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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8일....무슨 요일이지? 요일 개념은 사라졌다.

오늘은 괴물 스딸린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카즈베기를 출발하여 달린다.스탈린의 고향 고리, 그리고 고대  동굴 도시가 있는 우플리스치케를 들러 쿠타이시로 간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먼 길을 달릴 것이다. 약 400km 거리.

 

5시 전에 잠이 깼다. 한국에서는 이러지 아니한데 외국만 나오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인간으로 변한다.

 

창밖의 게르게티.

 

 

성당에 약한 조명을 설치해놓았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강한 조명이 아니라, 나도 여기 있으니 봐조요 하는 정도의 느낌이다.

 

 

 

 

7시에 아침 식사.

 

로비에서 인증! 

 

 

과거 소비에트 시절에 만들어진 호텔인 것 같은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로비 곳곳에 붙어 있는 포스터들.

 

포스터의 구호가 무엇일까?

 

소비에트 연방에 온 것을 환경한다!

 

 

ROOMS 호텔. 이곳의 로비는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너무 이쁘다.

 

 

방에서 보이는 게르게티 성당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시간을 보낸다. 하늘이 깨끗하지 않다. 카즈벡 산이 일출의 햇빛을 받아 붉게 물드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어제 들었는데, 오늘 카즈벡의 하늘은 그런 기회를 주지 않는다. 흐린 하늘.

 

 

하늘이 온통 흐려 있다. 붉게 물든 카즈벡 산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다.

 

 

북쪽으로 보이는 골짜기. 12킬로 정도만 더 가면 러시아와의 국경이 있고 그 너머에 블라디카프카스가 있다. 러시아어에서 '블라디'는 '지배하라, 정복하라' 정도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블라디미르, 블라디보스토크 등등...

 

 

게르게티 마을 하늘에 빛이 내리기 시작한다.

 

 

방 열쇠 꾸러미. 133호. 카드키가 아닌 경우에는 독특한 장식을 달고 있는 열쇠 꾸러미를 경우가 많다.

 

 

코카서스 산맥 속의 골짜기 마을에 날이 밝았다.

 

 

마을쪽 도로를 통해 삼위일체 성당을 올라간 것이 아니라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마을 입구에서 어떤 통제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입장료라고 받는 것일까?

 

 

카즈벡 산의 만년설이 보이기 시작한다. 떠날 시간이 되니 꺼풀을 하나씩 조그씩 벗겨 주는 것 같다.

 

 

8시52분. 출발한다. 9시 출발 예정이라 했는데, 다들 일찍일찍 모인다. 이번 여행 내내 시간 약속이 지체된 경우가 한번도 었었다. 이런 약속시간성애자들!

 

 

떠나면서 성당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한번더 눈에 담아둔다.

 

 

알렉산더 카즈베기의 동상이 스페판츠민다 거리에 세워져 있다. 

이곳이 고향인 저명한 문학가. 조국을 배신하고 조지아를 침공했던 러시아 제국에 빌붙은 지방 영주의 자손. 그가 저술한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나중에 스탈린이 필명으로 사용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Trek 강 계곡의 급상면에서 토양침식이 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9시13분. Trek강변의 조지아 군사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린다. Trek 강은 북쪽으로 흘러 러시아로 간다. 십자가 고개가 분수령이 되는 것이다.

 

 

 

9시18분. 어제 멈추었던 광천. 그냥 지나친다.

 

 

 

이게 뭐지? 뭘까?

 

 

 

9시27분. 십자가 고개의 십자가. 십자가가 참 많다.

 

새로 세운 십자가도 있다.

 

 

분주히 인증 사진을 남기는 일행들.

 

 

나도... 2395미터. 서둘러 출발하려고 해서 판떼기에 붙은 수많은 스티커들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9시30분. 어제 본 전망대를 지난다. 조지아-러시아 우정탑.

 

 

산비탈에서 꼬물거리던 것들의 정체는 양이었다.

 

 

멀리서 보니 마치 그 구더기들 같이 보였는데, ㅠ.ㅠ

 

 

눈사태로부터 도로를 보호하는 터널 구간을 지난다.

 

 

9시45분. 주유를 하기 위해 정차하였다. Smart가 조지아의 유명 체인이다. 내부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유료.

 

 

10시6분. 어제 지나면서 가이드인 블라디미르 박이 '선상지'라고 콕 찝어서 이야기했던 지형.

세모꼴로 생겨서 자기는 '삼각주'라고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젠가 함께 여행한 일행중의 지리교사가 두 지형의 차이점을 가르쳐주었고, 그래서 이후 꼭 '선상지'라고 안내한다고 나중에 이야기하더라.^^

 

 

 

 

10시59분. Ananuri 요새에 도착하였다. 

 

물론 화장실부터 먼저 이용하였다. 이용요금을 내주고 있는 니노~

 

 

Ananuri Fortress.

조지아에 흔하디 흔한 교회, 성채의 모양을 닮았다. 그래서 도로를 따라 이동하던 사람들은 조지아의 유서깊은 유적인가보다 하면서 정차한다. 많이 정차한다. 그래서 앞에 노점상도 굉장히 많다.

하지만 이 건축물은 아직 '유적'이라고 할만한 역사가 쌓이지 않은 곳이라 한다. 천 년쯤 지나면 그 때 사람들이 유적이라고 인정해줄지도. 내부에도 볼만한 어떤 유물도 갖추어 놓지 않았다고 한다.

인증 사진 남기고 출발한다.

 
 
 
도로를 따라 달리는 구간이다.
조지아의 명 가이드 블라디미르 박이 스탈린에 대한 썰을 푼다.
스탈린, 그는!
1. 연해주 한인들의 중앙 아시아 강제 이주의 원흉이다.
스탈린은 조지아 사람이었으며, 여러가지 열등감을 갖고 있었는데 자신의 출신에 대한 것도 있었다고 한다. 슬라브에 대한 열등감. 자신이 집권한 이후 이러한 열등감을 희석시키기 위해 민족들의 생활 공간을 뒤섞어 민족 간의 차별성이 드러나기 않게 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패!
 
2. 우리나라 남북 분단의 원흉이다.
2차 대전이 마무리 될 즈음 남북을 분할 점령하고 괴뢰 정권을 세움으로써 남북이 분단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3. 한국 전쟁의 원흉이다.
김일성은 빨리 남침을 하고자 했고, 스탈린은 반대했다고 한다. 김일성의 억지에 스탈린이 끌려 간것이라고 한다. 스탈린의 반대 이유는,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데 또다른 국제적인 전쟁으로 확대될 것을 우려하였으며 미국의 핵무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리고 한반도 공산주의의 적통으로 모스크바 유학 경험이 있는 박헌영이 인정되었지 김일성은 듣보잡인 상태. 한국전쟁이 실패로 끝나면서 김일성이 스탈린에 의해 제거될 참이었는데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김일성이 기사회생. 김일성은 전쟁 책임을 박헌영에 물어 숙청해버림.
 
스탈린, 그는! 여러가지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1. 국적 열등감

슬라브족이 아니고 그루지아 출신인 것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백만 명이나 숙청시켰던 것이라 해석. 본명은 요셉 주가슈빌리이다. 이름에서 그루지아인이라는 것이 드러나 '강철'을 의미하는 스탈린이라는 가명을 사용했으며, 평생 사용한다.

2. 경제적 열등감

가난한 가정 환경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냥 자신의 직업인 제화공을 잇기를 바랬다고. 당시 제화공은 매우 천한 직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들의 문학적 재능을 일찍 간파하고 키워주었다고 한다. 트빌리시 신학대학 진학도 어머니의 공.

3. 외모 열등감

어려서 앓았던 천연두로 인해 얼굴 한쪽에 곰보 자국이 남았다. 두드러지게 보이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스탈린 자신에게는 매우 큰 자격지심의 원인이 되었다. 남아 있는 스탈린의 얼굴 사진들에서는 거의 그 곰보 자국이 지워진 상태.

4. 신체적인 열등감

10대 초반에 마차에 치여 왼손이 부자연스러웠다고 한다. 양손으로 장총을 파지하지 못할 정도. 그래서 전투에 나서지 못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사진이나 동상을 보면 왼손은 거의 주머니에 넣고 있다.

 

공산혁명 과정에서 레닌이 얼굴마담이었을 때, 스탈린은 뒤에서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의 편집장을 맡아 작성한 쉽게 읽히는 글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된다. 공산혁명 성공 5년만에 뇌졸증으로 레닌이 쓰러져 모스크바를 비운 사이에 쿠데타.

 

그루지아 출신인 스탈린에 대한 노인들의 평가.

그루지아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이 심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그루지아 출신 사람들을 전투 때마다 첨병으로 내세워 희생자가 많았다고.

그루지아 출신인 스탈린에 대한 젊은이들의 평가는?

관심없어~라고 하더라.

 

 

12시30. 고리시 도착.

스탈린도 식후경이다. 식당 블랙스타를 찾아 점심을 먹고 스탈린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그리고 동굴도시인 우플리스치케.

 

 

고리시로 진입하면서 보이는 풍력발전기들. 바람이 없다는 핑계로 일하지 않고 놀고 있더라.

 

 

식당 블랙스타는 스탈린 박물관 바로 인근에 위치한다.

 

 

12시34분. 식당 블랙스타

 

 

근사한 식당. 2층으로 올라간다.

 

 

점심 메뉴. 물고기.(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식당 앞 교차로 근사한 교회가 있다. 유적은 아니고 그냥 신식 교회.

ღვთისმშობლის სახელობის 라고 나온다.

 

 

1시30분. 식당을 나와 버스 승차.

 

1시35분. 스탈린 박물관 도착.

 

 

입장권을 한장씩 받아들고 들어간다.

 

 

입구를 통해 들어가보면....

 

 

개판이다. 아주 개판이다.

 

 

 

 

광고: 개자식을 찾습니다.

 

 

박물관내 동상. 왼손을 숨겨랏.

 

박물관 내부.

 

 

이곳에 박물관을 만든 이유?

이곳에 그의 생가가 있기에.

생가를 안쪽에 보존하고, 바깥에 새로운 건물을 만들었다.

 

 

독재자는 비행기 타는 것을 꺼려한다. 사고도 많지만, 두려움 때문에. 자기가 많이 죽였으니 누군가를 자기를 죽일까봐서. 우리가 아는 어떤 독재자도 그렇게 열차를 고집한다고 했는데...

스탈린도 비행기를 타지 않으려 했으며, 늘 전용열차를 이용했다. 누군가 뒤에 나타나는 것을 극도로 꺼려 전용열차 안에서도 누군가 접근하는 것을 보기 위해 도처에 거울을 설치해놓았다.

 

 

2시5분. 박물관을 나와서 또 출발한다.

 

2시9분. 고리 시청.

남오세티아 분쟁 때 러시아군이 이곳까지 진주했었다고 한다. 조지아는 사흘만에 항복. 이후 조지아는 압하스 지방과 남오세티아 지방을 잃게 된다.

 

 

 

2시27분. Uplistsikhe 도착.

 

 

쿠라 강변에 위치한다.

 

 

Uplistsikhe Hitorical-Architectural Museum-Reserve

Uplistsikhe는 바위를 파내어 만든 동굴 도시이다. Kura 강의 지류인 Mtkvari 강의 제방 윗쪽에 초기 철기 시대에서 후기 중세까지의 다양한 건축 양식이 나타난다. 아나톨리와 이란에서 전래된 석조 양식이 주로 나타나지만 기독교 및 비기독교 양식까지도 혼재한다. 동굴의 전체 숫자가 15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우플리스치케는 고대의 Kartli 왕국(Iberia라고 부르기도 한다.)의 전략적 중심지였는데, 종교 및 정치의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했다. 최성기에는 5천여 명까지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가이드가 안내해주었다.

4세기에 Kartli왕국이 기독교화되면서 기독교의 새로운 중심지로 Mtskheta(나중엔 Tbilisi)가 떠오르면서 우플리스치케는 침체기를 맞는다. 8,9세기에 트빌리시가 무슬림의 침략을 받아 다시 중심지가 되었으나, 14세기 몽골의 침략은 이 지역을 초토화시켜버렸다. 게다가 1920년의 지진은 이 지역의 대부분을 박살내버렸다. 2007년에 UNESCO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등재되었다. 후보로...

 

 

 

지도와 함께 보는 주요 뽀인트에 대한 간단한 설명.

 

 

이 지도가 더 알아보기 쉽겠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의 Uplistsikhe 항목에서 가져왔다.

 

main road(위 지도에서 보라색)를 따라 main square까지 쭈욱 올라가서 '삼면 성당', '타마라 여왕의 홀', '약제실' 등을 보고, '터널'을 통해 내려왔다.

 

 

바위 동산. 오후 햇볕의 열기가...음.....온몸의 껍데기로 느껴진다.ㅠ.ㅠ

 

 

10세기 경 추가로 건축된 성당.

 

 

사진의 암석 도랑의 양쪽으로 세줄의 구멍들이 있다. 양쪽에 나무를 박아 물을 가두어 방어용 해자로 이용했다는 설명을 하는데, 좀 그렇다. 머릿속에서 받아들이질 않는다. 쏘리.

 

 

메인 광장에 올라 쿠라 강 쪽을 조망해본다.

 

 

Nice Hall

 

 

Three-sided Basilica, Three-Nave Basilica

 

 

타마라 여왕의 홀이다.

12번. 음성 안내를 받을 수 있는 장치가 있는 것 같다.

 

여왕의 홀에서 여왕님을 모시고...

 

여왕을 홀에서 여왕을 치우고...

상당히 규모가 크다. 역시 왕이 집무를 보던 공간이라 그럴까. 그런데 천정 쪽에 검게 그을른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연기 때문?

가이드가 한번 설명해주면 바로 듣고 다 기억하고 외우고 암기하고 해야 하는데.... 기억에 없다. 녹음기가 필요할까?

 

 

우플리스치케 유적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남쪽(아랫쪽), 가운데(중앙), 북쪽(윗쪽)으로. 중앙 부분이 가장 대규모이다. 위의 사진들이 다 중앙 부분이다. 북쪽 부분은 지금 생각해보니 안가보았다.

남쪽의 아랫부분은 보존 상태가 더 안좋다. 아래 사진이 남쪽 유적. 중앙 부분과는 작은 터널을 통해 왕래할 수 있다.

 

 

쿠라 강변에 가까이 위치한 남쪽(아랫쪽) 거주지와 연결되는 통로인 터널. 위급시 대피용(도피용)으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사암층이라 남을 시켜서 작업하면 그렇게 힘들지 않게 터널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태양광 및 태양열 에너지를 양껏 흡수했다.

기계에 무리가 온다. 냉각이 필요하다. 

유적지 입구의 음료수 가게에서 마음대로 골라 잡으라는 블라디미르 박~♡

뭔지도 모르고 아무 것이나 잡았다. 손에 잡고만 있어도 시원하다.

 

 

3시18분. 다시 달린다. Go! West! West! West! 

 

4시. Agara 통과.

소비에트 시절의 계획 경제 썰.

계획 경제는 소비가 위주가 아니라 생산이 위주였다. 지역마다 동네마다 생산품을 할당하는 방식. 그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도로 변의 마을들 중 해먹을 만드는 마을, 생수 생산 마을, 빵만드는 마을, 도기 만드는 마을 등등을 볼 수 있다.

 

4시11분. Agarebi. 길가에 해먹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계속 나타난다.

 

 

4시34분. Surami.

빵 마을이다. 

 

 

빵 파는 상인, 빵을 사는 니노~

빵을 조금씩 나누어 맛을 보았다. 맛있다. 이 빵은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페루의 빵 마을에서 먹어보았던 것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맛있었다. 생각~난다. 페루의 빵~마을~ 

쿠스코에서 티티카카로 가던 중간에 있었던 작은 마을, 오로페사. 빵 먹으러 한번 더 가보고 싶어진다~

 

 

4시36분. 빵쪼각 뜯어 먹다가 창밖으로 멀리 근사한 요새가 보였다.

Surami Fortress. 언제 누가 만든 것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고, 12세기에 강화되었고, 17세기에 재건되었다는 정도의 기록은 찾을 수 있다. 요새 위에 휘날리는 깃발은 사카르트벨로 국기. 사카르트벨로는 조지아 사람들이 사용하는 자국어 국명이다. '카르트벨'인의 땅이라는 뜻을 갖는다고 한다. 카르트벨은 조지아의 여러 민족 중 다수를 차지하는 민족이다.

 

 

4시56분. 포도밭.

 

 

4시57분. 옥수수밭.

길가에 옥수수 판매하는 매대가 자주 나타났는데, 옥수수 먹자는 이야기를 가이드가 안한 이유가 있다. 맛 없다. 진짜 없다.

 

 

5시. 길가의 수박 판매대. 자주 나타난다. 수박 덩치가 참 크다.

 

 

5시6분. 도기 생산으로 유명한 동네. Ubisa 부근.

도기 생산에 유리한 흙이 분포한다. 당연히!

유약을 바르지 않아도 도기에서 흙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Dzirula 강변을 따라 도로가 달린다.

5시15분. 도기 판매점 하차. 화장실 이용.

 

 

다양한 도기들을 판매하고 있다.

 

 

Ethnographic Corner도 있다. 그냥 도기 판매상이다.

 

 

나 여기 왔다 가요~~~

햇볕에 좀 익혔더니 얼굴색이 도기색과 같아졌다.

 

 

 

5시34분. Shorapani castle

 

 

5시38분. 길가에 커피볶는 마을. 터키에서 원두를 수입하여 길가에서 볶아 판매. 커피맛은? 글쎄~

 

 

5시44분. 거대한 공장. 폐허로 변하고 있다. 소비에트 시절에 계획경제 체제하에서 가동하던 자동차 부품 생산 공장.

부근에 많은 자동차 수리 공장들. 부품이 없어 폐차 대상 차량을 분해하여 부품 공급.

 

 

6시5분. 쿠타이시 시내 진입.

쿠타이시는 조지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낙후되어 있다. 도시 재생을 위해 국회의사당을 옮겼다.

쿠타이시가 조지아에서 두번째라고 가이드가 소개했는데, 세번째로 주저앉았다.

 

 

6시22분. 국회의사당이 이렇게 생겼다. 조지아의 전임 대통령인 '친미 대통령'은 유리 건물을 참 좋아했나보다. 트빌리시 시내에 많은 유리 덩어리를 만들었고, 투명한 경찰행정을 펼친다고 경찰서 건물은 통째로 투명한 유리로 만들고... 의사당도 유리 덩어리.

 

 

6시38분. 길가에 '프로메테우스 동굴' 진입로 표시가 있었다.

