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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5일이다.

아야즈 칼라를 거쳐 부하라로 달리는 날.

 

히바를 출발하여 아무 다리야 강을 건너 사막 초입에 위치한 아야즈 칼라 답사. 그리고 사막을 횡단한다. 그리고는 오아시스 도시 부하라에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며 쉴 것이다.

 

아시아 히바 호텔. 위치 좋다. 이찬 칼라 바로 앞.

 

7시 30분에 이찬 칼라를 뒤로 하고 출발한다. 아야즈 칼라까지 달린다. 겨우 100킬로 미터 쯤이야.

 

아무 다리야 강을 건넌다. 다리 이름이?

폰툰 브릿지.

 

버스에서 얼굴 껍데기 상태를 확인해본다. 역시!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다. 여러 날 햇볕 따가운 지역을 여행할 때 껍데기 보호를 위해 몸부림 치는 것보다는 그냥 냅두는 것이 편하다는 결론을 또 내린다. 왠만큼 망가진 다음에는 더 이상 진도가 안나간다.^^

그 다음에는 복구 메카니즘이 작동한다. 신기하다. 좋다.^^

 

 

히바에서 아야즈 칼라까지.

 

9시반 아야즈 칼라에 도착하여 성의 둘레를 따라 한바퀴 돌았다. 돌아부렸다.

이찬칼라, 아야즈 칼라.... '칼라'가 "성"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햇볕에 대항하는 중무장을 해보았다.
숨쉬기 답답하여 벗어버렸다. 안경에 덧대는 썬글라스 대용품을 가져온 것 같은데, 어디에 둔질 찾지 못했었다. 메고 다니는 배낭 안에 있었는데 그걸 못 찾다니... 헌데 눈 아파서 못 쓰겠다. 결국 던져버린다.

 

아야즈 칼라 주차장에는 유르트가 여럿 설치되어 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숙소이다. 식사 제공도 되는 것 같다. 이런 곳에서 묵어보는 것도 재밌을 터.

 

부근에 보이는 가옥. 흙집이다. 왜? 집을 지을 수 있는 재료가 그것밖에 없으니까.

지붕은 평평하다.  왜? 강수량이 매우 적은 지역이니까.

 

호텔에서 관리하는 낙타들 같았다. 아침 식사하시고 출근중~

 

아직 식사 안 끝났다~

낙타들에게 수박을 먹이고 있었다. 수박 풍년이라 가격이 매우 싸다고 하더니.

 

아야즈는 '춥다', 칼라는 '성'을 의미하는 단어. 추운 성 되시겠다. 여름에는 덥지만 겨울에는 매우 춥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 동네라고 한다.

그 땐 그 때고 일단 지금은 매우 덥다. 걷는다. 심지어 올라간다. 게다가 바닥은 고운 모래이다.

 

오메, 빠르다.

 

벌써~

지구인의 범용 사진 포즈. 팔 벌리고 찍기.

 

아야즈 칼라에 올라 바닥에 널린 돌들을 이용하여 조형 예술을 하시는 분들.

 

끝났다~~ 만쉐~~~

 

토성이 이렇게 아랫 쪽과 윗 쪽으로 구성된 예가 흔치 아니하다 한다.

 

까꿍~

 

 

옆에 작은 성채의 흔적이 또 남아 있다.

 

조기까지 내려갔다 오려 했더니만 부하라까지 달려가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 한다. 아.. 또 그 시간....

 

아야즈 칼라를 얼음궁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지금은 화염지옥이다.ㅠ.ㅠ

 

30분 만에 아야즈 칼라를 떠난다. 호레이즘의 고대 유산이라고 하는데, 토성의 흔적 만 남아 있어 '무상'하다는 감정 이외에는 느끼기 어려웠다. 아, 그리고 뜨거웠다.

 

길 가에 또다른 미완성의 토성이 보인다.

꼬이크르겐 칼라. 꼬이는 '양', 크르겐은 '없애다'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양 잡는 성' 정도의 의미를 가진 곳이겠다.

버스에서 촬영한 사진이라 유리창의 흔적이 강하게 보인다. 왜 잠깐 정차하여 사진 좀 찍지요~ 라는 말을 못했을까?

아...시간...

 

카라칼파크스탄에 이런 성이 50개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카라칼파크스탄에 12개의 주가 있는데, 주 이름이 50개성인 곳이 있단다.

수박 밭이다. 수확중. 올해 수박 농사가 대풍이란다. 작년에는 수박 흉년이었는데, 그래서 올해는 수박 질도 좋고, 가격도 싸기 때문에 많이들 먹고 있단다. 우리도 많이 먹었다.

 

 

버스는 배가 고프고, 디젤을 판매하는 주유소가 있다. 멈춘다. 채운다.

 

그 틈을 이용해 사람들은 버릴 곳을 찾는다.

 

주유소 있는 곳에서 베흐조드 아저씨가 길 건너의 작은 가게를 다녀온다. 검은 비닐 봉다리. 웨하스를 사왔다. 우리나라 같은 질소 포장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 그냥 포장 없는 상태로 판매한다.^^

맛 있었다.

 

A380 도로를 따라 계속 달린다. 부하라여~

 

길가의 매점. 그냥 우즈벡 식 고속도로 휴게소라 하자. 생수, 음료수, 견과류, 과일 등을 판매한다.

 

고가의 음식인 물고기도 판매하고 있다.

 

대부분의 승용차가 가스차이다. 그래서 가스 충전하는 곳은 많으나 오히려 휘발유 판매점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이런 곳에서 페트 병에 든 휘발유도 판매하고 있다.

 

수박, 멜론 등이 길바닥에 굴러 다닌다.

 

수박 먹기, 멜론 먹기. 두 개에 무려 1천 원 정도나 한다고^^

 

도로 상태가 매우 좋다. 콘크리트 포장 도로이다. 독일회사와 포스코의 지원으로 4년 간 공사하여 완공한 부분이라고 한다. 독일회사 책임 구간은 아직 준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역시 한국 회사는 "빨리빨리"다.

 

12시반. 도로변의 식당 휴게소. 식당 이름은 사람 이름이란다. 아마도 아버지와 아들 이름을 식당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고.

소고기 샤슬릭이 메인 메뉴. 1시 반에 출발.

 

날 더운 길을 힘차게 달리다 보면 목도 타고 하니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 날 그랬다. 마시니 시원했다. 그런데, 몇몇 멤버는 이 시원한 것을 싫어 하셨다.

내 앞으로 다 모였다.^^ 쒼난다~

 

아무다리야 강이 가까이에서 잘 보이는 곳을 소개해주겠다고 베흐조드 아저씨가 그랬었다. 그 곳에 정차하였다. 바로 강변이다. 건너편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영토이다. 국경선에 해당하는 곳.

 

1시50분.

휴게소 분위기. 전망대일까?

 

아무 다리야 강이다.

 

넓은 강이 카메라의 화각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스맛폰 카메라 파노라마 모드.

 

A380 도로를 달리다 보면 카라칼파크스탄의 경계를 벗어나게 된다. 검문소가 있다. 3시40분에 검문소를 통과했다.

 

오후 4시25분. 콘크리트 포장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잠시 쉬어간다. 화장실을 찾아서.

'대우' 버스가 세워져 있고, 땀을 흘리며 수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운행하는 고속버스라고 했다. 에어컨도 없어 시원하게 창문을 열고 달려야 하는 오래된 버스.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해도 비싸지 않은데, 더 싸게 더 싸게 이동을 하려고 이런 버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중간에 버스가 고장나서 쉬어가는 맛도 있겠고.

 

갈대를 잔뜩 싣고 가는 트럭들이 종종 보였다. 건축 재료로 사용하기에 시장에 내다 판매하고 하는 것이란다. 쌓아 올린 갈대 위에 사람들이 매달려 타고 가는 트럭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빨리 달릴 수가 없다. 덜덜덜덜~ 덜컹 덜컹~ 기대 잘 수가 없다.^^

부하라에 가스전이 있다고 한다. Gazli라는 지명이 생길 정도.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중국으로 수출한다고 한다. 진짜?

 

철도 공사 중이다. 새로 철도를 깔고는 무거운 화물을 실은 차량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안정화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6시15분 쯤에 부하라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역시 목화밭이 널렸다.

 

오늘의 숙소 그랜드 부하라 호텔. 체크인. 그런데 거시기한 정보. 건물 전체에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타슈켄트에서 기술자가 와서 수리하는 중이라고 한다. 기술자 1명이 와서 호텔 전체의 에어컨 고장을 수리하고 있다고? 불안하다!!!

 

7시20분에 저녁 식사를 하러 나선다. 아래 지도에 보면 Spanish Bar라고 나온 곳이다.

물담배를 피우는 손님들의 모습이 인상적인 곳.

식사는 괜찮다.

 

스페니쉬 바. 간판도 없다. 지하.

 

그럴싸 하다.

 

분위기 좋다. 스페니쉬하다.

 

8시20분 숙소로. 

물론! 에어컨은 그대로이다. 호텔 주변의 공원에서 무엇인가 행사가 있는 가보다. 산책.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능 행사를 구경하고 있다. 그런데, 음향 상태는 좀 많이 그렇다.

 

그랜드 부하라 호텔의 907호. 에어컨 안된다. 로비로 내려와 와이파이를 즐기려 해본다. 제대로 안된다. 덥다. 다시 방으로. 다시 로비로. 다시 방으로. 다시 로비로. 다시 방으로.

 

9층에서 내려다 본 인근 공원. 예능 행사가 한창이었다. 따뜻한 밤을 즐기러 나온 주민들로 가득했고.

 

자긴 잤다. ㅠ.ㅠ

창문과 방문을 열어 두고 통풍을 시키며 잔 팀도 있다는데, 나는 혼자라 무서워서 방문을 열지 않고 잤다. 더웠다. 현지 기후 환경 체험이었다. 신기하지는 않고 그냥 더웠다. 그래도 잠은 잘 오더만.^^

 

내일 아침은 6시반부터 1층 로비의 식당에서 제공될 것이며, 출발은 9시라고 공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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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4일. 히바로 간다. 

과거 호라즘 지역의 일부였고, 그 역사의 일부였고 흔적이 남아 있는 곳들 중 하나이다.

 

 

호라즘에 대해 미리 알차게 공부해보자.

https://en.wikipedia.org/wiki/Khwarezm

 

복습하자.

https://namu.wiki/w/%ED%98%B8%EB%9D%BC%EC%A6%98%20%EC%99%95%EC%A1%B0

 

페르시아어 발음이 어려워 여러가지로 표기되고 있다. 보통 화레즘 Khwarezm이라고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호라즘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호라즘 지역이라고 하면 아래 지도의 지역을 가리킨다.

위에 링크한 나무 위키의 자료 내용에 보면, 호라즘은 아무다리야 강 하류의 비옥한 저지대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북으로는 아랄해, 동으로는 키질쿰 사막, 서로는 우스튜르트 고원, 남으로는 카라쿰 사막과 접한다. 트란스옥시아나의 일부로 간주되며, 현대 국경으로 보면 투르크메니스탄 북부, 우즈베키스탄 동북부에 해당한다. 트란스옥시아나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고대부터 여러 이란계 종족들이 살아왔고, 페르시아 지역의 제국들에 직간접적으로 복속된 페르시아 문화권으로 발전했다. 아랍 이슬람 세력의 대정복 이후에도 호라즘은 시리아와 이라크의 아랍 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반독립적인 세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호라즘 지역에서 시작하여 가장 강성했을 때 호라즘 제국의 영역은 이만큼이나 되었었다.

이때가 최성기이다. 이런 거대한 제국을 이루자 마자 징기스칸이 아는 척을 했고, 박살났다. 호라즘의 주요 거점 중, 이번 여행에서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를 방문할 것이다.

