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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6일(토)에 출발하여 1월 30일(화)에 귀국하였다.

긴 아프리카 여행.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두바이를 거쳐 아프리카로 들어갔다.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케냐, 짐바브웨, 보츠와나, 잠비아, 나미바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8개국을 거쳤다.


에티오피아 북부.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대륙이 분리되고 있다는 현장이다.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다나킬 평원으로 내려가는 곳. 다나킬은 해발고도가 해수면보다 낮다.


해수면 보다 낮은 저지대이며 건조 기후 지역이다. 모이는 물이 모두 증발하니 저지대에는 소금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였다. 혹독한 조건에서 그 소금을 캐내어 판매하는 소금 캬라반이 생기게 된 것이다.


뜨거운 뙤약볕 속에서 바닥의 굳은 소금을 잘라낸다. 그것을 운반할 낙타.


아프리카 여행의 백미. 사파리. 숨은 짐승을 찾아다니는 것이라고 해서 현지에서는 '사파리'라는 옛날 말 대신에 '게임 드라이브'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BIG 5' 라고 타이틀을 붙여 놓고 꼭 찾아서 보아야 한다고 광고한다. 그냥 보고 다니면 심심하니 무엇인가 숙제를 던져주는 느낌이다.

첫번째 만난 빅5의 하나. 버팔로.


두번째. 사자. 진짜는 '심바'라는 현지어로 불리는 숫사자인데, 제대로 된 사진이 없다. 모두 낮에는 나무 그늘이나 풀숲에서 자빠져 자는 관계로 가까이 보기 어려웠다.


세번째. 코끼리. 세상 무서운 것이 없는 동물이므로 쉽게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네번째. 레오파드. 매우 드문 짐승이다. 겨우 한 마리가 나무에 걸쳐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망원렌즈였기에 제대로 잡은 사진.

다섯번째는 코뿔소다. 헌데, 이 짐승은 멸종의 위협 상태라 특정 구역에서 특별하게 관리 보호되고 있단다. 그래서 거의 볼 수 없다고 한다. 포기.


빅5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정도로 크기가 big인 하마. 영어로 river horse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河馬가 거기서 온 것인가?

주둥이를 바닥에 대고 풀을 쓸어간다. 제초기 같다.


역시 큰 기린. 목과 등에 새가 달라붙어 진드기를 떼어 먹는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하면 다큐멘터리에 단골로 등장하는 '누' GNU. WILDEBEEST라는 이름을 현지에서는 사용한다.


사바나 지역의 우기, 건기의 기후 변동에 따라 떼로 이동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누.


이것이 사바나. 초원에 짐승들이 가득하다.


얼룩말. 참 많다. 무늬가 다 똑같아 보이지만 지들끼리는 그 무늬를 구별한다고 한다.


덩치 큰 짐승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멧돼지. 생긴 것은 좀 그렇지만 고기는 맛있었다. 아, 이놈을 잡아 먹은 것은 아니고...다른 곳에서, 식당에서 먹었다.


톰슨가젤.


풀과 나뭇가지를 이용해 옷감을 짜듯 나무 가지에 집을 짓는 새 WEAVER.

소셜 위버는 수십 마리 이상의 군집이 모여 아파트 같은 거대한 집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초원 위를 고고하게 걸어가는 새, 관학.


도마뱀인줄 알았는데 도마뱀과 비슷한 종이라고 한다. 무지개 아가마.


다 자란 성체가 50CM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사슴, 딕딕. 뿔조차 앙증맞다.


뱀을 주식으로 한다는 몽구스. 떼로 뭉쳐서 다닌다.


비비. 바분. 개코원숭이.


케냐의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 방문한 마사이 마을. 우리가 아는 마사이 신발은 전혀 볼 수 없다.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앞에서. 아우라가...


나미브 사막의 일몰. 나뭇가지에 매달린 소셜 위버의 집이 멀리 보인다.


하품하는 올빼미.


뿔이 멋진 오릭스.


케이프타운에서 만난 갈매기.


남아공에 서식하는 아프리칸 펭귄. 울음소리가 당나귀와 같다 하여 예전에는 JACKASS PENGUIN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아프리카 대륙 남쪽 가장 끄트머리. 아굴라스 곶.


아프리카의 남쪽 끝이니 여기 어디를 기준으로 인도양과 대서양이 구분되는 것이리라. 하지만 바닷물은 이리저리 흘러 구분되지 않는다. 인간들의 개념상의 구분일 뿐.


25일간 찍은 사진이 대충 6,000장 쯤 된다. 언제 정리를 마칠 수 있을지 암담하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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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기가 막히다. 수능 추위.

수능은 연기가 되었지만 추위는 연기가 안되었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옷깃을 스치는 새벽에 길을 나섰다. 차를 중동고 지하주차장에 주차하는 것이 곤란하게 되었다고 하기에 지하철을 이용했다. 7호선 강남고속터미널에서 3호선의 8번 출구옆 주차장에서 랑데뷰.

다섯 명의 답사객은 지오트립 2호차를 타고 철원으로 달렸다. 논스톱.

 

11월18일의 전체 이동 경로도.

철원군에서의 전체 답사 경로. 김화읍을 지나 생창리로 향했다. 앗차차... 유턴하여 생창리 마을회관, DMZ 생태평화공원 방문자센터를 찾아갔다.

십자탑 탐방로 답사 후에 점심 식사. 용양보 탐방로 답사 후에 갈말읍의 승일교, 동송읍의 직탕폭포와 고석정을 답사하였다.

 

DMZ 생태공원 답사경로이다.

 

구글의 인공위성 영상은 이렇다.

 

철원군 DMZ 생태평화공원의 홈페이지에서 제공되는 탐방로 지도는 이렇게 생겼다.

방문자센터에서 시작한다.

 

북으로 성재산과 계웅산이 에워싸고
남으로 화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고장 생창리는

고구려시대부터 김화군의 중심지였다. 병자호란 때 청 10만 대군에 맞서 용전분투했던 흥명구공과 유림장군의 충절이 깃들어 있는 곳으로,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제 정선의 예술혼이 살아 숨쉬고 있다.

일제시대인 1914년 3월 1일 노상, 노하, 내동, 신흥리를 병합하여 생창리로 개칭되었으며, 1953년 수복되면서 옛 김화군에서 철원군 김화읍으로 바뀌었다.

남북 체제경쟁이 한창이던 1970년 10월30일 재향군인 100세대가 입주 재건촌을 건립해 오늘에 이르고 이젠 사랑과 정이 넘치는 전원마을이자 남북 통일의 물꼬를 트는 통일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진격로였고 병자호란 때는 청군의 남진로였으며 6.25때는 피비린내 나는 철의 삼각지 전쟁터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곳이다.

라고 철원군에서 소개하고 있다.

 

생창리를 찾아 열심히 길을 달린다.

(조서현 선생님 작)

 

길 옆의 구조물들이 분계선으로 가까이 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어렸을 때는 '멸공 통일'이었는데,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나니 '멸북 통일'로 구호가 변하였구나.

 

생창리 마을회관, DMZ 생태평화공원 방문자센터이다.

철원군의 DMZ 생태평화공원 탐방은 매일 10:00, 14:00 2회 출발(화요일 휴무)하며, 1회 40명으로 인원이 제한되어 있다. 안내인의 동반하에 탐방할 수 있다. 숙박 및 식사 가능.

 

왔다고 셀피 하나 만들어둔다.

 

생창리는 1970년에 조성된 마을이다. 그것을 기념하는 비석.

 

방문자센터 바로 옆에 '사라진 마음, 김화 이야기관'이 있다. 아직 개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김화이야기관 앞에 있는 비석. 2010년에 세운 것이다. 1970년에 입주하였으니 40주년 기념비가 되는 갑다.

 

1,2호 차의 멤버들이 모두 모였다. 기념 사진.

 

출발 준비를 한다. 여러 가지를 챙긴다. 방문 차량 위에 모자를 하나씩 쓴다.

 
방문객들은 목거리를 하나씩 받는다. 사전 예약했기에 개인별로 지정되어 있다. GPS 발신 기능이 있다는 정보가 있다. 어디로 돌아다니는지 위치 추적이 가능하다는...
 
 
검문소를 통과하면서 장비가 추가된다. 임시 출입증을 달고,
 
블랙박스 카메라 앞에 차단막을 설치한다. 군부대 주둔지를 들어가기 때문에 영상 기록을 남기지 않게 하기 위함이렸다.

후방CP 앞에 주차장이 넓직하게 마련되어 있다. 넉넉하게 주차한다. 개인 정비하고 출발한다.

 

탐방로 입구. 날씨가 추운 날이었기에 대체로 중무장.

 
(이태우 선생님 작,  TAEWOO GEOGRAPHIC)
 
춥다. 날도 춥고 탐방로 양쪽을 가로 막은 철조망도 춥고, 일정 간격으로 매달려 있는 지뢰 경고판도 춥다.

 

이정표가 방향을 알려준다.

 

이정표와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 안내판도 마련되어 있다.

 

이번 답사 안내는 강원대학교 김창환 교수님께서 맡아주셨다. 그 수고와 열정에 감사감사감사 드린다.

 

중간 중간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다리가 아파 앉아 쉬고 싶었지만 벤치에 앉지는 못했다. 벤치에 내린 서리가 녹아 물이 흥건했기에.

 

높은 산은 아니지만 상당한 경사 부분도 있어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다.

 

도로를 만들면서  깎아낸 절토면에 드러난 것이다. 그때 그시절의 녹슨 무엇인이다. 위험하지 않기에 방치된 것이겠지.

 

이제 능선 위로 다 올라왔다. 십자탑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능선 위의 쉼터와 초소. 나란이 나란이.

 

다 왔다. 이제 계단 몇 개만 올라가면 된다.

초소 윗쪽으로 은폐할 수 있는 뚜껑 모양의 구조물이 재미있다. 한여름 뜨거운 햇볕을 가려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에서는 뚜껑 열려 있다.

 

동산 위로 십자탑이 보인다.

 

십자탑 입구.

 

십자탑은 산정부에 위치하므로 조금 더 걸어 올라가주어야 한다.

 

십자탑은 성재산 산등성이에 조성되었다. 그 서쪽 아래 보이는 곳이 유곡리이다. 평지로 지나는 민통선 구간이라고 한다. 사진 상에 남과 북의 민통선이 모두 보인다. 잘 보면...

 

십자탑이다.

 

승리의 십자탑이다!

 

1979년에 세웠다는 표지석.

