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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토요일. 아이발릭의 숙소를 출발하여 Taylieli 동네에 있는 올리브 농장을 방문하였다. 판매점에서 올리브 오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도 했다. 그리고 트로이를 찾았다. 아이발릭에서 트로이까지 2시간 반 거리.

이후 차낙칼레를 경유하여 부르사로 달렸다.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7시 20분. Hotel Kalif에서 바라본 에게해. 날이 훤하게 밝았다. 아이발릭은 에게해의 인기 있는 휴양 도시라 한다.

 

지붕 위의 굴뚝 구멍 부분이 시커멓다. 어떤 연료를 사용하는 것일까?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하기 위한 시설들도 눈에 보인다. 터키인들의 국기 사랑은 대단하다. 

 

7시 39분. 달린다.

 

8시 17분. Laleli 올리브 오일 쇼핑몰에 도착했다.

 

올리브 오일 판매점을 들렀다가 올리브 나무에 대해 심층 탐구하고자 부근의 Taylieli에 있는 농장을 찾았다.

동네 전체가 올리브 재배지이다. 아래 영상 속에 뿌려진 점들이 모두 올리브 나무들이다.

 

올리브 나무의 열대는 이렇게 생겼다.

 

그것으로 만든 올리브 오일. 노랗다. 그래서 올리브 오일을 문명을 낳은 황금 기름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올리브 나무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Oren 해변 부근의 작은 동네를 찾았다. Taylieli의 올리브 농장.

 

올리브에 대해 많은 것을 궁금해 하는 눈빛^^

 

수확된 올리브 열매.

 

열매에서 오일을 추출하는 기계들.

 

기계의 작동 과정을 신중하게 살펴보는 눈빛^^

 

동작중.

 

여러 차례 여러 곳에서 수상한 실적들을 자랑한다.

 

추출된 오일을 깡통으로 포장하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눈빛^^

 

올리브 나뭇가지.

 

올리브 제품 중의 하나인 비누. Laleli라는 상표를 달고 나간다. Pure Olive Oil Soap.

 

비누 제작 담당 전문가.

 

9시10분. 다시 매장으로 돌아왔다. 올리브 제품을 즐겨보자.

 

탁자에 이곳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차를 한잔 즐겨본다.

 

대화도 즐겨본다.

 

쇼핑을 즐겨본다.

 

바람도 즐겨본다. 나뭇가지가 한쪽 방향으로 쏠려 있다. 머리카락도 그러하다.

특정 방향에서 일정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강하면 이런 편향수가 나타난다.

 

올리브 매장 길건너편에 있는 Mesut Ağacık Cami 모스크. 깔끔하다. 역시나 이슬람인들의 동네.

 

12시 5분. 트로이에 도착하였다. 트로이 유적지의 모습.

GPS data logger를 차에 두고 내려 유적 내에서의 동선이 없다.ㅠㅠ

트로이 유적은 스카만드로스 강과 시모이스 강이 흐르는 평야를 내려다 보는 히살리크 언덕 위에 있다. 요새의 입지로 적당하다 하겠다. 바다와 너무 근접하면 바다를 통한 침입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데 적당히 떨어져 있어 그러한 위협에서 벗어나 있으면서도 너무 멀지 않아 바다를 통한 교역의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아주 적절하고 적당한 위치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런지 기원전 4000년 부터 인간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입장권의 앞면과 뒷면.

 

유적지로 들어가는 입구. 저게 그 목마???

 

아주 아주 아주 오래 전부터 거주지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그래서 여러 시대의 흔적들이 섞여 있다고 하는 안내 자료.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이 파헤치기 시작했는데, 무려 아홉개의 층이 구별된다고 한다. 

슐리만은 일리아드 이야기에 흠뻑 빠져서는 자수성가하여 번 돈으로 1870년에 발굴을 시작하여 1871년에 트로이 유적 발견에 성공하였다. 3년 간의 발굴 과정에서 엄청난 유물들을 발굴했고, 이것들을 독일로 가져가 박물관에 기증했는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소련이 털어갔다고 전한다.

 

 

트로이에서도 일단 공부를 하면서 시작한다.

 

발굴된 유물들.

 

성벽의 흔적.

 

발굴 흔적.

 

서로 다른 특징을 갖는 유적이 나타난다. 그래서 9개의 층으로 구분한 것이다.

 

심층 탐구.

 

선사 시대로부터의 유적 층을 일목요연하게 묘사한 안내도.

 

트로이.

 

배운 것을 바로 함께 동료 학자들과 토론하고 익힌다.

 

열심히 달린다.

 

트로이의 유적들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대규모 지진으로 뒤틀려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리아드 이야기 속의 트로이 전쟁은 지진으로 인한 성벽과 도시 파괴로 인해 끝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한 자연 재해를 그럴싸한 이야기로 포장한 것이 일리아드.

 

유적지 입구에 대충 만들어놓은 목마.

 

계단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있다. 하지만 별거 없다. 다양한 언어로 된 낙서만 가득. 물론 한글 서명도 보인다.

 

트로이에 왔었다!!!

 

그래도 트로이의 목마인데, 너무 성의없이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가싶다.

 

12시 50분. 트로이를 떠나서 달린다. 차낙칼레 항구 앞의 에게해.

 

차낙칼레의 부두에도 목마를 만들어 놓았다. 트로이의 것보다 차라리 이것이 더 나아 보인다.ㅎㅎ

 

5시 반. 부르사 인근의 Karacabey에 있는 큰 주유소를 찾았다. Bereket Döner- Gözlemeci, Tostçu라는 무슨 말인지 모를 긴 이름의 휴게소를 찾았다. 화장실 이용 협조를 받았다.

 

시원하게 고민을 해결했나보다. 신나게 뛴다. 차가 왔다 갔다 하는 곳에서 이렇게 뛰면 안되는 것이라고 나중에 이야기해주어야겠다.

 

 

오늘도 수고했다. 먹고 쉬었을 것이다.

부르사 시내에 있는 있어 보이는 숙소에 들었다. Kervansaray Termal Otel. 케르반사라이 온천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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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5일 금요일. 파묵칼레를 출발하여 에페소, 이즈미르를 거쳐 아이발릭까지 이동하였다. 중간에 쇼핑몰을 들러야 했다. 파묵칼레에서 에페소까지 두시간 반, 에페소에서 아이발릭까지는 5시간을 이동하였다. 

 

6시58분. 오늘의 일정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하는 여행객들.

 

9시 56분. 가죽 제품 쇼핑몰에 도착하였다. 원래 가서는 안되는 곳인데, 랜드 여행사에서 꼭 한번만 들러 달라고 했다고 사정을 구하더라.

 

일단 화장실부터 들렀다. 남녀 화장실 입구의 구분 그림들.

 

그리고 내부의 안내문. 한국 관광객들을 집중적으로 유치하는 쇼핑몰인갑다.

 

일단 음료를 한잔씩 돌린다.

 

그리고 선남선녀들이 등장하여 패션쇼를 펼친다.

 

손님들도 초빙하여 모델로 알바 시킨다.

 

그리고는 쇼핑 타임!

 

밖에서 서성인다. 언제들 나오나 하며 기다린다.

 

10시 47분. 에페스에 도착하였다.

 

셀주크에 도착하여 에페소를 걸어서 답사하였다. 셀주크 호텔 리조트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사도 요한의 교회를 답사하였다. 그리고 이즈미르로 달렸다. 성모 마리아의 집도 일정에는 있었으나 이동 시간 관계로 그냥 갔다.

 

 

에페스. 에페소. 에페수스. 여러가지 이름이 있다. 안내 지도. 삼성에서 도와줘 만든 것이다.

 

에페스 유적 답사 경로. 남문 주차장에서 입장하여 북문 주차장으로 나왔다.

 

입구에서 안내자의 설명을 경청하는 중.

이때 사진 찍는다고 얼마나 대충 돌아다녔는지 이제 알겠다. 사진 속에 안내판이 한글로 되어 있다. 이때는 이런 것을 보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저 게시판을 왜 안찍어왔는지 후회만 하고 있다. 할 수 없다. 다시 가자!

 

누구 맘대로!!!

 

기둥 흔적들.

 

극장에 앉아서 공연을 기다리는 척 해본다.

 

로도스식 열주.

 

에페스의 장난꾸러기.

 

헤라클레스의 문.

 

에페스의 냥이.

 

저 아래로 유명한 셀수스 도서관 유적이 보인다.

 

에페스의 애기들.

 

에페스 온 여행객들.

 

크레타 거리.

 

폼.

 

하드리아누스의 문.

 

도로 바닥을 타일로 장식하여 놓았다.

 

하드리아누스 신전을 바라보는 답사객들.

 

셀수스 도서관이 유명하다 하니 그 앞에서 한 컷 남겨본다.

셀수스 도서관은 135년에 통치자였던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인 아퀼라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트라야누스의 샘.

 

대극장의 무대 부분의 훼손 상태가 심각하다.

 

원형 대극장. 엄청 크다. 2만5천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진짜 가짜 시계를 판매하는 기념품점.

 

 

12시 30분. 셀주크 호텔 리조트의 식당에 앉았다. 식사를 기다린다.

