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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가 먹고 싶었다.

소고기! 소고기! 소고기! 소고기!

며칠을 노래 불렀더니 드디어 허락이 떨어져 동네의 작은 고깃집을 방문했다.

고기가 고기더라. 갈수록 거대해지는 배둘레에 대한 자각이 점점 강해진다.

해가 떨어져 기온도 떨어졌으니 오랜만에 밤길 걷기를 시도했다.

당현천으로 달려가 천변 산책로를 따라 내려갔다. 중랑천을 하내교에서 건너갔다가 녹천교로 돌아왔다.

1시간 45분, 11,796보. 평균 속도는 시속 4.9km였다고 전한다.

 

노원구는 '교육특구'라고 자랑한다. 구청장 선거 때마다 강조된다. 헌데 그 교육은 "학교 교육"보다는 "학원 교육"이 더 강조되는 듯한 느낌적인 필링이 좀 많이 강하게 남는다.

특목고 입시에서 영어를 어떻게 바꾼 이후 은행사거리 일대의 야간 교통 체증이 많이 완화되었다. 그때 그시절에 학원 시작하고 마치는 시간에는 학원 버스들로 장관을 이루었다. 걸어가면서 볼 때는 장관이었고, 운전하면서 갈 때는.....ㅎㅎㅎ

 

당현천 산책로를 따라 밤이 내렸다.

의외로 뛰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 놀랐다.

조사해보니 요새 뛰는 모임이 뜨고 있다고 하는데, 그런 영향일까? 일단 떼거지로 달리며 자신들은 즐기고 다른 사람들은 조금 불편하게 하는 '크루' 모임은 보이질 않았다. 그냥 뛰는 사람이 많았다. 몇 발짝 따라하다가 그만 두었다.

 

당현천을 내려와 중랑천과 만나는 지점에 설치된 '만남의 광장'. 이곳에서 쉬다가 바로 귀가하고는 했는데, 걷는 경력(?)이 좀 쌓이다 보니 이 정도로는 부족하더라. 그래서 조금 더 걷는다.

스맛폰 사진으로 '프로' 모드에 들어가 ISO 수치를 최소로 바꾸고 셔터 속도 조절을 하니 야경 사진이 잘 만들어진다.^^

중랑천을 건너 월계역 방면으로 이어지는 한내교와 부근의 불빛이 중랑천에 반사되어 근사하다. 그렇다고 하자!

 

스맛폰 카메라를 프로 모드로 바꾼 김에 느린 셔터 사진들을 몇장 더 만들어보았다. 달려오는 방향으로 촬영하니 달려오는 차량들의 전조등 궤적만 남는다. 플래쉬를 이용해 차량의 모습까지 잡아냈다면 이것이 선막동조인가 후막동조인가... 기억이 나질 않는구나.

 

반대 방향에서 촬영해보았다. 후미등의 궤적만....ㅎㅎ

 

한내교에서 노원자원회수시설이 위치한 북쪽 방향. 사진 왼쪽에 별들이 찍힌 것인가 했더니 고압선 식별을 위해 매달아 놓은 장치였다. 헬리콥터 조종하다가 고압선을 보지못하여 걸리면 곤란하겠다.

 

학여울 청구 아파트는 확실한 리버뷰 아파트이다. 

 

음악소리가 요란하다. 중랑천 건너편에 수많은 사람들의 윤곽이 보인다. 장난 아니다.^^

 

이쪽은 좀 약하다. 저쪽으로 얼른 건너가보자.^^

 

녹천교를 건너며 또 '야경 사진'을 만들어 보았다. 너무 밝은가? 밝은 밤이라 하자.

 

너무 어두운가? 어두운 밤이라 하자.

 

수많은 사람들이(2백명 이상은 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음악에 취해 있다. 맨 뒤에서 조금씩 같이 흔들어 본다.

 

야간체조교실이었다. 월~금요일 밤 8~9시 운영.

 

셔터 속도를 느리게 잡으니 '당현1교'를 밝히는 LED 조명의 그림이 온전히 사진으로 남는다.

 

당현천 산책로의 "밝은 밤" 사진.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당현천 산책로의 "어두운 밤" 사진. 백병원 건물의 조명으로 인해 한국성서대학교 건물에 야간 조명이 설치되는 듯한 효과가 나타난다.

 

삼성 헬스 기록 화면을 캡쳐해보았다.

 

걷자... 걷자...  다음에 또 걷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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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의 별내동은 덕릉고개를 사이에 두고  서울 노원구 상계동과 인접하여 있다. 덕릉고갯길이 좁아 주말이면 만성적인 차량 정체가 발생하였으나 덕릉터널이 개통되면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상계동에서 당고개역 지나 덕릉고개를 넘으면 왼쪽의 수락산 자락으로 많은 묘가 조성되어 있다. 그 사이의 골짜기에 덕릉마을이 있으며, 위로 오르면 흥국사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는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식당이 성업 중이다. 카페로 운영되던 시절부터 종종 방문하였었다. 

2024년 8월 29일 목요일에 옆지기를 모시고 점심 식사를 한 후 한쪽에서 함께 운영 중인 찻집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드님이 2박3일 간의 정부(국방부)에서 제공하는 캠핑을 마치고 나오신다길래 모시러 나온 참이었다.

시간이 많이 남아 날이 매우 더워 폭염 경보가 발령된 날이었지만 찻집을 나섰다. 옆지기는 안 따라나서시네. 혼자서 얼마전에 방문했다가 지도에서만 확인했던 "덕릉마을 산신각"을 눈에 담고 싶어서였다.

거리는 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산신각 방향으로 입산을 할 수 있는 통로가 안보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덕릉마을회관이다. 마을회관에서 바로 접근할 수 있을 것처럼 지도에서는 보이지만 막혀 있었다.

 

도로를 따라 터덜터덜 걸어내려왔다. 덕릉고개에서 내려오는 도로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부분에 표지판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200M'만 가면 된다고 되어 있다.

표지판 아래 부분에 '본 표지판은 임시 제작되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농작물과 잡초가 뒤섞여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길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초입을 지나면 등산로 "처럼" 보이는 구간이 나타난다.

 

왼쪽 방향으로 100M를 더 가면 된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진행방향의 묘가 보이는데 왼쪽 아랫부분의 풀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풍화가 아주 잘 된 화강암 기반암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덕릉마을 산신각"이다.

