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2004년 12월 11일 토요일이다. 탐방 연수를 마감하는 날이다. 

 

연수 제 6일날도 아침식사는 6시 30분부터 진행되었다. 8시 20분에 숙소(?)를 출발하였다.

 

8시 50분. 오사카를 방문했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코스가 아닐까 싶다. 오사카 성 천수각을 올랐다. 기념 스탬프도 찍어왔다.

1496년 淨土眞宗의 蓮如上人이 지금의 오사카 성 부근에 지은 坊舍가 혼간지 本願寺라는 큰 절로 커지면서 성대한 세력으로 성장하니 당시 천하일통을 노리던 오다 노부나가의 눈에 걸렸다. 결국 1580년 오다 노부다가 織田信長은 혼간지 세력을 박살내고 절은 불태워버렸다. 이후 오다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은 풍신수길이 1583년부터 불탄 절터에 쌓은 성이 오사카 성이다.  풍신수길이 세력 다툼에서 밀려 최후를 맞은 곳이기도 하다.

 

떼로 입장하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과 입장하는 통로가 다르다. 서, 북동, 남동 방향의 세 진입로 중에서 남동 방향의 '관광버스 진입로'를 통해 진입하였다.

 

오사카 성은 결혼식장이다??

 

오사카 성은 해자가 이중으로 되어 있다. 안쪽의 해자 중에서 물이 없는 부분. 大阪城 사쿠라몬 桜門이 있는 부분이다.

 

천수각이 보이기 시작한다. 막부의 멸망 이후 내전중에 소실되었던 것을 1931년 오사카 시민들의 기부에 의해  다시 만든 것이다. 1997년 일본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이쯤에서 기념 사진을 남겼어야 하는데, 부끄럼을 너무 타서 주변 분들께 사진 좀 찍어달라는 부탁을 하지 못했다.

 

그냥 묵묵히 입장했었다.

 

8층에 위치한 오사카 성 전망대는 약 50m 정도 높이에 위치하여 오사카 성과 주변 오사카 시내의 모습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8층까지 엘리베이터로 올라갈 수 있다. 계단을 통해 오르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대도시의 하늘은 대체로 이렇다. 오사카 하늘의 대기 질도 그렇게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

 

니콘 18-70mm f/3.5-4.5 렌즈의 40mm 화각의 모습인데 이러하다.

 

지붕의 끄트머리인 용마루를 장식하고 있는 샤치호코(鯱, しゃちほこ). 몸은 물고기이고, 머리는 호랑이, 꼬리는 항상 하늘을 향하고 있고, 배와 등에는 날카로운 돌기가 나와 있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보통 기와나 나무, 돌 등으로 만들어 성의 지붕에 금박을 입힌 긴샤치(金鯱: 긴코, 긴노샤치호코)로 장식한다. 나고야 성(名古屋城)의 것이 가장 유명해서 긴샤치는 나고야의 대명사 중 하나이다. 원래는 치미와 같이 지붕 양단을 장식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리고 귀면 기와와 유사하게 건물의 수호신이란 의미를 띠고 있다. 건물에 불이 났을 때 물을 뿜어 불을 끈다는 의미가 있다.

 

50m 높이의 전망대에서 오사카의 모습을 전망하고 있는 탐방객들. 천수각을 한바퀴 돌아가면서 전망할 수 있다.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그물이 튼튼하게 쳐있다.

 

西丸庭園 니시노마루 정원이 천수각의 서쪽 아래 보인다. 정원의 오른쪽 끄트머리에 보이는 건물이 大阪迎賓館이다.

 

7층 내부의 전시실. 풍신수길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디오라마가 상영된다.

 

5층 전시실. 오사카 성 전투에서 패하면서 토요토미는 망하고 도쿠가와 가문은 흥했다. 그때의 여름 전투를 미니어처로 재현한 전시물이다.

 

3층 전시실의 오사카 성 모형. 엄청난 규모이다. 석성이다. 이 돌은 어디서 다 구했는고?

 

권력이 미치는 전국에서 돌을 쓸어담아 오사카 성을 축조했다.

 

2층 전시실에는 각종 무기류를 전시하고 있다. 투구쓰고 사진 찍기를 해볼 수 있다.

 

1층에서는 기념품을 살 수 있다. 와우~

 

10시. 우리가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버스들. 해자 바로 옆에 주차장이 위치한다.

 

10시 30분. 왔다. 쇼핑 센터에!!! 

 

입구에서 약파는 아지매들. 어디서 약을 팔아~~

 

다 쓸어담겠어~ 라는 자세를 갖고 쇼핑센터로 들어갔다.

 

엄청나게 쇼핑을 해댔다. 뭔지 모르겠지만 무려 1천 엔어치 상품을 구매했다.

 

나와서 동네 구경한다. 바로 앞에 위치한 지하철 역 입구에 자전거들이 장사진이다. 환승한 사람들이 두고 간 것 같다. 자전거들마다 모두 등록 스티커가 붙어 있다. 청수곡 고교 학생의 097번 자전거.

 

12시 50분. 덴포잔 부두에 도착하였다. 대관람차는 언제 한번 타보려나...

대관람차를 타는 대신에 출국수속을 하였다. 여권에 도장 하나 추가...

 

2시 20분. 환송식이 있었다. 밴드도 나와서 음악을 뿌려준다.

 

색종이 띠도....

 

대한민국에서 방문했던 우리들을 환송해주기 위해 나온 오사카 시민들. 환송을 마치고 기왕 나온 김에 덴포잔 마켓 플레이스에서 주말을 즐긴다.

 

색종이 띠는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남겨진다.^^

 

바이바이~ 나라사요~~~~

 

오후 2시 40분. 그렇게 이별을 아쉬워 하는 오사카 시민들을 뒤로 하고 출항하였다.

 

뒤따라오던 소방선이 또 이별이 아쉽다고 한다.

 

헤어질 결심을 했다....

 

3시. 그렇게 그렇게 없어질 흔적을 남기면서 오사카 항을 떠나 부산항을 향했다.

 

오후 4시. 아카시 해협의 아카시 대교 밑을 지나서 계속 서쪽으로 항해한다.

 

4시 15분. 벌써 석양을 준비하는 하늘.

 

오후 5시. 선내 식당에서 저녁 식사.

오후 7시 30분. 선상 대학.

 


 

2004년 12월 12일 일요일의 해가 떠올랐다.

 

오후 1시. 부산항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코앞이다.

 

이별할 때가 되어서야 뒤를 돌아본다. 후지마루를 본다. 미츠비시에서 1989년에 출생한 배였다.

 

우리의 귀국을 환영해주던 '날아다니는 배'.

 

환영인파의 열렬한 환영. 감사~ 감사~

 

환영 축포를 쏴주려다가 모두 실탄 밖에 없어서 아쉽게 축포는 생략....

 

1시 50분. 밧줄을 걸었다. 접안하였다.

 

요렇게 항해하였다. 도착할 즈음에 항적을 그린 지도를 가져가라고 방송해주더라.

 

도착하여 입국 수속을 하고 바로 해단하였다.

KTX로 서울로. 지하철 타고 집으로.

 

20년 전인 2004년 12월의 일본 여행을 20년 후에 정리해보았다. 와우~

 

728x90
728x90

2004년 12월 10일 금요일. 탐방 연수의 닷새째가 되었다. 교토의 금각사, 광륭사를 탐방하고, 아스카로 이동하여 아스카 문화를 '연구'했다.^^

 

12월 10일에도 아침 식사는 6시 30분에 시작되었다.

8시 30분. 덴포잔의 부두를 출발하여 14대의 버스들은 교토로 달렸다.

 

10시. 교토 시내에 진입하였다. 일본의 재난 대비용 아파트라고 설명하더라. 재난 발생시 필요하면 '붉은 삼각형 표시'가 되어 있는 부분은 박살내고 진입해도 된다는 것이라고.

 

10시 10분. 길가의 '엔 샵'. 처음 보았다. 나중에 우리나라에 '천원 샵' 같은 것이 생기더니 '다이소'로 진화했다.

 

교토는 平安 시대부터 明治 유신까지 거의 천년 동안 왕성이 있던 곳으로 역사의 도시 奈良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관광도시이다. 교토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는 12세기 말까지이며 6세기 한반도를 통해 전래된 불교 문화의 영향이 크다.

 

10시 20분. 킨카구지 金閣寺에 도착하였다. 원래 이름은 로쿠온지 鹿苑寺인데, 사리전인 '金閣'이 워낙 유명하여 금각사라고 흔히 불린다.

원래는 가마쿠라 鎌倉 시대의 사이온지 긴쓰네 西園寺公経의 별장이었는데, 무로마치 室町 막부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 足利義満가 물려받아(쇼군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을 자꾸 밝히니까 눈물을 머금고 자발적으로 헌납당함?) 산장인 기타야마도노 北山殿를 세운 것이 그 시작이었다. 금각을 중심으로 한 정원건축은 극락정토를 구현했다고 일컬어지며, 유명한 잇큐 一休 선사의 부친인 고코마쓰 後小松 천황을 초대하거나 중국과의 활발한 무역으로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한 무대로서, 이 시대의 문화를 기타야마 北山 문화라고 부른다. 요시미쓰 義満 쇼군이 사망한 후, 유언에 따라 절이 되었으며 무소 소세키 夢窓 국사가 개산하여, 요시미쓰 義満의 법호 로쿠온인도노 鹿苑院殿에서 두 글자를 따 로쿠온지 鹿苑寺라고 명명한 것이다.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금각사 경내도. 한글판 금각사 리플릿에서 스캔하였다.

 

금각 앞에 위치한 鏡湖池를 중심으로 아시하라시마 葦原島 등 크고 작은 섬과 당시의 지방 영주들이 헌납한 名石들이 배치되어 있다. 서쪽의 衣笠山을 배경을 한 이 정원은 무로마치 室町 시대의 대표적인 池川回遊式 정원이다.

 

주지가 머무는 方丈 북쪽에 위치한 교토 3대 소나무 중 하나라는 리쿠슈노마쓰 陸舟之松 소나무. 배의 모양으로 보이도록 손 본 소나무다. 교토를 대표하는 3대장 중의 하나라면 조금 더 그럴싸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아랫쪽에 받침대를 대서 억지로 만들어놓고는... 거긴 눈을 주지 않나보다.

 

녹원사라는 원래의 이름보다 금각사라는 이름이 훨씬 잘 어울린다.

1950년에 견습승려가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며 불을 질러 전소되었었다고 한다. 1955년에 복원되었는데, 대충 작업했는지 금박이 박리되는 문제가 생겨 1980년대에 2차, 1990년에 3차 복원을 실시한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화재가 발생하기 이전의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을 참고해보자. 이것이 더 멋스럽다. 복원이 아니라 흉물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사진 출처: https://ganshoji.com/publics/index/45/detail=1/b_id=1304/r_id=5984/)

 

榊雲.

 

불당인 不動堂. 본존으로 석부동명왕이 모셔져 있다. 

 

11시 20분. "전차를 주의"하면서 우리 버스는 교토 시내를 달린다.

 

11시 30분. 코류지 廣隆寺에 도착하였다. 일본의 국보,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講堂을 탐방하기 시작한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강당, 왼쪽의 나무들 속에 숨어 있는 건물이 쇼타쿠 태자를 모신 태자전이다. 중간의 작은 구조물은 태진전이다. 왜는 6세기 중반에야 불교를 받아들였다. 삼국에서 경쟁력으로 불교를 전파하였다. 쇼타쿠 태자는 불법을 받아들이면서 신라인 하타(秦)씨 집안사람 秦河勝에게 절을 경영하도록 하였고, 蜂岡寺가 창건되었다. 여러차례 이름이 바뀌다가 廣隆寺가 되었다. 태진전은 광륭사의 창건주라고 할 수 있는 秦河勝의 공덕을 기리는 곳이다.

 

영보전을 새로 지어 신영보전이라 하더라.  영보전에는 여러 불상들이 안치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목조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삼매에 몰입하여 느끼는 환희가 넘치면서 얼굴 전체에 웃음이 피어난 것이다. 신라에서 조성한 불상인데, 일본 국보 1호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시기에 모셔졌을 것으로 보이는 금동 미륵보살반가사유상(대한민국 국보 제83호)을 보자. 똑같다. 다른 부분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왜 그럴까요?

 

11시 50분. 광륭사 주차장. 대나무가 거하게 자라고 있었다.

 

12시 30분. 광화소학교에서 신입생을 모집하는가보다. 원서배포중~

점심을 도시락으로 해결하면서 아스카로 달려갔다. 바쁜 하루였다.

 

오후 2시 50분. 아스카 석무대에 도착하였다.

飛鳥 아스카는 일본의 고향이라고 표현한다. 6~7세기 한반도를 비롯한 대륙으로부터 불교를 비롯한 여러 문물을 받아들여 문화를 꽃피웠던 곳으로 고문화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아스카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석무대, 고송총 고분, 飛鳥寺 등이 있다. 아스카의 역사적 풍토와 문화재의 보존 활용을 위해 1975년 개관한 아스카 자료관은 불교가 전해진 6세기부터 나라로 수도가 옮겨진 8세기 초까지의 飛鳥와 萬葉集, 飛鳥의 宮, 돌, 고분, 사찰, 다카마쓰 고분 출토품을 비롯하여 飛鳥寺 탑과 궁터, 절터의 출토품을 전시하고 있어 아스카를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곳이다. 

시기적으로는 6세기 말에서 약 100년 간을 가리키지만,  '아스카 시대'라고 하면 한반도와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비롯한 다양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정치, 경제, 사회의 대혁명이 이루어져 귀족의 연합체였던 국가가 천황제 율령국가로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 일본의 국가성립의 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다.

