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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답사에 참가하는 날이면 늘 그렇듯이 새벽에 일어나 동부간선도로를 달린다. 대청역 옆에 있는 중동고 지하주차장에 차를 맡기고 답사 차량에 동승. 서울의 정남쪽에 위치한 전주로 달렸다. 남쪽으로 달렸다.

추석이 가까워서 인지 벌초 등으로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길에 차가 가득, 휴게소에도 차가 가득, 사람도 가득~ 

화장실에 잠시 주저앉아 있으려 했었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포기했다.

 

안개가....

 

전주. 서문교회에서 다른 지역 팀과 랑데뷰. 일제의 식민지 수탈 역사의 기록과 흔적을 따라 군산으로의 경로를 답사하였다. 

카메라 아이콘이 찍힌 곳이 답사 지점들.

군산 내항에서 답사를 마감하고 전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간단히 하고 서울행~

 

서문교회 주차장에서 다른 지역에서 오신 분들과 랑데뷰하였다. 

'서문'교회인 것은 전주부 서문터 부근이기 때문이다.

답사 차량 세 대에 나눠타고 답사를 계속 진행하였다.

 

서문교회의 종탑이다. 미국에서 수입한 종. 1908년에 건립한 종탑.

 

서문교회.

 

교회 바로 옆의 점집.

 

전주부성 서문지 표지석. 바싹 붙어 주차해놓은 차량 '덕분'에 찾기가 쉽지 않다.

 

전주부성 '옛길따라 걷기'. 지도를 알아보기 어렵다. 역시 잘 '숨어' 있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은 '비단길시장'.

 

전주화교소학교.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74호. '현대이발소'가 문화재가 아니다. 가게가 문화재다. '구 중국인 포목상점'이었다고.

 

옛길의 흔적. 동산촌.

 

길을 따라 경찰서, 소방서, 우체국이 나란히 있다. 주변보다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한다.

1908년 전주~군산간 신작로가 개설되고 조촌면 반월리에 일본인 농장(동산농장)이 만들어지면서 한양으로 가는 길이 동산동을 통과하는 노선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동산동은 전주~이리~군산 노선과 전주~삼례~한양으로 통하는 삼거리로서 교통의 중심지가 된다. 또한 1914년 전주~이리간 경편철도 부설과 동산역 설치로 철도교통의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다.

 

삼례찰방역이 관할하던 평야.

만경강의 지류. 찰방역이라는 지명이 없어지고 '삼례리'로 대체되었으며 삼례철도역이 새로 생겼다.

 

콘크리트로 보강된 관개수로. 그때 그 시절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찰방이 위치하던 곳.

찰방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근사한 교회건물이 들어서 있다. '물론' 그와 관련된 안내 자료는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때 그시절의 우물.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음에 점을 찍는 시간'

 

깔끔한 뷔페식. '고령자 친화기업'이라는 처음보는 문구가 눈을 잠시 잡는다.

 

들어갈 때는 비리비리했는데, 나올 때는 배가 불룩!

 

식당 입구의 정원이 넓다. 답사원들이 모여 삼례 지역에 대한 지역주민(인솔자 선생님)의 소개를 경청한다. 인솔자는 전주고교에 재직중인 최진성 선생님인데, 잘 생기고 목소리도 좋아 넘나 부러운 분이었다.

 

식당 새참수레 옆에는 삼례성당이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이 이어진다.

 

바로 앞에 삼례 세계막사발미술관이 있다. 2013년 개장.

강점기에 양곡창고들이 있었던 곳이다. 이곳의 창고에 모인 양곡은 철도를 통해 군산으로, 그리고 일본으로~

이곳의 창고들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다가 2010년에 문을 닫는다.

<[철의 궤도: 전라선 철길 답사기 ③ 삼례역] 호남 발길 모이던 관문, 이제는 문화 중심지로>

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1123342

 

바로 앞에 삼례역이 있다. 근사해보인다. 완전 새거다. 

 

대장촌의 일본인 농장과 춘포역

 

이와자끼의 동산촌(전주 동산동), 가와자끼의 서수촌(군산 옥구-서수면)과 함께 호소가와의 대장촌(익산 춘포면)은 만경강 일대의 일제 수탈의 대표적인 흔적으로 꼽힌다.

호소가와 농장의 주임관사가 남아 잘 관리되고 있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11호.

 

사람이 거주하면서 관리하기에 깨끗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 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둘러볼 수 있었다.

 

주임관사보다는 격이 떨어져 보인다. 호소가와 농장의 사무실이었다고 한다.

 

문닫은 도정 시설. 멸공 방첩 소득증대!

 

내부.

 

           최고의

현존하는   V   간이역. 춘포역.

 

자그마한 역사만 남아 있다.

 

위로 전라선이 지난다.

 

오산면 일본인 농장과 식민지 경관

 

오산면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들어왔었다. 동척.

 

오산교

 

발산초등학교

 

발산초등학교 교사 뒷편에는 요상한 건물이 하나 있다.

 

일본인 농장의 창고. 보물창고.

 

등록문화재 제182호. 일본인 농장주 시마타니의 보물창고였다고 한다.

