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트립에서 36회 국내 답사의 주제는 '예천_안동으로 떠나는 동천구곡 답사여행'이었다. 봉화, 안동, 하회, 영주, 예천의 지형을 중심으로 인문을 살피는 답사였다.
답사기간은 2017년 4월 22일 (토) ~ 4월 23일 (일)로 2017년 답사에서 첫번째 1박2일 짜리 답사였다. 그동안 국내 답사를 가면 대청역 주변에 위치한 중동고등학교 지하 주차장에 신세를 졌었다. 그런데 이제 중동고등학교의 주말 주차장 인심이 자본주의가 된 모양이다.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대청역 환승 주차장이었다. 주말이니 주차 공간은 걱정하지 않았다. 22일 6시05분에 입차하고 23일 저녁 21시21분에 출차하였다. 주차 요금이 기대 이상이었다.^^
47,000원. 신용카드 계산. 이 정도라면 앞으로 계속 이용하기는 곤란할 것 같다.
이번 답사의 인솔은 조헌 교수님(가톨릭관동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이 이번에도 맡아주셨다.
이번 답사의 코스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4월22일(토) 봉화·안동
10:20 봉화 석천정 계곡 (화강암 계곡), 안동 도산구곡 - 가송협, 농암종택 (퇴적암 계곡)
13:30 ~ 14:20 중식 (헛제사밥+고등어)
14:30 ~ 14:50 안동 영호루 (안동시가지 조망)
15:20 ~ 15:50 단호리 낙암정 (낙동강 조망)
16:00 ~ 16:30 마애리 망천절벽 (퇴적암 절벽경관)
17:00 ~ 17:40 하회 부용대 (낙동강 하곡 조망)
18:20 ~ 석식 (안동찜닭)
숙박 - 병산서원 내부 동재, 외부 주사(독채)
4월23일(일) 안동·영주·예천
07:30 ~ 08:30 개별 기상 후 조식 (집밥 - 시원한 콩나물국)
09:20 ~ 09:50 영주댐
10:00 ~ 10:40 영주 무섬전통마을 (내성천 모래톱)
11:00 ~ 11:30 예천 수락대구곡 - 충효테마공원 (화강암 계곡)
12:00 ~ 12:50 중식 (용궁면에 소재한 단골식당 - 순대국+오징어불고기)
13:20 ~ 14:10 예천 회룡포 - 전망대 (내성천 하류 경관 조망)
14:30 ~ 15:00 예천 풍양면 삼강리 (합강 경관)
15:00 ~ 해산
예정했던 대로 답사가 진행되었다. 예천과 봉화에서 참가자들과 랑데뷰하고는 봉화의 석천정 계곡에서부터 시작~
경북 북부 지역의 암석분포도이다. 예천 - 영주 - 봉화 - 안동 일대는 편마암, 퇴적암 지대로 둘러싸인 거대한 화강암 분지 환경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분지 내부의 내성천을 따라 긴 변성암대가 산지를 이루고 있다.
22일에는 안동 북쪽에 위치한 학가산을 한바퀴 도는 듯한 코스로 이동하였다.
22일 토요일 새벽에 일어나 가볍게 아침 비슷한 것을 챙겨 먹고 후다닥 챙긴다. 잊을까봐 챙겨 놓은 것이 있었는데 결국 흘리고 나온 것이 있었다. 할 수 없다. 다시 10층까지 걸어 올라갈 시간과 체력이 없다. 새벽을 도로를 조용히 달린다. 대청역 도착.
대청역 주차장은 1번 출구를 나와 대청타워 지하주차장 입구를 지나면 찾을 수 있다. 주차를 마치고 중동고등학교 정문 앞으로 오니 2호차에 탑승할 인원이 모두 모여 있었다. 예정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지만 꼴찌! 내가 타니 추울바알~
네비의 도움을 받으며 능숙한 기사가 운전하는 포드 자동차의 덩치 큰 차가 달리고 있다. 핸들을 굳게 잡은 손에서 능숙한 전문가의 포쓰가 느껴진다.
중간에 아침 식사를 위해 들린 휴게소에서는 야생화 냄새가 날지도...
