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륙에서 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의 서쪽 끝에 있는 나라인 포르투갈의 서쪽 끄트머리를 가보는 날이다.
그리고 수도인 리스본 시내 투어를 하는 날이다.
이동 경로는 다음과 같다.
호텔 - 로카 곶 - 신트라 - 동해반점 = 에두아르도7세 공원 - 제로니모스 수도원 - 발견의 기념비, 벨렘탑 - 로시오 광장 -로메르시우 광장 - 호텔
2012년 1월 13일. 리스본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해변 호텔의 주변을 산책하였다. 해변 호텔이라 바닷가에 위치한다. 거꾸론가...
이른 아침부터 방파제 끝에 자리 잡는 조사.
새들처럼 날아가는 아가씨.
대서양을 배경으로 사진하나 남긴다. 찰칵!
아침 식사하러 호텔로 돌아간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발했을거다.
A38 도로를 타고 가다가 A2고속 도로로 갈아타 4월25일 다리를 통해 테주 강을 건넜을 것이다. 그리고 A5 고속 도로를 타고 서쪽 끝으로 달렸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도착했다. Cabo da Roca. 돌 곶이라는 뜻이다.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념비에 붙어 있는 표지판. 북위 38도47분, 동경 9도30분, 해발 140미터에 위치한다.
표지판의 윗쪽에 "이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시인 까몽이스의 글.
공원 안내판. 포르투갈 어만으로 작성되어 있다. 세가지, 네 가지 언어로 안내판을 만들어대는 우리나라와 대조된다.
카보 다 로카 등대. 앞쪽에 로터리 클럽 조형물.
이 사진을 만들고 있는 사진.아는 사람들이 많이 포함된 단체라 이런 사진들을 서로 많이 만들어주어 좋다!!
대서양에 바로 면한 해변이다. 대양의 거센 파도를 그대로 맞이하기 때문에 급경사의 암석 해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파랑의 침식 작용을 받는 암괴. 해식애, 시스택.
어부. 달려~
등대를 배경으로 한 컷.
대서양을 배경으로 한 컷.
그림 하나 만들어드리고...
기념탑을 배경으로 한 컷.
단체사진도 한 컷.
관광안내소에서 방문기념증을 만들어준다. 참 친절하다. 그런데 유료다. 5유로 짜리와 10유로 짜리가 있다. 유로로 유료이기 때문에 그냥 왔다.
절벽 위의 등대를 묘사한 아줄레주. 관광안내소에 있다.
azulejo라는 말은 '작고 아름다운 돌'이라는 뜻의 아랍어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알함브라 궁전을 방문한 마누엘1세는 이슬람 문화의 타일 장식에 매료되어 귀국 후에 왕궁에 타일 장식을 하기 시작했다. 마누엘1세의 지시로 처음 만들어진 포르투갈 최초의 아줄레주는 신트라 왕궁에 여전히 남아 있고, 시대를 더하면서 포르투갈 만의 독특한 아줄레주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신트라는 리스보아 주의 유명한 관광 도시이다. 예전부터 왕족과 귀족들의 휴양지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고 한다. 그곳에 왔다.
두 개의 거대한 원뿔 모양의 탑으로 유명한 신트라 궁전이다. 커다란 굴뚝이 탑처럼 보인다. 궁전 내부 관람은 다음에 하기로... 들어가 질 않았다.ㅠ.ㅠ
신트라 궁전은 14세기부터 공화제가 선포된 1910년까지 포르투갈 왕실의 여름 별장으로 쓰였던 곳이다.
신트라 시내의 건물들 하나 하나가 모두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신트라 궁전에서 바라 본 시내 풍경.
우리나라처럼 번쩍번쩍하는 간판을 내걸질 않아 무슨 건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호텔로 이용되는 곳이 아닐까...
궁전 앞에서 시내 쪽으로 한 컷.
신트라 시내를 돌아보는 관광 열차.
신트라 골목 투어도 진행했다. 멀리 꼬깔 두개가 보인다. 신트라 궁전.
골목길 안쪽의 건물 벽에 장식된 아줄레주. 신트라 궁전과 동산 위의 Castel dos Mouros를 묘사한 작품.
페나 성을 배경으로 농촌의 일상을 묘사한 작품.
페나성? 그러고 보니 신트라 여행의 하일라이트라고 하는 페나성을 들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왜? 왜?
메모가 남아 있지 않아 이유를 모르겠다. 다음에 다시 가보는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신트라에 대한 아쉬움을 흘리면서 신트라를 떠난다.
리스본 시내로 들어왔다. 눈에 익은 간판이 보인다. 마음에 점을 하나 찍고 나왔다.
동해반점 앞을 지나는 예쁜 학생들. 근처에 학교가 있더라.
리스본 시내 투어는 에두아르도7세 공원에서부터 시작했다.
4월25일 기념 조형물이 함께 있다.
1974년 4월 25일의 무혈 쿠데타를 기념하는 조형물이다. 장기 집권을 이어가던 독재자 살라자르에 반대하는 좌파 청년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장교들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카네이션 혁명이라고도 불린다.
4월25일 혁명을 기념하며 한 컷. 이 양반이 4월19일에 태어났다는데.....
에두아르도7세 공원은 1902년 영국의 에드워드7세가 리스본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조성한 것이다.
멀리 보이는 동상은 포르투갈의 두 영웅 중 하나인 Pombal 후작 동상이다. 반대편에서 공원과 함께 바라보면 그림이 참 좋다고 하는데, 그의 등만 바라보다가 왔다.
에두아르도7세 공원을 기념하는 분들.
