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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의 좁은 바다를 '지브롤터 해협'이라 한다.

2012년에 에스파냐(스페인)과 모로코 여행을 할 때,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니까 당연히 지브롤터에서 출발하는 배를 탑승하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타리파 라고 하는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썰렁한 곳에 버스가 멈추었다가 페리를 타고 건너갔었다.

에스파냐 땅덩어리에서 아프리카 쪽으로 가장 가까운 땅끝마을도 지브롤터가 아니라 타리파였던 것도 의외였다. 세계지도를 대축척 지도로 구하여 세세하게 살피지 않은 덕분이었다.^^

큰 항구는 먼바다로부터의 강한 파도, 파랑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만의 안쪽에 위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 가장 큰 항구는 지브롤터나 타리파가 아니라 알헤시라스이다.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아 모로코를 향하는 여객선을 이용하면 가장 큰 항구인 탕헤르에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Tanger-Med 여객터미널에 내려준단다. 여기서 다시 탕헤르까지 이동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고 하더라. 타리파는 탕헤르와, 알헤시라스는 탕헤르-Med와 짝지어 선박이 운항하는 것인 것 같다.

'탠지어'는 영어식 지명, '탕헤르'는 에스파냐어식 지명이다. 모로코도 참 복잡한 나라이다. 무슬림 지역이라 아랍어가 사용되는데, 아랍어 방언이라 좀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 식민지의 경험으로 남은 프랑스어가 공식적인 공용어로 더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탕헤르 일대는 에스파냐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그 흔적이 또 남아 있고...

탕헤르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가 영국으로 넘어갔다가, 버려졌다가 스페인 식민지였다가 스페인에서 독립하면서 모로코 영토가 되었다. 영국에서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아프리카의 탕헤르를 버렸다고 하던데, 유럽의 지브롤터는 꼭 쥐고 있었던 것을 보면... 참...

스페인에서 모로코를 독립시키면서 한 구석의 '세우타'는 또 꼭 쥐고 안놓고 버틴 것을 보면... 또...ㅎㅎ

 

2012년 1월 9일에 타리파에서 배를 이용해 출국했다는 도장이 사용하던 여권이 남아 있다.^^

2014년 1월의 출국 도장은 뉴질랜드였고, 2018년 1월 21일 보츠와나 초베강 사파리의 흔적도 같은 페이지에 남았다.

 

2012년 1월 9일에 탕헤르로 입국했다가, 1월 11일에 출국했다는 시커먼 도장들...

2017년 7월의 도장들은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의 출입국 흔적이다. 초록색은 카자흐스탄의 것이고... 여권의 출입국 도장들을 보면서 과거의 여행을 추억하기도 하는데, 요새는 도장들을 안찍어주는 추세라 좀 아쉽다.

 

 

세우타 자료를 보다가 기억인지 추억인지를 찾아서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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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나라 중에서 모로코부터 만나기 시작했다.

얀 아르튀스-베르트랑 아저씨의 "하늘에서 본" 시리즈 중 모로코편을 대표하는 작품, 가죽 무두질 공장에서 염색공정으로 유명한 곳, 페스를 방문하는 날이다.  중세의 도시 유적이 그대로 살아남아 숨쉬고 있는 곳을 찾아간다.

 

카사블랑카까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꼭두새벽같이 숙소에서 출발하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멀리 아틀라스 산맥 너머로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선입견이 박살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깔끔하고 잘 정리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A1 고속 도로 주변 농가에 자주 보이던 커다란 말뚝. 사일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도로 옆으로 단선이기는 하지만 전철도 지난다.

 

Moulay Bousselham 부근에 위치한 주유소에서 쉬어갔었다. 아프리퀴아. 지금 검색해보면 Station Winxo라고 나온다.

 

자루들을 당나귀에 싣고 있었다. 

방앗간인 것 같았다.

당나귀

당나귀

당나귀가 일반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운송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도로 주변의 농경지가 아주 아주 아주 넓게 펼쳐져 있다.

 

모로코 국기가 펄럭인다.

 

창밖으로 커다란 물탱크가 보였다. 페스로 가는 길가에 있는 Sidi Chahed 저수지.

전체적인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 모로코 곳곳에 커다란 저수지들이 조성되어 있다.

 

1시쯤 페스에 도착하였다. 왕궁엘 먼저 들렀다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다는 미로도시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사람들이 문앞에 모여 있다. 좀 들여보내줘~

 

이 아저씨들이 막고 문을 안열어준다. 근무 자세를 보니 가운데 아저씨 짬이 제일 쎈듯~

 

초록색 별이 그려진 붉은 색의 모로코 국기가 휘날리는 왕궁의 입구만 살펴볼 수 있다.

