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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7일 토요일. 이번 일정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숙소를 출발하여 청진사를 방문하였다. 다음에 카스 구시가지를 걸어서 답사하였다. 아팍호자 묘를 들러 동문 바자르를 한바퀴 돌았다. 인민광장 쪽에 머물렀는데, 뭐 했는지는 도대체 기억이 나질 않는다. 10년 밖에 안됐는데...

그리고 비행기 타고 우루무치로 날아갔다. 하룻밤 휴식을 취하고 다음 날 귀국길에 올랐다.

 

7시 46분. 치니크와 호텔. 창 밖 풍경. 카스 시내.

 

건물 모양이 특이했다. 요로케 빈 공간이 내부에 있다. 뭘까? 윈드 타워 역할을 하는 것일까?

 

8시 57분. 도착했다. 넓은 광장. Id Kha Mosque艾提尕尔清真寺아이티거얼 청진사다. 

 

1442년 경에 세워진 모스크이다. 중국내 최대 규모의 청진사라고 한다.

 

중국내 이슬람 건축의 전범으로 꼽히고 있는 건물이다.

 

입장료가 필요하다.

 

구경 잘하고 나왔다. 그런데... 저쪽에 이상한 간판이 보인다.

 

9시21분인데 문이 닫혀 있다. 토요일은 영업을 안하는 것이었을까?

 

광장 한쪽의 주차장. 이른 시간이라 혹은 기도 시간이 아닌지라 조용한 분위기이다.

 

9시 38분. 인근에 위치한 카스 구시가지를 방문하였다.

 

Kashkar Old City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입장권을 구매해주시고, 현지 문화를 존중해주시고, 자기 물건은 알아서 챙기시고, 환경을 보호해주시고, 음주 흡연은 안돼요.

 

구시가지를 답사할 때는 지도를 챙기는 것이 필수이다. 구시가지를 '老城'이라 표현한 것이 재밌다. 

 

구시가지라고 해서 수백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입구 부분은 벽돌로 신축하였다.

 

벽돌로 개조된 건물들.

 

계속 벽돌이네..........

 

대문은 옛날 분위기이다.

 

배민(?)

 

개조되지 않은 옛날 건물은 따로 관리되는 것 같다.

 

옛날 건물이다. 유리창 빼고.

 

나무와 흙벽돌을 사용했다. 그리고 겉에는 흙과 풀을 섞어 버무린 것으로 덧씌웠다.

 

수공예품 전시.

 

구시가지의 건물들의 안전 상태가 좋지 않아 계속 새로운 벽돌 건물로 개조되는 중이었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경계.

 

신식 건물. 구시가지를 철거하면서 주민들을 아파트로 이주시키고 있다는 신문기사들이 보였다.

 

주변부부터 구시가지가 침식 당하고 있다. 사라져가고 있다.

 

골목 안쪽의 모스크.

 

중국 정부에서 카슈카르 시내의 구시가지를 철거해나가는 이유로 지진에 취약하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현지인들은 반발하고 있는데, 구시가지 자체가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갖는 것이라는 것, 이주 비용 지원이 너무나 형편없다는 것 등이 이유이다.

 

이골목 저골목을 걸어서 답사한다.

 

구시가지의 현 상황에 대해 예리한 눈빛으로 살피는 답사대원 1.

 

문명호. 문명을 받아들인 집이라는 의미일까?

 

집을 빌렸다. 높은 곳에 있는 옥상을 올라가 볼 수 있었다.

 

건조 기후 지역 전통 가옥의 지붕이다.

 

위에서 보니 구시가지 건물들의 상태가 열악하다는 것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부서지는 중인지, 보수하는 중인지...

 

건조 기후 지역의 가옥은 지붕이 평평하다. 비나 눈이 내릴 일이 없으니 지붕에 경사를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보수 및 개조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다. 철골조 시멘트 기둥에 벽돌벽으로 시공하고 있다.

 

지나쳐 온 골목 속의 모스크.

 

건조 기후 지역이라고 해서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간헐적으로 내리는 빗물이 모여 빠져나갈 수 있도록 구멍도 만들어두고 있다.

 

옥상에서 주변 조망을 할 수 있었던 멋진 가옥의 멋진 실내.

 

더운 지역은 천정을 높게 만든다.

 

이건 무슨 집안 표시일지...

 

내가 내 사진 속에 들어있다.

 

가게.

 

그냥 가게?

 

어두운 골목으로 스며드는 총각.

 

밝은 빛의 세계로 나간다.

 

어...밝지 만은 않다.

 

미끄러짐 주의.

 

구시가지는 카슈카르 시내를 관통하여 흐르는 吐曼河변 고지대에 위치한다. 타박타박 걸어서 내려온다. 

 

건물(?), 축대(?)의 벽도 서서히 부서져 내리고 있다.

 

수돗가의 아이들. 수도꼭지가 없다. 물이 계속 나온다. 

물이 필요한 사람들은 물을 받아가면 되고 그냥 흐르는 물은 주변의 수로로 흘러든다.

 

10시 41분. 오토바이 행상이 들어왔다. 

 

10시 49분. 吐曼河를 건너 아팍호자 묘를 향한다.

 

11시. 그곳에 도착했다.

 

아팍호자의 묘이다.

 

입구 왼쪽.

 

입구 오른쪽.

 

아팍 호자의 묘실.

호자 가문의 묘인 아팍 호자의 묘이다. 초록색 타일로 장식된 돔 형태의 건축물이다.

아팍 호자는 아팍 호자는 이 지역의 강력한 정치적, 정신적 지도자였다. 이 무덤에는 호자 가문 5대 72구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안쪽에는 정원이 예쁘게 조성되어 있다.

 

뒷쪽엔 수많은 무덤들이 있다.

 

손을 보고 있는 묘도 있다.

 

묘실 내에도 예쁘게 장식된 많은묘가 있다.

이 묘가 유명한 것은 향비묘 때문이다. 아팍 호자의 손녀 몸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고 해서 향비라고 불려졌다 한다. 향비의 이야기가 워낙 유명해지면서 그 소문을 청나라의 건륭제가 듣고 한마디 했다고 한다. "데려와".  그렇게 건륭제의 첩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그러나 베이징에 도착한 그녀는 건륭제의 갖은 회유에도 늘 칼을 들고 목숨을 끊겠다고 하면서 정절을 지키다가 결국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타지에서 죽은 '신장의 딸' 향비의 시신을 위구르인들이 나무 가마에 실어 3년에 걸쳐 이곳으로 운구했다고 한다. 청의 황제에 저항한 위구르 여인, 향비. 이 이야기에는 나라 잃은 사람들의 자존심이 실려 있을 것이다.

 

밖에 나와서 한 컷.

 

11시 20분. 중국내에서 위구르 인들의 위상에 대해 고민하면서 발길을 돌린다.

 

11시 35분. 동문 바자르에 도착하였다.

 

주차장에서 걸어간다. 저쪽에 입구가 보인다.

 

"지오트립" 팻말을 들고 가는 아저씨 뒤를 따라 간다. 위구르 어 통역을 위해 카스 현지에서 고용한 아저씨. 학원에서 한국말 4달 배웠다고 했었던가... 대학을 졸업했는데 적절한 일자리가 없단다.

 

답사대원들이 흩어졌다.

 

맛있는 견과류.

 

점점 아는 분들이 사라진다.

 

사라져간다.

 

해외 여행을 할 때 전통 시장 등 시장 방문 시간은 나에겐 고역이다.

 

시장을 통한 해당 지역의 문화 학습 자세가 되어 있질 않다.

 

굉장히 넓다.

 

다양한 상품들이 어마어마하게 전시되어 구매자를 기다린다.

 

지나가면서 먹어보고 만져보고 하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숫기가 없어 그런 걸 못한다. 부끄부끄.....

 

건물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장이 서 있다.

 

꼬치 제조중.

 

익히는 중.

 

카스시의 상공회의소 쯤 되는 기관이 아닐까 한다.

 

다시 바자르 건물 내부.

 

아니 이것은???

 

설마 그 유명한 양지옥?

 

그 비싸다는 양지옥을 이렇게 전시하진 않을 것 같다.

 

아닐꺼야.

 

12시 46분. 드디어 나섰다.

 

1시 42분. 인민광장. 모택동 아저씨가 잘가라고 손을 흔들어준다.

 

이런 사진들만 남아 있어 이곳에 왜 왔었는지를 알 수 없다. 이른 점심 식사를 하러 왔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식당 사진이 없다니....ㅠ.ㅠ

 

이렇게 카슈카르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공항으로 달려갔다.

 

카스 공항에서 탑승한 비행기 표. SC4906편.

 

표를 받고 비행기를 타고 카스에서 우루무치로 날아갔다. 1,162km. 두 시간 정도의 거리.

 

9시 19분. 우루무치의 하늘.

 

10시 45분.  이날 우루무치에서의 마지막 사진.

발 맛사지 집이었을 것이다. 어족당. 발 맛사지 체인점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냥 아무 일없이 쉬었을거다 피곤했을테니까......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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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6일. 금요일이다. 파미르 고원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카라쿠얼러 호수까지 다녀왔다.

카라쿨 호수라고 소개되어 있는 자료가 많아 타지키스탄에 있는 카라쿨 호수와 헤깔리게 한다. Kala Kule Lake(克州喀拉库勒湖))라고 구글 지도에 나온다.

급경사 사면이 이어진 깊은 골짜기마다 빙하가 지천이다. 빙하 녹은 물이 갑자기 흘러내리면 골짜기 사이를 어렵게 이어놓은 도로가 쉽게 파손된다. 오가는 길 두번이나 그러한 이유 때문에 차량 통행이 막혔었다.

다녀오는 길에 마흐무드 알 카슈가리의 묘를 방문하였다.

 

9시 10분. 오늘은 여유있게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는 호탄에서 야바도주했었는데...

치니크와 호텔 앞에서 지나는 카스를 하루를 함께 한다.

 

멋쟁이. 어딜 가시나...

