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9일 늦게 돈황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신세진 돈황국제대주점, 돈황국제호텔의 근사한 자태.
8시. 호텔 앞 길가에 나와서 동네 산책.
간판의 超市라는 단어가 궁금했다. 뭔가 했는데, supermarket이었다...기가 막히다.ㅎㅎ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공사중 판떼기 앞에서 쉬고 있는 아저씨. 아침 시간인데..... 만만디??
공사 중인 앞쪽에서 안내판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루 종일 맡은 것 같다. 훌륭한 분업이다.
9시 30분. 돈황 교외를 달린다. 사막이다. 멀리 거대한 명사산의 사구가 보인다. 돈황시의 남쪽 전체가 명사산이다.
돈황은 감숙성에 있는 도시이다. 타림 분지 동쪽 변두리를 북류하는 唐河강 하류의 사막 지대에 발달한 오아시스 도시로서, 중국와 중앙 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의 관문이었다.
고대의 동서 교역, 문화 교륙 및 중국의 서역 경영의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기원전 1세기 한 무제는 이곳을 서역 진출의 전진 기지로 삼아 둔황군을 두고 부근에 옥문관과 양관의 두 관문을 설치하는 한편, 둔전병과 한인의 식민을 투입하였는데, 이후 둔황은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오아시스 도시가 변경 도시가 됨으로써 한인, 페르시아인, 투르크인, 인도인 등 여러 종족이 어울려 사는 국제 무역도시로 번영하였다.
9시 33분. 사고 현장을 만났다. 아직 현장 수습이 안된 상황이다. 운전자가 크게 다쳤을 것 같다.
9시 33분. 뭐지?
9시 53분. 옥문관 매표소. 버스 기사 아저씨가 계산한다.
옥문관을 향하는 도로.
10시 43분. 옥문관에 도착하였다.
옥문관은 만리장성의 서쪽 끝에 해당하는 곳으로 중국에서 서역으로 연결되는 길목에 위치한다. 호탄에서 생산된 玉이 이 문을 통해 들어온다고 하여 옥문관이라 이름 붙였다는 설이 있고, 양관과 대비하여 여자를 의미하는 이름으로 붙였다는 설도 있다. 돈황 북서쪽 방향 70km 지점에 위치한다. 차량으로 이동 시간은 한 시간 정도.
옥문관 안내판.
옥문관이 이런 상태로 남아 있다. 진짜 관문 맞나??
옥문관문물진열전이 열리는 작은 전시장이 입구에 있다.
전시장의 내부 모습. 좀 썰렁하다. 주로 글자들을 전시하고 있다.
밖에 나오니 건조 기후 환경의 상징인 낙타들이 보인다.
눈썹 위를 털이 덮고 있어 조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앞쪽에 얼씬거리면 침을 뱉는다니 조심해야 한다.
얘네들 똥이다. 아직 싱싱한....
사막 식생.
옛날에 만든 옥문관 안내 표지석
기단 아랫쪽이 깊게 파여 있다. 건조 기후 환경에서 지형을 변화시키는 주요 요소인 바람에 의해 침식된 것으로 보인다.
천정이 없이 하늘을 향해 뻥 뚫린 사각형의 흙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이 옥문관이다. 2천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원래의 구조물이나 시설을 모두 파손, 유실되고 남아 있다는 것이 이 정도이니 원래의 모습을 유추하기는 지난한 상황이다.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 크기인 구멍.
문 모양이라고 하기에는 좀 곤란할 틈새 구멍도 있다.
그리고 옥문관 북쪽으로 녹색 지대가 보인다.
그 녹색 지대를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촬영 기사님들.
녹색 지대는 옥문관이 있는 지대보다 고도가 낮다.
물이다. 물이 있다. 물가에는 하얀 색이다. 소금이다. 즉, 염호인 것으로 보인다.
돈황은 기련 산맥쪽에서 흘러내려오는 당허(唐河)강의 북쪽 하류 부분에 위치한 도시이다. 당허강의 물이 모두 중간에 메말라버리지 않으면 그 북쪽을 흐르는 疏勒河(Shule River)와 만나며, 疏勒河는 서쪽으로 옥문관 북쪽 부분을 지나며, 계속 흘러 타림 분지로 흘러든다. 疏勒河가 물이 부족하여 흐르지 못할 때는 군데 군데 염호를 이루며 플라야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염분이 많은 물이라 사람은 이용할 수 없다. 하지만 주변에 남아 있는 발자국의 주인들은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때마침 그들, 발자국의 주인들이 나타났다.
