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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문화원에서 노원구의 이곳저곳을 찾아 함께 걷는 '도보해설탐방'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의 초안산 수국공원 탐방 행사를 늦게 알아 참여하질 못해 아쉬웠는데, 9월 행사에는 참가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수락산 등산로 입구의 '만남의 광장'에서 모여 수락산의 자연과 문화, 역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수락산역 방면으로 한방에 갈 수 있는 노선버스가 있어 바로 이용하였다.

 

이리저리 좀 돌아서 가기는 했다. 그래서 40분 걸렸다.

 

노원역 앞에 하차하여 수락산만남의광장을 향한다. 입구에 거대한 '수락문'이 있다. "바르게살자"

 

그런데, 왜 구탱이에 영어를 끄적거려놓은 것인지... '넘버 원'이라고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보아도 "노 원"이지 않은가? '넘버 원'이 되는 순간 "노원"이 아닌 것이지. 영어로 '노 원'이면, "하나가 아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어떤 늘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아저씨는 '하나의 팀'을 강조하면서 "이게 팀이냐"고 일갈을 한 바 있는데, 하나가 아니고 싶어 하다니...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간다.

 

오랜만에 만남의 광장에 왔더니 못보던 시설이 추가되었다. "노원평 전투 대첩비".

 

정각에 바로 행사를 시작하였다. 20명인가를 모집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참가자는 무려 "3명"이었다. 노원문화원에서 행사진행을 위해 4명이 나와는데... 일단 화장실에 신고를 하고 산길을 올라간다.

 

이게 배바위라고 한다. 먼 바다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배!

 

이건 거대한 향유고래를 닮아 고래바위라 한다. 붙일 이름 찾느라 담당자가 고생했겠다 싶다. 배바위와 함께 아이들이 즐겨 노는 곳이라고 설명이...

 

계단 몇 곳에 명패가 붙어 있다. 찾아내기 숙제를 내주더라.

'수락산'이라는 이름은 내원암 일대의 계곡에 바위가 벽을 이루고 있는데, 물이 굴러서 떨어지는 듯 하여 "水落"이라는 산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더라~~ 하는 설이 있다.

 

좀 뜬금없기는 하다. '낭중지추'

 

'유유자적'

 

'금슬지락'

 

젊은이 빼고는 다 늙은이(^^)라서 쉬엄쉬엄 천천히 진행한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그 단단했던 화강암이 이렇게 변했다. '토르'

 

화강암이 기반암인 수락산의 지형 형성 및 변화에 대한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만 같다.

 

진짜?

 

작은 봉우리가 훌러덩 벗겨져 있다.

 

'아차산 보루군'의 일부였다고 한다. 어제 방문했던 망우산의 보루들도 포함하여...

 

멀리 보이는 수락산 정상, 가까이 보이는 귀임봉 정상.... 올라서 있는 수락산 보루. 이 작은 곳에 서너명이 머물며 근무했었을 것 같은데, 고구려 병사들의 애환이 쫌 느껴질라 한다.

 

중랑천 건너편의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의정부 방면의 불곡산.

 

한강 넘어의 막대기도 뚜렷하게 보인다. 아파트들 봐라~~......

 

우리집 뒷산인 불암산.

 

수락산 정상부.

 

높이 솟은 아파트 바로 윗쪽에 보이는 계곡이 천보사로 오르는 계곡이다.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면 폭포를 볼 수 있다.

 

당고개 아랫쪽의 불암산 자락의 아파트가 아닌 마을을 '희망촌'이라고 부르더라.

 

고구려 시절 병사들이 만들었다는 보루 위에 서서 그 시절을 추억하여 보았다.

 

주최측에서 참가자들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기념으로 만들어 주었다. 참가자 3명......

 

보루 한쪽에 석축의 흔적이 남아 있다.

 

보루를 한바퀴 걸어서 돌아보았다.

 

찬찬히 조심조심 하산...

 

원숭이 바위라고 한다. 화강암이다.

 

흔한 타포니.

 

수락산 '범바위' 굿당이다.

