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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8일. 일요일. 트리니다드에서 카마구에이를 거쳐 올긴을 지나 바닷가의 숙소 Brisas Guardalavaca Hotel까지 537km를 달렸다.

 

6시 50분. 날이 밝았다. 여기는? 쿠바구나.

 

손목의 고리를 보고서야 숙소가 '올 인클루시브'였다는 것이 기억났다. 감기에 시달라느라 몸이 느러져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깝다. 

 

해변 산책을 즐겼다.

 

Cuartel de Caballeria. 기병대가 주둔했던 곳 같다. 뒷편으로 Trinidad 역이 있는데,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이루어졌던 잉헤니오스 계곡에서 생산된 설탕을 운반하는 통로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8시 30분. Cuartel de Caballeria, 기병대 막사 쯤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 같다. 감옥으로도 이용되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용도가 없는 것 같다.

 

튼튼한 트럭이 앞을 지난다.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잔뜩 타고 있다. 모두 서서 위로 머리만 내밀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쿠바의 유명한 '트럭 버스'이다.

 

낡아 부서져 가는 병영을 돌아 뒤편으로 돌아가면........

 

Trinidad역이다. 몇 량의 차량과 기관차가 멈추어 있다. 1760년 사탕수수 농장에서 사용하기 위해 건설한 철도라고 한다.

 

다시 움직일 것도 같은데....

 

Valle de los Ingenios. 잉헤니오스 계곡이라고 옆구리에 써 있다. 쿠바에서 설탕의 절대적인 양을 생산해 내었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의 현장 잉헤니오스 계곡에서 출발하던 열차.

사탕수수 농장을 잉헤니오라고 불렀다고 한다. 최대 40개 정도의 잉헤니오가 있었다고. 잉헤니오는 사탕수수 농장, 그것에서 설탕을 만드는 공장, 거기에 일하는 사람들의 마을까지 통합하여 부르는 용어라고 한다. 하나의 장원 같은 개념이겠다. 스페인 사람들이 있었을 때는 Ingenios라고 했는데, 미국인들이 들어오면서 Central Asucarero라고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기능은 그대로.

 

지금은 멈추어서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음료를 판매하는 간이 바로 이용되고 있다.

 

역의 한편에는 희한한 물건도 있다. '열차 버스'란다. 수리중이다. 상태가 오묘하다.

버려진 것과 사용하고 있는 것의 중간 경계를 본 것 같다. 버려진 것 같기도 하고 현재 이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버려졌다가 다시 손길이 닿으면 이용되는 것이겠지. 모든 물자가 부족하니 모든 것을 다시 손질하여 사용하는 나라, 한 때 풍족했기에 많은 것을 '누군가' 가졌던 나라, 지금은 조금 곤란한 나라, 여러 가지 상반된 이미지가 머리 속을 날아다닌다.

 

말은 훌륭한 동력 수단이다.

 

트리니다드를 떠난다.

 

아벨리오가 보여준 자신의 배급표. 월급은 터무니 없이 적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불편없이 살아가는 이러한 배급 시스템이란다. 기본적인 것은 적절히 나누어 주니까. 하지만 서서히 사람들이 '부족'을 느끼고 있단다. 부족한 것은 '시장'에서 구입해야 하고, 구입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마련하려면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해야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 사람들은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조금 불편한...그런 사회인 것 같다.

배급 카드에 쌀, 설탕, 비누, 소금, 콩, 커피, 담배, 과자, 빵, 생선, 닭고기, 우유, 기름, 야채 등 할당. 1990년대 러시아인들이 빠져 나가기 전까지는 부족한 줄 모르고 살았다. 쿠바인들 잘 살았다. 하지만 러시아 인들이 빠져나간 다음부터 부족을 체감하기 시작하였다.

카스트로가 혁명을 할 때는 사회주의만 생각하였는데, 소련에서 공산주의를 요구하였다고 한다. 카스트로 형제와 달리 혁명의 주역이었던 칼밀로 시엔푸에고스, 체 게베라는 반대하였다고 한다. 뜻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로 떠난다. 그곳에서 사망한다. 반 카스트로 운동을 하던 우베르만토를 체포하기 위해 떠났던 카밀로는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다. 자, 이들은 그냥 사고로 죽은 것일까? 두 사람이 죽은 다음에 카스트로는 소련과 합작을 진행하였다고.