 

11시 35분. G314 공로를 따라 계곡으로 스며들어 간다.

 

황량한 주빙하 지역의 지형.

 

11시 44분. 녹색이 깔렸다. 마을이다. Oytak(奥依塔克镇)이라 하더라.

 

무스타그 아타 봉을 지나 내려와 카스 쪽으로 흘러가는 Gaizi 강.

 

11시 57분. 쉬어간다.

 

백성을 편안케 하는 시설들이 있는 곳이다.

 

기념품 가게도 있다.

 

지오트립 실크로드 답사팀의 버스도 쉬어간다.

 

염소들도 쉬어간다.

 

가이지 강물도 쉬어......

 

12시 34분. 유목민의 가축들. 푸른 초원이 아니라 황량한 오지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메고 있다.

 

12시 41분. 하천 주변 퇴적층. 둥근 자갈의 비율이 높은데, 큰 놈과 작은 놈들이 마구 뒤섞여 있다. 즉, 분급, sorting이 되지 않고 있어 조용히 퇴적된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밀려 내려오며 퇴적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1시 3분. 파오가 보였다.

 

수퍼마켓이 보였다.

 

1시 16분. 멀리 보이는 산. 콩쿠르 산? 콩구르 산은 저 넘어에~

 

1시 17분. 차량의 이동이 멈추었다. 교통 체증?

 

파미르를 찾아 달리던 차량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멈추었다.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지만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먹을 것을 나눈다. 사해는 동도^^

 

산비탈에서 흘러내린 격류에 의해 도로가 막혔다. 일꾼들이 중장비를 이용해 치운다.

 

다들 이런 상황이 다반사라는 것을 아는 듯. 그냥 기다린다.

 

7,649미터 높이의 콩구르 산이다. 저기 올라가보자고 제안한 멤버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저길 올라가려면....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1시 48분. 움직이기 시작한다.

 

콩구르 산이 더 잘 보인다.

 

1시 57분. 계곡 아래로 보이는 마을.

 

만년설 녹은 물이 갑자기 많이 흘러내리면 불안정한 사면이 붕괴될 수 없고, 아랫 쪽의 도로는 매몰되는 것일 것이다.

 

2시 4분. 멋진 하늘이다. 구름이 쏟아지면서 만년설이 만들어지고 있다.

 

멋진 친구들이 인사를 건넨다.

 

2시 8분. 교량을 통해 반대편 사면 쪽으로 옮겨간다.

 

흙탕물. Muzi River(木吉河).

 

메마른 골짜기에 갑자기 물이 흐른다. 만년설에서 온 것일 것이다.

 

2시 19분. 커다란 호수가 보였다. 멈추었다. 다가갔다. 건너편의 구릉이 백사호, 굼타흐이다. 하얀 모래가 산비탈에 쌓여 있다.

 

布伦口水庫. 양쪽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고여 만들어진 호수

 

물이 있으니 생존이 가능하다.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여름에만 가축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일 터이다.

 

도로 가에는 여행객을 상대하는 시설이 있다.

 

기억하기 위하여 기록을 남기는 분들.

 

나도 남겨본다.

 

그리고 주변의 기록도 남긴다. 열심히. 아들 옷을 걸치고 있으니 작아보이는구나.

 

 

호수의 크기가 제법 크다. 

 

호수 변에 있는 파오.

 

소다.

 

3시 30분.

 

호수 건너편 사면에 하얀 모래가 눈처럼 쌓여 있는 것이 멀리 보인다.

 

3시 38분.

 

2시 41분.

콩구르 산에서 흐르는 빙하.

 

콩구르 산에서 흘러내리는 곡빙하. 빙하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다.

모든 다른 지도들과 함께 이 이미지도 구글의 전폭적인 협조에 의한 것임을 밝힌다.

 

2시 43분. 계곡 바닥과 만나는 지점에 선상지가 발달하고 있다.

 

2시 53분. 계곡, 황무지, 빙하, 구름.

 

3시 20분. 카라쿠얼러 호수에 무사히 아무 일없이 도착하였다.

 

파오를 하나 빌렸다고 한다.

 

우리의 식당이다. 남사장님은 뒤에서 우리가 먹는 것을 구경만 한다. 그래서 날씬하다. 먹고 싶어 하는 표정인데...

 

카라쿠얼러 호수도 식후경이다~~~

 

가만히 앉아 구경할 수도 있고, 걸어다닐 수도 있고, 말을 탈 수도 있고, 낙타를 날 수도 있다.

 

큰 돌이다.

호수 주변으로 나즈막한 목책이 둘러쳐져 있다. 담이다.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넙데한 돌이다.

 

무스타그 아타. 무스타거 산이 구름에 숨어 있다. 꼭데기는 7,546미터.

 

카라쿠얼러 호수. 잔잔.

 

잔잔.

 

낙타를 안타고 걷는다. 

 

탈껄 그랬나.....

 

에이...그냥 걷자. 호변을 따라 걸어다닐 수 있도록 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말타는 사람들.

 

말을 타고 호변을 따라 물을 찰박거리며 걷는 기분은 어떠할까???? 다음에 가서 해보아야지~~

 

이곳을 지나 파미르로 들어가보는 것은 어떨지... 그것도 궁금하다.

 

오토바이들이 많이 보인다. 오토바이는 절대로 타보고 싶지 아니하다.

 

호수 건너편의 깃발. 패루의 정체는? 다음엔 저곳도 가보고 싶다.

 

무스타그 산. 곡빙하가 흘러내리면서 말단부에는 퇴적물인 모레인만 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린다.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는 없다.

 

5시 12분. 콩구르 산의 곡빙하들이 눈에 마구 든다. 잠시 멈추었다 가기로 한다.

 

막 엄청난 소리가 날 것 같은데, 그냥 우리 일행의 대화 소리만 들린다.^^

 

곡빙하의 아랫 부분이 모레인으로 막혀 있다. 빙하 녹은 물이 고이면 빙하호가 될 것이고.

 

안녕~ 콩구르~

 

5시 20분. 布伦口水庫의 남쪽 끄트머리에 섰다. 재밌는 것이 보인다.

 

하얗게 보이지만 눈이나 빙하, 얼음이 아니다. 모래다. 그래서 白沙湖. 굼타흐라고 부른다.

 

구글 지도의 위성 이미지를 잘라 보았다.

다른 산지는 식생이 없어 맨땅이 그대로 드러나 어둡게 보인다.

하지만 굼타흐 부분은 하얗게 보인다. 저수지의 물은 얼어 있다.

 

이런 하얀 고운 모래가 어디에 왔는지?

 

 

 

저수지 주변의 초지에는 가축들이 노닐.... 아니 식사 중이시다. 

 

6시 2분. 하산길이 또 막혔다.

골짜기에 무섭게 쏟아져 내리는 토사. 흘러내려가게 두어야지 막을 수도 없다. 다들 그냥 바라보고만 있다.

 

짬짬이 도로 위에 쌓인 퇴적물을 제거하고 한 대씩 차량이 번갈아 가면서 통과한다.

 

8시 24분. 이제 너른 평지가 보인다. 위험한 계곡을 벗어났다.

 

빙하가 녹으면서 퇴적물과 함께 흐르는 물이기에 물의 색깔은 깨끗하지 않다. 그래도 이렇게 빙하, 만년설이 녹으면서 흘러내리는 물이 있기에 곤륜산맥 아랫 부분을 따라 오아시스 마을, 도시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타클라마칸 사막 주변의 최대 도시 카스, 카슈카르도 이러한 물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유량에 비해 운반 물질에 많아 곡지를 넓게 퇴적시키면서 물길이 이리저리 갈라졌다 모였다 하면서 흐른다.

 

 

9시 12분. 도착했다.

 

마흐무드 알 카슈가리의 묘에. 이곳의 지면 카슈카르가 이 아저씨 집안 이름 카슈가리에서 온 것은 아닐지...

 

마흐무드 알 카슈가리는 카라한 칸국 출신의 튀르크인으로 셀주크 제국으로 건너가 바그다드에서 11세기 중세 튀르크어 사전을 집필한 학자이다. 카슈가리가 튀르크어 사전을 남기지 않았다면 중세 튀르크족의 언어와 역사 및 오늘날 여러 튀르크 민족의 기원은 완전 미스테리에 빠졌을 것이라는 평가이다.

 

무식한 야만인들이나 쓰는 언어라고 알려졌던 튀르크 어를 연구하고 사전으로 집대성하면서 튀르크 어의 위상을 격상시킨 위대한 언어학자이다.

 

안내를 맡아주신 분.

 

카슈가리 아저씨 이야기 하는 중.

 

 

들어가보자.

 

이 양반이다.

 

1000주년 기념.

 

마흐무드 카슈가리의 생애.

 

마흐무드 알 카슈가리의 묘. 1008~1105.

 

9시 37분. 나선다. 주변에 묘가 많다. 공동 묘지 였던 모양이다. 그 중 하나가 마흐무드 카슈가리의 것이었고.

 

주변.

 

오늘 하루도 즐겁게 여행하고 배웠다.

 

가자~ 치니크와 호텔로. 아니 저녁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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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새벽같이 출발한다. 530km를 이동한 하루였다. 

호텔 간판 전광판에서 두 글자만 보인다.

 

출발 전에 호텔 앞 거리의 새벽 모습을 담아 보았다. 이쪽.

저쪽. 아무도 없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시간대에 우리만 움직인다. 호탄 시민들 몰래 야반도주한다.^^

 

7시 36분. 호탄 시내. 신호등에서 신호 변경의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타이머를 중국에서 처음 보았다. 신기했었다.

 

카라카쉬 강이라고도 불리는 흑옥하를 건너 서쪽으로 달린다.

 

8시 21분. 길가에 보인 신기한 모양의 온실. 흙으로 만들고 나무 뼈대를 올렸다. 여름이나 모두 해체된 상태.

 

10시 39분. 곤륜 산맥 쪽에서 갑작스럽게 흘러내린 물 때문에 도로가 파손된 지점. 위험하고 공사 중이기 때문에 우회하여 지나갔다.

