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월요일. 몬테고베이의 숙소 웩스포드 호텔에서 일찍 일어나 어둠 속에 나와서 샌드위치와 쥬스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였다.
Montego Bay의 Sangster International Airport에서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뜬다. 미국에 내린다. 입국 수속. 뭐라고 물어보는 듯 하기만 하면 한마디 던진다. "캔쿤". 다 통과다.
마이애미 공항에서 비행기가 날아오른다. GPS data logger를 작동시켜보았다. 50km 쯤 기록되다가 말았다. 왜 끊긴 것일까? 어떤 비행기에서는 되고, 어떤 비행기는 왜 안되는 것일까? 여객기의 유리창의 햇빛 가림막이 수동이 아니라 유리의 색을 바꾸면서 빛을 차단하는 여객기는 거의 수신이 안되더라. GPS 신호 재밍을 하면서 날아가나?
멕시코다. 칸쿤이다. 바다 색깔 봐라~
Aeropuerto Internacional de Cancun에 내렸다. 공항에 도착하는 American Airline의 비행기에서 한국어 안내 방송이 나온다. 내가 도착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는 이런 서비스를 준비했다냐.....^^
공항에서 현지 가이드 일을 하는 예쁜 아가씨와 랑데뷰 하여 숙소로 향한다. 칸쿤에서 테러가 있었다는 뉴스를 확인하고 조금 걱정하기도 하였으나, 가이드 왈 그쪽은 저쪽이고, 이쪽은 그런 사건과 관계가 없단다. Zona Hotelera라고 불리는 휴양지가 있는 사주 부분은 거의 멕시코가 아닌 세상이라 생각을 해도 된다고 한다. 치안 확실.
구글의 인공위성 영상을 보면, 사주 안쪽의 Nichupte라고 이름이 붙은 석호의 모습이 잘 보인다.
우리의 예약 숙소가 있는 부분
Nichupte 석호에는 악어가 살고 있고 골프를 치던 사람이 악어에 물린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어, 조심하는 경고판이 붙어 있다.
숙소에 도착했다. Gran Caribe Resort.
입구부터 근사하다.
Gran Caribe 호텔.
하루를 통으로 묵으니까 all inclusive를 누려보자. 시간된다.
창 밖 풍경 봐라~
벽에 붙어 있는 것 봐라~
그런데 무식해서 이것을 이용하질 못했다. 위는 열리고, 아래는 안 열리더라. 그래서 사람을 불렀더니, 그냥 좀 쎄게 당기면 되었더라.
1월 15일이다. 일요일이다. 오초리오스를 떠나 몬테고베이로 간다. 아니 몬테고베이를 지나 썬이 쎗하는 모습을 보러 자메이카의 서쪽 끝, 네그릴까지 갔다가 다시 몬테고베이로 돌아오는 경로이다. 278km를 조금 넘었다.
오초리오스. Ocho Rios, 여덟개의 강이라는 뜻이다. 헌데 잘못 보고 붙여진 이름이고, 실제로 이곳에는 세 개의 강이 있다. Dunn's River, Turtle River, White River.
아침에 비가 내렸다. 쌀쌀한 아침이다. 아열대 기후라는 것을 왜 마냥 덥다고 생각했을까? '아열대 지방에도 겨울은 있다'라는 것이 이번 여행에서 몸소 느낀 바 되겠다.
히비스쿠스 롯지 호텔을 출발하여 The White River를 들러보기로 했단다.
7시 10분. 아침 해가 뜨는 듯 하더니 제법 강한 바람과 함께 빗방울이 날린다. 강수 시간이나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오초리오스의 아침 인사, 스콜.
8시 40분. 숙소를 나서 그레이스 카운티의 화이트 리버에 도착했다.
작은 강이다.
작은 강에 작은 보트들이 정박되어 있다. 저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어업을 영위하는 것일까?
강의 하구 부분에는 강을 가로지르는 사주가 보인다.
9시 10분. 자메이카가 보크사이트 수출이 많다고 한다. 현지 가이드에게 보여줄 수 있냐고 했더니 그러마 했다. 그런 이야기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길가에 보인 공장. 두둥~
버스를 멈추게 하고 촬영 시작. 사실 이 때는 이것이 무슨 시설인지 몰랐다.
철조망으로 보호되는 시설이었다. 오초 리오스 요새도 있다.
대포가 설치된 방어 요새.
"오초리오스에서 가장 오래된 시설물 중 하나이다. 17세기에 만들어졌는데, 1780년 프랑스군의 공격을 받은 이후에 보강되었다. 이 요새의 위치는 항구로 접근하는 선박을 직접 요격할 수 있는 곳이다. 대포 4문을 장비하고 있으니까 사진 찍고 가!
