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1월9일 월요일. 날이 밝는다. 카리브해의 날이 밝는다.

알람을 잘못 조절하여 789인데, 6시에 깼다. 제길.

 

해변. 북반구의 1월이다.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되지만 이곳도 겨울은 겨울이다. 그래서 해변의 해수욕객은 없다. 아침이라 그런가? 그리고 감기는 계속 따라 다닌다.ㅠ.ㅠ

 

리조트 내의 수영장, 바, 식당. 몸이 늘어지니 '올 인클루시브'는 그냥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일 뿐이다.

 

안나오고 방안에서 꼼지락거리기.

 

 

Guardalavaca를 떠나 올긴을 살피고 아바나로 옮기기 전 쿠바의 수도였던 항구도시 산티아고 데 쿠바를 향한다. 중간에 비란을 경유했다가...

 

쿠바에서 4번째 규모의 도시 올긴. 상업 도시.

 

올긴 답사는 혁명광장에서 시작했다. Plaza de la Revolucion de Honguin

 

혁명 광장은 넓은 잔디밭으로 구성되어 있다. 

 

'혁명'

혁명 조형물 앞을 지나가는 얼굴 하나...

 

마차 택시가 사람들을 잔뜩 태우고 지나간다.

 

본격적인 올긴 시내 탐사를 시작해본다. Calixto Garcia Park, Las Flores Park, Parque Don Quijote, San Jose Park 순으로 돌아보았다.

 

쿠바 독립 전쟁의 영웅 Calixto Garcia 장군을 기리는 Calixto Garcia Park이다. 동상 주변을 재정비 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하던 아저씨가 영어로 이것 저것을 물어왔는데, 내가 벙어리라 대화가 진행되지 못하였다. 영어 벙어리.....ㅠ.ㅠ

Calixto García Iñiguez (August 4, 1839 – December 11, 1898) was a general in three Cuban uprisings, part of the Cuban War for IndependenceTen Years' War, the Little War and the War of 1895, itself sometimes called the Cuban War for Independence, which bled into the Spanish–American War, ultimately resulting in national independence for Cuba.

-wikipedia

 

자전거 택시. 번호판이 달려 있다.

 

공원 옆의 식당이다. 말 잘하면 식사를 하지 않아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화장실 때문에 들른 곳이다.

 

Las Flores Park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공원에 오니 또 커다란 동상이 있다. Julio Grave de Peralta 장군이다.

 

공원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앉아서 '월요일 오전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어..이 사람 정체가 뭘까? 월요일 오전인데...

 

공원 한쪽의 조형물. 콜럼버스의 상륙에서부터 인디오, 흑인 노예 등 여러가지를 모아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SI Catedral San Isidoro과 그 내부 모습. 

성 이시도로 성당.

 

자전거 택시 투어를 하였다. 원래 계획에 없던 것인데 주최측은 어디서 돈을 마련하여 이런 추가 투어를 시켜주는지 모르겠다.

 

잘 달린다. 자동차들 사이를 잘 달린다.

 

금방 돈키호테 공원에 도착했다.

 

에스파니아 라만차 마을에 있어야 할 돈키호테가 산초 판사까지 끌고 쿠바에 뭔 일인가 싶다. 그러고보니 라만차 마을에 갔을 때는 망가진 풍차만 보고 온 것 같다. 라만차를 버리고 쿠바의 올긴으로 이민온 것일까?

나름 똑똑한 산초 판사의 고생이 많다. 날뛰는 말의 발굽을 튀어나온 배로 막아낸다. 탄탄한 맷집.

 

공원 한 쪽에 하얀 가운을 입을 예쁜이들이 쉬고 있다. 부근에 약학대학인가가 있다던데 그곳의 학생들일 것 같다.

 

이 팀은 자전거 택시 기사가 넘 미녀이다.

 

Arias라도 되어 있는 길을 따라 산 호세 공원으로 달린다. 아...자전기 택시 기사가 달린다. 승객인 나는 그냥 그냥 그냥 간다... 과일 가게 옆을 지난다.

 

근사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Iglesia San Jose.

 

지나가는 방문객 1.

 

아마도 지구를 밟고 있는 천사.........

 

천사가 밟고 있는 구의 정체에 대한 토론은 의미가 없다. 답을 모두가 모르니까.

 

자...가자...올긴이라는 도시의 답사에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라고 그렇게 강조되는 것의 정체를 확인하자.

