세계연맹(WFUNA)에서 발생하는 우편물의 표지 그림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의 서명이 된 봉투가 경매 사이트에 돌아다니는...

 

이렇게 유명한 주장의 쌍교를 찾아와서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롭다.

 

쌍교 중 동그란 세덕교 아래의 물길을 따라 유람선이 오가고, 세덕교 위로는 여행객들이 오고 간다. 세덕교 옆의 식당에서는 손님들이 식사를 맛있게 하고 있다.

 

 

 

주장의 부잣집 두 곳을 탐방하기로 했다. 먼저 장씨 집안 '장청'을 방문하였다.

 

 

대문을 지나면 작은 정원을 지나 내청으로 이어진다.

 

 

건물의 장식 하나 하나가 역시 부잣집이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건물 틈새의 작은 공간. 전통 수묵 기법으로 잘 그리면 작품이 나올 것만 같다.^^

 

자연산 대리석을 잘라낸 것이란다. 그냥 그대로 자연의 작품이다. 자연산이다.

 

이곳은 그러니까......

 

萬世師表라는 편액이 보이는 것을 보니, 여긴 공부방이다.

아들들은 이곳 1층의 공부방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고, 공부에 관심이 있던 딸들이 있다면 2층에서 몰래 수업을 엿들으며 공부를 할 수는 있었다고 한다. 몰래... 당시에는 여자가 공부하는 것을 금기시했던 시절이라 그러했다고 한다.

 

 

일상용품 전시 공간에 있던 물품 중 하나. 자수이다. 어떻게 만든 것인지 양쪽에서 보면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자수의 귀신의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는 척하는 여행객 1. 주인은 가당찮아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만 있고......

 

 

장청을 나와 '남시가'의 골목길을 걷는다. 사람들로 대로가 가득찼다. 장청에 비해 '심청'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다.

 

 

 

대문은 열려있지만 밖에서 내부를 바로 들여다 볼 수는 없다. 요렇게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부잣집들도 커다란 그림 등으로 밖의 시선을 차단시키는 장치를 두고 있다.

 

 

'심청'은 거리에서 보면 다른 집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재벌 가옥의 진수를 보여준다. 청나라 건륭 7년(1742년)에 지어진 집이라고 한다. 100여 개의 방으로 구성되었다나...

 

이 세분이 누구시냐면은...... 그러니까...... 웃는 사람들이다. 웃기다.

 

 

송무당.

 

 

식사합시다.

 

聚宝盆. 심만삼이 이룬 거부를 탐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황제인 주원장도 마찬가지였다. 

'明史'에 따르면 주원장 시대에 심만삼은 도성 건축비를 부담하겠다고 하여 황제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했다. 사업은 더욱 번창했고. 그런데 그는 너무 나갔다. 돈이 너무 많다보니 실수를 했다. 심만삼이 군대의 사병들에게 은자를 나눠주겠다는 건의를 한 것이다. 헌데 "천자의 군대를 필부가 위무를 해?"라며 황제가 삐진 것이다. 네가 그렇게 돈이 많아?

황제는 심만삼에게 동전 하나를 하사하곤 매일 전날의 두배 이자를 달라고 요구했다. 심만삼은 쉽게 생각하고는 그러하겠다 했고. 그런데 하루마다 두배로 늘어나면 30일 후 5억3천만 량이 넘게 되는 것이었다. 심만삼은 황제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다행히 윈난으로 유배를 당하는 것으로 퉁치고 목숨은 건졌다. 이 일화를 담은 것이 '취보분'과 '만삼통보'이다. 재신의 복을 나누어 받으려는 관광객들이 서슴없이 던진 동전과 지폐가 잔뜩 널려 있다. 이제 중국 사람들은 현찰 사용을 피하고 알리페이 등을 주로 사용한다던데.. 취보분 아래에 알리페이 수신장치라도 달아놓아야 할 듯 하다.

 

 

심만삼과 주원장 사이의 일화를 표현한 부조물이 전시되어 있다.

 

 

12시. 장청주가를 방문하였다. 식당이다.

 

강소성의 명물 요리, 만삼제를 만났다. 독특한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족발이다. 아주 부드럽게 맛있다.

