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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전국지리교사모임에서는 특정 주제를 선정하고 작품을 전시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이번 지리사진전 주제는?

 

2월 8일, 혼자서 갤러리에 나가보려다가 집에 놀고 있는 백수를 끌고 나섰다.

서울의 변두리 촌동네에서만 살다보니 '시내' 사정에 어둡다. 지도 등 이런 저런 자료를 대충 살펴두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옆지기가 밤새 한 시간 정도 밖에 자질 못했다고 한다. 외출을 취소하자 했더니 그냥 가자 하네.

 

9시반 아침을 굶고 나섰다. 아... 항상 안먹지...

버스 타고, 지하철 4호선을 타고 달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내렸다. 

작년에 와보았던 곳이라 쉽게 찾아간다. 12, 13번 출구 사이의 지하도 쪽으로 쭈욱 걸어간다. 

을지로 4, 5가 사이의 지하상가의 벽이 전시공간으로 이용된다.

이곳이 "을지로 아뜨리愛"이다. 10시반 쯤에 도착하였다.

제8회 전국지리교사모임 지리사진전을 알리는 포스터가 행사의 취지를 알려준다.

 

옆지기는 이미 한 작품 한 작품 꼼꼼하게 살피며 감상을 하고 있다. 궁금한 것은 서로 질문하기...

 

셀피~ 하얀 머리가 슬슬 장발 모드로 변하고 있다. 털모자로 가리기~

 

기발한 작품들이 많다. 단일민족이라 외치며 다문화를 외면하던 대한민국도 이제 빠르게 다문화를 인정해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하의 갤러리에서 지상으로 나왔다. 쌀쌀하고 바람이 차가워 미국의 따스함을 느끼기 위해 스타벅스 점에 들렀다. 그런데 스타벅스코리아는 미국 본점 것이 아니라 이마트에서 단독으로 운영하는 것이라네...

 

다시 촌놈은 세상 구경을 계속한다.

명동성당 건축 당시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아무 것도 없는 세상에 근사한 석조 건물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콘크리트 고층 건물들 사이에 숨겨져 있다.

 

명동성당이다. 마음 한구석에 담아둔 지 30년이 훨씬 넘어서야 이곳에 왔다.

명동대성당 소개 자료에서 이야기하는 명동대성당 자신 찍기 좋은 장소는?

더보기

명동대성당 전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면, 성당 마당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가 좋다. 성당을 올라오는 들머리 계단에서 성당을 바라보거나 계단 우측 오솔길 중간에서 사진의 구도를 잡으면 명동대성당 고딕양식의 상징인 종탑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

 

1898년 5월29일에 축성, 봉헌된 명동대성당은 한국 초기의 벽돌조 성당, 순수한 고딕양식 구조로 사적 제 258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성당의 평면은 라틴 십자가형 삼랑식이고, 성당의 높이는 23m, 종탑의 높이는 46.7m로 장식적 요소를 배제한 순수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대성당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다. 몰래 스테인드 글라스의 아름다움을 남기려 하다가 하다가... 과연 누구 몰래라는 것이 가능할까 싶어 마음속에만 담고 그냥 나왔다.

 

대성당 아랫쪽에 루르드 성모동굴이 위치한다. 노기남 대주교가 제작하였다 한다.

 

명동 거리 구경을 하면서 걸었다. 코로나로 조용했던 거리와 상가가 많이 살아났다는 것이 느껴지더라.

서울시청 앞에 위치한 환구단을 찾았다.

 

환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란다. 그래서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중국 것을 흉내내어 만들.....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하여 세운 석고. 당시 조각 기술 수준을 알 수 있게 한다고.

 

서울시청, 광장, 스케이트장. 통유리 건물인가? 한여름에 아주 따스하고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시반. '50년 전통' 식당을 찾아 점심을 해결했다. 아..... 아침일까?

추워서 온면을 주문했는데, 다음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다른 메뉴를 주문할 것이다.

 

식사 후 덕수궁을 찾았다. 입장료가 무려 2천원이다. 두 명인데...

입장권의 배경은 가장 크고 중요한 건물인 중화전을 중심으로 한다. 

 

korean.visitseoul.net 홈페이지에서 찾은 지도이다. 화살표의 방향과는 반대로 한바퀴 돌았다.^^

 

대한문의 월대 공사를 한다고 막아놓았다. 

 

덕수궁 안내도이다. 원래 중화문이 정문이어야 하나 강점기 이후 여러 건물이 헐리고 정원이 생기는 등의 이유로 대한문이 출입구로 이용되고 있다.