 

쥐펙 졸리 호텔. 아담하다. 좋다. 이런 좋은 곳을 7시58분에 떠났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베흐조드 아저씨에 의하면 1년에 한두번 정도라고 한다. 자기가 오는 것이. 관광 가이드를 하는 자신이 그정도로 찾는 경우가 없는 외진 지역이라는 것이겠지. 그런데 올 때마다 다르단다.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단다.

히바를 향해 달린다. 약 200킬로미터. 11시 정도 도착 예정.

가자!

키질쿰 사막 언저리의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아무 다리야 강 유역의 충적지를 가로지른다. 그리고 카라쿰 사막 언저리에 위치한 히바로 접어들었다. 카라쿰 사막은 투르크메니스탄이다. 세 아이의 아버지 베흐조드도 한번 밖에 가보질 못했다고 한다. 관광 가이드인데도 입국 비자가 나오질 않는단다. 한국 관광팀에 묻어서 신청하여 겨우 한번 입국해 보았다고 했다. 좋단다. 꼭 가보란다. 상당히 폐쇄적인 국가이지만 그만큼 볼만한 유적들이 많이 잘 남아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편의 시설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 것인가는 외국을 나가보면 바로 절실하게 느낀다. 이 동네도 도로변에 편의 시설이 아무 것도 없다. 그거 꼭 필요한 그것도 없다.

그래서 길가의 농가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티코가 주차된 그 농가.

 

다른 분들은 공식적 화장실을 양해를 받고 이용했고, 나는 사진 속의 흙으로 만든 작은 건물을 이용했다. 우어~ 아우~ 어후~

 

남의 집 화장실을 이용했다고 화를 내던 잠자리와 당나귀.

 

농가 앞을 지나던 당나귀 수레와 자전거 아저씨.

 

우즈베키스탄이 구소련에서 독립한 것이 1991년이다. 작년에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이 2대! 그럼 그동안?

1대 대통령이 주구장창 버텼다. 임기가 끝나 대통령이 바뀐 것이 아니라 노환으로 돌아가셔서 "어쩔 수 없이" 대통령이 바뀌었다. 현 정권에서는 우즈벡의 개발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농촌 지역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비닐하우스 보급이란다. 신청하면 은행 대출 작업까지 대신하여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주고 있다고 한다. 채소를 생산하여 대도시와 러시아로 출하를 하고 있다고 한다. 농촌 근대화의 시작은 시설 농업이고, 그 시설 설치에 들어간 자본을 견뎌낸다면 성공하는 것이겠지.

개인적인 경험으로는...아 내 경험이 아니구나. 우리 부모님은 실패하셨다. 농협 빚을 견뎌내지 못하시고 장렬히.....농목업을 정리하셨었다. 다 날아갔다. ㅎㅎㅎ

우리 집처럼 망하지 않고 우즈벡 농가는 성공하기를~!

버스에서는 고선지루트 2편 상영 실패했다. 에러. EBS에서 방영했던 '실크로드 위의 푸른 이슬람'을 시청하면서 달렸다.

 

아무 다리야 강을 건넌다. 폰툰 브릿지.

 

폰툰 다리가 카라칼팍스탄과 우즈벡의 호레즘 주의 경계가 되겠다.

호레즘의 주요 중심지였던 우르겐치를 지나 히바로 접어들었다. 

우르겐치를 지난 시각이 10시 58분. 국제 공항이 있는 곳이다. 대우의 옷공장도 있다. 도시 이름은 석회로 그림 그리는 도시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찬칼라 부분 확대.

 
히바로 오는 도중에 버스에서 베흐조드 아저씨가 탄식을 한다. 우즈벡에 알콜이 너무 퍼져 있다고 원래 이슬람에서는 알콜을 금지하지만 구소련의 지배를 받는 과정에서 보드카가 너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너무 조으아~
 
히바~
 
11시 30분. 예상보다 30분 늦었다. 히바의 이찬 칼라 성이다. 노아의 비둘기. 그 비둘기의 울음소리가 헤와크. 그 울음소리를 따서 이곳의 지명이 붙었다고 베흐조드 아저씨는 설명했다. 헤와크가 어떻게 히바가 되었지?

히바의 이찬 칼라. 유네스코를 통해 보전하고자 한다.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일관성 있으며 세계적으로 잘 보존된 도시의 유적이며 히바(Khiva)의 도심에 해당하는 이찬 칼라는 호라즘(Khorezm)의 잃어버린 문명을 훌륭하게 증언해 주고 있다. 주마 모스크와 같은 이찬 칼라의 몇몇 기념물은 주목할 만한 건축물이며, 크기는 웅장하지만 디자인은 단순한 마드라사의 경우는 중앙아시아 특유의 이슬람 건축에 대한 훌륭한 본보기이다. 히바의 가옥 건축은 그 설계와 건축 방식 때문에 이찬 칼라의 흥미로운 요소들 중 하나로 꼽힌다.
옛날 옥수스(Oxus) 강이었던 아무다리야(Amu Darya) 강의 서쪽에 있는 히바 오아시스는 대상들이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사막을 건너기 전에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다. 4세기에 히바는 이란인들이 세운 호라즘(그리스어로 ‘코레스미아(Choresmia)’) 왕국의 중심지였다. 이 왕국의 번영은 이 지역의 ‘검은 모래(black sands)’를 비옥한 목초지와 정원, 과수원으로 바꿀 수 있는 수압 기술과 관련돼 있었다.
712년 처음 아랍 인이 이 도시를 정복했으며, 그다음에는 1221년 몽골인들이 이곳을 차지했다. 1379년에는 몽골의 지배를 받다가 티무르의 수중에 넘어갔고, 1512년에 우즈베크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새로운 나라의 수도가 되었으며, 1643년부터는 한국(khanate)의 수도가 되었다. 19세기 동안 독립을 누렸으나 1873년에 러시아의 보호국이 되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이 도시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즉, 이전의 요새화된 외부 도시인 디샨칼라(Dichan Kala)와 10m 높이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심지인 이찬 칼라로 나뉜다. 비록 1788년~1789년에 대대적으로 재건되기는 했지만, 주마 모스크를 제외하고 17세기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의 공공건물들은 동서 축을 중심으로 하여 그 둘레에 무리지어 있는데, 그 한쪽 끝 옆으로 히바 군주들의 웅장한 집들이 이어져 있다. 북서쪽에는 1686년~1688년에 아랑 칸(Arang-Khan)에 의해 건설된 ‘고대 요새’ 쿠냐아르크(Kunya Ark)가 있다. 처음 지어졌을 때 쿠냐아르크는 가공할 만한 사각형 보루였지만, 19세기 초 알라울리 칸에 의해서 호화로운 궁전으로 바뀌었다.
1830년~1838년에 건설된 북동쪽의 타슈하울리 궁전(Tash-Khauli Palace) 역시 알라울리 칸을 위한 것이었다. 그 외의 특별한 기념물들로는 파흘라반 마흐무트(Pahlavan Mahmud, 1247~1325)의 무덤과, 14세기에 지어졌을 당시의 배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세이드 알우딘(Sayid All-Uddin)의 무덤을 들 수 있다.

이찬 칼라의 많은 기념물이 비록 화려하지만, 개개의 기념물들보다는 더할 나위 없는 도시 구성과 19, 20세기에 지어진 주요 건축물들이 과거의 건축물과 함께 뛰어난 조화를 이루는 것에서 그 우수성이 유래한다. 예를 들어 주마 모스크와 파흐라반 마흐무드 무덤의 남동쪽에는 히바에서 가장 높은 45m의 우아한 미나레트(minaret, 첨탑)가 곁들여진 이슬람호자(Islam-Khodja)의 마드라사(1908~1910)가 자리 잡고 있는 한편, 쿠냐아르크의 남쪽에는 칼타 미노르(Kalta Minor)와 무하마드아민칸(Muhammad-Amin-Khan)의 마드라사가 발견된다. 1835년 이 도시 내부의 동쪽 문 근처의 처리 곤란한 공간에 지어진 알라울리의 마드라사는 고대 도시에 조화롭게 융합된 유명한 예로 꼽힌다.

 

입 주변 껍데기가 말이 아니다.

 

얼굴 시커먼 셀피를 만들고 있었는데, 다른 분의 카메라에 잡혔다.

 

 

이찬 칼라에는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여럿 있다. 서문 옆에 이런 게시판이 있더라.

 

그 옆에는 이런 동상이 있더라.

시대를 앞서간 사람. 시대를 이끈 사람. Al Khwariszmi의 동상이다. 우즈벡 현지 가이드는 계속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이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는데, 대충 눈치 까면서 보니 알고리즘이 아니라 알쥐브라이다. 무함마드 이븐 무소 알 콰리스미.

 

두 유 노우 알쥐브라? 오아 알 콰리즈미?

그래서 나는 수학을 포기했고, 수학을 포기하니 이과를 포기했다. 이과를 가고 싶었는데. 요즘도 가끔 생각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나의 이과 인생을. 수학이 안되어서....ㅠ.ㅠ

나와 조금 다른 길을 간 사람. 알 콰리즈미.. 조금 다른가?

https://en.wikipedia.org/wiki/Muhammad_ibn_Musa_al-Khwarizmi

 

알쥐브라가 된 알콰리즈미 앞에서 폼을 잡아 본다. 꽝이구나.

 

이찬 칼라를 서문을 통해 입장하려는데 추가 요금을 내라고 하더라. 낸다. 죽인다. 사진 값이다. 이거...죽인다. 사진 값이라니. 이런 것 좀 국내 도입하자. ㅎㅎㅎㅎㅎㅎㅎㅎ

얼마였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메모 안했다. 이런!

2 달러 정도 였던 것으로 대충....

 

서문으로 입장하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Orient Star Khiva.  마드라사로서 이슬람의 고등교육 기관이었지만 지금은 호텔로 이용되고 있다. Kalta Minor Minaret이 옆에 있다.

 

과거에는 고등 교육 기관이었지만 지금은 호텔로 이용되고 있는 마드라사. 상당히 많은 마드라사들이 호텔로 임대 이용되고 있는 우즈벡의 현실이다.

 

기념품. 이런 사진을 찍을 때 흔히 사용되는 기법, out of focus. 

 

퍼미션 포 포또 비용을 지불했으니까 마음대로 촬영해도 된다....는 아니고 핸드폰을 이용한 이런 셀피는 비용을 따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시커먼 덩치 좀 있는 카메라의 경우에만 비용을 내라고 하는 것이다.

 

아라베스크. 결과는 기가 막히게 아름답지만 만든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무늬가 이어지는 타일에 구별하기 위한 숫자가 표기되어 있단다. 그렇게 그렇게 공사를 하였던 것이었구나. 그래도 고역이었을 것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건물의 지붕이 평평하면 일단 강수량이 적은 지역이다. 그렇다. 맞다!

 

Kunya-Ark 모스크이다. Citadel from 1686이라고 소개된다. 오래되었다. 나보다...ㅎㅎ

 

이스람 후자 미나르를 올라가면서 구멍 속에서 셀피. 라고 알고 있었는데  Ark Kunya인 것일까?

 

받아들인다. 햇볕은 거부하지 않는다. 썬블럭은 가방에 그냥 모셔둔다. 오시오, 햇님!

 

Mirza Boshi Hostel이라고 위치 검색이 된다. 거기서 점심 식사를 한 것 같다. 이찬 칼라 성 내부이다. 점심 식사를 하고 숙소인 아시아 히바 호텔에 가서 좀 쉬었다. 뭘 했다고 쉬는지는 모르겠지만...ㅎ

 

숙소가 이찬 칼라 코 앞이다. 아시아 히바 호텔. 1시에 도착했다. 뜨거운 동네다. 어차피 얼굴 껍데기가 완전히 망가진 나는 막 나데고 싶지만 고운 얼굴을 보전하고 계신 다른 멤버들 때문에 까운 햇볕은 피하기로 했다. 4시까지 쉬고 햇님의 기운이 좀 약해진 다음에 보기로 한다.