우리 가이드 블라디미르 박, 블박이 혼자서 다녀왔다. 아래 링크 참조~

http://blog.daum.net/georgiawine/468

 

석회암 지역에서 흔히 나타나는 카르스트 지형 중의 하나 석회동굴이라고 한다. 동굴 내부에 종유석, 석순, 석주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1시간 정도 가이디드 관람을 할 수 있으며, 사진 찍을 수 있는 여유도 충분하게 주는 것 같다. 아마도...

 

6시41분. 오늘의 숙소인 츠할투보 플라자 호텔 도착.

구소련 시절 소련의 공산당 간부들이 휴양을 즐기던 리조트였다고 한다. 스탈린도 왔다간 호텔. 그러니까...흠.. 무진장 오래된 호텔이라는 의미이다. 소련식이다. 그래서 크다. 그리고 낡았다.

 

 

숙소의 방안에 방이 하나 더 있다. 침대가 네 개. 화장실 겸 욕실도 크고... 대~애단하다.

 

 

호텔이 넓은 대지를 차지한 거대한 성채 같다.

 

식당까지 가는 길도 멀다.

 

중간에 수영도 좀 하면서 가야 할 듯 하다.

 

 

대리석 덩어리. 수요가 줄어 1층이 이 공간은 그냥 쉬고 있다. 2층에 식당.

 

 

 

7시에 저녁 식사. 

식사 중에 불이 꺼진다. 뭐야~

케익이 배달된다. 깜놀~

70세 생신을 맞이 하는 분이 계셨다. 오예~

케익이 낙상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해프닝도.

 

계속 속이 않좋다. 일찍 숙소로 들어와 쉬었다. 9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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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7일의 일정은 간단하다. 트빌리시에서 북상하여 코카서스 산맥 속으로 들어간다. 카즈베기 산 밑의 작은 마을로 들어간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게르게티 삼위일체 성당으로 유명하다.

카즈베기에서 코카서스 산맥 반대편, 즉 북쪽은 러시아이다. 그곳에 큰 도시 블라디카프카스가 있다. 코카서스를 러시아에서는 '카프카스'라고 한다. '블라디'는 "정복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블라디카프카스'는 "코카서스를 정복하다", '블라디보스톡'은 "동방을 정복하다", '블라디미르'는 "세상을 정복하다"는 등의 뜻을 같는다고 한다.

 

 

5시반쯤 잠이 깨어 꼼지락 거리다가 6시에 기상하였다.

6시반에 아침 식사하고 방에서 빈둥대다가 8시반에 로비로 내려왔다.

 

 

식당의 식탁에 있는 암호. 조지아 어 문자와 영어 문자.

 

 

엘리베이터는 호텔방 키를 넣어야 작동시킬 수 있다.

 

 

트빌리시의 아침.

 

 

하룻밤 신세를 진 래디슨 블루 트빌리시.

 

 

호텔 앞 산책을 하던 중 발견한 자전거. 아담한 크기.

 

 

누가 놔두고 찾아가질 않는가보다.

 

 

건조한 여름. 아침 일찍 물을 뿌려준다.

 

 

9시 출발.

트빌리시 시내를 통과한다.

건축 중인 아파트.

트빌리시도 아파트 건축 붐이 계속되고 있다.

 

트빌리시 시내의 아파트 중에서 주민이 거주 중인 아파트 임에도 불구하고 샤시가 없는 아파트들도 눈에 띄었다. 조지아에서는 아파트를 분양할 때 골조만 만들어 분양한다고 한다. 그래서 싸다. 그 다음에 구입자가 자기 형편이나 기호에 따라 아파트를 '장식'하는 것이다. 물론 가구까지 다 갖추어 놓고 분양하는 아파트도 있다고 한다.

러시아 지배 시절에 만든 아파트가 외양은 허접하지만 보다 더 튼튼하다고 한다. 계획, 설계에 따라 공급된 자재를 모두 사용하여 건축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민주화된 이후에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므로 이윤을 보다 많이 남기기 위하여 자재를 덜 사용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

조지아는 전력이 풍부한데, 수력이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기의 질은 좋지 아니하다고. 하지만, 전기세, 수도세 모두 상당히 저렴하여 부담되지 않는다고 한다.

 

 

 

9시40분. Aragvi강에 조성된 인공호인 Zhinvali는 1986년에 댐이 건설되면서 조성되었다.

 

 

Zhinvali 댐, 발전소.

 

 

 

댐 건설을 기념하기 위한 조형물인 것으로 보인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1795년 페르시아에서 침공해온 Qajar군의 침략에 맞서 트빌리시를 방어하기 위해 Krtsanisi 전투에 Aragvi 계곡에서 파견된 군인들을 기리는 조형물이었다. 이름하야 "300 Aragvelians". 그들의 유해가 발굴된 곳에 그들을 위한 탑을 세웠으며, 트빌리시 시내의 지하철역 이름에도 사용되고 있다.

 

 

 

진발리 댐의 건설로 조성된 인공호수.

 

 

9시50분. Ananuri 요새.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 아니라 그냥 관광객을 끌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오늘은 지나가고, 내일 카즈베기에서 나오면서 들를 것이라고 안내한다.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중요한 뽀인트이다. 기억하라!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은 Georgian Military Road라고 불린다, 조지아와 러시아 사이의 코카서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가리키는 말이다. 트빌리시와 러시아의 블라디카프카스 사이의 도로로서 212km 길이에 이른다. '블라디'는 "정복하다"라는 말이므로, '블라디카프카스'는 카프카스를 정복하다 라는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원래 이 길은 Strabo의 Geographica에 언급되어 있을 정도로 옛날 옛적 고대로 부터 이용되던 길이었다. 코카서스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러시아에서 군대를 파견하면서 도로를 정비한 것이다. 1769년에 처음 지나간 러시아 군대는 1783년에 병력을 보내 도로를 정비한다.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비된 것은 1799년 이후이며, 러시아가 이 지역을 군사적으로 장악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러시아 제국이 조지아 왕국을 공식적으로 합병한 1801년에 짜르 알렉산더 1세는 Yermolov 장군에게 군대 이동과 교통량 증대를 위해 도로를 확장할 명령하였다. 이후 도로 정비 작업은 1863년까지도 이어졌다.

오늘날 조지아 군사 도로는 산사태와 같은 자연재해에 의한 단절, 2006년 러시아에 의한 국경 통제 등과 같은 요인에 의해 과거에 비해 중요성이 낮아졌다. 하지만, 2013년 러시아가 아르메니아의 요구에 따라 국경 통과를 허용하면서 아르메니아와 러시아 사이의 중요한 교통로로서 가치가 커졌다.

자룔 찾아보니 조지아 군사도로에 대하여 이런 정도의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현지 가이드는 에카테리나 여제의 명령으로 카프카스를 정복하면서 만들어진 도로라고 하면서 에카테리나 여제의 정부(?) 정치에 대하여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스맛폰에 설치한 지도 앱 maps.me 화면 캡처.

10시3분. 지도에 나타난 지명들이 요상하다. 우리나라의 지방 행정구역명과 일치하는 것일까? "리"?

'ni', 'ri', 'li'로 끝나는 지명들이 많이 보인다. 이건?

조지아 말에서는 고유명사의 뒤에 "i"를 붙인단다. 그냥 그런 것이었다.

 

 

 

10시39분. 화장실을 이용하자.

 

 

표지판이 아주 급하다는 상황을 잘 묘사해주고 있다. 그런데, 유료다. 아무리 급해도 돈을 내야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더 급해진다. 이 동네 모든 화장실이 다 이렇다.

 

 

휴게소였다. 작은 가게. 주변의 노점상. 그리고.,..... 근사한 동상 하나.

 

 

카즈벡의 동상이라고 했고, 카즈베기에서도 길가에 이 사람의 동상이 있었다. 

Alexander Kazbegi(1848-1893)이다. 조지아 군사 도로의 통행료 징수권을 통해 부를 일군 Kazibek Chopikashvili의 증손자이다. 트빌리시, 성 페테르부르그, 모스크다 등지에서 공부하다가 지역민의 생활을 체험해보겠다고 고향에 돌아와 양치기가 된다. 이후 그는 저널리스트, 소설가, 극작가로 활동하였다. 말년에 정신이상으로 고생하였다고도 한다. 트빌리시에서 사망하였는데, 그의 고향이자 소년 시절을 보냈던 Kazbegi(Stepantsminda로 이름이 바뀜)로 운구되었다. 그의 업적을 기리는 박물관이 있으며, 카즈베기에 그의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A. Kazbegi의 대표작은 The Patricide인데, 주인공인 코카서스에서 로빈 후드와 같은 의적 활동을 한 Koba이다. 이 작품은 조지아 출신으로서 러시아의 독재자가 된 Joseph Stalin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스탈린은 필명으로 Koba를 사용하였다.

 

 

Aragvi 강의 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간다.

 

계곡을 건너기 위한 설치한 다리. 좀 엉성해보이는데...

 

 

오래되어 다 망가진 다리.

 

 

새로 만든 다리.

 

 

유원지도 있다. 여름에만 한 철 장사하는 곳의 필링이 깔린다.

 

 

래프팅 영업 장소였다.

 

 

자연 속의 꿀을 모으는 양봉도 성하다.

 

 

이렇게 트레일러로 끌고 다니면서 대규모로 양봉을 하기도 한다.

 

 

곳곳에서 양봉이 이루어진다.

 

 

11시. 쿰리스치케. 스키 리조트로 유명한 곳을 지난다.

 

 

멀리 곤돌라가 보인다. 겨울 손님을 맞기 위하여 열심히 시설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아... 공사 중이긴 하나 일하는 사람들은 안보이는구나.

 

 

군사도로는 고산지대를 통과한다. 신기 습곡 산지인 코카서스 산맥의 급경사지를 통과한다. 겨울이면 눈사태가, 눈이 녹는 계절이면 산사태가 잦은 지역이다. 그래서 급경사 구간에는 이렇게 사태로부터 도로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을 추가해 놓았다. 도로가 인공 터널 구간으로 되어 있다.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터널을 이용하고, 평소에는 그 옆의 지나기 쉬운 도로를 이용하는 구간도 있다.

 

 

Aragvi 계곡을 따라 조성된 도로를 따라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가 십자가 고개를 넘어가게 된다.

 

 

11시15분. 전망대. '러시아-조지아 우정탑' Russia-Georgia Friendship Monument 라고 되어 있다.

 

 

전망이 좋은 곳에 전망대를 설치하여 놓았다.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멈추니 그곳에 상인들이 모인다.

 

 

꿀도 판다^^  Mountain Honey~~

 

 

통상적인 그냥 바라만 보는 전망대가 아니다. 아주 근사한 시설이다.

 

 

뭔가 작품이다.

 

 

 

러시아에서 군대 병력을 보내 본격적으로 군사도로 정비에 나선 것이 1783년이었다. 200주년이 되는 1983년에 조지아와 러시아의 우정을 기념한다고 이런 조형물을 이곳에 설치하였던 것이다. 조지아의 역사, 러시아의 역사의 상징적 사건들을 상징적으로 묘사하여 놓은 상징물이다.

 

 

전망대 아래의 Aragvi 강 계곡을 바라보는 전망이 참 좋다.

 

 

계곡을 사진에 담는 아저씨. 멋지다.

 

 

계곡을 배경으로 셀피를 남기는 아저씨.

 

 

조지아와 러시아의 군사도로에서의 우정을 기념하는 전망대를 뒤로 하고 산을 계속 오른다.

 

 

11시35분.

ZVARI PASS. 십자가 고개이다. 해발고도 2395미터.  건너편 차선에 위치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그냥 지나가고 내일 들리자고 가이드가 가이드한다.

 

 

가장 높은 고개, 십자가 고개. 십자가 고개가 십자가 고개인 것은 십자가가 있기 때문이다.

 

 

 

저 멀리에도 십자가가 있다. 원래 러시아 군대가 개척한 군사도로는 저쪽이었다고 한다. 기병대가 지날 수 있을 정도로 개척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자동차용 도로로는 저쪽 경로가 적합하지 않아 이쪽으로 새로운 도로를 개설한다. 가장 높은 고개라고 십자가를 설치했었고, 새로운 도로의 고개에도 마찬가지로 십자가를 설치하여 십자가가 두 개이다.

 

 

도로 옆의 골짜기의 그늘진 곳에 남아 있는 잔설. 이렇게 여름에까지 잔설 남아 서서히 녹아내리기 때문에 만년설이 있는 고산 부근의 저지대에서는 지속적으로 물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여 일찍부터 인간의 정착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11시40분. 온천이라고 하면서 차를 멈춘다.

Mineral Spring, Calcareous sinter. 

 

 

 

유황, 철 성분이 많은 광천수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맨발로 돌아다니는데 바닥이 전혀 미끄럽지 않다.

 

 

그래서 허리 굽은 할아버지도 엉금엉금 기어올라가 본다.

 

 

물은 시원하다. 따뜻하지 않다. 고로 온천은 아니다. 미네랄이 풍부한 광천이다.

 

 

모터사이클이 근사하여 남긴 사진이다. 자세히 보니 BMW F800GS 모델. 가격이 좀 하는 모델이다. 라이더도 보니 안전장구를 제대로 착용하고 있다. 여성인데 혼자 여행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를 통해 이런 쪽으로 좀 많이 알려진 셀럽이라고 하더라.

 

 

 

11시59분. Kobi 통과.

 

 

12시14분. Stepantsminda에 도착하였다. 해발고도 1740미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Terek 강의 양안에 마을이 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에 4륜구동 승합차를 이용하여 성당이 있는 봉우리에 올랐다.

 

분명히 일정표에 Kazbegi를 간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도를 아무리 살펴도 카즈베기가 나오질 않았다. 해외 여행을 할 때면 스맛폰에 설치한 maps.me 앱을 즐겨 이용한다. 지도 자료를 미리 다운로드 받아두고 이용할 수 있어 인터넷이 안되는 상황에서도 그대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maps.me에도 카즈베기는 없었다.

지명이 바뀐 것이다. 카즈베기라는 지명이 사용되었었는데, 그 이전에는 Stepantsminda였다. 이곳에 수도를 위한 은둔처를 만들었던 조지아 정교회의 수도사 Stephan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이 지역은 18세기부터 여길 지나는 조지아 군사도로의 통행료를 징수함으로써 부를 일군 봉건 지주 Chopikashvili 일종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19세기 조지아 왕국을 침략한 러시아 제국에 맞서 지역 주민들이 봉기하였는데, 영주인 Gabriel Chopikashvili가 러시아에 충성을 바치며 봉기를 진압하였다. 이후 그는 러시아 주둔군의 장교가 되었고, 성을 Kazbegi로 바꾸었다. 그가 지배하는 마을의 이름도 Kazbegi로 바꾸었다. 소비에트가 지배하던 시절 1925년에 이러한 지명이 공식화되었다. 이후 2006년에 다시 원래의 지명인 Stephantsminda로 바뀌었다. 그랬던 것이었다.

스네판츠민다에서 북쪽으로 12km만 더 가면 러시아와의 국경이다. 산맥을 관통하는 터널 내에 세관이 위치하며, 도보로 국경을 통과하는 것을 불가하다.

 

 

만년설로 덮힌 봉우리가 카즈벡 산이다. 해발 5033미터에 이른다. 코카서스 산맥에서 7번째로 높은 산이다. 휴화산으로서 지진이 종종 발생한다. 해발고도는 높지만 경사가 급해 빙하의 길이는 짧다.

카즈벡 산은 원래 조지아 말로 Mqinvartsveri인데, "얼어붙은 봉우리"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전해준 벌로써 결박 당한채로 독수리들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벌을 받았다는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의 조지아 버젼이 Amirani이다. 그의 전설에 서린 곳이다.

4000미터 높이에 정교회에서 은거지로 사용하던 동굴이 있는데, 이름이 "Betlemi"(Bethlehem)이다. 전설에 따라면 아브라함의 텐트, 아기 예수의 구유 등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게르게티 마을과 삼위일체 성당이 멀리 봉우리 위로 보인다. 

 
 

그 뒤로 카즈벡 산은 구름 속에 숨어 있다.

 

 

 

12시20분에 숙소를 배정받고, 짐을 두고 바로 내려와 점심 식사를 하였다. 

 

호텔의 로비가 기가 막히다. 마치 도서관처럼 꾸며져 있다.

 

 

점심은 피자, 샌드위치, 감자 칩과 풍성한 채소로 구성되었다.

 

 

식사후 휴식.

가운데 앉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쳐 앉았더니 사진이 기울었다.ㅠ.ㅠ

 

 

 

2시. 게르게키 성당을 향한다. 4륜 구동이 가능한 승합차에 나누어 타고 게르게티 성 삼위일체 성당으로 올라갔다.

원래는 게르게티 마을을 통과하여 성당을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차량이 증가하면서 마을 외곽으로 임시 도로를 만들었다. 많은 차량들이 먼지를 일으키면서 오르내리고 있다.

 

 

 

Gergeti Holy Trinity Church. 해발 2170미터 고도에 위치한다.

 

 

많은 차량들이 다니면서 초원의 파괴와 토양 침식이 심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이곳의 파괴는 불을 보듯 훤하다. 빨리 조치가 취해져야 할 것이다. 적절한 위치에 주차장을 만들고 그곳까지만 차량운행을 가능하도록 막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초원은 걸어서....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초지 보호를 위한 데크도 만들어야 할 것이고.

 

 

 

이런 험한 곳에 저런 교회 건물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이 대단해보인다.

 

 

성 삼위일체 성당은 조지아 정교회 뿐만 아니라 로마 교회의 중요한 시설로 평가받고 있다.

 

 

걸어서 갔었다는 인증이다.

 

 

 

Holy Trinity Church는 14세기에 건축되었다. 18세기 조지아의 유명한 작가 Vakhushti Batonishvili에 따르면 성 니노 십자가를 비롯한 중요한 성물을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이곳에 숨겼었다고 한다. 모든 종교가 금지되었던 소비에트 시절에도 이곳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교회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실내는 보여주기만 한다.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실내 사진은 없다.

 

 

별도로 떨어져 있는 종탑도 본당과 같은 시기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정교회가 그렇다. 들어갈 때 반바지는 안되고,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 한다. 없으면 이곳에 있는 것을 입으면 된다.

 

 

교회, 성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스테판츠민다. 테렉 강의 양안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서사면에 숙소가 위치한다. 그래서 이쪽 성당이 있는 쪽을 조망하기에 유리하다.

 

 

 

3시20분에 하산하여 휴식.

 

 

호텔 방 창밖으로 보이는 교회.

 

 

점점 어둠 속으로 숨어드는 교회를 바라보며 숙소에서 푸욱 쉰다. 하루 쯤 더 있어도 좋을텐데..