갑시다~
에스파냐, 모로코, 포르투갈 일정 전체를 총괄해주고 계신 현지 여행사 사장님.
과거 해양제국 포르투갈의 영화를 보려거든 제로니모스 수도원을 가보라 하라~
포르투갈의 전성기인 1502년에 마누엘1세가 짓기 시작해 170여 년에 걸쳐 지어진 건물이다. 인도 항로를 개척한 마누엘1세는 해양제국 포르투갈의 위용을 드러낼 크고 아름다운 수도원을 원했다. 신세계와의 항해로 이룬 부를 바탕으로 하여 바다와 관련된 상징물을 건물에 수도 없이 조각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이를 마누엘 양식이라고 한다.
수도원의 입구에서부터 포르투갈의 과거의 영화에 감탄하고 있는 관람객들.
천정과 기둥에 밧줄을 형상화한 꼬임 무늬가 보인다. 이것이 마누엘 양식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수도원이므로 당연하게 기독교와 관련된 상징으로 채워져 있다.
중앙 제단. 양 옆의 멋진 스테인드 글라스.
포르투갈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의 관이 안치되어 있다. 포르투갈의 대양 시대를 열었던 대표적인 인물인 바스코 다가마의 관 앞에서 국뽕에 취하는 포르투갈의 장래 희망들...
자리가 난 틈을 이용하여 바스코 다가마와 한 컷.
입구에서 얌전하게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 어린 학생들. 줄을 이탈하지 않고 그대로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 해외 여행하면서 '줄선 상태'의 어린이들을 본 적이 자주 있는데, '줄을 그대로 선 상태'로 계속 있는 모습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어떤 나라와 비교하는 마음이 생겨서 미안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 앞길의 이름이 '제국 광장'이다. 그 가운데로 지나는 전차. 버스 전용 차로도 운행되고 있었다.
바로 앞쪽으로 테주 강이 흐른다. 강변에 발견의 기념비가 보인다.
하류 쪽에 벨렘 탑이 위치한다.
벨렘 탑은 마누엘1세 때인 1515년에 리스본 항구를 지킼는 요새로 만들어졌다. 30미터 높이에 4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요새로 만들어졌지만, 리스본 항을 드나드는 배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세관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1600년대 이후에는 정치범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포르투갈의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던 마누엘1세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제로니모스 수도원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해양 국가로 성장하는 포르투갈의 기초를 쌓는데 공헌한 엔히크 왕자 서거 500주년을 기념하여 1960년에 세우어진 범선 모양의 '발견의 기념비'.
섬세하게 조각된 33명의 위인 부조상을 포함하고 있다. 맨 앞에 엔히크 왕자를 선두로 해양 활동을 수행하는데 기여한 기사, 천문학자, 선원, 선교사 등이 줄을 잇는다. 마젤란, 바스코 다가마, 콜럼버스 등도 포함되어 있다.
기념비 앞에는 바닥에 세계 지도가 새겨져 있다.
예술인들도 있다.
멀리 4월25일 다리가 보인다. 기념으로 사진하나 남기고 떠난다.
테주 강 하구에 석양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로시우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중세 시대부터 이용된 리스본의 가장 오래된 광장 중의 하나이다. 브라질의 초대 황제 페드로1세이자 포르투갈의 페드로4세인기도 한 황제의 이름을 따서 페드로4세 공원이 원래의 이름이지만 보통은 로시우 광장이라고 부른다.
광장 한가운데 박힌 말뚝 위에 서 있는 페드로4세.
청동 조각품으로 장식된 분수대.
로시우 광장에서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이어지는 아우구스타 거리.
아우구스타 거리는 리스본의 중심가 역할을 하는 보행자 거리이다. 노점상의 간이 차량에 번호판이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띤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등록제를 시행하면서 적절한 세금을 부과한다면 갈등이 조금 줄어들까??
유명한 명물,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 요금을 내고 위에 올라 리스본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건물들의 높이가 모두 같으니 이런 관광시설이 만들어진 것이다. 높이 32미터.
시계탑을 지나면 코메르시우 광장이 나온다.
테주 강변에 위치한 코메르시우 광장.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광장 중의 하나로 꼽힌단다.
원래 이곳에는 리베이라 궁전이 있었는데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파괴되었다. 근대 포르투갈의 기초를 마련한 Pombal 후작의 리스본 재건 정책에 따라 광장이 만들어졌다. 광장 복판에 그의 청동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
교외에 위치한 숙소에서 출발하여 세비야 시내 투어를 하고 포르투갈로 넘어갔다. 수도인 리스본까지.
Exe Gran Hotel Solucar라는 근사한 이름을 가진 호텔은 세비야 교외에 위치한다. 주변은 농촌이다.^^
주택단지.
세비야는 안달루시아주의 주도로 70만 명이 살고 있는 큰 도시이다. 오페라 '카르멘'과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무대로 알려진 도시이기도 하다. 현재 사용되는 세비야라는 도시 이름은 에스파냐 표준 발음이며, 안달루시아식 발음으로는 세비자, 영어식으로는 세빌리아이다.
에스파냐 남부를 흐르는 과달키비르 강은 상류에 위치한 코르도바, 그라나다를 지나 세비야를 거쳐 대서양으로 흘러든다. 세비야는 과달키비르 강의 교통 조건을 이용하여 크게 성장한 도시이다.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세비야 항에서 출항을 것을 계기로 신세계와의 교역 독점권을 확보하고 카스티야 왕국의 번영을 뒷받침하는 도시가 되었다. 이때부터 세비야는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공존하면서 독특한 문화 풍토를 만들어냈다.