부근에 보이는 유목민의 거주지.
염소 떼다.
疏勒河변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유목으로 키워지는 염소는 어느 정도의 염분까지 견딜 수 있는 것일까...
그런 고민을 하며 疏勒河를 떠나는 답사객.
한 때 지오트립 홈페이지 표지 모델이기도 했었다.^^
옥문관을 떠났다. 중간에 신기루가 보여 차를 멈추었다. 빛이 밀도가 서로 다른 공기층에서 굴절함으로써 멀리 있는 물체가 거짓으로 보이는 현상을 신기루라고 한다. 사진에서 멀리 섬이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뜨거운 햇볕에 의해 달구어진 지표면의 상태를 관찰, 촬영하고 그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답사대원들.
도로 주변으로부터 모래 등이 바람에 도로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로를 따라 둔덕을 조성하여 놓았다.
길......
11시 40분. 한대 장성을 향한다. 옥문관에서 서쪽으로 4km 떨어져 있다고 한다.
11시 50분. 왔다. 한대장성유지에 왔다.
전국시대에 각 제후국들이 방어를 위해 변경 지역에 성을 축조한 것이 장성의 기원이다. 진나라에 의해 통일되면서 각 제후국들의 장성을 하나로 잇고 보수하여 완성한 것이 만리장성이다. 전한 시대에는 진나라 때의 장성을 보수하고 확장하였다. 한장성의 대부분은 주변에서 자라는 갈대를 흙과 모래를 섞어 쌓았는데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건조 기후 환경이라 오랜 세상이 지났음에도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많다.
한장성은 주로 흉노의 침입에 대비한 것으로 농업 지역의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천 년 가까이 원형이 보전될 수 있는 지리 환경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하는 답사대원들.
사막의 열기를 견디는 버스.
한장성 관련 시설일 것이다. 내부 공개를 하지 않고 있었다. 즉, 문을 닫은 상태.
파괴된 한장성의 일부.
1시 25분. 양관 부근의 포도 농장을 찾았다. 점심 식사를 위하여.
대막정원의 풍광 속에서 양관농가의 맛을 즐기시라~
포도가 머리 위에 널려 있다.
맛있겠다~
남쪽에서 고산 지대에서 스며나오는 물을 모아 오아시스 농업을 대규모로 하고 있다.
포도포도포도포도포도포도.....
식당이 천정이 포도이다.
맥주 한잔 하실라우???
해바라기도 있다. 중국인의 간식꺼리.
인구 밀집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건조 기후 지역이기에 싱싱한 포도를 그대로 소비지로 출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건포도를 만든다.
포도를 수확하여 건조장에 널어두기만 하면 그냥 건포도가 된다. 워낙 건조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햇볕으로 나오면 숨이 막힌다. 조금이라도 그늘 속에서 버티고 싶은 기후 환경.
아직 수확철은 아닌 것 같다. 건조장 밖에 건조 설비를 내어 놓고 있다.
물길을 따라 방풍림 및 그늘 조성 역할을 하는 백양나무가 워낙 잘 자란다. 적절히 자라면 솎아내어 건조장 설비로 이용한다.
물만 있으면 사막이 사막이 아니게 된다. 녹색 지대.
돈황시정신문명건설위원회로부터 10성 중 여덟 개의 별을 받은 훌륭한 집에서 식사를 한 것이었다.
열심히 자라고 있는 포도밭.
2시 30분. 뜨겁고 메마르고 숨막히는 양관박물관에 도착하였다.
양관은 옥문관과 마찬가지로 서역으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이었으나 지금은 폐허만 남아 있다. 한 무제 때 수비를 위한 시설이었고 봉화대가 있었으나, 지금은 사막 위에 우뚝 솟은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
그래서 심심해할 관광객들을 위해 준비했다. 장군님을~
근무 서기 위해 출발하는 위병들. 행군하는 모습은 완전히 당나라 군대이다. 아... 한나라 군대일까?ㅎㅎㅎ
고증이나 그런 것은 없을 것이다. 그냥 뭔가 대충 만들어 놓았다.
진짜 대충 만들었다. 외양은 새 것이었는데.... 부서진다.
양관박물관이다.
위진서역이라는 현판.
양관문물 안내도.
'양관'인 것 처럼 만들어 놓았다.
맞다니까!!!!