 

 

뭔가 터지는 장면 같지만, 그냥 구름 틈새로 보이는 석양이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7시. 저녁 식사. 

입 맛이 없다. 간단히 식사하고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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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이 울리는 줄 알고 깼다. 진동으로 설정한 전화기가 계속 울었다. 보험회사에서 매일 전화 온다. 자동차 보험 만기가 다가오는구나.

이후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피곤하다.ㅠ.ㅠ

 

7시반에 식당행. 호텔 발코니에서 아침 식사를...

 

 

식사하고 밖으로 나가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매물로 나온 건물이 있다. 흠...사둘까 하고 고민을 2초 쯤 했다.ㅎㅎㅎㅎㅎ

 

 

마을 자체가 '피난처'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요새로서 만들어진 마을. 세월의 두꺼운 더께로 덮여 있다.

이른 시간임에도 햇볕으로 나가면 따갑다. 온도 때문에 더운 것이 아니라 그냥 햇볕 자체가 따갑다.

방으로 들어와 에어컨을 즐긴다. 이게 낫다. 게다가 wifi가 되는 세상이다.

9시50분에 짐을 끌고 로비로 내려갔다.

 

 

오늘은 동네 답사를 하고, 보드베 교회를 간다. 이후 조지아 현지 로컬 가이드인, 고려대학교에 와서 한국말을 배우고 간 니노의 큰아버지네 농장을 방문한다. 여행사 직원인 니노가 금수저라고 했다. 아버지는 어디 시장으로 재직을 했었다고 했다. 큰아버지네는 넓은 땅을 가진 농장주이고. 이렇게 재산이 많은 집안에서 조혼 풍습이 아직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집가지 않고 버티고 있는 니노가 집안의 골치덩이라고 했다. 아....와인농가를 방문하여 농가식 점심 식사를 할 예정이다.

그리고 다비드 가레자 동굴 수도원을 들렀다가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로 들어간다. 오늘의 일정 끄읏~

 

 

대기 중인 버스에 짐을 싣고 걸어서 동네 답사를 시작한다. 호텔도 동네 모양으로 아담하게 생겼다. 호텔 정문 앞에는 택시 기사들이 차를 대놓고 모여 앉아 노닥거리고 있다.

 

 

호텔 바로 앞 공원에 공부 잘하게 생긴 아저씨 동상이 세워져 있다.

철학자, Solomon Dodashvili. 이 아저씨 때문에 이곳을 솔로몬 도다쉬빌리 광장이라고 부른다.

솔로몬 도다쉬빌리는 19세기의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계몽가, 순수문학가, 문법학자에다가 저널리스트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엄청난 사람의 동상이 이곳에 있는 것은, 이 아저씨 고향이 이쪽 지역이기 때문이다. 카헤티 출신.

 

 

바로 앞에는 2차 대전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도 있다.

 

 

시청.

 

 

큼지막한 항아리. 와인의 나라 조지아를 여행하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항아리이다. 이것보다 작은 것도 있고, 더 큰 것도 있다. 땅에 묻어 와인을 숙성시키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와인을 판매하는 가게라 이런 항아리를 가게 앞에 하나 갖다 놓은 것 같다.

 

 

작은 마을이라 그런가 길가에 나와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마을의 가장 큰 광장이다.

 

 

마을 초입의 가장 넓은 이 광장을 에렉클 2세 Erekle II 광장이라고 부른다. 페르시아의 침략을 피해 온 사람들을 위해 이곳에 요새 마을을 조성한 왕이다. 동네 이름 시그나기가 터키어인 siginak에서 유래 했고, 이것이 shelter라는 의미라고 한다. 즉, 왕이 외세의 침략을 피해 온 사람들을 위해 '피난처'를 만들어 준 것이다. 

분수대를 장식하고 있는 항아리는 조지아의 전통적인 와인 제조에 사용되는 항아리 모양...

 

 

'복면가X'라는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에서 하현우 군이 불렀던 노래, 심금을 울렸던 노래, '백만송이 장미'. 그 노래의 원곡은 프랑스 여배우에 반한 조지아 화가의 이야기를 러시아 시인이 가사를 쓰고 라트비아 작곡자가 곡을 붙여 만든 노래라고 한다. 완전 글로벌이다. 프랑스 여배우가 머무는 호텔 전체를 장미로 장식하는 정성을 보였으나 그녀는 그냥 프랑스로 돌아갔고, 이 아저씨는 뭐 그냥... 호텔을 통으로 장식한 장미의 숫자? 많았다! 대충 백만송이!

그 화가가 조지아를 대표하는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 Niko Pirosmani이다. 이 아저씨가 시그나기 근처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시그나기에 피로스마니 미술관이 있다. 다녀와서 알았다.ㅎㅎ  시그나기에 하루쯤 온전히 머무르면서 차근차근 하나하나 이곳저곳 살펴보았어야 했는데... 아쉽다.

피로스마니의 작품 중에 'Doctor on Donkey'가 있는데 그 그림을 조각상으로 만든 것이다.

 

 

관광객들을 부르는 모터 바이크. 이런 것으로 골목을 헤집고 다니면, 좀 많이 시끄러워 동네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아서 그냥 계속 걸어간다...

 

 

남의 집 앞에서 우리집인척 해보기~

 

 

조지아 정부에서 보여주는 시그나기의 모습은 이렇게 예쁘다(Georgian Journal, August 2018). 사람들 다 통제하고 찍은 사진 같다. 이렇게 예쁜 곳을 거닐어보자. 가즈아~

(사진 출처: https://www.georgianjournal.ge/discover-georgia/34907-discover-must-see-places-in-kakheti.html)

 

 

 

집집마다 베란다가 거~하다. 색채가 위의 사진과 좀 많이 다르다.^^

 

 

집을 예쁘게 잘 가꾸어 놓았다.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 유산이며, 조지아 정부에서도 외국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집중 관리하는 곳이라고 한다. 깔끔 아담.

 

 

 

 

마을 안쪽에 당나귀를 타고 왕진가는 의사 조각상 Doctor on Donkey와 짝을 이루는 조각상. 그 의사의 부인이 애를 안고 개와 함께 귀가를 기다리는 모습이라고 한다.

 

 

조지아 포도. 최초의 포도종이라는 비티스 비니페라의 후손일까?

 

 

10시16분. 많은 아쉬움을 두고 떠난다.

 

10시20분. 시그나기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차를 멈추었다.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 니노의 무덤이 있는 보드베 교회는 시그나기 인근에 위치한다.

 

 

10시24분. Bodbe 교회에 도착하였다. 성 니노의 무덤이 있는 교회이다.

 

 

조지아는 동방정교회이다. 정교회의 교회 내부는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칸 막이의 저쪽과 이쪽. 이쪽은 인간계이고, 저쪽은 신계이다. 신계에는 사제만 출입이 가능하다. 정교회의 교회에서는 강론이나 설교가 없다고 한다. 사제는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사제가 신계에서 나와 예배를 주관하며 예배 시간이 매우 매우 매우 아주 아주 대단히 길기 때문에 신자들은 자신이 필요할 때 움직일 수 있는 시간에 교회에 와서 예배하고 그냥 간다. 그래서 교회 안에 신자들이 앉아서 예배보는 의자가 없다. 모두들 들어와서 서서 예배보고 나간다. 

 

조지아의 교회에서 사용하는 십자가는 모양이 조금 특이하다. 성 니노가 전해준 십자가의 모습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십자가는 포도나무 가지를 엮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똑바로 생기질 않았다. 그리고 포도나무를 성 니노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이용해 묶어 십자가 모양을 만들었다고.

 

 

양초를 하나씩 로컬 가이드 니노가 나누어준다.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성화 앞에 꽂았다. 그리고 보니 우리 가이드도 이름이 '니노'이다. 조지아에서 여자 이름으로 가장 흔한 것이 '니노', 남자는 '니코'라고 한다. 수도인 트빌리시의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큰 소리로 '니노'를 외치면 여자들 절반쯤이 쳐다볼 것이라고 현지 가이드 아저씨가 말한다.

 

 

이곳 교회는 수녀님들이 모두 관리하신다. 꽃길이 예쁘게 잘 단장되어 있다.

 

 

한쪽에 새롭게 근사한 교회 건물을 짓고 있다. 아직 건축 중이다.

 

10시56분. 보드베 교회를 떠난다.

 

 

조지아의 철도. 단선 철도까지도 전철화되어 있다.

 

 

11시50분. 와인 농가에 도착했다. Kakheti주의 Gurjaani의 작은 마을, Velistsikhe.  

 

 

Numisi에서는 14세기부터 와인 제조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 건물 자체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지하에 항아리가 하나씩 들어 있고, 그 안에 저장된 포도가 와인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그냥 로컬 가이드가 아는 집 정도로 생각했는데, 꽤 의미가 있는 곳이다. 와인을 좋아하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프랑스 등지에서 와인을 제조할 때는 포도를 모아 커다란 통에 넣고 밟아 즙을 내는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조지아는 다르다. 포도를 송이째 커다란 토기 항아리에 넣어 밀봉하여 땅속에 두고 6개월 정도의 발효 및 숙성 기간을 거친다. 이후에 만들어진 와인을 병에 주입하는 qvevri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와인 제조시 보통 사용하는 오크통 대신에 사용된 토기 항아리의 현지 이름이 크베르리이다. 점토로 초벌구이만 해서 만든 항아리의 점토 성분에 따라 와인의 맛도 달라진다고 한다. 항아리의 재질 뿐만 아니라 크기도 다양하다. 잘못 만들었거나 공기와 오래 접촉 경우에는 곰팡이 향이 언듯 비치지만, 제대로 만들어진 와인은 독특하고 훌륭한 향을 낸다. Chateau Mukhrani가 조지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회사이며, 마셔볼 만 하다고 남들이 그런다. 물론 Saperavi나 Tsinandali 또한 훌륭하다. 국내에서 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하의 와인 저장고. 큼지막한 피처에 담긴 와인들이 여러 병 보인다.

 

 

12시10분. 식당도 아주 역사적인 건물답다.

 

 

전통 음악과 함께 하는 점심 식사. 초대된 예능인들도 같이 식사를 하면서 공연을 한다. 한 곡조 뽑고, 먹고 마시다가 또 한 곡조~

가운데 아저씨가 손님들을 접대하는 의미에서 건배사를 조지아 말로 해주었다. 조지아에서는 술자리에서 건배사를 돌아가면서 하는데 tamada라고 부른다. 술자리의 모든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말하기 때문에 건배사가 굉장히 길다고 한다. tamada 다음에는 모든 참석자들이 당연히 건배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조지아 사람들이 한번 모여서 술을 마시면 엄청 마시고 오래 마시고 갈 때까지 마신다고..... 무서운 사람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이렇게 술자리를 하고 있을 때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초대받을 수 있다. 술인심이 아주 좋은 동네이다.^^

 

 

 

전통 포도주잔으로 마셔볼 사람?

손 들었다. 소뿔로 만든 잔으로 kantsi라고 불린다. 가득 채우고 마시려 했는데, 뱃속이 아름다운 상태가 아니라 1/4만 마셨다. 좋은 잔이다.

 

방문한 농가는 Kakheti주의 한 농촌이다. 이 지역 전체가 조지아에서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귀국 후에 이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을 주문하여 보았다. 우리를 안내하던 블라디미르 박이 조지아의 와인 수출회사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한국으로도 수출. 안내받은 전화번호를 통하여 주문하였다. 주문하고 입금하면 보내준다. 택배비는 무료.

레드 와인 Saperavi는 한 병에 18,000원, 화이트 와인인 Tsinandali는 한 병에 15,000원을 받는다.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다. 화이트 와인은 아펠라시옹 등급이다.^^

 

 

 

1시49분. 버스 타고 달린다.

 

 

3시57분. 임마는 풀밭에서 말을 끌고 걷는다.

 

소들은 알아서 먹고



풀은 알아서 자란다.

구소련 시절에 이 넓은 초원지대에 정착촌을 강제로 조성한 바 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거의 떠나 버렸다고 한다. 이유는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초원 지대를 농경지로 개간하려 시도하였지만 토양이 염도가 높아 경작이 곤란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초지대로 남아 있다.

 

 

수도원이 멀리 보인다. 저 너머에는 아제르바이잔과의 국경선이 지난다.

 

 

 

4시37분. 주차장 도착. 

 

 

속이 좋지 않다. 일단 화장실을 찾아 잠시 앉아 쉬어본다.

우환 해결~

 

 

 

4시45분. 다비드 가레자 동굴사원. David Gareji Manasteri. 이곳에서 아제르바이잔과의 국경선까지 300미터 정도 밖에 되질 않는다. 수도원 시설의 일부가 아제르바이잔에 위치하여 두 나라 사이에 국경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진입로를 따라 퇴적 지층의 모습이 볼만하다. 

 

중국의 칠채산, 페루의 레인보우 마운틴에서와 비슷한 모습이다.

 

 

지층마다 서로 다른 종류의 광물이 집적되어 다양한 색깔을 보이는 것.

 

 

물론 정확하게 어떤 광물들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는 없다.ㅠ.ㅠ

 

 

신기습곡산지인 코카서스 지방인지라 지각변동이 잦았고 그에 따라 이런 지층이 형성된 것이리라. 아마도...

 

 

6세기 경 수도사들의 수행을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다비드 가레자 동굴 수도원으로 올라간다.

 

 

여러 차례의 지진 및 세월의 무게에 따라 파손된 부분들에 대한 보수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기울어진 사암 퇴적층. 사암은 동굴을 파내기가 쉬워 여러 개의 동굴을 만들고 수도의 장소로 삼았다.

 

 

이런 보수 작업에는 우리나라처럼 빨리빨리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여유가 넘치는 조지아 사람들이니까.

미국의 세계무역센터 테러 당시 그곳에 근무하던 조지아인들은 희생자가 없었다고 한다. 테러가 발생한 시간에 출근한 직원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인지에 대한 확인은 곤란하다. 조지아에 사는 사람한테 들은 이야기니까.) 뭐 대충 그 정도로 늘 여유있게 생활한다는 정도로 생각해두자.

 

 

전체 수도원의 일부 시설이 아제르바이잔에 위치하여 두 나라 사이의 국경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한다.

 

 

전체 동굴 수도원의 시설은 수백 개에 이른다.

 

 

동굴 속의 교회.

 

 

촛불 그리고 기도.

그리움에 불러보는 아픈 내 가슴 속에 맺힌 그녀~

나 언제나 한숨지며 그리워 하알 때에~

성모 앞에 드리는 기도.........

 

 

즈바리. 조지아 말로 십자가. 십자가에 마음을 담고 있다.

 

 

 

Georgian Journal(August 2018)에 실린 동굴 수도원의 전경 사진이다. 자연 지형을 어떻게 활용하여 인공 구조물을 더한 것인지 잘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https://www.georgianjournal.ge/discover-georgia/34907-discover-must-see-places-in-kakheti.html)

 

 

조지아 꽃.

 

 

5시19분. 수도원을 출발하였다. 흐린 날씨에 빛내림 현상이 나타난다.

 

 

 

빛 내림은 빛이 내려오는 것이다.^^

 

 

7시25분. 트빌리시에 들어선다.

7시32분. 쿠라 강이 보인다.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고 숙소르 들어갔다. 레디슨 블루 호텔.

 

 

 

 

7시38분. 식당 도착.

 

일단 속 문제부터 해결하였다. 입구의 그림이 아주 그림이다.

 

 

색이 좋다.

 

8시55분. 식사를 마쳤다.

 

9시. 버스 승차. 쿠라 강을 건너간다.

 

9시5분. 호텔 도착. 쉰다. 즉, 잔다.

내일은 게르게티 성삼위일체 성당이 있는 카즈베기로 가는 날이다.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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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여정의 둘째 날이다. 바쿠를 출발하여 쉐키를 지나 육로로 출국한다. 조지아의 시그나기까지 505.5km를 이동하였다. 하루에 가장 장거리를 이동한 날.

다른 날에 비해 하루를 일찍 시작한 날이다. 5시반에 웨이크업이었으니.

 

구글 지도의 지형 레이어. 코카서스 산맥의 남쪽 산록을 따라 이동한다. 만년설이 있는 고산지대이기에 코카서스 산맥의 산록에서는 만년설이 녹아 흘러 내리는 물을 이용할 수 있어 사람들이 일찍부터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밤에 워낙 일찍 잠들었던지라 웨이크업 콜이 오기도 전에, 설정해두었던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바쿠의 여명.

 

하룻밤 신세지고 떠난다. 바쿠 힐튼 호텔. 8시 출발.

 

 

바쿠 외곽의 서민 주택들. 괜찮아 보이는데...

덜 괜찮아 보이는 동네는 길을 따라 담장 혹은 나무로 보이지 않도록 가려 놓았다.

 

 

버스 이동 중에 박종환 aka 블라디미르 박이 이슬람교 전반에 대한 안내를 해준다. 모하메드로부터 시아파 이야기, 수니파 이야기, 기독교쪽 관점, 이슬람교쪽 관점 등.

디리바바는 수피파 쪽이라고 한다. 영묘에 9시30분에 도착하였다. 

 

Qobustan에 위치한 Diri baba turbesi.

 

 

깊고 좁은 협곡에 건축되어 있다. 절벽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이었던 곳의 입구에 석조 건축물을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창문의 창살이 2015년 다녀온 사람의 블로그에 있는 사진에서는 살아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누가 부숴버렸을까?

 

 

웃는 할아버지, 디리바바. 그가 앉았던 곳에 쿠란이 올려져 있다.

 

 

앉아서 디리바바인 척 해본다. "앗쌀라무 알라이쿰"

 

 

영묘 앞의 마을. 마을과의 사이에 많은 비석들이 보인다. 마을 사람들이 영묘 가까운 쪽을 묘지로 사용하고 있다.

 

 

영묘를 통해 협곡의 윗쪽으로 올라가볼 수 있다.

 

 

Baku-Shamakhi-Yevlakh 고속도로를 따라 달린다.  

길가의 포도밭.

 

 

밀 수확이 끝난 경지, 염소떼.

 

양떼.

 

 

도로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노점상. 옥수수를 팔고 있다. 이쪽 동네 옥수수는 우리나라와 많이 다른 것 같다. 맛이 완전 다르다. 즉, 맛없다! 사카린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일까?

 

 

코카서스 골짜기.

 

융빙수가 모레인과 함께 흘러내려 매우 탁하다. 봄에 눈이 녹을 때는 유량이 급증하여 홍수가 발생하기에 이런 하천 특색을 보인다. 이곳 하천의 유량은 4월에 최대치를 보인다고 한다.

