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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말에 경기도 양주의 나리공원에서 천일홍 축제를 했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천일홍이 뭔지도 몰랐다. 처음 들었다.

 

이런 것이란다. 붉은 빛이 천일 가기에 천일홍이라고...뻥이겠지?

 

공원의 배경이....배경이...

 

많이들 들어갔다. 그래서 들어가지 말라는 것일 것이다.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데 막 들어가는 막되먹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붉은 색으로 보이질 않는다. 어떻게 촬영을 했길래....ㅠ.ㅠ

 

천일홍 축제에 천일홍만 천만 송이 있으면 재미가 없지. 다른 꽃들도 있다.

 

나름 좀 일찍 서둘러 갔더니 사람들이 별로 안보인다.

 

꽃보다...

 

제대로 만들어진 사진이 없는 것에 대해, 일단 카메라 탓을 하고 있다.

 

꽃댑싸리.

 

공원 한쪽에 있는 핑크뮬리 밭. 이곳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여 있었다. 작품 사진도 만들고 계시고.

 

이른 아침 비가 좀 내렸다. 그 빗방울이 매달려 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반짝이는 것이 보석 같다.

 

빗방울을 머금고 있어 고개가 다들 무겁다. 전부 숙이고 있다.

 

반짝인다.

 

하지만..역시 가을에는 코스모스이다. 제일 낫다.

 

역광이라 그런가 하여간 색이 잘 안나온다.

 

얘는 원래 이렇고. 나비 찾기~

 

여러가지 색~

 

벌~

 

분위기 좋고 좋고~

 

꽃과 벌.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다.ㅠ.ㅠ

 

10월 2일 오전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래도 긴 연휴에 뭔가 한가지는 가족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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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답사에 참가하는 날이면 늘 그렇듯이 새벽에 일어나 동부간선도로를 달린다. 대청역 옆에 있는 중동고 지하주차장에 차를 맡기고 답사 차량에 동승. 서울의 정남쪽에 위치한 전주로 달렸다. 남쪽으로 달렸다.

추석이 가까워서 인지 벌초 등으로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길에 차가 가득, 휴게소에도 차가 가득, 사람도 가득~ 

화장실에 잠시 주저앉아 있으려 했었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포기했다.

 

안개가....

 

전주. 서문교회에서 다른 지역 팀과 랑데뷰. 일제의 식민지 수탈 역사의 기록과 흔적을 따라 군산으로의 경로를 답사하였다. 

카메라 아이콘이 찍힌 곳이 답사 지점들.

군산 내항에서 답사를 마감하고 전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간단히 하고 서울행~

 

서문교회 주차장에서 다른 지역에서 오신 분들과 랑데뷰하였다. 

'서문'교회인 것은 전주부 서문터 부근이기 때문이다.

답사 차량 세 대에 나눠타고 답사를 계속 진행하였다.

 

서문교회의 종탑이다. 미국에서 수입한 종. 1908년에 건립한 종탑.

 

서문교회.

 

교회 바로 옆의 점집.

 

전주부성 서문지 표지석. 바싹 붙어 주차해놓은 차량 '덕분'에 찾기가 쉽지 않다.

 

전주부성 '옛길따라 걷기'. 지도를 알아보기 어렵다. 역시 잘 '숨어' 있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은 '비단길시장'.

 

전주화교소학교.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74호. '현대이발소'가 문화재가 아니다. 가게가 문화재다. '구 중국인 포목상점'이었다고.

 

옛길의 흔적. 동산촌.

 

길을 따라 경찰서, 소방서, 우체국이 나란히 있다. 주변보다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한다.

1908년 전주~군산간 신작로가 개설되고 조촌면 반월리에 일본인 농장(동산농장)이 만들어지면서 한양으로 가는 길이 동산동을 통과하는 노선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동산동은 전주~이리~군산 노선과 전주~삼례~한양으로 통하는 삼거리로서 교통의 중심지가 된다. 또한 1914년 전주~이리간 경편철도 부설과 동산역 설치로 철도교통의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다.

 

삼례찰방역이 관할하던 평야.

만경강의 지류. 찰방역이라는 지명이 없어지고 '삼례리'로 대체되었으며 삼례철도역이 새로 생겼다.

 

콘크리트로 보강된 관개수로. 그때 그 시절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찰방이 위치하던 곳.

찰방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근사한 교회건물이 들어서 있다. '물론' 그와 관련된 안내 자료는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때 그시절의 우물.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음에 점을 찍는 시간'

 

깔끔한 뷔페식. '고령자 친화기업'이라는 처음보는 문구가 눈을 잠시 잡는다.

 

들어갈 때는 비리비리했는데, 나올 때는 배가 불룩!

 

식당 입구의 정원이 넓다. 답사원들이 모여 삼례 지역에 대한 지역주민(인솔자 선생님)의 소개를 경청한다. 인솔자는 전주고교에 재직중인 최진성 선생님인데, 잘 생기고 목소리도 좋아 넘나 부러운 분이었다.

 

식당 새참수레 옆에는 삼례성당이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이 이어진다.

 

바로 앞에 삼례 세계막사발미술관이 있다. 2013년 개장.

강점기에 양곡창고들이 있었던 곳이다. 이곳의 창고에 모인 양곡은 철도를 통해 군산으로, 그리고 일본으로~

이곳의 창고들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다가 2010년에 문을 닫는다.

<[철의 궤도: 전라선 철길 답사기 ③ 삼례역] 호남 발길 모이던 관문, 이제는 문화 중심지로>

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1123342

 

바로 앞에 삼례역이 있다. 근사해보인다. 완전 새거다. 

 

대장촌의 일본인 농장과 춘포역

 

이와자끼의 동산촌(전주 동산동), 가와자끼의 서수촌(군산 옥구-서수면)과 함께 호소가와의 대장촌(익산 춘포면)은 만경강 일대의 일제 수탈의 대표적인 흔적으로 꼽힌다.

호소가와 농장의 주임관사가 남아 잘 관리되고 있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11호.

 

사람이 거주하면서 관리하기에 깨끗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 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둘러볼 수 있었다.

 

주임관사보다는 격이 떨어져 보인다. 호소가와 농장의 사무실이었다고 한다.

 

문닫은 도정 시설. 멸공 방첩 소득증대!

 

내부.

 

           최고의

현존하는   V   간이역. 춘포역.

 

자그마한 역사만 남아 있다.

 

위로 전라선이 지난다.

 

오산면 일본인 농장과 식민지 경관

 

오산면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들어왔었다. 동척.

 

오산교

 

발산초등학교

 

발산초등학교 교사 뒷편에는 요상한 건물이 하나 있다.

 

일본인 농장의 창고. 보물창고.

 

등록문화재 제182호. 일본인 농장주 시마타니의 보물창고였다고 한다.

 

 

내부는 여러 층으로 되어 있어 상당히 많은 훔친 혹은 빼앗은 보물들을 저장하여 둘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발산초등학교 자체가 시마타니 농장의 창고를 개조한 여섯 개의 교실로 출발했다고 한다. 1946년에.

시마타니는 일본에서 주조업으로 재산을 모은 후 일본 청주의 원료인 값싼 쌀을 찾아 군산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1903년에 발산리 인근의 토지를 매입하여 농장주가 된다. 이후에도 계속 토지를 매입하였던 시마타니는 땅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했기에 해방 이후에도 자신의 땅을 지키려고 미군정에 한국인으로 귀화를 신청했고 끝까지 귀국을 거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군정의 권유가 계속 되자 부산을 통해 귀국했다고 한다. 개인금고 건물을 가득 채웠던 골동품들을 서울에서 온 박물관 사람들(?)이 미군 트럭을 끌고 와 싣고 갔다고 한다.

그러고도 남은  보물들이 학교 뒷편에 남아 있다. 보물 제234호, 제276호 등을 비롯해 다양한 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옥구 저수지

 

옥구저수지. 옥구간척지 일대의 논에 관개 용수를 대기 위해 1923년에 만들어진 저수지이다. 골짜기를 둑으로 막아 만들어진 그런 저수지가 아니다. 평지에 사방으로 둑을 쌓아 만든 저수지라는 점에서 특이한 저수지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릴 것을 기대했으리라. 하지만... 

비어 있는 건물은 쇠락하고 있다.

 

위의 건물에서 김석용 선생님이 우리 일행의 단체 사진을 박아주셨다. 배경은 당연히 옥구저수지.

 

모퉁이에 비석이 있다. 그래서 비석거리 슈퍼가 있다. 버드나무 아래의 그늘에는 동네 어르신들 몇 분이 쉬고 계셨다.

 

불이농촌: 군산 미성동 열대자 마을

 

하늘에서 드론이 본 열대자 마을(남호석 촬영). 

하늘을 덮었던 근사한 연무.

 

불이농촌은 불이흥업주식회사의 간척사업으로 만들어진 간척지에 조성된 간척지 마을이다. 옥구저수지를 중심으로 남쪽에는 한국인들이 소작하는 농장으로, 북쪽으로 불이농촌이라 하여 일본인 이주자들에게 불하하였다.

 

열대자 마을은 그러한 불이농촌의 하나이다. 열대자는 원래 '열 댓 자' 즉 '열다섯 자(15척)'란 뜻으로 도로 폭이 열다섯 자나 되게 넓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시골 논두렁 밖에 보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열다섯 자 폭의 도로는 신기한 대상이었으리라.

이런 넓은 도로가 필요했던 것은 일본인 정착촌들 사이를 잇는 간선도로의 기능 때문이었을 것이다.

 

군산 원도심. 군산 신사터. 군산 내항.

 

동국사 가는길

 

흠... 2012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국무총리상 수상에 빛나는 문화공간을 지난다.

 

동국사. 일본식 사찰이다.

 

 

한 켠에는 군산평화의소녀상이 있다.

 

 

사찰 뒷편에는 대나무가 우거져 있다.

 

앞마당에는 은행이~

 

참회와사죄의글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1983년에 군산을 처음 찾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였을까, 좀 음산하다는 느낌으로 기억한다.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이상한 모양의 건물들이 굉장히 많이 보였고. 일본식 가옥과 건물들이 그때까지 그렇게 많이 남아 있는 것은 그것들을 보전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변화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계기였다. 근대화의 음영 지역.

지금은 그러한 것을 지역 이미지화하여 장소 마케팅에 이용하고 있다.

 

똥!

 

다행이다. 이런 빵을 내가 좋아하지 않아서....

 

군산신사터.

군산서초등학교 뒷편에 군산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학교 앞에는 '장건강에 좋은 무엇인가'의 총판점이 있다.

 

답사 종료 예정 시간이 한참 지났다. 파할까 했는데, 뜬다리부두를 보고 싶다는 분들이 계셔서 내항으로 향했다.

 

뜬다리부두란? 이렇게 "뜬"다리 부두를 말한다. 항상 "뜬" 것은 아니다.

안떠 있을 때는 안떠 있다.

그렇다. 밀물과 썰물의 높이 차이가 큰 해변의 항구의 접안 시설인 것이다. 여러 곳에 있지만 군산의 것이 가장 유명하여 남호석 사장님이 특별히 드론을 띄워 밀물 때와 썰물 때의 모습을 촬영하였다. 최고!

 

이리저리 흩어지고 답사차량 1대만 전주로 돌아왔다. 

'퓨전 어울림'을 찾았다. 역시 저녁 시간의 전주는 이리보나 저리보나 최고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찍 "꼭" 서울로 돌아와야 했기에 답사 가기 전부터 가슴 아팠다. 답사를 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했었었다. 당연히 답사 중에도 계속 신경쓰였고, 퓨전에서도 신경쓰였다.

결국 마지막에 여러 분들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몰래 미안하다고 두 손모아 사과드린다~

 

다음부터는 무리한 참석은 안하기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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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대구 분지 답사에 참가 신청하였다. 먼 곳이다. 일찍 출발한다.

4시30분. 같이 사는 사람은 알람이 울리자 내 등을 쳐서 깨워 준다.

너무 일찍 일어난 것 같다. 가방 두개를 메고 집을 나섰다. 약속 시간 30분 전에 도착했다.

중동고등학교 지하주차장에 신세를 졌다. 한가지 더 신세를 지려 했는데, 예전에는 늘 열어 두던 곳의 문이 잠겨 있었다. 주말에 열어두던 주차장을 잠그더니 보안이 강화되었다.

할 수 없이 근처의 대청역에 부탁했다. 그런데 이곳은 카드를 찍고 들어가야 그곳을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점점 거세진다. 3호 차량에 탑승. 제일 먼저 왔기에 제일 편한 자리 차지했다.

 

고속도로에 내리는 비가 삼삼하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였다. 대전-유성IC에 있는 '만남의 장소'에서 대전 인근 분들과 랑데뷰하였다. 다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데 서울쪽으로 접어들었다. 의문을 표했더니 새로운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더 빠르다고 하였다. 청주-상주간 고속도로. 그리고 2017년에 개통한 상주-영천 고속도로를 이용하였다.

핸드폰으로 구글 지도를 보고 있었는데, 길이 없는 곳을 달리는 것으로 표시되었다. 아직 새로운 노선이 적용되지 않은 것 같다. 헤이 구글!

 

인공위성 영상 모드로 바꾸니 도로 공사 중일 때의 모습이 나온다.

 

영천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다른 일행들과 모였다. 1, 2, 3호차, 그리고 인솔자의 승용차까지 네 대의 차량으로 답사팀이 움직였다.

 

구글 지도를 '지형' 레이어로 바꾸면 이렇게 보인다. 차령산맥과 소백산맥을 지났다. 영천-경산-대구 분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퇴적암 분지라고 한다.

이번 답사에도 가톨릭관동대학교 지리교육과의 조헌 교수님이 수고해주셨다.

http://cms6.cku.ac.kr/user/indexSub.do?codyMenuSeq=1041&siteId=geography&dum=dum&prfId=35&page=1&command=view&prfSeq=586&search=&column=

 

답사 경로는 다음과 같다.

영천: 옥간정 - 오리장림 - 금호리 풍화층 - 황정습지

경산: 자인 계정숲 - 반곡지

대구: 반야월 연꽃단지 - (숙박) - 달성공원 - 근대골목 - 건들바위 - 이서공원 - 수성못 - 앞산케이블카 - 화원공원(달성습지)

 

경산 분지의 모습이다. 북쪽에 보현산(1124), 서쪽에 팔공산(1192), 남쪽에 장옥산(686), 동쪽에는 구미산(594)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이다.

 

내가 살던 곳에서 멀리 왔구나 하는 것을 식당 메뉴에서 발견하곤 한다. 처음 보았다. '소찌개'. 영천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식당. 옥간정을 향하는 길가의 식당 중의 한 곳에서는 '고기 짬뽕' 메뉴를 자랑하는 식당도 보았다. 해물이 아니라 고기라니. 그만큼 해물보다는 고기류가 흔하다는 것일지도.

 

이번 답사의 첫번째, 옥간정이다.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

 

조선 후기 양반 문화, 선비 문화, 정자 문화 경관이다. 건립 연대가 확실하고 건립 당시의 평면구성과 창호 구성수법 등이 잘 남아 있어 건축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자연 속에 하나가 되어 있는 아담한 정자이다. 이쁘다. 횡계구곡 중 제4곡으로 꼽히는 盈科潭가에 세워져 있다.

관리하시는 분의 양해를 구하고 내부 관람을 하였다. 정자에 앉아 비가 내리는 밖을 바라보면서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종부의 안내 말씀을 듣기도 하였다. 자손들은 모두 타지에 나가 살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런 소중한 문화재에 손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잠가두고 단속하지 않으면 장식이나 문짝, 물건 등을 몰래 가져간다고 하니...

 

오리장림을 찾았다. 

 

제방 보호와 마을의 수호 및 풍치 조성을 위해 화북면 자천리 마을 주민들이 조성한 숲이라고 한다. 1999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오래 보전된 숲답게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매년 대보름날 자정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그 때의 흔적으로 보인다. 화북면민안녕기원비. 솔가지 등을 새끼줄로 묶어 놓았다.

 

숲 건너편에는 포도밭이 있다. 영천 포도 유명하다.

http://news.donga.com/3/03/20130718/56513904/1

 

사과밭도 있다. 묘목 판매도 한다.

 

농산물 직거래장터와 오리장림은 인접해 있다.

 

금호리 풍화층.

 

화북면 금호리 도로변이다. 새롭게 도로 건설을 하면서 드러난 노두이다.

 

토양의 풍화단면이 잘 드러나 있다.

토양단면에 대해 공부해보자.

http://geozoonee.tistory.com/200

 

답사에 매진하다보니 식사 때가 늦어졌다. 아침을 생략했는데 점심이 늦어지면 많이 배고프다. 배고팠다. 오후 두시가 다 되어 영천시장 내의 식당에 도착하였다.

 

식사 메뉴는 수육과 냉면.

 

영천시내의 간판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영천의 상징이 말인가보다. 말산업 육성을 위한 노력이겠다. 그런데 검색해보니 영천시 캐릭터가 말 말고도 여럿이 더 있다. 많다.

 

황정습지.

 

황정습지를 보기 위해 영천 금호읍 황정리의 인공제방을 찾았다.

 

금호강 중상류의 영천-경산 분지 구간에서는 퇴적암 산지와 구릉대에서 자갈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환경, 그리고 자갈과 함께 미립물질도 공급하는 남부 화산암 산지(유천층군) 환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갈과 미립물질이 섞여 거의 연속적으로 안정된 사력퇴 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에 해당하는 예가 이곳 황정습지, 그리고 하양습지, 안심습지(반야월 연꽃단지), 가천습지 등이다.

 

금호강의 사력퇴에는 식생이 잘 정착되어 있다.

벼과와 버드나무속을 포함한 수생 및 습생 관속식물의 분포 면적이 넓은 황정습지는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처로 이용되고 아름다운 하천 경관을 제공하며 간접적으로 금호강의 수질 정화에 기여하므로 보존 가치가 매우 큰 습지로 판단되는 곳이다.

 

여유를 즐기는 잠자리.