1950년부터 1986년까지는 Reynolds Jamaica Mines에서 관리했었는데, 그 이후는 Jamaica Bauxite Mining에서 관리하고 있다."라고 아래 판떼기에 써 있다. 그렇다. 보크사이트 관련 시설이었던 것이다.
지도에서 바닷가의 부두는 Reynold's Pier라고 나온다. 레이놀즈 자메이카 마인즈에서 운영하던 시절에 붙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구글의 도움을 받아 사진에서 확인된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내륙으로 쭈욱 들어가 보았다. 식생이 제거된 부분이 보인다.
확대해보았다. 보크사이트 노천 채굴 광산이었던 것이다. 그랬다.
오초리오스 여행의 백미, 던즈 리버이다. 많은 외국인들을 만났다. 아, 서로 지나쳤다. 자메이카에 여행을 왔다면 오초리오스의 던즈 리버는 꼭 들러야 하는 곳이라고 한다.
작은 폭포가 연이어 있는 작은 강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강의 하구로 내려간 다음에 거꾸로 거슬러 올라오는 것이다. 수영복을(지참 혹은 대여할 수 있다.) 입고 혼자 올라올 수도 있고, 미끄러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가이드와 함께 하기도 한다.
9시 30분. 던즈 리버에 오니 여럿이 반겨준다. 외롭지 않다.
우선 입장료가 반겨준다~ 이곳도 내국인과 외국인의 입장료가 다르다. 당연히 외국인의 입장료가 훨씬 비싸다.
입장권. '재입장 불가' 옵션.
낮은 폭포 여럿이 계속 나타나 폭포들을 걸어서 오르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Water Shoe도 판매 혹은 빌려준다.
하늘에서도 반겨준다. 어서와~
매달려서도 반겨준다. 스빠이더~
자, 웰컴이다~
폭포를 거슬러 올라오기에 다 두고 가야한다. 사물함이 여럿 보인다.
머리도 자메이카 식으로 단장해준다.
연세 좀 드신 분들의 단체가 던즈 리버 폭포를 오르시는 모습. 우리는 일심동체! 같이 살고, 같이 산다!
아니면 따로 전문 가이드의 도움을 신청하여 함께 오를 수도 있다.
내려가는 길에 있는 큼지막한 Banyan Tree 아래 모여 기념 남기기.
하구까지 걸어 내려왔다.
던즈 폭포는 바다로 떨어진다.
바다와 만나는 폭포를 바닷가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투어이다. 아기자기한 폭포들이 위로 계속 이어진다. 재밌다.
일단 모델 촬영회부터 진행하고...
자.....올라가보자!
어래 힘든데...
고민이다. 혼자서 이 길을 계속 가느냐, 마느냐.
강원대 김창환 교수님과 함께~
요기까지 올라오는 것이다. 콩그레츄레이숑이란다~
어느덧 또 때가 되었다. 버스 안에서 메뉴 미리 선택하기를 하였다. 닭이냐 돼지냐. 난 돼지다. 어?
11시 30분. Scotchies라는 식당. 이번 여행을 하면서 이런 판떼기 붙어 있는 식당을 처음 보았다. 외부 음식 반입 금지. 이런 것 붙여놓을만 하더라. 그리고 음료 선택 투표에서는 무조건 1번이다. 이러다가 다음 선거에서도 정신줄 놓고 1번 찍으면 어떻게 하지?
그래 난 돼지다. 돼지고기 시켰다고 돼지고기만 나오냐? 하하하!
이것은 별도 추가 메뉴였다. 자메이카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 김밥 먹듯이 가볍게 먹는 음식이라고 먹어보라고 하면서 주문해준 것이었다.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콘밀, 파우더, 설탕 등을 반죽하여 튀긴 것이라 한다. 역시 김밥은 아니었다. 난 그냥 앞으로 김밥을 먹으련다.
오후 1시 10분. 제대로 안내받아 버스를 정차한 보크사이트 공장이다. Noranda Bauxite Ltd.
여러가지 시설들이 도로에서 보였다.
회사로 들어가는 입구. "STOP"
안전 최고~ Only Fools Break Safety Rules.
Discovery Bay의 Bauxite Pier에는 파나마 선적의 BULK PANGAEA호가 보크사이트를 선적하고 있다.
부두 주변은 회사 소유라는 이유로 일반 어민들의 조업을 금지시키고 있다. 고소할꺼야!
지금은 이용되지 않는 철로가 해변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주변을 구글의 도움을 받아 찾아보았다. 전체적인 광산과 처리 시설, 부두의 배치가 이렇다. 우리 차량이 정차한 곳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채굴 현장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들어가 볼 수 없냐고 한번 들이댔어야 하는데, 아쉽다. 아쉽다.