안달루시아 주 최대의 공업 도시이며 관광지인 세비야를 즐겨보자.
과달키비르 강의 유로가 변경된 것이 아닌가 싶다. 구유로 부분을 알폰소8세 운하로 유지하는 것으로 보였다.
알폰소8세 운하를 따라 구도심, 세비야의 역사가 보존되어 있다.
황금의 탑에서 시작한다. 길 건너에 세비야의 문화 중심지 군수공장 극장이 있다.^^ Teatro de la Maestranza.
황금의 탑. Torre del Oro.
13세기 초에 과달키비르 강을 통행하는 선박을 검문하기 위해 지은 시설. 맞은 편에 있는 탑과 사이에 쇠사슬을 걸어 통행을 통제했다고 한다. 현재는 해양박물관으로 사용중이다.
이곳에 왔었다는 흔적을 하나 남겨보자.
옆에 세비야 시내 투어 버스가 주차 중이었다. 예쁘게 치장한 버스였다. 가로수가 오렌지 나무.
콜론 산책로를 따라 이동한다.
Cid Campeador 동상. 미국 조각가 Anna Huntigton이 1927년 세비야 시에 기증한 것. 세비야 대학교 옆에 있다.
왔다. 스페인 광장에. 광장을 둘러싼 건물 부분은 지방정부에서 관공서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이다. 스페인 광장. 한가인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달렸던 곳이고, 김태희가 예쁜 드레스를 입고 플라맹고를 추었던 곳이다. 또 뭐 없나?
스타워즈 2 클론의 습격의 촬영 뽀인트.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촬영 현장이기도 하다.
스페인 광장에 빠져든 일행.
벽면에 에스파냐의 도시들을 상징하는 그림을 타일로 만들어 장식한 벤치들이 있다.
가본 것 같은 곳, 바르셀로나.
모두 58개의 벤치가 있다.
음...이 아가씨는....
스페인 광장을 각자 즐겨보기~
멋지게도 만들어 놓았다. 그만큼의 경제력이 되었었다는 얘기겠지.
1929년에 열린 이베로-아메리카 박람회의 대회장으로 조성되었다. 마리아 루이사 공원 안에 위치한다. 광장 건물의 맞은 편쪽이 마리아 루이사 공원이다. 건축가 아니발 곤잘레스가 무데아르 양식에 1920년대에 유행한 아르 데코 양식을 가미하여 만들었다. 분수를 중심으로 한 광장과 건물이 위치한 사이에는 해자를 조성하여 놓았고 네 개의 다리를 통해서만 왕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스페인 광장은 분수를 중심으로 하여 반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왔던 흔적을 남겨본다.
승용마차를 타고 광장을 둘러보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날씨가 좋지 않은 평일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로 채워졌을 때 한번 더 가보아야겠다.
길 건너에서 바라본 스페인 광장.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 부분은 육군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산타 크루스 지구, 무리요 정원 방향으로 간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조형물. 무리요 정원 내에 위치한다.
Catalina de Rivera 화원. 저 안쪽에 알카사르 궁전이 있었다. 그런데 들르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무어-르네상스 풍의 상징적인 궁전이라고 하던데...
산타 크루즈 지구로 들어간다. 원래 유대인들이 거주했던 지역인데, 17세기 이후 세비야의 귀족들의 거주지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좁은 골목길을 포함하여 세비야의 옛 도시 모습이 잘 보전되어 있는 지역이다.
골목으로 들어가자.
작은 광장. 도냐 엘비라 광장. 상가들.
예쁜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장식되어 있다.
산타 크루즈 레스토랑.
골목 안쪽의 도냐 엘비라 레스토랑.
동맹 광장. Plaza de la Alianza. 오렌지 나무들.
광장 주변의 건물들.
열심히 카메라에 담아본다. DSLR 카메라, 똑딱이 카메라, DSLR 카메라, 똑딱이 카메라, DSLR 카메라, 스맛폰 순으로 사진 담는 도구가 바뀌고 있다. 이때는 올림푸스 똑딱이 카메라.
Patio de Banderas라는 궁전옆을 지난다.
손수레 미는 아저씨. 바퀴가 세개 달린 수레.
Plaza del Triunfo. 승리광장이다. 맞은편으로 세비야 대성당이 보인다.
'후세 사람들이 우리의 신앙심이 넘쳐 흐른다고 생각할 만큼의 거대한 성당을 세우자.'라고 1401년에 열린 성당참사회에서 결정했다. 모스크가 있던 자리를 밀어내고 대성당 건축을 시작하여 1519년에 완공되었다. 세로 116미터, 폭 76미터 규모인 세비야 대성당은 에스파냐에서 최대 규모이며, 세계적으로는 로마의 산 피에트로 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 다음의 크기란다. 폭이 넓은 특이한 형태는 원래 있던 모스크의 영향이라고 한다.
대성당에 딸린 종탑. 히랄다 탑. 성당에 부속된 98미터 높이의 종탑. 원래 있던 70미터 높이의 모스크 첨탑 위에 종루를 얹은 것이다. 그래서 아라비아풍과 고딕 양식이 뒤섞여 있다. 꼭데기의 청동상은 바람이 불 때 회전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히랄다가 '바람개비'라는 뜻.
대성당 입구. 종탑 위의 칼 든 천사상과 같은 조형물.
성당 내부.
성령의 강림을 나타내는 스테인드 글라스.