 

아스카 지역 일대의 문화 유적지 분포 안내도. 넓은 지역에 많은 유적지가 분포하고 있다. 석무대 ⇒ 다카마쓰 고분 ⇒ 아스카 자료관 순으로 관람을 진행하였다.

 

石舞台古墳의 모습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커다란 네모난 모양의 고분이다. 봉토가 완전히 없어지고 거대한 석실이 노출된 상태이다. 천정돌이 넓고 평평하여 옛날에는 춤추고 노는 곳인 줄 알고 石舞台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석실이 노출되어 있어 아무나 들어가 볼 수 있다. 3차에 걸친 발굴 조사결과 집형태의 석관판이 발견되었고, 돌로 축조된 웅덩이에 둘러싸여 있으며 작은 고분군 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석무대 주변에 모여 강의를 열심히 수강중인 탐방객들. 고분의 축조는 7세기 초 경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피장자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6세기 후반에 정치 권력을 장악했던 소나노 우마코 蘇我馬子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7세기경 씨족 집안들끼리 세력 다툼을 하던 시기에 가장 강대한 세력을 일군 것이 蘇我 씨족이었다고 한다. 蘇我 씨 집안은 불교의 수입을 매개로 백제와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고대국가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불교의 수용 여부를 놓고 다른 강대한 파벌 세력과 격렬한 권력다툼을 30년이나 이어갔는데, 소나노 우마코 蘇我馬子 시대에 이르러 정적을 타도하고 승리하여 불교를 공인받게 되었다. 왕실에서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까지 세력이 컸기에 왕릉을 능가하는 석무대 고분의 주인공이 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스카는 과거에 왕도였지만 지금은 1,500호 정도에 인구가 7,000여 명인 한적한 농촌이면서 '유적의 마을'이다.

 

3시 40분. 다카마쓰 고분의 모습이다. 공사중이었다.

천황의 묘라는 오랜 기록도 있기는 했다지만 1972년의 정식 발굴조사에 의해 아름답고 뛰어난 채색 벽화가 있음이 드러났다. 현재는 벽화 보존을 위해 내부 관람은 금지되어 있다. 고분 자체는 도굴당해 매장품이 대부분 손실됨으로써 피장자나 축조 연대를 판명하기 어렵지만 7세기말~8세기초로 추정되며, 당연히 상당한 신분을 지닌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분 벽화 양식에 일본에 없던 것이라 역사상 대발견으로 여겨진다.

 

고분의 네 면에 모두 벽화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주작이 위치하는 남쪽벽이 도굴 통로로 이용되면서 파손되어 버렸다. 안타까운 결과이다. 청룡, 현무, 백호 방향의 벽에 아름다운 채색 벽화가 남아 있으며, 모사된 작품을 '고분벽화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동쪽 벽면의 벽화이다.

 

서쪽 벽면의 벽화이다.

 

고분이 남북 방향으로 길고 동서 방향으로는 짧아 북벽에는 현무 그림만 남아 있다. 그래서 남벽에는 주작의 그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백호 머리 위에 그려진 달 속에 동물을 그린 것, 삼족오가 그려져 있는 것, 인물상의 얼굴 모양과 모자 등의 복식 등을 보면 덕흥리, 수산리 고분, 쌍영총 벽화 고분 등에 나타나는 인물들과 너무나 유사하다. 때문에 백제계의 정착지로 알려진 아스카 지역에 고구려계 세력이 일정하게 존재하고 있었을 것을 반영하는 유적이라 일본의 고대사 해석에 혼란을 주고 있단다.

 

오후 3시 50분. 날이 흐려 12월이 더욱 쓸쓸한 겨울(?)로 느껴지는 역사의 도시 아스카.

 

농촌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스카. 비닐 하우스들이 보이고, 과수원에서는 귤의 수확도 이루어지고 있더라.

 

오후 5시. 奈良文化財研究所飛鳥資料館 아스카 자료관에 도착하였다.

여기에는 飛鳥宮, 飛鳥石, 飛鳥 고분, 다카마쓰 高松塚 고분, 飛鳥寺 등의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똑같은 모양의 백제 기와와 飛鳥 기와가 나란히 전시되어 飛鳥 문화가 곧 백제 문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준다.

 

6시. 오사카 항구로 돌아가던 중 고속도로 요금소. 

요금소에 근무자가 모두 노인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일자리 나누기의 일환이라 하더라. 우리나라 처럼 장시간의 혹독한 근무 조건은 지키기 어려우므로 짧은 시간으로 나누어 여러 사람들이 근무하는 형태라고 하더라.

 

밤 9시 30분. 오사카 남항에 정박중인 집(?)으로 찾아간다. 원래 6시에 저녁 식사가 예정되어 있었던 날이었는데, 열심히 탐방 연수에 몰두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늦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2004년 12월 10일의 하루가 저물었다. 탐방 연수 5일째가 저물었다. 쉰다.

728x90

'아시아 > 일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사카_2004년 12월 11일  (0) 2023.08.24
동대사, 법륭사_2004년 12월 9일  (0) 2023.08.23
벳푸_2004년 12월 8일  (0) 2023.08.23
다자이후, 아소산_2004년 12월 7일  (0) 2023.08.23
728x90

20년 전인 2004년 12월 9일에 오사카 항구를 출발하여 나라의 동대사, 법륭사를 관람하고 후지마루가 정박중인 오사카 항구의 덴포잔 부두 天保山岸壁로 돌아와 유명한 오사카 수족관(海遊館)을 관람하였다.

 

크루즈 후지마루에서의 아침식사는 매일 6시 30분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일정하다.

8시. 오사카 항을 출발하면서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부두 앞쪽으로 보이는 Tempozan Bridge 天保山大橋.

부두 한쪽 끝에 작은 둔덕이 있다. 높이가 무려 4.53m인데 天保山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부두 이름, 부근을 지나는 교량 이름,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등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산정상에는 '천보산 정상'이라는 표지도 있으며, 천보산 산악회도 있다. 산 이름이 붙은 곳들 중 일본에서 가장 낮은 산이었다. 센다이의 히요리 산이 도호쿠 대지진에 따른 지진해일로 6m였던 봉우리가 3m로 깎여나가면서 텐보산이 두번째로 낮은 산으로 순서가 밀렸다고 한다. TMI....^^

 

"역사가도". 일본에서 밀고 있는 곳이다. 일본의 역사가 집약적으로 모여 있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이세~아스카 사이의 '古代史 존', 나라 일대는 '奈良時代 존', 교토로 이어지는 지역은 '平安~室町時代 존', 오사카까지 '戰國~江戶時代 존', 오사카~고베 사이는 '近代 존'으로 유형을 나누었다. 권력의 핵심 지역의 이동에 따라 해당 시기의 역사문화 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시기별로 ZONE을 구별하였다.

이번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 연수에서는 12월 10일에 나라 시대 유적인 동대사를 방문하고, 아스카 시대를 상징하는 법륭사와 아스카 자료관을 관람하였다. 12월 11일에 방문한 오사카 성은 전국~강호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지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이런 '레키시 카이도 歷史街道'를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일본 문화에 대한 정보 전파의 기초를 확립하고, 새로운 레저 공간을 활성하는 한편, 지역의 문화 유산을 최대한 활성화 함으로써 지역 커뮤니티의 질을 높이는데 목적을 두고 추진되고 있다.

 

9시 10분. 톨게이트. 阪神高速 天保山料金所. 16번, 13번, E92 고속도로를 순서대로 이용하여 달려갔다. 

 

9시 20분. 13번 고속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달리는 버스의 창 밖으로 멀리 오사카 성이 보인다.

 

9시 50분. 奈良 나라시에 들어왔다. 平城宮跡歴史公園 부근에 위치한 본조사가 길가에 보였다.

 

東大寺二月堂 2층에 올라 바라본 奈良 나라 시내의 모습. 분지 지형을 이루고 있다.

奈良 나라는 구릉지로 둘러싸인 야마토 大和 분지의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794년 京都 교토로 천도할 때까지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문화를 받아들여 일본 최초의 국가를 세웠던 곳이다. 그래서 국가를 뜻하는 우리말 '나라'가 이곳의 지명이 된 것이다. 나라는 일본고대사의 시작과 건국신화의 무대가 되었으며, 최초의 국가형태인 大和 정권이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나라에는 석기시대의 유적과 함께 고대 분묘와 찬란한 불교문화와 귀중한 예술품이 많이 산재되어 있어 도시 자체가 마치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특히 나라 시내 동쪽에 위치한 나라 공원에는 흥복사, 동대사, 춘일대사, 약초산 등 나라의 대부분의 명소를 품고 있다.

대불로 알려진 동대사는 거대한 대불전을 비롯한 국보급 건축물과 불상을 많은 불교문화의 대표적인 사원이다. 또한 법륭사에 있던 고구려 담징이 그렸다는 금당벽화는 소실되었지만, 중문, 탑, 종루 등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2004년 12월 9일 목요일 아침 나라시의 거리 풍경.

 

10시. 세계유산 도다이지 東大寺도착하여 하차하였다.

 

사슴 상들이 격렬하게 환영해주고 있다. 물리지 말라, 뺏기지 말라 같은 주의사항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뭐라 뭐라고 "주의"사항들이 써 있다.  나라공원의 사슴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야생동물이다! 나라의 사슴을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만 애완동물은 아니다. 가까이 가거나 몸을 만지면 위험해요~

5~7월은 출산기다. 새끼 사슴 가까이 가면 엄마 사슴한테 많이 혼난다. "우리 애가 어떤 애인데!!!! 왕의 DNA..."

9~11월 하순 사이는 사슴들의 발정기다.................어...

사슴이 갑자기 뛰면 위험하니 알아서 잘 피하도록!

 

사슴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서 사슴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도다이지, 동대사에 입장한다. 정문에 해당하는 남대문으로 들어와 중문을 지나면 동대사 대불전을 만날 수 있다.

 

평일 10시 반에 도다이지 경내에 있을 수 있는 학생들은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체험학습? 졸업앨범 촬영?

 

"신경 끄고, 저쪽 가서 설명이나 들어..."

뿔 떨어진 사슴이 주변으로 어슬렁 거린다. 나라 시는 녹각 제품이 특산품이다. 

 

동대사의 배치도를 숙지하자.

남대문으로 입장하여 대불전을 탐방하고 동락문으로 빠져 행기당, 이월당, 법화당경고 순으로 탐방을 이어갔다.

 

우중한 날씨라 사진이 잘 안나왔다고 치자. 동대사의 중심인 대불전으로 찾아간다.

 

동대사의 대불전은 건물 높이 47.5m, 동서 길이가 37m, 남북은 50.5m인 세계 최대의 목조 건물이다.

745년에 동대사의 착공이 이루어져 748년에 法華堂三月堂)이 먼저 준성되었다. 708년 신라사람 金上元이 찾아낸 구리광맥에서 생산된 구리를 이용해 747년부터 대불의 주조가 백제사람 군나가노기미마로 國中公麻呂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백제 멸망 이후 왜로 이주한 백제왕 敬服이 749년에 황금 900냥을 헌납하여 높이가 15m에 이르는 盧舍那坐佛이 완성되었다. 대불을 모시는 대불전은 신라사람 이나베노모모요 猪名部百也였다. 752년에 대불의 개안법요식이 거행되었다.

 

동대사의 대불. 대불 뒷편의 光背는 771년에야 설치되었다고 한다.

 

본존상 동편 高柱 밑동에 구멍이 뚫려있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 보기도 하는... 빠져나가고 있다. 기둥의 이 구멍이 본존의 콧구멍 크기와 같다고 하니 대불의 규모가 짐작된다. 

 

동대사 대불전이 백제인들의 불심과 기술로 만들어진 건물이라고 하는데, 어찌하여 분위기는 일본풍인 것인가....

855년에 대불의 머리가 떨어져 861년에 수리가 되었다고 한다. 1180년에 불이나서 대불이 상하였고 1185년에 재현되었지만 불상의 모습이 달라졌다. 백제 조각의 원형은 사라지고 일본사람을 닮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대불전은 1180년에야 중건되었는데, 1709년에 다시 지으면서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 백제의 것을 만들어 놓았더니 세월이 지나 가장 일본적인 것으로 변형되어 버렸다. 일본 국보로 지정되었지만 옛모습은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 1980년에 크게 수리하면서 완전 깔끔해져 더욱 세월을 느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대불전 귀퉁이에 창건 당시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데 현재의 모습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불전 입구에서 향을 올릴 수 있다. 앗.. 12호차 깃발이...

 

대불전 밖에 모셔진 목조 불상 핀돌라 Pindola Bharadvaja. 신비한 초능력을 갖고 있었다는데....

 

동문으로 나서면 보이는 七重塔相輪 Asoka Pillas.

 

11시. 행기당 앞에서의 강연. 행기당은 에도 시대의 건축물이다. 내부에 行基菩薩坐像을 모시고 있다.

민중에게 불교를 널리 포교한 대단한 신망을 가진 行基 스님을 따라다니는 수많은 신도 무리가 있었는데, 이들이 동대사 건설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원래 行基菩薩坐像은 이코마 시의 죽림사에 모셔져 있는데, 그 좌불의 모각상이라고 한다. 행기당 내부의 좌불 모습이 언듯 보인다.

 

종루 뒤에 사슴들이 숨어서 몰래 청강하고 있다.

 

동대사에서 대불전의 대불 말고도 우리 선조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이 많으며, 그것들을 놓치면 탐방의 의미가 희석될 수 있으니 대불전 밖에 있는 선조들의 유산의 잔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강사님 말씀 하나 하나를 선생님들은 집중하여 가슴속에 새기고 있다.

 

11시 20분. 이월당을 만난다. 음력 2월에 법회가 이루어지는 장소라서 二月堂이라고 이름이 붙었다.