 

산신각의 지붕은 人자 모양으로 펼쳐진 맞배 지붕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양옆으로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山神閣?

산신각은 '사찰에서 산신을 봉안하는 불교건축물'이라 정의된다. 한국 사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로서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일러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산신은 원래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착신이나, 불교의 재래신앙에 대한 수용력에 의하여 먼저 호법신중(護法神衆)이 되었다가, 후대에 원래의 성격을 불교 안에서 되찾게 된 것이라 한다.

 

德陵 마을 山神閣은 수락산 자락에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1888년 세워졌다. 972 의 대지에 1칸 크기의 목조기와로 건축된 전당 전면에는 산신각이라 쓰여진 현판이 걸려 있고, 맞은편 현판에는 조성연대가 쓰여 있다. 후실의 전면은 6쪽의 판벽과 판문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책거리, , 쌍회문 등을 새겨 단청을 하였다. 뒷벽의 윗부분에는 푸른 칠을 한 위에 흰 칠로 호랑이가 담배 피우는 모습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1996년 12월 24일에 경기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민속자료 제9호'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이제는 번호를 붙이지 않고 그냥 경기도의 "민속문화유산'이다. 

철책으로 보호하고 있어 가까이 가볼 수는 없으며 또 잠겨 있어 내부는 볼 수 없다.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후실 안 정면에는 탱화풍의 산신도가 모셔져 있는데, 중앙에 산신이 왼쪽에는 호랑이, 오른쪽에 동자 2명, 선조낭자 1명, 다승(茶僧)1명을 배치한 그림이 있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마을 주소와 그 당시 살았던 사람의 이름이 있으며 화가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이 마을의 산신제는 음력 정월과 10월 초하루에 올린다. 산신제는 날을 받은 후 동네 사람들 가운데 생기복덕을 따져 맞는 사람 중에 깨끗한 사람으로 화주(당주)한 명을 택해 밤에 유교식으로 제례를 올린다. 산신각과 산신탱화, 산신제의 내용으로 봐서 전통적인 산신신앙과 불교신앙, 그리고 유교의례가 융합되어 조선시대 형성된 마을신앙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현재 산신각은 1998년에 보수되었다.

(출처: 남양주시청 홈페이지)

 

보존 상태가 아주 깔끔하다. 잘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입로 정비만 조금 추가하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한다. 마을의 대형 식당이나 카페에서 산신각 쪽으로 진입로를 열어주는 것도 희망사항에 들어간다.

주말에 많은 손님이 찾았다가 식사를 마치고 빨리 빠져나가지 않고 이곳을 구경하러 다녀온다면 주차장 자리를 오래 잡고 있게 되는 상황 때문에 그러할 가능성은 아주 낮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저 아래 숲속에서 아드님이 2박3일 캠핑을 했다. 퇴소했다고 연락이 왔다. 빨리 데리러 가자며 옆지기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남양주시 별내에 위치한 '덕릉마을 산신각' 방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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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 앞쪽에 자그마한 동산이 우뚝(!) 솟아 있다. 불암산 자락에 붙어 있지만 '백사마을' 골짜기에 의해 살짝 분리된 봉우리이다.

이 봉우리가 "금화산"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구글지도'를 통해 알게 되었다. 카카오맵이나 네이버지도에는 이름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노원구청의 홈페이지를 뒤적여보아도 관련 자료를 찾질 못했다. 불암산을 찾는 등산인들은 '금화산'이란 이름을 이정표로 삼아 사용하고 있는 자료들이 보였다.


 

그래서 일단 NAVER 홈페이지의 '지도' 탭에서 '정보수정제안하기'가 보이길래 금화산의 이름을 찾아달라고 '제안'했다. 의외로 빨리 처리가 되었다. 제안을 반영하기로 했다는 메일을 받은지 3일만에 네이버지도에 이름이 표출되었다. 와우!!

내가 제안한 것이 네이버를 움직인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바라만 보고 살았던 '금화산'을 등정하기로 마음먹고 날씨는 덥지만 집을 나섰다. 한글비석로를 따라 남하하다가 충숙근린공원 쪽의 등산로를 따라 등반했다. 작은 동산의 정상에 처음 오른 것이 기뻐 이쪽으로 저쪽으로 왔다갔다 구경하다가 GPS 정보 좀 확인하면서 하산하였다.

 

'네이버지도'에서 "금화산"이 이름을 찾은 그날은 하늘의 구름이 너무도 시원하고 멋지게 보였다.^^

 

'한글비석로'라는 도로명이 만들어지게 한 "한글비석"이 위치한 곳을 돌아보면서 지나간다.

 

중계9단지 쪽에서 금화산으로 오를 수 있는 등산로.

 

늘 조용하게 보이는 '불암산 목공예체험장'.

 

목공예체험장 옆으로도 금화산을 오를 수 있다.

 

서울시립과학관 옆으로 나 있는 등산로. '하계약수터' 쪽이라고 등산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충숙공 이상길 부부의 합장 묘역이다.

인조 때의 문신이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종묘와 사직의 위패를 모시고 강화도로 들어갔지만 얼마 못되어 남한산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순절하였다. 이에 인조는 '충숙'의 시호를 내렸다. 현종 2년(1661년)에는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쓴 신도비가 건립되었는데, 1988년에 서울시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묘역 옆에는 동천재가 남아 있다. 이상길의 호가 "東川"이다.

 

충숙공 묘역 일대에 조성된 충숙근린공원을 지나면 금화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보인다.

 

금화산을 맨발로 헤메는 분들을 위해 씻고 가시라고 수도가 설치되어 있다.

 

맥문동 꽃이 만개했다.

 

'웃골'에 조성되어 있는 "불암산더불어숲" 놀이 공간이다.

 


 

'웃골'옆의 등산로를 따라 금화산을 오른다.

 

주인이 안보이는 신발 세켤레가 보인다.^^

 

기반암이 화강암인 산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심층풍화 산물인 굵은 모래로 구성된 등산로. 맨발로 걷기에 참 좋을 것 같다. 맨발로 뛰어 정상까지 오르는 분도 있더라.

 

나름 숲이 우거져 등산로 이외에는 시야가 차단된다. 등산로 아무 방향으로 가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지만 그래도 이정표는 도움이 된다. 노원구청에서 만든 이정표 '정상쉼터'에 누군가 "금화산"과 "사각정"을 추가시켜놓았다.