있었음 직한 병영도 대충 만들어 놓았다.
양관 병영에 둔전병으로 근무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
양관 봉화대 흔적을 찾아 이동하는 셔틀 차량.
길 옆에 '양관'이라고 써 놓았다. 써 놓지 않으면 알 수가 없으니까.
그렇단 '말'이야.
양관의 유적으로 남아 있다고 하는 유일한 부분이다.
붕괴, 훼손 위험이 커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책을 만들어 놓았다.
말타는 소년. 다가와서 자기 말을 돈내고 타보라고 권하고 다니던 소년이었다. 알아 듣진 못했지만 그런 의사를 표현 것이라고 친다.
말 좀 타소~^^
말 타쉐여~~
주변은 그야말로 온통 말라 비틀어진 땅덩어리이다.
관측 초소가 있었음 직한 곳에 관측소 건설.
그늘을 제공하지만 공기가 워낙 뜨겁다.
양관박물관, 그리고 그 앞으로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오아시스.
양관 유적, 그리고 건조 기후를 즐기는 답사객들.
누군가가 남긴 유기물을 발견했다.마르고 나니 섬유질이 많이 보인다. 그렇기에 이것을 모아 연료로 사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오아시스, 양관박물과, 양관 유적.
양관 유적과 그 주변.
양관에서 멀리 남쪽으로 보이는 고산 지대. 기련 산맥의 서쪽 끝, 혹은 곤륜 산맥의 동쪽 끝 쯤 되었을 것이다.
물이 있는 세상과 물이 없는 세상이 너무 극과 극으로 다르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홀로 나아간다. 저쪽으로.
'수봉관양'. 양관 봉수대 표지석이다.
셔틀 차량이 참 재밌게 생겼다.
양관 병영, 박물관으로 돌아왔다.
4시 반. 당하 저수지를 들렀다. 양관에서 돈황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다. 돈황은 당하의 하류에 위치하고 상류 쪽에서 물길을 막아 어마어마한 저수지를 조성했다.
크리스탈 클리어 워터는 아니다. 녹조가 보인다.
댐의 아랫부분까지 계단으로 내려가볼 수 있다.
수위가 한참 낮아진 상태이다. 고지대에서 눈 녹은 물이 유입될 때 최고 수위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지에서 하천을 통해 저수지와 유로가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지하수가 용출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수지의 물을 주변에 널리 분포하는 포도 생산 농가에 공급하고 마을의 생활용수로도 공급된다.
저수지는 콘크리트 제방으로 만들어졌다. 댐 위의 답사객들.
댐 건설 이전에 물이 흐르던 유로. 건천 상태로 남아 있다. 저수지의 물은 사진 상에서 더 하류 부분에서 조금씩 일정하게 방류하고 있다. 돈황이 당허강의 물에 의존하여 발생한 오아시스 도시이기에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진 하나 남겨본다.
5시. 돈황시 초입에 위치한 돈황고성에 도착하였다. 입장권에 돈황고성에 대한 간략한 안내가 되어 있다.
돈황 시내에서 보면 남동쪽 교외에 위치한다. 돈황시의 남쪽에 명사산이 위치하니 그 부분에 해당한다.
1987년 일본에서 당나라 때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만든 세트장이었는데, 이후에도 비슷한 영화의 촬영장으로 이용되었다. 영화 세트장일 뿐이지만 상당히 철저하게 고증을 거쳐 만들었기에 당나라 시기의 생활 문화를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곳이다.
멀리 명사산이 보인다.
당나라 거리
마을 입구 패루.
장원 입구
당나라 술집.
술집 내부. 오량액이 눈에 든다. 하지만 눈으로 마시는 술은 아니다.
옛날 옷을 빌려준다. 당나라 옷인가???
간단한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
성위에 올라 주변을 조망해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촬영했던 영화 장면들일거다. 아마. 뉘시더라~~
6시 10분. 피곤한 몸을 살려보고자 발맛사지 집을 찾았다.
영약으로 채워진 물통에 발을 담그고 기다린다.
이들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면.....
이렇게 된다.ㅠ.ㅠ
이후 일정은 야시장 둘러보기였다. 흩어져서 일행과 떨어질 경우에 대비하여 호텔로 살아돌아오는 방책이라고 알려준 것이 호텔의 명함이었다. 아무데서나 택시 잡아 기사에게 보여주면 호텔로 데려다 줄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데려다 줄 것이라고...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