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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3일 월요일에 소주의 명소인 졸정원을 관람하고 호구탑을 방문하였다. 이후 부근의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山塘河를 따라 7리를 이동하였다.

 

 

10시 50분. '吳中第一山' 虎丘에 도착하였다.

臥薪嘗膽과 吳越同舟라는 사자성어의 주인공인 BC 5~6세기 吳王 闔閭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서 "吳"를 강조하는 것이다. 합려의 무덤가 하얀 호랑이가 앉아 있었다는 일화를 토대로 이곳을 '虎丘'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오왕 이야기 보다는 정상의 호구탑이 더 유명하다. 호구탑은 육안으로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기울어져 있어 "동양의 피사탑"이라 불린다.

 

 

멀리 동산위로 '호구탑'의 윗부분이 보인다.

 

 

입구에서 반겨주는 자그마한(^^) 향로.

 

 

'호랑이 언덕' 호구의 지도이다. 운암사탑을 호구탑이라고 부른다.

 

군밤의 유혹.

 

 

입구로 들어가려고 했더니 이쪽은 차량용이라고 오른쪽의 쪽문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오중제일산'으로 들어간다.

 

호구산 풍경구 안내지도가 안내되어 있다. 인공 물길 環山河로 둘러싸인 섬이다.

 

 

또 문을 지나간다. 斷梁展이다.

 

 

길가에 憨憨泉이 위치하고 있는데, 손때가 엄청나다. 표석에서는 글자 한자를 빼먹었다.

 

완경사 사면을 따라 올라간다.

 

돌이 깨졌다. 너른 평야 위에 돌산이 있다 보니 깨진 부분 마다 칼과 연관지은 스토리를 만들었다. 試劍石이란다. 오왕 합려가 명검을 시험하기 위해 잘랐다고... 

 

 

古真娘墓. '진낭'의 묘. '진낭'의 미모를 탐한 어느 사대부의 희롱에 힘겨워 하다가 자결했다는 그녀의 묘라고 한다.

 

千人石. 천 명의 사람들이 올라설 수 있을 정도의 넓은 너럭바위라고...

 

虎丘 劍池.

 

"虎丘 劍池" 각자 오른쪽의 석조 건물이 二仙亭이고, 그 오른쪽으로 지붕만 보이는 것이 可中亭이다. 

 

云岩寺 쪽으로 오르는 계단 아래로 자그마한 白蓮池.

 

여기도 별유동천이다. 

 

'검'의 전설이 잠긴 劍池.

오왕 합려의 왕릉을 만들 때 명검 3천 자루와 기타등등의 보물을 순장했는데 도굴꾼들이 찾지 못했다 한다. 그곳에 물이 차니, 이곳을 '검지'라 이름지었다.

 

 

'가중정'을 지나 열심히 돌계단을 힘차게 오르는 여행객 1.

 

이 문을 지나면 '解脫'에 이르게 된다.

 

한번 더 문을 지나면...

 

 

기울어진 운암사탑, 호구탑을 만난다. 호구산 정상이다. 눈으로 대충 보니 3.5도 정도 기울었다^^

아랫쪽에서 위를 향해 사진을 찍으니 '발'이 길어보이는 사진이 만들어진다.

 

호구탑 주변을 둘러싼 담장과 탑을 비교하면 상당히 많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운암사탑은 959년 後周 때 착공하여 961년 北宋 태조때 완공된 누각식 탑이다. 송나라 때 건립된 탑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구조도 정교한 것으로 이름나 있다. 벽돌로 목조건축을 모방하여 쌓아올린 7층의 8각형 전탑으로, 높이는 47.5m이다.

1957년 기울어진 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창건연대를 밝힐 수 있는 석함이 발견된 바 있으며, 탑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여 더 이상 기울어지지 않고 현재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입구와 출구가 다르다. 일행 중 미아가 발생했었지만 잘 찾았다.

 

11시 50분. 호구탑 남문 부근의 선착장에서 기다리니 우리 팀 전용 유람선이 도착한다.

 

山塘河를 따라 유람선으로 7리를 흘러간다. 

 

간간히 물가에 사찰들이 보이기도 한다.

 

낡아서 좀 위태로워 보이는 구간도 보인다.

 

산당하를 흐르는 유람선 내부의 모습.

 

꽃화분들이 예쁘다.

 

산당하는 교통로이기도 하고, 빨래터이기도 하다.

다른 수향을 방문했을 때도 같은 질문을 현지 가이드에게 하는 것을 들었었다. 물이 찰랑찰랑 하는 것을 보시고 불안하셨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비 좀 왔다 하면 그냥 넘쳐버리니까...

수위를 조절하는 장치가 있다고 안내를 하더라. 과연? 

양쯔강이라 불리는 장강의 하류 부분은 무진장 넓은 저평한 평야지대이다. 강도 크고 주변에 '태호'와 같은 큰 호수가 있다. 하천의 유역 면적이 워낙 넓고 큰 호수들이 많아 많은 비가 내리면 넓은 범위로 퍼져 버리고 호수의 수위가 올라가면서 '수향'의 물높이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물론 태풍이 달려들어 갑자기 많은 비를 뿌리면 일시적으로 수해를 입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소주와 그 주변을 나타낸 지도이다. 양쯔강도 큰 강이지만 그 주변에는 太湖를 비롯한 수많은 '큰 호수'들이 형성되어 있다. '큰 비'가 오면 그 호수들의 수위가 올라가면서 강의 수위를 낮춰주고 갈수기에 수위가 낮아지면 수많은 '물 저장고'인 호수들의 물이 빠져나오면서 물을 공급해주게 되는 것이다. 결국 중국의 강남 지역은 어지간해서는 수많은 水鄕들의 수위 변화를 겪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늘 물과 함께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강남수향의 물길들의 수위는 자연이 조절해주는 것이다! 가끔 그 범위를 넘어서는 변화가 급작스럽게 발생하면? 난리나는 것이고...... 물난리...

 

 

산당하 주변은 관광지로 적극 각색되어 개발된 곳이 아니라 그냥 현재 이곳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이다. 자연스럽게 그러한 삶의 모습을 살피게 된다.

 

뜰채가 장비된 동력선이 지난다. 물위를 청소하는 팀으로 보인다.

 

붉은 등이 달린 것을 보니 식당일 것이다. 배를 타고 와서 식사하고 가는 사람들도 있을까??

 

마주쳐 지나가는 다른 유람선. 작은 다리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지붕이 낮게 설계되어 있다.

 

유람선은 동력선도 있고, 무동력선도 있다. 

 

'산당하' 물길이 이 동네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12시 25분 쯤에 선착장에 도착하여 하선하였다. 약 30분 정도를 유람선을 타고 흘러내려온 것이다.

 

점심을 만나기 위해 식당을 찾아가는 길. 복원된 창문(阊門)을 지난다.

 

길을 달리는 오토바이의 앞을 막아주는 옷. 겨울에나 찬바람을 피하기 위해 필요할 듯 싶은데 이걸 늘 장착하고 다니는 오토바이들이 많더라. 여름에 떼었다가 겨울에 붙였다 하는 것이 귀찮아 그냥 달고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전하더라.

 

12시 반. 식당 王記姚家味에 도착하였다. 프란차이즈 식당인가보다. '西中市店'이란다.

 

이번 여정에서의 '마지막 만찬'이었다. 맛있게 마무리하였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유람선으로 지나온 '산당하'와는 다른 '산당가' 거리를 걸어보았다. 단체로 움직이는 자유시간이었다.

 

'산당가 Shantang Jie' 거리 표지판.

'산당가'는 소주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이다. 소주를 찾는 여행자라면 산단가를 들르기에 언제나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옛 정취를 느끼는 것은 쉽지 않다고도 한다.

 

'소주산당가' 표지석이다.

 

월요일 한낮이라 그런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는 않았다.

 

중간에 위치한 通贵桥가 유명한 포인트라고 한다. 안내 표지판에 한글도 있다. 통귀교를 지키는 귀하신 석물도 있다. '通貴狸'(통귀교의 삵)이라고 이름표가 옆에 있다.

 

통귀교 위에서 바라본 산당하 물길.

 

'7리 산당' 안내도.

 

이제 '신민교' 위에서 七里山塘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버스기사에 연락하고 버스와 랑데뷰하길 기다리는 포인트가 '신민교 주차장' 앞이었다. 안내판에 한글이 표시되어 있어 신기했다.

 

 

무사히 버스에 모두 승차하고 홍교국제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버스 안에서 현지 가이드의 구매 대행이 있었다. 자기부상열차에서 하차하여 버스에 탑승하고 달릴 때 맛을 보라며 나누어주었던 '대추-호두 과자'가 있었고, 식당 마다 차를 내어주지 않고 맹물만 나왔는데 현지 가이드가 보이찻잎을 끓여 나오게 한 적이 있었다. 두가지 중에 괜찮았다 싶은 것이 있으면 구매를 대행해줄 수 있다고 한 바 있었다.

과자에는 관심이 없었고, "보이차 티백"만 주문했다. 그런데 돈이 없잖아~

알리페이로 지불을 하려 했는데, 데이터 로밍을 안하여 왔더니 돈 건네주기가 안되는 것이었다. 가게에서 지불할 때는 잘 가져가는데 개인간의 거래는 안되더라. 그래서 주문 취소. 앗싸~

 

공항에서 그냥 건네주더라. 한국에 가서 이체 시켜달라고 국민은행 계좌번호를 주는 것이었다. 그러기로 했다. 그런데 공항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어 알리페이를 통해 송금하고 마무리했다. 수수료를 꽤 먹더라~ 

 

 

중국에서 출국을 위한 건강신고서를 스맛폰에 모두 담아왔더라. 아이폰 끼리는 날려주는 것이 가능하여 그렇게 하여 갤럭시 사용자들은 사진으로 찍었다. 비행기표 받고 짐 붙이고 출국 수속을 받고 게이트에서 기다리다가 보딩시작되어 자리 잡고 앉았다.

A321-200 기종의 여객기였다.

 

6시 10분에 출발했다. 남은 비행거리가 866km라고 비행정보에 뜨더라.

승무원이 나눠주는 대한민국 입국용 건강상태조사서를 작성하고, 나눠주는 기내식을 자알 먹었다.

 

그리고 김포공항으로 날아왔다. 866km 거리를 멀리 돌아서 1,152km 날아왔다. 왜 직선으로 날지 않을까? 기름이 남아도나??

 

7시 56분에 착륙하였다.

입국 수속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짐도 빨리 나오더라. 공항버스 타기 위해 다른 분들께 서둘러 인사드리고 출국장으로 뛰었다. 시간표를 보니 10분 전에 출발했단다. 3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밤 10시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10시 54분에 노원역 정류장에 하차하여 택시로 귀가했다.

 

이렇게 그렇게 재밌고 신기한 3박4일에 걸친 중국 강남수향 여행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점점 여행용 체력이 딸리기 시작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다음엔?

 


 

 

중국 현지에서 구매대행으로 구입한 보이차. 한 알씩 물에 타서 끓여먹으면 되는 것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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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3일 월요일에 눈을 떴더니 중국 강남수향에 있었더라.

6시반에 웨이크업 콜이 왔다. 7시에 식사 시작하는 식당에서 간단히 푸짐하게 아침을 먹고 Water Town, 水鄕의 아침 물안개를 느껴보고 싶어 주변 산책을 나섰다.

 

리조트 입구의 거대한 코끼리들이 수고를 하는 모습을 표현한 조형물.

 

동리호변에 그럴듯한 분위기의 정자가 하나 있더라. 물안개는 한참 전에 끝나버렸을 것 같다. 햇님께서 강렬하게 반겨주시는 아침이다.

 

저쪽 멀리 호수면에 선착장이 보인다. 나성주를 들락거리는 배가 출발하는 곳이다.

 

8시에 출발할 예정이다. 짐을 챙기기 위해 계단을 오른다.

 

 

사흘을 함께 했던 버스가 다른 일정을 위해 떠나고 새로운 버스와 기사로 교체되었다. 

8시 6분. 탑승 완료 및 인원 점검완료. 苏州市를 향해 출발했다. 소주에서 예정대로 졸정원, 호구탑, 7리산당을 만났다.