 

 

11시12분. 이스마일리. Sports Arena.

도시마다 청소년수련관이 있다고 한다. 이용료 없다. 그 앞에 전임 대통령 사진을 크게 게시하여 놓고, 애들에게 위대한 지도자로 세뇌시키는 도구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런 방식 이거 어디서 언젠가 들어본 데자뷰.

 

 

11시37분. 길가의 화장실 도착. 역시나 모두 유료이다. 로컬 가이드 니노를 따라간다.

길가에 손을 씻을 수 있는 수도가 있다. 이것은 무료다. 옆의 빨랫줄에 매달린 것은 이 동네 노점상들이 많이 판매하는 것이다. 과일즙을 말려 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길을 따라 판매점들이 줄지어 있는 것이 보이니 몇 분이 그쪽으로 간다. 신선한 과일, 꿀 등을 판매하고 있다.

 

 

여러가지 과일의 즙을 말려서 만든 것. 역시 맛은?

 

 

멀리 보이는 코카서스. 골짜기의 잔설. 7월인데도 남아 있다. 왜? 해발고도가 높으니까!

 

 

인공위성 영상에 이동 경로를 겹쳐 보았다. 산맥의 아랫 부분을 따라 북서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코카서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골짜기의 입구마다 마을이 있고, 그 아래로 선상지가 펼쳐진다. 즉, 복합 선상지 바하다가 나타나는 지역이다. 골짜기의 입구에서는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을 확보하기가  쉽기 때문에 일찍부터 인간의 정착이 이루어졌던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1시6분. 쉐키에 도착하였다. 흘러내리는 하천의 물이 무척이나 혼탁하다. 만년설이 녹아 내리는 골짜기가 가깝다는 증거.

 

 

캬라반 사라이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쉐키칸 여름 궁전을 방문하였다. ^

 

 

캬라반 사라이. 실크로드를 이용하던 캬라반들이 이용했던 건물이라 한다. 사라이가 '쉼터'이다. 건물의 아랫쪽은 지금도 상가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 특산물은 실크. 챠도르에 사용할 수 있는 반투명으로 제작된다고 한다. 제작 기법이 특이하여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한다.

 

Karvansaray

 

캬라반 사라이 내부.

 

캬라반 사라이 안쪽의 식당을 이용하였다. 캬라반 사라이도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 중인데, 등재되면 식당 영업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점심 메뉴는 철판 모둠 치킨 요리. 후식으로 생강엿. 세속화되어 있는 이슬람 국가라 도시의 식당에서는 술을 판매하지만, 시골 식당에서는 전혀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맥주 한잔 생각하시던 분들은 아쉬움을 표했다.

 

 

 

캬라반 사라이와 궁전은 바로 인근에 위치한다. 그런데, 이곳은 찾는 사람들이 많다. 궁전의 정문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차 공간도 없다. 그래서 또 꼼수!

2시30분. 후문 쪽으로 갔다. 바로 들어가 표를 구하고 다른 팀에 묻어서 들어갔다. 꼼수는 대단하다.^

 

 

쉐키의 꽃.

 

 

정문 쪽에서는 걸어 올라와야 하는데, 후문 쪽에서는 걸어 내려가면 된다. 좋다.

 

 

입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칸 사라이. Xan Sarayi.

 

 

칸의 여름 궁전이다. 2층 건물.

 

 

바쿠의 시르반샤 궁전에 전시되어 있던 창문이다. 안쪽에서 보면 스테인드 글라스가 근사하게 보일 것이다.

 

 

판떼기에 SAMSUNG 카메라에 X표를 해놓아 삼성카메라만 사용할 수 없는 줄 알았는데, 실내에서는 그냥 촬영금지다. 그래서 위 사진의 창문에 설치된 스테인드 글라스의 근사한 모습을 사진으로 만들지 못했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다니니까 실내에서 직원이 계속 따라 다니며 눈을 빛낸다. 찍지 말라는 곳에서는 찍지 않는 온순한 토끼같은 사람인데...

 

 

정원 한쪽에 큼지막한 나무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높이가 34미터. 둘레가 11.5미터라고 써 있다. 높이는 몰라도 둘레는 뻥 같다.

 

 

3시 쉐키 칸 사라이를 떠난다. 더운데 걸어 올라간다. 아... 아까 걸어 내려왔지...

 

 

코카서스 산맥의 아제르바이잔 꽃사슴.

 

 

헤이다르 공원. 전임 대통령의 이름을 딴 공원이 도시마다 있는 것 같다. 

전임 대통령은 헤이다르 알리예프, 현 대통령은 일함 알리예프. 전임 대통령은 1993년부터 10년 집권, 현 대통령은 2003년부터 계속 집권. 부자 세습. 아들이 집권한지 15년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회 세습도 이루어지는데, 남들보고 뭐라 할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다녔다.

 

 

길가의 나무 그늘에서 수박을 파는 아저씨들. 수박 참 크다.

 

 

4시16분. Zagatala

4시26분. Katex

4시38분. Balaken

4시50분. 주유소 정차. 화장실 이용.

 

5시10분. 국경 통제소 도착.

아제르바이잔에서 조지아로 넘어갈 때 건너는 다리. 다리 아래로 흐르는 Matsimistsqali 강이 두 나라의 국경선이 된다. 아제르바이잔측의 국경 통제소에서 출국 수속을 하고 다리가 있는 곳까지 오르막 계단이다. 꽤 길다. 약 150미터 쯤 된다. 여길 자기 짐을 모두 갖고 이동해야 한다. 뙤약볕에!

꼼수 사용.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여러번 주의를 준다. 이번에는 성공한 꼼수. 택시를 고용하여 트렁크들을 싣고 다리가 있는 곳까지 옮겨주는 꼼수 서비스를 해주었다. 출국 수속 자체는 간단하다. 왠만한 나라에서 대한민국 여권은 별로 시비를 걸지 않는다. 미국 입국은 경유를 하는 경우에도 공포다. 가고 싶지 않다.

 

 

조지아쪽의 입국 수속도 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여권에 도장찍고 주욱 그냥 통과다. 왠 아가씨가 아는 척? 니나. 조지아 현지 로컬 가이드.

5시반. 조지아 입국 수속장 앞에 대기하던 버스에 승차. 에어컨. 와우~ 에어컨 개발자인 캐리어 아저씨가 너무 고마워진 순간이다.

5시40분. 모두 승차하였다. 출발한다. 물을 나누어준다.

현지 로컬 가이드인 니노는 고려대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조지아 지도도 한 장씩 나누어준다. 여행사 자체 제작.

성인인 조지아, 그는 3세기 발칸 반도에 나타난 나쁜 용을 물리친 드래곤 슬레이어라고 한다. 기독교가 탄압 받던 시기의 로마제국 병사였는데, 재림 예수일 것이라는 소문 때문에 잡혀서 고문받다가 사망. 그 사람의 용맹함을 기려 나라 이름을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쪽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부르는 나라 이름이 따로 있다고 전주 일대에 주로 출몰하는 멋쟁이 유승상 선생님이 가르쳐주었다.

대외적으로 불리는 나라 이름과는 다르다. 구소련 시절에는 그루지야라고 했는데, 친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조지아로 발음을 바꿔버렸다.

조지아의 독특한 와인 제조 방법에 대해서도 안내를 해준다. 내일 생산 농가를 직접 방문할 예정이다.

 

 

국경도시 라고데키를 지나 한참을 달려 7시10분에 시그나기에 도착하였다. 산악 지방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이다. Sighnaghi가 '피난처'를 뜻한다고. 산 위의 외진 마을이라 수백년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을이 통째로 유네스코 문화 유산.

 

 

7시15분. 숙소 도착

 

 

숙소인 Kabadoni 호텔 테라스에서 바라 본 시그나기. 아담하다.

 

 

산 아래로 보이는 마을, 사코보.

 

 

석양을 받고 있는 종탑. 말없이 조용히 그냥 바라 보고만 있어도 좋을 풍경이다.

 

 

 

그냥 조용히 가만히 창밖을 바라만 고도 있어도 좋을 분위기에 하우스 와인 몇 가지가 깔린다. 더 좋아진다.^^

 

 

삶은 고기.

 

 

찌개쯤 되려나. 맛있었다.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겠다. 메모도 되어 있지 않다. 와인 때문일까?

 

 

 

 

500킬로미터 넘게 이동한 하루다. 역시 피로가 밀려오니까 그 흐름에 순응하여 일찍 잔다.

잠을 쏟아지는데 내일은 10시에 출발한다고 한다.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너무 길다.ㅠ.ㅠ

남팀장이 있었으면 같이 소주 한잔 했을텐데...

잠만 자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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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이탈리아의 소도시들을 중심으로 렌터카로 순례하는 여행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거길 가지 못하게 되어 대안으로 물색한 곳이 코카서스 지방 여행이다. 구소련 시절에는 카프카스 지방으로 알려졌었다. 여러가지 발음이 있지만 이제는 보통 코카서스 지방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코카서스 산맥은 아시아 판과 아프리카 판의 충돌 과정에서 형성된 산지에 속한다. 따라서 높고 험준한 산줄기가 나타나며, 지진의 피해가 종종 발생하였다. 러시아와의 국경을 따라 대코카서스 산맥이, 조지아 남쪽과 아르메니아를 따라 소코카서스 산맥이 지난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인류가 이곳을 경유하여 유럽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유럽 인종을 코카서스 인종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지역은 코카서스 인종의 기원이 되며, 포도, 밀 등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코카서스 지방의 최초 포도종이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이다. 포도는 지중해성 기후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수목농업의 한 작물로 알려져 있다. 코카서스 지방은 지중해성 기후와 유사한 특성을 보인다. 여름이 따뜻하고 건조한 편이며, 겨울에는 서늘하지만 코카서스 산맥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차단하기 때문에 춥지는 않다. 흑해와 카스피해도 이 지역의 겨울이 온화한 특성을 갖는데 영향을 준다. 우리나라의 영동 지방이 겨울에 서해안 지방보다 기온이 높게 나타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이 지역은 실크로드의 서쪽에 해당하여 많은 국가, 민족, 부족이 서로 자리다툼을 반복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 따라서 민족과 종교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특색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번 여행 상품은 여행사에서 "종교나 문화가 최초로 전파되던 모습의 유적과 문화를 간직한 곳을 찾아가는 여행, 만년설산이 코카서스 산맥을 병품 삼아 종교 본연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교회들과 동굴 속이나 숲, 호숫가에 자리한 수도원들을 만나고 풍부한 먹거리를 즐기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는 달리 매우 여유롭게 흘러가는 그들만의 시간을 만나는 여정"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가즈아~!

(지도 출처: 위키 백과)

 

 

2018년 7월 23일(월) 밤에 공항에 모였다. 아니 모이는 줄 알았다. 일찍 도착하였으나 예정된 시간인 21:30에 맞춘다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먼저온 다른 사람들은 지정된 약속 시간 보다 대부분 일찍 M 카운터옆의 여행사 부쓰에 와서 개별적으로 안내를 받고 출국 수속을 했던 것이다.^^

 

개인별로 안내 자료를 지퍼백에 담아 주더라. 그런데, 여행지에서 매너팁으로 사용하라고 1$짜리 12장씩을 개인별로 나눠주더라. 좋은 아이디어!

물론 내가 낸 비용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만, 현찰로 손에 쥐어주니 기분이 좋아졌다.^^

 

카타르 항공의 카운터에 가서 여권을 내밀고 표를 받는다. 가족이라고 같이 앉아 갈 수 있는 좌석을 부탁하였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46번 게이트에서 기다린다. 11시40분에 보딩을 시작하였다.

 

 

 

항공기는 B777-300ER. 18번 좌석. 비상구가 있는 열의 가운데. 다리를 쭈욱 뻗을 수 있는 좋은 좌석이었다.^^

밤 12시32분.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1시30분에 식사를 돌린다. 졸립다.

이렇게 서쪽으로 날아갔다. 인천에서 도하까지.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권항로일 것이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것은 참 피곤한 일이다. 복도쪽 좌석이라 마음대로 일어났다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래도 피곤하다.

7시30분. 아침을 준다. 메뉴판을 미리 나누어주어 식사 주문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분명히 한국인 직원인데 한국사람들에게 의식적으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영어로 대화하려는 느낌이 든다. 왜?

9시53분. 랜딩. 도하 현지 시간은 한국보다 6시간 늦다.

입국장에서 보안검사를 하는데 직원들이 도와주면서 진행한다. 그렇게 하니까 통과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다른 공항도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비행기표를 바꿔 들고 기다린다.

 

환승 게이트에서 기다린다.

6시50분. 보딩을 시작하였다. 게이트를 나가 버스타고 비행기를 찾아갔다.

 

 

항공기는 A320 기종이었다. 7시35분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Doha에서 카스피해를 지 Baku로 날아갔다.

 

10시. 랜딩. 입국 수속.

아제르바이잔 입국 비자이다. 여행사에서 미리 준비한 것. 출국할 때도 필요하니 입국한 이후에도 잘 보관해 두어야 한다.

 

 

 

11시50분. 가이드 미팅. 코카서스 지역은 우리나라 보다 5시간 늦은 시간대를 사용한다.

공항을 나서면서 바로 일정을 시작한다.

바쿠 공항이 시내의 동쪽에 위치한다. 서쪽으로 가면서 배화교 유적인 아테시카 사원을 들렀다가 시내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고부스탄을 다녀왔다. 구시가지의 시르반샤 궁전과 메이든 타워를 보고, 타워 부근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들어갔다.

Baku는 '바람의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Azerbaijan은 '불의 나라'라는 의미라고.

 

 

바쿠의 지도이다. 구글에서 늘 도움받는 인공위성 영상 이미지이다. 바쿠 공항에 도착하여 현지 가이드를 미팅하고 아테시카 사원을 방문하였다.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가 있는 공원에서 인증 사진 남기고 Aysberq 호텔에 딸린 식당에서 아주 따뜻하게 점심 식사를 했다. 카스피 해에 손가락 담가보기~ 고부스탄으로 알려가 암각화를 감상하고, 바쿠 시내로 다시 들어와 시르반샤 궁전을 방문하였다.

공항에서 아테시카 사원, 고부스탄까지의 일정 경로가 사라졌다. GPS 수신기의 용량이 너무 부족하다.ㅠ.ㅠ

고부스탄에서 바쿠로 돌아오는 경로부터 남아 있다.

 

 

헤이다르 알리예프 국제공항에서 일정을 시작하였다. 조로아스터교 사원 방문. 지도에 "Fire Temple"이라고 나온다. 

 

 

공항에서 에어포트 로드를 따라 이동하다가 MADAN 지역으로 들어선다. 곳곳에서 시추 시설이 가동되고 있었다. 기억났다. 고등학교 다닐 때 그렇게 외웠던 바쿠 유전. 

19세기부터 개발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유전 개발 사업이라는 것이 처음 시작된 곳. 2차 세계 대전때 독일군이 이 지역의 석유를 차지하려 진군하다가 스탈린그라드에서 호되게 당했던 역사와도 연결되는 곳이다. 2차 세계대전의 변곡점 중의 하나로 꼽히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지금은 볼고그라드로 도시 이름이 변경되었다. 아...여긴 바쿠!

 

12시. 조로아스터 교의 사원인 Ateshgah 신전이다. 공항과 가까워 10분 만에 도착하였다.

 

 

1883년에 사원 폐쇄.

 

1964년에 역사 유적으로 복원.

 

조로아스터교를 배화교라고도 하는데, 불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모든 더러운 것을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이 불이기에 종교행사에 사용하는 것이다. 심지어 마음, 영혼까지도 불로 정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늘 불을 피워 놓는 것.

 

이곳에서 생활하던 수도사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인형들이 몇 가지 전시되어 있다. 일상 생활과 고행을 하는 모습들.

 

 

12시50분. 버스 창 밖으로 요상한 모양의 건물이 보였다. 서울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와 비슷한 느낌의 필링~

DDP 설계자가 설계한 건물이라고 한다. Zaha Hadid.

 

 

Heydar Aliyev Center이다. 흘러내리는 듯한 부드러운 곡선을 뭘 표현하고 어쩌고 하면서 건축가들은 이야길 하지만, 실은 전임 대통령의 친필 사인을 형상화한 우상화 작품이라고 한다. 

현 대통령의 아버지. 전임 대통령의 인기에 기대어 유훈통치를 하고 있는 셈이다. 곳곳에 전임 대통령의 사진들이 크게 걸려 있지만, 현임 대통령의 사진은 없다. 북한에서 배운 것일지도...아마도.....

 

 

정권의 세습이 이루어진 아제르바이잔은 독재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부정부패도. 그런데 국민들의 불만은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공산주의 통치 시절의 방식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 기본적인 복지는 모두 무료로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데 별 불편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대통령 일가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부러워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나도 저렇게 해보았으면!!!!!

이슬람 국가이지만 세속화되어 있어 종교적인 통제가 심한 이슬람 국가 사람들이 관광 목적으로 많이 입국한다고 한다.

 

 

1시25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젯밤부터 기다리던 점심 식당에 도착하였다.

 

카스피 해변에 위치한 Aysberq 호텔. 

 

철갑상어 바베큐. 괜찮다, 먹을만하다. 다만 식당 내부가 너무 더웠다. 에어컨 가동을 하지 않고 창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식사후에 카스피 해변을 산책하였다. 카스피 해에서 작업하는 시추선들이 정기적인 오버홀을 항구에 들어와 한다고 한다. 햇볕? 매우 매우 뜨겁다.

 

 

2시20분. 고부스탄을 향해 출발하였다.

버스에서 와이파이가 된다. 비밀번호는 "0ihmfaej". 용량이 적으니 동영상 보는 것은 삼가해달라고 한다. 카똑~

고부스탄은 바쿠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30분 정도 서쪽으로 이동하면 된다.

 

 

2시50분. 고부스탄. 도로와 서민 거주지 사이에 담장이 설치되어 있다. 

독재국가의 모습 중 하나라고 한다. 이곳을 찾는 많은 외국 관광객들에게 어렵게 살고 있는 서민들의 모습을 감추고자 한 것이라고.

 

햇볕이 무지 강하고 그늘이 없으니 보호 조치를 알아서 하라고 재차 강조한다. 썬블럭 바르는 것을 싫어 한다. 그래서 카스피 해변의 햇볕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다. 잘 익었다.

 

멀리서 보면 수평 퇴적층의 암반이 부서져 내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Gobustan은 우회전~ 똑바로 안가면 화살 쏠거야~

 

Gobustan Rock Art Cultural Landscape. UNESCO World Heritage Site 판떼기.

 

 

고부스탄의 뜨거운 햇볕 아래로의 초대.