 

 

1시 30분. 사도 요한의 교회에 도착하여 입장한다.

사도 요한과 마리아가 살던 곳이며, 사도 요한이 복음서를 기술하고 생을 마감한 무덤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언덕 위로 아야술룩 성채(Ayasuluk Citadel)가 보인다.

 

안내자의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

 

 

득도의 길을 찾아서...

 

 

함께 한 컷.

 

파손 상태가 심각하며 발굴과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파괴되기 이전인 6세기의 모습이라고 한다. 이런 외관을 되찾을 수 있을까?

 

2시. 셀주크를 이제 떠난다.  다섯 시간을 달려가 아이발릭에서 쉴 것이다.

 

 

4시 12분. 알리아가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보이는 바다. 이즈미르는 진작에 지나쳤다.

 

4시 반. Mola Dinlenme Tesisi에서 잠시 쉬었다. 화장실 때문일 것이다.

터키에서는 도로변에 있는 휴게소를 Dinlenme Tesisi라고 한다. Mola는 휴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까 휴식 휴게소인 것이다.

 

5시 반. 해가 넘어가나보다.

 

5시58분. 도착했다. 

숙소는 아이발릭의 남쪽 해변에 위치한 칼리프 호텔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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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4일 목요일이다.

안탈리아의 숙소에서 출발하여 안탈리아 구시가지를 답사하였다. 그리고 파묵칼레로 달렸다. 4시간 이동.

 

기원전 150년에 팜필리아 해안에 도시를 세운 페르가멘 왕국의 Attalos 2세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Attaleria라고 이름 붙였다. 페르가멘 왕국이 로마 제국의 지배 하에 들어간 이후 히드리안 황제가 이곳을 방문하였다. 1207년 셀주크 투르크의 지배하게 되면서 도시 이름이 Adalya로 바뀌었다. 오스만 투르크를 거쳐 터키 공화국의 지배하에 들면서 항구 도시로서의 가치가 커졌다. 1990년 인구 조사에서 도시 인구가 백만 명을 넘은 것으로 나온다.

 

숙소인 나자르 비치 호텔은 안탈리아 시가지의 동쪽 끝부분에 해당한다. 서쪽으로 달려 시내로 진입하였다.

 

지중해의 해적들을 막기 위한 성벽으로 둘러싸였던 작은 항구의 구시가지는 Old City Marina라고 하지만, 과거의 이름을 따라서 칼레이치 항구라고도 부른다. 항구 주변으로 구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이블리 미나레에서부터 하드리아누스의 문까지 걸어서 구시가지를 답사하였다.

 

6시 반. 식전 산책.

 

7시 반. 지중해의 아침 햇님.

 

해안 절벽 위에 도시가 조성되어 있다.

 

하룻밤 신세진 나자르 비치 호텔을 나선다.

 

8시 26분. 구시가지로 가는 길가의 근사한 H. Mehmet Çiçek Cami 모스크.

 

8시 40분. 공화국 광장에 도착하였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조형물.

멀리 이블리 미나레가 보인다.

 

13세기 셀주크 투르크의 술탄인  Alaeddin Keykubat에 의해 세워졌다. 높이가 38m에 이르며, 많이 낡았지만 푸른 타일로 만든 탑의 정면이 아름다워 안탈리아의 상징물처럼 되었다. 

이블리 미나레 뒷편으로 이블리미나레 모스크가 보인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조형물 주변에서 아침 햇살과 이블리 미나레와 안탈리아의 공기를 즐기고 있는 일행들.

 

이블리 미나레. 미나레는 모스크에 딸린 부속 건물인 첨탑을 가리킨다.

 

터키 학생과 학국 학생의 조우. 오고 가는 미소.^^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아치를 지나면 항구 주변으로 구시가지가 펼쳐진다.

 

옛날 항구. 구시가지를 칼레이치라고 하기에 항구도 그냥 칼레이치(Kaleiçi) 항구라고 알려져 있다.

 

항구 방어를 위한 성벽.

 

항구에 정박된 배들.

 

항구를 찾은 여행객.

 

항구를 찾은 연애객.

 

항구 주변의 성벽 위로 보이는 시가지. 멀리 이블리 미나레도 보인다.

 

구시가지의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옛 건축 양식의 집들이 많이 보인다.

 

9시 22분. 카라알리올루 공원(Karaalioğlu Parkı)에 도착하였다.

 

멀리 만의 건너편으로 Bey Dağlari Hill이 보인다.

 

흐드를륵 탑(Hidirlik Tower)을 배경으로 한 컷.

Hidirlik Tower는 항구 방어를 위해 기원전 2세기에 세워진 5.5m 높이의 요새이다.

 

공원을 떠나 히드리아누스의 문 방향의 골목길을 걷는다. 멀리 케식 미나레가 보인다.

 

케식 미나레.

 

2세기에 세워질 때는 신전이었으나 6세기에 망가져 성당으로 바뀌었다. 7세기 아랍 침입 때 파괴되었다가 9세기에 복구되었다. 셀주크 투르크 시절에 모스크로 개조되었다가 1361년에 키프러스 왕 피터가 점령하면서 교회로 바꾸었다. 베야지드 술탄의 아들이 되찾아 다시 모스크가 되었다. 그러다가 1896년 대화재로 폭삭 망가졌다. 그래서 끊긴 미나레라고 불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래 판떼기에 대충 적혀 있다.

 

9시 55분. 하드리아누스의 문 앞에 도착했다. 

 

130년 경 안틸리아를 방문한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문으로 네 개의 기둥 사이에 세 개의 아치가 연결되어 있다.

 

130년부터 그대로 지금 모양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1959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10시. 차량에 탑승하여 안탈리아를 떠난다. 파묵칼레까지 4시간 거리.

 

12시 25분. 멀리 산을 깍아내는 모습이 보인다. 대리석 채석장이다. Karamanlı / Burdur.

 

대리석 가공 공장.

 

1시 22분. Salda 호수에 도착하였다.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면 힐링하고 간다.

 

아이들은 거침이 없다. 아... 조심 조심 적시고 있다. 물이 참 맑다.

 

힐링했으니까 이제 간다.

 

1시 49분. Sahil Mola Dinlenme Tesisleri. Dinlenme Tesisleri가 휴게소라는 뜻이더라.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지 않았을까?

 

3시 21분. 휴게소.

 

 

3시 38분. 파묵칼레가 보인다.

 

언덕을 따라 흘러내리던 석회 성분을 포함한 물이 단구면을 형성한 것이다. 윗쪽을 보려면 옆으로 돌아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그 윗쪽에 히에라폴리스가 있다.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190년 페르가몬 왕조의 유메네스 2세에 의해 만들어져 로마 시대 온천으로 2, 3세기에 번영했던 곳이다.

 

히에라폴리스로 입장한다.

 

 

성벽을 지난다.

 

세계 유산 이정표. 오른쪽으로 가면 이런 이런 것들이 있고, 왼쪽으로 가면 이런 이런 것들이 있다.

 

그 때 그시절의 수로.

 

멀리 원형 극장이 보인다.

 

멀리 보이는 고고학박물관.

 

원형 극장을 먼저 가본다.

 

기념 사진을 남기고 간다.

 

가이드 분들이 애기들한테 특별 과외 교육을 하고 있다.

 

원형극장. 중간 아랫 부분은 보수가 필요한 것 같다. 출입 통제.

 

학생들이 모였다. 수업이 시작된다.

 

수업 끝난 기념으로 한 컷.

 

오늘도 햇님은 수고 많았다. 넘어가신다.

 

목화성. 목면의 성. 파묵칼레.

 

세계 유산으로 등록된 파묵칼레의 석회화 단구는 캄슘과 중탄산염이 함유된 온천수가 수세기에 걸쳐 흘러내리면서 계단식의 단구를 형성한 것이다. 계단을 구성한 재료의 모양이 마치 솜을 쌓아 놓은 것 같은 형상이라 하여 목화의 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현재는 과도한 개발로 온천수가 줄어들어 단구 모양만 유지하고 있다.

 

온천이었단다. 벗고 걸어보자.

 

다같이 걸어보자.

 

구경해보자.

 

과거에는 물이 철철 넘치면서 내려가는 모습이 장관이었 것이다.

 

저 멀리 아랫쪽까지 내려간 사람들도 보인다.

 

파묵칼레 시가지의 모습.

 

언제 다시오랴. 이리보고.

 

다시 저리본다.

 

찍습니다~~~

 

눈 내린 벌판을 걷는 연인들 같이 보이는 사진.

 

온천물이라 그런지 김이 나는 것이 보인다.

 

6시 9분. 온천욕을 마치고 숙소로 걸어가는 길.

 

가게.

 

김.

 

히에라폴리스 온천 호텔.

 

시우가 많이 피곤한가보다. 옆의 둘은 닌텐도에 빠져 있다.

 

수고한 하루. 먹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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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 콘야에서 출발하여 토로스 산맥을 넘어 안탈리아로 달렸다. 이동에만 6시간이 걸리는 장거리였다. 중간에 토로스 산맥 속에 숨겨진 작은 마을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로마 시대의 유적으로 남아 있는 아스펜도스 극장을 거쳐 안탈리아로 들어갔다.