'범바위'가 잘 안보이는데, 뒷쪽 데크길로 올라가면 잘 보인다고 안내하더라. 믿고 올라갔는데............ 암것도 안보인다.

 

가까이 보고 싶으면 들어가서 사진 쫌 찍겠다고 이야기하면 된다고 안내하더라. 믿고 들어갔는데............ 안된다고 하더라.

 

행사를 마치며 키링을 선물로 받았다. 산비둘기를 형상화한 '산비'라고 한다.

 

밤도 하나씩 선물로 주더라.^^

선물을 받았으니 '참여후기'는 아주 후하게 작성했다.^^

 

재밌는 행사였다. 재밌는 경험이었다.

 

새로 함께 하게 될 니콘의 Zfc 카메라와 18-140mm 렌즈와 함께 한 첫 출사였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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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의 별내동은 덕릉고개를 사이에 두고  서울 노원구 상계동과 인접하여 있다. 덕릉고갯길이 좁아 주말이면 만성적인 차량 정체가 발생하였으나 덕릉터널이 개통되면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상계동에서 당고개역 지나 덕릉고개를 넘으면 왼쪽의 수락산 자락으로 많은 묘가 조성되어 있다. 그 사이의 골짜기에 덕릉마을이 있으며, 위로 오르면 흥국사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는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식당이 성업 중이다. 카페로 운영되던 시절부터 종종 방문하였었다. 

2024년 8월 29일 목요일에 옆지기를 모시고 점심 식사를 한 후 한쪽에서 함께 운영 중인 찻집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드님이 2박3일 간의 정부(국방부)에서 제공하는 캠핑을 마치고 나오신다길래 모시러 나온 참이었다.

시간이 많이 남아 날이 매우 더워 폭염 경보가 발령된 날이었지만 찻집을 나섰다. 옆지기는 안 따라나서시네. 혼자서 얼마전에 방문했다가 지도에서만 확인했던 "덕릉마을 산신각"을 눈에 담고 싶어서였다.

거리는 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산신각 방향으로 입산을 할 수 있는 통로가 안보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덕릉마을회관이다. 마을회관에서 바로 접근할 수 있을 것처럼 지도에서는 보이지만 막혀 있었다.

 

도로를 따라 터덜터덜 걸어내려왔다. 덕릉고개에서 내려오는 도로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부분에 표지판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200M'만 가면 된다고 되어 있다.

표지판 아래 부분에 '본 표지판은 임시 제작되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농작물과 잡초가 뒤섞여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길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초입을 지나면 등산로 "처럼" 보이는 구간이 나타난다.

 

왼쪽 방향으로 100M를 더 가면 된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진행방향의 묘가 보이는데 왼쪽 아랫부분의 풀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풍화가 아주 잘 된 화강암 기반암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덕릉마을 산신각"이다.

 

산신각의 지붕은 人자 모양으로 펼쳐진 맞배 지붕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양옆으로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山神閣?

산신각은 '사찰에서 산신을 봉안하는 불교건축물'이라 정의된다. 한국 사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로서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일러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산신은 원래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착신이나, 불교의 재래신앙에 대한 수용력에 의하여 먼저 호법신중(護法神衆)이 되었다가, 후대에 원래의 성격을 불교 안에서 되찾게 된 것이라 한다.

 

德陵 마을 山神閣은 수락산 자락에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1888년 세워졌다. 972 의 대지에 1칸 크기의 목조기와로 건축된 전당 전면에는 산신각이라 쓰여진 현판이 걸려 있고, 맞은편 현판에는 조성연대가 쓰여 있다. 후실의 전면은 6쪽의 판벽과 판문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책거리, , 쌍회문 등을 새겨 단청을 하였다. 뒷벽의 윗부분에는 푸른 칠을 한 위에 흰 칠로 호랑이가 담배 피우는 모습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1996년 12월 24일에 경기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민속자료 제9호'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이제는 번호를 붙이지 않고 그냥 경기도의 "민속문화유산'이다. 