10시 40분. 1박2일 답사의 시작 뽀인트다. 봉화의 석천계곡 혹은 석천정 계곡이라 불리는 곳에 도착하였다. 봉화읍 유곡리에 위치한다.
도착하면 모여선다.
동행한 대한민국의 미래들은 자연과 과학을 즐기는 한편,
어른들은 학문에 심취한다.
내성천의 지류인 가계천에 석천정 계곡이 위치한다. 기반암이 화강암인 지역이다. 판상절리, 수직절리 작용을 받은 화강암이 풍화, 침식 작용을 받은 하상이 잘 발달되어 있다. 계곡을 건널 수 있는 대충 만들어진 다리를 건넌다.
다른 답사객들은 계곡 한쪽에 있는 수명루 앞으로 모이고 있다. 하지만 나는 홀로 나의 길을 간다.^^
여러 사람들의 정성으로 쌓아올려진 석탑을 지나서 간다. 쭈욱 간다.
찾았다. 암벽에 각자된 것. 석천정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전설은 이렇다.
도깨비 정도는 되어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글씨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청하동천'이라 한다. 신선이 노니는 마을이란 뜻이라고 위의 판떼기 사진에 나와 있다. 글자의 의미보다는 주사를 하여 도깨비를 쫓은 모양이다. 여기서 '동천'이 등장했다. '동천' 이번 답사의 주제이다.
동천(洞川)은 도가에서 신선이 사는 별천지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렇게 경치가 좋은 곳을 가리키는 동천을 주자의 武夷櫂歌를 참고하여 9개의 굽이로 나눈 것이 洞天九曲이다. 주자의 것을 참고한 것이므로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장소에 대한 자연관, 인생관을 반영하고 있으며, 시문으로 기록해서 후세에 전해진 전통 문화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동천구곡은 주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산지 지역에 분포하는데, 이것은 인근에 위치한 양반의 계거촌과 관련이 있다. 동천구곡은 지형은 반영하는 것으로서 화강암과 퇴적암 경관과 주로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기반암 지역의 산지 내부를 흐르는 곡류하도에 동천구곡이 입지하며, 하도 주변에 나타나는 다양한 지형 요소들이 주요 경관을 이룬다. 봉우리, 소규모 평탄면, 토르, 수직절벽, 폭포, 여울, 소, 포인트바, 너럭바위, 거력, 암설사력퇴, 마식된 암반하상과 포트홀 등이 그 구성 요소를 이룬다.
(답사자료집 6쪽)
다시 석천정의 수명루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다른 답사객들은 수명루 아래의 너럭바위에 앉아서 혹은 서서 동천구곡과 화강암 지형 형성 및 경관에 대하여 심층적이고 학구적인 토론을 하고 있더라.
화강암 기반의 좁은 골짜기를 지나는 하천은 침식을 통해 기반암을 노출시키게 된다.
징검다리는 조심 조심 건너야 한다.
11시 50분. 계곡을 나서면 봉화읍 유곡1리의 닭실마을이다. 금계포란형의 명당이란다.
충재 권벌을 중심으로 한 안동권씨 집성촌이다.
닭실마을이라 그런지 가로등 장식으로 닭을 올려 놓았다.
이 마을에서 어린이 대상 TV프로그램 '후토스'를 촬영했었나 보다. 마을 입구에 그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있다.
닭실마을은 농촌이다. 농사를 짓는다. 한창 벼농사 준비를 하고 있다.
실내에서 키워낸 모판을 논에 깔고 있다. 이후에 논물을 대어 외부 환경에 적응시킨 후 이앙을 하게 될 것이다.
12시50분. 화강암 계곡 다음에는 퇴적암 계곡이다. 봉화에서 안동으로 넘어왔다. 도산구곡이다. 그 중에서 수십 미터의 퇴적암 절벽이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고산정 일대.
켜켜이 쌓인 퇴적암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색이 어두운 부분은 이끼의 흔적, 밝은 부분은 풍화된 부분이 떨어져 나간 결과이다.
절벽이 양쪽으로 나타나고 그 사이의 낙동강은 깊은 沼를 이루고 있다. 바위에서 이름 모를 조사는 세월을 낚고 있다. 그리고 물론 물고기도 낚을 것이다.