蘇州는 다른 수향들과 스케일이 완전히 다른 곳이다. 그동안 다녀온 주가각, 서당, 오진, 주장, 동리 등이 작은 마을 수준이었다면, 소주는 거대한 고성이라 할 수 있다. '경항대운하'라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북경과 연결되는 대운하의 시작점이라 볼 수도 있다. 주변의 수많은 '강남수향"들에서 물줄기를 타고 실려온 모든 물자들이 일단 소주에 모였다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는 물자의 집산지 역할을 담당하면서 일찍부터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1천년 이상을 소주는 중국의 주류 한인들에게 꿈의 도시였다. 이민족의 지배를 받을 때마다 한족의 인재들이 소주로 모여들었고, 중앙 정계에서 물러난 사람들도 소주로 몰려들면서 소주가 쌓아올린 부와 문화의 수준이 높아져 소주는 '중국의 藝鄕'이 되었다. 그들의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정원으로 꾸며 문화적 수준을 과시했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園林"이라 부른다. 19세기 이후 주요 화물 운송로로서 운하의 기능이 사라지면서 소주의 위치를 상해가 차지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소주는 중국인들이 살고 싶어하는 도시로 남아 있다. 과거의 화려함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아함과 단아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藝鄕으로서의 흔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원림일 것이다.

 

소주에는 명나라 때부터 발달한 많은 전통적인 정원들이 있다. 중국의 정원을 연구한 '최부득'교수에 의하면 중국 강남에 주요 26개 원림 중에 소주에만 8곳이 위치한다. 1961년 중국의 국무원에서 중국 전통의 최우수 정원 건축물로 苏州市拙政园, 北京市颐和园, 承德市避暑山庄, 苏州市留园을 발표하였다. 이른바 중국의 4대 정원이라 일컬어지는 정원들인데 소주의 졸정원과 유원이 포함되어 있어 소주의 '원림' 수준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소주의 4대 정원으로는 졸정원, 유원, 사자림, 창랑정이 꼽히고 있다.

소주에는 정계에서 은퇴한 지식인이나 정계 진출을 염두에 두지 않은 문인들이 자신의 취향대로 성정을 도야하면서 생활해 온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다. 따라서 소주의 정원, 원림들은 궁궐이나 사찰의 부분으로 발달한 정원과는 다른 성격의 사적인 부분이 많다는 특색이 있다. 이를 私家園林 또는 第宅園林이라 부르는데, 정원 안에는 마음 맞는 선비들을 초대하여 즐거운 시간을 갖는 廳堂, 독서나 그림, 서예 등으로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서재인 齋館, 그리고 편안하게 앉아 주변의 자연을 감상하는 정자누각들이 배치되었다.

(출처: 최부득, 건축가가 찾아간 중국정원)

 

 

GEOTRIP과 함께 하는 이번 2023년 10월의 강남수향 여정에서는 주가각의 과식원, 동리의 퇴사원과 진주탑원을 방문한 바 있다. 오늘은 그림 속의 용에 눈을 그려넣는 날이다. 그를 위해 졸정원을 찾아왔다.

 

 

9시쯤 졸정원 주변에 위치한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하차하여 소주의 예술 속에 흠뻑 빠질 준비를 한다.

 

 

사람들로 붐비는 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면 졸정원을 만나게 된다. 뽕뚫린 월문, 월량문을 지나면 검표소가 있고, 무사히 통과하면 '동원'으로 입장하게 된다.

졸정원의 자리는 삼국시대 이후 여러 유명 인사들이 거처한 장소였으나, 明代에 어사를 지낸 王獻臣이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이곳에 은거하면서 '拙政園'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치를 성공적으로 하지 못한 사람의 정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화가에게 3년간 설계를 하게 하고 공사 기간만 13년에 이르렀다고 한다.

전체 면적이 약 51,570 평방미터에 이르며, 제대로 된 관람을 위해서는 적어도 세 바퀴는 돌아야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오문화파의 유명한 화가인 文徵明이 '왕씨졸정원기'를 썼고, 31폭의 '졸정원도'를 그린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왕헌신의 사후 그의 아들이 도박에 빠졌고 졸정원은 서씨 집안의 소유로 넘어가 약 110년 간 소유하게 된다. 이후에는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며 시류를 타게 된다. 명대 1631년에 시랑 왕심일이 졸정원 동쪽의 황무지를 또다른 원림으로 가꾸고 '歸田園居'라고 지었다. 오늘날 졸정원의 東園 지역이다.

'졸정원'이나 '귀전원거'나 청렴결백한 선비와 어울리는 이름이라 하겠다. 그런데 현재 원의 규모와 화려함으로 볼 때 당시의 청렴결백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을지 의문스럽게 한다. 원래는 소박한 규모였는데, 후대로 가면서 고졸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오늘날의 호방한 모습으로 바뀐 것은 아닌가싶다.

문징명이 남긴 '졸정원도' 중 "의옥헌" 부분을 보자. 오늘날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 한국의 정원이나 일본의 다실 정원과 유사하여 원래의 졸정원은 지금보다 훨씬 소박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현재의 모습은 淸代에 갖추어진 것이라고 하니 明代의 모습과 같을 수는 없었겠다. 1997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중국에서 졸정원을 당연히 밀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인지 4장 짜리 세트 우표가 발매된 적도 있었다.

우표 속에서 의양정, 여수동좌헌, 입정, 소비홍, 소창랑, 송풍각, 기옥헌, 하풍사면정, 견산루, 득진정, 원향당 등이 확인된다. 우표 속의 졸정원을 졸정원에 와서 확인해보고자 한다.ㅎㅎㅎ

 

 

졸정원의 건물 배치도이다. 

동원 쪽의 입구로 진입하여 졸정원을 한 바퀴 관람하였다. 파란색 선이 지나간 경로이다. '별유동천'이 西園과 中園의 경계가 되며, '해당춘오'의 동쪽이 東園에 해당한다.

 

 

난설당 兰雪堂. 저택의 현관인 '의문'에 해당된다.

 

부용사 芙蓉榭가 숲속의 물가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주변 경치와 잘 조화되어 있으며 여름철 연꽃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꼽힌다. 이름과 어울린다. 다른 강남수향들에서보다 적기는 하지만 옛날 옷을 입고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주 관람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함청정 涵靑亭. 벽에 붙어 있는 특이한 형태의 정자이며, 바로 앞에 작은 연못을 갖고 있다.

 

동원과 중원의 경계에 위치한 청우헌 听雨軒. 연못 위로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즐기는 공간이랄까...

 

청우헌 내부.  茶室에 해당한다.

 

가실정 嘉室亭. 양쪽 벽이 개방되어 있다. 원림 속에 놓여있다는 현장감을 느끼기에 최적인 곳이 아닐까...

 

영롱관 玲珑馆을 둘러보는 여행객들.

스마트폰으로 만든 사진의 단점 중 하나가 보인다. 렌즈가 워낙 작기 때문에 DSLR 카메라에 비해 주변부 왜곡이 심하게 느껴진다.

 

 

해당춘오 海棠春塢. 모퉁이 마다 독립적으로 구성된 작은 원들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한쪽에 규모가 작지만 가산도 조성되어 있다.

 

해당춘오 내부.

 

수기정 繡綺亭. 비단에 수를 놓으며 쉬는 정자^^

 

가산에서 아래로 보이는 오죽유거 梧竹幽居. 사방이 뚫려 있어 눈비를 피하면서 언제나 연못 주변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 하겠다.

 

입구에서 들어와 만난 가산 위에서 내려다 본 원향당 遠香堂. 졸정원의 중심 건물에 해당하는 원향당은 물가에서 떨어져 제법 넓은 방형의 월대 위에 건축되어 있다.

 

가산. 졸정원에는 가산이 여럿 조성되어 있다.

 

월량문.  졸정원 내의 작은 원과 원을 구분짓는 경계가 된다.

정원 벽의 뚫린 부분을 月洞門 혹은 月亮門이라고 한다. 중국 정원 건축의 전통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의옥헌 倚玉軒은 원향당과 건물의 방향이 직교하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원향당 앞쪽의 연못 건너편 인공섬 위에 배치된 설향운울정 雪香雲蔚亭. 매화 향기를 즐기는 공간이다.

원향당 앞의 연못 건너편에는 삼신산을 상징하는 세개의 산을 조성하였고 산위에는 각각 정자를 배치하였다. 하풍사면정, 설향운울정, 대상정이 원향당과 마주보는 형국인데, 이러한 배치는 강남 원림의 기본틀이다.

 

 

의옥헌에서 돌다리를 건너면 하풍사면정 荷風四面亭에 닿는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연꽃 향기에 잠긴 하풍사면정은 버드나무 잎에 가려져 있다.

 

소창랑 小炝浪. 건물 아래로 물이 통한다.

 

소창랑 뒷편의 남쪽 구석에 숨어 있는 지청의원 志淸意遠.

 

소창랑 내부.

 

좌통, 우달.

 

소창랑에서 바라본 소비홍 小飛虹. 소주의 정원에서 보기 힘든 지붕을 가진 다리, 廊橋이다. 소비홍은 득진정 得真亭과 이어진다. 물위에 비친 모습이 이름 그대로 작은 무지개 같다.

 

 

물가의 소나무를 지나 부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송풍정 松風亭. 송풍수각 松風水閣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오른쪽은 소창랑.

 

의옥헌과 연못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위치한 향주 香洲

 

향주는 서쪽 연못에 떠있으나 연꽃향에 취해 떠나가지 못하는 배이다.^^ 철관루와 한몸으로 이어져 있다. 그런데 향주의 방향은 연못을 향하지 않고 의옥헌을 바라보고 있다.

 

연못을 건널 수 있는 돌다리들이 많다. 하풍사면정에서 왼쪽의 별유동천으로 이어지는 길,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견산루이다.

 

별유동천 앞에서 본 중앙 연못. 왼쪽에 견산루가 살짝 보이고, 오른쪽 끄트머리에 의옥헌이 보인다. 중앙에 보여야 할 하풍사면정은 버드나무 가지 속에 숨어버렸다. 아니지. 원래 이름 그대로 사방의 연잎 속에 묻혀있다.

 

별유동천 앞에서 본 향주 방향. 멀리 의옥헌도 살짝 보인다.

 

별유동천에서 서쪽 연못 건너편으로 보이는 여수동좌헌 與誰同坐軒. 건물도 부채꼴이고 부채꼴의 창을 갖고 있다. 부채꼴이라고 선면정 扇面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왼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유청각, 오른쪽에 보이는 붉은 건물은 도영루이다.

원앙관에서 유청각을 지나 도영루까지 만곡이 심한 水廊이 이어지며, 도영루 倒影樓는 그림자가 물에 빠진 누각이라는 뜻이다. 사진 속에서도 반영된 모습이 예쁘게 나타난다.

 

 

별유동천 別有洞天은 중부 지역과 서부 지역을 연결하는 월량문이다.

 

 

가산 위에 올라앉은 의양정 宜两亭. 가산을 비롯한 정원 전체에 배치되어 있는 돌들은 대부분 근처의 太湖에서 가져온 유명한 太湖石이다. 구멍이 숭숭 뜷리고 기괴한 형태를 보여 정원 축조에 필수품이라 여겨졌다.

 

졸정원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인 원앙관 卅六鸳鸯馆이다. 이중으로 설계된 건물이다. 멀리 보이는 건물은 유청각.

 

원앙관의 내부. 건물 가운데 있는 격벽을 경계로 이쪽은 18만다라화관, 저쪽은 36원앙관이다. 만다라화관은 남자 주인이 손님을 접대하던 곳이고, 원앙관은 여자 주인이 손님을 접대하던 장소라고 한다. 

천정이 곡선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에 극단을 불러 공연을 하곤 했을 때의 음향효과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된다.

 

여주인을 위한 공간인 36원앙관은 화려하게 색유리로 장식되어 있는 창문이 특색이다. 왼쪽부터 부취각, 입정, 선면정이 차례로 보인다.

 

남쪽으로 이어진 도랑의 가장 안쪽에 탑영정 塔影亭이 위치한다. 좁은 물길의 중간에 위치하여 물에 비칠 때 마치 탑과 같다고 하여 그러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 원래는 탑영정 남쪽의 張宅에서 보원으로 연결되었었는데, 담장으로 폐쇄되면서 외진 곳이 되었다.

 

왼쪽의 유청각 留听阁과 멀리 보이는 부취각 浮翠阁. 부취각은 팔각형의 2층 건물로 가산 위에 있어 녹색의 화초들 위에 떠있는 비취같다고 그러한 이름을 붙였다.