 

 

대한문에서 가장 가까운 큰 건물이 함녕전이다.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되었고, 승하한 장소이기도 하다. 다른 궁궐과 달리 덕수궁에는 황후의 침전이 따로 없는 것은 을미사변 이후 고종이 다시 황후를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 내부에는 작은 용상이 있고, 그 뒤에 일월오악도가 보인다.

 

 

월대 아랫쪽에 아궁이 구멍이 두개 보인다. 저 구멍 안쪽에 아궁이가 위치한다.

 

그리고 굴뚝은 건물과 멀리 떨어져 있다. 잦은 화재 때문이었을 듯 싶다.

 

함녕전 뒷쪽에는 한국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절충된 독특한 건물인 정관헌이 위치한다. 고종께서 노시던 곳이라고...

 

덕수궁 북쪽 야트막한 담 넘어로 영국 대사관이 보인다. 덕수궁 돌담에 붙어 있어 길을 차단하였는데, 샛문을 내어 영국대사관 구간만큼은 덕수궁 안쪽으로 산책객들이 통행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해놓았다. 무서운 브리타니아....

 

덕수궁의 핵심인 정전인 중화전과 그 앞의 중화문. 정전은 국왕이 신하들과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이다.

 

중화전 앞뜰에는 화재방지를 기원하는 '드무'들이 놓여 있다.

 

월대 윗쪽에는 정(鼎)이 놓여 있다.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솥이다.

 

중화전 내부. 천정에 용, 그아래 용상, 그 뒤에 일월오악도. 

1902년에 지어진 중화전은 중층이었으나 1904년 화재로 불타고, 1905년에 다시 지으면서 단층으로 줄였다.

 

중화전 앞쪽 뜰에는 품계석이 위치한다.

옆지기에게 마음에 드는 곳에 서보라 했더니 정6품에서 멈춘다. 소심하다.^^

 

중화전 뒷편에 있는 석어당이다. 그 옆으로 즉조당이 보인다.

즉조당은 대한제국 초기에 정전으로 활용되던 공간인데 중화전이 완성된 이후에는 편전으로 활용되었다. 신하들과의  공식업무는 정전에서, 일상적인 업무는 편전을 활용하였으니 임금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편전이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도망쳤던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왔더니 궁궐들이 모두 사라져 잠잘 곳이 없었다.

그래서 월산대군의 후손들이 살던 집을 빌렸다.

그리고 계속 빌려서 사용한 것이 경운궁 역사의 시작이다. 나중에 덕수궁이라 이름이 바뀌었고.

'옛날 임금의 집'이란 의미를 갖는 석어당은 선조가 주로 사용하였던 유서깊은 건물인데 1904년의 화재로 모두 불탄 후 1905년에 새롭게 중건한 것이다.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단청을 하지 않아 단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중화전 서쪽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과 석조전이 위치한다.

1979년에 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국전 전시회를 단체 관람했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이후 이곳에 발길을 들인 것이 두번 째이다. 그야말로 long time no see.

 

석조전은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건립을 계획하고 1900년에 착공하고 1910년에 준공하였다. 엄격한 비례와 좌우대칭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내부에 접견실, 대식당, 침실과 서재 등을 갖추었다.

강점기에 훼손되었다가 2014년에 준공 당시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지하의 전시실만 상시 관람 가능하며 다른 공간은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지하의 전시실을 눈감고 들어간다.

 

대한제국 여권을 위조해보자.

 

안창호의 여권.

 

김도삼의 여권. 이 여권의 문양을 탁본으로 만들어볼 수 있다. 네모난 도장은 스탬프로 찍을 수 있다.

 

대한문을 나와 돌담길로 접어드는데 냄새가 확 다가온다. 그 냄새의 유혹에 넘어갔다.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서울의 3대맛집으로 평가한 곳들의 한 곳이라고 한다.

 

와플 냄새에 취해 서울시립미술관 앞을 지나갔다.

 

배제학당 역사박물관 앞을 지나갔다.

 

아펜젤러기념공원을 지나갔다.

 

그리고 정동 골목에서 중명전을 찾았다.

중명전은 1897년에 경복궁의 집옥재와 같은 황궁 도서관으로 기획되어 1899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원래 서양식 1층 건물이었으나 1901년의 화재 이후 2층 건물로 재건되었다.

1904년 덕수궁의 화재 이후 고종의 임시 거처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장소이기도 하다. 1910년 강제병합 이후에는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인 경성구락부로 이용되었다.

1925년의 화재로 불탄 건물을 2009년에 복원하였다.