이 부분이 도로에서 보이는 시설들이다. 돔 모양의 시설과 부두 부분이 보인다. 돔에서 내륙으로 직선의 컨베이어 벨트가 연결되어 있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가면 노천 채굴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를 볼 수 있다. 붉은 색의 토양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디스커버리 만을 지나 석회암 대지와 노두 관찰을 하였다.
오후 1시 30분. Melia Braco Village 쪽의 언덕 위에서 작은 만의 반대편으로 대지 지형이 잘 보인다.
건설 공사로 식생 피복이 제거되어 기반암 노두를 잘 관찰할 수 있다.
Rose Hall Great House Tour. 전설따라 자메이카~ 만들어진 이야기~
오후 2시 30분. 굳이 입장할 때 손목에다 이런 것을 하나씩 묶어준다. 일련번호가 붙어있다.
이렇게 사진을 찍어 액자에 넣어주는데 10달러란다.
굉장히 큰 집이다. 그래서 그레이트 하우스. 지금 주인은 아주 예쁜, 세계적으로 예쁜 미국인 아가씨.
Rose Hall is a Georgian mansion built in the 1770s and restored in the 1960s. It is decorated with silk wallpaper printed with palms and birds, ornamented with chandeliers, furnished with mostly European antiques, and features a downstairs bar and restaurant. It is currently owned by former Miss World USA Michele Rollins.
-wikipedia
큰 집이다.
투어 가이드를 해주던 아가씨, 앤지. 머리카락을 궁금해하니까 바로 풀어서 만져볼 수 있게 해준다.
로즈홀 전설따라 자메이카의 주인공 애니.
처음에는 2,000여 명의 노예를 부렸던 사탕수수 농장주의 저택이었단다. 석조 건물이나 바닥이 목재로 되어 있어 걸을 때마다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난다. 불꺼진 밤에 혼자 걸어다니면 분위기 좀 되겠다.
이렇게 망가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
투어의 핵심은 복잡한 치정 관계이다. 아침 드라마 좀 본 사람들이라면 재밌게 들 수 있는...
의자. 딱 보니 용도를 알 수 있겠다. 이런 것들이 방마다 있다. 화장실까지 가는 것도 귀찮아 한 게으른 상전.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전설따라 자메이카이다. 앤지가 애니의 무덤 옆에서 예쁜 목소리로 The Ballad of Annie Palmer 라는 노래를 불러 주면서 투어는 막을 내린다. 스토리가 더해지니 재밌다.^^
According to the legend, the spirit of "Annie Palmer" haunts the grounds of Rose Hall Plantation near Montego Bay. The story states that she was born in Haiti to an English mother and Irish father and spent most of her life in Haiti. When her parents died of yellow fever, she was adopted by a nanny who taught her witchcraft and voodoo. She moved to Jamaica and married John Palmer, owner of Rose Hall Plantation. Annie murdered Palmer along with two subsequent husbands and numerous male plantation slaves, later being murdered herself by a slave named "Takoo". A song about the legend called "The Ballad of Annie Palmer" was recorded by Johnny Cash.
An investigation of the legend in 2007 by Benjamin Radford concluded that the story was fictionalized, modeled on the title character in a famous Jamaican novel, The White Witch of Rosehall by Herbert G. de Lisser, published in 1929. An Annie Palmer unrelated to Rose Hall did exist, and by all accounts had no tendencies toward sadism or lechery. Rough Guide To Jamaica author Polly Thomas writes that the name of Annie Palmer may have become confused with Rosa Palmer, the original mistress of Rose Hall who did have four husbands but was said to be unwaveringly virtuous.
-wikipedia
그러거나 말거나~
Montego Bay는 몬테고베이 협약으로 유명한 곳이란다. 국제해양법회의 그거. 각국의 영해 범위를 설정한 조약. 그것이 이곳 몬테고베이에서 1982년 12월 10일 체결되었다.
4시. 사진에서 위쪽이 몬테고베이 요새의 흔적이 있는 곳이라는데, 버스에서 내리지도 않고 그냥 통과했다.
군고구마 있으어~
샘 샤프 광장을 지난다.
흑인 해방 인권 운동가 샘 샤프의 동상, 그 주변의 작은 광장. 만남을 즐기는 사람들.
치안이 좋지 않다고 하여 버스를 잠시 멈추고 차안에서 촬영.
몇 분은 직접 내려보겠다고 하여 현지 가이드로부터 재삼 안전에 조심하라는 당부를 받고 가까이 다가가서 동상을 촬영하였다. 난, 무서워서.......
Samuel "Sam" Sharpe, or Sharp, National Hero of Jamaica (1801 – 23 May 1832), was the slave leader behind the widespread Jamaican Baptist War slave rebellion of 1832 (also known as the Christmas Rebellion).