이렇게 경치가 좋은 곳을 양반들께서 그냥 두었을 리가 없다. 함께 즐기는 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고산정. 그 처마 밑에서 답사객들은 잠시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했다.
근사한 곳으로 유명하여지니 많은 문인들이 이곳을 즐겼다고 한다. 퇴계께서도...
갑자기 후두둑 떨어지던 빗줄기가 사라지자 다시 답사에 열중하는 답사객들. 나의 뒤통수도 보인다.ㅎㅎ
(석화아부지 제공 사진)
조헌 교수와 함께 하는 답사는 늘 점심 시간이 늦다(^^). 그 만큼 열정적으로 지식과 지혜를 나누고자 하기에 그렇다. 오늘도 물론! 식사하고 나오니 3시였다.
안동 지역의 먹거리로 유명한 메뉴 중의 하나인 헛제사밥과 고등어구이로 점심을 맛있게! 안동댐 아래 쪽의 월영공원에 위치한 어느 식당에서!
3시 30분. 안동 시내를 본다. 강변의 둔덕에 영호루가 있다. 하상계수가 큰 하천변에 건축되었기에 홍수 피해를 자주 입었다. 그래서 1970년 에 현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영호루의 난간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낙동강과 안동 시가지가 근사하게 보인다.
영호루는 시내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다. 근처에서는 어느 대선 후보의 유세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였다.
북쪽 면의 영호루라는 글자는 고려 공민왕의 친필 현판이라 한다.
DEM 이미지가 자주 사용된다. Digital Elevation Model. GIS에서 고도 분포 자료를 갖고 만든 이미지이다. 대략적인 지형 윤곽을 파악하는데 넘나 좋다.
(석화아부지 제공 사진)
이쪽 학가산 줄기로~~~
4시 30분. '유교문화길'이란다. 그 길의 중간 즈음에는.........
요렇게 예쁜 화장실이 딸린......
아담한 정자, 낙암정이 있다. 이곳에 오니 또 빗방울이 반겨준다. 날씨는 좋은데, 빗방울이 떨어지는 묘한 날씨였다.
낙암정 아래에서 낙동강과 그 주변의 충적 평야 지형을 조망하였다. 물론 산지 체계와 그 산지 사이를 곡류하는 하천에 의해 만들어지는 하천 지형과 평야 지형에 대한 강론도 있었고. 하천 주변의 미지형에서 동 아시아 대륙의 지형 형성까지 스케일의 변화 무쌍한 변화 속에서 지식 샤워~
낙암정 앞으로는 안동시내 쪽에서 흘러나온 낙동강이 풍산 쪽으로 굽이치며 빠져나간다. 그래서 낙암정 앞으로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하천의 범람에 의해 형성된 비옥한 토양은 이 지역의 농업 생산력을 유지시킬 수 있었고, 그러한 경제력이 반촌을 형성하는 밑바탕이 될 수 있지 않았나 한다.
5시 30분. 풍산읍 마애리에는 輞川 절벽이 있다. 輞川은 중국 섬서성에 있는 하천으로 당대의 시인 왕유가 놀던 곳이란다. 그 이름에 따온 것이다. 중화사상이지.
이 망천 절벽은 길이가 약 2km, 높이 약 30~100m에 이른다.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수직 절벽이 나타나 보는 이를 압도한다. 높고 낮은 수직 절벽이 계속 이어져 있어 답사객들은 눈둘 곳을 잊었다.
태백에서 발원하여 남남서로 흐르다가 청량산을 지나 안동에 이를 때까지 험한 산지를 곡류하며 통과한다. 안동 일대에서 하곡의 폭이 넓어지며 서쪽으로 선회하여 흐르는데, 상주시 퇴강까지 거의 동-서 방향으로 흐른다. 이곳이 바로 안동 임하에서 풍산읍, 풍천면 일대까지 뻗어 있는 안동 단층대 구간인데, 낙동강의 유로와 거의 일치한다. 큰 틀에서 낙동강은 이 단층대를 따라 동에서 서로 흐르지만, 하곡 내부의 수많은 구조선들의 영향으로 유로가 직각으로 꺾이면서 곡류 하도를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곡류 구간이 병산~하회마을 구간이다. 이러한 낙동간 본류변의 양안에는 상당히 규모가 큰 퇴적암 절벽들이 공격사면을 중심으로 연이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상락대, 망천 절벽, 병산, 하회 부용대 등이 그러한 예에 해당하는데, 망천절벽이 가장 규모가 크다.
