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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강진군에서 시행하고 있는 "강진 반값가족여행"의 혜택을 보았다. 조금 더 배우며 여행을 하기 위해 강진군 홈페이지에서 강진군에 대한 여행 자료를 부탁했었고, 그렇게 받은 자료 중에 『있는그대로 강진여행』이라는 책자는 지금까지 내가 받아본 지자체의 여행안내자료 중에서 최고라고 평하고 있다.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지만, 특히 주제별로 나눈 후 안내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강진군 지도에 표시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후 "어디를" 다녀왔냐는 다른이들의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최고다!

 

그렇게 해서 병영성과 하멜 기념관은 강진군 여행 첫날에, 강진만생태공원, 가우도, 석문공원은 둘쨋날에 방문하였다.

 

1. 전라병영성과 하멜 기념관

전라병영성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병마도절제사 마천목 장군이 축조하여 1895년 갑오경장까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전라도와 제주도를 포함한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의 총지휘부였다.

그래서 1872년 지방지도에서 강진현을 찾아보면 강진읍과 병영의 규모가 거의 비슷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雪城 혹은 細柳城이라고도 했던 병영성은 지금의 광주광역시인 광산현에 있던 병영을 당시 도강현이었던 이곳으로 옮긴 것으로, 기록에 의하면 둘레가 2,820척, 높이가 10척 8촌이었고, 연희당, 응수당, 객사 등 부속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전라병영성에 1656년부터 1663년까지 네덜란드 인 하멜(Hendrik Hamel) 일행이 억류되어 생활하기도 하였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불에 타 폐허가 되었다가 이듬해 폐영되었다.

전라병영성 전체 길이는 1,060미터, 면적은 93,139제곱미터로 남북으로 길다란 장방형에 가까운 평지성이다. 배후에는 해발 561미터 높이의 수인산에 산성이 있다. 동서남북에 옹성을 갖춘 문터, 4개의 모서리와 동벽, 서벽에 2개씩의 치성의 흔적, 남서쪽 배수구 시설, 조선시대 읍성 진영에 일반적으로 적용된 방법으로 축조된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1997년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 성곽, 남문, 동문 등이 복원되었고 성곽 내의 소실된 건물들과 유적들은 현재 복원중이다.

 

병영성의 동쪽에는 이곳에서 6년간 억류 생활을 했었던 '하멜 기념관'이 멋지게 만들어져 있다.

 

병영성의 동문을 보호하는 옹성에서...

 

성벽의 길이가 1km를 살짝 넘는 정도이니 천천히 걸어서 한바퀴를 돌아보면 좋다.

 

남문 부근의 일부 구간은 지난 해의 집중호우로 인한 재난에 휩싸였다. 성벽 일부가 붕괴되어 복구를 기다리고 있다.

 

병영성 서문 밖에 위치한 하고저수지 옆을 지나는 배율천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교'가 놓여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어 있다. 18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후기의 지방 건축술이 크게 발전된 양상으로 보여주는 우수한 유적이다. 아름다운 조형미를 갖춘 다리로 조선후기 다리들 중 수작으로 꼽힌다는데 이곳을 놓치고 이번 여행에 직접 보질 못했다. 넥스트 타임~

(사진 출처: 조진섭, 2018, "그옛날 당당했던 모습으로 돌아온 호국의 성지," 국방저널, 통권 530호, 81쪽.)


병영성의 동문 밖에는 하멜 기념관이 위치한다. 월요일에는 휴관하여 내부를 구경하지는 못했다.

하멜기념관은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렸다고 평가되는 『하멜보고서』의 저자이자 병영에서 오랫동안 억류생활을 했던 헨드릭 하멜을 기념하고, 강진과 네덜라드 호르큼 시와의 문화적 교류를 위해 개관되었다.

 

네덜란드 사람이라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풍차가 광장 한쪽에 모셔져 있다. 네덜란드 풍차가 이런 모습이었던가? 30여년 전쯤에 한번 본 것 같기는 한데...

 

그리고 기념관 앞에서 병영성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하멜 동상을 만날 수 있다.

동인도회사의 선원이었던 하멜 일행은 일본으로 항해하던 중 배가 난파되어 1653년 제주에 표착하였다. 이들은 탈출하기 전까지 13년 동안 조선에 살아야 했고, 그 중 7년을 강진 병영에서 지냈다.

하멜 일행이 이곳에서 보낸 기간이 길었던 만큼 병영 일대에는 네덜란드 문화와 관련된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병영면 성동리의 마을 안쪽을 지나는 '한골목길'의 담장의 축조 방식이 독특하다. 돌을 세워 아랫층과 윗층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엇갈리게 쌓아 마치 빗살무늬 처럼 만든 것이다. 이 담장의 방식과 부근의 수로 등이 그들을 통한 네덜란드 문화 흔적으로 보고 있다.