 

동대사를 창건한 良弁 스님의 高弟 実忠じっちゅう)이 창건하였다고는 하지만 이후 여러차례의 중건을 통해 규모가 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향효과가 좋아 법회를 진행하는데 적합하다고 한다.

 

2층에 오르면 나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월당을 탐방하여 조사활동에 열중하는 선생님들.

 

11시 50분. 東大寺法華堂経庫. 헤이안 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창고 건물이다.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과거에 경전 등을 보관하던 창고였지만, 중세 이후 쌀창고로 이용되던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위치도 여러번 이전되었다. 나라 시대에 흔하게 사용되었다고 하는 校倉 방식으로 건축된 건물이다.

 

校倉 방식을 삼각형, 사각형의 목재를 사용하여 바깥쪽으로 능선 모양이 드러나도록 만든 것이다. 귀틀집과 같은 형상이지만 각진 목재를 사용하여 빗물이 흘러내리지 않아 내부로 습기가 잘 들어오지 않고 건조는 잘 되는 특징이 있어 창고 건물 양식으로 적합했다. 법화당 앞에 위치하며, 옆에 어발탑이 세워져 있다.

네 방향으로 경사진 기와 지붕으로 건축되었는데, 이러한 기와 지붕은 아스카 시대에 사찰 건축 기술과 함께 전래된 것이다.

 

무서운 사슴  사마가 자꾸 주변을 얼쩡거린다. 껌 좀 씹어본 사슴 같다.

 

1시에 만난 사슴들. 이 동네 사슴들은 여름털과 겨울털이 사뭇 다른 모양이다. 나라 시내의 어떤 식당에서 어떤 메뉴의 어떤 식사를 했을 것 같다. 이제는 우리가 사슴들과 헤어질 시간~~ 떠난다 법륭사로~~

 

오후 2시 20분. 호류지 法隆寺에 도착하였다. 입구에서 다들 下馬하였다.

 

중문 앞에 모여 법륭사에 대한 맛을 보고 입장하였다.

호류지 法隆寺는 아스카 飛鳥 시대(6세기 중엽~8세기 초)의 건축 양식을 오늘날에 전해주는 사찰로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다.

607년에 스이코 推古 천황과 쇼토쿠 聖德 태자가 요메이 用明 천황의 유지를 이어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편 670년 법륭사가 화재로 전소되고, 북동쪽으로 자리를 옮겨 708년에 중건되었다. 그런데 金堂에 고구려 스님 曇徵이 그린 벽화가 있다. 1949년에 불에 타 손상을 입기까지 뛰어난 작품으로 숭상되었다. 담징 스님이 고구려에서 건너가 활동하던 시기가 610년부터였는데, 708년에 중건된 건물에 벽화를 남겼다고 하는 부분에서 중건 시기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담징의 벽화를 일본에서는 그냥 작자 미상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금당은 1949년의 화재 이후 복구 공사를 하여 1954년에 세운 건물이다. 

 

금당 벽화.

 

2004년 12월 9일 현지에서 받아온 리플릿을 스캔한 법륭사 경내 지도를 통해 가람의 배치를 확인해보자.

법륭사는 크게 금당과 5층 목탑을 중심으로 하는 사이인 西院 가람과 유메도노 夢殿 불당을 중심으로 한 도인 東院 가람으로 나누어진다. 약 187 제곱킬로미터 면적의 경내에 아스카 시대를 비롯한 각 시대의 진수를 결집시킨 건조물들이 모여있으며,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1993년 12월에 일본 문화재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금당은 대웅전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그래서 금당 내부에 아스카 시대의 금동석가삼존상, 금동약사여래좌상,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등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외에 헤이안 시대의 목조길상천입상, 비사문천입상도 안치되어 있다. 소실된 벽화는 모조 벽화로 대체되어 있다.

금당은 건축 과정에서 정황이나 기록상 백제의 목조 건축 양식을 상당부분 받아들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난간의 자형 대공, 하앙의 사용과 배치, 자형 난간 등의 특징적인 부분들은 백제 등 삼국시대 유물과도 일치하는 점이다. 또한 배흘림 양식 기둥, 독특한 柱頭의 형태 등은 역시 한국 건축의 특징과 유사하다. 배흘림기둥은 금당, 오중탑, 중문과 회랑의 기둥들 모두에서 볼 수 있다. 배흘림기둥은 서역에서 전래된 것인데 우리나라에선 12세기 이후까지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일본에서는 백제인이나 신라, 고구려인들이 경영한 건물들에서만 나타난다.

 

기둥의 윗부분을 보와 연결시켜주는 부분의 형태가 고구려식 柱頭라고 한다.

 

금당과 나란히 五重塔이 배치되어 있다.

5층 목탑은 길게 빠진 처마의 우아함이 돋보이며, 이후 일본 목탑의 전형이 된다. 이 역시 인()자형 대공와 하앙이 사용되었다. 이 목탑의 구조 중심에는 거대한 심주가 있는데, 이는 탑 꼭대기에 있는 금속 장식인 철반을 지지하기 위함이고, 탑은 다른 작은 기둥들과 공포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 이 목탑은 사람이 올라갈 수는 없다. 높이는 31.5m이며, 위로 갈수록 조금씩 작아진다. 체감률이 크기 때문에 층은 1층의 면적의 절반이다. 1층 처마 밑에 한층 낮게 덧댄 차양 부분은 그 양식을 봤을 때 금당에 있는 것보다 더 뒤의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법륭사가 위치하여 역사가도의 중요 뽀인트인 이카루가 斑鳩 마을의 가옥. 일본식 가옥이다.^^

 

법륭사 관광안내소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오후 4시 20분. 오사카 만의 하늘.

 

4시 30분. 오사카 항의 덴포잔 부두 天保山岸壁 한쪽에 위치한 오사카 수족관(海遊館)을 관람하였다.

 

안내 리플릿의 일부.

 

수족관 내부의 이모저모...

 

부두에는 대관람차도 돌아간다. 재밌겠다.^^

 

오후 5시 10분. 오사카 만의 황혼.

 

5시 30분. 후지마루의 선내 식당에서 저녁식사....

 

오후 8시. 선상대학.

 

 

728x90
728x90

20년 전인 2004년 12월 8일에 온천의 도시 벳푸에 있었다.

벳푸의 지옥 순례를 했다. 동산 위의 조그만 학교를 방문하고 자연동물원에서 원숭이들을 만났다. 오이타 항에서 후지마루를 만나 승선...

(구글지도에서 '경로찾기'를 하고 '목적지'를 하나씩 추가하면 도로를 따라 대충 경로를 쭈우욱 그려준다. 신기하다. 다만 중간에 교통수단변경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공항 사이의 하늘도 날아가지만, 항구 사이의 이동은 표시해주지 못하는 한계도 아직 있다.)

 


8시. 스기노이 호텔에서 아침 식사.

호텔에서 바다쪽으로 바라보니 바다가 보인다.

 

바닷가 호텔에서 내륙 쪽으로 바라보니 여기저기에서 김이 새는 모습이 보인다. 역시 온천의 도시 다웠다.

別府 벳푸는 도쿄 인근의 熱海 아타미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온천 및 관광도시이다. 동쪽으로 잔잔한 벳푸 만을 끼고 있으며, 시내 곳곳에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온천지가 펼쳐져 있다. 벳푸 역 주변이 가장 번화한 온천가로 큰길을 끼고 크고 작은 여관과 기념품상가, 캬바레, 오락실, 극장 등이 밀집해 있다. 別府八湯을 비롯한 온천의 수가 3천 8백여 개에 이르며 온천열을 이용한 채소, 화훼 재배가 성하다.

 

일정이 많지 않은 날이라 여유 있게 하루를 시작하였다. 10시에 호텔을 출발하였다.

 

'지옥'을 제발로 찾아갔다. 733년의 豊後風土記 분고풍토기에도 기록이 등장할만큼 오래된 온천의 역사를 갖고 있다. 왈, "증기, 열탕, 진흙이 분출하여 접근할 수 없는 불쾌한 토지"라고 하여 "지옥"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온천 지대의 분출하는 물에 기포가 포함되어 있어 마치 끓는 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온도가 낮은 경우가 많은데, 벳푸의 온천은 100도에 가깝다고 한다. 

 

 

벳푸 지옥 순례 べっぷ地獄めぐり가 벳푸 관광의 하일라이트로 알려져 있다. 지옥의 위치나 알고 가자.

혈지 지옥, 명반 온천, 바다 지옥 순서로 탐방하였다.

 

10시 15분. 길가에 지옥에 살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판이 보이더라. 지옥의 '파미리호므'.

 

10시 20분. 피의 연못 지옥에 도착하였다.

 

온천수의 온도가 100도에 가깝다고 하더니 확실히 김이 많이 난다.

 

수증기가 눈앞을 가리운다.

 

"피의 연못 지옥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천연 지옥으로, 한마디로 말하면 "붉은 열 진흙 연못"입니다. 지하의 고온, 고압 하에서 자연스럽게 화학 반응을 일으켜 생긴 산화철, 산화 마그네슘 등을 포함한 붉은 열 진흙이 지층에서 분출, 퇴적하기 때문에 연못 일면이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라고 소개되어 있는 血池地獄의 모습이다. 온천수에 진흙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진흙속에 산화철, 산화마그네슘 함량이 높아 붉게 보이는 것이다. 과연 피처럼 붉어 보이는가??

 

2004년 12월 8일 현지에서 받아온 쪼꼬만 안내장을 스캔해보았다. 이건 빨갛다.

이렇게 붉은 온천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연못의 면적은 430평, 용출구 면적은 230평이며, 하루에 1,800kl의 용출량을 보인다는 정보도 적혀있다. 수온은 78도이며, 실측해본 깊이는 30m인데 180m 정도는 될 것으로 추정된단다. 점토로 채워져 있어 정확한 깊이를 측정하기 어렵다. 1875년 이후 아홉차례의 폭발 기록이 있는 곳이다.

 

족욕을 즐길 수도 있다.

 

벳푸에서 족욕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지옥들이 네 곳 있다. 足湯이라 표현한다.

 

10시 55분. 다른 지옥 구경을 구경하기 위해 이동하였다. 묘반 온천 明礬温泉이 있는 곳이다.

 

일본의 독특한 목욕 문화를 반영한 곳이다. 가족이 모두 발가벗고 목욕하는... 가족탕이다.

입구에 '여기는 견학하는 곳이 아닙니다. 가족용 온천입니다.'라고 빨간 글씨로 적혀 있다. 남의 가족이 온천하는 모습이 궁금하여 들여다 보는 한국사람들이 좀 있었나보다. 물론 일본어로도 적혀 있다.

 

묘반 온천에서 판매하는 의약부외품이 있다. '유노하나 '는 온천 성분을 결정화한 입욕제이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데, 알아서 잘 해결하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국내 수입 많이 하더라. 생산량이 그렇게 많나???

 

11시 30분. 바다 지옥 입구에 도착했다. 원래 벳푸 지옥 순례는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쪽에 지옥들이 많이 모여 있다.

 

벳푸 명소 바다 지옥.

 

바다 색깔처럼 보여서 바다 지옥이다. 온천수에 황산철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이러한 코발트 블루 색상을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온천의 열을 이용하여 열대성 수련을 재배한다. 200m 아래에서 98도의 온천수가 솟는다.

 

안내판.

 

바다 지옥의 시설 배치도. 한쪽에 바다와 어울리지 않는 곳이 있다. 赤池.

 

혈지 지옥, 피의 연못 지옥과 유사한 붉은 진흙탕이다. "なんと池地獄もあるんです!"라고 홈페이지에 설명하고 있다. '무려, 붉은 연못 지옥도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족탕, Hot Spring of a leg, 발의 온천도 있다. 족욕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벳푸 시내의 어떤 식당을 찾아 어떤 점심 식사를 했다.

1시 20분. 벳푸 시내의 산속의 자그마한 학교를 찾았다. 동쪽으로 바다를 면하고 있는 벳푸시의 서쪽 산 위에 있는데 학교 이름은 '동쪽 산'이다. 동산소학교.

 

산 위에 있는 학교니까 올라가야 한다.

 

산위에 위치한 동산 소학교. 경치 죽인다~~~

 

학생들. 어, 음~~~

 

거대한 죽창의 쓰임새가 궁금했다.

 

가볍게 둘러보고 떠난다. 일본 자동차 회사는 작은 차를 참 귀엽게 잘 만든다. 사까!?

 


오후 2시 30분. 오이타 만에 면해 위치한 다카사키야마 자연동물원을 찾았다. 원숭이가 대표적이라 원숭이 공화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2004년에 받아온 리플릿을 스캔한 것이다.

에도 시대부터 원숭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1952년 오이타 시장이 흩어져 있던 원숭이들을 高崎山에 모아 자연동물원으로 개원했다. 1,200여 마리의 원숭이들이 두 무리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다네.

 

원숭이들과 미팅할 때의 주의사항들이다. 지키기 참 쉬운 것들이다.

 

사육장의 철책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들끼리 산다.

 

원숭이들과의 미팅을 즐긴다.

 

찾는 사람들이 많아 사람들과의 접촉이 일상인 친구들이다. 사람들이 가까이 가도 지나가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래서 만지거나 눈을 쳐다보지 말라는 것인 것 같다. 

 

이제 고만 가~~!

 

가라 하니... 간다.

 

오후 3시 10분. 오이타 만.

 

위험한 커플이 보였다. 다치면 우짤라꼬!!!

 

지진과 화재에 대비한 구조를 가진 아파트라 하더라. 지진이 발생했을 때 고층에서 깨진 유리가 아래로 떨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베란다 밖을 유리로 막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더라. 그리고 재난 발생시 옆집으로 쉽게 대피할 수 있는 구조라고 한다.

 

오이타 항의 부두에 정박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후지마루.