쿠바 사람들의 주식은 쌀이라고 에밀리오는 말한다. 브라질, 베트남 등지에서 쌀을 수입한다고 한다. 자급률이 20% 정도라고 한다.

 

 

사탕수수 재벌 Iznaga가 지배하던 땅. 지명에도 남아 있다. Manaca Iznaga. 

 

멀리 저택이 보인다. 길 양쪽으로 노점상이 줄지어 있다. 쇼핑의 유혹과 함께 하는 이즈나가 저택 방문.

 

시선을 끄는 것은 우뚝 솟은 탑이다. Torre de Manaca Iznaga라고 불리는 탑. 농장 관리 및 작업 감시용 탑이었으리라. 137개의 계단이 있다. 가파르다. 오르기 힘들다.

 

탑을 오르면 아래로 주변 정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탑 아래의 하늘을 나는 매.

 

탑에서는 잉헤니오스 계곡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도 세다.

 

Iznaga 저택의 내부에는 식민지 시절의 생활 소품들이 많이 남아 있다. 잉헤니오스 계곡의 대략적인 모습을 알 수 있는 지도로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의 일상을 보여주는 벽화들과 소품들도 있다.

 

사탕수수 줄기를 으깨어 즙을 짜내는 기계이다. 동력은? 당연히 人力이다. 기계에 사탕수수 줄기를 넣고 커다란 나무 손잡이를 양쪽에서 잡고 돌리면 된다. 의외로 힘이 든다. 애써 짜낸 즙에 럼주를 약간 타서 마신다. 달콤하다. 맛 있다.

 

미국 뉴욕의 버펄로에서 1884년 7월 15일에 생산된 제품이라고 각인되어 있다. 생산된지 130년이 넘은 쇳덩어리이다. 멀쩡하게 작동한다. 대단하다.

 

간이 기차역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설탕을 유럽으로 실어내었던 철도. 지금도 이용되고 있는 것일까?

 

뙤약볕에 상체를 드러내고 사탕수수 줄기의 껍질을 벗기고 있던 노인. 간이역사 뒷편의 작은 가게에서 판매하기 위해 사탕수수를 손질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나까를 떠난다. 길을 달리다가 길가에 넓은 사탕수수 재배단지가 보여 차를 멈추었다.

 

11시 30분. Bienvenidos. 환영한단다. 환영을 받았으니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한다.

 

사탕수수밭의 사탕수수는 이렇게 생겼다.

 

껍질을 벗기고 잘라내면 이렇게 생겼다. 씹으면 즙이 살짝 나온다. 달다. 설탕이다.

 

Jatibonico. 연기를 뿜는 커다란 굴뚝이 보인다. 사탕수수 처리 공장이라고 한다. 설탕을 만드는 곳.

물을 사기 위해 정차를 하였다. 하지만 부근 가게에서 생수를 구입하지 못하였다. 없단다. casa라고 하는 민박집이 많이 생기면서 손님들을 위해 음료수, 생수, 맥주 등을 매집한다고 한다. 따라서 작은 도시의 경우에는 이러한 상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Ciego de Avila에서는 도시 확장을 위한 대규모 공사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길을 따라 차를 타고 달려 카마구에이에 도착하였다. 

까마구에이의 지역 경제는 목장이 주가 된다고 한다. 소는 정부 소유이며, 소마다 등록번호가 부여되어 있어 매년 검사를 한다고 한다. 일반인이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 그친다. 우유는 정해진 양을 상남하고 나머지는 개인적으로 시장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까마구에이에 가까워지면서 넓은 평야에 목장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토지 이용률은 상당히 낮아 보인다. 아벨리오 이야기로는 농사짓기에 좋은 땅이 별로 없다고 한다. 철망으로 구획된 목장들이 많이 보이지만 가축은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 가축 사육 밀도도 낮은 것 같다. 가축은 주로 소.