 

잠자리가 날았다. 김덕일 선생님이 날렸다. 잠자리가 하늘을 날면서 본 황정습지. 넓은 금호강이 식생으로 채워져 있다. 강수량이 많지 않은 소우지라는 것을 실감한다. 전국 이곳저곳에서 많은 비가 내리는 주말이었는데, 아침에 살짝 몇방울 떨어지더니 끝이다. 이후 우리 일행은 소우지 대구의 무더위를 체감하였다.

 

금호강 변. 농경지로 개간된 범람원. 농경지에 살포된 농약 찌꺼기가 금호강으로 흘러들어 황정습지의 식생 등에 안좋은 영향을 준다는 우려도 있다.

어쨓든 드론 좋구나.

김덕일 선생님이 사용하는 드론은 매빅 프로이다. 휴대성이 장점이라는데, 진짜 그런 것 같다. 어찌나 잘 숨겨 갖고 다니는지 보질 못했다. 그리고 촬영된 사진만 공개한다. 뽐뿌가 자꾸 온다. 나도 갖고 시프다~~~~

 

하지만 잠자리는 다시 내려 앉았다. 뽐뿌도 내려 앉았다.

 

경산 분지의 모습이다. 자인 계정숲과 반곡지를 답사하였다.

 

계정숲 답사.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에 있는 천연보호림이다. 평지에 가까운 자연숲으로, 구릉지에 남아 있는 천연임군락으로서는 경상북도는 물론 국내에서  보기 드문 곳이다. 굴참나무, 이팝나무, 말채나무, 느티나무, 참느릅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명확한 존재는 아니지만 지역 주민들은 수호신으로 믿고 있다는 한장군묘가 숲의 입구에 있다.

 

한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곳.

 

체험학습관도 있다.  숲길에 모기도 꽤 있다.

 

좀 역사가 있는 동네라면 볼 수 있는 모습. 공덕비마다 안내판이 있는 것은 참 좋다. 대부분 알지도 못하는 글자들이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던데.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에는 사진찍기 좋은 명소가 있다. 반곡지. 

 

계절별 마다 와보아야할 곳이다.

 

반곡지의 여름을 보러 왔다. 어....

물이 물이...없다.

 

가뭄이 심각하다. 아무리 소우지라 하지만 심각하다. 

7월 8일. 이곳만 빼고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 모양이다.

 

소우지는 일사량이 많기 때문에 과수농업에는 유리하다.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조헌 교수님의 열정적인 강의와 답사객들의 열의가 콜라보를 이루고 있다.

 

반곡지의 제방. 제방을 따라 산책하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제방 위에는 왕버들이 근사하게 자라고 있다.

왕버들은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갈잎 큰키나무이다. 원산지는 한국이며 일본, 대만, 중국에도 서식한다. 키는 10~20m로 크며 주로 습지나 냇가에서 자란다. 주왕산 주산지와 함평 자연생태공원 호수에 서식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물 속에서도 썩지 않고 살 수 있다. 줄기가 굵고 몸집이 커서 마을의 정자나무로 많이 심었다.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이거나 긴 타원 모양이며 새로 돋을 때 붉은 빛이 돈다. 암수딴그루이고, 4월에 잎과 함께 꽃이 핀다. 잎겨드랑이에 기다랗게 꽃이삭이 달리는데 비스듬히 위를 향한다.

...라고 위키백과에 나와 있다.

 

반곡지. 멋진 곳이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제방에서. 영화 '허삼관' 촬영 장면.

 

반곡지를 바라보며. 드라마 '내마음 반짝반짝' 촬영 장면.

 

제방에서 내 사진도 하나...

 

 

대구시 동구 대림동에는 연꽃단지가 있다.

 

대구시 동구 반야월 안심습지 연꽃단지는 대구시농업기술센터에서 조성한 것이다. 전국 최대 연근 생산지라고 한다. 4,680톤의 연근을 생산해 전국 생산량의 34%를 차지한단다.

체험학습장.

 

전망대.

 

재배단지. 엄청 넓다.

 

재배단지.

 

홍련, 백련.

 

다른 지역은 호우주의보, 호우경보였는데, 이 동네는 이만큼 내렸다.

 

대구 분지.

 

대구시 동구 신서동의 식당 '낙동강'에서 '춘태탕'을 저녁으로 모셨다.

 

웨스트의 서쪽으로 달렸다. 대구시 달서구 두류1동에 있는 크리스탈 호텔에 묵었다.

 

숙소에서 그냥 잠자기는 아깝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일부가 숙소 부근의 서문시장 답사를 했다.

 

밤에 어디 멀리 돌아다니는 것을 무척이나 무서워 하는 나는 그냥 크리스탈 관광호텔에 딸린 호박나이트를 가려 하였으나, 검은 색 양복을 입은 총각이 할아버지는 딴 데 가서 놀라고 막더라.

 

그래서 '치킨 앤드 비어' 집에서 치킨 앤드 비어를 먹고 일찍 잤다.

 

 


 

소우지 대구의 날이 밝았다. 호텔식 조식 후에 첫번 째 답사지로 출발했다. 

 

유료주차장에 주차하고 달성공원으로 갔다.

 

새벽 4시부터 10시쯤까지 장이 선단다. 주말에는 특히 사람이 많다.

 

달성공원 입구.

 

달성공원 내부. 깔끔하게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삼한시대 부족국가를 이루었던 達句伐의 성터였다고 한다. 달성 서씨의 사유지였으나 세종 때 서씨 일문이 헌납하여 국유지가 되었다고 전한다. 1905년 공원이 조성되었으며, 1967년에 현재의 대공원이 만들어졌다.

 

공원에서는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과 답사객들을 볼 수 있다.

 

최제우의 동상도 있다.

 

꽃사슴도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보았던 과나코도 있다.

 

파파라치도 있다.

 

대구 중구 골목투어 1코스가 달성토성에서 시작된다.

 

순종 황제 앞에서 폼 잡아보았다.

 

철도가 있었던 곳인가보다. 약간의 흔적만 남겨두었다. 저짝으로 보이는 곳이 달성공원.

 

철로의 흔적만 남은 곳의 하늘로 달리는 모노레일. 대구 도시철도 3호선이다.

 

대구시는 도심의 문화역사거리를 정비하여 관광상품화하였다. 그 중에서 제2코스인 근대문화골목을 탐방하였다. 청라언덕-계산성당-이상화, 서상돈 고택-제일교회-약령시한의약박물관-약령서문으로 한바퀴 돌았다. 더웠다. 돌 것 같았다. 아...돌았구나.

 

근대문화골목, 2코스 안내도이다.

 

3·1만세운동길을 오른다.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학생들이 일본군경의 감시를 피해 도심으로 모이기 위해 통과했던 솔밭길이라고 한다. 대구의 만세운동은 일제의 감시가 심해 1919년 3월8일 오후 큰장(현 섬유회관 건너편)에서 일어났다.

 

옛날 사진.

 

만세운동길을 오르면 청라언덕.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기 맡으며~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동무생각에 나오는 그 청라언덕이다.

 

대구제일교회. 대경 지역 최초의 개신교회라고 한다. 최초? 건물이 좀 많이 있어 보인다. 웅장하게 신축한 것이다.

 

선교사 스윗즈 주택. 미국인 선교사들이 살던 곳이란다.

 

스위즈 주택앞 정원에는 대구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 자손목이 자라고 있다.

동산의료원 초대 원장인 존슨 선교사가 미국에서 3개 품종의 사과나무 72그루를 들여와 사택 뜰에 심었는데, 미주리 품종만 자라 주변으로 보급한 것이 대구 사과나무의 효시였다고 한다. 2세목은 원조 사과나무의 씨앗이 발아해 자란 것으로 수령이 80년 정도이다.

 

계산 성당.

http://www.middm.net/?c=community/media&where=subject%7Ctag&keyword=%EB%AF%BC%EC%A4%91%EA%B0%80%EC%9A%94&uid=1301

대학 시절 노래로 알게 된..

 

이상화 고택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했던 서상돈 고택.

 

뽕나무 골목에 약령시.

 

구 대구제일교회.

 

구 대구제일교회 옆에 약령시한의약박물관이 있다.

 

한의약박물관 입구에 모셔져 있는 분.

 

영남대로. 약령서문.

 

대구가 덥다고?

맞다, 덥다!

대구는 더운 곳이다. 오죽하면 대프리카 라는 표현까지 사용되기 시작했을까. 그런데 그러한 환경 조건을 마케팅에 이용하여 성공한 예도 있다. 역발상이라 할까?

대구시 중구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앞에 조형물이 설치되었다.

아스팔트 위의 거대한 계란 프라이 완숙. 아주 잘 익었다.

이런 정보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김숙 선생님이 일부러 찾아가 찍어온 사진들이다.

http://www.hankookilbo.com/v/4a37b5b8a3d94239bbc1781fff760e44

 

 

날은 더워 사람이 늘어져도 답사는 계속 된다!

가자, 건들바위.

 

대구시 중구 대봉동에 있는 건들바위 역사공원.

 

경상누층군의 일부인 대구층의 퇴적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신천 상류에서 시작된 대구천이 주변을 흐르면서 침식 작용을 받아 형성된 것인데, 유로 변경이 이루어져 하천이 사라진 곳이다.

 

이서공원. 대구시 수성구 상동.

 

한적한 이서공원. 1776년 대구판관으로 부임해 대규모 치수사업을 펼친 이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이서의 공덕을 기리는 이공제비가 있다.

 

신천. 지금과는 물길이 다른 곳에 있었고, 홍수 때마다 범람하여 큰 피해가 발생했는데 이서가 사재를 털어 제방을 축조하고 물길을 돌리면서 만들어진 하천이 새내 또는 신천인 것이라는 전설~ 진짜?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전영권 교수님은 다른 의견을 제시하였다.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4645&yy=2007

 

식사 때가 되었다. 수성구 지산동에 위치한 숨쉬는순두부.

 

사람들이 줄을 서더라. 우리는 예약 손님. 점심 해결~

 

숨쉬는순두부 집 앞길. 이 넓은 도로가 일방 통행이닷!

 

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수성못이다.

 

수성못(수성 유원지). 가족 나들이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적격이라고 한다.

 

1925년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조성된 인공못이다.

 

대구시 남구 대명9동이다. 앞산 케이블카.

 

앞산 케이블카. 1974년부터 가동중. 민간자본 유치 사업은 20년 정도 지나면 기부채납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앞산 케이블카는 대덕개발에서 43년 째 독점 운영하고 있다. 운영자는 좋겠다. 당시 계약서에 기부채납 조건을 넣지 않았단다. 오래된 시설이다 보니 종종 사고 기록이 있더라~

요금은 왕복 9000원. 30명 이상의 단체가 동시에 입장하면 500원씩 깎아준다. 운행 구간은 짧지만 요금은 어디에도 부럽지 않다.

주차장에서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걷는 것이 참 거시기했다. 하지만! 아무 조건없이 케이블카 타는 곳 바로 앞까지 차량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오후 6시 이후에 가면 된다.

 

앞산은 비슬산(1,084미터)의 앞산이다. 전망대.

 

사랑이 녹슬고 있다.

 

대구분지. 대구 시내의 모습이 한 눈에 쫘악 들어온다. 야경도 좋겠다.

딱 보니 분지 지형이다. 건너편에 유학산, 팔공산이 있겠다.

 

화원유원지 전망대.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화원은 신라 때의 토성이 있던 곳이다. 낙동강을 굽어보는 군사요새이자 전망대. 낙동강과 금호강의 합류부에 있는 달성습지를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뽀인트이다.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곳. 큼지막한 사력퇴가 형성되어 있다.

 

정리!

 

해가 떨어지고 빗방울이 떨어지려고 할듯말듯한다.

해산한다.

네 방향으로 나누어 다음을 기약하며 서둘러 출발하였다.

 

주유를 위해 잠시 들렀던 휴게소.

 

빗 속에 출발하여 더위에 지쳤다가 빗 속에 마감한 답사였다.

 

아듀~

집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를 간단히 마치니 밤 11시 반이 되었더라~

다음 답사는 9월에 전주,군산이 예정되어 있더라~

10월에는 남한강 수운이더라~

11월에는 철원 용암대지라고 하더라~

12월에는 보성,벌교 답사를 한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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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강원대학교 DMZ HELP센터에서 주관한 "국토정중앙과 DMZ의 지리적 가치(2014.07.28 ~ 08.01)"라는 연수에 참여하였었다.  그 때의 답사 자료를 3년이나 지나서 정리한다.ㅎㅎ

1주일 연수 기간 중 2박3일이 합숙 답사였다.

 

답사 경로를 표시해보았다.

 

1일차에 춘천시 동쪽에 위치한 구봉산 전망대. 

소양강댐 바로 아래에 있는 세월교에서 방류 광경.

수온이 너무 낮아 바로 농경지에 방류하면 냉해를 입기 때문에 햇볕을 이용해 자연적으로 수온을 높여주는 온수지. 의암호반에 있는 소양강처녀상.

화천의 인민군사령부막사. 꺼먹다리. 평화의댐, 비목공원.

그리고 이해인시문학의공간의 들린 후 양구읍내의 숙소(온천모텔)

 

2일차에 해안분지로 향하였다.

해안면 만대리 마을. 통일관. 4땅굴. 을지전망대. 양구백자박물관. 두타연. 한반도섬.

 

3일차에는 박수근미술관을 거쳐 국토정중앙에서 수료식을 행하였다. 강원대학교에서 해산.

 

 

7월28일 08:30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에 전국에서 모인 29명의 연수 참여자들이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그리고 버스에 탑승하여 연수를 계속하였다.

 

구봉산전망대에서부터 이동경로 기록을 시작하였다.

 

구봉산전망대에서 서쪽의 춘천시내 쪽을 조망하였다. 침식분지 지형의 대표적인 곳으로 꼽혀 한국지리 시험 문제에 많이 등장했었다. 사진 오른쪽으로 의암호. 그 옆으로 해발고도 300미터인 봉의산이 보인다. 봉의산 아래에 한림대학교가 있다. 

 

한국지리 시험문제에서 침식분지의 전형적 예로 다루어지는 춘천 분지 지형도이다. 춘천 화강암의 심층풍화가 이루어지면서 주변 변성암 산지와는 다른 차별침식을 받아 침식분지를 만들게 되었다고 전하더라~

 

9시 40분. 전망대. 답사대원들.

 

전망대 바로 옆에 '산토리니'가 있었다. 음료수가 제공된다. 광고 타임!

 

세월교. 1972년 소양강댐 건설할 때 덤으로 만든 다리란다. 다리의 교각부분을 토관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물이 지나는 통로가 둥근 구멍이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콧구멍다리'라고 이름붙였단다. 새벽에 물안개가 장관이라고 한다. 부지런한 사람만 볼 수 있는 것. 여름에 춘천시민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소양강댐의 방류수의 수온이 낮아 시원해지기 때문이란다. 주변에 막국수집과 닭갈비집이 많아 찾는 외지인들이 많다.

10시 15분. 콧구멍 다리를 걸어서 건너가는 대원들.

 

상류 쪽으로 소양강댐이 보인다.

소양강댐: 1973년 12월 준공.

- 기능: 홍수 조절, 용수 공급, 전력 생산, 주변지역 지원사업 재원 확보

- 부정적 영향: 대규모 수몰지 및 수몰이주민 발생, 생활교통로 단절로 인한 주변지역 주민들의 불편, 지방세 수입 감소 및 지방비 부담 가중, 기상 변화로 인한 피해

 

소양강댐에서 물을 방류하기 시작한 것 같다. 물이 점점 차오른다. 집중호우시에는 방류량이 많아 세월교가 잠길 정도이나 평소에는 잠기지 않는다.

 

춘천시 우두동에 위치한 온수지이다. 별다른 시설이 아니다. 그냥 북한강 변의 평지에 만들어 놓은 저수지이다. 이곳에 물을 채워 놓으면 햇님이 찬물을 차지 않은 물로 바꾸어주신다. 그 다음에 주변 농경지로 공급된다. 냉해 방지를 위한 조치이다. 1977년에 조성되었다.

 

10시 50분. 옛날 옛적 카라오케에서 시작한 노래방. 그 때 그 시절 마이크 좀 잡았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불렀던 '소양강 처녀'

 

누구의 작품일까나...그 옛날의 자연 미인이 아닌 듯 하다. 의느님의 손길이 많이 간 얼굴?

 

소양강 처녀의 모습을 찍는 진사의 자세.

 

너는 누구세요~?

 

 

춘천댐과 춘천호를 지난다.

12시 10분.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사용하지 않는 석조 건물이 있다. 주변을 돌아보는 답사대원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사령부막사로 사용되었었던 곳이라고 한다.

 

막사 뒷편에 작은 창고가 있는데 이곳은 농산물 저장고로 이용되고 있다.

 

통일문제와 DMZ 일대의 평화적 이용방안에 대한 토의를 하고 있는 답사대원들.

 

화천읍에서 화천수력발전소, 꺼먹다리 코오쓰. 북한강이 딴산을 축으로 휘이 돌아나간다. 감입곡류하천이다.

 

오후 1시. 화천군 화천읍. 점심 시간이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맛있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점심을 먹었으니 다시 힘차게!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오후 2시. 화천수력발전소. 화천댐에 의해 조성된 인공호수인 파로호의 물을 수로식으로 발전하는 곳이다. 수로식 수력발전소라고 그 옛날 고등학교 때 열심히 외웠다. 그랬는데...그걸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강변에서 지형과, 발전소를 보며 인솔자인 강원대학교 김창환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있다.

 

바로 옆에서 그 강의를 청강하던 무료 수강생.

 

다리다. 꺼멓다. 그래서 꺼먹다리다. '국내 최고의 철골-콘크리트 교량'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가장 오래된" 이라는 의미이겠지.

 

콜타르 처리를 한 목재이기 때문에 검은 색이고, 부식에 오래 견딘다고 한다.

다리 위를 걸어본다. 

 

평화의댐, 비목공원.

 

3시30분. 강원 평화 지오파크. 안내도가 깔끔하게 게시되어 있다.

 

기억해야 한다. 쪽팔리는 대국민 사기극. 나쁜 놈들.