 

숙소에서 출발하기 전에 주변 산책을 했다.

콘야의 명소인 메블라나 박물관을 방문한 후 안탈리아로 이동하였다.

 

Özkaymak Konya Otel. 4성급 호텔이다.

 

길 건너에 있는 아드난 멘데레스 모스크. 1950년대 터키를 이끈 제9대 총리인 아드난 멘데레스의 이름을 딴 모스크이다. 아드난 멘데레스 총리는 한국전쟁 발발시 한국전 참전을 결정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한 인물이다. 터키는 유엔 참전국중 병력 규모가 4위에 이를 정도로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 감사~

 

주변 거리.

 

이른 아침. 상가는 잠들어 있다.

 

8시 반. 버스에 일행의 짐이 채워지고 있다.

 

시내를 달리는 전차.

 

 

8시 54분. 도착하였다.

 

메블라나 박물관에.

 

입장권 앞면과 뒷면.

들어왔다. 메블라나 박물관에.

 

설명을 듣고 있다. 메블라나 박물관에 대하여.

 

구경을 하고 있다. 메블라나 박물관을.

 

사진을 남겼다. 메블라나 박물관에서.

 

문에 이렇게 커다란 양탄자를 걸어놓았다. 태피스트리? 양탄자는 바닥에 깔거나 벽에 걸거나 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라 한다.

 

콘야의 명소. 메블라나 박물관.

 

메블라나 박물관의 길 건너편에는 대규모의 공원 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10시 30분. 토로스 산맥을 향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아드님은 오늘도 닌텐도를 탐구하고 계신다.

 

10시 44분.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토로스 산맥. 

토로스 산맥은 터키 남쪽 지중해 연안을 따라 동서로 뻗은 산맥으로 길이가 800km에 이른다. 에르지예스 산(3,916m)이 최고봉이며, 이외에도 많은 고봉을 포함하고 있다.

 

11시10분. 고속 도로 주변에 넓은 공간이 보여서 잠시 정차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토로스 산맥의 정기를 느껴본다.

 

카파도키아 지방과 지중해 연안 지방의 통로가 지나는 고개이다. 토로스 산맥을 넘는 화물차. 짐이 잔뜩 실려 있다.

 

11시27분. 지중해 연안으로 가면서 기온이 높아지는 것이 보인다.

앙카라 일대의 아나톨리아 고원은 눈으로 덮여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고산 지대에만 눈이 남아 있다.

 

12시15분. 토로스 산맥 속에 숨어 있는 작은 산간 마을을 찾았다. Bucakalan.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식당으로 이용하는 집을 찾았다. 간판은 없다. 

 

나름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저택이다. 그냥 동네 유지의 저택 정도가 아닐까 한다.

목조 가옥. 아기자기 하니 예쁘게 보인다.

 

마당의 식탁들에 식탁보가 깔린다.

 

숯불위에서 고기가 익는다.

 

이 마을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들이 주욱 차려진다.

 

와인도 대기하고 있다.

 

앉아서 먹는다.

 

2층에 올라가 놀던 아이들이 엽총을 발견했다.

푸쳐 핸즈업!

쏘지마~~~

 

신나게 웃는다.

 

커다란 통나무로 만든 구유. 코카콜라 캔이 담겨 있다.

 

물통? 셀프?

 

대문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12시 57분. 잘 먹고 나선다.

 

동네 구경.

 

저장고 위에 올라선 아이들.

 

관광객들이  찾는 마을이다. 기념품 상가. 단체 관광객이 들어오면 개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네 묘지.

 

널린 돌. 돌이 흔한 산간 마을이다. 흔히 널린 돌을 이용해 담을 쌓았다.

 

길가 한쪽에서 두 분이 난을 만들어 익히고 있었다. 하나 둘 모여들어 구경한다.

 

이렇게 이렇게 해가지고 저렇게 저렇게 해서는 불판 위에서 익힌다. 난은 만드는데 쌀밥에 비해 물을 많이 필요로 하지도 않으며 익히는데 연료를 많이 필요로 하지도 않아 건조 지역에 적합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관심있게 쳐다보니 이걸 또 사장님이 사주더라. 맛있었다.^^

 

 

이슬람의 나라. 모스크가 있다. 옛날에는 저 첨탑 미나렛의 위에 사람이 올라가 직접 아잔을 행했다 하던데.. 아, 하루 다섯번의 예배 시간을 알리려 외치는 소리를 아잔이라 한다. 지금은 스피커를 장치하여 해결하고 있다. 세상 편해졌다.

 

독특한 형태의 뽐뿌.

 

독특한 형태의 지붕. 지붕의 경사가 급하지는 않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지는 않는가보다.

 

1시 43분. 다시 토로스 산맥 속을 달린다.

 

3시. 왔노라.

 

아스펜도스 입장권. 앞면과 뒷면.

 

보았노라.

 

소리쳤노라. 

아스펜도스 극장은 로마식 원형 극장으로 최대 1만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석회암과 대리석, 적색 사암 등의 암석을 사용하여 건축되었는데, 음향 설계가 잘 되어 무대 위에서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를 객석에서 들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무대 쪽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하면서 그 울림 소리를 즐긴다.

아스펜도스 극장은 터키에서 가장 잘 보전된 고대 극장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왔으니 찍었노라.

 

계단을 내려갈 때는 조심 조심.

 

4시25분. 안탈리아에 접어들었다. 대규모의 온실들이 눈에 띄었다. 지중해식 농업의 확장판일까? 겨울의 원예 농업.

 

4시 45분. 숙소에 도착하였다. Nazar Beach Hotel.

 

해가 넘어간다.

 

지중해를 만났다.

 

일찍 도착하여 식사를 하고 잤다.

아니 또 뭔가 했나? 터키탕 체험을 안탈리아에서 한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ㅠ.ㅠ

 

찾았다.

터키탕 Lara Hamam의 명함을 찾았다.

사우나 실에서 먼저 땀을 빼고 욕실로 들어갔다. 사우나 실에 앉아 있으려니 터키 아저씨들이 신기해 했다. 욕실 내부에서 맛사지를 해주는 코스가 있는데, 미리 요금을 내고 입장하며 요금을 낸 사람만 맛사지를 받는데, 그 과정에서 조금 거시기한 이벤트가 있었던 것이 살살 기억날 듯 말 듯....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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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의 일정이다. 괴뢰메에서 화산재 퇴적층이 침식 작용을 받으면서 형성한 독특한 지형들을 답사하였다.

데린쿠유로 이동하여 기독교 박해를 피해 숨어지내던 지하도시를 답사하였다.

그리고 콘야로 달렸다. 이동 시간은 약 3시간. 휴게소에서 한번 정차하였다.

 

 

괴뢰메에서의 일정이다.

동굴호텔을 출발하여 괴뢰메 야외박물관을 먼저 방문하였다. 그리고 승마장에 가서 터키의 목장을 탐방하고 터키 커피를 맛보았다. 썼다. 이후 젤베 계곡을 들렀다. 전망대에서 괴뢰메를 조망하였다. 우치사르, 비둘기 계곡을 살피고, 예멘 레스토랑에서 항아리 케밥을 맛보았다.

그리고 데린쿠유로 달렸다.

 

Legend Cave Hotel. 우리가 묵었던 전설 동굴 호텔이다. 괴뢰메에는 이런 동굴 호텔이 여럿 있다. 그중의 하나.

 

화산 쇄설성 퇴적암에 구멍을 뚫어 생활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카파도키아 지방은 응회암의 풍화,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진 버섯 모양의 독특한 기암 괴석이 즐비하며, 그것을 삶의 터전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비롭다. 다른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경관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부근에 위치한 예르지예스 산(3917m)의 화산 활동으로 분출된 쇄설물들로 퇴적되어 형성된 응회암은 암석이기는 하지만 쉽게 깍아낼 수 있어 일찍부터 거주지로 이용되었다. 돌 속에 만들어진 집은 여름에는 더위로부터, 겨울에는 추위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거주지 외에도 교회, 지성소, 사원들도 만들게 된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카파도키아 지방 전체적으로 보면 600개가 넘는 동굴 교회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들 교회를 장식하고 있는 회화들은 비잔틴 예술의 보고라고 인정받고 있다.

 

 

괴레메 시내 쪽이 멀리 보인다. 아침 햇살로 덮이고 있다.

 

일반인들의 거주지와는 달리 호텔은 예쁘게(?) 장식도 해놓았다.

 

8시40분. 리셉션 로비 앞을 지나는 우리 일행들.

 

거주하다가 무너지면 다른 곳을 또 파내면 된다. 주택 부족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동네라고나 할까??

 

멀리 모스크의 미나렛이 보인다.

 

야외박물관을 향해 이동하였다. 차창 밖으로 멀리 열기구가 떠 있는 것이 보인다. 

지난 밤에 열기구 옵션을 신청할 사람을 확인했었는데, 비용으로 지불할 딸라가 없어서 신청을 못했다. 350딸라 쯤 했었던 것 같은데...

