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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다. 9월 답사는 손보기로 했다.

호미곶 해맞이공원. '상생의 손' 중에서 육지에 있는 왼손. 오른손은 바다에 있다. 

 

포항, 경주. 서울에서 먼 곳이다. 그러니 일찍 출발하는 수 밖에 없다. 일찍 출발하려면? 일찍 일어나야지. 3시20분 알람.

4시30분에 중동고 앞에서 출발한다고 했는데, 너무 일찍 도착한다. 할 수 없이 아침 해결을 고민했다. 기사식당이 보이길래 신호지켜가며 유턴하여 갔다. 곰탕이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닭칼국수를 시켰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자꾸 곰탕 생각이 났지만 닭칼국수의 양도 많고 맛도 괜찮았다. 다만 조금 늦게 나와서 먹다 남겼다는 것. 아깝다.

 

 

9월3일 새벽 출발하여 감포에서 하루 묵고, 9월 4일에 경주 남산을 답사하고 귀경하였다.

 

6시10분경. 창밖에 이정표가 보인다. 보은 부근을 달리고 있구나.

 

화서휴게소에 들러 아침 식사를 했다. 나는 생략했다. 이미 닭칼국수를 남겼으니까....^^

 

최근 태양광 발전 설비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눈에 띤다. 들에도 있고, 산에도 있고, 휴게소 주차장에도 있다.

 

3일과 4일에 이동한 포항과 경주 지역의 경로가 되겠다.

 

 

두 대의 차량으로 답사를 진행하기로 예정되었나보다. 다른 차량과 포항고속터미널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주차 공간이 없어 골목으로 들어왔다. '1실1주차'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만남 장소를 호미곶광장으로 변경하였단다. 빗속을 달린다. 해안도로를 두고 잘 닦인 큰 길을 따라 이동하였다. 포항의 도로 여러 곳이 빗속에 침수되어 있는  것을 경험하였다. 배수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형 윤곽으로 나타낸 지도를 보면, 호미곶의 동쪽 해안선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평야가 '해안단구'의 형태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는 것은 융기 작용을 받은 것이겠지? 읍천리 쪽의 해안에 있는 안내판에 '솟아오른 바닷가'란 표현이 있었다. 괜찮은 표현이 아닌가 한다.

 

10시 30분. 호미곶광장의 새천년기념관. 건물의 '새천년기념관'이라는 글자의 웻부분이 전망대이다. 아래 부분은 여러가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볼만한 곳은 '유료'.

 

호미곶광장을 상징하는 '상생의 손'.

오른손은 바다에, 왼손은 육지에 있다. 새천년기념관 전망대에서 노트3 카메라의 디지털 줌을 사용하여 촬영했다.

 

왼손 앞에 불을 피웠던 것 같다. 화상을 조심하라고 할 정도로. 하지만 9월 3일에는 세 개의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비가 많이 내려서 그런 것일까?

 

우산을 쓰고 사진을 찍으려니 그림이 영 안되서 우산을 접었다. 젖었다.

바다속에 있는 오른손이 위치한 곳이 '파식대'라고 한다. 

손가락마다 새가 앉아 있으니 마치 손톱을 세운 것처럼 보인다.

파식대가 뭐시냐고?

파식대(波蝕臺)는 암석해안에서 육지의 기반암이 파식을 받아 후퇴할 때, 해식애 밑에 형성되는 평평한 침식면이다. 파식대는 해식애의 기저부(맨 아래 바닥)에서 시작되어 저조위(썰물시 해수면) 밑으로 연장되며, 서해안처럼 조차가 큰 해안에서는 썰물 때 파식대가 전부 노출되는 것이 보통이다. 해식애면의 바다 쪽에서 일어나는 파랑의 마식과 굴식작용은 파식대라 불리는 넓은 침식 지형면을 만들며, 이러한 지형면은 대체로 해수면보다 약간 낮은곳에 형성된다.

 

새천년기념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보항.

비오는 날의 항구인지라 조용하고 아늑해보인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보내주는 사람은 말이 없는데 떠나가는 사람이 무슨~~~~

 

인공위성 영상이다.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는 곳의 대부분이 '솟아오른 바닷가'이지 싶다. 전문 용어로 해안단구.

해안단구

해안선을 따라 계단 모양으로 되어 있는 좁고 긴 지형이다. 과거에 있었던 해수면 지역이 침식을 받은 후 기반암이 융기하는 지반을 따라 솟아오른 것이다. 융기해안에서는 과거에 형성된 해안의 침식면 또는 퇴적면이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는 동안 단구를 이루며, 지각운동이 활발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계속 융기한다. 해안단구는 동해안의 여러 곳에 분포하는데, 부산의 태종대가 대표적이다. 또 강릉 남쪽의 정동진은 해성 퇴적물로 덮인 해안단구가 넓게 발달되어 있다. 장기곶에서 울산만에 이르는 해안단구도 유명하다.

 

12시 10분.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석병리에서 바닷가로 나아갔다. 노두가 있다. 공사를 하면서 드러난.

퇴적층이 보인다. 둥근 자갈층을 포함한. 

 

보라. 기반암 위에 자갈이 잔뜩 포함된 퇴적층이 덮여 있다. 이 자갈들이 무엇이냐 하천 혹은 파도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이곳은 바닷가이니 파도의 작용을 의심한다. 육지의 저 높은 곳이 옛날 언젠가는 바다의 작용을 받았던 것이라는 것이다. 이게 무엇인가 하면, '솟아오른 바닷가'라는 것이다.

 

방파제 한쪽에서 파도가 쳐들어올 때마다 하늘로 물이 솟는다. 방파제에 이런 구멍을 두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사진은 어떻게 찍었는가 하면...

 

이 자세로 찍었다. 비가 와서 우산을....조그만 우산을 받쳐들고...

(촬영자는 '일반인')

 

 

바닷가 마을에서 지진해일 대피로 표지판은 흔하다.