철책으로 보호하고 있어 가까이 가볼 수는 없으며 또 잠겨 있어 내부는 볼 수 없다.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후실 안 정면에는 탱화풍의 산신도가 모셔져 있는데, 중앙에 산신이 왼쪽에는 호랑이, 오른쪽에 동자 2명, 선조낭자 1명, 다승(茶僧)1명을 배치한 그림이 있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마을 주소와 그 당시 살았던 사람의 이름이 있으며 화가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이 마을의 산신제는 음력 정월과 10월 초하루에 올린다. 산신제는 날을 받은 후 동네 사람들 가운데 생기복덕을 따져 맞는 사람 중에 깨끗한 사람으로 화주(당주)한 명을 택해 밤에 유교식으로 제례를 올린다. 산신각과 산신탱화, 산신제의 내용으로 봐서 전통적인 산신신앙과 불교신앙, 그리고 유교의례가 융합되어 조선시대 형성된 마을신앙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현재 산신각은 1998년에 보수되었다.

(출처: 남양주시청 홈페이지)

 

보존 상태가 아주 깔끔하다. 잘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입로 정비만 조금 추가하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한다. 마을의 대형 식당이나 카페에서 산신각 쪽으로 진입로를 열어주는 것도 희망사항에 들어간다.

주말에 많은 손님이 찾았다가 식사를 마치고 빨리 빠져나가지 않고 이곳을 구경하러 다녀온다면 주차장 자리를 오래 잡고 있게 되는 상황 때문에 그러할 가능성은 아주 낮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저 아래 숲속에서 아드님이 2박3일 캠핑을 했다. 퇴소했다고 연락이 왔다. 빨리 데리러 가자며 옆지기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남양주시 별내에 위치한 '덕릉마을 산신각' 방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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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여름은 연일 폭염 경보가 이어지고 있다.

더위 속에 시원한 숲속을 찾아가보고 싶었다.

네이버지도를 뒤적인다. 

근처에 달려 나가 점식 식사하고, 차 한잔하고, 간단히 들러볼 곳을 찾다가.... 종종 가보았던 곳으로 골랐다.

옆지기에게 함께 가자고 결재상신 올려 승인을 받았다!!!


 

상계동에서 덕릉로를 따라 이동하여  당고개를 넘었다.

'목향원'에서 식사하고는 그 윗쪽의 수락산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자연소리'에서 차를 한잔하면서 '자연'을 즐기고자 하였다. 그리고는 '흥국사'를 탐방하고 귀가하는 일정을 잡았다.

 

하늘에서 본 목향원과 주변 일대. 12시가 되기 전임에도 제2주차장에 차들이 거의 채워져 아랫쪽의 제1주차장에도 차들이 진입하고 있다.

 

1997년부터 운영을 했었던 곳이란다. 

 

옛날에는 옛날 건물이었는데, 재단장하여 신식 건물로 바뀌었다.

 

들어가는 입구 한쪽으로 장독들이 줄지어 있다.

 

옛날에는 산골짜기에 숨어 있는 조용한 곳에 찾아와 차한잔을 즐기고 가는 곳이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서 고기집으로 변신하였다. 사람들이 아주 많이 찾아오면서 주차장도 넓히고, 메뉴는 그냥 한가지로 바뀌었다.

 

쌈밥용 채소가 먼저 나오면서 인원수대로 주문이 들어간다.

 

역시 초기보다 반찬의 가짓수가 줄었다. 식탁에 찬그릇을 놓을 수 없을 정도였는데...^^

밥도 삼색밥이다.

 

석쇠불고기. 맛있다.

 

마당 건너편에는 카페도 마련되어 있다. 수락산에서 불암산을 바라보며 차를 즐길 수 있다.

 

화강암 덩어리인 불암산 정상쪽 조망. 폭염 경보 속의 하늘은 뜨겁기만 하다.

 

네이버지도에서 캡쳐하여 글자를 키워 넣었다. 목향원에서 식사하고 '자연소리'를 찾아가려했다. 찾아가려했다.

목향원의 주차장에서 올라갈 수 있다고 하여 차를 디밀었더니 막혀있다. 흥국사 일주문 옆으로 난 샛길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어 그리로 가려 했더니 10년은 자연 속에 테라포밍된 것 같은 상태다. 길이 아니다.