 

 

뭔가 내세우려면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필요하면 만들면 되는 것.

세계평화의 종. 분쟁지역의 탄피로 만들었다던가.

 

이렇게 하면 그럴싸한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정 시간마다 타종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오! 뎅~ 하고 소리가 난다.

 

물, 자연 그리고 사람. 거기에 비목공원. 고등학교 시절 음악 시간에 배웠던 가곡, 비목.

 

탑 아래에 한반도 모양의 조형을 만들려 애쓴 작품.

 

양구읍이다. 왜 경로 기록이 안되었었는지 의문이다.

한반도섬을 인공으로 조성하였다.

 

오후 5시 20분. 한반도섬은 2007년 양구군에서 파로호 상류에 한반도 모양으로 조성한 인공습지이다.

 

북한에서 임남댐을 건설하면서 파로호로의 유입량이 급격히 감소하였다. 그 때문에 거대한 나대지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잦은 수위 변동에 따른 생태계 파괴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나대지에서 무단 경작이 이루어지면서 농약과 비료 사용에 따른 북한강 수계의 오염이 우려될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양구군에서 250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조성한 것이 한반도 모양의 인공 습지이다.

 

한반도섬의 위치에 따라 해당 지역의 상징이나 특색있는 것을 배치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한반도의 특징을 쉽게 파악하게 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지리산을 오르다가...쓰러졌다.

 

백두산은 올랐다. 두번 올랐다.

 

평화공원 조성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토론을 진행하고 있는 대원들의 모습.

해가 저문다.

 

답사대원들은 두 팀으로 나뉘었다. 서른 두어 명의 인원을 한번에 수용할 수 있는 숙박 시설에 양구에 없기 때문이다. 삼호장에 14명, 온천모텔에 17명 숙박하기로 주최팀에서 조정하였다.

그리고 양구읍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작은 도움을 주기 위해 야간 활동도 병행하기로 했다.

브랜드 없는 동네 치킨집. 맥주는 시원했고, 치킨은 맛있었다. 바로 튀겨서 나오는 그 치킨.

 

양구읍내의 번화가이겠다. 재미있는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다. 철모라니.. 저것은 어느 부대의 마크일까?

 


7월 29일(화)

해가 뜬다. 아침 식사를 했을거다. 식당에서 남긴 사진이 이것 하나이다.^^

식당에서 사용하고 있는 냅킨 상자. 한반도의 국토 정중앙이라는 지리적 위치를 지역 마케팅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양구에 오면 젊어진다는 것은???

 

그리고 해안분지로 달린다. 4땅굴과 을지전망대를 방문하였다.

 

양구군 해안면은 펀치볼 지형으로 유명하다. 한국전쟁 당시의 격전지였다. 이곳을 찾은 외국 종군기자가 화채(punch)를 담는 그릇(bowl)처럼 생겼다고 펀치볼이라 부르면서 널리 알려졌다. 한국지리 과목에서 시험문제로 엄청나게 출제되었다.

 

구글 어스의 도움을 받아 3D 그림을 만들어 보았다. 남북 방향으로 약간 긴 타원형의 둥근 그릇 모양?

 

해안분지 역시 춘천분지와 마찬가지로 침식 분지이다. 심층풍화 작용을 받은 화강암괴가 차별침식되어 제거되었고, 변성 작용을 받은 퇴적암 부분은 주변 산지로 남은 것이다.

 

침식 분지 지형을 묻는 시험 문제로 한국지리에서 자주 보이는 지형도이다. 등고선들이 거의 동심원을 이루고 있다. 분지 내의 하천수는 분지의 동쪽으로 뚫린 당물골을 통해 빠져 나간다.

 

해안면 만대리의 가옥을 섭외했다.

 

9시 50분. 만대리 106번지 가옥의 옥상에 올라 주변을 조망한다.

해안분지의 형태와 지형이 농업에 미치는 영향, 전쟁 이후 주민 정착 과정, 그리고 DMZ가 주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과 같은 주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것 같다.

 

가옥들. 구조가 '통일'되어 있다.

 

농경지.

 

10시 20분. 양구의 명물이다. 통일관 앞에 설치된 인사하는 사람(Greeting Man). 양구 출신 조각가 유영호씨 작품. 그 뒤로 양구전쟁기념관 안내판이 보인다.

우리나라와 대척점에 위치하는 우루과이의 수도인 몬테비데오에 1호 '인사하는 사람'이 설치되었다. 해안면의 '인사하는 사람'은 2호이다. 이후 유영호씨는 1천개를 목표로 우리나라 및 세계 여러나라에 '인사하는 사람' 조각상을 설치하고 있다.

 

양구군 해안면의 통일관. 4땅굴 견학 신청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농특산물 판매장도 있다.

 

양구의 특산물이 시래기이다. 상표는 '펀치볼'.

 

11시. 안보관광지 4땅굴. '남침분쇄' 탑.

 

4땅굴 입구이다. 내부 사진은 없다. 사진촬영 금지였다.

4땅굴은 1990년에 발견되었는데, 국내에서 유일하게 내부 관람용 전동차를 운행하고 있다.

 

개 동상. 땅굴 수색중 지뢰에 산화한 수색견 헌트를 기리는 동상이라고.

 

땅굴 입구 주변에는 안보교육관이 있는데, 날개를 달아볼 수 있다. 날개가 좀 쳐져서 날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후 1시. 양구군 해안분지를 아주 잘 조망할 수 있는 을지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에서 북쪽은 촬영 절대 불가, 남쪽만 찍을 수 있다. 시키는대로 한다.

전설따라 삼천리에 따르면 관할 군부대에 방문 신청하고 허락이 떨어지기까지 한달여를 기다려야만 했다고 한다. 이젠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분지 전체를 깨끗하게 사진에 담을 수 있는 날이 흔치 않을 것 같다. 그만큰 분지 규모가 크다. 면 단위 하나가 들어앉은 곳이니...

 

셀피를 하나 남겨 본다. 눈돌아갔다.

 

돼지를 키우면서 뱀에 의한 피해가 사라졌다고 亥安이란 지명이 만들어졌다네. 해안분지는 차별침식에 형성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폐쇄형 분지이다.

 

방산자기박물관과 두타연 코스. 아, 중간에 옆으로 빠진 코스는 팔랑리 마을회관. 

 

오후 2시. 양구군 동면 팔랑리 마을회관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현지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하고자 섭외한 식당이라 하였다.

 

뭔가 대단한 마을인 것 같다.

종합우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였다. 농요와 지게놀이.

 

지게를 짊어지고 농요를 불러.....

 

벼농사, 그리고 한 쪽에는 옥수수 재배.

 

2시 50분. 양구백자박물관. 양구군 방산면 장평리에 위치한다. '방산자기박물관'으로 검색하는 것이 낫다.

양구 방산면 일대에서 도자기가 제작된 시기는 고려 때인 약 14세기경부터이다. 방산 지역에 풍부한 양질의 백토와 함께 수입천이 지나가기 대문에 물을 구하기 쉬웠고, 수목이 무성하여 땔감이 풍부하였으므로 도자기 제작에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구 백토는 석류석 화강편마암의 풍화토로, 백운모계 고령토에 해당된다. 철분 등 불순물이 적고, 대체로 미립의 균질한 원료로서 고려, 조선 시대에 걸쳐 백자의 중요한 원료로 사용되었다. 

1867년(고종 4년)의 기록에 따르면 전국 전국에서 공납되는 백토 2,095석 중 약 25%인 510석을 방산 지역에서 공납한 것으로 되어 있어 백자 원료의 공급지로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곳에 왔다. 백자를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을 한다. 나름 손재주가 있으니 이 정도를 목표로 시작한다.

 

어...그런데 백토를 이만큼씩 주는 줄 알았는데....

 

요만큼씩 밖에 안준다. 할 수 없다. 조금 작게 만들 수 밖에...

 

멋진 작품이 만들어진다.

 

대단한 손들. 금방금방 작품이 하나씩 만들어진다.

 

만들었다. 아들 이름을 새겼다. 너무 잘 새긴 모양이었다. 아들이 대학을 두번이나 들어갔다.ㅠ.ㅠ


 

수십년간 숨겨진 명소 두타연을 찾는다. 여차하면 저차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신분증을 맡기고 개목걸이를 하나씩 받는다. 위치추적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저차하면 안되는 것이다.

 

위치추적 개목걸이.^^

 

DMZ(Demilitarized Zone). 한국전쟁 이후 설정. 군사적인 이유로 어떠한 개발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 깨끗하다. 깔끔하다.

 

다만...

사소한 주의 사항. 정해진 통로로만 이동할 것. 아무데서나 머리카락 보인다 놀이를 하다간 펑~

 

그리고... 숨겨진 머리카락을 우연히 찾게 되더라도 놀라지 말 것!

 

중간 중간에 데크가 마련되어 있다.

 

평화 기원, 통일 기원 메시지들.

 

2009년 5월 준공한 출렁 다리, 두타교.

 

가뭄이다. 계곡이 물이 더 있었으면~

 

징검다리를 건너다가....다리를 무시한다. 신발 벗고 물이 발 담그기.

 

앗!

 

난 물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두타정.

 

계곡에서 두타연으로 이어지는 폭포. 물이 적어, 물이.

 

물이 흘러내리면서 기반암을 침식한 결과로 만들어진 지형들을 볼 수 있다.

 

두타연 조형물.

 

두타연은 말이죠~

두타연은 수입천의 지류인 사태천이 깊은 골짜기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과정에서 굽어진 부분이 절단되며 만들어진 폭포 아래의 물웅덩이(폭호)이다. 두타연에서는 과거에 굽이치며 흐르던 물길에 의해 형성된 하식동, 폭포가 떨어지는 힘에 의해 돌과 자갈이 소용돌이치며 만들어낸 포트홀(pothole, 돌개구멍), 과거에 물이 흐르던 흔적인 구하도 등 다양한 지형을 관찰할 수 있다. 민간인 출입통제선 북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잘 보전되어 있으며, 2004년에 자연생태관광코스로 일부 구간(약 18km)이 개방되어 많은 각광을 받고 있는 명소이다.

 

두타연. 폭포의 수량이 적어 잘 보이지 않는다. 물은 잔잔하다. 열목어의 최대 서식지라는데, 내 눈에는 안보였다. 

 

원추리가 곱게 피어 있다.

 

두타연의 본래 이름은 '드레소'였단다. 하지만 부근에 있었다는 사찰인 두타사에서 이름을 따와 두타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두타연 일대의 생태탐방로 안내 지도.

그렇게 전쟁 이후 비지로 숨어있었던 두타연 일대의 탐방을 마치었다.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다.

 

오후 6시. 이름이 아주 긴 곳이다. '이해인 시 문학과 김형석 안병욱 철학의 집'

 

시와 문학과 철학에 빠져드는 중~

 

6시 40분. 파로호 인공습지의 한반도섬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한반도섬 서쪽의 산지에 전망대가 있다. 조금 가파른 계단이다. 올라가려 왔으니 올라간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파로호와 한반도섬. 멀다.

 

망원렌즈로 조금 당겨보니 이 정도이다. 조금 더 높은 곳이 필요해보인다.

 

올라왔으면 그 다음엔 어떻게? 내려가야 한다!

 

신고합시다~!

 

해가 진다. 배가 비워졌다. 식당을 찾는다.

식사하며 곁들인 송이의 기운 때문일까?

뻗었다. 청춘은 무슨! 송이에 독성분이 들었던 것 같다...

 


7월 30일.

박수근 미술관, 그리고 국토 정중앙!

 

9시30분. 박수근미술관을 먼저 찾았다.

1914년 양구군에서 부농 자손으로 태어났단다. 갑자기 형편이 어려워져 보통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 밀레의 '만종'을 보고 감동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독학으로 자신만의 그림의 세계를 만들어 낸 것. 풀밭에 앉아 있는 거장 박수근. 

 

그를 기리는 박수근 미술관.

 

그를 기억하고 찾아주는 사람들.

 

그의 많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한반도의 정중앙 뽀인트를 찾아간다.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꽤 걷는다. 그래서 얼마나 남았는가를 알려주는 표지들이 계속 나타난다.

 

350m 남았다. 정중앙의 정기를 느껴보세요? 바로 인근이 군부대 사격장이다. 마침 이날 '산책중'에 그 친구들은 '사격중'이었다. 사격을 별로 해보지 못한 방위 출신은 많이 놀랐다.

 

하늘로부터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여 땅에 심는 휘모리탑.

 

갖고 있던 GPS 수신기. 북위 38도 03분, 동경 128도 02분. 조금 오차가 있다.

 

이곳에 왔던 것을 인증하다.

 

정중앙 뽀인트는 산 속에 위치한다. 

 

방문기념 인증사진을 만들어주는 기계가 옆에 있다. 만들었다. 국토 정중앙 양구 방문기념.

 

12시. 국토정중앙천문대. 이곳에서 특수분야 직무연수 팀 수료식을 거행하였다.

 

12시 30분. 수료식 후에 농촌진흥청 지정 농가맛집에서 양구의 대표 특산물 시래기 요리를 맛보았다.

 

시래기 요리 전문집 시래원은 봉화산로 457번지(양구군 남면 도촌리)에 위치한다. DMZ 평화지질공원파트너이다. 광고타임~

 

양구군에서는 국토정중앙이라는 지리적 위치를 마케팅에 적극 이용하고 있다. 정중앙에 있다고 "배꼽마을"이다. 최근에는 배꼽길, 배꼽 카페, 배꼽 공원, 캠핑장 등도 지정하였다는 소식이 신문에 나온다.

 

그리고 강원대학교로 귀환하였다. 주차장에서 2박3일 동안 잘 쉬고 있던 차를 끌고 서울로 열심히 달렸다. 집에 왔다.

그렇게 춘천, 화천, 양구로 이어지는 DMZ 답사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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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백제로 가고 있습니다"

 

 

2017년 5월 27일에는 백제의 두 도시 답사를 하였다. 

그렇다. 백제의 두 도시이다. 공주와 부여.

 

서울 중동고등학교 지하 주차장에 차를 맡기고 답사 차량에 몸을 던졌다. 06:30에서 조금 일행이 될 뻔한 분들을 기다리다가 출발한다. 남으로 남으로 저위도 지방으로 차는 달린다.

다른 지방에서 오신 분들과 공주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단다. 정안휴게소에서 한번 정차하였다. 지난 밤 몇몇 분들과 뱃속 괴롭히기를 한 후유증 때문에 내내 불편하였다. 머리 속에서는 끊임없이 쿠데타. 하지만 라면 한 그릇 먹으니 진정된다. 라면의 마법!

정안 휴게소는 '알밤휴게소'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공주, 부여 지역에서 밤이 많이 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공주종합버스터미널을 휘이 돌아간다. 금강교를 건너 공산성 주차장으로 향한다.

 

금강교. 30여 년 전에 처음 와보았던 곳. 그리고 2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곳. 요즘 차량이 지나다니기에는 좁기 때문에 차량이 편도로 이용하고, 남은 부분은 자전거 도로가 되어 있다.

그렇게 백제에 도착하여 답사를 시작하였다.

 

 

서울에서 남으로 달려 공주에 도착, 공산성에서 공주 분지 일대의 답사를 시작하였다. 이후 공주보에 들렸다가 점심 식사를 하고, 우금치를 거쳐 부여분지로 향하였다. 그리고 성흥산을 올라 오늘의 답사를 마감하였다.

 

이날 들렸던 답사 경로와 답사 뽀인트들이다.

 

오늘의 답사를 시작했던 공산성과 공주보 일대의 인공위성 영상에 답사 경로를 그려보았다.

 

백제역사유적지구 안내지도에 실린 공주 부분 확대도이다.

 

공산성을 올라 성벽과 성안 마을을 걷는 답사를 하였다.

 

공산성 성벽에 올라 내려다본 주차장의 모습. 주차장에서 오늘의 답사팀원들이 모였다. 건너편으로 상가 건물들이 보이나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활기찬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입장하는 답사대원들. 입장료는 1,200원이다. 20명 이상이 되면 "단체요금"을 적용받을 수 있다. 1인당 100원씩 빼준다.

 

백제가 공주로 수도를 옮기게 된 것은 방어의 목적이 가장 컸다고 한다. 급경사 사면은 산성을 쌓고 방어하기에 적합했었으리라. 답사객은 공격하는 병사가 아니니 살살 올라간다.

 

UNESCO에 세계유산으로 등재하였다고 한다. 표지석.

 

역사가 좀 되었다 하는 곳을 가보면 각종 공덕비가 넘쳐난다. 인근의 것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제민천교영세비'가 눈에 든다. 이것은 일반 관리가 자신의 "공덕"을 "송덕"하는 것이 아니라 1817년에 발생한 여름 홍수에 제민천 일대의 제방과 교량이 붕괴되는 피해를 입자 일대를 복구하고 제민천교를 만드는데 공이 있는 10여 명의 이름을 새긴 비석이라고 설명이 적혀 있다.

 

주차장에서 공산성을 올라 성문 위의 누각에 모였다. 이곳에서 민석규 박사님의 강의가 있었다. 인근 지역의 지형과 역사 등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협소한 편마암 분지를 이룬 곳이라 한 나라의 수도로서 사람들이 생활하기에는 불편하였을 것임에도 이곳을 수도로 선정한 것은 그만큼 방어의 필요성이 컷을 것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성문에서 북쪽의 금강변을 향하여 축성된 성벽이다. 깃발들.

 

어린 학생들이다. 단체로 나와 지도교사로부터 '소리'를 배우고 연습하고 있었다.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열심이다. 남도 답사를 할 때면 종종 볼 수 있는 뿌듯한 모습. 기특하다.

 

성벽을 걸으며 아래 쪽을 보니, 또 어린 학생들이 단체로 입장하고 있다. 귀엽다.^^

 

성벽을 오르니 녹음과 바람이 모두 시원하게 느껴진다.

 

금강이다. 금강을 건너는 철교가 옛날의 '금강교', 서쪽의 다리는 새로 만든 '백제큰다리'이다.