탈출에 성공한 이후 1668년 네덜란드에 귀국한 하멜은 조선 표착 기간 동안의 임금을 받기 위해 동인도회사에 보고서를 제출하였는데, 이 문서 바로 하멜표류기로 알려진 책의 원서이다.

 

월요일에는 휴관하여 들어가보지 못하는 하멜기념관 전시실에는 전라병영성 출토 유물, 하멜보고서, 호르큼 시에서 기증한 네덜란드 전통의상 등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멜의 조선 표착의 역사적 의미와 17세기 조선의 병영 문화, 네덜란드의 역사 및 국제교류사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 강진만 생태공원

탐진강의 열린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강진만은 자연적으로 넓게 형성된 汽水域(brackish water zone)으로 하구 습지에 인접한 농경지, 소하천, 산지 등의 자연환경이 양호하여 다양한 생물들이 풍부하게 서식하는 생태다양성의 보고이다.

 

2015년 국립환경과학원의 정밀조사에 따르면 멸종위기야생동물 10종을 포함하여 1,131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평균 548종의 생물이 출현하는 남해안 11개 하구역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생태다양성을 자랑한다.

 

예로부터 남해안과 제주도를 오가는 뱃길의 대표항구였던 남당포구가 있던 강진만은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 정약용의 한시 '탐진어가'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천천히 데크길을 걸으며 강진만의 생태를 감상할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201-2호인 '큰고니'를 형상화시킨 조형물이 탐진강 제방에 만들어져 있다.

 

다리 이름도 '고니 다리'.

 

갯벌위의 갈대밭 사이로 데크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밀물 때와 썰물 때의 모습을 모두 보고 싶었는데, 그냥 지나가는 여정이라 그렇게 하질 못했다. '1주일 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분들은 얼마나 좋을까~~~^^

 

3. 가우도

강진만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가우도는 후박나무 군락지 등 자연이 살아숨쉬는 숲이 청자 빛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강진을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강진읍 보은산이 소의 머리인데, 섬의 생김새가 소(牛)의 멍에(駕)에 해당된다고 하여 '가우도'라고 불리게 되었다.

강진만의 서쪽인 도암면에서 가우도로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다산다리'의 모습.

 

강진만의 동쪽인 대구면과는 '청자다리'로 연결된다. 청자다리를 통해 이어진 가우도의 정상 부근에 '무엇'인가가 보인다.

 

가우산 위에 거대한 '청자'가 올라와 있다. 청자타워이다. 짚라인을 타고 청자다리 옆을 날아가 대구면에 도착할 수 있다.

 

청자 타워까지 모노레일을 통해 올라갈 수 있다. 왕복 3,000원.

 

가우도에서 바라본 '다산 다리'의 모습, 다산 초당이 있는 방면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가우도에서 바라본 '청자다리'의 모습. 고려청자 요지가 많이 분포하는 칠량면 쪽과 연결되어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 다산다리와 청자다리의 골격과 구조는 같다. 2륜차 통행금지!

 

가우도 둘레길의 북쪽에 위치한 '출렁다리'. 흔들면 출렁거려서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

 

다산다리를 걸어서 건너 가우도로 넘어간다. 

촬영은 이 친구가 해주었다.

 

가우도에 도착하자마자 '황가오리빵'을 사먹어볼 수 있다. 5개에 5,000원.

 

그리고 가우도를 이렇게 즐길 수 있다.

둘레길 이름이 '함께海길'이다. 가우나루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모노레일을 타고 청자타워까지 올라갔다가 돌계단길을 내려와 출렁다리를 건너서는 나머지 '함께해길'을 걸어 다산다리를 통해 선착장의 주차장으로 나왔다.

 

영랑나루쉼터에서 영랑과 함께 기념사진을 하나 남겼다.^^

 

가우도 출렁다리. 짐을 싸면서 '빗'을 빼먹었고, 가져갔던 모자는 바람에게 빼았겼고.... 내내 머리 모양이 새집이다.

 

가오리들과 함께 남긴 기념사진.

 

다시 또 자꾸만 가고싶은 섬, 가우도

 

4. 석문 공원

기가 막히게 멋진 장면이다.^_^  석문공원은 긴 세월 비바람에 깎아놓은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곳으로, 석문산과 만덕산을 잇는 산악형 현수교가 유명하다. 멋지다!!!

 

'사랑+구름다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길이 111m, 폭 1.5m의 출렁다리(탄탄하여 잘 출렁거리지는 않는다.)에 올라서면 아찔함과 동시에 주변의 풍광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다리 양쪽 끝에는 하트 모양의  게이트 겸 포토존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추억을 사진으로 담기에 좋다.

