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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에 날짜들이 휘이익 날아갔다. 벌써 5월 25일이 되었다. 집 떠난 지 열 밤이 지났구나.

5시 50분에 기상하여 7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호텔 밖으로 나섰다. 동네 구경을 해본다. 좁은 도로의 양쪽이 모두 주차 공간으로 이용되는 곳. 길가에 주차된 차량의 상태를 보니 좀 오래 운행을 안한 것으로 보인다. 지하 주차장이 없으니 이런 새의 테러를 감수하며 살아야 하는 동네인갑다.

 

그동안 여정을 함께 하면서 유독 자주 같은 테이블을 사용하였던 멋진 분들을 만났다. 지난 밤에 아크로폴리스를 한바퀴 도셨다고 하네. 이제 길을 아시는 분들이시다. 안내를 해주시기에 따라 나섰다.^^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에서 아크로폴리스를 조망하고는 계속 걸어서 한바퀴를 돌았다. 상쾌한 아침 운동이 되었다. 약 1시간 정도 걸리더라.

 

가장 아름다운 극장이라고 하는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의 입구 부분이다.

 

8시에 아크로폴리스를 개장한다. 개장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줄을 서고 있다. 햇살이 뜨거워지기 전에 관람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었다.

 

아크로폴리스 서쪽에 있는 작은 언덕인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에서 아크로폴리스 방면으로 본 모습. 아레이오스 파고스와 아크로폴리스의 두 언덕은 모두 석회암 덩어리이다.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은 아크로폴리스의 야경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일 것으로 생각된다. 곳곳에 지난 밤 젊은이들이 이곳을 즐겼던 흔적(쓰레기들)이 널려 있더라. 그 동네 아짐씨가 도와달라 하여 아테네 정화 봉사활동을 의도치 않게 하기도 했다.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은 법정으로 이용되었던 곳으로 주로 살인 사건을 다루었다. 이런 상태가 그대로 법정이었던 것은 아니고 석재를 이용해 단의 형태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천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모두 파손되고 원래의 기반암이 그대로 드러난 것일게다.

하늘을 보니 오늘 하루도 매우 뜨거울 것 같다.^^ 

이곳은 51년에 사도 바울의 설교가 이루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언덕 아래에 설치되어 있는 아래 석판에 그의 설교 내용이 새겨져 있다. 심판을 하겠다는 내용이니 일독을 권해본다.^^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헤파이스토스 신전'과 그 앞쪽의 '아테네의 아고라' 유적.

 

아크로폴리스를 한바퀴 산책하는데 총 1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고 바로 걷기만 하면 40분 정도에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어 다음에 다시 또 걸어보기로 다짐했다. 다짐을 했다. 다짐!

 

숙소 앞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햇볕이 있어야 사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햇볕을 받기 위해 베란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단다. 집의 크기는 작아도 돌출된 베란다가 모두 설치되어 있으며 또 너무 강한 햇볕을 차단하기 위한 차양막을 설치하고 있다.

좁은 골목에는 소형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다. 동네 사람들이 출근하지 않는 날이다.^^

 


9시 반에 로비에 집합하였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서 오전 일정을 시작하기로 하였는데, 숙소에서 가까운 곳이기에 버스를 타지 않고 그냥 걸어 가기로 했다.

숙소 부근에 위치하고 있던 주유소이다. 따로 넓은 공간을 마련할 수 없는 동네이기 때문에 아파트 건물의 1층을 주유소로 이용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예전에 사용하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아크로폴리스 위에 위치한다. 공간이 좁아 아크로폴리스 아래에 큼지막하게 새로 지었다. 그런데 땅을 파면 여러 시대의 유적이 나오는 동네라 함부로 팔 수 없었다. '새' 박물관의 위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할 수 없이 파서 유적을 박굴하고 유적지 위에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박물관을 건축한 것이다. 공중에 떠 있는 셈이다.

서울시 종로구의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건물의 지하층으로 유지되는데 이 박물관은 아예 그냥 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직원이 밖에 나와 단체 예약 관람객 팀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단체팀과 개인들이 들어가는 문이 서로 다르다.

 

박물관 입구를 들어가면 가방을 모두 보관해주는 서비스를 해준다. 즉, 모두 맡겨야 한다는...

각 시기별로 아크로폴리스의 변모 과정을 보여주는 모형이 제작, 전시되어 있다.

 

그리스 역사와 신화, 문명에 대한 학구열을 불태우는 관람객들. 아크로폴리스 주변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대부분은 레도데스 아티쿠스 극장 일대에서 발견되었다.

 

BC 30세기에서 6세기 사이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1956년 오래된 우물에서 발견된 로마 시대의 나이키 조각상. 1~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공공 건물의 장식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아폴로, 헤르메스, 춤추는 님프들. 왼쪽 끄트머리에 '판'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님프와 판의 성역'에서 출토되었다.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을 장식하던 것들이다.

샌들을 신은 남자와 그를 향해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뱀이 묘사되어 있는 유물은 '실론의 헌신'이라 한다.

 

아스클레피오스, 데메테르 여신과 그녀의 딸인 페르세포네가 저명의 의사들을 접견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부조.

 

페리클레스 음악당에서 출토된 올빼미 상. 올빼미는 아테네의 수호여신인 아테나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전시된 카리아티드를 감상하고 있는 방문객들. 카리아티드는 신전 등의 건축물에서 기둥을 대신하는 여인상을 말한다.

이 카리아티드들은 원래 아크로폴리스에 위치한 에레크테이온의 남쪽 현관을 장식하던 것이었다. 제작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페이디아스의 제자인 알카메네스 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박물관에 5개가 전시 중인데 하나는 터키 군의 대포알에 맞아 부서졌다. 여섯번 째 것은 영국의 대영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파르테논 신전을 장식하고 있던 박공을 비롯한 조각상들을 엘긴 경이 훔쳐가서는 대영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그래서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는 모형만을 전시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는 했다.

박물관 창밖으로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저기에다가 대포질을 해댔던 사람들은 무슨 심뽀였을까?

3층에 카페와 기념품 판매점이 있다. 이곳에서의 아크로폴리스 전망이 좋다고 하더라. 

 

2세기 경 아테네는 이 정도였었다고 한다. 거주 인구는 10만 명쯤?

아테네 인들은 이미 BC 5세기부터 지중해 동부를 장악하고 번영기를 누리고 있었다. 고대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 모두 현재의 아테네를 기준으로 하면 해안에 가까운 남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북부 아테네는 1800년대 초 그리스 왕국의 초대 국왕인 오토 왕이 아테네를 수도로 지정한 이후에 발전이 이루어졌다. 당시 건축가들이 새로운 유럽 스타일의 도시계획을 하면서 파네피스티미우 가, 아카디미아스 가 같은 가로수가 늘어선 대로를 구상했고 신고전주의적인 대형 공공건물들과 저택들이 자리하게 되었다.

남부 아테네에는 아크로폴리스와 고대 아테네의 심장부 역할을 했던 건물들이 위치하고 있다. 플라카와 모나스티라키는 아테네에서 가장 오래된 거주 지역으로서의 역사적 뿌리를 자랑하며, 수많은 비잔틴 교회와 박물관들을 품고 있다.

오늘날 그리스 전체 인구의 약 40%인 400만 명이 아테네에 살고 있다. 그래서 대도시가 일반적으로 안고 있는 교통, 주거 문제가 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여름에는 특히 숨이 막힐 듯한 한낮의 더위와 대기오염, 혼잡한 교통 등으로 여행객은 물론 주민들도 힘겨워 한다.

 


11시 50분.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나섰다.