 

언덕에 새로운 누각이 보인다.

 

금강철교가 놓이기 전에 배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1832년 공주에 있던 충남도청을 대전으로 옮기면서 금강철교를 건설하였다는 이야기가 적혀있다. 공주갑부 김갑순의 이야기도 나누었다.

 

새로 만들어 놓은 누각. 이곳에서도 어린 학생들이 단체로 '소리'를 배우고 있었다.

 

답사객들은 금강변을 따라서 성벽을 걷는다.

 

새는 금강 위를 난다.

 

금강을 건너는 나룻터를 지키는 곳이었을 것이다. 공산성의 북쪽에 있는 공북루.

 

공북루에 올라 역사와 지리를 아우르는 강의를 듣고 있다.

 

'성안마을'이었을 곳에 있는 안내자료.

 

하지만 마을은 없고, 텅빈 공터만 남아 있다. 30여년 전에 왔었을 때는 잡초만 무성했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공산성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체험. 활쏘기 체험장. 비용은? 웅진통보 1냥!

 

성내의 이곳저곳을 들러본다. '고지도로 본 공산성'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안내자료.

 

왕궁이 있었던 정확한 뽀인트는 아직 모르는 것 같다. 추정지만 발견되었다.

 

연못의 흔적이 발굴되었다.

 

공주 구시가지를 북으로 흘러 금강에 합류하는 지류인 제민천이 범람하면 그 피해가 막심했던 것 같다.

 

공산성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 백제의 병사들(?)이 성벽 방어를 위해 투입되고 있다. 투입되면서 여러가지 창술 시범을 보인다. 그림 그려진 옷이 아니라 조금 더 신경 써서 투자하여 진짜처럼 보이는 군복을 입고 시범을 보이면 관람객들이 더 좋아할 것 같다. 나도 그렇다. 중국 실크로드 여행 중에 보이는 시범조들 보면 참 열심히 한다는 생각을 들게 된다. 가욕관의 공연도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공연하는 젊은이들...

 

병사의 배치가 완료되었다. 관광객들은 병사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한다.

 

공산성 아래 주차장 앞에 있던 버스 정류장 표지이다. Gong-Mountain fortress?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두대의 답사용 차량에 나누어 타고 공산성을 출발한다. 금강변으로 나갔다가 제민천을 따라 이동한다. 물을 뿜어내고 있는 시설이 보인다. 공주보이다.

 

공주보를 차량으로 건너 공주보사업소 건물 앞쪽의 주차 공간에서 4대강사업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봉황 힘찬 날개짓을 왜 강물에서 하나 모르겠다. 구만리 장천에서 할 일이지.

 

말들 참 잘 만든다. '말'만...

 

서쪽에서 본 공주보의 모습이다.

 

공주보 제원

 

옆에는 기상관측시설도 설치되어 있다.

 

공주보는 물을 저장하여 보의 상류부 수위를 높이는 기능을 하며, 하천을 건너는 육상 교통로로서의 기능도 갖는다.

 

또한 수력발전도 한다고 한다.

 

조 아래에 수력 발전 시설이 있는 갑다.

 

발전 시설 쪽으로 유입되는 강물. 물색은? 참담하다.ㅠ.ㅠ

 

보에서 물은 왜 뽑아올려 다시 뿜고 있는지 모르겠다.

전력을 생산한다는 것을 뽐내는 것인지....그냥 멋? 물을 식히는 중??

 

공주보 사업소의 건물은 근사하다.

 

2017년 6월 8일자 신문에 올라왔다. 6월 1일부터 공주보를 상시 개방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동 경로의 문제 때문에 이른 점심을 들었다.

 

명태조림. 좀 짜기는 했지만 맛있었다. 바로 해서 나오는 밥도 맛있고.

 

공주 지역이 밤 생산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 밤이 좀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음료를 조금 시음해 보았다. 아~주 조금.

 

우금치를 걸어서 올랐다. 차량은 아래에 건설된 터널을 이용하여 통행한다.

 

우금치. 긴 역사의 현장이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르면 탑이 보인다.

 

우금치 전적비이다. 전적지에 대한 안내문.

 

역사의 현장에서 구조선의 배열에 대해 논하고 있다. 지각 운동에 의해 땅이 갈라진 단열(fracture)을 따라 산지의 낮은 안부가 형성되고 그러한 곳은 험준한 산지를 넘는 교통로가 된다. 그러한 예의 한 곳이 우금치 되시겠다.

 

우금치의 분수계에 섰다. 물을 뿌려본다. 양쪽으로 갈라진다.

 

지금은 사람들의 통행이 없는 곳에 장승들을 세워 놓았다.

 

누가 몰래 장승들 옆에 개를 묻었다. 곧 없앨 것이라는 안내문이 옆에 있다. 또한 이런 것을 만드는 것은 불법이라는 계도 내용도 함께 있다.

 

우금치로 사람들이 다니지 않게 된 것은 아래 쪽으로 터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차들이 쓩쓩 달린다.

 

만수리 구하도. 구하도는 논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새로운 유로는 대화원 쪽으로 형성되었다. 유로 변경이 하천의 하방침식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하천의 유로 변경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금강과 합류되는 작은 하천이다. 용성천. 그 작은 물길이 새롭게 유로를 변경하여 흐르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하천이 흐르면서 침식한 모습으로 보기는 어렵다. 지각 운동의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용성천 양안의 절벽이 가파르다.

 

인근 산지에서는 한창 공사중이다. 어느 있는 집안의 묘지 조성일까?

 

중생대 백악기 퇴적된 역암을 살펴보는 답사원들. 만수리 구하도 지역에서는 역암 외에도 적색사암도 발견된다고 한다. 경상도 일대의 경상계 퇴적암과 같은 시기에 퇴적된어 형성된 것이라 한다.

 

돌 속에 자갈이 있다. 역암이 확실하다.ㅎ

 

과거 언젠가 물이 흘렀던 구하도. 지금은 논으로 개간되어 있다.

 

차가 달린다. 잠이 쏟아진다. 눈이 감겼다. 밤으로 만든 식품을 조금 먹으면 졸린가보다.

 

수도를 빼앗겼으니 국가의 운명이 걸렸다 생각했었으리라 그래서 방어에 최적인 공주를 수도로 삼았었다. 하지만 점차 나라가 안정되자 협소한 공산성의 한계를 느껴 웅진 시대를 마감하고 보다 넓은 평야를 품고 있는 부여로 수도를 옮기게 된다. 사비성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협소한 편마암 분지에 위치했던 수도를 넓은 화강암 분지 지역으로 옮긴 것이다.

 

백제의 마지막 역사가 새겨진 곳에 왔다. 부소산성. 낙화암, 사자루 등을 답사하였다.

 

백제역사유적지구 안내지도에서 부여 부분의 확대지도이다.

 

백제의 왕도 부여. 부소산성.

 

세계유산이다.

 

부소산성은 요렇게 되어 있다.

 

길을 따라 걷는다. 길옆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 나온다. 좋다.

그런데, 계속 걷다보니 시끄러운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재능기부 중이었단다. 좀 시끄럽게 기부하고 있었다.

 

낙화암 쪽을 먼저 찾았다. 백화정을 만들어 놓았다. 사람들이 가득하다. 삼천 명쯤 되겠다.

 

백화정 아래 쪽이 낙화암이다. 백제의 사직이 무너지던 날 백제의 여인들이 적군에게 사로 잡혀 치욕스런 삶을 이어가기 보다는 충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몸을 던졌던 것으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고 옆의 비석에 적혀 있다. 레알?

 

셀피나 하나 박고....

 

요 쪽으로 돌아가면..........

 

고란사가 나온다. 그 고란사다. 달밤이 아닌 것이 아쉽구나.

백~마강~에 고요한 다~알 밤에 

고란사에 종소리~이가 들리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불러보자 삼처~언 궁녀를~

 

아담하다. 예쁘다. 기와불사다.

 

전설 속의 샘물이다.

 

금강변의 절벽에 기대어 있는 아담한 절집.

 

걷는 것을 싫어 하지만 언제 또오랴 싶다. 부지런이 발을 옮긴다. 부소산 정상에 사자루가 있다.

 

지난 달의 답사에서 누각, 정자 등을 사진으로만 찍고들 돌아서는데, 올라서 보라는 조언을 들었었다. 올라가 금강인지 백마강인지 하는 쪽으로 눈을 두어 본다. ㅠ.ㅠ

나무님들께서 완벽하게 가려주신다. 내려간다.

 

원래는 이렇게 보여야 했나보다. 왼쪽부터 부산, 금강, 왕흥사지, 백제문화단지라고 적혀 있다. 부여분지 내부의 저기복 구릉대의 모습이 대충 보인다. 특히 부산은 들 한가운데 불쑥 솓아 있는 독립 구릉인데, 한자로 뜰 '부' 자를 쓴다.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그래서 물에 떠내려온 것이라는 전설도 있고.

 

사자루를 나서며 아쉬움에 셀피 하나 남긴다. 노출 차이가 심하여 각 잡는데 애먹었다. 머리털이 안보인다...ㅠ.ㅠ

 

저 문을 나서면 부소산성과 또 이별이다. 다음에 보자꾸나.

 

부소산성을 나서 성흥산으로 향하였다. 

 

성흥산에서는 대조사와 성흥산성(가림성)을 답사하였다.

 

대조사이다. 주차장에서 계단을 좀 올라야 한다.

 

큰 새가 날아든 곳이라 대조사라 하였다고. 미륵석불이 유명하다.

 

계단을 오를 때 왼쪽으로 보이는 자그만 종각이 예쁘다.

 

원통보전. 그 앞의 석탑도 유명한 것이라고 한다.

 

원통보전 안에 모셔진 부처님.

 

원통보전 뒤편에 서 계신 부처님. 자연 상태의 화강암괴 일부를 조각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 고려 시대 호족들의 정치적인 욕심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부처님이 많이 아프시다. 보수 공사중이다.

 

부처님 바로 옆의 바위에 낙서한 이 분들은 누규?

 

인간들이 그래 놓았음에도 부처님은 무표정~

 

샘에 얽힌 재미난 사연.

 

대조사가 위치한 성흥산에는 산성이 있다. 백제의 것이란다. 표지판이 많다.

오늘 하루에 오르는 세번째 산성이다. 공산성, 부소산성, 성흥산성(가림성).

 

 

화강암 산지. 암벽이 드러나 있다.

 

위쪽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인다. 와~

크다. 그늘이 넓다. 향토유적으로 지정해 놓았다. 보통은 보호수로 지정하는 것 같던데..

또 전국으로 흩어져야 하기에 이곳에서 오늘의 답사를 마감한다. 역사와 지리가 함께 하는 하루였다.

 

2017년 5월 27일. 편마암 분지인 공주 일대와 화강암 분지인 부여 분지 일대의 답사 경로도. 카메라 아이콘이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니 그곳이 이동을 멈추고 '답사'했던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경 중에는 화장실이 궁금하여 안성휴게소에 잠시 정차하였었다. 그리곤 서울로!

 

중동고등학교 지하주차장을 빌려 차를 맡겨 놓았었다. 밤에 도착하여 차를 빼려 하는데, 입구의 차단기 전원이 꺼져 있어 황당했다. 오늘의 해프닝~

 

한 두달에 한번 이런 답사가 있기에 일년이 후다닥 가는 것 같다.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뭔가 하는 것 같다는 자기 위안도 되고...

 

(투 비 콘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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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트립에서 주관하는 국내 답사 36회

 

지오트립에서 36회 국내 답사의 주제는 '예천_안동으로 떠나는 동천구곡 답사여행'이었다. 봉화, 안동, 하회, 영주, 예천의 지형을 중심으로 인문을 살피는 답사였다.

 

답사기간은 2017422() ~ 423()로 2017년 답사에서 첫번째 1박2일 짜리 답사였다. 그동안 국내 답사를 가면 대청역 주변에 위치한 중동고등학교 지하 주차장에 신세를 졌었다. 그런데 이제 중동고등학교의 주말 주차장 인심이 자본주의가 된 모양이다.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대청역 환승 주차장이었다. 주말이니 주차 공간은 걱정하지 않았다. 22일 6시05분에 입차하고 23일 저녁 21시21분에 출차하였다. 주차 요금이 기대 이상이었다.^^

47,000원. 신용카드 계산. 이 정도라면 앞으로 계속 이용하기는 곤란할 것 같다.

 

 

이번 답사의 인솔은 조헌 교수님(가톨릭관동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이 이번에도 맡아주셨다.

 

이번 답사의 코스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422(봉화·안동

10:20 봉화 석천정 계곡 (화강암 계곡), 안동 도산구곡 가송협농암종택 (퇴적암 계곡)

13:30 ~ 14:20 중식 (헛제사밥+고등어)

14:30 ~ 14:50 안동 영호루 (안동시가지 조망)

15:20 ~ 15:50 단호리 낙암정 (낙동강 조망)

16:00 ~ 16:30 마애리 망천절벽 (퇴적암 절벽경관)

17:00 ~ 17:40 하회 부용대 (낙동강 하곡 조망)

18:20 ~ 석식 (안동찜닭)

숙박 병산서원 내부 동재외부 주사(독채)

 

423(안동·영주·예천

07:30 ~ 08:30 개별 기상 후 조식 (집밥 시원한 콩나물국)

09:20 ~ 09:50 영주댐

10:00 ~ 10:40 영주 무섬전통마을 (내성천 모래톱)

11:00 ~ 11:30 예천 수락대구곡 충효테마공원 (화강암 계곡)

12:00 ~ 12:50 중식 (용궁면에 소재한 단골식당 순대국+오징어불고기)

13:20 ~ 14:10 예천 회룡포 전망대 (내성천 하류 경관 조망)

14:30 ~ 15:00 예천 풍양면 삼강리 (합강 경관)

15:00 ~ 해산

 

예정했던 대로 답사가 진행되었다. 예천과 봉화에서 참가자들과 랑데뷰하고는 봉화의 석천정 계곡에서부터 시작~

 

경북 북부 지역의 암석분포도이다. 예천 - 영주 - 봉화 - 안동 일대는 편마암, 퇴적암 지대로 둘러싸인 거대한 화강암 분지 환경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분지 내부의 내성천을 따라 긴 변성암대가 산지를 이루고 있다.

 

 

22일에는 안동 북쪽에 위치한 학가산을 한바퀴 도는 듯한 코스로 이동하였다.

 

 

22일 토요일 새벽에 일어나 가볍게 아침 비슷한 것을 챙겨 먹고 후다닥 챙긴다. 잊을까봐 챙겨 놓은 것이 있었는데 결국 흘리고 나온 것이 있었다. 할 수 없다. 다시 10층까지 걸어 올라갈 시간과 체력이 없다. 새벽을 도로를 조용히 달린다. 대청역 도착.

대청역 주차장은 1번 출구를 나와 대청타워 지하주차장 입구를 지나면 찾을 수 있다. 주차를 마치고 중동고등학교 정문 앞으로 오니 2호차에 탑승할 인원이 모두 모여 있었다. 예정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지만 꼴찌! 내가 타니 추울바알~

 

네비의 도움을 받으며 능숙한 기사가 운전하는 포드 자동차의 덩치 큰 차가 달리고 있다. 핸들을 굳게 잡은 손에서 능숙한 전문가의 포쓰가 느껴진다.

 

중간에 아침 식사를 위해 들린 휴게소에서는 야생화 냄새가 날지도...

 

10시 40분. 1박2일 답사의 시작 뽀인트다. 봉화의 석천계곡 혹은 석천정 계곡이라 불리는 곳에 도착하였다. 봉화읍 유곡리에 위치한다.

 

도착하면 모여선다.

 

동행한 대한민국의 미래들은 자연과 과학을 즐기는 한편,

 

어른들은 학문에 심취한다.

 

내성천의 지류인 가계천에 석천정 계곡이 위치한다. 기반암이 화강암인 지역이다. 판상절리, 수직절리 작용을 받은 화강암이 풍화, 침식 작용을 받은 하상이 잘 발달되어 있다. 계곡을 건널 수 있는 대충 만들어진 다리를 건넌다.

 

다른 답사객들은 계곡 한쪽에 있는 수명루 앞으로 모이고 있다. 하지만 나는 홀로 나의 길을 간다.^^

 

여러 사람들의 정성으로 쌓아올려진 석탑을 지나서 간다. 쭈욱 간다.

 

찾았다. 암벽에 각자된 것. 석천정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전설은 이렇다.

 

도깨비 정도는 되어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글씨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청하동천'이라 한다. 신선이 노니는 마을이란 뜻이라고 위의 판떼기 사진에 나와 있다. 글자의 의미보다는 주사를 하여 도깨비를 쫓은 모양이다. 여기서 '동천'이 등장했다. '동천' 이번 답사의 주제이다.

동천(洞川)은 도가에서 신선이 사는 별천지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렇게 경치가 좋은 곳을 가리키는 동천을 주자의 武夷櫂歌를 참고하여 9개의 굽이로 나눈 것이 洞天九曲이다. 주자의 것을 참고한 것이므로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장소에 대한 자연관, 인생관을 반영하고 있으며, 시문으로 기록해서 후세에 전해진 전통 문화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동천구곡은 주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산지 지역에 분포하는데, 이것은 인근에 위치한 양반의 계거촌과 관련이 있다. 동천구곡은 지형은 반영하는 것으로서 화강암과 퇴적암 경관과 주로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기반암 지역의 산지 내부를 흐르는 곡류하도에 동천구곡이 입지하며, 하도 주변에 나타나는 다양한 지형 요소들이 주요 경관을 이룬다. 봉우리, 소규모 평탄면, 토르, 수직절벽, 폭포, 여울, 소, 포인트바, 너럭바위, 거력, 암설사력퇴, 마식된 암반하상과 포트홀 등이 그 구성 요소를 이룬다.

(답사자료집 6쪽)

 

 

다시 석천정의 수명루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다른 답사객들은 수명루 아래의 너럭바위에 앉아서 혹은 서서 동천구곡과 화강암 지형 형성 및 경관에 대하여 심층적이고 학구적인 토론을 하고 있더라.