몇몇 분들은 신청했던 것 같다. 그 분들은 저런 열기구를 타고 카파도키아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열기구 명소 중의 하나가 이 동네이니... 떠 있는 것을 보니 부럽다. 나도 딸라를 모아서 다음에는 저런 기구 체험을 꼭 해보리라 다짐을 하였다.ㅎㅎ

 

9시 7분.  괴레메 Open Air Museum에 도착하였다. 

 

생수를 챙겼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아드님.

 

기념 사진.

 

줄서서 한 명씩 손잡이를 돌리며 입장한다.

 

입장할 때는 입장권을 대주어야 들어올 수 있다. 입장권의 앞면과 뒷면.

 

안내 지도. 절벽을 따라 여러 예배당 등의 시설이 흩어져 있다.

 

동굴 교회 내부의 성화. 훼손된 흔적이 보인다.

이곳 교회들 대부분은 9세기 경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1세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교회의 벽면은 대부분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주제로 한 성화로 장식되어 있다.

 

화산 쇄설성 퇴적암인 응회암으로 구성된 절벽에 구멍이 뽕뽕 뚫려 있다. 그 안에 수 백년 전에 만들어진 여러 교회가 남아 있다.

 

여러 나라말 안내판. 한국어는 없다. 새롭게 생겼는지 달려가서 확인하고 싶다.

 

객들이 많다.

 

돌을 깍아내 이런 의자와 탁자도 만들었다.

 

안전하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철제 계단을 설치했다. 동굴 교회 내부에서는 흡연 및 사진 촬영 금지.

 

오래 전에 만들었던 둥굴 생활 공간. 지금은 버려진 것 같다.

 

10시 10분. 여행지에 왔으면 기념품 상가를 꼭 지나가야 한다. 늘 그렇게 동선이 배치되어 있더라. 에페스 맥주 맛있다.

 

10시 29분. 동굴에서의 생활은 옛날 이야기고 오늘날 사람들은 현대적인 거주 공간에서 생활한다.^^

 

10시 41분. 승마장.

 

일단 겨우살이가 반겨준다.

 

겨울의 터키 카파도키아 지방의 추위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동네를 걸어본다. 춥다.

 

온통 얼음 천지.

 

주인장과의 대화.

 

말들과의 대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고양이들과의 대화. 냥이~~

 

그림과의 대화. 동굴 거주지, 교회 등의 특색을 한 폭의 그림에 아주 잘 녹여내어 표현하고 있다.

 

난로와의 대화. 불이 약하군~

 

커피와의 대화. 쓰군~

 

개와의 대화. 졸립군~

 

11시40분. 악할-테케 카페를 떠난다.

 

11시 47분. 젤베 계곡으로 들어선다.

 

버섯 모양 바위들이 즐비하다. 

 

좁고 긴 골짜기 안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붕괴 위험이 커서 1950년에 거주민들을 모두 철수시켰다고 한다.

 

도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계곡 안쪽을 조망하였다.

한 때는 많은 사람들의 생활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자연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무너져 내린 흔적들이 보인다.

 

12시3분. 젤베 계곡을 떠나 괴레메 방면으로 이동중. 풍화 및 침식 상태를 잘 볼 수 있다.

 

 

12시8분. 파노라마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전망 좋은 집. '오스만 대장'. 이곳에도 국기가 펄럭입니다~

 

카파도키아 지방의 특징을 가장 잘 살필 수 있는 전망대이다. 버섯 모양 바위들이 즐비하다. 좌악 깔려 있다.

 

계곡을 배경으로 한 컷 남겨본다.

 

바람이 차다. 

 

일정을 함께 했던 애기들.

 

계곡의 아랫쪽으로 마을의 모습이 멀리 보인다. 

 

 

12시30분. 우치사르.

 

과거의 거주 공간. 동굴 동네. 그곳의 애기.

 

관광객들이 찾는 곳. 그들을 맞이하는 공간들.

 

12시 44분. 예멘 식당에 도착하였다.

 

이곳의 독특한 요리. 항아리 케밥을 맞볼 수 있다. 당수도의 기법으로 뚜껑을 딴다.

 

항아리 안에 요리 재료를 넣고 밀봉해서 익힌 것이다.

 

오우야~~~

 

꺼낸 케밥을 손님 접시로 배달한다. 플레이팅~

 

식당이 위치한 곳이 바로 비둘기 계곡이다. 구멍을 크게 만들어 사람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았고, 작은 구멍으로는 비둘기들이 찾아들었다. 이곳에 거주하던 기독교인들은 비둘기 알을 가져다가 성화를 그리기 위한 염료의 재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2시10분. 기독교 박해를 피해 숨어지내던 사람들의 공간, 지하도시를 찾았다. 데린쿠유.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지 좀 썰렁하다. 카페인듯. 담배에 불 붙이는 아저씨.

 

아저씨들이 담배 피면서 쳐다본다.

 

입장권이다. 스캔.

 

입구로 들어간다. 언더 월드에 온 여러분을 환영~

 

열심히 터키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 요원과 조무래기들.

 

응회암에 구멍을 뚫어 만든 동굴 생활 공간으로 유명한 것이 카파도키아이다. 그 동굴 생활 공간의 극을 찍은 것이 데린구유일 것이다. 최대 3만 명 정도까지 수용 가능했던 공간이다. 최초 건설 시기에 대한 자료는 없으나 히타이트 시대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들어와 살면서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면서 이만한 규모가 된 것이다. 내부에 교회, 교육기관, 와인 저장고 등 일상 생활에 필요한 모든 공간을 만들어 거대한 지하 도시를 이룬 것이다. 크고 작은 규모를 갖고 있는 40여 개의 거주지가 발굴되었으나 소수만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그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데린쿠유이다. '깊은 우물'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1965년부터 일반에게 공개하였으나 전체의 10%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데린쿠유는 총 깊이가 55m에 달하며 8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의 환기 장치가 아직도 작동하고 있어 별다른 시설을 추가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곳을 지금 우리가 들어간다.

 

열심히 설명하고, 열심히 듣는다.

 

응회암은 침식이 작되기 때문에 표면의 부스러기가 잘 떨어진다. 조명을 위한 전기 시설이 보인다.

 

지하 도시 밖으로 지상 도시의 현지인과 대화를 시도한다.

메르하바~ 벤 코레덴 벨리요룸~ 카치 야슨다스느즈?

그리고 데린쿠유를 떠났다. 악사라이를 지나 달렸다.

 

4시26분. 야플칸라르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콘야로 계속 이동하였다. 데린쿠유에서 콘야까지 이동시간 3시간.

 

 

콘야에 도착하였다. 이고니온이라 불렸던 콘야는 11세기 셀주크 투르크의 수도였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52만 명의 주민이 거주할 정도의 대도시이다. 셀주크 투르크의 수도로 정해지면서 빠르게 성장하였다. 많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이때 몰려들었으며 지금 남아 있는 역사적인 경관들은 이 당시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메블라나 박물관과 마나레 신학교가 유명하다. 이슬람의 신비주의 종파 메블라나의 영향력이 큰 도시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도록 스카프를 써야 했으나 오늘날에는 많은 관광객의 유입에 따라 개방되어 있다.

원래 일정에는 없었으나 메블라나 동네에 와서 메블라나를 보지않으면 안된다는 의견을 누군가 냈고, 지오트립 사장님이 비용을 전담하여 전문가들을 초빙했다. 원래 숙소에는 공연이 가능한 공간이 없어 다른 호텔로 이동하여 의식을 볼 수 있었다.

메블라나는 13세기 이슬람 민중 철학자 젤랄레딘 루미가 콘야에서 창시한 종파이다. 

 

메블라나 수행자들의 수련 의식은 "세마"라고 한다. 시작하겠습니다~~~~

 

세마진(메블라나 수행자)의 흰색 의상은 시신을 싸는 천, 검은 망토는 묘지 혹은 죽음, 머리에 쓴 모자는 비석을 의미한다.

꾸란을 낭송한 후 춤이 시작되면 세마진은 머리를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인채 양팔을 어깨 위로 들어올려 음악에 맞추어 끝없이 회전한다.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공연장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이동한다.

 

오른손은 하늘로 왼손은 땅바닥을 향하고 있다. 알라로부터 받은 은총을 민중에게 전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계속 회전하는데 누구도 흔들지 않고 쓰러지지도 않는다.

 

끝없이 회전하는 세마 수도자들은 음악이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점점 몰아의 경지로 향한다. '접신'의 순간 수도자들은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신과의 일체감에 도취된다고 한다.

메블라나 종파는 이슬람 수피즘(신과 합일하는 체험을 추구하는 신비주의 종파)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13세기에 경전 중심의 종교를 무슬림 개인 중심의 종교로 이슬람의 종교관을 확장한 메블라나 종파의 창시자 루미의 시도도 놀아웠고 그 당시 그러한 시도가 받아들여졌다는 것도 놀랍다. '이단'이라며 박해를 했을 법도 한데...

