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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3일 금요일이다. 13일에 금요일.

아바나 시내의 캐슬 투어를 하고 공항으로 달려가 자메이카로 날아간다.

부슬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에 아바나의 마지막 여행지를 향해 출발한다.

 

캐슬 투어 이동 코스.

운하를 따라, 가장 바깥 쪽에 모로 요새가 위치한다. 그 안쪽으로 산 카를로스 요새가 있고, 그 안쪽으로 El Cristo de La Habana가 있는 Parque del Cristo de la Habana가 있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모로 요새로 향하였다.

 

8시 50분. 공원에서 아바나 항구의 모습이 잘 보인다. 상쾌한 아침이다.

 

El Cristo de La Habana. 아바나 항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이다. 

The statue was carved out of white Carrara marble, the same material used for many of the monuments of the Colon Cemetery. The statue is about 20 metres (66 ft) high including a 3-metre (10 ft) base. It weighs approximately 320 tons. The statue was built from 67 blocks of marble that had been brought from Italy after being personally blessed by Pope Pius XII. The figure of Christ is standing with the right hand held near the chin and the left hand near his chest. Facing the city, the statue was left with empty eyes to give the impression of looking at all, from anywhere to be seen.

The sculpture, located in the Havana suburb of Casablanca, in the municipality of Regla, was inaugurated on La Cabaña hill on December 24, 1958. Just fifteen days after its inauguration, on January 8, 1959, Fidel Castro entered Havana during the Cuban Revolution.

The sculpture is located 51 meters (167 ft) above sea level, rising to a height of 79 metres (259 ft), allowing the locals to see it from many points of the city. There is a panoramic viewpoint at the site of the sculpture.

-wikipedia

 

9시 30분. Castillo de los Tres Reyes del Morro. 왔다. 보았다.

그런데, 들여보내주질 않는다. 입장표를 받는 직원이 아직 도착하지를 않아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이런......

 

주위를 빈둥거리며 돌아다녀본다. 커다란 쇠붙이들이 여기저기 버려져 있다. 

 

아바나 항구로 들어가는 입구의 동쪽에 요새가 있다. 건너편으로 멀리 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말레꽁이 보인다.

 

입장을 시작했다. 우리가 너무 일찍 왔던 것이었다. 개장 시간이 10시.

 

길게 이어진 이런 굴을 지나가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방어를 위한 기가 막힌 시설이다.

 

절벽 위에 위치하면서 넓은 해자까지 갖추어 철벽 방어 시설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바다를 향해 여기저기 커다란 대포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여러 개가 아직도 남아 있다.

 

지금은 방어 시설이 아니라...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

 

외국인에게 참 불편하다. 거의 모든 안내 자료의 언어는 에스파냐 어 밖에 없다. 에스파냐 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람도 아닌가. 외국 관광객들이 그렇게 많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에스파냐 어만 고집한다. 불편하면 현지인 가이드를 고용하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불편한 것은 내가 아니라 너! 라는 의미일까?

 

요새에 주둔하던 병사들이 사용하던 시설.

 

이곳에서도 예술인들이 재주를 뽐낸다.

 

요새의 경비 병사가 되어본다.

 

10시 50분. 비행기 시간에 조금 여유가 있단다. 센트럴 아바나의 맛을 조금 보기로 한다. 오래된 주택들이다.

 

조 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래를 보고 뭐라 말씀하신다. 에스파냐 어일 것이다.

 

빨래를 거는 방식이 내가 아는 것과 조금 달라 사진을 찍어 두었다.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 한 딸을 기억하기 위해 관 모양으로 외벽이 디자인된 14층 짜리 건물을 지었다는 이야기 속의 건물. 옛날 이야기인 것 같다. 건물이 매우 낡았다.

 

지나던 건물 안쪽의 배전반. 난감하다.

 

11시. 말레꽁에 파도가 들이친다.

 
건너편으로 모로 요새가 보인다.
 

 

말레꽁, 멀리 보이는 모로 요새. 방파제 앞쪽으로 보조 방파제가 더 설치되어 있다. 주 방파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 것으로 보인다.

 

위험해 보이는데도 사람들의 거주 공간으로 계속 이용되고 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약속한 장소

 

한명 한명 모여든다.

 

우리 앞을 지나는 트럭버스가 우리에게 시커먼 매연을 남기고 간다. 고~맙다.

 

신시가지의 La Casa. 쿠바에서의 마지막 점심 식사.

 

쿠바에서 자메이카로 한방에 날아가는 비행기가 안보인다. 그래서 그란 케이먼 제도를 경유하여 자메이카로 날아갔다. 감기가 낫질 않는다. 챙겨갔던 약을 먹어도 다른 분들이 분양해주시는 약을 먹어도 계속 붙어 있다.

쿠바에서의 출국 수속은 매우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입국할 때 받아 소중하게 간직하던 출국 카드를 제출함으로써 출국 수속 끝. 짐 검사도 간단하게 끝났다. 매번 보안 검사에서 가방 속의 노트북을 꺼내놓으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 없다고 그냥 보낸다.

그러고 보니 의문이 든다. 가방 안의 노트북, 태블릿 등을 왜 따로 꺼내놓으라고 하는 것일까?

 

요렇게 그란 케이먼 제도를 경유하여 자메이카로 날아갔다. 우사인 볼트의 나라, 레게 음악의 나라인 자메이카로 날아갔다.

 

창가좌석에 앉아 날개와 구름 구경 실컷 하다보니 그란 케이먼 제도라고 한다. 내려서 환승 수속을 받는다.

 

그란케이먼 공항에서 환승을 위해 대기하는데, 에어컨이 너무 강하다. 감기 환자에게 쥐약이다. 와이파이가 무료로 된다는 것은 보약이다. 쿠바에서 한번도 연결되지 않았던 와이파이가 쿠바를 벗어나니까 터진다.

 

아담한 비행기로 갈아타고 자메이카로 향한다.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걸친 남정네들이 많이 보게 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거의 흑인들이다. 금색 장식물을 많이 걸치고 있다. 

이코노미 클래스인데, 그동안 이용했던 비행기들에 비해 좌석의 앞뒤 간격이 조금 아주 조금 더 여유 있는 듯 하다. 덩치 큰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비행기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국의 비행기는 좌석수를 최대로 뽑기 위해 간격을 매우 좁게 만들어 놓아 아주 불편한데, 이 쪽 비행기들은 마음에 든다.

 

킹스턴에 도착하였다. Norman Manley International Airport.

Norman Manley International Airport (IATA: KIN, ICAO: MKJP), formerly Palisadoes Airport, is an international airport serving Kingston, Jamaica and is located south of the island 19 km away from the centre of New Kingston, it is the second busiest airport in the country after Sangster International Airport recording 1,502,973 arriving passengers in 2015. It is a hub for Caribbean Airlines and Fly Jamaica Airways. In 2011 the cash-strapped Jamaican airline Air Jamaica was taken over by the Trinidad carrier Caribbean Airlines but Jamaica has 16% of the shares and the airline retained the former routes used, and the airport was named in honour of Jamaican statesman Norman Manley. There are over 130 international flights a week that depart from Norman Manley International Airport. The airport is located on the Palisadoes tombolo in outer Kingston Harbour; it fronts the city on one side and the Caribbean Sea.

-wikipedia

 

피곤하다. 현지 가이드 친구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나타나질 않는다.

traffic을 핑계대는 현지 가이드. 헌데 공항을 빠져나오는 길을 따라 버스가 너무 잘 달린다. 트래픽은 무슨!

그리고 도착한 버스가 너무 작았다. 캐리어 가방을 버스의 뒤쪽에 차곡차곡 싣는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에 사람들이 앉아야 했다.

이 작은 버스로 답사를 계속 할 수 없다고 궁시렁 궁시렁~

남팀장이 담당자와 되지도 않는 연락을 주고 받으려 노력하며 버스를 다른 것으로 교체하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블루마운틴을 다른 큰 버스는 올라가지 못한다고, 어쩔 수 없이 이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였다. 그래도 큰 버스로 교체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고 하였다.

 

자메이카에서의 첫 날. Hotel Four Seasons에서 감기약 먹고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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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2일 목요일이다. 7시 아바나의 여명.

현지 가이드 교체. 러시안 팀이 입국하였단다. 하여 아벨리오가 그 팀으로 가고 대신 동생인 파트리시아로 현지 가이드의 교체가 있었다.

아바나를 출발하여 피나르 델 리오를 거쳐 비냘레스를 다녀오는 코스였다.

말레꽁에 있는 호텔을 떠나 시내를 관통하면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Rio Almendares를 건너면 Parque Almendares가 있고 그 서쪽은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고 한다. 곳곳에 Casa가 보인다.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쿠바 사람들과 쿠바식으로 생활을 해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찾는 손님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 쿠바는 출생률이 낮아지면서 노동력 부족 문제가 발생하게 되자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였다고 한다.

사탕수수로 만든 콜레스테롤 저하 약품이 유명하다고 소개한다. 폴리사놀.

 

7시 50분. 호텔 로비의 모습. 근사하다.

 

9시 50분. 아바나에서 서쪽으로 달리고 있다. Autopista Este-Oeste 동-서 고속도로를 따라서. 고속도로 변의 개간 중인 농지. 빨갛다. 이 동네 기반암이 석회암이라던데..

 

농지에서는 바나나가 성장 중이다.

 

트랙터를 모는 아저씨. 트랙터 뒤로 많은 새들이 따라 다닌다. 땅을 갈아 엎으면서 땅 속에 있던 벌레들에게 재앙이 닥치는구나.

 

재배한 작물이 성장 중이다. 설치된 호스의 용도는? 관개 용수 공급. 재배된 작물이 위치한 곳마다 구멍이 뚫려 있으리라. 재배된 작물은 나중에 확인해보니 파파야라고 하더라.

 

10시 15분. 휴게소에서 쉬어간다. 쿠바의 상징 나무가 야자나무이다. Palma. 쿠바 나무라고 한다. 키가 큰 나무로서 건축재, 가구 등의 재료로 이용된다고 한다. 사진에서처럼 중간에 배가 나온 것은 파리고나라고 한다.

 

건축재로 사용하는 것 같은데, 기둥의 모양이 거시기하다.

 

휴게소라서 식당이 있고 화장실이 있다. 여행자 센터, Las Barrigonas.

 

쿠바의 시가 생산을 홍보하는 시설도 있다.

 

그곳에서 판매하던 책인데, 8.5CUC이 없어서 사질 못하였다.

귀국하여 amazon.com에서 구입하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기에 무리하지 아니하고 넘겼다. 검색해보니 없다. amazon.com에 없다. amazon.es에는 목록만 나온다.