 

승선하였다.

 

이런 것 잘 하더라. 서비스. 이틀을 함께 했던 버스 기사와 직원들이 부두에 모두 나와 손을 흔들며 환송해준다.  나라사요~

 

3일차이다. 오늘의 선상대학. 시를 공부하고 섹소폰 연주에 흠뻑 빠졌다.

 

와~ 멋지다~

(다음 포털에 개설되었던 이분의 카페에도 가입했었다. 기가 막힌 연주 파일들을 즐길 수 있었는데, 음원 저작권 문제가 강화되면서 연주 파일들이 모두 삭제되어 아쉬웠었다.)


12월 9일 6시 20분. 싸이렌이 울리고 방송이 뭐라뭐라 나왔다. 그래서 밖으로 나왔다. 아카시 대교의 모습이다.

 

아카시 대교는 아카시 해협에 건설된 다리이다.

일본의 큰 섬들 넷 중 가장 작은 시코쿠와 가장 큰 섬 혼슈 사이에 위치한 아와지 섬과 혼슈를 잇는 明石海峡大橋이다. 지진이 잦은 지역에서 견뎌내기 위해 튼튼한 현수교로 만들어졌다. 교량의 총길이는 3,911m이고 두 교각 사이의 거리는 1,991m이다. 해수면에서 중앙부의 높이는 300m라서 큰 배들도 다리 밑으로 그냥 슝슝 지나다닐 수 있다.

 

그렇게 여명 속에서 아카시 해협을 지나서 오사카 만으로 접어들었다.

 

 

728x90
728x90

독도 등과 관련된 일본의 역사 왜곡 공세가 강화되자 이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서 1987년부터 추진되기 시작한 사업으로 알고 있다. 중간에 힘이 겨웠는지 신한은행과 공조하여 추진하는 '제18회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 연수에 2004년에 다녀왔다. 최근에는 GS도 동참하는 듯. 주관여행사는 미토스였다. 홈페이지(tour.chosun.com)도 운영되고 있다는데, 접속이 안되네. 여행일정과 강사 소개, 역대 참가자 명단과 탐방기 등이 탑재되어 있다고 소개하고 있는 홈페이지가 접속이 안되네...

 

2004년 12월에 다녀온 연수 자료를 2023년에 블로그에 정리하고 있다.ㅎㅎㅎ

 

2004년 12월 6일 오후 3시. 출국장에서 멀리 크루즈 선의 윤곽이 보였다. 앞쪽에 컨테이너들이 쌓여 시야를 막고 있어 아쉬웠다.

 

국제훼리출국터미널에서 인원점검을 하고, 연수 참가자들이 줄지어 출국 수속을 한다. 여권에 도장들이 간단하게 남아 있다. 6일에 DEPARTED, 12일에 입국 ADMITTED.

 

삼삼오오 크루즈 후지마루에 오르고 있다.

 

신기했다. 내가 크루즈 선을 다 타보다니... 배의 옆구리에 달려 있는 구명정의 모습도 신기했다. 설마 영화 '타이타닉'에서 처럼 저 구명정 사용법을 몰라 헤메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상상도 했다.

선박의 이름은 Fujimaru였다. 1989년에 진수된 길이가 167m, 너비는 24m, 평균 속도는 12.7노트(최대 21.2노트) 2만3천 톤 규모의 크루즈 선이었는데, 이런 저런 회사로 팔려다니다가 2022년에 고철로 팔려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446호 선실을 배정받았다. 4인실이었다. 짐을 던지고 나와서 부산항 구경을 한다.

 

부산 구경을 크루즈 선박에서 하고 있다. 이런 호사가 있던가.....

 

5시 30분부터 선내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사이 후지마루는 6시에 부산항을 출항하여 일본을 향했다. 그리고 후지마루의 4인실 446호에서 설레는 잠을 맞이 하였다.

크루즈 선박이기 때문에 숙식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상태와 수준도 상당히 높았다.

그리고 매일 저녁 6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의실에서 강연이나 공연도 있었다. 그 일정표를 남겨 두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기회였는데, 기록과 정리를 해두지 않은 것을 20년 지나서 후회하고 있다.


 

부산항을 출항하여 후쿠오카의 하카타 항에 12월 7일에 하선하였다. 육로로 탐사 연수를 진행하고 벳푸의 호텔에 숙박하였다.  12월 8일 저녁에 오이타 항에서 다시 후지마루에 승선하여 오사카 항으로 달려갔다.

이후 오사카, 나라, 교통 등지의 일정을 소화하고 11일 오사카 항을 출발하여 12일에 부산항에 도착하는 일정이 진행되었다. 길다란 다리 밑을 지나갈 때마다 나와서 구경하라고 방송을 하곤 하더라. 지도에 통과 시각을 모두 표시를 해주었네.

탐방 연수 안내 자료집에 실린 '탐방 코스' 지도이다.

 

후지마루의 전체적인 외관은 12월 8일 오이타 항에서 볼 수 있었다. 크루즈 선처럼 생겼다. 1989년에 진수하여 2004년의 모습이었으니 15년 밖에 안된 청춘이었을 것이다. 배가 반짝반짝 빛난다.



 

2004년 12월 7일 화요일의 일정이다. 하카타에서 출발하여 다자이후, 후나야마, 아소산을 답사하고 벳푸의 숙소에서 온천을 즐겼다.

 

12월 7일 8시에 후쿠오카 항에 도착하였다.

6시 30분부터 아침 식사, 8시에 하선하여 입국 수속을 받았다.

여권 한면에 통짜 VISA 스티커를 붙여준다. 그리고도 LANDING PERMISSION 스티커도 붙이더라. 90일을 체류할 수 있는 허가 스티커이다. 나갈 때는 DEPARTED 도장 하나 달랑. 일본은 들어오는 사람들은 까다롭게 걸르고, 나가는 사람들은 그냥 대충 내보내는 것이었을까.

여권의 이런 스티커, 도장이 재미있어서 이런 출입국 도장을 모아보자 했더니, 요즘에는 자동화되면서 도장을 안찍어준다. 여권의 페이지 숫자는 늘었는데 거의 공백이다. 공항으로 입국하면 비행기, 항구로 입국하면 배, 도로를 통해 입국하면 자동차 그림이 스탬프에 찍혀 있어 다양한 스탬프 모양을 모으는 재미가 있는데... 이제 안 찍어주더라.

 

8시. 후쿠오카, 하카타 항으로 후지마루 호가 접안하고 있다.

규슈의 북부 하카타 만에 접한 후쿠오카는 규슈에서 가장 큰 도시로 흔히 규슈의 수도라 불린다. 일찍부터 한반도와 교류하던 관문으로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다. 후쿠오카를 흔히 하카타라고 부르고 관공서와 상점에서 사용하여 외국인들을 혼동시킨다. 후쿠오카를 남북으로 관통하며 흐르는 나카 강 동쪽을 하카타(상인의 도시), 서쪽은 후쿠오카(무사의 도시)라고 불렀는데, 1889년 두 도시가 통합되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카타라는 옛이름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부두에서 우리를 현대 컨테이너와 분홍색의 예쁜 버스들이 기다리고 있다. 12호차가 어느 것이더냐...

 

9시 30분. 입국 수속과 버스 승차를 완료하는데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 것 같다.

 

9시 50분. 다자이후 太宰府는 후쿠오카 인근에 위치한다. 금방 왔다.

나당 연합군에 백제가 멸망(660)하자 '일본'이란 이름이 만들어지기 전인 왜의 제명 여제는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군사들을 이끌고 아스카의 도성을 떠나 九州에 도착했는데 병으로 죽고 그 아들 中大兄이 하카타에 전진기지를 세우고 170여 척에 배에 군사들을 싣고 백제왕자 부여풍이 달려갔고, 2년 후인 663년에 다시 2만7천여 명의 증원군을 파견했다. 금강 하구의 白村江 전투에서 대패한 백제광복군은 재기의 힘을 잃고 많은 유민들과 함께 규슈로 돌아온다. 백제 문화의 대량 유입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신라가 쳐들어올 것이 걱정되어 하카타 만 연안의 전진기지를 철수하고 방어에 유리한 내륙 쪽에 요새를 만들게 된다. 그것이 다자이후 大宰府 초입의 水城이다.

 

10시. 다자이후의 정청 터에 도착하였다. 주축돌과 몇 개의 돌기둥만이 남아 있다.

발굴 조사 결과, 大宰府의 신축은 白村江 전투 패배를 전후하여 시작되었고 일본이 국가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을 때 개축되었다가, 941년 스미토모의 난 때 타버린 것을 이후에 복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大宰府를 지키기 위해 쌓은 산성이 大野城과 基肄城이었다.  '조선식 산성'이라고 부르는 이들 성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산성으로 꼽히고 있다.

다자이후 정청 유적지에서 현장 학습 중인 선생님들.

 

다자이후 정청 유적지는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전시관 안에 보존되어 있는 遺構.

 

다자이후의 정청 유적지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水城이었을 것 같은데 이번 탐방 연수에서는 방문하지 않은 것 같다. 당시 다자이후에서 받아온 팜플렛 3장 중 하나이다. 지도 3번에 정청 유적지가 표시되어 있다. 6번이 미즈키, 수성 유적이 위치한 곳이다.

 

수성 전시관, 水城館 옆으로 수성의 유적지 보인다.

수성은 하카타 만에서 다자이후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접근로를 산과 산을 잇는 토성을 쌓아 막은 것이다. 수성의 길이는 약 1.2km, 기저부의 폭이 80m, 높이는 14m에 이른다. 지금은 묻혀 있지만 토성의 바다쪽에 폭이 60m에 이르는 해자를 설치해 물을 저장하였던 유구가 최근 발견되어 水城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입증하기도 했다.

수성의 다른 항공사진을 가져와보았다. 교통로의 개설이 이루어지면서 토막토막났지만 동쪽 부분은 꽤 많이 남아 있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산지에 大野城, 그 아래에 大宰府가 위치한다.

(출처: http://www.yasumaroh.com/2010/08/14/%E5%93%81%E5%B7%9D%E5%A1%BE%E8%AA%87%E5%A4%A7%E5%8F%B2%EF%BC%9A%E3%80%80%E3%80%8C%E6%97%A5%E5%87%BA%E3%82%8B%E5%87%A6%E3%81%AE%E5%A4%A9%E5%AD%90%E3%80%8D%E3%81%AF%E8%A6%B3%E4%B8%96%E9%9F%B3%E5%AF%BA-3/)


 

11시 40분. 에타후나야마 고분 江田船山古墳에 도착하였다. 일본의 전통 가옥과 문화를 보전하기 위해 고분군 사이에 肥後民家村을 만들어놓았다. 입구의 후나야마 고분을 살펴보고 민가촌 가운데 위치한 교류 광장에서 강의가 있었다.

 

船山 후나야마 고분은 후쿠오카에서 구마모토로 가는 중간에 江田川이 본류인 菊池川에 합류하는 지점에 여러개의 다른 고분들과 함께 위치한다. 5세기 후반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고분길이가 61m에 이르는 前方後圓식 고분이다.

1873년에 발굴되었는데, 결과 공개는 긴 시간이 지난 다음에나 이루어졌다. 고분에서는 집모양의 석관이 나왔는데, 석관 안에서 출토된 유물 중 대표적인 것이 청동거울(6개), 구슬(7개) 관옥(14개), 유리옥(90여 개), 갑옷(3벌), 칼(7개), 창신(4개), 철촉금동제관모(1개), 금동제관(3개 분), 금동제신발, 말재갈(2조), 금귀고리(2쌍), 금팔찌(1쌍) 도자기잔(1조) 등이다.

발굴하고 결과를 곧바로 발표하지 않은 것은 출토 유물 대부분이 고구려, 백제, 가야의 유물들과 유사하여 한반도에서 개척자들이 가져갔거나 이주한 개척자들이 만든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금동관모와 김동신발은 공주 무녕왕릉과 익산 백제고분 등에서 출토된 것과 똑같아 학계에 충격을 준 바 있다.

이들 유물은 일괄적으로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동경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에타후나야마 고분 앞에서 현장 학습 중인 선생님들.

 

肥後民家村 히고 민가무라(민가촌)에 입장하는 선생님들.

 

야외무대로 이용되는 교류광장에서 강의를 듣는 선생님들.

 

민가촌의 이모저모.

민가촌의 전통 가옥은 우리나라의 민속촌 가옥 처럼 그냥 만든 것이 아니라 각 지방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가옥을 선정해 이축복원, 즉 이곳에 옮겨와 복원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20년 전인 2004년에 받아 온 리플릿을 스캔해보았다. 

 

오후 1시 30분. 구마모토 시내의 모 식당에서 어떤 메뉴의 식사로 점심을 해결하였다고 한다.

구마모토 시내에는 일본의 3대 성의 하나로 꼽히는 구마모토 성이 있다고 하는데, 다음 기회가 가보기로 했다. 


2시 30분. 왔다. 阿蘇山 草千里 쿠사센리...

 

주차장 바로 앞으로 커다란 호수가 들어찬 넓은 분지가 보인다. 12월이었다. 이곳의 지명 草千里는 풀밭이 넓다는 것을 과장하여 천리에 이른다고 표현한 것이다. 푸르지는 않지만 풀밭은 풀밭이다. 아소산에 딸린 기생화산의 분화구였다.

 

아소산은 세계 최대의 분화구를 가진 복식 화산이다. 정상부의 6개의 크레이터가 존재한다. 살아 있다.

아소산 외곽의 동서 길이가 18km, 남북 24km, 둘레가 128km로 면적인 380제곱 킬로미터에 이른다. 화구에서 계속 분연을 뿜어내고 있는 이 화산은 용암 분출이나 대폭발은 없지만 중소 규모의 폭발은 자주 되풀이 되고 있다. 정상 광장에 오르면 둘레 4km, 깊이 100m에 이르는 밑바닥의 끓어오르는 모습을 살필 수도 있었다.

