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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초기의 도읍지였던 국내성 유적을 집안에서 답사하였다.

이후 백두산을 향해 숙소인 송강하로 달려갔다. 이동 거리는 약 5시간 정도.

 

숙소에서 출발하여 고구려의 고분군의 벽화로 유명한 5회분5호묘를 방문하였다. 광개토대왕비와 왕릉을 답사하고, 장군총을 살폈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북한식당에서...

 

1980년대 초 집안에 남아 있는 국내성 고구려 고분들을 중국 고고학자들이 발굴하였다. 생동감 넘치고 수려한 채색이 완벽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어 찬란했던 고구려 예술의 정수를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집안의 고구려 벽화는 장천 1호분, 집안 4호분, 5호분에서 볼 수 있는데, 우리는 5호분을 방문하였다. 

 

이북상품 장뇌삼이 반겨준다.

 

우산 귀족묘지 안내도.

 

두꺼비가 수줍게 반겨준다.

 

오회분(五盔墳) 5호묘.

 

5호묘로 들어가는 입구.

고분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 따라서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없다.

직접 촬영한 사진 대신에 남이 촬영한 사진으로 대신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링크~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6&content_id=cp042600780001

 

5호묘 안내문.

 

9시17분. 광개토대왕님을 뵈러 왔다.

 

광개토대왕비. 보호각의 유리 속에 갇혀 계시다. 얼마나 답답하실꼬...

 

중국에서 호태왕비라고 이름 붙여 놓았다.

 

보호각의 유리와 비문 사이의 거리가 꽤 되고, 유리면의 반사 때문에 비석이나 비문을 제대로 살필 수 없었다. 만들려면 제대로나 만들어 놓았으면... 공조 장치나 제대로 되어 있을지도 걱정된다. 미덥지가 않다.

 

 

유리로 차단되기 이전의 상태를 보여주는 사진들.

 

광개토대왕릉. 보존 및 관리 상태가 아주 메롱이다. 입장료를 그리 받아 챙기는데 누가 먹는지 모르겠다. 관리 좀 제대로 하지.

 

광개토대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 녹슨 철문을 설치해놓았다. 녹슨 철문....ㅎㅎㅎ 고구려 시절의 유물일까??

 

좁은 입구에 경비원이 앉아서 관리한다. 역시나 내부 모습은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다.

 

광개토대왕릉이 있는 곳에서 멀리 룽산(龍山) 아래의 장군총이 보인다.

 

광개토대왕릉 주변의 담장 밖에서 노점상들이 부른다. 중국 아저씨는 배를 깐다.

 

 

10시45분. 장군총으로 장수대왕님을 뵈러 왔다.

"집안시 고구려문물 전시세터를 정식으로 대외에 개방합니다"며 환영해준다.

 

현지 가이드가 단체 여행팀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틀 동안 날씨가 좋지 않았는데, 오늘은 아주 좋다. 햇볕 쨍쨍.

집안 지역에 남아 있는 만 이천여 개의 묘지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왕릉이다. 

밑변 32미터, 높이 12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피라미드형 방단계단적석묘이다.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길이 5.7미터에 이르는 화강암 1100여 개를 계단식으로 쌓아 올렸다.

 

피라미드형의 장군총. 왕릉을 주변에 12개의 자연석이 놓여 있는데, 그 용도와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고 한다. 왕릉 사방에 놓인 돌들이 기단석이 밀려나지 않도록 하는 받침돌이라는 설, 12지를 상징한다는 설 등이 있었는데, 실제로 받침돌로서의 기능은 전혀 하고 있지 않으며, 왕릉 축조 당시에는 12간지가 전해지지 않은 시기라 맞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뭐지? 모른다.

 

가장 작은 돌의 무게가 15톤 정도라는데, 이런 거대한 자연석을 왜 기대어 놓은 것일까?? 왕릉의 동서남쪽 면에는 3개씩 있으나 북쪽면에만 2개가 놓여 있다.

 

바로 옆에는 고인돌도 있다.

 

"고구려는 조기 중국 북방의 소수 민족 정권입니다. 고구려 나라가 그의 건립 및 발전 과정중에 혈액 및 불, 영혼 및 육체간의 싸움을 거쳤습니다. 또한 많은 전기적인 색체 짙고 신화 같은 이야기를 가졌습니다. 고구려 28대 임금의 집권 책략, 평생 전적 및 신기적인 인색이 고구려 역사에 낯내게 보탰습니다. ......" 이게 뭔 말이고???

 

 

점심 식사 후 식당 앞쪽의 도로 변에 남아 있는 국내성의 흔적을 살피고는 압록강 변으로 이동하였다. 강 건너의 북한 모습을 보고 환도산성으로 이동하였다.

 

12시25분.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집안 시내로 돌아왔다.

식당 묘향산. 중국과 북한의 국기가 입구에 걸려 있다.

 

식당 입구의 환영 문구.

 

두어 개의 나라에서 북한 식당을 방문한 적이 있다. 공통점은 모두 중간에 공연을 한다는 것.

손님들이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의 만석이었던 듯. 그래서 손님을 맞는 직원들이 정신없이 땀흘리며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쪽에서 공연은 언제 하는 것이냐고 자꾸 재촉하니까 공연을 하더라. 이곳은 공연을 담당하는 팀이 따로 있지 않았다. 써빙을 하던 직원들이 옷을 갈아 입고 나오더니 마이크를 잡고 공연을 했다. 드럼 연주자는 여전히 홀 써빙할 때의 복장 그대로다.^^

"장군님 사랑~ 장군님 사랑~" 그런 정도의 가사만 귀에 들렸었다. 체제 선전 일꾼들이었더라...

 

 

길가에 쌓여 있는 돌담이 국내성의 흔적이라고 한다.

 

그냥 동네 축대처럼 보인다.

 

1시 40분. 또 압록강변으로 나섰다.

 

안내 표지석

 

안내 표지석 뒤면. 압록강국경여유구소개.

 

재밌는 자전거가 놓여 있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북한땅. 현지 가이드가 소개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산속의 좁을 길을 구비구비 돌다가 보이는 산이 중국땅인지, 북한땅인지를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알려준 말. 산에 나무가 많으면 중국땅, 나무가 없으면 북한땅이라 했다. 얼마나 나무를 베어댔으면 이런 말이 나돌 정도인지.. 안타깝다. 그런데 진짜로 휑허니 나무가 없기는 하다.

 

산 밑으로 보이는 마을의 가옥들. 똑같이 생겼다. 마을 뒷쪽의 경사지에는 옥수수를 심어놓은 것 같다.

 

오후 1시51분. 환도산성을 찾는다. 시내에서 멀지 않다.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에 해당하는 곳이다. 환도산성.

원래 이름은 위나암성(尉那巖城)이라 불리었으나, 중국에서 산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산성자산성으로 바꿔버렸다. 이후 산의 이름이 환도산으로 바뀌면서 성의 이름도 환도산성이 되었다고 전한다.