 

휴게소 주변에는 담배 건조장, 담배 재배지 뿐만 아니라 옥수수도 볼 수 있었다.

 

 

비냘레스에서의 이동 경로. 비냘레스는 포도 동네라는 뜻이란다. 하지만 질좋은 포도가 나오지는 않는다고 한다.

 

비냘레스 지방 지도.

 

비냘레스의 석회암 지형 mogote 산지를 대충 잘 살필 수 있는 전망대로 안내받은 곳이다. 

 

원래 에르미따 전망대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파트리시아가 쟈스민 전망대가 더 낫다고 추천하였다.

전망대의 모습.

 

전망대에서 보이는 높지 않은 산들. 석회암 산지이다. 저 언덕처럼 생긴 산지를 모고테 mogote라고 부른다. 일종의 탑 카르스트라고 한다. 희한한 모양을 하고 있기에 비냘레스 계곡이 1999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Viñales Valley (Spanish: ''Valle de Viñales'') is a karstic depression in Cuba. The valley has an area of 132 km2 (51 sq mi) and is located in the Sierra de los Órganos mountains (part of Guaniguanico range), just north of Viñales in the Pinar del Río Province.

Tobacco and other crops are cultivated on the bottom of the valley, mostly by traditional agriculture techniques. Many caves dot the surrounding hillfaces (Cueva del Indio, Cueva de José Miguel).

The conspicuous limestone cliffs rising like islands from the bottom of the valley are called mogotes. They can be up to 300m tall.

Viñales is a major tourist destination offering mainly hiking and rock climbing. The local climbing scene has started to take off in the last few years with many new routes being discovered resulting in an increase in local tourism.

-wikipedia

 

쿠바인들은 건물의 색 선택을 참 잘하는갑다.

 

쿠바에는 탈 것이 참 다양하다. 심심하면 소나 타!

말도 타고... 마차도 타고...

닭도...

 

먼 길을 왔다. 먹자. 점심 시간이다. Finca Agroecologoca.

 

쿠바에서는 농작물이 그냥 무농약 유기농이다. 농약이나 비교가 없다!!!

 

식당의 전망도 좋다. 이곳에서도 모고테가 잘 보인다. 

 

빨랑가라고 소개하더라. 감자 비슷한데 더 맛있다고 파트리시아가 주장. 

그동안 들렀던 다른 식당들에 비해 간이 덜 짜서 멤버들이 마음에 들어 했다. 고기도 좋고, 메뉴도 다양했고.

 

먹었으면 또 출발해보자.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었는데...

 

Cueva del Indio. 인디오 동굴을 간다.

 

석회암 지대이므로 당연히 석회 동굴이다.

 

이렇게 대충 만들어 놓고 "인디오 동굴"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너무 성의없어 보인다.

 

동굴 속으로 파트리시아의 뒤를 따라 들어간다. 종유석이나 석순이 보이기는 하지만 별로 많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망가지는 동굴. 관광을 위해 조명을 계속 켜 놓으니 이끼가 바위를 덮었다.

 

줄서서 기다렸다가 작은 보트를 탄다.

 

보트 타고 출발.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

 

밖으로 나왔다. 석회동굴 구경 잘했다.^^ 이렇게 둑을 만들었기에 동굴 내부에 일정 수위가 유지되고 그 덕분에 보트의 지속적인 운항이 가능한 것이다.

 

일 끝났으면, 소나 타! 소뿔 모양이 특이하다.

 

 

시가 생산 공장을 방문하는 줄 알았다. 공장이 아니라 그냥 Tabacco Plantation을 하는 Casa del Veguero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담배 재배 농가로 인근에서 대표적인 곳 같다. 그러니까 단체 관광객을 데리고 왔겠지. 다른 외국인 팀이나 대절 택시를 통해 관광객들이 오는 것을 보니 맞을 것이다.

담배 재배 농가이니 밭에 담배가 자라고 있다.

 

이렇게 뜯는다.

 

이렇게 묶어서 말린다.

 

이런 건조장 안으로 들인다.

 

이렇게 건조장에 매달아 말린다.

 

이렇게 마르면 시가를 만들 준비가 된 것이다.

 

이렇게 폼 잡고 앉아서 손질하며 말아준다.

 

이렇게 말렸다. 시가다. 농장 제조 OEM 시가. 어떤 상표든 붙여서 나가면 된단다. 이것은 상표가 없는 벌크. 10개 묶음에 10CUC. 담배 좋아하시는 분들께 분양....^^

 

다음 답사할 곳은 선사시대 벽화이다. 아래 경로도의 왼쪽 끝 부분에 선사시대 벽화가 있다. 선사시대?

 

Mural de la Prehistoria

오해하면 곤란! 선사시대의 벽화가 아니다. 선사시대를 상상하여 현대에 그린 그림들이다. 너무하다.

이곳에서 여럿이 떠들고 있으니 아는 척 하는 모르는 사람을 만났다. 현대중공업 직원으로 2001년 쿠바에 와서 지내다가 정착했단다. 현지인 여인과 결혼하여 아이들도 낳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왔다가 한국 사람들이 반가워 대화~
발전소 건설 직원으로 와서 여러 해 지내다가 정착하였는데, 회사가 철수하는 바람에 회사를 그만두었단다. 가족과 함께 귀국하고 싶은데, 쿠바인들의 출국이 너무 어렵단다. 내보내주질 않아서 한국으로 귀국하질 못하고 있단다. 일단 쿠바에서 생활하여야 하니 등록을 하였고, 그래서 자신도 배급카드가 있다고 보여주었다.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길 기원~

 

부근의 시뻘건 밭을 다시 한번 방문해보았다.

닭이 한가하게 노니는 밭의 모습.

 
아바나로 귀환한다. 저녁 식사를 한 식당. 디자인이 근사하다.
아바나의 식당들은 느리다. 느리다. 오늘은 모로요새의 포격식을 꼭 보겠다고 다짐하며 식당을 다그친다. 먹었다.

 

산 카를로스 요새로 입장을 한다.
Fortaleza de San Carlos de la Cabana.

Fortaleza de San Carlos de la Cabaña (Fort of Saint Charles), colloquially known as La Cabaña, is an 18th-century fortress complex, the third-largest in the Americas, located on the elevated eastern side of the harbor entrance in Havana, Cuba. The fort rises above the 200-foot (60m) hilltop, along with Morro Castle (fortress).

After the capture of Havana by British forces in 1762, an exchange was soon made to return Havana to the Spanish, the controlling colonial power of Cuba, in exchange for Florida. A key factor in the British capture of Havana turned out to be the overland vulnerability of El Morro. This realization and the fear of further attacks following British colonial conquests in the Seven Years War prompted the Spanish to build a new fortress to improve the overland defense of Havana; King Carlos III of Spain began the construction of La Cabaña in 1763. Replacing earlier and less extensive fortifications next to the 16th-century El Morro fortress, La Cabaña was the second-largest colonial military installation in the New World by the time it was completed in 1774 (after the St. Felipe de Barajas fortification at Cartagena, Colombia), at great expense to Spain.

-wikipedia

 

 

경비병사 코스프레. 잘 생긴 총각. 머리카락이 하얗다. 흰머리 반갑다.^^

 

포격식. 이런 대포알을 날리는 줄 알았다.

 

관광객들이 들어오니 길목마다 장터.

 

포격식을 보러 모여든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

 

병사들이 행군하며 입장한다.

 

조 위의 대포를 쏘는 모양인데, 늦게 와서 가까운 곳에 자리가 없다. 보이지도 않는다. 포격식을 "보러" 왔는데 볼 수 없으면 어떻게 하나?

 

반대편에 건물이 있었고, 그 옥상으로 사람들의 머리가 보인다. 올라가자. 헌데 유료다. 두당 1 CUC을 내라고 한다. 광주에서 온 김○일 선생님이 두 몫을 내준다. 할렐루야~

 

자알~ 보인다. 가운데 대포 하나. 양쪽 옆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관광객들 위치한다. 다들 기대하고 있다는 감이 건너편까지 전해져온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와서 무엇인가 점검을 하는 모습도 보이고 해서 진짜 대포를 "쏘는 줄" 알았다. 뭐라고 뭐라고 한참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대포에 알을 장전하는 퍼포먼스도 하고 해서 진짜로 "쏘는" 줄 알았다.

...

그냥 폭음탄 소리 하나 내주고 만다. 대포알을 펑 쏘고, Canal de Entrada에 띄워놓은 범선이 뻥터지거나 물기둥이 촤악 올라오는 모습을 기대했었는데......^^

그래도수고한 병사들은 북치면서 퇴장~

...

 

인증 사진이나 하나 놓고 내려간다.

 

집에 가자~

 

내일은 67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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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새벽. 산티아고를 몰래 떠난다. 도망친다. 정전된 틈을 타서.

밀 박스를 준비하겠다 하여 뭔가 했다. 웬 밀가루? meal box였다. 5시20분에 일어나 가방을 밀고 로비로 내려왔다. 계단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도와준다. 6시. 샌드위치, 쥬스, 물 한병을 준다. 로비에서 치워버린다. 공항을 향해 6시반에 출발. 호텔 주변만 깜깜하다. 이쪽 블럭만 정전.

 

 

요걸 타고 산티아고에서 아바나로 날아간다. 아담한 비행기. 하나 갖고 싶다.

 

아바나에서의 일정. 이렇게 이렇게 돌아다녔다.ㅎㅎ

 

Plaza de la Revolucion. 혁명의 나라라서 도시마다 혁명광장이 있는 듯하다.

 

혁명 광장이다. 호세 마르티 기념관이다. 탑이 높다.

The José Martí Memorial (Spanish: Monumento a José Martí) is a memorial to José Martí, a national hero of Cuba, located on the northern side of the Plaza de la Revolución in the Vedado area of Havana. It consists of a star-shaped tower, a statue of Martí surrounded by six columns, and gardens.

The 109m (358 ft) tower, designed by a team of architects led by Raoul Otero de Galarraga, is in the form of a five-pointed star, encased in grey Cuban marble from the Isla de Pinos. The design was eventually selected from various entries put forward from a series of competitions beginning in 1939. Entries included a version of the tower topped with a statue of Martí, and a monument similar to the Lincoln Memorial in Washington, D.C. with a statue of Martí seated within. The fourth competition held in 1943 resulted in the selection of a design by the architect Aquiles Maza and the sculptor Juan José Sicre. In order to proceed with construction of the monument, the Monserrat Hermitage, which occupied the proposed site, had to be demolished. Various impediments to the acquisition of the Hermitage by the state led to delays in the demolition and the start of building work, so by 1952 when Fulgencio Batista seized power in a coup work on the construction had still not begun.

