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세월이 마구마구 잘도 지나간다. 한국은 매우 따뜻하다는 뉴스가 나온다. 따뜻~

 

8월3일.

5시반에 잠이 깨어 침대에서 꼼지락거린다.

 

7시 넘어서 식당을 찾아간다. 식당이 3층에 있다는 안내를 어제 받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다가 3층에 내렸더니 객실 밖에 없다. 왔다 갔다 헤메는 모습을 본 호텔 직원이 식당을 찾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잡아야 한다. 무조건 "YES!" 따라오란다. 묘한 곳에 있더라.

 

 

8시반에 로비로.

 

8시59분. 출발. 예레반을 출발하여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정신의 고향이라 할만한, 하지만 지금은 터키 영토에 편입된 상태인 아라랏트 산 턱밑의 코비랍 교회를 거쳐 에키미아진으로 간다. 여러 교회를 들러 예레반으로 귀환하는 코스다.

 

 

 

9시29분. 창밖으로 멀리 아라랏트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코비랍은 저 산 아래에 위치한다.

흰머리가 Ararat, 왼쪽의 검은 머리는 little Ararat.

 

 

안내하는 가이드가 날씨가 좋아야 한다, 일찍 가야한다고 여러번 강조하였다. 날씨가 좋아야 아라랏트 산 정상의 만년설 부분이 제대로 보인다고. 보!인!다!

아르메니아의 Ararat 산은 인근의 네 나라가 영주권을 주장했었단다. 오스만 투르크, 제정 러시아가 붕괴된 이후, 케말 파샤와 스탈린 사이의 밀실 협약을 통해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터키는 아라랏트 산 일대를 차지해버린다. 아르메니아는 그야말로 잘 자고 일어났더니 땅을 남의 손에 의해 다른 손으로 빼았긴 형국이 되어 버렸다. 수도인 예레반에서 매일 같이 보이는, 자신들의 영토가 남의 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르메니아는 가진 것도 없고, 경제력도 국력도 약한 나라이다. 아라랏트 산을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올 방법은 요원하다. 그래서 가슴에 담고 있는 방법이란 것이....... 터키에 착한 대통령이 나와 자기들에게 그냥 돌려주는 것을 기다린다. 1915년의 대학살에 대한 사죄의 의미라는 빌미도 있으니까. 물론 터키는 대학살이란 사건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ㅠ.ㅠ

 

 

 

비닐하우스다. 비닐하우스 대단지다. 비닐하우스가 있다니. 형태와 구조가 희한하다. 무엇을 재배하고 있을까?

 

 

 

자주 다니던 지오트립 답사팀과 함께 갔다면 "스톱!"을 외치고 버스를 세워 내부 구경을 해볼 시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패키지 여행을 하면서 그들이 보여주는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것도 볼 수 있는 그런 여행이 아쉽다.

 

 

 

 

9시44분. 아라랏트 산 아래의 코비랍에 도착하였다. 산 아래로 구불구불 흐르는 아라스 강이 두 나라의 국경선이다.

 

 

먼저 포토존에 멈춘다.

이곳을 방문하면 남겨야 하는 필수 사진이다.^^ 2018년8월25일자 중앙일보에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이 실렸다. 내가 찍은 사진은 봉우리에 구름이 적다. 중앙일보에 실린 사진은 구름이 많다. 가이드가 이곳을 일찍 가야 한다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해가 뜨면 만년설의 빙하를 달구고, 녹은 물이 증발하면서 봉우리 위에만 구름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한낮이 되면 봉우리는 구름으로 덮여 위쪽이 안보이게 되는 것이다.

 

 

 

포토존 뽀인트는 코비랍 교회 들어가는 길목의 포도밭이다. 그냥 남들이 정차하는 곳에 따라서 멈추면 된다.

 

 

아르메니아 와인 혹은 꼬냑의 원료가 될 것이다.