엄하게 차를 왔다갔다 하고 있으니 목향원 주차관리원이 달려온다. 카페에 대해 질문하니 저 윗쪽에는 아무 것도 없다 한다. 난 뭘 보고 온 것일까...

귀가하여 다시 찾아보니 2019년 9월과 2020년 1월에 찾아갔던 이들의 리뷰가 2개 있을 뿐이었다. 이후 운영을 하지 않고 있는가보다. 네이버지도 "정보수정제안하기"를 통해 폐업했으니 지도에서 삭제해달라고 하려 했더니 증거로 "사진"을 요구한다. 사진을 찍으러 다시 가야겠다.


흥국사로 바로 가자.

목향원 바로 위에 위치한 일주문을 지나 올라간다. 쭈욱 올라간다.

 

금방 도착한다. 비포장이긴 하지만 주차 공간이 꽤 된다. 여유있게 나무 그늘 아래쪽에 주차.

 

하늘에서 바라본 흥국사. 규모가 크지 않은 절집이다. 사찰의 여러 기능을 복합적으로 수행하는 공간인 '대방'이 흥국사의 입구에 위치한다. 그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신식 식당'.

 

보통은 가장 큰 건물이 '대웅보전'이지만, 흥국사의 경우에는 그냥 "대방"이다.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여러 기능을 한 건물에서 수행하도록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기와불사에 참여해주세요.

 

영산전과 대웅보전.

 

영산전과 대웅보전 안내판.

 

흥국사의 창건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신라 제26대 진평왕 21년(599년)에 원광법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조가 왕위에 오른 이듬해인 1568년에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묘를 흥국사 남쪽에 쓰면서 부친의 명복과 극락왕생을 위해 수락사를 중수 복원하고 '흥덕사'라고 이름을 내렸다. 이후 1626년에 인조가 건물을 중수하면서 다시 '흥국사'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대웅보전 건물은 팔작지붕으로 양끝에 용머리 장식이 있다. 지붕 아랫쪽에 처마와 기둥 사이에 공포를 설치하고 있다. 공포는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고 화려하게 돋보이도록 하는 장치로,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머리가 새겨져 있어 조선 후기의 장식적인 조각 기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대웅보전 안에 모셔진 목조석가삼존불좌상.

가운데 석가불을 중심으로 그 왼쪽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오른쪽에는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아보는 보현보살이 석가불을 보좌하고 있다.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의 조성 발원문이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인 조성 시기나 최초 봉안 사찰은 알 수 없으나 18세기 중반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웅보전 윗쪽의 단하각.

 

대웅보전 옆의 시왕전.

 

시왕전 윗쪽의 만월보전. 뒷편에 '승탑'이 있다는데 이번 탐방에서는 놓쳤다. 다음에는...

 

'승탑'을 찾아 올라왔다가 근사한 '새 탑'에만 눈이 가서 '승탑'을 놓친 것이다.

 

대웅보전에서 떨어져 위치한 나한전. 

소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 및 16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흥국사 소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정확안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1650년에 세번째로 고쳤다는 발원문이 발견되어 1650년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6 나한상은 우리나라에서 일괄 문화재로 전해오는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전라북도 고산(현재는 완주) 안심사 약사암에 모셔져 있던 것을 1891년에 흥국사로 옮겨와 다시 고치고 이듬해부터 모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었네요.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00760.html

 

나한전 앞의 마당 건너편에 위치한 범종각. '범종각' 현판은 다시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목어, 범종, 법고 등이 설치되어 있다.

 

흥국사 대방. 조용한 절집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탐방 기회였다.

 

산자락이 온통 묘지이다. 다음에는 '덕릉마을 산신각'을 찾아가보고 싶다.

아! '자연소리' 진입로가 폐쇄된 사진도 찍어야 한다.^^

네이버지도에 정보수정 요청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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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드론을 갖게 되었다. 지인이 자기가 소유한 드론 중 하나를 내게 넘기면서 권유하는 바람에 드론에 맛들이게 되었다. 망설이다가 조그만 드론을 하나 구입하면서 그 드론은 원소유자에게 반납했다.