-wikipedia

 

탑을 올라갈 시간은 안되지만 바로 아래까지는 가보고 싶었다. 접근하는 통로가 여럿인데 모두 경찰이 차단하고 있다. 차단되지 않은 한 곳에서는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쿠바 공산 혁명 주역 중의 한 사람인 Camilo Cienfuagos. "Vas Vien, Fidel"이라는 문구와 함께 방송국 건물의 벽을 장식하고 있다.

 

Che Guevara. 쿠바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체 게바라의 조형물 모습이다. 유명한 문구이다. 이제 외우겠다. "Hasta la Victoria Siempre"라는 문구와 함께 내무성 건물의 벽을 장식하고 있다.

 

 

쿠바는 원주민 문화가 없다. 인디오들은 모두 멸족 당했기에. 이민족의 문화로 채워진 나라. 그 중에 아프리카도 있다. 노예. 그 아프리카 문화를 현재에 되살리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살바도르. 그의 노력에 의해 아바나 시내의 골목 하나가 아프리카 문화로 채워지고 있다. Callejon de Hamel. 1990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단다.

 

하멜 동네를 들어간다.

 

아프리카 문화로 채워가는 하멜 동네를 일군 살바도르 아저씨.

 

하멜 동네의 모습. 버려진 동네였다. 그곳을 아프리카 색채로 채워가는 중이다.

 

헤밍웨이가 묵었던 호텔 암보스. 그 옥상의 전망대를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채우려 다시 도전한다. 오늘은 오르리라.

 

아이들을 놀래키는 "살아있는" 아저씨.

 

암보스 문도스 호텔. 줄서서 엘리베이터를 탄다.

 

살 떨리는 구식이다. 하지만 안전에는 문제 없다. 아마도?

 

옥상의 전망대에 올라 아바나 시내를 조망한다.

 

 

 

헤밍웨이가 이곳에 묵으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일반인 투숙은 받지 아니한다. 방을 들어가보는데는 요금을 내야 한다. 2 CUC.

 

바닷가로 나서면 말레꽁 해변이다. 미국 대사관 앞쪽. 존엄 광장이라고 소개가 되어 있다. Tribuna Anti Imperialista Jose Marti.

 

깃대 떼거리 뒤로 언뜻 보이는 것이 미국 대사관 건물이다.

 

공연장 등으로 이용되는 공간이다.

 

광장 한 켠에는 쿠바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인물들의 명패가 새겨져 있다. 명패가 떼어진 부분도 있다. 왜?

 

저쪽 건너편은 말레꽁. 파도가 들이댄다.

 

쿠바 아바나의 명물 올드카 시행 체험 코스이다. 요로케 한 바퀴 돌았다. 기사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1시간 투어하는데 비용이 30CUC라고 한다.

 

반얀트리 공원을 들렀고.

 

존 레논 공원도 들렀다.

 

올드카 시승. 기사 아저씨가 뭐라 한다. 잠자코 있어야지.

탑승했던 차량.

 

잠시 멈추어 쉬던 곳. 반얀트리 공원이다. Parque Miramar.

 

Rio Almendares. 알멘다레스 강 주변에는 습도가 높아서인지 식생 밀도가 상당히 높았다.

 

Monumento a John Lennon. 존 레논 공원. 예쁜 아가씨.^^

 

레논과 친구가 되어본다. 동그란 썬글라스를 빌려주는 할아버지가 있다. 아무 말도 안한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썬글라스를 내어준다.

 

Avenida Paseo 길가. 북한 대사관이라고 알려준다. 초소도 있다.

 

쿠바의 하늘은 오늘도 저문다.

 

저녁 식사를 했던 식당.

 

산 카를로스 요새에서 거행되는 포격식을 관람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식민지 기간에 아침, 저녁 8시에 항구 출입 시간을 알리된 포격식. 지금은 관광용으로 저녁 9시에만 거행한다. 저녁이 늦어져 포격식 관람을 할 수 없었다.

 

아바나 골목길 야경.

 

니콘 DSLR 카메라를 버릴까 하다가도 멈추는 이유.

그렇게 어두운 밤이었는데도 건물을 이렇게 잡아준다. 더 밝게 만들 수도 있으나 밤의 분위기를 위해 이정도에서 멈추었다.

 

뭐...오늘도 즐거운 하루.....감기가 낫지 않은 하루....피곤한 하루....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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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틈에 1월 10일이다. 화요일이다. 날이 밝았다. 쨍하게 밝았다.

산티아고 데 쿠바는 쿠바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도시라고 한다. 산티아고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집.

산티아고에는 백인보다 흑인이 더 많다. 아이티에서의 이민과 아프리카 노예의 유입 때문이다. 노예들은 사탕수수, 커피 생산에 동원되었다. 커피는 아이티에서 이주한 프랑스인들에 의한 것이었다. 아이티에서 노예들에 의한 독립 전쟁이 일어나 승리하면서 커피 플랜테이션을 하던 프랑스인들이 인근의 쿠바로 이주한 것이었다. 그들이 산티아고 데 쿠바에 모여 정착한 곳이 티볼리 타운이다.

 

쿠바 혁명의 주역 피델, 그리고 그가 존경한다고 하여 쿠바 전역이 동상이 깔린 호세 마르티 그들의 묘역인 세멘테리오, 그리고 시내의 주요한 뽀인트를 둘러보았다.

 

장묘 문화는 문화다. 나라마다 다르고 지역마다 다르다. 하여 해외 여행을 할 때면 해당 지역, 국가의 독특한 장묘 문화를 볼 때마다 신기함을 느끼게 된다. 쿠바는 어떠할까. 몇 번 기회가 있었지만 산티아고로 미루었다. 에빌리오가 그랬다.

그렇게 미루고 기대하게 한 산티아고의 세멘떼리오이다. 1868년 건설된 가장 오래된 공동묘지. 쿠바 초대 대통령, 자본주의 기간의 대통령, 피델, 호세 마르티 등의 묘가 있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일단 보는 이들을 긴장하게 한다. 피델과 호세 마르티 묘 앞에는 경비병이 있는데 30분 마다 교대식을 거행한다. 볼거리이다.

 

그렇다. 이곳은 쿠바에서 제복을 입고 어찌해야 하는 곳이었다. 피델 카스트로의 묘역이다.

 

게다가 그 피델 카스트로가 가장 존경한다고 하여 쿠바 전역에 동상이 깔린 호세 마르띠의 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호세 마르띠의 시선은 저 아래로 향하고 있다. 그곳에는...

 

자신의 묘가 있다. 쿠바 국기로 덮는다.

 

제대로 하는지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쿠바인들, 관광객들.

 

쿠바의 역사 시대는 간단하다. 인디오 시대, 식민 시대, 자본주의 시대, 혁명 시대. 이 묘역은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그런 곳에 쿠바 혁명의 상징 호세 마르티의 묘역이 있다.  피델 카스트로는 생가의 가족 묘역을 버리고 이곳으로 왔다. 이 곳 묘지는 근사하다.

 

Plaza Antonio Maceo Grajales. 

 

 Complejo Monumental Antonio Maceo.

1997년부터 쿠바는 관광 개방을 시작하였다. 다른 지역은 개방 이후 주민들의 의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공산혁명이 시작된 산티아고는 아직도 주민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혁명의식 수준이 높다고 한다. 하여 아바나 등지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비판적인 대화가 가능하지만 이곳 산티아고에서는 그러다가는 혼난다고 한다.

 

광장 옆 길가에 버스가 정차하고 손님을 태운다. '버스'다.

 

10시 30분. 쿠바 혁명이 시작된 현장을 찾았다. 바티스타 군대의 주둔지를 공격하여 무력화시키면서 기세를 올리게 된 현장이다.

 
Cuartel de Moncada. 몬까다. 바티스타 정부군의 병영이었다. 피델 등의 혁명군이 이곳을 공격하면서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치열한 전투의 현장은 뻥. 건물은 리모델되었다. 그렇게 하면서 총탄 자국도 적절히 '만들어진' 것이다.

 

역사적 현장을 쿠바 당국은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다. 시설 자체는 박물관이다. 몬까다 박물관. 하지만 그렇게만 이용하기에는 시설이 너무 크다. 그래서 나머지 시설을 학교로 이용한다. 또 그렇게 하면서 이념 교육과 홍보의 현장이기도 하다. 박물관 들어가는 입구에 교실을 하나 두고 있다. 홍보용이다. 초등 6학년 과정의 학생들 한 학급이 들어가 있다. 우수 학급이다. 손님들이 들어왔을 때 언제든 수업 과정은 공개된다.

 

매쓰매티카 수업 시간이다. 대체로 학생들이 너무 쉽다고 이야기 한다. 즉 이 교실에 들어 있는 학생들은 정구 교육과정을 뛰어 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초등 6학년 과정인데 방문객들과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다. 부럽다.

 

 성공했으니까 '혁명'이 되었다. 자료 사진들.

 

산 후안 동산. 미국과 스페인 사이의 전쟁을 마감하는 종전 조약 장소이다. Loma de San Juan 아래 쪽에 평화의 나무 Arbol del la Paz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다. 대충 나무 한 그루 심어 놓았다.

 

La Paz, 라파스. '평화'라는 것은...

 

미서 전쟁. 미국과 스페인 사이의 전쟁을 마감하는 종전 협정 조약 장소. 에스파냐 어와 영어로 조약의 내용을 모두 새겨놓았다.

 

산티아고 데 쿠바도 항구도시이다. 최근에 조성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진 항구 도시이다. 그 때는 해적을 비롯한 외적의 침입이 현실이었다. 그러한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 모로 요새를 본다. 아, 점심부터 먹고.

 

모로 요새 턱 밑에 El Morro라는 식당이 있다. 화장실 입구에서 서비스 요금을 받는다. 꼭 내야하는 것은 아니다.

San Pedro de la Roca Castle라는 정식 명칭이 있지만 모로 요새라고 불리운다. morro는 입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러니까 河口 쯤 되겠지. 하구에 만들어진 요새. 적절한 이름이다. 아바나 항구의 입구에 만들어진 요새도 모로 요새이다. 그러니까 모로 요새라는 이름은 고유 명사가 아니라 보통 명사로 보면 되겠다.

 

평면도. 1643년 스페인인들이 항구 방어를 위해 건설한 요새이다. 400여 명의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었다고 한다.

 

포대.