건물이 박물관 옆에 있으려면 이정도는 되어야 하는가보다. 니케 여신상 그림이 큼지막하게 붙어있다. 남쪽으로는 부겐빌레아가 무성하다.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12:00. 점심 식사를 하러 간다. 우리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도로 건너편으로 '하드리아누스의 문'이 보인다. 그 뒤로 위치한 제우스 신전은 나무들에 가려 안보인다.

 

12시 20분. 근대올림픽경기장에 잠시 멈추었다. 경기장 바닥을 제외하고, 관람석 전체를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대리석이 넘치는 나라답다.

1896년 4월 5일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렸던 칼리마르마로 스타디움이었다.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란다.

 

12시 40분. 길이 너무 막힌다. 버스는 나아가지 못하고 시간은 마구 달리고 있어서 멀지 않으니 그냥 버스를 내려 걸어가자고 할 정도였다. 아테네의 도로 체증이 상당하다. 공기밥 두공기를 먹었다. 잘 들어가더라.ㅎㅎ

원래 예정되었던 일정에는 '한식'이 없었는데 고린도 왕복 일정이 변경되면서 포식을 하게 되었다.

 

1시 30분. 식사를 마치고 길가의 오렌지 열매 아래서 버스를 기다린다. 지나는 사람들 아무도 열매에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

 

트램이 달린다.

 

1시 57분.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2시 입장하기로 예약되어 있다고 하더라.

 

아크로폴리스 입장권이다. 20유로인데, 내년에는 30유로로 인상하기로 되어 있다고 한다. 2025년 4월부터 한방에 50%를 인상한다. 쎄다.

 

지도에 세가지 경로가 있다. 아크로폴리스 관람 경로가 첫번째고, 두번째는 아크로폴리스 뒷편의 '플라카' 거리이다. 고대와 중세와 현대의 세계가 뒤섞여 살아가는 현장이라고 현지 가이드가 소개하더라. 세번째는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의 야경을 기다리며 즐기던 정찬이다. 까다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복장에 신경을 써달라고 했던 식당이다. 

 

Hellenic Heritage 공식 사이트에 등재된 아크로폴리스의 사진이다. 아크로폴리스 남서쪽에 위치한 필로파포스 언덕에서의 조망이다. 소크라테스의 감옥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크로폴리스 뷰"가 가장 좋은 곳일지언데... 지도를 보고 이 언덕을 올라가보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역시 다짐으로 그쳤다. 에효~ㅠ.ㅠ

아크로폴리스는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해발고도가 156m에 불과해 산이라기 보다는 작은 언덕에 가깝다.
아크로폴리스의 지질 구조 단면이다. 이 일대에 넓게 나타나는 기반암인 편암의 상층에 석회암이 피복되어 있는 형국이다. 풍화, 침식으로 주변이 모두 제거되고 언덕으로 남은 부분이 아크로폴리스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노란색 부분은 석회암봉우리 위에 토사를 쌓아 평평하게 인위적으로 조성한 부분이다.

(M. Regueiro, M. Stamatakis, K. Laskaridis, 2014, The geology of the Acropolis (Athens, Greece), European Geologist,  38, p.48)

 

하층의 편암 부분과 상층의 석회암 사이에는 뚜렷한 경계가 구분된다. 정상부가 평평하지 않았기에 남쪽과 북쪽으로 상당한 면적에 걸쳐 성토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아래 지도에서 흰색 부분).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주변부에는 절리가 발달하여 침식으로 다른 부분이 분리, 제거되기가 쉬웠을 것이다.

(M. Regueiro, M. Stamatakis, K. Laskaridis, 2014, The geology of the Acropolis (Athens, Greece), European Geologist,  38, p.49)

 

고대 아테네의 황금기라 불리는 페리클레스 시대(BC 495~429)에 파르테논, 에레크테이온, 아테나, 니케 신전이 지어졌고, 온 그리스의 성역이 되었다. 종교의 중심지이자 강력한 요새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15세기에 아테네가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모든 종교적 의미가 퇴색되었다. 게다가 1687년에는 베네치아와의 전쟁 때 베네치아 군의 포격을 받아 모든 건물들이 크게 손상되었다.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입구의 블레 게이트는 2~4세기에 석조로 만들어졌다. 유명한 건축가 므네시클레스가 설계한 전문까지 대리석 계단으로 이어지며 남서쪽의 우아한 이오니아식 건물인 아테나 신전, 니케 신전과 이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입구에 있는 안내판의 자료. 원래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란 것이다. 

 

①번의 전문까지 이르는 대리석 경사로는 소실되고 없다. 멋진 전문을 장식하던 지붕도 붕괴되어 거의 소실되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바라본 전문(프로필레아)의 현재까지 복원된 모습.

 

②번의 아테나-니케 신전의 남아 있는 모습이다. 건물의 군데군데 하얀색이 보이는데, 새로 채워넣어 복원한 것이다. 깨졌던 부분의 대리석 부분을 그 원래 모양대로 잘라내어 붙였다. 대단하다.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곤 했던 아테네 인들은 이 신전에 승리의 여신 니케를 모시고 승리를 기원했다. 이 신전이 갖는 건축양식 면에서의 의미는 아크로폴리스의 수많은 건물들 중 처음으로 이오니아 양식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기둥이 가늘고 길며 주두의 우아한 장식이 두드러진다.

 

⑤번의 건물이 파르테논 신전이다. 복원하기는 했지만 수천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의 신이자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모시기 위해 지어졌다. 

기둥이 굵어 힘찬 인상을 주며 동시에 간소하게 느껴지는 도리아 양식의 건축물 중 최고봉으로 꼽힌다. 세계에서 가장 균형잡힌 건축물로 일컬어지는 이 신전은 그리스의 다른 신전들과 비교할 때 규모면에서도 최대를 자랑한다.

1975년부터 무너지고 부서졌던 조각들을 짜맞추고 틈새를 메우는 복원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2020년에 마칠 예정이었지만 2024년에도 계속하고 있더라. 

사라진 조각을 만들면서 완성해나가는 직소 퍼즐 맞추기가 쉽지 않은지 언제 끝날 지는 미정이라 한다. 재밌는 것은 파르테논 신전 건축이 사실은 레고로 만들어 조립했었다는 사실이다. 와~ 소~오름~


남아 있는 부분에 맞추어 '새' 대리석을 이렇게 깍아내고 짜맞추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파르테논 사진에는 크레인이 계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480년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파괴된 아테나 신전을 대신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었다. 6세기 말부터는 교회로 이용되었었고,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한 뒤인 1460년대 초에는 모스크로 변모되고 첨탑도 세워졌었다. 1687년 이곳을 침공한 베테치아 군의 포격으로 신전 앞에 쌓아두었던 화약더미가 유폭되면서 신전 건물이 크게 손상을 입게 되었다. 1806년에는 영국의 엘긴 경이 오스만 제국의 허락을 받고 많은 대리석 조각품들을 영국으로 가져갔다. 1816년 대영 박물관이 구입하여 전시하고 있는데, 그리스 당국이 돌려달라고 계속 졸라대는 데도 영국은 거부하며 버티고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파르테논'이 어디서 온 단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하더이다.

 

사람들이 걷고 있는 길의 왼쪽이 '아테나 프로마코스' 청동상이 있었던 곳이다. "앞장서서 싸우는 아테나"라는 뜻이라는데, 전쟁의 신다운 이명이라 하겠다. 동상의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에레크테이온이다.

 

⑥번 건물인 에레크테이온이다. 