정상광장에도 주차장이 있는데 그곳으로 가질 않고 이 아래 주차장에 정차하고 내려 놓았을까...

언덕 위로 올라가 본다.

 

연기가 뿜뿜... 보고 있으니 좀 무서워지더라...

 

날 좋을 때인 4~11월 사이에는 이곳에 와서 말타고 놀 수 있는 승마클럽이 주차장 바로 옆에 있다. 2023년에 자료를 정리하면서 보니... 주차장 바로 옆에 화산박물관도 보인다. 그때는.... 머 했니!!!?

 

3시. 12호차.

 

오후 6시. 벳푸의 스기노이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식사하고, 쪽발이로 분장을 하고 온천 체험을 했다. 신발도 요상하게 생기고 짧아 불편해서 걷는 모양도 그들처럼 되더라. 굉장히 큰 호텔이었다. 욕탕과 숙소 사이의 통로가 매우 복잡하여 찾는데 애먹었다.

 

728x90
728x90

2009년 1월 18일 일요일이다. 그동안 함께 했던 렌터카를 털고 패키지 여행객 체험을 하는 날이다.

현지 랜드 여행사를 통해 샌프란시스코 1일 투어를 진행하였다. 운전하지 않고 대형 버스를 타고 다니는 여행이 너무나 좋더라~

숙소를 출발하여 오클랜드에서 베이 브리지를 건너 샌프란시스코로 넘어갔다. 가장 높은 전망대를 갖춘 '트윈 픽스'에 올라 샌프란시스코 일대를 조망하였다. 이후 거대한 공원인 '프레지디오'를 거쳐 금문교 '비스타 포인트'를 방문하여 금문교의 이모저모를 알아보았다. 금문교를 건너 '소살리토' 마을을 둘러보고 '피셔맨스 와프'를 구경하면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유명한 고갯길 '러시안 힐'을 걸어보고, '차이나타운'을 지나갔다. 영화 배우 이소룡이 태어난 곳이다. "아뵤~"

베이 브리지를 건너 '버클리 대학교' 교정을 걸으며 유학생 기분을 내보았다.^^; 다시 베이 브리지를 건너와 '유니온 스퀘어'에서 저녁을 먹으며 샌프란시스코의 젊은이들과 호흡을 같이 해보았다. 그렇게 거의 2주일이 될 뻔한 2009년 1월의 미국 서부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날이므로 피곤하여 일찍 조용하게 잠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9시 30분. 베이 브리지를 건너 샌프란시스코에서 숨쉬고 있다.

LA를 떠난 다음에는 거의 미국 서부의 '시골'을 여행하고 다닌 셈이었다. 대도시에 나와보니 느낌이 확 다르다. 마치 다른 나라를 또 여행하는 느낌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캘리포니아에서 4번째, 미국 전체에서는 14번째로 큰 대도시이다. 1821년 스페인에서 독립하면서 멕시코의 영토가 되었는데, 미국이 전쟁을 통해 먹고는 1847년에 샌프란시스코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1848년에 새크라멘토 부근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Gold Rush를 통한 서부 개척 붐을 타고 샌프란시스코는 급성장하였다. 이때 쏟아져들어온 금광채굴업자를 가리키는 신조어로 "'49ERS"라는 신조어도 당시에 생겨났다. 1849년에 금을 찾아 몰려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데스밸리에 묵었던 숙소인 Stovepipe Wells Hotel 건물에서도 볼 수 있었던 표현이었다.

그렇게 급성장하던 샌프란시스코는 1906년에 대지진과 이에 따른 화재로 도시의 대부분이 일시에 파괴되었다. 환태평양 조산대의 산 안드레아 단층선이 지나는 곳이기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이후 도시 재건이 이루어졌는데, 지진 피해 방지를 위한 여러가지 고민이 반영되었다.

일반 주택들은 높게 짓지 않고, 목조 주택이 많으며, 집과 집 사이를 일정 간격을 두고 떨어지게 건축하였다. 주택의 채색은 행정당국에서 추천하는 따뜻한 느낌의 파스텔톤을 대부분 선택하고 있었다.

 

창문을 돌출시킨 주택들이 많은데, 침실로 가능하면 오랜 시간 햇빛이 들어오게 만드는 설계방식이라고 한다. 샌프란시스코는 전반적으로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지만, 여름철에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안개로 인해 도시 상층부가 안개에 가려지는 날이 많아 한조각의 햇볕이라도 아쉽기 때문일 것이다.

 

wikipedia에서 검색하여 빌린 사진이다. 태평양 안개와 함께 하는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이 대충 이렇다.

(사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an_Francisco_fog)

 

하지만 땅값이 비싼 다운타운이나 부근에서는 한뼘의 땅이 아쉬워 건물과 건물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러면서도 돌출식 창문은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9시 40분. 트윈 픽스에 도착하였다. Eureka Peak, Noe Peak 두개의 봉우리가 있어서 Twin Peaks이다. 앞쪽에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샌프란시스코 하늘 위로 스모그가 상당하다.

 

코 앞의 도심지가 이렇게 보인다.

 

트윈 픽스를 오르는 꼬부랑길과 가까운 지역만 구별될 정도로 스모그가 심했다. 2009년 1월 18일에는...

 

경사지를 빼곡하게 채우고 주택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언덕길 도시이다.

 

그래서 그러한 언덕길에서도 무난하게 움직일 수 있는 교통수단인 전차가 여전히 대중교통수단으로 중요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트윈 픽스 아래로부터 금문교까지의 공간 대부분이 Presidio of San Francisco에 해당할 정도로 광활한 공원이다.

1776년 스페인 군의 주둔지였다가 1846년부터 미군이 지배하면서 여러가지 용도로 이용하던 동서 10km, 남북 1.2km의 거대한 공원이다. 골드 러쉬 이후 금이 쏟아져 나오면서 동부의 뉴욕과 경쟁 의식이 생겼고 센트럴 파크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자 그것과 비교될만한 도심 공원을 기획하고 추진하였다. 아무 것도 자라지 않는 황무지였던 땅에 1m 이상의 흙을 퍼다가 덮어서 조성했다고 하니.... 대단하다.

 

10시 30분. 금문교의 비스타 포인트에 도착하였다. Gold Gate Bridge의 남단에 위치한다.

 

1937년에 저딴 쇠줄을 만들어 샌프란시스코 만의 입구에 위치한 1해협의 남북 사이를 연결하는 2,789m의 현수교를 건설하였다.  92.4cm 굵기의 쇠줄이라니.... 대단하다~

 

Joseph Strauss의 지휘하에 이 거대한 작품이 실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을 기념하여 동상이 비스타 포인트에 전시되어 있다.

 

이 멋진 다리를 1937년에 만들었다고 한다. 대단한 것이다. 건설 당시 미 해군에서 다리 밑으로 군함이 마구마구 지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어서 이렇게 높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교량 중앙부의 높이가 해수면에서 66m 나 된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아 사진을 남겨 기념하기로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었다. 지나가는...

 

금문교를 걸어서 건너려는 싸모님.

 

Vista Point에 star spangled banner가 바람에 휘날린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만 안쪽으로 조 앞에 알카트라즈 섬이 보인다. "피셔맨스 워프"에서 배타고 건너가 방문할 수 있어 원래의 일정에는 그렇게 예정되어 있었지만, 일정이 변경되어 그냥 멀리서 바라만 보기로 한다. 영화 "The Rock"를 통해서 곳곳을 헤메고 다닌 듯한 느낌을 갖고 있으니까.......

 

1.6km만 걸어가면 된다. 부지런히 가면 겨우 40분 정도 걸린다. 가자~~~

 

11시 30분. 금문교를 건너와 Marin County의 Sausalito를 방문하였다. 고급 주택 동네라고 한다. 집보러 왔다.

 

뭔가 그냥 상가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여유를 즐기는 동네 주민.

 

우리 동네 모습이다. 안개도 잘 안끼고 동향이라 볕이 잘 들어 집값이 좀 쎄다. 우리 동네다.

 

우리 동네는 요트 하나 정도는 다들 갖고 논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일요일엔 요트를 타고 논다~~

 

어디에 정박해두었는지 찾기 귀찮으면 그냥 하나 더 산다. 까짓!!!

 

다.... 개꿈이다.

 

12시 20분. 샌프란시스코로 다시 돌아왔다. 비탈길을 달려 올라가는 전차 구경을 한다.

 

12시 30분. 어부들의 선창가 Fisherman''s Wharf에 왔다. 커다란 게 마크를 상징으로 한다.

 

피셔맨스 워프 근처 동네 주민들.

 

39번 부두를 떠나는 유람선, 39번 부두를 지키는 물개들.

 

알카트라즈에 가보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동네 사람들...

 

봤으니까 '가' 본 것으로 친다. 요트도 타보았으니까...

섬 이름은 1775년에 이곳에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왔을 때 펠리컨들이 잔뜩 살고 있어서 'La Isla de los Alcatraces(펠리컨의 섬)'이라고 이름붙인 것에 유래한다. 처음에는 등대로 이용하다가 1850년대부터 감옥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 중에는 요새 기능을 하였는데, 전쟁포로를 수용하면서 악명이 자자하게 되었다. 1909년부터 미육군의 장기수 형무소로 이용되었다. 1930년대부터는 강력범죄자를 수용하다가 1963년에 감옥이 폐쇄되었다. 알카트라즈 섬의 이명이 'The Rock'이었는데, 영화 제목으로도 사용되었다.

 

어부의 선창가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동네 어부들.

 

2시 30분. Russian Hill을 찾아가는 동네 사람들.

 

이런... 이 동네 사람들은 역주행 정도야.... 다반사? 아니구나. 저쪽이 앞이구나. 정상 주행이구나.

 

여기다 여기. 운전 면허증 발급은 이런데서 해야 돼~

 

러시아 선원들의 무덤이 있다고 하여 Russian Hill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장이라도 운전을 해보고 싶어지는 코스다. 

 

다운 힐~~~~

 

오후 2시 40분. 전차가 지나간다.

 

또 지나간다. 원래 저리 매달려서 가는 것인가보다.

 

공원에서 햇볕을 즐기는 스킨들...

 

어부의 선창가을 출발하여 차이나타운을 지나가는데 사진을 하나도 남기질 못했다. 나는 사진을 남기질 못했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은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

베이 브리지를 건너갔다.

 

4시 10분. 버클리 대학생들.

 

버클리 대학생들은 버클리 대학에서 버클리 전화기를 사용한다.

 

방학 중인데도 학교에 나와 있는 UC. 버클리 유학생들.

 

오후 5시 10분. 베이 브리지를 또 건너간다. 저 멀리 보이는 '골든 게이트 브리지'.

 

5시 40분. 유니온 스퀘어를 즐기다.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ead..........

 

 

1월 19일 월요일에 호텔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해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으로 이동하였다.

9시 35분에 탑승 수속을 하고 싱가폴 항공의 SQ015편으로 12시 35분에 날아올랐다.

 

12시간 50분을 휘잉 날아왔다.

 

날짜 변경선을 통과하니....

2009년 1월 20일 화요일 오후 6시 25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해단 및 해산, 그리고 귀가.


많은 것이 바뀌었더라. 2009년 사진 속의 많은 숙소가 사라졌다. 식당들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고...

심지어 항공편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인천으로 날아왔던 항공편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온다. 국제 항공편도 수시로 생기고 사라지고 하는 것 같다.

싱가포르에서 샌프란시스코를 운항하면서 인천공항을 경유하는 노선이 SQ015/SQ016 편이었는데 2016년 10월에 직항 노선을 개설하면서 인천을 경유하는 운항편은 없앴다. 대신 인천을 경유하던 노선은 편명을 SQ7/SQ8로 바꾸고 최종 목적지를 로스앤젤레스로 변경했었다. 지금은 다시 홍콩과 싱가포르 사이만 운행하는 편명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인천과 샌프란시스코의 직항편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유나이티드 항공 만 검색된다. TMI...^^

728x90
728x90

2009년 1월 17일은 토요일이었다. 바닷가로 놀러나가는 날이었다.^^

실리콘 밸리로 달려가 구경을 하고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스탠포드 대학교 투어를 하기로 원래 일정이 짜여져 있었다.

그런데 일정을 변경하여 몬터레이 해변 구경을 하고 가자는 안이 채택되었다. 그래서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인 '17-마일 드라이브' 해변의 몇 개 포인트를 방문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실리콘 밸리의 냄새를 좀 맡고 샌프란시스코의 숙소로 이동하였다. 겨우 280마일 정도 거리였다.

 

2009년 1월 17일 토요일 아침 7시 30분. 지난 밤 늦게 들어와 하룻밤 신세진 숙소에 아침햇살이 들기 시작한다.

당시 일정표에는 Water Tree Inn Hotel이라고 되어 있다. 지금 지도에서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다. Fresno City Inn으로 상호가 바뀌었더라. 

바로 옆에 한식당 '가야' 사진이 남아 있다. 지금도 영업 중이다. 바로 옆의 호텔은 주인이 바뀌었는데, 가야 바베큐는 계속 살아 있다. 와우!!!

 

프레즈노의 아침. 우리와의 이별 준비를 하고 있다.

프레즈노는 캘리포니아 중앙분지 남부의 최대 경제, 상업 중심지로서 인구가 약 50만 명이며, 캘리포니아에서 6번째로 큰 도시이다. 1872년 철도가 개통되면서 성장하기 시작하여 1880년대 관개시설이 정비되면서 농업 중심지로 급성장하였다.