 

절벽에 매달린 '석문정'.

 

절벽 위에 올라앉은 전망대.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살금살금 건너가 보았다.

 

멋진 곳이라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석문교 옆에 조성된 주차장에 차를 두고 55번 도로 옆으로 조금 걸어서 물놀이장이 있는 도암석문계곡 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도암천을 가로지르는 '석문2교' 아래를 지나면 바로 진입로이다.

 

드론 갖고 노는 것이 즐겁기만 한 새집 머리 할아버지.

 

주변 산책로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자연의 조각품들을 즐길 수도 있다. '새종대왕 바위'와 '큰바위 얼굴'.

 

5. 고바우 전망대

대구면에서 마량면으로 향하는 강진만을 따라 연결된 해안도로는 시원하게 즐기는 드라이브가 가능하다. 고려청자박물관 조금 못미쳐 강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명소인 '고바우상록공원'을 찾았다.

'고바우 전망대'라는 표지판이 시인성이 떨어지게 만들어져 있다. 잘 안보인다. 그리고 넓은 주차장 입구는 막혀 있다. 공사중이다.

 

무엇인가 거대한 것을 만들다가 멈추었다. 공사중이라 하자.

 

낙조가 가장 멋진 장소인데 대낮에 찾아갔다. 확뚫린 전망이 시원하다. 다음엔 낙조를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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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말에 강진 여행을 다녀왔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밴드에서 남미륵사의 철쭉과 서부해당화 군락을 소개한 자료를 보고 강진을 찾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4월 22일 서울을 출발, 열심히 운전을 해서 강진군에 도착하였다. 남도의 "한정식"에 많은 기대를 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도 간략하게 해결하고 "오직 저녁 한정식"을 마음 속으로 외치며 강진으로 달려갔다. 강진군의 성전면에 위치한 무위사를 가장 먼저 방문하였다. 이후 인근에 위치한 월남사지를 방문하였다. 백련사는 23일에 방문하였고, 나를 강진으로 이끌었던 남미륵사는 23일 오전에 방문했다.

아래 지도에서 파란색 경로가 22일의 이동 경로를 나타낸 것이고, 붉은색은 23일, 노란색은 24일의 이동 경로이다.

 

1. 무위사

강진읍의 북서쪽에 위치한 무위사는 월출산의 천황봉과 구정봉 사이의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고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전한다.

입구에 주차장이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극락보전이 중심 건물인데, 그 뒷쪽에 새롭게 대웅전을  만들고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절집을 즐기기에 적절하다.

 

4월 22일 오후 2시 35분에 방문하였다고 한다.

 

무위사 경내로 들어섰다. 조용~

 

고려 초에는 선종 사찰로, 조선시대에는 水陸寺로서 유명하였다.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水陸齋를 행하였던 사찰이었던 만큼, 중심 건물은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신 極樂寶殿이다. 무위사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보전은 조선 불교의 초기 형태로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의 소박한 건축미로 유명하다. 극락보전 앞에는 당간지주만 남아있다.

극락보전(국보 제13호) 내부의 후벽에는 31점의 벽화가 있었는데, 1955년에 보존을 위해 아미타여래삼존벽화(국보 제313호)와 백의관음도를 제외한 29점을 해체하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극락보전 서쪽에는 삼층석탑이 위치한다.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성 연대는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전형적인 2층 기단의 3층 석탑으로 각 부재가 잘 조화되고 균제된 석탑이다.

 

극락보전 뒷편의 대웅전 일대는 공사중이다.

 

무위사에서 출발하여 월출산 골짜기의 생태탐방을 가볍게 할 수 있도록 코스가 정비되어 있기도 하다.

 

2. 월남사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진각국사 혜심이 중건했다고 하나 백제의 유물이 출토되고 삼층석탑의 규모와 양식을 근거로 월남사 창건 시기가 그 이전일 수도 있을 것이라 보고 있기도 하단다. 

월남리 마을 서북쪽의 죽림으로 둘러싸인 곳이 고려 불교문화의 성지인 월남사지 옛터이다. 3층석탑과 석비 부근의 발굴 작업 현장의 규모, 부근의 가옥이나 담장에 그 당시 사찰 건립에 사용되었던 많은 양의 석재들이 사용된 것들이 보여 월남사가 얼마나 융성했었던 것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월남사는 조선 중기에 폐찰되어 현재 복원중이며, 월남마을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월남사지에는 진각국사비와 3층석탑이 남아 있다. 