가끔 조그만 드론을 갖고 나가 논다. 하지만 서울은 거의 "관할기관 비행승인"이 필요하여 마음을 크게 먹고(?) 나서야 하는 형편이다. 그러던 중 집에서 멀지 않은 장암역 인근이 "비행승인 불필요"한 동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은 벗어났는데, 더 무서운 공역에는 해당되지는 않는 낀 동네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드론 원스톱 민원포털(https://drone.onestop.go.kr/#)"의 지도에서 '석림사' 부근을 클릭했더니 '조종자 준수사항'이나 잘 지키라고 나온다. 가자!!

(참고로 위의 지도에서 빨간색으로 빗금친 P518 공역에서는 드론을 날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하는 무서운 곳이다. 초록색 빗금친 R75 공역에서는 비행승인 및 촬영 신청을 사전에 해야 하는 곳이고...)

 

다음 날 바로 길을 나서려 했는데, 장마철이라는 복병이 막아섰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비가 내린다. 아니면 다른 일거리가 생기던지... 그러다가 드디어 2024년 7월 25일에 출발했다. 망설이는 옆지기를 꼬셔서 함께 출발했다.^^

 

지하철 7호선 중계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을 이용해 종점인 장암역까지 달려갔다. 지하철 내부 좌석 한줄에 자리가 7개였는데, 신식 차량은 의자가 6개만 설치되어 있다. 오래 되었을텐데 오늘에야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 구간은 GPS 신호가 잡히질 않아 중계역에서 도봉산역까지의 경로는 직선으로 표시되었다. 도봉산역에서 장암역 구간에서는 철로의 굽어진 경로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7호선 종점인 장암역에 도착하여 수락산을 바라본다. 구름이 멋들어지게 흘러간다.

바로 길건너에 위치한 커다란 식당 '牛리나라'에서 하산길에 점심을 해결하였다. 해당 식당의 바로 오른쪽으로 석림사계곡이 이어진다.

 

사랑채만 남아 있는 '서계박세당 고택'을 방문했는데 잠겨 있어 그냥 지나갔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 역시 문이 잠겨 있는 '노강서원'을 지나 '석림사'를 탐방했다. 계곡을 좀 더 따라 올라가다가 적절한 지형 경관을 즐겼다. 잠시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가볼 수 있었다. 하산길에 박세당고택을 다시 방문했는데, 입구에서 개짓는 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도망쳤다.

 

사유지이며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공간이 아니라 한다. 조경이 잘되어 있어 내부의 생활공간이 외부의 시선에서 차단되어 있다.

 

경기도 지정 문화유산이다.

 

따로 고택의 관리자에게 연락을 미리 한 바가 없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 석림사 계곡을 따라 계속 오르기로 한다. 몇 걸음 옮기지도 않았는데 땀은 아주 잘 흘러내린다.^^

예전에는 이 계곡의 많은 식당들이 사시사철 탕을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했었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그렇게 기억한다. 

그러했던 식당들의 '흔적'이 외부의 간판에 남아 있다. 찾는이들이 줄어들면서 식당 내부에 설치된 메뉴판에서는 제거된 식당들이 여럿 있다. 중복날을 기념하여 아직 그러한 메뉴로 영업하는 식당을 찾아보는 것도 오늘의 과제였으나 다음 언젠가로 미루기로 했다.^^

 

분명히 가구 공장인데...... 유리창의 "FINE DRONE"이라는 문구가 눈에 확들어왔다. 암만 살펴도 "드론"과는 관계없는 업체로 보이는데......

'파인드론'은 국내의 드론 개발 및 생산 업체였는데 사업을 접었다는 소식이......

 

장맛비가 내려 계곡이 물이 시원스럽게 흘러내린다. 아직 '토종' 음식으로 영업을 열심히 하는 식당이 남아 있는가보다.

 

계곡의 오른쪽을 따라 걷던 길이 작은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올라간다.

 

청풍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흔적이 석재로 구성된 주춧돌만 남아 있다. 서계 박세당이 노강서원 아래에 세웠던 것이라 한다.

 

중랑천변에 위치한 장암역에서 수락산 방향으로 그냥 직진하여 골짜기로 진입하면 노강서원에 이를 수 있다. 금방이다.