 

요새를 건설한 석재는 대부분 석회암이다. 석회암이기는 하지만 탄산칼슘의 함량이 적어 카르스트화 작용이 적어 오랜 기간 변형없이 유지될 수 있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요새에 깔린 아름다운 목소리가 어찌된 것인가 했더니 이 아가씨들의 작품이다. 계속 아름다운 화음으로 노래를 들려준다. 물론 앞쪽에 작은 바구니가 있다.

 

주변 지형을 그려두었던 지도.

 

산티아고 시내로 들어온다.

 

오후 3시 10분. Santa Rita 거리를 걷는다. 학생들이 보인다. 하굣길의 학생들.

 

쿠바 혁명 박물관의 하나이다. 지하 투쟁 박물관이라 안내가 되기도 한다. 공산혁명 이전에는 경찰서였다고 하는데.

11월 30일...

 

쿠바의 공산 혁명은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시작되어 아바나를 향하게 된다. 박물관 내부의 기록물.

 

오후 3시 50분. 유명한? 유명한가? Escalinata de Padre Pico 계단이다.

 

티볼리 거리. 산티아고에 들어왔던 프랑스인들이 집중 거주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벨라스케스 저택의 하나. 언덕위의 높은 곳에 위치하여 전망이 좋다.

 

벨라스케스 발코니. 산티아고 항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멀지 않은 곳에 '까사 벨라스케스'도 있었는데(나중에 지도에서 확인) 그곳도 가보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건물에는 벨라스케스를 비롯한 식민지 시절의 인물들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시내에는 철도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저 멀리 보이는 '트럭 버스'의 육중한 모습.

 

오후 4시 10분. Cespedes Park. Hotel Casa Granda. 옥상에 전망대가 있다.

 

대성당 및 그 내부의 모습.

 

까사 그란다 호텔 옥상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성당.

 

산티아고 주변 산지의 이곳 저곳에서 연기가 발생하고 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 자연적인 산불이 아닌 것 같다. 무엇인가를 소각하는 것일지도.

 

산티아고 시내를 달리는 트럭 버스.

 

Hotel Imperial Santiago.

 

저녁 식사는 Ire a Santiago(나는 산티아고에 간다)에서. 양고기, 스파게티, 돼지 고기 중에서 택1. 양고기가 가장 나은 평가를 받았다.

 

호텔 주변 골목길.

 

고생한 하루를 편히 쉬고, 아바나로 날아갈 날이 밝아오기도 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 정전이란다. 창밖을 보니 호텔이 포함된 블럭만 정전인 것 같다. 항구 쪽은 불빛이 살아 있는데...

편히 쉬기도 어려운 쿠바의 밤을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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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9일 월요일. 날이 밝는다. 카리브해의 날이 밝는다.

알람을 잘못 조절하여 789인데, 6시에 깼다. 제길.

 

해변. 북반구의 1월이다.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되지만 이곳도 겨울은 겨울이다. 그래서 해변의 해수욕객은 없다. 아침이라 그런가? 그리고 감기는 계속 따라 다닌다.ㅠ.ㅠ

 

리조트 내의 수영장, 바, 식당. 몸이 늘어지니 '올 인클루시브'는 그냥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일 뿐이다.

 

안나오고 방안에서 꼼지락거리기.

 

 

Guardalavaca를 떠나 올긴을 살피고 아바나로 옮기기 전 쿠바의 수도였던 항구도시 산티아고 데 쿠바를 향한다. 중간에 비란을 경유했다가...

 

쿠바에서 4번째 규모의 도시 올긴. 상업 도시.

 

올긴 답사는 혁명광장에서 시작했다. Plaza de la Revolucion de Honguin

 

혁명 광장은 넓은 잔디밭으로 구성되어 있다. 

 

'혁명'

혁명 조형물 앞을 지나가는 얼굴 하나...

 

마차 택시가 사람들을 잔뜩 태우고 지나간다.

 

본격적인 올긴 시내 탐사를 시작해본다. Calixto Garcia Park, Las Flores Park, Parque Don Quijote, San Jose Park 순으로 돌아보았다.

 

쿠바 독립 전쟁의 영웅 Calixto Garcia 장군을 기리는 Calixto Garcia Park이다. 동상 주변을 재정비 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하던 아저씨가 영어로 이것 저것을 물어왔는데, 내가 벙어리라 대화가 진행되지 못하였다. 영어 벙어리.....ㅠ.ㅠ

Calixto García Iñiguez (August 4, 1839 – December 11, 1898) was a general in three Cuban uprisings, part of the Cuban War for IndependenceTen Years' War, the Little War and the War of 1895, itself sometimes called the Cuban War for Independence, which bled into the Spanish–American War, ultimately resulting in national independence for Cuba.

-wikipedia

 

자전거 택시. 번호판이 달려 있다.

 

공원 옆의 식당이다. 말 잘하면 식사를 하지 않아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화장실 때문에 들른 곳이다.

 

Las Flores Park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공원에 오니 또 커다란 동상이 있다. Julio Grave de Peralta 장군이다.

 

공원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앉아서 '월요일 오전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어..이 사람 정체가 뭘까? 월요일 오전인데...

 

공원 한쪽의 조형물. 콜럼버스의 상륙에서부터 인디오, 흑인 노예 등 여러가지를 모아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SI Catedral San Isidoro과 그 내부 모습. 

성 이시도로 성당.

 

자전거 택시 투어를 하였다. 원래 계획에 없던 것인데 주최측은 어디서 돈을 마련하여 이런 추가 투어를 시켜주는지 모르겠다.

 

잘 달린다. 자동차들 사이를 잘 달린다.

 

금방 돈키호테 공원에 도착했다.

 

에스파니아 라만차 마을에 있어야 할 돈키호테가 산초 판사까지 끌고 쿠바에 뭔 일인가 싶다. 그러고보니 라만차 마을에 갔을 때는 망가진 풍차만 보고 온 것 같다. 라만차를 버리고 쿠바의 올긴으로 이민온 것일까?

나름 똑똑한 산초 판사의 고생이 많다. 날뛰는 말의 발굽을 튀어나온 배로 막아낸다. 탄탄한 맷집.

 

공원 한 쪽에 하얀 가운을 입을 예쁜이들이 쉬고 있다. 부근에 약학대학인가가 있다던데 그곳의 학생들일 것 같다.

 

이 팀은 자전거 택시 기사가 넘 미녀이다.

 

Arias라도 되어 있는 길을 따라 산 호세 공원으로 달린다. 아...자전기 택시 기사가 달린다. 승객인 나는 그냥 그냥 그냥 간다... 과일 가게 옆을 지난다.

 

근사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Iglesia San Jose.

 

지나가는 방문객 1.

 

아마도 지구를 밟고 있는 천사.........

 

천사가 밟고 있는 구의 정체에 대한 토론은 의미가 없다. 답을 모두가 모르니까.

 

자...가자...올긴이라는 도시의 답사에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라고 그렇게 강조되는 것의 정체를 확인하자.

 

시내 답사의 마무리는 Loma de la Cruz, 그리고 그 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십자가가 있는 언덕 Loma de la Cruz. 1790년에 만들어진 십자가이다.

(스마트폰의 후면 카메라에 찍히는 사진에 전면 카메라에 찍히는 사진을 PIP로 만들어주는 기능이 갤럭시 폰에는 없다. 한 때 사용했던 중국제 스마트폰에는 있었는데...)

계단이 있는 언덕이니 올라오며 셀피~

저 아래로 계단을 하나씩 잘 세어보니 458개였다.

 
올긴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전망대다.... 그런데 별로 감흥이 안온다.

 

점심을 먹자. 관타나메라를 부르자.

아..조옥 팔리는 이야기.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탑승하였다. 조금 무엇인가 한 것 같은데 나의 사랑스러운 삼성 Note3가 안보인다. 두고 온것 같다. 달린다. 없다. 다시 내려 온다. 어찌할 방법이 없다. 혹시 이빨 닦으러 갔던 화장실에 두고 왔을까? 뛴다. 없다. 아........노리던 중국산 핸드폰을 사야 하나보다 했다. 그런데 남팀장이 초를 친다. 핸드폰을 찾았단다.

버스에 승차하면서 핸드폰을 의자에 달린 주머니에 던졌다. 그리고서는 10초후에 잊었다. 그리고서는 핸드폰이 없다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에피소드.

 

쿠바의 대표적인 맥주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이 도시 저 도시의 식당에서 몇 번 만났으니. 왠 '북한'인가 했다. bucanero. 17, 8세기 카리브 해를 누비던 해적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병에 해적이 그려져 있었다.

 

 

어..가자 비란으로.

 

비란. 그렇게 대단한 곳은 아니다. 쿠바에서 비란이란 뭐....아무 것도 아니다. 사소하다. 겨우..........쿠바를 그렇게 장기 집권했던 피델 카스트로의 생가 마을이다. 사소하지?

 

쿠바 대장 카스트로이다. 그의 생가이다. 그런데 의외로 담백하다. 돈이 없엇 치장을 하지 못했을까? 동양의 어떤 나라의 다까끼 마사오의 행적을 거시기 해놓은 거시기와는 상당히 거시기하게 비교된다.

 

일단 쿠바에서 색을 예쁘다. 아....여긴 변소여.

 

피델 카스트로의 가족 묘역. 하지만 피델을 산티아고 데 쿠바로 갔다.

아버지는 스페인인, 어머니는 쿠바인. 일대의 땅을 소유했던 부잣집.

지금은 Biran이 고속도로에서 떨어진 외진 곳이지만 이 당시에는 올긴에서 산티아고 데 쿠바를 잇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카스트로 집안을 일굴 수 있었던 것이다.

 

피델 카스트로가 아가였을 때 앉았던 자리. 아버지가 지주였다. 자식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었고, 그 중에 피델이 좀 튀었나보다. 그래서 그 놈은 도회지로 보냈단다.

 

가족들이 지내던 곳.

 

방문객 1.

 

애기 피델이 사용했던 침대.

농장의 직원들 숙소. 자연친화적인 자연산 현지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핸드 메이드 가옥들이다.

...

의외였다. 의외였다. 그렇게 장기 집권하였던 피델이라면 쿠바에서는 영웅에 영웅을 떡치할만도 한데 그의 생가는 조용했다. 차분했다. 막걸리라도 팔고 그래야 하는데 아무 것도 없다. 입장료 내고 들어와 이런 저런 제약 조건을 모두 지키고 거시기 하다가 그냥 나온 것이다. 

 

가자 산티아고 데 쿠바로. 도시 초입에서 무진장 먼 곳에 이런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다. 강조한다. 초입이 아니라 무진장 먼 곳이다.