 

쉬다가 나왔다. 오후 일정 시작이다. 4시에 나선다.

이찬 칼라 성. 근사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흙 덩어리이다. 사막에서 '성'이라고 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무엇이 있었을까? 그것은 흙 밖에 없었으리라. 그래서 도시의 성이지만 흙으로 만든 성이다. 왜 방어를 위한 성을 흙으로 만들었을까!

 

숙소인 아시아 히바 호텔에서 쉬다가 오후 일정을 나선다. 이찬 칼라의 남문으로 들어간다.

 

Juma Mosque. 나무 기둥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돔형의 지붕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215개의 나무 기둥으로 받쳐진 하나의 넓은 공간으로 되어 있다. 기둥들의 오와 열이 참 잘 맞는다. 

http://www.advantour.com/uzbekistan/khiva/jumamosque.htm

 

나무 기둥들이 인상적이었다. 몇 개를 비행기에 싣고 오고 싶었다. 하지만...타슈켄트까지의 운송이 어려울 것 같다. 바로 포기했다. 이렇게 전통적인 문양으로 제작된 기둥을 팔기도 하던데........ 다음에 사자!

옆의 계단은 민베르 Minber라고 한다. 기도를 마친 다음에 이맘이 설교를 하는 장소이다. 제일 위에 올라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겸손의 의미하고 한 칸 아래에 서서 설교를 한다고 한다. 제일 윗 자리는 누구 자리? 예언자 무함마드의 자리.

 

얼굴 껍데기 색이 ㅎㅎㅎㅎㅎ

 

가옥의 건축 재료는 흙이다. 그것 밖에 없겠지. 지붕의 높이에 구멍이 뚫려 있다. 가끔 내리는 빗물을 배출시키는 용도이리라.

 

옛날에 사용하던 우물이라고 하여 물을 퍼올려보는 여행객과 베흐조드 아저씨.

물에 염분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식수로는 사용하지 아니하고 세탁 등의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주사위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할아버지들. 나루다. 러시아에서 들어온 게임이라고 한다.

 

베흐조드 아저씨가 뽐뿌질을 하고 있다. 물 나온다.

 

Juma Mosque 옆에는 Jummi Minaret이 있다. 입장료가 있다. 따라가 보았다.

이런 곳을 올라 갈 때마다 후회한다. 식식거리면서. 이런 곳에 왔으니 그러하는 것이겠지.ㅎㅎ

 

올라왔더니....먼저 왔던 한글을 사용하는 민족이 있다. 아...영어도 사용한다. 두 남자로부터 하트를 받고 있는 J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올라왔다는 인증 및 기념 샷!

 

 

아닌 척 하면서 이찬 칼라 성내에서 우리들 시야에 계속 머물던 아가씨. 가는 곳마다 뜨게질을 하고 있었다. 관심을 보이면서 다가가면 바로 기념품 판매 모드로 돌변한다.^^

 

Allakuli Khan Caravanserai. 과거에는 카라반들이 이용하던 시설이었지만 지금은 관광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가로 변해버렸다. 그 앞의 노변에도 기념품 상가가 있다. 지나는데 먼저 한국말로 인사하던 아저씨. 한국에 7년 있었단다. 충남대학교에 3년 있었고, 4년을 이 도시 저 도시 돌아다니면서 일을 했다고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우즈벡에 가게를 둘 열었다고 자랑한다. 너무 좋아서 한국에 또 돈 벌러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이미 비자 신청한 상태~

 

저녁 타임. 왕의 별장이었던 더자벅에서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다.

 

왕의 별장답다. 

 

풍성하다. 좋다.

 

왕의 별장답다. 예능인들의 쇼도 보여준다. 좋다.

 

왕의 별장답다. 알콜도 있다. 좋다.

 

술 잔을 높이 드을어어라~거언배~

 

8시반에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간다.

 

왕의 별장을 떠나 시민의 숙소로 왔다. 아시아-히바 호텔.

숙소에 와서 일찍 잔다.

와...

이건 아니다.

매일 이렇게 일찍 자려고 이렇게 먼 곳으로 온 것은 아닌데...

이건 아니다.........ㅎㅎㅎ

그래도 뭐...군소리 안하고 일찍 잤다. 일찍 자니 일찍 일어난다. 내가 쫌 싫어하는 것이 일찍 일어나는 것인데...ㅠ.ㅠ

내일은 무려 6시에 웨이크업이란다. 너무 늦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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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랄 해, 아랄 해다. 아랄 해를 가보는 날이다. 가심이 설레서 4시반에 일어나야 하는데, 무려 10분이나 일찍 일어났다.

 

5시. 호텔 로비에 내려가니 바에서 아주 간단한 아침이 준비되어 있다. 빵 한 조각과 커피. 간단하게 먹었다.

 

5시20분에 공항을 향하여 출발한다. 시티 팔레스 호텔, 기다려라. 다시 온다!

 

버스 안에서 껍데기 상태를 확인한다. 껍질 일부가 탈피하려 한다. 제길~

 

공항 가는데 햇님이 마중 나온다.^^

불덩어리가 터지는 것만 같다.ㅠ.ㅠ

 

5시35분에 도착. 아담한 공항. 국내선.

그래도 보안 검사는 까다롭다. 우즈베키스탄이 대체로 그렇다. IS 때문이라고 현지 가이드 아저씨가 그랬다. 여권 검사와 짐의 보안 검색을 거친 후에 입장을 할 수 있다.

 

짜잔~

 

공항 건물 어딘가에서 찍은 사진인데....무슨 내용인지?

 

6시40분 보딩, 탑승 완료. 7시10분. 비행기가 움직인다.

 

타슈켄트에서 누쿠스까지 가는 비행기 탑승권. 작은 비행기. 창가 좌석이다.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에서 오쉬까지 비행하는 동안 사진찍었던 기억...이번에도?

IL-114-100이라는 모델 번호가 붙은 비행기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  이렇게 생긴 비행기다. 러시아 일류신에서 만든 비행기. 1990년 초도 비행, 1998년 우즈베키스탄 항공에서 최로로 여객기도 도입, 지금은 생산 중단.

한 줄에 좌석이 넷. 여유롭고 좋다. 좌석 크기도 우리나라 국적기보다 훨 크다. 좋다. 간격도 넓다. 작은 공항, 택싱도 금방 끝난다. 뜬다.

 

줸장! 날개가 왜 여기 있는 것이냐.... 저기로 가지!!!

 

비행기가 선회하면서 기울어질 때 틈새로 찍어보았다. 사막이다. 끄읏~

 

 

키질쿰 사막 되시겠다. Kyzyl Kum, '붉은 모래'라는 뜻을 갖는다고.

 

그렇게 사막을 비행기로 2시간 반 만에 휘익 날아서 지나갔다. 시속 420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누쿠스 공항에 9시32분에 랜딩. 하기하여 뜨거운 활주로 위를 걷는다. 활주로 걷기 오랜만이다. 머리 위에 이글거리는 햇님이 계신다.

여권 검사하고 바로 공항 밖으로 나간다. 짐은? 천천히 천천히 밖으로 뒤따라 나온다.

 

누쿠스 공항에서 바로 숙소로 향했다. Jipek Joli 호텔. 공항에서 금방이다.

바로 식당. 식사하고 나선다. 11시20분.

누쿠스 주변에 화학공장들이 많은데, 한국 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하다고 세 아이의 아버지 베흐조드 아저씨는 말한다.

이 지역은 우즈베키스탄에 속한 카라칼파크스탄 자치공화국이다. 국경에 해당하는 곳에서는 카라칼파크스탄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검문을 한다. 카라칼팍은 '검은 모자'를 뜻한다.

카라칼파크스탄 정부 홈페이지에서 카라칼파크스탄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자.

http://sovminrk.gov.uz/qr

 

 

달린다. 누쿠스에서 무이나크로. 인적이 드문 길이다.^^

예까지 뭐 보겠다고?

 

우즈베키스탄은 천연가스 생산이 많다고 한다. 도처에 보이는 것이 가스관이다. 그냥 아무렇게나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노란색 페이트가 칠해져 있다면 그것은 천연가스관이다.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소는 조심안한다. 잠시 조심스럽지 않은 소와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시간을 가졌다.

 

저 아래 어디에 유기물을 좀 남겼다.

 

점점 하얗게 변한 지표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소문으로 들었던 그것일까? 아랄 해였으나 크기가 줄어들면서 노출된 지표에 소금이 깔리게 되었다는?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도 미루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똑 바로 쭈욱쭈욱 자라던. 세 아이의 아버지인 베흐조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나라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미루나무를 심는 풍습을 갖고 있단다. 아이게 곧고 바르게 자라라는 소망을 담아, 그리고 키가 크게 자라니까 그만큼 오래 살라는 소망도 담고.

 

돌보는 이 없어도 염소 떼는 자기들끼리 잘 돌아다닌다.

 

 

12시25분 드디어 동네 표지판이 보였다. 소리쳤다. STOP! (쌤 브라운의 노래가 생각났다.) 

MUYNAQ. 그 아래에 적혀 있는 QALASI는 뭐지?

 

아무다리야 강의 하구에 해당하겠다. 무이나크. 주변에 물 구덩이가 남아 있기는 하다.

 

파미르 고원에서 시작하여 고산 지대에서 공급된 물을 갖고 키질쿰 사막을 겨우 건너 아랄 해로 흘러드는 아무 다리야 강. Amu는 '빠르다', Darya는 투르크어로 '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무 다리야 강은 원래 아랄 해로 흘러들어 커다란 호수를 형성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관개 면적이 늘어나면서 아랄 해로 흘러드는 유량이 급격히 감소했다.

 

이렇게 하류 지역의 물 부족이 심해진 것이다.

 

아랄 해 분지 일대의 물 자원 현황은 이러하다.

 

아랄 해로 흘러드는 유량이 급격히 감소하다 보니 아랄 해의 표면 면적은 점차 감소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1989년과 2014년의 인공위성 영상을 비교한 것이다. 엄청난 호수 면적의 축소 상태가 확인된다.

 

연도별로 아랄 해가 줄어드는 모습.

 

1853년의 아랄 해는 이렇게 생겼었단다.

Journal of the Royal Geographical Society에서 가져 온 자료이다.

 

갑자기 버스가 선다. 그러더니 사람을 태워도 되냐고 질문. 안될 것 없겠지.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들이다. 태워주고 시원한 생수도 한 병씩 주었다. 히치하이크하는 젊은이들. 몸은 완전 젊은이 인데, 얼굴은 나보다....더.......음...

 

무이나크는 유령 도시같다. 과거에는 아래 사진에 있는 것처럼 많은 물고기를 잡는 어항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 어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고 다른 기능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무이나크를 떠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지역은 우즈벡이지만 지역 주민은 카자흐 족이 많다고 한다.

최근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는 무이나크를 재생시키기 위한 정책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2시38분에 도착하였다.

무이나크 교외, 야외박물관. 배들의 무덤에 있는 조형물. 2017년에 만든 것이다. 새거다.

뒷 면.

 

아랄 해에 대한 간단한 역사, 지리적 정보를 제공해주는 게시물들.

 

 

과거 호수였던 곳. 배들이 버려져 있다. 

 

배들의 무덤으로 향하는 우리 답사대원 일행.

 

매우 고운 모래이다. 조개 껍질이 많이 발견된다.

 

무덤에 버려진 배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철분이 산화되는 속도가 매우 빠른 듯 하다.

 

얼굴에 안타까움이 묻어나지 않는가!

 

남기는 사진.

 

아랄 해의 버려진 배들이여, RIP.

 

아랄해의 축소는 과거로부터 어업과 아무 다리야 강 주변의 충적지에서 농업에 의존하여 생활하던 카라칼팍스탄 사람들에게 재앙이었다. 아래 링크한 기사에서는 카라칼팍스탄의 재앙과 호라즘의 쇠퇴에 대하여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다. 읽어볼 만 하다.

http://www.geocurrents.info/historical-geography/the-tragedy-of-karakalpakstan-and-the-fall-of-khwarezm

 

 

누쿠스에서 사마르칸트까지 이용했던 버스, YUTONG. 중국제 버스다. 중국과의 교역이 매우 활발하단다. 중국에서는 육로를 통해 물건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한국 등에서 수입할 때보다 가격 면에서 유리하단다.