 

탑은 이렇게 생겼다.^^

 

추웠다. 콧물을 찔찔 흘리면서 올라왔다. 눈이 살짝 내렸었나보다. 아직 녹지 않았기에 내 발자국을 남겨 보았다.

 

김창환 교수님, 강의 중. 진지한 수강생들.

 

남쪽으로는 사진 촬영을 해도 되나 북쪽으로는 촬영을 하지 말라고 안내한다. 북쪽으로 보이는 오성산을 찍어볼까 했는데, 말았다. 찍지 말라는 것 찍어다가 공개하면 여럿 불편해질 수 있기에...

그런데 그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요즘 세상에 무엇하러 그런 통제를 하는지 모르겠다. 왜 북한 쪽을 촬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북한을 남한에서 촬영하면 북한에서 싫어해서 북한을 보호하려는 것일까? 도대체 뭐야!

중간에 있는 OP? GP? GOP? 

그런 것은 연말 연시만 되면 방송국 카메라를 통해 이미 다 공개된 부분 아닌가? 모르겠다. 언젠가는 그런 "관행적인 통제"가 풀리게 되겠지. 그 때 또 가지 뭐! 아님 말고!

 

하산한다. 올라 올 때와는 다른 코스로. 보다 짧은 코스, 하지만 경사가 더 급한 코스로.

 

성재산 삼거리 뽀인트.

 

지뢰 안내판도 있다. 많은 전쟁 영화에 지뢰가 등장한다.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엑스트라 배우가 밟으면 바로 터진다. 주인공이 밟으면 뗄 때 터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엑스트라고 주인공이고 없다. 그냥 밟으면 터진단다. 

 

지뢰의 무서움과 비인간성에 대해 서로 토의하고 의견을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

 

DMZ의 생태 환경 안내.

 

터덜터덜 내려간다. 세 시간 코스의 탐방로이다. 배고프다. 많이 고프다.

 

방문자 센터의 식당. 줄서서 배식. 좋다. 배불리 먹었다. 좋다.

 

식사 후에 바로 오후 일정 시작이다. 1호차, 2호차 출발.

 

용양보 탐방로를 찾는다.

 

암정교.

 

지금은 난간 조차 부서져 앙상한 모습으로 남아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다리는 1930년대에 세워진 콘크리트 교량으로 철원~김화~화천(춘천)을 연결하는 일제강점기 번성했던 김화군의 상징물이기도 하였었다.

 

육로 교통이 발달했던 중심지이기에 도로 원표도 보전되어 있다.

 

화천 43.9km, 원산 153.5km, 회양 57.4km 등의 거리 표시가 보인다.

 

1호차를 따라 달린다. 용양보를 향해 달린다.  탐방로의 양 옆으로 지뢰 주의 표시판이 달린 철조망이 이어져 있다.

 

용양보통문이다. 추진철책이 지난다. 무서워서 사진 안찍었다.

 

용양보통문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계웅산 철책신설완공 기념비.

 

용양보와 통문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습지가 만들어졌다.

 

용양보주차장이다.

 

용양보 안내판.

 

용양보. 옛 금강산전기철도의 교량을 이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금강산 전기철도는 1919년 착공해 1924년 1차로 철원~김화 구간을, 1931년 2차로 철원~내금강 전구간 116.6km를 개통하였다. 부설 목적은 김화, 금성, 창도 지역의 유화철을 전쟁 전략물자로 수송하고, 서울에서 금강산을 찾는 관광객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 금강산에 유역변경식 발전소를 건설해 철도 운영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고, 나머지 전력은 서울과 수도권에 판매하였다. 하지만 1944년 전쟁물자 부족이 심각해진 일제는 창도~내금강 구간의 궤도를 철거하였고, 이후 한국전쟁으로 전 구간이 폐선되었다.(DMZ 생태평화공원 스토리텔링, 107-108)

 

다 망가진 출렁 다리. 한국 전쟁 기간 중 이 지역을 수복한 이후  DMZ 경계를 섰던 병사들이 오가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세월의 풍상에 낡아 밧줄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습지 저쪽에서 추위, 아니 인간들을 피해 쉬고 있는 고니. 망원으로 쭈욱 땅겼는데, 추운 날씨 때문에 손이 부들부들 떨려 사진 상태가 그러하다.

 

용양보와 내 그림자.

 

아쉬움을 뒤로 남기며 DMZ 생태평화공원을 떠난다.

용암대지이다. 한탄강이다.

승일교, 직탕폭포, 고석정을 방문하였다.

 

구글의 인공위성 영상에 경로 표시. 한탄강 변의 용암대지 위를 달려본 것이다.

 

그렇다. 용암대지이다. 한탄강을 따라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승일교에 대한 간단한 설명.

 

승일교. 1999년에 통행이 금지되었고, 2002년에 등록문화제 26호로 지정.

아치형 교량인데, 북쪽 구간과 남쪽 구간의 디자인이 다르다. 이것은 북한에서 절반을 만들었고, 나머지 구간은 수복이후 남한에서 만들면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하는 전설이 있지만, 미군의 기록에 의하면 일제가 건설하다가 만 것을 미군 공병대가 마무리한 것이라고 한다.

 

새로 건설된 승일교.

 

승일교와 관련된 부분을 설명해주시는 중.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추워지기 시작한다.

 

승일교...춥다.

 

한탄강이다. 직탕폭포이다.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

 

강변으로 얼핏 보이는 주상절리. 아....시멘트 칠을 해 놓았다.

 

나이아가라 폭포. 폭포수가 콸콸 쏟아진다.

 

나이아가라 폭포. 배 타고 저 폭포수 아래를 들락거리는 체험을 해보아야 했는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폭포는 점으로 떨어지는데, 나이아가라...아니 직탕폭포는 주욱 이어진 면을 이루며 떨어진다는 면에서 특색이 있다고 한다.

 

고석정이다. 자꾸 고속정이라고 오타가 난다.ㅠ.ㅠ

 

고석정 안내판. 지오파크이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1억 년이나!

 

'정'은 없고, '고석'만 있다.

 

'고석'이다. 화강암 기반. 현무암에 뭍혔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배 타는 곳. 다음에 타자.

 

고석정 안내, 설명.

 

부정합이란?

 

강을 건너는 섶다리.

 

임시 부설 섶다리.

 

고석이 외로워 보인다. 

 

추워 보인다.

 

근사하고 튼튼한 정자가 있어 이것이 고석정일 것이다 하고 오해하게 만드는 콘크리트 정자.

 

고석정랜드의 힘쓰는 아저씨. 임꺽정?

 

추운 날씨에도 많은 분들이 함께 답사에 참여하셨다. 오랜 만에 뵙는 반가운 분들도 있었다. 아쉬운 이별. 1호차를 탈까, 2호를 탈까 하는 망설임도...

 

오후 5시 10분. 고속터미널을 종착점으로 하는 차량 탑승, 달린다. 날이 저문다.

 

어두워진다.

 

차에서 깜빡 잠들었다. 아주 잠깐. 차가 많이 막힌다는 내용의 대화 소리에 잠이 깼다. 예정되었던 경로를 살짝 바꾸는 것 같았다. 성수동이었다. 한강을 건넜다가 다시 오는 것 보다는 이 동네에서 헤메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서둘러 인사하고 내렸다.

오후 7시. 스맛폰에서 지도 검색하여 건대입구역을 찾았다. 길가의 수많은 식당들을 구경만 하면서 지나갔다.

 

오후 8시. 홈, 스윗 홈.

 

2017년 11월 18일 추운 토요일의 답사를 마쳤다. 온 몸이 쑤신다.

 

 

 


 

 

사족. 김화읍 생창리를 찾아가는 도중에 길가의 커다란 돌덩이리가 눈에 들어왔다. "박정희장군전역공원". 이게 뭐지?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654169.html

 

정식, 공식 명칭은 '군탄공원'이다. 하지만 "일부" 인사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표지석을 세운 것이라 한다. 웃긴다.

사족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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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가 모처럼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명절을 낀 연휴는 연휴가 아니다. 명절에는 초과근무를 해야 하기에. 과도한 연휴 근무를 마치고 퍼져 있다가 모처럼 몸을 움직여 보았다.

뒷산. 불암산.

요렇게 가볍게 다녀왔다. 학도암-헬기장 트레일.

지도에 마크 표시가 있는 곳이 촬영 뽀인트.

구글 어스에 경로 파일을 올려 보았다. 3차원 이미지로 만들어준다.

지형도로는 이렇게 나온다.


새로 구입한 헌 카메라를 손에 익혀볼 겸 동반했다. 24-2000mm의 광학줌이 가능한 카메라. 니콘 P900S.


9시 50분, 집을 나선다. 저 위로 불암산 꼭지가 보인다.


도대체 모르겠다. 엘로카펫? 벽에다 이렇게 페인트 칠해 놓으면 뭐가 달라지는지...


불암초교 축대를 지나간다. 담쟁이 덩쿨이 좋아보인다.


얼레? 없던 것이 생겼다. 못들어가나?


그렇지. 몰지각한 산행객들의 행위로 주민이 불편했던 것이야.


저짝으로 가면 민가가 있다. 그래서 옆으로 튼다.


움직이지 않던 노구를 끌고 가려니 벌써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오른쪽으로 가면 불암산 둘레길. 왼쪽은 정상 방향. 위로 간다.


불암산은 화강암 덩어리가. 판상 절리쯤 될까. 그것이 또 깨져나가고 있다.


롱 타임 노씨. 학도암이다. 저 축대 위에.


저 두 건물이 없었는데, 신축했다. 콘크리트. 튼튼하겠다?


대웅전에서는 법회가 진행중이다. 돌아선다.


대웅전 뒷편의 절벽에 마애관음보살좌상이 있다.


요렇게.


더 당겨본다.


코스모스가 한껏 피어올랐다.


계곡. 여름에 비가 오면 물이 흐른다.


샘. 겨울에는 얼음이 언다.


화강암이 심층풍화되면 모래로 부서진다. 그 비탈을 오르기는 쉽지 않다. 자꾸 미끄러져서. 그래서 중간 중간에 목재 혹은 석재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도 혹가다 모래에 미끄러지기도 한다.

미끄러졌을 때의 대처법 :

1. 주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로 부터 신속하게 대피한다. 쪽팔린다.

2. 먼지를 털고 용의복장을 정비한다. 등산은 패션이다.

3. 다친 데가 혹시 있는지 확인한다. 아파도 참는다.


못보던 전망 데크가 생겼다. 올라가 본다.


별내 쪽을 보니 아파트 단지로 채워졌다.