 

노강서원이다. 경기도 기념물 제41호.

노강서원은 1689년(숙종 15) 인현왕후 폐위에 반대하다가 혹독한 국문을 받고 진도로 유배되던 중 사망한 박태보를 배향한 서원이다. 박태보는 서계 박세당의 둘째 아들이었다.

 

1695년(숙종 21)에 노량진에 건립되었던 서원으로서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중 하나였다. 1925녕의 을축년 대홍수때 떠내려간 것을 중건하였고,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이곳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1969년에 옮겨 복원한 것이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 동재, 서재, 삼문, 고직사 등이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中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다.

 

서계 문화유적과 무형 문화유산

기개와 절의의 상징 정재 박태보

시대의 지성 서계 박세당

 

석림사의 일주문이 지척에 위치한다.

 

석림사를 지나 수락산 정상으로 오르는 1-1, 1-2, 1-3 코스가 안내되어 있는 등산지도.

 

석림사 입구.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작은 산골짜기이다. 그래서 일찍 입구를 차단하며, 개를 풀어놓는다고 하니 늦은 시간에 함부로 접근하면 아니되겠다.

 

이색적이다. 大雄殿이 아니다. "큰법당"이다. 1층은 업무용 공간, 2층이 법당으로 이용된다.

석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봉선사의 말사이다. 박태보가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한국전쟁때 소실된 이후 1960년부 비구니 相仁이 제자와 함께 중창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당 내부에 긴의자들을 배치해두고 있는 것도 처음 보았다. 이색적이다.

 

석불, 석탑, 석등...

 

석림사는 수락산의 작은 골짜기에 자리잡았다. 아담한 절집이다.

 

석림사를 지나 등산로를 따라 계속 오르면 '수락폭포'를 만나고, 수락산 정상에 이를 수 있다.

 

수락산 정산에 오르는 것은 다른 분들께 양보하고 물가에 평평한 바위가 보이는 곳을 찾아 주저앉았다.

 

그리고 발을 담가 보았다. 등짝이 다 젖어 시원한 무엇인가가 절실했다.

 

뼈속까지 시리는 감각을 기대했다. 아니더라. 더위가 심해서 그런지 작은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물은 살짝 뎁혀진 느낌.^^

 

무얼 찍고 계시는 것일까......

 

 

밥때가 다가와 골짜기를 내려왔다. '토종' 음식점이 자꾸 눈에 밟힌다.

 

험상궂게(^^) 생긴 문지기가 요란하게 지키고 있는 '서계 박세당 고택'을 다시 찾았다.

 

참 예쁘게 관리되고 있다. 저 안쪽에 문화재로 지정된 사랑채가 보인다.

 

국밥 한그릇. 살짝 짜기는 하지만 양은 좋다.

 

장암역 건너편으로 구름 아래의 도봉산이 보인다.

 

뒤로 돌아보니 멀리 수락산의 정상 부분을 바라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도봉산이나 수락산이나 모두 화강암 산체로서 토양에 덮여 있지 않고 밖으로 드러난 암석 부분이 눈에 많이 보인다. 다음엔 정상까지 올라가 보자!!!

 

정상부를 확대해보았다. 태극기가 휘날린다.^^

 

장암역으로 올 때는 신형 차량이라 좌석이 6개였는데, 장암역을 떠날 때에는 좌석이 7개인 구형 차량이다.^^

옛날보다 요새는 살찐 사람들이 많아져서 한 줄에 앉을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줄인 것일까???

 

중계역에 내려 집까지 걸어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비가 내린다.

우산이 없어 버스를 이용해 귀가하였다.

 

비 예보가 없어서 출발한 길이었는데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니까 일기예보가 달라진다. 여기는 "중계"동이다.

장마철 일기예보가 그렇지 머......

 

수락산의 석림사 계곡은 녹림에 묻혀 있었더라~~

 

 

중복인 2024년 7월 25일에 국밥을 사먹었더라~~

'삼성 헬스' 확인을 해보니 석림사 계곡을 다녀오며 9,756보를 걸었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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