망천절벽을 잘 볼 수 있는 마애리 솔숲공원 한켠에는 선사유적전시관도 있다.
부용대를 향해 길을 재촉한다. 풍산이다. 풍산장터를 알리는 구조물. 그 위에 걸터 앉은 "한우". 안동한우 불고기타운이란다. 하지만 삼겹살집이 규모가 더 커보인다.
6시 20분. 부용대를 오르기 위해 화천서원 주차장을 찾았다.
부용대는 연꽃의 뜻을 품고 있다. 이날 알았다. 어려운 한자~
퇴적암 수직 절벽이라는 부용대에 올랐다. 하회 마을이 예쁘게 보인다. 그동안 하회마을만 왔었는데, 그곳에서 부용대를 바라보기만 했었는데, 이제 부용대에서 하회 마을을 바라본다. 근사하다. 카메라의 렌즈에 한 방에 안들어오는고로 파노라마 사진을 만들어보았다.
드론으로 보면 이러한 시야각이 나온다.
골목길로 들어가보자~
심각한 표정으로 사진 한 방~
드론을 빨리 살 것인가, 천천히 살 것인가... 고민이다.
이곳 저곳에 '추락위험' 표지판에 보인다.
부용대를 내려와 다시 화천서원으로...
지붕, 지붕, 지붕을 잇는 선들이 이리 저리 눈을 옮길 때마다 다르게 보인다. 신기하다.
그런데, 서원의 변신이 대단하다. 서원이 카페, 민박으로 바뀌었다. 웰컴이란다....
드디어 병산서원이다.
7시 20분. 날이 저물었다. 서원 옆에는 찾는 사람들이 많은지 식당도 많다. 그 중에 예약된 식당을 향한다.
이번 답사의 백미. 병산서원에서 잔다. 서원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화장실과 세면대는 있다. 나머지 편의 시설은 없다. 그냥 방. 하지만 그래도 좋다. 우리 단체의 인원이 많아 이곳의 방들을 통채로 빌렸단다.
평소에는 바라만 보면 만대루에도 올라본다. 뜻이 있는 사람들 서넛이 모여 앉아 그 옛날 유생들 흉내를 내본다. 좋구나.^^
아쉬운 시간은 너무 짧아서 더 아쉽다. 밤이 빠르게 익어간다.
동재와 서재 중에서 나에게는 서재가 배당되었다. 방으로 기어들어간다. 보일러를 사용하여 따뜻하게 난방이 들어온다. 좋구나. 개꿀잠~
23일에는 23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날이 밝았다.
6시 30분. 아침에 보는 만대루. 그 넘어 낙동강 쪽으로 물안개가 자욱하다. 나가본다.
눈이 호강하니 가슴이 뛰는구나.
할 일이 없기도 하였지만 이번 답사 함께 하길 너무나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비들이 사용하던 화장실이란다. 달팽이 화장실 너머로도 안개가 피어난다.
서원을 나서 강변으로 걸어가본다. 살짝 젓은 모래, 그 위로 날아다니는 안개~
병산서원이라는 이름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란다. 산이 둘러싼 것이 아니라 안개가 둘러싸고 있다.
8시 50분. 잠시 멈추어 낙동강 변의 풍산들의 경관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 일대에서는 가장 너른 평야라고 한다.
9시 40분. 영주댐 상류에 위치한 평은면 금광리에 새로 건설된 동호교 위헤 잠시 정차하고 영주 댐 상류 지역의 경관을 관찰한다. 이동하는 차량이 거의 없어 이렇게 조망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서서히 물이 채워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건너편에 한창 공사중인 곳은 이주단지이다. 이미 철거는 완료되었지만 이주단지는 이제 터를 닦고 있다. 순서가 엉망이다.