노원 쪽을 보니 역시나 아파트. 옛날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충격적인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석양의 역광으로 보이던 아파트들의 모습. 그 이후에도 볼 때마다 새롭다.


돌 덩어리 불암산.


노원의 명소. 쓰레기 소각장.


이 흉물도 보인다. 카메라의 망원. 연무로 인해 깨끗한 화상은 나오질 않는다.


저짝으로 가면 천보사니까 이짝으로 간다.


학생들 같던데.... 젊은 담임이 자원한 학생들과 올라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나뭇가지에 뭔가 달려 있다.


절리 간다.


사람들이 많을 때면 내려오는 사람들과 올라가는 사람들이 번갈아 움직여야 하는 병목 구간이다.


이런 것을... 에이 그냥 산불 조심하자.


산 위에 손질된 돌들이 있길래 뭔가 했더니 산성의 흔적이라고 주장한다.


목표했던 지점에 도착했다. 불암산 헬기장이다.


저것이 눈에 거슬렸었다. 빙과류와 막걸리, 컵라면, 간단한 안주류를 판매했었다. 여러가지 역학 관계의 흐름 및 money flow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었었다.


에이치!


카메라의 액정이 돌아가고 뒤집어지니 셀피 촬영도 가능하긴 하다.


이쪽에서 보니 산성의 흔적이 더 그럴듯 하다.


집에서 보면 이렇게 돌덩어리 절벽으로 보이는 쪽으로 해서 하산한다.


콘크리트 아파트들의 숲.


조그 우리집에 보인다.


삼각대가 없으니 망원줌에서 흔들림이 심하다.


면허시험장도 좌악 땅겨 보여진다. 카메라를 망원경 대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더니!


노원고등학교도 땡겨진다.


건너편의 북한산도 땡겨본다.


서울타워도 땡긴다.


대충 놀고 내려간다. 땀 다 식을라.


셀피 하나 남기도. 이건 스맛폰 사용.


길이 이상하다. 아까 올라왔던 길이 아니다. 이리 가도 되지만 이쪽은 절벽을 조금 매달리며 내려가야 한다. 무섭다.ㅠ.ㅠ 돌아선다.


갈림길 뽀인트.


학도암 트레일로 내려간다.


법회가 끝났다. 조용하다. 그런데. 이곳을 다시 찾은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대웅전 옆에 약수터가 있었다. 그곳에서 목마른 길손들이 목을 축일 수 있었다.

그런데 콘크리트 법당을 증축하면서 그것이 없어졌다.


부처님. 매정하게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부처님은 말씀이 없으시다.


등산로 옆에 있던 바위인데 어떤 아저씨가 뭔가 보고 있다.


참...나.....


불암산을 다 내려왔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보인다. 패총이라 배웠는데, 언젠가부터 조개무지라 하더라. 이 조개무지는 어떤 시대의 흔적일까.


복잡하다. 다시 골치 아프다.


아직 가로수의 단풍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천천히 천천히 움직였더니 너무 오래 걸렸다. 1시간 반이면 다녀오는 코스인데, 2시간 반이나 걸렸다. 겨우 5.3km 거리. 평균 시속 2.4km로 이동.


오늘의 일기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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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말에 경기도 양주의 나리공원에서 천일홍 축제를 했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천일홍이 뭔지도 몰랐다. 처음 들었다.

 

이런 것이란다. 붉은 빛이 천일 가기에 천일홍이라고...뻥이겠지?

 

공원의 배경이....배경이...

 

많이들 들어갔다. 그래서 들어가지 말라는 것일 것이다.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데 막 들어가는 막되먹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붉은 색으로 보이질 않는다. 어떻게 촬영을 했길래....ㅠ.ㅠ

 

천일홍 축제에 천일홍만 천만 송이 있으면 재미가 없지. 다른 꽃들도 있다.

 

나름 좀 일찍 서둘러 갔더니 사람들이 별로 안보인다.

 

꽃보다...

 

제대로 만들어진 사진이 없는 것에 대해, 일단 카메라 탓을 하고 있다.

 

꽃댑싸리.

 

공원 한쪽에 있는 핑크뮬리 밭. 이곳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여 있었다. 작품 사진도 만들고 계시고.

 

이른 아침 비가 좀 내렸다. 그 빗방울이 매달려 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반짝이는 것이 보석 같다.

 

빗방울을 머금고 있어 고개가 다들 무겁다. 전부 숙이고 있다.

 

반짝인다.

 

하지만..역시 가을에는 코스모스이다. 제일 낫다.

 

역광이라 그런가 하여간 색이 잘 안나온다.

 

얘는 원래 이렇고. 나비 찾기~

 

여러가지 색~

 

벌~

 

분위기 좋고 좋고~

 

꽃과 벌.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다.ㅠ.ㅠ

 

10월 2일 오전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래도 긴 연휴에 뭔가 한가지는 가족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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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답사에 참가하는 날이면 늘 그렇듯이 새벽에 일어나 동부간선도로를 달린다. 대청역 옆에 있는 중동고 지하주차장에 차를 맡기고 답사 차량에 동승. 서울의 정남쪽에 위치한 전주로 달렸다. 남쪽으로 달렸다.

추석이 가까워서 인지 벌초 등으로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길에 차가 가득, 휴게소에도 차가 가득, 사람도 가득~ 

화장실에 잠시 주저앉아 있으려 했었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포기했다.

 

안개가....

 

전주. 서문교회에서 다른 지역 팀과 랑데뷰. 일제의 식민지 수탈 역사의 기록과 흔적을 따라 군산으로의 경로를 답사하였다. 

카메라 아이콘이 찍힌 곳이 답사 지점들.

군산 내항에서 답사를 마감하고 전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간단히 하고 서울행~

 

서문교회 주차장에서 다른 지역에서 오신 분들과 랑데뷰하였다. 

'서문'교회인 것은 전주부 서문터 부근이기 때문이다.

답사 차량 세 대에 나눠타고 답사를 계속 진행하였다.

 

서문교회의 종탑이다. 미국에서 수입한 종. 1908년에 건립한 종탑.

 

서문교회.

 

교회 바로 옆의 점집.

 

전주부성 서문지 표지석. 바싹 붙어 주차해놓은 차량 '덕분'에 찾기가 쉽지 않다.

 

전주부성 '옛길따라 걷기'. 지도를 알아보기 어렵다. 역시 잘 '숨어' 있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은 '비단길시장'.

 

전주화교소학교.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74호. '현대이발소'가 문화재가 아니다. 가게가 문화재다. '구 중국인 포목상점'이었다고.

 

옛길의 흔적. 동산촌.

 

길을 따라 경찰서, 소방서, 우체국이 나란히 있다. 주변보다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한다.

1908년 전주~군산간 신작로가 개설되고 조촌면 반월리에 일본인 농장(동산농장)이 만들어지면서 한양으로 가는 길이 동산동을 통과하는 노선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동산동은 전주~이리~군산 노선과 전주~삼례~한양으로 통하는 삼거리로서 교통의 중심지가 된다. 또한 1914년 전주~이리간 경편철도 부설과 동산역 설치로 철도교통의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다.

 

삼례찰방역이 관할하던 평야.

만경강의 지류. 찰방역이라는 지명이 없어지고 '삼례리'로 대체되었으며 삼례철도역이 새로 생겼다.

 

콘크리트로 보강된 관개수로. 그때 그 시절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찰방이 위치하던 곳.

 

찰방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근사한 교회건물이 들어서 있다. '물론' 그와 관련된 안내 자료는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때 그시절의 우물.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음에 점을 찍는 시간'

 

깔끔한 뷔페식. '고령자 친화기업'이라는 처음보는 문구가 눈을 잠시 잡는다.

 

들어갈 때는 비리비리했는데, 나올 때는 배가 불룩!

 

식당 입구의 정원이 넓다. 답사원들이 모여 삼례 지역에 대한 지역주민(인솔자 선생님)의 소개를 경청한다. 인솔자는 전주고교에 재직중인 최진성 선생님인데, 잘 생기고 목소리도 좋아 넘나 부러운 분이었다.

 

식당 새참수레 옆에는 삼례성당이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이 이어진다.

 

바로 앞에 삼례 세계막사발미술관이 있다. 2013년 개장.

강점기에 양곡창고들이 있었던 곳이다. 이곳의 창고에 모인 양곡은 철도를 통해 군산으로, 그리고 일본으로~

이곳의 창고들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다가 2010년에 문을 닫는다.

<[철의 궤도: 전라선 철길 답사기 ③ 삼례역] 호남 발길 모이던 관문, 이제는 문화 중심지로>

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1123342

 

바로 앞에 삼례역이 있다. 근사해보인다. 완전 새거다. 

 

대장촌의 일본인 농장과 춘포역

 

이와자끼의 동산촌(전주 동산동), 가와자끼의 서수촌(군산 옥구-서수면)과 함께 호소가와의 대장촌(익산 춘포면)은 만경강 일대의 일제 수탈의 대표적인 흔적으로 꼽힌다.

호소가와 농장의 주임관사가 남아 잘 관리되고 있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11호.

 

사람이 거주하면서 관리하기에 깨끗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 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둘러볼 수 있었다.

 

주임관사보다는 격이 떨어져 보인다. 호소가와 농장의 사무실이었다고 한다.

 

문닫은 도정 시설. 멸공 방첩 소득증대!

 

내부.

 

           최고의

현존하는   V   간이역. 춘포역.

 

자그마한 역사만 남아 있다.

 

위로 전라선이 지난다.

 

오산면 일본인 농장과 식민지 경관

 

오산면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들어왔었다. 동척.

 

오산교

 

발산초등학교

 

발산초등학교 교사 뒷편에는 요상한 건물이 하나 있다.

 

일본인 농장의 창고. 보물창고.

 

등록문화재 제182호. 일본인 농장주 시마타니의 보물창고였다고 한다.

 

 

내부는 여러 층으로 되어 있어 상당히 많은 훔친 혹은 빼앗은 보물들을 저장하여 둘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발산초등학교 자체가 시마타니 농장의 창고를 개조한 여섯 개의 교실로 출발했다고 한다. 1946년에.

시마타니는 일본에서 주조업으로 재산을 모은 후 일본 청주의 원료인 값싼 쌀을 찾아 군산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1903년에 발산리 인근의 토지를 매입하여 농장주가 된다. 이후에도 계속 토지를 매입하였던 시마타니는 땅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했기에 해방 이후에도 자신의 땅을 지키려고 미군정에 한국인으로 귀화를 신청했고 끝까지 귀국을 거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군정의 권유가 계속 되자 부산을 통해 귀국했다고 한다. 개인금고 건물을 가득 채웠던 골동품들을 서울에서 온 박물관 사람들(?)이 미군 트럭을 끌고 와 싣고 갔다고 한다.