BC 420~393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도리아 식이 가미된 이오니아 식의 보기 드문 건축 양식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카스티아드로 장식된 주랑이 특색. 건물의 주랑을 장식하는 여인상인 카스티아드들이 멀리 보이는데 모조품이고, 진품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다섯, 대영박물관에 하나가 있다. 1837~1846, 1902~1909, 1979~1987의 세번에 걸쳐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후 아크로폴리스의 다른 건축물에 대해서도 '보존적 개입' 작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에레크테이온 앞쪽으로 주춧돌이 널려 있는 공간은 헤카톰페도스 신전이 있던 곳이다.

 

아크로폴리스는 어떠한 정부가 차지하는가에 따라 용도가 달라져왔다. 오늘날의 그리스 정부는 아크로폴리스를 국기 게양대로 활용하고 있다.

 

아크로폴리스 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한다. 8시 개장 전에 의장대가 먼저 올라와 국기 게양을 하더라.

 

국기 게양대는 파르테논 신전 방향을 조망하는 전망대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구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앞쪽에 대리석을 어떻게 떼어냈을까 라는 질문에 답을 보여주는 예가 전시되어 있다. 더욱 자세한 설명은......

 

아크로폴리스 남쪽으로 보이는 필로파포스 언덕. 다음엔 꼭 올라가보아야지!!

 

아크로폴리스 남쪽 아래에 위치한 디오니소스 극장.

그리스 극장의 표준이라 할 정도로 정형화된 것이다. 시민 집회와 음악, 연극 공연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디오니소스 극장 동쪽에는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이 위치한다.

현재 남아있는 극장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극장으로 꼽히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대부호인 헤로데스가 건축해 기증한 것으로, 지금도 오페라, 연극, 음악 공연이 이루어진다. 2024년 5월 25일에도 무슨 공연인가를 위해 열심히 준비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높은 언덕'인 아크로폴리스에서 아래로 보이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의 모습이다. 1,2층과는 달리 3층의 방향이 살짝 비틀려 있는데, 파르테논 신전의 방향과 맞추기 위해서라고 한다. 독특한 설계 개념이다.

 

저 멀리 방문해보지 못한 제우스 신전이 모습이 보인다. 봤으니 본 것으로 치자.

 

3시 20분. 전문 아래 위치한 블레 게이트. 아크로폴리스를 나선다.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이 보인다. 사람들 가득 올라서서 아크로폴리스의 경관을 감상하고 있다.

 

북서쪽에 헤파이스토스 신전과 아고라의 유적지가 보인다.

 

거북이가 한마리 숲에서 걸어나와 떠나는 길손들을 배웅해준다. 이곳의 명물인 모양이다.^^

 


 

3시 50분. 걸어서 호텔에 도착하였다. 가방을 버스에 두고 내린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버스가 가버렸다. 나중에 배달해 줌.

첫날에는 객실에 생수가 제공되었는데, 둘째 날에는 없더라. 잊고 주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여 영어 좀 되는 분께 부탁하여 생수를 달라고 했다. 몇 차례의 통화 끝에 가져다 주더라. 그런데 5유로 75센트를 달라고 할 줄은 진정 난 몰랐었다. 헐~

객실에 퍼질러져 쉬다가 5시 반에 로비에 집합하였다. 또 출동이다. 아테네의 명물인 플라카 지구를 돌아보기로 한다.

 

플라카 지구는 아크로폴리스 북쪽 언덕 아래 동네를 말한다. 아크로폴리스 동쪽에서 주욱 이어지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늘 활기가 넘기는 곳이다. 국회의사당과의 사이에는 세련된 상점과 오래된 그리스 정교회 건물들이 묘하게 어울린다. 작은 광장과 좁은 골목들이 어울려 있는데, 5~15세기 비잔틴 시대에 건축된 건물들이 많은데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방문객들이 많이 찾는다. 아크로폴리스 가까이에는 고대 그리스 및 로마 시대의 유적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플라카 지구를 걷다보면 과거 세계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가보자~

 

5시 40분. 리시크라테스 기념비가 있는 리시크라테스 공원에서부터 시작한다.

 

좁은 골목을 아기자기하게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상점들이 반겨준다.

 

골목 안쪽의 수많은  상점과 수많은 식당들이 방문객을 기다린다.

 

갑자기 넓은 공간이.... 메갈리 파나기아 성당의 유적이다.

 

하드리아누스 도서관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입구의 열주.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유적지 앞의 노점상들.

 

하드리아누스 도서관의 유적인 열주 옆으로 1759년에 지어진 모스크가 보인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Museum of Modern Greek Culture.

 

판타나싸 성당의 건물은 좀 연식이 있어 보인다.

 

지하철역 모나스티라키. 표가 없어 안으로는 들어가보질 못하였다.^^ 비행기 그림이 벽에 그려져 있는 것을 보니 아테네 국제공항까지 연결되는 노선인 것으로 보였다.

 

예쁘게 채색된 그리스 정교회 건물 위로 아크로폴리스가 깨끗하게 보인다. 휘날리는 그리스 국기. 기둥이 보이는 건물이 에레크테이온이다.

 

판타이노스 도서관 유적.

 

아테나 에레체게티스 문. 

 

로마 포럼. 고대 아고라 유적지.

 

바람의 탑.

 

어.... 아크로폴리스 북쪽에는 서쪽 전문의 경사진 길과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현지 가이드가 이제서야 실토한다.^^;

 

자그마한 '아고라 광장'. 역시나 식당가로 이용되고 있다.

 

가죽 제품 신발이 유명하다 한다. 옆지기에게 사줄까 했더니 싫다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한 마디, 플라톤의 한 마디, 소크라테스의 한 마디.

 

골목길에서 큰 길로 나서 보았다. 하드리아누스의 문이다.

 

성 케더린 정교회에서는 결혼식이 열렸던 모양이다. 축하 축하 축하~

 

그리고 다시 리시크라테스 기념비. 집합 시간을 기다린다.

 

7시 10분. 모두 모여 달려갔다. 디오니소스 조나 레스토랑.

 

자리에 앉아 고개를 돌리니.... 오, 예!!!

 

한 점 먹고 고개 돌리고, 한 점 먹고 고개 돌려보고....ㅎㅎ

 

아크로폴리스가 석양 빛에 물들기 시작한다.

 

와인 한 잔 들고, "기아마쓰!" 외치고 또 고개를 돌린다. 곳곳에 인공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적당하게 보기 좋은 야경이다.

 

야경 사진은 좀 흔들려주어야 현장감이 있다.^^;

 

흔들리지 않는 사진은 부동 자세에서 나온다?

 

계속 남아서 아크로폴리스의 모습을 감상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만.........

 

갑자기 다음 날이 되었다. 5월 26일이 되었다. 느닷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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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아침이 밝았다. 폭탄이 터지는 것만 같다.

 

7시에 식사. 근사한 식당이다. 숙소를 참 좋은 곳으로 잡은 것 같았다. 식당이 멋있어서...^^

9시반에 출발한다고 하여 시간 여유가 생겼다. 잠시 하늘을 날아보았다.

햇살이 강하여 피라 마을 쪽은 거의 구별이 안된다. 드론의 카메라가 촛점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더라.

 

Athinios 방면의 '산토리니의 하트' 주변이 아닐까 한다. 태양신 헬리오스, 당신이 이겼소.ㅠ.ㅠ

 

방향을 돌렸다. 칼데라 복판의 네아 카메니 섬, 그 왼쪽의 팔라이아 카메니 섬이 보인다. 모두 무인도이다. 그 뒤로 테라시아 섬이 보인다. 이아 마을에서 페리로 연결되는 섬이다.

 

테라시아 섬까지 날아가볼까 했는데 거리가 6km가 넘더라. 자그마한 꼬맹이 드론으로는.... 가도가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것 같아 귀환시켰다.