성당 내부 장식을 하나 하나 보다보면 얼이 빠져 나가는 것 같다.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콜럼버스의 관. 당시 에스파냐를 구성하고 있던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의 국왕들이 관을 메고 있다.
이사벨 여왕 사후 모든 지위를 박탈당한 콜럼버스는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쿠바에 묘를 썼고, 나중에 이곳으로 옮겨 왔는데, 그의 유언을 존중하여 네 왕이 관을 들고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고 한다. 땅을 밟은 것도, 아니고 묻힌 것이 아니니까.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을 지지했던 두 왕은 앞쪽에서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고, 반대했던 두 왕은 뒷쪽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 때깔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 남아 있는 사진도 하나 뿐이고... 다시...
가로 20미터, 높이 30미터 규모의 황금 제단. 예수의 생애를 44개의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여기 사용된 금이 20톤이란다. 황금 20톤! GOLD!
부분 확대.
왕실 예배당.
높이 97미터의 히랄다 탑은 세비야의 상징이다. 70미터 높이에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가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세비야 시내의 모습.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대성당. 거대하다.
대성당 안쪽의 정원. 오렌지가 잔뜩 매달려 있다. 아들은 여전히 뒷금치 들기 신공을 발휘하고 있고.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달려들어서 자기들 찍어달라고 하던 예쁜이들.
대성당을 나와 Contitucion 거리를 걸어간다. 전차가 다니는 길이다.
황금의 탑 앞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탑승하여 세비야를 떠난다. 에스파냐를 떠난다.
에스파냐 출국 두번째. 그런데 그냥 소리소문없이 떠났다. 국경? 그런거 모르고 지나간다. A2 고속도로를 달린다.
유럽 대륙에서 아프리카 대륙으로 건너가는 날이다. 피카소 아저씨네 집에 들렀다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넜다.
해가 늦게 뜨는 것인지 일찍 일어난 것인지. 창밖이 어둠이 묻혀 있다. 호텔 앞을 흐르는 Genil 하천. 다리 이름은 지도에 안나온다. 다리를 지나는 도로는 산 안톤 로.
날이 밝은 후의 풍경. 쌀쌀해 보인다.
시에라 네바다.
어제는 알함브라 궁전을 들어가 보았고, 오늘은 밖에서 조망하는 날이다.
어제 알함브라 궁전의 탑에서 건너 보았던 니콜라스 전망대를 찾았다.
골목길이 아주 좁기 때문에 버스가 들어가질 못한다. 걸어서 찾아간다.
알바이신 언덕의 골목길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딱 보니 아랍풍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니콜라스 광장 주변의 식당들. 전망대 식당 Restaurante del Mirador.
전망대에 섰다.
알함브라 궁전이 잘 보인다.ㅠ.ㅠ
711년 지프롤터를 건너온 무어인들이 지은 성채로서 1238년 무렵부터 건축을 시작하여 14세기 후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알함브라라는 이름은 횃불을 비추면 붉게 빛나는 성벽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인도의 아그라성처럼 붉은 성이다. 그런데 이렇게 햇빛이 역광으로 달려드니 상당히 아쉽다. 이곳에서 하루를 통으로 지내면서 알함브라 궁전이 변하는 빛을 구경하고 싶어지는 날이었다.
보이다가 보이지 않다가 보였다가 하는 아가씨... 하여간 일단 멋진 그림이 되었다.^^
전망대 바로 옆에 있는 지하 물탱크. 굉장히 오래된 폼이 보인다.
예쁘게 치장된 집들 사이의 좁은 골목길.
골목이 좁아 차량이 다니기 어려우니 오토바이가 많다.
다시 달린다. 아들의 고개는 위태롭다.
창밖으로는 올리브 나무 재배지가 보인다.
창밖으로 Don Manuel Domingo 동상이 보인다. 말라가 시내로 진입한 것이다.
마르세드 광장 부근의 피카소 생가 박물관을 방문하고 광장에서 짧은 자유 시간을 보냈다.
바닷가 식당에서 중국식 점심을 만나고 Costa del Sol 태양의 해변을 즐길 수 있었다.
마르세드 광장 바로 부근에 있다.
에스파냐가 자랑하는 예술가 피카소의 생가가. 내부는 사진 촬영 불가. 오래되어 기억도 없다. 다시 가야 하나...
공원을 즐기는 비둘기님들.
공원에 피카소 동상이 있다.
광장 한복판에 있는 큼지막한 탑.
말라가 관광안내 공식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는데, 오벨리스크라고만 나오고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
가로등 마저 예술품으로 보인다. 광장의 야경이 예쁘다고 한다. 낮의 모습만 본 사람들은 밤의 모습을 즐기러 다시 한번 가야 하겠다.
광장 주변의 건물들도 예쁘고, 가게도 많다.
광장에서 어슬렁거리기.
식구들과 함께 어슬렁 거리기.
말라가 항의 수비를 담당했던 히스랄파로 성. 성의 이름은 '산 위의 등대'란 의미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14세기에 건축된 것이다. 보고 지나갔다. 입장료가 있어서 그냥 지나간 것은 아니다.
횡단보도. 이동네도 페인트 칠할 돈이 없나 참 저렴하게도 칠해 놓았다. 한 줄로 줄서서 건너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막 생긴다.
길가에 주차된 차가 너무나도 앙증맞다. 주머니에 들어가면 넣고 싶었다.
관광객과 함께 하는 승용 마차.
부려궁. 중국 음식으로 점심을 채웠다.
태양의 해변에 왔다. 하늘이 쨍하다.