까마구에이 인구는 30만 명 정도. 스페인인들이 성당을 10개나 만들었을 정도의 큰 도시. 오래된 도시로서 좁은 미로형 가로망을 보인다. 영국 해적의 침입에 대비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까마구에이 라는 지명은 원주민의 지명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After almost continuous attacks from pirates the original city (founded as Santa María del Puerto del Príncipe around 1515 on the northern coast) was moved inland in 1528.

The new city was built with a confusing lay-out of winding alleys. There are many blind alleys and forked streets that lead to squares of different sizes. One explanation is that this was done by design, to make the city easier to defend from any raiders; by the same version, the reason that there is only one exit from the city was that should pirates ever return and succeed in entering the city, it would be possible for local inhabitants to entrap and kill them. However, locals dispute this reasoning as a myth, asserting that in truth the city developed without planning, and that winding streets developed out of everybody wanting to stay close to their local church (the city has 15 of them).

-wikipedia

 

차에서 내려 시내 답사를 시작한다. 헌데...배고프다. Plaza de San Juan de Dios 옆에 있는 La Campana de Toledo에서 점심을 먹는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쿠바 말이다.

앞으로 계속 관광객이 늘어날텐데, 제대로 좀 하자. 화장실 좀 어떻게 하자. 어떻게 대부분의 식당에 화장실이 한 칸씩이냐. 단체 손님와서 줄을 주욱 서서 기다리는 모습 안좋다. 아니 모습이 안좋은 것이 아니라 너무 불편하다. 이 식당도 그렇다.

 

식사를 할 때면 다가와 '관타나메라'를 부르는 연예인들. 이 팀은 오늘 많이 힘든가 보다. 대부분 웃는 모습으로 노래하던데, 힘든 표정이다.

 

식당 내부 여기저기에 항아리들이 묻혀 있다. 영국 해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뭐가 어쩌구 하면서 설명을 하던데...아직 모르겠다.

해적 등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 항아리에다가 재산을 숨겼었다고 한다. 빗물을 받아 저장하는 용도로도 사용한 적이 있고. 물론 그 전에 도자기의 생산이 많이 이루어진 지역이라는 특징도 작용하여 항아리가 이 지역을 상징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는 전설~

 

Plaza de San Juan de Dios. 산 후안 광장이다. 위만 쳐다보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바닥에 박혀 있는 쇠기둥에 무릎이 부딪혔다. 까졌다. 피났다. 아팠다. 하지만.... 보고 있던 사람이 없어서 창피하지는 않았다.ㅠ.ㅠ

 

Iglesia San Juan de Dios

 

쿠바 소녀의 외국인 감상하기.

 

Paco Recio, '건강한 야마'라는 뜻을 가진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식민지 시절의 틀이 남아 있는 도시라 길이 좁다. 하여 대부분의 길이 차량에 대해서는 일방 통행이었더라. 건물에는 왜 이리 예쁜게 색을 칠해 놓는지, 보기에 좋았다.

 

안내도.

 

공중전화기.

 

Ignacio Agramonte Park에는 Ignacio Agramonte 장군의 동상이 있다. 쿠바 혁명사에서 중요한 사람이란다. 10년 전쟁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Maceo 동상도 있다.

Lt. General José Antonio de la Caridad Maceo y Grajales (June 14, 1845 December 7, 1896) was second-in-command of the Cuban Army of Independence.

Fellow Cubans gave Maceo the sobriquet of the "Bronze Titan" (Spanish: El Titan de Bronce), which was a reference to his skin color, stature and status. Spaniards referred to Maceo as the "Greater Lion" (El Leon mayor). Maceo was one of the most noteworthy guerrilla leaders in 19th century Latin America, comparable to José Antonio Páez of Venezuela in military acumen.

-wikipedia

 

일부 구간의 철로가 시내에 남아 있다.

 

Iglesia de Nuestra Senora de la Soledad.

 

Iglesia de Nuestra Senora de la Merced.

 

Plaza de los Trabajadores. 건너편의 은행 건물이 근사하다. 와이파이가 지원되는 광장이므로 역시 젊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서 인터넷의 세계를 즐기고자 하고 있다.

 

누구라도 딱 보면 느낄 것이다. 이것이 '올드 카'.