 

도로의 일부가 띁겨나갔다.

 

유수에 의한 도로 기반 침식.

 

여러 곳이 파손되었다.

 

그래서 중장비를 이용한 공사중.

 

12시 39분. 길가에 옥수수밭이 보였다.

 

보호경지.....뭐라뭐라???

 

12시 40분. 곤륜산맥의 융설수에 기대어 성장한 큼지막한 오아시스 예청현(叶城县)이란 마을의 초입에 들어섰다.

 

2시 50분. 예청현 중심가의 식당. 왕각식부에서 배불리 먹고 나섰다.

 

주변 구경. 아저씨들이 모여 무슨 놀이를 하는 장면이 재미 있어 일행이 사진에 담고 있다. 또 그 모습을 보며 즐거워 하던 동네 아저씨들.

 

3시 17분. 흙담으로 둘러싸인 농경지. 

 

온실의 흔적이 보인다. 다음에 다시 가서 확실하게 확인을 해보아야겠다.

 

4시 38분. 사처현(莎车县)에 들어섰다.

 

도착했다.

 

아만니사한 기념릉에.

 

전면에 넓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모스크인갑다. 아르툰 청진사(阿爾丁清真寺). 투르키스탄의 지배를 받던 10세기 경에 건축된 것이다. 입구 양식은 중앙 아시아 지역의 전형적인 것이다.

 

사처의 왕이었던 아부두러시티(阿不都热西提)의 비이자 15세기 위구르 족의 걸출한 여류 시인이었던 아만니사한(阿曼尼莎汗, Amannisa Khan)의 능묘이다. 그녀가 편찬한 十二木卡姆는 위구르의 고대 음악을 집대성한 것으로 위구르 음악 예술의 보물로 꼽힌다.

 

인접한 모스크와 하나가 되어 전형적인 이슬람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왕묘이다. 

 

왕실의 묘지 역할을 하였기에 많은 무덤이 함께 같은 공간에 모여 있다.

 

입장권이 이렇게 생겼다. 15원짜리.

 

아담한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파손 상태가 심한 무덤도 있고.

 

 

비교적 깔끔한 무덤도 있다.

 

아만니사한의 묘는 건물 내부에 예쁘게 모셔져 있다.

 

아만니사한 기념릉 앞쪽의 역사문화광장. 

 

Altyn Mosque Complex.

 

떠나자.

 

8시 7분. 커다란 저수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멈추어서 둑 위에 올라 조망을 해본다.

 

喀拉巴什水库. 칼라바쉬 저수지이다.

 

곤륜산맥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의존하여 어렵게 생활하던 오아시스 마을이었던 곳이다. 인구가 늘고 생산활동이 활발해지자 각종 용수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였을 것이다. 결국 용수 공급을 위해 이렇게 거대한 저수지를 만들었다.

과거에는 보다 저지대까지 융설수가 흘러내렸었다. 항상 물이 흐르지 않고 가끔 홍수시에만 물이 흘러주어도 풀을 자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 초지에 의존하는 유목민들이 많았었다고 하다. 하지만 이렇게 물을 가두고 농업 용수로 이용하면서 주변의 반건조 지역에서 유목을 하던 사람들의 생존 기반이 망가져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특정 목적으로의 과도한 용수 이용이 다른 생활 방식을 갖고 있던 사람들 삶이 파괴되고 말았다는 이야기.

유목을 하던 사람들은 정부에서 정착을 도와준다고 주택을 제공했지만 농사지을 땅이 없어 결국엔 떠나버리는 것으로 예전에 시청했던 다큐멘터리는 마무리 되었었다. 그랬었다.

 

8시 24분. 영길사현, 잉사르에 도착하였다. 칼이 반겨준다.

칼의 동네 Yengisar Ka'er Waxidao Sales Exhibition Center(英吉沙咯尔瓦西刀展销中心)를 찾았다.

 

칼 만드는 집이다.

 

칼 만드는 장인이다.

 

1차로 가공된 칼이다.

 

위의 사진을 만드는 작업 과정이다.

 

포장된 칼이다.

 

멋진 칼이다.

 

고급진 칼이다.

 

탐나는 刀다.

 

두고 오기 아까운 칼이다.

 

하지만 통관될 수 없다고 확신을 준다. 할 수 없이 있던 곳에 그대로 두고 올 수 밖에 없었다.

 

양말 자랑하기.

 

10시 18분. 카스에 거의 도착해간다. 8월 1일에 인천 국제공항 3층 5번 게이트 E 카운터 앞에 집결하여 함께 출국 수속을 하고 비행기를 두 번타고 우루무치에서 자고, 8월 2일, 8월 3일, 8월 4일을 지나 8월 5일 밤에 버스 안에서 자기 소개하기 시간을 가졌다. 남사장님의 자기 소개 시간~ 소주는 병으로 마시구요~

 

10시 49분. 카스의 밤거리로 진입하였다.

 

실크로드 서쪽 끄트머리의 주요 도시 답다.

 

알롤달록. 

 

숙소는 치니크와 호텔. 새벽부터 오밤중까지 530km를 움직였다.

그냥 바로 푹 쉬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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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4일. 비록 버스를 이용하긴 했지만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다고 했던 타클라마칸 사막을 종단하였다.

GPS 기록을 보니 17시간 41분 걸렸다. 엄청나다. 우리는 문제가 아닌데 버스 기사 아저씨가 어찌 버텼는지...

735km 이동. 지도가 남북으로 길~다.

쿠처에서 출발하여 호탄으로 바로 가는 것이 원래 일정이었는데, 사정상 아라얼 시를 잠시 방문하고 사막으로 빨려 들어갔다.

 

 

6시 35분.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장거리를 이동할 준비를 하였다. 해가 뜨기 전부터 서둘렀다. 어제의 일정 때문에 다들 피곤할 터인에도 오늘의 일정 때문에 새벽 댓바람에 움직인다. 어느 분인가 제안했다. 국민 체조~ 시이작!

묵직한 몸을 풀고 하루 일정을 시작한다.

6시30분이 이른 시간이 아닌 것 같지만 이곳은 중국의 서쪽 끝부분이다. 중국은 국토는 큰데 표준시를 하나만 운용한다. 동경 120도. 우리가 위치한 곳은 동경 80도 부근이다. 베이징과 두시간 반 정도의 시간 차이가 실제로는 있는 것이다. 즉, 새벽 네시쯤에 해당한다는 것.

그렇게 출발했다.

 

7시 52분. 길가의 목화밭에 멈추었다. 목화 따는 아가씨.

열아홉 설레이는 꽃피는 가슴 / 강바람 산 바람에 검은머리 날리며 / 목화 따는 아가씨 

- 남진, 목화아가씨 중에서 -

 

마차 모는 아저씨가 쳐다보면서 지나간다.

 

9시 5분.

바람에 쉽게 움직이는 모래를 잡아두기 위한 광범위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모래 포집기. 모래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면 사막 식생의 정착이 이루어지고, 사구가 식생으로 덮이면 사막의 생태계가 변할 수 있을 것이다. 

 

버스에서 하차하여 모래 포집기 설치 현황을 면밀히 검토, 조사하고 있는 답사대원들.

 

각자 관심있는 연구 주제를 찾아 조사에 나서고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아라얼~호탄 공로.

 

어떻게든 식생이 뿌리를 내리면 그 주변의 모래 이동은 줄어든다.

 

9시 25분. 도로 주변의 식당가. 일종의 가촌이라 할 것이다. 타림대교 약 3km 정도 못미친 곳에 발달한 작은 촌락 가시칸촌(喀斯坎村)이다.

 

동네 주민들이 식당에 모여 식사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테이크 아웃 판매점.

 

화덕. 석탄을 연료로 사용한다. 연소를 도와주는 풍로들이 보인다. 옛날 옛적 손으로 돌리는 것을 사용했었는데, 이곳은 근대화, 산업화, 현대화 되었다. 전기 모터를 사용하는구나.

 

도로 주변의 식당가이다. 매대가 줄지어 설치되어 있다.

 

우리 일행도 식량 보급을 추진하고 있다.

 

건조 기후 지역에서는 빵을 대체로 '난'이라 하더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화덕이다. 불을 피워 예열된 화덕의 안쪽에 피자의 도우처럼 반죽하여 얇게 편 것을 던져 붙인다. 그렇게 익혀 나온 것이 난. 샀다. 우리의 점심 식량이라 했다.

 

고기는? 안샀다.

 

9시 43분. 타림 분지를 흐르는 타림강을 건너는 타림대교를 차에서 내려 걸어서 건너보기로 했다.

 

우리의 버스는 엉덩이를 까고 방귀를 끼면서 지나가고, 우리는 걷는다. 답사이다.

 

다리 위에서 다리 아래로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 흘러가는 세월과 세상과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듯한 얼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잡아두어보자꾸나. 찰크덕~

 

수심은 깊지 않을 것이다. 넓게 퍼져서 흐른다.

 

완전 흙탕물이다. 운반 물질이 많다. 강바닥에 퇴적물이 쉽게 많이 쌓인다. 그래서 좁고 깊은 골짜기 만들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넓은 평지를 이리저리 흐른다. 상류와 하류의 고도차이도 크지 않아 유속이 느리며, 수심은 얕고, 강폭은 넓은 그런 하천이다.

타림강은 곤륜산맥에서 발원하는 호탄강과 예얼창강, 천산산맥에서 발원한 카스거얼강, 퉈스한강 등이 합류하여 흐르는 강이다. 동쪽으로 멀리 뤄부포호(羅布泊湖)까지 흐르는 길이가 2,179km에 이르는 중국 최대의 내륙 하천이다. 건조 지역을 흐르기 때문에 물길이 중간에 말라버리거나 바뀌는 경우가 잦다.

 

 

상류에서 유입되는 유량이 많아지면 주변으로 범람하였다가 또 금방 빠진다.