 

 

 

코비랍 교회.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로 기독교 국가가 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파견된 성 그레고리(257~331)를 지하 감옥에 가두어 버린다. 아르메니아로 36명의 수녀단이 다시 파견되었고, 이들은 모두 순교한다. 이후 아르메니아 왕 티리다테스 3세는 알 수 없는 중병에 걸려 죽어갈 때 공주의 꿈에 성 그레고리가 나타났고, 13년간이나 지하감옥에 갇혀 있었던 그는 왕의 병을 고쳐준다. 이에 감복한 왕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301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게 된 것이라고 전한다.

 

 

코비랍 교회에 도착.

 

 

Khor Virap에 대한 간략한 안내 자료.

 

4번 뽀인트에 교회가 위치한다.

 

 

조 위까지 조금 걸어올라가야 한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나온다. 홍수가 잦아든 뒤 육지를 발견하고 노아가 '예레바츠'라고 외쳤단다. "찾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노아의 방주가 걸린 땅이 아라랏트 산이었고, 그 코앞에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건설한 도시 이름도 "예레반"이 된 것이다. 그래서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아라랏트 산에 더 애착을 갖는지 모르겠다. 

홍수에 떠밀려 표류하던 노아가 육지를 찾기 위해 날려 보냈던 비둘기, 그 비둘기의 자손이겠다.ㅎㅎㅎ

 

 

 

코비랍 교회는 성 그레고리가 갇혀 있던 지하 감옥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교회 내부.

 

 

 

성 그레고리와 티리다테스 3세. 왕은 그의 왕관을 머리에서 벗어 손에 들고 있다. 뒤에 배경으로 교회가 있고. 나라를 교회에 바쳤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

 

 

 

사진의 왼쪽 건물에 지하 감옥이 보전되어 있다.

 

 

고통받는 성 그레고리.

안쪽 구석에 조그만 구멍이 바닥에 뚫려 있다. 들어갔다 나오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어둡고 덥다. 가시는 분들은 꼭 들어가 보시길~

 

 

 

두 아라랏트 산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 남겼다.

 

 

 

아라랏트 산과 코비랍 사이에 녹지대가 분포하는 것은 그 사이로 강이 흐르기 때문이다. Aras 강(Arax 강이라고도 불린다.)이다. 

 

 

우리나라처럼 대치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비무장지대 같은 것은 없다. 그냥 양측의 경계는 국경선인 Aras 강 자체일 뿐이다. 그래도 양국의 사이가 원만하지 않기 때문에 국경 초소가 양의 양안에서 마주하고 있다. 생긴 것도 똑같다. 철골조의 탑 위에 감시 초소. 사진 왼쪽의 터키 초소는 흰색, 오른쪽의 아르메니아 초소는 초록색이다.

 

 

Aras 강은 길이가 1,072km에 이르는, 코카서스 지방에서 가장 킨 강이다. 터키에서 발원하여 아르메니아를 지나 아제르바이잔에서 조지아에서 흘러온 Kura 강과 합류하여 카스피 해로 유입된다. 이란에서 발원하는 지류도 있어 4개 국을 흐르는 국제하천이다.

 

 

교회 앞쪽에 조성되어 있는 묘지.

 

 

 

얼레...

교회에서 놀고 있던 비둘기가 이 아이들과 동기가 아닌가 싶다.

방주에서 육지를 찾던 노아가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는 이야기에 착안한 장사꾼의 상술이었다. 비둘기를 구입하여 '노아처럼' 날려보내는, 일종의 '방생을 하는' 유료 체험이겠다. 다른 생물의 방생은 그야말로 생태계를 파괴시킬 수도 있는 '보내버리는' 방생이다. 하지만 이 비둘기의 경우는 다르다. 비둘기는 강력한 귀소 본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손님이 구입하여 교회에서 아라랏트 산으로 날려보내면 잠시 후에 그 비둘기가 다시 상인에게 돌아와 있다. 그 비둘기를 다른 손님에게 또 판매한다. 참 좋은 상술이다.^^ 상품의 재사용이 가능한, 이것도 친환경일까???

 

 

10시33분. 아라랏트 산으로 자꾸 고개를  돌리며 떠난다.