 

고부스탄 암각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가장 뚜렷하게 보인다.

 

1939년에 최초로 발견되었으며, 1947년 이후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인류가 거주했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더이상 암각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선사인들이 6,000여 점이나 남겨 놓았으니까 충분하다. 이제 더이상 그리지 않아도 된다. 여러분도 혹시 이곳에 가시면 벽화 작업을 하지 않으셔도 된다. 제발~

 

풀숲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재차 강조한다. 자연산 뱀 조심~

 

뜨거운 햇볕에 암석은 의연히 버티나 사람들은 녹아내린다.

 

정체 불명의 구멍들. 물을 저장하니 뭐니 하면서 이야긴 하지만 좀 그렇다.

 

야생 밀이라고 한다. 그렇다. 이쪽 동네가 밀의 원산지라고 했다.

 

뜨겁고 건조한 땅덩어리. 멀리 보이는 카스피 해.

 

3시32분. 선사인들의 작품들을 뒤로 하고 고부스탄을 뜬다.

 

 

4시22분. 바쿠 시내로 들어왔다. 시르반샤 궁전 부근에서 하차한다. 이후 걸어서 답사를 진행하였다.

시르반샤 궁전을 자세히 살피고 성의 외곽을 따라 한 바퀴 걸었다. 그리고 메이든 타워에 올랐다.

 

Ichery Sheher. 지하철역 옆에서 하차하여 성곽도시로 향한다.

 

 

구소련 시절 활동했던 아제르바이잔의 유명한 시인의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다. Aliagha Vahid.

 

 

Shirvanshahs 궁전.

 

왕의 생활 공간.

 

 

사신 접견도.

 

궁전 내부에도 전임 대통령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 속의 왕과 동급이다.

 

 

쉐키칸 사라이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라고 한다. 쉐키칸 사라이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니 여기서 찍어두라는 조언.

 

시르반샤 궁전이 있는 바쿠 성곽도시의 모형을 보면서 설명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박. 12세기에 세워진 성곽이 거의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그래서 2000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목욕탕.

 

 

이슬람 사원. 모스크.

 

성곽이다. 포대도 있다.

 

 

2017년, 바쿠에서 제4회 이슬람 연대 게임(Islamic Solidarity Games)이 개최되었다. 그것을 기념하여 만들어 놓은 조형물로 보인다.

 

 

성곽길 따라 걷기.

 

바닥이 돌멩이로 포장되어 있다.

 

 

Gosha Gala Gapisi에 대해 깔끔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코카서스의 명 가이드 블라디미르 박.

 

고샤 갈라 탑을 보고 뒤돌아 걸어 내려오면 메이든 타워가 보인다.

 

이런 탑에는 거의 권력자와 예쁜 처녀가 얽힌 슬픈 전설이 만들어져 있다.

 

탑을 오르기 위해 필요한 입장권. 12 마나트. 1마나트가 1400원 정도이니, 입장료 12마나트는 너무 심하다. 대체로 외국 관광지의 입장료는 이러하던데, 우리나라의 입장료가 너무 헐값이라는 생각도 든다. 외국 관광객이 꼭 들르는 관광지는 우리나라도 입장료를 5만원 이상씩 때려버렸으면 한다.

 

탑을 오르는 통로는 외줄기다. 좁다. 내려오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적절히 해결해야 한다. 

탑을 오르면, 중력가속도를 몸으로 체험하려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차단벽이 설치되어 있다. 햇볕도 강하여 셀피 찍기도 힘들다. 카스피해 쪽으로 배경으로..

무선 송신기로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이어폰을 계속 끼고 다녀야 한다.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기 위해 한쪽만 이어폰을 꼈다.

 

 

멀리 바쿠의 유명 랜드마크인 Flame Tower가 보인다. 같은 모양의 건물 세 동이 마주 보도록 배치되어 있다.

 

Qiz Qalasi(메이든 타워)에서 내려와 자유시간이라는 것을 받았다. 조그만 액세서리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있어 1시간이나 쇼핑 타임이다.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터키쉬 네이처럴 아이스크림" 장수가 장사하면서 장난하는 것을 구경한다. 점도가 굉장히 높은 아이스크림을 넣을까 말까 손님에게 줄까 말까한다. 손님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재밌어 한다.

 

 

6시15분. 모두 모였다. 식당으로 간다. 메이든 타워가 보이는 골목에 위치한 식당이다. Art Garden이었던 것 같다.

 

 

식사를 하면서 쑈를 관람한다. 불쑈~

 

 

딴쓰 쑈~

 

 

연주 쑈~

 

 

잘 먹고 숙소에 체크인. 바쿠 힐튼 호텔. 창밖 야경. 조용하다.

 

 

신기한 엘리베이터 시스템. 엘리베이터가 여럿. 가고자 하는 층을 미리 누른다. 그러면 여러 엘리베이터 중에서 어떤 것을 타라고 지정해준다.

 

 

카똑, 얼굴책 좀 하다가 쓰러진다. 

아주 길고 피곤한 하루였다. 무려 9시반 밖에 안되었는데 잠에 빠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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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8일. 타슈켄트를 파본다.

숙소인 시티팔레스 호텔에서 타슈켄트의 토성 발굴 장소인 밍오릭을 먼저 들렀다. 문을 안열었다. 김병화 콜호즈였던 곳에 있는 김병화 박물관으로 간다. 타슈켄트에 들어오면서 다시 밍오릭. 타로나 식당에서 점심.

지진기념탑, 하즈라티 이맘 모스크, 초르수 시장, 티무르 박물관을 보고 가마솥에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는 타슈켄트 국제 공항.

 

지난 밤도 잘 잤다. 너무 잘 잤다. 자꾸 터무니없이 일찍 잠드는 것에 습관 들어버린 것 같다.

귀국하여 시차 적응에 애먹을 것만 같다.

9시에 출발 예정이다. 왜 7시 한참 전부터 어두컴컴한 복도로 나가는지 모르겠다. 배고팠구나~

`

아침 가뿐하게 해치우고 와이파이의 바다에 빠진다. 9시가 다가온다. 버스에 타야한다. 아쉽다.

밍오릭. 원래 일정에 없던 곳이다. 상당히 의미 있는 곳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관리책임자도 잘 안찾는다. 시간이 되었는데 문을 안열어!!!!!

 

꽃을 보며 안정을 취한다.ㅡ.,ㅡ

 

김병화 박물관을 먼저 다녀오기로 한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토성 안녕~~

 

타슈켄트 시내를 벗어나 A373 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린다.

시내 시장으로 수박 팔러 당나귀 수레에 잔뜩 싣고 가는 아저씨.

저것 팔고 나면 기름값이나 나올지...... 아, 당나귀구나....

 

A373 도로를 달리다가 보면 길 오른쪽으로 작은 언덕이 있다. 이것이 뽀인트. 그 다음 보이는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면 된다. 

동네 이름은 Chuguntepa. 가는 곳은 Kim Pen Khva Kolkhoz 김병화 콜호스.

 

김병화 박물관은 현지인 장에밀레 할머니가 관리하고 있다. 올해 78세.

멋쟁이 할머니였다. 한국 단체 방문객이 온다하니 꽃단장을 하고 나오셨다.^^

박물관 문을 따고 입장~

 

평소에는 문을 걸어둔다. 찾는 이들이 없기에.

찾는 사람들이 있으면 관광 가이드들이 연락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미리 연락을 드리면 시간에 맞추어 문을 여는 것이다. 

우리가 갈 때는 할머니 댁이 떨어진 곳에 있고, 약속 시간에 맞추어 길가에 나와 계신 할머니와 랑데뷰하여 버스로 모시고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이 분이다. 40여 년간 교사를 하셨단다. 나름 깨인 분이라 이 분이 박물관 관리를 맡고 있다고 한다.

이 분 다음에 맡아서 관리할 사람을 아직 찾질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

김병화 동상. 그 가족들이 엊그제 와서 꽃을 놓고 갔단다.

 

다른 분들 사진 모두 찍고 가신 다음에 스을쩍 셀피~

 

대단한 사람. 집단농장 콜호즈 책임자가 된 후 영웅훈장을 두번이나 받았다고 한다.

 

동상 옆에 서서 인증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박물관 내부. 그가 사용하던 책상 뒤편 벽에 커다란 사진, 그리고 그가 남긴 말. 그는 러시아인이 된 것이었다.

 

사막에 관개 수로를 만들고 물을 끌어들여 농경지를 늘려 나갔다.

그의 신조는 "강인성 참을성 노동"이었다. 얼마나 빡세게 노동을 하였을꼬.

사막을 식량 생산 기지로 만들어낸 그의 공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돋보였으리라. 스탈린의 눈에 들 수 밖에.

 

박물관 내부에는 김병화와 관련된 소소한 자료들은 물론 당시 콜호즈의 생활과 관련되는 다양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흐루시초프와 기념 사진 찍기~

 

"레닌의 기치" 신문사 사원일동. 훈장 축하~

 

길 건너에 유치원이 있다. 이 동네 아이들은 아이들같다.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귀엽더라.

 

수영을 할 예정인 것 같다. 수영장 청소 중이다. 그동안 기다리라고 한 모양이다.

얌전히 그대로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자기 애들 기를 살려 키운다는 것에 목을 메는 어떤 나라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모습이라 무척 신기하기도 했다.

 

타슈켄트로 들어오는 길. 역시 날이 더우니까 시원하게 창문을 열고 다닌다.

 

창문 열고 달리는 차량. 아주 시원해 보인다.

 

얜 모지?

 

타슈켄트 시내로 다시 들어왔다.

 

또 보네. 밍 오릭. 살구나무 천그루라는 뜻이란다.

 

주택가 한가운데에 있다. Moshtabib Street.

아래의 판떼기에 있는 내용을 번역해보면...

750년 고선지가 쳐들어와서 탸슈켄트(타슈는 '돌', 켄트는 '나라'라는 뜻이라고. 그래서 중국에는 石國이라고 알려져 있다.)를 박살냈다. 모든 집과 건물을 불태웠다. 무서운 놈. 또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밍 오릭은 그 때 타다 남은 부분이다. 지금도 발굴하다 보면 잿더미와 유골이 발견된다. 발굴은 2008년 러시아의 석유회사인 LUKOIL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후원사 부분만 색이 다르고 지워지지도 않았다. 후원이 중요하긴 하지.

 

부서지다 만 토성의 흔적.

 

구경하기.

 

유물들이 흙벽에 박혀 있는 상태.

 

벽에 작은 구멍들이 아주 아주 많이 뚫려 있다. 뭔지 궁금하면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보면 된다.

아마 큼지막한 벌이 침을 똬악 놓아줄 것이다. '아야!'하고 소리치면 된다.

 

한 쪽에는 기념품 판매점 및 식당이 있다.

처마 부분에서 물을 분사시킨다. 더위 식히기?

 

길가의 택시. 홈페이지 주소가 보이길래 찍어보았다.

 

11시45분. 어찌할까? 하는 질문에 그냥 먹으러 가자~

조금 이르지만 점심 먹으러 왔다. Tarona 식당. Kari Niyazov Street.

스프와 양꼬치. 맛 괜찮다. 양꼬치를 양파와 같이 먹으면 더 낫다. 더 드실 분? 하는데 막 더가져오지 말라고 하는.... 

음....나는 더 먹고 싶었는데...왜!

같은 테이블의 다른 분이 여분을 주셔서 더 먹을 수 있었다. 와우! 감사~

 

1시5분 식당을 떠난다.

 

식후 일정 첫번째. 지진 기념탑.

 

동상의 제목은 '용기'

요기에 친절하게 잘 설명되어 있다. 참고하기~

https://ru.wikipedia.org/wiki/%D0%9C%D0%BE%D0%BD%D1%83%D0%BC%D0%B5%D0%BD%D1%82_%D0%9C%D1%83%D0%B6%D0%B5%D1%81%D1%82%D0%B2%D0%BE_%D0%B2_%D0%A2%D0%B0%D1%88%D0%BA%D0%B5%D0%BD%D1%82%D0%B5

 

'용기'와 같이 사진찍기. 아주 큰 '용기'다~

사진의 오른쪽 아래 있는 돌덩이 시계가 지진 발생 시각을 표현한 것이다.

 

1966년 4월 26일. 오후 5시23분. 대지진이 이곳에서 발생하여 다 부서지고 많이 죽었다.

자연의 재앙으로부터 아이와 여자들을 우즈벡 남자들이 지켜냈다는 의미를 담으며,

우즈벡 민족을 기념하고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1976년에 이 동상을 만들었다고.

 

독실한 이슬람 신자이며 세 아이의 아버지인 베흐조드 아저씨가 보여주고 싶어한 것이 있었다.

코란 원본. 그것이 보관된 곳으로 간다.

 

주차장에서 들어가면서 있는 첫번째 건물. 베흐조드 아저씨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우즈벡에서는 공공 건물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고 한다. 테러 의심을 받을 수 있다나.

 

그래서 모스크를 구경하는 관광객을 찍었다.

멀리 보이는 것은 정원수. 그 멀리 보이는 것은 아마 Muslim Board of Uzbekistan일지도. 우즈벡에 2,230개의 모스크가 있고, 그만큼의 이맘이 있는데 그들을 관리하는 기능을 하는 기관이라고 했다.

 

하즈라티 이맘 대 모스크.

 

무슬림은 하루에 다섯번 기도를 해야 한다. 보통은 대충하는데, 이렇게 시간을 정해주기도 한다.

계절에 따라 해가 뜨기 전, 후의 시간이 달라질 수 있어 이렇게 시계로 보여준다. 이대로 하랏!

 

실내. 2,500여 명이 동시에 기도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미흐랍과 민베르가 사진 오른쪽에 보인다.

 

기도 시간이 아닌지라 중앙의 정원이 고요하다.

 

화장실. 모스크의 화장실이므로 당연히 무료!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내고 기도하러 들어가야하기에 씻는 곳도 준비되어 있다.

 

모스크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연인들. 그녀는 예뻣다!

 

3대 칼리프 오스만 때 코란을 정리하여 3권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을 7세기경에 카피하여 10권을 제작하였다. 하즈라티 이맘 모스크 바로 옆의 Muyi Muborak Madrasah의 전시관에 그 중의 하나가 보관 중이다. 항온항습 상태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당연히 보안이 철저하다. 당연히 사진 촬영 금지이다. 당연히 촬영한 사진이 없다.

http://uztravelguide.com/uzbekistan/sights-of-uzbekistan/tashkent-sights/177-muyi-muborak-madrasah-and-tilla-sheikh-mosque

 

7세기에 만들어진 코란. 오스만 코란이라 불린다. 코란의 책자는 큼지막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글자인지 그림인지는 큼직 큼직하다. 유리관 내부에 철저한 보안 상태에서 보관하고 있으므로 다음 사진에서 처럼 구경만 할 수 있으며 사진을 찍을 수 없다.

https://orexca.com/osman_koran.shtml

 

옆에는 바라콘 마드라사가 있다. 기념품 상가로 이용되고 있다. 날 덥다. 시원한 음료수 한 병의 은총을 입었다.

 

초르수 재래 시장을 들렸다. 사고 싶었던 물건이 있는 분들이 계셨다. 시장에서 주차장까지 조금 걸었다. 더웠다.

 

초르수 재래시장. 전혀 '재래' 시장 답지 않은 모습의 외관이다. 멋지지 아니한가!

 

차에서 멜론을 꺼내는 가스통 할아버지. 

천연가스 매장량이 많은 고로 대부분의 승용차는 가스 차량이다.

 

들어가기 전에 한 컷. 역시 얼굴 껍데기가.....ㅠ.ㅠ

 

돔형의 지붕. 넓은 실내.

 

매대에 번호가 매겨져 있다.

 

붐비는 시간은 아닌 것 같다.

 

호근씨를 보고 '주몽'을 외치던 아저씨들. 우즈벡에서 주몽을 방영했나보다.

 

상인들이 상품을 운반하는 작은 수레에도 번호가 매겨져 있다. 아무 차나 못들어온다. 아마도.

 

길 건너에 보이는 초르수 플라자.

 

개학 때가 다가오나? 학용품 특설 시장도 있다.

 

물론 길바닥 매장도 있고.

 

버스 정류장. 옆의 주차장에 버스가 있었다. 더웠다........................................마, 됐다.

 

티무르다. 티무르. 그가 있는 곳으로 간다.

 

Amir Timur Museum

Amir, Emir는 이슬람 국가의 왕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혹은 모하메드의 자손에 대한 존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박물관도 시커먼 카메라로 촬영하기 위해서는 포토 티켓을 끊어야 한다. 구매하지 않았다!

 

티무르 대제와 관련된 여러가지 자료들을 짜임새 있게 잘 전시해두고 있었다.

 

작은 모형들 혹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런데 포토 티켓을 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분이 조금 세세하게 촬영을 하고 있으니까 직원이 나와서 제지를 했다. 그럴려면 포토 티켓을 왜 파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박물관 밖은 덥다. 정원수, 가로수들에게 시원한 물세례~ 

부러워~

 

뒤에는 티무르 박물관.

 

앞에는 그의 동상.

 

공원, 아미르 티무르 광장 복판에 그가 있다. 멋지다.

 

공들여 만들었다. 세세한 묘사.

 

그들은 달리고 싶어 한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역동적인 모습의 동상을 잘 만들더라.

 

하지만....덥다.ㅠ.ㅠ

그늘을 찾는 사람들~

 

Sailgokh Street를 따라 걷는다. 법무부 건물이다.

 

거리 한쪽에 많은 그림들을 길거리에 내놓고 있다. 그리고 있기도 하다. 전시 및 판매.

그림을 감상하면서 쉰다. 5시25분.

 

우즈베키스탄 구간에서 성질 좀 있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고생을 너무 많이 한 두 남자. 피곤해보인다. 피곤할 것이다.

조금 떨어져 앉아 있던 두 사람을 사진 속에서 가깝게 붙여 보았다.

베흐조드는 세 아이의 아버지인데.... 남 총각도 빨리 총각 신세 면해야 할 텐데..낚시만 다니지 말고...

 

여기까지로 우즈베키스탄의 일정이 끝났다.

 

저녁은 또 뜨거운 가마솥에서 먹는다. 

 

베흐조드 아저씨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식재료에 돼지고기가 사용되므로. 심지어 이 식당의 물도 마시지 않더라.

 

6시 반에 공항으로 출발한다.

 

6시50분에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 들어가면서 신분증 검사하는 줄이 꽤 길다. 해서 지폐 약간을 사용한 작은 꼼수를 사용해 옆문으로 들어갔다.