 

아랄 해의 짠 물에 발을 퐁당~ 해보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너무 아쉽다.

HAQ JOL! 은 무슨 말인고?

 

누쿠스로 돌아간다. TV를 틀더라. 한국에서도 보지 않은 다큐 '고선지 루트'를 시청하면서 누쿠스를 향했다. 6시쯤 도착하였다.

누쿠스에도 마티스 택시가 많다.

 

쥐펙 졸리 호텔. 아담하고 깔끔하다.

 

또 일찍 잤다. 이게 아닌데...ㅠ.ㅠ

내일부터는 호레이즘 문화에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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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일.

키르기스스탄을 떠나는 날이다. 우즈베키스탄으로 넘어간다.

오쉬의 썬라이즈 호텔을 떠나 육로를 통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현지 가이드와 만나 안디잔에서 점심을 먹었다.

안디잔에서 마르길란까지 버스로 계속 이동하여 열차로 타고 타슈켄트까지 이동, 시티 팔레스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오쉬는 키르기스스탄의 남부 지역의 거점 도시라고 할만하다. 구글 이미지를 보다가 재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쉬가 거대한 선상지의 선정에 해당하고 그 북쪽으로 부채살 모양의 선상지가 펼쳐진 것은 아닌가 싶었다. 경지 분포가 그렇게 보였다.

건조 지역을 지배하는 것은 물이다. 오쉬의 남쪽을 보았더니 거대한 Papanskoye 저수지가 있었고, 그곳에서 공급되는 용수에 이 일대의 지역이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Papanskoye Vodokhranilishche is a reservoir lake that covers a surface area of 4 km2 (2 mi2), has an average depth of 64 meters (210 feet). Papanskoye Vodokhranilishche boasts a total water volume of 0.26 km3 (210,786 acre-feet), and has a total shore line of 13 kilometers (8 miles). The lake, which sits at an elevation of 1,256 meters (4,121 feet), drains a whatershed that covers 2,429 km2 (938 mi2) and has a residence time of 241 days (0.66 years).

https://ceb.wiki.ng/wiki/Papanskoye_Vodokhranilishche

 

아담한 썬라이즈 호텔에서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동네도 정전이 좀 되어주는 곳이다.

7시반에 아침 식사하고 8시에 바로 출발하였다.

 

벤츠 마을버스와 마티스 택시들.

 

전차가 다닌다.

 

마나스 아저씨가 나와서 배웅해준다.

마나스는 키르기스스탄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키르기스'가 "우리 40"을 의미한다고 했다. 12살에 자신의 40개 부족을 외적의 압제로부터 해방하겠다고 나섰고, 키르기스 인들을 규합하여 그것을 해내었다는 이야기다. 마나스 서사시의 주인공. 길가메시 서사시와 함께 인류의 가장 위대한 구전 서사시로 평가되는 마나스 이야기는 약 5백만 행에 달하는 장대한 분량인데, 이것은 '오딧세이와 일리어드'를 합한 것의 약 20배에 해당한다고 한다.

구소련의 붕괴가 아니었다면 독립국가를 형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평가된다. 주변국가들은 자원이 풍부하여 그것을 토대로 국가의 토대를 만들어갔지만 자원이 부족한 산악의 유목 민족으로서 국가 운영을 위한 경제적 토대를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차라리 구소련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이 더 유리했었다고 하여 아무도 원치 않는 독립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키르기스스탄에서는 국가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 마나스 서사시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자 하는 것 같다. 곳곳에 마나스 동상을 거대하게 세워놓고 이 위대한 인물이 자신들의 선조라고 선전하는 것이다. 1995년에는 마나스 서사시 1천주년 경축 기념식도 성대하게 치루었다고 한다. 박물관도 만들었고.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사이의 국경 통제소이다. A373. 오쉬와 타슈켄트를 잇는 도로에 있다. 키르기스스탄 통제소와 우즈베키스탄 통제소 사이의 거리는 100미터 정도된다. 이 거리를 지나는데 두시간이 넘게 걸렸다.

8시반에 통제소에 도착하였다. 김클림군과 이별하고 줄을 섰다. 8시40분 정도부터 통과시키기 시작한다. 천천히 천천히...

키르기스스탄 국경통제소에 줄을 서 있다보니 노인,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은 줄과 관계없이 통과시켜주더라. 뭐 좋다. 헌데, 건장하고 잘 생긴 아저씨나 후리후리한 예쁜 처자들이 그냥 들어가는 것은 좀 궁금했다. 중간에 거간을 하는 사람이 있는 듯 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으로의 입국 절차에서 신기한 것은 소지한 모든 돈을 해당 통화 종류별로 모두 적어 내라는 것이었다. 원화와 달러 조금 갖고 있던 것을 열심히 적어서 제출했다. 뭐라뭐라 한다. 아! 두 장을 적어오란다. 일행들에게 전파. 열심히 적어서 제출했다. 이런.. 뒷면에 서명하란다. 했다.

짐검사. 트렁크 까란다. 깠다. 감기약 갖고 있던 것을 보고 뭐라 하더라. 뭐냐고? 그게 뭐라고를 못했다. 어버버버버버... 통과는 시켜주더라. 나왔다.

 

일행 중 한 명은 먼저 귀국하여야 한다고 따로 떨어졌다. 승용차를 이용해 타슈켄트까지 직행, 그렇게 귀국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승용차를 타지 못한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커다란 버스에 올랐다.

우즈베키스탄이다. 국경통제소 주차장.

 

우즈베키스탄. 목화의 나라. 목화와 관련한 주의사항. 사진 촬영 제한이 있다고 한다. 과거에 우즈베키스탄에서 어린 학생들을 동원하여 목화를 땄단다. 그 사진으로 우즈베키스탄의 상황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한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고. 그래서 아예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목화 수확하는 사람들에 대한 촬영 제한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은 어린 학생들은 목화 수확에 동원되지 아니하고 대학생 동원은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우리를 안내한 현지 가이드 베흐조드 아저씨도 그러한 경험이 있고 그 때 만난 여학생과 여차저차하여 지금 아이가 셋이라고 한다.

수확철이 아니라 목화인지 뭣인지...난 모르겠다.

 

우즈베키스탄의 학교에는 목화방학이라고 있었단다. 목화 수확기에 부족한 일손을 학생들로 메우기 위해 학업을 쉬는 것이었다. 

기계로 작업을 하면 수확한 목화의 품질 상태가 좋지 않아 수작업을 선호한단다. 하지만 수확기에 일시적으로 전국 목화 농장에 노동력을 댈 수 없다. 그래서 과거 학생들을 동원한 것이다. 수고비를 주기는 하지만, 아주 저렴한 노동력이 되는 것이다.

 

목화 더미에서 쉬면서 잠을 자던 어린이 등 목화 수확에 동원되었다가 11명이나 사망했었다고..

 

그래서 Stop Forced Child Labor in Cotton이라는 시위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외국인들이 목화 농장에서 수확하는 사람들을 촬영하는 것을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구글에서 검색하니 금방 나오는 내용)

 

 

안디잔에 도착했다. 오아시스 도시라고 소개했다.

 

깔끔한 식당이다. 간판은 '야민'이라고 읽는단다. "땅"이란 뜻. 개업한지 얼마 안되었다고 하더라. 진짜 깨끗했다. 서비스하는 사람도 많고 괜찮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직원이 따라 나와서는 자기네 식당에 외국인이 온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홈페이지에 광고로 사용하고 싶다고, 외국인들도 찾는 식당이라고. 모두들 오케이~

버스에 오더니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갔다.

 

이런 메뉴들이 있다.

 

식당을 나오면서 GPS data logger 작동시키는 것을 잊었다. 한참을 달려 주요 공업도시 중의 하나인 Asaka를 지나서야 생각이 났다. 그래서 경로 기록을 보면 중간이 끊겨 있다.ㅠ.ㅠ

 

우즈베키스탄은 키르기스스탄에 비해 저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덥다. 그래서 집 앞의 대문이 있는 곳에 포도를 심고, 그 덩쿨로 그늘을 만든다. 시원해 보인다. 포도가 열리는 오다가다 따먹기도 하고. 집 앞에 이 동네 빵, 난을 내 놓고 팔고 있다.

 

길가의 사람들.

 

우즈베키스탄, 더운 나라이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차량들이 아무리 더워도 시원하게 창문을 열고 다니더라. 응?

 

그런데, 다마스다!

 

어, 다마스다!

 

떼 다마스다!

우즈베키스탄은 외국차를 수입할 때 관세가 120%라고 한다. 쎄다. 그럼 국산차는?

그게 대우자동차다. 옛날 옛적 대우자동차가 진출하여 생산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우차가 우즈베키스탄 국민차가 된다. 티고, 마티스, 스파크 같은 차들은 승용차 혹은 택시로 이용하고, 다마스는 마을버스로 이용된다고 한다. 그래서 길거리에 다마스가 그렇게 많았던 것.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많은 양의 천연가스가 생산된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차량은 가스차라고 한다. 헌데 관광버스 같은 대형 버스는 가스차량으로 허가가 나지 않아 디젤을 이용해야 하고, 디젤을 판매하는 주유소가 많지 않아 주유소가 보일 때마다 주유를 하곤 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페르가나. 그 페르가나 주에 위치한 마르길란에 도착했다. 고속철도라고 한다. 2시40분에 역에 도착하였다.

깔끔한 역사이다. 역사 앞이나 주변에 얼씬 거리는 사람들이 없어 생소한 역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안 검색이 철저하다. 역사에 접근하기 전에 신분증 검사하고, 역사에 들어가면서 짐의 보안 검색이 이루어진다.

참고로 역사 안에 있는 화장실도 유료이다. 500솜.

와이파이 되긴 하는데 거의 안된다. 붙들고 늘어져 카톡 메시지 두어 개... 앵그리 버드 2를 붙들고 시간을 보낸다. 맞은 편에서는 트렁크의 잊혀진 비밀번호 찾기 놀이를 하고 있다. 번호 하나씩 맞추어 보기.^^

 

대기하다가 3시50분에 플랫폼으로 나간다. 잠깐 정차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짐을 올리고 승차하여야 한다고 했다. 4시5분에 출발하는 열차인데, 역에 매우 빨리 일찍 서둘러 도착한 것은 열차가 언제 출발할지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이란다. 늦게 올 수도 있고, 빨리 지나갈 수도 있다고 한다.ㅎㅎㅎ

 

 

3시59분에 열차가 들어왔고, 낙오되기 싫어서 정신없이 열차가 달라 붙었다. 출발한다. 다행이다. 모두의 얼굴이 보인다.

 

페르가나분지. 중국 한나라 때 대완(大宛)이라 불렸던 지방이라고 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ED%8E%98%EB%A5%B4%EA%B0%80%EB%82%98_%EB%B6%84%EC%A7%80

열차를 탑승한 마르길란은 페르가나의 북쪽에 위치한다. 출발하여 달리는 열차의 속도가 좀 느리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리저리 뱅뱅 돌아서 가기 때문이었다. 기사르알라이 산맥을 가로질러 가다가 기이이이인 터널을 하나 통과한다.

 

페르가나 분지의 마르길란을 출발하여 코칸트를 지난 다음에는 협곡으로 접어든다. 물을 구할 수 있는 지역만 초록이다.

 

계곡을 흐르는 하천은 남으로 흘러 사르디리야 강과 합류한다.

 

계곡이 선 오아시스로서의 기능하는 것이겠다.