지진해일 대피는 직진, 해파랑길은 왼쪽으로 가란다.

 

비가 와서 흐린 하늘 아래 등대는 늘 그렇게 서 있다. 등대의 색깔이 빨간 색과 흰색이 있다는 것은 초등학생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흰색 등대가 있다는 것은 오른쪽으로 항해하라는 의미다. 왼쪽에 장애물이 있으니 오른쪽으로 항해하라는 것, 혹은 부두가 오른쪽에 있으니 그리 가라. 빨간 등대는 반대다. 오른쪽에 암초 등의 장애가 있으니 왼쪽으로 가라, 혹은 부두가 왼쪽에 있다는 의미이다. 즉, 사진 속의 빨간 등대는 바다 쪽에서 보면 부두의 오른쪽에 위치한다. 빨간 등대의 왼쪽으로 항대하면 항구로 입항. 흰색 등대는 항구의 왼쪽에 위치.

 

12시 40분. 구룡포다. 유명한 구룡포다. 고래잡이? 과메기? 하여간 유명하다. 하지만 이번 답사에서 우리 일행은 고래나 과메기는 접하질 못했다. 

근대역사문화거리가 있다. 근대역사문화관이 있다.

그런데 이 '근대역사문화'는 일본이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입구.

 

제2회 대한민국 경관대상 최우수상.

 

뭐 이런 건물들이 골목을 주욱 채우고 있다.

 

이랬었단다. 옛날에. 그랬던 시절을 오늘에 되살려보고 싶은가보다.

그런데 얘네들은 여기 왜 왔지? 어디서?

 

시코쿠 촌 동네서 왔단다. 하시모토가 대장이었나보다. 고등어 잡으러 왔단다. 돈 좀 벌었단다.

그런데 그 때는 제주도가 지금보다 좀 동쪽에 있었다. 해방 이후에 남서쪽으로 표류했다.(이런 것 디자인 하시는 분들, 좀 제대로 합시다. 만들어 놓고 쪽팔리지 않나.)

 

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식사하러 가는 줄 알고 그냥 나왔는데, 여길 올라간단다. 비가 꽤 온다. 일본인 가옥의 처마 밑에서 낙수물을 피하면서 이들이 내려오길 기다렸다. 우산이 없어라~~

(저 위의 구룡포공원에는 일본인 도가와 야사브로의 공덕을 기리는 공덕비가 있다고 한다. 해방후 동네 청년들이 시멘트를 발라버렸는데, 최근에 그것을 다시 복원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아주 잘하는 짓이다.)

네이버캐스트 참고( ↓ 클릭)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1&contents_id=2755&path=%7C184%7C196%7C237%7C&leafId=238

 

 

계단의 양쪽으로 돌기둥들이 빼곡하다.

 

돌기둥 사연.

 

즐거운 점심시간이다 - 수평회.

 

구룡포명물이라는 '모리국수'를 먹으며 대한민국 명물이라는 '소주'를 소량 맛보았다. 모리국수와 모리소바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맛은 괜찮았다.

 

 

1시 50분. 점심 식사후에 식당과 같은 골목에 있는 근대역사관을 답사하였다.

 

하시모토의 집이었다고 한다.

하시모토의 살림집이라서 그런가 이런저런 살림살이를 대충 갖추고 있었다.

 

구룡포의 근대역사문화는 '일본'인가보다. 버스 정류장도 이렇게 생겼고...

 

구룡포의 근대역사문화를 젊은이들은 이렇게 즐기고 있더라. 

그렇더라. 그랬다. 뭐...그런...

 

들어보았을까, 선무도?

금강영관(金剛靈觀) 또는 대중적으로 더 유명한 하위일파의 선무도(禪武道)는 부산 범어사의 양익 스님이 창시한 무술이다. 양익 스님은 2006년 열반했다. 불교 무술 최고고수로 명성이 높았다. 현재 선무도의 문주는 양익 스님의 제자인 적운 스님이라고 한다. 경주 골굴사 주지스님이다.

그래서 선무도의 총본산인 골굴사를 답사하고자 하였을까? 선무도를 찾아서?

약 1,500여 년 전 인도에서 온 광유 선인 일행이 경주 함월산에 정착하면서 골굴사와 기림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이 중에서 골굴사는 광유스님 일행이 인도의 석굴 사원을 본떠서 석굴사원 형태로 조성한 국내에서 가장 오랜 된 석굴사원이다.

조선 중기 겸재 정선의 그림으로 볼 때 골굴사는 여러 석굴들 앞에 목조 전실을 만들고 여기에 기와를 얹은 형태이다. 조선 중후기에 화재로 소실된 상태로 방치되었다가 지금으로부터 약 70여 년 전 경주에 사는 박씨 일가가 상주하면서 다시 사찰로 만들었고, 1989년에 한 개인에게 매매되어 넘어간 상태였던 것을 당시 기림사 주지였던 설적운 스님이 매입해서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본사 불국사의 말사로 등록되었다.

주불인 마애여래좌상(보물 제581호)이 문무대왕의 수중릉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주변에 관음굴, 지장굴, 약사굴, 나한굴, 신중단, 칠성단, 산신당 등의 굴법당과 더불어 남근바위, 여궁 등의 민간 전례신앙의 흔적까지 있어 한국적인 석굴사원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근래에 이르러 골굴사에는 불가의 전통 수행법인 선무도 수련원이 개설되어 내국인은 물론 수많은 외국인들이 전통의 불교무예를 배우는 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위키피디아-

 

그렇다. 선무도 때문이 아니라 석굴사원에 대한 관심 때문에 답사하게 된 것일 것이다. 보자.

 

3시 20분. 주차장. 뭔가 벌써 분위기가 다르다. 

 

얼굴과 근육을 보니 주눅든다. 눈깔고 지나간다.

 

이런 길이 좋다.

 

근사하다.