타림강 주변에는 호양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호양나무는 사막의 건조하고 기온 변화가 심한 곳, 토양의 염분 농도가 높은 곳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무성한 가지와 잎새를 달고 잘 자라고 있어 현지 사람들은 호양나무를 "사막의 척추"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하 10m까지 뿌리를 내리고 염분을 함유한 지하수와 양분을 흡수할 수 있어 사막 환경에 아주 잘 적응한 식생이라고 할 수 있다.

위구르 인들은 호양나무를 가장 아름다운 나무라는 뜻을 가진 투오커라커(托克拉克)라고 부르거나, 황량한 사막에 우뚝 서 있다 하여 사막의 영웅나무라고 하기도 한다.

 

 

음.... 좀 더 있어야 빠질 것 같다.

 

타림대교를 건너 우리의 엉덩이 버스와 랑데뷰.

 

손씻고 청결한 상태로 탑승합니다.

 

10시 42분. 항상 일정한 유량이 흐르는 것은 아니지만 부근에 타림강이 있기에 강으로부터 수분을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녹색의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말라 죽은 나무들도 많다.

 

11시 49분. 아라얼과 호탄을 잇는 사막공로 안내 표지석.

주변을 답사하고 있는데, 승용차로 지나던 현지(?)인들이 와서는 함께 기념사진을 만들자고 했던 해프닝이 있었다. 아저씨들이었다.

 

아라얼 톨게이트 앞에서 회차하였다. 어제 한번 주저 앉은 적이 있는데, 임시 방편이었던 모양이다. 운전하던 기사가 차량의 상태가 불안하니 아라얼의 전문가에게 점검을 받자고 했단다. 사막 한복판에서 차량이 멈추면 일이 커지기에. 그래서 아라얼의 정비업체를 찾았다.

그 틈을 타서 답사대원들은 주변 일대를 개별적으로 답사하였다.

 

12시 28분. 수로가 길게 뻗어 있다. 나무가 줄지어 있다. 주변에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아라얼의 관개 수로였다. 타림강과 멀리 않은 곳이다.

타림강은 천산산맥의 융설수가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강이다. 키르기스스탄과의 국경선 부근에 위치하는 7,439m의 포베다 산(托木尔>峰)의 사면에는 장대한 곡빙하가 발달하고 있다. 만년설이 녹으면서 많은 물이 아커쑤를 지나 흘러내리는데, 그 물을 이용한 관개 농업이 성한 곳이 아라얼이다. 퉈무얼펑은 위구르어로 철산(鐵山)이란 뜻이다. 아라얼에는 농업용수로 이용하기 위한 저수지도 여럿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생리 저수지, 상유 저수지, 다랑 저수지 등의 규모가 크다.

 

 

아라얼의 수박밭. 수박들이 널려 있다. 건조 지역에서는 흐린 날이 드물어 일조량, 일조시수가 충분하기 때문에 물 공급만 이루어지면 농사가 아주 아주 잘된다.

 

도로 주변에 백양나무들이 빼곡하게 심어져 있다. 가로수이기도 하지만 도로를 따라 이어져 있는 수로를 햇볕으로부터 가려 그늘을 만들어주는 기능도 한다.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하여.

 

남사장님 얼굴에 수심이 보인다.

 

12시 50분. 그 수심이 해결되었다. 버스가 다시 무사히(?) 달리기 시작한다. 가즈아~

 

오후 1시. 다시 사막의 사구와 모래 포집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동을 멈추었다. 모래포집기를 다시 살피기 위해서도 아니고, 차량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오후 2시 20분.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멈추었던 것이었다. 식당이 없다. 타림대교 건너기 전의 마을식당가에서 구입한 난과 수박, 간단한 음료 등으로 타클라마칸 사막에서의 점심을 해결했다.

이 때 난 다른 분들 시야의 사각으로 빠져서는 근처 사구의 뒷편으로 이동했다. 누군가 따라오는가에 주의하면서. 사구를 안전을 위해 하나 더 넘어가서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혹시나 인원 체크를 하지 않고 출발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지만 그냥 우환을 풀어내었다.ㅠ.ㅠ

 

 

모래 포집 시설은 아무 곳이나 설치한 것이 아니라 사막을 종단하는 도로를 따라 양쪽 옆으로 일정한 폭으로 설치되어 있다. 바람에 모래가 날려 도로가 매몰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가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2시 55분. 다시 달린다. 강한 햇볕에 의해 아스팔트의 파손이 쉽게 이루어져 도로가 엉망이다. 복구 공사를 하기 위해 파손된 도로의 아스팔트 부분을 파내어 놓았다.

 

곧 구멍낸 곳을 아스팔트로 채워넣는 복구 공사가 이어졌을 것이다.

 

2시 57분. 모래포집기를 설치해 모래의 이동을 안정화시키고 식생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식생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물 공급이 필요하다. 가느다란 검은 선들이 보이는데, 물을 조금씩 흘려주는 관개용이 아닐까 추정한다. 그래서 풀과 나무가 녹색을 뽐내는 것이 아닐지.

 

3시 30분. 대부분의 모래포집기는 갈대를 이용했는데, 이곳에는 공업 제품을 이용하였다.

 

5시 13분. 다시 갈대 사용 부분. 하늘이 뿌옇다. 바람에 모래가 날리운다.

 

5시 30분. 모래 속에 지하수가 있다. 구덩이를 파놓으니 지하수가 스며나오고 있으며, 주변의 식생 정착과 성장을 돕기 위해 이 물을 사용할 것이다. 아마도.

 

하차하여 모래포집기가 설치되지 않은 그 넘어로 넘어가보기로 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래 위를 제대로 걷는다.

 

사구 윗쪽으로 올라오니 바람이 거세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홀로 걷는 여행자 1.

 

여행자 2.

 

여행자들. 바람이 불면서 사구 표면 위로 날아다니는 모래들을 볼 수 있다. 종아리가 따갑다.

 

바람에 불면 사구의 모양이 달라지고 위치도 달라진다.

 

사막 속에 고립된(?) 여행자.

 

햇볕은 차단하기 위해 모자를 쓰고, 썬글래스를 쓰고, 넥 워머를 두르고, 팔 토씨를 했다. 그런데 반바지로구나.

 

바람이 불어오는 사구 위에서 여러가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애를 쓰는 답사자.

 

바람이 계속 부는 곳에 있더니 영혼이 날아갔나보다.

 

 

사구의 모래가 도로 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는 것이 모래 포집기의 주 기능이라는 것이 보인다.

 모래포집기가 설치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모래 풍식 상태가 완연히 다르다.

 

6시 11분. 모래 포집기를 유지하고 관리하고 설치하는 요원들의 숙소인 것으로 보인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공로에 파견되어 그 관리를 맡고 있는 지구촌 용사들.

 

바람이 분다. 모래가 날린다.

 

6시 31분. 호탄을 향하여 계속 달린다.

 

6시 45분. 길가에서 놀고 있는 낙타들.

 

쌍봉 낙타. 자연산이다.

 

6시 47분. 모래가 바람에 심하게 날리운다.

 

8시. 버스 정류소일까?

 

8시 9분. 호탄으로 접어든다. 호탄강의 은총을 받은 녹색의 자연이 깔려 있다.

 

녹색의 자연에 염소들이 끼어 있다.

 

8시 14분. 호탄이 호탄인 것은 연옥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백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곤륜산맥에서 흘러내리는 호탄강을 뒤집어 엎으면서 옥을 찾고 있다.

겨울이 지나면서 빙하나 만년설이 녹으면서 홍수가 발생한다. 그때 곤륜산맥으로부터 물길을 따라 옥이 흘러 내려오며 그것을 찾는 사람들이 흑옥하, 백옥하에 바글바글한 것이다. 

 

 

저 속에서 제대로 된 옥 덩어리 하나 잡으면 인생 역전이다. 버스를 멈추고 싶다. 내려가고 싶다. 

 

저 사람들은 인생을 바꾸는데 나는 그냥 지나친다. 상대적 박탈감이 마구 다가온다.

옥 중에서 최고로 치는 것이 양지옥(羊脂玉)이란다. 양이 기름을 닮은 우윳빛의 매끈한 옥을 최고로 친단다. 비싼 것은 수억을 호가한다. 내려가 저들과 섞여 뒤적이다가 억대를 집어오고 싶었다.

 

 

8시 22분. 호탄 시내로 접어든다.

 

저 위의 곤륜산맥에서 호탄강이 흘러 내린다. 강물의 침식에 의해 옥 쪼가리가 흘러내려오고 그것을 찾는 옥 사냥꾼들이 호탄에 가득하다.

 

8시 38분 곤륜호 공원 입구의 패루.

 

9시 14분. 호탄 시내에서 곤륜 산맥 쪽으로 접으든다.  호탄 강의 상류 쪽이다. 옥 사냥꾼들에 의해 하천 바닥이 모두 헤집어져 있다.

 

9시 27분. 마이리크와트 고성을 찾았다. 입구의 마을에서 공정 여행을 일부 시행하고자 한다. 동네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운행하는 당나귀 마차를 이용해주는 것이다.

마을 이름도 고성과 같다. Milieke Wate 米列克瓦特.

 

뭔가 어설프지만 그게 재미일 것이다.

 

서너 명씩 나누어 여러 대의 당나귀 마차를 이용했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달린다. 사진이 증명한다.

 

여행사 창업을 꿈꾸는 정길씨는 오토바이로 따라온다.

 

우리 팀이 탑승한 마차의 운전 기사 아저씨.

 

대충 도착했다.

 

9시 54분. 买力克阿瓦提古城. 매력극아와제고성. 어렵다. 마이리크와트 고성이라고 한다.

 

저 멀리 보이는 흙덩어리가 남아 있는 고성의 흔적이라고 한다. 왜 저것이 다이고 별로 볼 것이 없다라는 이야길 했울까. 그리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을까. 지금 생각하니 아쉽다.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저기까지 걸어가볼 예정이다.ㅠ.ㅠ

그렇게 남아 있는 흔적이 거의 없기에 고성에 대해 거시기 한 것 같다. 1500년 전의 고대 호탄 왕국의 성으로 추정하는 정도이고 남아 있는 기록이 아무 것도 없다. 오죽하면 성의 정확한 이름도 알 수 없어 그냥 동네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까. 일본 학자들에 의해 처음 발굴된 이후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고 있다. 여기저기 조형물처럼 남아 있는 흙무더기가 모두 다라고 하니.