유청각은 물 위에 떠 있는 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부의 모습도 선실을 모사하여 만들었다고. 비오는 날 유청각에 앉아 듣는 빗소리의 맛을 느껴보고싶다.

 

 

입정 笠亭. 지붕 모양이 청나라 관원들이 쓰던 모자를 닮았다. 

상해 주가각에 위치한 과식원 내에도 '입정'과 똑같은 모양의 정자가 있다. 과식원 입구에서 남서쪽으로 가장 안쪽의 구곡교 보다 안쪽의 숲 속에 숨어 있던 정자. 같은 업체가 복원한 것일까?

 

 

분재원도 있다.

 

도영루 倒影楼의 뒷편.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월량문과 창문. 창살 장식이 창문 마다 다르다.

 

견산루 見山樓. 원림의 서북쪽이 높은 형세를 만들기 위해 높은 누각 견산루를 지었다. 이름은 '見山'이지만 물을 향하고 있다. 2층을 见山楼, 1층은 우향사 藕香榭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연못 속의 인공섬에 배치된 설향운울정.

 

 

대상정 待霜亭  아래의 연못 위로 물을 뿜어 안개가 깔리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대상정은 서리를 기다리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가산이 조성된 인공섬으로 넘어가는 돌다리.

 

녹의정 綠漪亭에서 쉬고 있는 관람객들. 

 

대나무숲 사이로 오죽유거 梧竹幽居가 살짝 보인다.

 

오죽유거. 가운데 돌탁자가 있고 사방이 뚫려 있는 단순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방으로 원림의 다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라는 장점이 있다.

 

 

개인 정원 내에 탑을 만드는 것이 금기시 되었으나 우연하게 졸정원에 있는 탑처럼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만들어졌다.

소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北寺, 그곳에 있는 8각 9층탑인 北寺塔의 높이가 76m에 이르는데 졸정원에서 적당히 눈에 들어온다. 북사탑은 전탑과 목탑의 복합 형태이며 소주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 최고의 전망대가 되고 있다고 한다.

 

오죽유거 앞에서... 날씨 좋더라.

 

 

출향관 秫香馆. 주변에 펼쳐진 논밭에서 풍겨오는 벼의 향기를 느끼는 곳이었는데, 기념품 판매점으로 변신했다.

 

두겹의 지붕을 가진 팔각정인 천천정 天泉亭. 원나라 절터에 있던 오래된 우물이 있던 곳이다. 

 

천천정의 구멍과 천정. 연중 물이 마르지 않고 단맛이 나 天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이 잔뜩 모여 둥글게 서서는 뭔가 사진들을 찍고 있어 흉내내어 보았다.

 

입구에서 들어오면서 만나는 부용사가 보인다. 다시 한바퀴 돌고 싶은데.............. 그런데..........

 

출구 앞에 서고야 말았다.

 


 

다음 일정으로 예정되어 있눈 소주의 또다른 명소인 호구탑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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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2일. 강남 6대 수향고진 중의 하나인 주장을 탐방하고 역시 6대 수향에 포함되어 있는 '同里'로 이동하였다.

넓디 넓은 땅덩어리 나라에서 27km 거리면 코앞이라 할 만하다. 水鄕이다. 곳곳이 호수들, 강, 수로가 얽혀있다는 것을 지도를 보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물'이 모든 생활의 토대가 되는 동네, 水鄕인 곳이다.

 

항주와 소주 사이에 水鄕은 널리고 널렸다.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이 사라졌는데도 그렇다. 그들 중 유명한  곳을 꼽아 10대 수향, 6대 수향을 이야기한다. 6대 수향 중의 한 곳 同里(퉁리, Tongli)를 찾아왔다.

물길과 뭍길, 뭍길에서 물길로 내려가는 계단, 물길을 건너 뭍길을 연결하는 다리, 그리고 물길 가의 전통 가옥을 담담하게 묘사하여 담채화로 우표 속에 담기기도 했었다.

 

 

동리고진경구전경도를 보면 여러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세한 지도 속에서 동리 일대는 크고 작은 섬이 72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을 연결하는 다리도 49개나 된다. 가히 '물의 마을' 水鄕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동리고진은 역사가 유구하여 송대에 형성된 후, 오늘날까지 1,0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송, 원, 명, 청대의 저택과 원림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수많은 다리들 중 세개의 다리가 가까이 모여 있는 '동리 3교', 유명한 원림으로 꼽히는 '퇴사원', 그리고 유교와 불교 및 도교의 문화공간이 함께 존재하는 독특한 공간이 '나성주' 세곳을 동리에서 방문할 예정이었다.

 

 

 

 

오후 3시. "동리경구진북유객중심"에 도착하여 입장한다. 동리고진으로 들어가는 입구 중 북동쪽에 위치한다.

 

 

"천년고진, 세계동리" 깃발.

 

 

퇴사원에 도착하였다. 골목 안쪽에 숨어있다.

 

退思園이다.

청나라 광서제 대 고관으로 지냈던 任蘭生이 퇴임 후 건축한 곳이다. 태평천국의 난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私鹽 조직인 염군의 민란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웠고, 대규모 치수 공사에 소질을 발휘하여 안휘 일대를 총괄하는 벼슬인 병비도(兵備道)까지 올랐다. 재임 중 정적의 모함으로 누명을 쓰고 서태후의 소환 명령을 받았다. 모함을 받았지만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고, "進思盡忠, 退思補過"로 답을했다. 춘추시대 좌구명이 지은 좌씨춘추가 출처인 ‘관직에 나갈 때는 충성으로 군주를 받들고, 사직 후 은거할 때는 자신을 반성한다는 말이었다. 서태후의 마음이 움직여 멸문지화는 피했으나 관직을 내려놓고 귀향했다. 모함이나 누명에 대해 불평하다가 참형을 당한 사람들도 많았기에 조용히 찌그러지기로 한 것이었다. 1885년 저택을 짓고 안락한 생활을 꿈꾸었다. 저택의 이름도 退思園이라 지었다. 헌데 1887년 복직되어 안휘 북부지방의 홍수피해복구 작업에 나섰다가 사망하니 퇴사원 사용 기간이 2년이 채 못되었다. 헐~

 

 

퇴사원의 배치도이다.

 

영빈실이다.

 

 

중정에 들어왔다. 사진 왼쪽에 튀어나온 부분이 한선, 맞은편의 2층 건물이 좌춘망월루이다. 오른쪽의 월동문을 지나면 수향사로 연결된다.

 

 

중정과 수향사 사이를 통하는 월동문. 그냥 뽕뚫린 구멍이다.

 

 

연못 위로 튀어나온 부분이 수향사. 원림의 이곳저곳을 조망하기에 적절하다.

 

 

퇴사초당 앞에서 요홍일가, 고우생량헌 쪽으로의  조망. 베경으로 보이는 큰 건물은 桂花廳이다.

 

 

퇴사원에 가을이 내리고 있었다.

 

꼬부라진 다리, 삼곡교. 가산으로 연결되며, 가산 위에는 면운정 眠雲亭이 위치한다.

 

 

금방 琴房 옆에는 소화전이 설치되어 있다.

 

 

가산 위의 면운정 眠雲亭에서... 아랫쪽 연못가에 요홍일가가 보인다.

 

 

가산 위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퇴사원의 중심 건물인 '퇴사초당'이다.

 

 

가산은 그냥 작은 봉우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암괴석으로 장식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가산으로 통하는 인공 터널까지 조성해놓았다.

 

 

'고우생량헌 菰雨牲凉軒' 내부. 비오는 날이면 원림의 분위기에 완전히 빠져들게 할 것 같은 이름이다.

 

신대 辛臺 내부.

 

물길을 따라 나아가는 배를 형상화 한 건물이라고 한다. '요홍일가 闹紅一舸 '.

 

 

'퇴사초당 退思草堂' 앞에서 쉬고 있는 여행객들. 이름만 草堂인 기와집이다.

 

'수향사 水香榭'. 수향사 뒷편의 2층 누각은 '남승각 攬勝閣'이다. 지붕의 처마끝이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있다.

 

결혼을 앞둔 커플일까? 연출 사진을 멋지게 만드는데 여념이 없다. 요홍일가 앞의 커플, 고우생량헌의 커플...

 

 

외택과 동원 사이의 경계 역할을 하는 월동문.

 

4시. 퇴사원에서 퇴사했다. 입장할 때는 영빈실 쪽으로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계화청 쪽의 출구로 나오면서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

 

 

힘쎈 총각이 엿을 뽑고 있다. 생강엿이라 한다. 당겨서 늘리고, 비틀고 접어서 늘리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오후 4시 10분. 동리고진의 명소인 '동리 3교'에 도착하였다.

 

 

 

세갈레로 나뉘는 물길마다 다리가  있어 '3교'가 되었다. 太平橋, 吉利橋, 長慶橋다. 모두 인생의 덕담을 담은 이름들이다. 혼례를 치르고 건너고, 정월 대보름인 원소절 밤에 아이들이 건너고, 아픈 사람도 건너고,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도 건너고, 노인도 건너고... 하여간 세 다리를 한번에 건너면 모든 것이 좋아진다고 한다.

 

동리 3교 중 하나의 다리인 長慶橋 앞에서 사진을 남기고 간다.

 

 

선착장에 민물가마우지들이 묶여 있는 배가 보였다. 중국 강남에서 유명한 낚시 방법이다. 모두 일곱 마리가 묶여 있다. 2년 전의 신문기사 속의 여행기 속의 사진에 담긴 낚시배에도 일곱 마리가 묶여 있던데... 같은 어부의  배일까???

 

 

동리고진에 도착하여 퇴사원을 방문하고 동리3교를 탐방하였다. 이제 나성주 하나 남았다. 시간은 4시를 넘어 지나가는데 관람 시간이 넉넉할까 하는 걱정하면서 걷는다. 그런데...

 

웬 '진주탑원'이라는 곳으로 들어간다.

 

 

강남의 수많은 '원림' 중의 하나인 것 같다.

 

 

한글로 된 소개 판떼기가 붙어 있다.

 

대저택을 들어갈 때마다 대문 밖의 시선을 차단하는 가림막 시설이 되어 있다. 저택의 현관에 해당하며, 儀門이라 한다. 그런데, '금칠'한 것인가???

 

 

굉략당.

 

관혼상제 등의 행사가 이루어지던 공간이라 한다.

 

 

난운당. 인형들로 주인 가족이 거주하던 공간이라는 것을 묘사해 놓았다.

 

 

 

堂樓. 내부의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 볼 수 있다.

 

2층 내부. 전시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2층 외부. 바깥을 보며 숨을 쉴 수 있다.

 

거주 공간과 휴식 공간의 경계에 놓인 월동문. 陈家花园, 진씨 집안 저택의 화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연못을 중심으로 원림이 꾸며져 있다. 연못 속으로 들어가려 하는 부취방 浮翠舫. 물가에 만들어 놓고는 뱃놀이를 하는 상상을 하는 공간이다. 가상의 배.

 

 

계청홍영 溪淸虹影. 맑은 개천에 무지개 그림자가 내려왔구나.

 

 

청기당 淸远堂 앞쪽에서의 조망. 연못 오른쪽에 浮翠舫이 배치되어 있고, 연못 반대편의 가산 위에 소란정 小兰亭이 위치한다. 연못 왼쪽의 정자가 녹추정 綠秋, 그 오른쪽에 위치한 것이 경명헌 景明軒이다.

 

 

왼쪽에 녹추정, 오른쪽에 청원당을 두고 바라보면 부취방의 반영이 그대로 눈에 든다. 

花園과 주택 공간 어디에서도 眞珠搭은 보이지 않는다. '진주탑'은 건축물이 아니라 강남지역 민간에 널리 퍼진 '사랑 이야기'이며, 청나라 때 나온 작자 미상의 탄사(彈詞)였다. '탄사'는 송, 원, 명을 거쳐 청대에 크게 번성한 사설, 해악, 연주, 노래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보통 비파 반주에 랩 형식이 결합된 曲藝이다. 우리의 판소리와 비슷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진주탑원은 퇴사원보다 넓은 면적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고진의 북쪽 구텡이에 위치하여 찾는 사람들이 적다고 한다. 퇴사원보다 더 나을 수도 있는데... 진주탑원은 陳御史府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은 명나라 만력제 때 남경의 감찰어사였던 陳王道의 5세손이 청나라 때(1700) 옛저택을 수리하여 재건하였기 때문이다. 1986년에만 하더라도 건물이 2개만 남아 있었는데, 2001년에 복원을 시작하여 강남 민간에 남아 있는 '진주탑' 일화를 토대로 기존 유물 유적과 인문학적 역사적 함의를 존중하고 유지하면서 소주 정원의 정수를 수집하여 공간 조직 및 경관 배치에서 고유한 개성을 형성해 2003년 4월 19일에 개장하였다고 소개자료에 나온다.