 

하얗게 빛나는 건물들. 지난 밤을 신세진 숙소. 사진 오른쪽 아래의 건물들이 우리 숙소였다. 왼쪽 아래 숙소가 더 좋아보인다.ㅎㅎ

 

피라 마을 쪽을 다시 살펴본다.

 

이아 마을을 다시 한번 본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으랴...

 

화장실 물품 세트가 이렇게 깔맞춤 되어 있다. 좋은 숙소였다. 별이 다섯 개.

 

셀피 사진을 찍는 방법.


숙소를 출발하여 남쪽 능선 반대편에 위치한 아크로티리 유적지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걸어서 레드 비치의 절경을 감상하였다. 산토리니의 새로운 명소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는 '산토리니의 하트'를 들러보았다. 근사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이동하여 아테네로 날랐다. 산토리니와 이별했다.ㅠ.ㅠ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동네의 길가에 보이는 식물들. 포도이다. 산토리니가 포도 및 와인으로 유명한데, 바람이 워낙 강하여 지지대를 세워 덩굴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땅바닥에 그냥 둔다고 한다.

 

땅바닥에서 열리는 포도라니... 신기하다.

 

9시 38분. 아크로티리 유적지에 도착하였다.

 

입장료는 12유로. 우리나라의 두, 세 배는 받아가는 듯하다. 

 

아크로티리 유적지. 보존을 위한 조치가 아주 잘 되어 있다.

 

현재는 육지 안쪽에 있지만 아크로티리 유적지는 산토리니 섬의 남쪽 해안에 위치하던 항구도시였다. 지형 변화에 의해 오른쪽 지도의 색칠한 부분이 당시에는 바다였던 것이다. 에게 해의 복판에 위치한 산토리니는 주변 여러 지역과 교역을 통해 성장하였다.

이 지역의 주거 유적은 신석기부터 나타난다. 이후 청동기 시대에 도시로 성장하였다. 에게 해를 넘어 동부 지중해 전역과 교역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시에 다양한 시설이 남아 있으며 상하수도 시설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BC 17세기의 지진으로 파괴된 도시를 복구하여 붕괴 전보다 더 진보된 도시를 구축하였다. 부유한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자신의 주거지를 그림 등으로 장식하려 했던 모습이 드러난다. 17세기 말에 닥친 강력한 지진과 화산 폭발에 따른 엄청난 화산재와 부석에 매몰되면서 아크로티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이곳이 다른 화산재에 의해 매몰된 지역과의 차이점은 시신이 발굴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폼페이 같은 경우에는 갑자기 재앙이 닥치면서 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아크로티리 지역의 경우에는 사전에 심각한 전조 증상이 계속되자 주민들이 심각성을 인지하고 사전에 모두 탈출하였던 때문으로 해석된다. 

 

발굴 작업을 보여주는 사진들. 그리고 발굴된 유물들을 정리하여 박물관에 전시된 과정까지 볼 수 있다.

수천년 간 매몰되어 있던 유적지의 지표가 서서히 침식되면서 유적의 일부가 드러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1967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에서 아서 에번스가 저지른 것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서둘지 않고 서서히 계속되고 있다. 

 

유적지 모형.

 

천장을 만들어 유적지를 보호하는 한편 관람객들의 편의를 극대화한 야외 유적지라고 보인다. 또한 곳곳에 사진과 그림, 지도를 포함한 설명 자료를 게시하여 관람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 노력한 점도 매우 긍정적으로 판단되었다. 관람 동선도 잘 정비되어 있다. 모범적인 유적지가 아닌가 한다.

 

계단의 벽을 따라 인체 크기의 벽화로 장식되었던 곳. 복원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봄의 프레스코'화가 발견된 부분.

 

중앙 부분에서 유적지 일부 구간을 방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 차단하기도 한다. 거꾸로 일까?

 

도기가 여러 점 발굴된 동부 섹터.

 

다양한 도기들. 채색이 이루어져 있다.

 

서부 섹터의 전형적인 가옥인데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하였다. 내부에서 화장실도 발견되었다.

 

벽화의 세세한 묘사와 색채의 사용이 상당히 뛰어나다. 아크로티리가 해안선에 바로 인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의 바닥에 매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보존될 수 있던 작은 산양 모양의 금 조각상. 아크로티리에서 발굴된 유일한 금붙이이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산토리니 선사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프레스코화들은 아테네의 국립 고고학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미노아 문명의 한 단면을 살펴본 듯 하다.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전에서는 궁정의 높은 사람들의 터전, 이곳 아크로티리에서는 일반인들의 삶터를 엿보았다 할 것이다.

 

11시. 관람을 마치고 나와 인근에 위치한 자연 속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500m? 걸어간다.

 

해변가 식당에서는 고기가 숯불에 익어가고 있다. 맛있겠다.

 

해안 가까이에 솟은 산지에 드러난 기반암이 온통 붉은 색이다. 적색사암?

 

티라 당국에서는 위험하니 올라가지 말 것을 권한다.

 

살짝 돌아가면........ 온통 빨갛다. 그래서 '레드 비치'이다.

 

그 앞에 앉으니 옷도 뻘겋게 변한다.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요트를 장만하여 이런 조용한 바닷가에서 시간을 즐긴다. 부럽다. 많이 부럽다.

 

뜨거운 햇볕을 계속 받으면서 암석 내부에 있던 물질이...................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돌담이 산지를 가로질러가고 있다. 어떤 기능을 갖고 있을까?

 

도로 공사를 하면서 드러난 노두. 아크로티리에 재난을 가져왔던 화산재 퇴적층이 드러나 있다.

 

11시 35분. 버스에 탑승하여 아크로티리를 떠난다.

11시 54분. 예정되어 있지 않았던 '산토리니의 하트'를 방문했다.

이렇게 바다의 모양이 하트가 된다는 것인 줄 알았는데...

 

화산재 퇴적층이 풍화되면서 형성된 구멍이었다. 촬영자가 예리하게 잘맞추면 어찌 하트 모양이 나올 것 같기도 하다.

 

일행 팀의 하트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12시 20분. 버스 출발.

12시 25분. 식당 도착. 근사한 식당이다. Garden Restaurant이다. 

 

식당의 전망도 기가 막히다. 

 

구운 돼지고기를 종이호일에 싸서 접시에 담았다. 육향을 그대로 가져왔다. 맛있다.

 

식사 후 가이드가 전하길 여기 직원이 드론을 해도 된다 하더라고 하더라. 공항에 가까운 곳이라 안될텐데 왜 해보라고 하는 것이지 하는 의문을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띄워 보았다.

역시나 당장 착륙하라고 하면서, 안하면 99초 내에 강제 착륙시키겠다는 메시지가 조종기 화면에 뜨더라. 좀 황당했다. 역시 그냥 하지 말아야 하는 곳에서는 누가 뭐라 꼬득이더라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

 

1시 6분. 버스 탑승 후 출발.

 

1시 21분. 공항 도착.

 

체크인 후 바로 보안검색대로 갔다. 걸렸다!!! 나오란다!!!

손바닥과 옷, 가방의 안과 밖 몇 곳을 시약이 묻은 검사지로 툭툭 건든다. 그리고 검사기로... 가라고 하더라.

그리스에서 두번 걸렸다. 간이 ETD 검사라는데, 무작위로 실시한다. 그리스 국내선을 세번 이용했는데 두번 걸리니 좀 찜찜하다.

4번 게이트에서 대기하다가 3시에 탑승하였다.

AIRBUS A320-200 비행기. 20E,F 좌석.

3시 25분. 이륙하여 아테네로 쭈욱 날아갔다.

 

 

4시. 아테네 공항 착륙.

아테네에 도착해 숙소에서 쉬면 되는 일정만 남았다.