 

화강암 기반의 좁은 골짜기를 지나는 하천은 침식을 통해 기반암을 노출시키게 된다.

 

징검다리는 조심 조심 건너야 한다.

 

11시 50분. 계곡을 나서면 봉화읍 유곡1리의 닭실마을이다. 금계포란형의 명당이란다.

 

충재 권벌을 중심으로 한 안동권씨 집성촌이다.

 

닭실마을이라 그런지 가로등 장식으로 닭을 올려 놓았다.

 

이 마을에서 어린이 대상 TV프로그램 '후토스'를 촬영했었나 보다. 마을 입구에 그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있다.

 

닭실마을은 농촌이다. 농사를 짓는다. 한창 벼농사 준비를 하고 있다.

 

실내에서 키워낸 모판을 논에 깔고 있다. 이후에 논물을 대어 외부 환경에 적응시킨 후 이앙을 하게 될 것이다.

 

12시50분. 화강암 계곡 다음에는 퇴적암 계곡이다. 봉화에서 안동으로 넘어왔다. 도산구곡이다. 그 중에서 수십 미터의 퇴적암 절벽이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고산정 일대.

 

켜켜이 쌓인 퇴적암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색이 어두운 부분은 이끼의 흔적, 밝은 부분은 풍화된 부분이 떨어져 나간 결과이다.

 

절벽이 양쪽으로 나타나고 그 사이의 낙동강은 깊은 沼를 이루고 있다. 바위에서 이름 모를 조사는 세월을 낚고 있다. 그리고 물론 물고기도 낚을 것이다.

 

이렇게 경치가 좋은 곳을 양반들께서 그냥 두었을 리가 없다. 함께 즐기는 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고산정. 그 처마 밑에서 답사객들은 잠시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했다.

 

근사한 곳으로 유명하여지니 많은 문인들이 이곳을 즐겼다고 한다. 퇴계께서도...

 

갑자기 후두둑 떨어지던 빗줄기가 사라지자 다시 답사에 열중하는 답사객들. 나의 뒤통수도 보인다.ㅎㅎ

(석화아부지 제공 사진)

 

 

조헌 교수와 함께 하는 답사는 늘 점심 시간이 늦다(^^). 그 만큼 열정적으로 지식과 지혜를 나누고자 하기에 그렇다. 오늘도 물론!  식사하고 나오니 3시였다.

안동 지역의 먹거리로 유명한 메뉴 중의 하나인 헛제사밥과 고등어구이로 점심을 맛있게! 안동댐 아래 쪽의 월영공원에 위치한 어느 식당에서!

 

3시 30분. 안동 시내를 본다. 강변의 둔덕에 영호루가 있다. 하상계수가 큰 하천변에 건축되었기에 홍수 피해를 자주 입었다.  그래서 1970년 에 현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영호루의 난간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낙동강과 안동 시가지가 근사하게 보인다.

 

영호루는 시내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다. 근처에서는 어느 대선 후보의 유세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였다.

북쪽 면의 영호루라는 글자는 고려 공민왕의 친필 현판이라 한다.

 

DEM 이미지가 자주 사용된다. Digital Elevation Model. GIS에서 고도 분포 자료를 갖고 만든 이미지이다. 대략적인 지형 윤곽을 파악하는데 넘나 좋다. 

(석화아부지 제공 사진)

이쪽 학가산 줄기로~~~

 

4시 30분. '유교문화길'이란다. 그 길의 중간 즈음에는.........

 

요렇게 예쁜 화장실이 딸린......

 

아담한 정자, 낙암정이 있다. 이곳에 오니 또 빗방울이 반겨준다. 날씨는 좋은데, 빗방울이 떨어지는 묘한 날씨였다.

 

낙암정 아래에서 낙동강과 그 주변의 충적 평야 지형을 조망하였다. 물론 산지 체계와 그 산지 사이를 곡류하는 하천에 의해 만들어지는 하천 지형과 평야 지형에 대한 강론도 있었고. 하천 주변의 미지형에서 동 아시아 대륙의 지형 형성까지 스케일의 변화 무쌍한 변화 속에서 지식 샤워~

 

낙암정 앞으로는 안동시내 쪽에서 흘러나온 낙동강이 풍산 쪽으로 굽이치며 빠져나간다. 그래서 낙암정 앞으로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하천의 범람에 의해 형성된 비옥한 토양은 이 지역의 농업 생산력을 유지시킬 수 있었고, 그러한 경제력이 반촌을 형성하는 밑바탕이 될 수 있지 않았나 한다.

 

5시 30분. 풍산읍 마애리에는 輞川 절벽이 있다. 輞川은 중국 섬서성에 있는 하천으로 당대의 시인 왕유가 놀던 곳이란다. 그 이름에 따온 것이다. 중화사상이지.

이 망천 절벽은 길이가 약 2km, 높이 약 30~100m에 이른다.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수직 절벽이 나타나 보는 이를 압도한다. 높고 낮은 수직 절벽이 계속 이어져 있어 답사객들은 눈둘 곳을 잊었다.

 

태백에서 발원하여 남남서로 흐르다가 청량산을 지나 안동에 이를 때까지 험한 산지를 곡류하며 통과한다. 안동 일대에서 하곡의 폭이 넓어지며 서쪽으로 선회하여 흐르는데, 상주시 퇴강까지 거의 동-서 방향으로 흐른다. 이곳이 바로 안동 임하에서 풍산읍, 풍천면 일대까지 뻗어 있는 안동 단층대 구간인데, 낙동강의 유로와 거의 일치한다. 큰 틀에서 낙동강은 이 단층대를 따라 동에서 서로 흐르지만, 하곡 내부의 수많은 구조선들의 영향으로 유로가 직각으로 꺾이면서 곡류 하도를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곡류 구간이 병산~하회마을 구간이다. 이러한 낙동간 본류변의 양안에는 상당히 규모가 큰 퇴적암 절벽들이 공격사면을 중심으로 연이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상락대, 망천 절벽, 병산, 하회 부용대 등이 그러한 예에 해당하는데, 망천절벽이 가장 규모가 크다.

 

망천절벽을 잘 볼 수 있는 마애리 솔숲공원 한켠에는 선사유적전시관도 있다.

 

부용대를 향해 길을 재촉한다. 풍산이다. 풍산장터를 알리는 구조물. 그 위에 걸터 앉은 "한우". 안동한우 불고기타운이란다. 하지만 삼겹살집이 규모가 더 커보인다.

 

6시 20분. 부용대를 오르기 위해 화천서원 주차장을 찾았다.

 

부용대는 연꽃의 뜻을 품고 있다. 이날 알았다. 어려운 한자~

 

퇴적암 수직 절벽이라는 부용대에 올랐다. 하회 마을이 예쁘게 보인다. 그동안 하회마을만 왔었는데, 그곳에서 부용대를 바라보기만 했었는데, 이제 부용대에서 하회 마을을 바라본다. 근사하다. 카메라의 렌즈에 한 방에 안들어오는고로 파노라마 사진을 만들어보았다.

 

드론으로 보면 이러한 시야각이 나온다.

 

골목길로 들어가보자~

 

심각한 표정으로 사진 한 방~

드론을 빨리 살 것인가, 천천히 살 것인가... 고민이다.

이곳 저곳에 '추락위험' 표지판에 보인다.

 

부용대를 내려와 다시 화천서원으로...

지붕, 지붕, 지붕을 잇는 선들이 이리 저리 눈을 옮길 때마다 다르게 보인다. 신기하다.

 

그런데, 서원의 변신이 대단하다. 서원이 카페, 민박으로 바뀌었다. 웰컴이란다....

 

드디어 병산서원이다.

 

7시 20분. 날이 저물었다. 서원 옆에는 찾는 사람들이 많은지 식당도 많다. 그 중에 예약된 식당을 향한다.

 

이번 답사의 백미. 병산서원에서 잔다. 서원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화장실과 세면대는 있다. 나머지 편의 시설은 없다. 그냥 방. 하지만 그래도 좋다. 우리 단체의 인원이 많아 이곳의 방들을 통채로 빌렸단다.

평소에는 바라만 보면 만대루에도 올라본다. 뜻이 있는 사람들 서넛이 모여 앉아 그 옛날 유생들 흉내를 내본다. 좋구나.^^

 

아쉬운 시간은 너무 짧아서 더 아쉽다. 밤이 빠르게 익어간다.

 

동재와 서재 중에서 나에게는 서재가 배당되었다. 방으로 기어들어간다. 보일러를 사용하여 따뜻하게 난방이 들어온다. 좋구나. 개꿀잠~

 


 

23일에는 23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날이 밝았다.

 

6시 30분. 아침에 보는 만대루. 그 넘어 낙동강 쪽으로 물안개가 자욱하다. 나가본다.

 

눈이 호강하니 가슴이 뛰는구나.

 

할 일이 없기도 하였지만 이번 답사 함께 하길 너무나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비들이 사용하던 화장실이란다. 달팽이 화장실 너머로도 안개가 피어난다.

 

서원을 나서 강변으로 걸어가본다. 살짝 젓은 모래, 그 위로 날아다니는 안개~

병산서원이라는 이름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란다. 산이 둘러싼 것이 아니라 안개가 둘러싸고 있다.

 

하얗게 피어나는 물안개처럼 당신은 내가슴속에 살며시 피어났죠.
조용히 밀려드는 물안개처럼 우리의 속삭임도 그러했는데.
하얗게 지새운 밤을 당신은 잊었나요. 그날의 기억들도 당신은 잊었나요.
기다림에 지쳐버린 길잃은 작은영혼. 온밤을 꼬박새워 널위해 기도하리.

 

아침을 먹고 나오니 하늘이 쾌청하다. 만대루는 다시 출입 금지 공간이 되었다.

 

8시 30분. 병산서원의 아담한 모습이 깔끔하게 보인다. 

자 가자... 지난 밤의 추억을 곱게 접어 두고서...

 

 

23일의 이동 경로이다. 안동을 출발하여 학가산을 한바퀴 돈다. 영주, 예천으로...

 

8시 50분. 잠시 멈추어 낙동강 변의 풍산들의 경관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 일대에서는 가장 너른 평야라고 한다.

 

9시 40분. 영주댐 상류에 위치한 평은면 금광리에 새로 건설된 동호교 위헤 잠시 정차하고 영주 댐 상류 지역의 경관을 관찰한다. 이동하는 차량이 거의 없어 이렇게 조망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서서히 물이 채워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건너편에 한창 공사중인 곳은 이주단지이다. 이미 철거는 완료되었지만 이주단지는 이제 터를 닦고 있다. 순서가 엉망이다.

 

과거에 마을이 있었던 곳이었으나 모두 깔끔하게 철거되었다. 한켠에는 차를 몰고 나와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낙동강 하류의 수질 개선을 위해 상류에 만들어진 댐. 건설 목적이 매우 창조적이다. 이 일대의 사면에서는 굉장히 많은 양의 모래가 공급되는데, 댐의 상류에서 공급되는 토사를 영주댐이 어찌 견뎌낼 수 있을지, 모래의 순환 과정을 차단한 댐으로 인한 문제는 어찌될지. 2016년부터 저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햇볕이 강하지만, 영주댐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안타까움만 쌓인다.

 

영주댐 건설은 무섬마을의 앞에 쌓인 모래톱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무섬마을은 하회 마을, 회룡포 처럼 물길이 마을을 돌아나간다. 마을이 있는 쪽은 내성천 물길의 보호사면에 해당하여 많은 모래가 퇴적되어 있다. 무섬마을이라는 이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인 水島里의 우리말 원래 이름이다. 풍수지리에서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연화부수'의 형국이라 하여 길지로 친다. 그래서인지 뼈대 있는 집안이 대를 이어오고 있다.

가옥 가운데 38동이 전통 가옥이고, 16동은 100년이 넘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들이다. 하회마을과 비슷하지만 일반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옛 선비고을의 맛을 보다 잘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꼽혔었다.

 

무섬마을 헌장이라는 것이 있다.

 

11시 10분. 전통 가옥들이 깔끔하게 잘 보전되어 있으며, 전시용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 거주하고 있다.

 

도처에 보이는 것이 문화재요 민속 자료이다. 그래서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문화재 제278호이다(2013.8.23 지정).

 

틈새틈새에 마을보존회의 허가를 받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작은 가게, 큰 가게가 보이기도 한다.

 

마을을 외부 지역과 연결시켜주는 수도교. 일방 통행만 가능한 좁은 다리이다. 그래서 내성천을 따라 새로운 진입로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무섬마을을 찾는 사람들 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외나무 다리를 찾아 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림같은 그림을 보여주는 곳이기에 드라마의 배경이 되기도 했었나보다.

(석화아부지 제공 사진)

 

많은 사람들이 모래톱으로 내려가 나무로 만들어진 외나무 다리를 건너본다.

 

오가는 사람들이 비켜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놓은 아이디어 좋다.

 

유명한 곳에 왔으니 셀피 하나 만들어보고 간다. 햇볕이 따갑다. 배고프다.

 

12시 50분. 수락대구곡을 찾아왔다. 구름도 머물다 가는 곳이다.

 

수락동천.

 

수락대의 유래.

 

수락대구곡은 화강암 구릉대를 끼고 입지한 대표적인 구곡으로서 완만한 기복의 구릉과 내부의 화강암 계곡이 어우러진 경관을 보여준다. 수락대는 9곡 중에서 제8곡에 해당한다. 수락대는 석관천이 화강암 구릉을 관통하면서 하천변에 솟아있는 낮은 암벽으로서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경치는 수려함을 자랑한다. 주변은 무성한 삼림으로 덮여 있으며, 화강암 계곡 내부에는 수직절리로 인해 계단형 암석 하상을 만드는 '뢰'를 비롯하여 너럭바위, 거력과 수많은 자갈들, 여기를 통과하는 맑은 물과 여울소리가 조화를 이룬다.(답사자료집 설명)

 

수락대.

 

수락대.

 

류성룡 아저씨가 놀다 간 곳이란다.

 

류성룡 아저씨는 이런 출렁다리를 못타보았거야~^^

 

3시. 오랜 만에 왕궁면의 단골식당을 찾았다. 대기 번호표를 받고 15분 정도를 기다렸다가 들어가야 했다. 장사 잘되는 식당이다.

 

3시 50분. 내성천 하류 경관을 살피기 위해 회룡포 전망대를 향했다. 기가막힌 입지의 장점을 살려 날로 커지는 장안사. 장안사 아래 쪽의 주차장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아담한 사찰이다.

 

따가운 햇살 아래 빛나는 부처님.

 

본지 여러 해가 지났다. 회룡포. 오래간만이다. 상류에서 공급되는 많은 양의 모래가 보호사면 쪽에 퇴적되어 있다.

 

이러한 근사한 회룡포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회룡포 일대에는 내성천의 심한 감입곡류로 인하여 많은 사력이 퇴적된 하천지형 경관이 나타난다. 감입곡류 하천은 하천의 곡류현상 중 하나로 지반의 융기나 해수면의 하강으로 인한 하천 침식력의 부활로 인하여 형성되는데 주로, 하천이 산지의 골짜기 사이를 흐를 때 나타난다. , 기존의 평지 내지 구릉지를 자유곡류 하던 하천이 침식기준면의 하강으로 인하여 퇴적력 보다 침식력, 그 중에서도 하방침식력이 강화되어 형성된다. 침식기준면의 하강은 지반의 융기나 해수면의 하강으로 인하여 이루어진다. 한편, 감입곡류 하천은 크게 굴삭곡류와 생육곡류로 나눌 수 있다. 굴삭곡류는 침식기준면의 급격한 하강으로 인하여 하방 침식력이 강해진 경우로 하천의 좌우사면이 대칭적이며, 생육곡류는 굴삭곡류에 비해 침식기준면의 하강 속도가 늦게 진행되어 하방침식과 함께 측방침식과 측방퇴적이 이루어지게 되어 하천의 좌우사면이 비대칭적으로 형성된다(서화진, 1988 ; 송언근, 1998).

그런데 회룡포는 지반융기나 해수면변동과 같은 구조적 운동과 기후적 변화뿐만 아니라 지질적인 원인도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지형의 발달에 지암질(地巖質)의 규제가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성천의 방향이 편암류들의 편리 방향과 동일한 점이 이를 암시한다. 그러나 회룡포에서 하천이 사행하게 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사행하게 되는 지점의 구성암석이 편암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계적, 화학적 풍화에 강한 편마암상을 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도의 암석학적 차이와 북서향의 단층이나 절리, 암맥 등 지질 구조적 규제 요인이 결합되면 하천은 회류하게 된다(이재근 외, 2004).

(답사자료집 33쪽)

 

회룡포 관광의 명물. 뿅뿅다리.

 

셀피를 만드느라 고생이 많다.

 

5시. 풍양면 삼강리이다. 삼강나루가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그 맥을 잇기 위해 삼각주막을 만들어 놓고 관광객들을 끌고 있다. 많이 낚인다.

여기서 삼강이란.....낙동강 본류에 봉화 선달산에서 발원한 내성천과 문경 동로의 황장산에서 시작된 금천 등 세 물길이 만나 하나가 되는 곳이기 때문에 붙어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한양과 영남을 잇는 영남대로도 이곳을 거쳐 갔으며, 낙동강 700리 뱃길의 종점이기도 했다. 낙동강을 거슬러온 온갖 세곡과 농산물은 삼강나루 건너편의 문경 백포나루에서 바리짐으로 다시 묶여진 다음, 노새의 등이나 수레에 실려 문경새재로 출발했다. 예천 이남의 경상도 선비들이 과거보러 한양 갈때에도 어김없이 이곳을 거쳤다. 그러다보니 삼강나루는 늘 뱃사공, 짐꾼, 견마잡이, 보부상, 방물장수, 선비 등으로 북적거렸다. 특히 장날이면 나룻배가 30여 차례나 오갈정도로 분주했다. 주막집도 네 곳, 색줏집도 어김없이 번창했다. 1930년대까지는 보부상과 뱃사공들의 숙소도 있었다.