 

시내 답사의 마무리는 Loma de la Cruz, 그리고 그 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십자가가 있는 언덕 Loma de la Cruz. 1790년에 만들어진 십자가이다.

(스마트폰의 후면 카메라에 찍히는 사진에 전면 카메라에 찍히는 사진을 PIP로 만들어주는 기능이 갤럭시 폰에는 없다. 한 때 사용했던 중국제 스마트폰에는 있었는데...)

계단이 있는 언덕이니 올라오며 셀피~

저 아래로 계단을 하나씩 잘 세어보니 458개였다.

 
올긴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전망대다.... 그런데 별로 감흥이 안온다.

 

점심을 먹자. 관타나메라를 부르자.

아..조옥 팔리는 이야기.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탑승하였다. 조금 무엇인가 한 것 같은데 나의 사랑스러운 삼성 Note3가 안보인다. 두고 온것 같다. 달린다. 없다. 다시 내려 온다. 어찌할 방법이 없다. 혹시 이빨 닦으러 갔던 화장실에 두고 왔을까? 뛴다. 없다. 아........노리던 중국산 핸드폰을 사야 하나보다 했다. 그런데 남팀장이 초를 친다. 핸드폰을 찾았단다.

버스에 승차하면서 핸드폰을 의자에 달린 주머니에 던졌다. 그리고서는 10초후에 잊었다. 그리고서는 핸드폰이 없다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에피소드.

 

쿠바의 대표적인 맥주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이 도시 저 도시의 식당에서 몇 번 만났으니. 왠 '북한'인가 했다. bucanero. 17, 8세기 카리브 해를 누비던 해적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병에 해적이 그려져 있었다.

 

 

어..가자 비란으로.

 

비란. 그렇게 대단한 곳은 아니다. 쿠바에서 비란이란 뭐....아무 것도 아니다. 사소하다. 겨우..........쿠바를 그렇게 장기 집권했던 피델 카스트로의 생가 마을이다. 사소하지?

 

쿠바 대장 카스트로이다. 그의 생가이다. 그런데 의외로 담백하다. 돈이 없엇 치장을 하지 못했을까? 동양의 어떤 나라의 다까끼 마사오의 행적을 거시기 해놓은 거시기와는 상당히 거시기하게 비교된다.

 

일단 쿠바에서 색을 예쁘다. 아....여긴 변소여.

 

피델 카스트로의 가족 묘역. 하지만 피델을 산티아고 데 쿠바로 갔다.

아버지는 스페인인, 어머니는 쿠바인. 일대의 땅을 소유했던 부잣집.

지금은 Biran이 고속도로에서 떨어진 외진 곳이지만 이 당시에는 올긴에서 산티아고 데 쿠바를 잇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카스트로 집안을 일굴 수 있었던 것이다.

 

피델 카스트로가 아가였을 때 앉았던 자리. 아버지가 지주였다. 자식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었고, 그 중에 피델이 좀 튀었나보다. 그래서 그 놈은 도회지로 보냈단다.

 

가족들이 지내던 곳.

 

방문객 1.

 

애기 피델이 사용했던 침대.

농장의 직원들 숙소. 자연친화적인 자연산 현지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핸드 메이드 가옥들이다.

...

의외였다. 의외였다. 그렇게 장기 집권하였던 피델이라면 쿠바에서는 영웅에 영웅을 떡치할만도 한데 그의 생가는 조용했다. 차분했다. 막걸리라도 팔고 그래야 하는데 아무 것도 없다. 입장료 내고 들어와 이런 저런 제약 조건을 모두 지키고 거시기 하다가 그냥 나온 것이다. 

 

가자 산티아고 데 쿠바로. 도시 초입에서 무진장 먼 곳에 이런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다. 강조한다. 초입이 아니라 무진장 먼 곳이다.

 

달리고 달리고 달려서 산티아고 데 쿠바에 들어섰다. 밤 7시쯤 도착. 기온이 22도에 이른다.

 

저녁을 먹자. 식당.

 

식사를 마치고 Plaza de Marte를 가로 질러 숙소인 Hotel Imperial Santiago까지 걸어갔다.

 

먹고 배부르면 자자......

내일은 .5이다.

6.5, 7.5, 8.5

728x90
728x90

1월8일. 일요일. 트리니다드에서 카마구에이를 거쳐 올긴을 지나 바닷가의 숙소 Brisas Guardalavaca Hotel까지 537km를 달렸다.