 

4시 49분. 버스 탑승. 공항 주차장의 차량 정체.

 

아테네 시내의 도로는 도로는 좁고, 정체도 엄청나다. 

 

5시 47분. 근대 올림픽 경기장 앞을 지난다.

 

6시. 아크로폴리스 아래 위치한 호텔에 도착하였다.

호텔도 유적지 위에 올라타 있다. 지하실을 발견된 유적 보전 시설로 만든 것이다. 서울시 종로구의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생각났다. 

 

7시에 외출하여 저녁 식사..... 식당은 '마니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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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이다. 5월달이다. 23일이다. 목요일이다. 산토리니를 가는 날이다!!!!!!!!!!!!!!!!!!!!!!!!

5시 반에 기상하여 6시반에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모두 챙겨 7시 15분에 호텔 로비에 집합하였다.

7시 28분. 항구에 도착하여 하차.

 

7시 35분. 표를 받았다. 승선한다. 지정좌석제. 109, 110B 좌석에 나란히 앉아 날아간다.

 

8시. 출항하여 날아간다. 크레타를 두고 달린다.

 

쾌속선인데 의외로 롤링이 심했다.

서양 젊은이들 참 약하더라. 여기저기서... 음. 승무원이 아예 봉투를 나누어준다. 한 사람이 서너개씩 챙기기도 한다. 이런!

여기저기서 불편한 그것을 하는 소리, 냄새가 진동한다. 승무원이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수거하러 다닌다. 장난아니다. 화장실 앞에는 널부러진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줄을 "서"지 못하고 바닥에 "늘어져" 있다. 이런!

 

점차 배가 안정되고 사람들도 안정되더라. 나중에 크레타 섬에서 산토리니 섬까지의 항해 궤적을 보니 이렇다.

편서풍이 심해 배가 많이 흔들렸던 것이었고, 북서쪽으로 틀어서 항해하다 북동쪽으로 바람을 타고 항해하면서 배의 흔들림이 줄어들었던 것은 아닌가 한다. 중간중간 조금씩 끊어지기는 했어도 좌석이 선실 안쪽이었음에도 GPS 궤적을 그래도 잡아냈다. GPS data logger가 이번에도 일을 해주었다.^^;

 

10시 43분. 산토리니 신항구에 도착하였다. 사람들이 부지런히 하선한다. 하늘 참 파랗다. 바다도 그렇다.

 

짐을 던져 놓고 터미널의 화장실부터 찾는다. 1인당 1유로를 내라 한다.

 

산토리니 섬의 생활 터전은 절벽 윗쪽에 주로 위치한다.

 

해안에서 절벽 위의 도로까지 꼬불꼬불 오르는 버스들이 힘겨워 보인다. 나중에 보니 이러한 경사지의 급회전 구간에는 늦게 진입하는 차가 한참 전에 정차하여 먼저 진입해 회전하는 차량이 쉽게 빠져나가도록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산토리니 신항구에 하선하여 버스로 환승해 '이아 마을'을 먼저 방문하였다. 점심 식사를 하고 마을과 섬, 바다 경관에 빠졌다. 버스로 피로스테파니 마을에 하차하여 피라 마을까지 도보로 이동하면서 산토리니를 즐겼다. 저녁 식사 후에 아크로리티 방면의 숙소로 이동하였다.

산토리니의 4개 마을 중에서 이메로비글리 마을을 빠트렸다. 패키지 여행이라 어쩔 수 없다. 다음 기회에~

티라 섬이라고도 하는 산토리니 섬은 에게 해 남쪽에 자리잡은 작고 둥근 모양의 화산 군도이다. 키클라데스 제도의 최남단에 위치하는 산토리니는 발칸 반도의 그리스 본토에서 약 200km 정도 떨어져 있다.

BC 16세기를 전후로 발생한 강력한 화산 폭발로 섬의 중간 부분이 사라져 형성된 크레이터이다. 바닷물이 채워지면서 산토리니는 초승달 모양의 섬이 되었고 크레이터의 안쪽에 해당하는 서쪽은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동쪽은 경사가 완만하다.

(M. Vespa, et. al., 2006, Interplinian explosive activity of Santorini volcano (Greece) during the past 150,000 years, Journal of Volcanology and Geothermal Research, 153, p.264.)

 

해저의 지중해 바닥의 모습까지 함께 살펴보면 이런 모양이 된다.

(Nomikou P. & Vouvalidis K. & Pavlidis S., 2019, The Santorini Volcanic complex, Pre-Conference Field Trip Guide of the IAG RCG2019 – Regional Conference of Geomorphology, p.1)

 

11시 48분. 주차장에 하차하여 이아 마을을 향해 걸어간다. 사람들이 넘쳐난다. 하늘은 시리도록 파랗다.

 

이아 마을의 좁은 골목이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지구 사람들이 다 여기 모인 것 같다.

 

이아 마을의 만남의 광장인 파나기아스 아카티스토스 찬송 정교회. 

 

하얀 건물, 파란 하늘, 뜨거운 태양. 지중해다.

 

지중해의 이아 마을이다. 파란 하늘, 그리고 더 파란 바다.

 

성모 승천 교회.

또...

 

이아 마을, 여행자들.

 

이아 마을은 아르메니 만에 연해 있다.

 

이아 마을의 만남의 광장인 파나기아스 아카티스토스 찬송 정교회.

 

피라 마을은 공항에 가까워서 안되고 이아 마을에서는 드론이 가능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그리스로 날아왔다. 오메~

'드론 금지' 표지판에만 신경쓰고 있었는데 그 위로 "여러분에게는 휴양지이지만, 우리에게는 집이다. 여러분을 환영하지만 우리 이아 주민도 존중해달라."는 애처로운 게시판도 있었다. 

검색해보니 이렇게 생긴 것이었다.

 

1시 식당에 도착하였다. 옥상 자리로 올라간다. 기가 막힌 곳이다. 따봉~!

마시따!

 

식당 전망. 왼쪽에 보이는 섬이 시키노스 섬, 오른쪽에 보이는 섬이 호라 섬이다. 호라 섬에는 호메로스의 무덤이 있다.

 

산토리니 여행 사진이라 하면 꼭 등장하는 명소이다. 아기오스 니콜라오스 교회.

 

하이얀 건물들 사이로 파아란 머리를 가진 교회의 돔형 지붕들이 도드라져 보인다.

 

ㅠ.ㅠ.... 다음에는 제대로......

 

예쁜 '이아 마을의 풍차'.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마을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화산이 뻥 터져서 살던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시간이 흐르고 나니 다시 사람들이 찾아들어와 이렇게 삶터를 이루고 있다. 바다에서의 어업, 육지에서는 포도 재배가 유명하다. 화산재가 비옥한 토양이 된다 하니 화산이 터짐으로써 많은 인명 피해가 있겠지만 그 이후에는 또 인류 번영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신항구를 향해 날아들고 있는 쾌속선. 바다가 아주 파아랗다.^^

 

이아 마을의 풍차를 배경으로...

나도!

 

이아 마을 남쪽 끄트머리 곶 부분에 '이아 성'이 있다.

 

4시 20분. 이아 마을을 떠나 피로스테파니 마을로 이동한다. 피라 마을까지 도보로 이동하면서 산토리니를 즐긴다.

 

4시 50분. 피로스테파니 마을의 아기오스 게라시모스 교회. 이곳에서부터 피라 마을 방면으로 걷기 시작했다.

 

북쪽으로 보이는 이메로비글리 마을. 산토리니 섬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360m 정도에 이른다. 마을 앞쪽으로 보이는 톡 튀어나온 바위는 '스카로스 바위'. 화산 분출물인 '스코리아'이다.