 

10시52분. 아라랏트 산의 모습이다. 봉우리의 빙하가 녹은 물이 증발하여 형성된 구름으로 봉우리의 모습이 완전히 가려졌다.

 

 

예레반 서쪽에 위치한 도시 에키미아진을 향하여 이동한다. 에키미아진은 기독교 국가 아르메니아에서 기독교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뽀인트이다. 기독교 국가가 된 것은 성 그레고리를 통해서 였지만 그 계기가 큰 희생이 있었으니 36명의 수녀들의 순교였다. 그와 관련된 가야네 교회와 흐립수민 교회가 에키미아진에 있으며, 여러가지 기독교의 성물을 보존하고 있는 성 마더 대성당도 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점심 식사를 한 식당도 있다. 중요하다.^^

 

 

11시26분. 가야네 Gayane 교회에 도착하였다.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Gayane 교회.

아르메니아 포교를 위해 떠났던 그레고리로부터의 소식이 끝기자 이번에는 수녀단을 파견하였다. 그 수녀단을 이끈 수녀가 Gayane이다. 함께 떠났던 수녀들 중에 흐립수민 수녀가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라는 질문에 거울은 "흐립수민"이라고 대답할 정도의 미녀였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 착각한 로마 황제가 탐을 낼 정도로. 

황제의 미친 손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는 선교단에 자원한 것이다. 하지만 눈이 뒤집힌 황제가 이정도로 포기하지 않았다. 병사들을 보내 잡아오라고 하였다. 

이들의 압박을 받은 아르메니아 왕은 전국을 뒤져 수녀단을 모두 체포하였다. 잡아놓고 보니 흐립수민 수녀의 미모에 아르메니아 왕 티리다테스 3세의 눈도 돌아갔다. 자기에게 오면 다른 수녀들 모두를 무사방면하겠다고 하였으나 가야네 수녀를 비롯한 모두가 반대하며 같이 순교하였다. 그 수녀단의 단장 가야네 수녀의 이름을 딴 교회이다. 

630년에 건축하였고, 1652년에 재건되었다. 다시 확인한다. 이 동네는 지진이 잦은 곳이다. 왜? 코카서스 산맥이라서! 그게 뭐? 지각판의 경계 부분이라서!

 

 

교회 입구로 들어간다.

 

 

 

교회 내부.

 

 

....

 

 

 

가야네 수녀. 수녀 주변에는 병사들로부터 고통받으며 순교하는 다른 수녀들을 묘사하였다.

 

 

 

두 수녀는 천사들의 마중 속에 예수님께로. 그런데 손 모양이...수결인... 부처손?

 

 

11시37분. 가야네 교회를 나선다.

 

11시44분. 에키미아진 성 마더 대성당. 

200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의 방문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게이트.

 

 

 

성 고레고리에 의해 301-303년에 건축된 성당이다. 한 줄기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적을 체험한 자리에 성당을 세운 것이다. 건축 이후 심한 정치적 격변을 겪는 동안에 심하게 훼손되었다가 480년에 복원되었다. 이 때 원래 원통형의 둥근 아치형이었던 천장이 현재와 같은 십자형 구조로 바뀌었고, 618년에는 건물 위부분의 둥근 목조 지붕이 동일한 모양의 석조 지붕으로 교체되어 현재까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에치미아진 성 마더 성당은 고대 건축의 정수이자 기독교 교회 건축 양식의 원형으로 꼽히는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서 성당건축 발달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2000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지방의 작은 수도원은 제때 제대로 보수가 되질 못하고 있는데 그래도 대주교가 있는 대성당은 보수 공사를 수시로 하는가부다. 공사중~

아르메니아는? 지진이 잦은 곳! 

여러 차례의 붕괴와 보수가 반복되고 있다. 중앙의 큐폴라 부분 및 제단 일대가 모두 공사중이라 들어가볼 수 없다.

 

 

 

2010년에 남동향에서 촬영한 깔끔한 사진을 한번 보자. 교회건축 양식에서 한 자리 차지할 만 하다. 근사하다.