지금은 모로코의 수도가 라바트이지만 과거 모로코 왕국의 수도는 페스였다. 801년 이드리스2세가 수도로 삼은 이후 마그레브에서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대서양 연안의 카사블랑카, 라바트에서 지중해 연안의 알제로 통하는 대상로의 요지로서 상공업이 발달하였다. 857년 창립한 이슬람 신학대학과 아랍 문예 중심 역할을 하는 알 카라윈 대학도 위치한다. 페스가 구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꽤 규모가 크며  전체 인구는 백만 명이 넘는다. 모로코에서 카사블랑카 다음으로 인구 규모가 큰 도시이다.

 

 

입구 옆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아랍어 글자들. 오른쪽에서 왼쪽, 위에서 아래로으로 읽으면 되시겠다. 글자가 곧 그림이다. 캘리그라피에 최적화된 문자가 아닌지...

 

페스의 거리 상가.

 

8세기에 건설된 이후 예전의 도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시간이 멈춘 중세 도시'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그래서 인디아나 존스, 알라딘 등과 같은 영화들의 배경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페스는 크게 2개의 구역으로 나뉘는데, 프랑스 식민지 시절 유럽풍으로 건설된 도시 '페스 알 제이디드'와 미로 같은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옛 도시인 '페스 엘 벨리'가 있다. 옛 도시, 미로 도시, 시간이 멈춘 중세 도시로 빨려 들어간다.

 

골목을 좁게 만든 것은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좁은 골목이 계속 방향을 바꾸며 이어지기에 햇볕이 들지 않아 낮에도 많이 덥지 않다.

 

머리 위로 간판이 보인다. Restaurant Al Fassia. 먹을 때이다.

 

건물을 바깥쪽은 흙덩어리였는데, 내부는 근사하게 꾸며져 있다. 외부와 내부의 때깔이 너무나도 다르다.

도시 건설의 모토가 '만민에게 평등한 도시'였다고 한다. 밖에서 보면 건물들이 다 똑같이 생겨 어느 집에 사는 어떤 사람이 얼마나 부를 일구었는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부를 들어가 보면 생활수준의 격차가 매우 크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 식당도 내부를 보니 꽤 부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풍성했었던 식탁. 2012년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처음보는 음식 사진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못했었던...ㅠ.ㅠ

 

장식용 총? 사용가능?

 

미로 골목 탐사를 계속한다.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역사 도시이다. 즉, 너무나도 오래된 도시라는 말이다. 붕괴 위험이 있는 곳들을 보강하는 공사가 이루어져 있다.

 

골목이 좁아도 너무 좁다.

 

페스에서의 GPS 로그 기록이다. 곳곳에서 신호를 제대로 수신하지 못하여 이리저리 튀었다. 페스 구시가지는 GPS 신호 수신이 제대로 안될 정도로 가려진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도시가 되시겠다.

골목을 다니면서 몇 곳의 상점을 안내인의 안내에 따라 방문하기도 하였다.

 

직물 공장 및 상점. 앞에 가는 아가씨는 설마 그 에스파냐에서 따라 다니던 그 아가씨?

 

상점이 곧 공장이기도 하다. 그릇에 장식을 새기는 장인의 손길. 못과 망치가 도구의 전부.

 

작품.

작품.

작품.

 

옷가게.

 

골목이 조금 넓은 곳에는 차양을 드리워 놓았다. 햇볕 차단 철저!

 

신발 가게.

 

빵가게.

 

끝이 막힌 골목처럼 보이는데 가보면 어느 방향으로든 길이 열려 있다. 미로다.

 

작업중.

 

제일 앞에서 우리 일행을 선도하던 아저씨. 페스 여행자들을 위해 미로의 골목길을 그린 지도를 판매하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미로 속에서는 지도를 들고 현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방법이 없어 길을 잃게 된다고 하니 답이 없다. 그래서 골목길을 안내하는 안내인이 따로 있을 정도. 앞의 저 아저씨가 우리 일행의 길잡이이다. 양복을 근사하게 차려입고 콧수염이 멋진 아저씨.

한두명의 여행자가 무작정 방문할 경우 서로 안내를 해주겠다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극히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 수도 있다는 얘기가 많으니 조심 또 조심...

 

이런 식으로 보강 공사를 하면서 계속 버티는 역사 도시.

 

위로는 하늘이 조금 보이는 듯 하지만 아래는 깜깜하다. 더위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골목길을 오가는 사람들, 장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함께 하는 역사 도시이다.

 

광장이다.