 

화산 위에 달라붙은 마을은 봐도봐도 신기하다.

 

건물 옥상에 배 한척이 올라와 있다.

 

크루즈가 입항하고 있다.

 

피라 마을.

 

가까이 가보자. 아니 확대해보자. 마을 아래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구항구에서 나귀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다. 사진 왼쪽으로 살짝 케이블카 시설도 보이기는 한다.

 

나귀를 타지 않고 걸어서 오르는 사람들도 있다. 대단하다.^^

 

피라 마을의 랜드 마크, 주교좌 대성당.

랜드마크.

 

산토리니 구항구와 피라 마을을 연결하는 케이블 카.

 

피라 마을의 꽃길.

 

피라 마을의 쉬어가는 길.

 

피라 마을에서 썬탠하는 길.

 

급경사 아랫쪽에 위치한 가옥은 이렇게 대문만 만든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집은 대문이 이렇게 된다.

 

걷다가 힘들면 앉으면 된다. 

 

저 윗쪽 도로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으나 아랫쪽은 좀 한적하다.

 

그래 아이 ♥ 싼토리~니.

 

누구 똥이 굵은가?

 

6시 반. 피라 마을의 식당에서 식사.

8시 10분. 식사를 마치고 이동한다.

해가 넘어간다. 8시 20분에야 해가 넘어간다.

 

9시. 숙소의 객실이 '피라 마을 뷰'이다. 피라 마을과 구항구 사이의 케이블카와 계단, 그리고 크루즈 선박의 조명이 멀리 보인다. 나름 야경이라고...

 

객실에 생수와 함께 와인 한병이 얼음 속에 쉬고 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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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2일 수요일. 크레타 섬의 이라클리온에는 새벽에 비가 내렸다.

 

호텔 길 건너쪽에 작은 키오스크가 있는데 지붕에 "CANDIA"라고 써 있다. 맥주 광고판이다. 그리스는 오랜 기간동안 로마,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아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칸디아'라는 것도 이탈리아 인들이 크레타를 부르던 이름이었다. 그것을 그냥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을 수백년 지배했던 이들에 대한 심리적인 반감이 없는 것 같았다. 그냥 그것 자체가 역사라서 그런 것인지...

 

숙소가 시내 한복판에 있어 완벽한 '시티뷰' 객실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들 옥상에 굴뚝이 많이 보인다. 아직 난로, 화덕 혹은 화로를 사용하는가???

 

크레타에서 하루를 보내는데 일정은 간단했다. 크레타 문명, 미노스 문명, 미노아 문명의 유적지를 모두 돌아보며 공부하는 것은 짧은 일정으로는 곤란하다.

그래서 대표적인 유적인 크노소스 궁전을 방문하고, 크레타에서 출생하여 세계적인 작가가 된 니코스 카잔자키스 박물관과 무덤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미노스, 미노아, 크레타 문명의 정수를 모아놓은 고고학박물관을 방문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크레타 섬의 기반암이 거의 석회암이라 석회동굴도 곳곳에 유명한 곳이 많은데, 한군데도 가보질 못하고 크레타를 떠나야 했다. 오마로스 폴리예 같은 지형도 보질 못했다. 사마리아 협곡 같은 절경 근처에도 가보질 못했다. 그렇다. 여행사 패키지 상품이었다.ㅠ.

 

크레타는 그리스의 13개 주 가운데 하나이며 가장 큰 섬이다. 지중해 전체에서는 5번째 크다. 고대 그리스 청동기 시대의 시작이 이곳 크레터에서 이루어졌다. 미노스 왕의 궁전이 유명하여 크레타 문명이라는 이름 이외에 미노스 문명 혹은 미노아 문명이라고도 부른다. 

일찍부터 인류의 정착지로서 중요한 요충지에 위치하여 미노아 시대의 크노소스와 파이스토스 유적, 고르티스 유적, 하니아 항과 베네치와 옛 도시, 레팀노의 베네치아 성과 사마리아 협곡 등 다양한 유적이 있어 관광지로 유명하다. 수백년 간 이 섬은 이탈리아 이름인 '칸디아'로 알려졌는데, 크레타 섬의 수도인 이라클리온의 중세 명칭인 '칸닥스'에서 나온 것이다. 흔히 '크레타'라고 부르는 이름은 고전 라틴어에서 나와 영어권 및 라틴 문화권에서 통용화된 것이다. 튀르키예에서는 '기리트'라고 부르고 있다.

에게 해 일대의 고대 문명들. 육지의 토지가 비옥하지 않아 충분한 식량을 얻기 어려워 일찍부터 해양을 통해 교류하고 교역을 하면서 각자의 장점을 받아들여 해양 문명을 꽃피웠다. 에게 문명은 전기에는 크레타, 후기에는 미케네 문명으로 나뉘어진다. 

BC 30~14세기에 크레타 섬에서 번성하였는데, 동지중해 가운데 위치하여 오리엔트의 앞선 문명, 즉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서양 최초의 해양 문명을 완성한 것이다. 그렇게 크레타의 청동기 문명이 시작된 것이다. BC 20세기 경 크노소스를 중심으로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졌으며, 섬 전체에 지배권을 확대한 미노스 왕이 유명하다. 크노소스 궁전을 비롯한 많은 궁전을 건축하였으나 BC 17세기의 지진으로 대부분 붕괴되었다. 곧 새로운 궁전들을 건축하면서 이후 2세기에 걸쳐 전성기를 이룬다.

한편 그리스 본토에서는 BC 20~16세기 사이에 북쪽에서 남하한 이들이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자리를 잡고 미케네, 티린스, 필로소 등의 소왕국을 형성하였는데 미케네 왕국이 가장 강성하였다. 이들은 서서히 세력을 키워 BC 15 세기에 크레타 섬을 침략하였고, BC 14세기에 크레타 문명은 파괴되고 만다. 그리고 크노소스를 비롯한 각지의 궁전은 모두 약탈 당하고 파괴되었다.

미케네는 크레타 문명을 흡수하여 지중해의 여러 세력을 모아 해상 문명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미케네의 해상 활동을 하고 나선 세력이 트로이였다. 그래서 둘이 한판 붙은 사건이 트로이 전쟁이었다. BC 1193년의 일이었다.

 


 

조용한 지중해의 아침이다. 6시 기상, 7시 아침, 9시 출발...

그리스 일정 중 처음으로 같은 호텔에서 연박을 한다. 아침에 부랴부랴 짐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것이 너무 좋다.^^ 이틀 숙박이 이러할진데 1주일, 보름씩 같은 숙소에 지내면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꼬...

그런데 내일은 아침 7시 20분에 짐을 다 챙겨 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여 김을 팍 새게 한다. 아! 쫌!!

 

9시 20분. 크노소스 궁전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크레타에는 큰 궁전만 네 곳이란다. 그 중의 하나 크노소스만 방문한다.

그리스 유적지의 입장권은 참 그 맛이 없다. 어느 나라든 대부분 유적지 입장권은 그 유적지의 특징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그림 등을 넣고 있다. 헌데 그리스는 QR 코드가 다 이다. 자기들의 업무처리 용도일 뿐 유적지를 비용을 내고 방문해준 관광객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해외 여행을 하면서 입장권을 가능하면 모아오고 있는데 그리스는 의미없다. 에효~

 

유적지와 궁전의 복원의 4단계? 유적을 여기저기 더 많이 복원하였다는...

 

크노소스 학술 위원회에서 많은 일을 했다고 한다.

 

크노소스 궁전 유적지의 문제점은 초기에 너무 일찍 현대적으로 복원시켜 놓아 원래의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질 못하고 있단다. 그래서 마음놓고 더 '복원'에 매달리는 것인가???