 

 

 

오후 5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버스에 탑승하고 숙소로 이동하였다. "동리호 리조트", 멋지고 근사한 숙소였다. 바로 앞에 나성주 罗星洲가 위치하는 곳이었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섬, 나성주 탐방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드론 사진을 구해 건물 이름도 표시한 지도를 들고 갔었는데....

일정을 조율하는 가이드에게 질문을 했다. 예정된 일정이 변경된 것이냐고...

현지 가이드가 서둘러 답을 하더라. 코로나 이후 나성주가 리모델링 중이라 입장을 할 수 없어 진주탑원 관람으로 대신하였다고... 그렇다고......

 

숙소 건물과 떨어져 동리호에 떠 있는 식당이다. 밤이 내리니 조명이 근사하다.

 

 

 

 

어느새 3박4일 일정의 마지막 밤을 맞이하는 마지막 저녁 식사가 되어버렸다. 참 빠르다. 통 큰 어르신의 기부에 모두 기분 좋은 식사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감사~~

 

 

동리호 변에 위치한 '동리호 리조트'가 세상에서 가장 밝게 빛나고 있다.

 

잤다.

내일은 '소주'로 이동한다. 소주?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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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3일. 눈을 떠보니 생소한 곳이었다.

산이 보이지 않는 끝없이 펼쳐진 평야 지대에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중국의 거대 부동산 기업이 하나 나가떨어졌고, 또 위태로운 덩어리가 있다 하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솟아오르고 있었다.

 

7시에 식당에서 '호텔식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고급 호텔의 분위기를 즐겨본다.

 

 

로비를 장식하고 있는 예술을 감상하는 투숙객 1.

 

 

거대한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투숙객이 많지 않아 조용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호텔의 안쪽 정원, 그리고 웨딩홀.

 

 

산책객 1.

 

2023년 10월 22일 일요일에 오진시에 위치한 에덴 프리미엄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한 쌍, 그리고 들러리들. 한창 화보 촬영을 진행하고 있던 오전 8시.

 

9시에 모두 집합 완료하고 버스에 탑승하였다. 104km를 달려 강남수향 주장의 주차장에 10시 20분에 도착하였다.

 

강남수향 周庄古镇景区는 작은 섬과 같다. 도로가 좁아 단체 여행객을 태운 대형버스의 진입이 금지되어 있어 작은 셔틀버스를 탑승하고 입장하였다.

 

주장고진의 지도이다. 쌍교, 장청, 심청의 세 포인트를 주로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심식사도 해결한 곳이었다.

 

마을 등의 입구에 세우는 패루, '신패루'가 주장으로 진입하는 대로의 입구에 세워져 있다.

 

셔틀버스에서 하차하여 周庄古镇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걸어간다. 걸어야 한다. 10월 22일에 1만8천보를 걸었더라.

 

검표소 인근에 게시된 周庄古镇 지도. 전혀 알아볼 수 없다.

 

周庄古镇의 패루가 보인다. 

북송시대인 1086년에 유지이던 주적공(周迪功)이 全福寺를 세웠는데, 그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마을 이름을 이후 周莊이라 부르기로 했다. 13~14세기에 沈萬三이 수상운수업으로 거부가 되었으며 주장은 물류기지로 성장하였다. "黃山集中國山川之美, 周莊集中國水鄕之美"라는 말이 있다 하더라. '산천의 아름다움을 다 모은 황산이 있다면, 수향의 아름다움은 주장(저우좡)이 다 모았다'라며 주장의 아름다움을 내세우는 글귀이다. 주장의 수향으로서의 아름다움은 그러한 부의 축적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패루를 지나 주장의 아름다움에 찾아가본다.

 

 

 

 

"萬三蹄". 심청의 주인공인 심만삼과 주원장과의 스토리가 엮이면서 주장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돼지족발 요리, 만삼제를 판매하는 상점이 널리고 널렸다. 맛있다. 아주 맛있다. 그런데 길에서 들고 다니면서 먹을 음식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거대한 조형물이 반겨준다.

 

주장이 중국 제1수향이라고 한다. 수향들 중 유일하게 AAAAA급 관광지이다. 오랜 만에 '馬踏飛燕'을 만났다.

 

 

 

주장고진의 '후항가' 골목을 들어가 걷는다. 좁다.^^

 

 

11시. 双桥에 도착했다. 쌍교가 쌍교인 것은 다리가 쌍으로 있기 때문이다. 동그란 아치형 다리와 사각형 다리가 90도로 꺽이며 만난다. 그래서 "열쇠다리"라고도 불린다나...

아치형의 다리가 세덕교, 평평한 것이 영안교이다. 두개의 물길이 만나는 곳에 각각 다리가 만들어지다보니 두 다리가 붙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쌍교이다. 명나라 만력제 때 처음 만들어진 다리들이라고 한다.

 

 

강남수향의 고진들, 특히 주장의 고진이 널리  알려지고 관광지로 개발되는데 큰 계기된 것이 저장성 닝보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화가이자 영화제작자였던 陳逸飛(Chen Yifei)의 작품 "家鄉的回憶-雙橋" 때문이었을 것이다.

'家鄉的回憶-雙橋'는 전통 수묵화 기법으로 그린 유화 작품이다. 미국 석유 재벌인 Armand Hammer가 구매했던 이 작품을 1984년 중국 진출을 위해 덩샤오핑과 만나는 자리에서 선물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던 중국 정부가 이를 대서특필했던 것이다.

 

 

주장이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고, 주장을 소재로 여러 작품을 활동을 했던 천이페이의 다른 작품 '橋'는 유엔협회세계연맹(WFUNA)에서 발생하는 우편물의 표지 그림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의 서명이 된 봉투가 경매 사이트에 돌아다니는...

 

이렇게 유명한 주장의 쌍교를 찾아와서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롭다.

 

쌍교 중 동그란 세덕교 아래의 물길을 따라 유람선이 오가고, 세덕교 위로는 여행객들이 오고 간다. 세덕교 옆의 식당에서는 손님들이 식사를 맛있게 하고 있다.

 

 

 

주장의 부잣집 두 곳을 탐방하기로 했다. 먼저 장씨 집안 '장청'을 방문하였다.

 

 

대문을 지나면 작은 정원을 지나 내청으로 이어진다.

 

 

건물의 장식 하나 하나가 역시 부잣집이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건물 틈새의 작은 공간. 전통 수묵 기법으로 잘 그리면 작품이 나올 것만 같다.^^

 

자연산 대리석을 잘라낸 것이란다. 그냥 그대로 자연의 작품이다. 자연산이다.

 

이곳은 그러니까......

 

萬世師表라는 편액이 보이는 것을 보니, 여긴 공부방이다.

아들들은 이곳 1층의 공부방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고, 공부에 관심이 있던 딸들이 있다면 2층에서 몰래 수업을 엿들으며 공부를 할 수는 있었다고 한다. 몰래... 당시에는 여자가 공부하는 것을 금기시했던 시절이라 그러했다고 한다.

 

 

일상용품 전시 공간에 있던 물품 중 하나. 자수이다. 어떻게 만든 것인지 양쪽에서 보면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자수의 귀신의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는 척하는 여행객 1. 주인은 가당찮아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만 있고......

 

 

장청을 나와 '남시가'의 골목길을 걷는다. 사람들로 대로가 가득찼다. 장청에 비해 '심청'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다.

 

 

 

대문은 열려있지만 밖에서 내부를 바로 들여다 볼 수는 없다. 요렇게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부잣집들도 커다란 그림 등으로 밖의 시선을 차단시키는 장치를 두고 있다.

 

 

'심청'은 거리에서 보면 다른 집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재벌 가옥의 진수를 보여준다. 청나라 건륭 7년(1742년)에 지어진 집이라고 한다. 100여 개의 방으로 구성되었다나...

 

이 세분이 누구시냐면은...... 그러니까...... 웃는 사람들이다. 웃기다.

 

 

송무당.

 

 

식사합시다.

 

聚宝盆. 심만삼이 이룬 거부를 탐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황제인 주원장도 마찬가지였다. 

'明史'에 따르면 주원장 시대에 심만삼은 도성 건축비를 부담하겠다고 하여 황제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했다. 사업은 더욱 번창했고. 그런데 그는 너무 나갔다. 돈이 너무 많다보니 실수를 했다. 심만삼이 군대의 사병들에게 은자를 나눠주겠다는 건의를 한 것이다. 헌데 "천자의 군대를 필부가 위무를 해?"라며 황제가 삐진 것이다. 네가 그렇게 돈이 많아?

황제는 심만삼에게 동전 하나를 하사하곤 매일 전날의 두배 이자를 달라고 요구했다. 심만삼은 쉽게 생각하고는 그러하겠다 했고. 그런데 하루마다 두배로 늘어나면 30일 후 5억3천만 량이 넘게 되는 것이었다. 심만삼은 황제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다행히 윈난으로 유배를 당하는 것으로 퉁치고 목숨은 건졌다. 이 일화를 담은 것이 '취보분'과 '만삼통보'이다. 재신의 복을 나누어 받으려는 관광객들이 서슴없이 던진 동전과 지폐가 잔뜩 널려 있다. 이제 중국 사람들은 현찰 사용을 피하고 알리페이 등을 주로 사용한다던데.. 취보분 아래에 알리페이 수신장치라도 달아놓아야 할 듯 하다.

 

 

심만삼과 주원장 사이의 일화를 표현한 부조물이 전시되어 있다.

 

 

12시. 장청주가를 방문하였다. 식당이다.

 

강소성의 명물 요리, 만삼제를 만났다. 독특한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족발이다. 아주 부드럽게 맛있다.

萬三蹄라고, 주장의 부호인 심만삼의 이름을 따왔다. '만삼 족발'이다.

명나라 황제 주원장은 강소성의 부호 심만삼을 죽일 꼬투리를 찾고 있었다. 그의 집을 방문하겠다고 했고, 황제가 방문하니 특식을 준비했다. 상에 오른 붉은 돼지 족발 요리를 먹기 위해서는 칼로 족발을 발골해야 했기에 요리 옆에는 발골용 칼이 준비되어 있었다.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주원장은 먼저 심만삼에서 요리 이름을 물었다. 중국어로 돼지 족발은 '주티(zhuti)'라고 한다. 돼지의 발음과 황제의 성 '주' 발음이 같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황제 앞에서 말을 꺼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심만삼은 꾀를 내서 '万三蹄'라며 자기 이름을 대서 위기를 모면하고, 발골을 위해 칼을 드는 대신 족발의 뼈 중에서 가느다란 것을 찾아 살을 잘라 접시에 올림으로써 자신의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중국에서 심만삼은 재물과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만삼제의 요리 방법은 간단한다. 설탕을 넣은 간장물에 오랫동안 삶으면 된다. 짠맛이 나면서 달콤하고, 기름지지만 느끼하지 않고 쫀득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갖고 있어 오늘날은 중국의 어디에서도 쉽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그러한 음식을 우리는 '현지'에서 먹었다. 

 

 

오후 1시부터 1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유람선이 접근하는 있는 곳이 太平桥, 저 멀리 보이는 다리가 世德桥이다.

 

 

여행지에서 지나는 사람들과 섞여 사진 하나 남긴다.

 

 

 

식전에는 '장청' 앞이 바글바글했는데, 식후에는 한산해졌다.

 

'서만가' 길을 따라 계속 물길과 뭍길이 함께 간다.

 

 

문화재로 보호되고 있다고 하는 周庄普庆桥를 건너가본다.

 

 

南湖园이라는 현판이 보였다. 중국 강남에 흔하디 흔한 수많은 '원림' 중의 하나인가 싶었다. 문이 닫혀 있어 돌아서왔는데 더 살펴볼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곳이 '周莊'을 "周莊"이 되게 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주적공(周迪功)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全福寺라는 큼지막한 사찰의 입구였던 것이다. 왜 문이 닫혀 있었을까... 작은 동네에 큰 사찰을 만들어주어 동네 사람들이 그의 성 '周'자를 가져다가 "周莊"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던가...