그러고도 남은  보물들이 학교 뒷편에 남아 있다. 보물 제234호, 제276호 등을 비롯해 다양한 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옥구 저수지

 

옥구저수지. 옥구간척지 일대의 논에 관개 용수를 대기 위해 1923년에 만들어진 저수지이다. 골짜기를 둑으로 막아 만들어진 그런 저수지가 아니다. 평지에 사방으로 둑을 쌓아 만든 저수지라는 점에서 특이한 저수지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릴 것을 기대했으리라. 하지만... 

비어 있는 건물은 쇠락하고 있다.

 

위의 건물에서 김석용 선생님이 우리 일행의 단체 사진을 박아주셨다. 배경은 당연히 옥구저수지.

 

모퉁이에 비석이 있다. 그래서 비석거리 슈퍼가 있다. 버드나무 아래의 그늘에는 동네 어르신들 몇 분이 쉬고 계셨다.

 

불이농촌: 군산 미성동 열대자 마을

 

하늘에서 드론이 본 열대자 마을(남호석 촬영). 

 

하늘을 덮었던 근사한 연무.

 

불이농촌은 불이흥업주식회사의 간척사업으로 만들어진 간척지에 조성된 간척지 마을이다. 옥구저수지를 중심으로 남쪽에는 한국인들이 소작하는 농장으로, 북쪽으로 불이농촌이라 하여 일본인 이주자들에게 불하하였다.

 

열대자 마을은 그러한 불이농촌의 하나이다. 열대자는 원래 '열 댓 자' 즉 '열다섯 자(15척)'란 뜻으로 도로 폭이 열다섯 자나 되게 넓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시골 논두렁 밖에 보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열다섯 자 폭의 도로는 신기한 대상이었으리라.

이런 넓은 도로가 필요했던 것은 일본인 정착촌들 사이를 잇는 간선도로의 기능 때문이었을 것이다.

 

군산 원도심. 군산 신사터. 군산 내항.

 

동국사 가는길

 

흠... 2012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국무총리상 수상에 빛나는 문화공간을 지난다.

 

동국사. 일본식 사찰이다.

 

 

한 켠에는 군산평화의소녀상이 있다.

 

 

사찰 뒷편에는 대나무가 우거져 있다.

 

앞마당에는 은행이~

 

참회와사죄의글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1983년에 군산을 처음 찾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였을까, 좀 음산하다는 느낌으로 기억한다.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이상한 모양의 건물들이 굉장히 많이 보였고. 일본식 가옥과 건물들이 그때까지 그렇게 많이 남아 있는 것은 그것들을 보전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변화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계기였다. 근대화의 음영 지역.

지금은 그러한 것을 지역 이미지화하여 장소 마케팅에 이용하고 있다.

 

똥!

 

다행이다. 이런 빵을 내가 좋아하지 않아서....

 

군산신사터.

군산서초등학교 뒷편에 군산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학교 앞에는 '장건강에 좋은 무엇인가'의 총판점이 있다.

 

답사 종료 예정 시간이 한참 지났다. 파할까 했는데, 뜬다리부두를 보고 싶다는 분들이 계셔서 내항으로 향했다.

 

뜬다리부두란? 이렇게 "뜬"다리 부두를 말한다. 항상 "뜬" 것은 아니다.

안떠 있을 때는 안떠 있다.

그렇다. 밀물과 썰물의 높이 차이가 큰 해변의 항구의 접안 시설인 것이다. 여러 곳에 있지만 군산의 것이 가장 유명하여 남호석 사장님이 특별히 드론을 띄워 밀물 때와 썰물 때의 모습을 촬영하였다. 최고!

 

이리저리 흩어지고 답사차량 1대만 전주로 돌아왔다. 

'퓨전 어울림'을 찾았다. 역시 저녁 시간의 전주는 이리보나 저리보나 최고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찍 "꼭" 서울로 돌아와야 했기에 답사 가기 전부터 가슴 아팠다. 답사를 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했었었다. 당연히 답사 중에도 계속 신경쓰였고, 퓨전에서도 신경쓰였다.

결국 마지막에 여러 분들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몰래 미안하다고 두 손모아 사과드린다~

 

다음부터는 무리한 참석은 안하기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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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래간만의 렌즈 구입이다.

3년 간 구입은 하지 않고 있던 것들을 팔아먹기만 했다.


slrclub.com에 올라온 사용기가 문제였다. 가벼운 바주카포 렌즈.

장터를 뒤졌다. 별로 매물이 없다.

올해 출시된 렌즈라서 그런 것 같다.

온라인 매장을 검색했다. 악명이 자자한 매장은 제외하고 10여 군데를 비교하였다. 주문을 망설이면, 택배 도착 날짜만 늦어진다는 격언에 따라 바로 주문을 넣었다.

9월 12일, 화요일 퇴근하여 박스를 뜯었다.

렌즈 박스는 작고, 아담하다.

그러나 본체는 망원 줌렌즈이다.

400mm 구간으로 갈수록 길어진다.

이래서 바주카포라는 표현을 했나보다.


망원 구간에서 얼마나 땡겨지는지 보았다.

아파트 창 밖으로 보이는 불암산이다. 봉우리에 뭔가 있다.

100mm


200mm


300mm


400mm

실감이 팍팍 오는 것은 아니지만 땡겨지는 것 같기도 하다.


불암산은 돌산이다. 화강암 덩어리.


틈새(절리)에서 아래 쪽으로 국물이 흐른 자국들이 많이 보인다.


국물 자국.


어두운 쪽을 배경으로 하고 스팟 측광으로 해서 뭘 만들어 보려 했는데...조리개 조절 실패.


9월 13일. 낮에 나온 반달.


학교 정원의 나무. 먹을 만한 벌레들이 많은가보다.


꽃 한 송이.


학교 정원 한 쪽에 있는 돌 덩어리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 중 하나.


나뭇가지 사이에서 먹을 것을 기다리는 친구. 촛점을 수동으로 맞추며 촬영하느라 숨 넘어갈 뻔 했다. 힘들다. 이런 사진.


풀프레임 카메라에 사용 가능한 망원 줌 렌즈.

100-400mm 렌즈 치고는 작다. 필터 구경은 67mm. 무게도 감안할 수 있다.

하지만 400mm에서 길이가 주욱 늘어나고 후드 길이까지 더해지면, 좀 길다.

그리고 가벼운 렌즈라지만 나의 팔은 힘들어 한다.

그래도...

1월에 사파리를 경험할 예정인데, 그 준비를 위해 구입한 것으로 친다.

아...사은품으로 맨프로토의 모노포드를 주더라. 그리고 이벤트가 끼어 있었다. 백화점 상품권 10만원 짜리...


올 여름 중앙 아시아 여행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셀카봉을 구입했었는데...^^


================

20170917 야간 테스트


망원 때문에 구입한 렌트이므로 모두 400mm.


집 옆에 있는 건물 외벽의 이름표.


주차장.


길 건너편. 호흡을 멈추고......


반대편 아파트 상가. 오토 포커싱이 되질 않는다. 수동으로 맞추려 했지만...어렵다.


실내. 식탁등. 역시나 포커싱이 느리다.


대충 눌렀는데, 흔들렸나보다.  400mm에서는 조리개 최대 수치가 6.3이다.

손떨림방지 기능이 열심히 일을 안하는 것일까?


조리개를 8로 조여 보았다. 조리개 탓일까, 아니면 호흡을 더 신경썼기 때문일까...위의 것보다 좀 낫다.


크게 고민을 하지 않고 구입한 렌즈.

일단 아프리카는 같이 갈 것 같다.^^


이상 렌즈 테스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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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예고편. 한글 자막~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있는 개의 이야기이다.

전장에 투입된 개, 그리고 그와 끈끈한 정을 쌓은 인간의 이야기이다.


군대와 군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태도가 부러워지는 영화이다. 누군가 군대에서 무슨 임무를 맡았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나는 그것보다 더 힘들었었다고 하면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나도 힘들었지만 상대도 힘들었다는 것을 그냥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인지.

미국을 위해 누군가가 목숨을 바쳤다면 그것에 대해 미국인들은 무한한 존경심으로 보내준다. 그리고 심지어 전쟁 중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면 개의 행위에 대한 가치도 인정해준다. 부럽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 명예를 위한 기꺼이 목숨을 걸어주는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리라.


(아래 사진들의 저작권은 Dogs of War LLC에 있을 겁니다)

미국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며 미군 이야기이며, 미군의 군견 이야기이며, 미국의 전쟁 영웅 이야기이기에 영화 포스터는 미국 국기 자체가 되어버렸다.


미국의 평범한 젊은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비정규직으로 지내며 삶에서 권태로움을 느끼던 차, 해병대원들이 눈앞에 살짝 지나간다.

훈련소 수료식. 어머니와 남친이 축하. 아버지는? 편치 않은 가정사.

이라크 파병 후 동료들과 술 잔치. 노상 방뇨. 하필 해병대 건물 밑에서. 징계 조치로 군견을 만나게 되어 렉스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이런 저런 사연이 지나고 렉스와 임무에 나가 훌륭한 성과를 보인다.


임무에 나갔다가 공격을 받아 군견과 군견병 모두 부상을 당한다. 하지만 미국의 해병대원이 여기서 그대로 후송된다면 영화가 되질 않는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더욱 악화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자진하여" 나서고, 그것을 완수!

훈장! 

이후 제대를 신청하고 렉스를 입양시키고자 하였으나 ... 거부된다.

렉스가 또다시 아프카니스탄으로 파병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렉스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계속 걱정하면서.


별거하던 아버지로부터의 조언과 군대의 후임으로부터 렉스를 안락사시킬 수도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면서, 렉스를 입양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영화였다면 금방 해결되었을 것이다. 무려 해병대이니까.


하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어렵다. 자료를 찾아보니 무려 6년 간이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의원에게 탄원하고, 서명 운동을 하고, 그것을 토대로 방송 출연도 하고 했던 모양이다.

결국,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는 결말로 이어진다.

이건 뭐지? 하고 시작했던 영화의 마지막은 미소를 머금게 한다.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다.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 그래도 있어야 할 것은 다 있다. 빠르게 진행된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국내 개봉은 아직 되지 않았다. 

추천.

그런데 위에 링크시킨 예고편이 영화의 내용을 참 잘 담고 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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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8일. 타슈켄트를 파본다.