 

크노소스 궁전 유적지의 서쪽 출입구로 입장하여 한바퀴 돌았다.


 9시 30분. 크노소스 궁전 유적이다. 사람들이 아주 많다.

 

크노소스 궁전 유적지 발굴을 주도한 아서 에번스 경의 흉상이 한켠에 있다.

 

쿨루라(kouloures)는 파이스토스(Phaistos), 크노소스(Knossos), 말리아(Malia)의 미노아 궁전을 포함하여 고대 크레타 섬 내의 특정 정착지에서 발견되는 돌담이 있는 원형 지하 구덩이를 가리킨다.

1903년 크노소스 유적을 발굴하던 아서 에번스 경이 구덩이 모양이 둥근 그리스 빵과 비슷하다며 그 빵의 이름을 유적지에 가져다 붙인 것이다.^^ 도대체 당시에 이런 구덩이를 왜 만들었을까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대체로 곡물창고의 기능을 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줄지어 크레타의 미노스 문명 속으로 들어가보자.

 

크노소스 궁전의 북쪽 기단 부분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확인할 수 있는 크노소스 궁전의 예상 복원도이다. 

BC 20~17세기 경에 건설된 것으로 알려진 미노스 왕의 궁전이다. BC 17세기에 지진 등에 의해 붕괴된 후 BC 15세기 경에 규모를 확장해 이전보다 더 큰 궁전을 지었다.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이 이 두번째 궁전이다. 동서 170m, 남북 180m 정도의 장방형 구조이며 크레타 문명의 다른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장방형의 중앙 정원을 중심으로 수많은 작은 방들이 둘러싸고 있다. 계단과 회랑이 많은 구조인데 경사지를 활용하여 1,500개가 넘는 방들을 건축하였기에 더욱 건물의 구조는 복잡해졌다. 그래서 '미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수많은 방들에는 환기와 채광 시설, 상하수도, 욕조가 딸린 욕실, 수세식 화장실, 베란다, 물저장 탱크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수천 년 전에 그러한 시설을 고안하여 설치하고 있었다는 문화 수준이 감탄한다. 궁전의 서쪽은 주로 신전으로 활용되었고, 왕궁의 용도는 동쪽에 집중되었다.

 

크노소스 궁전의 발굴을 1878년에 골동품에 관심이 많은 한 사업가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이후 체계적인 발굴 작업이 1900년 아서 에번스에 의해 시작되었다. 2년 만에 왕궁의 발굴 작업은 거의 완료되었다. 그런데 발굴하고 보니 땅속에서 드러난 유적지의 유물들이 쉽게 풍화될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아서 에번스는 아주 튼튼하게 복원을 했다. 콘크리트를 사용해서 보강한 것이다. 그런데 보강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원래 이렇게 생겼었을꺼야 하고 상상하는데로 콘크리트를 칠해버린 것이다. 나중에서야 잘못 해석된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 드러났지만 이미 콘크리트가 되어 되돌릴 수 없게 된 것이다. ㅠ.ㅠ

(출처: 유적지 안내판의 설명 자료. 왼쪽 사진이 원래 상태였는데, 콘크리트의 도움으로 오른쪽 모습으로 만들었다.)

 

콘크리트로 보강하고 나무 구조물인 것 처럼 페인트를 칠하면서 "복원"한 크노소스 궁전. 잘 했어요. 아서 에번스~

 

그런데 콘크리트 부분이 부식되면서 내부의 보강재인 철근이 드러나는 부분도 있다. 불량 시멘트를 사용했나 보다.ㅠ.ㅠ 석재와 목재로 된 부분이 콘크리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건물이 붕괴될 위험에 있어 서둘러 보강 공사를 해놓기도 했다.

 

회랑의 서쪽 돌출 현관 일대의 유적이다. 석재를 사용하였기에 벽의 두께가 두껍다. 그러면서도 방 하나 하나의 크기는 작다. 당시의 건축 기술로는 이러한 방식으로 밖에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지하나 반지하에 수많은 방과 통로를 배치하여 빠져나오기 어려운 구조인 미로(迷路) 혹은 미궁(迷宮: labyrinth)은 이집트 12대 왕조 아메넴헤트 3세가 최초로 건축했다고 한다. 지중해 무역을 하며 이집트의 문물을 전해 받은 미노스 왕은 아테네 출신 다이달로스(Daidalos)에게 궁을 짓도록 했다는데, 당시의 건축 재료와 구조 상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면....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서 매우 섭섭하다. 하여 역사에 신화가 스며들었다.

미노스 와의 왕비 파시파에가 매우 음탕하여 황소와 관계한 후 머리는 소, 몸은 사람인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를 낳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감추려고 미궁을 짓게 한 것이라는 것이다. 말이 되는가? 하지만 신화 속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래서 그렇게 되었다.

크레타 보다 국력이 약했던 아테네에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인신공양을 하도록 했는데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의 왕자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달아나자 미궁을 만들었던 다이달로스를 미궁에 가두었다. 다이달로스가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날개를 만들어 달고 날아가다가 아들이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파생되고, 테세우스가 크레타의 공주인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갈 듯 하다가 낙소스 섬에 두고 귀환하면서 배에 검은 돛을 달아 아버지 Aegeus가 바다에 투신, 그 바다 이름이 에게 해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나이든 테세우스의 아들 히톨리포스와 새엄마 파이드라 사이에 그렇고 그런 일이 생겨 이러한 비정상적인 관계를 Paedra Complex라 하게 되었고, 이를 재해석한 그리스 영화 "페드라"가 세계적으로 대박 났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죽어도 좋아"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상영되었다.......음... 머 그렇다.

 

그렇게 정신이 없던 와중에 또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일이 생겼으니...

공작새 여러 마리가 울어대는 것이었다. 이제는 이들이  미노스 문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크노소스 궁전의 건축 양식 중 무게를 지탱해주는 기둥들의 모양이 일반적으로 보던 것들과 많이 다르다. 위가 굵고 아래가 가늘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크레타 만의 독특한 양식이다.

이 콘크리트 보강을 통한 수천 년 전의 유적 복원이라는 아이디어는 진짜 해도해도 너무했다.

 

크노소스 궁전에는 멋진 벽화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도 또 유명하다. 벽에 석회 칠을 한 뒤 석회가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서 물감이 자연스럽게 벽에 스며들게 하는 기법을 이를 프레스코화(Presco)라고 한다.

프레스코 기법은 이후 널리 유행하여 중세 유럽의 대부분 궁전, 성당의 천정과 벽화가 프레스코화로 제작되었으며, 중국·한국·일본 등 아시아 각국에서 그려진 불교 벽화들도 프레스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궁전에서는 여러가지 저장을 위한 커다란 도자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도공의 작업장도 있다.

 

중앙 정원에 사람들 다 몰려 있다. 게다가 줄을 서 있다. 왕의 알현실에 왕좌가 남아 있는데 그것을 직접 보기 위해 줄서 있는 것이다.

 

독특한 양식의 멋진 다양한 프레스코 화들이 궁전의 여러 방벽을 장식하고 있다. 그리스 문명에서는 소가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미노타우로스 이야기, 투우하는 장면을 묘사한 프레스코 화, 여러 곳에 등장하는 소 머리 상 등... 올림포스 신화 속의 신들과 관련된 이야기에도 소가 많이 등장한다.

프레스코화가 많이 남아 있는데, 누구를 그린 것인지 어떤 직종의 사람들인지 조차 불명확하다. 알려진 개인 초상화도 없다. 그냥 불특정한 상류층 여성을 그린 것이다 하는 정도의 그림. 빠리 스타일의 머리 장식이라고 '르 파리지앵'이라 한다.^^

 

'황소 뛰어넘기'를 하는 남녀. 왼쪽의 여성은 황소의 두 뿔을 잡고 있다.