 

그런가보다. 하지만 골굴사를 찾은 목적은...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이거다. 석굴사원은 타포니였던 것이다.

타포니는 암석이 물리적·화학적 풍화작용을 받은 결과 암석의 표면에 형성되는 요형(凹型)의 미지형을 풍화혈이라고 하는데, 풍화혈 중에서도 특히 암석의 측면(암벽)에 벌집처럼 집단적으로 파인 구멍을 가리키는 말이다. 풍화혈은 해안이나 화강암 산지에서 흔히 나타나는데, 비가 내린 후 물이 괴거나 그늘이 져서 주변보다 습하기 때문에 입상붕괴가 선택적으로 촉진될 수 있는 부위에 형성된다. 또한 역암, 사암이나 석회암에서도 형성되며, 특히 건조지역에서는 이의 발달이 인상적이다.

 

타포니가 어딨나?

 

요기~

 

타포니 마애여래좌상.

 

대적광전. 아담하니 예쁘다.

 

하여간....여기서도 남녀를 찾고 있다.

 

마애여래좌상으로 오르는 절벽에서 본 대적광전. 

앞의 공간에서 선무도 공연이 펼쳐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아래의 실내에서 공연을 한다. 주변에서 편하게 쉽게 구경하며 즐길 수 있을텐데 왜 폐쇄된 실내로 들어갔을까? 공연중이었으나 사람들로 가득하여 들어가보질 못했다. 오후 3시반에 공연을 시작한다.

 

절벽에 뚫린 구멍도 타포니일진데, 지나가면서 미끄러지면 어찌하나 하는 걱정만 했지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생각이 나네. 그때 다리가 후들거리기는 했지만....

 

타포니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에는 관음굴이라 조성해 놓았다. 자연에 인공이 무진장 가미되어 있는 상태이다.

 

아래를 보니 선무도 공연을 마친 출연진이 내려가고 있었다. 곱다.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보였다.

 

유명했던 강아지, 동아.

 

웃으시네...

 

 

그리고 양남면 읍천리의 주상절리를 보러왔다.

주상절리란?

마그마에서 분출한 1000℃ 이상의 뜨거운 용암은 상대적으로 차가운 지표면과 접촉하는 하부와 차가운 공기와 접촉하는 상부에서 부터 빠르게 냉각된다. 빠르게 냉각하는 용암은 빠르게 수축하게 되어 용암의 표면에는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듯이 오각현 혹은 육각형 모양의 틈(절리)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냉각수축 작용으로 생긴 틈이 수직한방향으로 연장되어 발달하면 기둥모양의 틈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라 한다.

 

양남주상절리의 형태

자연이 연출한 조각품이라 일컬어지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이곳 양남면 주상절리 해변에는 10m가 넘는 정교한 돌기둥들이 1.7km에 걸처 고대 희랍의 신전 기둥처럼 줄지어 서 있는가 하면, 주상절리가 원목을 포개어 놓은 것 같은 형상으로 누워 있고 또 백두산 천지를 보는 것 같은 신비감과 여인네의 주름치마, 부채꼴모양, 꽃봉우리 등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가 옹기종이 모여 있는 가히 지질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세계유일의 자연유산이다.

 

주상절리 트레킹 코스 「파도소리길」

주상절리 전구간(1.7km)을 트레킹할 수 있는 「파도소리길」은 구간별로 몽돌길, 야생화길, 등대길, 데크길 등 해안 환경을 고려한 테마로 조성되어 있으며, 특히 등대길 구간은 파도·등대·주상절리의 자연경관을 출렁다리에서 동시에 감상하면서 산책할 수 있는 구간으로 파도소리 길의 새로운 명소다. 산책로 전구간에 경관조명 등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주상절리 3개소에 투광기를 설치함으로써 야간 시간대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이 가능하도록 시설하여 하절기에는 많은 관광객 이용이 가능하며, 읍천항 갤러리(2.3km)와 연결된 총 4.0km의 테마가 있는 어촌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http://guide.gyeongju.go.kr/deploy/enjoy/01/01_05/1195853_7533.html

 

 

5시. 바닷가 데크에서 주상절리를 감상하려 하는 답사객들.

 

주상절리. 기둥모양으로 갈라진 바위다. 기둥모양. 그런데 누워있다.

가운데에다가 누군가가 작품을 만들어두었다. 신생대 제3기에 만들어진 작품인 것 같다.

 

부채살 모양으로 펼쳐져 누워있는 주상절리. 그것을 보고 싶었다. 저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뽀인트로 접근할 수가 없다.

 

이눔 때문에.

 

이것이다. 그런데 공사기간 표시가 없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공사책임자 이름도 가려져 있다. 아마도 공사가 중단된 것은 아닌지...

역시. 늦어지고 있다. 경주시청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자료. 24억원짜리 사업이라고 한다. 2016년 6월에 외관 준공 예정이었으나 멈춰있다. 왜 그런 것일까?

http://m.gyeongju.go.kr/area/page.do?mnu_uid=1316&

 

이렇게 부채꼴로 펼쳐진 상태로 누워있는 주상절리를 직접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볼 수 있는 뽀인트에 예전에는 군 초소 설치되어 있어 접근이 곤란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망대 공사 중이라고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니...

이 사진은 아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다.

http://blog.naver.com/gyeongju_e/120162367393

 

 

우체통만 느린 것이 아니라 공사도 늦은.....

 

바위에 붙어있는 저 소나무에게 몇 년 늦춰지는 공사기간 따위는 의미없으리라.ㅎㅎㅎ

 

설명 좋다. 위로솟는 주상절리.

 

솟아라~

 

이곳에도 둥근 자갈의 퇴적층이 보인다.

 

위의 자갈층은 이곳이 '솟아오른 바닷가'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란다.

'융기해안'보다 '솟아오른 바닷가'가 낫다. 그림 설명에서는 '융기'란 단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구나.^^

 

누워있는 주상절리.