해변에 있는 조형물. Malagueta. '말라가의 해변'이란 뜻인 줄 알았는데, 검색해보니 후추의 일종, 그것이 열리는 도금양과의 열대나무라고 결과가 나온다. 뭐지???
말라게따를 즐기는 젊은이들.
숙면을 즐기는 젊은이.
말라가를 출발하여 지브롤터를 향해 달린다.
지브롤터가 멀리 보인다.
풍차 단지. 풍력발전단지.
지브롤터 해협을 지브롤터에서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보다 서쪽에 위치한 타리파에서 수속을 하고 건너간다.
출국 수속을 받아야 한다. 당시 Tarifa에서 여권에 받은 출국 도장. 1월 5일의 입국 도장 옆에 찍어주더라.
여권에 찍어주는 출입국 도장에는 교통편도 표시된다. 타리파 출국 도장에는 배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선편이었다는 의미. 공항은 비행기 그림, 육로의 경우에는 자동차가 그려져 있다. 100%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같은 페이지의 2018년 보츠와나 입국 도장에는 그림이 없다. 이런...
버스도 통째로 출국 수속을 받는다.
Algeciras Jet 보트에 버스 따로 사람 따로 탑승한다.
선실 내의 카페.
지브롤터 해협을 건넜다. 아프리카 대륙으로 넘어왔다. 모로코에 입국했다. 탕헤르에 도착했다.
GPS 로그 기록을 보면 Restaurante la Algazara에서 식사한 것 같다. 식당 사진이 없다.ㅠ.ㅠ 이땐 왜 그랬을까?
돈키호테의 나라라서 그런 지 곳곳에서 풍차를 볼 수 있다.^^
그라나다에 도착하여 바로 알함브라 궁전을 향했다.
오후 4시 조금 못미쳐서 알함브라 궁전에 도착했다. 당시 챙겼던 지도를 스캔하여 하나의 이미지로 합성하였다. 이렇게.
대충 지도의 화살표 표시를 따라 이동하였다. 알카사바까지 들어갔었다.
많은 일행이 밀집대형으로 다닐 수가 없고 다른 여행들도 많아 안내가 어려웠다. 그래서 수신기를 받아 귀에 장착하고 시작한다. 가이드는 마이크를 사용하고...
카를로스5세 궁전부터 눈에 든다. 확든다.
1526년에 알함브라 궁전으로 신혼여행을 왔던 에스파냐 국왕 카를로스5세는 이곳에 새로운 궁전을 지을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게 된다. 건축을 즐기던 왕이었다고...
미래에 에스파냐의 수도가 될 그라나다에 걸맞는 최신식 궁전을 원했던 그는 당시의 최신식 건축 양식인 르네상스 양식을 채택하였지만, 이게 옥의 티가 되었단다.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형태의 건물이었기에.^^
자금난으로 건축에도 애를 먹었다. 18세기에 들어서야 지붕이 올라갔다고 한다.
진실의 문 앞에서 입장 대기. 너무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내부에서 뒤섞이지 않도록 적절하게 입장객수를 시간대별로 조절하고 있었다. 돈 냈다고 무조건 들여보내주는 것 아니다.
알함브라 궁전의 핵심 뽀인트. 나스르 궁의 정원. 아라야네스 중정. 아라야네스는 도금양이라는 나무.
물이 조금씩 계속 흘러 습도를 유지해준다.
이슬람인들의 주거지역인 알바이신 지구가 건너편으로 보인다.
카를로스 5세 궁전.
Torre de Comares. 코마레스 탑. 사람들이 보인다. 올라가보자.
그라나다 시내가 좌악 내려다보인다. 가까이 보이는 것이 알함브라 궁전 호텔. 전망이 기가 막히 호텔이겠다.
Torres Bermejas. 역사적 명소라는데, 레스토랑으로 이용되고 있다. 전망 좋은 식당이라고 한다.
눈덮인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멀리 보인다.
휘날리는 국기들...
알바이신 언덕 위에 위치한 니콜라스 광장.
니콜라스 전망대에 많은 사람들이 이쪽을 향하고 있다. 알함브라 궁전의 모습을 조망하는 최적 뽀인트.
파르탈 정원.
알함브라 궁전 바로 옆에 위치한 헤네랄리페 궁전.
이 분수로 너무나도 유명한 곳. 여기가 바로 알함브라 궁전!!
석양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헤네랄리페를 나선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기타 선율이 흐르는 듯........
숙소에 들었다. 산 안톤 호텔. 창밖 야경.
늦은 저녁을 먹자. 많이 늦은 시간이었지만 이제 슬슬 익숙해는 것 같다.
뷔페식.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플라맹고 공연을 감상하러 나선다. 산 크리스토발 전망대 주변에 공연장이 있다.
산크리스토발 전망대에서 보이는 알함브라 궁전의 야경. 깜깜하다.
알바이신 플라맹고 공연장.
무대 주변 가까이에 자리를 잡는다. 관람객이 많다. 단체별로 자리가 미리 배정되어 있었다.
공연은 시작되었다.
플라맹고의 연원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에스파냐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생겨났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여러 문화의 흔적이 담겨 있는데, 플라맹고 특유의 구호인 '올레'는 아랍어 '알라'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플라맹고의 진수는 '칸테'라 불리는 노래에 있다고 한다. 여기에 '바이레'라 불리는 춤과 기타가 더해져 삼위일체로 어울리게 된 것이 플라맹고라고 한다. 원래 플라맹고는 손박자로 진행했는데, 19세기부터 안달루시아에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기타가 연주 악기로 도입되었으며, 현을 하나로 합쳐 켜는 라스게아도는 플라맹고의 독특한 주법이라고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북서쪽으로 약 53km, 해발 1,000m가 넘는 산지 사이의 골짜기에 위치한 몬세라트 수도원을 먼저 찾았다.
