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동서남북 방향으로 각각 끝부분을 극동, 극서, 극남, 극북이라 한다. 그 중에서 극북에 가까이 가보는 날이다. 용정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새벽 이른 시간에만 열리는 수변시장을 방문하면서 하루를 시작하였다.
연길역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대주호텔.
길거리. 하와이 룸싸롱. 연길역 주변의 번화가.
한글 간판을 사용한 가게들. 그 앞을 지나가는 엘란트라 택시.
5시50분. 식전에 새벽에 열리고 문을 닫는다는 수변시장을 찾았다.
연길하 옆에 있어서 수변시장이라고 하지만 정식 명칭은 동방수상시장.
수상시장 안내도.
수상시장 옆을 흐르는 연길하.
길바닥을 보니 밤에 또 비가 내린 모양이다.
물고기 가판대.
시장 건물안쪽. 육류구역. 개들이 많이 보였다.
중국 의학 정통 뼈때리는 안마, 10원. 혈압 측정해주는데 1원.
미성년자 시청불가 노골쏭~ (궁금하다.)
백주를 근 단위로 판다. 50도 짜리가 한 근에 2.5원 , 60도 짜리는 3원. 두어 통 사들고 오고 싶었다. 이것도 세관에서 1인당 1병으로 쳐줄 것인지 고민하다 기대를 접었었다.
시장답다.
반찬가게.
밥 가게.
건어물 가게.
고추가루 가게.
버섯 가게.
고기, 고기, 고기 가게.
미꾸라지 가게.
시장 주변 1.
시장 주변 2.
택시들 중에 엘란트라가 많다.
시장 주변 3. 뾰쿠당구.
대주호텔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했다.
연길에서 도문으로 이동한다. 연길 시내를 관리하는 경찰들.
바쁘게 움직인다.
연길역 주변의 시내 모습.
로동자문화궁.
닉스클럽.
농촌 풍경. 비닐 하우스도 설치된 것이 보인다.
도문시에 도착하여 도문대교에서 중국과 북경의 국경선 위치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한반도의 극북 지점에 해당하는 함경북도 온성군 유포진리 언저리를 멀리서 조망하고 용정으로 이동하였다.
9시11분. 중국의 도문시와 북한의 남양역 사이를 연결하는 도문대교의 모습이다.
도문강반, 국경, 중국도문변경.
코리아 사진관에서 고운 한복을 빌려준다.
빌린 고운 한복을 입고 도문강반 앞에서 기념 사진을 만든다. 오랜 전에 떠나야 했던 선조의 후손이 고향을 그리며 찾아와 아쉬운 흔적을 남기는 것일 것만 같다.
중조우의탑.
중국도문강안. 강택민. 1991년.
도문대교의 중국쪽 하안에는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전망대 위에서 북한 쪽을 조망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도문대교의 가운데까지 가서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작은 유람선을 이용해 두만강에서 뱃놀이를 할 수도 있다.
다리 가운데 국경선 표시가 되어 있다.
경계선에 발을 걸쳐 보았다.
멀리 보이는 남양역.
남양역 주변에 보이는 건물들.
남양역 주변으로 보이는 마을의 모습.
도문대교의 중국쪽 출구에 세워져 있는 전망대.
전망대에서 북한쪽을 조망하며 사진 촬영을 하는 여행객들.
전망대 한쪽 구석에서 기념품이라면서 북한돈을 판매하고 있다. 화폐로서의 가치가 없어 짐바브웨 달러와 동급으로 취급된다고 한다. 위조에 들이는 비용보다 화폐 가치가 적다고 할 정도이니 말 다했다. 여기저기 김일성이 등장한다. 흥정하여 나름 싸게 샀다. 그런데 전망대 아래에서의 판매가는 전망대 윗쪽에서의 가격의 절반이다. ㅎㅎㅎ
전망대에서 본 두만강, 도문대교, 남양.
농사일을 하는 일꾼들. 그런데... 한쪽을 자세히 보니...
위의 사진 일부 크롭. 이건 아니잖아~ 진짜로 가래를 사람이 끌다니....헐~~
이것이 북한의 집단 농장인가. 사람들이 모두 모여 수작업을 한다.
변경선에서 기념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발길을 돌렸다.
한반도의 네 방향의 끝 지점이 4극 중에서 극북 지점을 찾는다. 당시의 구글 지도 스크린캡처.
도문시에서 훈춘시 방면으로 두만강을 따라 이동한다. 두만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마을. 구글 지도를 보니 '풍서'라는 동네인 것 같다.
북위 43도 지점이었섰다. 북위 33도 지점에 위치한 마라도를 가보았고, 43도 지점에도 와보았다. 다음엔 훈춘까지 가볼 수 있을지...
두만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농가.
10시 40분. 두만강과 건너편의 북한의 모습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만들어보았다.
연길 시내로 되돌아왔다.
배고프다. 유명한 순이랭면 집엘 왔다.