Samuel Sharpe aka "Archer " was born into slavery in the parish of St James, Jamaica in 1805 on the Plantation of Samuel and Jane Sharpe. The Slave Return of 1832 announcing his death, gave his name as Archer aka Samuel Sharpe the son of Eve and was only 27 years old when he died. The Slave Return of Samuel and Jane Sharpe 1817 showed a young 12 year old Archer on the plantation with his mother Eve and siblings Joe (2 years old) and Eliza (20 years old). When or why Archer changed his name to Samuel Sharpe is unknown. He was allowed to become well-educated. Because of his education, he was respected by other slaves.
Sharpe became a well-known preacher and leader in the Baptist Church, which had long welcomed slaves as members and recognized them as preachers. He was a deacon at the Burchell Baptist Church in Montego Bay, whose pastor was Rev. Thomas Burchell, a missionary from England. Sharpe spent most of his time travelling to different parishes in Jamaica, educating the slaves about Christianity, which he believed promised freedom.
-wikipedia
wikipedia에 등록된 깨끗한 사진을 가져와보았다(사진의 권리는 등록자에게 있다). 동상 옆에 있는 작은 건물은 샘 샤프가 투옥되었던 감옥이었다고 한다. 감옥을 보전하고 그 옆에 광장과 동상을 둔 것이다.
GO WEST WEST WEST!
썬쎗 투어가 남았다. 몬테고베이의 서쪽 어디인 줄 알았는데, 서쪽이었다. 서쪽으로 하염없이 달린다. 결국에는 자메이카의 서쪽 끝 부분을 돌아 Negril이라는 곳까지 가더라.
Negril의 West End에 유명한 카페가 있다. Rick's Cafe. 어떤 방송의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왔던 곳이라더라.
킹스턴을 둘러보고 자메이카를 종단하여 오초리오스로 이동하였다. 하루 이동 거리가 147km를 기록하였다.
킹스턴 시내에서의 이동 경로이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커피로 유명한 UCC 커피 농장을 방문하고, 레게 음악으로 유명한 밥 말리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우사인 볼트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
7시 10분. 날이 밝았다. 수영장이 숙소 바로 앞에 깔끔하게 자리 잡고 있다. 구경만 한다.
호텔 마당 산책을 잠시...
부페식 아침이 아니었다. 식당에 가서 자리를 안내받아 앉아야 한다. 그냥 앉으면 직원들이 모른체 한다. 안내받아 앉아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한다. 그러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음식을 만들어다가 내어준다. 시간이 꽤 걸렸다. 메뉴판을 보고도 뭐가 뭔지 알 수 없어 다른 사람 주문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외쳤다. "미 투"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햇볕이 장난 아니다.
블루마운틴을 올라간다. 이곳 사람들은 관광객들이 자신들의 사진을 허락없이 찍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고 현지 가이드가 전한다. 조심하자.
더운 지방에 왔지만 긴팔, 긴바지를 입었다. 감기 환자. 덕분에 과한 버스의 에어컨 견디기에도 좋고, 햇볕 가리기에도 좋다. 선 블럭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피부를 현지인화 시키고 있었는데...
9시 30분. 사람들이 장난하는 것 같지만 장난이 아니다. 버스에 커튼이 없다. 다가오는 햇볕은 너무 강하다. 버스 안에서 우산이 양산이 된다.
블루마운틴을 올라간다. 꼬부랑 꼬부랑~
길이 좁다. 굴곡이 심하다. 2차로이다. 곡선 구간에서 다른 차와 교행하는 것을 보니 살 떨린다. 큰 버스였다면?
못올라온다.
10시. 높이 올라왔다. 저 멀리 아래로 킹스턴 항이 보인다.
음료수를 판매하는 작은 가게. 작렬하는 햇볕, 한쪼각 그늘...
아쉽게도 문은 열지 않았다.
Big Rum, Big Responsibility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Must be 18 & over to drink...
UCC에 왔다. Craighton Estates라고 되어 있다.
버스에서 내려 조 위로 걸어 올라간다.좁은 길 왼쪽의 간판을 보면서 올라간다.
Craighton Estates의 Blue Mountain Coffee Tour를 하는 곳이다.
UCC가 뭔가 했다. User Created Contents는 아닐 것이고..
Craighton Estates의 땅을 1981년에 구입하여 커피 농장을 일군 일본인 이름이다. Ueshima Coffee Corp.의 약자.
커피 투어 아지트.
자메이카에서 생산된 Jamaica Blue Mountain Coffee이다. 유명한 커피. 일본에서 유명한 커피. 일본인들이 쓸어 담아다가 마시는 커피. 한국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커피 통.