겨울 기온은 영하로 떨어지지 않고 선선한 정도인데, 여름은 섭씨 38도 정도까지 올라 미국에서 더운 도시 4곳 중의 하나로 꼽힌다.

남동쪽의 Sequoia National Park, Kings Canyon National Park가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에 있는 Yosemite National Park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들린다.

 

8시 50분. 프레즈노를 출발하여 서쪽으로 태평양으로 달린다. 멋지다, 안개!!!!

앞서가는 캠핑카도 안개 속을 달리고 있고, 뒤따라 오는 차량들도 안개 속을 달린다.

 

10시 50분. 몬터레이 만 남쪽에 위치한 몬터레이 시의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몬터레이 반도의 '17-Mile Drive' 코스를 찾아왔다.

멋진 곳이므로 아무나 들어오게 두질 않는다. 입장료를 받고 있으며, 넓은 지역에 도로가 많아 요금소가 다섯 군데 위치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1번 고속도로를 통해 달려왔기에 '1번 고속도로 게이트'를 통해 입장하였다.

입장료는 1인당 11.25달러를 받고 있다. 그런데 해변의 식당에서 35달러 이상을 소비하면 입장료를 환불해준다고 되어 있다. 돈을 쓰고 가던지 돈을 내고 가던지 선택할 수 있다.^^

 

17-Mile Drive 지도와 각 포인트에 대한 안내 자료이다.

 

Highway 1 Gate로부터 점심 식사를 했던 식당까지의 이동 코스를 지도에 정리해보았다.

 

11시. 아드님이 차에서 총알같이 튀어나가 달려들어가고 있는 건물은?

 

몬터레이 반도의 한가운데 위치한 멋진 Poppy Hiils Golf Course에 위치한 근사한 식당이었다. 아드님은 근사한 화장실을 찾아 뛰어들어간 것이다.

 

11시 30분. 안내지도에서 18번으로 표시된 Pescadero Point부터 역순으로 돌기로 했다. 표지판을 큼지막하게 설치해두어 찾기 쉽게 되어 있다.

 

파도가 부서지는 암석 해안을 따라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자리잡고 있다.

 

파식대의 암초 위로 파도가 하얗게 부서진다. 소리도 좋고 경치도 좋은 곳이다. 해풍과 강한 햇볕 때문에 나뭇가지는 뒤틀리고 껍데기는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이 친구를 Ghost Tree라 하더라.

 

11시 50분. 14번 Cypress Point Lookout. 몬터레이 사이프러스는 이 동네에서만 자라는 독특한 종이라고 한다. 21m 높이까지 자라는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파도에 날리는 짠내나는 물보라가 해풍을 타고 육지로 밀려들고 있다. 이 사진을 보니 여기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12시. 7번 Point Joe에 넓은 주차장이 있어서 멈추었다.

 

옛날에 실수로 이곳을 몬터레이 만으로 들어가는 코스로 잘못 알고 배를 쳐박는 경우가 종종 있었단다. 그래서 이러한 지명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항상 파도가 쎄기 때문에 바다 위의 파도치는 구간을 6번. The Restless Sea라고 하여 전망 리스트에 포함시키고 있다.

 

융기 작용을 받은 해안 단구 지형이 나타난다. 파도가 좋으니 그것을 즐기는 써퍼가 보인다. 재밌겠다.

 

엄마의 썬글래스를 훔친 아드님 뒤로 파도가 거세다. 몬터레이 해변의 아드님...

 

지오트립 '1호차'와 썬글래스 착용한 '유일' 아드님.

 

스패니쉬 베이 일대에는 사빈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 쌓인 해안 사구 지형이 나타난다. 

 

해풍이 거세어 나뭇가지들이 내륙 쪽으로 누워있는 편향수(편형수)들이 많이 나타난다. 모래가 많아 잔디를 키워 골프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아들에게서 썬글래스를 되찾은 해변의 싸모님...

 

5번 Spanish Bay. 해변의 아드님이 너무 재밌어하네.

 

파도 좋다~~

 

12시 40분. 해변의 맥더널드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맛있게 배를 채우고 나온 사람들의 얼굴이 포만감에 커보인다. 지금 찾아보니 건물이 달라졌더라.

 

1시 30분. 집행부 중진 긴급 회의. 일정과 코스 운영에 대해 논의 중이었다.

 

오후 2시 50분. 1번 고속도로에서 101번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달리고 있다. Silicon Valley Blvd 표지판이 보인다. 실리콘 밸리가 코앞이다. 1마일 남았다.

 

도로 표지판 보면 다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샌프란시스코 공항 청사에 붙어 있다. 실리콘 밸리 지도. Welcome to the Center of World Technology.

실리콘 밸리는 샌프란시스코 반도 초입에 위치한 산타클라라 일대의 첨단기술 연구단지를 가리키는데, 팰러앨토 시에서 세너제이 시까지 길이 48km, 너비 16km의 띠 모양으로 전개되어 있다. 12~3월을 제외하고는 연중 비가 내리지 않아 전자 산업에 이상적인 환경인데다가, 가까운 곳에 스탠퍼드, 버클리, 산타클라라 대학 등 명문 대학들이 있어 우수한 인재의 공급이 원활하다는 조건도 갖추었다. 

 

그런 다른 세상 같은 실리콘 밸리에 왔다. 그런데 이렇게 야트막한 언덕 위에서 뿌연 하늘을 살펴보려니 실감이 잘 안난다. 구글, 아마존 이런 회사의 창업자들이 나와서 인사해주고 그래야 하는데...ㅎㅎㅎㅎㅎㅎㅎㅎㅎ

 

3시 50분. 그동안의 우리들의 발이 되어 주었던 차량들과 헤어질 때가 가까워졌다. 반납에 맞는 수준으로 기름을 채워넣어야 한다. 주유소 미팅. 주유소 지원 아저씨가 동네 길찾기 도움을 주고 있다.

 

4시 50분. 실리콘 밸리의 코리아타운.

 

저녁 5시 30분. 이 사진이 마지막으로 남은 오늘자 사진이다. 뭐였는지???

코리아타운에서 82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다가 촬영한 사진인 것 같다. 991 W El Camino Real, Sunnyvale, 맞다.

237번 도로로 갈아타고 숙소로 달려간 것으로 보인다. 오클랜드 국제공항 부근에 위치한 Radisson Hotel Oakland Airport.

호텔에 도착하여 일행과 짐을 모두 내려 놓고 랜터카 회사에서 각 차량별로 주운전자로 등록하였던 요원들이 차를 반납하는 수고를 더하여 주었다. 감사~

 

사진을 정리하면서 보니 일정 중에 분명히 있을 것 같은, 있어야 할 것 같은 사진들이 꽤 안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 긴 일정동안 주운전자만 홀로 운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각 팀별로 운전을 서로 품앗이한 것으로 안다. 나도 꽤 무보험 운전을 했던 터라 운전하는 동안 내 카메라에는 사진들이 담기지 않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동하는 중간의 사진들이므로 굳이 찾고 싶지는 않은데, 그랬었다는... 그랬다는...

728x90
728x90

2009년 1월 15일에서 16일로 넘어가는 밤 중에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힘들게 일어나 오늘도 멀고도 먼 길을 달려가야 한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어 태평양 동네로 넘어가야 한다.

지도를 보자. 구글 지도에서 경로 찾기를 통해 만든 경로이다. 155번 도로를 통해 산맥을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경로는 표시해주질 않는다. 저 아래의 178번 도로만 표시가능하다. 후진 구글 지도....ㅎㅎ

데스 밸리의 숙소를 출발하여 COCO 교차로에 있는 휴게소에서 쉬면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했다고 한다. 그리고 원래는 베이커스필드에 방문하여 답사하고 점심 식사를 하는 일정이었는데, 거기 보다는 미국에 왔으니 거대한 미국삼나무, 레드우드, 세쿼이아를 만나보고 가자는 제안이 채택되면서 길이 달라졌다. 이러한 결정에는 미국 국립공원의 입장권을 연간이용권으로 구매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사람 수와 관계없이 차량 숫자로 구매했고, 그 입장권으로 몇 개의 국립공원이든 입장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 더" 입장을 해보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엉터리 미제 네비게이션에 의지하여 어렵게 길을 찾아 골짜기를 달려갔다. 도로가 차단되어 있더라. 교통량도 많지 않으니 Parker Pass를 넘어가는 고갯길에 쌓이는 눈을 매번 치울 수가 없나 보더라. 그래서 그늘에 남아 있는 눈이 빙판으로 변해 사고가 당연히 발생한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사고가 발생하면 한국처럼 왜 내가 사고를 내도록 정부가 방치했냐며 덤벼들 수가 없다. 이 동네에서는 사고 내면 그냥 본인 책임이다. 그래서 위험한 곳에는 더욱 더 차량이 오질 않아 빙판길이 된다. 겨울철에는 그냥 차단되는 고갯이라고 지도에도 나온다. 그런데 그런 길을 '미제 네비게이션'에서는 지나 가라고 안내했다. 이런 암살자!!!

되돌아 나오느라 점심도 간단히 해결할 수 밖에 없었고,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세쿼이아 국립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햇님이 넘어가는 중이었다. 어둠 속에서 세쿼이아를 만났다는 느낌만 갖고 프레즈노의 숙소에 몸을 던졌다.

 

4시 40분. 2009년 1월 16일의 일정을 힘들게 시작하게 되었다. 두 시간이나 잤던가.... 아드님을 깨우기 미안했더라.

 

7시. 숙소를 출발하여 험준한 Panamint  Range를 넘어가다가 Father Crowley Overlook에서 멈추었다. 절벽의 옆으로 도로가 건설되어 있는데 가드레일 같은 첨단 시설은 없다. 큼지막한 돌맹이들을 가져다가 주욱 늘어놓았다.^^

 

파나민트 산맥의 산지 경관. Rainbow Canyon이다.

이곳은 아는 사람들만 아는 사이에 "스타워즈 캐년" 혹은 "제다이 캐년"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다. 스타워즈 영화가 촬영된 것이 아니라 근처의 미군 기지에서 각종 항공기의 여러가지 테스트를 하는 시험장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멋지게 날아가는 오만가지 미군 비행기들이 저공비행을 하기 때문에 아주 가까이에서 촬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아는 사람들은 아는 사람들과 이곳을 찾는다. 이들의 작품은 인터넷에 많이 공개되어 있다. 동영상도 많더라. 드론 절대 금지!!

2019년에 전투기가 계곡에 충돌하면서 조종사는 사망하고 근처의 방문객들이 다치기도 하여 골짜기 통과 훈련이 중단되었었다가 최근에 다시 개방되었다는 소식이 있다. 이곳 훈련장은 1930년대부터 운영되었다고 한다.

2009년 1월 16일 금요일 아침 7시에는 비행기를 볼 수 없었다. 우리가 너무 일찍 지나간 것이다. 

 

지금은 이런 표지판도 만들어 놓았다 하더라. 저 아래 협곡으로 제트기들이 저공비행을 하면서 빠른 속도로 빠져 나가며 조종사와 아이 컨택을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더라...

 

8시 30분. Coso Junction에 있는 주유소 겸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좋았을 것이다. 아마도^^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것으로 치고, 바로 또 달린다.

395번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다가 Bradys에서 14번 도로로 빠졌다. 그리고 Freeman Junction에서 178번 도로로 접어들었다. Scodie Mountains를 지나며 시에라 네바다 산지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9시 30분. 길가에 조슈아 트리가 계속 나타난다.

 

멋진 그러나 쓸쓸해 보이는 주택이 언덕 위로 보였다.

 

10시. 만났다. 에스코트 차량을 만났다. 뒤에 "PILOT CAR, FOLLOW ME"라 적힌 판떼기를 달고 있다. 공사중인 구간이나 기타 등등의 상황에서 천천히 에스코트를 해주는 차량이라 한다. 

 

10시 15분. Weldon에서 Fay Ranch RD 갈림길을 만났다. 우리는 178번을 따라 직진이다.

 

잠시 과로 상태인 차량들을 쉬게 하면서 '소' 구경을 한다.

 

소고기에 관심이 없는 사모님.

 

묘기를 보여주는...

 

10시 30분. 도로 주변에 보이는 산지에 돌맹이들이 노출된 상태를 보인다. 옛날 옛적에 빙하가 밀어다 놓은 것일까??

 

10시 35분. Isabella Lake를 만났다. Wofford Heights라는 동네이다.

Isabella Lake는 해발고도 4,421m인 휘트니 산 일대에서 눈 녹은 물이 흘러 내리는 길이 270km의 Kern 강의 물이 모인 호수이다. 1953년 미 육군 공병대가 이사벨라 댐을 건설하면서 만들어진 인공 호수이다.

 

11시 10분. 오! 화장실!! 각 칸은 모두 공용이다. 알아서 잘 이용하면 된다.

 

11시 30분. 컨 강의 계곡을 따라 건설된  99번 산간도로를 열심히 달려나가고 있는 우리의 캠핑카. 점점 눈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일정 내내 한번도 캠핑카 내부를 구경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출발 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이러한 단체 장거리 여행에서 캠핑카는 쓸모가 없었다. 짐을 많이 실을 수도 없고 여럿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름은 많이 먹고 등등... 고생했다. 캠핑카.

 

11시 35분. Johnsondale의 캠프장을 지나는데 보였다. 99번 도로를 올라왔는데 조 앞에 50번 산간도로부터 "CLOSED". 다른 차량들은 이 표지판을 보지못한 것 같더라. "ALERT"

 

햇볕이 들지 않는 이면 도로로 넘어가면서 도로 거의 전체가 결빙 상태가 무리해서 갈 수가 없었다. 결국 돌아섰다.

내려오면서 뒤돌아보니 "ROAD ENDS"라고 노란색 판떼기에 적혀 있었더라.

 

1시. Wofford Heights의 윗동네인 Kernville 도로변에 위치한 Sierra Gateway Market에 정차하였다.