보안 검색 마치고 입장. 줄서서 기다리다가 표를 받고 짐을 붙이고 또 보안 검색을 하고 게이트로 간다. 모든 수속 마치니 8시.

10시20분 비행기.

 

8월9일 아침 9시경에 인천공항에 내렸다. 자동출입국검사는 편하다.

짐을 찾고 일행과 헤어진다. 또 다음 답사를 기약하며.

지오트립 사장님이 가는 길이라며 집까지 태워다 주었다. 고맙지만 미안하게시리~

 

미리 공부를 제대로 못하고 간 답사였다. 지나면서 이런 것을 미리 공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같은 혹은 비슷한 코스를 다시 한번 다녀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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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 사마르칸트의 날이다.

부하라에서 사마르칸트까지 270킬로미터 거리라서 서둘러야 한다.

5시반에 웨이크업 콜, 6시15분 아침, 그리고 6시54분에 출발했다.

 

지도를 보면 부하라에서 사마라칸트까지 직선 코스를 달리지 않는다. 부드럽게 호를 그린다. 이것은 두 도시 사이를 흐르는 제라프샨 강 때문이다. 제라프샨 강을 따라 녹지대가 분포하고 농업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거주하고, 도시가 있기 때문에 도로가 그러한 거점들을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미르 고원에서 발원하는 제라프샨 Zeravshon 강은 부하라를 지난 후 사막으로 흘러들어 사라진다. 길이는 약 877킬로 미터.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떠오른다. 불덩어리가 다가오는 느낌이다.

간 밤에도 정전. 2회.

 

칼리안 모스크, 그 옆으로 칼론 미나렛이 보인다.

 

7시 출발 예정이었는데, 6시54분 준비 완료. 바로 출발하였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당연히 아랍 어가 표준어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아랍 어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IS와의 관계 가능성 때문에 그러하단다. 대신 우즈벡 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문자는 라틴 문자를 끌어다가 사용하고 있다고.

독실한 신자인 베흐조드 아저씨는 우즈벡의 전통 문제도 걱정하고 있었다. 기도 횟수를 제대로 채워서 지키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란다.

이슬람의 헌금에 대해서도 버스 안에서 한참 이야기해 주었다. 기독교에서는 11조를 하지만 이슬람은 그렇지 아니하다고. 40분의 1을 내면 된다고 한다. 그것도 재산이나 번 돈의 40분의 1이 아니라 쓰이고 있는 않는 돈의 40분의 1이라고 한다. 그것도 1년에 한 번. 그러니까 그 액수는 거의 부담이 되지 않는 정도라고. 가정을 이룬 성인 남성 기준이 그러하며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더 낼 수도 있기는 하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며 독실한 이슬람 신자인 베흐조드는 이슬람 문화에 대해 가능하면 많은 것을 알려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우즈벡에 대한 자부심도 보인다. 지금은 어렵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 많은 자원을 갖고 있다는 것 등등에 대한.

고속도로 반대편 차선을 달려오는 차가 전조등을 깜빡이며 지나간다. 만국 공통의 신호일까? 앞쪽에 경찰이 있다는.^^ 베흐조드가 웃는다. 월요일부터 경찰아저씨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이란다.^^

 

8시20분. M37 고속도로를 따라 부하라에서 사마르칸트로 달려가다가 카라반 사라이에 정차하였다. 실크로드에 있는 카라반들의 쉼터, 휴게소답다. 주인 출근 전~

 

Rabat-i-Malik Caravanserai와 길너편의 수조.

 

Rabat-i-Malik 카라반사라이의 입구.

 

들어가자.

 

문패. 옛날 발음을 옮겨 적은 것이라서 철자에서 약간씩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유적지의 모습. 뭔지 잘 모르겠다.

 

건물들이 있었던 흔적이다. 헌데 원래 이렇게 생긴 유적이 아니라고 한다.

 

유적을 보호한다고 그 바깥쪽으로 벽돌들을 덧붙여놓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보호하는 것이 맞나?

 

두 남자. 어이~

 

촬영 중.

 

바로 인근에 위치한 물탱크, 수조이다.

Rabat-i-Malik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11세기에 건설된 수조이다. 인근의 제라프샨 강으로부터 지하의 운하를 통해 물을 끌어들인 것이며, 돔형 지붕이 햇볕을 차단하기 때문에 깨끗하고 여름에도 시원한 수질을 유지한다. 

카라반 루트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대상과 여행자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기능을 하였다.

 

꽤 큰 웅덩이가 있었고, 물은 깨끗해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가본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장구벌레가 가득이었다고. 옛날에는 어찌하였을 지라도 지금은 식수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Rabat-i-Malik은 여행자들의 쉼터였을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고고학적 발굴 결과로 드러난 것을 그것과 다르다. 이 지역 지배자였던 카라한 왕조의 거주지였을 확률이 더 큰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유목민이었던 카라한 왕조는 겨울철의 왕궁을 떠나 여름철에는 스텝 지역에 있는 거소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그러한 여름철 거주지 중의 하나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다음의 링크 참조)

http://www.advantour.com/uzbekistan/navoi/rabat-i-malik.htm

 

부근에는 나보이가 있다.

고속도로와 제라프샨 강 사이에 Navoi Free Industrial Economic Zone이 있으며, 남쪽으로 나보이 국제 공항도 위치하고 있다.

자유무역지대에는 한국 기업의 공장들도 입주해 있다고 카더라~

 

200mm렌즈로 당겨보았다. 멀리 공장들이 보인다. 나보이 자유무역지대.

 

나보이 국제공항이다.

 

대한항공의 국제 물류 센터가 이곳 나보이에 입지해 있다.

 

와~

 

공항 외곽 경비대.

 

날아간다~

 

달려간다~

 

기다린다~

 

걸어간다~

 

길가에서 보이던 나보이 발전소. 화력 발전소이다.

 

하늘에서 보면 이렇게 보인다~  나보이 시의 제라프샨 강가에 위치하고 있다. 냉각탑 두 개.

 

나보이 시내의 길가 식당. Qirk Chinor.

화장실을 빌리러 정차하였다.

 

 

멈춘 김에 커피 한 잔 하고 가기로 하였는데...... 티스푼이 그냥 스푼이다~~^^

 

커피 대접 받았다. 대접~^^

 
나보이에서 사마르칸트로 가는 길가 풍경.

 

자거거 타는중~

 

물 판매중~ 무인 판매대가 종종 보인다.

 

구경하며 걷는중~

 

수박 판매중~

 

수레로 붉은 색 가스통 운반중~

 

수레를 풀고 소는 풀 뜯는중~

 

운반중~

 

걷는중~

 

공사중~

 

수리중~

 

원두막에서 쉬는중~

 

수다중~

 

 소각중~

 

대기중~

 

수확중~

 

구경중~

 

제라프샨 강에서 멱감는중~

 

말타는중~

 

수레가 트럭과 경주중~

 

흐르는중~

 

달리는중~

 

흥정중~

 

도로에서 운전하던 운전자가 갑자기 문을 여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씹는 담배 찌꺼기를 뱉어낸다고 문을 연다는데..

 

11시15분 사마르칸트로 들어오는 마지막 검문소를 통과했다.

실크로드의 거점 도시, 사마르칸트이다.

사마라칸트 시내를 진입하면서 종이공장을 먼저 들렀다. 울르그벡 천문대, 아프로시압 박물관을 들른 후 서쪽으로 쭈욱이 아니라 조금 돌아서 달렸다. 점심식사.

구르 아미르, 레기스탄 광장의 마드라사 둘, 비비하눔 모스크를 들른 후 사마르칸트 역에서 가서 열차를 기다렸다.

 

M37 고속도로를 따라 달려 사마르칸트에 도착하였다. M39 고속도로를 살짝 밟고는 시내 방향으로 접어든다. 사마르칸트 전통 방식으로 종이를 생산하는 공장을 방문하였다. 12시.

사마르칸트 시내에서 5킬로 미터 정도 떨어진 Koni Ghil이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다.

 

우리나라 전통 종이는 닥나무를 이용하지만 이곳에서는 뽕나무를 이용한다. 둘 다 같은 집안의 나무들이므로 큰 차이는 없는가부다.

 

껍질 벗기기 작업중.

 

물방아를 이용하여 빻기

 

물에 불려 뜨기.

 

눌러펴기. 만져보세요~~~

 

말리기.

 

자랑하기.

 

이것이 사마르칸트 종이. 사마르칸트 종이에 인쇄한 것과 다른 종이에 인쇄한 같은 내용을 비교하여 시인성이 훨씬 좋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쇄된 내용은 "751년 7월 중국 군대가 중앙 아시아 국경인 탈라스 강을 건너 쳐들어왔다. 사마르칸트의 지배자였던 Abu Moslem은 침입을 격퇴하고 2만여 명의 중국군을 포로로 잡았다. 이들 중에는 많은 재줏꾼들이 있었는데 종이 제작 기술 보유자도 있었다....."

 

사마르칸트 종이의 유래와 재생산 과정을 간략하고 서술한 내용이다.

 

 

다양한 색깔의 종이 제품들.

 

다양한 제품들.

 

 

 

 

벽에 이런 것이 걸려 있다. 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취소된 사람. 우즈베키스탄 KSP 경제 고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KSP? 캠코에서 추진하고 있는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이라고 한다.

 

생산 공장의 모습.

 

중국에서 시작된 종이 제조 기술이 이렇게 세계로 퍼졌다고 한다.

해상도가 낮아 잘 안보인다. 그래서 다른 지도를 인용해본다. 751년 중국으로부터 종이 제조 기술이 사마라칸트까지 전파되었다.

 

사마르칸트 종이는 고선지 장군의 군대를 통해 전래된 것이라고 한다. 품질이 좋아 성업하였으나 18세기에 그 맥이 끊겼었던 것을 재연한 것이다.

사마르칸트 종이를 재연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Zarif Mukhtarov이다. 웹 페이지도 없고 따라 홍보를 하지 않고 있음에도 사마르칸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곳 공장을 찾고 있단다. 연간 약 5,000여 명 정도가.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4/jun/02/uzbekistan-culture-silk-road-paper-craft

 

 

사마르칸트 시내로 들어왔다. 울르그벡 천문대와 아프로시압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아프로시압 언덕의 아랫 부분 길 가에 이러한 토굴들이 여럿 보였다.

과거 집시들이 살던 토굴이라고 한다. 지금은 거처를 옮겨 비어 있는 상태. 이곳의 집시들은 인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울르그벡 박물관.

 

천문대 시설.

 

울르그벡.

 

박물관 내부의 전시 자료.

눈에 익다.

 

이곳의 천문학 성과가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까지 전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사이트에서 가져온 자료이다. 자세한 내용은 위키피디아의 울르그 베그 항목을 참고..

1987년 쏘련에서 나온 우표. 울르그 베그의 초상과 그의 천문대 모식도를 묘사하였다. 쏘련 연방이라고 우즈베키스탄의 인물들도 자기네 우표에 그대로 사용한 것인가보다.

 

밖에서는 결혼식 행사를 한다. 축하~

 

 

아프라시압 박물관.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람들이 묘사된 벽화가 소장된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진품을 이곳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다.

 

이것은 그림을 그린 그림이다.

 

조우관을 쓴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

 

이 부분이다. 보존 상태는 좋치 아니하다.

 

발굴지 모형.

 

발굴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베흐조드 아저씨.

 

묘한 형태의 두개골들도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밖에는 티무르 아저씨 동상이 큼지막하게 만들어져 있다.

 

1시10분이다. 배고파~

 

 

사마르칸트 시내를 관통하여 식당을 찾았다. Karimbek. 2층으로 된 근사한 식당이다.

닭고기 스프가 인상적이었던 곳. 맥주 하나 먹자고 했더니 생맥주 한 잔이 나왔다. 다른 분들은 아무도 안드셔서 할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혼자 꾸울꺽!

먹었으니 오후 일정을 이어간다.

 

Gur-e Amir Complex. 티무르 왕의 영묘이다.

 

티무르 왕의 영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드아~ 

어디?

 

여기! 티무르 박물관.

 

이 아저씨다.

 

정문. 구르 에미르는 1404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원래는 티무르 왕이 요절한 손자를 위해 만든 묘이지만, 티무르 무덤이 만들어졌고, 울르그벡도 이곳에 묻혔단다.

 

올려다보기. 입구의 장식도 현란하다.

 

내부의 천정. 돔.

 

석관. 진짜는 아니다.

 

화려한 벽 장식.

 

화려한 천장의 금장식.

 

레기스탄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Registan Ensemble을 중심으로 Sherdar Madrasa, Tillya-Kori Madrasah, Ulugh Beg Madrasa의 세 마드라사가 모여 있다.

 

레기스탄 광장. 국제 음악 행사장으로 종종 이용된단다. 설치되었던 무대의 일부가 남아 있다.

 

마드라사.

 

마드라사.

 

틸리아 코리 마드라사는 17세기에 만드어졌다.

 

멋진 돔. 몹시도 화려하다.

 

복구되기 이전 과거의 마드라사 상태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레기스탄 광장을 그린 그림. 무엇에 그린 것일까?

 

근사하고 화려하다.

 

이게 누규?

세 아이의 아버지 베흐조드 아저씨, 그리고 그의 10살짜리 딸이다.

 

기념품 판매점들. 그 중의 하나를 베흐조드 아저씨의 부인이 운영한다. 잠시 딸래미가 나와서 가게를 보고 있었다나...

 

레기스탄 광장에서 셀피 하나 남기고 간다. 광장 아래쪽으로 내려가지 못한다. 경찰이 삑삑 거리면서 막는다.

 

인근에 위치한 비비하눔 모스크까지는 걸어서 다녀와야 한다. 버스가 들어가질 못한다. 뜨거운 태양~

 

비비하눔은 티무르의 후궁 중의 하나. 후궁과 모스크 건축가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결말은 당연히 슬픈~

 

후궁을 위하여 만든 모스크라고 해서 그런가 이쁘장하다.

 

모스크 내부는 복원되지 않은 상태이다. 아이들 둘이 물 뿌리는 등의 관리만 하는 것 같다.

 

주차장으로 달려와 버스에 오른다. 시원한 물 한 병을 그냥 빨아들인다. 살 것 같다.

4시 사마르칸트 역으로 달린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여객 열차는 4개 등급이 있다. 그 중에서 고속열차는 Afrosiyob 열차로서 스페인에서 도입한 것이다. 사마르칸트에서 타슈켄트 구간이 2시간 10분 걸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http://www.advantour.com/uzbekistan/uzbekistan_railways.htm

 

사마르칸트 역이다.

 

셀피. 스맛폰의 카메라는 역시 DSLR에 비해 DR의 범위가 좁다.

 

역시나 역구내를 들어가면서부터 신분증 검사를 한다. 보안!

들어간다. 4시 반.

 

역사 내부. 근사하다. 와이파이 될락말락 상태.

 

5시20분에 플랫폼으로 나갔다. 정차 시간이 진짜 너무 짧다.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빨리 타라서 삑삑 거리는 호각 소리. 옆에서 역무원들이 소리친다. 패스트! 패스트!

달린다.

 

고속 열차. 좀 달린다. 하지만 고속열차 전용의 철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속도의 변화가 심하며, 그냥 느리다.

그리고 차 내에서 GPS 신호 수신이 안된다. 줸장~

 

그래도 고속열차라고 정신 차려보니 타슈켄트이다.

 

타슈켄트 역에 내려서 버스 타고 가마솥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호텔로 쓔웅~

 

식당 가마솥.

부부가 한국에서 와서 정착했다고 한다. 18년 되었다고.

 

김치찌개, 된장찌개 두 가지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친구 참 좋다. 깔끔하다.

 

 

 

다시 왔다. 시티 팔레스 호텔.

 

뭐...잤다.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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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6일. 부하라에서 하루를 보냈다. 2박을 한 것이다.

 

부하라 남쪽에 위치한 그랜드 부하라 호텔에서 출발, 시내를 통과하여 북쪽에 위치한 시토라이 모히호사를 먼저 들렀다. 그리고 서쪽의 이스마일 사마니 영묘를 들른 후에 스패니쉬 바에서 점심 식사를 할 때까지가 오전 일정이었다.

 

 

부하라에도 해는 떠오른다. 오늘의 뜨거운 불덩어리가 떠오른다.

일찍 일어났다. 무더운 밤이었다. 힘든 밤이었다. 그래서 일찍 일어났다. 

 

 

그랜드 부하라 호텔 옆의 공원은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 상쾌하다. 상쾌한 아침이다.

 

여섯 시 전부터 일어나 씻고 로비로 내려갔다. 와이파이가 좀 된다.

일찌감치 아침 식사를 마친다.

 

역시 에어컨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부하라에서 1박을 더할 예정인데, 호텔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고 전한다.

짐을 싸서 로비로 내려와 버스에 짐을 싣는다. 원래 예정은 몸만 움직이는 것이었었는데.

8시55분 승차 완료. 출발.

 

오늘의 첫번 째 일정 장소이다.

 

Sitorai Moxi Xossa. 별과 달을 뜻한다고 한다. 부하라 한국의 여름 궁전이다.

 

간판은 이렇게 생겼다. 씨또라이 모히 호사.

 

입구에서 입장료 계산하던 베흐조드 아저씨의 손.

 

마당에 공작 여러 마리를 풀어놓고 있었다.

 

이 궁전은 이슬람 양식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1910년에 지은 것으로서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부하라 한국의 마지막 칸인 에미르 알림 칸 시대에 지어진 건물로서 러시아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건축가로 하여금 이슬람 양식과 유럽 양식을 조화시켜 만들도록 했기 때문이다. 궁전이 완성되고나자 그 아름다움에 반한 칸은 건축가의 손을 잘랐다고 한다! 이 동네 사람들은 참 희한하게 반한다. 그리고 동상을 만들어 주었다.

 

들어가면서 바로 만나는 것은 기념품 판매대. 그리고 공사중~

 

보수 공사중인지...폭파중인지...

 

영빈관 내부이다.

 

화병에 꽃을 꽂아 둔 문양이 반복된다.

 

샹들리에. 저 높은 천정에 매달린 샹들리에의 초에는 도대체 불을 어떻게 붙이는지가 너무나 궁금하였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불을 붙이고 끄고 하는 것일까 하는 상상도 해보고...

샹들리에 자체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마지막 칸. 에미르 알림.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챙길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재화를 챙겨 아프가니스탄으로 도주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지금도 그 후손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2년에 한번 정도 후손들이 조상의 땅을 방문하고 있다고 베흐조드 아저씨가 그랬다.

 

샹들리에.

 

큼지막한 도자기. 일본 것이다. 여러 나라의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 이런 고가의 상품들을 마구마구 수집할 수 있을 정도로 부하라 한국은 부자였었던 것이었다.