지형도를 구해보았다. 등고선 사이의 간격이 좁다. 그러면 경사는? 매우 급하다! 멀리서 보이는 사면의 경사가 너무 급하기 때문에 차량으로는 접근할 수 없다. 산지 반대편으로 돌아서 올라가야 한다. 아래쪽 마을에서 바로 올라가는 방법은 철도가 있다. 철로가 기어 모양으로 되어 있는 산악용 철도이다.
전원 풍경이 한가롭게 펼쳐진 지역에 우뚝 솟은 산지가 톱니 모양으로 생겨서 이러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
수도원 모식도이다.
이곳은 본래 십자군 전쟁 당시 아랍인들을 피해온 위프레도 백작의 은신처였다고 한다. 이후 1023년에 그의 증손자 리폴 신부가 수도원으로 변모시켰다. 지금의 건물들은 1811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19~20세기에 걸쳐 재건된 것이다.
그곳에 도착하였다.
수도원 건물들도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아랫 마을에서 바로 올라오는 전철.
철로 사이에 기어 이빨이 보인다. 경사가 급한 곳에서 이용되는 산악용 철도이다.
이런 급경사의 절벽에다가 이런 건물을 지을 생각을 했다니....
먼저 전망대에 올라가 주변 조망을 시도한다. 전망대를 왕복하는 케이블카.
티켓. 2012년 1월 7일. 요금이 8유로였다.
톱니같은 산등성이의 암괴들.
암벽 표면 이곳 저곳에서 풍화되는 타포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도???
전망대 아래로 수도원과 주변의 저지대가 보인다. Mirador라고는 하지만 어떤 시설도 없다. 그냥 높은 봉우리가 전망대이다. 친환경 전망대.^^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수도원 건물 안에도 들어가본다. 디자인과 조각을 담당했던 장인의 노력에 경의를~
몬세라트 수도원은 장소의 특이함에 더해 La Mereneta 마리아상도 유명하다. 루카 성인이 조각한 것을 베드로 성인이 이곳으로 가져왔다고 전해지는 검은 마리아 상이다. 8세기 경 무어인들의 박해를 피해 동굴 속에 감쳐져 있다가 880년 경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신도들이 바친 등불에 오랜 동안 그을려서 지금의 검은색이 되었다고 한다.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은 오른손에 지구 모양의 구슬을 들고 있는데, 이 구슬을 만지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설이 있어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계단을 통해 뒷쪽으로 올라가 소원을 빌 기획를 얻을 수 있다. 줄서야 한다.
불신자의 눈에는 금만 보인다.ㅠ.ㅠ
감탄만 하다가 몬세라트를 떠난다. 입구에서 점포를 여는 사람들...
달린다. 달리다 보니 오후 1시가 넘었다. 먹어야 한다.
타라고나 조금 못미쳐 위치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단촐하다.
Medas라는 상호 표시가 보인다.
타라고나 외곽을 지나는 고속도로변에 전망대가 있다.
악마의 다리(Pont del Diable). 로마 시대에 건설된 수도교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대단한 로마였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인 1세기부터 수돗물을 공급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악마의 다리란 이름이 붙었을까?
산풍, 곡풍이 심한 골짜기인 것 같다. 강한 돌풍이 발생하여 공사가 어려웠었던 모양. 악마 만이 이 다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십장이 중얼거렸고, 어쩌구...중얼중얼...
인공위성 영상으로 찾아보았다. 윗쪽의 산지에서 아랫쪽의 도시 지역으로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구조물. 정확하게 직선을 긋고 있다. 영상에서 보는 것처럼 저런 직선 상태가 로마 건축물에서 "그대로" 남아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즉, 손을 많이 댓다는 이야기. 하도 손을 많이 대서 문화재로 인정을 받고 있질 못하다고 한다. 걸어서 건너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그냥 사진만 찍고 왔다.(그때는 걸어건널 수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ㅜ.ㅠ)
가자...가자. 가자.
토르토사. 에브로 강 변의 주유소에 잠시 멈추었다.
에브로 강에 의해 운반된 물질들이 퇴적되어 삼각주 지형을 형성한 곳이다. 모두 저지대라 전체 지역을 조망할 수는 없다. 그냥 에브로 강물만 쳐다본다.
지도를 보자. 이렇다. 먼 길을 이동하는 관계로 시간이 나지 않아 요정도로 맛만 보고 빠져 나왔다.
우리 일행을 계속 미행하는 아가씨... 바르셀로나에서부터 계속 따라온다. 심지어 같은 버스를 타고 따라온다???
현지 여행사 직원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발렌시아로 달리는 버스안.
아드님은 닌텐도에 빠져드신다.
해가 떨어지려 한다.
발렌시아 도착.
발렌시아 대성당에서 시청광장까지 걸어서 이동하였다. 이후 숙소로 이동.
여왕의 광장에서 미켈레테 탑과 대성당이 눈에 든다.
종탑도시라 할 정도로 종탑이 많은 발렌시아(100여 개의 종탑이 있다.)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꼽히는 미켈레테 탑은 고딕 양식이다. 다른 르네상스 양식의 종탑들이 본관과 분리되어 독립된 공간으로 건축된 반면, 미켈레테 탑은 본관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종탑을 본관과 연결할 경우에는 보통 좌우 대칭으로 건축하는데, 한쪽에만 있다는 점도 또 특이하다.^^
미켈레테 탑을 올라가볼 수 있다. 물론 입장료가 있다. 시간이 늦었기에 올라가보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었다. 언제로???