 

'금화산' 정상 방향을 안내해주는 스머프.

 

'금화산' 정상에는  쉼터로 이용할 수 있는 작은 사각정이 두채가 있으며, 태극기도 게양되어 있다.

 

사각정 부근에서 가장 높은 뽀인트에는 벤치가 하나 놓여 있다.

 

스맛폰의 GPS앱을 켜보았다. 금화산 정상의 해발고도는 128.3m이다.

 

'네이버지도'앱을 실행시켜보았다. 실제 정상의 위치와 지도에 표시된 곳의 위치가 조금 다르다.^^

 

네이버지도 앱에서 금화산 위치 표시가 된 곳으로 찾아갔다. 얼러리? 해발고도가 37m라고 나온다.

이곳에서 GPS앱이 알려주는 해발고도는 117.9m였다.

 

네이버지도 앱에 다시 접속하니 이번에는 654m라고 나온다. 이건 좀.....ㅠ.ㅠ

스맛폰을 최신폰으로 바꾸어야 할까???

 

금화산 정상의 태극기님과 함께한 인증 사진을 하나 남겼다.

 

백사마을 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중계지하차도 쪽에서 금화산 방면으로 오르는 경로가 가장 짧다.

 

옛날 그시절에 만들었던 참호가 깨끗하게 남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정상을 넘어 하산하다가 만난 이정표. 중계주공9단지 쪽으로 내려가보았더니 서라벌고등학교 방면이다. 다시 올라와 7단지 방면으로 하산하였다.

 

7단지 방면 등산로에는 풍화된 화강암 기반암이 노출된 구간이 좀 보였다.

 

중계주공7단지의 놀이터에 도착하였다.

 

집이다. 저 너머에 우리집이다.

 

1시간 걸렸단다. 6,800보 걸었다. 364kcal 소모했다고 삼성헬스 앱이 알려준다.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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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여름은 연일 폭염 경보가 이어지고 있다.

더위 속에 시원한 숲속을 찾아가보고 싶었다.

네이버지도를 뒤적인다. 

근처에 달려 나가 점식 식사하고, 차 한잔하고, 간단히 들러볼 곳을 찾다가.... 종종 가보았던 곳으로 골랐다.

옆지기에게 함께 가자고 결재상신 올려 승인을 받았다!!!


 

상계동에서 덕릉로를 따라 이동하여  당고개를 넘었다.

'목향원'에서 식사하고는 그 윗쪽의 수락산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자연소리'에서 차를 한잔하면서 '자연'을 즐기고자 하였다. 그리고는 '흥국사'를 탐방하고 귀가하는 일정을 잡았다.

 

하늘에서 본 목향원과 주변 일대. 12시가 되기 전임에도 제2주차장에 차들이 거의 채워져 아랫쪽의 제1주차장에도 차들이 진입하고 있다.

 

1997년부터 운영을 했었던 곳이란다. 

 

옛날에는 옛날 건물이었는데, 재단장하여 신식 건물로 바뀌었다.

 

들어가는 입구 한쪽으로 장독들이 줄지어 있다.

 

옛날에는 산골짜기에 숨어 있는 조용한 곳에 찾아와 차한잔을 즐기고 가는 곳이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서 고기집으로 변신하였다. 사람들이 아주 많이 찾아오면서 주차장도 넓히고, 메뉴는 그냥 한가지로 바뀌었다.

 

쌈밥용 채소가 먼저 나오면서 인원수대로 주문이 들어간다.

 

역시 초기보다 반찬의 가짓수가 줄었다. 식탁에 찬그릇을 놓을 수 없을 정도였는데...^^

밥도 삼색밥이다.

 

석쇠불고기. 맛있다.

 

마당 건너편에는 카페도 마련되어 있다. 수락산에서 불암산을 바라보며 차를 즐길 수 있다.

 

화강암 덩어리인 불암산 정상쪽 조망. 폭염 경보 속의 하늘은 뜨겁기만 하다.

 

네이버지도에서 캡쳐하여 글자를 키워 넣었다. 목향원에서 식사하고 '자연소리'를 찾아가려했다. 찾아가려했다.

목향원의 주차장에서 올라갈 수 있다고 하여 차를 디밀었더니 막혀있다. 흥국사 일주문 옆으로 난 샛길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어 그리로 가려 했더니 10년은 자연 속에 테라포밍된 것 같은 상태다. 길이 아니다.

엄하게 차를 왔다갔다 하고 있으니 목향원 주차관리원이 달려온다. 카페에 대해 질문하니 저 윗쪽에는 아무 것도 없다 한다. 난 뭘 보고 온 것일까...

귀가하여 다시 찾아보니 2019년 9월과 2020년 1월에 찾아갔던 이들의 리뷰가 2개 있을 뿐이었다. 이후 운영을 하지 않고 있는가보다. 네이버지도 "정보수정제안하기"를 통해 폐업했으니 지도에서 삭제해달라고 하려 했더니 증거로 "사진"을 요구한다. 사진을 찍으러 다시 가야겠다.


흥국사로 바로 가자.

목향원 바로 위에 위치한 일주문을 지나 올라간다. 쭈욱 올라간다.

 

금방 도착한다. 비포장이긴 하지만 주차 공간이 꽤 된다. 여유있게 나무 그늘 아래쪽에 주차.

 

하늘에서 바라본 흥국사. 규모가 크지 않은 절집이다. 사찰의 여러 기능을 복합적으로 수행하는 공간인 '대방'이 흥국사의 입구에 위치한다. 그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신식 식당'.

 

보통은 가장 큰 건물이 '대웅보전'이지만, 흥국사의 경우에는 그냥 "대방"이다.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여러 기능을 한 건물에서 수행하도록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기와불사에 참여해주세요.

 

영산전과 대웅보전.

 

영산전과 대웅보전 안내판.

 

흥국사의 창건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신라 제26대 진평왕 21년(599년)에 원광법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조가 왕위에 오른 이듬해인 1568년에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묘를 흥국사 남쪽에 쓰면서 부친의 명복과 극락왕생을 위해 수락사를 중수 복원하고 '흥덕사'라고 이름을 내렸다. 이후 1626년에 인조가 건물을 중수하면서 다시 '흥국사'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대웅보전 건물은 팔작지붕으로 양끝에 용머리 장식이 있다. 지붕 아랫쪽에 처마와 기둥 사이에 공포를 설치하고 있다. 공포는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고 화려하게 돋보이도록 하는 장치로,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머리가 새겨져 있어 조선 후기의 장식적인 조각 기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대웅보전 안에 모셔진 목조석가삼존불좌상.