점심은 각자 마트에서 간단히 구입하여 차량에서 흡입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간편하게.

 

마트가 이 동네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게시판에 각종 광고물이 가득하다.

 

당근마켓 같은 기능도 수행하는가보다. 50인치 평면 대화면 TV도 가져 가라네.

 

2시 40분. Wofford Heights에서 서쪽으로 빠지는 샛길인 155번 도로를 통해 산맥을 넘어왔다.

소가 안보이는 목장 구경을 잠시 하고 가기로 한다. 목장 이름은 못찾았다.

 

아드님은 피곤하시다.

 

3시. 소다. 소들이다. 초원 위의 미국소들이다.

 

어.... 혹시 유명한 그 윈도우 배경화면의 동네???

 

3시 10분. 캘리포니아 오렌지 동네에 왔다. 엄청나다. 

 

몰랐었다. 캘리포니아 오렌지는 아무 한 그루에 이런 식으로 오렌지가 자란다는 것을.... 어우야~

 

캘리포니아의 가공스런 농장을 살피는 답사 대원들.

 

4시 20분이다. 드리 강의 물을 막아 조성된 Lake Kaweah가 보인다. 골짜기 상류로 계속 달린다. 빠르게 달린다.

 

4시 30분. 흐릿하게 우편함에 "The River Inn"이라 쓰여 있는 것이 확대보니 구별된다.  Sierra DR 길을 따라 달리고 있다.

Kaweah River에 East Fork Kaweah River와 North Fork Kaweah River가 합류하는 지점이기에 The Three Rivers라는 지명이 붙은 곳이다. Kaweah River를 따라 올라가는 198번 도로 통해 계속 달리면 Sequoia National Park의 Enterance Station에 이르게 된다. 조금 더 들어가면 방문자 센터와 공원 본부가 있다.

 

4시 50분. Sequoia 국립공원의 Foothills Visitor Center에 도착하였다. 미래의 답사요원들이 살아났다.

 

5시 30분. 늦었지만 올라가보기로 하고 최대한 달려갔다. 하지만.... 멈추었다.

 

저 길 위로 계속 달리면 The Four Guardsmen, General Sherman Tree, Lost Grove, The Big Stump Grove 등등등의 명물을 볼 수 있는데, 시간이 늦어 길이 자꾸 얼기에 고도가 높은 곳으로 더이상 올라가기가 꺼려졌다. 돌아선다.

 

공원의 남문으로 입장하여 도로를 따라 쭈욱 그냥 직진하면서 구경하면 되는 코스로 되어 있다. Generals Highway.

 

사진 참 잘도 찍었다.

 

길가에 혼자 나와 배웅해 주던 코요테 친구.

 

선도하던 캠핑카가 안전한 운전의 시범을 보인다며 곡선 구간에서 좀 심하게 방향을 틀다보니 중앙선을 여러 차례 넘나 들었다. 다른 차량이 음주 운전으로 의심된다고 신고를 했던 모양이다. 어둠 속에서 경찰차가 나타나서 델꼬 갔다.

사정을 설명하고 무사히 풀려나기는 했는데 좀 많이 시간이 지체되었었다.

 

그런 저런 여러가지 일들과 함께 Fresno의 숙소 Water Tree Inn Hotel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었겠지?

숙소 도착 시간도 저녁을 어떻게 해결했는 지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다. 이런.....

다시 보니 이러한 이동은 다시는 못할 강행군이었더라. 14년 젊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728x90
728x90

이곳에서 헤메다 죽은 사람은 없지만 꼭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겨서 Death Valley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마르고사 산맥과 파마민트 산맥 사이의 골짜기이다. 일확천금, '보난자'를 찾아 채굴꾼들이 몰려들던 곳이었지만 이제 거의 고갈되어 모두 떠나고 관광 산업에 기대고 있는 지역이다.

그곳을 2009년 1월 15일 목요일에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데스'의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무사히 귀국하였다.

'스토브파이프 우물 마을'에 있는 숙소를 출발하여 분지 형태인 데스 밸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단테스 피크'를 먼저 찾았다. 다음에 '20 노새 팀 캐년'의 독특한 지형을 감상하고 고도가 가장 낮은 '나쁜 물 분지'까지 걸어보았다. 지표면 상태가 아주 거지같은 '악마의 골프 코스'에서 골프치는 악마를 상상한 다음에 Furnace Creek에 위치한 근사한 식당을 찾아 점심을 근사하게 먹었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다가 타이어가 빵꾸난 차가 있어 방문자 센터 옆에 위치한 주유소에 딸려 있는 자동차 수리점에서 때웠다. 방문자 센터를 방문하였다가 '메스키테 모래 사구'에서 놀면서 하루를 마감했다. 역시 사막은 여유가 절로 생기는 곳이었다. 그리고 캠프 퐈이아~~

 

7시 40분. 데스 밸리의 아침. 사막에서 하루를 보내는 날이다. 여유가 넘치는 날이었다. 꼭두 새벽부터 일어나 졸린 눈으로 핸들을 잡을 필요없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숙소 주변을 천천히 산책할 수 있는 날이었다. 미소, 미소~~

건물에 큼지막하게 "49'ERS"라고 써 있다. '49년도 사람이란 의미를 담은 표현이다. 1849년이다. 골드 러쉬를 통해 1849년에 금광 채굴업자들이 엄청나게 쏟아져들어왔는데, 그들을 가리키는 당시의 신조어였던 것이다. 그때의 분위기를 풍기기 위해 붙여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숙소 앞 도로 변에 이상한 표지판이 있다. 콜로라도 고원에서 2,700여 미터까지 올라갔었는데, 여기는 해수면 높이란다. 태평양에서 록키 산맥 동쪽으로 넘어 온 내륙 지방인데 바다와 같은 높이인 0m 지점이라고 하는 표시이다.

 

이곳은 또한 건조한 사막 환경이 나타난다. 숙소 바로 앞에 Mesquite Flat Sand Dunes라는 이름의 사구 지대가 펼쳐져 있다. 모래 사막이다. 이 일대의 연간 강수량이 평균 50mm 내외의 사막 기후에 해당하며 1913년 7월 10일에 섭씨 57도까지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로 고온 건조한 지방이다.

 

데스 밸리가 이러한 환경을 갖게 된데는 이 지역의 지형적 요인이 크다.

태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 지방이기 때문에 강수량이 적은 것이다. 또한 바다와 사이에 높은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태평양 쪽에서 높은 산맥을 넘어 불어 오는 바람이 고온 건조한 성질로 바뀌어버리는 푄 현상의 영향을 받아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적은 기후가 나타난다. 

 

해발고도 1,669m 지점인 '단테스 뷰'에서 조망한 데스 밸리 일대의 모습이다. 국지적으로 데스 밸리는 사진 왼쪽의 페너민트 산맥과 오른쪽의 아마르고사 산맥 사이에 단층작용으로 형성된 지구대의 골짜기(地溝谷)이다.

이 데스 밸리 골짜기의 너비는 6~25km, 길이는 225km 정도로 크지 않은 규모이다. 그래서 이 '데스' 밸리에서 진짜로 '데스'에 이른 사례는 아직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온이 50도 이상까지 상승하여 동물들이 가끔 쓰러지는 경우가 있어 '죽음의 골짜기'라는 이름에 붙게 된 것이다.

죽음으로 채워진 세상인 하지만 실제로는 선인장을 비롯한 다양한 사막 식생들이 자라고 있으며, 여우, 쥐, 다람쥐 등의 포유 동물들도 서식하고 있다. 특히 뿔도마뱀이 유명하며 방울뱀을 조심하라는 경고판도 있다.

 

8시가 넘어 천천히 답사를 시작한다.

메마른 땅 사막이지만 의외로 지표 지형의 흔적은 물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주변에 보이는 돌맹이들이 각진 상태라면 그 지역은 흐르는 물에 의한 지형 형성 작용이 약한 상태이다.

하지만 아래 사진에서 아드님이 답사 중인 지역처럼 돌맹이들이 둥글게 마모된 상태로 나타난다면 흐르는 물, 유수에 의한 지형 형성 작용이 활발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지표는 메말라 있지만 물이 흐른 흔적이 많이 보인다.

 

건조 환경의 경사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퇴적 지형인 선상지가 아주 많이 나타나는 데스 밸리이다.

 

현재 '흐르는 물'은 없지만 '흘렀던 물'에 의해 만들어진 작은 골짜기들이 도로 주변에 자주 나타난다.

 

8시 40분. 낮에 기온이 미친듯이 올라가는 동네이기 때문에 지명으로 '용광로'를 선택했다. Furnace Creek에 있는 멋진 숙소, Furnace Creek Inn은 이 지역을 방문한 사람들을 위해 식당 영업도 하고 있다.

 

9시 10분. Death Valley를 살피기 위해 찾는 장소인 Dante's View를 찾았다. 도로 포장이 되어 있어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가장 높은 지점인 Dante's Peak는 해발고도 1,669m에 이른다.

 

데스 밸리의 모습. 멋진 일몰 장면도 볼 수 있다는 곳이다.

 

데스 밸리의 분지 바닥을 보니 익숙한 지형에 눈에 들어왔다.

경사가 급한 산지의 사면을 흘러내리는 골짜기 아래에 잘 만들어질 수 있는 지형인 扇狀地이다. 그림처럼 부채꼴로 만들어져 있다.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물에 의해 운반된 토사가 퇴적되어 만들어지는 퇴적 지형이다.

 

이 사진 속의 지형이다. 미국의 지형학 교재에 많이 사용되었다. Geomorphology, Natural Geography 교재에서 많이 보았던 사진이다. 선상지의 교과서.

(사진 출처: https://www.marlimillerphoto.com/Dep-03.html)

 

골짜기 바닥에 하얗게 보이는 것은 염분 때문이다. 아주 가끔 내리는 비 혹은 산지에 내린 눈이 내린 물이 흘러내렸다가 용광로의 불길 같은 더위에 증발하면서 염분 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이지만 마실 수 없다. 그래서 'Bad Water'라는 지명이 만들어졌다. Bad Water Basin, '나쁜 물 분지'이다.^^

 

반대편의 산지인 Panamint Range. 해발고도 2,763m인 Wildrose Peak 정상 부분도 하얗게 보인다. 겨울철임에도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기 때문이다.^^

 

높은 산지는 눈이 쌓여 있어 하얗고, 저지대의 바닥은 소금기 때문에 하얀 동네인 데스 밸리.

 

단테스 피크에서 데스 밸리에 빠져있는 답사대원들.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단테의 '신곡'에 묘사된 지옥 풍경을 찾아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전망이 아주 멋진 곳이다.

영화 '스타워즈 IV'에서 오비완과 스카이워커가 모스 아이슬리를 내려다보는 장면이 '단테스 뷰'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영화 볼 때는 몰랐었다.

 

산 꼭대기의 돌들은 아주 날카롭다. 암석이 그자리에서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부서지는 기계적 풍화 작용의 산물이다. 이 조각들이 바람이나 물길을 따라 이동하게 되면 다른 모래나 돌들과 서로 부딪히면서 표면이 부서지면서 점차 둥글게 변할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계속 햇살을 받으면서 산화되어 붉은 빛을 띠고 있는 암석.

 

답사대원들의 눈은 빛나고 카메라는 바쁘다. 건너편 산지의 사면을 따라 流水의 퇴적 및 침식 작용 흔적이 뚜렷하게 보인다.

 

9시 50분. 단테스 피크를 출발하여 하산하던 길에 잠시 멈추었다.

 

주변에 보이는 사막 식생을 관찰하였다.

 

건조 사면에서 流水가 어떤 지형 변화 작용을 일으키는지 관찰하였다.

 

도로 주변에 나타나는 암석의 풍화 상태를 조사하였다.

 

도로 주변에 두껍게 쌓여 있는 둥글 돌이 많이 포함된 층은 流水에 의해 형성된 것이며, 이렇게 경사도가 낮은 지역에 어떻게 이런 두꺼운 퇴적층이 형성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하였다.

 

뜨거운 햇볕을 받아 암석의 표면의 철분이 산화되면서 색이 변한 사례를 조사하였다. 동전은 아직 산화 안되었다.

 

햇볕에 드러난 쪽은 검은 색으로 산화 코딩되었는데, 돌의 바닥은 원래 색깔을 유지한다. 주변엔 2009년형 핸드폰이 놓여 있었다.

 

폐광의 광산 설비가 그냥 버려져 녹슬고 있다.

 

American Borate Company Boraxo Mine이다. Borate는 붕산염이다. 붕산염은 화학 시약이나 에나멜 생산, 로켓 제조에 사용된다고 한다. 붕사를 채굴하는 광산이다.

 

10시 30분. Zabriskie Point에서 멈추었다. 주변과 구별되는 독특한 색깔을 가진 침식 지형이 보이는 곳이다.

 

Twenty Mule Team Canyon이 있는 곳이다. 천만년 전 쯤에 호수 바닥에 쌓였던 진흙의 흔적이 남은 것이다.

이곳에서 채굴한 붕사와 석고 광물을 커다란 마차에 가득 싣고 운반했던 수단이 Twenty Mule Team이었고, 그것이 지명으로 남았다. 18마리의 노새와 두 마리의 말이 하나의 팀이 되어 마차를 끌었다고 한다. 가까운 기차역까지 모하비 사막을 가로질러 266km의 거리를 달렸다. 고된 길이었으리라.

20 노새 팀의 운송 장면을 보여주는 당시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다양한 색채를 가진 이곳의 경관은 '지구적'이 아니라 '우주적'이다.

그래서 영화 "스타 워스 VI"편의 촬영지로 이용되기도 했단다. R2D2와 C-3PO가 솔로를 구하기 위한 스카이워커의 작전에 따라 자바더헛의 궁전을 찾아가는 장면... 영화 볼 때는 몰랐었다.