 

결혼 기념 사진. 신랑 12세, 신부 8세.

우즈베키스탄은 무지막지한 조혼 풍습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도 여자는 18, 19, 20세 정도면 거의 결혼을 한다고 한다. 남자들은 대학 공부나 취업 등의 이유 때문에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있지만 신부는 여전히 20세 이전에 결혼을 한다고 한다.

 

낡아서 올라가면 위험하다고 하였다. 그 아래에서 CD를 파는 아저씨.

 

이 아저씨. 음악 CD라고 구입했다. 전통 음악 CD를 가능하면 구입하려 하고 있기에. 가짜였다. 아자씨! 나빠요!

 

딱 보면 야매다. 그래도 이렇게 보이면 음악 CD여야 하지 않는가? 

음악 CD가 아니라, MP3가 들어 있었다. 포장지에 있는 음악 그대로 들어 있으면 조용히 있었을 것이다. 껍데기와 알맹이의 내용이 전혀 다르다.

 

 

에이, 샹들리에~

 

누에고치.

 

염색실.

 

다양한 염색 재료.

 

씰크.

 

정원의 연못옆에서 얌전히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인증 사진을 만들어보았다.

 

 

10시 반이다. 씨또라이 모히 호사를 뒤로 하고 떠난다.

 

부하라에도 예쁜 마티스 택시들이 성업 중이다.

 

허걱! 폭탄 차량?

지붕에다가 가스통을 그냥 노출된 상태로 장착하고 다닌다. 저거 폭탄아냐?

 

욥의 샘물과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를 가기 위해서는 부하라 시장을 지나가야 한다.

 

부하라 시장 입구.

 

시장은 거대하다. 

 

판매 품목에 따라 구분되어 있다.

 

견과류.

 

 

향신료 상점.

 

빵가게.

 

채소 가게.

 

이 동네에서는 고기의 처리, 운반, 판매 과정에서 냉장 보관이 없다. 건조하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일 것이다.

 

공산품.

 

곡물.

 

 

 

Chashma-Ayub Mausoleum. 욥의 영묘, 욥의 샘물.

chashma가 '샘'이란 의미라고 한다.

서로 다른 시기에 건축물을 증축하면서 당시의 양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세 개의 돔 모양 지붕을 갖고 있다.

 

 

부하라 사람들이 물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욥이 이곳을 지팡이로 내리치자 샘물이 솟았다나.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이 샘물을 마시고 간다.

 

욥의 가묘.

 

중앙 아시아 고전 건축의 걸작품이라고 한다.

Ismail Samani Mausoleum. 부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영묘로서 905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건물 벽의 무늬가 다르게 보이도록 설계, 건축된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 유일의 것이라고 한다.

 

영묘이므로 실제 시신이 안장된 것은 아니다.

 

천장. 당연히 돔형이다.

 

이스마일 사마니에게 소원을 비는 쪽지를 넣는 구멍이 영묘 아랫부분에 있다.

 

이스마일 사모니 영묘 앞에서 일행은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다.

 

 

관람차. 한번도 타보지 못하였다. 이번에도 구경하면서 지난다.

Samonids Recreation Park. 날이 너무 뜨거워서인지 놀이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볼 수 없었다.

이 공원을 지나서 버스와 랑데뷰.

 

12시10분이다. 먹을 시간이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그 스페니쉬 바로 향한다.

물담배를 맛깔나게 피우던 예쁜 아가씨를 정신없이 처다보다가... 그냥 점심 먹었다.

 

다시 시내로 들어왔다. 아르크 고성이 보인다. 새로운 숙소는 아르크 성 바로 옆이다.

 

실크로드와 어울리는 이름. 캬라반. 숙소를 배정받고 좀 쉬기로 한다. 해가 너무 뜨거워 돌아다니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 낮잠을 자는 척 하다가 나왔다. 그럴려고 했다. 막판에 잠들어 전화받고 허겁지겁 나왔다.ㅠ.ㅠ

 

3시40분 모두 모였다. 이후의 일정은 걸어서 다녔다. 이렇게~

 

조금 더 확대해보면 이렇다. Bolo-Hauz Mosque, The Ark, Kalyan Mosque, Taki-Telpak Furushon Bazaar, 그리고 Nodir Devon beghi Madrasa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숙소로 귀환.

 

아르크 성의 길 건너편에 있는 근사한 모스크를 먼저 들렀다.

 

자그마한 미나렛. 그 아래에서 4형제가 몰려 다니며 놀고 있다.

 

히바에서도 보았던 독특한 문양의 기둥들.

 

사원의 이름이 복잡하다. 이맘들의 대장쯤이라고 할까?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위원회라고 번역된다. 우즈베키스탄 전국의 모스크와 이맘들을 관리하고 있는 곳이다.

 

내부는 기가막히게 만들어져 있다. 기둥 하나 없이 넓은 공간이 확 열려 있다.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동시에 기도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모스크 내부의 미흐랍 Mihrap이다. 메카의 방향에 만들어지기에 미흐랍을 향해 절을 하면 된다.

 

이렇게. 절을 하는 방법을 베흐조드가 알려주었고 따라 하기 체험.

 

난 셀피 놀이하기.

 

꼭 썬글라스를 낀 것처럼 보인다.

 

길을 건넌다. 역시 더우니까 시원하게 창문을 열고 다니는 택시.

 

아르크 성 정문. 성의 일부가 폭우로 붕괴되어 긴급 보수된 것이라고.

 

정문으로 들어간다. 아르크 성은 부하라의 왕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7세기에 처음 축조되었는데, 몽골, 투르크족의 숱한 침략을 받으며 붕괴와 재건을 반복했다고 한다.

 

아르크 성은 1920년까지 부하라의 왕이 거주했던 것이라고 적혀 있다.

 

아르크 성의 배치도.

 

성 내부에 있는 금요일 모스크. Mosque Jome.

 

전시관, 박물관.

 

성벽. 대포.

 

지나던 백발 노인.

 

아르크 성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

 

살금살금.....

 

활짝~ 얼굴 껍데기가 아주 시커멓다.

 

칼리안 모스크를 향하는 일행.

 

지나는 길 옆에 있는 호텔? 우리 묵을 곳이다.

 

보수하여 이렇게 단장할 것이라는 것만 같다.

 

Kalyan Mosque. 멋지다.

 

칼란 미나렛. 높이 46미터. 아잔을 하는 기능 이외에 다른 기능도 갖고 있었던 첨탑이다.

중앙아시아의 첨탑 중 가장 높아 꼭데기 불을 지피면 사막의 등대 역할을 하여 먼 곳 어느 방향에서도 부하라를 찾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탑은 또 죄인을 처형하는 장소이기도 했단다. 푸대에 담아 탑 꼭데기에서 아래로~ 그랬었단다.

전하는 이야기. 징키스칸이 부하라를 침공하였을 때 탑을 올려다 보다가 투구가 떨어졌고, 무심코 몸을 숙여 투구를 집어 들었다. 칸으로서 고개를 숙인 것이 민망하였을까? 자신의 허리를 굽히게 한 위대한 탑이니 파괴하지 말고 남겨 두라고 했고, 그래서 무사히 첨탑이 건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고 전하더라.

 

건너 편에 있는 마드라사. Mir-i-Arab Madrasa.

마드라사는 이슬람 고등교육 기관이라고.

 

칼리얀 모스크의 정문으로 들어간다.

 

한참 걸었더니 힘들다. 쉬어가기.

 

 

안쪽에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다.

 

기념 사진. 단체 여행객은 단체 사진을 남긴다.

 

Ulugbek Medressa.

 

전통 공방 골목이 이어진다. 칼가게 부터 시작한다. 금속 공예점. 가위의 모양이 재미있다.

 

이건 뭔가?

 

보수 공사중이다.

 

가스관 매립 공사중이다.

 

8번 노선 버스가 운행중이다.

 

하수도는 흐르는 중이다.

 

Taki Sarrafon Bazaar.

 

Lyab-i Hauz. 라비 연못. 1620년에 만들어진 연못. 고대 도시의 중앙광장에 위치하였으며, 깊이는 약 5미터에 이른다. 식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자리는 만원이다.

 

라비 연못가에 있는 나무. 가장 오래된 나무로서 수령이..........(기억 안난다.)

 

라비 연못 옆의 작그마한 공원. 거기에 이 아저씨는 왜 있는겨?

 

노디르 데본베기 마드라사. 봉황 문양을 갖고 있다.

이슬람 학교였지만, 지금은 식당으로 임대 영업중이다.

 

자리가 준비되어 있다. 우리 예약석은 어디?

 

공연과 패션쇼를 번갈아 진행했다. 멋진 연주 및 노래팀.

 

예쁜 땐스 팀.

 

 

구경 및 식사팀.

 

8시 쯤 공연이 끝났다. 캬라반 호텔로 돌아간다.

 

부하라 하늘에 달이 떳다.

 

8시반부터 자라고 한다. 하~

이렇게 일찍 자다니....

빈둥 거린다. 와이파이는 느리고. 아예 안되면 시도도 안할 텐데, 되는 듯 하기도 하여 붙들고 있는다. 이것이라도 해야지.

다음부터는 아무리 감기 등으로 헤메더라도 좀 챙겨와서 몰래 혼자라도 먹어야겠다는 다짐을 매일 밤 하고 있다.

아무 것도 안하기에 지쳤다. 자자... 헌데, 또 정전 체험을 하게 해준다.

세 번이나 정전되었다고 한다. 나는 두 번인줄 알았는데.

 

잤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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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5일이다.

아야즈 칼라를 거쳐 부하라로 달리는 날.

 

히바를 출발하여 아무 다리야 강을 건너 사막 초입에 위치한 아야즈 칼라 답사. 그리고 사막을 횡단한다. 그리고는 오아시스 도시 부하라에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며 쉴 것이다.

 

아시아 히바 호텔. 위치 좋다. 이찬 칼라 바로 앞.

 

7시 30분에 이찬 칼라를 뒤로 하고 출발한다. 아야즈 칼라까지 달린다. 겨우 100킬로 미터 쯤이야.

 

아무 다리야 강을 건넌다. 다리 이름이?

폰툰 브릿지.

 

버스에서 얼굴 껍데기 상태를 확인해본다. 역시!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다. 여러 날 햇볕 따가운 지역을 여행할 때 껍데기 보호를 위해 몸부림 치는 것보다는 그냥 냅두는 것이 편하다는 결론을 또 내린다. 왠만큼 망가진 다음에는 더 이상 진도가 안나간다.^^

그 다음에는 복구 메카니즘이 작동한다. 신기하다. 좋다.^^

 

 

히바에서 아야즈 칼라까지.

 

9시반 아야즈 칼라에 도착하여 성의 둘레를 따라 한바퀴 돌았다. 돌아부렸다.

이찬칼라, 아야즈 칼라.... '칼라'가 "성"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햇볕에 대항하는 중무장을 해보았다.
숨쉬기 답답하여 벗어버렸다. 안경에 덧대는 썬글라스 대용품을 가져온 것 같은데, 어디에 둔질 찾지 못했었다. 메고 다니는 배낭 안에 있었는데 그걸 못 찾다니... 헌데 눈 아파서 못 쓰겠다. 결국 던져버린다.

 

아야즈 칼라 주차장에는 유르트가 여럿 설치되어 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숙소이다. 식사 제공도 되는 것 같다. 이런 곳에서 묵어보는 것도 재밌을 터.

 

부근에 보이는 가옥. 흙집이다. 왜? 집을 지을 수 있는 재료가 그것밖에 없으니까.

지붕은 평평하다.  왜? 강수량이 매우 적은 지역이니까.

 

호텔에서 관리하는 낙타들 같았다. 아침 식사하시고 출근중~

 

아직 식사 안 끝났다~

낙타들에게 수박을 먹이고 있었다. 수박 풍년이라 가격이 매우 싸다고 하더니.

 

아야즈는 '춥다', 칼라는 '성'을 의미하는 단어. 추운 성 되시겠다. 여름에는 덥지만 겨울에는 매우 춥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 동네라고 한다.

그 땐 그 때고 일단 지금은 매우 덥다. 걷는다. 심지어 올라간다. 게다가 바닥은 고운 모래이다.

 

오메, 빠르다.

 

벌써~

지구인의 범용 사진 포즈. 팔 벌리고 찍기.

 

아야즈 칼라에 올라 바닥에 널린 돌들을 이용하여 조형 예술을 하시는 분들.

 

끝났다~~ 만쉐~~~

 

토성이 이렇게 아랫 쪽과 윗 쪽으로 구성된 예가 흔치 아니하다 한다.

 

까꿍~

 

 

옆에 작은 성채의 흔적이 또 남아 있다.

 

조기까지 내려갔다 오려 했더니만 부하라까지 달려가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 한다. 아.. 또 그 시간....

 

아야즈 칼라를 얼음궁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지금은 화염지옥이다.ㅠ.ㅠ

 

30분 만에 아야즈 칼라를 떠난다. 호레이즘의 고대 유산이라고 하는데, 토성의 흔적 만 남아 있어 '무상'하다는 감정 이외에는 느끼기 어려웠다. 아, 그리고 뜨거웠다.

 

길 가에 또다른 미완성의 토성이 보인다.

꼬이크르겐 칼라. 꼬이는 '양', 크르겐은 '없애다'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양 잡는 성' 정도의 의미를 가진 곳이겠다.

버스에서 촬영한 사진이라 유리창의 흔적이 강하게 보인다. 왜 잠깐 정차하여 사진 좀 찍지요~ 라는 말을 못했을까?

아...시간...

 

카라칼파크스탄에 이런 성이 50개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카라칼파크스탄에 12개의 주가 있는데, 주 이름이 50개성인 곳이 있단다.

수박 밭이다. 수확중. 올해 수박 농사가 대풍이란다. 작년에는 수박 흉년이었는데, 그래서 올해는 수박 질도 좋고, 가격도 싸기 때문에 많이들 먹고 있단다. 우리도 많이 먹었다.

 

 

버스는 배가 고프고, 디젤을 판매하는 주유소가 있다. 멈춘다. 채운다.

 

그 틈을 이용해 사람들은 버릴 곳을 찾는다.

 

주유소 있는 곳에서 베흐조드 아저씨가 길 건너의 작은 가게를 다녀온다. 검은 비닐 봉다리. 웨하스를 사왔다. 우리나라 같은 질소 포장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 그냥 포장 없는 상태로 판매한다.^^

맛 있었다.

 

A380 도로를 따라 계속 달린다. 부하라여~

 

길가의 매점. 그냥 우즈벡 식 고속도로 휴게소라 하자. 생수, 음료수, 견과류, 과일 등을 판매한다.

 

고가의 음식인 물고기도 판매하고 있다.

 

대부분의 승용차가 가스차이다. 그래서 가스 충전하는 곳은 많으나 오히려 휘발유 판매점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이런 곳에서 페트 병에 든 휘발유도 판매하고 있다.

 

수박, 멜론 등이 길바닥에 굴러 다닌다.

 

수박 먹기, 멜론 먹기. 두 개에 무려 1천 원 정도나 한다고^^

 

도로 상태가 매우 좋다. 콘크리트 포장 도로이다. 독일회사와 포스코의 지원으로 4년 간 공사하여 완공한 부분이라고 한다. 독일회사 책임 구간은 아직 준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역시 한국 회사는 "빨리빨리"다.

 

12시반. 도로변의 식당 휴게소. 식당 이름은 사람 이름이란다. 아마도 아버지와 아들 이름을 식당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고.

소고기 샤슬릭이 메인 메뉴. 1시 반에 출발.

 

날 더운 길을 힘차게 달리다 보면 목도 타고 하니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 날 그랬다. 마시니 시원했다. 그런데, 몇몇 멤버는 이 시원한 것을 싫어 하셨다.

내 앞으로 다 모였다.^^ 쒼난다~

 

아무다리야 강이 가까이에서 잘 보이는 곳을 소개해주겠다고 베흐조드 아저씨가 그랬었다. 그 곳에 정차하였다. 바로 강변이다. 건너편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영토이다. 국경선에 해당하는 곳.

 

1시50분.

휴게소 분위기. 전망대일까?

 

아무 다리야 강이다.

 

넓은 강이 카메라의 화각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스맛폰 카메라 파노라마 모드.

 

A380 도로를 달리다 보면 카라칼파크스탄의 경계를 벗어나게 된다. 검문소가 있다. 3시40분에 검문소를 통과했다.

 

오후 4시25분. 콘크리트 포장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잠시 쉬어간다. 화장실을 찾아서.

'대우' 버스가 세워져 있고, 땀을 흘리며 수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운행하는 고속버스라고 했다. 에어컨도 없어 시원하게 창문을 열고 달려야 하는 오래된 버스.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해도 비싸지 않은데, 더 싸게 더 싸게 이동을 하려고 이런 버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중간에 버스가 고장나서 쉬어가는 맛도 있겠고.

 

갈대를 잔뜩 싣고 가는 트럭들이 종종 보였다. 건축 재료로 사용하기에 시장에 내다 판매하고 하는 것이란다. 쌓아 올린 갈대 위에 사람들이 매달려 타고 가는 트럭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빨리 달릴 수가 없다. 덜덜덜덜~ 덜컹 덜컹~ 기대 잘 수가 없다.^^

부하라에 가스전이 있다고 한다. Gazli라는 지명이 생길 정도.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중국으로 수출한다고 한다. 진짜?

 

철도 공사 중이다. 새로 철도를 깔고는 무거운 화물을 실은 차량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안정화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6시15분 쯤에 부하라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역시 목화밭이 널렸다.

 

오늘의 숙소 그랜드 부하라 호텔. 체크인. 그런데 거시기한 정보. 건물 전체에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타슈켄트에서 기술자가 와서 수리하는 중이라고 한다. 기술자 1명이 와서 호텔 전체의 에어컨 고장을 수리하고 있다고? 불안하다!!!

 

7시20분에 저녁 식사를 하러 나선다. 아래 지도에 보면 Spanish Bar라고 나온 곳이다.

물담배를 피우는 손님들의 모습이 인상적인 곳.

식사는 괜찮다.

 

스페니쉬 바. 간판도 없다. 지하.

 

그럴싸 하다.

 

분위기 좋다. 스페니쉬하다.

 

8시20분 숙소로. 

물론! 에어컨은 그대로이다. 호텔 주변의 공원에서 무엇인가 행사가 있는 가보다. 산책.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능 행사를 구경하고 있다. 그런데, 음향 상태는 좀 많이 그렇다.

 

그랜드 부하라 호텔의 907호. 에어컨 안된다. 로비로 내려와 와이파이를 즐기려 해본다. 제대로 안된다. 덥다. 다시 방으로. 다시 로비로. 다시 방으로. 다시 로비로. 다시 방으로.