 

 

'서만가'에서 贞丰桥를 건너면 '중시가'로 이어진다. 다른 수향들보다 주장에는 골목길이 많아 복잡하게 느껴졌다.

 

 

贞丰桥 위에서 본 주장의 풍경.

 

 

규모가 크고 멋지게 장식을 해놓았다. 건너편에 주장 고진으로 입장하는 입구들 중의 하나가 위치한다. 다리 이름은 지도에 나와 있지 않다.

 

通秀桥는 주장의 문화재이다.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실을 뽑고 계신다. 직접 뽑은 그 실로 만든 작품들을 판매하는 가게.

 

쌍교에서 남쪽으로 남시가를 따라 걷다가 서만가로 건너갔다가 중시가를 걷다가 성황경을 따라 걸었더니 쌍교를 만났다.

 

복흥가의 넓은 물길을 따라 가다보면 青龙桥를 만나게 된다.

 

 

자유시간이 마쳐질 시간이 되었다. 집합장소로 이동하는 사람들?

 

주장고진의 패루가 보인다.

 

패루는 물고기 꼬리로 장식되어 있다.

 

 

 

주장고진은 여러 물길을 따라 많은 골목길이 연결된다. 골목길이 잘 만들어져 있어 다른 고진과는 달리 유람선 영업이 잘 안되는 듯 보였다. 걸어다녀보니 걷는 것이 주장고진을 즐기기에 더 적합해 보이기도 했다. '만삼제'는 맛있었다.^^

 

 

 

주장을 떠나 인근에 위치한 수향인 '동리고진'으로 이동하였다. 42km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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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1일. 강남수향 서당을 떠나 강남수향 오진으로 달렸다. 58km를 달려갔다.

 

도착하였더니 점심 때더라~

12시가 넘어 도착하여 배가 고팠었나 보다. 식당 내 사진은 식후의 빈그릇들만 등장한다.

그리고는 나와서 뒤돌아보면서 배부르게 해주어 고맙다는 눈길을 남긴다. 乌镇凡璞主题文化酒店 내에 입점한 江南酒家라는 식당이었던 것 같다.

 

택배 차량인 것으로 보인다. 전깃줄을 끌어다가 밥 먹고 있는 중이었다.

 

오후 1시. 乌镇东栅景区에 도착하였다. 매표소 건물의 지붕 위에 있는 커다란 현판이 보인다. "烏"에 새의 모습을 담으려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까마귀였을 것이다.

 

오진의 景区는 동책과 서책으로 나뉜다. 동시하 물길 주변이 동책, 서시하 물길 주변이 서책이다. 남책과 북책도 있었다 하나 현대화 시기를 거치면서 그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살아남아 옛모습을 살린 현대적인 관광지구로 개발된 것이 동책과 서책이다.

 

현지 가이드 '혜진' 여사가 오진을 오는 도중에 Wuzhen Theatre Festival이 벌어지는 중이기 때문에 혼잡할 것을 걱정하였다. 서책 내에 예정되었던 숙소를 고진 밖의 숙소로 옮겨야 했던 것도 같은 사유 때문이라 하였다. 헌데 현장에서 실제로 겪은 문제는 축제가 아니었다. 이게 문제가 아니었다.

 

외국인은 오진 고진에 바로 입장할 수 없다고 퇴짜 맞았다. 주차장 건너편에 위치한 子夜酒店의 창구를 찾아가 정보 등록을 할 것을 요구받았다. 호텔 로비의 창구에서 담당자를 찾아 단체비자, 여권을 모두 제출하고 한사람씩 불려가 얼굴 사진을 찍어야 했다. 이런 업무를 '子夜 호텔'의 프런트에서 대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진 수향고진을 입장하려는 외국인은 이런 식으로 신분증을 제시하고 증명사진을 찍은 후에 얼굴 인식을 통해 입장하는 시스템이 시행된 지는 꽤 된 것으로 보인다. 2021년의 오진 여행기가 실린 신문기사에 등장하고 있으니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적용된 것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이 호텔의 이름이 '子夜'인데, 이는 오진 출신의 유명한 공산주의 소설가 茅盾(본명은 沈德鴻)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오진 출신 소설가의 대표작 이름을 호텔 이름으로 가져온 것이다.

 

 

다시 터덜터덜 걸어서 오진 동책으로 입장한다. 두번째로 방문하는 기분이다.

모든 개인 정보 및 생체 정보까지 제공하고 나서야 오진(Wuzhen) 수향고진에 입장할 수 있었다. 개찰구에 설치된 카메라에 얼굴을 찍으면 통과되는 방식이었다. 

 

표를 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권 정보와 얼굴 정보를 모두 요구하다니.... 종이 티켓은 동책과 서책의 유료 전시공간에 입장할 때마다 확인받는다. 구멍 뽕!!!

 

오진 동책 풍경구의 상세 지도이다. 상세한 지도를 세밀하게 작성하여 공개해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출처: https://somgle.tistory.com/617)

 

긴 시간에 걸쳐 번거로운 불평등한 절차를 거쳐 입장하고 나니 좀 의기소침해진다.

 

강남 일대의 온갖 침대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 '강남백상관'을 입장한다. 100여 개에 달하는 명청대의 목조 침상들이 모여있는 공간이다.

 

강남 지역은 온도와 습도가 높아 건물의 2층에서 침대 생활을 주로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금수저 집안에서는 희귀한 재료로 멋진 침대를 만들어 이용했었을 것이다.

 

백상관을 관람하고 인접하여 입지하고 있는 민속관도 관람하였다.

 

 

오늘의 메인 이벤트는 '삼백주방' 방문하는 것이었다. 명나라 개국 연회 때 주원장에게 진상되어 칭송받은 오진을 대표하는 특산품인 삼백주를 만드는 곳이다.

 

숙성 중인 술통들. '세가지 하얀 재료'를 사용하여 술을 빚기에 三白酒坊이라 하였다. 쌀, 밀, 물... 맞나?

 

간단히 돌아보고서는 '시음 행사'를 한다. 코딱지만한 잔에 병아리 오줌만큼씩 나눠주더라. 아우~ 승질나서...

 

한 병을 사버렸다. 68위안이니 13,000원쯤 하는가 보다. 알리페이로 계산하니 쉽더라. 

영수증에 한근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포장박스에는 500ml라고 되어 있다. 물품에 따라 한근의 실제 무게가 다른 것으로 아는데, 술은 500ml인가보다.

 

바로 옆에 위치한 굉원태 염방(宏源泰染坊)을 방문하였다. 중국어 발음을 따라 '홍원태 염방'이라고도 많이 불린다.

 

요로케 해서 염색된 천들을...

 

이렇게 걸어서 건조시킨다.

 

오진 동책의 좁은 골목길을 탐사하는 대원들의 모습. 좁은 골목이지만 이름은 크다. 東大街.

 

오진 동책의 물길과 거리.

 

오진 동책의 다리. 관음교를 건너 이동하는 탐사단 일행.

 

강남목조관(江南木雕馆)에 도착하였다.

 

나무를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멋진 예술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강남목조관에서 한블럭 서쪽에는 茅盾纪念馆이 있다. 그 유명한 茅盾이다. 누구? 중국 최고의 장편 소설가로 꼽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가 살았던 집을 기념관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다. 부근에는 그의 조각상도 만들어져 있고. 가보지는 못했다. 패키지 여행이란...

 

옛마을 고진이지만 이제는 현실 속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무더운 여름을 견디기 위해 에어컨을 끼고 살고 있다고 한다. 여름에 온도가 높고 습도도 어마무시하여 땀이 줄줄 흐를 정도라고 하더라. 그래서 에어컨 없이 살 수 없게 되었다고.

 

그래서 그런지 낡은 건물의 외벽에 설치된 '신식 실외기'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오진 동책을 흐르는 '동시하'를 따라 조성된 '뭍길'을 걸으며 오진 수향의 특색에 대해 생각해본다.

 

강남수향 오진의 풍광을 즐기는 여행객 커플.

 

물가에 정박된 특이한 모양의 선박, 烏鎭拳船. 무술 시범을 보이는 무대였다. 공연 시간을 기다려본다.

 

무난한 공연이었다. 무협 영화 같을 줄 알았는데... ''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공연'이었다. 잘 보았다.

 

오진 동책의 마지막 인상은 '에어컨 실외기'로 남을 것 같다.

 

오진 동책과 서책 사이를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

 

3시 50분. 무료 셔틀버스는 그냥 보내고 유료 여행사 버스를 탑승하고 서책으로 향했다.

 

오진서책경구 입구에는 화합이선(和合二仙) 조각상이 있다. 연꽃과 그릇을 하나씩 들고 있는데, 연꽃의 하()는 화(), 그릇의 합()은 합()과 발음이 같다. 연꽃은 고결한 심성을 비유한다. 그릇에 박쥐가 날아오를 듯 푸드덕거리고 있는데, 복이 넘치라는 뜻을 담은 것이라 한다. 민간 전설에 등장하는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곳곳에 '오진극장축제'를 알리는 플래카드들이 널려 있었다. 시간이 지체되었기에 부지런히 입장을 서두른다.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면 통과~. 오진 수향에는 출입구가 많고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입장할 수도 있는데 이때 얼굴인식 시스템을 통한 관리가 편리하다는 측면도 있다고는 한다.

 

오진 서책풍경구의 상세 지도이다. 제작자분께 감사드린다.

(출처: https://somgle.tistory.com/617)

 

유람선을 타고 서시하를 즐길 예정이었다. 4시 15분에 선착장에 도착하여 출발하는 유람선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런데 도착하는 나룻배마다 정박하고는 사공들이 계속 사라졌다? 마침 도착하는 사공들의 식사 시간이라 하였다. 오우!!!

 

식사를 마친 사공들이 다시 작전에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유람선에 승선할 수 있었다. 1시간을 기다렸다. 오우! 오빠! 달려~

 

배를 타기 위해 오르내리는 계단의 모양이 재밌다.

 

"水上集市" 족자가 멀리 보인다. 수향의 물가에서 열리는 시장이다. 새벽이면 채소나 고기 등을 실은 배들이 몰려들어 시장이 열리는 곳이다. " 水上 "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부분은 수상집시가 열리는 잔교의 일부이다. 오른쪽 부분에 " 集市"라는 글자가 숨어있다.^^

축제도 열리고, 시장도 열리니 사람들로 미어터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주말인 토요일 저녁이었다. 강남수향마다 그 특색이 모두 다른 것 같다. 주가각, 서당과는 다른 맛을 풍기는 오진 서책. 사람들이 많다~

오전은 물산이 풍부해 魚米之鄕이자 絲綢之府라고 불린단다.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枕水人家라는 별명도 있다. 원래 우리 일정에 예약되었던 호텔의 이름도 枕水度假酒店이었었다. 물의 세상인 것이다.

 

서시하는 병목 구간을 제외하면 물길이 넓다. 많은 유람선들이 흘러다닌다. 定升桥를 지났다. 세 개의 아치 위를 직선으로 연결하여 마감한 교량의 모습이 아름답다.

유람선의 뒷자리에 앉았더니 뒷모습만 찍을 수 있네... 오고가는 '오봉선'이라 불리는 유람선들이 모두 흔들흔들 거린다.

 

서시하의 물길에는 유람선 뿐만 아니라 여러 척의 공공 선박들도 눈에 띄었다. 쓰레기와 폐수 등을 운반 처리하는 선박으로 보였다. 자주 보이더라.

 

또 지나간다. 힘차게 노를 저어 날아가고 있는 운반선.

 

물길에 잇닿은 뭍길에 인파가 가득하다. 식당, 상가에는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유람선 탑승이 늦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야경 유람선으로 변해간다.

 

오진에서도 명청 시대의 복장을 차려입고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오진의 유명한 遷善橋를 지난 것 같다. 바닥에 주춧돌을 쌓고 돌기둥을 세운 후 교량의 상판을 얹어 완성한 다리이다. 돌기둥의 양옆으로 글자가 새겨져 있다. 무슨 글자인지 궁금했는데, 멀어서 읽기가 힘들어 포기했다.