스타워스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는 촬영이 허가되었으나, 지금은 공원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더이상 영화 촬영을 허가해주지 않는다고 하니 이곳에서 영화 촬영할 생각은 하지 마시라~

 

그래서......

 

그냥 갔다......

 

11시 20분. Badwater Basin을 방문하였다.

 

Stoepipe Wells Hotel 주변에는 해수면 높이라는 표지가 있었다. 이곳은 해수면보다 85.5m가 더 낮다는 표지판이 있다.

 

북 아메리카에서 가장 지대가 낮은 곳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흐를 수 있는 물을 모두 이곳으로 흘러들고 뜨거운 햇볕에 증발되어 소금밭을 이룬다.

 

소금밭을 踏査하는 인파.

 

배드워터 분지의 바닥에 깔린 소금에는 흙과 모래도 많이 섞여 있는데, 사람들이 왕복하며 밟은 부분은 하얗게 빛나고 있다.

 

모래 바닥. 녹아 있던 염분이 결정화되면서 부피가 늘어 다각형 모양으로 갈라진다.

 

그렇게 표면이 부서진다.

 

낮에 소금밭 위를 걷는 것은 쉽지 않다. 얼마나 쉽지 않은지 아드님의 얼굴에 써 있다. 표면 온도는 한여름에 섭씨 93도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고 한다. 한여름이 아닌 한겨울이라 다행이었다.

 

햇볕이 그렇게 뜨거운데도 저지대에는 물기가 있다. 마시면 안되는 '나쁜물' bad water.^^

 

소금기 가득하고 먼지가 날리는 곳에 예쁜 차가.....

 

12. 아마르고사 산지 Amargos Range에서 유수의 운반 작용으로 지형이 변하고 있는 포인트를 찾았다.

 

지면의 구성물질의 종류와 상태, 크기를 조사하고 있는 답사대원들.

 

건조 환경에서의 강수는 양은 적지만 폭우인 경우가 많고, 지표면의 상태가 거칠기 때문에 습윤 기후 지역에서 비가 내릴 때에 비해 쉽게 지표면의 많은 물질이 저지대로 격하게 운반된다. 그 흔적을 답사대원들이 흩어져 살피고 있다.

 

선상지의 곡구 부분에서 아래의 선단 방향을 바라본 모습. 바닥의 돌멩이들이 살짝 둥글게 깎여 있고, 그 사이로 물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돌멩이는 가열되었다가 식었다가 혹은 얼었다가 녹았다를 반복하면 부서진다고 한다. 기계적 풍화작용이라 한다. 인간이 보기에는 저절로 부서지는 것이다.

 

아스팔트도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지날 때마다 "저절로" 부서진다. 계속 보수 작업이 필요하다.

 

배드워터 분지 부근에 '악마의 골프장'이 있다. Devils Golf Course.

 

워낙 메마른 환경이라 지표면의 수분이 빠르게 증발하면서 모세관 현상에 의해 빨려 올라오는 즉시 계속 증발되어 소금기의 결정화가 이루어지면서 대단히 불규칙한 기복의 지표 지형을 형성하였다.

 

아들아, 골프장에 왔으니 골프 한 게임 치자!!!!!!!

 

싫은데여!!!!!!

 

이리 왔!!!! 엄니가 하자면 해야지!!!!!

 

자자자.... 여러분들, 함께 골프장의 소금을 정돈합시다.

 

워메~~ 공 굴러가유~~~~

 

악마의 골프장에서 골프 치러 왔다가 빵꾸난 차.

여기선 보험사에 전화해도 '긴급출동' 써비스가 작동하지 않는다. 기사들이 직접 땀 흘려 긴급 보수.

 

오후 1시 10분. 밥 먹고 합시다~~

 

뭐 먹고??

 

'용광로 개울 여관'은 딴 세상이다. 사막 속의 오아시스 같다. 

 

3시. Furnace Creek Visitor Center 옆에 주유소가 있고 자동차 수리점이 있다. 그곳에서 빵꾸 때우는 중이다. 수리비가 40달러였는데, 렌터카는 일반차량에 비해 두배의 수리비를 청구한다고 말하면서 청구했다고 하는 소문이 있다.

작업자가 바퀴의 상태를 보더니 당장 새것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렌터카라고 하니 그냥 성심성의껏 꼼꼼하게 수리를 해주었다고...

 

3시 15분. 해저 58m에 위치한 방문자 센터를 방문하였다. 

 

4시 20분. Mesquite Flat Sand Dunes를 찾아갔다. 메스키트는 멕시코 북부에서 미국 서남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콩과 식물의 이름이다.

 

사막의 사구가 그리는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시선과 정신을 빨아들이는 듯하다.

영화 '스타 워스 IV'에서 다스베이더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R2D2와 C-3PO가 착륙하여 걸어가는 사구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영화 볼 때는 몰랐었다.

 

이곳의 지명이 유래된 포인트이다. Stovepipe Wells에 일행이 앉아 쉬고 있다. 

 

메말라서 이제는 물이 나오지 않는 우물이다. 물은 사라지고 Old Stovepipe Wells라는 이름만 남았다.

 

캘리포니아의 사막에 널리 퍼져있는 다년생 초본류인 Hilaria Rigida가 이곳저곳에 보인다. 바람에 날리려는 모래를 잡아두어 주변보다 높게 모래가 쌓여 있다.

 

날아가려는 아드님을 잡았다.

 

사구 위에서 사막을 즐기는 사람들.

 

놀고 있다.

 

신발에 모래가 잔뜩 들어가도록, 해가 지도록 사구를 즐겼다.

 

그리고 스토브파이프 웰즈의 캠프 그라운드를 찾았다.

 

그리고 불을 피웠다. 고기를 익혔다.

 

익힌 고기를 나누었다. 담소도 나누었다.

 

함께 마셨다. 아드님도 자작하며 마셨다.

 

그리고 김밥도 먹었다. 데스 밸리에서^^

 

헌데.... 정신줄은 나갔다~~~

남아 있는 사진에 찍힌 시간 봐라~~~ 저 시간까지 어데서 뭐했지??

728x90
728x90

2009년 1월 14일에도 엄청나게 장거리를 달렸다. 투사얀에서 데스밸리까지 426마일을 달렸다. 7시간 20분 거리를 달렸다.

Seligman 초입의 주유소에서 차량들의 배를 채워주고 후버댐과 레드록 캐년을 답사하였다. 점심은 라스베가스 시내의 '김치'라는 곳에서 맛있게 먹었다. 인공적인 불빛이 전혀 없는 데스밸리의 도로를 달라다가 길바닥에 누원 바라본 하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에나! 하늘에 별이 그렇게 많다니!!!  미국은 뭐든 크고, 많다!!!!!

 

그랜드 캐년에서 라스베가스를 지나 서쪽으로 데스밸리까지 자동차로 죽어라 달려야 하는 날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달려야 한다. 일단 국제운전면허증은 모두 갖추고 왔으므로 적절히 교대해가면서 달렸다.

5시 30분에 기상하여 정비하고 6시 30분에 식사하고, 7시 10분에 투사얀의 그랜드캐년 플라자 호텔을 출발하여 달린다. 이 동네 사람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는구나.

 

대기가 안정적인 이른 아침에 종종 나타나는 기온역전층이 형성된 동네를 지난다. 눈싸인 고원의 고지대에서 차갑게 냉각된 공기가 고도가 낮은 곳으로 서서히 이동하여 저지대에 찬공기가 모이는 경우에 잘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의 도로를 달리는 트럭들이 엄청 크다. 트러커들의 세상. 모두 옵티머스 프라임으로 보인다.

 

8시 10분. 40번 고속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다가 Saligman 이란 작은 마을에서 주유소 겸 휴게소로 빠져나왔다.

 

차는 주유구 앞으로, 사람은 휴게소로.

 

셀프로 해결해야 한다. Regular, Plus, Premium의 세 종류 중에 선택한다.

 

거대한 송전탑이다. 후버댐에서 만들어진 신선한 수력전기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10시 30분. 후버댐 입구의 검문소. 검문검색의 나라.

 

후버댐이다. 

 

후버댐에 갔었더래요.

 

후버댐 탐구자들.

 

탐구자들은 저수지의 수면 윗쪽 색깔이 다르게 나타나는 원인에 대해 심도깊게 의견을 나누었다.^^ 

 

후버댐은 자동차 통행이 허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교통량이 많아 체증이 발생한다.

 

그래서 2009년에 저 윗쪽으로 통과하는 교량을 건설하고 있더라. 2023년에는 Mike O'CallaghanPat Tillman Memorial Bridge 라는 긴 이름의 다리가 완공되어 잘 사용되고 있다.

 

후버 댐 역시 글렌캐년 댐과 마찬가지로 강한 수압을 견디기 위한 구조를 갖고 있다.

 

두 손 들고 벌서는 자세의 기념 조형물.

 

댐, 하부에 위치한 발전 시설. 댐의 기저부 너비가 200m, 높이는 221m의 댐이다.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1936년에 완공시키고 '볼더 댐'이라 하였으나, 1947년에 31대 대통령 후버의 이름을 따서 개칭되었다.

 

후버댐 지하 시설을 살피는 투어 상품이 있더라. 안내센터를 둘러보는데 입장료를 1인당 11달러 씩이나 내놓으라 하더라. 이런 산적들......

 

그냥 지상의 시설만 살피고 투어를 마감했다.

 

12시. 달린다. 사막 한가운데 녹지와 함께 조성되어 있는 멋진 주택단지.

 

12시 30분. 라스베가스의 트램 스테이션. 만달레이 베이, 룩소르 등지로 모셔간단다.

 

트램이 날아간다.

 

이거다 이거. 라스베가스에 오면 공항에서부터 리무진 서비스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ㅠ.ㅠ

 

낮에 보는 미라지 호텔이 어색하다. 트럼프도 보인다.

 

12시 40분. 왔다. 라스베가스에 두번째 왔다.  '김치'에 왔다.

 

아들은 김치를 좋아한다. 신났다.

 

4시. 왔다. 레드롹 캐년에 왔다. 원래의 일정표에는 나흘 전에 방문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LA에서 라스베가스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 일정을 조정한 것 같다.

오래된 암석이 지층의 아래에, 신선한 암석은 지층의 위에 위치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쌓이면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Red Rock Canyon에서는 단층 작용에 의해 뒤집어졌다. 약 65백만년 전 쯤 충상단층 thrust faults 작용이 북 아메리카 서부 지역에서 대규모로 발생하였다. 그 결과 이곳 레드록 캐년에서는 오래된 회색의 대리석이 보다 나중에 형성된 적색 사암보다 위에 위치하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아주 보기 드문 현상이니 볼만 할 것이다.

 

드라이브 코스는 일방 통행이다. 방문자 센터에서 진입하여 출구로 이동하며 지형 경관의 답사를 진행하였다.

 

위 지도의 Calico Point. 적색의 사암층 위에 잿빛의  대리석 층이 위치한다. 지층의 순서가 완벽하게 역전된 것이다.

 

대리석 층 부위가 침식으로 제거된 부분에서는 적색 사암만 드러나 있기도 하다. 그래서 Red Rock Canyon이다.

 

Sandstone Quarry Point. 사암이 적색만 있는 것은 아니다.

 

레드 롹 캐년에서의 한 때를 보내는...

 

 

Highpoint Overlook Point. 라스베가스 언저리에 위치한 레드롹 캐년이었더라.

 

 Red Rock Wash Overlook Point. 애기들이 장난치던 캐년이었다.

 

오후 5시 30분이 넘으니 레드롹 캐년에 해가 넘어간다.

오늘도 해가 있는 동안의 시간을 모두 답사에 활용하였다. 이제 저녁은 굶고 데스밸리의 숙소까지 136 마일을 달려가야 한다. 별 탈없이 무사히 그냥 쭉 달린다면 세시간이면 도착하지 않을까 싶다.

 

여섯 대의 밴과 한 대의 캠핑카로 움직이는 대규모 일행이었다. 서로 떨어지면 소통에 문제가 발생하므로 차량마다 무전기를 한대씩 지급하여 연락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서로 처음 가보는 길을 개척하여 달리는 것이므로 내비게이션을 활용하였다. 그런데 미국이란 나라의 2009년 내비게이션 수준이 2009년 수준이었다. 신호를 놓치기도 하고 내비게이션이 감히 일하다 말고 정신줄을 놓기도 하여 애를 먹었다고 한다. 

해서 데스밸리로 접어들었을 때는 완전히 "자연" 속이었다. 서로 무전기를 통해 소통하며 달리다가 우리팀 자동차의 전조등 말고는 빛이 없는 세상을 우리만 떠들면서 너무도 조용하게 달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길가에 멈추고 모두의 불빛을 껐다. 그러자 드러나는 하늘, 별들로 가득 채워진 하늘이 우리 머리 위에 드러나는 것이었다.

어째 미국 하늘은 이렇게 별도 많은 것이더냐. 설탕이 잔뜩 뿌려진 듯 밝게 빛나는 하늘에 감탄했었다. 운전을 하든 안하든 늦은 시간까지 좁은 차량 안에서 장시간을 이동하면서 쌓인 피로가 모두 사라졌다. 2주일간의 힘든 일정을 소화하면서 이날의 하늘 이야기만 하면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웃음이...

데스밸리(Death Valley National Park)의 Stovepipe Wells Hotel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었나보다 늦게 도착하니 양해를 계속 구했나보다. 밤 8시반에 도착하여 저녁을 내놓으라 했었다.^^ 미안하여 식사 후에 서비스를 해준 종업원에게 '팁'을 좀 쎄게 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녀 얼굴에 웃음이, 웃음이...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