가운데 석가불을 중심으로 그 왼쪽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오른쪽에는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아보는 보현보살이 석가불을 보좌하고 있다.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의 조성 발원문이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인 조성 시기나 최초 봉안 사찰은 알 수 없으나 18세기 중반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웅보전 윗쪽의 단하각.

 

대웅보전 옆의 시왕전.

 

시왕전 윗쪽의 만월보전. 뒷편에 '승탑'이 있다는데 이번 탐방에서는 놓쳤다. 다음에는...

 

'승탑'을 찾아 올라왔다가 근사한 '새 탑'에만 눈이 가서 '승탑'을 놓친 것이다.

 

대웅보전에서 떨어져 위치한 나한전. 

소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 및 16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흥국사 소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정확안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1650년에 세번째로 고쳤다는 발원문이 발견되어 1650년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6 나한상은 우리나라에서 일괄 문화재로 전해오는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전라북도 고산(현재는 완주) 안심사 약사암에 모셔져 있던 것을 1891년에 흥국사로 옮겨와 다시 고치고 이듬해부터 모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었네요.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00760.html

 

나한전 앞의 마당 건너편에 위치한 범종각. '범종각' 현판은 다시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목어, 범종, 법고 등이 설치되어 있다.

 

흥국사 대방. 조용한 절집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탐방 기회였다.

 

산자락이 온통 묘지이다. 다음에는 '덕릉마을 산신각'을 찾아가보고 싶다.

아! '자연소리' 진입로가 폐쇄된 사진도 찍어야 한다.^^

네이버지도에 정보수정 요청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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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슨의 도트매트릭스 프린터로부터 시작했다.

프린터 구입의 역사.

휴렛패커드, 삼성 등의 잉크젯 복합기를 거쳐 레이저 복합기까지.

원고를 쓰는 작업을 몇년 했기에...


그러다가 엄청나게 할인 판매를 하던 BROTHER 제품을 구입하게 되었다.

레이저 복합기의 엄청난 유지비 때문에 다시 잉크젯 복합기로 돌아가려는 참에 엄청 할인 판매를 해서...

그 이전에 사용하던 잉크젯 복합기의 잉크 카트리지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한 제품이었다.

잉크 카트리지의 용량 문제 때문에 "무한 잉크 세트"를 사용하려 했는데,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레이저 복합기로 바꾼 것이었지만...

그런데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BROTHER 제품은 아예 기본적으로 "무한 잉크"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만족하며 사용했고, 다른 제품에는 눈이 전혀 가질 않았다.

2018년에 출시된 모델이니 오래 사용했다. DCP-T710W.

오래 되어서 그런지 종이를 집어올리는 부품이 노후된 것 같았다.

A/S를 알아보다가 그냥 새 제품을 사기로 했다. 수리 비용이나 구입비용이나 별 차이가 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어...

이제는 프린터를 많이 사용하지는 않으므로 보다 하위 모델로 골랐다.


고민하다가 오밤중에 주문했는데, 다음날 대낮에 문앞으로 배송해주더라. 대단!!

 

집을 '올수리'하면서 온통 흰색 계통으로 바꾸어버려 프린터도 흰색으로 주문했다. 깔끔하다.^^

 

잉크 카트리지를 장착하고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잉크통이 달려 있다. 뚜껑 열고 잉크를 추가해주기만 하면 된다.

 

먼저 사용하던 모델에 비해 급지 카트리지의 용량도 커졌다. 이것도 마음에 든다.

 

WIFI를 통해 무선으로 작업을 시킬 수 있다.

컴퓨터와는 USB 유선으로 연결하고 스맛폰이나 노트북에서는 무선으로 작업을 시키고 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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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30일 화요일.(8월 5일, 8월 11일에 보강 답사)

노원구의 '한글비석로' 언저리에 살고 있다. 꽤 여러 해가 되었다. 그러한 지명을 갖게 된 것이 "한글 비석"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길 들었다. 궁금했다가 잊고 지났다가 하다보니 세월이 주욱 지나갔다. 

생각난 김에 탐방에 나섰다. 생각난 때가 밥 때인지라 식당에 들러 배를 채우고 길을 걷는다. 혼밥을 하는 나이든 아저씨들이 여럿 보여 위안(?)이 되었다.

위치를 대충으로만 알고 있었다(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있었다). 걷다보니 서울시립과학관이 보이더라.^^ 지나친 것이다. 할 수 없이 뒤돌아 걸었다. 한글영비를 탐방하고는 나선 김에 동네 한바퀴 산책을 했다. 많이 덥더라. 34도의 한낮에 콘크리트, 아스팔트 도로를 걷는 것이 좀 많이 힘들기는 하더라.

 

한글비석로의 길가에 눈에 잘 띄게 안내판이 되어 있지 않다는 핑계를 대본다. 여길 그냥 지나쳤다가 되돌아왔다. 계단 윗쪽으로 올라가면 '한글 비석'을 볼 수 있다.

 

서라벌 고등학교에서 불암산 쪽으로 길건너편에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이윤탁 부부의 합장묘이다. 

관직이 '권지승문원부정자'에 이르렀던 이윤탁의 묘는 지금의 태릉 자리에 있었는데 문정왕후 윤씨의 묘를 조성하면서, 부인 안인(고령) 신씨 묘가 있던 이곳으로 옮겨 합장하였다.

 

'한글 영비'를 보존하고 있는 영비각. 노원구 하계동 12번지이다.

이 비는 이윤탁의 아들 이문건이 부모의 상중에 무던 옆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세웠는데 새로 조성한 부모의 묘역이 훼손되는 것을 경계하는 내용도 비에 새긴 것이다. 중종 31년(1536년)에 세웠다. 1998년에 도로를 확장하면서 원래 위치에서 15m 정도 뒤로 옮겼는데, 원래 비석이 있던 위치에는 돌을 묻어두어 표시를 했다고 한다.

'한글고비'라는 이름으로 1974년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에 보물 제1524호로 승격되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영비각 바로 앞에 설치된 안내판.

 

비의 몸체 위쪽 양 모서리에 각을 주고 받침대는 네모꼴로 만들었는데 이는 조선 초기에 유행한 圭首方趺의 양식을 따른 것이다.