 

이 정도가 넓은 광장으로 보일 정도. 커다란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준다.

 

드디어 왔다. 그곳에. 세모 모양이 붙어 있는 것은 페스에서 사용되는 관광객용 안내표지판이라고 한다. 길을 잃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이런 것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봐도 모르겠다.

 

좁은 골목의 작은 문으로 들어간다.

 

좌악 줄서서 기다리다가 순서대로 들어간다.

 

벽에 걸린 페스를 유명하게 만든 사진.

 

입구에서 왠 아저씨가 풀을 조금씩 나누어준다. 뭐지? 일단 받아둔다.

 

Chouara Tannery. 가죽 무두질 공장이다. 가죽을 가공하는 모든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모든 재료, 처리 방식이 예전의 것 그대로이다. 가죽 원단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새똥 등의 '천연' 재료를 이용하여 가공, 처리한다고 한다.

가공 방식 또는 '천연'이다. 사람들이 직접 손과 발, 온몸을 이용하여 작업을 한다. 

새똥?

그렇다. 냄새가 어마무시하다. 꽤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어질어질 할 정도.

입구에서 들어올 때 나누어준 풀이 냄새를 막는 것이었다. 일명 '향기나는 풀'. 

탕헤르 등지에서 외국인에게 접근하여 이 풀을 내미는 현지인들이 있다고 한다. 주고서는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도록 한다. 향기가 난다. 그 다음 단계는? 돈냄새로 이어진다고. 향기를 맡았으니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가죽 제품의 가격을 의외로 상당히 비싸다. 모든 과정을 수공업으로 천연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것이기 때문에 비쌀만하다고 평가된다.

 

창밖으로 보이던 의외의 장면. 아래의 골목으로 다니면서 보이는 것은 그냥 좁은 골목 밖에 없는데, 지붕 위에는 인공위성 안테나로 도배되어 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중세 도시, 역사 도시의 이미지가 확 날아가는 순간이었다.ㅎㅎㅎ

 

'현대 도시' 페스의 골목길을 계속 걸어서 빠져 나간다.

 

가죽 공장에서 처리되기 위해 배달되고 있는 가죽 원단. 골목이 좁아 원재료와 제품의 운송도 수공업으로 이루어진다.

 

가죽 제품 판매상.

 

봉제 공장.

카스바의~, 아니 스카프의 여인~

 

곱게 전시된 스카프들.

 

벽에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화살표를 따라가면 미로에서 탈출할 수 있다.

 

에어컨이 있는 집. 좀 있는 집인 것 같다.

 

미로도시에서 탈출하였다.

페스 구시가지의 남쪽 언덕에서 멈추어 도시를 조망해 보았다.

 

페스에 기념 흔적을 남기는 일행.

 

페스를 떠나 라바트를 향해 A2 고속도로를 달렸다.

 

라바트에 도착하여 핫산2세 탑과 모하메드5세 묘만 방문하고 카사블랑카로 이동하였다.

 

입구를 지키는 잘생기고 멋진 근위기병. 말과 근위기병이 모두 얌전하기에 옆에 서서 같이 기념 흔적을 남길 수 있다.

 

12세기 말 알모하드 왕조의 3대 야콥 알 만수르가 장대한 모스크 건설을 시도했으나 그가 죽으면서 공사가 중단,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는 곳이다.

 

한 변의 길이가 16m의 정사각형으로 높이가 44m까지 올라가다가 중단되었다. 300개 이상의 돌기둥 역시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다.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모스크가 될 수 있었는데, 그 흔적만 남게 되었다. 흔적이라 하면 대부분은 파괴된 것인데, 여긴 만들다 멈추어진 흔적이다.

 

나도 흔적을 남겨본다.

 

아들과 함께. 이 녀석 또 뒷굼치를 들고 있었다.

 

바로 옆에 모하메드5세 묘가 있다.

 

내부에 들어가서 보면....

 

아랫쪽에 거하게 장식된 묘가 있다.

이렇게 역사적인 장소에 이렇게 거한 묘를 조성한 이유는 모하메드5세가 모로코의 초대 국왕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독립 운동을 지도하다가 코르시카 섬에 갇혔다가 마다가스카르로까지 추방되었었다. 1955년 귀국했고, 에스파냐와 프랑스 간의 조약으로 1956년 모로코가 독립되면서 1957년에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급진적인 대외 정책을 펼치다가 1961년에 사망하였다.

 

 

하늘을 날아 멀리 가버리는 비행기의 흔적.

 

늦은 시간 오밤중에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616km를 새벽부터 오밤중까지 흔적을 찾아 흔적을 만들며 이동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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