 

국내성은 평상시에 거주하는 평지성, 위나암성은 전시에 사용하는 산성의 세트로 구성된 것이었다 전한다.

 

산성의 대부분은 허물어지고 남측성벽과 망대 등 일부만 남아 있다. 

 

산성 아랫쪽으로는 넓은 옥수수밭과 고분군이 있다.

 

산성하귀족묘지시의도. 

 

무덤떼라고 부르더라.

 

차량에 탑승 후 달렸다. 통하를 경유하여 송강하로 달렸다.

 

오후 6시50분. 송강하(松江河).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드는 쑹화강의 지류이다.

 

늦게 출발하여 장거리를 달렸다. 늦게 천사(天賜) 호텔에 도착하여 피로를 잠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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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마안도를 먼발치에서나마 바라볼 수 있는 날이다. 단동을 거쳐 고구려의 유적지들을 살피며 동쪽으로 이동한다. 백두산을 향하여...

 

동강시에서 압록강 반대편으로 바라보이는 섬이 마안도이다. 중국과 공동 투자를 통해 정보 산업, 경공업, 농업, 상업 등의 분야를 공동으로 육성하기 위해 2011년 지정된 황금평 경제무역지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룻밤 신세진 숙소인 보리강해대주점을 7시 좀 넘어서 나선다. 사자 한마리가 배웅을 해준다.

날씨는? 매우 좋지 아니하다.

 

숙소가 압록강변에 위치한다. 도착하자 마자 멀리 보이는 마안도의 흔적을 찾아본다. 멀리 보인다?

마안도를 비롯한 여러 작은 섬들을 간척하여 커다란 비단섬을 만들었고, 그곳의 넓은 평야가 황금평이고, 그곳에 경제무역지대를 조성하기로 했었던 곳이다.

 

둥강시(東港市)와 마안도를 연결하는 교량을 건설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최근 구글의 인공위성 영상에는 보이지 않는다. 뭐지? 뭘 보고 온 것이지? 난감하다. 확인을 위해 다시 가보아야 할 것 같다.

 

저쪽이 북한의 마안도, 이쪽이 중국이어야 하는데... 7년 전의 기억이 있을리가... 다시 가자!

 

빗속의 단동(丹東)시를 찾았다.

 

 

 

한국전쟁 중에 파괴된 압록강철교를 찾아보았고, 바로 옆에 만들어진 조중우의교도 바라보고 왔다.

 

절딴 난 압록강철교. 관광지로 잘 꾸며져 있다. The Publicized Version of Yalu River Broken Bridge Scenic Area.

 

그래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1인당 27원.

 

전쟁의 흔적이라서인지 옛날 고철 무기를 두엇 가져다 전시해 놓았다.

 

그리고 선전 조형물도 당연히... 당당하게 진군하는 군대의 발치에는 "FOR PEACE"라고 그려져 있다.^^

 

압록강의 끊어진 다리, 압록강단교로 들어선다.

 

압록강단교 안내 돌판떼기.

 

기념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진행한다.

 

1950년 11월 8일 오전 9시 미군의 B-29 폭격기의 폭격으로 부서지고 일부가 가라앉았다고 중국어로 쓰여있을 것 같다.

 

압록강단교에서 보이는 단둥시의 모습.

 

서해로 흘러나가는 압록강.

 

압록강 철교가 끊긴 부분이다. 더이상 갈 수 없다. 왜? 끊겼으니까.ㅎ

교각의 흔적만 몇 개가 이어진다.

 

건너편으로 신의주의 모습이 보일락말락. 자그마한 관람차의 모습이 보인다.  구글지도에 놀이공원이라고 나오기는 한다. 과연?

 

부서진 철골 구조물을 전시하고 있다.

 

교량의 일부를 들어올려 큰 배가 지날 수 있도록 하는 교량은 많이 있다. 하지만 옆으로 돌아가는 교량은 거의 없는데 압록강 철교가 그러한 독특한 유형의 것이었다고 영어로 쓰여있을 것 같다.

 

먼 곳에 처음 왔다. 왔다는 증명, 셀피를 만들었다. 빨간 우산을 썼었나보다.

 

끊어진 철교 옆에 새로운 철교를 만들어 단동과 신의주를 연결하고 있다.

 

조중우의교를 지나는 묘향산려행사 버스.

 

빗속에 만난 압록강 그리고 끊어진 철교. 돌아서 떠난다.

 

아랫쪽을 보니 선착장이 있고, 유람선이 손님들을 태우고 있다.

 

압록강에서 여유를 즐기는 유람선.

 

우리 일행을 빗속에서 기다리던 '지오트립' 버스, 그리고 날씬한 사장님.

 

고구려 유적지 호산장성으로 이동한다. 호산장성엘 올랐다가 압록강 속의 하중도인 어작도 주변을 유람선을 타고 구경하였다. 북한의 영역이지만 관광 목적으로 일부 구간을 개방하고 있다.

 

사진 파일에 10시반쯤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현지 시간으로는 9시반쯤이었을 것이다. 호산장성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먼저 장성 아랫쪽의 압록강변으로 내려간다. 압록강을 보자.

이쪽 중국땅에서 저쪽 북한 땅까지 한걸음이면 건널 수 있다고 '일보과(一步跨)'라고 이름 붙여 놓았다. 가장 가까이에서 북한의 땅을 살필 수 있는 뽀인트이다. 

 

건너편이 압록강의 하중도인 어작도이다. 아주 가까운 거리, 지척(咫尺)이다.

 

뒷면에는 압록강은 흐른다.... 뭐 그런 글이 써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호산장성이다. 고구려 유적???? 고구려의 박작성을 호산장성이라카믄서 만리장성의 동쪽 끝 지점이라는 궤변을 깔고 있다. 그 동북공정의 일환이다.

 

성터의 흔적에다가 아무렇게나 복원해놓았다. 고증은??

 

어작도의 북한 마을이 멀리 보인다. 방산마을이란다.

(마을 가운데 서 있는 탑은 어작도 필요한 물품을 북한쪽에서 쉽게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 한다. 물품 수송용 케이블카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다른 여행 블로그에서 그렇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 확인이 필요할 것이다.)

 

 

동북공정의 정책적 지원에 따라 돈만 쳐발라 깔끔하게 뭔지 모를 성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만들어 놓고는 만리장성? 기가 막히다.

 

고구려의 유적은 어디에 뭍혀 있는 것일지..

 

압록강 쪽으로 자꾸 눈길이 간다.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 호산장성이라고....ㅠ.ㅠ

 

정종조선과자, '진짜 조선 과자'라는 뜻일까? 빗속의 노점상.

 

압록강 체험. 2011년부터 중국과 북한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압록강 체험 코스. 두 나라의 국경선을 따라 유람선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영내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것은 뭐라 해야 할지.. 북한으로 들어갔으니 월북인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진입했으니 월남인가???