 

구글지도에서 위성 이미지를 찾아보았다. 마을 부근에 무엇이었던 것들의 흔적이 널려 있다. 유물이나 기록이 없는 유적의 한계일 것 같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여럿 오니 동네 아이들이 함께 한다.

 

호탄 시내의 외곽에 해당하는 작은 마을로 경제적 여건이 어렵다. 했다. 여러 대원들이 주머니와 가방을 열었다.

 

가만히 서 있었더니 찍혔다.

 

이 사진은 어디서 찍혔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찍힌 사진.

 

 

숙소에 든 시간이 12시 16분이다. 엄청나다. 버스도 힘들었고, 버스 기사님도 대단히 힘들었을 것이다. 장시간 장거리를 달리느라고.

호탄 시내 중심지에 있는 숙소이다. 곤륜호공원 인근에 있는 Mushitage Hotel 慕士塔格大酒店에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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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3일이 중국의 서쪽 오지 쿠차에서 밝았다.

단체 여행 중 버스 고장을 일단 한번 경험하고 일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염수계곡 - 키질 천불동 - 천산신비대협곡 - 마귀성 - 수바시고성으로 일정을 진행하였다.

 

 

9시 28분. 쿠차 반점. 숙소의 모습이다.

출발했다.

 

호텔 앞 거리의 일상. 지나는 사람들.

 

아침 담배를 즐기는 아저씨.

 

길거리를 정화하는 요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오토바이 한 가족.

 

토성의 흔적 같기도 하고...

 

10시 28분. 하차했다. 따로 일정이 있어서 내린 것도 아니고 주변에 궁금한 것이 있어서 하차한 것도 아니다.

 

버스가 멈추었기에 내린 것이다. 엔진이 멈췄다.

 

마차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움직이지도 못하는 내연기관 구동 자동차를 구경한다.

 

동네 아이들이 웃는다. 미소~

 

멈추었다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주변 동네 구경을 나선다.

 

수박 판매하는 노점상에 야전 침대에 책이 보인다.

 

뭔가 무서워지는 내용이다. 그림이 좀 살벌하다. 1종이 아니라 이종 격투기 공부를 하는갑다.

 

흙벽돌에 관심이 많은 총각.

 

황토 흙집에 관심이 많은 총각.

기온이 높게 나타나는 건조 기후 지역의 가옥은 보통 창문이 없거나 매우 작다. 외부의 뜨거운 햇볕과 열기, 모래 바람 등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다. 흙집 자체가 단열성이 크다는 것, 재료를 구하기 쉽다는 것 등의 요인도 흙집이 널리 나타나는데 영향을 주었다.

 

 

버스 엔진이 멈추었다. 수리점과 전화로 연락을 하려 했는데 실패하였다. 그래서 기사님이 뛰었다.

뛰어가서 모셔온 전문가들.

 

 

부르릉~ 엔진이 살아났다.

 

출발했다. 11시 30분. 쿠차 외곽에 있는 시설.

 

구글 지도에서 그곳을 찾아보았다. 인공위성 영상 이미지는 이렇다.

이곳에도 큰 놈들 세트와 작은 놈들 세트의 두 세트가 있다.

어제 우루무치에서 오다가 퉈커쉰현에서 본 것과 같은 모양의 세트이다. 뭘까?

구글 지도에 시설의 이름이 나오질 않는다.

 

눈에 익지 않은 땅모양이 보이기 시작한다.

 

야단지모. 雅丹地貌. 지표에 노출된 기반암이 침식 작용을 받아 만들어진 독특한 지형들에 대해 중국에서는 이런 이름을 붙이고 있다. 돈황 지방에도 가면 야단지모가 있다.

 

야단지모가 있는 동네로 쭈욱 달려 들어간다.

 

11시 40분. 염수 계곡.

 

습곡 작용의 결과.

 

좁은 계곡으로 광물질을 잔뜩 함유한 물이 살짝 흐르고 있다.

 

어마어마한 풍화 및 침식 작용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면서 인간들에 의한 자연 변형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무슨 공사중이었을지...

 

붉은 색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야단지모, 아단지모라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붉은 색 암석이 많이 있는데 햇볕이 강하여 사진에서는 흐리게 보인다.

 

붉다. 야단지모이다.

 

터널과 도로, 교량 공사중이었다.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기 위한 시설을 만들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10년 전이었으니 무엇이 만들어졌는지 이제 확인하러 가볼 만한 때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야단지모를 즐기는 사람들.

 

야단지모. 건조하기 때문에 계곡이라고는 하지만 물의 양은 많지 않다. 붉은 색이 강하다.

 

야단지모 지형에 이름을 붙였다.

저 안쪽에 있는 천산신비대협곡 안내판이다. 대충 보이는 모습이 티벳 라사의 포탈라궁을 닮았다고 치고 '포탈라궁'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포탈라궁을 가보질 못해서 닮았는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이동한다. 키질 천불동을 향하여 달린다. 길가에 보이는 염소들. 

 

12시37분. 길가에 보이는 키질 천불동 안내 표지석.

 

 

키질 천불동은 渭干河(Weigan River)가 흐르는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12시46분. 입구로 들어선다.

 

입장권.

 

입구를 통과하면 정면으로 승려 구마라즙께서 반겨주신다.

 

이 동네 龜玆國 사람이었는데 7세에 출가하였고, 대단히 똑똑하여 인도에 유학하여 이름을 날렸다. 귀국하여 국사가 되었는데, 중국에 납치되어 불경의 한역에도 힘썼다고 한다. 대단히 똑똑하고 불심이 대단하고 불경 번역도 대단하고, 하여간 모든 면에서 대단하신 분이었다는 말씀.

 

일정을 함께 해주신 스님.

 

절벽에 236개의 석굴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절반 이상의 훼손 상태가 심각하다. 이 석굴들의 특징은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아 불상이나 탱화가 중국화되기 이전의 인도풍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천불동 내부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눈으로 보기 기억한 것은 모두 사라졌다. 10년이 지나서 그런 것이다.ㅠ.ㅠ

 

기념 사진을 남기고 떠난다.

 

위간 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뽀인트에서 계곡을 조망할 기회가 있었다.

 

강변의 취수 시설일 듯.

 

계곡의 강물이 일종의 오아시스 역할을 한다. 그래서 녹지가 있고, 농경지가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조금이라도 더 넓게 보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높게 올라가야 한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이 '건조하다'.

 

보고, 기억하고, 사진으로 남긴다.

 

건조한 도로.

 

천산 신비 대협곡을 찾아 가는 길.

 

건조 지역에서는 간헐적인 폭우가 내리는 경우가 많다.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면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 여유 없지 지표의 낮은 부분을 따라 흐르기 때문에 홍수가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몰되어 파괴된 교량을 정리하고 있다.

 

4시 50분. 길가에 멈추었다.

 

건조 하천 지형과 빠르게 풍화, 침식 작용을 받고 있는 지형들을 답사하는 대원들.

 

계곡, 공사 차량.

 

신비대협곡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천산신비대협곡 앞쪽을 흐르는 강은 쿠처 강이다. 천산 산맥 안쪽에서 만년설이 녹은 물이 흘러내리는 것이다. 천산 산맥 속의 계곡에서는 어느 정도 유량이 유지되다가 평야로 나오면서 증발되어 사라진다. 쿠처로까지 이어져 선상지 지형을 형성하고는 유로가 사라져 버린다.

 

 

그랜드 캐년과 비교를 하려 하던데...

 

5시 8분. 天山神秘大峡谷 The Mystic Grand Canyon of the Tianshan에 도착하였다.

포탈라궁을 닮았다고 하던데, 과연 어디에?

 

안내 표지석.

 

입장권이 있으면 저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표를 나눠주지 않더라. 현지 가이드가 다 챙김.

 

그래서 들어올 수는 있었다. mystic은 할지언정 grand까지는 아니었더라.

 

구성 광물에 철분 계통이 많으면 산화되어 이런 색깔이 나온다 들었다.

 

앞에 서서 사진 하나 남겨본다. 게슴츠레. 대기와 암석의 열기에 녹아버린 상태.

 

천산신비대협곡은 쿠차 여행의 백미라고 불리운다.

 

사막의 태양이라 그런지 무진장 따갑고 뜨겁다. 후끈하다. 그 속에서 달구어진 돌들과 친해보려 하는 일행.

 

계곡은 계곡이다. 약간의 물이 졸졸 흐른다.

 

좁은 계곡을 이리 저리 두리번 거리면서 들어간다.

 

이 메마른 곳에도 식물은 버틴다.

 

도마뱀도 버틴다.

 

꽃도 버틴다.

 

남사장님도 버틴다?

 

현지 가이드 김정길 씨도 버틴다? 여행사를 창업하는 것이 꿈이라 했다.

 

그냥 떠나기 아쉽다. 또 다시 오기 어려우니 왔을 때 다 뽑아야 한다.^^

6시 50분. 또 멈추었다.

 

건조 지형이다. 진짜로 바짝 말랐다.^^

 

 

 

7시26분. 마귀성.

 

8시 26분. 도착했다.

 

수바시 고성에.

 

좋은 말이다.

 

1,6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쿠차의 쿠차 고성보다 더 먼저 만들어진, 쿠차 왕국의 옛 수도였다고.

이곳은 서유기 내용 중 여인국 이야기의 배경이 된 곳이라고 한다.

불경을 구하기 위해 해로를 통해 인도로 갔던 혜초가 육로를 통해 귀국하면서 이곳에 머물며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727년). 서역 원정의 주역인 고선지가 당대에 안서도호부가 설치되었던 이 동네 사람이었다고 한다. 다섯 차례의 서역 원정 대부분이 이곳에서 시작되고 끝났다.