 

비의 앞면에는 묘 주인들의 이름이 있다. 

 

묘의 뒷면에는 일대기를 새겼다.

 

비의 우측에는 한문으로 경고문을 새겼다.

不忍碣

爲父母立此誰無父母何毁之石不忍

犯則墓下忍凌明矣萬世之下可免夫

 

맹자가 혹독한 정사를 펼치는 군주들에게 각성을 촉구한 '不忍之心'을 인용한 것으로, "차마 하지 못하리니"라는 제목을 붙였다. 내용은, '부모를 위해 이 비석을 세운다. 부모 없는 사람이 누가 있어 이 비석을 훼손할 것인가. 비를 차마 깨지 못하리니 묘가 능멸당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만세에 이르도록 화를 면할진저.'

 

비의 좌측에는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한글로 적었다.

靈碑 

녕ᄒᆞᆫ비라거운사ᄅᆞᄆᆞᆫᄌᆡ화ᄅᆞᆯ니브리라

이ᄂᆞᆫ글모ᄅᆞᄂᆞᆫ사ᄅᆞᆷ다려알위노라

 

해석은 다음과 같다. "신령스러운 비석이다. 범하는 사람은 재화(災禍)를 입을 것이다. 이는 글(한문)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는 한글로 쓰인 최초의 묘비문으로 알려져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높으며 국어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글이 단어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의 문장으로 구성된 것이라서 가치가 높다 한다.

이 ‘한글영비’는 국어생활사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첫째, 중종 31년(1536) 당시 한글이 얼마나 널리 알려져 있는가를 증명해주는 자료이다. 둘째, ‘한글영비’에 새겨진 한글의 서체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직후의 서체, 즉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체와 <용비어천가> 서체의 중간형의 성격을 지닌다. 셋째, 이 비석의 글은 비석의 이름인 ‘영비(靈碑)’를 제외하고는 국한 혼용이 아닌 순 국문으로 쓰여 있다. 본격적으로 한글로만 쓴 문헌은 18세기에나 등장하나 이 ‘한글영비’는 16세기에 이미 순국문으로만 쓰인 문장이라 할 수 있다. 넷째, ‘한글영비’는 언해문이 아닌 원 국문 문장이다. 15세기 이후 한문 원문을 번역한 언해문이 한글자료의 주종을 이루었으나 이 ‘한글영비’는 짧은 문장이긴 하나 처음부터 우리말로 쓰인 문장으로, 한글이 한문 번역도구가 아닌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직접 전달하는 도구로 변화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섯째, ‘한글영비’에 쓰인 국어 현상은 이 당시의 언어를 잘 반영하여 당시 국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국가유산포털,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석비의 글자가 흐려진 부분이 있어 명확하게 읽어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영비각 안쪽에 깔끔하게 한글 부분을 새긴 작은 나무팻말을 달아놓았다. 처음 갔을 때는 안보이던 것들이 여러번 가니까 하나씩 추가로 눈에 들어온다. 거참...

 

한글영비는 영비각에 보존되어 있고, 합장묘 앞에는 새로운 비석을 세웠다. 한글 번역판이다.

 

영비 뒷면과 오른쪽 면의 한문 부분을 모두 한글로 번역하여 새겼고, 한글 부분은 잘 보이게 굵은 글자로 새로 새겼다.

 

불암산 자락에 위치하며 한글비석로 건너편으로는 아파트 단지와 서라벌 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묘의 관리가 아주 잘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묘소 바로 윗쪽에 조성된 다른 묘는 장맛비로 인한 봉분의 훼손이 보인다.

 

CCTV가 계단 아래에 설치되어 있다.

 

보물 제1524호의 안내판은 가로수에 가려 잘 보이질 않는다. 약간의 위치조정이 필요하지는 않을지...

 

한글 영비를 보고는 집을 나선 김에 계속 산책을 해보기로 했다. 새솔공원이 인근에 위치한다.

 

2022년 조성 전의 모습과 2023년 조성 후의 모습을 비교한 사진. 

 

불암산 목공예체험장이 핵심이다.

 

들어가보았다. 체험 신청자는 안보였다.

 

서울시립과학관의 근사한 모습.

 

이곳도 개관한 이후 처음 들어와본다. 8월 11일까지 입장료 무료 행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립과학관의 투어 안내 자료는 영어판만 구비되어 있다. 한글판은 안보여서 그냥 왔다.

 

길을 건너면 대진고등학교 맞은편에 "에너지 제로 아파트"가 위치하고 있다. 그 입구에 설치된 체험주택이다.

2018년에 개관하였으며, 에너지 제로 주택 관련 정보 제공 및 홍보, 체험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늘을 구름이 가리고 있어 설렁설렁 나섰는데, 점점 하늘이 뜨거워지더라. 34도에 머리가 익는 느낌?

중랑천변 산책로로 들어오기 위해 하계동의 학여울청구아파트를 가로질렀다. 한내교는 월계역과 연결되는 인도교이다.

 

한내교에서 중랑천의 상류 쪽을 조망했다. 경치는 좋다.^^

 

중랑천으로 당현천이 유입되는 뽀인트에 '만남의 광장'이 설치되어 있다. 노원구에서 더운 날씨에 산책하는 구민들을 위해 생수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어제부터 시작했닥고 연락을 받았다. 혹시나 이곳에서 제공하고 있지는 않을까 기대를 했다.

수도에서 따끈따끈한 물만 나오네......

 

노원소각장인 '노원자원회수시설' 옆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예쁘게 잘 단장해놓았다. 덥다.

 

녹음이 우거진 당현천 산책로. 가로수 아래로 그늘을 찾아 흐느적거리며 걷는다.

 

찾았다!!! 작년에도 이 위치에서 생수 공급을 해주기는 했었다.

 

고마운 노원구청.^^

 

폭염에 녹아 흐르는 것만 같다. 계속 걷기에는 힘이 부쳐 벤치에 몇번이나 앉아 쉬었다. 멀리 불암산이 보인다. 거의 다 왔다.

 

 

8.5km를 걸었단다. 11,000보. 평소보다 걷는 속도가 뚜욱 떨어졌다.ㅎㅎ

모자도 안쓰고 뙤약볕을 따스하게 체험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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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드론을 갖게 되었다. 지인이 자기가 소유한 드론 중 하나를 내게 넘기면서 권유하는 바람에 드론에 맛들이게 되었다. 망설이다가 조그만 드론을 하나 구입하면서 그 드론은 원소유자에게 반납했다.