 

달리고 달리고 달려서 산티아고 데 쿠바에 들어섰다. 밤 7시쯤 도착. 기온이 22도에 이른다.

 

저녁을 먹자. 식당.

 

식사를 마치고 Plaza de Marte를 가로 질러 숙소인 Hotel Imperial Santiago까지 걸어갔다.

 

먹고 배부르면 자자......

내일은 .5이다.

6.5, 7.5,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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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8일. 일요일. 트리니다드에서 카마구에이를 거쳐 올긴을 지나 바닷가의 숙소 Brisas Guardalavaca Hotel까지 537km를 달렸다.

 

6시 50분. 날이 밝았다. 여기는? 쿠바구나.

 

손목의 고리를 보고서야 숙소가 '올 인클루시브'였다는 것이 기억났다. 감기에 시달라느라 몸이 느러져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깝다. 

 

해변 산책을 즐겼다.

 

Cuartel de Caballeria. 기병대가 주둔했던 곳 같다. 뒷편으로 Trinidad 역이 있는데,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이루어졌던 잉헤니오스 계곡에서 생산된 설탕을 운반하는 통로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8시 30분. Cuartel de Caballeria, 기병대 막사 쯤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 같다. 감옥으로도 이용되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용도가 없는 것 같다.

 

튼튼한 트럭이 앞을 지난다.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잔뜩 타고 있다. 모두 서서 위로 머리만 내밀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쿠바의 유명한 '트럭 버스'이다.

 

낡아 부서져 가는 병영을 돌아 뒤편으로 돌아가면........

 

Trinidad역이다. 몇 량의 차량과 기관차가 멈추어 있다. 1760년 사탕수수 농장에서 사용하기 위해 건설한 철도라고 한다.

 

다시 움직일 것도 같은데....

 

Valle de los Ingenios. 잉헤니오스 계곡이라고 옆구리에 써 있다. 쿠바에서 설탕의 절대적인 양을 생산해 내었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의 현장 잉헤니오스 계곡에서 출발하던 열차.

사탕수수 농장을 잉헤니오라고 불렀다고 한다. 최대 40개 정도의 잉헤니오가 있었다고. 잉헤니오는 사탕수수 농장, 그것에서 설탕을 만드는 공장, 거기에 일하는 사람들의 마을까지 통합하여 부르는 용어라고 한다. 하나의 장원 같은 개념이겠다. 스페인 사람들이 있었을 때는 Ingenios라고 했는데, 미국인들이 들어오면서 Central Asucarero라고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기능은 그대로.

 

지금은 멈추어서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음료를 판매하는 간이 바로 이용되고 있다.

 

역의 한편에는 희한한 물건도 있다. '열차 버스'란다. 수리중이다. 상태가 오묘하다.

버려진 것과 사용하고 있는 것의 중간 경계를 본 것 같다. 버려진 것 같기도 하고 현재 이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버려졌다가 다시 손길이 닿으면 이용되는 것이겠지. 모든 물자가 부족하니 모든 것을 다시 손질하여 사용하는 나라, 한 때 풍족했기에 많은 것을 '누군가' 가졌던 나라, 지금은 조금 곤란한 나라, 여러 가지 상반된 이미지가 머리 속을 날아다닌다.

 

말은 훌륭한 동력 수단이다.

 

트리니다드를 떠난다.

 

아벨리오가 보여준 자신의 배급표. 월급은 터무니 없이 적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불편없이 살아가는 이러한 배급 시스템이란다. 기본적인 것은 적절히 나누어 주니까. 하지만 서서히 사람들이 '부족'을 느끼고 있단다. 부족한 것은 '시장'에서 구입해야 하고, 구입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마련하려면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해야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 사람들은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조금 불편한...그런 사회인 것 같다.

배급 카드에 쌀, 설탕, 비누, 소금, 콩, 커피, 담배, 과자, 빵, 생선, 닭고기, 우유, 기름, 야채 등 할당. 1990년대 러시아인들이 빠져 나가기 전까지는 부족한 줄 모르고 살았다. 쿠바인들 잘 살았다. 하지만 러시아 인들이 빠져나간 다음부터 부족을 체감하기 시작하였다.

카스트로가 혁명을 할 때는 사회주의만 생각하였는데, 소련에서 공산주의를 요구하였다고 한다. 카스트로 형제와 달리 혁명의 주역이었던 칼밀로 시엔푸에고스, 체 게베라는 반대하였다고 한다. 뜻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로 떠난다. 그곳에서 사망한다. 반 카스트로 운동을 하던 우베르만토를 체포하기 위해 떠났던 카밀로는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다. 자, 이들은 그냥 사고로 죽은 것일까? 두 사람이 죽은 다음에 카스트로는 소련과 합작을 진행하였다고.

쿠바 사람들의 주식은 쌀이라고 에밀리오는 말한다. 브라질, 베트남 등지에서 쌀을 수입한다고 한다. 자급률이 20% 정도라고 한다.

 

 

사탕수수 재벌 Iznaga가 지배하던 땅. 지명에도 남아 있다. Manaca Iznaga. 

 

멀리 저택이 보인다. 길 양쪽으로 노점상이 줄지어 있다. 쇼핑의 유혹과 함께 하는 이즈나가 저택 방문.

 

시선을 끄는 것은 우뚝 솟은 탑이다. Torre de Manaca Iznaga라고 불리는 탑. 농장 관리 및 작업 감시용 탑이었으리라. 137개의 계단이 있다. 가파르다. 오르기 힘들다.

 

탑을 오르면 아래로 주변 정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탑 아래의 하늘을 나는 매.

 

탑에서는 잉헤니오스 계곡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도 세다.

 

Iznaga 저택의 내부에는 식민지 시절의 생활 소품들이 많이 남아 있다. 잉헤니오스 계곡의 대략적인 모습을 알 수 있는 지도로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의 일상을 보여주는 벽화들과 소품들도 있다.

 

사탕수수 줄기를 으깨어 즙을 짜내는 기계이다. 동력은? 당연히 人力이다. 기계에 사탕수수 줄기를 넣고 커다란 나무 손잡이를 양쪽에서 잡고 돌리면 된다. 의외로 힘이 든다. 애써 짜낸 즙에 럼주를 약간 타서 마신다. 달콤하다. 맛 있다.

 

미국 뉴욕의 버펄로에서 1884년 7월 15일에 생산된 제품이라고 각인되어 있다. 생산된지 130년이 넘은 쇳덩어리이다. 멀쩡하게 작동한다. 대단하다.

 

간이 기차역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설탕을 유럽으로 실어내었던 철도. 지금도 이용되고 있는 것일까?

 

뙤약볕에 상체를 드러내고 사탕수수 줄기의 껍질을 벗기고 있던 노인. 간이역사 뒷편의 작은 가게에서 판매하기 위해 사탕수수를 손질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나까를 떠난다. 길을 달리다가 길가에 넓은 사탕수수 재배단지가 보여 차를 멈추었다.

 

11시 30분. Bienvenidos. 환영한단다. 환영을 받았으니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한다.

 

사탕수수밭의 사탕수수는 이렇게 생겼다.

 

껍질을 벗기고 잘라내면 이렇게 생겼다. 씹으면 즙이 살짝 나온다. 달다. 설탕이다.

 

Jatibonico. 연기를 뿜는 커다란 굴뚝이 보인다. 사탕수수 처리 공장이라고 한다. 설탕을 만드는 곳.

물을 사기 위해 정차를 하였다. 하지만 부근 가게에서 생수를 구입하지 못하였다. 없단다. casa라고 하는 민박집이 많이 생기면서 손님들을 위해 음료수, 생수, 맥주 등을 매집한다고 한다. 따라서 작은 도시의 경우에는 이러한 상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Ciego de Avila에서는 도시 확장을 위한 대규모 공사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길을 따라 차를 타고 달려 카마구에이에 도착하였다. 

까마구에이의 지역 경제는 목장이 주가 된다고 한다. 소는 정부 소유이며, 소마다 등록번호가 부여되어 있어 매년 검사를 한다고 한다. 일반인이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 그친다. 우유는 정해진 양을 상남하고 나머지는 개인적으로 시장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까마구에이에 가까워지면서 넓은 평야에 목장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토지 이용률은 상당히 낮아 보인다. 아벨리오 이야기로는 농사짓기에 좋은 땅이 별로 없다고 한다. 철망으로 구획된 목장들이 많이 보이지만 가축은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 가축 사육 밀도도 낮은 것 같다. 가축은 주로 소.

까마구에이 인구는 30만 명 정도. 스페인인들이 성당을 10개나 만들었을 정도의 큰 도시. 오래된 도시로서 좁은 미로형 가로망을 보인다. 영국 해적의 침입에 대비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까마구에이 라는 지명은 원주민의 지명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After almost continuous attacks from pirates the original city (founded as Santa María del Puerto del Príncipe around 1515 on the northern coast) was moved inland in 1528.

The new city was built with a confusing lay-out of winding alleys. There are many blind alleys and forked streets that lead to squares of different sizes. One explanation is that this was done by design, to make the city easier to defend from any raiders; by the same version, the reason that there is only one exit from the city was that should pirates ever return and succeed in entering the city, it would be possible for local inhabitants to entrap and kill them. However, locals dispute this reasoning as a myth, asserting that in truth the city developed without planning, and that winding streets developed out of everybody wanting to stay close to their local church (the city has 15 of them).

-wikipedia

 

차에서 내려 시내 답사를 시작한다. 헌데...배고프다. Plaza de San Juan de Dios 옆에 있는 La Campana de Toledo에서 점심을 먹는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쿠바 말이다.

앞으로 계속 관광객이 늘어날텐데, 제대로 좀 하자. 화장실 좀 어떻게 하자. 어떻게 대부분의 식당에 화장실이 한 칸씩이냐. 단체 손님와서 줄을 주욱 서서 기다리는 모습 안좋다. 아니 모습이 안좋은 것이 아니라 너무 불편하다. 이 식당도 그렇다.

 

식사를 할 때면 다가와 '관타나메라'를 부르는 연예인들. 이 팀은 오늘 많이 힘든가 보다. 대부분 웃는 모습으로 노래하던데, 힘든 표정이다.

 

식당 내부 여기저기에 항아리들이 묻혀 있다. 영국 해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뭐가 어쩌구 하면서 설명을 하던데...아직 모르겠다.