 

성은 약간의 목재와 흙으로 건축되었다. 지금은 다 무너져가는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보호 대책을 마련하기도 어려운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성벽이 무너지면서 내부에 있던 목재 부분이 드러나 있다.

 

1600년의 역사가 쌓여 있는 곳. 스바시 고성.

 

9시30분경. 쿠처 시내로 들어와 전통 민속 공연을 겸하는 식당을 찾았다.

창지회족 민속 식당이다. 昌吉回民一鸡两吃, 이지 량치.

 

꼬맹이가 어머니의 공연을 돕고 있다. 귀요미~

 

숙소인 쿠처반점에 도착하니 11시 13분. 엄청난 시각이다. 중국은 베이징 기준의 표준시 하나만 사용한다. 동서 방향으로 긴 국토 모양을 갖고 있어 해당 지역의 생활에 맞게 여러 개의 표준시를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하나만 사용한다. 베이징에서 11시가 넘으면 깊은 밤중이지만 신장 지역에서는 여전히 야외 활동이 가능한 시간이다.

그래도 숙소에 들어 수고한 몸과 정신을 쉬게 했을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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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클라마칸 사막으로 점점 다가간다. 우루무치에서 육로로 달려간다. 우선 쿠차까지.

 

우루무치에서 출발하여 실크로드의 흔적을 찾으며 건조 기후 지역의 경관과 문화를 즐겼다.

이동 경로는 아래 지도에 표시된 것과 같으며 정차하여 뭔가 한 것을 가능한 모두 표시하려 애썼다.

10년 전의 기억을 파내었다.

17시간 반을 이동하였다. 일찍 출발하여 늦은 시간에 쿠차에 도착하였다. 이동거리는 787km였다.

 

 

숙소인 Friend Holiday Inn.

friend를 "福兰德"으로 음차한 것 같다. 假日이 holiday, 酒店은 호텔.

호텔 앞 거리의 아침 풍경.

 

시장으로 나서는 상인들 같다.

 

和田街. 7시 8분.

 

7시57분. 풍력 발전구를 조망할 수 있는 주차장에 정차하였다.

风力发电厂停车区. 눈앞에 어마어마한 숫자의 풍력발전기가 깔려 있었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 올라 조금이라도 더 멀리 더 넓게 보고자 하는 마음들.

 

WC가 있다.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ㅎㅎㅎ 전통적인 화장실이다.

이용하는 사람들만 있고, 청소나 관리하는 사람은 없던 것으로 보이는 상태.

 

풍력 발전기 앞에 서 있는 커다란 글자, . 강한 바람이 지속적으로 부는 지역이기 때문에 이 지역을 '바람의 저장고'라고 부를 정도라고 한다. 우루무치에서 투루판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풍력 발전기가 깔려 있다.

 

풍력발전구 주변에 우루무치 최대의 호수인 차이워바오 호수(柴窝堡湖)가 있다. 멀리 보이는 차이워바오 호수를 뒤로 하고 출발한다. 바로 부근에 있는 염호(盐湖)가 있다.

 

염호로 접근하는 입구 부근의 길가에 정차했었다. 왜 했을까???

 

멀리 염호가 보인다. 소금호수. 건조 기후 지역의 분지에 있는 호수이기에 유입되는 물이 증발되면서 형성된 것일 것이다. 건기에 삽질하면 소금이 그냥 나오는 곳이다.

 

9시5분. 멀리 보거다펑(博格达峰)의 봉우리들이 보인다. 5,445미터. 반대편에 만년설이 녹은 물이 고여 형성된 천산 천지 호수(天山天池风景区)가 있다. 근사한 곳이다. 2006년에는 그랬다.

 

길가에 보이는 공장들.

 

10시18분. 托克逊县을 지난다. 멀리 보이는 발전소. 조금 큰 것과 작은 것의 두 세트가 마을 외곽에 건설되어 가동중이다.

 

10시24분. 건조하고 햇볕이 강한 환경이기 때문에 포장도로의 노면 파손이 잦다. 자주 망가지고 언제든지 수리하고..

 

11시45분. 궁금하면 언제든지 차를 멈춘다. 언제까지 어디에 도착해야 한다는 패키지 여행의 기본 룰 없다.^^

메마른 건천의 모습이 보여서 정차했다. 너무 너무 뜨겁기에 버스도 뜨거운 엉덩이를 열고 달린다.

 

G314 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작은 하천.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다. 

 

비가 올 때만 일시적으로 물이 흐르는 와디. 계곡의 반대쪽 언덕은 바람에 날려온 모래로 덮여 거대한 사구처럼 보인다.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와디는 건조 기후 지역에서 교통로로 흔히 사용된다고 한다. 이 하천의 바닥도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골짜기의 아랫쪽으로 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물이 흐르기도 한다는 흔적이다. 그렇기에 초록색이 보이는 것이다. 농사 가능!

 

12시 49분. 그리운 화장실을 찾았다.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공공 변소.

 

일행 중 한 분과 함께 연출 사진. 화장실의 상태 확인용.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상점도 있다.

 

그리고 백성들을 떨게 하는 공안도 있다. 오가는 모든 차량을 기록하고 검사한다. 트렁크 내부까지.

 

과거의 실크로드이다. 지금은 쇠붙이 차량들이 대신 달린다.

 

공사 중인 곳이 많아 공사용 중장비의 운송도 많다.

 

1시44분. 창길 회족 마을에 도착했다. 길가에 보인 근사한 식당으로 찾아든다. 현지 여행사와 일정 조율이 곤란한 지역이라 현지 가이드가 사전 답사하여 미리 메뉴를 골라 예약하는 등의 절차를 맞출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찾아 들어가 그냥 원하는 메뉴를 골라 먹었다. 반미옌에 반했다. 拌面이라고 간판에 써 있다.

맛 있었다. 추가 주문하여 곱빼기로 먹었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역시 반면의 모습은 사진으로 남아있지 않다.ㅠ.ㅠ

 

화물차에 짐을 최대한 많이 싣기 위해 뒷쪽으로 꼬리를 만들며 하적한 차량들이 많이 보인다.

 

4시 40분. 쿠얼러의 철문관에 도착하였다. 사랑으로 반겨준다.

 

역시 실크로드의 거점이었을 듯 싶다. 물이 흐른다!!!!

멱도 감는다!!!!

 

철문관 입구의 패방 혹은 패루.

 

철문관 주변 안내도.

 

근사한 방문자 센터.

 

메마른 대지만 보다가 물과 녹색을 보니 딴 세상에 온 것 같다. 물론 딴 세상이 맞다.

孔雀河의 물길이다. 저쪽으로 흘러간다. 멀지 않은 곳에 저수지가 있고, 그곳에 발전 시설이 있다.

 

 

철문관은 천산 산맥 남쪽의 타림 분지로 들어서는 중요한 길목이자 군사 요충지였다. 그래서 진나라(265~420) 때부터 이곳에 방어를 위해 관문을 설치했다 한다. 거의 사라지고 성벽 쪼가리 조금 있는 것을 중국 정부에서 돈을 들여 복원해 놓았다.

복원해 놓은 철문관인데, 하하하...

 

 

철문관경구경점분포시의도. 철문관 주변의 볼거리들이 여기 저기 있다.

 

철문관은 Holoshan과 Ku Lu Ke Ta Shan 사이에 위치한다. 실크로드와 신장 지방의 중심지이다. 이곳에는 가게가 많다. Tayr와 Zohra 사이의 슬픈 이야기가 아직도 전해 내려온다. 아직도 훌륭한 왕 장군에 의해 수력 발전소가 1952년에 만들어졌다. 철문관은 아름답고 경치가 근사한 곳이 많으며,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쿠얼러의 명소이다.

 

공작하를 따라 걸으며 고대 실크로드 대상의 기분을 내본다.

 

 

기념 사진. 주변 경관에 사진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빨간 글자.

 

쿠얼러에서 관광지로 찾을 곳이 이곳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여행자들이 찾는 곳이 아닌가... 한다.

 

전력 시설 건들지 마시오 하는 경고.

5시20분. 떠난다.

 

쿠얼러는 바인궈렁 몽골 자치주(巴音郭楞蒙古自治州)에 속한다. 

 

G314 고속도로에서 쿠동공로로 들어선다. G314 도로를 통해 쿠차로 계속 달려도 되었는데, 왜 우회했는지는 모르겠다.

도로의 통제소.

 

도로를 차단하고 있다가 허용된 차량이 지날 때면 손으로 직접 차단기를 올려준다. 참 친절하다. 

차단기에 "油田 뭐라뭐라" 써있다. 유전 지대 보호를 위해 통제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7시10분. 신나게 달리다가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도로변에 차를 세운 것이 아니라 그냥 도로에 세운 것이었다. 그래도 괜찮다. 다른 차량들의 이동이 거의 없다.

버스에서 내려 주변의 건조 지형 경관에 대해 탐구하다.

 

학술적인 연구과제가 될 수 있는 독특하고 일반적인 건조 기후 지역의 지형 경관들이 나타난다.

 

8시7분. 천산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융설수를 이용하는 오아시스 마을인 룬타이현 인근이다. 염도가 높더라도 물이 있기에 식생이 번성하고 있다.

 

 

8시37분. 길가의 수박 노점 매장. 탑리목로.

 

뜨거운 동네를 하루 종일 달렸다. 시원한 수박을 먹어도 될 정도이다.

 

수박 먹는 시간.

 

멈춘 김에 동네 구경도 한다.

 

목화밭~ 목화밭~ 코튼 필드~

 

실크로드의 중요한 교통 수단인 오토바이. 때 빼고 광 낸다.

 

수박이 이렇게 생겼다.

 

9시 31분. 멀리 기름을 퍼내는 펌프가 작동 중인 것이 보인다.

 

불도 붙었다.

 

도로에 가까운 곳에서도 펌핑~

 

쿠차에 밤 늦게 도착했다. 