 

기이이이인 터널이다. 캄칙 Kamchiq 터널. 경로도에 직선으로 쫘악 이어진 구간.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긴 터널이라고 한다. 19.2킬로미터. Uzbeq Railways와 협력한 China Railway Tunnel Group가 4억 5천5백만 달러를 투자하여 완공한 것이란다. 2013년 공사를 시작하여 2016년 1월 완공.

 

어느덧 해가 저문다.

 

의자가 2+1로 배열되어 있어 매우 여유롭다. 좋다. 탑승하면 차를 한 잔씩 서비스로 준다. 다른 것은 모두 유료.

 

타슈켄트에 9시 15분에 도착하였다. 예정보다 30분 연착.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철도 교통의 장점으로 가르치는 것이 있다. 정시성! 교과서의 내용에 회의가 든다. 아이들에게 자신있게 가르치지 못하겠다.ㅠ.ㅠ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오른다.

 

 

해들이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닭볶음탕과 족발에 주 메뉴였다. 닭볶음탕 맛있다. 그런데, 이렇게만 먹어도 되는 것인가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먹으면 탈나지 않나? 그런 불안감에 소주 한 병 시켰다. 혼자 마시다 남기고 나왔다.

 

시내의 호텔.

 

내일은 누쿠스 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새벽 비행기다. 4시반 웨이크업 콜, 5시 로비 집합 출발이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이번 여행에서 자신이 생겼다. 까짓 4시 반!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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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오쉬 가는 날이다.

파미르 고원이 예쁘게 잘 보이는 뽀인트를 다녀와서 점심 먹고, 오쉬로 달렸다. 마구 달렸다. 살 떨리게...

 

양 잡는 날이다. 어제 유목민 가족 방문했을 때 말고기 해체하는 장면을 재밌게 보던 모습 때문에 양고기 잡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할랄 절차를 거치고 양을 잡았다.

도축 직전 가축의 울음 소리는 늘 애처롭다. 이렇게 저렇게 해가지고 그 다음에 저렇게 해서...

 

가죽을 먼저 벗긴다.

 

고기만 먹는 줄 알았더니 내장도 다 이용하더라.

 

위를 깨끗이 세척하여 버터를 채워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한다고...김클림군이 그랬다.

 

내장도...순대 만들어 먹는다고...그랬다.

 

됐다. 8시에 시작한 도축을 1시간 구경했다. 도축한 고기는 점심 때 만나기로 하고 출발~

 

말떼도 출근하고 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자기들끼리 출근 잘 하더라.

 

길가의 다른 유목민 거소. 아침 준비 중인가보다.

 

길가에 그냥 내어 놓거나...

 

아이들이 자기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보이기도 한다. 말젖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중국과의 국경에 인접한 지역으로 화물 트럭의 운행이 잦다. 그 기사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것 같다.

 

양떼도 출근 중이다. 도로를 떼지어 건너고 있다. 길을 건너는 양, 멈추는 양~

 

뽀인트에 도착했다. 우와~~~

 

 

Gora Kurumdy. 나름 유명한 봉우리인 것 같다. 파미르 고원에 속한 Transalai Range의 한 봉우리로서 해발 고도는 6,614미터에 이른다. 그 봉우리가 보이는 곳에서 놀다 왔다.

 

저기다. Gora Kurumdy. Pamir.

 

남쪽으로 보이는 곳. 저 곳.. 저 넘어에 파미르가 있다.

 

눈이 시원하다.

 

Gora Kurumdy or Kurumdy I is a 6,614m high Mountain in the Transalai Range, Zaalaisky Ridge in the Pamir. East of Pik Lenin. Due to the difficulties it is very seldom attempted and has only few ascents.  

The closest place to stay and to get basic supplies is Sari Tash - don't expect too much but a perfect view over a wide green meadow with an amazing mountain range behind it. Lots of cyclists are stopping here.

Sari Mogul is not far but more useful if your target is Pik Lenin or a peak in the western Transalai Range.

 

퍼질러 않아 만든 셀피. 많이 피곤해 보인다.

 

일어서서 만든 셀피. 중앙 아시아에 오기 위한 준비물로 셀카봉 신제품을 새로 마련했었다!

 

해발 고도 3,780미터에서 짬프 샷도 만들어 본다.

 

나이가 들어 높이 뛰질 못하겠다. 1미터는 더 뛰어야 했는데...

 

단체 짬프!

 

또 단체 짬....어, 뛴 사람들과 안 뛴 사람의 손 높이가 거의 비슷하다. 이것은?

 

키르기스스탄의 전직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 김클림군이 날았다. 마루치!

 

파미르를 향해 날았다. 중간 중간에 설식 와지가 보인다.

 

근사한 곳이다. 너무 근사한 곳이다. 의자 놓고 앉아 죙일 쳐다보면서 뭉게고 싶었다.

 

지나가던 말 애기.

 

위만 보려니 목 디스크가 올 것 같아 아래로 시선을 내려본다.

 

A371 도로를 따라 중국 방향으로 달리는 트럭들이 상당히 많다. 트럭 이마에 '오쉬'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오시와 중국의 카스를 연결하는 화물차들인 것 같다.

 

풍화, 침식 작용을 성실하게 받고 있는 암석 산지.

 

우리 아지트 사리 타쉬이다.

 

11시20분. 이른 점심을 먹는다. 먼 길을 떠너야 하기에.

아침에 우리 곁을 떠난 그 양의 흔적이다. 구운 고기는 좀 질기다.

삶아 밥과 함께 나온 것은 먹을 만 하다.

 

잘 먹었다~

 

어쩌다 보니 여러 날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오다 가다 얼굴만 스쳤는데 정이 들어나보다. 이별이 아쉽다.

 

기사님, 사장님 부부. 할아버지, 할머니다.

 

수줍음을 많이 타던 꼬맹이.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던...

 

카톡으로 이 사진을 가족에게 보내며 새로 얻은 딸이라고 했더니....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남는 것은 정과 아쉬움이다.

 

 

12시48분. 사리 타쉬를 떠나 오쉬로 달린다. 이 친구가 길가에서 배웅해주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산양을 상징으로 삼는가보다.

 

3,615미터 짜리 탈딕 고개를 또 넘는다. 3,600미터 정도는 이제 껌이다.

 

Gulcha 강과 Kurkuk-ata 강 합류 지점 주변. 잠시 정차. 5분간 휴식 지령이 떨어졌다.

 

이것 때문이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이렇게 산지의 색이 다채롭게 나타나는 것은 지층에 포함된 광물질의 종류에 따라서...거시기 그러니까...

 

도로 표지판. 뛰어서 건너지 마시오!

 

도로 표지판. 춤추면서 건너지 마시오!

 

고도가 점차 낮아지면서 주변의 경관이 녹색 초지대로 바뀌었다. 사면의 풀을 베어 둥그렇게 모아 놓았다.

 

해발고도 2,389미터의 치이어칙 고개. 또 보는구나.

 

너어어어는 무단횡단한단 말이야!

 

시속 100킬로미터를 넘나들기도 하면서 달렸다. 중앙선은 차선 변경의 기준일 뿐이었다. 가심은 뛸 뿐이었고.

그렇게 달려서 오쉬 시내로 접어든다. 그런데, 티코가 많이 보인다.

 

썬라이즈 호텔에 도착하였다. 5시반. 오후의 햇볕이 무진장 강하다. 쉬다가 7시에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한다.

 

숙소에서 식당이 좀 떨어져 있다. '카페 오쉬'라고 되어 있는데 아시아 레스토랑이라고 검색된다.

 

공원 가운데 위치한 카페 오쉬.

 

카페 오쉬. 공원 내에 위치한 상당히 고급스런 식당이었다.

 

맛있다.

 

놀랠 노짜다. 천천히 먹고 있는데, 이곳에서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얼굴들이 보였다. 눈을 비볐다. 맞다. 우와~

우즈베키스탄에서 시작하여 타지키스탄을 거쳐 키르기스스탄으로 들어온 분들. 세상에나 세상에나.... 느무느무 반가웠다.

 

 

이 식당에서는 물만 포트로 시켜서 마신 것 같은데, 숙소에 들어와 잠을 매우 잘잤다.

숙소 도착 시간이 9시반이었다. 한국에서는 이 시간에 잠을 잔다는 상상도 못하는데..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는 잠을 제대로 못 잔 적이 비행기에 끌려가는 날 빼고는 없었다. 좋구나~

내일은 국경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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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31일.

지난 밤에 너무 일찍 잤더니 너무 일찍 깼다. 일어나지 않으려 않으려 버티다가 나왔는데, 5시 반이다. 제길..

마당 건너편에 있는 화장실엘 갔더니 사용중이다. 옆의 세면장엘 먼저 갔다. 난로 속에 뜨거운 물만 조금 남아 있었다. 세수하고 머리에 물 칠하는데, 무진장 뜨거웠다.

식사하고 7시 반에 출발하였다. 어제 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간다.

안녕 카라쿨~

 

어제 힘드셨던 분들이 조금은 나아진 듯하다. 출발 준비들을 하고 있다.

 

그대로 떠난다. 아쉽다.

 

그 길.

 

타지키스탄의 현지 가이드가 트래킹을 권했다. 카라쿨 호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왕복 6킬로 미터. 다들 난감해 했다. 그곳 대신 작은 언덕이나 올라가서 보기로 했다. 아래 지도를 보면, 도로에서 경로 표시 부분에 털 달린 곳이 있다. 그곳을 갔다.

 

조금만 올라가면 될 줄 알았는데, 올라가서 보니 별로 조망이 좋질 않았다. 그래서 조금만 조금만 더 하고 가다가 돌아섰다.

 

카라쿨이다. 두고 간다.

 

사진 하나 남기고 간다.

 

카라쿨이다.

 

아..... 빙하가 남아 있는 산봉우리들을 두고 돌아서 간다....

 

이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는 무서운 친구들.

 

9시20분 국경통제소 도착. JAZZ 모자를 쓴 군인 아저씨부터 통과해야 한다. 기사 대표가 지폐로 정을 표현한다. 만족한 미소. 문 열어~

타지키스탄 군대는 지원제, 10개월을 근무한단다. 월급이 150달러 정도로서 적지 않은 것이라 한다. 역시나 차량에 실려 있던 현물도 내려진다.

 

국경을 넘었다. 키질-아르트 고개를 넘어 내려간다.

징그럽다.

 

4,282미터의 고개를 넘어 파미르 고원을 향해 페달을 밟는 괴물들.

 

11시40분. 키르기스스탄의 국경검문소에 도착하여 수속을 받았다. 어제 해 본 것. 쉽다. 하지만 한 명씩, 한 명씩 천천히 처리하므로 시간은 오래 걸린다. 12시20분에 통과 완료.

여권에 도장 몇 개가 추가되었다.

 

사리타쉬가 가까워진다. 12시58분에 그제의 그 숙소에 또 도착하였다.

 

늦은 점심을 먹고 일정을 논의한다. 타지키스탄의 현지 가이드가 마지막 서비스까지 다 하기 위해 따라 왔다. 이 아저씨는 근처 트래킹을 추천하며, 자신이 가이드 하겠다고 한다. 헌데, 문화 쪽에 관심이 많으신 분께서 유목하는 곳을 돌아보자고 의견을 내셨다.

햇볕이 강하므로 쉬다가 4시에 나가기로 하였다.

 

갔다. 사리타쉬 숙소에서 동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쭈욱 달렸다. A371번 도로, 중국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길에 빠져서 간 곳.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도착하니 마침 말고기를 해체하고 있었다. 고기다~

 

근처에서 당나귀와 놀고 있는 귀염둥이.

 

언덕을 올라가본다. 초원에서 말들이 조용히 식사 중이다. 방해하지 않는다.

 

언덕 위에 오르니 저 남쪽으로 두고 온 파미르가 보인다. 셀피~

 

녹색은 초원, 흰색은 파미르, 파란색은 하늘이다. 엄청 파랗다.