가끔 조그만 드론을 갖고 나가 논다. 하지만 서울은 거의 "관할기관 비행승인"이 필요하여 마음을 크게 먹고(?) 나서야 하는 형편이다. 그러던 중 집에서 멀지 않은 장암역 인근이 "비행승인 불필요"한 동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은 벗어났는데, 더 무서운 공역에는 해당되지는 않는 낀 동네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드론 원스톱 민원포털(https://drone.onestop.go.kr/#)"의 지도에서 '석림사' 부근을 클릭했더니 '조종자 준수사항'이나 잘 지키라고 나온다. 가자!!

(참고로 위의 지도에서 빨간색으로 빗금친 P518 공역에서는 드론을 날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하는 무서운 곳이다. 초록색 빗금친 R75 공역에서는 비행승인 및 촬영 신청을 사전에 해야 하는 곳이고...)

 

다음 날 바로 길을 나서려 했는데, 장마철이라는 복병이 막아섰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비가 내린다. 아니면 다른 일거리가 생기던지... 그러다가 드디어 2024년 7월 25일에 출발했다. 망설이는 옆지기를 꼬셔서 함께 출발했다.^^

 

지하철 7호선 중계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을 이용해 종점인 장암역까지 달려갔다. 지하철 내부 좌석 한줄에 자리가 7개였는데, 신식 차량은 의자가 6개만 설치되어 있다. 오래 되었을텐데 오늘에야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 구간은 GPS 신호가 잡히질 않아 중계역에서 도봉산역까지의 경로는 직선으로 표시되었다. 도봉산역에서 장암역 구간에서는 철로의 굽어진 경로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7호선 종점인 장암역에 도착하여 수락산을 바라본다. 구름이 멋들어지게 흘러간다.

바로 길건너에 위치한 커다란 식당 '牛리나라'에서 하산길에 점심을 해결하였다. 해당 식당의 바로 오른쪽으로 석림사계곡이 이어진다.

 

사랑채만 남아 있는 '서계박세당 고택'을 방문했는데 잠겨 있어 그냥 지나갔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 역시 문이 잠겨 있는 '노강서원'을 지나 '석림사'를 탐방했다. 계곡을 좀 더 따라 올라가다가 적절한 지형 경관을 즐겼다. 잠시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가볼 수 있었다. 하산길에 박세당고택을 다시 방문했는데, 입구에서 개짓는 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도망쳤다.

 

사유지이며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공간이 아니라 한다. 조경이 잘되어 있어 내부의 생활공간이 외부의 시선에서 차단되어 있다.

 

경기도 지정 문화유산이다.

 

따로 고택의 관리자에게 연락을 미리 한 바가 없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 석림사 계곡을 따라 계속 오르기로 한다. 몇 걸음 옮기지도 않았는데 땀은 아주 잘 흘러내린다.^^

예전에는 이 계곡의 많은 식당들이 사시사철 탕을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했었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그렇게 기억한다. 

그러했던 식당들의 '흔적'이 외부의 간판에 남아 있다. 찾는이들이 줄어들면서 식당 내부에 설치된 메뉴판에서는 제거된 식당들이 여럿 있다. 중복날을 기념하여 아직 그러한 메뉴로 영업하는 식당을 찾아보는 것도 오늘의 과제였으나 다음 언젠가로 미루기로 했다.^^

 

분명히 가구 공장인데...... 유리창의 "FINE DRONE"이라는 문구가 눈에 확들어왔다. 암만 살펴도 "드론"과는 관계없는 업체로 보이는데......

'파인드론'은 국내의 드론 개발 및 생산 업체였는데 사업을 접었다는 소식이......

 

장맛비가 내려 계곡이 물이 시원스럽게 흘러내린다. 아직 '토종' 음식으로 영업을 열심히 하는 식당이 남아 있는가보다.

 

계곡의 오른쪽을 따라 걷던 길이 작은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올라간다.

 

청풍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흔적이 석재로 구성된 주춧돌만 남아 있다. 서계 박세당이 노강서원 아래에 세웠던 것이라 한다.

 

중랑천변에 위치한 장암역에서 수락산 방향으로 그냥 직진하여 골짜기로 진입하면 노강서원에 이를 수 있다. 금방이다.

 

노강서원이다. 경기도 기념물 제41호.

노강서원은 1689년(숙종 15) 인현왕후 폐위에 반대하다가 혹독한 국문을 받고 진도로 유배되던 중 사망한 박태보를 배향한 서원이다. 박태보는 서계 박세당의 둘째 아들이었다.

 

1695년(숙종 21)에 노량진에 건립되었던 서원으로서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중 하나였다. 1925녕의 을축년 대홍수때 떠내려간 것을 중건하였고,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이곳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1969년에 옮겨 복원한 것이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 동재, 서재, 삼문, 고직사 등이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中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다.

 

서계 문화유적과 무형 문화유산

기개와 절의의 상징 정재 박태보

시대의 지성 서계 박세당

 

석림사의 일주문이 지척에 위치한다.

 

석림사를 지나 수락산 정상으로 오르는 1-1, 1-2, 1-3 코스가 안내되어 있는 등산지도.

 

석림사 입구.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작은 산골짜기이다. 그래서 일찍 입구를 차단하며, 개를 풀어놓는다고 하니 늦은 시간에 함부로 접근하면 아니되겠다.

 

이색적이다. 大雄殿이 아니다. "큰법당"이다. 1층은 업무용 공간, 2층이 법당으로 이용된다.

석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봉선사의 말사이다. 박태보가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한국전쟁때 소실된 이후 1960년부 비구니 相仁이 제자와 함께 중창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당 내부에 긴의자들을 배치해두고 있는 것도 처음 보았다. 이색적이다.

 

석불, 석탑, 석등...

 

석림사는 수락산의 작은 골짜기에 자리잡았다. 아담한 절집이다.

 

석림사를 지나 등산로를 따라 계속 오르면 '수락폭포'를 만나고, 수락산 정상에 이를 수 있다.

 

수락산 정산에 오르는 것은 다른 분들께 양보하고 물가에 평평한 바위가 보이는 곳을 찾아 주저앉았다.