 

6시 50분. 날이 밝았다. 여기는? 쿠바구나.

 

손목의 고리를 보고서야 숙소가 '올 인클루시브'였다는 것이 기억났다. 감기에 시달라느라 몸이 느러져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깝다. 

 

해변 산책을 즐겼다.

 

Cuartel de Caballeria. 기병대가 주둔했던 곳 같다. 뒷편으로 Trinidad 역이 있는데,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이루어졌던 잉헤니오스 계곡에서 생산된 설탕을 운반하는 통로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8시 30분. Cuartel de Caballeria, 기병대 막사 쯤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 같다. 감옥으로도 이용되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용도가 없는 것 같다.

 

튼튼한 트럭이 앞을 지난다.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잔뜩 타고 있다. 모두 서서 위로 머리만 내밀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쿠바의 유명한 '트럭 버스'이다.

 

낡아 부서져 가는 병영을 돌아 뒤편으로 돌아가면........

 

Trinidad역이다. 몇 량의 차량과 기관차가 멈추어 있다. 1760년 사탕수수 농장에서 사용하기 위해 건설한 철도라고 한다.

 

다시 움직일 것도 같은데....

 

Valle de los Ingenios. 잉헤니오스 계곡이라고 옆구리에 써 있다. 쿠바에서 설탕의 절대적인 양을 생산해 내었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의 현장 잉헤니오스 계곡에서 출발하던 열차.

사탕수수 농장을 잉헤니오라고 불렀다고 한다. 최대 40개 정도의 잉헤니오가 있었다고. 잉헤니오는 사탕수수 농장, 그것에서 설탕을 만드는 공장, 거기에 일하는 사람들의 마을까지 통합하여 부르는 용어라고 한다. 하나의 장원 같은 개념이겠다. 스페인 사람들이 있었을 때는 Ingenios라고 했는데, 미국인들이 들어오면서 Central Asucarero라고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기능은 그대로.

 

지금은 멈추어서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음료를 판매하는 간이 바로 이용되고 있다.

 

역의 한편에는 희한한 물건도 있다. '열차 버스'란다. 수리중이다. 상태가 오묘하다.

버려진 것과 사용하고 있는 것의 중간 경계를 본 것 같다. 버려진 것 같기도 하고 현재 이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버려졌다가 다시 손길이 닿으면 이용되는 것이겠지. 모든 물자가 부족하니 모든 것을 다시 손질하여 사용하는 나라, 한 때 풍족했기에 많은 것을 '누군가' 가졌던 나라, 지금은 조금 곤란한 나라, 여러 가지 상반된 이미지가 머리 속을 날아다닌다.

 

말은 훌륭한 동력 수단이다.

 

트리니다드를 떠난다.

 

아벨리오가 보여준 자신의 배급표. 월급은 터무니 없이 적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불편없이 살아가는 이러한 배급 시스템이란다. 기본적인 것은 적절히 나누어 주니까. 하지만 서서히 사람들이 '부족'을 느끼고 있단다. 부족한 것은 '시장'에서 구입해야 하고, 구입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마련하려면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해야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 사람들은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조금 불편한...그런 사회인 것 같다.

배급 카드에 쌀, 설탕, 비누, 소금, 콩, 커피, 담배, 과자, 빵, 생선, 닭고기, 우유, 기름, 야채 등 할당. 1990년대 러시아인들이 빠져 나가기 전까지는 부족한 줄 모르고 살았다. 쿠바인들 잘 살았다. 하지만 러시아 인들이 빠져나간 다음부터 부족을 체감하기 시작하였다.

카스트로가 혁명을 할 때는 사회주의만 생각하였는데, 소련에서 공산주의를 요구하였다고 한다. 카스트로 형제와 달리 혁명의 주역이었던 칼밀로 시엔푸에고스, 체 게베라는 반대하였다고 한다. 뜻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로 떠난다. 그곳에서 사망한다. 반 카스트로 운동을 하던 우베르만토를 체포하기 위해 떠났던 카밀로는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다. 자, 이들은 그냥 사고로 죽은 것일까? 두 사람이 죽은 다음에 카스트로는 소련과 합작을 진행하였다고.

쿠바 사람들의 주식은 쌀이라고 에밀리오는 말한다. 브라질, 베트남 등지에서 쌀을 수입한다고 한다. 자급률이 20% 정도라고 한다.

 

 

사탕수수 재벌 Iznaga가 지배하던 땅. 지명에도 남아 있다. Manaca Iznaga. 