과거에 마을이 있었던 곳이었으나 모두 깔끔하게 철거되었다. 한켠에는 차를 몰고 나와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낙동강 하류의 수질 개선을 위해 상류에 만들어진 댐. 건설 목적이 매우 창조적이다. 이 일대의 사면에서는 굉장히 많은 양의 모래가 공급되는데, 댐의 상류에서 공급되는 토사를 영주댐이 어찌 견뎌낼 수 있을지, 모래의 순환 과정을 차단한 댐으로 인한 문제는 어찌될지. 2016년부터 저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햇볕이 강하지만, 영주댐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안타까움만 쌓인다.
영주댐 건설은 무섬마을의 앞에 쌓인 모래톱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무섬마을은 하회 마을, 회룡포 처럼 물길이 마을을 돌아나간다. 마을이 있는 쪽은 내성천 물길의 보호사면에 해당하여 많은 모래가 퇴적되어 있다. 무섬마을이라는 이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인 水島里의 우리말 원래 이름이다. 풍수지리에서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연화부수'의 형국이라 하여 길지로 친다. 그래서인지 뼈대 있는 집안이 대를 이어오고 있다.
가옥 가운데 38동이 전통 가옥이고, 16동은 100년이 넘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들이다. 하회마을과 비슷하지만 일반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옛 선비고을의 맛을 보다 잘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꼽혔었다.
무섬마을 헌장이라는 것이 있다.
11시 10분. 전통 가옥들이 깔끔하게 잘 보전되어 있으며, 전시용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 거주하고 있다.
도처에 보이는 것이 문화재요 민속 자료이다. 그래서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문화재 제278호이다(2013.8.23 지정).
틈새틈새에 마을보존회의 허가를 받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작은 가게, 큰 가게가 보이기도 한다.
마을을 외부 지역과 연결시켜주는 수도교. 일방 통행만 가능한 좁은 다리이다. 그래서 내성천을 따라 새로운 진입로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무섬마을을 찾는 사람들 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외나무 다리를 찾아 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림같은 그림을 보여주는 곳이기에 드라마의 배경이 되기도 했었나보다.
(석화아부지 제공 사진)
많은 사람들이 모래톱으로 내려가 나무로 만들어진 외나무 다리를 건너본다.
오가는 사람들이 비켜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놓은 아이디어 좋다.
유명한 곳에 왔으니 셀피 하나 만들어보고 간다. 햇볕이 따갑다. 배고프다.
12시 50분. 수락대구곡을 찾아왔다. 구름도 머물다 가는 곳이다.
수락동천.
수락대의 유래.
수락대구곡은 화강암 구릉대를 끼고 입지한 대표적인 구곡으로서 완만한 기복의 구릉과 내부의 화강암 계곡이 어우러진 경관을 보여준다. 수락대는 9곡 중에서 제8곡에 해당한다. 수락대는 석관천이 화강암 구릉을 관통하면서 하천변에 솟아있는 낮은 암벽으로서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경치는 수려함을 자랑한다. 주변은 무성한 삼림으로 덮여 있으며, 화강암 계곡 내부에는 수직절리로 인해 계단형 암석 하상을 만드는 '뢰'를 비롯하여 너럭바위, 거력과 수많은 자갈들, 여기를 통과하는 맑은 물과 여울소리가 조화를 이룬다.(답사자료집 설명)
수락대.
수락대.
류성룡 아저씨가 놀다 간 곳이란다.
류성룡 아저씨는 이런 출렁다리를 못타보았거야~^^
3시. 오랜 만에 왕궁면의 단골식당을 찾았다. 대기 번호표를 받고 15분 정도를 기다렸다가 들어가야 했다. 장사 잘되는 식당이다.
3시 50분. 내성천 하류 경관을 살피기 위해 회룡포 전망대를 향했다. 기가막힌 입지의 장점을 살려 날로 커지는 장안사. 장안사 아래 쪽의 주차장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아담한 사찰이다.
따가운 햇살 아래 빛나는 부처님.
본지 여러 해가 지났다. 회룡포. 오래간만이다. 상류에서 공급되는 많은 양의 모래가 보호사면 쪽에 퇴적되어 있다.