해적 등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 항아리에다가 재산을 숨겼었다고 한다. 빗물을 받아 저장하는 용도로도 사용한 적이 있고. 물론 그 전에 도자기의 생산이 많이 이루어진 지역이라는 특징도 작용하여 항아리가 이 지역을 상징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는 전설~

 

Plaza de San Juan de Dios. 산 후안 광장이다. 위만 쳐다보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바닥에 박혀 있는 쇠기둥에 무릎이 부딪혔다. 까졌다. 피났다. 아팠다. 하지만.... 보고 있던 사람이 없어서 창피하지는 않았다.ㅠ.ㅠ

 

Iglesia San Juan de Dios

 

쿠바 소녀의 외국인 감상하기.

 

Paco Recio, '건강한 야마'라는 뜻을 가진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식민지 시절의 틀이 남아 있는 도시라 길이 좁다. 하여 대부분의 길이 차량에 대해서는 일방 통행이었더라. 건물에는 왜 이리 예쁜게 색을 칠해 놓는지, 보기에 좋았다.

 

안내도.

 

공중전화기.

 

Ignacio Agramonte Park에는 Ignacio Agramonte 장군의 동상이 있다. 쿠바 혁명사에서 중요한 사람이란다. 10년 전쟁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Maceo 동상도 있다.

Lt. General José Antonio de la Caridad Maceo y Grajales (June 14, 1845 December 7, 1896) was second-in-command of the Cuban Army of Independence.

Fellow Cubans gave Maceo the sobriquet of the "Bronze Titan" (Spanish: El Titan de Bronce), which was a reference to his skin color, stature and status. Spaniards referred to Maceo as the "Greater Lion" (El Leon mayor). Maceo was one of the most noteworthy guerrilla leaders in 19th century Latin America, comparable to José Antonio Páez of Venezuela in military acumen.

-wikipedia

 

일부 구간의 철로가 시내에 남아 있다.

 

Iglesia de Nuestra Senora de la Soledad.

 

Iglesia de Nuestra Senora de la Merced.

 

Plaza de los Trabajadores. 건너편의 은행 건물이 근사하다. 와이파이가 지원되는 광장이므로 역시 젊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서 인터넷의 세계를 즐기고자 하고 있다.

 

누구라도 딱 보면 느낄 것이다. 이것이 '올드 카'.

 

시내 답사를 마치고 모여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떤 아줌마가 슬슬 다가오더니 뭐라뭐라 한다. 여러 사람이 듣고 대충 조합하니 샴푸나 비누 같은 것을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랬다.

 

카마구에이에서 올긴은 멀다. 버스가 열심히 달린다. 올긴을 우회하여 바닷가의 리조트 단지로 계속 달린다. Guardalava.

21시30분 쯤 숙소에 도착했다. 올 인클루시브. 저녁 식사가 아직 제공되고 있어 겨우 떼웠다.

 

도착했다. 체크인.

 

손목에 띠지 하나씩 붙여준다. All inclusive. 역시 모든 비용 포함되어 있으니 뭐든지 하라는 것. 단지 내의 아무 바에 가더라도 그냥 뭐든 달라고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돈 다 낸 것이다. 그냥 아주 막 마시면 된다.

하지만...피곤하다. 감기가 떨어지질 않는다. 그냥 자았다아~

아깝다. 올 인클루시브.

내일은 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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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7일. 토요일이다. 시엔푸에고스 시내 답사를 하고 트리니다드로 이동하였다.

 

시엔푸에고스 만에 날이 밝았다. 요트가 많이 정박해 있는 것이 눈에 들더라.

 

오전에 시엔푸에고스의 프라도 거리에서 호세 마르티 공원 등지를 답사하였다.

 

시엔푸에고스에서 묵었던 Jagua 호텔 앞에 있는 Palacio de Valle. 프랑스, 스페인, 아랍 등 서로 다른 세가지 건축 양식을 짬뽕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19세기 초 건축.

사탕수수 농장주 바이에스의 저택이었다.

 

프라도 거리에 있는 Benny More의 동상. 쿠바의 유명 연예인.

Bartolomé Maximiliano Moré (24 August 1919 19 February 1963), known as Benny Moré, was a Cuban singer, bandleader and songwriter. Due to his fluid tenor voice and his great expressivity, he was known variously as El Bárbaro del Ritmo and El Sonero Mayor. Moré was a master of most Cuban popular genres, such as the bolero, son montuno, mambo, and guaracha. Moré formed and led the Banda Gigante, one of the leading Cuban big bands of the 1950s, until his death in 1963.

-wikipedia

 

토요일이다. 장이 열렸다. 번화가 불레발 거리라고 소개하더라. 차량이 다니지 않아 주말이면 음식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노점상들로 채워진다고.

 

유명 건물 위치 안내도. 건물 사진만 있고 설명은 생략되어 있다.

 

한쪽에서는 공연 준비도 이루어지고 있고...

 

드루와, 드루와.

 

근사한 건물.

 

이발소 내부. 널찍하다. 여유 여유. 기다림.

 

시청 건물.

 

호세 마르티 공원에는 호세 마르티 동상이 있다.

 

뭔가....

 

손녀와 할머니, 비둘기, 그리고 외국인들.

 

결혼을 앞둔 신부일까 모델일까, 예쁜 아가씨가 좋은 날씨에 사진 촬영을 하고 있더라.

제보를 받았다. 15살을 맞아 예쁘게 단장하고 화보 촬영을 하던 아가씨라고 한다. 15살이라니.

 

외국인들이 들이닥쳐 뭔 짓을 하고 다니는지를 지켜보는 나무의 눈.

 

공원에 앉아 있으려니 쿠바 사람 하나가 다가와 체 게바라가 그려진 지폐를 내민다. 가지라는 줄 알았더니 아니더라. 눈치챘다. 돈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쿠바는 내국인용 화폐와 외국인용 화폐를 이원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같은 액면가의 요금을 받는다. 하지만 화폐 가치는 25배 가까이 된다. 지폐에 인물이 그려진 것은 내국인용 화폐이다. 외국인용은 건물이나 동상 같은 것으로 채워져 있다. 외국인들이 체 게바라를 많이 찾으니 그가 그려진 내국인용 지폐를 내밀고 같은 액수의 외국인용 지폐를 원한 것 같았다. 나름 괜찮은 환투기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환전을 하지 않아 CUC가 없어 그가 원하는대로 해주질 못하였다.

 

1890년에 문을 연 토마스 테리 극장.

 

Tomas Terry. 노예상을 하면서 부를 일구다. 하지만 주변인들의 좋지 않은 시선. 그것을 불식시키기 위해 극장을 만들었고, 사람들의 호의를 받게 되었단다.

 

개장 당시의 의자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100년이 넘었다.

 

극장 내부 모습. 공연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극장의 객석은 여러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정에는 멋진 그림이...

 

Catedral de la Purisima Concepcion. 

 

대성당 내부.

 

Palacio Ferre - Casa Provincial de la Culture

 

건물이 낡아 일부분만 문화 시설로 이용하고 있다. 발레 강습.

 

아이들 놀이터?

 

Jardin de UNAEC. 아프리카 음악인 것 같았다. 계속 공연 중.

 

시엔푸에고스 만의 바닷가 제방 위에서 스마트폰에 빠진 학생. 이곳도 해변이니 말레꽁이다.

 

시엔푸에고스 만의 바다에 물고기를 잡기 위해 빠진 펠리컨.

 

전화카드를 구입하고 있는 아벨리오.

 

해변의 시엔푸에고스 클럽에서 점심 식사.

클럽 시엔푸에고스. 자본주의 시절 카지노였던 곳이라고 한다.

 

다음 여행지 트리니다드로 향한다. 에스깜브라이 산을 지나 트리니다드로 진입한다.

1632년부터 스페인인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때문에 흑인과 뮬라토가 많다고 한다. 물론 메스티소도 많다.

인구는 4만5천명 정도.

사탕수수 농장을 운영하면서 이곳에서 부를 일군 사람들이 간떼로스, 이즈나가, 브루네로 등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시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하여 18세기 건물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Trinidad를 파스텔톤의 예쁜 도시라고 한다. 맞다. 파스텔톤의 예쁜 도시다.

 

도로 포장은 돌로 된 것이 그냥 남아 있다.

 

역사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Palacio Cantero를 먼저 찾았다.

 

탑이 있는데, 탑에 오르면 트리니다드 시내 전체를 조망해볼 수 있다. Plaza Mayor. 마요르 광장과 그 주변. 건너편으로 Holy Trinity 교회가 보인다.

 

멀리 San Francisco de Asis 성 프란치스코 교회의 멋진 모습도 눈에 든다.

 

Holy Trinity 교회와 그 내부.

 

어떤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파스텔톤의 도시

 

San Francisco de Asis.

 

여기도 La Bodeguita del Medio 짝퉁이 있다.

 

칸찬차라 바.

유명한 곳인가보다.

 

매달린 장식.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어지러워지더라.

 

음료 한잔. 꿀, 레몬, 얼음, 럼주 등이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트리니다드 과거엔 시골이었다. 이곳 사람들이 몸이 아파도 아무런 약재의 처방을 받지 못하였단다. 약이 없으므로. 그 시절 몸이 안좋을 때면 트리니다드 사람들이 약 대신 만들어 먹던 것이 이 음료라고 한다. 하지만.......나의 감기는 낫지 아니하였다.

 

바 입구의 카운터에 앉은 아저씨가 시가 만들기 시범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가를 판매한다. 맛보기로 피워볼 수도 있다.

 

예술하는 사람들.

 

상업하는 사람들.

 

여가 즐기는 사람들.

 

바베큐 당하는 돼지. 은은한 숯불에 하루를 이렇게 익힌다고 한다.

 

해가 저문다. 수고한 햇님이 쉬러 가신다.

 

오늘도 힘들게 달렸다. Playa Ancon 호텔에서 여장을 푼다. all inclusive 호텔. 숙박 비용에 여러가지 즐길 거리의 비용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여러날 같은 호텔에 머물 때나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바닷가에 호수가 많다보니 모기가 아주 많았다.

 

트리니다드의 돌길을 걸어다니다가 신고 있던 샌들이 망가졌다. 여러 해 나와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는데...ㅠ.ㅠ

발가락에 물집도 잡혔다. 제길~

저녁 식사 후에 다른 사람들은 트리니다드의 Los Conspiradores에 가서 살사 공연을 보러 갔다. 하지만 나는 감기가 심해져서 그냥 방에 뻗었다.

내일 아침은 67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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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장거리 이동을 했다. 아바나를 떠나 마탄사스를 거쳐 바라데로에서 점심을 먹었다. 계속 달려 산타 클라라를 거쳐 시엔푸에고스까지 450km를 이동하였다.