 

멀리 저택이 보인다. 길 양쪽으로 노점상이 줄지어 있다. 쇼핑의 유혹과 함께 하는 이즈나가 저택 방문.

 

시선을 끄는 것은 우뚝 솟은 탑이다. Torre de Manaca Iznaga라고 불리는 탑. 농장 관리 및 작업 감시용 탑이었으리라. 137개의 계단이 있다. 가파르다. 오르기 힘들다.

 

탑을 오르면 아래로 주변 정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탑 아래의 하늘을 나는 매.

 

탑에서는 잉헤니오스 계곡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도 세다.

 

Iznaga 저택의 내부에는 식민지 시절의 생활 소품들이 많이 남아 있다. 잉헤니오스 계곡의 대략적인 모습을 알 수 있는 지도로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의 일상을 보여주는 벽화들과 소품들도 있다.

 

사탕수수 줄기를 으깨어 즙을 짜내는 기계이다. 동력은? 당연히 人力이다. 기계에 사탕수수 줄기를 넣고 커다란 나무 손잡이를 양쪽에서 잡고 돌리면 된다. 의외로 힘이 든다. 애써 짜낸 즙에 럼주를 약간 타서 마신다. 달콤하다. 맛 있다.

 

미국 뉴욕의 버펄로에서 1884년 7월 15일에 생산된 제품이라고 각인되어 있다. 생산된지 130년이 넘은 쇳덩어리이다. 멀쩡하게 작동한다. 대단하다.

 

간이 기차역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설탕을 유럽으로 실어내었던 철도. 지금도 이용되고 있는 것일까?

 

뙤약볕에 상체를 드러내고 사탕수수 줄기의 껍질을 벗기고 있던 노인. 간이역사 뒷편의 작은 가게에서 판매하기 위해 사탕수수를 손질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나까를 떠난다. 길을 달리다가 길가에 넓은 사탕수수 재배단지가 보여 차를 멈추었다.

 

11시 30분. Bienvenidos. 환영한단다. 환영을 받았으니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한다.

 

사탕수수밭의 사탕수수는 이렇게 생겼다.

 

껍질을 벗기고 잘라내면 이렇게 생겼다. 씹으면 즙이 살짝 나온다. 달다. 설탕이다.

 

Jatibonico. 연기를 뿜는 커다란 굴뚝이 보인다. 사탕수수 처리 공장이라고 한다. 설탕을 만드는 곳.

물을 사기 위해 정차를 하였다. 하지만 부근 가게에서 생수를 구입하지 못하였다. 없단다. casa라고 하는 민박집이 많이 생기면서 손님들을 위해 음료수, 생수, 맥주 등을 매집한다고 한다. 따라서 작은 도시의 경우에는 이러한 상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Ciego de Avila에서는 도시 확장을 위한 대규모 공사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길을 따라 차를 타고 달려 카마구에이에 도착하였다. 

까마구에이의 지역 경제는 목장이 주가 된다고 한다. 소는 정부 소유이며, 소마다 등록번호가 부여되어 있어 매년 검사를 한다고 한다. 일반인이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 그친다. 우유는 정해진 양을 상남하고 나머지는 개인적으로 시장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까마구에이에 가까워지면서 넓은 평야에 목장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토지 이용률은 상당히 낮아 보인다. 아벨리오 이야기로는 농사짓기에 좋은 땅이 별로 없다고 한다. 철망으로 구획된 목장들이 많이 보이지만 가축은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 가축 사육 밀도도 낮은 것 같다. 가축은 주로 소.

까마구에이 인구는 30만 명 정도. 스페인인들이 성당을 10개나 만들었을 정도의 큰 도시. 오래된 도시로서 좁은 미로형 가로망을 보인다. 영국 해적의 침입에 대비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까마구에이 라는 지명은 원주민의 지명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After almost continuous attacks from pirates the original city (founded as Santa María del Puerto del Príncipe around 1515 on the northern coast) was moved inland in 1528.

The new city was built with a confusing lay-out of winding alleys. There are many blind alleys and forked streets that lead to squares of different sizes. One explanation is that this was done by design, to make the city easier to defend from any raiders; by the same version, the reason that there is only one exit from the city was that should pirates ever return and succeed in entering the city, it would be possible for local inhabitants to entrap and kill them. However, locals dispute this reasoning as a myth, asserting that in truth the city developed without planning, and that winding streets developed out of everybody wanting to stay close to their local church (the city has 15 of them).