 

그리고 발을 담가 보았다. 등짝이 다 젖어 시원한 무엇인가가 절실했다.

 

뼈속까지 시리는 감각을 기대했다. 아니더라. 더위가 심해서 그런지 작은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물은 살짝 뎁혀진 느낌.^^

 

무얼 찍고 계시는 것일까......

 

 

밥때가 다가와 골짜기를 내려왔다. '토종' 음식점이 자꾸 눈에 밟힌다.

 

험상궂게(^^) 생긴 문지기가 요란하게 지키고 있는 '서계 박세당 고택'을 다시 찾았다.

 

참 예쁘게 관리되고 있다. 저 안쪽에 문화재로 지정된 사랑채가 보인다.

 

국밥 한그릇. 살짝 짜기는 하지만 양은 좋다.

 

장암역 건너편으로 구름 아래의 도봉산이 보인다.

 

뒤로 돌아보니 멀리 수락산의 정상 부분을 바라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도봉산이나 수락산이나 모두 화강암 산체로서 토양에 덮여 있지 않고 밖으로 드러난 암석 부분이 눈에 많이 보인다. 다음엔 정상까지 올라가 보자!!!

 

정상부를 확대해보았다. 태극기가 휘날린다.^^

 

장암역으로 올 때는 신형 차량이라 좌석이 6개였는데, 장암역을 떠날 때에는 좌석이 7개인 구형 차량이다.^^

옛날보다 요새는 살찐 사람들이 많아져서 한 줄에 앉을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줄인 것일까???

 

중계역에 내려 집까지 걸어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비가 내린다.

우산이 없어 버스를 이용해 귀가하였다.

 

비 예보가 없어서 출발한 길이었는데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니까 일기예보가 달라진다. 여기는 "중계"동이다.

장마철 일기예보가 그렇지 머......

 

수락산의 석림사 계곡은 녹림에 묻혀 있었더라~~

 

 

중복인 2024년 7월 25일에 국밥을 사먹었더라~~

'삼성 헬스' 확인을 해보니 석림사 계곡을 다녀오며 9,756보를 걸었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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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다. 매일 비가 내릴 듯 하더니 새벽에 좀 뿌려주고는 비가 쉬더라. 나도 같이 쉴까 하다가 불어나는 허리둘레, 높아지는 배꼽 동산의 모습이 안타까워 집을 나섰다.

늘 가던 당현천 코스에서 이탈했다. 한글비석로를 따라 하계역 방향으로 걷다가 대진고앞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공릉터널 앞까지 노원로를 따라 걸었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중계로를 따라 중계본동으로 돌아왔다.

불암산 자락의 작은 동산을 한바퀴 돌아온 것이다. 그냥 '작은 동산'을 한바퀴 돌아서 왔다...

 

대진고앞교차로 부근에 위치한 '충숙공원' 특정 집안의 묘지가 문화재가 되고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부러운 집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묘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면 지역 주민들이 즐거이 휴식을 취하러 나오는 공간이 되기에는 분위기가 좀 그러지 않을까 하는 편견을 갖고 있다. 바뀌어야 할 편견이다.

 

노원로를 따라 하계동에서 공릉동으로 넘어가는 '공릉터널'.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차량의 흐름이 뜸한 편이었다.

 

먼 옛날 불암산 스포츠타운. 배드민턴 치러 몇 번 온 적이 있었던 곳인데...

 

고갯마루에 조성된 생태터널이다. '중계로 지하차도'. 전력 공사로 인해 한쪽 차로가 차단되어 있다.

 

생태터널 위로 올라가 백사마을 쪽으로 내려가려 했더니 금줄이 쳐져 있다. 노란색 '폴리스 라인'. 그리고 아랫쪽으로도 금줄이...

 

차단된 금줄 아랫쪽으로 사진을 하나 남기고 돌아선다. 

 

왼쪽 통로는 금줄이 처져 있지 않아 통행이 가능하다. 반바지 아랫쪽의 다리가 가려운 것을 보니 산모기 등이 양분을 가져간 모양이다.ㅠ.

 

길건너편의 '백사마을'은 적막하다. 차량이 보이기도 하는 것을 보니 이주가 완료된 것은 아닌것 같은데...

 

멀리 불암산이 보인다. '헬기장'이 위치한 불암산성 부분이다. 학도암의 마애석불이 위치한 곳도 보인다. 

 

'영양탕'이라 적혀 있었던 간판이 "토종닭"으로 바뀌었다. 에효~

 

다들 불암산이라는 이름만 이야기 한다. 큰 산 아래의 작은 봉우리들도 이름을 가진 경우가 많은데 오늘 한바퀴 돌아온 봉우리는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카카오맵에도, 네이버 지도에도 이름이 없다. 그런데...

구글 지도에는 '금화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그랬다. 금화산이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불러주지 않으니 이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산행을 하시는 분들 중에 금화산 이라는 이름을 찾아 산행 경로 기록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검색하면 나온다.^^

 

찌뿌드할 때 가볍게 산책하는 코스로 좋아 보인다. 이제 세번 째...

 

다리가 가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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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의 장마가 무겁다. 여러 지역에서 침수, 산사태 등으로 인한 피해가 기록되고 있다.

살고 있는 지역이 저지대는 아니기에 그러한 피해에서 조금 비켜나 있기는 하지만 늘 관심을 갖고 있다. 그제는 빗방울이 잠시 멈추었을 때 당현천을 다녀오기도 했다. 오늘은 날이 개어 오후에 산책 삼아 길을 나섰다.

 

당현천을 따라 내려가 한내교에서 중랑천을 건넜다가 경춘선 철교를 통해 다시 건너왔다. 1시간 40분 걸렸고 11,468보를 걸었다. 

 

당현천을 따라 강력하게 물길이 휩쓸고 지나갔던 흔적이 주욱 이어진다.

 

그동안 장맛비가 그렇게 날려 우리 아파트 베란다에 물이 새들어오게 만들어니 오늘 오후는 햇살이 강렬하다. 당현천 건너편에 가로수가 많아 당현2교를 지나면서 가로수길로 접어들었다. 그늘이 좋다.^^

한국성서대학교와 당현천 사이에는 "당현천기억길"이 조성되어 있다.

 

기억력을 점검해볼 수 있는 몇가지 도구가 설치되어 있다.

 

노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치매예방하자고 "기억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나보다.