 

"세마"라고 하는 독특한 종교 행사를 체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오트립'이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마운 사람들~

숙소에 돌아와 모두들 꿈 속에서 신과 합일되는 체험을 했을 것이다. 이이 게제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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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21일. 터키에서 샤프란볼루를 떠났다. 앙카라를 살피고 카파도키아의 괴뢰메로 달렸다. 샤프란볼루에서 앙카라 사이의 GPS 로그 기록이 이상하다. 붕 떴다. 어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터키의 민속촌, 터키의 민속 마을 샤프란볼루를 떠나기 전에 추억의 흔적을 남긴다.

 

7시. 샤프란볼루를 떠났다... 앙카라까지 3시간 반 예정.

 

터키의 1월은 눈과 함께 한다.

 

작은 골짜기를 끼고 작은 마을이 들어서 있다.

 

터키 관광버스는 터키 국기를 상시 달고 다닌다.

 

안개 낀 하늘.

 

길가 마을의 모스크.

 

터키 국민의 98%가 이슬람 교도이다. 도처에 모스크가 있을 수 밖에 없다.

 

9시 반. 휴게소에 들렀다. 역시 나뭇가지에 상고대가 달라붙어 있다.

 

"담배 꽁초 버리지 마시오."

변기 높이가 재밌게 배열되어 있어 남긴 사진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면서 점점 낮아진다. 키 맞춤 소변기.

 

터키의 1월은 매우 쌀쌀하다. 상고대와 함께 한다.

 

9시47분. 달리는 버스 안에서 우리 어린이들은 바쁘다. 닌텐도 기량 겨룸.

 

10시 25분. 앙카라 시내의 한국공원에 도착하였다.

 

중앙 아나톨리아 지방에 위치한 터키의 수도 앙카라를 방문하였다.

터키군의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방문하여 묵념을 하고, 율리아누스 대제 기둥을 본 후 히타이이트 박물관으로 들렀다.

점심을 찍고 터키의 아버지라 하는 아타튀르크 묘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카파도키아 지방의 괴뢰메로 향했다.

 

한국공원에는 한국참전토이기기념탑이 있다.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한국을 도와준 터키 병사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탑이다.

 

서울과 앙카라라 자매 결연을 맺으면서 추진되어 1973년 10월 29일에 완공되었다.

 

몇 년 전에 터키군의 한국전쟁 참전을 그린 영화 "아일라"를 보았었다. '달무리'를 뜻하는 단어였던가.. 한국전쟁 중 터키 군인에 의해 구조되어 그에 의해 키워지다가 귀국하면서 헤어졌다가 60년 만에 만난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였다. 한국과 터키 합작 영화라 하는데, 터키에서는 대박 났지만 한국에서의 흥행은 완전 .... 흥행은 아쉬웠지만 내용은 괜찮았다. 

그렇게 한국을 도와준 많은 터키 젊은이들을 기리는 조형물이다.

전쟁이 끝난 이후 그들의 유해를 이장하지 않았다. 보통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 전쟁 중 희생된 장병의 유해를 발굴하면 본국으로 옮기지만 이슬람 율법에 의하면 한번 묻힌 시신은 옮길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전쟁 중 희생된 이들의 유해는 모두 본국으로 이장되었지만 이슬람 교도인 터키 군인들의 유해는 부산의 UN기념공원에 안치되어 있고, 묘지의 흙만을 옮겨왔다고 한다. 

 

그리고 벽면에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코레 파르크. 한국 공원.

 

10시45분. 아타튀르크 대로에 도착했다. 

근대국가 터키의 모든 것을 만들어낸 인물, 그래서 터키의 아버지라 추앙받고 있는 아타튀르크의 동상이 근사하게 자리잡고 있다.

 

10시 52분. 아타튀르크 동상 부근에 앙카라 대학교 사회과학 대학이 있고, 그 옆에 율리아누스 대제의 기둥이 서 있다.

기단에 누군가 낙서를...

로마제국의 황제인 율리아누스가 앙카라(안타키아, 안티옥 등의 이름으로 불리웠다.)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기둥이라 한다.

기둥이 있는 곳은 뷰맷 광장이라 한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곳이라 그런지 필름을 판매하는 키오스크가 서 있다.

 

11시 10분.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히타이트 박물관이라고 한다.

 

 

입장권이다. 앞면과 뒷면의 모습.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은 히타이트 문화상을 한 눈에 보여주는 수집품들로 인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귀여운 안내원들이 밖에 나와 있다.

 

장난치는 안내원들.

 

사진 촬영이 자유롭다. 사진 촬영을 아예 못하게 하거나 유료로 하는 박물관은 참 많이 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여유로운 박물관은 처음이었다. 다양한 전시품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컬랙션을 갖고 있는 박물관이 15세기 이래 바자르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인생은 책과 함께..

 

고예술을 보는 안목을 키워보자!!!

 

 

1시 20분. Gar Restoran. 채우면서 비우다.

블로그를 보던 친구님 가라사데, "넌 어째 여행기에 음식 사진이 하나도 없냐?"라고 타박을 하길래 식사 사진을 하나 찾아냈다. 일행의 뱃속은 채워지고 식탁은 비워졌다. 메뉴가 뭐였지?

 

출발 준비를 하는 어린 일행들.

 

1시 10분. 터키의 아버지, 아타튀르크의 묘에 도착하였다.

 

터키 공화국 건국의 아버지 케말 아타튀르크. 1938년 이스탄불 돌마바체 궁전의 집무실에서 57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기리기 위해 1944년부터 10년에 걸쳐 건축되었다고 한다.

케말 파샤로도 널리 알려진 케말 아타튀르크는 그야말로 근대 터키의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터키 수도를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옮겨 중부 내륙 지방 발전의 기초를 잡았고, 아라비아 문자에서 알파벳으로 표기규정을 변경하였다. 성(姓)이 없던 터키인들에게 성을 갖도록 했다. 오스만 튀르크의 전제 왕정과 싸웠으며, 터키의 독립을 이루어냈다. 1923년 터키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 이슬람교 국교를 폐지하고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으며, 여성의 차도로 착용도 금지하는 개혁을 펼치는 등 오늘날 터키의 기초를 닦아 놓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도 그를 국부로 기리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아타튀르크도 터키의 아버지란 의미이다.

 

묘.

 

겨울이라 그런가 매우 쓸쓸해 보인다. 여름에 한 번 가볼까?

 

2시 아타튀르크 묘를 뒤로 한다. 앙카라 시내에도 아파트 건설 붐이 일고 있는 것 같았다.

 

들에 깔린 상고대. 앙카라에서 괴레메까지 4시간 여정이다. 멀다.

 

다시 보고 싶다.

 

도착하였다.

 

Tuz Gölü에 도착하였다.  

 

"소금 호수"란 뜻을 갖고 있다.

 

Tuz Gölü는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큰 호수이다.

 

건기에 해당하는 봄과 여름에는 강한 햇살에 호수의 물이 증발하여 소금밭을 잘 보여준다고 한다. 하지만 가을과 겨울의 우기에 접어들면 강수로 인해 호수에 다시 물이 고이게 된다.

 

호수가의 발자국에 소금이 채워졌다.

 

호수의 가장자리를 따라 물결 자국이 소금으로 남았다.

 

인증 사진을 남기려 했더니 햇살이 역광으로 터져 나온다.

 

4시에 소금호수를 떠났다.

 

4시50분. 악사라이를 지나는데 햇님께서 오늘은 그만 쉬시고 싶다고 하신다.

 

5시5분. 달을 잡았다. 엥?

 

까마귀 봐라~ 엄청 많다. 퇴근하는가 보다.

 

괴레메에서 문화 체험을 하였다. 밸리 댄스 공연. 무려 2시간 예정이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기다리다가 공연장의 예약 시간에 맞추어 이동하였다.

 

코 큰 아저씨.

 

식사를 마치고 바로 공연이 이루어진다. 여러 팀이 동굴 안쪽에 각자 독립적인 자리를 잡고 있을 수 있다.

 

여러 명의 대원들이 비슷하지만 다른 공연들을 계속 선보인다.

 

브랫 피트?

 

터키어를 알면 공연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관객이라고 앉아서 계속 쉴 수 없다. 같이 일해야(?) 한다.

 

같이 공연이 참여한다.

 

9시 22분. 열심히 마시고 공연을 즐기는 관객.

 

9시31분. 힘들어 하는 관객.

 

9시 34분. 나가 떨어진 관객.

 

나가 떨어진 관객이 있어도 공연은 계속 된다.

 

춤과 노래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단 터키어를 알아들 수 없는 것이 사소한 문제이다.

 

알아들을 수 없으면 그냥 같이 함께 하면 된다.

 

남자들의 힘찬 땐스.

 

여자들의 멋진 땐스.

 

밸리 땐스.

 

밸리 땐스 왕대장.

 

오늘 밤은 그대와 함께........

 

드루와, 드루와...

 

마무으리 땐스......

10시 40분에 공연이 끝났다. 모두들 힘들었을 듯. 모두모두 수고해쓰요~

 

10시45분. 귀가 버스에 탑승한다.

 

11시10분. 숙소에 도착하였다. 

괴뢰메의 유명한 동굴 호텔이다. 편안함? 안락함? 그런 것 없다. 그냥 동굴 속에서 잠들어 보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색다른 경험.