 

 

내부는 여러 층으로 되어 있어 상당히 많은 훔친 혹은 빼앗은 보물들을 저장하여 둘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발산초등학교 자체가 시마타니 농장의 창고를 개조한 여섯 개의 교실로 출발했다고 한다. 1946년에.

시마타니는 일본에서 주조업으로 재산을 모은 후 일본 청주의 원료인 값싼 쌀을 찾아 군산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1903년에 발산리 인근의 토지를 매입하여 농장주가 된다. 이후에도 계속 토지를 매입하였던 시마타니는 땅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했기에 해방 이후에도 자신의 땅을 지키려고 미군정에 한국인으로 귀화를 신청했고 끝까지 귀국을 거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군정의 권유가 계속 되자 부산을 통해 귀국했다고 한다. 개인금고 건물을 가득 채웠던 골동품들을 서울에서 온 박물관 사람들(?)이 미군 트럭을 끌고 와 싣고 갔다고 한다.

그러고도 남은  보물들이 학교 뒷편에 남아 있다. 보물 제234호, 제276호 등을 비롯해 다양한 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옥구 저수지

 

옥구저수지. 옥구간척지 일대의 논에 관개 용수를 대기 위해 1923년에 만들어진 저수지이다. 골짜기를 둑으로 막아 만들어진 그런 저수지가 아니다. 평지에 사방으로 둑을 쌓아 만든 저수지라는 점에서 특이한 저수지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릴 것을 기대했으리라. 하지만... 

비어 있는 건물은 쇠락하고 있다.

 

위의 건물에서 김석용 선생님이 우리 일행의 단체 사진을 박아주셨다. 배경은 당연히 옥구저수지.

 

모퉁이에 비석이 있다. 그래서 비석거리 슈퍼가 있다. 버드나무 아래의 그늘에는 동네 어르신들 몇 분이 쉬고 계셨다.

 

불이농촌: 군산 미성동 열대자 마을

 

하늘에서 드론이 본 열대자 마을(남호석 촬영). 

하늘을 덮었던 근사한 연무.

 

불이농촌은 불이흥업주식회사의 간척사업으로 만들어진 간척지에 조성된 간척지 마을이다. 옥구저수지를 중심으로 남쪽에는 한국인들이 소작하는 농장으로, 북쪽으로 불이농촌이라 하여 일본인 이주자들에게 불하하였다.

 

열대자 마을은 그러한 불이농촌의 하나이다. 열대자는 원래 '열 댓 자' 즉 '열다섯 자(15척)'란 뜻으로 도로 폭이 열다섯 자나 되게 넓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시골 논두렁 밖에 보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열다섯 자 폭의 도로는 신기한 대상이었으리라.

이런 넓은 도로가 필요했던 것은 일본인 정착촌들 사이를 잇는 간선도로의 기능 때문이었을 것이다.

 

군산 원도심. 군산 신사터. 군산 내항.

 

동국사 가는길

 

흠... 2012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국무총리상 수상에 빛나는 문화공간을 지난다.

 

동국사. 일본식 사찰이다.

 

 

한 켠에는 군산평화의소녀상이 있다.

 

 

사찰 뒷편에는 대나무가 우거져 있다.

 

앞마당에는 은행이~

 

참회와사죄의글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1983년에 군산을 처음 찾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였을까, 좀 음산하다는 느낌으로 기억한다.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이상한 모양의 건물들이 굉장히 많이 보였고. 일본식 가옥과 건물들이 그때까지 그렇게 많이 남아 있는 것은 그것들을 보전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변화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계기였다. 근대화의 음영 지역.

지금은 그러한 것을 지역 이미지화하여 장소 마케팅에 이용하고 있다.

 

똥!

 

다행이다. 이런 빵을 내가 좋아하지 않아서....

 

군산신사터.

군산서초등학교 뒷편에 군산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학교 앞에는 '장건강에 좋은 무엇인가'의 총판점이 있다.

 

답사 종료 예정 시간이 한참 지났다. 파할까 했는데, 뜬다리부두를 보고 싶다는 분들이 계셔서 내항으로 향했다.

 

뜬다리부두란? 이렇게 "뜬"다리 부두를 말한다. 항상 "뜬" 것은 아니다.

안떠 있을 때는 안떠 있다.

그렇다. 밀물과 썰물의 높이 차이가 큰 해변의 항구의 접안 시설인 것이다. 여러 곳에 있지만 군산의 것이 가장 유명하여 남호석 사장님이 특별히 드론을 띄워 밀물 때와 썰물 때의 모습을 촬영하였다. 최고!

 

이리저리 흩어지고 답사차량 1대만 전주로 돌아왔다. 

'퓨전 어울림'을 찾았다. 역시 저녁 시간의 전주는 이리보나 저리보나 최고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찍 "꼭" 서울로 돌아와야 했기에 답사 가기 전부터 가슴 아팠다. 답사를 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했었었다. 당연히 답사 중에도 계속 신경쓰였고, 퓨전에서도 신경쓰였다.

결국 마지막에 여러 분들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몰래 미안하다고 두 손모아 사과드린다~

 

다음부터는 무리한 참석은 안하기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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