 

야생의 생태계를 가능하면 그대로 놓아주는 것이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지나가면서 한순간의 재미로 물고기 등에게 자신들이 먹던 찌꺼기를 먹이라면서 뿌리지 말자고 당현2교에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쫌! 이런 것은 지켜주자!

 

잉어들이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덩치들이 더 커졌다. 주변에 애기들도 졸졸 따라 다닌다. 장맛비로 인해 불어난 물길에 휩쓸려내려가 버리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었는데,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다.

몰래몰래 사람들이 부스러기를 뿌려주는지 거기에 훈련되어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보행교 밑에 몰려서 떠나질 않는다. 자꾸만 뻐끔거리는 것이 빨리 새우깡이라도 내놓으라고 하는 것만 같다.

 

당현천이 중랑천과 합류하는 곳이다. 동부간선도로가 지나는 당현4교가 부근에 위치한다. 오래간만에 어도에 물이 가득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중랑천 상류의 창동 방향.

 

만남의 광장에서 하류 쪽에 위치한 한내교. 월계동의 월계역과 연결된다.

 

한내교에서 내려다 본 중랑천. 수위가 높아지면서 모래톱으로 구성된 하중도가 거의 물에 잠겼다.

 

수위가 한참 낮았던 한달 전에는 이렇게 큼지막한 섬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제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경춘선의 폐선이 산책로로 새단장되었다. '월계교"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으나 지금은 '경춘선 철교', '경춘철교'로 불린다. 철교 건너편 왼쪽이 하계동, 오른쪽이 공릉동이다.

 

철교의 교각 아랫부분이 물길에 의해 침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류 쪽에 보를 만들었다. 중랑천의 유속을 잠시 늦추어주는 역할을 한다.

 

교각의 기초도 튼튼하게 방호하고 있다.

 

경춘철도에서 상류 쪽에 '월계1교'가 위치한다. 교통체증이 좀 있는 구간이다. 특히 경전철 공사가 계속되면서 더 심해졌다.

 

월계1교의 아래로 지나가면서 교각을 살펴보면 눈금 표시가 되어 있다.

15미터부터 표시되어 있다. 16미터가 가까워지면 '램프 통제'를 한다. 동부간선도로 나들목을 막는 것이다. 16미터에 본선 통제를 하고, 17미터는 중랑천의 범람 수위에 해당한다. 도망가야 한다.

교각 눈금의 수치 15, 16, 17미터는 중랑천의 깊이가 아니다. 해발고도이다. 한강수계에 중랑천도 포함되어 있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비가 많이 내리면 중랑천의 수위변화를 살피기 위해 방송에도 등장하곤 했다. 지금은 월계1교가 아니라 중화동에 위치한 중랑교의 수위를 기준하고 하고 있다.

한강 본류의 홍수 통제의 기준으로 삼는 한강대교 관측소의 수위표영점표고는 2미터 정도이고, 중랑교 관측소의 수위표영점표고는 9미터 정도이다. 중랑교보다 한참 상류에 위치한 월계1교의 영점표고는 13.5미터이다.

 

과거 중랑천의 주변에 저지대가 많은데, 집중호우시 물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발생하는 '내수 범람'으로 인한 침수 피해가 많았다. 제방을 높이고, 중랑천을 준설하고, 배수 펌프 용량을 증설하는 등의 대책을 실시하여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러한 피해 경험 때문에 수도권에 집중호우가 내리면 중랑천은 요주의 관심 하천이 되는 것이다. 교량의 교각마다 눈금 표시를 해둔 것도 그러한 목적에 따른 것일 것이고.

 

계속 장마가 이어진다는 예보가 나오고 있다. 큰 피해없이 수자원을 확보하는 장마철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비 피해가 없기를 바라면서 당현천과 중랑천을 살핀 2024년 7월 19일 오후의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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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스코틀랜드를 만나게 되었다.

Loch Lomond 라는 이름에 '150회 디 오픈 스페셜 에디션'이라는 타이틀이 덧붙어 있다. 77,000원짜리.

 

Loch Lomond가 스코틀랜드의 어디 시골의 양조장 이름, 혹은 창업자의 이름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모두 아니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인근에 위치한 커다란 호수의 이름이었다. 스코틀랜드 말로 Loch가 "호수"라는 뜻의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로몬드 호수'라는 싱글몰트 스카치 위스키 되시겠다.

 

'로치' 혹은 '로크 로몬드'라고 발음을 한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친환경 뱃놀이 정도를 즐길 수 있는가보다. 아래 지도에서 붉은 점선으로 표시된 것이 '로몬드 호수'이다. "애로차" 바로 오른쪽 호수가의 Tarbet에 '로크 로몬드' 양조장이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2024년 7월 장마의 밤비 소리를 들으며 일단 니트로 즐겨본다. 강렬하다. 입안에 남는 향이 강하다. 첫만남이라 그런가... 차차 서로 알아가는 단계를 밟아야 할 것 같다.^^

(온더락으로 한 모금 음미해보았다. 훨 낫다. 날뛰던 야생마가 조금 성질을 죽이는 듯한 느낌. 늦은 밤 빈 속에 넣어주니 시원하게 뱃속으로 들어가는 느낌도 좋다.^^)

 

그러고 보니 이쪽 동네에서 생산되는 위스키 중에서 '글렌'이라는 단어가 달라붙은 것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 생각났다. 바로 검색해보니 Glen은 "계곡"이란다. 우리나라 지명 '피아골', '도토리골' 등지의 ""에 해당 것일게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미국에도 많이 퍼져 있기도 하다.

'글렌'이 붙은 스카치 위스키들로는 글렌 모렌지, 글렌 알라키, 글렌 드로낙, 글렌 카담, 글렌 피딕, 글렌 리벳, 글렌 그란트, 글렌 캐런, 글렌 버기.......... 등등등 엄청 많다.

 


 

GlenAllachie 10년 짜리의 와인 시리즈 중의 하나를 구입해보았다.

그라타마코 와인 캐스크 피니쉬.

할인 판매 이벤트에 넘어갔다. 110,000원.

7월31일인가에 주문하고 8월 3일에 찾아가라는 것을 하루 늦은 8월4일에 받아왔다. "와인25+"를 통해 종종 계속 가끔 주문을 넣고 있다. 앱으로 주문하고 근처의 편의점에서 찾아오면 되니 편하다.

색깔이 아주 예쁘다. 병을 따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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