(출처: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Etchmiadzin_Cathedral)

 

 

 

에키미아진 성마더 대성당은 세가지 성물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첫번째 십자가가 못박힌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고 알려진 롱기누스의 창이다. 창두 부분만 남아 있다. 원래 게그하르트 동굴사원에 보관중이던 것을 옮겨왔다.

 

 

"예레바츠!"(찾았다)를 외친 노아, 그가 타고 움직였던 방주가 있었다. 그 방주의 부서진 파편의 아주 작은 조각이 보관되어 있다. 십자가 가운데 박힌 보석의 가운에에 있다. 크기는 이쑤시개의 1/4토막 만하다.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의 작은 파편이 남아 있다. 십자가 모양의 가운데 박힌 보석의 가운데 들어 있다. 크기는 이쑤시개의 1/4토막 만하다.

 

 

지붕은 돔형으로 되어 있는 건물이다.

 

 

공사중.

 

 

에키미아진 대성당은 아르메니아 50,000드람 지폐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돈으로 10만원이 넘는 지폐다.

(출처: 위키피디아)

 

 

12시. 기념품 판매점이 있다. 쇼핑을 하는 다른 멤버들의 분위기에 맞추어 쇼핑하는 척을 하는 중~

 

 

 

12시25분. 출발.

 

12시30분. 식당에 도착했다. Machanents Tourism and Art라는 기관이면서 Mechanents Guest House도 겸하는 곳이다. 그래서 식당이 있다.

 

 

고춧가루였을 것이다. 매우 맵다고 했다. 먹어보니 그렇게 공포스럽게 매울 정도는 아니다.

 

 

앙증맞은 다기.

 

 

지역의 문화를 연구하고 교육하고 보전하는 등의 여러가지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좋은 말씀을 전한다.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문화와 예술을 교육하고 있단다. 그들이 만든 작품들이 실내의 도처에 전시되어 있다.

 

 

밖에도 좋은 말씀이 아르메니아 어로....

 

 

 

1시35분. 버스 탑승, 출발.

 

1시40분. 흐립수민 Hripsime 교회 도착.

 

 

1995년에 교회 주변에 녹화 사업을 실시했단다.

 

 

교회는 395년에 수녀의 묘가 있던 곳에 세워진 것이다. 현재의 교회 건물은 618년에 다시 세워진 것이며 고전적인 아르메니아 건축 양식을 반영한 것이다.

 

 

중앙 제단.

 

 

 

지하묘지에 안장되어 있으며 외부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따로 전시된 묘비 뿐이다. 흐립수민 수녀의 묘비. 로마 황제 및 아르메니아 왕이 뿅 간 미모였다고 한다.

 

 

 

결혼식이다. 8월3일이면 금요일인데, 아르메니아에서는 아무 날이나 날잡아서 결혼하나부다.

 

 

 

1시53분. 교회를 나선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여러 대의 차량들이 줄지어 달려간다. 결혼식 차량 행렬이라고 한다. 

 

 

2시. 즈바르트노츠 Zvartnots 사원. 아르메니아 왕이 세례를 받았던 장소라고 한다.

 

 

역시나 간략한 안내를 친절하게 해주는 안내판이 있다. 아르메니아어, 영어, 러시아어.

 

 

 

2000년에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St. Gregory the Illuminator 라고 작은 팻말이 붙어 있다.

 

 

즈바르츠노츠 성당은 7세기 중엽 아르메니아 정교 총대주교 네르세스 3세가 성 조지를 기념하여 지은 것이다. 그러나 930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무너져버렸다. 1900년대 초에 유적지 발굴이 이루어졌다.

 

 

 

뜨거운 햇볕에 달구어진 유적지. 돌판구이용 판 위에 올려진 삼겹살 고기가 된 느낌이다.

 

 

독수리가 조각된 석재의 일부.

 

 

 

무너진 건물을 일으켜 보자~

지나가던 놈이 쳐다보는 눈빛이 편치 한다.