보물 제298호로 지정된 월남사지삼층석탑은 월출산을 배경으로 단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양으로 우뚝 서 있다. 백제 양식으로 해석되고 있다. 3층석탑의 서북쪽에는 중동이 부러진 거대한 석비가 있다. 윗부분은 광주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보물 제 313호이다. 비문은 진단학보 제36집에 실려있다.

 

3. 백련사

강진읍 남쪽의 만덕산에 위치한 백련사는 신라 문성왕 때 무염국사가 만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쇠락의 시기를 지나 원묘국사에 의해 1211년 옛터에 중창되었고, 백련결사를 맺어 수행하면서 백련사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고려후기 무신정권과 몽고의 침략으로 민중의 삶이 고난으로 점철된 시대에 원묘국사 了世는 결사운동을 벌였다. 1232년 보현도량을 개설하고 1236년에 백련결사문을 발표하면서 고려 백련결사운동의 중심지로서 불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백련결사는 민중들과 함께 참회와 염불수행으로 정토세계를 염원하는 민간 결사운동으로 백성들이 주역이 되어 120여 년간 크게 번창하였다.

 

대동여지도에는 '백련사', 1872년 지방지도에는 '만덕사'라고 표시되어 있어 두가지 이름이 혼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백림 사건'이라 명하기로 했다. 백련사로 오르는 숲길은 동백나무가 가득하다. 이곳에 동백꽃이 만발하였을 때는 얼마나 아름다웠을 지... 꽃이 모두 지고 없었다. 백련사로 오르는 길의 동백꽃이 모두 진 사건, 동백림 사건이다. 다음에 동백꽃이 개화하였을 때 이곳을 다시 찾기로 했다.

백련사 동백나무숲은 국가지정 천연기념물이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잇는 길목에 약 5.2ha 면적에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 백련사의 동백은 2월부터 머금어 초봄인 3월 초부터 개화하기 시작하여 3월 말에 낙화한다.

다산초당까지 가볍게 걸어서 다녀올 수도 있다.

 

차밭에서 찻잎을 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차의 동네인 것이다.

 

백련사의 대웅보전 편액은 조선 3대 명필 원교 이광사가 쓴 것이다.

 

오랜 세월을 품은 배롱나무 아래에 기와불사의 멋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재밌는 장면이다.^^

 

만덕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강진만의 바다에 바로 눈앞에 펼쳐져 보인다.

 

4. 남미륵사

강진읍 동쪽의 화방산 자락에 위치한 남미륵사는 법흥 스님이 1980년에 장건하고 40여 년 동안 불사를 중창한 세계불교미륵대종의 총본산이다.

 

남미륵사 조감도.

 

동양 최대의 거대한 황동 아미타불 불상이 있는 웅장한 경관이 유명하며, 봄이 되면 약 천만 그루의 철쭉과 서부해당화가 만개하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해 불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사찰이다.

 

남미륵사 입구의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이르는 꽃길이다. 초봄에는 서부해당화와 철쭉, 여름에는 연못의 연꽃, 가을에는 꽃무릇, 겨울에는 동백이 멋진 곳이다. 4계절 내내 꽃들로 아름다운 자연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이다.

4월초에 철쭉 축제가 개최되어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기도 하다.

 

남미륵사의 입구에서는 '부부 코끼리상'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그런데 4월 24에 방문했을 때는 철쭉의 꽃이 안보였다.

 

이게.... 철쭉 천만 그루의 꽃세상???

 

아주 조금 남아 있기는 하다.

 

요만큼......

 

뭐 이렇다. 2024년 4월 24일에는 이랬다.

 

남미륵사의 대웅전

 

꽃길은 꽃길이다.

 

작업하시던 분이 서부해당화가 어떤 꽃인지 가르쳐주고 계시다. 멀리 아미타불 불상의 거대한 모습이 보인다.

 

남미륵사는 거대하다. 동양 최대의 황동 아미타불 불상 옆에 위치한 33관음전 또한 거대하다. 33관음전 앞 뜰에는 팔각13층석탑과 사각33층석탑이 서 있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에 머물면서 중생들을 극락으로 이끄는 부처님이라 한다.

 

관음전의 기와와 주변의 녹음이 아주 잘 어울린다. 기와의 색이 아주 예쁘다.

 

아미타불 불상이 있는 단의 주변을 한바퀴 돌면서 마니차를 하나씩 돌려본다.

 

남미륵사를 찾았다가 마을로 들어가 민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게 하는 것 같다.

 

남미륵사를 창건한 법흥스님은 시인이기도 하다. 경내의 여러 곳에서 작품을 즐길 수 있다.

 

천만 그루 철쭉이 꽃을 아름답게 피웠었던.....

 

주차장에서 미련이 남아...

 

2박3일간 강진 여행을 하면서 방문하였던 사찰 여정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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