숙소인 시티팔레스 호텔에서 타슈켄트의 토성 발굴 장소인 밍오릭을 먼저 들렀다. 문을 안열었다. 김병화 콜호즈였던 곳에 있는 김병화 박물관으로 간다. 타슈켄트에 들어오면서 다시 밍오릭. 타로나 식당에서 점심.

지진기념탑, 하즈라티 이맘 모스크, 초르수 시장, 티무르 박물관을 보고 가마솥에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는 타슈켄트 국제 공항.

 

지난 밤도 잘 잤다. 너무 잘 잤다. 자꾸 터무니없이 일찍 잠드는 것에 습관 들어버린 것 같다.

귀국하여 시차 적응에 애먹을 것만 같다.

9시에 출발 예정이다. 왜 7시 한참 전부터 어두컴컴한 복도로 나가는지 모르겠다. 배고팠구나~

`

아침 가뿐하게 해치우고 와이파이의 바다에 빠진다. 9시가 다가온다. 버스에 타야한다. 아쉽다.

밍오릭. 원래 일정에 없던 곳이다. 상당히 의미 있는 곳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관리책임자도 잘 안찾는다. 시간이 되었는데 문을 안열어!!!!!

 

꽃을 보며 안정을 취한다.ㅡ.,ㅡ

 

김병화 박물관을 먼저 다녀오기로 한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토성 안녕~~

 

타슈켄트 시내를 벗어나 A373 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린다.

시내 시장으로 수박 팔러 당나귀 수레에 잔뜩 싣고 가는 아저씨.

저것 팔고 나면 기름값이나 나올지...... 아, 당나귀구나....

 

A373 도로를 달리다가 보면 길 오른쪽으로 작은 언덕이 있다. 이것이 뽀인트. 그 다음 보이는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면 된다. 

동네 이름은 Chuguntepa. 가는 곳은 Kim Pen Khva Kolkhoz 김병화 콜호스.

 

김병화 박물관은 현지인 장에밀레 할머니가 관리하고 있다. 올해 78세.

멋쟁이 할머니였다. 한국 단체 방문객이 온다하니 꽃단장을 하고 나오셨다.^^

박물관 문을 따고 입장~

 

평소에는 문을 걸어둔다. 찾는 이들이 없기에.

찾는 사람들이 있으면 관광 가이드들이 연락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미리 연락을 드리면 시간에 맞추어 문을 여는 것이다. 

우리가 갈 때는 할머니 댁이 떨어진 곳에 있고, 약속 시간에 맞추어 길가에 나와 계신 할머니와 랑데뷰하여 버스로 모시고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이 분이다. 40여 년간 교사를 하셨단다. 나름 깨인 분이라 이 분이 박물관 관리를 맡고 있다고 한다.

이 분 다음에 맡아서 관리할 사람을 아직 찾질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

김병화 동상. 그 가족들이 엊그제 와서 꽃을 놓고 갔단다.

 

다른 분들 사진 모두 찍고 가신 다음에 스을쩍 셀피~

 

대단한 사람. 집단농장 콜호즈 책임자가 된 후 영웅훈장을 두번이나 받았다고 한다.

 

동상 옆에 서서 인증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박물관 내부. 그가 사용하던 책상 뒤편 벽에 커다란 사진, 그리고 그가 남긴 말. 그는 러시아인이 된 것이었다.

 

사막에 관개 수로를 만들고 물을 끌어들여 농경지를 늘려 나갔다.

그의 신조는 "강인성 참을성 노동"이었다. 얼마나 빡세게 노동을 하였을꼬.

사막을 식량 생산 기지로 만들어낸 그의 공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돋보였으리라. 스탈린의 눈에 들 수 밖에.

 

박물관 내부에는 김병화와 관련된 소소한 자료들은 물론 당시 콜호즈의 생활과 관련되는 다양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흐루시초프와 기념 사진 찍기~

 

"레닌의 기치" 신문사 사원일동. 훈장 축하~

 

길 건너에 유치원이 있다. 이 동네 아이들은 아이들같다.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귀엽더라.

 

수영을 할 예정인 것 같다. 수영장 청소 중이다. 그동안 기다리라고 한 모양이다.

얌전히 그대로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자기 애들 기를 살려 키운다는 것에 목을 메는 어떤 나라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모습이라 무척 신기하기도 했다.

 

타슈켄트로 들어오는 길. 역시 날이 더우니까 시원하게 창문을 열고 다닌다.

 

창문 열고 달리는 차량. 아주 시원해 보인다.

 

얜 모지?

 

타슈켄트 시내로 다시 들어왔다.

 

또 보네. 밍 오릭. 살구나무 천그루라는 뜻이란다.

 

주택가 한가운데에 있다. Moshtabib Street.

아래의 판떼기에 있는 내용을 번역해보면...

750년 고선지가 쳐들어와서 탸슈켄트(타슈는 '돌', 켄트는 '나라'라는 뜻이라고. 그래서 중국에는 石國이라고 알려져 있다.)를 박살냈다. 모든 집과 건물을 불태웠다. 무서운 놈. 또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밍 오릭은 그 때 타다 남은 부분이다. 지금도 발굴하다 보면 잿더미와 유골이 발견된다. 발굴은 2008년 러시아의 석유회사인 LUKOIL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후원사 부분만 색이 다르고 지워지지도 않았다. 후원이 중요하긴 하지.

 

부서지다 만 토성의 흔적.

 

구경하기.

 

유물들이 흙벽에 박혀 있는 상태.

 

벽에 작은 구멍들이 아주 아주 많이 뚫려 있다. 뭔지 궁금하면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보면 된다.

아마 큼지막한 벌이 침을 똬악 놓아줄 것이다. '아야!'하고 소리치면 된다.

 

한 쪽에는 기념품 판매점 및 식당이 있다.

처마 부분에서 물을 분사시킨다. 더위 식히기?

 

길가의 택시. 홈페이지 주소가 보이길래 찍어보았다.

 

11시45분. 어찌할까? 하는 질문에 그냥 먹으러 가자~

조금 이르지만 점심 먹으러 왔다. Tarona 식당. Kari Niyazov Street.

스프와 양꼬치. 맛 괜찮다. 양꼬치를 양파와 같이 먹으면 더 낫다. 더 드실 분? 하는데 막 더가져오지 말라고 하는.... 

음....나는 더 먹고 싶었는데...왜!

같은 테이블의 다른 분이 여분을 주셔서 더 먹을 수 있었다. 와우! 감사~

 

1시5분 식당을 떠난다.

 

식후 일정 첫번째. 지진 기념탑.

 

동상의 제목은 '용기'

요기에 친절하게 잘 설명되어 있다. 참고하기~

https://ru.wikipedia.org/wiki/%D0%9C%D0%BE%D0%BD%D1%83%D0%BC%D0%B5%D0%BD%D1%82_%D0%9C%D1%83%D0%B6%D0%B5%D1%81%D1%82%D0%B2%D0%BE_%D0%B2_%D0%A2%D0%B0%D1%88%D0%BA%D0%B5%D0%BD%D1%82%D0%B5

 

'용기'와 같이 사진찍기. 아주 큰 '용기'다~

사진의 오른쪽 아래 있는 돌덩이 시계가 지진 발생 시각을 표현한 것이다.

 

1966년 4월 26일. 오후 5시23분. 대지진이 이곳에서 발생하여 다 부서지고 많이 죽었다.

자연의 재앙으로부터 아이와 여자들을 우즈벡 남자들이 지켜냈다는 의미를 담으며,

우즈벡 민족을 기념하고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1976년에 이 동상을 만들었다고.

 

독실한 이슬람 신자이며 세 아이의 아버지인 베흐조드 아저씨가 보여주고 싶어한 것이 있었다.

코란 원본. 그것이 보관된 곳으로 간다.

 

주차장에서 들어가면서 있는 첫번째 건물. 베흐조드 아저씨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우즈벡에서는 공공 건물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고 한다. 테러 의심을 받을 수 있다나.

 

그래서 모스크를 구경하는 관광객을 찍었다.

멀리 보이는 것은 정원수. 그 멀리 보이는 것은 아마 Muslim Board of Uzbekistan일지도. 우즈벡에 2,230개의 모스크가 있고, 그만큼의 이맘이 있는데 그들을 관리하는 기능을 하는 기관이라고 했다.

 

하즈라티 이맘 대 모스크.

 

무슬림은 하루에 다섯번 기도를 해야 한다. 보통은 대충하는데, 이렇게 시간을 정해주기도 한다.

계절에 따라 해가 뜨기 전, 후의 시간이 달라질 수 있어 이렇게 시계로 보여준다. 이대로 하랏!

 

실내. 2,500여 명이 동시에 기도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미흐랍과 민베르가 사진 오른쪽에 보인다.

 

기도 시간이 아닌지라 중앙의 정원이 고요하다.

 

화장실. 모스크의 화장실이므로 당연히 무료!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내고 기도하러 들어가야하기에 씻는 곳도 준비되어 있다.

 

모스크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연인들. 그녀는 예뻣다!

 

3대 칼리프 오스만 때 코란을 정리하여 3권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을 7세기경에 카피하여 10권을 제작하였다. 하즈라티 이맘 모스크 바로 옆의 Muyi Muborak Madrasah의 전시관에 그 중의 하나가 보관 중이다. 항온항습 상태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당연히 보안이 철저하다. 당연히 사진 촬영 금지이다. 당연히 촬영한 사진이 없다.

http://uztravelguide.com/uzbekistan/sights-of-uzbekistan/tashkent-sights/177-muyi-muborak-madrasah-and-tilla-sheikh-mosque

 

7세기에 만들어진 코란. 오스만 코란이라 불린다. 코란의 책자는 큼지막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글자인지 그림인지는 큼직 큼직하다. 유리관 내부에 철저한 보안 상태에서 보관하고 있으므로 다음 사진에서 처럼 구경만 할 수 있으며 사진을 찍을 수 없다.

https://orexca.com/osman_koran.shtml

 

옆에는 바라콘 마드라사가 있다. 기념품 상가로 이용되고 있다. 날 덥다. 시원한 음료수 한 병의 은총을 입었다.

 

초르수 재래 시장을 들렸다. 사고 싶었던 물건이 있는 분들이 계셨다. 시장에서 주차장까지 조금 걸었다. 더웠다.

 

초르수 재래시장. 전혀 '재래' 시장 답지 않은 모습의 외관이다. 멋지지 아니한가!

 

차에서 멜론을 꺼내는 가스통 할아버지. 