 

내 파미르. 24-120 렌즈를 주로 달고 다녔고, 혹시 망원을 사용할 일이 있을까 하여 200mm 수동 렌즈를 하나 가져 갔었다. 그것으로 파미르를 당겨 보았다. 

수동렌즈는 작고 가벼워 흰머리의 할아버지들이 충분히 들고 다닐 수 있다.ㅠ.ㅠ

 

동산을 내려오니 이 사람들이 배구공을 갖고 이곳 사람들과 놀고 있다!

 

끼어 본다. 배구공으로 놀기.

텐트 앞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가 이 가족의 대빵이다.

우리가 머문 숙소 주인의 아버지다. 숙소 주인이 차량 기사이기도 하다.

 

아이가 타고 놀던 당나귀를 타본다. 무거운지 뛰지는 못하고 겨우겨우 걷기만 한다. 쏘리~

 

당나귀 주인 아이가 엄한 소한테 화풀이를 한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파미르도 잠이 든다.

 

숙소로 귀환한 분들 중 여럿이 마을을 지나 흐르는 개천에서 씻겠다고들 가신다. 게으름벵이는 그냥 생수 한 통으로 고양이 세수. 그와 중에 발로 씻고.

 

7시에 저녁 식사. 라면도 끓였다. 세상에나. 

전투 식량이라는 것도 먹으라고 준다. 세상에나.

내일 양을 한 마리 잡자는 제안을 한다. 키르기스 통화로 1만 숨. 약 147달러 정도. 추진!

8시 25분 식사 끝.

숙소 로비에서 몇몇이 모여 음악 듣고 수다 떨다가 10시 쯤 잤다.

역시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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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30일. 드디어 간다. 파미르 고원!

7시 기상 예정이었지만...7시까지 잘 수 없었다. 흠...

버티다 깬 것이 6시였다. 꼼지락거리며 밖으로 나가본다. 개수대에 물이 없다. 생수 남은 것 한 통으로 가져다가 고양이 세수를 한다. 머리에도 물 좀 묻혀주고..

7시 좀 넘어 아침 식사를 하고는 파미르를 향해 출발하였다. 8시15분.

카라쿨 호수까지 가는 것이 목표이다. 카라쿨. 검은 호수라는 뜻이라고 한다. 위성 영상으로는 검게 보인다.^^

 

파미르 고원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생긴 출입허가증이 있어야 한다. 물로 다녀와서야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오트립 팀에서 다 미리미리 챙겨서 만들어주었으므로.

아침이다. 해가 뜨면 그냥 대낮같다. 여명이고 뭐고 없다.

 

출발 전에 어슬렁거려 본다. 마당 한 쪽에 축사가 있다.

 

눈 인사. 무어~~~~?

 

큼지막한 화덕이다.

 

화덕의 안쪽. 난을 굽기 위해 붙였던 흔적인게다.

 

7시 30분. 식당으로 사용한 유르트.

 

8시 50분. 파미르 고원을 들어가는 가장 좋은 코스를 달리고 있다. 타지키스탄의 수도인 두샨베를 통해 들어가면 파미르 고원까지 가는데만 하루가 걸린다. 키르기스스탄의 오쉬에서 사리타쉬를 통해 들어가는 길이 훨씬 편하다. 하지만...그래도 비포장이다. 먼지를 휘날리며 달린다.

 

껍데기가 말이 아니다.ㅠ.ㅠ

얼굴에 뭐 바르는 것이 아직도 익숙치 않아 썬블럭을 한번도 바르지 않았더니 이 모냥!

 

남으로 남으로 달린다. 사리타쉬에서 M41번 도로를 따라 남으로 달리면 국경 검문소에 도착한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꽃구경도 한다.

다른 분들은 주변 지형 사진을 열심히 담고 계시다.

 

국경 검문소는 역시 촬영금지구역이다.

Kirgizskaya storona. 타지키스탄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먼저 통과시키고 있었다. 아주 작은 하나의 박스 안에서 사무 업무를 처리하는 고로 기다려야 한다. 기사들이 음료수 여러 병이 든 봉다리를 사무실에 넣어준다. 오지에서 수고 많다는 의미에서 정을 표시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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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키스탄은 전세계에서 송금경제 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라고 한다. 해외, 주로 러시아에 가서 취업하여 번 돈을 고국으로 송금된 것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것이다. 2019년 통계에 의하면 타지키스탄 GDP의 약 29%에 달할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자국내 경제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경을 경비하고 출입국을 담당하는 경비대의 처우도 열악하다 한다. 그러니 이런 방식의 '자급'이 어느 정도는 용인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작은 버스를 통해 파미르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말 인사를 굉장히 잘 하길래 유심히 보니, 한국 사람들이었다. 레닌봉 갔다 온단다. 우와~

수속을 오래 기다린 이유 중의 하나는 컴퓨터가 다운되었다고....재부팅에 '성공'하여 수속을 시작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다.

 

검문소를 지나 계속 골짜기를 오른다. 타지키스탄과의 국경선에는 Kyzyl-Art 고개가 있다.

 

Kizil-Art Pass는 해발고도가 4,282미터이다. 표지판.

 

고개 아랫에는 건설 중장비가 정차되어 있는 정체불명의 시설이 있다. 아마 유사히 도로 보수를 위해 투입하기 위해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하며 상시 대기하는 것이 아닌가 혼자 추측을 해보았다.

 

아이들이 사람 구경을 하러 나오고 있다.

 

계곡 쪽을 향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김클림군. 그리고 아직 무너지지 않은 화장실. 문이 열려 있는 쪽이 남자용, 그 옆은 여자용이다. 하지만 그 사이의 벽은 1/5쯤이 없어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 부실 공사? 아니면 바람이 너무 쎄서?

 

키질-아르트 고개의 정상에는 이 친구가 버티고 있다. 

그 양쪽으로는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의 국명이 표시된 탑이 있는데, 글자들이 거의 떨어져 나갔다. 타지키스탄이라는 글자들이 대충 보이고, 그 옆에는 타지키스탄 지도, 지도에는 흰색으로 하이웨가 표시되어 있다.

 

왔으니 인증 셀피. 얼굴 껍데기가 힘들어한다.

 

고개를 내려가다가 보면 키질아르트 국경통제소가 나온다. 이곳도 한 곳의 사무실에서 모든 처리를 하기에 기다려야 한다. 우리 일행의 차례, 순서대로 들어가 여권을 내민다. 전자비자 신청 내역과 여권을 대조한다. 그리고는 책상위의 공책에 볼펜으로 인적 사항을 기록한다. 여권을 스캔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적는' 국경통제소는 처음 보았다. 재미있는 모습이었다. 타지키스탄에서 우리를 도와줄 현지 가이드 아저씨가 나와서 업무를 도와주었다. 사고로 한쪽 팔만 주로 사용하는 아저씨였다.

재밌는 것은 심사를 하며 담배 피우냐는 질문을 종종 하는데, 정답은 '안 피운다'이다. 피운다고 하면 담배를 달라고 한단다.

또 재밌는 것은 네 번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권을 통한 입국 심사, 운전기사들 따로 심사, 세관의 짐검사, 그리고 교통 통제 검사가 있었다. 마지막의 검사에서는 그냥 막아두고 문을 열어주지 않아 마냥 기다려야 했다. 다른 팀의 기사가 조언을 해주었다고 들었다. 지폐의 힘! 열릴지어다~~~

 

그렇게 출국과 입국을 하여 드디어 카라쿨 호수에 도착하였다. 위성 영상을 보면, 빙하의 활동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형 윤곽으로 보니 여기저기 얽히고 긁히고...

 
게스트하우스에 묵을 것이라고 하더니, 이곳도 홈스테이라고 되어 있다. 바로 길 건너에 군 주둔지가 있다. 동쪽 가까이로 중국과의 국경선이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쪽으로는 절대로!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고 신신 당부한다. 하지 말라는 것은 대체로 안하는 편이므로 안했다.

 

이렇게 생긴 부대이다. 뭐 별 것도 없는데. 물론 내가 찍은 사진 아니다. 구글이 했다.

 

 

점심 때다. 늦은 점심이다. 나왔다. 많은 욕심을 부릴 수 있는 곳, 상황이 아니었다. 질기다. 깨작깨작거리면서 그래도 왠만큼 먹었다.

 

식사 후에 1시간쯤 쉬고 주변 트래킹을 나간다고 한다. 일단 퍼질러져 본다. 

 

트래킹이라길래 멀리 가는 줄 알고 겁 먹었는데, 그냥 호수 근처로 해서 마을 한바퀴 도는 것이었다. 고지대 적응 훈련의 일환이겠다. 아마도.

 

카라쿨 호수다. 수위 변동이 좀 있는 것 같다.

 

카라쿨 호수다. 잔잔하다.

 

동네 아이들. 본체 만체.

 

카라쿨 호수다. 근사하다.

 

트래킹 족. 햇볕이 무진장 강하고 뜨겁고 따갑다. 게다가 모기가 무진장 떠오른다. 땅바닥에 깔려 있던 모기들이 사람들이 나타나니 까맣게 날아 오른다. 소오름~

 

카라쿨 호수다. 반짝반짝~

 

안내판이 보인다. 호수 면적은 380제곱 킬로미터, 최대 수심은 238미터. 물고기는 있으나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없어 어업은 없다고 되어 있다.

 

낮은 집들, 지붕은 평평. 많은 숫자의 높은 전봇대들이 인상적이다.

 

목재 전봇대들이 콘크리트 부목을 아랫쪽에 대고 있다. 현지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겨울이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에 이렇게 한 것이라고 답을 하는 것을 김클림군이 통역해주었다.

마을에 전화방이 있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핸드폰 통화가 안되는 지역이다. 내 전화기도 안테나 표시가 죽었다.

 

우물이다. 펌프질하니 물 나온다. 몇 분이 양수기 체험을 하기도 했다.

동네가 이상하게 조용하다.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가옥 내부를 구경하고 싶어하시는 멤버가 계셔서 계속 주문했는데 문이 거의 닫혀 있었다. 집집마다 다 뒤질수도 없고...

마을 규모는 꽤 되는데.. 질문했다.

1. 구소련 시절 선전용으로 크게 만든 마을이다.

2. 더 높은 곳으로 가축들을 끌고 이동했다. 추워지면 야크를 데리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라는 두 가지 답을 들었다.

 

GPS 수신기를 보니 해발고도가 3,955미터가 나온다. 고산 증세가 올만한 높이.  두 분이 쓰러졌다. 아...김클림군도 쓰러졌다.

고산 증세가 심해진 분들, 따가운 햇볕 때문에 일찍 아지트로 귀환했다. 

 

저녁을 먹고, 다른 이의 트렁크 무게만 무겁게 하는 깨끗한 물 두 병을 룸메이트와 나눠 마시고 쉬었다. 저녁 7시가 되니 전기가 들어왔다. 모여라~ 충전하자~ 피카~츄!

 

깨끗한 물이 다 소비되었다고 한다. 할 것도 없다. 또 일찍 잔다.

 

잘 잤다. 어?

진짜로 잘 잤다. 

 

 

 

(일정 변경)

전체 인원의 30%가 고산 증세를 호소하였기 때문에 일행의 일정을 주관하는 팀은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내일 하루를 더 카라쿨 호수 일대를 트래킹하는 것이 원래 일정이었는데, 이 분들이 많이 걱정되어 일정 변경을 추진하였다. 내일 이곳에서의 일정을 취소하고 사리타쉬로 철수하는 안을 추진하였다. 다행기 고산 증세를 호소하는 환자들 때문에 현지 여행사에서도 크게 클레임을 제기하기 아니하고 오히려 상황처리를 도와주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다만 이곳의 예약을 취소하는 것이기에 약간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상황 설명을 하고 1인당 30달러씩 갹출하였다.

숙소 거실에 준비되어 있는 산소 봄베를 현지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사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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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9일. 비슈케크 공항에서 국내선을 이용해 오쉬로 날아갔다.

