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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 하나투어를 통해 코카서스 3국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현지 여행을 도와준 가이드가 인상깊어 종종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방문하여 새로운 소식을 찾곤 한다.
코로나로 인해 곤란을 심하게 겪고 있는 여행업계 종사자답게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 조용하게 내실을 다지며. 서울시를 통해 새로운 도보여행 프로그램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더라. 프립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한다.
https://www.frip.co.kr/products/155001 "[중랑] 망우 역사문화공원 도보투어" 프로그램이다. 그 프로그램에 실려 있는 일정 안내지도이다.
프로그램 개설 날짜와 나의 바쁜 일정이 맞지 않아 참여를 못하고 있다가 일단 직접 한번 가보고자 길을 나섰다. 옆지기를 동반하고서.
2022년 5월 22일. 천천히 일어나 천천히 출발했다. 출근 시간의 교통 정체를 피해서 간다는 핑계가 있었다.
지하주차장에 장기숙박하던 차의 시동을 걸었다. 반응이 없다. 응답이 없다. 배터리의 방전이 의심되었다. 보험사의 긴급출동서비스를 신청했다. 영국식 표현으로 bonnet(발음은 일본식인 본네트가 아니라 보닛이라 하는 것이 옳다고 하더라.), 미국식으로는 hood라 하는 뚜껑을 열고 보니 배터리 교체한 지 5년이 지났다. 새로 들여야 할듯 하다.
긴급출동 서비스맨의 도움으로 바로 시동 걸고 출발했다. 30분 정도 걸리더라.
도로변에 무단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이 많았다. 하지만 정식으로 주차장에 입차시켰다. 망우역사공원의 부속 시설로 중랑망우공간이 있고, 그곳에 주차장이 있어 주차시켰다.
그리고 쭈욱 한 바퀴 돌아보았다. 약 7킬로미터, 2시간 40분 걸렸다.
2022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 안내 자료. '망우리 공동묘지'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묘지가 있게 된 것. 그들 중 "대한의 독립을 이끈 위인들", "망우산에 잠든 유명한 유명인사들"이 안내되고 있다.
인구밀도가 아주 낮고 모두가 전원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따로 묘지라고 하는 것이 필요없었을 것이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특히 도시화된 지역에서 장례문화가 매장방식을 고수하는 경우, 묘지의 포화가 문제된다. 서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강점기 총독부에 의한 토지정리사업을 통해 서울 시내의 다른 묘지를 없애고 망우산을 거대한 공동묘지로 조성하였다. 그리하여 1933년부터 유명한 사람이건 그렇지 아니한 사람이건 사망하면 망우산의 망우리 공동묘지로 모였던 것이다. 28,500여 분묘가 포화에 이르자 1973년에 매장이 종료되었다. 그리고 공동묘지라는 이름이 혐오감을 준다고 이름을 '망우리공원', 다시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바꾸게 된다. 이후 지속적인 이장을 통해 범위가 많이 줄어들었으며, 2013년에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과거에 주차장이 있던 곳 중랑망우공간이라는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먼저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 등으로 유명한 박인환의 묘를 찾았다.
시설공단 직원들이 예쁘게 단장하는 중이었다.
바로 옆의 일반인의 묘지는 돌보는 이가 없어 이러하다. 뭐 어쩌겠나......
'힐링'을 내세우는 공원이다. 딱 맞는 것으로 생각된다. 나무가 무성하여 그늘진 길을 걷는 것이 너무 좋다.
포장 도로 변에 있는 이런 것을 '연보비'라고 하더라.
길가에 유명의 묘지 위치를 대충 안내하는 방향 표지가 되어 있다.
대향 이중섭(1916~1956)의 묘소.
그의 1955년 작품 '흰소'.(공원 입구에서 무료 배포하는 엽서를 스캐닝)
전봇대에 번호가 매겨져 있다. 이 번호를 통해 묘소를 찾아가는 이정표로 삼을 수 있다. 27번 전주를 확인하고 소설가 서해 최학송의 묘지를 찾아갈 수 있다.