(답사자료집 35쪽)

 

삼강주막의 옛 모습. 2012년 10월 2일에 촬영한 삼강주막 마을에 전시된 사진. 2012년에 갔었으니 5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구나.

 

낙동강은 저리로 흘러간다. 쭈욱 흘러간다. 그냥 흘러가게 두었으면 좋겠다. 토목자본이 끼어든 개발논리로 우리네 하천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예정 보다 두어 시간이나 답사 시간이 추가되었다. 늦었다. 제2 영동고속도로를 통해 서울로 진입하였다. 대체로 걱정했던 것보다는 제대로 서울에 도착하였다. 대청역 옆에 있는 중동고등학교 정문에서 하차하여 다시 만남을 약속하는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었다.

대청역 주차장에 가서 어제 주차했던 차를 출고하여 집으로 달렸다. 열심히 달렸다. 

 

이상 4월 답사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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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이다. 매년 순성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하지만, 도성의 원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1902년 지도이다. 한자와 함께 한글로도 지명이 씌여있다. 하지만 그림파일의 해상도가 낮아 작은 글자들은 알아보기가 어렵다.ㅠ.ㅠ

한양과 도성의 옛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정도.

1907년에 제작된 지도이다. 도성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잘 표시되어 있다.

(함께서울 지도전시관 홈페이지에서 가져옴)

 

당시 남아 있던 도성의 모습은 이러했다.

(한양도성연구소에서 가져옴)

 

한양도성은 새로운 교통수단과 교통로가 도입되면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서 파괴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원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복원되기는 했지만 상당한 구간은 아직 복원되지 않은 상태이다.

 

 

2017년 3월 25일 토요일 도성의 일부 구간 답사를 다녀왔다.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답사객들이 모여 시내버스 5번을 타고 남산을 올랐다. 남측과 북측을 조망하며 도성에 대한 배움의 기회를 가졌다. 이현군 박사('옛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등 수많은 주옥같은 저작물들의 저자)의 상세한 설명과 함께 했다.

저자 사인본 득템!!!

 

 

3월25일 오후에 걸어다닌 코오쓰~카메라 아이콘이 붙은 위치에서 사진을 찰칵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동대입구역을 나오면 장충단공원이다. 장충단비.

 

수표교.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홍제동으로 옮겨졌다가 1965년에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복개되었던 청계천은 복원되었지만 수표교는 있던 곳으로 돌아가질 못하고 있다. 복원된 청계천에는 엉터리 짝퉁 수표교가 만들어져 있다.

 

튼튼한 돌다리 수표교. 난간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하지만...짝퉁은?

 

장충단공원에서 남산까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였다. 5번버스.

 

서울시 투어 버스도 올라와 있다.

 

남산공원의 발자국.

 

남산에서 북쪽으로 보다.

서울 도심의 고층건물들. 멀리 북악과 인왕산. 동쪽으로 응봉, 낙산 산자락이 보인다.

 

남산의 명물? 혹은 흉물? 엄청나다......우와~

 

남산봉수대전통문화공연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더라.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래도 '공연'이라고 하면 좀.....흠....

 

국사당터에서 한양도성의 역사 및 남산에 있었던 시설물들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남산 봉수대터일지도 모르는 곳에 만들어 놓은 조형물.

 

남산 팔각정. 쓸쓸하다. 사드 논란이 있기 전에는 이곳이 인산인해였다고 한다. 주말에는 올라오질 못할 정도였다고 하더라.

 

남산 성곽을 답사한다. 계단을 걸어내려오며 축성의 시기별 특징에 대한 강의 및 질의 응답이 이어졌다.

 

중간에 서울 시내가 잘 보이는 곳에 뽀또 뽀인뜨가 있다.

 

잘 보인다. 뽀또~

 

쩌어~쪽으로 남산 한옥마을도 보인다.

 

한양도성 복원 안내. 축성 시기에 따른 형태.

 

애써 이만큼이라도 복원하였다. 망가트리지 말자.

 

남대문으로 향하는 길. 남산육교를 건넌다.

고가도로를 치우고 있다. 멀리 서울역이 보인다.

 

숭례문광장 초입에는 길바닥에 수선전도가 '새겨져' 있다.

 

새로 만든 남대문, 숭례문. 이제 국보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왔으니 셀피 하나 남겨 본다.

 

서소문터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고가차도 아래를 지나야 한다.

횡단보도이다. skid mark라고 하던가? 타이어 자국이 잔뜩 나있다. 사진 오른쪽의 흰색 차량이 이곳에서 유턴하더라. 불법아닌가? 타이어 자국으로 보아 많은 차량들이 같은 불법을 일상적으로 행하는 곳인 것 같다.

 

정동이다. 여러나라의 대사관들이 있다. 그중에서 구러시아공사관터에는.

 

구러시아 공사관이 한국전쟁 중에 폭격으로 파괴되었단다. 그리고 남은 것은 탑 부분. 1890년에 준공된 것으로 사적 제 253호. 1896년 아관파천의 현장이었다.

 

러시아공사관이 원래 이렇게 생겼었단다. 사진 오른쪽의 깃발이 날리고 있는 탑만 남아 있는 것이다.

(문화유산채널 홈페이지에서 빌려온 사진) 원본 홈페이지 링크~

http://www.k-heritage.tv/brd/board/275/L/CATEGORY/325/menu/251?brdCodeField=CATEGORY&brdCodeValue=325&bbIdx=2453&brdType=R

 

 

강북삼성병원 내에는 경교장이 있다. 1945년부터 1949년 6월 26일까지 백범 김구 선생이 거주하던 곳이다. 안두희의 흉탄에 의해 저격 당하시던 그날까지...

 

2층 창문에 저격의 흔적을 만들어 놓았다.

 

월암근린공원. 공원에서 인왕산 방면으로 보면 홍난파 가옥이 보이고 커다란 은행나무가 보인다. 행촌동이다. 은행나무 아래에 딜쿠샤가 있다.

 

이 은행나무가 있는 곳이 권율 도원수의 집터라고 한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보호수 은행나무 옆에 딜쿠샤가 있다. 문화재로서의 가치, 그리고 이 집의 주인이었던 테일러의 공헌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 답사객들.

 

이런 사연이 있는 가옥이다. 

링크 참고~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437498&plink=ORI&cooper=NAVER

 

1923년에 건축되었으니 오래되었다.

 

그래서 위험한 건물이다. 건물은 국유재산이다. 그런데 몇몇 분들이 오래 전부터 거주했단다. 건물이 붕괴 위험에 있으므로 퇴거해야 한다.

 

무단 점유 문제, 건물 복원 등의 문제가 원만하게 잘 해결되길 기대해본다.

 

인왕산의 도성 복원 상황 및 등산로 안내.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도성이 복원되어 있다. 멀리 보이는 남산 그리고 탑.

 

셀피 남기기.

 

인왕산의 황금 호랑이. 그리고 그 황금을 지키는 경찰.

 

인왕산 자락의 하나인 수성동 계곡으로 하산하였다.

이곳은 겸재 정선의 작품 '수성동도'에 맞추어 복원한 것이다. 옥인시범아파트를 철거하고 녹지를 조성하였다. 그림과 유사하게 보이려고 석축도 쌓았다. 철거하면서 발견한 돌판을 가져다가 계곡에 걸쳐 놓기도 하였다.

아래 링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01/2015050101921.html?Dep0=twitter&d=2015050101921

 

답사 일정은 수성동에서 마감하였다.

그 아랫동네가 바로 서촌.

 

윤동주 하숙집 터.

 

조금 더 시내 쪽으로 내려오니 식당가가 나온다.

 

연탄 위에 생고기~

 

나의 기억은 여기까지.... 이상 끄읏!

에고 다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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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지체구조

옛날 배울 때는 '안정지괴'였다.

2016년 9월을 지나면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것보다 상세한 지체구조도를 보니 한반도 땅덩어리가 의외로 골병들어 있는 것 같다.

여기저기 깨지고, 어설피 봉합수술도 되어 있고.


아래 지도에서 흰색은 화강암 혹은 일부 변성암, 붉은색은 화산암, 녹색은 퇴적암, 뭐 그렇다고 한다. 남부 지방에 화산암? 응회암 같은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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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다. 9월 답사는 손보기로 했다.

호미곶 해맞이공원. '상생의 손' 중에서 육지에 있는 왼손. 오른손은 바다에 있다. 

 

포항, 경주. 서울에서 먼 곳이다. 그러니 일찍 출발하는 수 밖에 없다. 일찍 출발하려면? 일찍 일어나야지. 3시20분 알람.

4시30분에 중동고 앞에서 출발한다고 했는데, 너무 일찍 도착한다. 할 수 없이 아침 해결을 고민했다. 기사식당이 보이길래 신호지켜가며 유턴하여 갔다. 곰탕이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닭칼국수를 시켰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자꾸 곰탕 생각이 났지만 닭칼국수의 양도 많고 맛도 괜찮았다. 다만 조금 늦게 나와서 먹다 남겼다는 것. 아깝다.

 

 

9월3일 새벽 출발하여 감포에서 하루 묵고, 9월 4일에 경주 남산을 답사하고 귀경하였다.

 

6시10분경. 창밖에 이정표가 보인다. 보은 부근을 달리고 있구나.

 

화서휴게소에 들러 아침 식사를 했다. 나는 생략했다. 이미 닭칼국수를 남겼으니까....^^

 

최근 태양광 발전 설비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눈에 띤다. 들에도 있고, 산에도 있고, 휴게소 주차장에도 있다.

 

3일과 4일에 이동한 포항과 경주 지역의 경로가 되겠다.

 

 

두 대의 차량으로 답사를 진행하기로 예정되었나보다. 다른 차량과 포항고속터미널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주차 공간이 없어 골목으로 들어왔다. '1실1주차'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만남 장소를 호미곶광장으로 변경하였단다. 빗속을 달린다. 해안도로를 두고 잘 닦인 큰 길을 따라 이동하였다. 포항의 도로 여러 곳이 빗속에 침수되어 있는  것을 경험하였다. 배수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형 윤곽으로 나타낸 지도를 보면, 호미곶의 동쪽 해안선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평야가 '해안단구'의 형태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는 것은 융기 작용을 받은 것이겠지? 읍천리 쪽의 해안에 있는 안내판에 '솟아오른 바닷가'란 표현이 있었다. 괜찮은 표현이 아닌가 한다.

 

10시 30분. 호미곶광장의 새천년기념관. 건물의 '새천년기념관'이라는 글자의 웻부분이 전망대이다. 아래 부분은 여러가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볼만한 곳은 '유료'.

 

호미곶광장을 상징하는 '상생의 손'.

오른손은 바다에, 왼손은 육지에 있다. 새천년기념관 전망대에서 노트3 카메라의 디지털 줌을 사용하여 촬영했다.

 

왼손 앞에 불을 피웠던 것 같다. 화상을 조심하라고 할 정도로. 하지만 9월 3일에는 세 개의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비가 많이 내려서 그런 것일까?

 

우산을 쓰고 사진을 찍으려니 그림이 영 안되서 우산을 접었다. 젖었다.

바다속에 있는 오른손이 위치한 곳이 '파식대'라고 한다. 

손가락마다 새가 앉아 있으니 마치 손톱을 세운 것처럼 보인다.

파식대가 뭐시냐고?

파식대(波蝕臺)는 암석해안에서 육지의 기반암이 파식을 받아 후퇴할 때, 해식애 밑에 형성되는 평평한 침식면이다. 파식대는 해식애의 기저부(맨 아래 바닥)에서 시작되어 저조위(썰물시 해수면) 밑으로 연장되며, 서해안처럼 조차가 큰 해안에서는 썰물 때 파식대가 전부 노출되는 것이 보통이다. 해식애면의 바다 쪽에서 일어나는 파랑의 마식과 굴식작용은 파식대라 불리는 넓은 침식 지형면을 만들며, 이러한 지형면은 대체로 해수면보다 약간 낮은곳에 형성된다.

 

새천년기념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보항.

비오는 날의 항구인지라 조용하고 아늑해보인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보내주는 사람은 말이 없는데 떠나가는 사람이 무슨~~~~

 

인공위성 영상이다.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는 곳의 대부분이 '솟아오른 바닷가'이지 싶다. 전문 용어로 해안단구.

해안단구

해안선을 따라 계단 모양으로 되어 있는 좁고 긴 지형이다. 과거에 있었던 해수면 지역이 침식을 받은 후 기반암이 융기하는 지반을 따라 솟아오른 것이다. 융기해안에서는 과거에 형성된 해안의 침식면 또는 퇴적면이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는 동안 단구를 이루며, 지각운동이 활발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계속 융기한다. 해안단구는 동해안의 여러 곳에 분포하는데, 부산의 태종대가 대표적이다. 또 강릉 남쪽의 정동진은 해성 퇴적물로 덮인 해안단구가 넓게 발달되어 있다. 장기곶에서 울산만에 이르는 해안단구도 유명하다.

 

12시 10분.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석병리에서 바닷가로 나아갔다. 노두가 있다. 공사를 하면서 드러난.

퇴적층이 보인다. 둥근 자갈층을 포함한. 

 

보라. 기반암 위에 자갈이 잔뜩 포함된 퇴적층이 덮여 있다. 이 자갈들이 무엇이냐 하천 혹은 파도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이곳은 바닷가이니 파도의 작용을 의심한다. 육지의 저 높은 곳이 옛날 언젠가는 바다의 작용을 받았던 것이라는 것이다. 이게 무엇인가 하면, '솟아오른 바닷가'라는 것이다.

 

방파제 한쪽에서 파도가 쳐들어올 때마다 하늘로 물이 솟는다. 방파제에 이런 구멍을 두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사진은 어떻게 찍었는가 하면...

 

이 자세로 찍었다. 비가 와서 우산을....조그만 우산을 받쳐들고...

(촬영자는 '일반인')

 

 

바닷가 마을에서 지진해일 대피로 표지판은 흔하다.

지진해일 대피는 직진, 해파랑길은 왼쪽으로 가란다.

 

비가 와서 흐린 하늘 아래 등대는 늘 그렇게 서 있다. 등대의 색깔이 빨간 색과 흰색이 있다는 것은 초등학생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흰색 등대가 있다는 것은 오른쪽으로 항해하라는 의미다. 왼쪽에 장애물이 있으니 오른쪽으로 항해하라는 것, 혹은 부두가 오른쪽에 있으니 그리 가라. 빨간 등대는 반대다. 오른쪽에 암초 등의 장애가 있으니 왼쪽으로 가라, 혹은 부두가 왼쪽에 있다는 의미이다. 즉, 사진 속의 빨간 등대는 바다 쪽에서 보면 부두의 오른쪽에 위치한다. 빨간 등대의 왼쪽으로 항대하면 항구로 입항. 흰색 등대는 항구의 왼쪽에 위치.

 

12시 40분. 구룡포다. 유명한 구룡포다. 고래잡이? 과메기? 하여간 유명하다. 하지만 이번 답사에서 우리 일행은 고래나 과메기는 접하질 못했다. 

근대역사문화거리가 있다. 근대역사문화관이 있다.

그런데 이 '근대역사문화'는 일본이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입구.

 

제2회 대한민국 경관대상 최우수상.

 

뭐 이런 건물들이 골목을 주욱 채우고 있다.

 

이랬었단다. 옛날에. 그랬던 시절을 오늘에 되살려보고 싶은가보다.

그런데 얘네들은 여기 왜 왔지? 어디서?

 

시코쿠 촌 동네서 왔단다. 하시모토가 대장이었나보다. 고등어 잡으러 왔단다. 돈 좀 벌었단다.

그런데 그 때는 제주도가 지금보다 좀 동쪽에 있었다. 해방 이후에 남서쪽으로 표류했다.(이런 것 디자인 하시는 분들, 좀 제대로 합시다. 만들어 놓고 쪽팔리지 않나.)

 

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식사하러 가는 줄 알고 그냥 나왔는데, 여길 올라간단다. 비가 꽤 온다. 일본인 가옥의 처마 밑에서 낙수물을 피하면서 이들이 내려오길 기다렸다. 우산이 없어라~~

(저 위의 구룡포공원에는 일본인 도가와 야사브로의 공덕을 기리는 공덕비가 있다고 한다. 해방후 동네 청년들이 시멘트를 발라버렸는데, 최근에 그것을 다시 복원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아주 잘하는 짓이다.)

네이버캐스트 참고( ↓ 클릭)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1&contents_id=2755&path=%7C184%7C196%7C237%7C&leafId=238

 

 

계단의 양쪽으로 돌기둥들이 빼곡하다.

 

돌기둥 사연.

 

즐거운 점심시간이다 - 수평회.

 

구룡포명물이라는 '모리국수'를 먹으며 대한민국 명물이라는 '소주'를 소량 맛보았다. 모리국수와 모리소바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맛은 괜찮았다.

 

 

1시 50분. 점심 식사후에 식당과 같은 골목에 있는 근대역사관을 답사하였다.

 

하시모토의 집이었다고 한다.

하시모토의 살림집이라서 그런가 이런저런 살림살이를 대충 갖추고 있었다.

 

구룡포의 근대역사문화는 '일본'인가보다. 버스 정류장도 이렇게 생겼고...

 

구룡포의 근대역사문화를 젊은이들은 이렇게 즐기고 있더라. 

그렇더라. 그랬다. 뭐...그런...

 

들어보았을까, 선무도?

금강영관(金剛靈觀) 또는 대중적으로 더 유명한 하위일파의 선무도(禪武道)는 부산 범어사의 양익 스님이 창시한 무술이다. 양익 스님은 2006년 열반했다. 불교 무술 최고고수로 명성이 높았다. 현재 선무도의 문주는 양익 스님의 제자인 적운 스님이라고 한다. 경주 골굴사 주지스님이다.

그래서 선무도의 총본산인 골굴사를 답사하고자 하였을까? 선무도를 찾아서?

약 1,500여 년 전 인도에서 온 광유 선인 일행이 경주 함월산에 정착하면서 골굴사와 기림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이 중에서 골굴사는 광유스님 일행이 인도의 석굴 사원을 본떠서 석굴사원 형태로 조성한 국내에서 가장 오랜 된 석굴사원이다.