 

무엇을 판매하는 가게일꼬??

 

유람선 탑승도 빗속에 이루어졌다.ㅎ

 

작은 배가 근처를 지난다. 뭐하는 아저씨?

 

월원여유마두 라는 이름의 작은 선착장에서 유람선이 출항한다. 

 

호산장성이 멀리 보인다.

 

유람선이 잠시 멈추고 작은 보트가 달라 붙는다. 뭘까? 북한 탈출 주민???

 

장사꾼이다.

 

거래가 활발하다. 산삼이나 뭐 그런 것을 거래하는 것 같았다. 이런 거래 때문에 북한에서 영내 진입을 허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배에 훈장을 주렁주렁 매단 할아버지들이 타고 있었다. 중국 사람들이 다가가 함께 기념 사진을 찍는다. 한국전쟁 참전 군인들이라 하는 이야길 들었다. 선착장에 도착하여 이들이 줄지어 하선할 때 다음 배를 기다리던 젊은이들이 박수를 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강가의 비맞는 북한 사람.

 

물 위를 걸어가는 북한 사람.

 

옥수수 밭을 지키는 북한 사람.

 

옥수수 밭 옆의 북한 소.

 

보트 위의 북한 사람.

 

압록강에서 골재 채취. 양이 상당하다.

 

다른 유람선은 출항하고 우리는 귀항하고. 맑은 날씨에 다시 다녀오고 싶다.

 

11시 반쯤 오녀산성이 있는 환인으로 출발하였다. 네 시간 정도의 거리라고 했다.

 

환인에서 오녀산성엘 올랐다가 시내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집안(集安)으로 달렸다.

 

현지 시간 오후 3시 반쯤 환인에 도착하였다. 멀리 방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환인댐의 모습이 보인다. 

비류수(沸流水) 혼강(渾江)을 막아 조성된 댐이다.

 

오녀산 박물관이라 되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고구려시조비. 삼족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오녀산 산성에 도착했다. 올라가야지.

 

입장료를 내고 입구로 들어간다.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비가 내린다. 습도가 높다. 여름이다. 와~~

 

빗물과 땀에 범벅이 되어 올랐다. 주몽이 나라를 세우고 최초로 쌓은 성이었다고 한다.

가마를 타고 편하게 올라올 수도 있다. 2인교. 그냥 올라와도 힘든데, 가마꾼은?

 

여러 코스가 있나보다. 남문 출구, 서문 입구 이런 글자들이 보인다.

 

행궁터.

 

작은 저수지. 암석을 파내어 만든 저수지라고 한다. 장방형으로 길이 12미터, 폭은 5미터 정도. 天池라고 이름붙여 놓았다.

 

환인댐 건설로 조성된 인공호 환용호, 환인 저수지이다.

 

오후 다섯시 20분. 위 사진의 저수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이다. 점장대라고 이름 붙여 놓다.

기가 막히 경치~  아무 것도 안보인다.ㅠ.ㅠ

 

복을 기원하는 쪼까리들이 잔뜩 매달려 있다.

 

아무 것도 안보이니 기념 사진이니 이런 것도 남길 수 없다. 아쉽지만 그냥 발길을 돌린다. 다음에 또 오지 뭐 하면서..

 

오후 6:55. 환인 시내로 들어오니 날씨가 좋아진다. 다시 올라가?

 

금룡대주점이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집안으로 달려갔다. 세 시간 정도의 거리라고 했다.

 

주변에 지천으로 널린 옥수수밭을 보며 누군가 제안을 했나보다. 버스를 멈추더니 삶은 옥수수 보따리를 들였다. 만주의 옥수수를 뜯으며 이동하였다. 먹다가 사진으로 하나 남겨 보았다. 흔들리는 버스, 흔들린 사진.

옥수수에 간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아 향신료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먹기가 거북하였을 듯 하다. 그렇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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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27에 중국으로 날아가 한반도의 최북단 언저리까지 다녀온 기록을 만들어보려 한다. 

다녀온지 7년이나 지나서야 블로그에 정리를 시작했다.

 

중국 동북 3성과 백두산을 대상으로 다녀온 여정은...

대련 - 단동 - 환인 - 집안 - 백두산 - 청산리 - 연길 - 심양 - 대련 - 여순 순으로 이어졌다.

 

첫 날의 일정이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대련 국제공항으로 날아가 점심 식사를 하고 비사성을 들렀다. 그리고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단동의 인근에 위치한 항구 도시 동강에서 여장을 풀었다.

 

 

해외 여행을 나갈 때면 늘 어느 게이트의 어느 카운터를 지정하여 만나고 모인다. 4번 게이트의 D 카운터에서 9시 반에 모였다. 

 

지오트립에서 운영하는 해외여행을 나가면 늘 이렇게 일정을 정리한 책자를 나눠준다.

비행기표와 함께.. CZ686편. A321 기종.

 

105번 게이트를 통해 출국하였다. 11시20분에 탑승 시작. 11시40분 출발.

 

대련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입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고 현지 가이드와 랑데뷰하고 출발했을거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위한 식당에 도착했다... 송도횟집이라니...

 

송도"횟집" 맞다.^^

 

식사 후에 첫번째 고구려 유적지 탐방에 나섰다. 비사성을 찾았다.

 

 

그런데 날씨가 심상찮다. 안개가,,, 비가,,, 오리무중. 조 앞도 보이질 않는다.ㅎㅎ

 

대련해양국가지질공원(GEOPARK)의 일부에 해당하는 것 같다. 요동반도 끄트머리에 위치하여 황해의 일출과 발해만의 일몰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라고 하는데, 일단 오리무중이다.

 

비사성은 고구려 때 축조된 성이지만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고구려가 수, 당의 침략을 저지할 때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었다고 한다.

대흑산에 있다고 하여 중국인들은 대흑산산성이라 이름을 바꿔 부르고 있다. 이름만 바꿔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건물을 지어놓고 고구려의 유적을 훼손하고 있어 안타까웠다.

옥황전이라니....

옥황전으로 오르는 길목의 석조물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탐방객.

 

건물은 무지막지하게 만들었지만 내부는 좀 그렇다.

 

옥황전을 지키는 石馬와 犬公.

 

비구름 속의 石物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꼬...

 

옥황전을 뒤로 하고 나선다. 비사성을 보고자 찾았는데, 우중의 쓸데없는 것만 보고 떠난다.

 

앞으로의 일정 중 비를 맞는 것을 이번으로 그치기를....

이번이 마지막으로 비맞는 것이기를.... 바라면서 비사성 유적지를 떠났다.

 

비사성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대흑산 주위에 새로 성벽을 쌓았는데, 고증도 없이 달려들어 고구려의 축성법과는 전혀 관계없는, 전혀 다른 성벽이 되어 버렸다. 중국에 의해 정책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동북공정에 의해 희생된 현장이 아닌가 한다.