커피다. 커피콩이다. 나무 줄기에 이렇게 달려 자란다. 이곳에서는 커피는 아라비카 종의 것만을 재배한다고 한다.
햇볕이 너무 뜨거우므로 그늘을 만들어주는 커다란 나무를 군데군데 심어 햇볕을 가려준다고 한다. 고산 지대는 기온만 적절히 맞추어주는 것이므로 그늘은 다른 나무를 이용하는 것이다.
커피 투어를 오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원두막이다.
관광객들에게 설명을 해주는 현지 직원.
해발 고도 800미터 이상되는 곳에서 적당한 햇볕과 그늘, 경사지라는 조건이 결합되어 질 좋은 커피를 생산해준다고 한다. 토양은 화산회토.
그늘을 만들어주는 커다란 나무는 guanggo 나무. 시기에 따라 150~400여 명의 인력을 고용하여 농장을 운영한다.
한국인들 방문이 많이 이루어진다. 한 달에 100~200명 정도.
농장에서는 재배하여 커피콩 수확까지만 하고 처리 공장은 항구 부근에 따로 있다.
생산량의 70% 정도를 일본으로 수출한다. 블루 마운틴 커피의 장점은? 마셔보라.
원두막에 설치된 자료들.
커피나무와 커피콩의 발육 상태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조사원.
겉은 요로케 생긴 커피콩이...
속은 이렇게 생겼다고 한다.
블루 마운틴 커피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던 아저씨. 자메이카에서 생산되는 커피 중에서 최고라고 한다.
블루 마운틴 커피의 생산 지역은 한정되어 있다. 고지대로서 저지대와는 기후가 많이 다르다. 기온이 7~10도 정도가 낮다. 비가 많으며, 안개도 잦다. 경사지에서 재배한다. 커피콩이 익는데는 11개월 정도가 걸린다. 수확하여 말리는데 2주 정도 걸린다. 3~4개월 정도를 또 실내에서 건조한다.
요기까지 통역을 통해 들었다. 그런데 통역이 멈춘다. 그냥 밖으로 나왔다. 알아 듣지 못한다.ㅠ.ㅠ
원두에서부터 커피의 단계별 변신.
무지무지 불쌍한 표정으로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김○ 선생님한테 이것 하나 얻었다.^^
다시 킹스턴 시내로 내려온다.
자메이카의 기후. 4~7월은 우기, 8~11월은 건기, 12~4월까지는 nice weather라는 표현을 썼다. 강수량은 70인치 정도.
오후 1시. Bob Marley 박물관 입장권이다. 들어간다.
레게 음악은 들어보았다.
레게 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Call Me"라는 요란한 음악으로 대한민국을 휩쓴 Blondie가 부른 "Tide is High"였다. 살짝 흥겨운 리듬이 반복되는 재밌는 노래였었다.
하지만 Bob Marley의 노래는 몰랐랐다.ㅠ.ㅠ
그가 유명한 것은 레게 음악을 세계적으로 보급시켰다는 것도 있지만 자메이카에서 저항의 아이콘이었다는 것에도 있는 것 같다. 흑인 해방, 권력에의 저항, 대립 상태인 자메이카 정치 세력의 화합 등을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1976년 집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때 그의 집이 현재 그의 이름을 딴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Robert Nesta "Bob" Marley, OM (6 February 1945 – 11 May 1981) was a Jamaican singer-songwriter, musician and guitarist who achieved international fame and acclaim, blending mostly reggae, ska and rocksteady in his compositions. Starting out in 1963 with the group the Wailers, he forged a distinctive songwriting and vocal style that would later resonate with audiences worldwide. The Wailers would go on to release some of the earliest reggae records with producer Lee "Scratch" Perry.
After the Wailers disbanded in 1974, Marley pursued a solo career upon his relocation to England that culminated in the release of the album Exodus in 1977, which established his worldwide reputation and produced his status as one of the world's best-selling artists of all time, with sales of more than 75 million records. Exodus stayed on the British album charts for 56 consecutive weeks. It included four UK hit singles: "Exodus", "Waiting in Vain", "Jamming", and "One Love". In 1978 he released the album Kaya, which included the hit singles "Is This Love" and "Satisfy My Soul".
Diagnosed with acral lentiginous melanoma in 1977, Marley died on 11 May 1981 in Miami at age 36. He was a committed Rastafari who infused his music with a sense of spirituality. He is considered one of the most influential musicians of all time and credited with popularising reggae music around the world, as well as serving as a symbol of Jamaican culture and identity. Marley has also evolved into a global symbol and inspired numerous items of merchandise.