12시 40분. 배를 두드리며 식당을 나오는 일행. 커다란 그릇에 냉면을 잔뜩 주더라. 옛날 옛적 오장동 냉면이라고 먹었던 것보다 양이 열배는 되는 듯 했다. 만족했다. 아주 맛있었다. 만족했다. 순이랭면 먹으러 다시 이곳에 오고 싶을 정도였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용정시로 이동한다.
유명한 '맥심'을 만날 수 있다.
1시10분. 윤동주 시인의 흔적을 찾아서 대성중학교를 찾았다.
해란강 변에 위치한 용정시. 대성중학교를 방문하고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있는 명동도 다녀왔다.
널리 알려진 곳이라 기부금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근사한 교수청사도 마련될 수 있었을 듯하다.
좋은 말이다. "사랑으로 교육을 교육으로 희망을".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인 서시의 원고. 1941.11.20.
방명록 일부. 중국돈 100원 기부했다.
대성중학교.
윤동주 시비.
헤이그 특사였던 이상설 선생 역사기념관 준공비.
연합기념비.
룡정시관광지점 대성중학옛터.
항일시인 윤동주.
대성중학교.
례의범절.
군대는 부모가 믿을수 있는 학교란다. 그랬으면... 한다.
2시 20분. 명동 윤동주 생가.
명동 윤동주 생가를 찾았다.
서시 시비.
생가터에 복원된 생가.
1994년 8월 29일 연변대학 조선연구센터의 주선으로 해외한민족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복원되었다.
바로 옆의 윤동주전람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건설중...
주변 현지인이 가옥들.
굴뚝을 나무로 만들어 놓은 것이 특이하다.
옥수수밭이 지천이다.
이런 것도 만들어놓았다.
'일제 강점기를 짧게 살다 간 젊은 시인 윤동주.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고민하는 철인이었다.'고 교재에 써있다. 그에 대해 감정이입을 해보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린다.
용정시내로 들어왔다. 멀리 비암산 정상에 일송정이 보인다.(나중에 알았다. 저곳이 일송정이라는 것을. 여기서 '나중'이라는 것은 2020년이었다. ㅠ.ㅠ)
1933년 윤해영의 노랫말에 조두남이 곡을 붙인 "선구자"에 나오는 일송정이 민족정신을 일깨운다 하여 일제가 1938년 소나무 한 그루를 고사시켰다. 1991년 3월 12일 용정시는 한국 각계의 후원을 받아 용정시 서쪽에 위치한 비암산(琵岩山) 정상에 소나무를 심고 정자를 신축하여 그해 9월 '일송정'을 복원하였다.
허거덕... '선구자'의 작사자와 작곡자 모두 만주에서 친일 활동을 열심히 했던 인물들이라고 한다. ㅠ.ㅠ
윤해영은 만주 최대의 친일단체인 '오족협화회'의 간부로 활동하면서 적극적이고 열성적으로 일제를 찬양한 인물이었단다. 여기서 '오족'이란 일본, 조선, 만주, 몽골, 한족을 지칭하는 것으로 일제의 대동아공영권을 위한 나팔수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조두남 또한 친일 악극을 작곡하는 등 그렇게 살았고. 해방 이후 자신의 친일 행적을 감추고 적극적 친일행위를 했던 윤해영과의 관계를 숨기기 위해 1932년 여인숙에서 만나 시를 한편 전해받고는 만난 적이 없다는 거짓 회고록을 남기기도 했다.
문제는 선구자의 원곡이 '용정의 노래'인데 '선구자'는 일제로부터 독립을 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만주국을 건설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가리킨 것이라고 한다. 윤해영의 다른 시 '락토만주'에서 "선구자"를 만주괴뢰국의 터를 닦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옴마나...
참고로 당시 만주에서는 독립투사들을 '산사람'이라 불렀다고 한다.
다음의 링크에서 참고......
3시20분. 해란강을 가로지르는 룡문교.
륭문교 부근에는 성태뀀성 식당이 있다. 꼬치구이집 같다. '뀀성'이라는 이름이 재밌다.
룡문교 앞에는 소나무가 있다. 일송정을 찾아보는 것을 대신하자고 했다.
이때 현지 가이드는 일송정의 소나무가 없어져서 볼 수 없다고 했던 것으로 대충 기억한다. 복원된 것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확인하러 다시 가보아야겠다.^^
룡정시를 깨끗하게 만드느라 수고하고 있는 일꾼.
용정에서 연길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일행중 한분께서 마이크를 잡으셨다. 노래 선구자를 멋지게 불러주셨다. 감사~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연길역. 이곳에서 우리 일행은 침대열차를 타고 밤새 심양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황당한 것은... 우리 일행을 태우고 다녔던 버스는 밤새 심양으로 달린단다. 아니 이게 무슨....
기차표를 받았다. 연결에서 심양까지. 124원. 17:35 출발.
7시40분.
침대칸이 객실로 구분되어 있지는 않다. 그냥 침대열차다.
한쪽면에 3층. 앉으면 머리가 닿는다. 좀 구겨져서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래도 누워서 잠을 청할 수는 있었다. 그렇게 심양에 도착하는 꿈을 꾸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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