 

비사성이 위치한 대흑산은 석회암 산지이다. 산성으로 오르는 한 방향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렇게 급경사의 절벽을 이루고 있어 방어에 매우 유리한 요새가 될 수 있었다. 아랫쪽에 주차장이 있고, 방문객은 모두 셔틀을 이용하도록 되어 있다. 경사가 급하여 대형 차량의 통행을 막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3시 경 동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멈추었었다.

 

고속도로를 계속 달린다. 창밖의 날씨가 좋지 못하다.ㅠ.ㅠ 내일을 맑아야 하는데...

 

동강에 도착했다.

 

동강의 밤거리.

 

붉은집생선불고기 집이 보인다.

 

엄청난 식당이다. 메뉴의 종류도 엄청나다. 어떤 음식을 먹고 마셨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기록 좀 하면서 다닐 것을...

 

판매하는 주류 진열장. 엄청나다.^^

 

 

예약석에 자리하는 일행들. 잘 먹었을 것 같다. 

 

저녁을 배불리 잘 먹고 숙소에 도착하였다. 보리강해대주점이라는 이름의 호텔에 체크인.

 

객실을 배정받고 들어왔다. 오늘 쉴 곳이다. 그런데.... 방과 화장실 사이에 투명하다. 헐~

 

객실에 준비되어 있던 생수. 압록강이다. 압록강. Yalu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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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시도를 하더니... 육군 현역 신청하더라. 당첨!

 

 

동네 친구가 입영할 때 처음 와본 곳, 얼마만인지...

 

 

코로나로 인하여 입소식 행사가 취소되었다.

인사하고 헤어진다. 들어가기 싫은 얼굴이다. 마스크 속의 얼굴은 찡그리고 있다.

 

 

하지만 휘적휘적 힘차게 걸어들어가더라~ 뒤도 한번 안돌아보고......

 

 

돌아서 나오는 내 발길이 안떨어진다. 하하ㅎㅎ...

 

 

스맛폰에 '더캠프' 앱을 설치했다.

547일 남았다고 나오는구나. 딱 18개월 복무 예정... 무사히 전역하기를 바랄 뿐이다.

 

수기사단으로 배치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제8전차대대로 배치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본부중대로 배치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핸드폰을 빨리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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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시간이 지나 언제였던 지도 기억이 흐리다. 그래도 하여간 도봉시장에 가본 적이 있다. 오늘 일정이 조금 여유가 있던 차에 어제 기억에 떠오른 도봉시장엘 가보고 싶어졌다.

점심 도시락 준비를 하지 말라하고 빈 손으로 설렁설렁 출근했다. 중요 일과를 마치고 오전 업무를 정리하고 나섰다.

그리고 중랑천을 따라 쭈욱 갔다가 쭈욱 왔다.

 

중랑천 길로 들어가는 입구 쯤에 있는 터널. 건강한 녹색이 너무 보기 좋다.

 

협찬은 아니지만... 이런 것이 근무 기관 벽에 붙어 있더라.

 

바로 중랑천과 만난다. 상계교를 건너서 직진하면 도봉구 방학동으로 이어진다. 상계교를 건너서 중랑천 둑길을 따라 갈 수도 있지만 오늘은 건너지 않고 가기로 했다.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날씨는 좋고, 중랑천은 조용히 흐른다.

 

도봉구청 건물이 보인다. 그 뒤로 도봉산도 보인다. 중랑천에 보가 설치되어 있다. 어도가 설치되어 있기는 한데...

 

보가 설치되어 일정 수위가 상류 쪽에서 유지되도록 해놓았다. 아랫쪽은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서 물고기는 계단을 하나씩 올라오면 된다. 별 것 아니....

 

동부간선도로를 건서서 상계동 아파트 단지쪽과 연결되는 통로.

 

도봉구청 앞쪽으로 중랑천을 건너는 튼튼한 징검다리를 만들었다. 

 

아직(2020.04.24) 건널 수는 없다. 구청장 정도가 나와서 개통식을 한 다음에 통행하도록 할 것 같다.

 

중랑천 건너편에 하천을 따라 건축된 서원 아파트.

 

서원아파트 113동 앞에 중랑천을 건널 수 있는 교량이 있다. 건넌다.

 

다리 아래에 물고기들이 바글바글.

 

어떤 물고기인지는 궁금한 사람이 직접 물어보아야 할 것 같다. 일단 나는 궁금하지 않다.

 

건너왔다. 건너편 상계동 쪽에는 아이~파크 아파트가 있다.

 

서원아파트 113동과 114동 사이에 통로가 있다. 이곳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앞으로 도봉시장이 등장하신다.

 

순대나라이다.

 

여러 집들이 있는데 오늘은 전라남도로 왔다.

 

입구에서 손질 중인 내가 먹을 것들~^^

그냥 동네에서 만나는 순대국과는 역시 너무나 다르다. 우왕~굿!

순대국 한 그릇에 7,000원이다. 조금 아쉬우면 "특"급을 주문할 수 있다. 참고로 '소주'라고 불리우는 음료는 한 병에 3,000원 하더라.

 

먹고 나니 인사를 꼭 드려야 할 곳이 생각난다. 뒷문으로 가면 보이는 공터, 한쪽에 그 곳이 있다.

 

만족스런 식사 후에 지름을 확장시키는 데 성공한 배를 두드리며 돌아선다. 서원아파트 113동과 114동 사이를 다시 지난다.

 

천변의 벤치에 앉아 시간을 음미하는 부러운 사람들...

 

동부간선도로에서 발생하는 자동차의 소음이 주민들에게 민원의 대상이 되었을 듯. 그래서 내가 세금을 이용하여 터널 식으로 만들었다. 

 

돌아갈 때는 이쪽으로 둑길을 걷는다.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든 꽃길~ 꽃길을 걷는다~

 

 

세월이라는 시간의 궤적을 흘리고 있는 의자.

 

여유가 있을 때 보이는 여유 있는 풍경은 여유가 있다.

 

도봉구청의 듬직한 건물.

 

 

둑길을 따라 나무들이 튼실하게 자라고 있어 그늘을 항상 만들어준다. 보기에도, 걷기에도 시원하다.

 

중랑천변을 걷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다양했다. 의외로 젊은 사람들이 많다?

 

길 자체가 공원이다. 너무나 좋다.

 

상계교. 중랑천을 건넌다.

 

다시 만난 터널. 장미꽃이 필 때는 또 다른 예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도봉시장까지의 왕복. 오고 가고 한 시간 거리. 오늘 하루 걷기 운동 끄읏~

 

2020년 4월 24일 점심으로 도봉시장 순대국을 모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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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의 유럽 여행을 정리하는 날이다. 오늘날의 마드리드를 상징하는 가장 뚜렷한 아이콘은 레알 마드리드일 것이다. 그들의 전용구장을 방문하고 에스파냐를 떠난다. 마지막 남은 일정이겠다.