 

상점가의 뒷쪽으로는 원래 뭍길이 없는데 새로 조성하였고 의자를 길게 설치하여 많은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해놓았다. 짱이다.

 

'오진 서책'은 강남수향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규모'의 수향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여러모로 관광객을 위한 개발이 세심하게 이루어진 것 같다. 좁은 '서책대가'로 몰리는 인파를 분산시키기 위해 물길 위로 잔교를 설치해놓았다. 짱이다.

 

멀리 南塘桥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文昌閣 못미쳐서 선착장이 위치한다. 1시간 기다리다가 27분 배를 탔다. 하선해야 한다. 

 

오진 서책에 밤의 어둠이 내리고 있다. '백련사카페거리' 쪽 조명은 환하게 빛나고... 분위기 있어 보인다.

 

문창각은 옛모습이 아니다. 새것이다. 

문창각은 도교에서 학문의 신인 文昌帝君을 모시는 사당이다. 문창제군은 문창성, 즉 북두칠성 중 여섯개의 별로 이루어진 별자리를 신격화한 것이다. 문창제군의 이름에 '文'자 있다고 하여 학문의 신으로 숭배되어 과거를 보려하는 선비들이 시험 전에 이곳에 와서 제사를 올리곤 했다. 과거제 폐지 이후에는 그냥 동네 사람들의 놀이장소로 변하였다.

 

남당교는 근사한 지붕도 얹고 있다. 윗편으로는 근사한 현대식 호텔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川·日料餐厅(堤上度假酒店)이다. 새 건물이다. 반짝반짝 빛난다.

 

문창각 앞의 선착장에서 인원 점검 후 통제교를 건너, 서책대가의 인파와 섞여 보았다.

 

백련사에서 望津河 맞은편은 오진의 맛집 식당가이다. 乌镇美食汇라는 판떼기가 보인다. 저 안쪽 어데의 식당에서 맛있게 배불리 잘 먹고 나왔다.

 

望津河 맞은편에 빛나는 백련탑이 보이는 현 위치에서  다시 모이기로 하고 '자유시간'을 가졌다. 높고 빛나는 백련탑은 오진 어디에서나 잘 보이므로 찾아오기가 편할 것이라 했다.

백련탑은 오전에서 가장 높은 24m 높이에 이른다. 안쪽은 벽돌로, 외부는 목조로 건축되었다. 전탑과 목탑이 복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3층까지만 오를 수 있어 고층 전망대 기능은 하지 못한다. 밤의 조명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자유롭게 '서책대가'의 넓은 골목길 속으로 스며들어가보자.

 

'극장 페스티벌'이 열리는 '國樂戱院'을 찾았다. '아Q정전' 공연 포스터가 보인다. 안쪽의 공연장에서는 공연이 진행중이었고, 다음 회차의 공연을 기다리라고 하는 것만 같아 그냥 나왔다.

 

오봉선을 타고 들어올 때는 관람객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시간이 늦으니 썰물처럼 빠져나간 듯 하다.

 

咸寧橋에 올라 서시하 주변의 경관을 살펴보자.

 

오진의 야경은 서당에서 보았던 야경에 비해 차분하게 느껴졌다. 서당의 경우에는 원색의 조명을 섞어 현란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면, 오진의 경우에는 비슷한 색감의 조명을 사용하여 '수향'을 수향으로 느껴지게 한다. 조명의 세기도 과하지 않고 중국 특유의 붉은 등이 보이지 않아서 좋다. 이러 하기에 강남수향들 중 특히 오진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천선교에서 함녕교 방면의 야경. 아름답다.

 

자그마한 平安桥에 잠시 앉아서... 쉬어간다. 평안교는 작은 아치형 돌다리이다. 리조트 방면을 이어주는 다리여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다고 하는 곳이다. 

 

오진 서책의 야경 포인트들 중의 한 곳이다.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뭔가 심리적으로 어떻게 해서 안정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듯한 느낌이 온다.

 

돌다리 虞奧桥를 만났다.

 

우오교에 오르니 멀리 백련탑이 보인다. 차분한 水鄕의 야경이 멋지구나.

 

통제교에서 보이는 백련탑의 모습과 그 아래에 위치한 카페거리. 여긴 좀 노는 곳 같아 보였다.^^

 

집합 시간이 좀 남아 '카페베네'를 들어가 보았다.

 

주문 및 계산은... 저쪽에서...

현지 가이드로 수고해주고 있는 Hyejin 女士와 커피 한잔을 나누며 이야기도 나누다가 약속 시간 즈음하여 일어섰다. 약속 장소로 이동하여 일행을 기다린다.

 

집합 완료. 인원 점검 완료. 입구의 주차장까지 걸어갈까요, 아니면 전통 카트를 타고 갈까요?

모두 전통차에 탑승하였다. 신나게 달린다. 요금 1인당 10원은... 남팀장이 쏜다고 큰소리 친다. 전동차는 더 신나게 달렸다.

 

오진서책경구를 나선다. '화합이선'의 뒷모습이 보인다.

 

오진동책과 서책에서의 이동 경로를 지도에 표시해보았다. 

 

오진서책 내에 숙소가 위치하였다면, 천천히 오진의 야경을 더 즐길 수 있었을텐데, 숙소가 '에덴'으로 변경되어 '에덴'으로 떠나야 했다.

8시 반쯤에 버스가 출발하였고 1시간을 달려 '에덴'에 도착하였다. 거리는 32km정도였다.

 

오우 멋진 신식 호텔이었다.

 

욕조가 창가에 위치하여 몸을 담근 상태로 야경을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좋은 호텔이다. 다만 야경이 볼 것이 없었고... 피곤하여 그냥 침대 속으로 스며들었다는 것 정도... 좋은 곳에서 아주 잘 잤다~~~

내일은 7시에 웨이크업, 7시 식사, 9시 출발 예정. 여유가 넘친다. 

 

이 최신식 현대식 첨단 아름다운 호텔을 외국인이 이용하면서 너무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 WIFI가 무료로 제공된다. 그런데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 인증을 스마트폰을 통해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 인증 전화번호를 중국 내국인용 전화로만 받을 수 있다. 즉, 외국에서 입국을 하여 로밍을 한 스마트폰으로는 인증을 받을 수 없어 호텔에서 제공하는 WIFI를 쓸 수 없다는 것이다.

편법을 이용해 현지 가이드에게 부탁하였고, 인증 횟수가 초과하여 버스기사의 전화번호로 인증번호로를 받아 WIFI 접속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접속을 한 WIFI를 통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 또 짜증나게 하였다. 이런저런 사이트들 상당수가 접속 차단 상태였기 때문이다. VPN을 우회하여 접속하는 방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알지 못하는 세계이기에 그냥 접었다. 중국아, 네가 이겼다. 네가 다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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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0일 오후 5시, 주가각을 출발하여 5시50분 西塘古镇에 도착하였다. 85km를 달려갔다.

 

숙소가 古镇 안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바퀴달린 가방을 끌고 밀면서 이동해야 했다.

 

满觉珑精品酒店, ManJueLong Hotel에 도착하였다. 건물이 ㅁ자 모양으로 되어 있고 내부의 1층에는 여름에 물을 채워두는 공간으로 보였다. 시원하겠다.

 

西塘古镇의 안내 지도이다.

 

강남수향의 볼거리 중의 하나가 화려한 야경과 고요한 아침 풍경이라고 한다. 서당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풀고 나오자마자 만나는 세상이 그러한 세상이었다. 환상적인 판타지의 세상이다. 좁은 수로는 물결이 크게 일지 않기 때문에 조명의 반영이 그대로 잘 나타나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강남수향에서 숙박을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황홀한 야경에 빠지고 다음날 새벽의 물안개 속의 풍경 때문일 것이다.

 

서당 마을의 야경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전에 먼저 일단 저녁 식사부터 하여야...... 푸짐한 한상. 밥을 피하고 나머지만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배부르다. 많이 부르다.

 

식후 산책을 시작해본다. 어둠 속에 빛나는 빛의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어둠이 어둠으로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하고 빛이 그 가치를 보이기 위해서는 어둠이 필요한 것이니......

 

여러가지 낙서로 가득 장식된 송자래를 건너 연우장랑 속으로 들어간다.

 

붉은 빛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색상의 조명이 어둠속에서 水鄕의 멋을 한껏 뽐낸다.

 

나룻배를 타고 가다가 물길가의 상점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마음을 홀리는 불빛을 따라서...

 

'서당'이 다른 강남수향들과 다른 점은 가장 더디게 관광지로 개발된 덕에 수향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길을 중심으로 한 마을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이 펼쳐지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2006년 개봉한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미션 임파서블 3'의 무대로 등장하기도 했었을 것이다.

나룻배가 지나는 물길의 왼쪽은 상가등으로 이용되는 건물이 바로 물길과 연결되어 있다. 물길의 오른쪽은 물길을 따라 좁은 길이 이어진다. 이 좁은 길의 위로 처마가 계속 이어져 있다. 이 공간이 서당의 명소인 '烟雨長廊'이다. 비가 내릴 때면 이 처마를 따라 흘러내리는 빗물을 보며 걷는 세상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묘미를 제공할 것이다.

 

영녕교 위로 수많은 인파가 지나고 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3'에서 톰 크루즈가 뛰어건넜던 다리이다.

 

영녕교 옆에 이러한 표지판이 있다고 하더라. 못보고 지나쳤다.ㅎㅎ

(출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02011390001532)

 

 

이곳이 서당고진의 가장 번화가인 것만 같았다. "古镇"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고장? 디스코텍? 빠? 하여간 땐스와 어울리는 음악이 상당히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두개의 물길이 만나는 결절점이라 교통의 요지일까? 노란 조명으로 칠해진 안경정 건너편에 위치한 곳이 그곳이었다.

다른 수향들에 비해 늦게, 더디게 개발되어 본래의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한 곳이 서당이라 한다. 그런 매력을 오염시키는 옥의 티가 아닐까 싶다. 소음이라도 좀 줄여주지......

 

 

건물의 2층은 明淸食代라는 식당이지만, 1층에서는 泊客 BAR가 영업중이었다.

 

안경정 옆의 안경교 위에서 영녕교 방면의 야경. 멋진 세상이다. 어둠은 많은 것을 가려주고 많은 것을 보여준다. 멋지고 아름답고 황홀한 모습이다. 밤새 쳐다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다. 귀에 압력을 마구 가하고 있는 박객BAR의 음악마져도 감미롭다.^^

 

안쪽의 골목길이 당동가이다. 수많은 홍등으로 물든 골목이 수많은 BAR로 가득하다. 골목에 사람들이 많지 않아 대부분은 입구에 호객꾼들도 심심해하는 상황이었다. 泊客 BAR만 홀로 요란하였고......

 

안경정 앞에 전시된 조형물은 민물가마우지를 이용한 낚시꾼을 묘사한 것 같다.

 

강남수향 서당의 황홀한 야경 속에서 허우적 거리다가 정신이 몽롱해보이는 여행객 1. 泊客 BAR를 함께 들어가보자 했더니 뺀찌놓았던 여행객 1.

2023년 10월 20일의 서당을 그렇게 잠재웠다. 그리고............

와이파이의 세상으로 빠져들다가 잠들고 싶었다. 그런데 웬만한 사이트는 중국 당국에서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 그 웬만한 사이트를 접속하고 싶었는데... 중국의 업소에서 제공하는 WIFI를 통해서는 한국에서 접속하던 세상을 즐길 수 없다. 그냥 돈 몇푼 생각하지 말고 데이터 로밍도 그냥 빡 저질러야 한다. 그러면 한국에서 접속하는 인터넷 세상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3박4일 동안 인터넷 없는 세상을 살다 온 것만 같았다. 

 


 

2023년 10월 21일에 눈을 떠보았더니 여전히 서당이었다. 그래서.......

우선 식당으로 달려갔다. 호텔에서 먹은 식사이니 '호텔식' 맞다. 지난 밤의 식사 흔적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호텔 식당이라니...... 준비된 조식의 상태라니...... 우와~~

 

수향의 맛은 야경과 더불어 새벽의 물안개가 깔린 풍경이라 했다. 오늘은 아니다. 쨍한 아침 햇살이 내려오신다.

 

'西塘花港'. 서당고진이 시작되는 뽀인트의 조형물.

 

만각롱 정품주점의 모습. 서당고진 안쪽에 입지한 가장 큰 호텔이다. 아침 식사 문제만 해결되면 참 좋은 호텔일 것 같다.