 

누워있는 주상절리 쪽으로는 진입이 금지되어 있다. CCTV로 감시한다고도 되어 있다.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가는길. 하서항에 있다.

통행안전수칙. 사유지를 통과하기 때문에 서로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겠다.

 

 

답사대원들 중 몇몇 분은 여기서 작별을 했다. 그리고 남은 대원들은 답사를 계속한다......

 

6시. 당일팀과 헤어져 1박팀은 숙소로 예정된 감포로 향하다가 이견대에 멈추었다.

 

바닷가가 쓸쓸하다.

 

 

6시 30분. 감포의 해변. 나정 해수욕장이다. 사빈이 곱게 펼쳐져 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식당에 모였다.

 

저녁 메뉴는 물회, 아침메뉴는 소고기국밥이었다.

 


 

남포의 나정해수욕장에서 하룻밤 신세진 숙소는 황토한옥민박이었다.

9월 4일 아침이 밝았다.

 

민가로 사용되던 한옥을 구입하여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사장님이 인테리어를 하시는 분이라 하나 하나 직접 개조했다고 한다. 건물이 셋인데, 하나는 살림집으로 이용하고 있고 나머지 두 채의 건물은 민박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지라 모든 것이 깔끔하다.

 

심지어 바베큐 도구도 깔끔하다. 새 것이었다.

저녁 식사하고 들어와 씻고 그냥 잔 것 같은데, 마당 한 쪽 상태가 이러했다. 왜 그런 것이지? 탁자에 비친 햇볕이 눈부시다.

 

옥이밥상에서 국밥 한그릇 먹고 나정해수욕장 산책. 나는 앉아 있고 산책은 다른 분들이 하셨다. 분업체계.

 

자..이제 가자 경주의 남산으로.

경주 남산에 왔다. 남산?

경주남산연구소 홈페이지에서 소개 자료를 긁어온다.(자세한 내용은 www.kynamsan.org 참고)