2012년 1월 17일의 일정 경로.

마드리드에서 파리까지의 이동 거리가 1,132km였다더라.

 

숙소에서 레알마드리드 구장으로 이동하여 재밌는 구경을 하였다.

 

숙소인 아반트 공항호텔에서 시내로 진입하였다. Puerta de Alcala. 알칼라 문을 지난다.

로마의 개선문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카를로스3세의 명령으로 이탈리아의 건축가 사바티니가 설계한 작품이다. 문이 있는 곳은 에스파냐 독립 전쟁의 승리를 기념한다고 '독립 광장'이라 이름붙여져 있다.

 

 

시벨레스 광장에서 우회전하면서 보인 건물. 우와~ 멋지다. 스페인 은행.

사진 왼쪽 부분에 중앙우체국 건물이 있을 터인데 사진에 담지 못했다. 멋진 곳이라는데 보질 못하고 그냥 마드리드를 떠난다.

 

콜론 광장을 지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조형물.

 

레알 마드리드다! 레알?

정식 명칭은 Estadio Santiago Bernabeu. 1947년에 개장하였으며, 레알 마드리드 FC의 홈 경기장이다. 수용인원은 80,400명. 경기장 개장 당시에는 누에보 차마르틴 경기장이라 하였으나, 1955년부터 레알 마드리드는 클럽의 이전 구단주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예스테의 이름을 따 현재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경기장 외벽의 원통 장식이 특이하다. 쌤성 광고판도 보인다.

 

입장료가 꽤 되었을 듯. 경기가 없는 날은 이렇게 관광객을 받아들여 수입을 올린다. 자~알 한다.

 

경기장 내부에 들어왔다. 경기가 있을 때면 이 안에 8만 명이 채워진다.

 

관람 코스. 두리번 둘리번.

 

선수 대기석. 날두가 앉고는 했었음직한 자리에 앉아 폼을 잡아 본다.

 

레알 마드리드.

 

회의실. 대장 자리에 앉아보았다.

 

선수들과 기념 사진도 찍었다.

 

부끄~ 부끄~

 

우승 기념 사진. 트로피와 함께.

 

날두와 같이 사진을~

 

한 명 한 명마다 사진 촬영을 모두 함께 해준 날두. 앗, 팔이 어색하다.

 

레알 마드리드 구장 부근에 있는 한식당을 찾았다. 아리수. 점심을 일찍 먹고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12:30. 마드리드 국제공항 도착하여 탑승 수속.

에어 프랑스의 AF1601편 이용.

 

15:35. 마드리드 국제 공항 출발.

 

비행 시간 2시간 5분.

 

17:40.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환승 수속. 착륙하여 주기장까지 택싱을 굉장히 오래 해서 당황했었던 기억이 나더라~

 

20:35. 대한항공의 KE902(AF262)편으로 환승하여 출발. 착륙 활주로와 이륙 활주로가 청사의 서로 반대편에 있다. 그렇다. 한쪽에선 계속 떨어지고, 한쪽에선 계속 떠오르고...

 

편안한 기내 숙박.ㅠ.ㅠ

비행시간 10시간 50분.

 

15:25. 인천 공항 도착.

9,331km를 날아왔다.

 

즐거운 여행이었다. 대체로 기억이 나지 않으므로 다시 복습삼아 다녀와야 할 것 같은 코스다. 다시 가자. 언젠가는...

 

2012년 1월의 스.모.포 여행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지중해의 1월은 생각보다 너무 추웠더라~ 식구들 외투가 일정내내 한가지였던 이유. 이렇게 추울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고 외투가 하나...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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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1월 16일이 되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역사적인 도시 톨레도 속으로 들어가보는 날이다.

 

A42 톨레도 고속도로를 통해 마드리드에서 톨레도까지 한방에 달렸다. 톨레도는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안동의 하회마을처럼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이다. 그래서 톨레도는 일찍부터 정치적인 수도로, 요새로, 종교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다.

 

톨레도에 도착했다. 타호 강이 삼면을 둘러싸고 흐르는 높은 언덕에 도시가 발달했다. 천연의 요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올라가야 한다. 관광객들을 위해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입구에 그려진 지도.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방향에서 등고선 간격이 아주 좁게 그려져 있다. 급경사 절벽으로 둘러싸인 고지대가 되겠다. 천험의 요새.

 

역사 도시 톨레도에 들어섰다.

 

톨레도에서의 이동 경로. 산토 토메 성당을 거쳐 톨레도 대성당을 방문하고 알칸타라 다리 쪽으로 내려갔다.

 

유대인 지구 표시가 벽면에 보인다.

 

비가 내려 바닥이 번들거린다. 돌을 이용해 포장된 도로. 도로의 가운데가 낮아 빗물이 흘러내려갈 수 있도록 설계 및 시공되었다. 수백년 전에 이런 시공이 가능했다는 점이 너무나도 놀랍다.

 

산토 토메 성당 앞에 있던 지도. Aqui.

 

산토 토메 성당에는 1558년에 완성한 엘 그레코의 걸작품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El Enierro del Conde de Orgaz)'이 전시된 것으로 유명하다. 천지창조, 최후의 만찬과 더불어 세계 3대 성화로 인정받고 있다.

 

산토 토메 성당 바로 옆에 있는 Fuensalida 궁전. 1400년대에 건축된 것이라고 한다.

 

산토 토메 성당 옆에 있는 산토 토메 호스탈 옆을 지나 대성당 쪽으로 이동한다.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길. 길의 이름도 삼위일체 길이다.

 

톨레도 대성당. 대성당 앞의 광장이 좀 어수선하다. 방송 촬영도 하고 있다.

 

가판대. 여기서 책 한권 샀더라.

저기서 그 때 이 책을 샀다. 8유로라고 가격표가 붙어 있다. 그 때 가져와 이 때까지 책꽂이에서 숨만 쉬고 있었더라.

 

 

대성당 앞 광장의 대성당 맞은 편에 있는 시청사. 시청이 있어서 광장의 이름은 시청 광장이다. 시청의 크기는 대성당에 비하면 발톱만 하다.

 

건물 자체가 작품인 톨레도 대성당으로 입장하기에 앞서 호흡을 가다듬는 일행.

 

고딕 양식을 기초로 한 톨레도 대성당은 페르난도3세의 명에 따라 1226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1493년에 완공되었다. 길이 120미터, 폭 56미터, 높이 44.5미터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15세기 무렵 그라나다가 함락됨과 동시에 유대인 추방 정책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대성당은 성모 발현 예배당, 중앙 예배당 등 22개의 예배당을 갖추고 있다.

 

1493년에 현재의 대성당 구조를 갖추었지만 제단의 화려한 조각이나 합창대석의 조각, 스테인드 글라스 등이 모두 완성된 것은 16세기에 들어서이다.