 

을사늑약 체결 당시의 재현된 모습. 전시실.

 

외면했더니 제국의 신하라고 하는 개자식들이 을사늑약을 저질렀다.

부랴부랴 뒷수습을 하려 헤이그로 밀사들을 파견하기도 했다.

프랑스 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친서,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제 앞으로 보내는 친서를 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번역본이다. 옥새는 스탬프로 찍은 것이다.

 

정동공원을 찾았다. 언덕 위에 구러시아 공사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관파천의 현장이다.

전쟁으로 건물이 파괴되고 탑 부분만 남아 있다. 또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인지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다.

 

덕수궁과 구러시아 공사관 사이의 골목길에 '고종의 길'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

월요일에는 개방하지 않는다.

 

고종의 길을 따라 오다보면 영국 대사관이 길을 막고 있다. 덕수궁 샛문으로 들어간다.

 

입장료 1천원 안내고 덕수궁 맛을 볼 수 있는 방법 되시겠다.

 

영국 대사관 입구. 한글로 된 간판이 자알 보인다. 아주 자알~~~

 

여기서 시내 답사를 마감하기로 하고 귀가했다.

 

두 뇐네가 시내를 조금 걸었다고 지쳤다. 6시간 반 쯤 돌아다닌 하루. 16천보 정도.

 

다음엔 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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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만 붙어 있었더니 밖에 나가는 것이 무척이나 귀찮아졌다. 그래도 한번 가보아야 하는 곳이기에 나선다.

눈이 온다. 우산을 챙기러 다시 들어갈까 하다가 그냥 간다. 오랜만에 버스 정류장. 출퇴근 시간이 아닌고로 버스 간격이 상당하다. 기다릴 수 밖에. 이것이 대중교통이니.

 

눈이 꽤 내리기 시작한다. 버스의 제일 뒷자리에 앉아 가던중 창문을 살짝 열고 이 사진을 찍는데, 바로 앞자리에 앉은 초딩 여학생이 뒤돌아 째려본다. 찬바람이 살짝 들어온 것이 몹시 싫었던 것 같다. 후다닥.

 

땅속을 나온다. 해치광장. 늘 요대목만 되면 여기서 사진을 찍고 싶어진다. 어두운 구멍에서 밝은 밖으로 나오는 경계를 즐기는 것일까.

 

멀리 북악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름의 뜨거운 햇볕에 달구어진 돌바닥이 아니기에 이런 날이 차라리 낫다.

 

뒤돌아보니 장군님의 뒷모습.

 

오랜만에 뵙는 대왕님.

 

날이 궂은데 이분은 뭐 하시는 분인지. 고생하신다.

 

대왕님을 경찰이 포위하고 있다. 무슨 잘못을 하신 것일까. 탄핵? 유폐?

 

대왕님을, 대왕님과 사진을 찍는 사람들.

 

길 건너에는 가까이 가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건물이 있다. 커다란 깃발.

 

방송국에서 나온 사람들 같다. 날 안좋은데, 저 앞의 리포터가 뭐라뭐라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더라.

 

광화문. 질주하는 차들. 건너가볼까 하다가 오늘 이곳에 온 목적 때문에 돌아선다. 날이 춥기도 하고...ㅠ.ㅠ

 

인왕과 광화.

 

광장을 한바퀴 돌아 지하도로 내려선다. 이리저리 두리번. 광화랑이라 했는데, 어딘줄 모르겠다. 벽에 이정표도 없다. 일단 정한 방향으로 직진!

찾았다. 입구와 분위기가 상당히 소박하고 단촐하다.

 

관람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꾸준하다. 아는 사람 두분을 만났다. 반가운 사람들. 간단히 인사하고 후다닥.

 

장소가 좁아 전시한 사진들의 간격이 너무 없어 보인다. 사진 설명 글자들이 작고, 아래쪽에 있어 보기에 조금 편치 않은 면이 있었다.

 

여러 사람들의 수고로움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리에서 소중한 작품들을 편하게 잘 감상하였다. 

다음의 지리사진전은 보다 넓은 공간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의 지리사진전은 보다 다양한 주제의 다양한 사진들로 채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의 지리사진전에는 음....한번 디밀어보자.

 

집에 오니 눈이 꽤 쌓였다. 아파트 건물 앞의 발자국이 없는 부분.

 

눈발. 눈보라 수준.

 

......

사진들이 모두 날씨탓을 하게 한다. 조금씩만 보정을 하여도 달라질텐데. 그냥 올린다. 날씨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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