천연가스 매장량이 많은 고로 대부분의 승용차는 가스 차량이다.

 

들어가기 전에 한 컷. 역시 얼굴 껍데기가.....ㅠ.ㅠ

 

돔형의 지붕. 넓은 실내.

 

매대에 번호가 매겨져 있다.

 

붐비는 시간은 아닌 것 같다.

 

호근씨를 보고 '주몽'을 외치던 아저씨들. 우즈벡에서 주몽을 방영했나보다.

 

상인들이 상품을 운반하는 작은 수레에도 번호가 매겨져 있다. 아무 차나 못들어온다. 아마도.

 

길 건너에 보이는 초르수 플라자.

 

개학 때가 다가오나? 학용품 특설 시장도 있다.

 

물론 길바닥 매장도 있고.

 

버스 정류장. 옆의 주차장에 버스가 있었다. 더웠다........................................마, 됐다.

 

티무르다. 티무르. 그가 있는 곳으로 간다.

 

Amir Timur Museum

Amir, Emir는 이슬람 국가의 왕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혹은 모하메드의 자손에 대한 존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박물관도 시커먼 카메라로 촬영하기 위해서는 포토 티켓을 끊어야 한다. 구매하지 않았다!

 

티무르 대제와 관련된 여러가지 자료들을 짜임새 있게 잘 전시해두고 있었다.

 

작은 모형들 혹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런데 포토 티켓을 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분이 조금 세세하게 촬영을 하고 있으니까 직원이 나와서 제지를 했다. 그럴려면 포토 티켓을 왜 파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박물관 밖은 덥다. 정원수, 가로수들에게 시원한 물세례~ 

부러워~

 

뒤에는 티무르 박물관.

 

앞에는 그의 동상.

 

공원, 아미르 티무르 광장 복판에 그가 있다. 멋지다.

 

공들여 만들었다. 세세한 묘사.

 

그들은 달리고 싶어 한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역동적인 모습의 동상을 잘 만들더라.

 

하지만....덥다.ㅠ.ㅠ

그늘을 찾는 사람들~

 

Sailgokh Street를 따라 걷는다. 법무부 건물이다.

 

거리 한쪽에 많은 그림들을 길거리에 내놓고 있다. 그리고 있기도 하다. 전시 및 판매.

그림을 감상하면서 쉰다. 5시25분.

 

우즈베키스탄 구간에서 성질 좀 있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고생을 너무 많이 한 두 남자. 피곤해보인다. 피곤할 것이다.

조금 떨어져 앉아 있던 두 사람을 사진 속에서 가깝게 붙여 보았다.

베흐조드는 세 아이의 아버지인데.... 남 총각도 빨리 총각 신세 면해야 할 텐데..낚시만 다니지 말고...

 

여기까지로 우즈베키스탄의 일정이 끝났다.

 

저녁은 또 뜨거운 가마솥에서 먹는다. 

 

베흐조드 아저씨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식재료에 돼지고기가 사용되므로. 심지어 이 식당의 물도 마시지 않더라.

 

6시 반에 공항으로 출발한다.

 

6시50분에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 들어가면서 신분증 검사하는 줄이 꽤 길다. 해서 지폐 약간을 사용한 작은 꼼수를 사용해 옆문으로 들어갔다.

보안 검색 마치고 입장. 줄서서 기다리다가 표를 받고 짐을 붙이고 또 보안 검색을 하고 게이트로 간다. 모든 수속 마치니 8시.

10시20분 비행기.

 

8월9일 아침 9시경에 인천공항에 내렸다. 자동출입국검사는 편하다.

짐을 찾고 일행과 헤어진다. 또 다음 답사를 기약하며.

지오트립 사장님이 가는 길이라며 집까지 태워다 주었다. 고맙지만 미안하게시리~

 

미리 공부를 제대로 못하고 간 답사였다. 지나면서 이런 것을 미리 공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같은 혹은 비슷한 코스를 다시 한번 다녀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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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 사마르칸트의 날이다.

부하라에서 사마르칸트까지 270킬로미터 거리라서 서둘러야 한다.

5시반에 웨이크업 콜, 6시15분 아침, 그리고 6시54분에 출발했다.

 

지도를 보면 부하라에서 사마라칸트까지 직선 코스를 달리지 않는다. 부드럽게 호를 그린다. 이것은 두 도시 사이를 흐르는 제라프샨 강 때문이다. 제라프샨 강을 따라 녹지대가 분포하고 농업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거주하고, 도시가 있기 때문에 도로가 그러한 거점들을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미르 고원에서 발원하는 제라프샨 Zeravshon 강은 부하라를 지난 후 사막으로 흘러들어 사라진다. 길이는 약 877킬로 미터.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떠오른다. 불덩어리가 다가오는 느낌이다.

간 밤에도 정전. 2회.

 

칼리안 모스크, 그 옆으로 칼론 미나렛이 보인다.

 

7시 출발 예정이었는데, 6시54분 준비 완료. 바로 출발하였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당연히 아랍 어가 표준어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아랍 어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IS와의 관계 가능성 때문에 그러하단다. 대신 우즈벡 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문자는 라틴 문자를 끌어다가 사용하고 있다고.

독실한 신자인 베흐조드 아저씨는 우즈벡의 전통 문제도 걱정하고 있었다. 기도 횟수를 제대로 채워서 지키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란다.

이슬람의 헌금에 대해서도 버스 안에서 한참 이야기해 주었다. 기독교에서는 11조를 하지만 이슬람은 그렇지 아니하다고. 40분의 1을 내면 된다고 한다. 그것도 재산이나 번 돈의 40분의 1이 아니라 쓰이고 있는 않는 돈의 40분의 1이라고 한다. 그것도 1년에 한 번. 그러니까 그 액수는 거의 부담이 되지 않는 정도라고. 가정을 이룬 성인 남성 기준이 그러하며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더 낼 수도 있기는 하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며 독실한 이슬람 신자인 베흐조드는 이슬람 문화에 대해 가능하면 많은 것을 알려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우즈벡에 대한 자부심도 보인다. 지금은 어렵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 많은 자원을 갖고 있다는 것 등등에 대한.

고속도로 반대편 차선을 달려오는 차가 전조등을 깜빡이며 지나간다. 만국 공통의 신호일까? 앞쪽에 경찰이 있다는.^^ 베흐조드가 웃는다. 월요일부터 경찰아저씨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이란다.^^

 

8시20분. M37 고속도로를 따라 부하라에서 사마르칸트로 달려가다가 카라반 사라이에 정차하였다. 실크로드에 있는 카라반들의 쉼터, 휴게소답다. 주인 출근 전~

 

Rabat-i-Malik Caravanserai와 길너편의 수조.

 

Rabat-i-Malik 카라반사라이의 입구.

 

들어가자.

 

문패. 옛날 발음을 옮겨 적은 것이라서 철자에서 약간씩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유적지의 모습. 뭔지 잘 모르겠다.

 

건물들이 있었던 흔적이다. 헌데 원래 이렇게 생긴 유적이 아니라고 한다.

 

유적을 보호한다고 그 바깥쪽으로 벽돌들을 덧붙여놓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보호하는 것이 맞나?

 

두 남자. 어이~

 

촬영 중.

 

바로 인근에 위치한 물탱크, 수조이다.

Rabat-i-Malik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11세기에 건설된 수조이다. 인근의 제라프샨 강으로부터 지하의 운하를 통해 물을 끌어들인 것이며, 돔형 지붕이 햇볕을 차단하기 때문에 깨끗하고 여름에도 시원한 수질을 유지한다. 

카라반 루트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대상과 여행자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기능을 하였다.

 

꽤 큰 웅덩이가 있었고, 물은 깨끗해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가본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장구벌레가 가득이었다고. 옛날에는 어찌하였을 지라도 지금은 식수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Rabat-i-Malik은 여행자들의 쉼터였을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고고학적 발굴 결과로 드러난 것을 그것과 다르다. 이 지역 지배자였던 카라한 왕조의 거주지였을 확률이 더 큰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유목민이었던 카라한 왕조는 겨울철의 왕궁을 떠나 여름철에는 스텝 지역에 있는 거소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그러한 여름철 거주지 중의 하나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다음의 링크 참조)

http://www.advantour.com/uzbekistan/navoi/rabat-i-malik.htm

 

부근에는 나보이가 있다.

고속도로와 제라프샨 강 사이에 Navoi Free Industrial Economic Zone이 있으며, 남쪽으로 나보이 국제 공항도 위치하고 있다.

자유무역지대에는 한국 기업의 공장들도 입주해 있다고 카더라~

 

200mm렌즈로 당겨보았다. 멀리 공장들이 보인다. 나보이 자유무역지대.

 

나보이 국제공항이다.

 

대한항공의 국제 물류 센터가 이곳 나보이에 입지해 있다.

 

와~

 

공항 외곽 경비대.

 

날아간다~

 

달려간다~

 

기다린다~

 

걸어간다~

 

길가에서 보이던 나보이 발전소. 화력 발전소이다.

 

하늘에서 보면 이렇게 보인다~  나보이 시의 제라프샨 강가에 위치하고 있다. 냉각탑 두 개.

 

나보이 시내의 길가 식당. Qirk Chinor.

화장실을 빌리러 정차하였다.

 

 

멈춘 김에 커피 한 잔 하고 가기로 하였는데...... 티스푼이 그냥 스푼이다~~^^

 

커피 대접 받았다. 대접~^^

 
나보이에서 사마르칸트로 가는 길가 풍경.

 

자거거 타는중~

 

물 판매중~ 무인 판매대가 종종 보인다.

 

구경하며 걷는중~

 

수박 판매중~

 

수레로 붉은 색 가스통 운반중~

 

수레를 풀고 소는 풀 뜯는중~

 

운반중~

 

걷는중~

 

공사중~

 

수리중~

 

원두막에서 쉬는중~

 

수다중~

 

 소각중~

 

대기중~

 

수확중~

 

구경중~

 

제라프샨 강에서 멱감는중~

 

말타는중~

 

수레가 트럭과 경주중~

 

흐르는중~

 

달리는중~

 

흥정중~

 

도로에서 운전하던 운전자가 갑자기 문을 여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씹는 담배 찌꺼기를 뱉어낸다고 문을 연다는데..

 

11시15분 사마르칸트로 들어오는 마지막 검문소를 통과했다.

실크로드의 거점 도시, 사마르칸트이다.

사마라칸트 시내를 진입하면서 종이공장을 먼저 들렀다. 울르그벡 천문대, 아프로시압 박물관을 들른 후 서쪽으로 쭈욱이 아니라 조금 돌아서 달렸다. 점심식사.