조선 중기 겸재 정선의 그림으로 볼 때 골굴사는 여러 석굴들 앞에 목조 전실을 만들고 여기에 기와를 얹은 형태이다. 조선 중후기에 화재로 소실된 상태로 방치되었다가 지금으로부터 약 70여 년 전 경주에 사는 박씨 일가가 상주하면서 다시 사찰로 만들었고, 1989년에 한 개인에게 매매되어 넘어간 상태였던 것을 당시 기림사 주지였던 설적운 스님이 매입해서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본사 불국사의 말사로 등록되었다.

주불인 마애여래좌상(보물 제581호)이 문무대왕의 수중릉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주변에 관음굴, 지장굴, 약사굴, 나한굴, 신중단, 칠성단, 산신당 등의 굴법당과 더불어 남근바위, 여궁 등의 민간 전례신앙의 흔적까지 있어 한국적인 석굴사원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근래에 이르러 골굴사에는 불가의 전통 수행법인 선무도 수련원이 개설되어 내국인은 물론 수많은 외국인들이 전통의 불교무예를 배우는 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위키피디아-

 

그렇다. 선무도 때문이 아니라 석굴사원에 대한 관심 때문에 답사하게 된 것일 것이다. 보자.

 

3시 20분. 주차장. 뭔가 벌써 분위기가 다르다. 

 

얼굴과 근육을 보니 주눅든다. 눈깔고 지나간다.

 

이런 길이 좋다.

 

근사하다.

 

그런가보다. 하지만 골굴사를 찾은 목적은...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이거다. 석굴사원은 타포니였던 것이다.

타포니는 암석이 물리적·화학적 풍화작용을 받은 결과 암석의 표면에 형성되는 요형(凹型)의 미지형을 풍화혈이라고 하는데, 풍화혈 중에서도 특히 암석의 측면(암벽)에 벌집처럼 집단적으로 파인 구멍을 가리키는 말이다. 풍화혈은 해안이나 화강암 산지에서 흔히 나타나는데, 비가 내린 후 물이 괴거나 그늘이 져서 주변보다 습하기 때문에 입상붕괴가 선택적으로 촉진될 수 있는 부위에 형성된다. 또한 역암, 사암이나 석회암에서도 형성되며, 특히 건조지역에서는 이의 발달이 인상적이다.

 

타포니가 어딨나?

 

요기~

 

타포니 마애여래좌상.

 

대적광전. 아담하니 예쁘다.

 

하여간....여기서도 남녀를 찾고 있다.

 

마애여래좌상으로 오르는 절벽에서 본 대적광전. 

앞의 공간에서 선무도 공연이 펼쳐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아래의 실내에서 공연을 한다. 주변에서 편하게 쉽게 구경하며 즐길 수 있을텐데 왜 폐쇄된 실내로 들어갔을까? 공연중이었으나 사람들로 가득하여 들어가보질 못했다. 오후 3시반에 공연을 시작한다.

 

절벽에 뚫린 구멍도 타포니일진데, 지나가면서 미끄러지면 어찌하나 하는 걱정만 했지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생각이 나네. 그때 다리가 후들거리기는 했지만....

 

타포니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에는 관음굴이라 조성해 놓았다. 자연에 인공이 무진장 가미되어 있는 상태이다.

 

아래를 보니 선무도 공연을 마친 출연진이 내려가고 있었다. 곱다.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보였다.

 

유명했던 강아지, 동아.

 

웃으시네...

 

 

그리고 양남면 읍천리의 주상절리를 보러왔다.

주상절리란?

마그마에서 분출한 1000℃ 이상의 뜨거운 용암은 상대적으로 차가운 지표면과 접촉하는 하부와 차가운 공기와 접촉하는 상부에서 부터 빠르게 냉각된다. 빠르게 냉각하는 용암은 빠르게 수축하게 되어 용암의 표면에는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듯이 오각현 혹은 육각형 모양의 틈(절리)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냉각수축 작용으로 생긴 틈이 수직한방향으로 연장되어 발달하면 기둥모양의 틈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라 한다.

 

양남주상절리의 형태

자연이 연출한 조각품이라 일컬어지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이곳 양남면 주상절리 해변에는 10m가 넘는 정교한 돌기둥들이 1.7km에 걸처 고대 희랍의 신전 기둥처럼 줄지어 서 있는가 하면, 주상절리가 원목을 포개어 놓은 것 같은 형상으로 누워 있고 또 백두산 천지를 보는 것 같은 신비감과 여인네의 주름치마, 부채꼴모양, 꽃봉우리 등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가 옹기종이 모여 있는 가히 지질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세계유일의 자연유산이다.

 

주상절리 트레킹 코스 「파도소리길」

주상절리 전구간(1.7km)을 트레킹할 수 있는 「파도소리길」은 구간별로 몽돌길, 야생화길, 등대길, 데크길 등 해안 환경을 고려한 테마로 조성되어 있으며, 특히 등대길 구간은 파도·등대·주상절리의 자연경관을 출렁다리에서 동시에 감상하면서 산책할 수 있는 구간으로 파도소리 길의 새로운 명소다. 산책로 전구간에 경관조명 등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주상절리 3개소에 투광기를 설치함으로써 야간 시간대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이 가능하도록 시설하여 하절기에는 많은 관광객 이용이 가능하며, 읍천항 갤러리(2.3km)와 연결된 총 4.0km의 테마가 있는 어촌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http://guide.gyeongju.go.kr/deploy/enjoy/01/01_05/1195853_7533.html

 

 

5시. 바닷가 데크에서 주상절리를 감상하려 하는 답사객들.

 

주상절리. 기둥모양으로 갈라진 바위다. 기둥모양. 그런데 누워있다.

가운데에다가 누군가가 작품을 만들어두었다. 신생대 제3기에 만들어진 작품인 것 같다.

 

부채살 모양으로 펼쳐져 누워있는 주상절리. 그것을 보고 싶었다. 저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뽀인트로 접근할 수가 없다.

 

이눔 때문에.

 

이것이다. 그런데 공사기간 표시가 없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공사책임자 이름도 가려져 있다. 아마도 공사가 중단된 것은 아닌지...

역시. 늦어지고 있다. 경주시청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자료. 24억원짜리 사업이라고 한다. 2016년 6월에 외관 준공 예정이었으나 멈춰있다. 왜 그런 것일까?

http://m.gyeongju.go.kr/area/page.do?mnu_uid=1316&

 

이렇게 부채꼴로 펼쳐진 상태로 누워있는 주상절리를 직접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볼 수 있는 뽀인트에 예전에는 군 초소 설치되어 있어 접근이 곤란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망대 공사 중이라고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니...

이 사진은 아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다.

http://blog.naver.com/gyeongju_e/120162367393

 

 

우체통만 느린 것이 아니라 공사도 늦은.....

 

바위에 붙어있는 저 소나무에게 몇 년 늦춰지는 공사기간 따위는 의미없으리라.ㅎㅎㅎ

 

설명 좋다. 위로솟는 주상절리.

 

솟아라~

 

이곳에도 둥근 자갈의 퇴적층이 보인다.

 

위의 자갈층은 이곳이 '솟아오른 바닷가'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란다.

'융기해안'보다 '솟아오른 바닷가'가 낫다. 그림 설명에서는 '융기'란 단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구나.^^

 

누워있는 주상절리.

 

누워있는 주상절리 쪽으로는 진입이 금지되어 있다. CCTV로 감시한다고도 되어 있다.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가는길. 하서항에 있다.

통행안전수칙. 사유지를 통과하기 때문에 서로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겠다.

 

 

답사대원들 중 몇몇 분은 여기서 작별을 했다. 그리고 남은 대원들은 답사를 계속한다......

 

6시. 당일팀과 헤어져 1박팀은 숙소로 예정된 감포로 향하다가 이견대에 멈추었다.

 

바닷가가 쓸쓸하다.

 

 

6시 30분. 감포의 해변. 나정 해수욕장이다. 사빈이 곱게 펼쳐져 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식당에 모였다.

 

저녁 메뉴는 물회, 아침메뉴는 소고기국밥이었다.

 


 

남포의 나정해수욕장에서 하룻밤 신세진 숙소는 황토한옥민박이었다.

9월 4일 아침이 밝았다.

 

민가로 사용되던 한옥을 구입하여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사장님이 인테리어를 하시는 분이라 하나 하나 직접 개조했다고 한다. 건물이 셋인데, 하나는 살림집으로 이용하고 있고 나머지 두 채의 건물은 민박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지라 모든 것이 깔끔하다.

 

심지어 바베큐 도구도 깔끔하다. 새 것이었다.

저녁 식사하고 들어와 씻고 그냥 잔 것 같은데, 마당 한 쪽 상태가 이러했다. 왜 그런 것이지? 탁자에 비친 햇볕이 눈부시다.

 

옥이밥상에서 국밥 한그릇 먹고 나정해수욕장 산책. 나는 앉아 있고 산책은 다른 분들이 하셨다. 분업체계.

 

자..이제 가자 경주의 남산으로.

경주 남산에 왔다. 남산?

경주남산연구소 홈페이지에서 소개 자료를 긁어온다.(자세한 내용은 www.kynamsan.org 참고)

남산은 서라벌의 진산(鎭山)이다. 북의 금오봉(金鰲峰, 468m)과 남의 고위봉(高位峰, 494m)을 중심으로 동서 너비 4km, 남북 길이 10km의 타원형으로, 한 마리의 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엎드린 형상이다. 골은 깊고 능선은 변화무쌍하여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었으니 작으면서도 큰 산이다.
남산에는 온갖 전설이 남아 있고, 신라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역사의 산이며, 선조들의 숨결이 가득한 민족문화의 산실이다. 이 산 주변에는 신석기 말기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고, 신라시조 박혁거세거서간이 탄강(誕降)한 나정(蘿井)과 초기 왕궁, 나을신궁(奈乙神宮), 왕릉이 즐비하며, 도성(都城)을 지켜온 남산신성(南山新城)을 비롯한 4곳의 산성과, 망국의 한이 서린 포석정지(鮑石亭趾)가 있어 남산은 실로 신라 천년의 역사와 함께 한 산이라 할 수 있다.
남산에는 많은 불상과 탑들이 남아 있다. 그 대부분은 석탑(石塔)과 석불(石佛)로서 특히 마애불(磨崖佛)이 많다. 이처럼 많은 유물들이 돌로 만들어진 데에는 질 좋은 화강암이 많기도 하지만,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신앙된 바위 신앙과도 관련이 깊다.
아득한 옛날부터 남산 바위 속에는 하늘나라의 신들과 땅위의 선신(善神) 들이 머물면서 이 땅의 백성들을 지켜준다고 믿 었으며,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는 산 속, 바위 속의 신들이 부처와 보살로 바뀌어 불교의 성산(聖山)으로 신앙되어 왔다.이러한 신앙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다.
비파바위(琵琶巖)의 부처님이 망덕사(望德寺)의 낙성재(落成齋)에 누추한 옷차림으로 참석하였는데, 왕이 그 누추함을 업신여기자, 왕을 꾸짖고는 진신석가(眞身釋迦)의 모습으로 바뀌어 홀연히 남산 바위 속으로 숨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누추한 승복을 입고 광주리에 물고기를 담아 들고 나타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경흥국사(景興國師)의 제자가 나무라자, 말을 타며 호사스럽게 지내는 경흥국사를 크게 꾸짖고는 다시 남산 속으로 숨어버린 문수보살의 이야기도 있으며, 충담(忠談)스님은 삼화령(三花嶺) 미륵세존(彌勒世尊)에게 다공양(茶供養)을 올린 후 경덕왕(景德王)에게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올려 군신(君臣)과 백성이 서로의 본분을 다할 때 나라가 태평하다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설화들은 곧 남산과 남산 바위 속에는 부처와 보살이 머물면서 권세있는 자나, 존경받는 지식인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는 산에서 내려와 호되게 꾸짖고 가르침을 주고는 다시 산 속, 바위 속에 숨었다가, 백성들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내려와 보살펴 준다고 신앙되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신앙은 또한 예술로 승화되고 표현되어, 골마다 절이 세워지고, 바위마다 불상(佛像)이 조성되며, 수많은 탑이 세워져 불국토(佛國土)를 이루었다.
남산에 불상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7세기 초로 추정되고 있다. 7세기 초에 조성된 동남산 부처골 감실여래좌상(佛谷龕室如來坐像)은 투박한 시골 할머니가 돌로 만든 집 속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고즈넉한 주변 분위기와 어울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안온하게 해주는 한국 최고(最古)의 감실불(龕室佛)이며, 7세기 중엽의 장창곡 석조미륵삼존불의상(石造彌勒三尊佛倚像)과 선방곡 석조여래삼존불(石造如來三尊佛)은 티없이 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웃음으로 잘 알려져 있다.
7세기 후반에 불세계(佛世界)를 만다라적(曼多羅的)인 기법으로 새겨 놓은 탑곡 마애조상군(磨崖造像群)은 사방의 불보살과 비천(飛天)들이 시시각각 햇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나타나는 웃는 모습들은 가히 환상적인 불세계를 표현하고도 남음이 있다. 삼국통일후 남산은 불보살이 머무는 신령스런 성산(聖山)으로 신앙되어 더욱 많은 탑과 불상이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에 사방불(四方佛)을 더하여 조성한 칠불암(七佛庵) 마애조상군은 심산궁곡 바위 절벽을 부처님들이 머무는 하늘 나라로 보고 험준한 산등성이에 절을 세운 용기와 큰 바위를 쪼아 대불(大佛)들을 조성하여 화엄세계(華嚴世界)를 구현해 낸 신앙의 열정에는 그저 감격 할 뿐이다.
조선초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금오신화(金鰲神話)』를 집필한 용장계곡 용장사지(茸長寺址)의 석조삼륜대좌불(石造三輪臺坐佛)은 자연석 바위를 하대석으로 삼고 둥글둥글한 대좌를 삼단으로 놓아 그 위 연꽃 방석에 부처님을 모셨으니 바로 수미산(須彌山) 위 도솔천(兜率天)의 미륵보살을 모신 것이 아니겠는가?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 불상은 유가종(瑜伽宗)의 대덕(大德)이신 대현(大賢)스님께서 염불하면서 돌면 이 미륵상 또한 고개를 돌렸다고 한다. 
남산 전체가 마애불의 보고(寶庫)이지만, 특히 냉골(삼릉계곡)은 마애불이 많다. 입가에 방글방글 미소를 머금은 채 금방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마애관음보살입상(磨崖觀音菩薩立像), 다듬지 않은 넓은 바위 면에 사바세계(裟婆世界)에서 설법하고 있는 석가삼존불과, 극락으로 왕생(往生)하는 중생을 마중 나오시는 신비스런 모습의 내영아미타여래(來迎阿彌陀如來)를 한 폭의 그림으로 새긴 선각육존불(線刻六尊佛), 얼굴은 원만상으로 조각하고 몸은 억센 선으로, 연화대좌는 부드럽고 희미한 선으로 처리하여, 기도하는 중생을 위하여 바위 속에서 모습을 들어내는 듯한 높이 6m의 상선암 마애대좌불(磨崖大坐佛) 등 남산 전체가 불보살의 세계를 옮겨 놓은 듯하다.
부처님 나라를 그리는 간절한 신앙은 탑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용장계곡의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200여m가 넘는 높은 바위 봉우리를 하층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 상층기단을 쌓고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을 얹어 삼층석탑을 쌓았으니 하층기단인 바위산은 바로 8만 유순(由旬)이나 되는 수미산이 되는 것이오. 탑 위 푸른 하늘이 수미산정(須彌山頂)의 부처님 세계가 되니, 서라벌 벌판은 부처님이 굽어보는 복된 땅이 되는 것이다.위 산을 기단으로 삼은 탑은 최근 복원한 잠늠골 삼층석탑과 늠비봉 오층석탑에서도 나타날 뿐만 아니라, 초기 왕궁지였던 창림사지(昌林寺址) 삼층석탑과 남산리 사지(寺址) 서삼층석탑에 이르러서는 상층기단부에 팔부중상(八部衆像)의 조각으로 나타나고 있다. 팔부중상은 사천왕(四天王)의 장수(將帥)이니 탑의 기단부가 수미산이 되는 것이다.
남산에 있는 불교유적의 가치는 자연과의 조화와 다양성에 있다. 편편한 바위가 있으면 불상을 새기고, 반반한 터가 있으면 절을 세우고, 높은 봉이 있으면 탑을 세우되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조성하였다. 비록 바위 속에 부처님이 계신다고 믿고 있어도 바위가 불상을 새기기에 적정하지 않으면 불상을 새기지 않고 예배하였으며, 절을 세워도 산을 깎고 계곡을 메운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신라인들은 바위에 부처를 새긴 것이 아니라, 바위 속에 있는 부처를 보고, 정(釘)을 들고 바위 속에 숨어 계신 부처님을 찾아낸 것이다. 남산은 자연과 예술이 조화되어 산 전체가 보물이니 세계에 그 유례가 없다. 남산을 아니 보고 어찌 경주를 보았다 할 것이며, 몇 번 오르고 어찌 남산을 안다고 할 것인가?

남산에는 왕릉 13기, 산성지(山城址) 4개소, 사지(寺址) 147개소, 불상 118체, 탑 96기, 석등 22기, 연화대 19점 등 672점의 문화유적이 남아 있으며, 이들 문화유적은 보물 13점, 사적 13개소, 중요민속자료 1개소 등 44점이 지정되어 있고, 2000년 12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그 가치를 보호받고 있다.

 

불국토라 알려진 경주 남산에 화강암을 보러왔다. ㅎㅎㅎ

불국사 화강암. 마그마가 저 깊은 땅 속에서 굳어 만들어진 화성암.

단단한 돌. 그 돌에 조각된 부처이기에 오랜 세월 남아 있을 수 있었으리.

 

이렇게 남산을 오르다 내려왔다.