오쉬에서 SUV에 분승하여 천산 산맥을 넘어 노란 돌이라는 뜻을 가진 작은 동네 사리타쉬까지 달렸다.

점심 먹고 사리모굴 쪽으로 다녀왔다.

 

5시반. 새벽이다. 하지만 모두들 로비에 모여 준비 완료. 비행기 타러 가안다아~~

 

아침은 간편식. 원래 주최측의 작전은 공항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었는데, 밀키트를 나눠주자마자 호텔 문 앞에서 다 먹어 버렸다. 우린 배고픈 사람들~

 

6시 30분. 비슈케크의 마나스 공항. 국내선을 탄다. 늠름하게 앞장서서 인도하는 김클림군.

 

가까운 거리를 날아가는 비행기는 창가 좌석을 좋아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GPS data logger를 작동시켜 볼까 하는 마음에. 국내선의 작은 비행기들은 GPS 신호 차폐를 아직 안하는 것 같다. 성공했다.

 

떳다~ 날아간다~

 

아래로 큼지막한 저수지가 보인다. Vodokhranilishche Spartek이다. 비슈케크 북서쪽에 위치하는데, 이륙한 비행기가 선회하면서 지나간 듯 하다.

Vodokhranilishche Spartak is a natural lake that covers a surface area of 6 km2 (2 mi2), has an average depth of 3 meters (10 feet). Vodokhranilishche Spartak boasts a total water volume of 0.02 km3 (14,593 acre-feet), and has a total shore line of 17 kilometers (11 miles). The lake, which sits at an elevation of 601 meters (1,972 feet), drains a whatershed that covers 864 km2(334 mi2) and has a residence time of 93 days (0.25 years).

 

천산 산맥으로 접어드는 듯 하다.

 

산 할아버지들이 하얀 모자를 쓰고 있다. 그런데 하얀 모자가 좀 빈약하다. 여름이라 빙하가 거의 다 녹았다.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지형들을 볼 수 있다.

 

산이 높으면 곡도 깊다. 천산 산맥의 골짜기, 나린 강의 상류에 위치한 지류 중 하나이다.

 

커다란 저수지가 보인다. Toktogul Reservoir이다. 나린 강의 상류에 위치하며, 나린 강은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 지방으로 흘러간다. 시르다리야 강과 합류한다.

Toktogul Reservoir is a natural, dammed lake that covers a surface area of 224 km2 (87 mi2), has an average depth of 88 meters (287 feet). Toktogul Reservoir boasts a total water volume of 20 km3 (15,808,923 acre-feet), and has a total shore line of 143 kilometers (89 miles). The lake, which sits at an elevation of 871 meters (2,858 feet), drains a whatershed that covers 51,893 km2 (20,036 mi2) and has a residence time of 667 days (2 years). The most important settlement on the shores of Toktogul Reservoir is Naryn. Toktogul Reservoir's dam was built in 1978 and has a height of 215 meters (706 feet).

 

다시 천산산맥.

 

천산 산맥 언저리에서 보이는 다양한 색을 가진 퇴적층. 이렇게 다양한 색을 보이는 것은 중국의 칠채산에서와 마찬가지로 퇴적층에 포함된 다양한 광물들이....어쩌구 저쩌구...

 

산맥을 벗어나니 고도가 낮아지고 평지가 나타가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초록색이 반갑다. 비행시간 40분. 금방이다.

 

저 아래 땅바닥에 비행기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하더니...만....

 

8시 58분. 오쉬 공항이다. 걸어서 나간다. 뒷 편으로 비행기와 인증 셀피를 만들려 했더니 경비원이 기겁을 한다. 왜 지가 놀래?

 

9시 30분. 파미르 대응팀이다. 파미르 쪽으로는 대형 버스가 가지 못하기 때문에 아예 오쉬에서부터 튼튼한 SUV 팀을 준비했다. 믿음직하다. 물부터 사재기한다.

 

과일, 과일, 과일...도 사재기한다. 오른쪽에 수박을 들고 있는 아저씨가 이 팀의 대장이다. 하얀 빵모자를 쓰고 있어 무슬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길가에 장이 섰다. 오쉬장~

 

그리고는 남쪽으로 달렸다. 마구 달렸다. 

일찍 일어났더니 피곤했나보다.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쉬어간다고 차를 멈춘 곳에서 내렸다. 화장실 답사도 겸사겸사 했다.

그리고는 또 달렸다. 멀다. 이날 비슈케크에서부터 660km를 이동했다.

 

오쉬에서 사리타쉬로 가다가 처음 멈춘 곳. 해발고도 2,389미터. 치이어칙Chyiyrchyk 고개. 이 고개는 구글에서도 검색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

 

반대 편 차선으로 고갯길을 힘겹게 올라온 차. 빌빌대더니....김샌다. 워쩐다냐~~

 

뭔가 있다. 뭘까?

 

우리 팀의 한 분이 탈이 나서 많이 힘겨워하셨다. 아주 많이.....ㅠ.ㅠ

하지만 저 산하는 얄짤 없다.

 

Kunelek이라는 작은 마을이다. Kyzil-Korgon 지나서 나오는 작은 마을이다. 잠시 쉬었다. 서로 멀리 떨어진 팀의 차량들이 다시 모이게 하고 힘들어 하시는 분들은 조금 쉬시고, 해결할 것이 있는 분들은 Gulcha 강 쪽에다가 해결하고...

 

이런 것 볼 때마다 중국 감숙성의 칠채산이 생각난다. 그러니까 암석에 집적되는 광물의 종류에 따라서 ... 어쩌구...

 

Alay 산맥을 가로지르는 Taldyk 고개이다. 해발고도 3,615미터. 1930~32년 사이에 열렸다고 한다. 앞에 오르던 차는 본넷 뚜껑을 열고 헐떡 거리며 쉬고 있다. 우리 팀 아니다.

 

탈딕 고개의 도로 건설 십장 Yuri M. Grushko의 송덕비 되시겠다.

 

산세가 볼만하다. 시간 되면 저쪽 능선까지 한번 갔다오고 싶었는데...그 놈의 시간 제약 때문에...

 

제대로 된 설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파미르다!

 

도착하였다. 노란 돌, 사리타쉬 Sary Tash.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우리 일행이 이용한 홈스테이. 마당에 식당으로 사용하는 유르트도 보인다.

 

수줍은 지 가까이 오지 못하고 멀리서 환영해주던 친구.

 

새 집인데, 지붕이 특이하다. 겨울에 내린 눈이 지붕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것을 방지하는 턱을 설치한 것처럼 보인다.

 

곳곳에 쌓인 똥탑! 건조 기후 지역의 유목민들과 함께 하는 가축의 말린 똥이다.

 

자리 차지하고 퍼질러 본다. 거실의 소파들. 푹신하니 좋다. 한 잠 자고 싶다.

하지만 점심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먹어야 산다!

 

감자와 고기 요리. 맛있다. 아침을 거시기 하고서는 오후 두시에 먹는 점심이었다. 하여간 맛있었다.

 

식후에 간단한 트래킹을 간다고 했다. 간단했다. 차를 타고 주욱 달려가서 조금 놀다 온 것이니까.

사리타쉬에서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쭈욱 가다보면 Sary Mogul이 나온다. 그곳에서 남쪽으로 달리면 파미르와 마주한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레닌 봉이라던가. 7,134미터. 그 레닌 봉을 향해 가는 베이스 캠프 언저리까지 다녀왔다.

 

 

사리타쉬에서 사리모굴 쪽으로 흐르는 하천의 물이 탁하다. 물의 양은 적고 침전물이 많으면서 평지를 흐르므로 깊은 유로를 만들기 어렵다. 유량 변동도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천의 이름은 Kyzyl suu이다.

키르기스스탄에서 "suu"가 들어간 지명이 굉장히 많다. 쾰수, 악수, 키질수, 카라수, 타르수 등등... suu가 '물'이란 뜻이란다. 어이하여???

 

교통량이 많지 않은 지역의 교량은 그래서 허술하기 짝이 없고. 건너가는 차량 안에서 가슴이 쫄깃쫄깃해진다. 기우뚱 기우뚱 삐거덕 삐거덕~

 

초지대, 작은 호수 그리고 소들. 설식와지일 가능성이 크겠다.

 

똥 옆에 앉아 기념 사진 찍는데, 말탄 짝꿍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똥 처음 보냐?

 

멀리 Tilek 유르트 캠프가 보인다. 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것 같더라.

 

머리 위에 무엇인가 얹는 셀피에 재미들렸다. Tulpar 호수이다.

 

수줍음 타던 블랙 야크!

가까이 오지도 않고 다가가면 도망간다.

 
드디어 뽀인트에 도착하였다. 저쪽 넘어 어딘가 레닌 봉이 있을 것이다.

 

 
 
내려가 보란다. 그런데 절벽이다. 이 사람들이!
우회했다. 

빙하 녹은 물이 흘러내리는 깊은 골짜기이다.

 

짙은 회색인 것은 빙하 운반 침전물 때문일 것이고, 붉은 색을 띠는 것은 붉은 물이 들어서 그럴 것이다.ㅋ

 

다 부서져 간다. 그래도 왔으니 가본다.

 

2016년 '건설'된 파미르 브릿지이다 라고 써 있다?

 

이 곳에 왔었다는 인증! 입가가 시커멓게 변하기 시작했다.

 

파미르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다. 콸콸~ 

물살에 의한 침식작용과 운반물질에 의한 퇴적작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저쪽 파미르~

 

누구네 집인지 모르겠다. 비슷한 구멍들이 많이 파여 있다.

 

봉우리를 오른 것은 아니지만....하산한다. 지하수가 흘러내리다가 구덩이가 있는 곳에서는 지하수면의 높이를 따라 이런 웅덩이를 만드는 것일 것이다. 아마도.

 

사리모굴을 향해 앞서서 힘차게 달리는 일행의 차량. 먼지가..........

 

잔뜩~

기사님들 운전하랴, 안내하랴, 세차하랴....

 

길가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붉은 주단이 좌악 깔려 있다.

 

소 사료로 사용하기 위해 재배한 것이라고 했다. 이름은?

 

차량 뒷좌석에 탔던 두 분이 관심을 보이자 차를 세우더니 기사 아저씨 달려갔다. 꽃을 꺾어 오셨다. 누구에게 주실려는지 싱글벙글~

 

꽃 받으신 분~~~

 
숙소 귀환.

멀리서부터 달려온 긴 하루였다. 맛 있는 식사. 유르트의 밤은 깊어간다. 불 켜졌다 말이지..

 

식사를 기다리면서 정한수 떠 놓고....기도하였다. 내일 파미르 고원에 무사히 가게 해주삼~~ 분명히 정한수였다.....^^

 

잤다.  4명이 한 방에서 잤다. 침구 등의 상태 좋았다.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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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8일. 약 300km 정도를 달렸다.

Cholpon-Ata를 출발하여 이식쿨 호수변 도로 A365를 따라갔다. krasnyy Most를 통해 천산 산맥을 통과하여 chui 지역으로 들어섰다.

Tokmok에서 우회하여 부라나 타워에 들렀다가 비슈케크로.

 

7월28일 아침이 밝았다. 아침 산책을 해야 한다. 아침이 밝았으니까.

 

리조트는 이식쿨 호수변에 있다. 모래는 거친 편이다.

 

깨끗한 물, 상쾌한 아침. 다이빙을 하려는 듯 보였으나 끝까지 자리를 지키더라.

 

호수 속의 섬...

 

호수 건너편으로는 천산 산맥의 산줄기가 멀리 보인다.

 

저쪽에서는 어제의 태권도 선수들이 보인다. 아마 그럴 것이다. 물에 뛰어들기를 한다.

 

아침 셀피. 등장하자마자 햇볕은 따갑다. 슬슬 껍데기가 망가진다.

 

멋진 리조트의 근사하게 잘 가꾸어진 잔디밭. 사과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물 뿌린다. 시원하겠다.