萬三蹄라고, 주장의 부호인 심만삼의 이름을 따왔다. '만삼 족발'이다.

명나라 황제 주원장은 강소성의 부호 심만삼을 죽일 꼬투리를 찾고 있었다. 그의 집을 방문하겠다고 했고, 황제가 방문하니 특식을 준비했다. 상에 오른 붉은 돼지 족발 요리를 먹기 위해서는 칼로 족발을 발골해야 했기에 요리 옆에는 발골용 칼이 준비되어 있었다.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주원장은 먼저 심만삼에서 요리 이름을 물었다. 중국어로 돼지 족발은 '주티(zhuti)'라고 한다. 돼지의 발음과 황제의 성 '주' 발음이 같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황제 앞에서 말을 꺼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심만삼은 꾀를 내서 '万三蹄'라며 자기 이름을 대서 위기를 모면하고, 발골을 위해 칼을 드는 대신 족발의 뼈 중에서 가느다란 것을 찾아 살을 잘라 접시에 올림으로써 자신의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중국에서 심만삼은 재물과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만삼제의 요리 방법은 간단한다. 설탕을 넣은 간장물에 오랫동안 삶으면 된다. 짠맛이 나면서 달콤하고, 기름지지만 느끼하지 않고 쫀득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갖고 있어 오늘날은 중국의 어디에서도 쉽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그러한 음식을 우리는 '현지'에서 먹었다. 

 

 

오후 1시부터 1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유람선이 접근하는 있는 곳이 太平桥, 저 멀리 보이는 다리가 世德桥이다.

 

 

여행지에서 지나는 사람들과 섞여 사진 하나 남긴다.

 

 

 

식전에는 '장청' 앞이 바글바글했는데, 식후에는 한산해졌다.

 

'서만가' 길을 따라 계속 물길과 뭍길이 함께 간다.

 

 

문화재로 보호되고 있다고 하는 周庄普庆桥를 건너가본다.

 

 

南湖园이라는 현판이 보였다. 중국 강남에 흔하디 흔한 수많은 '원림' 중의 하나인가 싶었다. 문이 닫혀 있어 돌아서왔는데 더 살펴볼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곳이 '周莊'을 "周莊"이 되게 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주적공(周迪功)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全福寺라는 큼지막한 사찰의 입구였던 것이다. 왜 문이 닫혀 있었을까... 작은 동네에 큰 사찰을 만들어주어 동네 사람들이 그의 성 '周'자를 가져다가 "周莊"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던가...

 

 

'서만가'에서 贞丰桥를 건너면 '중시가'로 이어진다. 다른 수향들보다 주장에는 골목길이 많아 복잡하게 느껴졌다.

 

 

贞丰桥 위에서 본 주장의 풍경.

 

 

규모가 크고 멋지게 장식을 해놓았다. 건너편에 주장 고진으로 입장하는 입구들 중의 하나가 위치한다. 다리 이름은 지도에 나와 있지 않다.

 

通秀桥는 주장의 문화재이다.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실을 뽑고 계신다. 직접 뽑은 그 실로 만든 작품들을 판매하는 가게.

 

쌍교에서 남쪽으로 남시가를 따라 걷다가 서만가로 건너갔다가 중시가를 걷다가 성황경을 따라 걸었더니 쌍교를 만났다.

 

복흥가의 넓은 물길을 따라 가다보면 青龙桥를 만나게 된다.

 

 

자유시간이 마쳐질 시간이 되었다. 집합장소로 이동하는 사람들?

 

주장고진의 패루가 보인다.

 

패루는 물고기 꼬리로 장식되어 있다.

 

 

 

주장고진은 여러 물길을 따라 많은 골목길이 연결된다. 골목길이 잘 만들어져 있어 다른 고진과는 달리 유람선 영업이 잘 안되는 듯 보였다. 걸어다녀보니 걷는 것이 주장고진을 즐기기에 더 적합해 보이기도 했다. '만삼제'는 맛있었다.^^

 

 

 

주장을 떠나 인근에 위치한 수향인 '동리고진'으로 이동하였다. 42km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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