 

종종 보이는 신문물. 스맛폰이 일상화되면서 등장한 상품이다. 외장형 배터리를 임대해준다. 알리페이나 위쳇을 통한다.

 

서당의 아침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룻배마다 번호판이 있다.

 

흥겨운 아줌마들. 아침 일찍부터 이곳저곳에서 스맛폰 카메라에 춤추는 모습을 담고 있더라. 끼어들고 싶었다.^^

 

아주 좁디 좁은 골목길을 '弄'이라고 한다. 유명하지 않은 엽가롱, 그리고 서당을 대표하는 '롱'으로 유명한 석피롱. 서당에는 이런 '롱'이 100여 개나 있다고 하니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듯 하다.

 

한글로 "석피골목"이라고 안내되어 있다.

 

석피롱은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폭밖에 되질 않는다. 입구의 안쪽의 입구에 석피롱이라는 석판이 아랫쪽이 붙어 있다.

 

서당을 대표하는 교량인 환수교.

 

연우장랑이나 공원 등에 벤치처럼 생긴 시설이 있다. 널판으로 된 셔터를 빼서 보관하는 용도였다. 뚜껑을 덮어 놓으면 여행자들의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도 이용되어 공간을 이용하는 지혜에 감탄하였다.

 

아침 식사후의 자유시간을 즐기고 호텔로 돌아왔다. 짐을 챙겨 로비에 맡겨두고 다시 한번 서당의 연우장랑과 서가의 골목을 탐방하였다.

 

"당원경영가게"는 어떠한 혜택이 있을까? 중국에서 공산당원으로 활동할 경우의 혜택은 '승진'이 대표적이란다. 그쪽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굳이 가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지난 밤 주변 일대를 떠들석하게 했던 박객BAR는 해가 뜨니 조용한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길게 이어진 연우장랑.

 

서당에서의 이동경로를 표시해보았다. 파란선이 야경, 빨간선은 아침의 여정이었다.

연우장랑에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침 일찍 물안개가 흐르는 서당의 모습을 보았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을 남기며 서당을 떠났다. 야경이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욕심이 욕심을 부르는 듯 하다.^^

 

오진을 향했다. 서당에서 오진으로 가는 길은 가흥시 인근의 고속도로를 향한다. 현지 가이드인 "Hyejin" 女士가 백범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실감나게 이야기해주는 시간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자꾸 거부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오히려 중국에서 독립운동가들을 기리고 그들을 추모하는 움직임이 더 강하게 남아 있는 듯 하여 부끄럽고 아쉬웠다. 그렇게 乌镇风景区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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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0일, 오후 2시 반. 강남수향고진 주가각(朱家角, Zhujiajiao)에 도착하였다. 上海朱家角古镇旅游区의 접수 데스크 모습은 여유롭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종이 쪼가리 표는 없다. 스맛폰으로 업무를 모두 처리한다. 현지 가이드가 좌아악 알아서 처리하기에 정확한 요금 등은 체크하지도 않았다.

 

입장객이 많이 몰릴 때는 여러 줄을 서도록 설비가 되어 있지만 다행히(?) 사람들이 많지 않아 널널하게 입장할 수 있었다.

 

江南水鄕古鎭.

중국 사람들에게 "江"이라고 하면 그들은 長江을 떠올릴 것이다.  장강의 하류 부분 이름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이름인 "양쯔강(揚子江, Yangtze River)"이다. 이 양쯔강의 남쪽이 강남, 북쪽은 강북인 것이다.(중국에서 남방과 북방을 구분하는 경계는 진령에서 회하를 잇는 선을 기준으로 한다.) 예로부터 강남 지역은 기후가 온화하고 넓은 평야에 수자원도 풍부하여 물산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강수량이 적어 농업에 불리하나 정치적인 중심지인 북경과 경제 중심지인 강남의 항주를 연결하고자 여러 차례 시도를 한 끝에 7세기 수나라 양제가 무려 1,794km에 이르는 운하를 건설하였고, 이것이 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였다.

경항대운하의 건설 이후 강남 일대는 운하와 물길을 중심으로 상업이 성하고 마을이 커지면서 수많은 "江南水鄕"들이 발달하게 되었다. 중국의 동부 해안 지역은 저평한 평야 지형을 이루고 있어 풍부한 강수량은 많은 호수를 형성시켰다. 크고 작은 호수와 호수들을 잇는 하천, 운하는 강남 경제의 젖줄 역할을 하여 다양한 산업이 발달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13세기에서 19세기까지 강남수향의 숫자는 상당했었다고 한다. 11세기 이후 기록을 보면, 주장, 동리는 마을이 형성된 이래 지명이 바뀐 적도 없고, 구획도 변경되지 않았으며 물길도 그대로이다. 건축물들은 명대와 청조에 지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대다수의 고진들은 입지 조건의 변화와 육상 교통이 발달하여 수상 교통의 중요성이 낮아지면서 이름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 일부 수향은 개발 조건이 맞지 않아, 즉 육상 교통로를 새롭게 건설하기에 적합하지 않아 개발되지 않고 있다가 "수향보존개발계획"이 수립되면서 '고진'으로서 수향의 풍모를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강남의 수향고진으로 "10대 고진"을 꼽기도 하지만 대체로 "6대 고진"을 일반적으로 이야기한다. 아래 지도에 표시된 지역들 중에서 주장(저우좡), 동리(퉁리), 록직(루즈), 남심(난쉰), 서당(시탕), 오진(우전)의 여섯 곳이 강남수향 6대고진으로 꼽힌다.

이들 지역은 양쯔강 남쪽에 위치하여 '강남', 물가마을이라 '수향', 옛날 마을이라 '고진'이라 한다. , 청 시대의 낡은 집들 사이로 운하가 흐르고, 물길 위로는 나룻배가 한가로이 지나며 자그마한 앙증맞은 수많은 돌다리들이 놓여있다. 살림집 하나하나가 물에 기대어 있고, 조금 큰 집은 담장 안쪽까지 물길이 이어지기도 한다. 한쪽은 물길이고, 한쪽은 뭍길이 나란하게 이어진다. 물길은 저수지나 호수, 운하, 강으로 통하면서 마을에서 마을로 이어진다. 작은 물길에 의존하여 형성된 마을이기에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보기 어려운 도시도 농촌도 아닌 독특한 생활단위가 형성된 것이다.

물길을 따라 가옥들이 줄지어 분포하며, 가옥들 앞쪽으로 좁은 소로가 이어지기도 한다.

(출처: https://sinology.org/archives/23052)

 

"강남수향"은 현대의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경관을 갖고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 분위기에 취하고자 찾고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중국 중원의 주인공은 늘 한족이 아니었기에 이민족이 지배할 때마다 쫓긴 인재들이 소주 등으로 낙향하여 藝鄕을 만들었고, 그 대표적인 유산의 결정체가 여러 정원들이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정원들을 '園林'이라 한다. 수많은 '원림'이 남아 있어 중국 문화와 건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찾기도 한다.

 

상해의 서쪽 끝부분에 위치한 주가각은 '6대 수향'에 속하지는 않지만 상해의 행정구역에 속하고 교통편이 잘 연결되어 있어 찾는 사람들이 많다. 노선버스, 지하철 17호을 통해 상해에서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주가각을 대표하는 경관인 "방생교"를 담은 우표가 중국에서 발매되기도 하였다. 

GEOTRIP을 통한 이번 강남수향 여정은 그래서 상해에 위치한, '상하이의 베니스'라고 상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주가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朱家角이란 지명에서 ' 角'은 변두리의 작은 마을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원래 朱씨 집안 사람들이 모여 살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하였기에 이런 지명으로 남은 것이다.

 

입구의 데스크에서 구할 수 있는 리플릿은 중국어판과 한글판(일어 포함)이 있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는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해로 여행을 왔다가 쉽게 들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리플릿에 포함된 지도이다. 다른 수향고진들에 비해 규모는 크지 않다. 주요 경승지로는 과식원, 성황묘, 원진선원, 방생교, 대청우체국 등이 꼽힌다.

 

주가각은 곧 과식원 课植园이다. 과식원은 주가각의 물길에 바로 인접하여 위치하고 있다.

 

과식원에서 강남수향 여정의 첫 일정을 시작하였다. 입장!!!

 

과식원의 지도이다. 물길 쪽의 입구를 보면 다른 집들과 차이를 찾기 어렵다. 좁은 문을 가진 소소한 집일 뿐이다. 그런데 내부로 들어가면서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이 집의 경제 규모를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주가각 고진 북서쪽에 위치하는 課植園은 면적이 17,997 평방미터에 이른다. 馬文卿(마원칭)이 1912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30여 만 냥의 은을 투자해 15년 만에 완공하였다. 중국의 전통 건축예술과 당시에 도입된 서양 건축문화를 결합한 정원식 개인 화원으로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드문 방식으로 조성된 곳이다. 또한 전통 조경 유형 가운데 宅第園林의 '園居' 형식에 따라 주인의 저택도 원림 안에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과식원은 입구 구역, 주인의 주거 구역, 감상 및 휴식 구역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화원은 '과원'과 '식원'으로 구분되는데, 공부를 하면서도 농경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에 농경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공산화 이후 1956년에 과식원은 주가각 중학교 부지로 이용되었는데, 고대 도시 관광사업의 발전에 따라 과식원을 복원시킨 것이다.

 

과식원의 입구로 들어서면 객청会客厅으로 이어진다. 손님이 방문하면 가마를 내려놓는 공간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후화청 后花厅에는 근사한 목조 조각품이 반겨준다. 위에는 撫琴聽風이란 편액이 걸려 있고, 그 분위기를 내기 위해 탁자에 칠현금이 놓여 있었다. 옆에는 바둑판도 있었고... 사진은? 

 

후화청을 지나면 본격적인 '과식원'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앞쪽의 영귀청으로 이어지는 진입로.

 

한쪽에 구멍이 뽕뚫린 석조물이 보전되어 있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우물의 흔적이다. 쌍안정 双眼井.

 

영귀청 迎贵厅. 영귀청 앞쪽에는 '귀빈을 맞이한다'는 의미를 담아 계화나무 두 그루가 심어져 있다. 바닥에는 독일에서 수입한 무늬벽돌을 깔아 장식하였다.

 

영귀청 내부의 모습.

 

왼쪽으로 음양랑 阴阳廊, 그리고 망월루가 보인다.

 

망월루 望月楼가 높게 솟아 있다. 정사각형의 마름모꼴로 지어진 5층으로 이루어진 망월루는 과식원의 랜드마크이다. 건축 당시 맞은편에 먼저 지은 천주교 성당의 종루보다 높게 지으려 5층 높이까지 올린 것이라고 한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원주가 사망하기 전까지 과식원이 완공되지 못하였다는 것이 씁쓸할 뿐.

 

망월루 앞 공터에는 말머리 형상의 돌덩어리가 있고, "馬到成功"이라 각자되어 있다.

 

음양랑과 망월루 사이로 보이는 건물은 수화간 绣花间.

 

太湖에서 가져온 기암괴석, 太湖石을 이용해 조성한 '가산', 그리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우향각.

 

연꽃 향기를 즐기는 우향각 藕香閣과 비랑 碑廊.

 

가산 구역 안쪽에 위치한 고즈넉한 정자 도사정 倒挂狮子, 五角亭이라고도 불린다. 사자 모양을 거꾸로 장식하여 도괘사자정, 도사정이고 오각형이라 오각정이라 부른다.

 

타창루 打唱楼. 경극단 등을 초빙하여 공연을 즐기는 공간으로 이용되었단다.

 

타창루 맞은편의 수월사 水月榭. 문짝이 없이 그냥 뻥뚫린 월동문을 통해 드나들 수 있다.

 

집안의 원림에 집밖의 물길과 다리를 조성해놓았다. 과식교 课植桥. 과식교는 주가각의 36개 다리들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다. 5m정도 크기의 석조 다리인데 난간의 장식 등이 정교하다고 한다. 새로 만든 자그마한 정자의 뒷편 건물은 경청당.

 

경청당 鏡淸堂의 내부 모습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경청당 뒷편으로 두 개의 건물이 있는 것으로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데, 발길이 바빠 가보질 못했다. 이런...