 

거의 평지로 이루어진 쿠바 중앙부를 아바나에서 동쪽으로 달린다. 아바나 항구 앞바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현장을 지난다. 아바나 동부의 고속 도로변에 커다란 운동장이 있다. Estadio Panamericano. 1960년대 미국의 경제봉쇠 속에서 쿠바가 솰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판아메리카 경기를 유치했던 곳이라고 한다.

Tarara. 공산 혁명 이전 부장들의 별장들이 모여 있던 동네라고 한다. 약 12km정도의 해변이 사빈으로 구성되어 있어 여름철 쿠바인들의 휴양지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쿠바가 산유국이다! Santa Cruz del Norte 인근의 해저에서 원유를 채굴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81년부터 시추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년간 4만톤 정도라고 한다. CUPET 쿠바 페트롤륨이라는 회사 설립. 

하늘로 연기를 뿜어내는 공장이 있다. 화력 발전소란다.

 

대기오염? 그런 것 모른다. 인공위성 영상에서도 아주 자~알 보인다.

 

마탄사스 조금 못미쳐 Bacunayagua 계곡이 있고 그 위로 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거의 평지로 이루어진 쿠바에서 보기 드믄 지형이다. 보기 드믄 곳에는 뭐가 있다? 휴게소 겸 전망대가 있다.

 

간판에 적혀 있다. 바꾸나야구야 전망대. Mirador de Bacunayagua.

 

쿠바에는 음악인들이 넘쳐난다. 전국의 어디라도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면 공연이 벌어진다.

계곡과 다리. 멋진 전망이 있으면 전망대가 가치가 있다.

 

그리고 주위 하늘을 점령한 폭군, 매. 상당히 많은 숫자의 매들이 하늘 날고 있었다.

 

전망대도 멋지다.

 

Matanzas. matanza가 '대량 학살'을 뜻한다. 하여 역사적으로 어떤 사건이나 의미가 있는 지명인가를 물었더니, 쿠바 가이드 아벨리오는 옛날 이 지역에 살면 인디오 부족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위키피디아에 검색해보니 '학살'에서 지명을 따온 것이 맞는 것 같다. 스페인인들이 저지른 학살이 아니라 자신들이 당한 학살이라는 것이 의외이기는 하지만.

마탄사스는 세 개의 강에 17개의 다리가 있어 '다리의 도시'라고 불린다고 한다. 마탄사스는 단손, 룸바 같은 음악과 춤이 발생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지역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많이 이루어졌던 곳이기도 한다. 그래서 아직도 설탕 제조 공장들이 남아 가동되고 있다.

 

마탄사스는 설탕 수출항, 화력발전소, 오일 탱크 등으로 기억에 남는다. 쿠바의 세번 째 규모의 무역항이란다.

1728년부터 스페인인들이 들어와 도시 건설을 시작하였다고.

인구는 66만 명 정도.

 

시내 중심에 자유 공원이 있다. Parque de la Libertad.

 

역시나 호세 마르티 동상이 공원 가운데 세워져 있다.

 

재밌는 모양의 공중전화 부스.

 

도서관이라고 써 있다.

 

Milanes길을 따라 걷는다.

 

Varadero. 16세기부터 스페인인들에 의해 개발되었고, 19세기에 이미 스페인인들의 휴양지로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1930년대에 미국인 백만장자 Irenee du Pont에 의한 투자가 이루어져 많은 미국인들이 휴양을 위해 찾았던 곳이다. Al Capone도 이곳을 들렀었단다. 하지만 쿠바 혁명으로 미국인들이 철수하면서 휴양지로서의 면모는 퇴색되었다.(이곳을 찾던 미국인들이 바라데로의 대안으로 개발한 것이 멕시코의 칸쿤이라 한다.)

 

바라데로는 좁근 긴 반도이다. 깨끗한 모래, 환상적인 바다가 함께 한다.

 

듀퐁이 1918년에 만들었다는 호텔. 아직도 남아 보전 및 이용되고 있다. 바라데로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호텔 옆의 해변. 최고다. 

 

장거리 이동 일정상 오래 머물 수가 없어 물 속에 발만 담구어보았다.

 

 

헤밍웨이 장사가 되니 짝퉁이 넘쳐난다. 바라데로에 있는 식당. 점심식사.

 

그래도 유명한 '이름'을 가진 곳이라고 식당 내부의 벽면에는 기념으로 남긴 글귀로 가득하다. 펜을 달라 하여 저 위 구석의 여백에 글귀를 남겼다. 뭐라 적었는지는 직접 가서 보시라.

엄청난 벽면이다.

 

체 게바라의 도시, 산타 클라라. 체 게바라 기념관, Leoncio Vidal 공원, The Armored Train 공원 등을 들러보았다.

 

체 게바라 기념관. 쿠바인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것 같은 체 게바라, 그의 기념관은 의외로 소박해 보였다. 동상은 큼지막했지만.

 

기념관은 사진 촬영 금지이다. 아예 카메라를 갖고 가질 못한다. 그래서 사진이 없다. 체게바라 혁명 광장에서 동상만 사진에 담았다.

Hasta la Victoria Siempre

 

비달 공원.

 

산타클라라 자유 호텔. 체 게바라와 까밀로 시엔푸에고스가 쿠바 혁명 당시 정부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호텔 건물의 외벽에는 총탄을 맞은 자국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분수대의 소년. 물새는 장화.

 

열차전적지까지 걸어간다. 불러바드 거리의 일상.

 

Yo soy FIDEL. 나가 피델이지유~

 

열차 전적지. 아바나에서 열차를 타고 산티아고 데 쿠바로 향하는 대규모 정부군 병력을 이곳에서 막아내면서 쿠바 혁명은 막바지에 이르게 된다. 결정적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불도저를 이용해 철로를 제거하여 정부군을 실은 열차들이 탈선하였다 한다. 이곳의 전투에서 남은 병력을 잃은 바티스타는 결국 쿠바를 떠나게 되고 쿠바 혁명은 완성되게 된다.

 

기념 조형물. 폭파!

 

 

시엔푸에고스에 도착하였다.

 

호텔 방에 들어가니 수건으로 이런 작품과 함께 환영한다는 편지를 적어 놓았다. 기분 좋다.^^

 

장거리를 달려 왔다. 시엔푸에고스의 밤이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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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5일. 리비에라 호텔을 출발하여 아바나 항구로 들어가는 수로의 양쪽을 연결하는 지하도로를 통과해 고속도로를 탄다. Primer Anillo de la Habana.

 

아바나 인구는 약 250만 명 정도라고 한다. 야구의 나라 쿠바, 아바나에만 야구장이 5개가 있다고 한다.

쿠바는 전체적으로 악어 모양의 땅덩어리. 중부는 스페인 사람들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많이 한 지역이며, 서부는 시가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동부는 커피, 과일, 카카오 등의 생산이 많다고 한다.

플랜테이션의 영향으로 쿠바 동부 지역은 흑인의 비율이 높다.

지난 해 미국과의 긴장 완화 조치 이후 외국과의 개방이 가속화되고 있다. 관광 인프라 확대를 위해 노력중이다.

파나마를 통해 한국산 전자 제품, 자동차 등이 수입되고 있다. 1997년부터 수입되고 있는데, 초기에 쿠바 사람들은 Made in Korea에서 Korea를 북한으로 오해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남한이라고 모두 알고 있다고.

2004년에 KOTRA 들어왔다. 한국 드라마, 영화, 음악의 인기도가 높다고 한다. 쿠바 아가씨들은 이민호에 빠져 있다고 한다. 윤상현은 쿠바를 방문한 적도 있고.

고속도로 중간에 손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띤다. 대중교통이 부실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 지나는 차량을 보고 태워달라는 의미이다. 물론 돈을 낸다. 운전자는 부수입, 이용자는 시간을 아낄 수 있어 서로 윈-윈. 이러한 시스템을 경찰도 인정하고, 단속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농민들은 정부 땅을 임대하여 농사짓는 것이라고 한다. 임대료가 약 10% 정도. 세금도 따로 낸다. 소득이 많지 않기 때문에 농민들이 적극적으로 땅을 임대하려 하지 않아 농사짓지 않는 땅이 상당히 많이 있다.

시가 생산 농가의 수매가가 높아 담배 재배 농가는 많다고 한다.

 

아바나 도심과 Habana del Este를 연결하는 아바나 터널. 1958년 완공되었다고 한다.

 

먼저 찾은 곳은 쿠바를 사랑한 작가로 알려진 바람둥이, 헤밍웨이 박물관이었다.

미국에서 유럽을 가는 경유지로 하루를 들렀다가 마음에 들어 2년 후에 다시 쿠바에 와서 정착을 했다고 한다. Finca Vigia라는 대저택을 1940년에 구입하여 살았고, 그의 사망 이후에 그의 집이 박물관으로 유지되고 있다.

 

헤밍웨이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노인과 바다'의 실제 배경이 되었던 작은 어촌 코히마르.

 

그리고 아바나 시내로 귀환하여 여러 명소를 걸어다니며 들렀다. 마지막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공연 감상.

 

말레꽁에 1월5일의 해가 솟는다.

 

미국과 쿠바의 갈등이 첨예했던 시절을 상징하는 구조물. 미국 대사관 앞이다. 2006년 미국은 이익대표부 건물에 전자 광고판을 설치하고 정치선전을 하자, 쿠바 당국은 138개의 깃대를 세우고 검은 깃발을 게양하여 그 광고판이 보이지 않게 차단했었다고 한다. 이익대표부 건물은 이제 미국 대사관이 되었다.

 

Finca Vigia. 헤밍웨이가 쿠바에 살 때 거주하였던 대 저택이다. 너무 일찍 온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이 늦다. 아직 개장을 하지 않아 동네를 둘러본다.

 

지나던 잘 생긴 학생들. 여러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그 중에 금목걸이도 있다.

 

드디어 문을 열었다. 쿠바 관광의 상징 '올드카'도 손님을 태우고 입장한다.

 

손님들이 머물던 건물이라고 했던가???

 

요기가 헤밍웨이 지내던 곳. 앞에서 쿠바 현지 가이드 아벨리오가 열심히 설명해주고 있다. 외교관인 부모님 덕에 북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귀국하였다가 대학을 또 북한에서 다녔다고 한다. 그리하여 한국말과 러시아말이 대충 능통하여 두 나라의 손님들을 모시는 가이드로 쉴틈없이 일하고 있단다.

 

하지만 개는 심심하다. 개심심하다...

 

저택 내부의 모습이다. 그가 사용했던 것들을 그대로 보관중이라고 한다.

 

헤밍웨이가 투닥거리던 타자기.

 

건물 옆에 전망대가 딸려 있다. 이곳에서 바다를 보고 물 좋으면 낚시를 나가고 그렇지 않으면 글을 썼다나....