대반점 귀빈루에서 이틀을 신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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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관련 여행을 네번 쯤 갔다. 그 중에 제일은 타클라마칸 사막이었다. 

 

10년 전인 2010년 8월 1일 새벽 같이 집을 나섰다. 노원구 백병원 앞에 있는 공항버스를 이용했다.

6시12분 출발로 기록되어 있다. 1시간 12분, 77km를 달려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내의 식당가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전주비빔밥 집에서 8500원짜리 해물순두부찌개를 먹었다는 영수증이 남아 있다.ㅎㅎㅎ

 

타클라마칸 사막을 종단하기 위해 중국의 서부 내륙 거점 도시 우루무치로 날아갔다. 광저우를 경유하여서.

 

인천 국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했다. 비행기 타러 간드아~~~ 9시40분 정도에 출발했다.

중국남방항공을 이용했다. 인천에서 광저우까지 CZ340편. 3시간 35분 동안 2,247km를 날아갔다.

 

광저우 공항에 도착해서 환승 수속을 위해 이동한다.

 

중국남방항공의 비행기가 창밖으로 보인다.

 

게이트 앞의 좌석에 앉아 우루무치 행 비행기의 보딩을 기다린다.

 

광저우에서 환승하여 우루무치로 날았다. CZ6888편. 현지 시간 3시30분 정도에 출발했다.

역시 중국남방항공을 이용하였으며, 5시간 50분 동안에 3,681km를 날아갔다.

 

현지 시간 8시10분. 우루무치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 수속을 마치고 나와 현지 가이드와 접선하였다. 행운국제여행사 신강지사에 근무하는 김정길씨였다. 듬직한 체구의 잘 생긴 아저씨.

 

 

현지 시간 10시38분. 우루무치 시내. 사람 참 많다.

 

숙소는 福兰德假日酒店, Friend Holiday Inn. 8월 1일에 묵었고, 카스에서 돌아오는 8월 7일의 숙소도 같은 곳이었다.

부부가 함께 오려 했고, 신청도 그리 했으나 출발 보름 전에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같이 오지 못했다. 많이 아쉬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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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9일 화요일. 집에 가는 날이다.

이스탄불에서 숙소를 출발하여 돌마 바흐체 궁전을 방문하였다.

되돌아와 갈라타 다리 인근의 이집트 바자르를 답사하였다.

점심 먹고 아야 소피아를 답사하고, 지하 저수지를 살폈다.

그리고 공항으로, 그리고 인천으로, 그리고 집으로 갔다.

 

이스탄불 시내에서의 마지막 날 여정이다.

 

터키 현지 여행사에서 나누어준 지도. 이스탄불 부분.

 

9시 10분. 돌마 바흐체 궁전에 도착하였다.

 

나라의 지도자가 나라를 어떻게 단기간내에 절딴낼 수 있는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 나라 운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사례를 잘 살펴 공부하고 배우고 익히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데, 나라를 절딴내는 사람들은 이런 사례를 공부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는 절딴낸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이를 만회하겠다고 서구화를 추진하고 국력 쇄신을 꾀하였다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국력 쇄신이라는 것이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자신의 궁전을 초호화판으로 신축하는 것이 무슨 국력 쇄신이었단 말인가.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망해가는 나라에서 남은 모든 재화를 사용하여 짧은 기간에 산화해버린 제국, 그 제국의 황제. 한심하다.

 

그 현장에 도착했다. 잘 둘러보자.

 

시계탑 앞에서. 시계탑이 중요하므로 시계탑에 사진의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 앞의 인물들은 그냥 지나가는 A, B, C.

 

돌마 바흐체 궁전에서 한 컷.

궁전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부 사진이 하나도 없다. 여러 방을 지나면서 여러가지를 보았다는 것까지만 기억난다. 다시 가자....

 

10시55분. 갈라타 다리 남단으로 건너왔다. 비둘기가 몇 마리인지 세어보자. 하나, 두울, 세앳, 네.....

 

비둘기 많다.

 

10시 57분. 이집트 바자르로 입장한다.

 

이집트 바자르에서 구경 및 쇼핑 시작~

 

다양한 간식~대추야자도 있다~

 

밖으로 나와서 터키 이스탄불의 눈발을 맞아보자.

 

건어물 상가.

 

견과류 상가.

 

과일 상가.

 

장신구 상가.

 

향료 상가.

 

이집트 바자르.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많은 상품들이 오간다.

 

악수와 인사도 오간다. 나슬스느즈? 네렐리 시니즈?

 

11시 38분. 갈라타 다리에 올라와 즐긴다. 멀리 뒤로 쉴레이마니예 모스크가 보인다.

 

갈라타 다리 위에서 낙시를 즐기는 사람들. 그옛날 무스타파 케말 파샤 아타튀르크도 대통령궁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어부 복장을 하고 이들 틈에 끼어 민정 사찰을 자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갈라타 다리 위에서 갈라타 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다.

 

Haliç라고 나온다. 번역은 '금각만'이라 나온다. 뭔지 모르겠다. 여튼 갈라타 다리 아래의 만 안쪽에는 물고기를 잡아온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다. 그리고 바로 노점상에서 고등어 케밥을 만들어 판매한다.

 

12시. 다시 관광 안내소 주변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비둘기는 많다. 징그럽다. 다시 이집트 바자르로 들어가보았다. 다른 일행들을 찾을 수가 없다. 다들 어디 숨어계시는지...

 

1시 15분. 점심을 먹으러 식당엘 왔다. GPS data logger를 또 차에 두고 내렸다. 그래서 정확한 식당 위치를 추적하기가 난감하다. 여튼 식당에서 점심 먹었다. 무엇인가를...

 

1시 47분. 아야 소피아 앞에 섰다. 성 소피아 박물관.

 

입장권도 손에 쥐었다. 앞면과 뒷면.

 

들어왔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25년에 창건한 성 소피아 성당이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 의해 532~7년에 확장 개축되었다. 하지만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들어서면서 모스크로 변신되었다. 성당 내부의 성화 위에 회칠을 하고 이슬람 식으로 장식되었다. 회칠을 벗겨내고 원래의 성화를 되살리는 복원 작업을 하다가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가 공존하는 현장인 것이다.

 

진짜?

 

좀 복잡하다.

 

그래서 지금은 성당도 아니요 모스크도 아닌 박물관으로 명명되어 있다.

 

복원? 훼손? 된 성화.

 

아야 소피아 박물관에 왔던 사람들. 2008년에...

 

조금 큰 놈이 조금 작은 놈한테 장난을 거니까 지나가던 터키 사람이 폭행인줄 알고 말리려 든다. 테쉐큐르 에데림~

 

3시 25분. 지하 궁전의 지하 물저수지를 찾았다. 예레바탄 사르느즈.

 

입장권. 앞면과 뒷면.

 

지하 궁전. Yerebatan Sarayi.

 

외부의 공격을 자주 받았기 때문에 장기간 고립될 때를 대비하여 이런 시설이 만들어졌다.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시대에 건설되었으며, 폭이 70m 길이는 140m이다. 1985~88년에 개축되었다.

 

조명과 함께 음향 효과를 주어 그럴듯한 분위기가 난다. 관광객을 위한 싸비스.

 

양 구석 기둥의 받침은 메두사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꺼꾸로.

 

길가에 군밤을 팔더라. 아들은 돈도 내지 않고 달려든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인줄 알던 때.

 

소피아 박물관 앞에서 차량을 기다린다.

 

 

공항까지 30분. 

 

수속을 마치고 탑승까지 시간 여유가 있었고 누군가 배고프다고 했을까? 이런 영수증이 남아 있다. 파스타를 공항에서 사먹었단다.(별 것을 다 보관하고 있었구나.)

비행기표. 오고 가고 모두 대한항공을 이용했다. 1월 19일에 KE955편으로 갔다가, 1월29일에 KE956편으로 귀국했다.

1월 29일. 이스탄불에서 귀국하는 비행기는 11시에 출발하였다. 10시간 조금 더 넘는 비행 시간. 

1월 30일 오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헤어져 집에 왔다. 다시 가고픈 리스트에 드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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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 월요일이다. 블루 모스크라고도 불리는 술탄 아흐멧 모스크를 방문하고 크루즈 선을 하나 전세 내어 보스포루스 해협을 돌아보았다. 날씨가 좋지 않아 좀 많이 아쉬운 하루였다. 하선하여 점심 식사 후에 톱카프 궁전을 탐방하고 그랜드 바자르를 방문하였다. 

아야 소피아의 야경을 즐기기도 했다.

 

9시. 술탄 아흐멧 광장. 술탄 아흐멧 모스크 앞에 있다. 게르만 분수에서부터 일정을 시작한다. 

 

터키 현지 여행사에서 나눠준 지도의 이스탄불 확대 부분.

 

게르만 분수는 16세기 후반 오스만 투르크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오벨리스크가 둘 서 있다. 이짝이 데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저짝이 콘스탄틴 오벨리스크.

 

지중해성 기후. 겨울에 비가 내리면 쌀쌀하다.^^

 

데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와 술탄 아흐멧 모스크의 미나렛.

 

데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는 로마의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이집트의 룩소르에서 훔쳐온 것이다.

 

이놈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있는 여행객.

 

9시 27분. 술탄 아흐멧 모스크.

 

들어가보자.

 

들어왔다. 비온다.

 

신발을 벗어야 한다. 둘 곳이 없으니 비닐봉투를 이용한다. 물론 끊임없이 재활용된다. 새거 없다.

 

국제공항의 귀국행렬 같다. 면세품 봉투 하나씩 든 것 처럼 보인다.

 

어두운 실내에서 더 잘 보이는 스테인드 글라스.

 

술탄 아흐멧 모스크를 블루 모스크라고 부르는 것은 내부를 푸른 색의 타일로 장식하였기 때문이다.

푸른 색 타일을 찾아보자~

 

천장은 돔 형태의 지붕을 반영하고 있다.

 

그대 술탄의 꿈을 꾸고 있는가?

 

블루 모스크 밖으로 나왔다.

 

함께 모여서 한 컷.