남산은 서라벌의 진산(鎭山)이다. 북의 금오봉(金鰲峰, 468m)과 남의 고위봉(高位峰, 494m)을 중심으로 동서 너비 4km, 남북 길이 10km의 타원형으로, 한 마리의 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엎드린 형상이다. 골은 깊고 능선은 변화무쌍하여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었으니 작으면서도 큰 산이다.
남산에는 온갖 전설이 남아 있고, 신라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역사의 산이며, 선조들의 숨결이 가득한 민족문화의 산실이다. 이 산 주변에는 신석기 말기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고, 신라시조 박혁거세거서간이 탄강(誕降)한 나정(蘿井)과 초기 왕궁, 나을신궁(奈乙神宮), 왕릉이 즐비하며, 도성(都城)을 지켜온 남산신성(南山新城)을 비롯한 4곳의 산성과, 망국의 한이 서린 포석정지(鮑石亭趾)가 있어 남산은 실로 신라 천년의 역사와 함께 한 산이라 할 수 있다.
남산에는 많은 불상과 탑들이 남아 있다. 그 대부분은 석탑(石塔)과 석불(石佛)로서 특히 마애불(磨崖佛)이 많다. 이처럼 많은 유물들이 돌로 만들어진 데에는 질 좋은 화강암이 많기도 하지만,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신앙된 바위 신앙과도 관련이 깊다.
아득한 옛날부터 남산 바위 속에는 하늘나라의 신들과 땅위의 선신(善神) 들이 머물면서 이 땅의 백성들을 지켜준다고 믿 었으며,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는 산 속, 바위 속의 신들이 부처와 보살로 바뀌어 불교의 성산(聖山)으로 신앙되어 왔다.이러한 신앙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다.
비파바위(琵琶巖)의 부처님이 망덕사(望德寺)의 낙성재(落成齋)에 누추한 옷차림으로 참석하였는데, 왕이 그 누추함을 업신여기자, 왕을 꾸짖고는 진신석가(眞身釋迦)의 모습으로 바뀌어 홀연히 남산 바위 속으로 숨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누추한 승복을 입고 광주리에 물고기를 담아 들고 나타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경흥국사(景興國師)의 제자가 나무라자, 말을 타며 호사스럽게 지내는 경흥국사를 크게 꾸짖고는 다시 남산 속으로 숨어버린 문수보살의 이야기도 있으며, 충담(忠談)스님은 삼화령(三花嶺) 미륵세존(彌勒世尊)에게 다공양(茶供養)을 올린 후 경덕왕(景德王)에게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올려 군신(君臣)과 백성이 서로의 본분을 다할 때 나라가 태평하다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설화들은 곧 남산과 남산 바위 속에는 부처와 보살이 머물면서 권세있는 자나, 존경받는 지식인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는 산에서 내려와 호되게 꾸짖고 가르침을 주고는 다시 산 속, 바위 속에 숨었다가, 백성들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내려와 보살펴 준다고 신앙되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신앙은 또한 예술로 승화되고 표현되어, 골마다 절이 세워지고, 바위마다 불상(佛像)이 조성되며, 수많은 탑이 세워져 불국토(佛國土)를 이루었다.
남산에 불상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7세기 초로 추정되고 있다. 7세기 초에 조성된 동남산 부처골 감실여래좌상(佛谷龕室如來坐像)은 투박한 시골 할머니가 돌로 만든 집 속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고즈넉한 주변 분위기와 어울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안온하게 해주는 한국 최고(最古)의 감실불(龕室佛)이며, 7세기 중엽의 장창곡 석조미륵삼존불의상(石造彌勒三尊佛倚像)과 선방곡 석조여래삼존불(石造如來三尊佛)은 티없이 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웃음으로 잘 알려져 있다.
7세기 후반에 불세계(佛世界)를 만다라적(曼多羅的)인 기법으로 새겨 놓은 탑곡 마애조상군(磨崖造像群)은 사방의 불보살과 비천(飛天)들이 시시각각 햇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나타나는 웃는 모습들은 가히 환상적인 불세계를 표현하고도 남음이 있다. 삼국통일후 남산은 불보살이 머무는 신령스런 성산(聖山)으로 신앙되어 더욱 많은 탑과 불상이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에 사방불(四方佛)을 더하여 조성한 칠불암(七佛庵) 마애조상군은 심산궁곡 바위 절벽을 부처님들이 머무는 하늘 나라로 보고 험준한 산등성이에 절을 세운 용기와 큰 바위를 쪼아 대불(大佛)들을 조성하여 화엄세계(華嚴世界)를 구현해 낸 신앙의 열정에는 그저 감격 할 뿐이다.
조선초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금오신화(金鰲神話)』를 집필한 용장계곡 용장사지(茸長寺址)의 석조삼륜대좌불(石造三輪臺坐佛)은 자연석 바위를 하대석으로 삼고 둥글둥글한 대좌를 삼단으로 놓아 그 위 연꽃 방석에 부처님을 모셨으니 바로 수미산(須彌山) 위 도솔천(兜率天)의 미륵보살을 모신 것이 아니겠는가?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 불상은 유가종(瑜伽宗)의 대덕(大德)이신 대현(大賢)스님께서 염불하면서 돌면 이 미륵상 또한 고개를 돌렸다고 한다. 
남산 전체가 마애불의 보고(寶庫)이지만, 특히 냉골(삼릉계곡)은 마애불이 많다. 입가에 방글방글 미소를 머금은 채 금방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마애관음보살입상(磨崖觀音菩薩立像), 다듬지 않은 넓은 바위 면에 사바세계(裟婆世界)에서 설법하고 있는 석가삼존불과, 극락으로 왕생(往生)하는 중생을 마중 나오시는 신비스런 모습의 내영아미타여래(來迎阿彌陀如來)를 한 폭의 그림으로 새긴 선각육존불(線刻六尊佛), 얼굴은 원만상으로 조각하고 몸은 억센 선으로, 연화대좌는 부드럽고 희미한 선으로 처리하여, 기도하는 중생을 위하여 바위 속에서 모습을 들어내는 듯한 높이 6m의 상선암 마애대좌불(磨崖大坐佛) 등 남산 전체가 불보살의 세계를 옮겨 놓은 듯하다.
부처님 나라를 그리는 간절한 신앙은 탑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용장계곡의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200여m가 넘는 높은 바위 봉우리를 하층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 상층기단을 쌓고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을 얹어 삼층석탑을 쌓았으니 하층기단인 바위산은 바로 8만 유순(由旬)이나 되는 수미산이 되는 것이오. 탑 위 푸른 하늘이 수미산정(須彌山頂)의 부처님 세계가 되니, 서라벌 벌판은 부처님이 굽어보는 복된 땅이 되는 것이다.위 산을 기단으로 삼은 탑은 최근 복원한 잠늠골 삼층석탑과 늠비봉 오층석탑에서도 나타날 뿐만 아니라, 초기 왕궁지였던 창림사지(昌林寺址) 삼층석탑과 남산리 사지(寺址) 서삼층석탑에 이르러서는 상층기단부에 팔부중상(八部衆像)의 조각으로 나타나고 있다. 팔부중상은 사천왕(四天王)의 장수(將帥)이니 탑의 기단부가 수미산이 되는 것이다.
남산에 있는 불교유적의 가치는 자연과의 조화와 다양성에 있다. 편편한 바위가 있으면 불상을 새기고, 반반한 터가 있으면 절을 세우고, 높은 봉이 있으면 탑을 세우되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조성하였다. 비록 바위 속에 부처님이 계신다고 믿고 있어도 바위가 불상을 새기기에 적정하지 않으면 불상을 새기지 않고 예배하였으며, 절을 세워도 산을 깎고 계곡을 메운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신라인들은 바위에 부처를 새긴 것이 아니라, 바위 속에 있는 부처를 보고, 정(釘)을 들고 바위 속에 숨어 계신 부처님을 찾아낸 것이다. 남산은 자연과 예술이 조화되어 산 전체가 보물이니 세계에 그 유례가 없다. 남산을 아니 보고 어찌 경주를 보았다 할 것이며, 몇 번 오르고 어찌 남산을 안다고 할 것인가?

남산에는 왕릉 13기, 산성지(山城址) 4개소, 사지(寺址) 147개소, 불상 118체, 탑 96기, 석등 22기, 연화대 19점 등 672점의 문화유적이 남아 있으며, 이들 문화유적은 보물 13점, 사적 13개소, 중요민속자료 1개소 등 44점이 지정되어 있고, 2000년 12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그 가치를 보호받고 있다.

 

불국토라 알려진 경주 남산에 화강암을 보러왔다. ㅎㅎㅎ

불국사 화강암. 마그마가 저 깊은 땅 속에서 굳어 만들어진 화성암.

단단한 돌. 그 돌에 조각된 부처이기에 오랜 세월 남아 있을 수 있었으리.

 

이렇게 남산을 오르다 내려왔다.

 

경주 남산의 간략한 안내도 다운로드 받기( ↓ 클릭)

http://www.kjnamsan.org/03/img/gjmap001.jpg

 

가이드북도 다운로드 받아보자.( ↓ 클릭)

http://www.kjnamsan.org/data/file/gjnsguidebook.pdf

 

 

남산 안내도가 남산 아랫자락의 '현위치'에 있었다.

 

삼불사 코스를 통해 남산으로 접어든다.

 

망월사를 지나 계속 남산을 오른다. 화강암 산지를 오르며 화강암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자연스러운 혹은 인간의 손길을 많이 탄... 그런 화강암.

 

삼릉이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 오르는 골짜기를 삼릉계곡이라 한다.

 

삼릉곡 제1사지 탑재와 불상.

 

제2사지 석조여래좌상.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남산 답사는 해설사의 인솔하에 이루어졌다. 하나하나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이동을 하니 아주 좋았다.