발렌시아 대성당 입구 주변. 장터가 성업중이다.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13세기 후반에 건설을 시작하여 14세기 말에 완성된 성당이다. 17~8 세기에도 중수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고딕 양식 외에 바로크, 신고전 양식 등도 찾아볼 수 있으며,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3개의 출입문이 유명하다. 복잡하다.^^
토요일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성당 내부는 고요하다.
아...앞쪽에 몰려 계시는구나.
대성당 뒷쪽의 성모 광장. 투리아 분수에서 비둘기 똥을 뒤집어 쓴 커다란 아저씨가 목욕을 하고 있다.
천재 건축가라고 하는 가우디의 미완성 작품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그리고 가우디의 작품들로 채워진 구엘 공원을 방문하였다. 피카소 미술관을 방문하고 선창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 지중해에 왔다. 해물요리.
황영조를 만나러 몬주익을 올라간다. 국립미술관을 지나 스페인 광장의 아름다움에 빠져보았다.
역시 가우디의 작품인 카사밀라와 카사바트요를 감상하고 람블라스 거리를 콜럼버스 동상도 살펴보면서 걸었다. 선창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귀환하는 일정이었다.
지중해성 기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하루였다. 학교에서 가르치길 여름철은 고온 건조, 겨울철은 온난 습윤이라고 한다. 전혀 온난하지 않았다. 매우 쌀쌀했다. 역시 겨울은 어디가나 그냥 겨울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가족 성당의 인공위성 영상이다.
1882년에 이러한 획기적인 작품을 설계하였다니 천재 건축가가 맞는 것 같다. 오랜 기간이 지났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공정이 늦어져 아직도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 12개의 첨탑으로 설계되었으나 8개만 세워졌고, 나머지는 공사중이다.
성당 정면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 건너편이 포토 포인트이다.
뽀토 뽀인트에서 찰칵! 작은 연못의 물이라 상당히 더럽다. 그래서 반영 사진이 잘 안되었다.
공사중인 모습. 아니 공사중인 "상태"이다. 계속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끔씩 작업한다고 한다.
입구 앞에서 가우디 작품을 공부하며 조형미에 취해 있는 일행들.
입구. 대단하다. 더 할 말이 없다.^O^
성당 내부. 기둥이 나뭇가지 모양이다. 숲속을 표현하려 했을까? 지구인의 작품이 아니라 고도 문명의 우주인들이 만든 것만 같다.
천정.
우와~~
모형이다. 성당 지하에 이런 식으로 추를 매달아 놓았다고 설명한다. 무거운 돌덩어리 건축물의 정확한 무게 배분과 안정성 유지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런 아이디어를 약 150여 년 전에 내놓았다니... 대단하다.
출구. 한 사람씩 나가야 한다. 한번 나가면 들어오진 못한다.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한가지 방법은 다시 앞쪽으로 돌아가서 입장료를 다시 한번 내면 된다.
성당의 뒷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너무나도 독특한 디자인이다.
역시 가우디의 작품인 구엘 공원. 성가족 성당에서 걸어서 갈 수 있다.
도자기를 잘라 만든 의자로 채워진 공원은 사는 사람들과 지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휴식의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일부 공간은 영업용으로도 이용된다. 가우디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구엘 공원은 바르셀로나의 고지대에 위치한다. 시내 쪽에서 공원을 향해 올라오는 사람들, 주변의 주택들이 보인다.
공원에 앉아 바르셀로나 시내와 항구, 지중해까지 조망하는 것이 가능하다. 고층 건물들로 시계가 막히지 않아 시원하다.
공원의 모든 부분이 가우디의 작품이다. 보행자의 길.
공원의 입구에서부터 범상치 않다.
구엘 공원의 입구 쪽에서 바라본 모습. 원래 주택단지로 구성하려 했었는데 자금난으로 인해 공원을 만든 것이라고 한다.
예술~ 전통 악기 연주자.
피카소를 찾아가는 길.
피카소 박물관. 파카소의 가족들이 기증한 수많은 작품들을 모아 1963년에 개관한 박물관이다.
피카소와 면회 신청한 사람들이 많다. 줄서서 기다려야 한다.
피카소의 초기 작품들이 많아 시기별로 변화하는 그의 작품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한다.
벌써 오후 2시가 되었다. 배가 고팠을 것이다.
지중해변 선창의 식당을 찾았다. El Tinglado.
에스파냐를 대표하는 전통 요리 '파에야'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선창에 가득한 남의 배.
해변에서 젊음과 시간과 낭만과 운동을 즐기는 젊은이들.
이런 것을 berm이라 하였던가. 이런 경사진 둔턱을 범이라 한다더라.
키가 작지도 않으면서 키가 크고 싶었던가. 사진 찍을 때마다 뒷굼치를 들어올리는 녀석, 그리고 따릉이들. 2012년 바르셀로나는 이미 공유 자전거를 실행하고 있었다.
오후 세시 쯤, 몬주익 언덕에 올랐다. 황영조를 보았다. 손바닥, 태극기도 있다.
올림픽 경기장 내부도 볼 수 있었다.
구탱이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몬주익 언덕은 해발고도가 213m 밖에 안되지만 해변에 있어 바르셀로나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예술인도 많다.
몬주익 언덕 아래로 MNAC 국립미술관이 있다. 몬주익 마법의 분수, 그리고 스페인 광장이 내려다 보인다.
국립미술관을 뒤로 하고 한 컷!