 

톨레도 대성당 내부는 전체적으로 어둡다. 크고 웅장한 벽에 비해 상대적으로 창이 작기 때문이다. 작은 창문을 스테인드 글라스로 처리하여 더욱 어두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어두운 분위기로 인해 종교적 경건함이 더해진다고 한다.

 

대성당을 나서 다시 또 골목길 속으로 스며든다.

 

소코도베르 광장에서 잠시 쉬어간다.

 

타호 강 위를 잇는 알칸타라 다리를 건너갈 참이다. 건너 편 언덕위에 Albergue Castillo San Servando가 서 있다.

알칸타라 다리 위에서. 언덕 위로 알카사르 성채의 뾰족 탑들이 보인다.

 

세계적 유행이다. 자물쇠 묶기. 이런다고 안하고, 저런다고 할까.... 뭔 별~

그래도 서울의 남산만 할까...^^

 

타호강 위의 알칸타라 다리, 그 위의 알카사르 성. Alcantara 다리..... 아랍어로 알칸타라가 '다리'라는 뜻이다. 즉, 이 다리의 이름은 '다리' 다리가 되겠다.

 

여행 중 가장 신나는 시간이다. 먹자~

발걸음도 가볍게 사쁜 사쁜~

 

식당 천정에 매달린 마늘이 의외였다.

 

La Cubana 식당 이용 기념 사진.

 

톨레도의 전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를 찾았다. 타호 강 건너편 고지대에 위치한다.

 

그냥 전망대가 아니라 톨레도 파라도르 호텔이었다. 차 한 잔 팔아주었다.

 

전망대에 나서니 진짜 전망대였다. 타호 강 줄기로 둘러싸인 요새 도시 톨레도가 한 눈에 든다.

 

앞에 보이는 큼지막한 건물은 신학교, 그 뒤의 높고 거대한 건물이 톨레도 대성당이다.

 

기념 사진을 남겨보자. 찰칵!

 

톨레도 외곽의 마트...아니 기념품 샵을 들렀다. Galan Tienda Toledo. '톨레도 미남 가게' 라는 의미.

올리브 오일을 잔뜩 쌓아 놓고 있더라. 이쪽이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주력 상품인가 했었더라.

 

아들은 축구용품 쪽에 관심을 갖더라.

 

이런 아줄레주라니.........

 

다들 기념하는 사이에 밖에 나와 쓸쓸한 톨레도의 겨울비를 즐긴다. 태극기도 보인다.

 

기념품 샵에서 기념을 마치고 마드리드로 달려 들어왔다. 솔 광장, 마요르 광장에서 머뭇거렸다. 그리고 한강 갔다.

 

애써 찾은 마요르 광장에는 겨울비만 내리고...........

1619년 펠리페3세 때 완성한 4층 건물로 둘러싸인 운치있는 광장이다. 광장 가운데서 쓸쓸하게 비맞고 있는 청동상이 펠리페3세의 기마상이다. 

 

비가 내려 사람이 없으니 가게들이 문을 열지 않았다. 솔 광장으로 돌아선다.

 

솔 광장. Puerta del Sol.

왕립 우체국, 정부청사로 이용되는 건물 앞에는 에스파냐 도로 기점 표지가 바닥에 새겨져 있다. 이름하여 0km 지점.

 

비가 내리면 건물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면 된다.

 

솔 광장 구석에 있는 묘한 동상. '곰과 마드로뇨 나무 동상'

 

카를로스3세 기마상도 비를 맞고 있다.

 

맥더날드를 찾아 들어가보았다.

 

골목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며 자유시간 보내기를 하려 애쓴다.

 

그리고 모여서.......다같이.......한강 갔다.

 

 

오늘의 이동 거리는 215km. 준수하다. 이제 짐 정리 제대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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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를 만났으니 이제 돈키호테를 만날 차례이다. 풍차 마을 라만차를 찾아간다.

 

고속도로를 따라 장거리를 이동하다보면 늘 찾아오는 고통이 있다. 화장실 타임이 필요했다.

A4 고속도로에서 Turleque 지방으로 빠지는 교차로에 있는 휴게소를 들렀다. Restaurente Abrasador la Chimenesa le Turleque라는 긴 이름을 가진 식당이 있는 곳이었다.

 

휴게소 주변은 아무 것도 안보이는 너른 평야. 겨울 경지.

 

옛날 풍차가 잘 보존된 동네 Consuegra를 찾았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풍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돈키호테의 여정. 에스파냐 어로만 안내판이 되어 있다. 여러 나라 글자로 안내판을 만들어놓는 우리나라가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이 동네는 오직 자기네 나라 말로만 밀어붙인다.

 

Consuegra는 인구 8천 명 정도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언덕 위의 풍차. 겨울 날씨가 매섭다.

 

바람이 세게 부는 겨울 날씨.

 

풍차를 배경으로 한 컷.

 

Castillo de Consuegra, 콘수에그라 성과 풍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10여개의 풍차가 있는데, 각자 이름을 갖고 있다더라.

이렇게 언덕 위에 풍차가 있는데, 말을 탄 채 랜스를 꼬나잡고 풍차를 향해 들이대는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언덕을 올라오다가 나가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소설 속의 인물이고, 게다가 정상이 아니었다니 그냥 지나가주기로 한다.

 

Molinos de Viento de Consuegra. 콘수에그라의 풍차 방앗간.

오래된 시설이라 약하다. 바람에 풍차가 돌아가면서 시설이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풍차 뒷통수쪽으로 자물쇠를 걸어놓았다.

 

라만차 지방에서 풍차가 잘 보전된 풍차마을은 콘수에그라 말고도 있다. Campo de Criptana. 이곳의 풍차들은 평지에 있어 말을 타고 들이대기가 쉬워보인다. 돈키호테가 콘수에그라가 아니라 이쪽으로 왔었을까?

 

돈키호테 여관이 있는 Puerto Lapice로 왔다.

 

돈키호테 여관.

 

입구 양쪽을 장식하고 있는 아줄레주. 라 만차의 돈키호테, 제4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Venta del Quijote.

 

그냥 식당 같은데...

 

돈키호테 이야기를 접목시키려 애쓰고 있다.

 

입구에 서 있는 돈키호테.

 

마드리드를 향해 A4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Tembleque에서 빠졌다. 작은 마을 외곽에 위치한 식당을 찾았다.

 

Restaurante Maria Belen. 오후 1시쯤.

 

식사 후에 다시 고속도로를 타고 달린다. 아랑후에즈.  궁전 앞의 빈 공간은 '커플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겨울비까지 내려 쌀쌀하지만 커플샷을 남겼다.

 

황무지가 많은 카스티야 지방에서 보기 드물게 온화한 기후, 비옥한 평야를 가진 천혜의 환경 덕분에 일찍부터 에스파냐 왕가의 휴양지로 이용되었다.