 

삼릉계곡 석좌여래좌상.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불상 뿐만 아니라 석탑의 흔적들도 발견된다.

 

여기까지 보고 하산하였다. 빗발이 조금씩 세지고 있었고 우산이 없는 분이 대다수라서...물론 다른 이유도 있기는 했지만.

 

신선암 마애보살유희좌상이 유명한 것 같은데 남산의 반대편 사면에 있다는 핑계를 대고 하산하였다. Next time.......okay?

 

 

배꼽에서 부른다.

부름에 응답한다.

12시. 삼미정으로 갔다. 여기다.

 

외관은 근사한 식당이다.

 

이런 것을 판매한다. 두부전골, 수육, 공기밥, 동동주, 소주, 도토리묵무침 등이 상 위에 올라왔다.

 

태종 무열왕릉을 찾고 싶어하는 분이 계셨다. 들렀다.

 

1시 10분.  김춘추 어르신을 뵈러왔다.

 

 

 

그리고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대충 달렸다.

추풍령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달렸다. 난 잠에 취했다.

 

유성 만남의광장에서 충남에서 오신 분들과 헤어졌다.

 

서울로 달렸다. 벌초하는 날이었다고 한다. 정체, 정체, 정체.

 

하지만 커다란 차는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티맵의 경로 안내를 무시하고 무조건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티맵의 도착 예정시간보다 약간 이른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였으니 또 헤어짐의 시간.

이런 저런 인사 대충 생략하고 이별. 헤어짐은 짧게 짧게 짧게.

 

중동고 주차장에 맡겨두었던 차를 움직여 동부간선도로를 달린다.

야간인데 전조등을 켜지 않고 달려드는 차들의 정체가 의심스럽다. 

자율주행차들일까?

 

자....다음 답사는 언제, 어디로 가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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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5-06 : 동해안 지형 답사 - 현무암, 화강암, 석회암

 

 

9월4일 밤에 서울을 출발하여 속초에서 잤다. 설악산 아래에서...
 
 
 
그리고 5일 토요일부터 답사 시작. 속초에서 시작해 동해안을 따라 주욱 속초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서울로...
인솔 및 해설, 강의는 민석규 박사님이 맡아주셨다.
 

 

고성, 속초 방면에서의 이동경로이다. 운봉산 - 미시령 옛길 - 속초의 석호들

 

주빙하 환경에서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화석 지형인 현무암 주상절리와 암괴류를 볼 수 있는 운봉산(강원도 고성권 토성면 학야리 164-8 일대)으로 먼저 달렸다.

주변은 기반암이 화강암이지만 운봉산 일대만 신생대 제3기 현무암이 분포한다.

다른 지역의 현무암에 비해 삭박된 정도가 심하다고 하며, 그 결과 주상절리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독특한 암설 지형(애추 및 암괴류)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지역의 현무암에 대해서는 아래 사이트 참고.

http://www.dmzgeopark.com/sub02/sub02_03_02.php

 

운봉산의 모습. 사면의 암괴류가 이곳 저곳에 보인다.

 

암괴류의 모습.

 

답사중인 대원들의 모습.

 

 민박사님은 열심히 강의해주시고...

 

 나는 셀피 만들고...

 

위성 영상으로 본 운봉산

 

 

미시령 옛길을 따라 미시령 계곡을 올랐다. 

 

울산바위가 근사하게 보인다.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 돌산. 마그마의 유물.

 

 옛길이다. 길을 오가는 차량들이 격감하면서 사람들로 북적이던 휴게소도 문을 닫았다.

 

넓은 주차장은 그대로 이고, 간이 화장실이 운영되고 있었다. 사진 속의 뚜껑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된다. 두 가지를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에서 구멍을 사용하지 않을 때 막아두면 시각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상태가 유지될 것 같다.^^

 

날이 좋지 않아 동해안 쪽의 조망이 그리 밝지 않다. 같은 화강암이지만 풍화와 침식을 견디고 남은 곳에는 울산바위를 이루고 있고, 풍화가 심하게 진행된 곳은 평지로 남았다. 속초에서 농경지로 이용되었던 학사평(鶴沙坪)이 그곳이다. 하지만 기반암이 드러나고 토양층이 얇기 때문에 비옥도는 떨어지는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딱딱한 벌판이라고 '딱사벌'이라 불렸는데, 학이 내려앉은 곳이라는 의미의 학사평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답사 일행의 일부. 강의 준비중.

태백산맥을 넘는 고개들은 동서 방향의 단층선으로 따라 형성된 계곡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말씀.

 

영랑호변의 리조트를 들렀다. 전망대가 있는 고층에 올라가 주변을 조망하고 영랑호변의 암괴를 관찰하였다. 

다음에 청초호변의 엑스포 타워를 올랐다. 오랬동안 관리가 안되었던지 자물쇠를 여는 열쇠에 문제가 있어 조금 황당하였다.

그리고 유명한 물회집에서 점심 식사. 나는 섭해장국을 주문하였다.

 

 

영랑호. 비가 제대로 내리기 시작하여 답사를 불편하게 한다. 

 

비에 젖은 영랑호...

석호: 사주와 같은 작은 장애물에 의해 바다로부터 분리된 연안에 따라 나타나는 얕은 호수를 말한다. 해안에서 연안류의 작용으로 사취(砂嘴), 사주(沙柱) 등에 의하여 바다와는 전연 분리되어 형성된 호수이다. 이는 하천의 유입으로 점차 염분이 적어지고, 주변의 식물에 의하여 소택지(沼澤地)화 되어 중국에는 육지화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천연호의 대부분은 이에 속하고, 강릉 이북의 해안에 많이 발달되어 있다. 경포, 청초호, 향호, 매호, 화진포, 소동정호, 광포 등은 모두 이에 속한다. 석호는 수심이 얕고 바다와는 모래로 격리된 데 불과하므로, 지하를 통해서 해수가 섞여드는 일이 많아 염분이 높다. 바다와 수로로 연결된 것도 있으며, 담수호에 비해서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부영양호가 많다.(출처: 네이버)

 

범바위. 화강함 풍화 지형이다. 토르라고 한다.