 

관람객들의 이동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데크를 만들어놓으니 많은 부분이 개축되어 원래 모습과 다르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분위기와 맞지 않아 보인다. 사진 오른쪽은 경청당, 맞은편은 수월사.

 

타곡장 打谷场이다. 과식원의 '식원' 의도에 맞게 농작물을 심던 공간이었다.

 

재밌는 공간이다. 구곡교 九曲桥. 과식원의 입구에서 가장 먼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구곡교 안쪽으로 보이는 숲 속에 정자가 하나 있는데, 소주 졸정원에 있는 입정 笠亭과 모양이 비슷하다. 뭐지? 신기하다.

 

 

가산 위에 조성되어 있는 백복정 百蝠亭. 가산을 장식하고 있는 묘한 돌들은 모두 태호에서 가져온 太湖石이다.

 

백복정 아랫쪽에 위치한 수정궁.

 

물에 비친 반영이 멋진 아치교로 이어지는 수정궁 水晶宮의 근사한 자태. 낚시를 하며 노는 곳이기도 하여 관어대 观鱼台가 있다.

 

영귀청과 우향각을 배경으로 남긴 사진 하나...

 

문이 아닌 듯한 문인 월동문, 월량문이라고 한다. 적절히 가리면서도 열린 공간을 연출한다.

 

장서루 臧書樓의 모습. 과식원의 '과원'에 해당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공부합시다~"하는 공간.

장서루의 입구에는 서성 书城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는데, 원주가 "한 권의 책은 천군에 필적한다"는 신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일자루 옆을 일자로 지나가는 일행들.

 

과식원을 나서면 입구 바로 앞에는 선착장이 있고, 매표소가 있다.

 

유람선에 승선하여 수향의 물길을 즐기는 시간이다.

 

물길 주변의 경관과 삶의 현장을 눈에 담으며 지나간다.

 

자그마한 다리 永安桥도 지나간다.

 

물길은 다른 물길과 만난다.

 

우표로 먼저 만났던 방생교 放生桥를 유람선 위에서 만난다. 주가각의 가장 큰 물길인 淀浦河를 가로지르는 다섯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다리이다.

明나라 때(1571년) 건축된 석조 아치형 교각이다. 다리 건축을 주도한 성조 스님이 이 다리 아래에서 방생만 하고 절대 물고기를 잡지 말라 하여 방생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현재의 다리는 淸나라 때(1812년) 중건된 것이라고 한다.

당연히 주가각의 수많은 다리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이며, 옆구리에 석류나무를 달고 있다.

 

'불망초심' 선착장에서 하선하여 주가각의 번화가로 들어섰다.

 

북대가는 지나는 손님들을 끌어들이는 다양한 먹을거리와 상품들을 판매하는 상점, 식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방생교를 지나 흐르는 淀浦河는 淀浦湖로 이어진다. 유람선이 지나는 곳까지 古鎭이고, 더 지나면 현대화된 지역이다.

 

북대가의 문화를 즐기는 인파.

 

人氣美食. CCTV 등 여러 방송에 나온 곳이라네요.

 

방생교를 올라가 보는 여행객 1.

 

방생교 위에 주저앉은 여행객 1.

 

 

 

방생교 옆구리에서 잘 살고 있는 석류나무. 열매도 보인다.

 

星巴克 커피 가게.

 

자문가 구경. 자유시간~

 

취두부 냄새에 익숙해지더라.

 

북대가의 '백년다루' 문앞에는 초록색 우체통이 놓여 있다. 그냥 우체통이다. 이곳을 "청대 우체국"으로 오해하면 안되는 곳이다.

 

이곳은 '정신문명건설실천기지', '주가각진신시대문명실천기지' 등등 무엇인가 대단한 곳을 하는 곳이라는 여러가지 현판들이 잔뜩 달려 있는 곳이었다.

 

청대의 우체국 大清邮局의 사진을 가져와보았다.

(출처: 建筑可阅读 | 这座隐藏在江南古镇里的海派园林,你去过吗?_澎湃号·湃客_澎湃新闻-The Paper )

 

 

주가각에 석양이 내리고 있다. 머물고 싶으나 떠날 시간이다.

 

지나며 다시 한번 과식원을 눈에 담고 떠난다.

 

再见 朱家角, 짜이찌엔 주지아지아오~

 

2023년 10월 20일. 강남수향고진 중 상하이에 위치한 주가각에서의 이동 경로를 뽑아보았다.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과식원까지 도보로 이동하여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 입구의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방생교 쪽으로 접근하다가 선착장에서 하선. 북대가를 구경한 후 자유시간에 자문가, 북대가와 방생교를 자유롭게 구경하였다. '청대 우체국'도 원래 일정에 있었지만 흘려졌다.

 

주가각에서의 일정에서 '청대우체국'을 흘리고 5시에 출발하여 서당, Xitang을 향해 달렸다. 5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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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TRIP을 통해 여러 차례 여러 곳의 여행을 즐긴 바 있다. 지난 7월에 중국의 강남수향을 돌아보는 여행 상품이 공지되었고, 2인분 참가를 신청했었다.

최종 출국 매뉴얼 받은 것을 확인해보니 비행기 출발 시간에 맞추느라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3층의 3번 출국 앞에서 10월 20일(금) 06시 30분에 미팅 시간이 잡혀 있었다. 공항 리무진 버스의 운행시간표를 확인해보니 04시 30분의 첫차를 이용하면 미팅 시간에 맞출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까지 그 새벽에 택시를 예약하고 나갈 것을 생각하다보니 그냥 택시로 공항까지 달리는 것은 어떨까 하는데 까지 생각이 미쳤다. 검색을 해보았더니 인천공항으로 미리 예약을 하였다가 이용할 수 있는 업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블로그에서 좋게 평개해놓은 업체와 연락하여 예약을 하였고, 배정된 기사님과의 확인 연락도 주고 받았다.

그리고 출발일인 10월 20일 새벽에 새벽같이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하고 택시를 기다렸다. 제 시간에 택시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상당했던 것은 사실이다.^^ 다행히 예약된 시간 새벽 05시에 맞추어 정확하게 도착한 택시를 타고 인천 공항을 향해 어둠 속을 달렸다. 전기차의 부드러운 주행감을 즐길 수 있었다.

예약하면서 문의했을 때 요금이 6만원대 나올 것이라고 안내들 받았었다. 택시 미터기 요금에 톨게이트 요금을 더하여 지불하였다. 공항버스 요금이 1인당 18,000원이므로 두사람이 이용했을 때 이용할만 하다 생각이 들었다. 비용에 이동시간을 더하면 새벽에 출발하는 비행편을 이용할 경우에는 공항택시 쪽이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오랫동안 여러 차례 GEOTRIP의 여행상품을 이용하다보니 안면을 익히게 된 분들이 참 많다. 이번 여정에도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새로 뵙게된 분들도 많았고... 가이드 포함 23명이 단체로 출발하게 되었다.

중국은 자국으로 입국하는 사람들에게 만국 공통이 아닌 자국의 방식을 요구한다. 비행기 표는 여행사에서 단체로 뽑았다. 그런데 '중국행 비자 확인' 코너에 모든 여행객이 직접 대면하여 확인받아야 했다.

비자 확인을 받고 '짐 부치는 곳'에 또 줄을 서서 "보내는 짐"을 처리해야 했다. 줄서서 표 끊고, 줄서서 비자 확인하고, 줄서서 짐을 발송하고...... 하여간. 절차를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놓고, 또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줄을 서게 만든...

다행히 짐을 부치는 곳이 너무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다고 비자 확인하는 코너에서 비자 확인 후 바로 수화물 발송 처리를 해주어 빠르게 출국 수속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사람 많더라. 출국 수속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것은 줄을 잘못 선택한 결과이기도 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40번 게이트로 천천히 걸어갔다. 도착 시간이 8시 반. 이미 보딩이 시작된 후였다. 탑승.

보잉 B747-400(PAX) 기종이었다. 빈좌석이 꽤 많았다. 창가자리였다.

 

창가 자리인데 아주 안정적인 자리 자리이기도 했다. 창밖 전망은 바로 포기했다.

 

하지만 기내식은 포기할 수 없었다. 깔끔하게 잘 나오더라. 역시 대한민국 국적기 수준은 다르다.

 

출발 전에 확인한 비행기의 비행 정보 서비스 자료에 의하면 목적지까지 820km 떨어져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인천공항에서 상해의 푸동공항까지 똑바로 직선코스를 그리며 날아간 것이 아니었다. 이동 궤적을 보니 선회하고 우회하여 비행거리가 1,092km라고 나오더라.

 

중국 입국시에 입국자 카드보다 더 챙기는 것이 건강신고서인 것만 같다. 미리 작성하지 않은 입국자는 입국 수속을 하기 전에 스맛폰을 들고 작성을 해야 한다.

 

개별적으로 중국에 입국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모두 작성해야 하지만 여행사를 통해 단체비자로 입국하는 경우에는 여행사에서 일괄적으로 자료를 입력하여 편리하다. 나누어준 자료를 입국하면서 제출하면 된다. 중국의 건강신고서는 입국, 출국시에 각각 따로 작성하여야 한다. 입력된 자료는 24시간만 유효하니 미리 작성을 할 필요가 없다. 아니 소용없다.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늦은 표준시를 사용한다. 11시에 도착하였는데 10시가 되어 있더라. 중국 입국 수속을 모두 마치는데 1시간 정도가 소요된 것 같다.

현지에서의 여정을 도와줄 가이드와 만나 확인을 하고 자기부상열차 탑승장으로 이동하였다. "Maglev" 표지판을 따라 가면 된다.

 

푸동공항의 자기부상열차 탑승역. 가이드가 일괄적으로 단체 표를 구매하는데, 스맛폰으로 확인받는다. 종이 쪼가리 주고 받는 것 없다.

 

공항에서 출발하는 것이므로 열차 탑승구 바로 앞에 커다란 가방들을 쌓아두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최고 속도가 시속 430km를 넘는다고 하던데, 우리 일행이 탑승했을 때는 시속 301km가 최고 속도였다.

 

푸동국제공항에서 용양로역까지 직전코스가 아니라 속도를 높이는데 한계가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버스로 1시간 정도를 이동해야 하는 거리를 자기부상열차는 7~8분 만에 데려다준다.

 

12시. 용양로(龙阳路, 룽양루)역을 나와 일정을 함께 할 버스와 랑데뷰하였다. 그리고 홍교공항 인근에 위치한 식당을 찾아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였다. 상해를 가로지르는 가장 큰 강인 黃浦江(황푸강)을 南浦大桥(난푸대교)를 통해 건너 서쪽으로 달렸다.

 

Lexiang Yueji Hotel 2층에 위치한 식당이었다. 호텔이면서 상당히 규모가 큰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창밖으로는 거대한 여객기들이 하강하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었다. 예약된 자리에 앉으면 커다른 그릇에 담긴 요리가 하나씩 도착하는 것이 아니었다. 요리들이 모두 식탁에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20여 분만에 식사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오랜 만에 중국 식당을 방문하다보니 실수로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나면 다른 '요리'를 먹을 뱃속의 용량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이후 식사에서는 유의하면서 '밥'은 먹질 않았다. 여러 해 만에 중국을 방문했더니 달라진 점의 하나가 '차'를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의아했다. 그냥 맹물을 주더라. 기름기 잔뜩 들어있는 음식을 제대로 처리하려면 차를 마시며 목구멍 청소를 해주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아했다!!! 중국 사람들도 이제는 식당에서 차를 마시지 않는 것일까??

 

중국에서 관우는 여러모로 특별 대접을 받는다. 그중의 하나가 '재신'으로 모셔진다는 것이다. 호텔 로비 한쪽에 제단이 만들어져 있더라. 재신이 강림하여 돈을 많이 벌게 해주십사 하는 주인의 소망이 담긴...

 

길에 보이는 많은 차들의 번호판이 특이하다는 것이 눈에 들었다. 전기차라고 한다. 10여년 전에 중국 입국했을 때 전기 오토바이가 무진장 많아졌다는 것을 보고 놀랐었는데, 이제는 전기차 세상이 되어가고 있더라.

 

1시 44분. 버스에 탑승하여 주가각을 향해 출발하였다. G50 고속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주욱 달려갔다.

 

2시 30분. 이번 여정 중의 첫번째 '강남수향고진'인 주가각에 도착하였다.

 

먼저 과식원을 관람하면서 주가각이란 수향을 맛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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