왕가에서 봄과 여름에 사용하던 별장이었다. 16세기에 펠리페2세 때부터 건축을 시작하여 18세기 후반 카를로스3세 때 완공되었다. 수많은 방들 중 도자기의 방, 아랍의 방, 예배당 등이 유명하다.

 

커플 광장에서 산책을 즐기는 노부부.

커플 광장에서 놀이를 즐기는 애기들.

 

광장을 천천히 걷는다. 호아킨 로드리고가 연주하는 아랑후에즈 협주곡이 잔잔하게 깔리는 것만 같다.

 

마드리드로 귀환. 

351km를 이동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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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을 떠나는 날이다. 그리고 에스파냐에 세번째로 입국하는 날이다. 첫날 입국, 모로코 다녀오면서 입구, 포로투갈로부터 입국. 누가 에스파냐에 몇 번 가보았냐 묻거든, 세 번이라고 답하라~~~

입국 경로도 모두 다르다. 바르셀로나, 타리파, 마드리드...

 

7:30에 리스본 공항 도착 예정이었다. 그러므로 이날도 상당히 서둘러서 아침 일정을 진행했었을 것 같다.

탑승 수속을 준비하는 모습.

 

포르투갈 항공의 TP1012편을 타고 날았다. 리스본 포르텔라 국제공항. 1시간 15분 비행.

 

09:35. 떴다~

 

창밖은 날개가 든든하게 막아준다.

 

시속 832km 정도의 속도로 마드리드를 향해 날아갔다.

 

11:50. 마드리드 국제공항 도착.

 

마드리드에 도착하여 일단 먹고 시작한다. 스페인 광장에서 세르반테스를 만나고 프라도 미술관으로 향했다.

 

Las Cuevas del Duque. 공작의 동굴. Gran Parrilla. 큰 철판. 식당 이름이 복잡하다.

 

동굴처럼 생겼다. 동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마드리드에서의 일정을 시작하였다.

공작의 동굴 레스토랑. 늘 구름과자를 즐기시는 분이 먼저 나와 마드리드의 겨울 정취에 취해 있다.

 

스페인 광장에 가까이 위치한 식당이다. 광장까지 걸어서 이동한다.

 

세르반테스 기념물이 광장 가운데 위치한다.

 

세르반테스 석상이 돈키호테 청동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돈키호테와 로시난테, 산초판사의 청동상 옆으로는 돈키호테의 이상형 여인이라는 둘시아네 석상이 있다.

 

기념상 꼭데기에는 다섯 명의 인물이 지구를 짊어지고 책을 읽는 모습을 조각하였다. 지구 전체에서 돈키호테라는 작품을 읽었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청동상과 함께~ 찰칵!

 

멀리서 조신하게 한 컷!

 

마드리드에는 크고 작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270여 개나 있다고 한다. 그 270여 개 중의 한 곳을 방문한다.^^

프라도 미술관.

1819년에 개관한 미술관이다. 유럽 미술 작품들의 우수한 컬럭션을 갖추고 있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술관으로 평가된다. 세계 3대 미술관의 하나.

 

 

프라도 미술관 뒷편에 위치한 근사한 성당. 산 헤로니모 엘 레알.

 

예술에 관심이 지대한 가족.

 

 

 

마드리드의 관청사 옆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저녁을 모셨다. Ministry of Employment and Social Security 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고려정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달렸다.

오늘의 숙소는 마드리드 국제공항 주변에 위치한 Hotel Avant Aeropuerto.

 

리스본에서부터의 비행 거리를 포함하여 663km를 이동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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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륙에서 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의 서쪽 끝에 있는 나라인 포르투갈의 서쪽 끄트머리를 가보는 날이다.

그리고 수도인 리스본 시내 투어를 하는 날이다.

이동 경로는 다음과 같다.

호텔 - 로카 곶 - 신트라 - 동해반점 = 에두아르도7세 공원 - 제로니모스 수도원 - 발견의 기념비, 벨렘탑 - 로시오 광장 - 로메르시우 광장 - 호텔

 

 

2012년 1월 13일. 리스본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해변 호텔의 주변을 산책하였다. 해변 호텔이라 바닷가에 위치한다. 거꾸론가...

 

이른 아침부터 방파제 끝에 자리 잡는 조사.

 

새들처럼 날아가는 아가씨.

 

대서양을 배경으로 사진하나 남긴다. 찰칵!

 

아침 식사하러 호텔로 돌아간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발했을거다.

A38 도로를 타고 가다가 A2고속 도로로 갈아타 4월25일 다리를 통해 테주 강을 건넜을 것이다. 그리고 A5 고속 도로를 타고 서쪽 끝으로 달렸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도착했다. Cabo da Roca. 돌 곶이라는 뜻이다.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념비에 붙어 있는 표지판. 북위 38도47분, 동경 9도30분, 해발 140미터에 위치한다. 

표지판의 윗쪽에 "이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시인 까몽이스의 글.

 

공원 안내판. 포르투갈 어만으로 작성되어 있다. 세가지, 네 가지 언어로 안내판을 만들어대는 우리나라와 대조된다.

 

카보 다 로카 등대. 앞쪽에 로터리 클럽 조형물.

 

이 사진을 만들고 있는 사진. 아는 사람들이 많이 포함된 단체라 이런 사진들을 서로 많이 만들어주어 좋다!!

 

대서양에 바로 면한 해변이다. 대양의 거센 파도를 그대로 맞이하기 때문에 급경사의 암석 해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파랑의 침식 작용을 받는 암괴. 해식애, 시스택.

 

어부. 달려~

 

등대를 배경으로 한 컷.

 

대서양을 배경으로 한 컷.

 

그림 하나 만들어드리고...

 

기념탑을 배경으로 한 컷.

 

단체사진도 한 컷.

 

관광안내소에서 방문기념증을 만들어준다. 참 친절하다. 그런데 유료다. 5유로 짜리와 10유로 짜리가 있다. 유로로 유료이기 때문에 그냥 왔다.

 

절벽 위의 등대를 묘사한 아줄레주. 관광안내소에 있다.

azulejo라는 말은 '작고 아름다운 돌'이라는 뜻의 아랍어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알함브라 궁전을 방문한 마누엘1세는 이슬람 문화의 타일 장식에 매료되어 귀국 후에 왕궁에 타일 장식을 하기 시작했다. 마누엘1세의 지시로 처음 만들어진 포르투갈 최초의 아줄레주는 신트라 왕궁에 여전히 남아 있고, 시대를 더하면서 포르투갈 만의 독특한 아줄레주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신트라는 리스보아 주의 유명한 관광 도시이다. 예전부터 왕족과 귀족들의 휴양지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고 한다. 그곳에 왔다.

 

두 개의 거대한 원뿔 모양의 탑으로 유명한 신트라 궁전이다. 커다란 굴뚝이 탑처럼 보인다. 궁전 내부 관람은 다음에 하기로... 들어가 질 않았다.ㅠ.ㅠ

신트라 궁전은 14세기부터 공화제가 선포된 1910년까지 포르투갈 왕실의 여름 별장으로 쓰였던 곳이다.