구르 아미르, 레기스탄 광장의 마드라사 둘, 비비하눔 모스크를 들른 후 사마르칸트 역에서 가서 열차를 기다렸다.

 

M37 고속도로를 따라 달려 사마르칸트에 도착하였다. M39 고속도로를 살짝 밟고는 시내 방향으로 접어든다. 사마르칸트 전통 방식으로 종이를 생산하는 공장을 방문하였다. 12시.

사마르칸트 시내에서 5킬로 미터 정도 떨어진 Koni Ghil이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다.

 

우리나라 전통 종이는 닥나무를 이용하지만 이곳에서는 뽕나무를 이용한다. 둘 다 같은 집안의 나무들이므로 큰 차이는 없는가부다.

 

껍질 벗기기 작업중.

 

물방아를 이용하여 빻기

 

물에 불려 뜨기.

 

눌러펴기. 만져보세요~~~

 

말리기.

 

자랑하기.

 

이것이 사마르칸트 종이. 사마르칸트 종이에 인쇄한 것과 다른 종이에 인쇄한 같은 내용을 비교하여 시인성이 훨씬 좋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쇄된 내용은 "751년 7월 중국 군대가 중앙 아시아 국경인 탈라스 강을 건너 쳐들어왔다. 사마르칸트의 지배자였던 Abu Moslem은 침입을 격퇴하고 2만여 명의 중국군을 포로로 잡았다. 이들 중에는 많은 재줏꾼들이 있었는데 종이 제작 기술 보유자도 있었다....."

 

사마르칸트 종이의 유래와 재생산 과정을 간략하고 서술한 내용이다.

 

 

다양한 색깔의 종이 제품들.

 

다양한 제품들.

 

 

 

 

벽에 이런 것이 걸려 있다. 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취소된 사람. 우즈베키스탄 KSP 경제 고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KSP? 캠코에서 추진하고 있는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이라고 한다.

 

생산 공장의 모습.

 

중국에서 시작된 종이 제조 기술이 이렇게 세계로 퍼졌다고 한다.

해상도가 낮아 잘 안보인다. 그래서 다른 지도를 인용해본다. 751년 중국으로부터 종이 제조 기술이 사마라칸트까지 전파되었다.

 

사마르칸트 종이는 고선지 장군의 군대를 통해 전래된 것이라고 한다. 품질이 좋아 성업하였으나 18세기에 그 맥이 끊겼었던 것을 재연한 것이다.

사마르칸트 종이를 재연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Zarif Mukhtarov이다. 웹 페이지도 없고 따라 홍보를 하지 않고 있음에도 사마르칸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곳 공장을 찾고 있단다. 연간 약 5,000여 명 정도가.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4/jun/02/uzbekistan-culture-silk-road-paper-craft

 

 

사마르칸트 시내로 들어왔다. 울르그벡 천문대와 아프로시압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아프로시압 언덕의 아랫 부분 길 가에 이러한 토굴들이 여럿 보였다.

과거 집시들이 살던 토굴이라고 한다. 지금은 거처를 옮겨 비어 있는 상태. 이곳의 집시들은 인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울르그벡 박물관.

 

천문대 시설.

 

울르그벡.

 

박물관 내부의 전시 자료.

눈에 익다.

 

이곳의 천문학 성과가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까지 전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사이트에서 가져온 자료이다. 자세한 내용은 위키피디아의 울르그 베그 항목을 참고..

1987년 쏘련에서 나온 우표. 울르그 베그의 초상과 그의 천문대 모식도를 묘사하였다. 쏘련 연방이라고 우즈베키스탄의 인물들도 자기네 우표에 그대로 사용한 것인가보다.

 

밖에서는 결혼식 행사를 한다. 축하~

 

 

아프라시압 박물관.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람들이 묘사된 벽화가 소장된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진품을 이곳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다.

 

이것은 그림을 그린 그림이다.

 

조우관을 쓴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

 

이 부분이다. 보존 상태는 좋치 아니하다.

 

발굴지 모형.

 

발굴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베흐조드 아저씨.

 

묘한 형태의 두개골들도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밖에는 티무르 아저씨 동상이 큼지막하게 만들어져 있다.

 

1시10분이다. 배고파~

 

 

사마르칸트 시내를 관통하여 식당을 찾았다. Karimbek. 2층으로 된 근사한 식당이다.

닭고기 스프가 인상적이었던 곳. 맥주 하나 먹자고 했더니 생맥주 한 잔이 나왔다. 다른 분들은 아무도 안드셔서 할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혼자 꾸울꺽!

먹었으니 오후 일정을 이어간다.

 

Gur-e Amir Complex. 티무르 왕의 영묘이다.

 

티무르 왕의 영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드아~ 

어디?

 

여기! 티무르 박물관.

 

이 아저씨다.

 

정문. 구르 에미르는 1404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원래는 티무르 왕이 요절한 손자를 위해 만든 묘이지만, 티무르 무덤이 만들어졌고, 울르그벡도 이곳에 묻혔단다.

 

올려다보기. 입구의 장식도 현란하다.

 

내부의 천정. 돔.

 

석관. 진짜는 아니다.

 

화려한 벽 장식.

 

화려한 천장의 금장식.

 

레기스탄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Registan Ensemble을 중심으로 Sherdar Madrasa, Tillya-Kori Madrasah, Ulugh Beg Madrasa의 세 마드라사가 모여 있다.

 

레기스탄 광장. 국제 음악 행사장으로 종종 이용된단다. 설치되었던 무대의 일부가 남아 있다.

 

마드라사.

 

마드라사.

 

틸리아 코리 마드라사는 17세기에 만드어졌다.

 

멋진 돔. 몹시도 화려하다.

 

복구되기 이전 과거의 마드라사 상태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레기스탄 광장을 그린 그림. 무엇에 그린 것일까?

 

근사하고 화려하다.

 

이게 누규?

세 아이의 아버지 베흐조드 아저씨, 그리고 그의 10살짜리 딸이다.

 

기념품 판매점들. 그 중의 하나를 베흐조드 아저씨의 부인이 운영한다. 잠시 딸래미가 나와서 가게를 보고 있었다나...

 

레기스탄 광장에서 셀피 하나 남기고 간다. 광장 아래쪽으로 내려가지 못한다. 경찰이 삑삑 거리면서 막는다.

 

인근에 위치한 비비하눔 모스크까지는 걸어서 다녀와야 한다. 버스가 들어가질 못한다. 뜨거운 태양~

 

비비하눔은 티무르의 후궁 중의 하나. 후궁과 모스크 건축가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결말은 당연히 슬픈~

 

후궁을 위하여 만든 모스크라고 해서 그런가 이쁘장하다.

 

모스크 내부는 복원되지 않은 상태이다. 아이들 둘이 물 뿌리는 등의 관리만 하는 것 같다.

 

주차장으로 달려와 버스에 오른다. 시원한 물 한 병을 그냥 빨아들인다. 살 것 같다.

4시 사마르칸트 역으로 달린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여객 열차는 4개 등급이 있다. 그 중에서 고속열차는 Afrosiyob 열차로서 스페인에서 도입한 것이다. 사마르칸트에서 타슈켄트 구간이 2시간 10분 걸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http://www.advantour.com/uzbekistan/uzbekistan_railways.htm

 

사마르칸트 역이다.

 

셀피. 스맛폰의 카메라는 역시 DSLR에 비해 DR의 범위가 좁다.

 

역시나 역구내를 들어가면서부터 신분증 검사를 한다. 보안!

들어간다. 4시 반.

 

역사 내부. 근사하다. 와이파이 될락말락 상태.

 

5시20분에 플랫폼으로 나갔다. 정차 시간이 진짜 너무 짧다.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빨리 타라서 삑삑 거리는 호각 소리. 옆에서 역무원들이 소리친다. 패스트! 패스트!

달린다.

 

고속 열차. 좀 달린다. 하지만 고속열차 전용의 철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속도의 변화가 심하며, 그냥 느리다.

그리고 차 내에서 GPS 신호 수신이 안된다. 줸장~

 

그래도 고속열차라고 정신 차려보니 타슈켄트이다.

 

타슈켄트 역에 내려서 버스 타고 가마솥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호텔로 쓔웅~

 

식당 가마솥.

부부가 한국에서 와서 정착했다고 한다. 18년 되었다고.

 

김치찌개, 된장찌개 두 가지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친구 참 좋다. 깔끔하다.

 

 

 

다시 왔다. 시티 팔레스 호텔.

 

뭐...잤다.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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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6일. 부하라에서 하루를 보냈다. 2박을 한 것이다.

 

부하라 남쪽에 위치한 그랜드 부하라 호텔에서 출발, 시내를 통과하여 북쪽에 위치한 시토라이 모히호사를 먼저 들렀다. 그리고 서쪽의 이스마일 사마니 영묘를 들른 후에 스패니쉬 바에서 점심 식사를 할 때까지가 오전 일정이었다.

 

 

부하라에도 해는 떠오른다. 오늘의 뜨거운 불덩어리가 떠오른다.

일찍 일어났다. 무더운 밤이었다. 힘든 밤이었다. 그래서 일찍 일어났다. 

 

 

그랜드 부하라 호텔 옆의 공원은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 상쾌하다. 상쾌한 아침이다.

 

여섯 시 전부터 일어나 씻고 로비로 내려갔다. 와이파이가 좀 된다.

일찌감치 아침 식사를 마친다.

 

역시 에어컨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부하라에서 1박을 더할 예정인데, 호텔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고 전한다.

짐을 싸서 로비로 내려와 버스에 짐을 싣는다. 원래 예정은 몸만 움직이는 것이었었는데.

8시55분 승차 완료. 출발.

 

오늘의 첫번 째 일정 장소이다.

 

Sitorai Moxi Xossa. 별과 달을 뜻한다고 한다. 부하라 한국의 여름 궁전이다.

 

간판은 이렇게 생겼다. 씨또라이 모히 호사.

 

입구에서 입장료 계산하던 베흐조드 아저씨의 손.

 

마당에 공작 여러 마리를 풀어놓고 있었다.

 

이 궁전은 이슬람 양식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1910년에 지은 것으로서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부하라 한국의 마지막 칸인 에미르 알림 칸 시대에 지어진 건물로서 러시아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건축가로 하여금 이슬람 양식과 유럽 양식을 조화시켜 만들도록 했기 때문이다. 궁전이 완성되고나자 그 아름다움에 반한 칸은 건축가의 손을 잘랐다고 한다! 이 동네 사람들은 참 희한하게 반한다. 그리고 동상을 만들어 주었다.