최학송의 묘소 옆을 지나가는 이...
서울 시내를 조망하기에 너무나 좋다 하는 중랑 전망대. 최학송의 묘를 안내하는 표지와 전망대 안내 표지가 같이 붙어 있어 산을 타고 오르는 실수를 했다. 덕분에 의도하지 않은 험지 등산을 했다.
북한산, 봉화산, 도봉산, 불암산, 수락산 등의 산지 방향 안내.
어젯밤에 비가 내리고 나니 하늘의 색이 너무나 선명하고 좋다.
망우역 쪽에 특히 아름다운 건물들이 솟아 있다.
전주 30번 옆으로 내려가 이영민 묘소 옆길로 내려가 차중락 묘소를 찾으려 했다가 실패했다. 숲 속에서 심마니의 심정으로 길을 찾다가 돌아섰다. 지도에 대충 그려진 것만 갖고는 찾기가 쉽지 않더라. next time, baby~~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을 헤메다가 문명사회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해발 282미터인 망우산의 둘레길, 등산로 안내도가 있기는 하다. 1933년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시기에 활동했던 인물들의 묘소가 많은 것이다.
죽산 조봉암 선생의 묘.
아래 연보비에서 "독립운동" 대신에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그 무엇으로 바꾸고 읽어보길 권한다.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
만해 한용운선생은 부인과 나란히 누워 계시다.
소파 방정환 묘소.
방정환하면,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 오월첫공일. 희망을 살니자! 래일을 살니자!! 잘 살랴면 어린이를 위하라!!".(공원 입구에서 무료 배포하는 엽서 스캐닝)
예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산속 여기저길 많이 헤메어 힘들기는 하지만 여긴 들러야 했다.
그런데 가묘이다. 도산공원으로 이장했다 한다. 1955년에 세워진 비석은 이장 시에 함께 옮겨졌다가 2005년에 새 비석이 세워져, 2016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도산 안창호의 비서관으로 활동했던 태허 유상규의 묘. 도산과는 부자지간 처럼 지냈다 한다. 그래서 묘도 서로 가까운 곳에 쓴 것이고...
금계국으로 묘소를 장식하는 것이 예쁘지 아니한가!!
송촌거사지공석영지묘. 종두법을 보급한 그 분이다. 5대를 잇고 있는 의사 가문이라고...
이곳에서 능선을 향해 계속 올라갔어야 했다. 한강 전망대가 그곳에 있어 시원하게 안계를 넓힐 수 있었는데, 길안내 표지가 되어 있지 않아 그냥 내려왔다.
구리시의 한강전망대 표지와 입구를 찾았는데, 늦었다. 이미 4km를 산 위로 아래로 걸어와 기력이... 기력이...
그래도 올라갔다. 올라갔다. 경사가 꽤 되어 포기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던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관절이 진짜다."라고... 맞다. 그러하다.
마지막 목표 뽀인트를 찾았다.
합장묘이다.
이태원 공동묘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무연고자의 묘를 합장한 것이다. 유관순 열사가 1920년 옥사한 후 이태원 묘지에 매장되었었기에 이곳으로 함께 이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두시간하고도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참 좋은 곳이라고 생각된다. 휴식도 즐기고, 운동도 하고, 이곳에 남겨진 역사와 문화를 공부할 기회가 되기도 하고...
비포장길을 꽤 돌아다녔기에 먼지털이기를 이용해준다.
몸을 힘든데, 깔끔한 하늘이 그 피로를 가져가 버리는 듯 하다.
주차요금 계산기. 신용카드로만 결재가 된다. 결재하려 멈추었는데, 그냥 가라 한다. "당분간 무료"라더라. 와우~!
스맛폰이 13,000보를 걸었다고 알려준다. 뭐... 이 정도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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