 

시내 답사를 마치고 모여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떤 아줌마가 슬슬 다가오더니 뭐라뭐라 한다. 여러 사람이 듣고 대충 조합하니 샴푸나 비누 같은 것을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랬다.

 

카마구에이에서 올긴은 멀다. 버스가 열심히 달린다. 올긴을 우회하여 바닷가의 리조트 단지로 계속 달린다. Guardalava.

21시30분 쯤 숙소에 도착했다. 올 인클루시브. 저녁 식사가 아직 제공되고 있어 겨우 떼웠다.

 

도착했다. 체크인.

 

손목에 띠지 하나씩 붙여준다. All inclusive. 역시 모든 비용 포함되어 있으니 뭐든지 하라는 것. 단지 내의 아무 바에 가더라도 그냥 뭐든 달라고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돈 다 낸 것이다. 그냥 아주 막 마시면 된다.

하지만...피곤하다. 감기가 떨어지질 않는다. 그냥 자았다아~

아깝다. 올 인클루시브.

내일은 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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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7일. 토요일이다. 시엔푸에고스 시내 답사를 하고 트리니다드로 이동하였다.

 

시엔푸에고스 만에 날이 밝았다. 요트가 많이 정박해 있는 것이 눈에 들더라.

 

오전에 시엔푸에고스의 프라도 거리에서 호세 마르티 공원 등지를 답사하였다.

 

시엔푸에고스에서 묵었던 Jagua 호텔 앞에 있는 Palacio de Valle. 프랑스, 스페인, 아랍 등 서로 다른 세가지 건축 양식을 짬뽕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19세기 초 건축.

사탕수수 농장주 바이에스의 저택이었다.

 

프라도 거리에 있는 Benny More의 동상. 쿠바의 유명 연예인.

Bartolomé Maximiliano Moré (24 August 1919 19 February 1963), known as Benny Moré, was a Cuban singer, bandleader and songwriter. Due to his fluid tenor voice and his great expressivity, he was known variously as El Bárbaro del Ritmo and El Sonero Mayor. Moré was a master of most Cuban popular genres, such as the bolero, son montuno, mambo, and guaracha. Moré formed and led the Banda Gigante, one of the leading Cuban big bands of the 1950s, until his death in 1963.

-wikipedia

 

토요일이다. 장이 열렸다. 번화가 불레발 거리라고 소개하더라. 차량이 다니지 않아 주말이면 음식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노점상들로 채워진다고.

 

유명 건물 위치 안내도. 건물 사진만 있고 설명은 생략되어 있다.

 

한쪽에서는 공연 준비도 이루어지고 있고...

 

드루와, 드루와.

 

근사한 건물.

 

이발소 내부. 널찍하다. 여유 여유. 기다림.

 

시청 건물.

 

호세 마르티 공원에는 호세 마르티 동상이 있다.

 

뭔가....

 

손녀와 할머니, 비둘기, 그리고 외국인들.

 

결혼을 앞둔 신부일까 모델일까, 예쁜 아가씨가 좋은 날씨에 사진 촬영을 하고 있더라.

제보를 받았다. 15살을 맞아 예쁘게 단장하고 화보 촬영을 하던 아가씨라고 한다. 15살이라니.

 

외국인들이 들이닥쳐 뭔 짓을 하고 다니는지를 지켜보는 나무의 눈.

 

공원에 앉아 있으려니 쿠바 사람 하나가 다가와 체 게바라가 그려진 지폐를 내민다. 가지라는 줄 알았더니 아니더라. 눈치챘다. 돈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쿠바는 내국인용 화폐와 외국인용 화폐를 이원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같은 액면가의 요금을 받는다. 하지만 화폐 가치는 25배 가까이 된다. 지폐에 인물이 그려진 것은 내국인용 화폐이다. 외국인용은 건물이나 동상 같은 것으로 채워져 있다. 외국인들이 체 게바라를 많이 찾으니 그가 그려진 내국인용 지폐를 내밀고 같은 액수의 외국인용 지폐를 원한 것 같았다. 나름 괜찮은 환투기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환전을 하지 않아 CUC가 없어 그가 원하는대로 해주질 못하였다.

 

1890년에 문을 연 토마스 테리 극장.