토르는 참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북유럽 신화에도 나오고 단위이기도 하고, 러시아의 미사일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는 지형 용어이다.

토르는 차별적인 풍화작용을 받은 결과 그 지역의 기반암과 연결되어 지표에 노출되어 형성된 독립성이 강한 암괴 미지형을 말한다. 형태적으로는 똑바로 서 있는 석탑이라는 의미의 어원을 갖고 있는데, 이는 본래 영국의 다트무어(Dartmoor) 지방의 화강암괴를 지칭하는 지방어(켈트어)였다가 현재는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토르 [tor] (자연지리학사전, 2006. 5. 25., 한울아카데미)
 
토르의 형성과정을 이야기할 때 흔히 사용되는 그림이다. 화강암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렇게 저렇게 속병이 들어서 망가지고 남은 흔적이 토르이다.

 

 

 

영랑정이라는 정자가 예쁘게 만들어져 있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문화해설을 자원봉사로 해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바로 인접한 청초호로 간다.

 

속초 엑스포 타워이다. 예쁜 엉덩이를 갖고 있다.

 

 

속초 관광안내지도.

 

엑스포 타워에 오르면 청초호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속초항이 예전에는 석호인 청초호 안쪽에 있었는데, 석호 밖으로 이전한 것이라고 한다. 퇴적이 진행되어 석호의 크기가 작아지고 얕아졌기 때문에 항구로 기능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리라.

 

 

속초의 아주 유명한 물회집이다. 내리는 비를 참으며 기다리다가 겨우 입장을 하였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다른 손님들에 방행된다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자꾸 그랬다. 밖에 비가 오는데? 이래서 손님들이 몰리는 식당에 대한 기억은 자꾸 안좋은 쪽으로 남게 된다. 여튼...

찾는 손님들이 많으니 일일이 식탁을 치우고 닦고 하는 시간이 아까우리라. 그래서 식탁 위에 비닐을 미리 잔뜩 덮어두고 한번에 한장씩 벗겨내며 사용하는 것 같았다. 오후였는데 이 정도가 남았으면 오전엔 얼마나 깔아두는 것인지...

 

물회다. 이 식당의 대표 메뉴.

난 섭해장국에 대한 기억이 오래전부터 남아 있어 그것을 주문했다. 속이 안좋다고 죽을 시킨 일행분도 계셨다.

 

점심 식사후에는 양양 인구리 해안의 타포니 지형과 인근의 휴휴암 해안에서 화강암 풍화 지형을 답사하였다.

 

 

인구리. 염풍화 작용에 의해 형성된 타포니를 바다를 향한 바위 표면에서 볼 수 있다.

 

죽도 안내문. 

 

어촌계가 변화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타포니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화강암처럼 광물입자가 큰 광물에서 잘 발달하는 것이 타포니라고 한다. 광물입자와 입자 사이의 물질이 풍화되면 커다란 광물입자가 분리되니 이처럼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모양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Tafoni (singular: tafone) are small cave-like features found in granular rock such as sandstone, granite, and sandy-limestone with rounded entrances and smooth concave walls, often connected, adjacent, and/or networked. They often occur in groups that can riddle a hillside, cliff, or other rock formation. They can be found in all climate types, but are most abundant in intertidal areas and semi-arid and arid deserts. Explanations of their formation include salt weathering, differential cementation, structural variation in permeability, wetting-drying, and freezing-thawing cycles, variability in lithology, case hardening and core softening, and/or micro-climate changes and variation (that is, moisture availability). Tafoni have also been called fretting, stonelace, stone lattice, honeycomb weathering, and alveolar weathering. Tafoni features have been found across the Earth, with dramatic forms found in the Jodhpur-Ajmer section of India's Thar Desert, Petra, Jordan, Coastal California and Australia, and even in the Arctic regions, and Antarctica (Paradise 2011). The etymology of the word "tafoni" is unclear. Tafoni may come from the Greek word taphos, "tomb", or it may stem from a Corsican or Sicilian word for "holes", taffoni, or from tafonare meaning "to perforate". The earliest known publication of the term “tafoni” was in 1882. Conventionally, the word 'tafoni' is the plural form of 'tafone'.(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afoni)

 

 

주말이라 그런지 휴휴암을 찾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휴휴암에서의 답사 이동 코스.

 

우리 일행은 법당이 있는 곳은 그냥 주욱 지나치고 바닷가로 나간다.

해안에는 거대한 토르와 너럭바위, 화강암 돔, 나마(gnamma) 등의 다양한 화강암 지형을 관찰할 수 있다.

 

토지를 둘러싼 이권관계가 복잡한 것 같다. 지금은 해결되었으려나....?

 

방생산업이라고 밖에는....

 

 

 

 

 

화강암으로 구성된 넓은 너럭 바위가 있고, 그 위에는 단층선 및 풍화의 흔적들이 보인다.

 

나마(gnamma)는 화학적 풍화작용에 의해 기반암의 표면에 형성된 접시 모양의 풍화혈(와지)이다. 화강암의 기반암 표면에 가장 잘 형성되며, 주로 벽면이나 사면상에 형성되는 타포니와 구별된다.

 

화강암 단열

 

바위 표면에 밭고랑 형태의 홈이 보인다. 그루브(groove)라고 한다. 화강암의 지중 풍화 과정에서 형성되는 미지형이다.

 

발가락 바위? ㅎㅎㅎ

 

방생 산업의 결과일까? 연화법당이라 불리는 너럭 바위 부근에 물고기가 가득하다.

 

동해안을 따라 평지가 이어진다. 평지에서는 높은 곳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찾은 건물. 안에서는 무슨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관계자가 아니니 들어가지 않고 건물 외벽의 계단을 따라 오르고 올랐다. 그리고 이쪽 저쪽을 조망하였다.