 

2시16분. 즈바르츠노츠 성당 유적지를 떠났다.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으로 돌아왔다. 학살 추모공원에 들렸다가 유명한 공장 NOY를 방문했다. The Club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메리엇 예레반 호텔로 걸어왔다.

 

 

썰.

아르메니아 국내보다 국외에 더 많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살게 된 배경. 1915년의 대학살 때문이었다. 1차 세계대전 중 아나톨리아 지방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 사람 150만 명 정도가 희생되었다고 한다. 아나톨리아 지방을 노리던 아르메니아를 장악한 러시아와 오스만 투르크 사이의 갈등이 아르메니아 인에 대한 학살로 이어진 것이다. 직접 살해한 경우보다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이란 북부의 사막으로 강제 추방 때문에 발생했다. 추방된 사람들은 사막을 벗어나지 못하고 대부분이 아사하였다고 한다.ㅠ.ㅠ

 

 

 

2시34분. 미국 대사관 옆을 지난다.

 

 

 

미국 대사관 건물들은 대부분 튼튼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벽면에 아르메니아와 미국의 우호 증진을 희망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2시43분. 학살 추모공원에 도착하였다.

입구에 많은 유명인들이 기념 식수한 나무들이 있었다. 그런데 상당 수의 나무들 상태가 안좋은 것이 안타까웠다. 

 

 

나무마다 이런 명판이 세워져 있다. 이건 체코 대통령. 2016년 방문.

 

 

 

추모 기념물.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미국에서 단체로 사람들도 있었다. 아르메니아 후손이란다. 버스 4대.

 

 

 

탑. 갈라지는? 달라붙는?

 
 
 

닫히는 것일 수도, 열리는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하더라.

 

 

 

 

꺼지지 않는 불 앞에 많은 꽃이 놓여져 있다. 그리고 아이 하나.

 

 

 

대학살 그리고 이어진 강제적인 이산, 디아스포라. 그 아픔이 서린 곳.

 

 

 

전시관이 땅 속에 들어 있다. 뒤에 쳐져 딴 짓하고 있으니까 블라디미르 박이 빨리 따라오라고 재촉한다.

 

 

 

1908년에 '젊은 투르크 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투르크의 구원을 위해 제국의 기독교인을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11년의 제4차 의회에서 전국민을 강제로 이슬람화시킬 것이며, 그것이 안된다면 기독교인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아르메니아 인들을 절멸시킬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하 생략)

 

 

 

 

 

아르메니아 인들의 디아스포라, 그리고 타국으로...

 

3시11분. 학살 추모공원을 나선다.

 

 

 

3시19분. NOY 공장 도착. 브랜디, 와인, 보드카를 생산한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음~ 좋아~

 

 

아르메니아의 대표적인 꼬냑 공장 NOY. 포도가 너무 달아 와인 제조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브랜디를 제조한다고 한다.

이곳 시음장은 주류를 구입하려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호객 행위로 생각하지 않는다. 입장료를 내야 한단다. 희한하다.

시음용으로 나오는 꼬냑은 연식이 어려서 제대로 된 것을 마시려면 사야 한단다. 블라디미르 박이 판매점에 가서 두 병을 사왔다. 오면서 식식 거린다. 신용카드 리더기가 고장나서 현금으로 샀다고. 그러면 회사에서 비용처리가 안되어 그냥 자기 돈 나간 것이라고 궁시렁거린다.^^

 

 

회사 입구의 전시품. 탐내지 말지어다~

 

 

NOY 술공장이 1877년부터였다고 자랑한다. 회사 직원이 나와서 가이드해준다. 따라 다니며 설명을 듣는다. 영어다. 우리 가이드가 통역해준다.

 

 

술 공장은 과거에 성채였던 곳을 활용하고 있다. 성의 지하실 및 지하 통로가 와인을 저장하여 숙성시키는데 아주 좋은 조건이 된다고 한다.

 

 

요새였던 곳이라 땅 좀 파면 이런 대포가 종종 나온다고 한다. 이제는 장식품일 뿐.