 

Tomas Terry. 노예상을 하면서 부를 일구다. 하지만 주변인들의 좋지 않은 시선. 그것을 불식시키기 위해 극장을 만들었고, 사람들의 호의를 받게 되었단다.

 

개장 당시의 의자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100년이 넘었다.

 

극장 내부 모습. 공연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극장의 객석은 여러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정에는 멋진 그림이...

 

Catedral de la Purisima Concepcion. 

 

대성당 내부.

 

Palacio Ferre - Casa Provincial de la Culture

 

건물이 낡아 일부분만 문화 시설로 이용하고 있다. 발레 강습.

 

아이들 놀이터?

 

Jardin de UNAEC. 아프리카 음악인 것 같았다. 계속 공연 중.

 

시엔푸에고스 만의 바닷가 제방 위에서 스마트폰에 빠진 학생. 이곳도 해변이니 말레꽁이다.

 

시엔푸에고스 만의 바다에 물고기를 잡기 위해 빠진 펠리컨.

 

전화카드를 구입하고 있는 아벨리오.

 

해변의 시엔푸에고스 클럽에서 점심 식사.

클럽 시엔푸에고스. 자본주의 시절 카지노였던 곳이라고 한다.

 

다음 여행지 트리니다드로 향한다. 에스깜브라이 산을 지나 트리니다드로 진입한다.

1632년부터 스페인인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때문에 흑인과 뮬라토가 많다고 한다. 물론 메스티소도 많다.

인구는 4만5천명 정도.

사탕수수 농장을 운영하면서 이곳에서 부를 일군 사람들이 간떼로스, 이즈나가, 브루네로 등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시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하여 18세기 건물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Trinidad를 파스텔톤의 예쁜 도시라고 한다. 맞다. 파스텔톤의 예쁜 도시다.

 

도로 포장은 돌로 된 것이 그냥 남아 있다.

 

역사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Palacio Cantero를 먼저 찾았다.

 

탑이 있는데, 탑에 오르면 트리니다드 시내 전체를 조망해볼 수 있다. Plaza Mayor. 마요르 광장과 그 주변. 건너편으로 Holy Trinity 교회가 보인다.

 

멀리 San Francisco de Asis 성 프란치스코 교회의 멋진 모습도 눈에 든다.

 

Holy Trinity 교회와 그 내부.

 

어떤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파스텔톤의 도시

 

San Francisco de Asis.

 

여기도 La Bodeguita del Medio 짝퉁이 있다.

 

칸찬차라 바.

유명한 곳인가보다.

 

매달린 장식.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어지러워지더라.

 

음료 한잔. 꿀, 레몬, 얼음, 럼주 등이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트리니다드 과거엔 시골이었다. 이곳 사람들이 몸이 아파도 아무런 약재의 처방을 받지 못하였단다. 약이 없으므로. 그 시절 몸이 안좋을 때면 트리니다드 사람들이 약 대신 만들어 먹던 것이 이 음료라고 한다. 하지만.......나의 감기는 낫지 아니하였다.

 

바 입구의 카운터에 앉은 아저씨가 시가 만들기 시범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가를 판매한다. 맛보기로 피워볼 수도 있다.

 

예술하는 사람들.

 

상업하는 사람들.

 

여가 즐기는 사람들.

 

바베큐 당하는 돼지. 은은한 숯불에 하루를 이렇게 익힌다고 한다.

 

해가 저문다. 수고한 햇님이 쉬러 가신다.

 

오늘도 힘들게 달렸다. Playa Ancon 호텔에서 여장을 푼다. all inclusive 호텔. 숙박 비용에 여러가지 즐길 거리의 비용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여러날 같은 호텔에 머물 때나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바닷가에 호수가 많다보니 모기가 아주 많았다.

 

트리니다드의 돌길을 걸어다니다가 신고 있던 샌들이 망가졌다. 여러 해 나와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는데...ㅠ.ㅠ

발가락에 물집도 잡혔다. 제길~

저녁 식사 후에 다른 사람들은 트리니다드의 Los Conspiradores에 가서 살사 공연을 보러 갔다. 하지만 나는 감기가 심해져서 그냥 방에 뻗었다.

내일 아침은 67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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