그런데 경험의 기억이 없다. 기억에 남는 것은 술을 엄청 무리하게 마셨다는 것이다. 기억의 블랙 아웃. 깜깜할 때 들어갔다가 깨우길래 나왔다. 뭐했지?

할 수 없다. 다시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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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에 터키를 다녀왔었다.

12년이 지난 2020년 8월에 그 기억을 끄집어내 본다. ㅎㅎㅎ

 

2008년 1월19일 밤 늦게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잠을 잤다. 그리고 새벽 같이 일어나 샤프란볼루로 이동했다. 그리고 돌아 돌아 돌아서 다시 이스탄불에 도착해 이틀을 지내고 귀국하였다.

 

1월19일에 이스탄불에 도착하였다. 하룻밤을 쉬고 다음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통마을 샤프란볼루를 찾았다. 먼거리를 이동하기 때문에 일찍 출발하였다. 해도 뜨기 전에... 6시 반에 출발. 샤프란볼루까지는 6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이스탄불을 떠나면서 GPS logger의 전원을 켜는 것을 잊었었다.ㅠ.ㅠ 중간에 생각났다. 이런... GPS 이동 경로를 보면 이스탄불에서 한참 떨어져서부터 시작한다.

워낙 장거리를 이동하였기 때문에 휴게소에 두번 정차하였다. 그리고 샤프란볼로 속으로 빠져들었다.

 

19일 늦은 시간에 이스탄불에 도착하였다. 12시 쯤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거리의 장시간 비행기 이동이었기에 모두 피곤했다. 늦은 시간 현지에 도착하여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바로 일정을 시작한다.

 

Beyazit Tower Hotel. 6시30인데, 어둡다. 일행들이 나와서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피곤을 짊어진 사람들...

 

일정을 내내 함께 할 버스에 짐을 싣고 있다. 현지 여행사 직원들이 도와준다. 테쉐큐르 에데림~

 

현지 여행사, 랜드 여행사라 하더라. 터키 랜드 여행사에서 나온 가이드. 터키 전문가. 전반적인 안내를 해주고 있다.

 

GEOTRIP답다. 버스 앞에 터키 지도를 붙여놓아 관심있는 사람들이 참고하도록 했다.

 

이스탄불을 벗어났다. 유명한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넜다는 이야기.

게브제를 지난다. 커다란 발전소가 보인다. 석탄 화력 발전소이다.

 

8시20분. 첫번째 들른 휴게소. 사판카 호수 변에 위치한 베르세스테 휴게소.

 

호두가 잔뜩 들어있는 가마니. 호두까기 도구가 함께 놓여 있었다.

 

여러가지 기념품들도 판매한다.

 

괴이뉘쾨렌(?)이란 작은 동네를 지날 때 보인 상고대. 햇볕이 들면서 모두 녹을텐데... 아깝다.^^

 

환상적이었다. 상고대란 수증기가 승화하거나 급격하게 냉각된 구름이나 안개의 미세한 물방울이 나뭇가지에 순간적으로 부착되어 동결된 얼음으로, 수빙(樹氷)이라고도 한다. 버스를 멈추고 달려가서 그 아름다움을 조금더 가까이에서 즐겨야 했었는데... 늦었다.ㅎㅎ 많이 늦었다.

 

1월에 내린 눈 속으로 보이는 예쁜 마을.

 

10시 50분. 두번째로 방문한 휴게소. Dudu Konak Dinlenme Tesisleri 휴게소. 이름 참 길다. Dinlenme Tesisleri는 다른 휴게소에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체인점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휴게소에서 물건 구매 체험을 하는 일행.

 

눈위로 강한 햇볕이 반사되는 환경이라 주변의 경치를 제대로 감상하기가 어렵다.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 휴게소일터인데. 

 

11시50분. 친구야~ 어디까지 깼니~ 닌텐도 친구들~

 

12시 경. 샤프란볼루에 도착하였다.  이곳저곳에서 터키 국기를 흔히 볼 수 있다. 터키 사람들의 국기 사랑이 대단하다.

 

 

샤프란볼루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샤프란볼루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흐르드륵 언덕을 찾았다. 그리고 언덕을 내려오면서 전통 가옥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사용되고 있는 터키의 과거를 함께 하였다. 그리고 전통 가옥을 개조한 호텔에서 하루를 마감하였다.

 

점심을 이곳의 2층 식당에서 맛있게 먹었다. 요 식당이 1, 2, 3 시리즈가 있더라.

 

 

전통마을이니까 가옥들이 다 낡아보인다. 이런 낡은 건물들이 지진이 잦은 터키에서 수백년을 견뎠다는 것이 대단하다. 튼튼한 목조 건물이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샤프란볼루 버스.

 

샤프란볼루 쓰레기통.

 

샤프란볼루를 찾는 사람들에게 꼭 체험해보라고 권해지는 시설. 터키식 공중 목욕탕 하맘이다. 하지만 우리 일행이 방문한 날은 일요일이었다. 문을 닫았다. 체험을 할 수 없어 아쉽지만 그냥 지나갔다.

터키식 공중 목욕탕은 로마탕이라고도 한다. 증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밀실에 열기를 가득 채우는 건조욕으로 땀을 내고 나서 몸을 씻는다.

 

남탕은 6시에서 밤12시, 여탕은 9시에서 밤10시까지 운영한단다. 하맘.

 

샤프란 Tekel. tekel은 독점, 전매권이란 뜻을 갖는다.

 

여행 안내서에는 "흐르드륵 언덕"이라고 했는데, 표지판을 보니 "흐드르륵 언덕"이 맞는 것 같다. TEPESi가 언덕이다.

 

랜드 여행사 현지 직원이 먼저 와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있다. 그리고 입장하고 있는 우리 일행들.

 

TEPESi, 꼭데기.

 

언덕위에서 보이는 샤프란볼루. 건물들이 비슷한 양식으로 건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운데의 큰 건물은 모스크.

 

흐드르륵 언덕 위에서 샤프란볼루를 즐기는 일행들.

 

샤프란볼루 전경.

 

샤프란볼루.

 

샤프란볼루.

 

샤프란볼루.

 

동영상으로 샤프란볼루를 담고 있다. 저 때 촬영한 테이프가 어디 있는지......

 

눈만 보면 장난치려 달려드는 강아지들^^

 

겨울이면 꽤 춥다. 보온과 방풍을 위해 창문에는 덧창이 달려 있다.

 

샤프란볼루 아트 갤러리.

 

샤프란볼루.

 

샤프란볼루.

 

샤프란볼루.

 

터키인들의 국기 사랑은 유별나다. 가는 곳마다 어디에든 국기가 있다.

 

HANGAR(오두막) 디스코.

 

샤프란볼루 골목 상권.

 

샤프란볼루 전통가옥 중 한 곳을 방문하였다.

 

이런...식사 중이시네.

 

이쪽은 거실. 주인 식구들이 쉬고 있다.

 

어... 아저씨 하나가 숨어 있었던 것 같다.

 

공들여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12년이 지나니까 하나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할 수 없다. 다시 가야겠다.

 

부엌.

 

주방. 빵을 만들고 있다. 빈대떡일까?

 

보수하기 전의 옛날 모습을 남겨 놓은 사진들. 지진 등의 이유로 많이 부서졌었나보다. 지각변동이 심한 지역이기 때문에 지진 피해가 잦은 나라이다.

 

여기도 입장료를 계산해야 한다.

 

과거에 사용하던 농기구 등을 보관하고 있다.

 

파샤 무스타파. 규라이, 우르가 친절하게 잘 대해주는 팬션이라고 한다.^^

 

샤프란볼루 골목 상권.

 

전통가옥 모형을 판매하고 있다.

 

샤프란볼루 골목 상권.

 

모스크.

 

생수 보급받고 있는 어린이. 꿀꺽꿀꺽 잘도 마신다.

 

샤프란볼루. 여행객들.

 

샤프란볼루 골목 상권.

 

샤프란볼루 골목, 예술.

 

샤프란볼루 가게.

 

샤프란볼루 골목 상권.

 

샤프란볼루 시내 관광용 차량들.

 

아라스타 바자르.

 

샤프란볼루. 모스크.

 

인터넷 카페.

 

쌀쌀한 샤프란볼루.

 

한국과 터키의 만남.

 

현대식 건물로 호텔을 새롭게 짓지 아니하고 유네스코 문화 유산을 유지하기 위해 전통 가옥의 내부만을 개조하여 호텔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일행이 2008년 1월 20일 밤에 사용한 숙소.

옛날 건물이라 그렇지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숙소에 머물러 보는 것 또한 여행의 작은 재미인 것.

기억은 전혀 나지 않지만 잘 쉬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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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출발하여 바닷가의 거대한 공원인 성해공원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여순관동법원과 여순감옥을 방문하고 안중근 열사를 생각하면서 귀국하였다.

 

7시 54분. 대련 10대 명승지 중의 하나로 꼽힌단다. 성해공원.

19만 제곱미터의 면적. 어마어마하다. 거대한 수족관이 유명하다.

아주 이른 아침도 아닌데 안개가 잔뜩 끼어 있다. 바닷가에 있어서 해무가 밀려오는 것 같다.