이러한 근사한 회룡포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회룡포 일대에는 내성천의 심한 감입곡류로 인하여 많은 사력이 퇴적된 하천지형 경관이 나타난다. 감입곡류 하천은 하천의 곡류현상 중 하나로 지반의 융기나 해수면의 하강으로 인한 하천 침식력의 부활로 인하여 형성되는데 주로, 하천이 산지의 골짜기 사이를 흐를 때 나타난다. 즉, 기존의 평지 내지 구릉지를 자유곡류 하던 하천이 침식기준면의 하강으로 인하여 퇴적력 보다 침식력, 그 중에서도 하방침식력이 강화되어 형성된다. 침식기준면의 하강은 지반의 융기나 해수면의 하강으로 인하여 이루어진다. 한편, 감입곡류 하천은 크게 굴삭곡류와 생육곡류로 나눌 수 있다. 굴삭곡류는 침식기준면의 급격한 하강으로 인하여 하방 침식력이 강해진 경우로 하천의 좌우사면이 대칭적이며, 생육곡류는 굴삭곡류에 비해 침식기준면의 하강 속도가 늦게 진행되어 하방침식과 함께 측방침식과 측방퇴적이 이루어지게 되어 하천의 좌우사면이 비대칭적으로 형성된다(서화진, 1988 ; 송언근, 1998).
그런데 회룡포는 지반융기나 해수면변동과 같은 구조적 운동과 기후적 변화뿐만 아니라 지질적인 원인도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지형의 발달에 지암질(地巖質)의 규제가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성천의 방향이 편암류들의 편리 방향과 동일한 점이 이를 암시한다. 그러나 회룡포에서 하천이 사행하게 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사행하게 되는 지점의 구성암석이 편암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계적, 화학적 풍화에 강한 편마암상을 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도의 암석학적 차이와 북서향의 단층이나 절리, 암맥 등 지질 구조적 규제 요인이 결합되면 하천은 회류하게 된다(이재근 외, 2004).
(답사자료집 33쪽)
회룡포 관광의 명물. 뿅뿅다리.
셀피를 만드느라 고생이 많다.
5시. 풍양면 삼강리이다. 삼강나루가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그 맥을 잇기 위해 삼각주막을 만들어 놓고 관광객들을 끌고 있다. 많이 낚인다.
여기서 삼강이란.....낙동강 본류에 봉화 선달산에서 발원한 내성천과 문경 동로의 황장산에서 시작된 금천 등 세 물길이 만나 하나가 되는 곳이기 때문에 붙어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한양과 영남을 잇는 영남대로도 이곳을 거쳐 갔으며, 낙동강 700리 뱃길의 종점이기도 했다. 낙동강을 거슬러온 온갖 세곡과 농산물은 삼강나루 건너편의 문경 백포나루에서 바리짐으로 다시 묶여진 다음, 노새의 등이나 수레에 실려 문경새재로 출발했다. 예천 이남의 경상도 선비들이 과거보러 한양 갈때에도 어김없이 이곳을 거쳤다. 그러다보니 삼강나루는 늘 뱃사공, 짐꾼, 견마잡이, 보부상, 방물장수, 선비 등으로 북적거렸다. 특히 장날이면 나룻배가 30여 차례나 오갈정도로 분주했다. 주막집도 네 곳, 색줏집도 어김없이 번창했다. 1930년대까지는 보부상과 뱃사공들의 숙소도 있었다.
(답사자료집 35쪽)
삼강주막의 옛 모습. 2012년 10월 2일에 촬영한 삼강주막 마을에 전시된 사진. 2012년에 갔었으니 5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구나.
낙동강은 저리로 흘러간다. 쭈욱 흘러간다. 그냥 흘러가게 두었으면 좋겠다. 토목자본이 끼어든 개발논리로 우리네 하천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예정 보다 두어 시간이나 답사 시간이 추가되었다. 늦었다. 제2 영동고속도로를 통해 서울로 진입하였다. 대체로 걱정했던 것보다는 제대로 서울에 도착하였다. 대청역 옆에 있는 중동고등학교 정문에서 하차하여 다시 만남을 약속하는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