 

경주 남산의 간략한 안내도 다운로드 받기( ↓ 클릭)

http://www.kjnamsan.org/03/img/gjmap001.jpg

 

가이드북도 다운로드 받아보자.( ↓ 클릭)

http://www.kjnamsan.org/data/file/gjnsguidebook.pdf

 

 

남산 안내도가 남산 아랫자락의 '현위치'에 있었다.

 

삼불사 코스를 통해 남산으로 접어든다.

 

망월사를 지나 계속 남산을 오른다. 화강암 산지를 오르며 화강암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자연스러운 혹은 인간의 손길을 많이 탄... 그런 화강암.

 

삼릉이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 오르는 골짜기를 삼릉계곡이라 한다.

 

삼릉곡 제1사지 탑재와 불상.

 

제2사지 석조여래좌상.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남산 답사는 해설사의 인솔하에 이루어졌다. 하나하나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이동을 하니 아주 좋았다.

 

삼릉계곡 석좌여래좌상.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불상 뿐만 아니라 석탑의 흔적들도 발견된다.

 

여기까지 보고 하산하였다. 빗발이 조금씩 세지고 있었고 우산이 없는 분이 대다수라서...물론 다른 이유도 있기는 했지만.

 

신선암 마애보살유희좌상이 유명한 것 같은데 남산의 반대편 사면에 있다는 핑계를 대고 하산하였다. Next time.......okay?

 

 

배꼽에서 부른다.

부름에 응답한다.

12시. 삼미정으로 갔다. 여기다.

 

외관은 근사한 식당이다.

 

이런 것을 판매한다. 두부전골, 수육, 공기밥, 동동주, 소주, 도토리묵무침 등이 상 위에 올라왔다.

 

태종 무열왕릉을 찾고 싶어하는 분이 계셨다. 들렀다.

 

1시 10분.  김춘추 어르신을 뵈러왔다.

 

 

 

그리고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대충 달렸다.

추풍령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달렸다. 난 잠에 취했다.

 

유성 만남의광장에서 충남에서 오신 분들과 헤어졌다.

 

서울로 달렸다. 벌초하는 날이었다고 한다. 정체, 정체, 정체.

 

하지만 커다란 차는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티맵의 경로 안내를 무시하고 무조건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티맵의 도착 예정시간보다 약간 이른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였으니 또 헤어짐의 시간.

이런 저런 인사 대충 생략하고 이별. 헤어짐은 짧게 짧게 짧게.

 

중동고 주차장에 맡겨두었던 차를 움직여 동부간선도로를 달린다.

야간인데 전조등을 켜지 않고 달려드는 차들의 정체가 의심스럽다. 

자율주행차들일까?

 

자....다음 답사는 언제, 어디로 가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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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5-06 : 동해안 지형 답사 - 현무암, 화강암, 석회암

 

 

9월4일 밤에 서울을 출발하여 속초에서 잤다. 설악산 아래에서...
 
 
 
그리고 5일 토요일부터 답사 시작. 속초에서 시작해 동해안을 따라 주욱 속초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서울로...
인솔 및 해설, 강의는 민석규 박사님이 맡아주셨다.
 

 

고성, 속초 방면에서의 이동경로이다. 운봉산 - 미시령 옛길 - 속초의 석호들

 

주빙하 환경에서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화석 지형인 현무암 주상절리와 암괴류를 볼 수 있는 운봉산(강원도 고성권 토성면 학야리 164-8 일대)으로 먼저 달렸다.

주변은 기반암이 화강암이지만 운봉산 일대만 신생대 제3기 현무암이 분포한다.

다른 지역의 현무암에 비해 삭박된 정도가 심하다고 하며, 그 결과 주상절리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독특한 암설 지형(애추 및 암괴류)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지역의 현무암에 대해서는 아래 사이트 참고.

http://www.dmzgeopark.com/sub02/sub02_03_02.php

 

운봉산의 모습. 사면의 암괴류가 이곳 저곳에 보인다.

 

암괴류의 모습.

 

답사중인 대원들의 모습.

 

 민박사님은 열심히 강의해주시고...

 

 나는 셀피 만들고...

 

위성 영상으로 본 운봉산

 

 

미시령 옛길을 따라 미시령 계곡을 올랐다. 

 

울산바위가 근사하게 보인다.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 돌산. 마그마의 유물.

 

 옛길이다. 길을 오가는 차량들이 격감하면서 사람들로 북적이던 휴게소도 문을 닫았다.

 

넓은 주차장은 그대로 이고, 간이 화장실이 운영되고 있었다. 사진 속의 뚜껑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된다. 두 가지를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에서 구멍을 사용하지 않을 때 막아두면 시각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상태가 유지될 것 같다.^^

 

날이 좋지 않아 동해안 쪽의 조망이 그리 밝지 않다. 같은 화강암이지만 풍화와 침식을 견디고 남은 곳에는 울산바위를 이루고 있고, 풍화가 심하게 진행된 곳은 평지로 남았다. 속초에서 농경지로 이용되었던 학사평(鶴沙坪)이 그곳이다. 하지만 기반암이 드러나고 토양층이 얇기 때문에 비옥도는 떨어지는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딱딱한 벌판이라고 '딱사벌'이라 불렸는데, 학이 내려앉은 곳이라는 의미의 학사평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답사 일행의 일부. 강의 준비중.

태백산맥을 넘는 고개들은 동서 방향의 단층선으로 따라 형성된 계곡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말씀.

 

영랑호변의 리조트를 들렀다. 전망대가 있는 고층에 올라가 주변을 조망하고 영랑호변의 암괴를 관찰하였다. 

다음에 청초호변의 엑스포 타워를 올랐다. 오랬동안 관리가 안되었던지 자물쇠를 여는 열쇠에 문제가 있어 조금 황당하였다.

그리고 유명한 물회집에서 점심 식사. 나는 섭해장국을 주문하였다.

 

 

영랑호. 비가 제대로 내리기 시작하여 답사를 불편하게 한다. 

 

비에 젖은 영랑호...

석호: 사주와 같은 작은 장애물에 의해 바다로부터 분리된 연안에 따라 나타나는 얕은 호수를 말한다. 해안에서 연안류의 작용으로 사취(砂嘴), 사주(沙柱) 등에 의하여 바다와는 전연 분리되어 형성된 호수이다. 이는 하천의 유입으로 점차 염분이 적어지고, 주변의 식물에 의하여 소택지(沼澤地)화 되어 중국에는 육지화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천연호의 대부분은 이에 속하고, 강릉 이북의 해안에 많이 발달되어 있다. 경포, 청초호, 향호, 매호, 화진포, 소동정호, 광포 등은 모두 이에 속한다. 석호는 수심이 얕고 바다와는 모래로 격리된 데 불과하므로, 지하를 통해서 해수가 섞여드는 일이 많아 염분이 높다. 바다와 수로로 연결된 것도 있으며, 담수호에 비해서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부영양호가 많다.(출처: 네이버)

 

범바위. 화강함 풍화 지형이다. 토르라고 한다.

토르는 참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북유럽 신화에도 나오고 단위이기도 하고, 러시아의 미사일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는 지형 용어이다.

토르는 차별적인 풍화작용을 받은 결과 그 지역의 기반암과 연결되어 지표에 노출되어 형성된 독립성이 강한 암괴 미지형을 말한다. 형태적으로는 똑바로 서 있는 석탑이라는 의미의 어원을 갖고 있는데, 이는 본래 영국의 다트무어(Dartmoor) 지방의 화강암괴를 지칭하는 지방어(켈트어)였다가 현재는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토르 [tor] (자연지리학사전, 2006. 5. 25., 한울아카데미)
 
토르의 형성과정을 이야기할 때 흔히 사용되는 그림이다. 화강암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렇게 저렇게 속병이 들어서 망가지고 남은 흔적이 토르이다.

 

 

 

영랑정이라는 정자가 예쁘게 만들어져 있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문화해설을 자원봉사로 해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바로 인접한 청초호로 간다.

 

속초 엑스포 타워이다. 예쁜 엉덩이를 갖고 있다.

 

 

속초 관광안내지도.

 

엑스포 타워에 오르면 청초호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속초항이 예전에는 석호인 청초호 안쪽에 있었는데, 석호 밖으로 이전한 것이라고 한다. 퇴적이 진행되어 석호의 크기가 작아지고 얕아졌기 때문에 항구로 기능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리라.

 

 

속초의 아주 유명한 물회집이다. 내리는 비를 참으며 기다리다가 겨우 입장을 하였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다른 손님들에 방행된다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자꾸 그랬다. 밖에 비가 오는데? 이래서 손님들이 몰리는 식당에 대한 기억은 자꾸 안좋은 쪽으로 남게 된다. 여튼...

찾는 손님들이 많으니 일일이 식탁을 치우고 닦고 하는 시간이 아까우리라. 그래서 식탁 위에 비닐을 미리 잔뜩 덮어두고 한번에 한장씩 벗겨내며 사용하는 것 같았다. 오후였는데 이 정도가 남았으면 오전엔 얼마나 깔아두는 것인지...

 

물회다. 이 식당의 대표 메뉴.

난 섭해장국에 대한 기억이 오래전부터 남아 있어 그것을 주문했다. 속이 안좋다고 죽을 시킨 일행분도 계셨다.

 

점심 식사후에는 양양 인구리 해안의 타포니 지형과 인근의 휴휴암 해안에서 화강암 풍화 지형을 답사하였다.

 

 

인구리. 염풍화 작용에 의해 형성된 타포니를 바다를 향한 바위 표면에서 볼 수 있다.

 

죽도 안내문. 

 

어촌계가 변화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타포니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화강암처럼 광물입자가 큰 광물에서 잘 발달하는 것이 타포니라고 한다. 광물입자와 입자 사이의 물질이 풍화되면 커다란 광물입자가 분리되니 이처럼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모양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Tafoni (singular: tafone) are small cave-like features found in granular rock such as sandstone, granite, and sandy-limestone with rounded entrances and smooth concave walls, often connected, adjacent, and/or networked. They often occur in groups that can riddle a hillside, cliff, or other rock formation. They can be found in all climate types, but are most abundant in intertidal areas and semi-arid and arid deserts. Explanations of their formation include salt weathering, differential cementation, structural variation in permeability, wetting-drying, and freezing-thawing cycles, variability in lithology, case hardening and core softening, and/or micro-climate changes and variation (that is, moisture availability). Tafoni have also been called fretting, stonelace, stone lattice, honeycomb weathering, and alveolar weathering. Tafoni features have been found across the Earth, with dramatic forms found in the Jodhpur-Ajmer section of India's Thar Desert, Petra, Jordan, Coastal California and Australia, and even in the Arctic regions, and Antarctica (Paradise 2011). The etymology of the word "tafoni" is unclear. Tafoni may come from the Greek word taphos, "tomb", or it may stem from a Corsican or Sicilian word for "holes", taffoni, or from tafonare meaning "to perforate". The earliest known publication of the term “tafoni” was in 1882. Conventionally, the word 'tafoni' is the plural form of 'tafone'.(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afoni)

 

 

주말이라 그런지 휴휴암을 찾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휴휴암에서의 답사 이동 코스.

 

우리 일행은 법당이 있는 곳은 그냥 주욱 지나치고 바닷가로 나간다.

해안에는 거대한 토르와 너럭바위, 화강암 돔, 나마(gnamma) 등의 다양한 화강암 지형을 관찰할 수 있다.

 

토지를 둘러싼 이권관계가 복잡한 것 같다. 지금은 해결되었으려나....?

 

방생산업이라고 밖에는....

 

 

 

 

 

화강암으로 구성된 넓은 너럭 바위가 있고, 그 위에는 단층선 및 풍화의 흔적들이 보인다.

 

나마(gnamma)는 화학적 풍화작용에 의해 기반암의 표면에 형성된 접시 모양의 풍화혈(와지)이다. 화강암의 기반암 표면에 가장 잘 형성되며, 주로 벽면이나 사면상에 형성되는 타포니와 구별된다.

 

화강암 단열

 

바위 표면에 밭고랑 형태의 홈이 보인다. 그루브(groove)라고 한다. 화강암의 지중 풍화 과정에서 형성되는 미지형이다.

 

발가락 바위? ㅎㅎㅎ

 

방생 산업의 결과일까? 연화법당이라 불리는 너럭 바위 부근에 물고기가 가득하다.

 

동해안을 따라 평지가 이어진다. 평지에서는 높은 곳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찾은 건물. 안에서는 무슨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관계자가 아니니 들어가지 않고 건물 외벽의 계단을 따라 오르고 올랐다. 그리고 이쪽 저쪽을 조망하였다.

 

 

석호인 향호 변에 위치한 강릉시청소년해양수련원. 

 

 

정동진이다. 강릉에 오면 정동진을 들러볼지어다. 이날은 시간이 늦어 후다닥 지나갔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안단구.

 

 

다들 둥근 자갈 찾기를 하고 있다.

 

 

인근에 건물 공사를 위해 땅을 파헤친 노두가 있었다. 페이스북에 좀 아는체 했다가 많이 아는 사람한테 쪽 당한 기억이 아직도 난다(ㅠ.ㅠ).

 

날이 저물었다. 비는 온다. 오늘 밤을 지낼 숙소가 문제다. 결국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깃발은 꽂았지만, 많이 방황하였다. 처음 예상했던 곳에는 지낼만한 곳이 없어서, 삼척 시내를 들어갔더니 일행중에 아주 어린 멤버도 있는데 보여주기 거시기한 상태라서 기피 대상이 되었다. 대충 시내에서 식사를 하면서 고민하다가 시내에서 여관업을 하시는 분의 소개를 받아 괜찮다는 펜션을 찾아갔다. 해변의 산봉우리 부근에 있다. 겨우 찾았다.

 

 

 

건물을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깔끔하고 좋았다. 여러 명이 대충 씻고 이리저리 흩어졌다. 흩어졌나?

모여서 떠든 것 같기도 하다. 어두운 밤에 비탈길을 내려가 술과 안주거리를 마련해서 올라왔다. 숙소 가격은 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9월 6일의 이동 경로이다. 먼저 아침 식사를 해변의 식당에서 하고, 성남동에 발달한 돌리네群을 답사하였다. 곡류천이 절단된 곳에서 시내를 조망하고 동굴박물관을 들렸다. 그리고 추암해변.

 

삼척 시내 부분 확대.
 

 

아침에 깨어 창밖을 보니 눈에 들어온 풍경. 비가 밤새 내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병안에 고인 물은 얼마되지 않았다. 이것이 병목현상일까? 

 

지난 밤에 들어오면서는 안보여서 몰랐는데 이 펜션은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항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멘트 공장과 선착장도 보인다. 그렇다. 삼척은 시멘트 공업 발달 지역이라고 학교에서 가르친다. 사진 속의 공장은 동양시멘트 삼척공장이다.

시멘트의 원료는 석회석이고, 삼척에 우리는 석회석 풍화 지형을 보러 온 것이었다. 

 

해변에 내려가 찾은 식당. 아침 식사 메뉴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옴마니반메움 음악을 들었던 것은 기억난다. 

 

성남동 일대에 펼쳐져 있는 돌리네群 답사 경로이다. 걸어다닐 때는 잘 보이지 않던 돌리네들이 하늘에서 본 영상에는 잘 구별된다.

 

돌리네. 노출된 석회암이 빗물에 서서히 녹으면서 형성된 낮은 저지대가 돌리네이다. 밭농사로 이용된다.

 

 

 

삼척고등학교 이전 공사 현장이라고 들은 것으로 기억한다.

 

동굴탐험관과 동굴박물관.

 

석회암의 풍화 지형인 라피에.

 

페인트 흘러내리는 것 같은 모양인데, 저것이 동굴박물관이란다.ㅎㅎㅎㅎㅎㅎㅎㅎ

 

석회암 풍화 지형 및 삼척 시내를 흐르는 오십천 주변 지형 변화에 대한 강의 진행중.

 

일제 강점기에 제작된 지형도의 삼척 도면 중 일부이다. 오늘날 오십천의 유로가 변경되었다. 지도에 화살표한 곳으로 유로가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동그라미가 있는 쪽의 구하도는 매립되어 신시가지 조성에 이용되었다.

 

 

다음 코스는 추암이다.

 

 

해변이다. 날씨 봐라... 바람이 거세니 파도가 높다.

 

에? 왠?

 

기반암이 석회암인 해변이다. 절리가 무진장 발달해 있다. 

 

파도는 쎄다. 그 결과 부서질 놈은 부서지고 남을 놈은 남아 시스택을 남겨 놓았다. 시스택이 무엇?

 

 

이거다. 이것이 추암. 촛대바위.

 

김홍도 아저씨가 이곳에서 감동 먹었나보다. 작품을 남겼다. 

金剛四郡帖 - 凌波臺라는 작품이다. 전망대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김홍도가 본 촛대바위이다. 오늘날보다 남아 있는 바위가 더 많다. 그 사이에 파랑에 의해 침식되어 사라져 버린 것이겠지. 오스트레일리아에도 나름 이름있는 시스택이 있다. "12사도 바위"라고. 원래는 "엄마 돼지와 새끼 돼지들"이라고 이름지어졌던 것이란다. 그런데 좀 있어 보이기 위해 12사도 바위라고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그 12개의 바위들도 지금은 8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하나둘 파랑에 부셔져 사라진 것이다. 이런 바위들을 시스택이라 한다. 

 

남겨보자.

 

파도 봐라. 시스택 다 죽겠다. 

 

이것은 사빈. 모래 해변이다. 흔히 해수욕장으로 이용되는 공간이다. 여름에.....

 

 

해변에 이렇게 대피 방향 표지판이 있다. 평소에 미리미리 확인해두어야.

 

화장실에서 재밌는 장면을 목격했다. 석회질이 많은 모래가 많이 날려왔기 때문일까? 석회동굴 내부에서 볼 수 있는 종유석의 형성 장면이다. 천정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종유석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그 물방울이 떨어지는 화장실 바닥에서는 석순이 자라고 있다.^^

 

다음 답사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해산하였다. 달렸다. 서울로.


 
 

 

대충 이 정도로 답사가 진행되었던 것 같다. 1년이 지나서 기록을 하려니 막막하다.

다음부터는 답사 정리를 미루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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