 

대련시 백주년을 기념하여 1999년에 만든 공원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공원을 찾아 즐기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천천히 공원 산책을 하고 여순으로 향하였다.

 

말타는 사람.

 

스케이트 보드 타는 사람.

 

오토바이 타는 사람.

 

악기 연주하는 사람.

 

배타는 사람.

 

걷는 사람.

 

마차타는 사람.

 

전철 기다리는 사람.

 

전철 운전하는 사람.

 

출근하는 사람들을 가득 실은 전철. 대련 시내를 향한다.

 

바닷가의 공원이다.  많다.

 

9시 19분. 여순 일본 관동법원 옛터를 찾았다.

 

기록물들.

 

법원에 자리 잡고 앉아. 안중근 열사 관련 영상 시청.

 

그 시절의 그곳에 서보았다.

 

이등박문의 죄상 15가지. 그래서 저격했다.

 

오전 10시. 줄을 섰다. 찾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여순 감옥이었다.

 

여순일아감옥구지박물관.

 

그 당시의 건물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수용자 준수 사항'

 

줄지어 이동하던 사람들이 멈추어 있다.

 

조선애국지사 안중근을 구금했던 감방. 좁은 창을 통해 내부를 대략 들여야 볼 수 있다.

 

건물 내부.

 

좁은 계단을 통해 위 아래 층을 오르내린다.

 

한국의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 선생이 옥고를 치른 감방이다.

 

한국의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 선생이 옥고를 치른 감방이다.

 

감방의 똥통이다.

 

교형장. 교수형이 치우어졌던 건물.

 

당시의 시설을 그대로 보존해 놓았다. 시신이 아래의 통으로 떨어지도록 만들어놓았다.

 

특별한 건물로 이동한다.

 

안중근 열사의 형을 집행했던 곳.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여순을 착잡한 심정으로 떠났다. 버스 안에서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ㅠ.ㅠ

 

대련으로 귀환하여 공항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공항으로 향하였다.

예정보다 많이 귀국 시간이 늦어졌다.

원래는 2시10분에 출발할 예정이었는데, 4시간이나 늦어졌다.ㅎㅎㅎ

중국 남방항공의 CZ695편. 오후 6시20분 탑승.

 

7시55분. 이제사 비행기님께서 움직이신다.

요로케 대련에서 인천공항까지 날아왔다.

 

비행 시간은 1시간 정도가 소요되니 금방이었다. 10시 좀 넘어서 도착하였다.

 

일행들과 쌓인 정을 아쉬워 하며 헤어졌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다음은 또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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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에서 출발한 열차가 심양에 도착한다. 심양 시내 구경을 하고 대련으로 달렸다. 오래된 러시아 거리를 답사하고 숙소에서 쉬었다.

 

5시 47분. 잠에서 깨니 열차가 심양으로 진입하고 있다. 간단히 씻고 짐을 챙기며 하차 준비를 한다.

 

심양역에서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북릉공원과 심양고궁엘 들렀다. 심양고궁에서는 gps 기록이 좀 널뛰었다. 실내를 많이 들락거려서 그런 듯 하다.

 

10시 37분.

북릉공원은 청태조 누르하치의 아들인 2대황제 태종 홍타이지와 그의 황후가 잠든 묘역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묘릉인 소릉을 중심으로 약 450만 제곱미터의 면적을 갖는 이 공원은 1643년부터 8년여에 걸친 공사를 거쳐 조성되었다. 심양의 북쪽 숲에 위치하여 북릉공원이다. 

 

북릉공원 안내도.

 

입구에서 묘릉까지 주욱 이어지는 참도.

 

참도 양쪽으로 호수가 조성되어 있다. 서쪽에 서호, 동쪽에 동호. 동호가 훨씬 크다.

 

소릉의 사실상의 입구에 해당하는 석패방이 앞에 보인다. 태종이 죽은 후 한참 지나서 만들어졌고, 죽은이의 공덕을 기리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중국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패션~~

 

老예술가는 피곤하다.

 

소릉으로 들어가는 입구. 정홍문.

 

융은문. 이 문을 지나면 본격적인 능역의 시작이다.

 

레드불이 홍우였다니...

 

청나라로 돌아가 그 시절 황후 체험을 시도한다. 앞쪽만....

 

봉분이 특이하다. 잔디로 덮힌 것이 아니고 꼭데기에 나무가 자라고(?), 혹은 심어져(?) 있다.

 

신공성덕비정.

 

한바퀴 둘러 보았으니 밖으로 나간다. 정홍문이 다시 보인다.

 

주변에 구경꾼이 모이니 老예술가는 힘이 났다. 加油 refuel~~~~

 

老예술가는 예술혼을 불태운다~~

 

북릉공원을 떠난다. 구경 잘했다~

 

 

1시51분. 심양의 또다른 명소. 심양고궁.

자금성의 축소판이라 알려져 있다. 패방을 지나 들어간다. 패방은 마을이나 집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곳으로 패루라고도 부른다.

 

온갖 곳이 공사중이다.

 

이거야 원...

 

숭정전. 황제가 신하들과 만나는 공간.

 

황제의 자리. 무협영화에 보면, 황제가 저 윗쪽 산꼭데기에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높게 멀리 있던데, 실제는 이 정도였던 것이다.

 

대정전이다.

 

용 두마리가 기둥을 감으며 올라가고 있다. 황제의 거처. 기둥에 색칠을 새로 해놓았다.

 

다양한 형태의 비석들을 모아 놓았다.

 

단체 관람객이 상당히 많다.

 

지붕의 상태가 상당히 친환경적이다. 생태계가 살아있다. 이렇게 두면 기와가 다 망가질텐데......

 

건물들만 세워져 있다. 여러 곳에서 공사중이다. 황제가 기거하던 궁전인데 너무 삭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업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쉴 때도 있어야 했지 않을까? 정신적인 힐링을 위한 공간이 안보인 것이다. 작은 연못이라던지, 숲 같은 공간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건국 초기에 대충 만든 것이라서 그럴까? 황제가 궁전에 머물러 있지 않고 허구헌날 싸움박질 하러 밖으로 싸돌아다녀서 궁전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일까? 상상이 날개를 마구 날려본다.

 

관광객을 안내하는 가이드는 피곤하다.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

 

실내.

 

비자금을 숨겨두는 솥.

 

구경 잘 했으니 고궁을 나선다.

 

고궁 밖의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일행.

 

철사를 이리저리 휘니까 자전거가 한 대씩 만들어진다.

 

나무 토막을 끌로 이리저리 파내니까 재밌는 장난감이 만들어진다.

 

점심 식사를 하고 대련으로 달려간다. 4시간 정도 달려갈 예정.

 

 

대련에 도착하여 러시아 거리를 산책...

 

러시아거리는 대련항 부근에 위치한다. 항구를 통해 들어온 러시아인들은 이곳에 자릴 잡고 버티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1904년의 러일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이곳을 떠나야 했다. 그 이전까지 러시아인들의 거주 흔적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9시 30분. 러시아식의 건물들이 거리 하나를 채우고 있다. 낭만의 도시(浪漫之都) 홀인원 룸쌀롱(러시아식?).

 

건물마다 조명을 켜놓아 관광객들이 이 모습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금강의 별(錦江之星).

 

대부분을 관광객을 상대하는 업종으로 채워져 있다. 천복명차.

 

길가에는 노점상이 줄지어 영업중이다. 

 

대련 수산물 수퍼마켓. 한국상품성. 한자와 러시아 말로 된 간판들.

 

한국상품 모두 10원.

 

백여 년 전의 건물들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길에는 관광객이 넘친다.

 

순정 아라사 상품. 100% 순도 러시아 물품을 취급하는 가게.

 

호텔.

 

노점상과 관광객.

 

건물들이 모두 근사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체크인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디서 무엇을 먹었는지는 모른다.ㅠ.ㅠ

 

어쨓든 금해대주점에서 쉬었다. 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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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동서남북 방향으로 각각 끝부분을 극동, 극서, 극남, 극북이라 한다. 그 중에서 극북에 가까이 가보는 날이다. 용정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새벽 이른 시간에만 열리는 수변시장을 방문하면서 하루를 시작하였다. 

 

연길역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대주호텔.

 

길거리. 하와이 룸싸롱. 연길역 주변의 번화가.

 

한글 간판을 사용한 가게들. 그 앞을 지나가는 엘란트라 택시.

 

5시50분. 식전에 새벽에 열리고 문을 닫는다는 수변시장을 찾았다.

연길하 옆에 있어서 수변시장이라고 하지만 정식 명칭은 동방수상시장.

 

수상시장 안내도.

 

수상시장 옆을 흐르는 연길하.

길바닥을 보니 밤에 또 비가 내린 모양이다.

 

물고기 가판대.

 

시장 건물안쪽. 육류구역. 개들이 많이 보였다.

 

중국 의학 정통 뼈때리는 안마, 10원. 혈압 측정해주는데 1원.

 

미성년자 시청불가 노골쏭~ (궁금하다.)

 

백주를 근 단위로 판다. 50도 짜리가 한 근에 2.5원 , 60도 짜리는 3원. 두어 통 사들고 오고 싶었다. 이것도 세관에서 1인당 1병으로 쳐줄 것인지 고민하다 기대를 접었었다.