-wikipedia

 

차에서 내려 시내 답사를 시작한다. 헌데...배고프다. Plaza de San Juan de Dios 옆에 있는 La Campana de Toledo에서 점심을 먹는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쿠바 말이다.

앞으로 계속 관광객이 늘어날텐데, 제대로 좀 하자. 화장실 좀 어떻게 하자. 어떻게 대부분의 식당에 화장실이 한 칸씩이냐. 단체 손님와서 줄을 주욱 서서 기다리는 모습 안좋다. 아니 모습이 안좋은 것이 아니라 너무 불편하다. 이 식당도 그렇다.

 

식사를 할 때면 다가와 '관타나메라'를 부르는 연예인들. 이 팀은 오늘 많이 힘든가 보다. 대부분 웃는 모습으로 노래하던데, 힘든 표정이다.

 

식당 내부 여기저기에 항아리들이 묻혀 있다. 영국 해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뭐가 어쩌구 하면서 설명을 하던데...아직 모르겠다.

해적 등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 항아리에다가 재산을 숨겼었다고 한다. 빗물을 받아 저장하는 용도로도 사용한 적이 있고. 물론 그 전에 도자기의 생산이 많이 이루어진 지역이라는 특징도 작용하여 항아리가 이 지역을 상징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는 전설~

 

Plaza de San Juan de Dios. 산 후안 광장이다. 위만 쳐다보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바닥에 박혀 있는 쇠기둥에 무릎이 부딪혔다. 까졌다. 피났다. 아팠다. 하지만.... 보고 있던 사람이 없어서 창피하지는 않았다.ㅠ.ㅠ

 

Iglesia San Juan de Dios

 

쿠바 소녀의 외국인 감상하기.

 

Paco Recio, '건강한 야마'라는 뜻을 가진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식민지 시절의 틀이 남아 있는 도시라 길이 좁다. 하여 대부분의 길이 차량에 대해서는 일방 통행이었더라. 건물에는 왜 이리 예쁜게 색을 칠해 놓는지, 보기에 좋았다.

 

안내도.

 

공중전화기.

 

Ignacio Agramonte Park에는 Ignacio Agramonte 장군의 동상이 있다. 쿠바 혁명사에서 중요한 사람이란다. 10년 전쟁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Maceo 동상도 있다.

Lt. General José Antonio de la Caridad Maceo y Grajales (June 14, 1845 December 7, 1896) was second-in-command of the Cuban Army of Independence.

Fellow Cubans gave Maceo the sobriquet of the "Bronze Titan" (Spanish: El Titan de Bronce), which was a reference to his skin color, stature and status. Spaniards referred to Maceo as the "Greater Lion" (El Leon mayor). Maceo was one of the most noteworthy guerrilla leaders in 19th century Latin America, comparable to José Antonio Páez of Venezuela in military acumen.

-wikipedia

 

일부 구간의 철로가 시내에 남아 있다.

 

Iglesia de Nuestra Senora de la Soledad.

 

Iglesia de Nuestra Senora de la Merced.

 

Plaza de los Trabajadores. 건너편의 은행 건물이 근사하다. 와이파이가 지원되는 광장이므로 역시 젊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서 인터넷의 세계를 즐기고자 하고 있다.

 

누구라도 딱 보면 느낄 것이다. 이것이 '올드 카'.

 

시내 답사를 마치고 모여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떤 아줌마가 슬슬 다가오더니 뭐라뭐라 한다. 여러 사람이 듣고 대충 조합하니 샴푸나 비누 같은 것을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랬다.

 

카마구에이에서 올긴은 멀다. 버스가 열심히 달린다. 올긴을 우회하여 바닷가의 리조트 단지로 계속 달린다. Guardalava.

21시30분 쯤 숙소에 도착했다. 올 인클루시브. 저녁 식사가 아직 제공되고 있어 겨우 떼웠다.

 

도착했다. 체크인.

 

손목에 띠지 하나씩 붙여준다. All inclusive. 역시 모든 비용 포함되어 있으니 뭐든지 하라는 것. 단지 내의 아무 바에 가더라도 그냥 뭐든 달라고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돈 다 낸 것이다. 그냥 아주 막 마시면 된다.

하지만...피곤하다. 감기가 떨어지질 않는다. 그냥 자았다아~

아깝다. 올 인클루시브.

내일은 789.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