 

 

석호인 향호 변에 위치한 강릉시청소년해양수련원. 

 

 

정동진이다. 강릉에 오면 정동진을 들러볼지어다. 이날은 시간이 늦어 후다닥 지나갔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안단구.

 

 

다들 둥근 자갈 찾기를 하고 있다.

 

 

인근에 건물 공사를 위해 땅을 파헤친 노두가 있었다. 페이스북에 좀 아는체 했다가 많이 아는 사람한테 쪽 당한 기억이 아직도 난다(ㅠ.ㅠ).

 

날이 저물었다. 비는 온다. 오늘 밤을 지낼 숙소가 문제다. 결국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깃발은 꽂았지만, 많이 방황하였다. 처음 예상했던 곳에는 지낼만한 곳이 없어서, 삼척 시내를 들어갔더니 일행중에 아주 어린 멤버도 있는데 보여주기 거시기한 상태라서 기피 대상이 되었다. 대충 시내에서 식사를 하면서 고민하다가 시내에서 여관업을 하시는 분의 소개를 받아 괜찮다는 펜션을 찾아갔다. 해변의 산봉우리 부근에 있다. 겨우 찾았다.

 

 

 

건물을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깔끔하고 좋았다. 여러 명이 대충 씻고 이리저리 흩어졌다. 흩어졌나?

모여서 떠든 것 같기도 하다. 어두운 밤에 비탈길을 내려가 술과 안주거리를 마련해서 올라왔다. 숙소 가격은 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9월 6일의 이동 경로이다. 먼저 아침 식사를 해변의 식당에서 하고, 성남동에 발달한 돌리네群을 답사하였다. 곡류천이 절단된 곳에서 시내를 조망하고 동굴박물관을 들렸다. 그리고 추암해변.

 

삼척 시내 부분 확대.
 

 

아침에 깨어 창밖을 보니 눈에 들어온 풍경. 비가 밤새 내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병안에 고인 물은 얼마되지 않았다. 이것이 병목현상일까? 

 

지난 밤에 들어오면서는 안보여서 몰랐는데 이 펜션은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항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멘트 공장과 선착장도 보인다. 그렇다. 삼척은 시멘트 공업 발달 지역이라고 학교에서 가르친다. 사진 속의 공장은 동양시멘트 삼척공장이다.

시멘트의 원료는 석회석이고, 삼척에 우리는 석회석 풍화 지형을 보러 온 것이었다. 

 

해변에 내려가 찾은 식당. 아침 식사 메뉴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옴마니반메움 음악을 들었던 것은 기억난다. 

 

성남동 일대에 펼쳐져 있는 돌리네群 답사 경로이다. 걸어다닐 때는 잘 보이지 않던 돌리네들이 하늘에서 본 영상에는 잘 구별된다.

 

돌리네. 노출된 석회암이 빗물에 서서히 녹으면서 형성된 낮은 저지대가 돌리네이다. 밭농사로 이용된다.

 

 

 

삼척고등학교 이전 공사 현장이라고 들은 것으로 기억한다.

 

동굴탐험관과 동굴박물관.

 

석회암의 풍화 지형인 라피에.

 

페인트 흘러내리는 것 같은 모양인데, 저것이 동굴박물관이란다.ㅎㅎㅎㅎㅎㅎㅎㅎ

 

석회암 풍화 지형 및 삼척 시내를 흐르는 오십천 주변 지형 변화에 대한 강의 진행중.

 

일제 강점기에 제작된 지형도의 삼척 도면 중 일부이다. 오늘날 오십천의 유로가 변경되었다. 지도에 화살표한 곳으로 유로가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동그라미가 있는 쪽의 구하도는 매립되어 신시가지 조성에 이용되었다.

 

 

다음 코스는 추암이다.

 

 

해변이다. 날씨 봐라... 바람이 거세니 파도가 높다.

 

에? 왠?

 

기반암이 석회암인 해변이다. 절리가 무진장 발달해 있다. 

 

파도는 쎄다. 그 결과 부서질 놈은 부서지고 남을 놈은 남아 시스택을 남겨 놓았다. 시스택이 무엇?

 

 

이거다. 이것이 추암. 촛대바위.

 

김홍도 아저씨가 이곳에서 감동 먹었나보다. 작품을 남겼다. 

金剛四郡帖 - 凌波臺라는 작품이다. 전망대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김홍도가 본 촛대바위이다. 오늘날보다 남아 있는 바위가 더 많다. 그 사이에 파랑에 의해 침식되어 사라져 버린 것이겠지. 오스트레일리아에도 나름 이름있는 시스택이 있다. "12사도 바위"라고. 원래는 "엄마 돼지와 새끼 돼지들"이라고 이름지어졌던 것이란다. 그런데 좀 있어 보이기 위해 12사도 바위라고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그 12개의 바위들도 지금은 8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하나둘 파랑에 부셔져 사라진 것이다. 이런 바위들을 시스택이라 한다. 

 

남겨보자.

 

파도 봐라. 시스택 다 죽겠다. 

 

이것은 사빈. 모래 해변이다. 흔히 해수욕장으로 이용되는 공간이다. 여름에.....

 

 

해변에 이렇게 대피 방향 표지판이 있다. 평소에 미리미리 확인해두어야.

 

화장실에서 재밌는 장면을 목격했다. 석회질이 많은 모래가 많이 날려왔기 때문일까? 석회동굴 내부에서 볼 수 있는 종유석의 형성 장면이다. 천정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종유석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그 물방울이 떨어지는 화장실 바닥에서는 석순이 자라고 있다.^^

 

다음 답사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해산하였다. 달렸다. 서울로.


 
 

 

대충 이 정도로 답사가 진행되었던 것 같다. 1년이 지나서 기록을 하려니 막막하다.

다음부터는 답사 정리를 미루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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