 

시장답다.

 

반찬가게.

 

밥 가게.

 

건어물 가게.

 

고추가루 가게.

 

버섯 가게.

 

고기, 고기, 고기 가게.

 

미꾸라지 가게.

 

시장 주변 1.

 

시장 주변 2.

택시들 중에 엘란트라가 많다.

 

시장 주변 3. 뾰쿠당구.

 

대주호텔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했다. 

 

연길에서 도문으로 이동한다. 연길 시내를 관리하는 경찰들.

바쁘게 움직인다.

 

연길역 주변의 시내 모습.

 

로동자문화궁.

 

닉스클럽.

 

농촌 풍경. 비닐 하우스도 설치된 것이 보인다.

 

도문시에 도착하여 도문대교에서 중국과 북경의 국경선 위치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한반도의 극북 지점에 해당하는 함경북도 온성군 유포진리 언저리를 멀리서 조망하고 용정으로 이동하였다.

 

9시11분. 중국의 도문시와 북한의 남양역 사이를 연결하는 도문대교의 모습이다.

 

도문강반, 국경, 중국도문변경.

 

코리아 사진관에서 고운 한복을 빌려준다.

 

빌린 고운 한복을 입고 도문강반 앞에서 기념 사진을 만든다. 오랜 전에 떠나야 했던 선조의 후손이 고향을 그리며 찾아와 아쉬운 흔적을 남기는 것일 것만 같다.

 

중조우의탑.

 

중국도문강안. 강택민. 1991년.

 

도문대교의 중국쪽 하안에는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전망대 위에서 북한 쪽을 조망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도문대교의 가운데까지 가서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작은 유람선을 이용해 두만강에서 뱃놀이를 할 수도 있다.

 

 

다리 가운데 국경선 표시가 되어 있다.

 

경계선에 발을 걸쳐 보았다.

 

멀리 보이는 남양역.

 

남양역 주변에 보이는 건물들.

 

남양역 주변으로  보이는 마을의 모습.

 

도문대교의 중국쪽 출구에 세워져 있는 전망대.

 

전망대에서 북한쪽을 조망하며 사진 촬영을 하는 여행객들.

 

전망대 한쪽 구석에서 기념품이라면서 북한돈을 판매하고 있다. 화폐로서의 가치가 없어 짐바브웨 달러와 동급으로 취급된다고 한다. 위조에 들이는 비용보다 화폐 가치가 적다고 할 정도이니 말 다했다. 여기저기 김일성이 등장한다. 흥정하여 나름 싸게 샀다. 그런데 전망대 아래에서의 판매가는 전망대 윗쪽에서의 가격의 절반이다. ㅎㅎㅎ

 

전망대에서 본 두만강, 도문대교, 남양.

 

농사일을 하는 일꾼들. 그런데... 한쪽을 자세히 보니...

 

위의 사진 일부 크롭. 이건 아니잖아~ 진짜로 가래를 사람이 끌다니....헐~~

 

이것이 북한의 집단 농장인가. 사람들이 모두 모여 수작업을 한다.

 

변경선에서 기념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발길을 돌렸다.

 

 

한반도의 네 방향의 끝 지점이 4극 중에서 극북 지점을 찾는다. 당시의 구글 지도 스크린캡처.

 

도문시에서 훈춘시 방면으로 두만강을 따라 이동한다. 두만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마을. 구글 지도를 보니 '풍서'라는 동네인 것 같다.

 

북위 43도 지점이었섰다. 북위 33도 지점에 위치한 마라도를 가보았고, 43도 지점에도 와보았다. 다음엔 훈춘까지 가볼 수 있을지...

 

두만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농가.

 

10시 40분. 두만강과 건너편의 북한의 모습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만들어보았다.

 

연길 시내로 되돌아왔다.

 

배고프다. 유명한 순이랭면 집엘 왔다.

12시 40분. 배를 두드리며 식당을 나오는 일행. 커다란 그릇에 냉면을 잔뜩 주더라. 옛날 옛적 오장동 냉면이라고 먹었던 것보다 양이 열배는 되는 듯 했다. 만족했다. 아주 맛있었다. 만족했다. 순이랭면 먹으러 다시 이곳에 오고 싶을 정도였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용정시로 이동한다.

 

유명한 '맥심'을 만날 수 있다.

 

1시10분. 윤동주 시인의 흔적을 찾아서 대성중학교를 찾았다.

 

 

해란강 변에 위치한 용정시. 대성중학교를 방문하고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있는 명동도 다녀왔다.

 

널리 알려진 곳이라 기부금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근사한 교수청사도 마련될 수 있었을 듯하다.

좋은 말이다. "사랑으로 교육을 교육으로 희망을".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인 서시의 원고. 1941.11.20.

 

방명록 일부. 중국돈 100원 기부했다.

 

대성중학교.

 

윤동주 시비.

 

헤이그 특사였던 이상설 선생 역사기념관 준공비.

 

연합기념비.

 

룡정시관광지점 대성중학옛터.

 

항일시인 윤동주.

 

대성중학교.

 

례의범절.

 

군대는 부모가 믿을수 있는 학교란다. 그랬으면... 한다.

 

2시 20분. 명동 윤동주 생가.

 

명동 윤동주 생가를 찾았다.

 

서시 시비.

 

생가터에 복원된 생가.

 

1994년 8월 29일 연변대학 조선연구센터의 주선으로 해외한민족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복원되었다.

 

바로 옆의 윤동주전람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건설중...

 

주변 현지인이 가옥들.

 

굴뚝을 나무로 만들어 놓은 것이 특이하다.

 

옥수수밭이 지천이다.

 

이런 것도 만들어놓았다.

 

'일제 강점기를 짧게 살다 간 젊은 시인 윤동주.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고민하는 철인이었다.'고 교재에 써있다. 그에 대해 감정이입을 해보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린다.

 

용정시내로 들어왔다. 멀리 비암산 정상에 일송정이 보인다.(나중에 알았다. 저곳이 일송정이라는 것을. 여기서 '나중'이라는 것은 2020년이었다. ㅠ.ㅠ)

1933년 윤해영의 노랫말에 조두남이 곡을 붙인 "선구자"에 나오는 일송정이 민족정신을 일깨운다 하여 일제가 1938년 소나무 한 그루를 고사시켰다. 1991년 3월 12일 용정시는 한국 각계의 후원을 받아 용정시 서쪽에 위치한 비암산(琵岩山) 정상에 소나무를 심고 정자를 신축하여 그해 9월 '일송정'을 복원하였다.

 

더보기

허거덕... '선구자'의 작사자와 작곡자 모두 만주에서 친일 활동을 열심히 했던 인물들이라고 한다. ㅠ.ㅠ

윤해영은 만주 최대의 친일단체인 '오족협화회'의 간부로 활동하면서 적극적이고 열성적으로 일제를 찬양한 인물이었단다. 여기서 '오족'이란 일본, 조선, 만주, 몽골, 한족을 지칭하는 것으로 일제의 대동아공영권을 위한 나팔수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조두남 또한 친일 악극을 작곡하는 등 그렇게 살았고. 해방 이후 자신의 친일 행적을 감추고 적극적 친일행위를 했던 윤해영과의 관계를 숨기기 위해 1932년 여인숙에서 만나 시를 한편 전해받고는 만난 적이 없다는 거짓 회고록을 남기기도 했다.

문제는 선구자의 원곡이 '용정의 노래'인데 '선구자'는 일제로부터 독립을 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만주국을 건설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가리킨 것이라고 한다. 윤해영의 다른 시 '락토만주'에서 "선구자"를 만주괴뢰국의 터를 닦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옴마나...

참고로 당시 만주에서는 독립투사들을 '산사람'이라 불렀다고 한다.

다음의 링크에서 참고......

https://blog.naver.com/toum14/120026220243

 

3시20분. 해란강을 가로지르는 룡문교.

 

륭문교 부근에는 성태뀀성 식당이 있다. 꼬치구이집 같다. '뀀성'이라는 이름이 재밌다.

 

룡문교 앞에는 소나무가 있다. 일송정을 찾아보는 것을 대신하자고 했다.

이때 현지 가이드는 일송정의 소나무가 없어져서 볼 수 없다고 했던 것으로 대충 기억한다. 복원된 것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확인하러 다시 가보아야겠다.^^

 

룡정시를 깨끗하게 만드느라 수고하고 있는 일꾼.

용정에서 연길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일행중 한분께서 마이크를 잡으셨다. 노래 선구자를 멋지게 불러주셨다. 감사~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연길역. 이곳에서 우리 일행은 침대열차를 타고 밤새 심양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황당한 것은... 우리 일행을 태우고 다녔던 버스는 밤새 심양으로 달린단다. 아니 이게 무슨....

 

기차표를 받았다. 연결에서 심양까지. 124원. 17:35 출발.

 

7시40분.

침대칸이 객실로 구분되어 있지는 않다. 그냥 침대열차다.

한쪽면에 3층. 앉으면 머리가 닿는다. 좀 구겨져서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래도 누워서 잠을 청할 수는 있었다. 그렇게 심양에 도착하는 꿈을 꾸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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