-wikipedia
Time Magazine에서 잘 생긴 흑인 남성들 30인 리스트를 뽑은 적이 있었나보다. 밥 말리가 2위를 했다고 한다. 큰 사람들 사이에 쪼그리고 있으니까 작은 사람이 되어버려 사진 속에 내가 들어 있기는 하지만 보이지는 않는구나.
치안이 그렇게 만만치 않은 동네일까? 보안 강도가 높다. 그래서 인지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도 내부를 들어갈 때는 카메라 소지 금지이다. 카메라, 가방 등을 모두 버스에 두고 내리라고 한다.
그래서 내부 사진은 없다.
배고프다. 점심 먹으러 가자.
오후 2시 40분. 자메이카의 육상 영웅, 우사인 볼트. 그가 경영한다고 하는 식당. Tracks & Records엘 왔다. 와이파이가 무료다~ 암호가 뭐였더라??
식당 내부를 자신의 기록 사진으로 장식해 놓았고, 입구에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도 있다.
식당 내부 모습.
배부르다. 가자.
오후 4시 10분. 길가에 서있는 밥 말리 옆을 지나간다.
킹스턴 항구 답사. 부두 건너편으로 국제 공항이 있는 사주가 보인다. Norman Manley, 자메이카의 저명한 정치인이라고 한다. 국제 공항에 그의 이름이 사용되고 있고, 그 앞을 지나는 고속도로에도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 노먼 맨리 고속도로의 끝, 사주의 끝에 Port Royal이 있다. 항구의 방어를 위해 만들어진 요새. 지진으로 망가졌다고 알고 있는데, 이것 저것 제대로 찾아보지도 못한 항구에서 시간을 보내느니 이곳을 다녀오는 것이 나았을 텐데, 어찌 이곳을 가보자는 이야기를 꺼낼 생각을 그때는 못하였는지....내가 부끄럼을 너무 타나보다.ㅠ.ㅠ
부둣가에서 동쪽으로 멀리 보이는 블루 마운틴. 왜 블루 마운틴?
새벽 어스름에 푸른 빛으로 조금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블루 마운틴이란다. 평소에는 그린 마운틴인데, 잠시 블루로 보인다고 그린을 두고 블루라고 이름을 붙이다니!
항구를 오가는 커다란 선박들.
4시 40분. 킹스턴 시내를 벗어나는 고속도로를 탄다. 멀리 보이는 블루 마운틴과 헤어진다.
구경거리. 교통 사고. 자메이카에서 교통 사고 현장을 지나가면서 잠시 본다. 자메이카는 차량 진행 방향이 우리나라와 반대이다. 좌측 통행.
도로변에서 노점을 하는 총각. 무엇을 판매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길가에서 채소를 판매하는 총각들도 보였다. 시금치 비슷한 야채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름은 칼렐루.
마리화나 이야기를 한다. 얼마나 되는 양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메이카에서 2온스까지는 마리화나 소지가 합법이라고 한다. 쓰루 가이드가 한국에서는 절대적으로 불법이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현지 가이드가 원하는 양을 이야기하라고 했단다. 얼마든지 구해준다고.^^
황당했다. 사실 아무도 그런 것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우리는 마약에 관심이 없다!
킹스턴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타고 오초리오스를 향한다.
킹스턴에서 고속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보면 Spanish Town이 나온다. 꽤 넓은 지역 범위를 아우르는 지명으로 보인다. Spanish Town Railway 역도 있다.
The Spanish settlement in Jamaica was a settlement that originated from the 16th century, when Jamaica was Spanish, ending essentially in 1670, the date on which Spain delivered the island to the British Crown under the Treaty of Madrid. However, there was never significant Spanish communities on the island, why was easily occupied by the British.
예정된 일정표에 '킹스턴 페리쉬 교회' 견학이라고 되어 있었다. Kingston Perish, 킹스턴 교구라는 뜻이었구나.
스패니시 타운에 위치한 St. Jago de la Vega Cathedral을 방문하였다.
16세기에 건축된 건물이었다고 한다. 영국이 점령하면서 Red Church라고 이름을 바뀌었는데, 붉은 벽돌로 건물을 지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1712년 허리케인으로 파괴되었다. 1840년대에 신중세양식으로 교회를 재건하였다고 한다. 요런 내용을 설명 들었는데, 조 아래 교회 역사의 간략 안내 게시물의 내용과 동일하다.
교회 바닥에는 교회에 공헌이 컸던 사람들의 무덤을 두고 있단다. 무덤 위에 만들어진 교회다.
교회 벽에 붙어 있던 게시물. 교회의 역사에 대해 간단하게 안내하고 있다.
저 쪽 교회 옆에는 교도소가 위치하고 있다. Prison Oval.