 

종종 사냥도 다니고....완전 한량이로다.

 

그가 낚시하러 갈 때 이용하던 낚시배, Pilar('이정표'라는 뜻)호.

 

껍데기가 근사한 차들이 잔뜩 들어왔다. 기사 딸린 올드카를 빌려 시내 관광을 다니는 것도 괜찮으리라.

 

코히마르로 향한다. 헤밍웨이와 함께 낚시하던 할아버지 산티아고가 개업한 가게. La Terraza de Cojimar.

 

산티아고 선장

 

헤밍웨이 사진이 여럿 걸려 있다.

 

근사하게 생긴 아저씨가 정성을 다해 만들어 준...

 

음료 한 잔.

 

바닷가로 향한다. 햇볕은 타들어간다. 잘 익혀보자. 피부의 현지인화 시작~

 

물끄러미~

 

"노인과 빨래"

 

코히마르 사람들에게 헤밍웨이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죽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배의 프로펠러를 팔아 그의 동상을 마을에 세웠다고 전해진다.

 

해변에 남아 있는 성채.

 

아바나 시내로 들어왔다. 조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Plaza de la Catedral이다. 골목 오른쪽의 식당으로 들어간다. 

 

La Moneda Cubana. 옥상에 자리를 잡는다. 전망 좋다.

 

식사 때 나온 음료. 맥주 혹은 탄산수, 물 중에서 택1. 모히또 서비스. 모히또에 약간의 럼주가 추가되나 원지 않으면 무알콜로 가능. 반대로 럼주 추가도 가능하다.

 

럼주. 아바나 클럽. 3년 짜리. 모히또에 추가해보았다. 깔끔하니 입에 붙는다. 좋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Plaza de la Catedral, La Bodeguita Del Medio, Plaza de Armas, Plaza Vieja, Plaza de San Francisco, Parque Central 순으로 이동하였다.

 

대성당 광장 안내 판떼기이다.

 

아바나 대성당.

 

광장 한쪽에 있는 Museo del Arte Colonial. 이곳 사람들은 colonial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에 꺼리낌이 없다. 우리네 역사에서 '식민지'라는 것은 우리가 당한 것이기에 진저리쳐짐으로 다가오는 단어이지만, 이들은 지배했던 식민지이기에 그냥 받아들여 사용하는 것은 아닌가싶다.

 

La Bodeguita del Medio.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바글바글, 와글와글. 이곳도 헤밍웨이 마켓팅이다. 그가 자주 들러서 모히또를 마셨던 곳. 많은 외국인들이 줄서서 기다리다가 입장하여 그것을 마시며 즐거워한다.

성질 급한 사람들은 통과.

 

헤밍웨이 마켓팅. Ambos Mundos 호텔. 헤밍웨이가 건물 모서리의 5층 방에 묵었었다고 한다. 방에 들어가볼 수 있다. 단, 입장료를 내야 한다. 옥상이 전망대로도 이용되어 올라가볼 수 있다. 하지만...오늘은 공사중이라 못올라간다고 하여 아쉽게 발길을 돌린다.

 

Palacio de los Capitanes Generales Casa de gobierno Cuba Tacon. 이름 길다. Estatua de Colón en el patio central 앞에서 셀피를 찍는 연인의 모습이 부럽게도 다정하다.

 

Plaza de Armas.

 

광장 안내도이다. 에스파냐어 뿐만 아니라 친절하게 점자로도 안내가 되어 있다. 물론 나는 둘다 모른다.

 

경찰 관련 행사를 하는 날인가보다. 무서운 경찰 아저씨들이 미소지으며 어린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다. 학생들은 줄서서 현장 체험을 하는가보다.

 

Palacio del Segundo Cabo. 1772년에 건축된 것. 재료는 석회암이다. 스페인 부총독의 관저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광장 북쪽에는 요새가 있다. Castillo de la Real Fuerza.

The Castillo de la Real Fuerza (English Castle of the Royal Force) is a star fort on the western side of the harbour in HavanaCuba, set back from the entrance, and bordering the Plaza de Armas. Originally built to defend against attack by pirates, it suffered from a poor strategic position, being too far inside the bay. The fort is considered to be the oldest stone fort in the Americas, and was listed in 1982 as part of the UNESCO World Heritage site of "Old Havana and its Fortifications".

성채는 넓직한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아주 일부만 개방되고 있다. 해자는 건너가볼 수 있다.

 

광장 한 켠의 장터. '과거'를 판매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광장. 그리고 Basilica San Francisco de Asis.

 

이곳도 경찰 관련 행사이다. 여러가지 장비를 내어 놓고 전시. 슬쩍 폼잡아보기.

 

Teniente Rey 거리에는 어떤 유명한 사람의 꽃단장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걸린 Salon Correo라는 Barberia가 있다.

 

비에하 광장. 이곳에도 경찰이 득시글하다.

 

닭도 있다. 크다. 웬 닭인지 모르겠다. 가이드 아벨리오도 말이 없다. 그냥 닭치고!

 

Mercaderes 거리를 지나 Obispo거리를 걷는다. Drogeria Johnson(Johnson 약국). 100년 쯤 되었다고 한다.

 

자그마한 민예품점.

 

Parque Central. 중앙 광장. 근사한 석회암 덩어리로 만든 건물. Museo de Bellas Artes. 1954년에 만든 것이니 무진장 새 것이다.

 

자전거 택시. 승용차 택시.

 

El Capitolio. 1926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건물. 1959년의 쿠바 혁명이전에는 의회당이었는데, 지금은 과학 아카데미가 들어서 있다.

 

중앙공원 주변에서 이용할 수 있는 관광용 마차와 투어버스.

 

쿠바 독립운동의 영웅. 거의 도시마다 호세 마르티의 동상을 볼 수 있다.

 

열심히 즐겁게 재미있게 모히또를 제조하는 이쁜 총각.

모히또 제조. 컵에 설탕을 깔고 박하잎을 넣고 다진다. 그 위에 얼음을 넣고 탄산수를 부으면 모히또이다. 럼주를 추가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하고.

 

저녁 식사후에 아바나 클럽을 찾았다.

영화에 나왔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멤버들이 공연했던 장소라고 한다. 이곳에서 공연하였던 노인네들의 뒤를 잇는 사람들이 신규 멤버로 영입되고 공연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시작되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공연.

 

우리 일행은 사진 찍는다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다른 손님들은 조용히 식사를 하면서 공연을 즐기기만 한다. 왜 사진을 안찍지?

 

공연 관람을 마치고 귀가...아니 귀텔하였다. 달 떴다. 

오늘 하루가 이렇게 마감되었다.

 

내일은 67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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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새해가 밝았다.

1월이 시작되었다. 네번 째 날. 점심도 먹지 아니하고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버스. 처음 이용하기 시작하였을 때는 요금이 7,0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느새 16,000원이 되었다.

 

고속도로를 이리저리 달려 공항에 도착하였다.

 

식당부터 들렀다. 난리다. 줄~줄~줄~ 몇 개 안되는 식당마다 사람들로 가득하다. 줄이 짧아 보이는 중국음식점에서 해결.

일행을 만나 인사를 하고 수속을 밟고 게이트에서 대기한다.

 

비행시간 12시간20분. 징그럽다. 게다가 창가자리. 잔다, 잔다, 잔다.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환승을 한다. 비행 정보 화면을 보면, 대충 대권항로를 그리면서 날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위협 때문인지, 동해를 직선으로 지나지 아니하고 일본 쪽으로 약간 우회한다.

 

토론토 공항에서 환승을 기다린다. 식당 테이블에 태블릿이 설치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간단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화면의 메뉴를 통해 해당 식당의 음식을 바로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토론토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쿠바의 아바나로 날아간다. 또 창가자리. 머리 위를 보니 환풍기의 바람나오는 구멍마다 눈길이 간다. 에어 캐나다 이사람들. 비행기 청소 좀 하자!

 

1월4일 17시05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1월4일 15시25분에 토론토에 도착하였다. 환승 대기하다가 1월4일 18시40분에 토론토를 떴다. 쿠바 아바나에 도착한 것은 1월4일 22시15분. 한국에서 1월4일 출발하여 12시간20분 비행, 3시간30분 환승대기, 3시간35분 비행을 하였는데, 현지 도착 시간은 1월4일이다. 시차를 체감한다. 한국보다 14시간 늦다.

 

생각보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 세 팀 정도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입국하였다.

입국 과정이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무난하게 처리되었다. 다만 보안 검사에서 다른 팀의 한국인 쓰루 가이드가 갖고 있던 깃발을 달고 있던 안테나를 압수 당하는 모습을 보니 우습기도 하였다. 우리 팀 중에서 셀카봉이 길다고 압수 당한 멤버도 있다고 한다.

 

현지인 가이드 아벨리오. 자신을 나훈아라고 불러달라 했다. 고향역을 잘 부른다나. 북한에 12년 간 거주하면서 한국말을 익혔다고 한다. 잘한다. 북한에서 대학생활을 했는데, 북한 학생들과 친해질 기회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서로의 부담감, 그리고 감시 등으로 인하여. 개인적인 대화 조차 전혀 없었고.

한국인 관광객이 지난 해부터 급증하여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한다며 좋아한다. 쿠바에 한국어가 가능한 현지인 가이드가 4명 밖에 없다고 한다.

자신을 포함한 관광 가이드, 버스 기사 모두 정부 공무원이라고 한다. 버스 및 회사도 모두 정부 소유, 어쩐지 버스 껍데기 포장이 모두 같다 했다. 버스는 중국산이다. 쿠바 전체에서 개인 사업자는 5% 정도 밖에 안될 정도로 적다고 한다. 나머지는 모두 공무원으로서 정부에서 월급을 받는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 연예인, 유명한 운동선수 등은 개인적인 수입을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월급이 매우 적고, 어떻게 일하든 똑같이 받게 되므로 근로 의욕은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당연할 것이다. 1960년대부터 배급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적은 월급을 보충하는 수단인 것이다. 배급을 받으면 되므로 일을 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구시가지는 스페인 스따일, 신시가지는 미국 스따일이라고 한다.

 

아바나에는 비가 내린다. 캐리어 가방이 물에 젖어 나왔다. 내일 우산을 준비하라고 한다.

 

역사적인 건물. 그란 까리베 리비에라 호텔에 체크인.

 

내일 아침 789. 7시 기상, 8시 식사, 9시 출발.

 

창밖을 본다. 유명한 말레꽁 해변이다. 드디어 쿠바에 온 것을 실감한다. 잔다.

 

푹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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