 

9층에서 내려다 본 인근 공원. 예능 행사가 한창이었다. 따뜻한 밤을 즐기러 나온 주민들로 가득했고.

 

자긴 잤다. ㅠ.ㅠ

창문과 방문을 열어 두고 통풍을 시키며 잔 팀도 있다는데, 나는 혼자라 무서워서 방문을 열지 않고 잤다. 더웠다. 현지 기후 환경 체험이었다. 신기하지는 않고 그냥 더웠다. 그래도 잠은 잘 오더만.^^

 

내일 아침은 6시반부터 1층 로비의 식당에서 제공될 것이며, 출발은 9시라고 공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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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4일. 히바로 간다. 

과거 호라즘 지역의 일부였고, 그 역사의 일부였고 흔적이 남아 있는 곳들 중 하나이다.

 

 

호라즘에 대해 미리 알차게 공부해보자.

https://en.wikipedia.org/wiki/Khwarezm

 

복습하자.

https://namu.wiki/w/%ED%98%B8%EB%9D%BC%EC%A6%98%20%EC%99%95%EC%A1%B0

 

페르시아어 발음이 어려워 여러가지로 표기되고 있다. 보통 화레즘 Khwarezm이라고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호라즘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호라즘 지역이라고 하면 아래 지도의 지역을 가리킨다.

위에 링크한 나무 위키의 자료 내용에 보면, 호라즘은 아무다리야 강 하류의 비옥한 저지대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북으로는 아랄해, 동으로는 키질쿰 사막, 서로는 우스튜르트 고원, 남으로는 카라쿰 사막과 접한다. 트란스옥시아나의 일부로 간주되며, 현대 국경으로 보면 투르크메니스탄 북부, 우즈베키스탄 동북부에 해당한다. 트란스옥시아나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고대부터 여러 이란계 종족들이 살아왔고, 페르시아 지역의 제국들에 직간접적으로 복속된 페르시아 문화권으로 발전했다. 아랍 이슬람 세력의 대정복 이후에도 호라즘은 시리아와 이라크의 아랍 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반독립적인 세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호라즘 지역에서 시작하여 가장 강성했을 때 호라즘 제국의 영역은 이만큼이나 되었었다.

이때가 최성기이다. 이런 거대한 제국을 이루자 마자 징기스칸이 아는 척을 했고, 박살났다. 호라즘의 주요 거점 중, 이번 여행에서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를 방문할 것이다.

 

쥐펙 졸리 호텔. 아담하다. 좋다. 이런 좋은 곳을 7시58분에 떠났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베흐조드 아저씨에 의하면 1년에 한두번 정도라고 한다. 자기가 오는 것이. 관광 가이드를 하는 자신이 그정도로 찾는 경우가 없는 외진 지역이라는 것이겠지. 그런데 올 때마다 다르단다.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단다.

히바를 향해 달린다. 약 200킬로미터. 11시 정도 도착 예정.

가자!

키질쿰 사막 언저리의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아무 다리야 강 유역의 충적지를 가로지른다. 그리고 카라쿰 사막 언저리에 위치한 히바로 접어들었다. 카라쿰 사막은 투르크메니스탄이다. 세 아이의 아버지 베흐조드도 한번 밖에 가보질 못했다고 한다. 관광 가이드인데도 입국 비자가 나오질 않는단다. 한국 관광팀에 묻어서 신청하여 겨우 한번 입국해 보았다고 했다. 좋단다. 꼭 가보란다. 상당히 폐쇄적인 국가이지만 그만큼 볼만한 유적들이 많이 잘 남아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편의 시설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 것인가는 외국을 나가보면 바로 절실하게 느낀다. 이 동네도 도로변에 편의 시설이 아무 것도 없다. 그거 꼭 필요한 그것도 없다.

그래서 길가의 농가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티코가 주차된 그 농가.

 

다른 분들은 공식적 화장실을 양해를 받고 이용했고, 나는 사진 속의 흙으로 만든 작은 건물을 이용했다. 우어~ 아우~ 어후~

 

남의 집 화장실을 이용했다고 화를 내던 잠자리와 당나귀.

 

농가 앞을 지나던 당나귀 수레와 자전거 아저씨.

 

우즈베키스탄이 구소련에서 독립한 것이 1991년이다. 작년에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이 2대! 그럼 그동안?

1대 대통령이 주구장창 버텼다. 임기가 끝나 대통령이 바뀐 것이 아니라 노환으로 돌아가셔서 "어쩔 수 없이" 대통령이 바뀌었다. 현 정권에서는 우즈벡의 개발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농촌 지역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비닐하우스 보급이란다. 신청하면 은행 대출 작업까지 대신하여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주고 있다고 한다. 채소를 생산하여 대도시와 러시아로 출하를 하고 있다고 한다. 농촌 근대화의 시작은 시설 농업이고, 그 시설 설치에 들어간 자본을 견뎌낸다면 성공하는 것이겠지.

개인적인 경험으로는...아 내 경험이 아니구나. 우리 부모님은 실패하셨다. 농협 빚을 견뎌내지 못하시고 장렬히.....농목업을 정리하셨었다. 다 날아갔다. ㅎㅎㅎ

우리 집처럼 망하지 않고 우즈벡 농가는 성공하기를~!

버스에서는 고선지루트 2편 상영 실패했다. 에러. EBS에서 방영했던 '실크로드 위의 푸른 이슬람'을 시청하면서 달렸다.

 

아무 다리야 강을 건넌다. 폰툰 브릿지.

 

폰툰 다리가 카라칼팍스탄과 우즈벡의 호레즘 주의 경계가 되겠다.

호레즘의 주요 중심지였던 우르겐치를 지나 히바로 접어들었다. 

우르겐치를 지난 시각이 10시 58분. 국제 공항이 있는 곳이다. 대우의 옷공장도 있다. 도시 이름은 석회로 그림 그리는 도시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찬칼라 부분 확대.

 
히바로 오는 도중에 버스에서 베흐조드 아저씨가 탄식을 한다. 우즈벡에 알콜이 너무 퍼져 있다고 원래 이슬람에서는 알콜을 금지하지만 구소련의 지배를 받는 과정에서 보드카가 너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너무 조으아~
 
히바~
 
11시 30분. 예상보다 30분 늦었다. 히바의 이찬 칼라 성이다. 노아의 비둘기. 그 비둘기의 울음소리가 헤와크. 그 울음소리를 따서 이곳의 지명이 붙었다고 베흐조드 아저씨는 설명했다. 헤와크가 어떻게 히바가 되었지?

히바의 이찬 칼라. 유네스코를 통해 보전하고자 한다.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일관성 있으며 세계적으로 잘 보존된 도시의 유적이며 히바(Khiva)의 도심에 해당하는 이찬 칼라는 호라즘(Khorezm)의 잃어버린 문명을 훌륭하게 증언해 주고 있다. 주마 모스크와 같은 이찬 칼라의 몇몇 기념물은 주목할 만한 건축물이며, 크기는 웅장하지만 디자인은 단순한 마드라사의 경우는 중앙아시아 특유의 이슬람 건축에 대한 훌륭한 본보기이다. 히바의 가옥 건축은 그 설계와 건축 방식 때문에 이찬 칼라의 흥미로운 요소들 중 하나로 꼽힌다.
옛날 옥수스(Oxus) 강이었던 아무다리야(Amu Darya) 강의 서쪽에 있는 히바 오아시스는 대상들이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사막을 건너기 전에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다. 4세기에 히바는 이란인들이 세운 호라즘(그리스어로 ‘코레스미아(Choresmia)’) 왕국의 중심지였다. 이 왕국의 번영은 이 지역의 ‘검은 모래(black sands)’를 비옥한 목초지와 정원, 과수원으로 바꿀 수 있는 수압 기술과 관련돼 있었다.
712년 처음 아랍 인이 이 도시를 정복했으며, 그다음에는 1221년 몽골인들이 이곳을 차지했다. 1379년에는 몽골의 지배를 받다가 티무르의 수중에 넘어갔고, 1512년에 우즈베크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새로운 나라의 수도가 되었으며, 1643년부터는 한국(khanate)의 수도가 되었다. 19세기 동안 독립을 누렸으나 1873년에 러시아의 보호국이 되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이 도시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즉, 이전의 요새화된 외부 도시인 디샨칼라(Dichan Kala)와 10m 높이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심지인 이찬 칼라로 나뉜다. 비록 1788년~1789년에 대대적으로 재건되기는 했지만, 주마 모스크를 제외하고 17세기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의 공공건물들은 동서 축을 중심으로 하여 그 둘레에 무리지어 있는데, 그 한쪽 끝 옆으로 히바 군주들의 웅장한 집들이 이어져 있다. 북서쪽에는 1686년~1688년에 아랑 칸(Arang-Khan)에 의해 건설된 ‘고대 요새’ 쿠냐아르크(Kunya Ark)가 있다. 처음 지어졌을 때 쿠냐아르크는 가공할 만한 사각형 보루였지만, 19세기 초 알라울리 칸에 의해서 호화로운 궁전으로 바뀌었다.
1830년~1838년에 건설된 북동쪽의 타슈하울리 궁전(Tash-Khauli Palace) 역시 알라울리 칸을 위한 것이었다. 그 외의 특별한 기념물들로는 파흘라반 마흐무트(Pahlavan Mahmud, 1247~1325)의 무덤과, 14세기에 지어졌을 당시의 배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세이드 알우딘(Sayid All-Uddin)의 무덤을 들 수 있다.

이찬 칼라의 많은 기념물이 비록 화려하지만, 개개의 기념물들보다는 더할 나위 없는 도시 구성과 19, 20세기에 지어진 주요 건축물들이 과거의 건축물과 함께 뛰어난 조화를 이루는 것에서 그 우수성이 유래한다. 예를 들어 주마 모스크와 파흐라반 마흐무드 무덤의 남동쪽에는 히바에서 가장 높은 45m의 우아한 미나레트(minaret, 첨탑)가 곁들여진 이슬람호자(Islam-Khodja)의 마드라사(1908~1910)가 자리 잡고 있는 한편, 쿠냐아르크의 남쪽에는 칼타 미노르(Kalta Minor)와 무하마드아민칸(Muhammad-Amin-Khan)의 마드라사가 발견된다. 1835년 이 도시 내부의 동쪽 문 근처의 처리 곤란한 공간에 지어진 알라울리의 마드라사는 고대 도시에 조화롭게 융합된 유명한 예로 꼽힌다.

 

입 주변 껍데기가 말이 아니다.

 

얼굴 시커먼 셀피를 만들고 있었는데, 다른 분의 카메라에 잡혔다.

 

 

이찬 칼라에는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여럿 있다. 서문 옆에 이런 게시판이 있더라.

 

그 옆에는 이런 동상이 있더라.

시대를 앞서간 사람. 시대를 이끈 사람. Al Khwariszmi의 동상이다. 우즈벡 현지 가이드는 계속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이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는데, 대충 눈치 까면서 보니 알고리즘이 아니라 알쥐브라이다. 무함마드 이븐 무소 알 콰리스미.

 

두 유 노우 알쥐브라? 오아 알 콰리즈미?

그래서 나는 수학을 포기했고, 수학을 포기하니 이과를 포기했다. 이과를 가고 싶었는데. 요즘도 가끔 생각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나의 이과 인생을. 수학이 안되어서....ㅠ.ㅠ

나와 조금 다른 길을 간 사람. 알 콰리즈미.. 조금 다른가?

https://en.wikipedia.org/wiki/Muhammad_ibn_Musa_al-Khwarizmi

 

알쥐브라가 된 알콰리즈미 앞에서 폼을 잡아 본다. 꽝이구나.

 

이찬 칼라를 서문을 통해 입장하려는데 추가 요금을 내라고 하더라. 낸다. 죽인다. 사진 값이다. 이거...죽인다. 사진 값이라니. 이런 것 좀 국내 도입하자. ㅎㅎㅎㅎㅎㅎㅎㅎ

얼마였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메모 안했다. 이런!

2 달러 정도 였던 것으로 대충....

 

서문으로 입장하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Orient Star Khiva.  마드라사로서 이슬람의 고등교육 기관이었지만 지금은 호텔로 이용되고 있다. Kalta Minor Minaret이 옆에 있다.

 

과거에는 고등 교육 기관이었지만 지금은 호텔로 이용되고 있는 마드라사. 상당히 많은 마드라사들이 호텔로 임대 이용되고 있는 우즈벡의 현실이다.

 

기념품. 이런 사진을 찍을 때 흔히 사용되는 기법, out of focus. 

 

퍼미션 포 포또 비용을 지불했으니까 마음대로 촬영해도 된다....는 아니고 핸드폰을 이용한 이런 셀피는 비용을 따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시커먼 덩치 좀 있는 카메라의 경우에만 비용을 내라고 하는 것이다.

 

아라베스크. 결과는 기가 막히게 아름답지만 만든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무늬가 이어지는 타일에 구별하기 위한 숫자가 표기되어 있단다. 그렇게 그렇게 공사를 하였던 것이었구나. 그래도 고역이었을 것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건물의 지붕이 평평하면 일단 강수량이 적은 지역이다. 그렇다. 맞다!

 

Kunya-Ark 모스크이다. Citadel from 1686이라고 소개된다. 오래되었다. 나보다...ㅎㅎ

 

이스람 후자 미나르를 올라가면서 구멍 속에서 셀피. 라고 알고 있었는데  Ark Kunya인 것일까?

 

받아들인다. 햇볕은 거부하지 않는다. 썬블럭은 가방에 그냥 모셔둔다. 오시오, 햇님!

 

Mirza Boshi Hostel이라고 위치 검색이 된다. 거기서 점심 식사를 한 것 같다. 이찬 칼라 성 내부이다. 점심 식사를 하고 숙소인 아시아 히바 호텔에 가서 좀 쉬었다. 뭘 했다고 쉬는지는 모르겠지만...ㅎ

 

숙소가 이찬 칼라 코 앞이다. 아시아 히바 호텔. 1시에 도착했다. 뜨거운 동네다. 어차피 얼굴 껍데기가 완전히 망가진 나는 막 나데고 싶지만 고운 얼굴을 보전하고 계신 다른 멤버들 때문에 까운 햇볕은 피하기로 했다. 4시까지 쉬고 햇님의 기운이 좀 약해진 다음에 보기로 한다.

 

쉬다가 나왔다. 오후 일정 시작이다. 4시에 나선다.

이찬 칼라 성. 근사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흙 덩어리이다. 사막에서 '성'이라고 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무엇이 있었을까? 그것은 흙 밖에 없었으리라. 그래서 도시의 성이지만 흙으로 만든 성이다. 왜 방어를 위한 성을 흙으로 만들었을까!

 

숙소인 아시아 히바 호텔에서 쉬다가 오후 일정을 나선다. 이찬 칼라의 남문으로 들어간다.

 

Juma Mosque. 나무 기둥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돔형의 지붕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215개의 나무 기둥으로 받쳐진 하나의 넓은 공간으로 되어 있다. 기둥들의 오와 열이 참 잘 맞는다. 

http://www.advantour.com/uzbekistan/khiva/jumamosque.htm

 

나무 기둥들이 인상적이었다. 몇 개를 비행기에 싣고 오고 싶었다. 하지만...타슈켄트까지의 운송이 어려울 것 같다. 바로 포기했다. 이렇게 전통적인 문양으로 제작된 기둥을 팔기도 하던데........ 다음에 사자!

옆의 계단은 민베르 Minber라고 한다. 기도를 마친 다음에 이맘이 설교를 하는 장소이다. 제일 위에 올라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겸손의 의미하고 한 칸 아래에 서서 설교를 한다고 한다. 제일 윗 자리는 누구 자리? 예언자 무함마드의 자리.

 

얼굴 껍데기 색이 ㅎㅎㅎㅎㅎ

 

가옥의 건축 재료는 흙이다. 그것 밖에 없겠지. 지붕의 높이에 구멍이 뚫려 있다. 가끔 내리는 빗물을 배출시키는 용도이리라.

 

옛날에 사용하던 우물이라고 하여 물을 퍼올려보는 여행객과 베흐조드 아저씨.

물에 염분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식수로는 사용하지 아니하고 세탁 등의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주사위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할아버지들. 나루다. 러시아에서 들어온 게임이라고 한다.

 

베흐조드 아저씨가 뽐뿌질을 하고 있다. 물 나온다.

 

Juma Mosque 옆에는 Jummi Minaret이 있다. 입장료가 있다. 따라가 보았다.

이런 곳을 올라 갈 때마다 후회한다. 식식거리면서. 이런 곳에 왔으니 그러하는 것이겠지.ㅎㅎ

 

올라왔더니....먼저 왔던 한글을 사용하는 민족이 있다. 아...영어도 사용한다. 두 남자로부터 하트를 받고 있는 J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올라왔다는 인증 및 기념 샷!

 

 

아닌 척 하면서 이찬 칼라 성내에서 우리들 시야에 계속 머물던 아가씨. 가는 곳마다 뜨게질을 하고 있었다. 관심을 보이면서 다가가면 바로 기념품 판매 모드로 돌변한다.^^

 

Allakuli Khan Caravanserai. 과거에는 카라반들이 이용하던 시설이었지만 지금은 관광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가로 변해버렸다. 그 앞의 노변에도 기념품 상가가 있다. 지나는데 먼저 한국말로 인사하던 아저씨. 한국에 7년 있었단다. 충남대학교에 3년 있었고, 4년을 이 도시 저 도시 돌아다니면서 일을 했다고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우즈벡에 가게를 둘 열었다고 자랑한다. 너무 좋아서 한국에 또 돈 벌러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이미 비자 신청한 상태~

 

저녁 타임. 왕의 별장이었던 더자벅에서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다.

 

왕의 별장답다. 

 

풍성하다. 좋다.

 

왕의 별장답다. 예능인들의 쇼도 보여준다. 좋다.

 

왕의 별장답다. 알콜도 있다. 좋다.

 

술 잔을 높이 드을어어라~거언배~

 

8시반에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간다.

 

왕의 별장을 떠나 시민의 숙소로 왔다. 아시아-히바 호텔.

숙소에 와서 일찍 잔다.

와...

이건 아니다.

매일 이렇게 일찍 자려고 이렇게 먼 곳으로 온 것은 아닌데...

이건 아니다.........ㅎㅎㅎ

그래도 뭐...군소리 안하고 일찍 잤다. 일찍 자니 일찍 일어난다. 내가 쫌 싫어하는 것이 일찍 일어나는 것인데...ㅠ.ㅠ

내일은 무려 6시에 웨이크업이란다. 너무 늦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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