오후 5시 40분. 달려 간다. 오초리오스를 향해. 고속 도로를 벗어나 지방도로로 접어들어 좁은 계곡의 길을 따라 달린다. 하천의 이름이 Rio Cobre이다. cobre는 copper이라는 뜻을 갖는다고 나온다. 상류 어디에 구리 광산이 있었을까?
리온 코브레를 건너는 작은 다리. 1차로이다. 따라서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다. 대기했다가 진행 신호가 나오면 그 때 건너가야 한다.
UCC 커피 농장에서 내려오면 버스를 큰 것으로 바꿀 것이라고 한 것 같은데, 가만 생각해보니 같은 버스로 그냥 달려가고 있다. 잊자.
차내가 상당히 춥다. 에어컨 조절이 안된다고 하여 꺼달라는 민원 제기. 껐다. 덥다. 창문을 살짝 연다. 바람이 시원하다. 비가 온다. 젠장. 창문을 닫는다. 비가 그친다. 다시 창문을 연다. 시원하다. 어? 어느 틈에 에어컨을 켜고 달리고 있었다. 추워진다. 콧물이 매달린다. 감기는 언제 나을 것인가?
밤길을 작은 버스가 힘차게 잘 달린다. 엔진 소리는 힘겨워 하는 듯 하다. 음악도 나온다. 무슨 음악이었지?
Hibiscus Lodge Hotel에 묵는다. 체크인 한다. 방 키에 TV 리모컨과 에어컨 리모컨을 세트로 묶어서 준다. 내일 아침에 고대로 반납해야 한단다. 재밌는 시스템이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가방을 들고 올라가야 한다는 것은 재미없는 시스템이다.
감기 환자 뻗는다. 아주 심하지도 않고, 약먹은 살짝 나아졌다가 춥거나 하면 다시 콧물 찔찔, 재미 없는 상태이다.
운하를 따라, 가장 바깥 쪽에 모로 요새가 위치한다. 그 안쪽으로 산 카를로스 요새가 있고, 그 안쪽으로 El Cristo de La Habana가 있는 Parque del Cristo de la Habana가 있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모로 요새로 향하였다.
8시 50분. 공원에서 아바나 항구의 모습이 잘 보인다. 상쾌한 아침이다.
El Cristo de La Habana. 아바나 항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이다.
The statue was carved out of white Carrara marble, the same material used for many of the monuments of the Colon Cemetery. The statue is about 20 metres (66 ft) high including a 3-metre (10 ft) base. It weighs approximately 320 tons. The statue was built from 67 blocks of marble that had been brought from Italy after being personally blessed by Pope Pius XII. The figure of Christ is standing with the right hand held near the chin and the left hand near his chest. Facing the city, the statue was left with empty eyes to give the impression of looking at all, from anywhere to be seen.
The sculpture, located in the Havana suburb of Casablanca, in the municipality of Regla, was inaugurated on La Cabaña hill on December 24, 1958. Just fifteen days after its inauguration, on January 8, 1959, Fidel Castro entered Havana during the Cuban Revolution.
The sculpture is located 51 meters (167 ft) above sea level, rising to a height of 79 metres (259 ft), allowing the locals to see it from many points of the city. There is a panoramic viewpoint at the site of the sculpture.
-wikipedia
9시 30분. Castillo de los Tres Reyes del Morro. 왔다. 보았다.
그런데, 들여보내주질 않는다. 입장표를 받는 직원이 아직 도착하지를 않아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이런......
주위를 빈둥거리며 돌아다녀본다. 커다란 쇠붙이들이 여기저기 버려져 있다.
아바나 항구로 들어가는 입구의 동쪽에 요새가 있다. 건너편으로 멀리 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말레꽁이 보인다.
입장을 시작했다. 우리가 너무 일찍 왔던 것이었다. 개장 시간이 10시.
길게 이어진 이런 굴을 지나가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방어를 위한 기가 막힌 시설이다.
절벽 위에 위치하면서 넓은 해자까지 갖추어 철벽 방어 시설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바다를 향해 여기저기 커다란 대포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여러 개가 아직도 남아 있다.
지금은 방어 시설이 아니라...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
외국인에게 참 불편하다. 거의 모든 안내 자료의 언어는 에스파냐 어 밖에 없다. 에스파냐 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람도 아닌가. 외국 관광객들이 그렇게 많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에스파냐 어만 고집한다. 불편하면 현지인 가이드를 고용하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불편한 것은 내가 아니라 너! 라는 의미일까?
요새에 주둔하던 병사들이 사용하던 시설.
이곳에서도 예술인들이 재주를 뽐낸다.
요새의 경비 병사가 되어본다.
10시 50분. 비행기 시간에 조금 여유가 있단다. 센트럴 아바나의 맛을 조금 보기로 한다. 오래된 주택들이다.