 

신트라 시내의 건물들 하나 하나가 모두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신트라 궁전에서 바라 본 시내 풍경.

우리나라처럼 번쩍번쩍하는 간판을 내걸질 않아 무슨 건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호텔로 이용되는 곳이 아닐까...

궁전 앞에서 시내 쪽으로 한 컷.

 

신트라 시내를 돌아보는 관광 열차.

 

신트라 골목 투어도 진행했다. 멀리 꼬깔 두개가 보인다. 신트라 궁전.

 

골목길 안쪽의 건물 벽에 장식된 아줄레주. 신트라 궁전과 동산 위의 Castel dos Mouros를 묘사한 작품.

 

페나 성을 배경으로 농촌의 일상을 묘사한 작품.

페나성? 그러고 보니 신트라 여행의 하일라이트라고 하는 페나성을 들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왜? 왜?

메모가 남아 있지 않아 이유를 모르겠다. 다음에 다시 가보는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신트라에 대한 아쉬움을 흘리면서 신트라를 떠난다.

 

 

리스본 시내로 들어왔다. 눈에 익은 간판이 보인다. 마음에 점을 하나 찍고 나왔다.

 

동해반점 앞을 지나는 예쁜 학생들. 근처에 학교가 있더라.

 

리스본 시내 투어는 에두아르도7세 공원에서부터 시작했다.

 

4월25일 기념 조형물이 함께 있다.

1974년 4월 25일의 무혈 쿠데타를 기념하는 조형물이다. 장기 집권을 이어가던 독재자 살라자르에 반대하는 좌파 청년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장교들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카네이션 혁명이라고도 불린다.

 

4월25일 혁명을 기념하며 한 컷. 이 양반이 4월19일에 태어났다는데.....

 

에두아르도7세 공원은 1902년 영국의 에드워드7세가 리스본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조성한 것이다.

멀리 보이는 동상은 포르투갈의 두 영웅 중 하나인 Pombal 후작 동상이다. 반대편에서 공원과 함께 바라보면 그림이 참 좋다고 하는데, 그의 등만 바라보다가 왔다.

 

에두아르도7세 공원을 기념하는 분들.

 

갑시다~

에스파냐, 모로코, 포르투갈 일정 전체를 총괄해주고 계신 현지 여행사 사장님.

 

과거 해양제국 포르투갈의 영화를 보려거든 제로니모스 수도원을 가보라 하라~

포르투갈의 전성기인 1502년에 마누엘1세가 짓기 시작해 170여 년에 걸쳐 지어진 건물이다. 인도 항로를 개척한 마누엘1세는 해양제국 포르투갈의 위용을 드러낼 크고 아름다운 수도원을 원했다. 신세계와의 항해로 이룬 부를 바탕으로 하여 바다와 관련된 상징물을 건물에 수도 없이 조각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이를 마누엘 양식이라고 한다.

 

수도원의 입구에서부터 포르투갈의 과거의 영화에 감탄하고 있는 관람객들.

 

천정과 기둥에 밧줄을 형상화한 꼬임 무늬가 보인다. 이것이 마누엘 양식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수도원이므로 당연하게 기독교와 관련된 상징으로 채워져 있다.

 

중앙 제단. 양 옆의 멋진 스테인드 글라스.

 

포르투갈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의 관이 안치되어 있다. 포르투갈의 대양 시대를 열었던 대표적인 인물인 바스코 다가마의 관 앞에서 국뽕에 취하는 포르투갈의 장래 희망들...

 

자리가 난 틈을 이용하여 바스코 다가마와 한 컷.

 

입구에서 얌전하게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 어린 학생들. 줄을 이탈하지 않고 그대로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 해외 여행하면서 '줄선 상태'의 어린이들을 본 적이 자주 있는데, '줄을 그대로 선 상태'로 계속 있는 모습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어떤 나라와 비교하는 마음이 생겨서 미안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 앞길의 이름이 '제국 광장'이다. 그 가운데로 지나는 전차. 버스 전용 차로도 운행되고 있었다.

 

바로 앞쪽으로 테주 강이 흐른다. 강변에 발견의 기념비가 보인다.

 

하류 쪽에 벨렘 탑이 위치한다.

 

벨렘 탑은 마누엘1세 때인 1515년에 리스본 항구를 지킼는 요새로 만들어졌다. 30미터 높이에 4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요새로 만들어졌지만, 리스본 항을 드나드는 배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세관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1600년대 이후에는 정치범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포르투갈의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던 마누엘1세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제로니모스 수도원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해양 국가로 성장하는 포르투갈의 기초를 쌓는데 공헌한 엔히크 왕자 서거 500주년을 기념하여 1960년에 세우어진 범선 모양의 '발견의 기념비'. 

섬세하게 조각된 33명의 위인 부조상을 포함하고 있다. 맨 앞에 엔히크 왕자를 선두로 해양 활동을 수행하는데 기여한 기사, 천문학자, 선원, 선교사 등이 줄을 잇는다. 마젤란, 바스코 다가마, 콜럼버스 등도 포함되어 있다.

 

기념비 앞에는 바닥에 세계 지도가 새겨져 있다.

 

예술인들도 있다.

 

멀리 4월25일 다리가 보인다. 기념으로 사진하나 남기고 떠난다.

 

테주 강 하구에 석양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로시우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중세 시대부터 이용된 리스본의 가장 오래된 광장 중의 하나이다. 브라질의 초대 황제 페드로1세이자 포르투갈의 페드로4세인기도 한 황제의 이름을 따서 페드로4세 공원이 원래의 이름이지만 보통은 로시우 광장이라고 부른다.

광장 한가운데 박힌 말뚝 위에 서 있는 페드로4세.

청동 조각품으로 장식된 분수대.

 

로시우 광장에서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이어지는 아우구스타 거리.

아우구스타 거리는 리스본의 중심가 역할을 하는 보행자 거리이다. 노점상의 간이 차량에 번호판이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띤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등록제를 시행하면서 적절한 세금을 부과한다면 갈등이 조금 줄어들까??

 

유명한 명물,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 요금을 내고 위에 올라 리스본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건물들의 높이가 모두 같으니 이런 관광시설이 만들어진 것이다. 높이 32미터.

 

시계탑을 지나면 코메르시우 광장이 나온다.

 

테주 강변에 위치한 코메르시우 광장.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광장 중의 하나로 꼽힌단다.

원래 이곳에는 리베이라 궁전이 있었는데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파괴되었다. 근대 포르투갈의 기초를 마련한 Pombal 후작의 리스본 재건 정책에 따라 광장이 만들어졌다. 광장 복판에 그의 청동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

 

아우구스타 거리를 다시 한번 더 걸어본다.

 

로시우 광장의 벤치에 앉아 리스본의 밤거리 정취를 느껴보았다. 쌀쌀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150km를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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