 

리조트 모습. 앞에 풀장. 그 앞에 빠. 밤 늦게까지 가수들이 열심히 일하더라.

 

산책을 했으니 이제 먹어보자.

 

먹었으니 이제 이 근사한 리조트와도 헤어져야 한다.

 

8시에 식사하고 8시반에 예정대로 출발했다. 길가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졸고 있는 독수리.

 

키르기스스탄 국기.

중국에서 무상 지원을 하여 건설하였다는 도로 구간이 일부 있다. 이 구간은 포장 상태가 좋아 차들이 잘 달린다. 하지만 다시 오래된 도로, 상태 안좋다.

 

Balykchy. 주유소에 멈추었다. 길가의 노점상들.

 

그리고 물고기 판매점들이 줄지어 있다. 건조, 혹은 반건조, 혹은 약간 건조한 물고기들을 판매한다.

 

 

치즈, 꿀, 말젖 등도 판매하고 있다.

 

한 마리 구입했나보다. 흐물흐물하다. 만지면 손에 기름이 묻어난다. 흐른다. 먹을 만 하다. 하지만 다른 무엇과 같이 먹어야지, 이것만 먹으려 하니 좀 그랬다. 맥주 안주로 쓸만 할 텐데...

 

A365 도로변에 있는 휴게소이다. Food Zone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고, 할랄 인증 식당이다.

저 앞쪽 간판을 사진찍지는 못했지만, 검색해보니 다른 사람들이 찍었더라.^^

무료 와이파이도 된다고 한다. 한번 가보시라~

 

휴게소의 화장실 표시. 절실하다.

 

화장실 내부가 너무 깔끔하다. 그래서 잘 이용해주었다. 이모저모. 심지어 셀피~

 

길가에서 옥수수를 삶아서 판매한다~

 

비슈케크와 이식쿨을 연결하는 철도. 여객 열차가 9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 차량보다 느리다.

 

Tokmok이다. 비슈케크의 위성도시 정도라고 한다. 우주비행사 훈련학교가 있는데, 이집트의 무바라크가 이곳을 나왔다고 소개한다.

 

고속도로에서 부라나 타워 쪽으로 빠진다. 한적한 농촌길.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부라나 타워에서 나오는 길에 길가의 딸기 판매상으로 부터 딸기를 한 바구니 구입하여 시식했다. 약 2,000원어치 정도. 맛은 뭐...

 

부라나 타워에 도착했다. 문이 열려 있다고 무료? 아니다. 입장료는 저 안쪽에서 받는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위의 사진들의 내용을 살피면, 12~13세기 키르기스스탄의 소그드 인(스키타이 민족)이 지은 건축물로 천문대의 역할과 함게 전망대의 역할까지 겸한 건축물이라고 한다.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첨탑이라고 하는데, 원래 45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큰 지진으로 붕괴되고 아랫 부분만 남은 것이다. 상당히 많이 파괴되었던 것을 복원한 것으로서 25m 정도가 남아 있다.

 

아담한 기념품점.

 

요만하다.

 

전망대의 기능도 겸하고 있기에 이 계단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 계단을 통해 올라가 위에서 주변을 조망할 수 있다.

 

저 꼭데기에서 주변의 풀밭이 잘 보일 것이다.

 

머리 꼭데기에 탑~

 

부라나 타워 주변에는 Balbal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석인상들이 좌악 깔려 있다. balbal은 조상 혹은 아버지를 뜻한다고 한다. 이 발발은 투르크 계열 유목민들이 거주하던 지역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모양과 크기는 다르지만 손에 컵이나 잔을 들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손 모양은 제주도의 돌하르방과 비슷한데, 손에 들고 있는 잔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석인상들이 있는 곳 옆에 있는 작은 둔덕 위의 구덩이들. 무덤이었다고 소개하더라. 진짜?

 

키르기스스탄의 수도인 비슈케크Bishkek에 도착하였다.

 

서울 레스토랑. 일단 늦은 점심으로 허기를 해결한다.

깔끔하니 잘 나온다. 좋다.

 

먹고 났더니 배가 부르고 이제 비슈케크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알라뚜 광장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았다.

 

국립 역사박물관 옆에는 그림 전시장이 운영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풍경화들.

 

알라뚜 광장의 상징. 마나스 장군. 마나스는 키르기스인들의 신화적인 영웅이다.

 

광장 옆에는 어린이들의 놀이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바로 앞에서 공을 차서 깡통들을 골대에 넣기. 몇몇 어른이들이 해보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밝음만 남기고 어둠을 몰아낸다. 동상이 아닌 분이 힘을 보태고 있다.

 

바로 인근의 두보비 공원. 두보비는 상수리를 뜻한다. 상수리 나무가 많다. 이 아저씨가 누구?

알마티 판필로바 공원에 있던 28인의 전사상에 등장하는 대원들의 대장이라고 김클림군이 소개했던 것 같다. 그들의 대장은 판필로브였는데, 찾아보니 그가 맞다. Panfilov 장군.

Close-up of gold statue of Ivan Vasilyevich Panfilov, Soviet general and Hero of the Soviet Union, inside Panfilov Park

 

레닌 아저씨. 러시아에서는 무너졌는데, 이곳에는 그냥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아저씨 앞에 쭈그리고 앉아 본다. 공사중인 크레인이 눈에 확 들어오는구나. 하필~

 

2차 세계대전의 승전을 기념하는 승전기념탑이다.

 

전쟁터에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상. 그 앞의 꺼지지 않는 불.

 

키르기스 민예품들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찾아왔다. 백화점 5층에 위치한다. 그리고 화장실은 3층에 하나 있다. "유료"

 

백화점 가전제품 가게 앞 길가에 놓인 세탁기. 역시 세탁기는~

 

어느 분인가 재래 시장을 살펴보자고 했다. 갔다. 그 앞의 버스 정류장.

 

저 과일 판매하는 아저씨는 고려인~

 

시장 내부 모습. 상당히 규모가 큰 시장이다. 현지 가이드인 전직 키르기스스탄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인 김클림군의 어머니도 이 시장에 장사를 하신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영업 안하신다고...

 

시장 옆에 있는... 현대병원이 비슈케크에 진출?

 

오늘의 숙소이다. 금룡호텔. 골든 드래곤.

 

금룡호텔 로비에 있는 레스토런트. 강남~

 

저녁 식사는 솥뚜껑 삼겹살~ 이슬람 국가에서 돼지고기를 먹는다~~~

 

푹 잤다. 매일 일찍 잔다. 좋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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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카라콜~촐폰아타.

카라콜을 출발하여 이식쿨 호수의 북변 도로를 따라 촐폰아타로 이동했다. 

유람선 탑승, 점심 식사, 카라오이 암각화 야외박물관, 저녁 식사, 그리고 끝~

 

이식쿨 호수는 단층 작용으로 형성된 단층호이다. 주변에 고산 지대가 분포하며 이식쿨 호수 바닥에서 온천수가 나오기 때문에 혹한의 겨울철에도 호수는 얼지 않는다고 한다.

 

 

따가이따이 호텔. 아담하고 아득한 호텔이다. 좋다.

 

식전. 이른 아침 동네 산책을 나선다. 산책로가 양방향 도로의 가운데에 있다. 신기하다.

 

주상복합?

 

LOVELY 핏짜. 위성 안테나는 GOSPELL.

 

LOVELY 샵. 아주 러브 러브한 동네이다.

 

생수 구입을 위해 가게를 들렀다. 상호는 '카라반'.

 

동네 슈퍼마켓이다.

 

어디선가 본듯한 상표가 있다. 엣세. 같이 전시되어 있는 다른 담배들에 비해 높은 가격이다. 그런데 거기에 딸린 그림들이 무시무시하다.

 

공동묘지. 러시아 정교회 쪽 사람들의 묘라고 한다.

 

쉬어가는 쉼터.

 

저 아래로 이식쿨 호수, 그리고 멀리 천산 산맥.

 

쉼터라고 화장실도 있다. 보기 드문 '무료' 화장실이다. 이 쪽이 남자칸. 무료이지만 사용하지 않는 쪽을 추천한다. 내부 사진도 있지만 공개하지 못하겠다. 대부분 사람들은 화장실 뒷쪽의 자연을 이용하더라.

 

초록은 들이요, 파랑은 하늘이다.

 

화장실은 잊고 물을 흘리는 곰과 다정한 사진을 만들어보자. 저 물 마시고 아직 탈 안났다. 마셔도 되는 물인 것 같다.

 

동네 표시.

 

이식쿨 호수에 도착하고 있다. 호수변의 아주 작은 빠.

 

빠 옆으로 보이는 호수. 20여 명의 사람들이 그늘도 없는 물 속, 혹은 물가에서 뙈약볕에 고생하고 있더라. 안되어 보였다. 물은 무진장 깨끗하다. '이식쿨'이 뜨거운 물이라는 뜻이라고 했던가?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아직은 껍데기에 큰 이상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촐폰아타. 촐폰은 '별', 아타는 '아버지'라는 뜻. 그래서 아버지의 별이라는 의미를 가진 작은 항구.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호수 쪽으로 유람선의 경로, 산지 쪽으로는 야외박물관.

 

촐폰아타의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했다. 근사하다. 이 배를 타는 것인가? 좋다!

 

아...이런. 다른 배로 예약되어 있다.

 

바로 출항한다. 좋다.

 

바로 식사가 차려진다. 

 

좋다. 푸짐한 선상 점심 식사.

 

비슈케크 쪽으로 가다가 들릴 예정인 부라나 타워를 한 나절 일찍 만나본다. 좋다.

 

배 좀 타 본 적이 있다 하니 조타를 맞긴다. 까짓 것! 좋다.

 

옆으로 지나가던.... 좋다.

 

저렇게 매달려 노는 것이구나. 좋다. 재밌겠다~~~

준비가 안된 것인지, 아무도 이식쿨 호수로 뛰어들지 않았다. tv 프로그램 보면 잘 뛰던데..

 

암각화가 야외에 널려 있는 카라오이 암각화 야외박물관이 오후 코스에 있었다.

입장료 받는 직원이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 문은 열려 있다. 그냥 들어간다.

 

무서운 새가 지키는 것일까? 줄어 묶여 있다. 안무서워졌다.

 

암각화는 이렇게 생겼다. 기원전 2세기 경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본단다.

 

관람객들.

 

뭐더라?

 

선사 시대 사람들의 생활에 대하여 암각화를 기초로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김클림군.

이 야외박물관은 2002년 독일 정부의 지원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단체 사진~

 

새가 사라진다~

 

야외박물관 아랫 마을에는 상당히 규모가 큰 묘지가 있다. 촐폰아타 라는 큰 도시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일까? 누군가 다녀갔나보다. 꽃.

 

해가 훤한데 오늘 일정이 끝났다.

너무 너무 분에 넘치는 듯한 수준의 숙소. 트리코로냐 리조트의 Ak Marao. 반짝이는 아가씨 정도의 의미라고 한다.

 

창 밖에 키르기스스탄의 청소년들이 태권도 훈련을 하고 있다. 김클림군이 보더니 북한식이라고 한다.

 

무료한 오후 시간에 무료로 맥주 얻어 먹으려는 찰나 비닐봉다리 아래 쪽이 터지면서 맥주병들이 떨어져 박살났다.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 참 다행이다.

 

주 메뉴가 무엇이었지? 이 식당의 저녁 메뉴에 샤슬릭을 추가하였다. 샤슬릭은 다른 식당에서 구입하여 가이들들이 들고 왔다. 그리고 이런 병들도 식탁에 있었다.

 

먹으며, 마시며, 웃고, 떠들다 보니 해가 금방 사라졌다. 음료가 남았지만 식당이 문을 닫는다 하여 일어섰다.

이식쿨 호수변 산책.

 

저쪽 방에 들어가 무사히 잘 잤다.

 

그렇게 27일의 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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