조 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래를 보고 뭐라 말씀하신다. 에스파냐 어일 것이다.
빨래를 거는 방식이 내가 아는 것과 조금 달라 사진을 찍어 두었다.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 한 딸을 기억하기 위해 관 모양으로 외벽이 디자인된 14층 짜리 건물을 지었다는 이야기 속의 건물. 옛날 이야기인 것 같다. 건물이 매우 낡았다.
지나던 건물 안쪽의 배전반. 난감하다.
11시. 말레꽁에 파도가 들이친다.
건너편으로 모로 요새가 보인다.
말레꽁, 멀리 보이는 모로 요새. 방파제 앞쪽으로 보조 방파제가 더 설치되어 있다. 주 방파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 것으로 보인다.
위험해 보이는데도 사람들의 거주 공간으로 계속 이용되고 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약속한 장소
한명 한명 모여든다.
우리 앞을 지나는 트럭버스가 우리에게 시커먼 매연을 남기고 간다. 고~맙다.
신시가지의 La Casa. 쿠바에서의 마지막 점심 식사.
쿠바에서 자메이카로 한방에 날아가는 비행기가 안보인다. 그래서 그란 케이먼 제도를 경유하여 자메이카로 날아갔다. 감기가 낫질 않는다.챙겨갔던 약을 먹어도 다른 분들이 분양해주시는 약을 먹어도 계속 붙어 있다.
쿠바에서의 출국 수속은 매우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입국할 때 받아 소중하게 간직하던 출국 카드를 제출함으로써 출국 수속 끝. 짐 검사도 간단하게 끝났다. 매번 보안 검사에서 가방 속의 노트북을 꺼내놓으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 없다고 그냥 보낸다.
그러고 보니 의문이 든다. 가방 안의 노트북, 태블릿 등을 왜 따로 꺼내놓으라고 하는 것일까?
요렇게 그란 케이먼 제도를 경유하여 자메이카로 날아갔다. 우사인 볼트의 나라, 레게 음악의 나라인 자메이카로 날아갔다.
창가좌석에 앉아 날개와 구름 구경 실컷 하다보니 그란 케이먼 제도라고 한다. 내려서 환승 수속을 받는다.
그란케이먼 공항에서 환승을 위해 대기하는데, 에어컨이 너무 강하다. 감기 환자에게 쥐약이다. 와이파이가 무료로 된다는 것은 보약이다. 쿠바에서 한번도 연결되지 않았던 와이파이가 쿠바를 벗어나니까 터진다.
아담한 비행기로 갈아타고 자메이카로 향한다.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걸친 남정네들이 많이 보게 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거의 흑인들이다. 금색 장식물을 많이 걸치고 있다.
이코노미 클래스인데, 그동안 이용했던 비행기들에 비해 좌석의 앞뒤 간격이 조금 아주 조금 더 여유 있는 듯 하다. 덩치 큰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비행기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국의 비행기는 좌석수를 최대로 뽑기 위해 간격을 매우 좁게 만들어 놓아 아주 불편한데, 이 쪽 비행기들은 마음에 든다.
킹스턴에 도착하였다. Norman Manley International Airport.
Norman Manley International Airport (IATA: KIN, ICAO: MKJP), formerly Palisadoes Airport, is an international airport serving Kingston, Jamaica and is located south of the island 19 km away from the centre of New Kingston, it is the second busiest airport in the country after Sangster International Airport recording 1,502,973 arriving passengers in 2015. It is a hub for Caribbean Airlines and Fly Jamaica Airways. In 2011 the cash-strapped Jamaican airline Air Jamaica was taken over by the Trinidad carrier Caribbean Airlines but Jamaica has 16% of the shares and the airline retained the former routes used, and the airport was named in honour of Jamaican statesman Norman Manley. There are over 130 international flights a week that depart from Norman Manley International Airport. The airport is located on the Palisadoes tombolo in outer Kingston Harbour; it fronts the city on one side and the Caribbean Sea.
-wikipedia
피곤하다. 현지 가이드 친구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나타나질 않는다.
traffic을 핑계대는 현지 가이드. 헌데 공항을 빠져나오는 길을 따라 버스가 너무 잘 달린다. 트래픽은 무슨!
그리고 도착한 버스가 너무 작았다. 캐리어 가방을 버스의 뒤쪽에 차곡차곡 싣는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에 사람들이 앉아야 했다.
이 작은 버스로 답사를 계속 할 수 없다고 궁시렁 궁시렁~
남팀장이 담당자와 되지도 않는 연락을 주고 받으려 노력하며 버스를 다른 것으로 교체하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블루마운틴을 다른 큰 버스는 올라가지 못한다고, 어쩔 수 없이 이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였다. 그래도 큰 버스로 교체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