 

두번 째 일정은 크루즈~

Salıpazarı Port에서 전세낸 크루즈 선에 탑승하여 흑해 쪽으로 쭈욱 가다가 Rumelihisarı 요새 부근에서 배를 돌려 귀항하였다.

 

10시 반. 탑승한다. 큼지막한 배. 전세냈다. 우리 일행 밖에 없다. 날씨가 안좋아 다른 사람들이 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전세내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타지 않은 것일 것이다. 아마도.

 

출항한다. 안전벨트 안매도 된다.

 

큼지막한 시계탑이 보인다. 돌마 바흐체 궁전 앞에 서있는 것이다.

 

'가득 찬 정원'이라는 뜻을 가진 돌마 바흐체 궁전. 

 

막대한 건축비로 인해 왕실 재정을 악화시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멸망을 초래한 궁전이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인지 내일 보자꾸나.

 

멀리 보스포루스 대교가 보이기 시작한다.

 

해협을 왕래하는 큰 배.

 

작은 배.

 

보스포루스 대교의 서안 쪽에 위치하고 있는 뷔윅 메지디예 모스크.

 

2008년 당시 아주 낡은 건물이었다. 2020년에 찾아보니 흔적이 없다. 철거하고 다른 건물을 올린 것 같다.

 

보스포루스 대교 밑을 지난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마르마라 해와 흑해를 연결한다. 길이가 약 30km, 넓은 곳의 폭이 3500m, 좁은 곳은 700m 정도이다. 물의 흐름은 상당히 세차다고 한다. 보스포루스 대교는 길이가 1510m인 중력 고정형 현수교이다. 현수교를 지탱하는 두 현수교 사이의 거리는 1074m이고, 첨탑의 높이는 105m이다. 197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3년 만에 완공하였다.

 

근사한 요트이다. 무슨 사연이 많은 배였는데, 그 사연들이 기억에 없다.ㅜ.ㅠ

 

11시 9분. Rumelihisarı 요새에 접근한다. 멀리 보스포루스 해협을 횡단하는 두번 째 다리 Fatih Sultan Mehmet Köprüsü Asya Geçişi가 보인다. 정복자 술탄 메흐멧 대교.

 

수위 변동이 크지 않아 물가에 이렇게 예쁜 집들을 짓고 산다. 부잣집들.

 

급경사의 사면을 따라 집들도 층층이 만들어졌다.

 

아드님은 구경보다 닌텐도에 더 바쁘시다.

 

12시 10분. 점심 식사를 위해 Tamara 레스토랑을 찾았다.

 

실내 조명이 예쁘다. 음식 사진은 없다. 케밥이었을 것이다.

 

Tamara 레스토랑 옆집 식당. 터키 국기과 태극기가 함께 걸려 있다. 웬 일?

 

1시 9분. 톱 카프 궁전 앞에 도착했다.

 

톱 카프 궁전은 1453년에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멧이 이스탄불을 차지하면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4세기에 걸쳐 꾸준하게 확장되었다. 술탄과 가족이 거주하면서 5만여 명의 군식구들도 함께 살았다고 한다.

 

입장권을 받았다. 앞면과 뒷면. 

 

각자 한장씩 입장권을 들고 들어간다.

 

들어와서 입장권의 글자들을 읽어보고 있는 일행들.

 

술탄이 사신을 맞는 장면. 뭔가 잔뜩 싸들고 와서 받아달라고 하는 것 같다.

 

근사하기는 하지만 실생활에서 사용하려 하면 너무 불편할 것 같다. 

 

커다란 솥. 식구가 많았으니 끼니 때마다 만드어지는 요리의 양도 어마어마 했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탐내는 눈빛?

 

아하~!

 

이것을 탐내는건가? 금빛나는 물건.

 

3시 9분. 밖으로 나오니 노점상 아저씨들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3시 23분. 그랜드 바자르를 방문한다.

 

대규모 시장이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판매하는 신기한 것들에 넋이 나간 여행객들.

 

너무 다양한 상품들이 정신없게 진열되어 있어 정신이 없다.

 

7시. Seven Hills 카페 레스토랑을 찾았다. 아야 소피아의 야경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식당이다.

 

진짜로 기가 막히게 좋은 조망을 가진 곳이다.

 

야경이라 화이트밸런스를 잡기가 어렵다. 이건 좀 괜찮다.

 

해협 쪽은 이렇게 보인다.

 

아야 소피아 앞쪽에서 잡아보았다.

 

그렇게 식사도 하고 구경도 하고 쉬기도 하고 하고 하다가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

하루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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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일 일요일이다. 부르사 시내 투어를 하고 이스탄불로 이동하였다. 5시간 반 예정. 그런데 일정을 바꾸어 게브제로 페리를 이용하여 건너갔다. 이동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마르마라 해에서 내륙에 위치한 부르사는 인구 160만 명의 대도시이다.

1326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첫번째 수도였다. 그래서 이 도시에는 오스만 투르크 식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부르사 시내. 케르반사라이 온천 호텔에서 출발하여 오스만 가지의 묘를 살폈다. 울루 모스크를 거쳐 예실 모스크 방문. 그리고 점심 식사를 하고 이스탄불로 향했다.

 

8시 50분. 하룻밤 신세진 카라반사라이 온천 호텔 주변을 어슬렁거려본다.

 

호텔 바로 앞에 전통 터키탕이 있다. Eskteli Kaplıca Armutlu Hamamı.

 

로비에서는 비지니스에 바쁘다.

 

9시. 출발 준비.

 

9시 19분. 오스만 가지, 오르한 가지의 묘에 도착하였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입장 개시!

 

사정이 이렇단다.

 

부르사 통치자들의 묘이다.

 

이쪽은 오스만, 저쪽은 오르한 가지의 묘이다. 옆에 가까이 나란히 있다.

 

바로 앞 공원에 있는 대포알 탑.

 

9시 33분. 울루 모스크에 도착하였다. '울루'가 터키어에서 '크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커다란 모스크 되시겠다.

 

역시 크다.

 

들어왔으니 찍고.

 

돌아다니며 구경한다.

 

모스크는 신을 만나는 공간이다. 그래서 들어갈 때는 세속의 때를 벗기고 들어가야 한다. 손, 발을 씻는 곳.

 

부르사 울루 모스크 앞에는 커다란 '가지 오르한' 공원이 있다.

 

분수대를 예쁘게 잘 조성해 놓았다.

 

설마 분수대 속으로 뛰어든다고?

 

10시 13분. 부르사를 '녹색의 부르사'라고 부르게 된 곳에 도착하였다.  나무와 공원이 많아 녹색의 색깔을 확인할 수 있기도 하지만 녹색 모스크(Yesil Cami, 예칠 자미: 자미가 모스크를 뜻한다.) 때문이다.

 

예칠 자미. 예칠 모스크.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예칠 자미도 역시 신자들은 정갈하게 씻고 들어간다. 늘 보는 이들이니 모두가 친구일 것. 담소를 나누며 대화를 즐긴다.

 

내부가 어두워 전등을 켜 놓았다.

 

여자는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게 스카프로 가려야 한다고 한다.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 문제가 언제 쯤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학자.

 

모스크는 어떠한 살아 있는 것으로도 장식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꾸란의 문구나 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아라베스크 문양을 이용하고 있다.

 

녹색 타일로 장식한 녹색 모스크.

 

입구의 길가에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노점상들이 자리잡고 있다.

 

어떤 대도시의 상징이 된다는 것은 그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인 것이다. 그러한 것을 구경하였으니 뿌듯함이 얼굴에 잔뜩 들어 있다. 아마도.

 

우리를 싣고 갈 버스님께서 오시길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

 

11시 13분. 도로 한가운데의 돌멩이에 어떤 아저씨가 올라서서 손짓하고 있다.

이곳에 왜 정차했었을까? 모르겠다. 바로 옆에 "Kitapcim.biz" 서점이 있던데 그곳을 방문했던 것일까?

 

11시 28분. 셀주쿠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점심을 해결할 곳이다.

 

음식 사진이 아니라 접시 사진만 남아 있다. 케밥이었겠지 머....

식사를 마치고 부르사를 떠났다. 다섯 시간 반의 달리기를 시작했다.

 

 

Topçular Feribot İskelesi를 이용해 만을 가로질러 게브제로 건너갔다.

페리이므로 버스를 통째로 싣고 건너간다.

 

그렇게 출발한다.

 

애기도 타고 건너간다.

 

갈매기가 따라온다.

 

선실로 들어가 쉰다.

 

그렇게 건너간다.

 

2시 52분. 게브제 쪽 언덕의 집들이 보인다.

 

그렇게 달렸다. 버스에서 잠깐 졸았는데, 이스탄불이다. 3시 28분.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갈라타 타워를 오르고 탁심 거리를 걸었다.

 

3시 52분. 갈라타 타워를 오르기 위해 하차하여 걷는다.

 

일방통행 유도 구조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차량은 그냥 지나가면 된다. 왼쪽에서 진입하면 바퀴가 다 터질 것 같다. 미친 인간이 아니고서는 역주행을 하지 않을 것이다. 강력하다.

 

갈라타 탑이  보인다.

 

이렇게 생겼다.

 

 

갈라타 탑의 입장권. 뒷면과 앞면. 비잔틴 제국 시절인 528년에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탑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탑에 오르면 이스탄불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아야소피아가 보인다.

 

블루 모스크도 보인다.

 

접시 안테나들도 잔뜩 보인다.

 

4시 58분. 탁심 광장. 바로 옆의 Maksem cami 모스크.

 

이스탄불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라는 탁심 거리를 걷는다. 케밥이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탁심 거리에 어둠이 내린다.

 

탁심 거리를 즐기는 행인들.

 

전차도 다닌다.

 

지하철 개찰구까지의 체험.

 

5시 47분. 맞나?

탁심 광장엔 커다란 터키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공화국 조형물도 있다던데... 못보았다.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에서 쉬었을 것이다.

누루오스마니예에 있는 Hotel Amir에 묵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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