 

 

과거에는 이렇게 도기 항아리에 술을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팔았다고 한다.

 

 

2012년에 열린 술잔치에서 자기들이 상받았다고 자랑~

 

 

 

보기만 해도 취한다.^^

 

 

이거 내꺼~

 

 

 

이것도 내꺼~

 

 

 

약 15톤짜리 통이란다. 진짜로 술통 속에서 수영하다 빠져 죽을 수 있는 크기다.

 

 

성채의 지하 비밀 땅굴. 술공장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이후에는 포도 농장에서 이 통로를 통해 포도를 운반했단다. 뜨거운 햇볕을 받지 않는 저온 유지 마법이 걸린 통로였다. 하지만 지금은 버려진 공간이다. 습도가 너무 높아 이용이 곤란하다.

 

 

 

이런 통을 아무리 쳐다보아야 마실 수 없다. 마셔볼 수 있는 것이 있는 곳으로 간다.

 

 

웰컴이란다. 나도 웰컴이다~

 

 

년식에 따라 세 가지 음료를 시음할 기회를 준다. 역시 스무살 짜리가 제일 낫다.

몇몇 분들은 입맛에 안맞는 모양이다. 버려진 잔들 모두 내 앞으로 집합!

 
 
시음장 방문 기념으로 요고 하나씩 준다. 소주 한잔 용량이다.

 

 

판매점에서 나도 구입해보았다. 역시 신용카드 리더기에 문제가 있단다. 할 수는 있는데 중복 처리 가능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꺼려 하더라. 할 수 없다. 미국 돌라를 사용하여 구입. 86돌라. 지갑이 말라간다.

 
 
4시37분. 출발.
바람이 많이 분다. 하늘 저쪽이 뿌옇다.
 
 
4시45분. 호텔 도착.
쉬다가 샤워를 하려고 했는데, 샤워 타월이 없다. 뭐 이런 호텔이 별이 다섯개 씩이나.
원래는 영어 좀 했어야 하는데 좀 그런 옆지기에게 부탁했다. 카운터에 샤워타월 좀 가져다 달라고. 20분이 넘어도 안가져 온다.
 
 
6시45분. 로비에 모인다.
 
6시55분. 버스타고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출발.
 
7시6분. 도착. 지하에 위치한 THE CLUB.

 

 

전채 요리. 일식집에서 주는 마끼 비슷하게 생겼는데, 맛은 없다. 하지만 1인당 4개씩 먹어야 한다고 한다. 맛은 없는데, 먹다 보니 먹을만 하다.^^

 

 

고기에 입맛대로 원하는대로 소스를 찍어 먹으란다. 어떤 맛의 소스인지는 하나씩 테스트 해보면 된다.

 

 

 

커다란 생고기 덩어리 하나를 준다. 바닥돌은 뜨겁게 달구어진 것이다. 역시 자기 입맛대로 대강 잘라가면서 먹는다. 고기는 참 좋다. 맛도 좋다.

 

 

먹음직스럽게 잘 잘라가며 드시는 분들도 있고, 나는 마구 잘랐다가 제대로 못한다고 혼났다. 여러번 자르기 귀찮아 큰 덩어리로 대충 해체했을 뿐인데. 내가 뭘.ㅠ.ㅠ

 

 

식사하면서 생각났다. 가이드들에게 호텔 방에 샤워 타월이 없더라고 이야기했다. 예쁜 아르미네가 호텔로 전화하더라.

 

 

9시5분. 식사를 마쳤다. 수다 시간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간다.

 

 

이렇게 어제의 그 길을 따라 걸어서 왔다.

 

 

금요일 밤이다. 불금이닷.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 있었다.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의 인구는 무려 백만 명이나 된다. 백만 명 도시의 번화가 금요일 밤거리 모습.

 

 

9시30분. 공화국 광장에 있는 메리엇 호텔.

 

방에 들자마자 확인했다. 샤워 타월 있다.

 

쉬자~

내일 출발 시간은 9시.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