 

들어가면서 바로 만나는 것은 기념품 판매대. 그리고 공사중~

 

보수 공사중인지...폭파중인지...

 

영빈관 내부이다.

 

화병에 꽃을 꽂아 둔 문양이 반복된다.

 

샹들리에. 저 높은 천정에 매달린 샹들리에의 초에는 도대체 불을 어떻게 붙이는지가 너무나 궁금하였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불을 붙이고 끄고 하는 것일까 하는 상상도 해보고...

샹들리에 자체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마지막 칸. 에미르 알림.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챙길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재화를 챙겨 아프가니스탄으로 도주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지금도 그 후손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2년에 한번 정도 후손들이 조상의 땅을 방문하고 있다고 베흐조드 아저씨가 그랬다.

 

샹들리에.

 

큼지막한 도자기. 일본 것이다. 여러 나라의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 이런 고가의 상품들을 마구마구 수집할 수 있을 정도로 부하라 한국은 부자였었던 것이었다.

 

결혼 기념 사진. 신랑 12세, 신부 8세.

우즈베키스탄은 무지막지한 조혼 풍습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도 여자는 18, 19, 20세 정도면 거의 결혼을 한다고 한다. 남자들은 대학 공부나 취업 등의 이유 때문에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있지만 신부는 여전히 20세 이전에 결혼을 한다고 한다.

 

낡아서 올라가면 위험하다고 하였다. 그 아래에서 CD를 파는 아저씨.

 

이 아저씨. 음악 CD라고 구입했다. 전통 음악 CD를 가능하면 구입하려 하고 있기에. 가짜였다. 아자씨! 나빠요!

 

딱 보면 야매다. 그래도 이렇게 보이면 음악 CD여야 하지 않는가? 

음악 CD가 아니라, MP3가 들어 있었다. 포장지에 있는 음악 그대로 들어 있으면 조용히 있었을 것이다. 껍데기와 알맹이의 내용이 전혀 다르다.

 

 

에이, 샹들리에~

 

누에고치.

 

염색실.

 

다양한 염색 재료.

 

씰크.

 

정원의 연못옆에서 얌전히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인증 사진을 만들어보았다.

 

 

10시 반이다. 씨또라이 모히 호사를 뒤로 하고 떠난다.

 

부하라에도 예쁜 마티스 택시들이 성업 중이다.

 

허걱! 폭탄 차량?

지붕에다가 가스통을 그냥 노출된 상태로 장착하고 다닌다. 저거 폭탄아냐?

 

욥의 샘물과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를 가기 위해서는 부하라 시장을 지나가야 한다.

 

부하라 시장 입구.

 

시장은 거대하다. 

 

판매 품목에 따라 구분되어 있다.

 

견과류.

 

 

향신료 상점.

 

빵가게.

 

채소 가게.

 

이 동네에서는 고기의 처리, 운반, 판매 과정에서 냉장 보관이 없다. 건조하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일 것이다.

 

공산품.

 

곡물.

 

 

 

Chashma-Ayub Mausoleum. 욥의 영묘, 욥의 샘물.

chashma가 '샘'이란 의미라고 한다.

서로 다른 시기에 건축물을 증축하면서 당시의 양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세 개의 돔 모양 지붕을 갖고 있다.

 

 

부하라 사람들이 물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욥이 이곳을 지팡이로 내리치자 샘물이 솟았다나.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이 샘물을 마시고 간다.

 

욥의 가묘.

 

중앙 아시아 고전 건축의 걸작품이라고 한다.

Ismail Samani Mausoleum. 부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영묘로서 905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건물 벽의 무늬가 다르게 보이도록 설계, 건축된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 유일의 것이라고 한다.

 

영묘이므로 실제 시신이 안장된 것은 아니다.

 

천장. 당연히 돔형이다.

 

이스마일 사마니에게 소원을 비는 쪽지를 넣는 구멍이 영묘 아랫부분에 있다.

 

이스마일 사모니 영묘 앞에서 일행은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다.

 

 

관람차. 한번도 타보지 못하였다. 이번에도 구경하면서 지난다.

Samonids Recreation Park. 날이 너무 뜨거워서인지 놀이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볼 수 없었다.

이 공원을 지나서 버스와 랑데뷰.

 

12시10분이다. 먹을 시간이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그 스페니쉬 바로 향한다.

물담배를 맛깔나게 피우던 예쁜 아가씨를 정신없이 처다보다가... 그냥 점심 먹었다.

 

다시 시내로 들어왔다. 아르크 고성이 보인다. 새로운 숙소는 아르크 성 바로 옆이다.

 

실크로드와 어울리는 이름. 캬라반. 숙소를 배정받고 좀 쉬기로 한다. 해가 너무 뜨거워 돌아다니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 낮잠을 자는 척 하다가 나왔다. 그럴려고 했다. 막판에 잠들어 전화받고 허겁지겁 나왔다.ㅠ.ㅠ

 

3시40분 모두 모였다. 이후의 일정은 걸어서 다녔다. 이렇게~

 

조금 더 확대해보면 이렇다. Bolo-Hauz Mosque, The Ark, Kalyan Mosque, Taki-Telpak Furushon Bazaar, 그리고 Nodir Devon beghi Madrasa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숙소로 귀환.

 

아르크 성의 길 건너편에 있는 근사한 모스크를 먼저 들렀다.

 

자그마한 미나렛. 그 아래에서 4형제가 몰려 다니며 놀고 있다.

 

히바에서도 보았던 독특한 문양의 기둥들.

 

사원의 이름이 복잡하다. 이맘들의 대장쯤이라고 할까?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위원회라고 번역된다. 우즈베키스탄 전국의 모스크와 이맘들을 관리하고 있는 곳이다.

 

내부는 기가막히게 만들어져 있다. 기둥 하나 없이 넓은 공간이 확 열려 있다.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동시에 기도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모스크 내부의 미흐랍 Mihrap이다. 메카의 방향에 만들어지기에 미흐랍을 향해 절을 하면 된다.

 

이렇게. 절을 하는 방법을 베흐조드가 알려주었고 따라 하기 체험.

 

난 셀피 놀이하기.

 

꼭 썬글라스를 낀 것처럼 보인다.

 

길을 건넌다. 역시 더우니까 시원하게 창문을 열고 다니는 택시.

 

아르크 성 정문. 성의 일부가 폭우로 붕괴되어 긴급 보수된 것이라고.

 

정문으로 들어간다. 아르크 성은 부하라의 왕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7세기에 처음 축조되었는데, 몽골, 투르크족의 숱한 침략을 받으며 붕괴와 재건을 반복했다고 한다.

 

아르크 성은 1920년까지 부하라의 왕이 거주했던 것이라고 적혀 있다.

 

아르크 성의 배치도.

 

성 내부에 있는 금요일 모스크. Mosque Jome.

 

전시관, 박물관.

 

성벽. 대포.

 

지나던 백발 노인.

 

아르크 성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

 

살금살금.....

 

활짝~ 얼굴 껍데기가 아주 시커멓다.

 

칼리안 모스크를 향하는 일행.

 

지나는 길 옆에 있는 호텔? 우리 묵을 곳이다.

 

보수하여 이렇게 단장할 것이라는 것만 같다.

 

Kalyan Mosque. 멋지다.

 

칼란 미나렛. 높이 46미터. 아잔을 하는 기능 이외에 다른 기능도 갖고 있었던 첨탑이다.

중앙아시아의 첨탑 중 가장 높아 꼭데기 불을 지피면 사막의 등대 역할을 하여 먼 곳 어느 방향에서도 부하라를 찾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탑은 또 죄인을 처형하는 장소이기도 했단다. 푸대에 담아 탑 꼭데기에서 아래로~ 그랬었단다.

전하는 이야기. 징키스칸이 부하라를 침공하였을 때 탑을 올려다 보다가 투구가 떨어졌고, 무심코 몸을 숙여 투구를 집어 들었다. 칸으로서 고개를 숙인 것이 민망하였을까? 자신의 허리를 굽히게 한 위대한 탑이니 파괴하지 말고 남겨 두라고 했고, 그래서 무사히 첨탑이 건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고 전하더라.

 

건너 편에 있는 마드라사. Mir-i-Arab Madrasa.

마드라사는 이슬람 고등교육 기관이라고.

 

칼리얀 모스크의 정문으로 들어간다.

 

한참 걸었더니 힘들다. 쉬어가기.

 

 

안쪽에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다.

 

기념 사진. 단체 여행객은 단체 사진을 남긴다.

 

Ulugbek Medressa.

 

전통 공방 골목이 이어진다. 칼가게 부터 시작한다. 금속 공예점. 가위의 모양이 재미있다.

 

이건 뭔가?

 

보수 공사중이다.

 

가스관 매립 공사중이다.

 

8번 노선 버스가 운행중이다.

 

하수도는 흐르는 중이다.

 

Taki Sarrafon Bazaar.

 

Lyab-i Hauz. 라비 연못. 1620년에 만들어진 연못. 고대 도시의 중앙광장에 위치하였으며, 깊이는 약 5미터에 이른다. 식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자리는 만원이다.

 

라비 연못가에 있는 나무. 가장 오래된 나무로서 수령이..........(기억 안난다.)

 

라비 연못 옆의 작그마한 공원. 거기에 이 아저씨는 왜 있는겨?

 

노디르 데본베기 마드라사. 봉황 문양을 갖고 있다.

이슬람 학교였지만, 지금은 식당으로 임대 영업중이다.

 

자리가 준비되어 있다. 우리 예약석은 어디?

 

공연과 패션쇼를 번갈아 진행했다. 멋진 연주 및 노래팀.

 

예쁜 땐스 팀.

 

 

구경 및 식사팀.

 

8시 쯤 공연이 끝났다. 캬라반 호텔로 돌아간다.

 

부하라 하늘에 달이 떳다.

 

8시반부터 자라고 한다. 하~

이렇게 일찍 자다니....

빈둥 거린다. 와이파이는 느리고. 아예 안되면 시도도 안할 텐데, 되는 듯 하기도 하여 붙들고 있는다. 이것이라도 해야지.

다음부터는 아무리 감기 등으로 헤메더라도 좀 챙겨와서 몰래 혼자라도 먹어야겠다는 다짐을 매일 밤 하고 있다.

아무 것도 안하기에 지쳤다. 자자... 헌데, 또 정전 체험을 하게 해준다.

세 번이나 정전되었다고 한다. 나는 두 번인줄 알았는데.

 

잤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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