프레스코화가 오래 보존되기는 하지만 수천년 전의 것이 현재 보는 것처럼이 색이 뚜렷하지는 않았다. 후대에 대부분 복원된 것이다. 95% 정도가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복원된 것이라..... 그래서 사실 고증에 맞지 않다는 비판도 많다. 아서 에반스가 스위스 예술가 에밀리아 길레론에게 벽화 복원을 맡겼는데, 이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성을 발휘하여 마음대로 뜯어고친 것이 많다고 한다. 원숭이였는데 소년으로 바꾸고, 풍경 속에 사람을 그려넣고 하는 등등...^^;

 

비바람으로부터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 되어 있다. Phase IV??

 

복잡한 계단을 통해 연결되는 '중앙 법정'. 

 

법정을 통해 여러 방향의 방들로 연결된다. 궁전과는 직통으로 연결되고. 무게를 지탱하는 기둥들의 모습은 역시나 위가 굻고 아랫쪽이 가늘다. 독특하다.^^

 

중앙 법정의 동쪽 건물에는 계단이 많다. 'Grand Staircase'.

 

 

'양날 도끼의 성지, Shrine of the Double Axes'. 

양날 도끼는 그리스 신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미노아 문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크레타에서 양날 도끼는 종교적 제의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나비 모양의 도끼는 탄생, 죽음, 재탄생과 연관되는 것으로 여겼다.

 

크노소스 궁전의 핵심 '왕의 거실, 양날 도끼의 홀'을 구경하려는 인파.

 

왕좌가 있는 알현실을 구경해보려는 인파.

 

돌로 만든 의자이다. 상당히 불편해 보인다. 양옆으로 역시 돌로 만든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맞은 편에는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돌로 된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위로 뚫려 있어 자연 채광 및 환기가 이루어진다.


독특한 장식의 도자기들로 채워진 저장고.

 

크노소스 궁전 유적지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소를 숭배하여 많은 유물을 남겼다. 제대로 된 원본 그림은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우리는 사진을 남겼다.

 

'극장' 자리. 자그마하다.

 

쭉 뻗은 '로얄 로드'.

 

크노소스 궁전과 주변 지역의 상상 복원도이다. 궁전에 남아 있는 저장소 등을 토대로 당시 인구를 3만 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11시 35분. 출구 옆의 화장실로 달린다. 크레타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다. 그런데 화장실은 한 곳이고 시설 규모도 너무 작다. 줄, 특히 여자 화장실의 줄이 어마어마무시무시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생가 박물관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버스에 탑승해 달린다. 너무한다! 조르바!!

카잔차키스 무덤의 비석에 "나는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고 한다. 저기요~ 우리는 화장실을 원해요. 우리는 무지막지하게 길게 늘어선 화장실 앞의 줄을 두려워해요~ 화장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요~


 

12시 6분. 그리스가 낳은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 마을에 도착했다. 생가를 박물관으로 개조했다. 동네 건물의 벽에 그의 그림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그의 육필 원고.

 

두번째 부인. 엘레니 사미우.

 

서가에 전시된 책들 중에는 한글로 번역된 책들도 있다.


 

1955년에 함께 사진을 남긴 친구 슈바이처.

슈바이처 사인.

 

영상실에서 그에 대한 다큐 영화를 감상하였다. 한글 자막 있다.

 

그의 시절 지도가 보였다. 'Candia'라고 되어 있다.

 


 

12시 59분.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을 출발하였다.

1시 40분. 바닷가의 시원한 식당 '와인과 바다'에 도착하였다. 식사 이후 헤라클레스의 이름을 딴 도시 이라클리온의 시내 답사를 진행하였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2시 53분에 '니코스 카잔차키스 스포츠단지'에 도착했다. 옆길을 통해 동산 위로 걸어 올라간다. 좀 햇살이 뜨겁다.^^

 

작은 동산 위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가 위치한다.

 

유명한 묘비명 "나는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는 생전에 자신이 직접 남긴 것이라 한다.

 

주변을 산책하면서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세상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남쪽으로 멀리 크레타에서 가장 높은 산인 프실로리티스 산이 보인다. 그렇다고 하자....

 

오후 3시. 니코스 카잔차키스 무덤을 떠난다. 햇볕이 참 많이 아주 강렬하게 따숩다. 지중해다.

 

3시 17분. 버스 하차. 고고학박물관 인근의 카페로 일행을 이끈다. 날이 아무리 더워도 "아!아!"

3시 58분. 고고학박물관으로 재충전된 일행들이 입장하고 있다.^^

 

입장료는 12유로였었다.

 

미노스 문명은 도자기 기술이 뛰어났다고 한다.

 

미노스 문명은 금속 세공 기술이 아주 뛰어났다고 한다. '벌 펜던트'.

 

'파이스토스 원반'. 찰흙판에 필기도구로 그린 것이 아니라 크레타의 원시 상형문자가 새겨진 도장 같은 도구로 찍어낸 것이라서 일종의 인쇄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인쇄물?

 

소머리 모양의 술잔. 왼쪽 부분은 복원한 것이다.

 

대지모 여신상과 뱀의 여신상. 뱀은 풍작을 상징하였다. 

 

크레타의 문자...

 

'라일락의 왕자' 프레스코화.

 

'파란색 아가씨들'

 

BC 2세기~2세기 사이의 동전들. 당시 부호의 은닉 재산. 아주 잘 숨겨두어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고고학 박물관 뒷편에도 발굴 작업을 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유적지의 발굴을 피하면서 건축을 하기가 아주 어려운 동네인 크레타.

 

5시 40분. 사자 광장의 모로지니 분수. 분수대에 사자 장식이 되어 있다. 그래서 사자 광장인 듯하다.

 

다이달로스 거리. "나는 자유다."^O^

 

테오토코폴로스 공원에 '엘 그레코'의 동상이 있다. 그런데 낙서 장난이 좀...

엘 그레코는 스페인에서 활동한 그리스 화가이다.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 공원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엘 그레코'는 스페인 말로 '그리스 사람'이란 뜻이란다. 근세 스페인을 대표하는 3대 화가 중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 왔다고 하여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고 그냥 그는 '그리스 사람'이었을 뿐이었나 보다.

 

관청으로 이용되고 있는 '베네치안 로기아'.

 

성 티투스 정교회 성당.

 

촛불을 하나 봉헌하는...

 

정교회 성당은 신자들이 앉는 세상과 신의 세계 사이가 구분되어 있다. 예배가 있을 때만 두 세계 사이의 문이 열린다.

 

성당 옆의 작은 분수대에서 놀면서 '자유 시간'을 자유롭게 보냈다.

 

6시 50분. 식당에서 조용히 저녁을 모셨다.

식사 후에 여행사 가이드가 전하더라. 지나던 주민이 식사를 위해 들어오려다 정원에 단체객들이 있는 것을 보고 걱정을 했단다. 다행히 나갈 때까지 단체 여행객들 답지 않게 소란스럽지 않아 그 손님이 만족스러워 했다고 주인이 만족스러워 했다고...우리 일행도 소고기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어 만족스러웠고...^^

 

길가의 식당들 중 일부에 붙어 있는 마크. 지나는 오토바이에도 이러한 마크가 불터 있는 것들이 보였다. 배달음식 파트너.

 

8시 20분. 호텔에 도착하여 내일을 준비한다.

내일 아침은 6시 반부터 제공한다고 한다. 7시 20분에 출발한다. 산토리니를 향하여. "하이호! 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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