스페인 광장에서 한 컷! 뒷쪽의 근사한 건물은 그냥 쇼핑몰이다.
스페인 광장 복판에 있는 분수대.
스페인에서 모로코, 포르투갈까지 일정을 함께 한 버스 기사 아저씨. 운전 참 잘 하더라. 일정 내내 한번도 운전과 관련하여 불만을 제기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최고!
또 가우디를 만나는 시간이 되었다.
카사 밀라. 묘한 건물이다. 밖에서 외관만 구경하고 지나간다.
가로수까지 심어져 있는 넓은 길.
가우디의 또다른 작품. 카사 바트요. 사람들이 줄서 있다. 입장료를 내고 내부 구경을 할 수 있다.
거리에서 휴식을 즐기는 아저씨들.
커다란 온도계 건물. 15도.
람블라스 거리.
음료수와 와이파이가 무료인 에로틱한 백화점.
동상처럼 움직이지 않다가 갑자기 지나는 사람들 놀래키는 짖궂은 아저씨. 총잡이 분장.
엄훠나~
8시가 되고 있다. 콜럼버스 기념동상도 어둠에 묻혀 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1493년에 이곳으로 돌아온 것을 기념하여 만든 탑이라고 한다. 1888년 세계박람회 때 카탈루냐와 미국의 교역 시작을 기념하여 가예타 부이가스가 디자인하고 라파엘 아르게가 세웠다. 콜럼버스가 서 있는 탑의 높이가 60m이다. 저 위에 서 있으려면 많이 어지럽겠다.
부둣가에 정박중인 범선을 배경으로 한 컷!
어두워지니까 람블라스 거리에 조명이 들어온다.
어두워지니까 카메라의 흔들림도 심해진다.ㅠ.ㅠ
똑딱이 카메라의 한계...
람블라스라는 이름은 아랍어에서 온 것으로 '모래밭'이라는 뜻을 갖는다고 한다. 구시가를 흐르던 시내가 말라버리면서 그러한 이름을 갖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부들부들 떨면서 콜럼버스를 다시 화면에 담아 보았다. 이번에는 달의 플레어 속으로 들어갔다.ㅠ.ㅠ
먹자. 먹자꾸나.
긴 하루였다.
55.5km를 이동하였으나 상당 부분을 걸었기에 피곤. 게다가 장거리 비행의 후유증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푹 잤을거다. 아마도.
사족...............................
바르셀로나 대부분 지역의 인공위성 영상이 이렇다. 드론으로 하늘에서 뭔가를 눈으로만 찾으려 한다면 짜증 제대로 날 것 같다.^^ 대단한 도시 계획이었고, 그것을 유지하는 이들도 대단하다. 고도 제한이 없는 건물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좁은 길, 좁은 골목길과 함께 걸으며 생활하는 사람들~
카날루냐 음악당의 내부 모습. 근사하다. 인터넷에서 내부 모습 사진만 감상하며 입맛을 다신다. 들어가볼 기회가 있을런지......
2012년 1월에도 가족과 함께 날아갔었다. 열다섯살 아들도. 어렸을 때 부지런히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었던 것 같다.
스페인-모로코-포르투갈이 세트로 묶인 여행상품이었다. 자녀를 포함한 가족과 함께 하는 팀이 여럿이었었다.
2012년에 다녀온 경험을 8년이나 지나서 정리한다.ㅎㅎ
최근에는 다양한 기록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 때는 기록을 하지 않아 추적,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왜 이리 미루었을꼬...
2012년 1월 5일. 인천국제공항 3층 5번 게이트 앞에서 미팅이었다. 먼 곳에 사는지라 새벽같이 달려와 공항에서 질은 동네 수준이나 가격은 호텔급의 식사로 아침을 해결하였다. 아들이 돌솥비빔밥 먹는 사진이 남아 있다.^^
에어 프랑스 AF267편, 10:15에 출발하여 11시간 50분을 날아갔다고 자료에 나와 있다.
GPS 로그 기록 남겨둔 것을 보니 시베리아를 쭈욱 횡단하여 파리로 날아갔다.
세 명이 세트로 가니 창가 자리 하나는 나온다. 옛날에는 창가에 붙어 뭘 한다고 창쪽 좌석을 좋아 했는데, 요즘은 복도 쪽 좌석이 최고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건조한 비행기 내부에서는 늘 물을 자주 많이 마신다. 이 날은 와인을 주문했던 것 같다. 프랑스 비행기라서 그랬을지도..
창밖을 보니 얼음 세상이다.시베리아 위를 날고 있었을 것이다.
비행 안내 자료를 보니 역시 사이베리아~
7시간 쯤 날았다. 우랄 산맥을 넘어가고 있다.
14:25. 프랑스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하여 환승하였다.
만들어진지 오래된 공항이라 환승 시스텝이 엉망이라 하였다. 입국 수속과 출국 수속을 하면서 환승하기에 환승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다 하였다. 그래서 입국장에서 출국 수속 장소까지 길 안내해주는 직원이 있을 정도라고. 한국말 되는 직원으로 가이드를 신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찌 어찌 왔는지 당시에도 정신이 없을 정도로 빙빙 돌아서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들이 낀 여러 명의 팀인데 사정없이 끌고 다니더라. 그랬더라.
어찌하였든 환승 게이트 F30 도착하여 대기.
에어프랑스 AF1948편 탑승. 15:45 출발.
1시간 40분 비행.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면서 기압이 높아지니 귀를 잡는 아들.
17:25.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였다. GPS 로그를 보니 10,236.5km를 날아왔다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